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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만일 내가 접하던 정보들이 지금보다 더 적었다면 나는 당연하다는 듯 더 덜떨어진 대우에도 고민없이 다들 그렇게 사나보다 하고 살았을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럴 수가 없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꼬인걸까? 나만 그렇게 투덜대고 있는 문제인가? 다른 이들이 보기에 이건 아무 일도 아닌가? 배부른 소리일뿐인가? 무엇보다도 다른 이의 견해가 대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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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환경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층이 달라 조금은 한산한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뭐 되게 편하다거나 그런것도 아니었다. ���리는 말그대로 데스크 자리라 누군가 방문이라도 할 라 치면 접객을 해야 하고 전화받다가도 짐짓 반가운 손님이 온 척 환한 웃음을 지어야 하는 그런 자리였다. 내 서류를 꽂을 자리같은건 애당초 없었고 짐을 둘 공간, 수납장 같은 것도 없었기에 내 책상 자리는 늘 지저분했다. 불만이라면 불만이었으나 어차피 내가 짐을 갖다놓고 쓰는 성격도 ��되기에 포기했다. 책상과 의자 사이는 너무나 좁았고 그 사이에 쓰레기통까지 갖다놓은 상황이라 입학상담차 누군가 방문하면 그 쓰레기통을 내 발밑에 숨기기도 했다. 뭐 냄새나는 그런 쓰레기를 담진 않았지만 그 정도로 작업공간이 개판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것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분주하게 불을 켜고 오늘 수업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에 따른 교재랑 준비물 챙기고 너무 춥거나 더우면 냉난방도 미리 해 놓는다. 컴퓨터 자리로 돌아와서 목요일까지 다 마쳐놓아야 할 계획안들을 작성해야 한다. 월요일에 오면 제일먼저 주간업무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주간 계획안, 월간계획안, 주말 메모북, 월요일에는 종일반 수업을 위해 교재를 복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교재를 다 사라고 하면 그에 따른 교재비 관리도 귀찮고 원 입장에서 또 돈을 요구해야 하니 학부모들에게 싫은 소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없는 시간과 노동력을 짜내는 게 더 이익인거다. 어차피 나한테는 월급 주니까. 그것도 한숨쉬는 시간 짜내면 가능하긴하다. 여하튼 이런저런 컴퓨터 작업하며 9시 30분이 되면 1층으로 내려가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건물 입구 앞은 말그대로 인도와 자전거 도로여서 아이들이 평화롭게 거닐만한 입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자전거와 오토바이, 불특정 다수의 행인들로부터 보호해야하고 올라가는 3층 계단까지 안전하게 인도해야 한다. 데려오고 나면 옷을 정리하고 가방정리 하는 등을 지도하고 혹시 가방안에 무언가 들어있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그래도 간혹 발견 못 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는 간식을 먹이고 화장실을 미리 가도록 해야 하고.. 그래도 교실과 화장실간의 간격이 무척 가까워서 할 만 했다. 그리고 이 모든것이 끝나고 나서도 나는 아이들을 충분히 놀이하도록 해 줘야 한다. 처음에는 시간이 되면 막무가내로 아이들을 수업에 이끌었다. 정리하게 하고 수업으로 끌어들여 수업시간을 엄수했더니 아이들은 흥미를 잃고 지쳐 나가 떨어졌다. 그 연령대에 맞지 않는 스케쥴이었다. 아이들에게 놀이시간을 뺏은것이며 나 스스로도 지쳐 떨어져 나가기 좋은 스케쥴이란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아이들을 일단 한시간 놀게 하고 난 다음 모든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나서 점심... 식사시간은 그야말로 기싸움이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다양한 음식을 접하는 것의 중요함을 인식시키고 바른 식사예절의 중요성과 올바른 방법을 교육하는 시간이다. 또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분배해야 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이 시간을 싫어하진 않는다.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기때문이다. 그렇게 식사시간이 끝나면 스스로 정리하도록 지도하고 양치질을 시키고 각자 보내준 로션이며 심지어 치실질까지 해 줘야한다. 집에 가기전에 아이들이 기분좋게 하원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옷 매무새 하나 하나 다 신경써서 깔끔하게 보내야 하기에 하나씩 모두 봐줘야 하며 여자 아이들은 머리도 다시 묶어줘야만 한다. 버스를 타기 전에 화장실도 모두 다녀와야 한다. 그리고 오후에 들어오는 아이들과 부딪혀 혼란스럽지 않도록 계단을 미리 내려가야 한다. 너무 일찍 내려와도 안된다. 그렇게 아이들이 버스를 각자의 호수대로 타고나면 벨트를 잘 메고 있는지 좌석에 앉은 후 다른 일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부리나케 올라와 종일반 수업을 하거나 데스크에 앉아 매일 하는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 그날의 활동 사진을 두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업로드하고 학부모에게 일일이 전화하여 그날의 일과를 이야기한 뒤 상담일지에 올리는 것. 종일반 수업이 있는 날은 말그대로 빠듯하게 근무시간을 채우거나 초과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약 20~30분 정도가 여유있거나 할때가 있는데 그런 시간에 수업준비를 하거나 그전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다 처리해야 하는것이다. 활동지 정리라던가 아이들 물품 확인 등등. 그러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그 2, 30분을 뺏지 못해 안달이다. 여유가 없으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걸 자기 입장이 되지 않으면 가볍게 무시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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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들의 무지이기도 하지만 그들 역시 매우 격무에 시달리고 있음을 안다. 나는 이것이 평교사 생활을 해 보지 않은, 해 볼 필요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윗선에서 진두지휘를 하며 생기는 문제라고 보기도 했다. 요즘은 각자에게 주변 돌아볼 여유도 없고 있다고 해도 그럴 의지도 남아있지 않은 문제같다. 한국 사람들에게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등쳐먹기 기질도 한몫하는 것 같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등쳐먹기 기질을 무슨 사회성이라도 되는 양 아주 자랑하고 능력삼아 말하는 것도 보았다. 나는 내 자존심때문에라도 상종하고 싶지 않다. 동류로 취급되고 싶지도 않다.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의 관계에서도 그러는데 아예 모르는 사이에서의 예의같은건 사치라고 부르는 그런 부류들과 엮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평생 그들을 이해하지 않으련다. 그냥 ‘당신도 그렇군’하는 순간 나의 마음속에선 뭔가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내 의견따위 중요하지 않다 치부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건 그와 대면하는 상당수의 사람들도 그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직업의 세계엔 이런 일들이 많은데 교정이 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누구도 이 직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젊은 여자들이 이 직업군 구성원중 대다수를 차지한다. 누구도 젊은 여자들의 삶에 대해, 임금에 대해, 노후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그만 둬”라는 이야기를 같은 젊은 여자들에게서도 너무 많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결혼이 삶의 완성이 아니다. 4인 가족 구성하고 ‘아 내 삶은 어느정도 자리잡았어!’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내 삶이고 내 커리어다.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직업과 삶 만큼 내것 역시 중요하며 나 역시 매우 신경쓰고 고민하고 있지만 세상은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고 주목한 적도 없다. 내가 요즘 가시화라는게 중요하구나 하는 게 그런 이유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니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그러다보니 개차반이 되어도 여전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게 저 멀리 섬 염전 노예의 일이라고 생각하나? 틀렸다. 도시속에서 사는 당신의 이야기이다. 일을 해 주러 가면서도 교통비를 스스로 물어야 하고 월차는 사치이며 출산휴가조차 의미가 없는 업계가 바로 여기다. “출산휴가때문에 대체교사 구하던데?”하는 건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경력교사이며 최소 사립 유치원에 근무하며 사학연금에 가입되어 있을때의 이야기다. 그 외엔 나몰라라가 현실이다. 결혼하고 아기를 가지면 당연히 그만 두는 게 여전히 이 업계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래도 하겠다면, 의지로 밀고 가면 할 수야 있겠지. 그러나 지원은 없다. 동료들끼리도 지원해줄 방법은 없다. 윗선에서 해 주질 않는데 그게 될리가. 그런 부담을 안고 싶어하고 고통을 분담하려는 분위기는 한국인들에겐 잘 없다. 멸종되었다고 봐야한다. 소멸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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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심각하게 방송 시사프로에 고발을 할까 했던 적도 있다. 거의 반협박에 가까울정도로 일방적인 통보를 받아 해고되다시피하고 자기들이 찔리는 구석이 있으니 위로비라며 내 정당한 퇴직금을 괴상한 이름으로 준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도 약속한 날짜에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라는 개인은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도 대단하진 않으나 나는 그 대단하지 않은 이들과 비교해도 개미목소리만큼의 존재감도 없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래도 남들에게 뭐하러 그런걸 이제와서 하냐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유아교육과 입학해서 공부한 것이 정말 많이 나를 깨어나게 했다. 태교와 생애초기 경험을 그렇게든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론 유아교육학이 얼마나 도외시되어왔는지 알면서 한숨이 나왔고 여전히 전근대적인 시각을 가진 교수들이 교편을 잡고 있어 변화가 쉽지 않았던 것도 심경 복잡하게 했지만 ‘아 내가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부분이 있구나. 내가 먼저 뭔가를 시도할 부분이 많구나’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리고 잘 찾아보면 꼭 하나 다른 교수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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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앞일을 고민하는 평범한 30대 후반의 교사다. 나도 내 앞일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냥 평교사로 이 현실을 그냥 묻어두고 살고 싶지 않다. 법에 저촉되지 않게 할 수 있는 항의는 다 하며 가시화하고 싶다. 힘을 모으고 싶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자꾸 고민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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