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사람의 70퍼센트는 물이라던데 그러니 10명 중에 7명은 물이 사람인 척을 하고 있는거지... 나는 그 사람들을 매달아두고 의지 할 풍선으로 봤다. 그래서 풍선이 결국 터지면 그건 내가 연약한 탓이 아니고 풍선 탓이라고 하고 싶었던 거다.. 사실은 그 사람이 풍선인 걸 알고서 매단거면서... 결론이 없다는 걸 알면서 당신이 결론인 것처럼 군 건 명백히 내 쪽이다. 그러니 감히 터지지 말고 잘 버티란 말은 못하겠네. 그러니까 같이 아프고 같이 행복해지자... 이번에만 또 넘겨보자. 물결처럼 부딪치고 합쳐지고 부서져 그저 세상의 일부로서 할일을 하고, 그래도 자꾸만 책임감이 느껴지면 그걸 나눠주기로 하자. 그렇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가 꼭 단단한 물질이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풍선으로 살다가 죽을 수 있는 세상이길 바라며..
0 notes
Text
나에게 명절은 언젠가부터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옷을 입는 것도, 물건을 사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뭔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소중하게 만들어갈 의향이 없다. 소중한 걸 만들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하지만 정작 소중한 순간은 소중하게 대해선 안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친구들이랑 놀 때, 영화를 만들 때, 글을 쓸 때, 사랑을 할 때. 그것들을 너무 소중하게 여기니 오히려 그것들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아니면, 쿨하게 굴어야 하기 때문에 순간들을 일부러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그러다보니 내게 소중한 것이 아예 없어진 것이다. 사실은 내게 친구를 만나는 건 아주 소중한 순간이다. 시간이 아까워서 좀 천천히 갔으면 싶을 정도로.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 순간과 영화를 보는 순간도 그러하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 소중하다고 해서 내가 그들에게 딱히 뭘 해주는 건 없다. 빨리 보고 싶으니 몇 장면은 후다닥 넘기기도 하고, 다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함부로 대하는 걸까…) 애인과 보내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너무 소중한 티를 내면 부담스러울테니, 덜 소중하게 보이게끔… 소중한 것을 소중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 그래서 그것들을 조금씩 행하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운 것 같기도 하다. 즐겁다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곁에 머물면, 언젠가 나도 그렇게 표현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나의 표현법은 참 이상하다. 소중해도 그만큼 아끼려 들지는 않는다. 소중한 걸 아끼는 게 아니라, 사용하고 닳게 해서 내 흔적을 남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것이 얼마나 보존되느냐가 아니라 그것과 나의 관계이니까. 그러니까 책도 막 보고 노트북도 팍팍 쓰고 사람한테도 그렇게 하는 거 아닐까. 다른 사람한테는 잘 안 통하는 모양이지만… 그러니 선물도 대충 주고… 그런 거 아닐까… 모르겠네…
더 이상 자기증명식의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남보다 못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는 연애는 소모적이고 무의미하다. 그 목적을 잃는다면 나는 연애의 목적을 다시 찾아야만 하는 국면에 접어들어야 하겠지만…
아무리 혼자 있어도 계속해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만… 혼자 있어도 더 혼자 있고 싶고, 더 완벽한 환경에 완벽한 풍경에 놓여지고 싶은 기분… 내년엔 5월부터 서핑 여행이나 죽어라 다니고 싶네. 말을 해도 계속 필요하다고 느끼고, 책은 읽어도 읽혀야 한다고 느껴지며, 글은 써도 써도 쓰여져야 한다고 느껴지는 이 알 수 없는 갈망은 뭘까… 보고싶은 사람에 대해 계속해서 써야겠다. 계속 이야기를 쓰고 싶어.
쇼펜하우어의 책에서 이제껏 가장 감명 깊었던 구절은 책 역시 하나의 매체에 불과하다는 성찰이었다. 그 시절엔 TV나 라디오가 없었으니 책이 매체였던 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책을 마치 ‘지혜의 창고’처럼 여기는 것과 반대로, 그는 책을 수동적 인간을 양산해내는 것 그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책에 지혜가 있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책을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 글을 쓰기 싫을 때 책을 읽었던 나의 행태에 대한 반성이 든다. 책만 읽어대는 멍청한 인간.
음악으로도 위로가 안 돼, 여행으로도 위로가 안 돼, 책도 영화도 위로가 안 돼, 그럴 땐 뭔가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니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쓴다. 글로 위로가 안 됐던 적은 글쎄, 없었을거야. 아, 친구들이 보고싶다. 혼자 있고 싶다. 좋은 향을 맡으며 글을 계속 써내려가고, 내가 좋아하는 노트북과 책과 가방이 옆에 있는 지금이 나에게 어떠한가. 어떠한가. 어떠한가.
0 notes
Text
From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책
직감에 먹이를 준다. 조금씩 형태를 바꾸어 가면서 시도하면서 들어 맞는 지점을 찾는다. They wear what they are.
-
From 소유냐 존재냐
'소유하지 않음’ 이라는 이미지를 갖는 것 역시 하나의 소유임이 간과되어 있다. ~한 나 라는 모습을 추구하는 현상 아래 ‘소유하지 않음’ 이 포함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현대인은 무의식 중에 이 법칙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을 읽거나 의식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말이다. 아니면 배웠는데 너무 당연해서 잊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소유나 탐욕은 근본적으로 ‘나쁜 욕망’에 속하며 그것을 드러내는 과시는 그 중 최악의 욕구. 물질적인 것일수록 최악에 가까우며 정신적인 것은 그나마 덜 나쁘거나 긍정적인 것으로 분류된다. 일부는 그 역시 나쁘다 (지적 우월감, 지적 허영심 등의 용어로 알 수 있다) 고 분류하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서 무소유 혹은 무가치의 삶을 행하려는 사람은 드물고 그렇게 사는 걸 불가능하다 여기기도 하는 것 같음. 거의 득도의 경지로 보는 듯. 인간의 본성은 어쩌면 ‘반동’ 아닐까? 어떤 것에 반하는, 혹은 특별한, 다른 것을 행하고 싶어하는 욕구. 나는 언제나 반동에의 욕구를 느낀다. 그런데 만약 모두가 반동하려고 한다면? 나는 적응의 욕구를 느낄 것이다. 그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반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적응의 욕구도 실은 반동의 욕구이고.. 그런 것이 아닐지...
0 notes
Text
그 사람들이 너한테 그렇게 했어도 넌 그러면 안됐지, 너는 다르잖아. 넌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잖아. 이 악물고 상처주려고 기를 쓰는 건 모를 때엔 용서가 됐지만 알고 나서는 용서할 수 없어. 니 말마따나 니가 생각해봐. 그 말에 죄책감을 안 느낄 수 있곘어?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화가 난다고 말을 뱉어 놓고 말이야, 적어도 넌 그러면 안 됐지… 이제는 정말 그럴 수가 없다. 내가 한 말은 다 나에게 너무 상처로 남는다. 피하고 싶지만 피하면 안된다.
0 notes
Text
그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분명히 있다. 누구는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다, 건강이 최고다 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딴 식으로 살면서 존재 자체만으로 당신은 소중하다고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자기 생각을 가져야 하고, 최소한 갖기 위해 부던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살면서 존재에 쓸데없는 의미를 부여하는 건 양심이 없는거다.
0 notes
Text
넘어지니 버스가 움직일 때는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치는 말과, 유난히 버스가 늦게 도착해 서두르는 마음 사이에 그렇게나 큰 오해와 몰이해가 있는 걸까?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엔 말을 걸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과 말을 잘 알아듣고 싶어 되묻는 마음 사이. 이 정도 배려는 해야 한다는 마음과 배려가 계속되어 당연시 되는 게 불편한 마음 사이.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지 않는 마음 사이. 바쁘게 핸드폰을 두드려야만 하는 사정과 저 새끼는 왜 핸드폰을 처하면서 다녀라고 생각하는 마음 사이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남의 잘못만을 무수히 탓하면서 지금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 이미 가버린 인연에게 용서를 구하는가.
0 notes
Text
1. 최근에 이런 일이 잦은 걸로 보아 정말 머리에 이상이 생긴 건지 아니면 뭔가 지속적으로 쌓여서 문제가 된 건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기억력이 분명히 쇠퇴되고 있으며, 거의 단기적 해리처럼 고개를 돌리는 순간 즉각즉으로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잊어버렸다는 사실까지 잊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잊었다는 사실은 몇 시간이 지나서야 생각나기 마련이니 사실상 잊었다는 사실마저 잊은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에 잊었던 사실은 내가 언제 또 이렇게 넘어졌는지! 였다. 작년인가 제작년, 출근길에 도봉산역의 무빙워크에서 신발끈 때문에 넘어졌었다. 그걸 잊다니! 새벽에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2. 기억력과 더불어 또 하나 걱정되는 것은 바로 언어능력. 정확히 말하면 논리적인 문장 구조를 만드는 능력인데, 예전엔 생각을 안 해도 술술 나왔다면 이제는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쓰고, 몇 번 읽어봐도 답이 안 나오는 수준이다. -설마 영어 공부 때문은 아니겠지- 중간에 인용구 붙일 때가 제일 난해하다. 윗 문단에서도 ‘어쨌든 이번에 잊었던 사실은 내가 언제 또 이렇게 넘어졌는지! 였다.’ 이 문장을 쓰는데 아직도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어떻게 고쳐야 할 지 감이 안 온다. 이건 뭐 때문에 그런 걸까? 달라진 걸 굳이 찾자면 예전엔 소설 위주로 읽었던 독서습관이 비문학으로 옮겨간 것? 하지만 그렇다면 문장력은 더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또 하나는 요즘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건데… 확실히 영어랑 한국어는 문장구조가 많이 다르긴 하다. 그치만 어쨌든 스위치 하는 연습을 하고 있으니 나아져야 맞지 쇠퇴되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단어력은 확실히 좀 헷갈리고 있기는 하다… 스위치… 저거 왜 생각이 안 나 한국말로? 전환, 변환, 번역 많잖아 젠장.
3. 어제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아주 재밌게 읽었다. 신경과 전문의인 저자가 환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인데, 굉장히 흥미롭기도 한 한편 공포스럽기도 하다. 의식 체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간접 경험하기란 공포 그 자체였기 때문.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정말 재밌고도 위대한 직업이구나, 다음 생에 나도 신경과 의사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다음 생이 아니라 지금 하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지금 할 수 있는 바로는 이런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하는 것. 하지만 그러려면 많은 전문 지식과 조사가 필요하겠지. 귀찮다. 역시 작가는 귀찮아하는 사람은 하기 힘든 일이야. 그런 생각에 또 한참 빠지다가, 어느 순간은, 내 게으름이 나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심이 있으면 찾아보고 귀찮더라도 조사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브런치에 기고할 글을 쓸 때도 항상 생각한 거지만, 나는 정보를 찾아보고 공유하길 정말 귀찮아 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에 얼마만큼 생각이 담기는 지를 더 중요시하며, 그 외의 것을 경시하는 것이다. 이러니 아주 쉽게 형편없는 글이 되어 버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력의 중요성, 내지는 귀찮음을 극복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아차린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이런 사고의 경위로 무언가를 파악하고 알아차리기 때문에, 이걸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게 굉장히 애매하다고 느낀다. 경험이 알아차림을 만드는 게 아닌, 생각들이 만들어내는 게 나에겐 보통이기 때문이다. 논리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경험으로부터 뭔가를 창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어나는 현상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나의 알아차림을 ‘머릿 속에서만 하는 공상’ 내지는 ‘남들 따라 하는 생각’ 정도로 매도하는 사람들과는 도무지 무슨 대화를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경험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없다고 치부해버린 것 아닌가. 혹은 생각이 짧아서 생각만으로 알아차림을 만들기 힘든 건가. 내 일부도 경험주의자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입장이지만 우리는 안다. 모든 경험이 알아차림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때로는 쓸모없고 시간 낭비같은 경험도 아주아주 많다. 따지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냥 이것도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문 것 뿐이다.
0 notes
Text
These days
J 따라서 커피 마시기… 비슷한 일부가 되어가는 기분이 참 좋다… 커피 2잔 째라 머리가 조금 지끈거린다는 것만 빼면…
누구나 각자의 삶이 있지 않은가. 내 인생의 정답을 아직 찾지는 못했더라도… 일단은 살아가는 것, 그리고 스스로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가꾸어 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 생각한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하루를 보내더라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취미랑, 알아차리는 것들에 집중하면서.
Every people have their own life style. Just live our life, even if we can’t find our goal or answer yet. The point is, keeping concentrate to myself and growing up to myself. If I have some ordinary daily routines, I have to keep caring with my family and friends, work, favorite things and focusing on my senses of knowing as always.
‘알아차린다’는 말은 이제 나의 일부가 된 것 같다. 그것 참 중요하다.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편, 그걸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생각에도 일면 동의한다. 이 모든 생각 역시 알아차린 것. 생각을 알아차린다는 건 모순적인 말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 타투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알아차렸다 방금.
사랑하는 마음, 애정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A모 씨를 좋아했을 때는 약 1년 간은 그것에만 미쳐있었던 것 같다. 이후에는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내 일부가 되어버렸다. 잠에서 깰 때와 자기 전, 그리고 일상 곳곳에 그를 생각했고 그게 당연했다. B 모씨를 좋아할 때는 열병처럼 깊게 앓았는데,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를 좋아하는 건 보다 쉽게 당연해졌다. 처음 세 달 정도만 아팠던 것 같다. 그의 모든 면을 알고 싶은 욕심과 내가 아는 부분만 보려는 이기심 사이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리워한다. 그와 내가 너무 멀어서 종종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캐해석? 이거 말고 다른 표현이 있을까? 아무튼 나는 이것에 소질이 있고 좋아하고 잘한다. 원래 내가 사람 파악하는데 능한 편이다. -좀 거시적이라는 게 단점이지만.- 프로그래밍 언어 배워보고 싶다. 나무위키에서 하던 짓이 좀 재밌었다. 내가 입력한대로 값이 출력되는 걸 계속 확인하고 이렇게 저렇게 바꾸는 게 좀 재밌다. 예전부터 게임 만들고 싶었는데 것도 얼른 도전해보고 싶고. 이런 면도 J 랑 좀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도전하는 거 좋아하는 거.
"사진에 내러티브가 있다, 스토리가 있다고도 하지만 나는 그런 걸 바라지는 않아요. 이야기를 상상 혹은 발전시키게끔 자극하는 단초를 제공할 순 있겠으나,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죠. 나는 단일한 이미지 그 자체로 완결되는 게 좋아요. 찰나의 고착된 순간, 그때 마주친 존재, 나를 숙연하게 만들거나 기념하고픈 욕심이 들게끔 한 어떤 사물이나 피사체의 힘이랄까. 사진이란 어떤 대상이 특정 계절, 시간대의 특정한 광선과 만났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내일 같은 곳에 간다 해도 같은 걸 만나리라는 법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순간적이죠.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가 더 새롭게 다가올 뿐 아니라 꼭 필요한 작업 같아요. 내 영화는 자연스러운 것조차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모든 걸 인공적으로 꾸며낸 결과물이지만, 내 사진은 의도적으로 미장센을 만든 듯해도 실은 우연히 그대로를 마주친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반대죠.” -사진작가 박찬욱 보그 인터뷰 중
-시발 이렇게 멋있는 말을 할 수 있다면 당장 죽겠습니다.-
"세상 만물과 나누는 대화의 방식"인 박찬욱의 사진은 최근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마치 ‘꼭 봐야 하는 좋은 영화’를 놓쳤다는 인식과 자각이 엄습했을 때처럼, 어쩐지 초조해졌다. 그의 세상과 나의 그것이 다르지 않을 텐데, 끝내주는 사건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일어나고 있다는 위기감,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조급함, 보지 못한 게 아니라 아예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반성,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재고에 이르기까지의 연쇄반응. 하지만 설사 그 훌륭한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상관없듯, 이건 삶의 목적이 아니라 태도에 관한 문제다. 모든 예술이 그렇다. 알면 좋지만 몰라도 그만. 그래 봤자 백조 머리, 기괴한 고목, 마네킹 엉덩이 같은 것일 뿐이라면서도, 나는 또 그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어떻게 하면 내 삶을 그 자체로 좀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지 계속 고민 중이다. 봐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내가 본다는 이유로 안정감있게 유지되는 삶. 우선 정갈하고 깔끔하게 옷 입기. 멋진 취미를 이어나가기. 끊임없이 일하기. 아무도 안 보더라도 나 자신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내가 보는 나와 내 삶이 피폐해지면, 자꾸 더 나은 것으로 가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아. 그러니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것 자체로 만족이 안 되면, 니가 나아지도록 만들어야지. 너 자신을 개선하고 더 나은 삶으로 자꾸 발돋움을 해야 해. 더 나은 삶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초밥 먹고 싶다.
0 notes
Text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고, 그러니 좀 더 너그럽게 사람들을 대하자고 기껏 다짐해놓고 나오는 길에 또 양아치짓 하는 버스 기사 째리는 나... 그래 나도 이렇게 약한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약하겠어...
After appointment to myself to be lovable and gentle to other people because we never endure this life without love, but I just hated a bus driver again when he’s doing bad to his passangers. How weakness it is.
After deciding myself “be gentle to other people” because we are all derserved in front of god or nature (I don’t know what can I say), but I just acted like a gangster again to bus driver. He was angry at passangers again with no reasons and I don’t like it. But this anger can fix nothing and I knew this fact. How weakness we are, we, all human nature including me.
0 notes
Text
70억 조별과제 대실패
문득 턱이 아프기 시작하면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나는 종종 아픈 내 턱을 생각하고 신경쓴다. 세상에 내 턱처럼 아픈 게 또 있을 것 같다고, 나야 뭐 다른 일도 할 수 있고 돈 벌 구석이 어디에나 있으니 괜찮지만 아예 일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진다. 버스 기사님은 벨을 늦게 눌렀다고 오늘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각자의 삶, 면, 행동, 그 모든 것들이 물결처럼 영향을 주고 받는다. 불쌍하고 안됐다. 바랄걸 바라.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겠냐고. 그렇지만 나는 뭐랄까, 조금은 세상이 바뀌었음 좋겠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한다.
0 notes
Text
나는 정말이지... 다 갖고 싶어 한다. 그게 문제다. 조금이라도 탐이 나면 다 읽어야 되고 봐야 되고 사야하며 무엇보다 해봐야 한다. 조금 해보고 질리면 금새 관둘거면서, ‘내가 하면 과연 저것보다 잘 할까?’를 기어코 실험해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아아, 수없이 도전한, 지금은 사라진 것들과 쌓여버린 수많은 계정들의 포화 상태에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다 삭제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싶다. 꾸준하고, 한 길만 파서 결국 이뤄낸 대단한 나만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이지... 다 갖고 싶어 한다. 그게 문제다. 조금이라도 탐이 나면 다 읽어야 되고 봐야 되고 사야하며 무엇보다 해봐야 한다. 조금 해보고 질리면 금새 관둘거면서, ‘내가 하면 과연 저것보다 잘 할까?’를 기어코 실험해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아아, 수없이 도전한, 지금은 사라진 것들과 쌓여버린 수많은 계정들의 포화 상태에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다 삭제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싶다. 꾸준하고, 한 길만 파서 결국 이뤄낸 대단한 나만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0 notes
Text
국가적인 재난, 자연재해, 질병, 고통, 그렇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이 생경한 어떤 도시의 풍경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에펠탑 사진을 보는 것과 같은, 무시무시한 거리감. 나는 일상의 평온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사실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나에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는 다짐한다. 어떤 곤경에 처하더라도 지금의 평온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전에 나는 알아차린다. 그 어떤 것도 내가 움직이지 않는 이상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 그 모든 것들이 생겼다 사라지는 고통이요, 불규칙이요, 우연일 뿐이다. 모든 우연적 사건들을 나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고, 나는 그저 내가 생각하는 것을 한다. 존재하는 수많은 카테고리를 의심하고 분류는 분류일 뿐이라고 단정하며 그와 비슷하고도 다른 은밀한 나를 열정을 다해 찾아낼 것을. 같음과 다름이 그저 존재할 뿐이고 같음에 매몰되지 않으며 또한 다름에 매몰되지 않을 것을. 내가 이루어낼 것을 제외한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나에게 더 영향을 끼��지 못하도록 스스로 떨쳐낼 것을. 나는 다짐한다. 그리고 알아차린다.
0 notes
Text
chak 1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해도 사회의 의식적, 무의식적 압력이나 유도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며, 그것이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이 속한 정치적, 경제적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평등한 선택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과 전체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단한 과학공부> 중
이 모든 것과 결별을 선언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살면서 국가, 가족, 사회에 대한 의무를 행하였고, 종교에 대해서는 적어도 겉으로라도 충실한 태도를 유지했고, 온갖 사교의 형식을 습득한 몽테뉴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몽테뉴가 자신을 위해 탐색한 것은 고작 경계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무슨 일에든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주어서는 안 되고 그냥 빌려주는 정도로 끝내야 한다. “영혼의 자유를 지키면서, 분명히 옳다고 생각되는 드문 순간 말고는 그것을 빌려주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등을 돌리고 작은 방으로 물러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구분은 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 또는 저것을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자신 말고는 다른 무엇과도 진짜로 결합될 수는 없다.” <위로하는 정신: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중
0 notes
Text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인생이 비참해진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모두가 서로에게 한 번씩은 실망을 하게 되기 마련인데, 실망을 겪은 이후에도 이 사람을 사랑하려고 한다면 생은 불행해지고 덜한 불행을 향한 끝없는 자기 위안으로 점철될 것이다. 그 인고의 과정은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중. 그러니 서로을 갉아먹고 괴로울 바엔 실질적 이득이라도 취하자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사랑은 대단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으며 모두의 인생에 남을 역작도 될 수 없고 끊임없이 희생자만 양산하는 인류 최악의 작품. 그들은 내가 너무 부정적이라고 혹은 너무 까탈스럽다고 얘기하곤 하지만 그걸 만든 것 조차 사랑. 나 그냥 다 관둘래, 너무 힘들어. 연락도 안 오는데 기다리는 것도 싫고 실컷 싸워놓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도 지치고 너무 명확히 보이는데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도 짜증납니다. 이것 봐 이렇게 순전하지 않다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사랑받고 싶어서 말을 하고,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인정을 받으려는 나는 정말 내가 아는 인간 중에 제일 구리다. 아니야, 인간 다 구려. 몰라.
최근에 내 현실 감각의 부재에 관해 계속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무래도 인정하는 게 제일 낫지 않나 싶다. 어릴 때부터 현실 감각 없이 살았고 솔직히 대화를 하거나 사람 관계 사이에서도 대하는 게 익숙해졌을 뿐이지 사사로운 관계 파악에 굉장한 어려움을 겪는다. 좋게 말하면 사람을 쉽게 유형화시키지는 않고 어렵게 대하는 건데, 사는덴 크게 도움이 안 된다. 게다가 이게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유형화 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하다가 뜬금없이 모든 걸 부정당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걸 정립하기까지 너무 많은 데이터를 필요로 하기도 하고. 쉽게 말해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여 정립되는 과정이 일괄적으로 처리되는 게 아니라 그냥 이것저것 모든 데이터 다 모아놓고 정리를 한참 못하고 있는 정신 상태. 정작 필요할 때 못 쓰고 나중에 하나 꺼내서 내가 찾은 진리! 격으로 얘기하고 나면 이미 그걸 아는 사람이 대다수인... 뭐 어쨌든 이런 이유로 나는 현실 세계의 항목화 된 데이터의 파악, 일의 순서, 패턴화 된 인간의 행동 양상, 티끌 모아 태산이기 때문에 티끌이 중요하다는 논리 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 관계 및 연애에 크게 지장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화낼 타이밍 조절 못함, 절친과 그냥 친구 구분 못함 등의 현상으로 종종 나타나 나 포함 주변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거기에 종종 등장하는 즉흥성까지 더해지면 5년 전에 연락 끊긴 사람한테 뜬금없이 연락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 여기에 덧붙이자면, 나는 항상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해되지 않는 세계의 논리 앞에 그 논리를 한참 부정하고 멸시하다가 어느 순간, 아 그냥 내가 잘못된 거구나. 혹은, 나는 세계와 동떨어진 사람이구나 식의 결론을 내버린다. 그런 발상에서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나는 남과 다른 법이 적용되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연결되는 것. 스티브 잡스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부분이 바로 이건데, 스티브 잡스는 교통 법규를 어기면서도 아무렇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 행동을 방해했다고 여겼단다. 이런 성향이 예술성에 영향을 주는 건지 아니면 예술성에서 발현된 성향인지는 뭐,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겠지만... 이제는 별다른 가치판단없이 스스로에 대한 정보 보고가 가능한 상황이라 모든 게 괜찮다. 요즘은 정말 어떻게 해야 예술가가 되고 예술가로서 살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하고 산다. 모든 타인의 인생은 대단하고 난 그렇지 않다. 난 자서전이 쓰일 법한 인물이 아직 아니야. 갑자기 빵 뜬 계기도 없고 작품도 없고 주변인도 없는 걸. 오스카 와일드는 대학 시절, 자기는 명성 아니면 악명이라도 떨칠 거라고 말하고 다녔단다. 그래서 나도 마음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 명성 아니면 염문설이라도 뿌리는 인간이 되리.
0 notes
Text
권한은 언제나 주는 사람에게 있다. 받아먹기만 하다가 사라지면 시원섭섭하지만 손해본 건 없는 장사지, 이런 생각은 한 두번이나 가능하다. 모든 걸 받기만 하다가 어느 날 빼앗겨 버리면 억울하고 슬프고 괴롭고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며 본인의 변화를 탓하게 된다. 하다못해 회사에서 나한테 돈을 준다고 내가 갑인 건 아니잖아. 받기에 익숙해질수록 손해에 민감해지며, 빼앗을 권한을 잃게 된다. 그만큼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뭐 마음대로 해도 좋다.
0 notes
Text
내향 직관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내가 이 ‘쓸모없음’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애초에 내가 세상을 향해 사용하는 기능 자체가 쓸모없고 애매하기 때문이었다. 이 내향 직관이라는 건 경험에 의존하는 것도, 데이터에 의존하는 것도 아닌 그저 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그건 때에 따라 맞기도 틀리기도 하기 때문에 온전히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나와, 내 몸과, 내 감이 나의 경험 및 데이터와 완전히 분리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건 사실 경험과 데이터에 의존한 결론일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결국 남들과 조금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최대의 기능을 발휘한들 누군가 데이터를 조합하고 경험해서 취득할 수 있는 하등 쓸모없는 그 놈의 감이라는 것. 이게 날 평생 괴롭힐 걸 안다. 이 안다는 것도 감이라는 게 정말 짜증나지만. 그렇지만 내가 결국 영화를 하거나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를 창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 정도는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런 일을 하는 게 영화감독 아닌가. 본인이 생각해 온 기존의 관념을 분리하고, 재조합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어 그것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는 일 말이다. 어쩌면 그 모든 게 내가 모르는, 세일즈 혹은 또 다른 무언가에 의해 흘러가는 것이라, 사실은 사람들이 눈치채든 말든 아무 상관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도전해 볼 법한 일임은 분명하다. 그런 가치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그동안은 딱 그만큼은 즐기며 살 수도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또 그 놈의 ‘감’이다. 그러나 이번엔 꽤 확실하다.) 이 감을 믿고 산다면, 언젠가 내 예언이 맞아 떨어지는 날도 올까. 이제는 남들이 이해할 법한 서사와 논리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게 좀 지겹다. 그렇게 쓰다 보면 님도 좋고 나도 좋지만, 당장의 영감을 표현하기엔 틀이 지나치게 많아진다. 게다가 좀 지겹고 뻔한 글이 되기도 한다. 그냥 언젠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 자서전에 이런 지껄이는 말들을 잔뜩 싣고, ‘아 방 감독이 하는 말이니까 의미야 만들면 되지!’ 정도로 일축시켜 버리고 싶다... 그게 솔직히 더 깐지 아니냐? 영화도 그렇게 구구절절하게 만들면서, 글까지. 너 도대체 얼마나 사랑받고 싶은 거냐. 아, 니체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아...
1 note
·
View note
Text
위기감
이번에 떠오른 키워드는 단연 위기감이다.위기감이라는 건 실제 위기와는 차원이 달라서, 그저 위기가 오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오고 있는 것인지, 혹은 그런 감각만 느끼는 지는 제 3자가 봐도 긴가민가 할 정도. 왜냐하면 위기라는 건 늘 불현듯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그렇지만 모두가 이것을 선명하게 느끼며 살고 있으니, 이것을 너무 드러내는 사람에게는 ‘나약한 사람’ 혹은 ‘충동적인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마련이고 심해지면 ‘저 사람 자체가 나에게 위기다.’라는 판단을 내릴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니 아무리 선명하게 느낀다 한들 우리는 절대 이것을 드러내면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모순적인 것은 실제 위기가 존재할 가능성이 클수록 위기감을 느끼는 이에 대한 평판이 나아지고, 실제 위기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클수록 그에 대한 평판이 떨어진다. 흔히 ‘망상이 심하다’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걸로 미루어 보았을 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는 게 사람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위기감은 실제 위기와는 무관하다. 위기와 관련한 건 오히려 불안감, 긴장감 등 실제로 피부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고, 위기감은 실제 감각과는 무관하지만 행동 충동과 매우 관련이 깊어, 실질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뇌의 감각이다. 이론을 확장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모든 상황에 위기감을 대입해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것은 거의 대부분의 행동 충동에 관여하는 것 같다. 보통은 사회적인 게 대부분이다.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와 이상을 비교하며 끊임없이 위기감을 느끼는 것. 이를테면 남자가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섹스 경험담을 자랑처럼 늘어놓는 행위.
0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