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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서적 김훈의 칼의 노래에 대한 한 줄 평에 남긴 나의 평이 무단 삭제되었다.
내가 남긴 한 줄 평의 내용은 이러하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찬양하는 친일 소설.'
출판사 측에서 내 한 줄 평을 봤다면 기분 나쁠 만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예스24 회원들에게 평가하라고 만들어 놓은 댓글 란에 남긴 회원의 평을 일부 운영자의 마음에 안 든다고 무단 삭제하는 짓은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모르겠다. 이것 역시 운영원칙에서 벗어난 비상식적이고 불공정한 짓이 아닌가 의심된다. 이렇게 부당한 처사를 당한 나는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건지 알고 싶고 일부 운영자 마음대로 회원의 글을 무단으로 삭제한 짓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온당한 방법을 묻고 싶다.
공산당도 아니고 민주국가에서 듣기 좋은 소리만 듣고,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문학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싶다.
인터넷을 뒤져서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대한 리뷰를 확인했다. 제대로 된 리뷰는 많지 않았고, 그나�� 있는 여러 리뷰는 하나 같이 소설이 감명 깊은 명작이라는 식의 칭찬 일색이다.
왜 이런 얼토당토 않은 황당한 리뷰만 있는지 생각해보자면, 이순신 장군 뽕에 절어서 사고가 마비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그게 아니라면 알량한 푼 돈 몇 냥 받고 좋게 리뷰를 써주는 장사치들의 소행일지도 모르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김훈의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한 소설이 아니라 왜놈 장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칼에 새겨진 문구에 감명 받아서 그것을 시라고까지 표현하며 칭송하고 있는 완전한 친일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이 칼의 노래인 것의 의미를 알고는 소름이 끼쳤다. 나는 속으로 김훈에게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라고 읊조렸다. 칼의 노래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그 즉시 김훈은 이순신 장군을 모욕한 친일 소설가라고 단정지었다. 정말 역겹고 화가 나는 소설이다.
칼의 노래를 읽고 리뷰를 쓴 다수의 독자들은 서로 잘난 척 해대며 온갖 이야기를 덧붙여서 누가 더 멋지게 칭찬하는지 내기라도 하듯이 도배하고 있다.
이런 가치 없고 더러운 소설을 놓고 하는 짓들이 완전 코미디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문학적으로 보아도 문장력이 아마추어적이다. 문체는 일본 소설을 베껴 쓴 것처럼 가볍고 울림이 없다. 더불어 소설적으로 극적인 요소도 전혀 없다. 전반적인 내용에는 난중일기에서처럼 이순신 장군의 번뇌가 없으며 임진왜란 동안의 소소한 일상만 그리고 있다. 그런데도 수많은 리뷰어들은 아무것도 없는 이러한 깡통 내용을 쓸쓸하고 외로우나 고뇌의 기풍이 있다는 식으로 평하고 있다. (웃음)
소설을 똥구멍으로 읽은 인간들 밖에 안 보인다.
아주 황당한 대목은 조선의 한 여인과 이순신 장군이 밤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간이 흘러서 그 여인은 왜놈의 일개 장수와도 밤을 보냈고(내가 이 부분을 순화해서 말하고 있지만, 이 부분의 표현을 순화시키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 화남.) 이 사실을 이순신 장군이 알게 되는 내용이 있다. 이것은 엄연히 난세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왜놈의 일개 왜군과 동급 취급하면서 저급한 인물로 깔아 뭉개는(격을 떨어뜨리는) 작자의 속내(숨기고 있는 의도)가 그려져 있는 것이며 조선의 여자는 개나 소나 돌려 먹어도 된다는 암묵적인 천박한 비하가 내재되어 있다. 작자 김훈은 간교한 인간이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지적하는 독자와 평론가가 없다. 개탄할 일이다.
할 말이 더 있지만 여기에서 멈춘다. 그다지 길지 않은 글이지만 글 쓰는 것이 갑자기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평가할 수준이 못 된다. B급도 안 되는 망작이다. 지금까지의 평가는 허울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된다. 진정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과대한 꽃리본으로 포장된 쓰레기 소설이다.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도 민망하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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