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스물여섯번째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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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리"
*방정리
네가 홀연히 떠나고 함께 지내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았다.
그래서 종일 방을 치웠다.
가구를 옮기고 묵혀둔 쓰레기를 버리고 너로 인해 남겨진 짐을 한데 모았다.
같이 지낸 세월은 곱절이었는데, 짐은 겨우 두 박스 정도만 남았다.
주인 없는 짐만 모아 두고 방에 덩그러니 나만 남은 이 공간이 헛헛하기만 했다.
이별도 준비한 적 없이 자연스레 떠나는 너를 나는 응원했다.
방을 치우면서 너를 정리하고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갖고 이불을 털어냈다.
그렇게 다시, 사실 그토록 싫어하던 혼자가 되었다.
-Ram
*방정리
한국에 있었을 때 한달에 한 번 갈까말까한 본가방문에 동생은 가끔씩 언제오냐며, 보고싶다고 메세지를 보내곤 했었다. 어느 목요일에 '금요일에 회사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갈꺼야'라고 동생에게 말했더니 '그럼 내일 연차쓰고 방정리 해야겠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말에 나는 실제로 빵터지고 말았지. '아니 도대체 왜 아까운 연차를 쓰면서까지 방정리를 해?'라고 되묻자 '내 방 진짜 지금 더러워. 청소 안한지 오래되서.. 언니가 보면 뭐라고 할꺼같애 ㅠㅠ' 라고 답변을 한 종종 뚱딴지같이 귀여운 매력이 있는 내 동생. 몇 년 전부터 본가에 나와 혼자 살면서 먼지의 거슬림을 잘 알게 된 나는 본가에 갈 때마다 동생 방에 먼지가 보이면, 도대체 먼지가 이게 뭐냐, 왜 닦지 않고 지내냐며 무의식+고의적으로 잔소리를 했었었지. 그게 동생의 연차에까지 영향을 미쳤구나, 싶어 잠시 혼란스럽다가도 '평소에 먼지 보일때마다 닦으면 연차까진 안써도 되잖아..'라고 괜히 안웃은척 대답했다. 사실 지금은 안하지만 동생은 꽤 오래 취미로 공방활동을 했었다. 플리마켓도 종종 나가기도 하고, 회원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모임도 하고. 그 일을 2~3년? (더 됐나..) 여튼 오래 하다보니 집에 점점 공방에서 쓸 법한 재료들이 마구 쌓이기 시작했다. 큰 색도화지나 각종 문구류는 기본이고 실리콘 건부터 시작해서 듣도보도못한 것들이 많이 쌓여있었다. 책상 아래에 쌓여있었던 그 재료들은 점점 책상 밖으로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고, 옷장과 침대 사이까지도 결국 점령하고 말았다. 또한 동생은 약간 청소를 몰아서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쌓이는 그것들에 대해 보다못한 엄마가 청소를 대신 해주기도 하고, 쓰레기통을 대신 비워주기도 하고, 쌓인 것들이 혹여나 쓰러질까 자리를 잡아주기도 했었다. 또 하루는 본가에 내려가 동생방을 가보니 다이소에서 큰 수납장 6개정도를 깔끔하게 정리를 해서 괜히 기특했다. 이제는 초등학생이 아닌 동생이고, 나보다 키도 훌쩍 커버려 밖에 나가면 언니소리를 듣는 동생이고, 시집가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된 동생이지만 아직도 내겐 귀여운 애기다.
-Hee
*방정리
꼭 필요한 것들만 빼고 하나 하나 물건들을 비우기 시작한지 한 달이 채 안되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내 방에 들어찬 물건들이 또 늘어난다.
물건들을 비워가며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과 내 취향을 하나 하나 깨달아가는데 정말 꼭 필요한것들만을 남긴다는게 생각보다 참 쉽지 않다.
-Cheol
*방정리
1. 내가 가진 정리 습관은 모두 고등학교 기숙사 규정에서부터 왔다. 옷걸이에 옷을 걸어둘 때 옷의 앞 섶이 왼쪽을 바라보도록 걸어두는 일. 길이와 색깔에 맞춰 순서대로 걸어둔 옷걸이의 간격이 늘 일정하도록 맞추는 일. 책을 높이와 두께별로 책장에 꽂는 일. 책상 위에는 오직 탁상시계와 독서 등만을 남겨두고 그 외의 것들을 용도에 따라 분류해 서랍에 넣어두는 일. 속옷과 수건, 티셔츠를 접는 방법. 청소를 하는 순서. 규정을 준수하지 못하면 어김없이 벌점이 뒤따랐다. 하지만 결벽증에 걸리기라도 한 듯 방을 정리해두는 일을 단지 규정 때문에 했던 것은 아니었다. 기숙사 방은 어찌 됐든 내가 처음으로 갖게 된 내 방이었고 나는 내 방을 스스로 정리 정돈하는 일이 썩 마음에 들었고 좋아했다.
정리의 기본은 수납과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것이다. 기숙사 검열이 있을 때마다 책상 위에 혼란스럽게 놓인물건들을 줄 맞춰 세워두고는 만족스럽게 웃던 친구가 감정을 당했을 때 그 사실을 배웠다. 물건들마다 정해 둔 제자리를 찾아 잘 놓아두는 일이 곧 정리다. 그래서 가진 물건이 많을 때는 수납할 공간 역시 충분해야 하고, 수납공간이 부족하다면 필요 없는 물건을 끊���없이 버려야 한다. 이제 막 체크인 한 호텔 방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황량함과 정결함을 정리가 잘 된 공간에서 똑같이 느낄 수 있다. 나는 미니멀리스트는 될 수 없지만 미니멀한 습관이 주는 간결함은 지나치게 좋아하는 편이다.
2. 집 정리는 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집에서 어떤 일을 할 때 혹은 며칠 이상 집을 비워야 할 때 반드시 집은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집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여행을 떠날 수도 없다. 상담 선생님은 아직도 내게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가끔은 스스로의 규정에 맞춰 방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이 너무 벅차서 그 뒤에 해야 할 일들까지도 미뤄지곤 해지만 어떻게 해도 이런 성향이 고쳐지지 않았었다.
지금은 동거묘가 이런 성향을 철저하게 무너뜨리고 있어 많이 나아졌다. 대변을 모래로 덮으며 발로 야무지게 똥을 밟고서 아무렇지 않게 침대 위로 올라오는 고양이의 행동은 어떻게 해도 고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매번 물티슈로 발과 똥구멍에 묻은 대변을 닦아줬지만 고양이도 싫어하고 나도 싫어하는 일을 평생 할 자신은 없었다. 다른 집 고양이들은 똥구멍을 핥느라 바쁘다던데 우리 고양이는 이불에 슥 문지르곤 끝이다. 그 이불을 같이 덮고 자는 게 도대체 괜찮은 일인가 고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민이 사라졌다. 이제는 방금 꺼낸 빈 접시에 묻어있는 털 몇 가닥은 굳이 떼지도 않는다. 음식을 씹다가 입안에서 느껴지는 털 몇 가닥은 그냥 삼켜버리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리고 나의 증오와 애정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버리는 고양이. 내 삶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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