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삼백열다섯번째주제
doranproject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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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한계
우리는 종종 숨이 턱끝에 닿는 한계에 다다른다.
나는 그 한계선에 오를 때에 도망쳤고 울었으며 좌절했다.
망가졌고, 으스러졌으며 잡지 못하고 무너졌다.
사실 나는 딱 그 정도의 인간일 뿐인데,
그럼에도 이어져온 것은
네 탓인지 네 덕인지 .
오늘도 그렇게 어중간한 날을 버티고, 보내고
그렇게 치우친 나를 움켜잡고 가는 날.
-Ram
*한계
1. 종종 부딪히는 외로움의 한계. 너 또한 부딪혔을 외로움의 한계. 가끔씩 울컥울컥 올라오는 한계에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실컷 울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초연해진다. 심호흡을 하며 또다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슬프게도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 뿐.
2. 감상은 그저 나의 몫 쉽사리 감상을 꺼내다간 무색해지기 일쑤고, 그럴 여유가 없다. 남은 것은 공중과 마음에 흩날리는 말 뿐.
3. 누구는 삶을 전투적으로 살고, 누구는 삶을 아름답게 보려고 하고, 누구는 삶을 도전하는 시간으로만 생각하고, 누구는 삶을 어떻게든 따뜻하게 보내려하고, 누구는 삶을 이기적으로 대한다.
4. 채워지는 부분들이 다를 땐 어떻게 해야하지. 사실 넌 뭐가 채워지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뭐가 채워지는지 궁금해하긴 하는지도 모르겠다. 기대하는 만큼 실망이 따를 테니 되려 실망하지 않으려고 그냥 원래 이런 일상인 것 마냥 지내는 것이 그나마 나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Hee
*한계
스물아홉.
정기검진에서 혈압수치가 200이 넘게 나왔다. 신입사원이라고 무리했던 탓일까? 가족력이 있는 고혈압을 얻게 되었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매일 약을 챙겨먹게 되었다. 서른 아홉. 심장마비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나이. 서른 아홉이 가까워져 올수록 작은 두려움이 마음속에 싹텄다.
'무리하면 안돼'라는 말을 되뇌이면서 내 한계를 규정했다. 일은 적당히, 사랑도 적당히, 무엇이든 적당히.. 근데 적당히 해서는 매번 만족스럽지 못하단걸 점점 느꼈다.
서른아홉.
그 때가 내 삶의 끝이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서른아홉이 삶의 끝이라면 오히려 그 나이가 오기전에 더 바짝 애쓰며 살아봐야하는게 아닐까? 내 한계를 규정짓는 순간 그 안에 갇혀살게 되는건 아닐까? 나는 그 안에 갇혀있는 내가 답답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내 한계를 넘어서야만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Cheol
*한계
먹고 싶은 음식을 사 먹을 돈이 없어 서글픈 형편이야 진작에 벗어났다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가난을 기억한다. 부모님은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저녁에 나를 집으로 부른다. 힘들게 번 돈을 써가며 사 먹기는 어려운데도 자식 사 먹인다 생각하면 그 돈이 그리 아깝지가 않단다. 아웃렛에 가서 해 지난 옷들을 사서 입고 시장에서 산 싸구려 신발을 헤질 때까지 신으며 모은 돈이 내게는 자식이란 이유로 쉽게 쓰인다는 것이 왠지 조금도 기쁘게 들리지 않았다.
아빠도 그렇지만 엄마는 유난히 내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일이 없다. 가끔 인터넷으로만 사거나 할 수 있는 일들을 부탁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모두 당신이 직접 하신다. 어제는 새벽에 수영장에서 다른 아주머니가 사용하던 세안 기계를 보고는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모델이 무엇인지 같이 찾아보다 기계의 가격을 보곤 금세 마음을 접으셨다. 내게 주는 용돈 이십만 원은 쉽게도 주면서 갖고 싶은 물건이 이십만 원 이라는 말에 손을 내저으며 없던 일로 하란다.
몇 년을 더 쓸 기계인데도 이십만 원이 그렇게 아까워? 아깝지 그럼. 얼굴이야 손으로 씻으면 그만인데 굳이 그 돈을 주고 살 이유가 어디 있어. 그만한 값어치를 하니까 사람들이 사서 쓰나 보지. 아휴 됐어. 다 늙어서 그런 게 뭐가 필요해. 이제 괜찮잖아. 그 정도는 괜찮아 엄마. 이십만 원 부족해서 문제 될 일은 이제 없다고.
곧 다가올 생신 선물로 무엇을 사면 좋을지 결정된 것 같아 좋으면서도 조금은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엄마 아빠에게 이십만 원은 심리적인 한계에 부닥치는 금액이었다. 내가 주말 동안 조금 멀리 놀러 가면 쓰게 되는 돈, 기분 내려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면 한 끼 먹는데도 쓰는 돈이 여전히 엄마에게는 세 달 치 교통비, 한 달 치 반찬값, 우리 가족 며칠 동안의 생활비였다.
몸이 기억하는 가난. 준비물 살 돈이 없어 놀림당하고, 지하철 탈 돈이 없어 매일같이 걸어서 등교하던 시절이 가난은 아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는 일도 가난은 아니다. 그저 조금 덜 넉넉했을 뿐, 부끄럽다거나 슬플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공사판을 전전하느라 몇 달씩 집을 비워야 했던 아빠의 빈자리가, 밤에 일하고 낮에는 자느라 깨어서 같이 지내는 시간이 하루에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던 엄마와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가난이었다. 나는 그런 기억을 잊으려고 더 멍청하게 사는 지도 모른다. 형편에 맞지 않는 이사를 결심하고, 차를 사고, 아끼지 않고 먹고 마시고. 그런다고 나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는걸 알면서도 이성으로 붙잡을 수 없는 내 안의 바람을 나는 가능하다면 죄 이뤄주려 한다. 그래서 고작 이십만 원을 아끼려는 엄마를 보고 괜한 화가 치밀었다. 시간이 흘러서 나는 2020년을 사는 줄 알았는데 엄마 아빠는 여전히 90년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다. 이토록 무참한 저녁이라니.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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