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나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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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adult ·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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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
뭔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의 모양은 하나하나 머릿속에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해온 일들, 그리고 그 오점들을 찾아 수정하는 일과 앞으로는 더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까지 다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부러운 감정이 먼저 든다. 잘 생각해보면 나는 절대로 계획적인 사람에 속하지는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 계획이라는 것이 불안감이 용솟음칠때 자주 나타난다. 누군가를 만나서 무엇인가를 하는 일이 그렇게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면, 그것을 그만하게 되는데 아마 나는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즐겁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엄마가 슬슬 술에 손을 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건 기분탓이겠지 싶은 생각에 마음을 놓기로 한다. 굳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괴롭히면서 살아가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어차피 내 엄마지만 엄마는 그저 엄마의 인생을 살 뿐이고 그 인생에서 자신을 안좋은길로 몰아가는 것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하는 것도 오롯이 엄마의 몫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웨이에서 나온 모닝페이지는 아마 조금 의식적으로 덜 깨어있을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자신의 진실된 모습들이 나올때, 글쓰기를 하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사정상 모닝페이지를 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일단은 조금씩 하나하나 챙겨가며 해야할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해야할 것들의 대부분은 결국은 루틴이 될 것이고, 나는 9월 이후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주2회 요가하는 루틴을 꼭 챙기기로 다짐했다. 돈이 얼마가 들든 해야한다고 느끼는 것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제 당장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살아냄을 하기 위해서 매일 ��관처럼 사마시는 음료수는 이제 좀 끊을 필요가 있고, 보리차나 이온음료 같은 것으로 카페 음료를 대체하기로 한다. 단 것이 먹고 싶다면,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액상과당은 다이어트에 적이라고 하니까.
몸을 좀 가볍게 만들고 싶은데, 아마 나는 그런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고 당장의 괴로운듯한 기분을 견디어보지도 않고 포기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을 하면서 인내심이 없다는 건 죄악 같은 일이다. 소리를 지르면서도 내가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고 아마 이건 내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를 바 없겠지. 타인을 지나치게 컨트롤 하려고 하는 행동이나 말투 따위도 버리고 싶다. 조금 더 나아진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나 스스로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더 많이 의식하게 되고, 그 의식이 결국에는 나를 망치기도 하는 것 같다. 잘 해내고 싶은 의지만 강하고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도 함께 드는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을 너무 많이 반복하고 때로는 그런 일들이 지치는 이유는 아직 제대로 많이 읽어내려가지 못했고 더 많이 써내려가지 못한 것일 테다. 잘 읽고 잘 쓰는 것 말고 그저 계속 읽고 계속 써내려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쓴다는 건 내 두 손가락과 컴퓨터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니까. 그리고 그럴 수 있다는 것에도 역시 감사해야 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소박하게 살 필요가 있다. 아무리 사치하지 않았다고 해도 버는 돈 보다 더 쓰는 건 사치다. 그런 식의 사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아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들을 더욱 의식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를 믿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될 것이다.
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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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tae86-blo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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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머리말 : ‘달린다’는 것은 하루키에게 문학과 삶을 향한 치열한 도전이었다!
별점 : ★★★☆
목적
항상 무엇을 하기전에 버릇이 있다. 관련된 책을 찾아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하기위한 합리화를 하는것. 이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러닝을 시작하게 된 이후에 보게되었다. 
한줄감상평
달리기로 말하는 하루키의 인생,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 
요약 및 감상평 -하루키가 바라는 묘비명에서 보듯, 달리기는 그의 인생이며 가치관이다. 
  -달리기 일지, 그 순간의 느낌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던 것을 토대로 에세이를 썼다고 한다. 나도! -자신의 인생의 가치관을, 달리기에 비유하여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하루키의 이름이야 유명한 걸  알지만, 또한 상실의 시대를 읽었지만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나에게 있어서 대단한 작가는 아니다. (물론 제대로 안읽기도 했지만) 하지만 자신을 장거리 러너로써 한걸음씩 꾸준히 지속해나가는 그 모습이 ‘인간 하루키’로써 존경할만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달리기의 좋은점은, 신발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과의 경쟁이라는 부분.
-나에게 달리기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일까? 왜 달리는가. 
>달릴 때 느껴지는 무력감, 그것이 현재의 나와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안힘들 때까지 달리고 싶다. 헉헉대며 단거리를 달려 모든 체력을 소모하기보다는, 장거리를 여유있게 달려 성취감을 느���고 싶다. 달리기에 있어서도, 인생에 있어서도. 
발췌 
-자신이 흥미를 지닌 분야의 일을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추구해나가면 지식이나 기술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령 번역 기술도 그렇게 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내 돈을 들여가면서 하나씩 익혀 나갔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시간도 걸렸고 시행착오도 거듭했지만, 그런 만큼 배운 것은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었다.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소설을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소설가로서 인터뷰를 하다 보면, “소설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문학적 재능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소설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필요한 자질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제 조건이다. 연료가 전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자동차도 달릴 수 없다. 그러나 재능의 문제점은 대부분의 경우, 그 양이나 질을 그 소유가가 잘 컨트롤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양이 부족하니까 약간 양을 늘려보고 싶다고 생각해도, 절약해서 조금씩 꺼내 가능한 오래 쓰려고 해도 그렇게 생각대로는 되지 않는다. 재능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터져 나오고 싶을 때 저절로 분출해버리고, 나올 만큼 다 나와 고갈되면 그것으로 책 한권이 끝나는 것이다. 슈베르트나 모차르트같이, 또는 어느 시인이나 록 싱어처럼 풍부한 재능을 단기간에 기세 좋게 소진하고, 드라마틱하게 요절해서 아름다운 전설이 되는 삶도 확실히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별로 참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질문을 받는다면 주저 없이 집중력을 꼽는다. 자신이 지니는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 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힘을 유효하게 쓰면 재능의 부족이나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나는 평소 하루 3시간이나 4시간 아침나절에 집중해서 일을 한다. 책상에 앉아서 내가 쓰고 있는 일에만 의식을 집중한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보지도 않는다. 설사 풍부한 재능이 있더라도, 아무리 머릿속에 소설적인 아이디어가 충만해 있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지독한 충치의 통증이 계속된다면 그 작가는 아��� 아무것도 쓸 수 없지 않을까? 집중력이 격심한 통증에 의해서 방해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이다.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해도, ���주일 동안 계속하니 피로에 지쳐버렸다고 해서는 긴 작품을 쓸 수 없다. 반년이나 1년이나 2년간 매일의 집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소설가에게는-적어도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에게는-요구된다. 호흡법으로 비유해보면, 집중하는 것이 그저 가만히 깊게 숨을 참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숨을 지속한다는 것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호흡해가는 요령을 터득하는 작업이다. 그 두 가지 호흡의 밸런스가 잡혀 있지 않으면 몇 년 동안에 걸쳐 전업 작가로서 소설을 계속 써나가기 어렵다. 호흡을 멈추었다 이었다 하면서도 계속할 것. 이와 같은 능력(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이것은 앞서 쓴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려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답은 있다. 
-세상에는 때때로 매일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을까”하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도 확실히 ‘장거리형’ 체질이다. 나는 매일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맥박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긴 거리를 달린다고 하는 기능에 맞춰 맥박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긴 거리를 달린다고 하는 기능에 맞춰 신체가 맥박 수를 조정한 것이다. 처음부터 맥박이 빠르고 그것이 거리를 달려감에 따라 점점 올라간다면, 심장은 바로 파열해버린다. ··· 거리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 아마추어냐 프로냐 하는 것은 바로 구별할 수 있다. 헉헉, 하면서 짧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것은 초보자이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것은 베테랑이다. 그들의 심장은 천천히, 생각에 잠기면서 서로의 호흡의 리듬을 들으며, 서로의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마치 작가들이 서로 상대의 어법을 교감하는 것처럼. 
-소설을 쓴다는 것이 불건전한 작업이라는 주장에 나는 기본적으로 찬성하고 싶다. 우리가 소설을 쓰려고 할 때, 다시 말해 문장을 사용해 이야기를 꾸며 나가려고 할 때는 인간 존재의 근본에 있는 독소와 같은 것이 좋든 싫든 추출되어 표면으로 나온다. 작가는 다소간 그런 독소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위험을 인지해서 솜씨 좋게 처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같은 독소가 개재되지 않고 참된 의미의 창조 행위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예술 행위라고 하는 것은 애당초 성립부터 불건전한 반사회적 요소를 내포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니만큼 작가(예술가) 중에는 실생활 그 자체의 레벨부터 퇴폐적으로 전락하고, 또는 반사회적인 의상을 걸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할까. 그와 같은 자세를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지만 오랫동안 직업적으로 소설을 써나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위험한(어느 경우에는 목숨을 내놓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체내의 독서에 대항할 수 있는 자기 면역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강한 독소를 바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좀 더 힘 있는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자기 면역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오랜 기간에 걸쳐 유지해 나가려면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 참으로 불건전한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되도록 건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나의 행동 목표이다. 다시 말하면 불건전한 영혼은 또 건전한 육체를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자랑스럽다고 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 나름의 성취감 같은 것이 이제야 생각난 듯이 가슴속에 북받쳐 오른다. 그것은 ‘위험스러운 일을 자진해서 맡아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 나갈 만한 힘이 내 안에도 아직 있었구나’하는 개인적인 기쁨이며 안도감이었다. 기쁨보다는 안도감 쪽이 오히려 강했는지도 모른다. 몸속에 견고하게 묶여 있던 매듭 같은 것이 점점 느슨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것이 내 안에 존재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와 경위로서 ‘러너스 블루’가 내 몸에 배어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와 경위로서 지금 그것이 희미해지고 사라지려 하고 있는지. 그 설명은 아직 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어쩌면 결국에는 이렇게 단정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마 인생이 아닐까, 라고. 우리는 아마 그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송두리째, 이유도 모른 채 그 어떤 경위에도 아랑곳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고. 세금이나 조수의 간만, 존 레논의 죽음과 월드컵의 오심과 마찬가지로. ···기록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본들, 아마도 젊은 날과 똑같이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별로 유쾌한 일이라고는 말하지 어렵지만, 그것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역할이 있다. 그리고 시간은 나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충실하게, 훨씬 정직하게 그 직무를 다하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을 때부터(도대체 그것이 언제였을까?)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전진해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요절을 면한 사람에게는 그 특전으로 확실하게 늙어간다고 하는 고마운 권리가 주어진다. 육체의 감퇴라고 하는 여예가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킬로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 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나는 즐기며 평가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성취의 긍지를 모색해가게 될 것이다.
-각자의 집으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다음 레이스에 대비해 각자의 장소에서 (아마) 이제까지와 같이 묵묵히 연습을 계속해간다. 그런 인생을 옆에서 바라보면-혹은 훨씬 높은데서 내려다보면- 별다른 의미도 없는 더없이 무익한 것으로서, 또는 매우 효율이 좋지 않은 것으로서 비쳐진다고 해도, 또한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그런 효율은 나쁘지만 의미 있는 행위의 사이클을 언제까지나 현실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나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여기까지 어떻게 해서든 질리지 않고 끈질기게 해왔기 때문에, 어쨌든 계속할 수 있는 한 해보려고 생각한다. 장거리 레이스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많든 적든, 좋든 나쁘든) 키워주고 만들어왔던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한 나는 앞으로 장거리 레이스적인 것과 더불어 생활을 하고, 함께 나이를 먹어가게 될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이치가 닿는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인생일 것이다. 아니,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른 선택을 할 만한 여지도 없는 것이다.···어쨌든 눈앞에 있는 과제를 붙잡고 힘을 다해서 그 일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간다. 한 발 한 발 보폭에 의식을 집중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시에 되도록 긴 범위로 만사를 생각하고, 되도록 멀리 풍경을 보자고 마음에 새겨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장거리 러너인 것이다.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들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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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0u-d-y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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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힘든 밤이다. 내일은 눈이 많이 내린다고 했다. 우리는 각자의 사정으로 마음이 먹먹해왔다. 나는 또, 꼭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하루 종일을 울었다. 아이처럼 울고 보채기를 수십 번, 몰아치던 폭풍우에도 꿋꿋하던 네 맘이 계속해서 내리던 가랑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가슴 먹먹하고 아린 하루였다. 2. 그래서 네 맘을 헤아리기가 어려워 한참을 고민하고 입 안에서 맴도는 해 주고 싶은 말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를 몰라서 써나가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종일 내가 가장 하고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두고 몽땅 버리고 싶은 일이었다. 나는 오늘도 네 덕분에, 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3. 오늘은 글 사진을 어떤 걸 써야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우리가 모두 가장 행복했던 날의 사진을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나에게 그 자체로 위로였다. 너는 애써 기운찬 말을 내게 하지 않아도. 위로였다. 그리고 우리의 행복한 순간을 담아놓은 추억이 너에게도 위로이기를 바랐다. 지금도, 바란다. 4. 네가 까마득히 멀리 있는 게 아닌데도 네가 그립고 네가 보고싶었다. 그���나 이런 마음이 이기적이라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 5.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야경은 뉴욕 브루클린 위에서의 야경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아직 본 적 없지만.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질 수 있는 것은 네가 내게 준 용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6. 어제는 널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 너무 행복해서 뱃속에 행복이 가득 가득 차올라서 누군가 나를 톡! 하고 치면 행복이 툭, 하고 굴러나올 것만 같았다. 행복했다. 돌아오는 길 한강 다리 위에 살짝 걸친 탁한 풍경이 참 예뻤다. 7. 그래도 참 힘든 밤이다. 참, 아픈 밤이다.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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