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스스로
beingadult · 27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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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
뭔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의 모양은 하나하나 머릿속에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해온 일들, 그리고 그 오점들을 찾아 수정하는 일과 앞으로는 더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까지 다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부러운 감정이 먼저 든다. 잘 생각해보면 나는 절대로 계획적인 사람에 속하지는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 계획이라는 것이 불안감이 용솟음칠때 자주 나타난다. 누군가를 만나서 무엇인가를 하는 일이 그렇게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면, 그것을 그만하게 되는데 아마 나는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즐겁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엄마가 슬슬 술에 손을 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건 기분탓이겠지 싶은 생각에 마음을 놓기로 한다. 굳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괴롭히면서 살아가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어차피 내 엄마지만 엄마는 그저 엄마의 인생을 살 뿐이고 그 인생에서 자신을 안좋은길로 몰아가는 것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하는 것도 오롯이 엄마의 몫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웨이에서 나온 모닝페이지는 아마 조금 의식적으로 덜 깨어있을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자신의 진실된 모습들이 나올때, 글쓰기를 하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사정상 모닝페이지를 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일단은 조금씩 하나하나 챙겨가며 해야할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해야할 것들의 대부분은 결국은 루틴이 될 것이고, 나는 9월 이후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주2회 요가하는 루틴을 꼭 챙기기로 다짐했다. 돈이 얼마가 들든 해야한다고 느끼는 것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제 당장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살아냄을 하기 위해서 매일 습관처럼 사마시는 음료수는 이제 좀 끊을 필요가 있고, 보리차나 이온음료 같은 것으로 카페 음료를 대체하기로 한다. 단 것이 먹고 싶다면,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액상과당은 다이어트에 적이라고 하니까.
몸을 좀 가볍게 만들고 싶은데, 아마 나는 그런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고 당장의 괴로운듯한 기분을 견디어보지도 않고 포기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을 하면서 인내심이 없다는 건 죄악 같은 일이다. 소리를 지르면서도 내가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고 아마 이건 내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를 바 없겠지. 타인을 지나치게 컨트롤 하려고 하는 행동이나 말투 따위도 버리고 싶다. 조금 더 나아진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나 스스로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더 많이 의식하게 되고, 그 의식이 결국에는 나를 망치기도 하는 것 같다. 잘 해내고 싶은 의지만 강하고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도 함께 드는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을 너무 많이 반복하고 때로는 그런 일들이 지치는 이유는 아직 제대로 많이 읽어내려가지 못했고 더 많이 써내려가지 못한 것일 테다. 잘 읽고 잘 쓰는 것 말고 그저 계속 읽고 계속 써내려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쓴다는 건 내 두 손가락과 컴퓨터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니까. 그리고 그럴 수 있다는 것에도 역시 감사해야 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소박하게 살 필요가 있다. 아무리 사치하지 않았다고 해도 버는 돈 보다 더 쓰는 건 사치다. 그런 식의 사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아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들을 더욱 의식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를 믿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될 것이다.
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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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지 에 적응해가고 있는 #팸섭 처음 본디�� 교육을 받고 싶다고 했을땐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먼저 밧줄을 준비하는 착한 아이
#강남 #쎅트 #멜돔 #팸섭 #본디지 #내면 #올컨 #수치 #오르가즘컨트롤 #스팽 #스팽키 #에세머 #에셈 #sm #시오후키 #육변기 #멀티 #갱뱅 #퍼킹머신 #성감대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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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maker · 16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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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윤석열대통령 국민께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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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nposts · 2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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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텔레콤 선불폰 개통 비밀| 구성 알아보고 스스로 개통하기 | 엔텔레콤, 선불폰, 개통, 자가 개통, 가이드
엔텔레콤 선불폰 개통 비밀| 구성 알아보고 스스로 개통하기 | 엔텔레콤, 선불폰, 개통, 자가 개통, 설명서 요즘 선불폰이 뜨고 있죠? 특히 통신비 절약과 데이터 사용량에 맞춰 자유롭게 사용 가능한 점이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막상 선불폰 개통을 하려니 복잡한 절차와 비밀스러운 정보들에 막막하신가요? 걱정 마세요! 오늘은 엔텔레콤 선불폰을 직접 개통하는 방법을 알려제공합니다. 엔텔레콤 선불폰은 저렴한 요금제와 다양한 부가서비스로 인기가 많은데, 자가 개통이 가능하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이 글에서는 엔텔레콤 선불폰 개통 방법을 단계별로 상세히 설명하고, 필요한 정보와 주의 사항까지 알려제공합니다. 선불폰 개통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이제 스스로 엔텔레콤 선불폰을 개통해 보세요! ✅ ###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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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m-r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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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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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valden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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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 fragile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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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trans · 3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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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615 Weverse Translations
RM's Post ❇️
오랜만입니다. 얼마 전 11주년이었는데 정신없다는 핑계로 짧은 글 하나도 못 남겼네요. 허허허 한 달 전에 컴백투미, 3주 전에 RPWP가 나왔죠. 작년 4월에 호석이와 함께 입대하려던 계획을 미루고 미루다 동생들과 손잡고 나란히 들어가게 되었죠. 23년은 그렇게 술과 작업으로만 보냈던 것 같아요. 친구의 병장 약장이 부럽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답니다. (ㅎㅎ;) 제가 이런저런 소회를 직접 들려드리지 못한 첫 작업물이네요. 하고싶은 말들이 많지만 앨범에 모두 적혀있으므로.. 그저 오롯이 저 스스로 솔직하고자 발버둥친 앨범입니다. 오래오래 두고두고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부디 3일 전에 진 형이 드디어 전역을 했죠. 저 재밌자고 색소폰도 가져와서 불었지만 실은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먼저 가서 많이 외롭고 힘들지 않았을까.. 어땠을까. 1년 6개월은 여기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요. 저희는 지금 형의 과거를 살고 있는 중이겠지요. 오랜만에 나와보니 역시 바깥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군요. 중력도 다르게 느껴지고.. 다들 내 부재와는 상관없이 잘 살아가고 있구나. 잘 흘러가고 있구나. 다소 헛헛한 기분도 들지만, 무엇보다 정말 오랜만에 멤버들이 모두 모여 한 잔 하며 허심탄회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답니다(군대 얘기가 절반 이상이었지만..ㅋㅋ). 무려 근 열 달 만인 것 같아요. 왜이리 이 사람들이 보고싶었는지.. 저도 종종 전화해서 다짜고짜 안부나 묻곤 했었어요. 진 형이 늘 얘기하곤 했었어요. 멤버들 엄청 보고싶다고. 너희도 그럴 거라고. 뿔뿔이 흩어져 강원도 어딘가에 살아보니 사무치게 이해가 돼버려요. 막상 얼굴 보고 얘기하니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들, 내가 돌아와야 할 곳,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다시 깨닫게 되고.. 우리 모두에게 의미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또 어디쯤 헤매고 있을까요? 내년 12주년에는 다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워서 그리고 그려서 그리워요. 벌써 열 한 해입니다. 또 한 해를 손꼽는 일일 뿐이겠지요. 먼저 여러분의 품에 안긴, 안길 진 형과 홉이에게 뒷일을 부탁합니다. 아직 많은 분들이 저희를 잊지 않고 기다려주고 사랑해주신다는 것만 깨닫고 가요. 쏟아지는 사랑. 늘 그랬듯 그저 멤버들 여러분 생각하며 또 하루하루 잘 지내볼게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다음 초여름을 기약하며 남준
Hello, It’s been a while.
It was our 11th anniversary a while ago but, using the excuse that things have been really hectic, I wasn’t able to write even a small post. Hahaha
Come Back To Me came out a month ago, and 3 weeks ago, so did RPWP. Last year, after pushing and postponing my plans of enlisting with Hoseokie in April, I held hands with the younger members and we headed in together. And so 2023 went by, spent entirely with alcohol and work. I am jealous of my buddy’s sergeant patch but well.. I have no regrets. (hehe;)
I think this is the first time I’ve released something and not been able to talk about things directly with you. I have a lot to say but it’s all been written into the album so.. the album is purely the product of my fight with myself to become more honest. I hope that you keep reading it, over and over, for a long long time. It is a sincere, heartfelt wish.
Three days ago, Jin hyung was finally discharged. I brought along my saxophone and played it to be funny but honestly, I had a lot of complicated emotions running through me. Being the first to go was probably really lonely and difficult.. What was it like? That one year and six months treats everyone here equally. Now, we are probably living hyung’s past.
Out in the world for the first time in a while, I realised that time outside really does flow differently. Gravity feels different too.. everyone’s been living their lives regardless of my absence, doing well, flowing along nicely. I felt a little empty but, more than anything else, it felt great to get together with the members after a really long time and have a heart-to-heart over drinks (though more than half the conversation consisted of military stories.. haha). It had been nearly 10 whole months since we did something like this. Why did I miss these guys so much.. I did call them sometimes, randomly, asking them how they were doing.
Jin hyung did always tell us that he missed the other members a lot, that we were going to feel the same. Now scattered apart, living somewhere in Gangwondo, I understand it, it resonates so deeply. Actually talking face-to-face, I was reminded of the things that remain unchanging, the place that I have to return to, the person that I was.. it was a meaningful, precious time for all of us.
Where else will we be wandering? What expressions will we wear on our faces next year, on our twelfth anniversary? Missing you makes me picture you, and by picturing you I miss you more. We’re already in our eleventh year. All we have to do is just count one more. I entrust the future to Jin hyung and Hobi, who have been and will be the first to be embraced in your arms.
I’m taking back with me the realisation that there are still lots of people who haven’t forgotten about us, who are waiting for us. An outpouring of love. As always, I’ll try doing fine, day by day, thinking of you guys and the members
I love you. Thank you Until early summer next year, Namjoon
Trans cr; Aditi @ bts-trans © TAKE OUT WITH FULL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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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zi · 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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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게
바다야 잘지내니? 네 편지를 받고도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그간의 일 때문에 연락을 하지 못했어. 여기서 편지를 보내면 너에게 가기까지 한 계절이 지날 것 같아서 이렇게 메일을 써.
양손엔 짐이 한가득이었던 서울을 떠나던 마지막 날, 눈이 소복하게 쌓인 거리를 서성이다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찾아본 우편함엔 네 편지가 있었어. 나는 그 편지를 한참이나 들고 담배를 피우다가 결국 뜯지도 못한 채로, 코트 안주머니에 깊이 묻어두곤 프라하 행 비행기를 탔단다.
어디까지 왔을까. 중국의 한가운데쯤을 건너고 있을까, 나는 너의 편지를 손에 쥐고 편지 끝의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다가 겨우 뜯어 읽기 시작했고, 옆에 앉은 이름 모를 외국인은 그것이 궁금하다는 듯이 뚫어져라 바라보곤 했지. 알아들을 것도 아니면서, 네 편지를 읽는 건 나의 특권처럼 느껴졌어.
그리고 금세 나는 너의 글에 몰입되어 버렸지. 네가 힘들었던 과거를 말하기까지 어떤 용기를 가졌을지, 감히 내가 가늠하지도 못할 만큼이나 힘들었을 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 그런 너의 이야기를 내가 들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따라와 이렇게 편지를 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고, 전부 이해한다며 진부한 말들을 늘어놓고 싶지 않아서. 수천 마일이 떨어진 이곳에서 지내면서도 종종 너의 이야기에 빠져 나는 갖가지의 생각이 몰려오던 밤이 있었어.
이런저런 각자의 잘난 인생 속에서도 나는 내가 도무지 무엇을 쫓는 건지 알 수가 없었거든. 누구는 내 집 마련을 목표로 살고, 승진을 하고 또 누구는 결혼을 한다는 둥 여러 가지 소식 속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스물일곱을 지나오는 나를 떠올리면 ‘지금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냐?’라는 자조적인 물음을 스스로 묻곤 했지.
그런데 바다야. 살다 보니까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니지만) 사람은 자꾸만 이겨내야 하나 봐. 그게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끝내야 하는 숙제처럼. 해내야만 하나 봐. 삶은 자꾸만 엉뚱하고 지루하게 흘러가고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라고 하는 건지 가끔은 신이 있다면 탓을 하고 싶어져.
너도 알다시피 나는 살면서 꽤 많은 시간을 비관적으로 살아왔어. 내 인생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다시 쓸어 담을 수 없다고. 그게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일말의 희망을 기다렸었어.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한 번도 맛본 적도 없으면서.
여기 와서 하나하나 다 설명하지 못할 힘들고 복잡한 일이 많았어. 그럼에도 여름이 오면 다 나아질 것이라고, 여름을 걸고 넘어져 보자고 그냥저냥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살아온 지 자그마치 반년이야. 전부 다 포기하고 돌아갈까 싶었을 무렵, 누가 나에게 그러더라.
지현 씨, 나는 우주를 믿어. 그러니 믿는 신이 없더라도 자신이라는 우주에게 빌어. 그럼 다 나아져.
하고 말이야. 그 사람의 말에 묘하게 강렬한 힘을 얻었어. 어쩌면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답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이따금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단다.
그 이후로 포기를 멀리하고 머리를 써. 뇌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생각했어. 잠을 자지 못했고, 밥을 잘 먹지 못하고서 연락도 다 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나는 왜 항상 나쁜 패만 뒤집어쓸까 하고 생각하던 비관들이 사라졌어. 지난 과거의 무를 수 없는 일들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나에게 일어날 일들이었고, 그걸 견뎌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제였겠지.
바다야, 삶의 순리대로 내가 흘러갈 수 없다면 나는 내 편안한 마음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금세 돌아갈 거야. 나는 마음이 편해. 결혼하지 않아도 자유로울 것이고, 예쁘지 않아도 만족할 테고. 내 과거에 어떤 아픔이 있었던 간에 나는 이겨내고 편안한 사람이 될 거야. 나는 나라는 우주를 믿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에게도 많은 희망이 분명 있을 거야. 나보다 더 잠재적이고 화려한 희망 같은 거 말이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아무도 점지하지 못했더라도 나는 너 안에 네가 가진 우주가 다 편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어. 네가 믿지 않더라도 내가 너의 우주를 믿을게
그렇게 한 계절 한 계절, 나이를 지금보다 더 먹게 되면 우리가 잘했다고 웃게 될 거야.
누구보다 더 항상 네 행복을 바라. 편안한 행복을 말이야.
언제가 될 진 모를 기약없는 그런 날을 위해 나도 그때까지 열심히 살아볼게. 너도 잘 살아가는거야.
내 답장을 기다렸을지 모르겠지만, 너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나 봐.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길 하고 나니까 불안함도 잠시 나아진 기분이야. 자주 오는 카페에 앉아 두번째 커피를 시키면서 너에게 편지를 써. 거기도 밤이 늦게 찾아오는지, 변한 건 없을 지 궁금한게 많지만 이만 줄일게. 안녕!
P.s 아, 나는 프라하에서 베를린으로 도망쳐 왔어. 곧 여름이 오니까 말이야.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생일 축하해! 이 말이 너무 늦어서 미안해. 한국에 가서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그간 못챙겼던 몇 해의 생일을 기념하며 케이크와 맥주를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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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un143 · 11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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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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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었다, 1984.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던 건 이게 지금 쓰인 글보다도 더 현재 같다는 점. 요즘 여론조작은 너무 쉬어 보인다. 모든 것이 조작이고 세뇌일 수 있다는 두려움에 몸이 떨린다. 진실은 사라지고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조차 사라지면 결국 어떻게 되는 걸까. 마지막에 가서는 글을 읽는 것조차 힘들었다. 패배감은 사람을 이렇게 무겁게 만든다. 결국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힘을 기르는 것만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는 램프의 불꽃처럼 대상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꿀 수 있는, 추상적이면서도 방향감각 없는 감정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낱말 수는 줄어들고, 그에 따라 의식의 폭도 좁아지게 되는 거지."
"같은 패배여도 더 나은 패배가 있는 법이야."
"평등이 있는 곳에 올바른 정신이 깃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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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chae · 3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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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피(딸)는 캘럼(아빠)에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같은 태양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비록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진 않더라도 같이 있는거나 다름 없잖아? 같은 하늘 아래 아빠랑 내가 있는 거니까. 그럼 같이 있는 거지.”
영화의 제목은 ‘애프터썬’. 일광욕 후 바르는 썬크림을 뜻하는 동시에 ‘해가 지고 난 뒤’를 의미 한다. 소피는 여행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한(것으로 보이는) 아빠와 더 이상 같은 해를 볼 수 없기에, 어쩌면 해가 진 후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아빠와 튀르키예를 여행하던 열한 살부터 그 당시 아빠와 같은 서른한 살에 이르기까지. 매일 뜨는 해와 상관 없이 소피에게는 모든 순간이 제목 그대로 ‘애프터 썬’인 것이다.
2.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해변으로 뛰어들거나, 알몸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흐느끼거나. 관객의 감정을 흔드는 캘럼의 모습 중 가장 안타깝게 다가왔던 장면은 여행의 막바지에 자신의 잘못에 대해 딸에게 몇 번이고 사과하는 모습이다. 비단 어젯밤의 잘못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듯 보인다.
몇몇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이전과 달리, 어떤 지점에 도달한 듯한 그의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태도가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어렴풋이나마 예상 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3.
헤아릴 수 없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일은 불가항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미 지난 일이라면, 그 시간이 멀어질수록 더더욱 그렇다고 느낀다.
같은 태양 아래 서른한 살의 아빠의 생일을 축하하던 열한 살의 소피도, 해가 없는 터널 같은 긴 시간을 지나온 서른한 살의 소피도. 닿을 수 없는 심연의 마음에 닿기 위해 손을 뻗는 일이 점점 덜 잦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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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k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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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자신감이 날 더 비춰 언제나 스스로 빛나 (스스로 빛나) 날 의심했던, 세상 앞에 보여줄 satisf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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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load · 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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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너는 내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풀리지 않는 성욕에 점점 미쳐가는 것만 같고 하루하루 틈만나면 야한 클립들을 보며 자위를 했다. 이런 일들이 누군가에겐 일상적이고 성중독으로 보긴 어려운 일일지라도 적어도 내겐, 일상을 사는데 지장을 줬었다.
남편 몰래 수 없이 많은 채팅을 하고 그 내용이 음란하기 짝이없는 비정상적인 것들, 그런 행동들을 통해 스스로 흥분하고 또 남편이 자릴 비운 사이에 그 남자와의 섹스를 상상하며 만나고 싶다는 번뇌가 자리잡고. 남편과 풀지 못한 것들은 숙제가 되어 점점 나를 옥죄어매고.
이윽고 그 번뇌가 극에 달했을 때 나는 한차례 바람핀 전적을 남편에게 들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새로 이사한 집에 불렀다. 남편이 대출걱정에 밤낮으로 일하고 행복한 미래에 부풀어있던 그 집에.
그 날은 남편이 늦게 오는 날임이 틀림 없었는데 왜 일찍 왔을까. 아마도 경주마처럼 달리는 나를 멈추기 위해 신께서 마지막 경고를 내려주신게 아닐까 싶다. 남자는 짐 정리를 하고, 나는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불현듯 남편이 들이 닥쳤다.
나는 그냥 다 포기하고 싶었다. 지금의 생활과 아이, 모든 것을. 그냥 속시원하게 섹스나 좀 하고 싶었던건데, 하면서. 원망했다. 아마도 내 자신을 향해서.
채워지지 않는 쾌감으로 오는 우울감은 근래 내가 어떠한 책에도 집중하지 않고, 포트폴리오에 대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영어 공부도, 그림도, 음악도 듣지 않게 만들고 있단 걸. 언니의 따끔한 충고를 듣고 알아차렸다. 햇살같은 나의 언니. 그녀가 보고싶다.
나는 미국에 올 때도, 지금도 어쩜이렇게도 충동적인지.
잘못을 빌고 난 후 아이를 보는데, 남편이 내게 사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행복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내가 근래 스스로 행복을 느낀적이 있었나 재차 물었다. 아마도 꽤 오래전인 것 같다.
그걸 오랜만에 이소라의 노래를 들으면서 깨달았다.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내가 남편이 우는 모습을 보려고 결혼한게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녁밥을 준비하는 사이 그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펑펑우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를 안으며 얘기했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미안하다고.
언젠가 허전한 마음이 들면 또 이 공간에 찾아와 일기를 쓰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다면 반갑게 맞아주면 고마울 것 같다.
나의 짧은 편지들을 좋아해줘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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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elilcy · 5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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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올리는 텀블러 글로 요즘 근황 남기기
제일 원하던 미국 HCI 대학원에 합격 연락을 받고 지금은 아주 천천히 숨돌리면서 사는중이다.
작년의 과정을 다 겪으면서 스스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는것. 모든지 대가없는 일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1월에 모든 지원을 끝내고 미국에 계신 이모,동생을 보러 로스엔젤레스, 벤쿠버도 다녀오고 친구랑 발리까지 여행하고 돌아왔다.물론 결과가 나오기전이라 엄청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하지 못한게 아쉬울뿐..
이제 대학원에서 나를 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건 성공했으니, 미국 빅테크기업에서 나를 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그 다음 관문을 넘어야한다.
내가 왜 대학원을 가고 싶을까? 미국에서 일하고 싶을까? 차근히 돌이켜 생각해보니 한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30대가 되었을때 20대를 절대 부러워하고 싶지 않았다.
학부시절 카페에서 알바를 했을때 대표님, 팀장님이 나를 매우 아껴주셨는데 그 당시 22살이었던 나를 엄청 부러워하셨다. 20대가 최고라고, 돌아가고 싶다고, 그분들도 분명 20대를 겪었을텐데 이렇게 나를 부러워할때 내심 좋기도 하면서 불안했다. 내 20대가 아무런 결과도 만들지 못한채 그저 그렇게 흘러가버리는게 끔찍하게 싫었다. 딱 30살이되었을때 내가 나를 온맘 다해 칭찬해줄수있는 직업적 성과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나를 이길로 이끈것같다.
그렇게 열심히 살고보면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보다는 너무 열심히 살아서 절대 돌아가기싫어!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대학교 3학년때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일이 현실이 되기까지 어쨌든 스타트를 안전하게 끊었으니 이제 또 다음 관문을 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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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kind-son · 5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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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도가 치면 지레 겁을 먹고 모래성을 부수기 급급했다_(나의 비겁에 관하여)
나는 파도가 치는 바다에 수십년을 살아가면서도, 늘 철썩이는 파도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기 일 수였고 어느 날은 밀물에 불어나 수면을 넘어오는 그것들에 지레 겁을 먹고 내가 손 수 세웠던 모래성을 다시 내 손으로 부숴버리기 급급했다.
소중했던 것들을 잃었던 기억들을 되돌아보면, 항상 도망치는 쪽은 나였고, 상대방은 영문도 모른 채 서 있다 등을 돌려 떠나버리거나, 쫓아오기에 지쳐 포기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도망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그럼 그렇지, 저런 사람이었다니까.’ 와 같은 역겨운 자기위안에 빠진 채 스스로가 슬기로운 선택을 하였다는 고독한 안도감의 모래지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것은 언제였을까, 한 연예인이 몇 년 전 예능에서 ‘늦었다고 생각하였을 땐 정말 늦었다.’라고 농담같이 말했던 이야기가 뜬금없지만 그 깨달음과 함께 떠올랐다. 내 멍청함을 깨달은 것이 언제였든, 나는 내 손에 움켜쥐었던 모래들이 이미 제 스스로 빠져나가고 있음에도 애써 먼저 손을 펼쳐 털어버리는 짓을 반복하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 이후이기에 결국엔 후회 섞인 비통함으로 반죽한 감옥에 스스로를 투옥할 수밖에 없었다.
웃긴 이야기는-사실 역겨운 이야기이겠지만 서도- 이런 나에게 늘 다가오는 사람들이, 다가오는 기회들이 있었고 그들은 여전히 친절하고 건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참한 현실인가, 내 토악질 나오는 본 모습을 가리기 위하여 쓰고 다닌 가면이 이렇게 매력적이라니. 처음부터 나 자신을 그렇게 가꾸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인가? 사실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 망해버린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멀티버스 세계관처럼, 어떤 행동을 하고 난 후의 변화의 경우의 수는 무한대로 뻗어 나간다.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 자신의 변화가 긍정적일 것이라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뿐이며, 나는 그러지 않을 수많은 삶을 리스크 체크라는 변명으로 포기했을 뿐이다. 누군가는 이 해변에 서핑샵을 열고, 파도를 타며 저녁이면 우드 향 가득한 위스키에 탄산수를 조금 타 마무리하며 깊고 안온한 잠에 들겠지만, 나는 내 선택들의 연쇄효과를 통하여 비어버린 해변에서 파도소리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스톡홀름 신드롬이 생겨버린 피해자처럼 ‘파도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도, 변화를 해보겠다고 가끔 내 해변에 모래들을 열심히 반죽하여 성을 쌓는 날들이 있다. 그럴 때면, 완성된 성의 모습을 상상을 하다, 누군가 나의 해변을 지나가다가 칭찬과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이어가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는 그런 미래가 있지 않을까 퍽이나 쓸데없는 망상으로 변질되고는 한다. 자, 하나의 예시를 들어보자. 나는 남들과 비교하여도 객관적으로 불행하다고 할 만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외모와 행동으로 인한 왕따, 그로 인한 반사회적 성격 형성, 악순환처럼 이어지는 스스로의 고립까지. 하지만 분명 그 사이에도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였다. 사소한 것에도 예민하고 방어적이며 그룹활동을 철저히 거부하는 나를 교실 안으로 다시 들여준 선생님들, 집 가는 길 나를 처음 같이 PC방을 가자고 하며 끌고 가준 친구들, 기억엔 없지만 수없이 많은 호의가 나를 지나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어떠한가? 그 때의 나보다 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결론적으로는 내면적으로는 동일한-혹은 더 퇴보한-사람이지 않는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고, 더욱이 나의 이 어두운 면을 감싸주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결국에 연락처를 바꾸거나, 타지로 도망가거나 등 다양한 이유로 그들을 끊어낸 것은 역시 나였다.
영장류는 학습을 하여 발전을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이 수많은 사례들만 봐도 ���나는 그 고통을 통하여 성장하고 알을 깨고 나아갔다’는 희망적인 결말을 그려낼 수 있을 정도가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나는 한 자리 수의 평수 단칸 방 침대에 누워 불면도 숙면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 에서 시간을 버리며 살아가다 결국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 사이에 나는 군대를 다녀왔고, 대학을 자퇴했고, 수 번의 이직을 하며 조직에 녹아들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그렇다고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괴짜 천재들처럼 비범하지도 않으며, 남들 모르게 세상을 구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저 그런 한심한 존재로 남아있다.
이제 제법 빠르게 모래성을 지을 수 있고, 언제쯤이면 이 파도가 해수면을 넘어오는지 감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낸 것은 빠르게 지을 수 있는 모래성 도면과 어디쯤에서 부수게 될지에 대한 예측이다. 이것은 마치 삼체 문제 마냥 내가 아무리 견고한 가설을 쌓아도 무너지고 만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룬 것이 없는 삶을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이 삶이 어디서 끝날지 알 수 없다. 몰디브처럼 언젠가 바다에 잠길지도, 혹은 그 전에 나의 해변에 모래가 모두 파도에 이끌려 도망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얻은 하나의 교훈은, 여전히 나는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대학교 과제로 글을 쓸 일이 생겨서, 이 축복을 담아 꾹꾹 눌러 써 기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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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22 · 13 h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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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로 했던 한국식당이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 하여(주인이 교회 다니나 봄) 훠궈 집으로 갔다. ‘하이디라오’라고 하는데 한국에도 있는 프렌차이즈라고 한다. 처음 들어봤는데 검색해보니까 비싼걸로 유명한 듯 하다. 여기서도 비싼 편인 것 같은데, 셋이 10만원이 조금 안되는 가격이었으니 이곳 물가를 감안하면 비싼 곳임에는 분명하다. 게다가 밥을 먹는 한 시간 정도 되는 시간에 생일 파티를 하는 테이블이 4곳이나 있었다(생일 파티 정도면 돈을 쓸만 하니까). 나 역시 생일이었지만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 그냥 구경만 했다. 이 프렌차이즈의 특이한 점으로는 훠궈에 담근 채소나 고기를 찍어먹을 소스를 스스로 만들어먹을 수 있도록 소스 존이 따로 있었다.(과일도 있고 김치와 잡채도 있었다.) 그곳에는 여러 소스와 양념이 엄청많이 있어 조합한다면 수만가지 소스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오늘은 6가지 소스를 만들어왔지만 결국 하나만 찍어 먹었다. 재미있는 건 신기하게도 MSG가 별도의 재료로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맘에 안들면 조미료 쳐서 먹으라는 의미일텐데 과감해서라기보다는 MSG를 굳이 나쁘게 인식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한국에서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지 않을까(한국에는 MSG를 그렇게 둘 리가 없다). MSG는 넣지 않았는데 기본적으로 충분히 맛있기도 했고, 마라 탕은 매워서 MSG를 넣는다고 맛이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서비스는 조금 과할 정도였는데 주문할 때부터 옆에 사람이 서 있었고, 사람이 계속 바뀌면서 주위를 맴돌기도 했으며, 물을 마시고 나면 빈 컵을 물로 채워줬고, 땀을 흘려 휴지를 사용하고 테이블 위에 두면 중간중간 지나가다가 휴지와 빈 그릇을 가져갔다. 이런 건 처음이라 매우 어색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아이의 빈 컵을 물로 채워주자 아이가 생각났다는 듯 그 물을 마셨는데, 그 모습을 보던 직원은 아이가 물을 마실 때까지 기다린 후 다시 물을 채워놓고 떠났다.) 여기서도 직원들은 중국계 어린 학생으로 보였고 아주 기계적이어서 한국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집에 와서는 아내가 몰래 이야기했는데 아이가 같이 케이크 사러 가자고 했으니 둘이 나가더라도 모른 척 해달라고 했다. 그 얘기 듣고 혼자 수영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이가 나가기 귀찮다고 케익을 못샀다고 했다. 둘이 같이 나가서 먹을 수 있는 정도로 사왔다. 수영가서는 처음 입수하는 곳에 아이 담임선생과 가족이 있었는데 들어가면서 먼저 나한테 눈인사 하길래 말을 붙였다. 아이 이름 말했더니 같은 곳에 사는 지 몰랐었다며 놀라고(?)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간단히 이야기하고 난 바로 수영만 했다. 아이한테 이야기했더니 앞으로 수영을 절대 안할거라고 한다. 나도 그 나이라면 그랬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평범하지 않은 날을 평범하게 보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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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nproject · 8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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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함"
*대견함
얼마 전 그런 글을 보았다.
딸은 평생 엄마를 짝사랑 하고, 엄마는 평생 아들을 짝사랑 한다는 말,
그게 왜 그렇게도 마음에 맴돌던지.
나는 엄마의 대견한 딸, 자랑스러운 딸로는 살아봤지만,
엄마가 보듬어야 하고 품어야 하는 딸로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대견하다는 그 말이 나를 단단하게는 만들어 주었지만, 보살핌에서 멀어지는 말이란 걸 잘 몰랐다.
그 때로 돌아가도 난 계속 당신의 대견한 딸이겠지만, 언제까지고 나는 망가지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그런 존재로 견뎌낼 수 있을까?
난 사실 얕고 약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걸 알까?
요즘 퍽 대견스럽지 못한 날 뿐이다.
-Ram
*대견함
이마가 톡 튀어나와서 어릴 적부터 알콩이라고 불린, 둘째의 숙명처럼 종종 첫째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마음속으로 끙끙 앓았을 적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자기만의 살 길을 찾아 더 이상 스스로 상처받지 않게 자신만의 보호막을 단단히 세우며 그렇게 잘 컸던 그녀는 어느새 어렵고 큼지막한 일들을 척척해낸 어엿하고 듬직한 어른이 되었다. 가끔씩 그녀에게 풍기는 성숙함과 든든함은 점점 보통 내공이 아니게 느껴져서 대견함을 넘어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 종일 통마늘 몇 망을 까고, 손이 부르트도록 간 다음, 잘 얼린 후 오는 동안 녹지 않게 그 무거운 아이스팩을 두 개나 같이 넣고 그걸 집들이 선물로 자상함은 어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지. 거기에 부대찌개 맛집이라면서 육수까지 이고지고 온 그 마음은 절대 잊을 수 없지.
-Hee
*대견함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본인 삶을 열심히 살고, 특별히 모난 구석 없이 둥글게 사는 사람들이 좋아진다. 대단히 선하지도 덕망이 높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너절한 본성을 다 드러내며 사는 꼴들을 자주 겪다 보니, 평범함을 꿋꿋하게 유지하며 살아내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는 나도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어떤 의도 없이도 손해를 조금 더 감수하게 되고, 양보하게 된다. 꽉 막힌 사람같이 굴었던 지난날 내모습은 아마 지금처럼 평범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될 만큼.
-Ho
*대견함
새해를 시작하면서 여러 변화를 맞이 했다. 모든 서류들과 회사와 씨름하느라 몸도 마음도 고됬나보다. 나는 피곤하면 입술 주변에서 먼저 신호가 오는데 이번에도 늘 같은자리에 트러블이 올라왔다. 대상포진 같기도하고 그냥 트러블이 아니라 몸속에서 오는 문제가 피부로 발생하는 느낌이다.
이 신호를 받자마자 감기에 걸렸다. 회사 팀빌딩이 있는데 일박이일이라 정말 가기 싫었다. 왜냐하면 퇴사 절차를 논의하면서 메니지먼트에 만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인사과와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인사과는 계속 내 상사들을 이 문제에 개입시켰다. 이점은 모든게 정리되고 퇴사직전에 내 생각과 느낀점을 공식적인 메일로 쓸 생각이다. 내가 원하는 걸 관철 시키는데 내 상사가 그 미팅에 들어오면 내가 어떻게 내 목소리를 낼수있나? 사안이 사안이다보니 복잡해서 중간에 한국어를 할줄아는 동료가 참석했는데, 나랑 개인적으로는 친하지만 회사일이 엮이면 그 동료도 메니지먼트의 어조로만 나를 대한다는 걸 느꼈다.
회사는 내가 일하고 돈버는곳 그게 가장 메인 컨셉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왠지 우리는 도덕적인 잣대를 스스로에게 갖다대서 내가 받는거보다 더 하는걸 선호한다는 느낌이다. 회사의 이중성을 여러번 봤는데, 고객이 돈을 제때 안주면 우린 자선단체가 아니야 이러면서 또 직원들한테는 일을 더시킨다. 그럼 뭐 직원들은 자선단체 직원인가? 도움이 필요할때는 언제든 말하라면서 정작 직원들의 삶의 질 향상이나 더 나은 방법이 있어 그렇게 해달라면 안해준다.
예전 대학교 기업법 시간에 법인이란 개념에 대해서 배운게 생각난다. 기업에도 인격체를 부여해서 독립적 한 개인으로 모든 사회활동을 할수있다는 의미 였던거 같은데, 메니지먼트는 회사의 인격에 자신들이 부모라도 되는거 처럼 감싸고 보살피는게 때로는 애처롭다. 나는 무엇보다 내가 제일 중요하고, 회사에서 내가 정당하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다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아 차라리 그냥 이거 안받고말지 할정도로 사람을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나는 언제나 의도를 가지고 시도하는 사람이 될것이다. 협상테이블에 가는게 두려워 대화를 시작조차 하지 않고 포기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 나는 내 직관과 느낌을 따를 자격과 힘이 있다. 이만큼 성장한 내가 대견하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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