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3억년
queenhe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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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ist-xx-blo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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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인간의 본성과 행동을 진화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센스 앤 넌센스> 발제문
1.
“역사적으로 볼 때, 진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여러 종들을 사다리 위에 배열하고 직선적, 진보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던 라마르크의 진화론 … (중략) … 이와 대조적으로, 다윈의 진화론은 종 내부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인종차별에 내재하는 유형학적 사고를 거부한다.”
<센스 앤 넌센스 p.96>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에 대비되는 ‘용불용설’을 주장한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현대사회를 거치면서, 우생학과 사회적 다윈주의까지 발전했다. 우수하고 월등한 유전자만이 생존하고, 유전되며 그리고 그러한 사회가 진화하면서 야만적이고 열등한 사회와 우성의 문명사회가 나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20세기 초의 이러한 견해들이 사회적으로 문명과 야만을 구별하거나 인종과 성 그리고 계급 등을 차별하는 행위에 대한 정당화의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한 나라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인 지배권을 타국으로 확대하려고 했던 제국주의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윈이 가장 우려하였던 진화와 진보가 혼동된 개념으로 이용된 것에 기인하였다. 생물학적인 진화를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는 과정’인 진보로 간주하고 사다리를 서열이나 진보의 척도를 판단하는 도구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다윈주의적 진화와 사회적 다윈주의는 양립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편견이나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람들이 다윈주의 사상을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화론에서 갈래들인 돌연변이이론이나 용불용설 등에 대한 잘못된 이해 또는 의도적인(?) 해석이 그 사회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주었는가?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되어야 옳은가?
-진화론의 발전 양상과 사회에 대한 그 적용 과정, 나아가 하나의 학문이 그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받아 드릴 때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사회는 일정한 방향으로 진보한다고 간주한 사회적 다윈주의에서의 우열의 척도는 무엇인가? 다만, 과거와 달리 경제적인 번영과 과학기술의 힘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현재에서 문화상대주의 또는 사회적 다윈주의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2
“간단히 말해서, 연구자들에 따라 강조하는 항목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예: 심리적 메커니즘, 행동, 문화정보), 모든 연구자들이 서로 입장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 (학파를 나눌 만한) 본질적인 차이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센스 앤 넌센스 p.397>
사회생물학은 유전자관점이나 혈연선택 등에서 인간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진화론 이외의 것은 설명을 고려하지 못했다. 인류의 환경과 생태계가 인간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을 적용시키고자 했던 인간행동생태학은 엄격하고 상당한 통찰력을 제공했지만, 인간행동을 이해하는 방법론에 대해 진화심리학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를 심리 수준에서 반응의 유형을 분석한 진화심리학은 문화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 깊이가 깊지 않았다는 비판도 존재했다. 처음으로 수학적 모델을 제시하고자 했던 문화진화론도 진화된 내용 편향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문화진화론과 진화심리학의 잡종 교배와 같은 유전자-문화 공진화론도 모든 문화적 인간적 행동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보인다.
책에서는 다섯가지의 진화론적인 접근 방법인 사회생물학, 인간행동생태학, 진화심리학,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을 통해 인간에 대한 진화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그 방법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정 이론이 가진 장점으로 접근하되 다른 이론적 연구의 결과에 반하지 않는 통합적인 연결이 될 때 그것이 비로소 인간에 대한 진화적인 이해를 더 높일 수 있다.
-진화와 인간행동에 대한 연구는 왜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렇다면, 올바른 연구 방법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또 무엇인가?
-진화심리학에서의 사례연구에 대한 생각(Ex: 배우자 선택기준, 살인행동의 성차 등)
개인적인 생각
과거부터 과학계는 항상 여러가지 학파들의 이론에 대한 대립을 통해 발전했고, 역설적이게도 과학기술의 발전의 획일적인 방향은 그 발산하는 여러 방향의 견해들이 시초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모든 학파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양립 불가능한 것은 없을 수 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이론이라는 것은 선대의 기본적인 이론에서 발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밈 개념은 선풍적인 인기를 통해 진화생물학에서 사회생물학적 접근에 대한 위상을 높였다. 하지만, 정작 본 책에 따르면 단순한 인기였을 뿐, 학계에서는 큰 동조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의 진화생물학에서의 관점을 소개하면서 그 이론들의 발전에 대한 이유, 양상, 그리고 한계점을 역설하는데 한쪽에 치우쳐지지 않는 스탠스를 취한다. 균형감각을 유지하려고 했던 그들의 태도를 통해 과학자로서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를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도 전해주려는 노력이 보이는 글이었다.
다만, 인간의 보편성에 초점을 맞추고 현대 서구 사회와 관련된 의문점들을 명쾌히 해설해주고 있는 진화심리학이 주를 이루고 있는 현대의 진화론계에서 이 책은 단순한 교과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론의 사회과학화에 대한 양상은 동의하면서도,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이 기본이 되는 진화생물학에서의 다원주의는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에 대한 비판도 숨길 수가 없다.
<서평>W
솔직하게 말해 초중고의 의무교육 동안 내의 ‘유전’ 파트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내가 이해하기에 <센스 앤 넌센스>는 큰 무리가 있었음을 미리 밝힌다. 미술사에 있어 큰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1900년 경의 모더니즘으로의 이행에 있어서 그 배경을 꼽을 때, 다윈의 진화론은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과학과 미술의 조합이 그리 자연스럽게 여겨지지는 않다는 점에서 되려 다윈의 진화론이 얼마나 넓은 범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가가 반증되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진화란 진보의 개념이 아니며 여기에 우월을 따질 수는 없다는 전제 하에, 자연선택에 의해 종과 그의 변이가 일어나는 것을 칭한다. <센스 앤 넌센스>는 다윈의 진화론을 시작으로 여기에서 나아간 사회생물학・인간행동생태학・진화심리학・문화진화론・유전자-문화 공진화론에 대한 대략적 개괄과 주요 개념 및 비판점을 짚는 형식으로 그 계보를 파악하며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를 설명하려 한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포착한 다양한 형태의 생물들에 대한 관찰에 기반한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에 대한 확정적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당연하게도 이 연구방법은 인간, 문화까지 그 적용범위를 넓혀갔다.
진화론과 그를 위시하는 5가지의 연구분야들은 각각 정도는 다르겠으나 일정 정도 개인 행동의 유연성을 인정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이라면 보이는 행동 또는 가지는 경향성을 긍정하며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문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에 대한 반기를 목적으로 하는 다원성 중심의 포스트 모더니즘이 이미 전세계에 팽배하고도 남는 지금에, 보편성으로 수렴될 수 밖에 없고 그를 연구 목적으로 하는 이 일련의 연구들이 설득력을 가지는가에서 끊임없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이 의문은 책의 전반에서 등장하는 사례연구들을 보면서도 지속되었다.  진화론을 경험적인 사례로 증명하고자 하려면 여러 변수들을 통제해야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나 특정 지역의 특정 민족(거의 대부분 소수민족)의 사례를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보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진화심리학으로 진입해서는 더욱 의구심이 솟구쳤는데 여기서 제시한 사기꾼탐지 메커니즘・배우자 선택기준・살인의 해석・혐오감 이라는 네 가지 사례는 모두 인간과 인간 심리를 너무 나이브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판단된다. 아마 찾으라면 이에 대한 예외들은 현대의 우리들 주변에서 너무나도 손쉽게, 많이 발견될 것이다.
또 <센스 앤 넌센스>는 스스로 진화론 계의 연구들의 미숙한 점으로 언급한 바 있는 단어의 적확성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데, 마지막 이론인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이 “유전자는 느리게, 문화는 빠르게 진화한다”는 기존의 주장에 반박해 “유전자는 빠르게, 문화는 느리게 진화한다”고 주장하는 것에서 이 속도 개념을 모호한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적응”, “적응적” 등의 단어들에 대해 명쾌하게 요약・정리한 것과는 대비된다. 유전자와 문화 사이의 상대적인  속도가 빠르고 느리다고 언급한 것인지, 절대적인 빠름과 느림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빠르고 느리다의 시간적 기준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길이 없기에 혼란을 준다. 특히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은 일반적인 상식 선의 시간 및 그 축적의 개념과 차이가 있는 듯 하다고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는 더 가늠이 어렵다.
<센스 앤 넌센스>에서 다루는 진화론과 연결된 5개의 이론들이 1900년을 전후한 때를 시작으로 전 학문 및 전 세계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분명 그 시대를 지탱했던 하나의 기둥으로 활약했으나, 시대는 변했고 지금의 인간 군상과 사회 현상 및 문화를 설명하기에 진화론이 아직 유의미한가에 대해서는 확언하기 어렵다.
<서평> D
지금껏 인간으로 태어난 무수히 많은 자들이 던진 하나의 질문이 있었으니, 바로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이 단 하나의 물음이 인류를 진화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철학, 인문, 종교, 과학 등 각 분야에서는 위 질문에 대한 다채로운 접근을 통해 인류 자체를 진일보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번 도서, 센스 앤 넌센스는 위 물음의 대답을 아주 매혹적으로 대답해 온 세상의 관심을 끌고 여러 사건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던, 진화론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약 400페이지에 걸쳐 진화론의 큰 다섯가지 갈래인 사회생물론, 인간행동생태론, 진화심리론,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에 대해 설명한다. 진화라고 해봤자 결국 원숭이로 밝혀졌다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일화 정도밖에 알지 못했던 나임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읽어갈 수 있을 만큼 친절하고 중립적인 책이다. 이 다섯가지 계보들은 진화의 척도를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갈리는데, 예를 들면 사회생물론에서는 진화를 이루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을 우리의 유전자, 즉 자신의 DNA를 후손에게 전달하겠다는 절대적 본능이라고 보았으며, 진화심리론에서는 우리의 먼 과거에서부터 축적된 심리 메커니즘이 진화를 촉발시킨다고 이야기 하는 것 등이다.
각 이론들을 읽어나가며 지속적으로 든 생각은 이론을 대표하는 과학자들이 한 이론 내에 너무 깊게 매몰된 나머지 변수들을 너무 배제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몇몇 예시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될 정도였는데, 예를 들면 사회생물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이 유전자와 혈연선택이라는 개념에 매료된 나머지 숫자와 수식을 통해서만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는 것이 있겠다. 규정된 시각 안에서 귀납적으로 추론했던 그들이 얻은 우울한 결말 중 하나인 ‘피임’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서 잠깐 나오기도 한다. 인간이 피임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후로부터 사회생물론자들이 피임이라는 현상과 번식심리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거의 포기해버렸다는 일화이다.
위의 실폐 예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숫자를 통해 분석될 수는 있지만 설명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닌 듯 하다. 이러한 점에서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발전적으로 느껴졌는데,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무수한 것들, 모호한 것들의 집합체인 ‘문화' 대해 재정의하고 그것을 인간 내부의 본성, 혹은 물리적인 구성요소와 연관 짓는 것이 조금 더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생긴 학파이기 때문에 다른 학파에 비해 예시가 적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가장 궁금했던 분파였다.
저자는 각 분파의 유기적인 연결이 완결될 때 비로소 인간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책을 끝낸다. 결론까지도 굉장히 바르고 교과서적이다. 지금껏 합리적인 사고만을 통해 인간을 설명하는 것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나였고, 그래서 ‘진화론’은 편식하듯 관심을 가지지 않던 분야였다. (사실 지금도 그러하다. 규정된 기준에서 인간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차별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인간의 창작물 하나, 시 한줄이 인간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부류이다.) 그랬던 내게 이 책은 진화론에 대한 전반적인 구조, 그들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논쟁에 이르기까지 교과서적으로 알게 한, 즉 지식 습득의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분명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도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었다는 느낌만이 있었을 뿐, 앎의 측면에서 ‘그래서 그들이 인간의 정의에 대해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이 책은 인간에 대한 나의 시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초라한 답변만이 남았던 책이기도 했다.
<서평> S
인간은 랍스터와 동류인가- 절대 더 낮다거나 높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기.
생물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수없이 쏟아지는 임상실험의 예시와 과학인들의 계보들이 어지럽다. 그러나 다윈의 저 좌우명이 뜻하는 바를 완벽히 이해했다면 본 서적이 바라고 있는 진화론에 대한 편견깨기에 일말의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겠다. 인간은 진보되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연히 이 자리에 존재할 뿐이다.
혹하는 대중학술서가 너무나 많다. 특히나 진화생물학과 사회과학의 콜라보는 그 첨단을 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얇게는 혈액형별 성격분포부터 깊게는 피부색에 특화된 공부방법론까지 다양하다. 오늘 일어난 일을 어제의 실마리를 통해 파악하려는 것이 인간의 지적 호기심인지, 지독한 방어기제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 무엇 하나도 과거에 책임을 물을 순 없다는 것. 과거는 이미 너무 먼 일이 되었거나 그 시대를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기에.
저자는 얼마나 많은 잘못된 진화론들이 세상을 현혹시켰는지를 조목조목 따진다. 이는 진화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함의를 다시금 환기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현대에 평가받는 각종 학설들을 드러내면서 내용 편향과 데이터 수집 과부하와 같은 한계를 낱낱이 드러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현대인들은 생물학, 더 나아가 과학이라는 분야를 현대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제시가 없다. 애초에 명명백백한 팩트체크를 목적으로 한 서적이었기에 저자의 주관이 십분 배제되었던 것도 이해는 가지만, 장장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대장정을 걸어오게 했다면 그 정도 입가심은 해줘야 하지 않았나, 너무나 아쉽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지점은 바로 ‘현대의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적, 자유주의적 사회에서 생물학과 진화론이 가지고 있는 함의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기 위해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정도가 되겠다.(인문사회학도는 그저 인간사에 어떻게 적용시킬지를 바라볼 뿐이다)
솔까말 현대의 생물학은 가치 중립적인 과학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전통적인 결혼과 생식 중심 이성애라는 보수적인 사회적 의제”를 지탱하는 역할을 공고히 하는 데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예컨대 남성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그녀와 자녀에게 쓰려 하는 헌신적 태도가 여성들에게는 짝직기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 혹은 남성의 바람기나 난교성향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를 들면서 이를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치부하려는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정자의 개수와 난자의 개수 차이를 근거로 말하는 것이 대표적)
이런 입장은 책 또는 온라인 콘텐츠의 형태로 무수히 퍼져 있는 연애 지침서를 만든다. 거기엔 남녀의 성적 차이에 대해 지루할 정도로 틀에 박힌 의견들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 얄팍한 의견들은 간극으로 이어진다. 현대 수면위로 떠오르는 수많은 성평등 담론들은 진화론이 20세기에 홍역을 치르게 했던 성이분법과 인종을 기반으로 한 우생학으로부터 기여한 바가 크고 아직도 그 여진이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진화심리학은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그러한 반지성적 인식에 과학적 당위성의 외피를 입히고 있다. 젠더와 성에 대한 진화 이론들이 인문학계에서 생산된 더 복잡한 해체 이론들보다 주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인생의 수많은 딜레마에 간단명료한 해답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더보드를 해부하는 것을 넘어 AI를 개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는 과거의 무엇이 나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는지 보다는, 앞으로의 미래에 현재의 선택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하 더 큰 관심이 있다. 그야말로 인류의 지성은 뒤가 아닌 앞 만을 보고 달려가고 있는 경주마와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더 이상 랍스터와 무엇이 다른가, 3억년 전 나무하나 없었던 시절에 뿌리를 같이 했다던 그 변연계의 영역에서 우리는 무엇을 유추해야 하는가. 무엇 하나 틀리지 않고 맞다는 양비론도 아니되고, 이것 만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도리어 폭력이 되는 세상에서 진화론은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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