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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를 읽고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SF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런 저런 책을 알아보다 언급된 작가였다. 테드 창은 중단편을 쓰는 부업(?) 작가이다. 처음 접했던 것은 그의 소설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여타 SF 소설과는 달랐다. 과학분야에 대한 지적 만족을 주었으며, 길지 않은 짧은 내용 속에 깊은 철학과 작가의 고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쓸수 있는지. 어쩌면 내가 추구하고 동경하는 글의 형태와 닮았다. 길지 않아도 된다. 말하는 바를(전달하고자 하는 것)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실은 수사의 현혹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어떤 작가들은 이를 표현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럴 때 우리는 과도한 문장의 구���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내용 또한 명쾌하다. 스토리의 진행과 플롯은 간결하지만 명료하고 깊이가 있다. 마치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그 향을 음미하는 느낌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테드 창이 쓴 소설 중에는 중편 소설 부류에 속하는(이 작가의 소설치고는 나름 긴 편) 소설이다. 제목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과학기술의 발달은 물질적인 반려동물 이외에 다른 디지털 존재를 생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디지언트라고 불리는 이들은 유전자의 디지털화로 얻게 된 가상세계의 존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애나와 데릭은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이다. 그들은 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반려동물과 함게 사는 사람들처럼 디지언트를 비슷한 감정으로 대한다. 그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철학적인 난제들이 나타나고 작가는 이 소설에서 그 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디지털 존재는 실제 존재로 볼 수 있는가? 의식을 가진 디지털 존재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동종 이외의 성행위는 반드시 잘못된 것인가? 양육에 따른 통제는 언제까지인가? 자유선택의지는 언제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이 작가의 놀라운 점은 여기 있다. 있을 수 있을 법한 미래의 과학기술을 토대로 인간이 반드시 고찰해보아야할 사회적, 문화적 문제점을 발췌해낸다. 이러한 ‘문제점의 추출’은 날 것으로 독자에게 던져지고 소설을 읽는 독자는 고민에 빠지고 만다. 답을 내리기 힘든 철학적 난제를 과학적 소재와 엮어 풀어내는 소설을 이토록 짧고 명쾌하고도 강렬하게 써낼 수 있다니..
나는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각한다. 우리 학생들은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제재 받는다.(사실 성인의 기준은 사회적으로 합의하여 정한 것이지 않나?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모호한 기준.) 학급 담임을 하면서도 고민한다. 이들의 자유는 어느 선까지인가? 학생들의 개인 의사와 주장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에서 그것은 쉽사리 용인되지 않을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아직 부모가 아니지만 나의 자식이 시간이 지나 자신만의 길을 걷고자 할 때 나는 어디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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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교수의 [수련]을 읽고
재미있는 책이 없을까 뒤져보던 중 [심연]이라는 제목의 책을 접했다. 짧은 단편의 에세이들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삶의 태도와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또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주었기에 책의 저자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인터넷을 뒤지던 중 책 [심연] 을 쓴 작가의 후속작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리뷰평을 둘러보지 않고 바로 구입하였다.
[수련]은 자신의 [심연]을 내다보고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나아가야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집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면, 그리고 무엇을 해야한다고 느꼈다면, 실천에 옮겨야지. 그렇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작가는 섹션마다 핵심이 되는 단어를 1개 선정하여,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전 책인 [심연]을 너무 흥미롭게 읽었던 탓인지, 아니면 내가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이 책을 손에 쥘 시간이 많았었는지 모르겠지만, [수련]은 단숨에 나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수양하는데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그의 짧은 에세이들을 읽어본다면 큰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인 배철현 교수는 끊임 없이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자신이 판단하여 부단히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는 삶을 가장 가치 있는 삶으로 보았다. 일부 우리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가장 원하는 것은 ‘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아야한다. 그 돈은 결국 수단이고 그 수단은 결국 내가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 욕망의 원천을 살피고 절제의 대상인지 추구의 대상인지를 확고히 하여야 허영과 본질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체 허영 속에서 존재하고 사라지거나, 또는 자신의 내면을 깊고 깊게 파고 들어가고 자아성찰하며 존재하거나.
나는 삶을 너무 튀어 오르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게 살아가려한다. 나의 삶에서 의미 있는 것을 찾고, 고민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며, 삶을 여행하다 도착하는 곳이 내가 원하는 곳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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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
김영하 소설의 첫 시작은 [오직 두 사람]이었다. 단편 소설들의 모듬을 읽고 꽤나 마음에 들어했었다. 담담하게 그리고 건조한 듯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느낌이었다.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고 여지를 두는 결말, 찝찝한 마무리, 단편 소설들이 가진 특유의 담백한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첫 작품을 찾아보았다. 지금도 인기있으며, 여전히 잘 팔린다고 하는 데뷔작. 소설 제목부터 침침하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을 개정되어 나올 때마다 수정이 필요한 문장과 내용을 재 터치하는 편이라고 한다. 망설임 없이 최신판 3판 24쇄라고 적혀있는 2018년도 따끈한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 첫날 다 읽었다. 책 자체의 두께가 얇은 편이고 흡인력이 뛰어나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은 외설적이고 어둡다. 주인공들은 모두가 병들어있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상 범주(사회적 수준)에서 벗어나있다. 등장인물 모두가 그렇기에 되려 서로가 잘 어우러진다. 소설 내에서 할당된 많은 부분은 죽음의 언저리에 걸쳐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보여준다. 또한, 성교의 묘사. 살아있지만 삶에 미련을 갖지 않고 언제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무미건조한 그들에게 그나마 남아있는 유일한 자극은 성교의 쾌락인 것만 같다. 이 소설은 슬프디 슬픈 신파극으로 빠지지도 않으며, 해피엔딩도 아니며, 독자로 하여금 깔끔한 해결로 종결짓는 정합성의 쾌감 조차 쥐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의미 있으며, 여운을 남기며, 강렬하다.
나는 무엇인가? 어떤 삶을 사는 것인가? 삶은 허무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우리는 태어난 나라는 존재를 항시 의심한다. 태어난 이상 해내야 하는 것, 지켜야 하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이 땅에 내던져진 우리는 그 의미를 찾으려 발버둥치다 괴로워하며 ���는다. 죽음에 대한 생물학적 공포를 기어이 이겨낸 존재는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를 갖게 된다. 어쩌면 작가는 그 자체를 이야기 소재로 삼은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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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중독자]를 읽고
‘다니엘 S. 밀로’라고 하는 철학(보통 철학 하는 사람들은 역사, 생물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같이 섭렵하더라..) 교수의 저서인 [미래 중독자]는 알라딘 중고도서점을 지루하게 걷던 나의 눈에 갑작스레 띄었다. 특히 ‘멸종 직전의 인류가 떠올린 가장 위험하고 위대한 발명, 내일’이라는 부재와 ‘내일 보자고 말하는 원시인의 탄생이 인간의 진화에 폭발적인 역할을 했다.’는 그의 주장은 매우 흥미로웠다.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 이미 결론을 말했으며, 책의 대부분은 그의 주장을 과거(뿌리), 현재(거품), 미래(전이)로 나누어 증명하는 방대한 자료와 예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호모 종이 아프리카 내의 거주에 만족하지 않고 왜 머나먼 길을 떠나게 되었는가? 물음에 대한 해답은 고고학자, 생물학자들의 논쟁거리였다. 알 수 없는 과거는 사실 그 자체로 존중 받을 수 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웃기게도 알 수 없는 것을 파헤치고 뜯어내고 기어이 모두가 인정하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니엘 S. 밀로’ 할아부지는 말한다. 아프리카에서 서식하던 호모 사피엔스는 미래를 알아버렸다. 지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살게 되는 순간이 발생하였고, 이는 결국 그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전 지구를 뒤덮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이런 가설에 대한 다양한 증거 자료를 제시하지만 내가 가장 와닿은 것은 결국 미래라는 그 존재였다.
나는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 그걸 의식해본적 고민해본적은 드물다. 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며 많은 학생들을 경험한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도박을 하는 학생들. 밤 늦은 시간 술을 먹고 친구들과 설치다가 경찰에 끌려가고 다음날 등교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생들. 그 친구들에게 항상 말해왔다. 정신 차려야지.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것 보다 훨씬 좋고 멋진 미래를 위해서. 너의 사회생활과 너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어째서 미래를 그리며 살아가는 것일까? 문득, 당연히 내일이 있다고 믿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의 행동 양식을 철저히 파헤쳐보았다. 나는 미래를 위! 해! 살아가고 있다. 단순히 말뿐이 아닌, 사실 우리 모두는 미래를 염두하고 살아간다. 정말로 미래를 살기 위해 지금을 살아간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문득 떠오른 것은 ‘이성’이다. 인간을 ‘이성’과 ‘본능’이 혼용된 존재의 상태라고 보았을 때, ‘이성’은 결국 ‘미래’를 생각하는 힘일지도 몰랐다. 이성은 추론을 하게 하며, 지성을 갖게 하고, 앞을 내다보고 지금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게 한다. ‘본능’은 무엇인가? 동물이 가진 욕망의 형태 그대로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결국, ‘본능’은 지금이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지만, 미래를 살아간다. 결국, 인간은 너무나도 아이러니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너무나 불완전한 우리는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늘 갈등하고 고뇌한다. 나는 어디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는가?
또다시 도출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근대의 벽을 부수고 현대의 문을 연 철학자 니체는 실존주의를 말했다. 현대 문화에 사는 우리 대부분은 현재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 갈 것이다.(물론 미래를 결코 소홀히 한다는 말은 아니다.) 아쉽게도 내 머리속의 양극단에 있는 미래(이성)와 현재(본능)는 서로 절충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언제즘이면 나도 자유롭게 둘 사이를 넘나드는 ‘완성인’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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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서은국
행복의 기원
근래에 읽은 생물학을 담은 두권의 도서는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었다. 인문학이란 항상 철학의 범주안에 있으며, 철학은 과학과 결코 떨어져있지 않는 관계이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이과, 문과로 분과된 형태에서 과를 선택하여 이과 수업을 받았기에 과학과 인문학은 결코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통섭을 강조한다. 맞았다. 사실 그 모든 학문은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이다. 글로벌 미국 기업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공학(과학 또는 이과 형태의 우리가 생각하는)의 중간 그 어딘가에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iPhone을 만들어냈다.
[행복의 기원]은 ‘서은국’이라는 심리학과 교수의 책이다. 이 책은 근본적으로 행복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왜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말이다. 니체 사상을 DNA에 새기듯 자라온 우리네 세대는(물론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원론이든 절대주의든-에 익숙한 사람들도 여전히 있지만) 이제 ‘소확행’이라는 표현을 쉽사리 사용한다.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기 위해 사는거지.” 그렇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지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할 것 아닌가? 동의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접근 방식이었다. 당연한 것을 철저히 부숴보는 것. 그래서 도입부에서 부터 열정적으로 읽어내려갔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은 거의 책을 읽은지 1달 가량이 지나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나는데로 끄적여보고자 한다.
인간은 생물이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행복론(덕을 쌓는 둥.. 학문에 몰두하는 등)에 아직 머물러 있으며, 행복을 이성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행복에 대한 방법론만을 고집한다. 하지만, 실제로 행복은 생존을 위한 본능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동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철저하게 생물학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본 것이다.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는 다양한 동물적 본능에 견주는 사례와 가설을 내세운다.
상기한 문장 중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거지.”는 이 저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살기 위해 행복이라는 생존방식을 선택한 것이다.”라는 것이 ‘서은국’ 교수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결론을 도출해 나가는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그가 행복을 연구하여 다양한 자료와 자신의 결론을 종합한 결과는 행복의 요인은 유전(특히, 외향적 성격)이다. 외향적 성격이 행��을 보다 잘 느낀다는 것이다. 그가 정의 내리는 행복은 맨 뒷장에서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이 책은 혜성처럼 나타나 생물학적 관점에서 행복을 논하더니, 혜성이 갈라지며 나온 결론에 뜬금없이 길가메쉬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길가메쉬는 말하겠지. “야~ 우트나피쉬팀이 말하던데 ‘그냥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맛있는 것 먹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하고, 의미있는 일을 하며 살아라.’고 하던데?”
이 책은 행복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으나, 그 결론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차라리 독자에게 그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행복의 기원을 파헤치고 그대로 내던져 주었으면 어땠을까? 날 것 그대로의 행복을 보고 판단과 결론은 독자가 낼 수 있었다면, 조금 더 큰 파장을 주는 도서가 되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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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은 우리나라의 핫한 인물 중 한명이다. 진보주의 정치인이며, 송곳같은 혀를 가진 작가, 지식인이다. 나는 ��를 TV에서 접했다. 그는 토론 중이었으며, 그의 말은 날카로웠다. 때로는 고집불통이었지만 때로는 굉장히 논리적이었다. 그는 20대에 이미 글쓰기에 능했다. 유시민을 아는 사람 중 <항소이유서>를 들어 본적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많은 저서 중 고작 두 권만을 읽어보았다. 처음 접한 책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이다. 책은 읽기 좋게 편하게 쓰였으며, 덕분에 크게 관심 없던 세계사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저술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으며 나는 굉장히 실망했다. 내가 영상에서 접하던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모습, 그리고 책이나 대외 활동을 통해 느끼던 그 사람의 철학적 행보와는 뭔가 동떨어진 느낌의 책은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마치, 누군가 그에게 강제로 분량을 정해주고는 “이만큼의 에세이를 작성해서 제출하시오.”라고 한 것만 같았다. 어쩌면 유시민이라는 사람에게 너무 기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리뷰어들의 사견을 너무 믿고 책에 대한 기대감을 너무 높인 탓인지도 몰랐다.
책의 제목은 너무나도 거창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와 방향성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환경과 주변의 의견과 견해애 따라 삶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거나 자신의 방식을 더욱 확고히 하기도 한다. 유시민은 이러한 삶에 대해 어���한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이 질문을 풀어냈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던 나는 꽤나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난잡하게 구성된 내용들(자신의 과거사, 인문학적 지식, 자신의 의견 등)과 너무나도 주관적인 의견들. 물론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주관적이다. 하지만 유시민은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그는 공인으로서 누구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의견을 피력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찌보면 인생에 가장 중대한 질문인 살아감에 대한 논의는 이토록 단순하고 추상적이게 표현한단 말인가?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자신의 감정과 마음으로 이렇다 저렇다라고 했으면 좋을 것을.. 외부의 다양한 자료와 지식을 한대 끌고와 이 책을 무겁게 만들었으면서 어째서 그의 의견에 대한 고찰은 가벼워보이는지.
유시민이 가지는 삶의 철학이 별로다. 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해서는 안된다. 유시민이 이 책에서 자신의 속마음과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 싶었거나, 아니면 그러지 못한 것이라 생각될 뿐이라 이 책에서 그의 표현이 아쉽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억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삶이 유한하다는 것에 무게를 둔다. 영원이라는 것은 없으니 우리는 살아있는 이 순간들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고 한다. 그는 크라잉넛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그는 품격있고 훌륭한 삶을 찾는 사람이다. 훌륭하고 품격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기준을 아주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작성해두었다.
유시민이 에필로그에 저술한 내용은 마치 유서처럼 보일정도로 감성적이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그가.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온 그가 원하는 죽음은 환원과 같았다. 유시민은 자연에게, 사람들에게, 사회에게 두 팔 벌려 남은 모든 것을 보내고 우주의 일부로 돌아가는 모습을 바랬다. 나는 되려 이 책을 통해 젊은 시기의 열정으로 치열한 인생을 살아온 한 개인이 생물학적인 시간이 흘러 죽음을 바라보고 남은 삶과 죽음 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모습을 보았다.
이 책을 많이 깠지만, 나는 유시민의 책을 읽을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이 그가 살면서 집필한 저서 중 스스로도 가장 아쉬워하는 책일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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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채사장> 감상 후기
채사장의 책을 읽었다. 지인의 소개로 처음 알게된 팟캐스트 지대넓얕. 남이 추천하는 것을 크게 게의치 않는 내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가벼운 마음으로 듣기 시작한 이 팟캐스트는 어느새 나의 최고 관심사가 되었다. 그 방송을 운영했고 주체했던 채사장의 책은 항상 나의 손자락에 쥐어졌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제목을 보고 서정적인 이야기를 하려나? 채사장이?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역시 그였다. 그의 이야기는 수필에서 표현하는 감정과 감성의 이야기가 아니며, 그만의 철학을 담은 철학서였다.(물론, 수필 등에도 작가의 철학이 포함되지 않을리 없다.)
철학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누구나 갖고 있는 삶의 형식, 태도, 생각, 견해이다. 채사장의 지대넓얕 팟캐스트와 그가 저술한 여러권의 책을 통해 이미 어느정도 그의 철학을 엿보았던 나는 이번에 저술한 그의 책이 정말 그가 너무나도 하고자했던 이야기라고 느꼈다.
사유를 즐겨하는 사람에게 삶은 단순히 물질과 현상으로 이루어져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질문의 대상이고 모든 것은 정의내림의 대상이다. 또한, 나를 정의하고자 하고, 세상을 정의하고자 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런 면에서 채사장은 내가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방향으로 이 책을 저술하였다.
책을 다 읽고 목차를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그는 확실히 뛰어난 글쓰기 능력을 지닌 것 같다. 교묘하게 그의 철학을 저술한 파트와 일반적 산문 등에서 나타나는 부드러운 정서가 가미된 파트를 적당히 섞어서 아주 잘 구성하였다. 보는 이에게 너무 철학적이어서 거부감을 느끼게 하지도 않고, 일상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과하게 강조하는 감성적 작문방식을 취하고 있지도 않아 책을 읽으며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한다.
채사장이 이 책에서 던지는 많은 이야기들은 나에게 오랜만에 사색의 길을 걷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생각하고, 비판하길 좋아하고, 인간에 관심��� 가지고, 삶에 의미를 쉼없이 찾길 좋아하던 젊은이였다. 어느새 어깨에 무거운 짐들을 잔뜩 얹은채 비틀대며 걸어가는 사회인이 되었고, 항상 들려오던 내면의 언어는 어느샌가 삶에 지쳐 내 마음의 귀를 울리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단순히 가슴에 먹먹한 진동만을 울리고 있었다. 이 책은 다시 내가 바라는 삶의 의미를 찾겠다는 의지를 가볍게 지지해주었다. 현실을 사는 나에게 이상을 쫓으라는 부담을 주지도 않았으며, 과하게 철학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단지 가볍게 다시 예전의 사유하던 나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다시 조금씩 사유해보고자 한다. 바쁜 현실 속에서도 잠깐의 시간을 내어서 내면의 언어를 다시 듣고, 그녀석이 전하고자 하는 가슴을 울리는 먹먹한 진동이 다시 멋진 언어가 되길 기대한다. 그때, 채사장의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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