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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처음 본 미국 드라마 <가십걸Gossipgirl>은 그야말로 내게 문화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늘 완벽히 세팅된 외양, 세련된 교복, 성인들 못지 않은 화려한 사교의 세계로 꾸며진 그 고등학생들의 일대기는 여드름과 만성 수면 부족을 앓으며 학업에 시달려야 하는 한국 인문계 고등학생의 삶이랑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뉴욕이 어퍼사이드와 로어사이드로 나뉜다는 것도 맨해튼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들이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산다는 것도 이 드라마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의 제일 좋은 도시에서도 분류된 지역에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세계적으로 극소수만 누릴 수 있는 삶이었다. 화려하고 반짝이는 이 미지수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보며 나는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정말로 미국의 상류층 고등학생들은 저런 생활을 하는지, 실제의 어퍼이스트사이더들의 삶은 어떠한지 등. 아무리 호기심이 넘쳐도, 그에 따른 실천력이 있다고 한들 핏줄과 경제력 등 많은 요소들로 인해 나는 평생 직접적으로는 겪어 볼 수 없고 접해 볼 수 없는 세상이었다. 다만 이를 다룬 책과 영화들을 보며 간접적으로 느끼고 상상할 뿐.
<가십걸Gossipgirl>을 감상하기 전에도 서구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관련된 문화를 향유하는 것을 좋아하던 내게 <파크애비뉴의 영장류> 또한 내 호기심 한켠을 항상 차지하고 있는 뉴욕이라는 키워드에 불을 켜기에 아주 좋은 책이었다. 특히 본 투 비 로열이 아닌 타 주에서 성장했고 로어사이드에서 거주하던 작가가 양육을 위하여 어퍼사이드 행을 결정하게 되면서 겪은 일화들을 엮은 책이라 타자의 시선으로, 문화연구학자라는 주인공의 직업적 시선으로 가감 없이 흥미롭게 어퍼사이드를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육아란 맨해튼이라는 섬 안의 또 다른 섬이라는 것,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엄마들은 사실 상 별개의 종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일종의 배타적 비밀 집단이었다. 나에게는 너무 생소한 규율, 의식, 제복, 행동 양식의 지배를 받았고 나로서는 꿈에도 존재하는 줄 몰랐던 신념, 야망, 문화적 관습을 따랐다.(19)
문학과 인류학을 공부한 바탕으로 잘 아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소속감 없이 어떤 집단에 속하게 되면 우리 같은 유인원은 길을 잃는다는 것. 문학이나 현실 세계에서 외톨이는 흥미롭고 응원하고 싶은 반영웅일지언정 대개는 비참하다. 사회적 관계망이라는 보호막이나 버팀목을 갖지 못한 그들은 상징적으로, 때로는 문자 그대로 헤매다 죽고 만다.(20)
물론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자리를 잡으려 애쓰는 나를 문자 그대로 죽이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무리에 들어가 인정을 받아야 했고 되도록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애가 달았다.(21)
늘 그러하듯이 특권층은 자신들의 특권을 더럽히는 불순물을 용서할 수 없는 법이다. 난입된 불순분자를 결코 쉽게 끼워 주지 않는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생태는 그야말로 야생이나 다름 없다. 포식자들의 일원이 되기 위한 고군분투에는 목숨을 건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낙오되면 죽는다.
그곳에 있었던 아름답게 입고 꾸민 엄마들이 모두 아이가 울면 덩달아 울어버릴 것처럼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평가의 대상이었고 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안절부절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즐기는 눈치였다. 자신들 고유의 문화자본, 즉 가족을 선별하여 선택하고 어린아이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해 특권 부유층 여성들의 기를 죽이면서 내심 고소해하는 것 같았다.(101)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엄마들에게 자녀는 지위 대신이다. 구성원들 전체가 부의 경제력에만 기대어도 되는 부유층이라 육아에 전념하기 때문이다. 명문에 다니는 자녀들이란 곧 가정으로부터 얼마나 훌륭한 교육과 보살핌을 받았는지에 대한, 즉 훌륭한 엄마의 척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취학 시절부터 불합리한 평가에 오르는 수치를 감내하면서까지 명문의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 한다.
버킨 추종은 단순히 그 주체를 버킨 추종자로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가방에 소수 특권층의 신분증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는 사실을 남성에게, 사회에, 그녀들 자신에게 일깨우는 하나의 현상.”이다. 대단히 귀하고 비싼 물건을 힘들여 구함으로써 자신의 희소가치를 되찾고 그것을 자신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에게 알리려는 것이다.(153)
명문에 다니는 자녀가 명예라면 명품은 부일 것이다. 모두가 부유층인 세상이라 부의 과시는 더욱 더 치열하다. 우아한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더욱 더 희소한 상품을, 누구보다 빨리 최신의 상품을 구해 전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물 아래에서 치열하게 물장구치는 백조 같다.
수컷 곤봉날개마나킨을 제외하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류의 날개 뼈는 속이 비어 있다. 그러나 수컷 곤봉날개마나킨의 날개 뼈는 단단하게 속이 꽉 찼으면 독특하게 휘어 있고 납작하다. 이처럼 목청보다 날개로 내는 소리에 더 이끌리는 암컷의 취향은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 “번식 적합성을 저하시킴에도 불구하고 미적 특성이 진화한 거예요.”라며 프럼은 혀를 내둘렀다.(223)
밥벌이를 하면 힘이 생긴다. 내키는 대로 동반자 관계를 벗어나고, 애인을 취하고, 자유롭게 드나들고,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칼라하리 사막과 동남아 우림지에서처럼,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도 자원이 관계의 핵심이다. 덩이뿌리와 샤뿌리를 캐오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하면, 결혼생활의 약자가 된다. 세상의 약자가 된다. 무조건.(239)
하지만 이 타자의 시선에서는 자칫 우스울 수 있는 생태의 속을 들여다 보았을 때 같은 여자로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녀들이 이토록 겉치장에 매달리는 이유는 힘을 잃어서이다.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엄마들은 대부분 아이비 리그를 졸업한 우수한 인재이며 원하는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기도 했지만 결국 육아를 위해 자신을 포기한다. 남편의 돈에 기대어 산다는 불안에 자신을 가꾸고 자식을 완벽하게 기르지 않으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프란스 드 발은 모든 포유류 특히 영장류가 ‘서로의 감정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어려운 처지에 반응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침팬지가 속상해하는 동족을 포옹과 입맞춤으로 위로한다고 밝힌 관찰 기록이 수천 건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한다.(348)
책장을 덮고 나면 이 생태가 무시무시한 정글이 아니라 서글픈 집단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적이라는 가정을 벗을 수 없는 얄팍한 관계에도 같이 살아�� 수밖에 없는 여자들. 그럼에도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를 힘으로 삼을 수 있는 여자들. 화려하고 반짝이는 이면 속 여자들이 그 연대나마 위로로 삼으며 잘 살아가기를 비는 수밖에. 우리는 모두 다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기 때문에 함부로 상대방의 삶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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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대에게
페이퍼소셜클럽: 시작하고 끝내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늘 그랬다.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은 언제나 사랑에서 기인했다. 책 속의 인물을 미친듯이 사랑해서 마지막으로 넘긴 책장이 끝이 아니기를 바라며, 영화 속 인물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그의 미래에 대한 글을 썼다.
내 글에는 많은 함정이 있다. 하지만이라는 접속사는 붙이지 않기로 한다. 스스로 만든 덫이다.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 대상을 내가 바라는 그대로 써내려 가지 못하면 아득한 망연에 빠졌다. 내가 사랑하는 너를 어떻게 이토록 감히. 반짝반짝 빛나는 그 애를 도리어 내가 퇴색시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져 좀처럼 잇지 못하고 그만 둔 문장들이 많았다. 또 어떤 날에는 아주 사소하게 식어 버려서 이러한 자기 만족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되려 빛난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들은 오롯이 내가 구상해낸 정제이며 실제의 그 애가 아름다운 건 내 눈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그런 순간이 오면 무소용 속에 그대로 모든 걸 방기하고 싶어졌다. 맞다. 내 글의 함정은 이거다. 얄팍한 내 마음의 추에 따라 이야기들이 쉽게 어그러진다는 것.
대부분의 거장들은 말한다. 글을 완성하는 경험이야말로 작가로서의 생을 지속하는 데에 있어서 최고의 효용이라고.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작가는 아마추어일 뿐이라고. 프로의 세계에 뛰어들 일은 없겠지만 글을 포함한 대부분의 일은 시작만큼 끝이 중요하고 무언가를 하나 끝맺는 경험은 정신적으로 매우 건강한 밑거름이라는 걸 안다. 맺음을 위하여 우리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 시작한 일의 과정을 의심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끝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걱정하는 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계속 한다면 그냥 글 하나가 완성되는 것, 그것뿐이다.
내 글이 완성이 목적이라면 이 믿음을 따르고 싶다. 이러한 경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위하여 페이퍼소셜클럽을 시작했고 이 사소한 완성들로 긍정의 경험을 늘리는 것이 이 모임의 취지이자 이 주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이 글을 쓰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내 글은 결코 소설일 수가 없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살아 있는 그 애를 그리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글이 미완으로 남으면 좀 어떤가. 부치지 못한 연서는 그대로도 가치 있다. 이 수신인 없는 글 속에 담긴 마음은 진심이었기 때문에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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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끝나고 있어요. 이 메시지는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천 년 후 미래의 세대로부터 거슬러 전달된 거예요. 세계가 끝나고 있고 우리는 종말을 막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박사님께 달려 있어요.”
보아하니 의미의 앞뒤를 맞춰 내 입술을 통과할 의향이 있는 유일한 언어는 태국어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조합해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왜?’였다. 왜, 세계가 끝나느냐는 말이 아니라,라고 서둘러 덧붙여 말해야 했다. 왜 그게 중요하지? (10)
모든 인간은 선형적이며 한정적인 삶을 산다. 끝은 반드시 죽음이며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살아있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그 미지에 대하여 무수한 상상을 해 왔다. 죽음에서 돌아온다는 것. 시간을 거스른다는 개념도 이의 파생이자 많은 창작물들을 부산해낸 흥미로운 소재이다. 흔히 타임 루프를 다룬 작품들은 대개 이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이야기가 비롯된다. 많은 주인공들이 그들의 인생에서의, 어쩌면 인류의 운명을 바꾸는 비극을 고치기 위해 수도 없이 목숨을 내던지고 그 반복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통들을 독자 혹은 시청자들에게 낱낱이 전시함으로써 마침내 이륙한 온점 뒤의 카타르시스로 승화시킨다.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의 주인공 해리 오거스트도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다시피 타임 루프 속에 갇힌 삶을 사는 남자이다. 그 또한 삶을 되풀이하면서 인간사에 일어난 모든 비극들을 낱낱이 목도했으며 결국 세계의 멸망에 관여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하지만 작품은 해리와 동류의 사람들ㅡ칼라차크라ㅡ이 만든 비밀 클럽, 크로노스 클럽을 통해 앎이 운명을 바꿀 권리가 될 수 없다는 개념을 삽입하고 칼라차크라들은 서로를 통제한다. 해리 오거스트 전의 칼라차크라들이 역사에 개입함으로써 일어난 또 다른 비극들, 달라진 미래의 나비효과에 대한 위험을 이미 아는 것이다. 선대로부터 후대로, 후대로부터 선대로 서로의 중첩되는 시대를 통해 칼라차크라들은 가장 끝에 있는 후대의 역사까지 알 수는 있지만 이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역사는 칼라차크라 개인의 생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실제로 해리 오거스트 또한 칼라차크라로서의 삶에 익숙해졌을 때는 되풀이되는 자신의 생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 많은 생들을 살아간다. 다음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번의 전쟁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이후에 올 새로운 삶을 위해 다방면에 걸친 분야의 전문직들을 종사하는 등 오롯이 개인을 위해서 한 생들을 살아가는 과정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번 생에서 일어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그 사건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에서는 그 사건에 대한 개입을 포기하는 초연적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 칼라차크라들에게 이 세계가 멸망하고 있어요라는 계시가 온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계시는 오롯이 한 줄이며 칼라차크라들은 후대에서 오는 정보들을 모으지만 멸망의 원인은 알 수 없다. 계시에 대한 개입이 옳은지조차 아직 알 수 없으며 그 개입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칼라차크라, 해리 오거스트는 그저 또 살아가야 한다. 몇 번의 삶을 살아가면서 생기는 아주 작은 변수들의 캐치, 반복되는 삶이지만 그 작은 변주를 쌓아 아주 조금씩 단서에 접근하게 되는 이 방식이 흥미로울 독자는 비단 나뿐이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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