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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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
인류의 기원 - 윤신영, 이상희 (사이언스북스)
일반인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고인류학 입문서이다.
인간으로의 진화의 출발점은 직립보행이다.
직립 보행은 아이의 출산을 다른 포유류와는 다르게 사회적 과정으로 만들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 과정을 함께해 온 그들은 대개는 여자의 어머니이거나, 여자 형제이거나, 다 큰 딸이거나, 또는 같은 집단에 사는 경험이 많은 여자였습니다. 그들은 진통 과정을 함께하고 마지막에 아기를 효율적으로 밀어낼 수 있도록 가르쳐 주며, 아기가 태어날 때 목이 꺾이지 않도록 잘 받아서 엄마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와 시간을 함께 보내느라 엄마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이런저런 마무리를 대신 해 줍니다. 아기가 나온 지 얼마 후 뒤따라 나오는 태반도 받아 내야 하죠. 누군가 다른 사람의 도움이 개입돼야 하다니,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적인 동물인 셈입니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류는 생조을 위해서 육식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두뇌 용량이 증가하고 도구를 제작하게 된다.
인류는 이렇게, 점점 넓어지는 초원이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연명하기 위해 사체 찌꺼기에 손을 댔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름진(고지방) 식품 섭취에 힘입어 초기 인류의 두뇌가 점점 커진 것입니다. 두뇌는 빗대서 말하자면 제작비와 유지비가 많이 필요한 기관입니다. 그에 걸맞는 영양 섭취가 필수인데,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육식이 그 과정을 도운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확보한 고지방 고단백 식습관은 몸집도 키웠습니다. 초기 인류는 400만~500만 년 전 두뇌 크기가 현생 침팬지와 비슷한 400~500시시(cc) 정도였습니다. 200만~300만 년 뒤 호모 하빌리스 때는 750시시로 커졌습니다. 하지만 몸집은 여전히 100센티미터 전후로 작았습니다. 200만 년 전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는 두뇌가 1000시시까지 커졌고 몸집 역시 170센티미터 정도까지 자랐습니다. 몸집도 크고, 두뇌도 큰 인류 조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인류는 이렇게 큰 두뇌와 큰 몸집을 갖추고서야 비로소 살아 있는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약 258만~1만 2000년 전) 기간에 아프리카는 건조해졌습니다. 숲이 점점 줄어들고 초지가 늘어났습니다. 식물성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서는 점점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인류의 조상에게 무척 불리했습니다. 그나마 남은 숲 지대에는 몸집은 현생 고릴라의 4분의 1 정도지만 이빨이 고릴라 못지않게 크고 강한 파란트로푸스(Paranthropus, 강한 턱과 이빨이 특징적인 초기 인류 친척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일종으로 분류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가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파란트로푸스는 나무껍질, 식물 뿌리 등을 먹을 수 있었기에 생존에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초기 호모속(Early Homo)의 이빨로는 이런 먹을거리는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초기 호모속의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서 동물성 지방, 즉 고기를 먹어야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고기를 구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초기 인류의 어른 키는 100센티미터 정도로, 오늘날의 네다섯 살짜리 인간 아이와 맞먹었습니다. 사냥은 언감생심이었죠. 살아 있는 동물을 잡기가 어려우면 죽어 있는 동물을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사자는 막 죽인 사냥감의 내장을 배불리 먹고 나면 소화시키기 위해서 한숨 자러 갑니다. 사냥감은 내장만 제외하고는 나머지 고깃살이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그걸 노리면 되겠죠.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 사자가 물러가고 나면 이번에는 독수리 떼나 하이에나 떼가 몰려듭니다. 독수리 한 마리는 선 키가 100센티미터 정도로, 초기 인류와 비슷한 크기입니다. 두 날개를 쭉 편 길이는 180센티미터가 넘습니다. 게다가 항상 떼 지어 몰려다닙니다. 절대로 연약한 인류가 만만히 고기를 빼앗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류는 동물성 지방을 얻는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방법이랄 것도 없습니다. 사자부터 독수리, 하이에나까지 모든 경쟁자들이 내장과 고기를 다 발라 먹고 버리고 간 찌꺼기를 먹는 거니까요. 바로 뼈입니다. 뼈는 무시할 게 아닙니다. 팔다리의 뼈 속에는 골수가 있고 머리뼈 속에는 뇌가 있습니다. 골수와 뇌는 모두 순수한 지방 덩어리로 영양이 풍부한데, 이를 노리는 경쟁자는 벌레와 박테리아 정도입니다. 초기 인류가 아무리 약했다 해도, 이 정도는 물리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뼈 안의 영양분을 취하는 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뼈는 매우 단단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팔다리뼈는 먼 훗날 무기로도 사용할 정도로 굵고 단단합니다. 이빨로는 이런 뼈를 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기 인류는 돌로 뼈를 깨서 골수를 빼 먹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뼈 깨는 돌은 점점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춘 ‘석기’가 되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된 인류는 예술과 문화를 만들어낸다. 세대를 어어서 정보가 잘 전달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다른 동물과는 다르고 노인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동물과는 다른 이타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가 된다.
우리 현생 인류가 주인공인 시대인 후기 구석기 문화는 이전까지의 인류 문화와 혁명적으로 다릅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암각화 등의 예술과 상징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노년층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단순히 우연일까요? 저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예술과 상징은 추상적 사고와 연결됩니다. 또 정보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실제적인 기능도 있지요. 예술과 상징이 늘어났다는 건 이 시기에 그만큼 정보의 전달이 중요해졌다는 뜻입니다. 노년은 바로 이렇게 정보가 늘어난 시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손주를 볼 때까지 살면 세 세대가 같은 시대를 공유하게 됩니다. 두 세대가 같은 시대를 사는 것에 비해 오랜 기간 정보를 모으고 전달할 수 있지요. 만약 두 세대가 50년 정도를 공유한다면, 세 세대는 75년 동안 일어난 정보를 공유할 것입니다. 이렇게 노년은 정보의 생산과 전달, 공유가 늘어나게 된 실질적인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예술과 상징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류는 어떻게 해서 서로 돕게 됐을까요? 생판 모르는 남에게 이타성을 발휘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작고 약하다는 점, 그것이 이유였을지 모릅니다. 인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강해지는 대신 유연하게 적응하는 전략을 택해야 했습니다. 빙하기가 꼭 춥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변덕스럽게도 조금 따뜻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건조하거나, 반대로 비가 계속 쏟아지는 때도 있었습니다. 기후가 변하면 거기에 맞춰 동식물상과 환경이 변했습니다. 지형도 바뀌었습니다. 바닷물의 높낮이가 달라져 섬이 육지가 되고 바다가 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극적으로 달라지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유연한 전략을 택했습니다. 먼저 급변하는 환경을 잘 살피는 법을 배웠습니다.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면 그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내 기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환경이 늘 전에 없이 새롭게 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변하다 보면 과거와 비슷한 환경을 다시 맞을 때가 있지요. 인류는 바로 그럴 때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활용해 대처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혜는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정보가 원천이라는 사실도요. 인류는 이렇게 해서 정보력(문화)에 의존해 살아남는 전략을 진화시켰습니다. 이런 정보력의 보고는 노인입니다. 쌓아 온 시간만큼 정보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인의 정보력을 전수 받고 활용하는 방법으로, 이제 인류는 다른 어떤 유인원도 가 보지 못한 곳까지 적응해 살고 있습니다. 아마 인류는 처음에는 이런 정보력의 원천으로서 노인을 존중하고 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좀 더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새로운 모습을 보이게 됐습니다. 다른 동물은 지니지 못한 능력, 바로 보편적인 협력과 이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남을 위해 자기를 포기할 줄 아는 능력, 생판 모르는 남과도 콩 한 쪽을 나눠 먹고, 남을 위해 자신을 낮추거나 희생하는 능력, 제 힘으로 살 수 없는 이웃과 부족한 힘이나마 나누는 능력,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에 함께 참여할 기회를 나누는 능력입니다. 인류는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한 이 능력을 바탕으로, 오늘도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현하고 있습니다.
즉, 인류의 문화와 문명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인류는 두 발 걷기 덕분에 다른 ‘인간다움’의 특성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바로 문화입니다. 두 발 걷기는 손과 팔을 보행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자유로워진 손과 팔은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데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윗몸도 함께 보행에서 해방됐습니다. 그 결과 횡격막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숨쉬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고,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낼 수 있게 됐습니다. 목소리는 언어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도구와 언어라는, 인류 문화와 문명의 토대가 완성되었습니다. 두뇌가 커진 것도 역시 걷기 덕분입니다.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려면 뛰어난 지능이 필요합니다. 언어를 사용할 만큼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려고 해도 지능이 필요하고, 이는 곧 큰 두뇌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두뇌는 그냥 커질 수 없습니다. 두뇌는 지방으로 이뤄진 기관입니다. 고지방, 고단백의 식생활이 필수입니다. 이런 식생활은 도구를 이용해 고기를 정기적으로 확보하고 섭취한 이후에야 가능했습니다. 모든 게 두 발로 걸은 이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뤄진 일입니다. 두 발로 걸으면서 인류는 문화와 문명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요통과 심장병, 그리고 출산의 위험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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