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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vvvelocity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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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
길을 잃는 방식은 하나같이 갑작스럽지. 길은 비 내리는 밤 누울 수 없는 곳, 네 얼굴 보면서 가만히 멈출 수 없는 곳. 길치, 길치, 간판을 봐도 여기 어딘지 모르겠어요. 내 기억에 달린 발, 그마저도 꼬이는데요. 그래,
길치는 발걸음도 헷갈려서 경적 소리를 내곤 하지
빵빵, 나와 같이 걸어갈래요 나와 같이 길을 잃겠어요
파리가 달려드는 녹은 초콜릿처럼 신발 바닥 비추는 거울 조각처럼
오늘은 내가 먼저 길 잃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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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vvvelocity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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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한 가득 토마토 나 혼자 먹기엔 넘쳐 냉장은 지연된 기대 포장은 보고싶단 뜻이고 토마토는 ��에서 이슬 맺히고 내 봉투는 바보처럼 길쭉해서 하나 씩 넣어야 하네 그리고 몇 개의 토마토 너에게 쏟아질 때 구르는 소리 주름이 ��겨도 여전히 내 마음 붙들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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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vvvelocity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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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식물
나의 식물은 햇빛을 받으려고 옆을 향해 자라고 있다
세상이 잠깐 기울어도 무너지지 않아
물 몇 방울 마른 잎을 따라서
아래로 더 아래로
묻히고 덮고 햇빛은 마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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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vvvelocity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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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ng Forward
앞으로 걷기 위해서는 한 발이 지탱하고 한 발을 내딛어야 한다. 맨홀을 밟을 때면, 미국 만화처럼 쏙 빠지는 세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은 전면과 후면이 분리되기에, 앞으로 걷기는 무탈하게 걷기에 가깝다.
삶과 걸음의 유비는 따분하다. 옆 길로도 가보고 주위 풍경도 둘러보라는 말이 그렇다. 우리는 이미 자신의 골반만큼 비틀어진 채 걷고 있을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무탈함은 전방경사나 후방경사 따위의 경향이 된다.
실없음은 경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걸음을 가볍게 떼어내는 방식이다. 다리와 발, 흔들리는 신체가 무거운 자신의 몸과 딱딱한 땅에 붙어있지 않다는 듯이 여기는 태도다. 실없음은 경향에 교정을 가하지 않고, 장애물과 벽이 가하는 교정을 회피한다. 미국 만화 속 토끼 인물은 그래서 떨어져도 멀쩡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센서의 감지 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멍청해 보이고도 연속적으로 발을 옮기기, 장롱을 향해 발을 박차고 침대 밑으로 들어가기, 위협하듯 잠입하는 전기차의 소리를 따라내기, ...
여자친구와 '만약에' 대화를 하면서 말도 안되는 상상을 교환하고 의견 내기, 완전히 공적이지도 사적이지도 않은 모임에서 서로의 약점으로 약하게 놀리기, ...
실없음은 무딘 창과 무른 방패의 대결이다. 앞으로 나아감은 무디고도 무른 발이 이루어낸다. 그러면 우리 몸에서 가장 무른 혀는 말을 내뱉는다. "일단 기분 좋으니까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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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vvvelocity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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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두며
인문대생은 졸업을 앞두고, 질문 하나를 마주한다. '무엇을 배웠는가?'하는 물음은 인문학에 대한 의문으로도 들린다. 하지만 쓸모 없음의 쓸모(학문으로서의 인문학에게 가장 치욕이다), 위기에 빠진 시대의 해결책(하지만 자신의 해진 구두도 꿰매지 못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 따위를 두고 배운 적은 없다.
나는 심장 소리를 듣는 법을 배웠다. 나의 심장 소리를 듣고, 당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 법을 배웠다. 자신의 심장은 조용한 방 안에서야 들리고, 타인의 심장은 가장 가까울 때만 들을 수 있다. 이건 고독과 연대 따위의 수사가 아니다. 오히려 삶을 향한 테크닉에 가깝다.
카프카는 책이나 문학이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와 같다고 말했는데, 나는 도끼를 꽉 쥔 손까지 울리는 심장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손가락이 움츠러들며 손잡이를 쥘 때까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심장 소리에 맞춰 북을 치듯 끄덕거릴 뿐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지 마라. 이 두 말 사이의 침묵은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심장 소리는 홀로 들리지 않는다. 북 소리가 한니발의 원정에서, 실험대의 차가운 금속 소리가 메리 셸리에게서, 시끄러운 강의실 소리가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폭포 소리와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붓 글씨 속에서 함께 들린다.
심장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들에게는 인문학을 배울 필요가 없다. 생존 전략이 필요한 출판사 편집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게다가 외로움이나 불안, 고독과 연대 따위는 인문학의 조건이나 특성 따위가 아니라 학문의 특성이다.
대신 심장은 여리게, 주기적으로, 튀어 나가듯이, 불규칙하게 뛴다. 그러다 멈추겠지. 그래도 심장은 뛰고 있다. 판단 강요와 판단 유보 속에서도 심장은 뛰어야 한다. 나는 사람들이 어쨌든 심장이 뛴다고 믿고, 그 소리에 가까이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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