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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uthering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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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utheringground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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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
"사람을 믿지마. 상황을 믿어야지."
- <불한당> 중, 재호가 현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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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실수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실수의 근본을 깨닫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도원결의라 생각했던 만남이 단순한 이합집산에 불과했음을, 수어지교라 여겼던 교제가 단순히 오월동주와 다름 아님을 깨닫는 순간은 언제나 비참하다.
인간은 관성의 동물이고, 확증편향의 노예다.
갓 태어난 강아지가 처음 본 생명체를 어미라 여기고 계속 그 관계를 신뢰하듯, 한 번 마음 속에 걸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은 믿음은, 내가 처음부터 형체와 본질을 잘 못 파악했을 가능성을 애써 부인하고는 한다.
스스로 만들어 낸 추동력 속에 깊이 빠져버리면, 처음 믿은 명제와 어긋나는 반례가 거듭되어도 그 증거들을 계속해서 부인하고자 한다. 누적된 증거가 마침내 특정 임계를 넘을 때 시쳇말로 '현타'라 부르는 순간이 임재한다. 그리고 읊조린다.
"또냐."
왜 같은 실수는 반복되고,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일까.
세상에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낳고 길러주신 내 어머니와 형제보다 진한 정을 나누며 함께 자란 고향 친구밖에 없다는 잔인한 진실을, 결국은 마주하고 견지해야 하느냐는 말이다.
누구도 원망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은 내 선택이고 내 믿음이었을 뿐이니까.
그래, 백설이 만건곤 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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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utheringground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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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판타지, 그리고 세상의 마지막 밤
일본의 게임 명가 스퀘어에닉스(설마 스퀘어와 에닉스가 합병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 그땐 상상조차 못했지)의 arguably world best 롤플레잉 게임 파이널판타지를 즐겨 플레이하던 시절이 있었다. 파이널판타지는 시리즈물이지만 엄격히 이야기하자면 시리즈별로 스토리가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아, 그래 이게 파판이지”라고 할 만한 공통된 요소들은 시리즈마다 꼭 등장시켜서 시리즈 전체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대지를 달리는 초코보, 창공을 가르는 비공정이 대표적일 것이다.  작품 내에서 사용되는 아이템들에도 일관성이 있었다. 체력 회복제의 이름은 언제나 ‘포션’이었고, 전투 불능 상태 동료를 회복시키는 아이템은 ‘피닉스’였다.
하지만 아이템 중의 아이템, 아이템의 왕, 궁극의 아이템은 언제나 ‘엘릭서(elixir)’였다. 엘릭서는 동료의 체력(HP)을 완전히 회복시키고 모든 상태 이상을 치료하는, 말 그대로 궁극의 기능을 가진 아이템이다. 특히 엘릭서의 상위호환 버전인 ‘라스트 엘릭서’는 한 명의 동료가 아닌 전원의 체력 완전 회복과 상태 이상 치료라는, 전세를 한번에 역전시킬 만한 위력을 가진 아이템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아이템의 효력이 강력한 만큼 엘릭서나 라스트 엘릭서는 얻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한 작품을 통틀어 10개 미만으로밖에 구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력한 아이템인만큼 아무 전투에서나 쓰지 않는 것은 일견 당연했다. 그래서 나는 아낄 수 있을 때까지 항상 엘릭서를 아꼈다. 꽤나 힘든 중간보스전에서도 엘릭서를 쓴 경우는 거의 - 아니 전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건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할 때 써야하는 궁극의 아이템이니까.”
그렇게 엘릭서를 아끼고 아끼면서 플레이 하다 보면 어느새 최종 보스(a.k.a. “끝판 대장”) 전을 앞두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했다. 이미 오를대로 오른 레벨, 풍성히 갖춘 궁극의 무기와 방어구들 덕에 최종 보스 전은 거의 대부분 허망할 정도로 쉬웠다. 
그렇다. 나는 최종 보스전에서도 라스트 엘릭서는 커녕 엘릭서조차 써 본 기억이 없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할 때’를 위해 꽁꽁 싸매둔 엘릭서를 써 보지도 못하고 날린 셈이다. 
나는 요즘 이상하리만큼 쓰지 않은 엘릭서를 자주 회상한다. 
우리네 인생 여정 - 특히 언론과 세상이 친절하게 알려주는 행복한 인생 여정은 ‘노후 준비’라는 한 단어로 축약되고는 한다. 은퇴 이후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10대 때는 공부하고, 20대 때는 취업 준비를 하며, 30대 때는 커리어를 쌓고 저축을 한다. 그것이 40, 50, 60대까지 이어져 드디어 은퇴라는 것을 하면, 그 때까지 축적해 둔 ‘준비’의 과실들을 누리며 성큼 다가온 죽음을 기다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작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하루하루의 노동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김훈 작가의 말을 인정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누리지 못한다면 겨우 늙고 병들고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예쁘지도 않고 명철하지도 못할 것이 분명할) 노년의 생을 위한 준비만을 성실히 수행하며 젊음을 다 소진해 버린다면, 노년에 돈이 있다 한들, 집이 있다 한들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언젠가 찾아올 세상의 마지막 밤에, 내 손에는 엘릭서가 하나도 없어야만 비로소 생을 충만히 살아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엘릭서는 사전적 정의로도 만병통치와 불로장생의 효력이 있다는 묘약이다. 그런 엘릭서를 손에 넣고서도 채 써 보지도 못한 채 고이 접어 옷장에 넣어두어서는 안 된다, 라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그 소중한 엘릭서를, 엘릭서보다 몇 만배는 더 소중한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바로 지금 현명하게 사용해야 겠다고 자신을 향해 끄덕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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