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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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과 된장을
꼭 찍어 먹어 봐야지만 아냐는 걱정 섞인 말을 수차례 듣고도 끝까지 보고 나서야 믿는 내 고집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나는 계속해서 캄캄한 불안 속으로 다이빙 중이다.
말리지도 않으며 그저 뒤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
자신의 걱정을 온전히 스스로 감싸 안고 나의 자유를 응원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역겹고 더러운 맛을 온전히 음미했다.
나는 빚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었고, 되는대로 갚기도 하며 자유를 누린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감사 속에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음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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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
Borabora_sugar: 제가 벌써 15주년이 되었네요🙏🏼 지금까지 항상 응원해주고 기다려주는 우리 팬들 너무 감사하고 우리 팬들도 함께 축하해요🎉 우리가 같이 만들어온 15년이라고 생각해요 🫶🏼 차근차근하게 더 잘해나아가는 모습 보여주도록 할게요 고맙고 사랑합니다💜💜💜
Wow it is already our 15 year anniversary🫢 Thankyou for always supporting us through everything I want to celebrate it together with my fans because we have made this together 🤩🫶🏼 Thankyou for everything once again We love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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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年 1月 6日 星期一
밤을 새고 새벽 네시 반에 공항버스 첫차를 탔다. 피곤하지만 잠을 잘 수는 없는 흥분된 상태였다. 더 빠르게 공항에 갈 수는 없었지만 체크인과 환전과 출국 과정을 거치니 탑승 시간이 되어버렸다. 배가 고파서 S가 사서 나눠준 샌드위치 한 쪽을 입에 욱여넣고 J가 마시던 아이스 커피를 한 입 뺏어물어 겨우 목 뒤로 넘기며 탑승을 완료했다. 맨 뒷좌석에 앉게 되어서 뒤쪽 승무원이 바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참사때문에 뒤쪽 좌석이 생존율이 높다고 했었지 하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비행기에서도 자지는 못하고 챙겨온 셰쟈신謝嘉心의 <아버지의 용접 인생我的黑手父親>을 읽었다. 책의 도입부에서 기름때 묻은 검은 손을 씻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자식에게 공부 안 하면 자기 같은 일 한다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는 모습 같은 것들이 자꾸 어릴 때 보았던 내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참기위해 입술을 꽉 물었다.
책을 반 정도 읽었고 나리타에 도착했다. 얼마 전 일 때문에 착륙할 때 조금 긴장되었지만 다행히 순조로운 착륙이었다. 가족 단체카톡방에 비행기를 탄다는 말을 올려야 할까, 해외여행을 간 줄도 몰랐는데 사고가 나게 되면 더 황당스럽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조금 했지만 결국 카톡방에 말하지는 않았다. 도쿄의 공기는 맑고 차가웠지만 서울보다는 따뜻했다. 핸드폰으로 하는 입국심사 질문란에 전과가 있느냐 하는 항목이 있었다. 얼마 전 일본 입국을 금지 당했다는 전장연 박경석 대표가 떠올랐다. 나도 곧 전과가 생기면 다시 못 오려나, 그냥 없다고 거짓말로 체크하면 입국은 할 수 있으려나, 같은 생각을 했다.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까지 무정차로 날라주는 스카이라이너의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다. 승차권을 발권하고, 개찰구를 통과하고, 탑승해야 할 플랫폼이 어딘지 찾고, 일반열차로 환승하고, 모든 것들이 어수선하고 버거웠지만 다행히 잘못되지는 않았다. 한국어 안내가 꽤나 친절해서 도움이 되었다. 이동하는 내내 모든 것이 이상했다. 사람들이 일본인처럼 생긴 것도 이상했고, 사람들의 입에서 진짜 미디어로만 듣던 일본어가 나오는 것도 이상했고, 차들이 왼쪽으로 다니는 것도 이상했고, 건물들의 모양도 너무 일본 건물 같아서 이상했다. 진짜 일본에 온 거다. 12시가 다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예약했던 에어비앤비는 생각보다 좋았고, 숙박업소가 아니라 정말 일본 가정집을 체험하는 느낌이 들었다. 니혼즈츠미 니초메日本堤2丁目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동네가 무척 조용하고 길에 사람과 차가 많지 않아서 신기했다. 내가 묵을 방에 창밖 풍경이 가장 예쁘다고 다른 두 명이 질투했다.


숙소에 도착만 했을 뿐인데 이른 비행시간과 촉박했던 출국 수속과정 때문인지 다들 지쳐있었다. 편의점에서 니꾸망을 사먹고 잠깐 쉬었다가 J가 찾아두었던 작은 경양식집에 갔다. 지긋한 나이의 사장님 내외가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아주 오래된 가게 같았다. 너무나 일본스러웠다. 주로 홀을 보는 아드님은 웃는 상의 두툼한 일본 곰이어서 게이들이 참 좋아할 것 같았다. 매일 런치 메뉴가 바뀌는 가게였다. J는 오므라이스와 클램차우더가 나오는 런치 A를, S는 치킨카츠와 야채볶음과 베이컨 에그가 나오는 런치 B를 주문했다. 나는 A를 주문하려다 벽을 가득 메운 메뉴 소개에 홀려 비싼 함박을 주문했다. 바쁜 점심시간에 런치메뉴를 시키지 않은 죄로 J와 S가 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가 되어서야 함박이 나왔다. 아마 J의 오므라이스가 서빙되기 직전이 되어서야 사장님 아드님이 함박 고깃덩어리를 양손 사이에서 던져가며 치대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일행과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 맞지 않아 분위기가 애매해졌지만, 가게의 공기와 함박의 맛으로 모두 용서가 됐다. 고기 알갱이가 두꺼웠고 질감이 투박했고 데미글라스는 와인의 시큼한 향이 도드라지는 깊은 맛이었다. 가게의 세월이 느껴지는 맛,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렇게 밖에 표현할 방법을 못 찾겠다. 한국에서 이런 맛을 내는 가게를 찾는 건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비가 많이 오기 시작했다. 아사쿠사까지 20분을 걸어갔다. 걷는 게 힘들 만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가는 길에 오른발에 한번, 왼발에 한번, 두번이나 쥐가 났다. 비오는데 길을 가다가 우산을 들고 멈춰서서 다리 스트레칭을 하는 우스운 장면이 만들어졌다. S와 J는 내가 길에서 스트레칭하는 웃긴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고, 내가 너무 환하게 웃고 있어서 그냥 쥐가 난 괴로움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냥 갑자기 즐겁게 길 한가운데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처럼 나왔다며 아쉬워했다. S가 알아둔 아사쿠사의 유명한 말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센소지를 구경했다. 새해가 와서 그런 건지 월요일 오후였는데도 사람이 엄청 많았다. 주변의 일본인이 하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서 50엔 동전 한 개를 던져넣고 소원을 빠르게 빌었다. 건강, 송사, 졸업, 미래 같은 것들을 민첩하게 생각했다. 약수터처럼 물이 흘러나오는 샘과 작은 바가지가 있었는데, 안내에 따르면 오른손으로 바가지를 들어 물을 떠서 왼손을 먼저 씻고, 그다음 오른손도 씻고, 다시 왼손으로 물을 떠서 한 모금을 마시면 된다고 했다. 그림과 일본어로 설명되어 있는 안내를 읽으며 겨우 따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걸 하면 뭐가 좋은 건지는 안 읽고 따라하기만 했다. 뭔가 좋아지긴 하겠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100엔을 넣고 나무 막대기를 뽑아 운을 시험하는 것도 해보았다. 나는 길吉, J는 말길末吉, S는 흉凶이 나왔다. 나는 작년 한 해는 좋은 것이 많았던 만큼 나쁜 것도 많았던 해여서, 나쁜 것이 씻겨 나갈 것이라는 말이 기분이 좋았다. J는 점괘를 읽는데 나쁘지만 좋아질 것이다, 별로지만 견디면 괜찮아진다 같은 말들만 쓰여 있다며, 이게 무슨 길이냐며 깔깔 웃었다. S는 센소지가 나의 기분을 나쁘게 한다며 읽지도 않고 점괘를 쇠꼬챙이에 묶어버렸다. 흉한 점괘들은 이렇게 쇠꼬챙이에 모아 태워버린다고 했다. 어쨌든 흉한 것들은 불에 타버릴테니 괜찮아질 거라고 웃으며 위로했다.


센소지를 나와서 숙소에서 즉석으로 찾은 일본 전통 디저트집을 갔다. 나는 안즈미츠마메라는 걸 시켰는데, 흑당 시럽, 한천, 팥콩, 살구가 함께 나와서 정말 맛있었다. 내 것은 앙금이 없었고 다른 친구들이 시킨 것들은 앙금이 있었는데, 둘 다 맛은 있지만 앙금이 너무 달아서 많이 먹을 수는 없는 맛이라고 했다. J는 속이 니글니글해졌다며, 빨리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저녁은 아사쿠사바시에서 여행 전에 미리 말했던 징기스칸을 먹으러 갔다. 아사쿠사바시역 출구를 나오자 커다란 은행나무가 아직 노란 은행잎에 가득 붙어있는 채로 우리를 맞이했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가는 사이로 비에 젖은 은행잎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도쿄의 1월은 은행잎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예뻤다. 징기스칸은 고기가 불판에 자꾸 달라붙어서 굽기 쉽지 않았지만 양고기가 정말 맛있었다. 특히 어깨살이라고 적혀있던 부위가 참 도톰하고 맛있었다. 나와 J는 하이볼 60분 무제한으로 알딸딸하게 취했다. 5인분에 곁가지를 여럿 추가해서 먹었는데 팔천 엔도 나오지 않아서 뿌듯했다. 가게의 프론트맨(S가 그렇게 지칭함)이 참 자그맣고 귀여운 인상의 일본 청년이었다. S는 그 청년의 허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팔로 안기 좋아보인다고 했다. 나갈 때 프론트맨이 다른 테이블의 내역으로 계산을 잘못 하는 바람에 그의 앞에 오래 서 있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고 양고기 냄새를 풀풀 풍기는 채로 지하철을 ��고 스카이트리로 이동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본 도쿄 사람들은 옷이 모조리 새카맸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타는 사람들이 내리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기다려주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J의 목표는 스카이트리에 있는 포켓몬 센터였다. J는 흥분된 상태로 쇼핑을 마쳤고, 이후 전망대를 올라가보려 했지만 비가 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앞 로손에서 맥주와 먹을거리를 사천 엔을 넘게 가득 사 왔다. 편의점에 먹고싶은 음식이 너무 많았다. 나는 맥주 한 캔과 함께 욕심을 부려 시오야끼소바, 돈지루, 톳 두부 샐러드, 그리고 노자와나라는 처음 보는 갓과 비슷한 야채를 와사비에 버무린 샐러드를 사왔다. 노자와나는 맛있었지만 와사비 맛이 너무 강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소바는 예상했던 맛으로 맛있었다.

돌아다니는 동안 계속 비가 와서 꽤나 추웠다. S와 J는 숙소에 있는 작은 욕조에 몸을 담갔다. 욕조가 엄청 작아서 무릎을 끌어 안고 앉아야 욕조에 몸을 넣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둘다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바닥난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지만, 히터를 켜니 춥지 않게는 잘 수 있었다. 거실에 있는 테이블에 셋이 모여 각자의 음료와 먹을거리를 나눠 먹으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내일의 일정을 계획하고, 오늘 쓴 돈을 정산했다. 대체로 S가 모두의 의견을 모아 큰 틀에서의 동선을 기획하고, J는 주로 식당이나 목적지를 정하고, 나는 길 찾기와 정산을 담당했다. 꽤나 유려하게 여행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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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가 되면 알 수 있는 것들이 내게도 존재할까. 불투명한 시간에 가로 놓일 때마다 세찬 조급함에 나는 타인들에게서 멀어져간다. 앞장서가는 이들에게 나를 설명하기에도 한참 모자를 때, 나는 신발을 고쳐 신을 수 없었다. 기다려주는 이는 나를 아는 사람, 미숙하고 작은 모양에 나는 높은 세상들에 가려진다. 툭 던져지는 것이 있다면 놓아도 되는 것들의 유한함, 그 속에서 또다른 의미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게도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따뜻함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세찬 바람에게 속삭인다. 이제 그만 볕이 있음을 증명하게 해달라고, 무른 고요함만이 나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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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6 - SEUNGKWAN Weverse update
'승관': 잘 지내고 있어요 캐럿들? 오랜만이에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우선 너무 보고싶었어요..! 캐럿들도 제가 어떻게 지냈는지 너무 궁금했죠? 전 잘 쉬면서 회복하며 지내고 있어요 정말 제대로 쉼이란 걸 처음 경험한 거 같아요 잠깐의 며칠의 휴가는 간간히 있었지만 인생에서 온전히 나를 온전히 생각하고 느껴보고 또 다시 나아가기 위해 충전하는 시간을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더라고요 쉬는 것도 내가 없이 빈자리를 채워주는 멤버들, 걱정하는 것도 부담이 될까 망설이며 저를 지지해주며 기다려주는 캐럿들에게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하더라고요 제 성격 상..🥲 그래도 많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정말 많이 나아지고 있어요 머지 않아 만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잘 지내고 있다고 조금만 적고 사진만 올리려 했는데 막상 그게 잘 안되네요 쓰다보니 ㅎㅎ 오늘은 이만 줄이고 나중에 더 많이 얘기해줄게요 또 반갑게 인사하러 올게요! 고맙습니다 캐럿들 잘 자요🫶 p.s 잘 먹고 잘 자고 잘 붓고 잘 빼는 중. 걱정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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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카니발"
*카니발
우리집 차는 큰 은색 카니발.
이 차를 얻어왔다고 해야 할 지, 사왔다고 해야 할 지, 알 수 없지만
모쪼록 집에서 이 차를 탄다.
오래된 차는 문 한짝은 운전석에서 열어주어야 타고내릴 수 있고
여기저기 덕지덕지 세월이 묻어서 기이익 거리는 소리가 난다.
디지털의 시대에 안맞는 아날로그틱한 눈금계가 놀리듯 제멋대로다.
그럼에도 이 차를 타면 웃기기만 하다.
그 전 차는 20년 넘게 탔는데 엄마가 홧김에 질러버린 새차였었다.
그 차 앞판이 부식되어 깨어지기 직전까지 탔다.
차라고 늘 깨끗하고 멋지고 멀끔할 수 없겠지,
오종종 모여서 타던 차에 엄마가 달아둔 새,돼지 같은 인형들도 웃기기만 하다.
때때묵은 카니발, 그리고 우리집.
웃긴 가족 어느 공간.
그리워. 보고싶어 죽겠는 그 공간.
-Ram
*카니발
1. "캐스퍼나 레이 같은 조그마한 차 타고 다니는 게 좋지 않겠어? 주차하기도 편하고 말이야" "아니, 난 높은 차가 좋아. 무조건 SUV로 타고 싶어"
얼마 전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대화 중.
2.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운전 경험으로 봤을 때 높은 차가 더 편했다. 키가 작아서 그렇다는 말이 늘 따라다��다. 아직도 모르겠다. 도대체 누워서 운전하는 사람들은 무섭지도 않나. 뭔가 바로 앞에 땅이 보여야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거의 대부분 그렇지 않나 보다. 언제 운전을 제대로 하고 다닐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중에 꼭 높은 차를 타고 다닐 거라고 생각(만) 해본다.
-Hee
*카니발
다운이 쌍둥이를 임신하고 카니발을 사야 하나 고민할 때만 해도 그렇게 큰 차가 꼭 필요한가 싶었다. 큰 차를 운전하는 일은 그러잖아도 피곤한 삶을 더 힘들게 만들 여지가 다분하니까. 예전에는 아빠가 카니발을 사서 엄마랑 전국을 차박으로 여행하겠다고 말할 때에도 적극적으로 말렸었다. 필요 이상으로 커다란 차에는 어째선지 내가 댈 수 있는 이유보다 더 커다란 거부감이 생기곤 했다.
살다 보니 뜻밖의 일이 많이 생기는데, 최근 들어 카니발 같은 큰 차를 사도 좋겠다는 놀라운 생각을 하게 됐다. 유아용 카시트, 유모차, 아이 장난감 따위를 한가득 싣고 다니는 삶. 내 가족과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는 삶을 생각해 보면 카니발은 그냥 커다랗기만 한 차에서 안락하고 근사한 패밀리카로 전환된다. 그 큰 공간의 편리성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 갑작스러운 생각의 전환이, 머지않은 임신과 출산을 염두에 두어서 혹은 부모를 부양해야 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기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신도시 아저씨 같은 삶을 속으로는 꽤 구식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삶의 의외로 높은 허들을 거침없이 통과하고 싶은 마음이라니. 이 변화를 어떻게 여겨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Ho
*카니발
우리가족의 첫 SUV가 카니발이었다. 나, 여동생, 남동생 그리고 부모님 우리는 다섯명의 가족이고 카니발은 우리가 함께 이동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아빠의 카니발을 타고 땅끝마을도 가고, 서울도 갔다. 그래서 인지 요즘도 카니발을 보면 반갑다. 차에 대해 잘 모르지만 카니발은 안다.
오래된 카니발이 고장이 나기 시작했을때 쯤, 차안에서 엄마아빠와 나눈 대화가 생각 난다. 아빠는 요즘 차가 이상하다며 차를 바꿔야 할 때가 온거 같다 했고, 엄마는 차가 듣는다며 그런말은 나중에 하자고 했다. 나는 차에 감정을 이입하는 엄마가 귀여웠고, 여태 우리를 안전하게 태워준 카니발에게 고마웠다. 외국에 나가있는동안 아빠가 차를 바꿔서 카니발의 마지막을 보지 못해 아쉽다.
내가 아직도 못하는게 운전인데, 운전을 꼭 배우고 싶다. 운전면허는 있는데 한번도 도로에 나가본적이 없다. 우선, 한국 운전자들이 쫌 무섭다. 확실히 다른 나라에 비해서 급하고 안 기다려주는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국있을 때 운전을 시작해볼껄 하는 후회가 된다. 운전을 못하는데 운전하는 꿈을 가끔꾼다. 그때 늘 내 차는 하늘을 난다.
운전을 배워서 자유롭게 어디든 가고싶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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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6] seungkwan weverse update
잘 지내고 있어요 캐럿들? 오랜만이에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우선 너무 보고싶었어요..! 캐럿들도 제가 어떻게 지냈는지 너무 궁금했죠? 전 잘 쉬면서 회복하며 지내고 있어요 정말 제대로 쉼이란 걸 처음 경험한 거 같아요 잠깐의 며칠의 휴가는 간간히 있었지만 인생에서 온전히 나를 온전히 생각하고 느껴보고 또 다시 나아가기 위해 충전하는 시간을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더라고요 쉬는 것도 내가 없이 빈자리를 채워주는 멤버들, 걱정하는 것도 부담이 될까 망설이며 저를 지지해주며 기다려주는 캐럿들에게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하더라고요 제 성격 상..🥲 그래도 많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정말 많이 나아지고 있어요 머지 않아 만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잘 지내고 있다고 조금만 적고 사진만 올리려 했는데 막상 그게 잘 안되네요 쓰다보니 ㅎㅎ 오늘은 이만 줄이고 나중에 더 많이 얘기해줄게요 또 반갑게 인사하러 올게요! 고맙습니다 캐럿들 잘 자요🫶 p.s 잘 먹고 잘 자고 잘 붓고 잘 빼는 중. 걱정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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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나는 밥을 먹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사람들과 밥을 먹으면 숟가락을 마지막에 내려놓는 사람은 거의 나였던 것 같다. 살면서 밥을 먹는 행위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고 점심은 보통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종종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나혼자 밥을 먹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끼리 즐거운 대화를 하고 있으면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가 숟가락, 젓가락을 놓고 멀뚱멀뚱 식판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열심히 젓가락과 나의 입을 움직이면서도 마음이 조급해진다. 너무 조급해진 나머지 더 먹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일어날 때도 종종 있어왔다. 그렇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나를 잘 알고 본인이 다 먹고도 기꺼이 기다려주는 사람들과 함께 먹을 때가 더 많으므로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먹게 되어도 나만 밥술을 뜨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점점 그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들의 표정이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잔반을 국그릇에 담는다. 사실 그정도만 기다려 주는 것도 나에게는 참 고마운 일이다. 내가 밥을 먹는 시간 만큼 다른 사람의 시간도 소중하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약간 다르다. 애초에 나와 밥을 먹는 속도가 비슷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나의 속도에 맞추어 밥을 먹는 것처럼 보인다. 흔치 않다. 이런 사람과 밥을 먹게되면 나는 마음속에서 밀려오는 은은한 감동을 느낀다. 그의 섬세함이 그 순간 뿐만 아니라 식사를 마저 못하고 급하게 마무리해야 했던, 밥을 왜 이렇게 느리게 먹냐 타박받던 나의 삶 속 여러 순간들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사람과는 다시 또 함께 밥을 먹고 싶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해진다. 나도 그의 섬세함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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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그녀의 존재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폴란드 브로츠와프 외곽에 자리한, 한인 건설 노동자들을 위한 밥집. 사장과 두 명의 한국인 쉐프를 제외하면, 모든 직원은 우크라이나 인이었다. 그들에게는 낯선 땅에서의 생존을 위한 결연한 의지가 공존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3개월이라는 짧은 비자의 시간 속에 자신들의 꿈을 압축시키는 사람들. 폴란드의 차가운 공기와 낯선 언어 사이에서 그들은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움직였다.
비자의 만료는 그들에게 잠시 고향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쉼표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새로운 비자를 들고 폴란드의 땅을 밟곤 했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공백을 기다려주는 사장은 드물었고, 그들이 돌아왔을 때 자리는 이미 다른 이의 손에 맡겨져 있었���. 어제의 얼굴들은 오늘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새로운 이름들이 주방의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자리를 채웠다. 삶의 연속성은 깨지고, 관계는 일시적인 교차점에서 생겨났다 사라지는 환영과도 같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돌아왔다. 다시 폴란드의 회색빛 아침을 맞이하고, 또 다른 밥집에서 새로운 얼굴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그들의 삶은 마치 현대 사회의 유목민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잠깐의 만남과 이별 속에서, 나는 그녀를 처음 보았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주방 보조로 일하며 나는 이미 수많은 새로운 얼굴들의 등장과 퇴장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에게만은 시선이 자석에 끌리듯 움직였다. 그것은 이성적 판단이나 의식적 선택이라기보다는,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희미한 종소리와도 같은 끌림이었다. 제니아. 서른 후반의 나이는 그녀의 눈가에 미세한 주름을 선물했다. 북유럽의 창백한 햇살을 닮은 금발은 주방의 증기 속에서도 그녀만의 빛을 발했다. 바다의 깊이를 간직한 듯한 파란 눈동자는 때로는 투명하게, 때로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흐릿하게 빛났다. 그녀의 체형은 완벽한 균형이나 사회가 강요하는 이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약간 돌출된 배는 삶의 편안함을 선택한 사람의 흔적이었고, 평균보다 작은 키는 그녀를 더욱더 현실적이고 친근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전통적인 미의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 강렬한 첫눈에 반함을 선사하지는 않았다.
웃음은 그녀에게 드문 선물이었다. 대부분의 시간 그녀의 표정은 세상을 관찰하는 조용한 심사관과도 같았다. 하지만 드물게 찾아오는 그녀의 웃음은 마치 흐린 날씨에 갑자기 구름 사이로 비추는 햇살처럼 예기치 않은 기쁨을 선사했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마치 다른 사람의 것처럼 변모했다. 평소의 진중함은 사라지고, 소녀 같은 순수함과 장난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것은 귀여움이라는 단어로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웃음 속에는 삶의 모든 무게와 고통을 잠시 내려놓는 해방감이 있었고, 그것을 목격하는 것은 일종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녀에게 끌림을 갖게 된 이유는 바로 그녀의 삶의 태도였다. 혼돈의 한가운데서 발견한 평정의 섬과도 같은 그녀의 존재는, 주방이라는 작은 우주 속에서 특별한 중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이어지는 식사 준비의 순환은 마치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끝없는 반복의 고통을 담고 있었다. 하루에 200명에 가까운 근로자들의 허기를 채우는 작업은 단순한 요리의 ��원을 넘어, 시간과의 전쟁이자 물질의 변환을 다루는 연금술과도 같았다. 날것에서 익은 것으로, 분리된 재료에서 하나의 조화로운 음식으로 변모시키는 과정은 대단한 노동력과 집중력, 그리고 분초를 다투는 시간과의 씨름을 요구했다.
주방의 공기는 언제나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끓는 국물의 김과 함께 인간의 감정 또한 쉽게 끓어올랐다. 식사 시간이 다가올수록 주방은 마치 폭발 직전의 압력솥과도 같았다. 쉐프의 고함, 보조의 당혹감, 사장의 재촉, 이 모든 것이 뒤엉켜 카오스의 교향곡을 연주했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오가는 말들, 무거운 냄비처럼 내려앉는 침묵, 그리고 언제나 부족한 시간이라는 감옥 속에서 모두가 자신만의 고통을 경험했다.
"이거 아직도 안 됐어?", "더 빨리 해!", "그건 왜 그렇게 하는 거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방을 채우는 폭언들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공기를 가르고 사람들의 자존감을 베어냈다. 압박과 피로가 쌓일수록 인내는 얇아졌고, 전문성은 감정의 홍수에 휩쓸려 갔다.
그러나 그 혼돈의 한가운데서, 제니아는 마치 태풍의 눈과도 같은 고요함을 유지했다. 그녀의 움직임에는 어떠한 초조함도, 불필요한 동작도 없었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춤동작처럼, 그녀는 주방을 오가며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녀의 손에서 감자는 완벽한 크기로 깎여나갔고, 양파는 일정한 두께로 썰렸으며, 고기는 정확한 시간에 뒤집혔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이러한 완벽함을 전시하거나 자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오랜 명상을 통해 도달한 자연스러움, 의식적 노력 없이도 발현되는 일종의 '무위(無爲)'의 상태와도 같았다. 압박이 최고조에 달할 때, 다른 이들의 손이 떨리고 눈빛이 흔들릴 때도, 그녀의 호흡은 고요했고 동작은 정확했다.
더욱 경이로웠던 것은 그녀의 이타성이었다. 자신의 업무에 완벽히 하면서도, 그녀는 종종 어려움에 부닥친 동료를 돕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었다. 그것은 화려한 영웅적 행동이 아닌,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도움들이었다. 버거운 무게에 휘청거리는 동료의 팔에 살며시 힘을 보태고, 실수로 흘린 국물을 조용히 닦아주며, 때론 단순한 미소만으로도 지친 이의 마음에 작은 위안을 선사했다.
그녀의 이런 태도는 마치 혼란한 세상을 향한 조용한 반역과도 같았다.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등대처럼, 그녀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무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압박이 더 큰 압박을, 분노가 더 큰 분노를 낳는 악순환 속에서, 그녀는 평온함이 또 다른 평온함을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에서 단순한 직업적 태도를 넘어선 깊은 철��을 발견했다. 어쩌면 그것은 폴란드라는 낯선 땅에서, 우크라이나라는 고향의 그리움 속에서, 그녀가 발견한 자신만의 생존과 존엄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혼돈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질서를 창조하는 법, 세상의 광기에 감염되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법—그것이 바로 그녀가 무언으로 가르쳐주던 삶의 지혜였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외모가 아닌, 그녀의 존재 방식에 매료되어 갔다.
나는 그녀에게 나날이 빠져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존재는 내 의식 속에서 더욱 선명해졌고, 마치 오래된 와인처럼 깊어지는 감정은 나의 일상을 적셔갔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던 것이 동경으로, 동경은 다시 갈망으로, 그리고 마침내 삶의 모든 순간을 채우는 충만한 사랑으로 발전했다. 감정의 진화 과정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고, 마침내 나는 그녀 앞에 내 영혼을 솔직하게 펼쳐 보였다.
주방 뒤편, 식자재 창고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나는 내 마음의 무게를 모두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완벽한 문장도, 준비된 말도 아니었다. 그저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절절한 진심이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서툰 영어와 파편화된 폴란드어, 그리고 때로는 말을 대신하는 침묵으로 나는 내 사랑의 깊이를 전달하려 했다.
그녀의 눈에 잠시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거절의 전조가 아닌, 자신의 현실과 책임에 대한 깊은 자각이었다. 천천히, 마치 오래된 상처를 풀어내듯,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크라이나의 작은 도시에, 그녀가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품에 안았던 아들이 있었다. 이제는 성인이 된 그 아들과 세월의 무게로 점점 약해지는 노모가 그녀의 월급을 기다리고 있었다. 국경을 넘는 그녀의 여정은 단순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이주가 아닌, 가족을 위한 희생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감정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로맨틱한 감정을 넘어선, 그녀의 강인함과 헌신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그녀의 짐을 함께 나누고 싶은 소망이었다. 나는 머뭇거림 없이 내 도움을 제안했다. 그것은 거창한 약속도, 화려한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걸어가는 길에 나도 함께 걷고 싶다는,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바람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우리는 주방의 분주함 속에서 서로를 향한 미소를 교환하는 연인이 되었다. 함께하는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그 밀도는 어느 때보다 깊었다. 일과 후 폴란드의 좁은 뒷골목을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 그녀의 고향 이야기, 내 어린 시절의 추억, 미래에 대한 소박한 꿈들.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 조금씩 발을 담그며 더 깊은 친밀감을 쌓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지독하게 행복했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우리의 일상은 소소하지만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이란 얼마나 취약한가. 개인의 의지로는 막을 수 없는 ���대한 역사의 바퀴가 우리의 작은 행복을 향해 무자비하게 굴러오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그저 먼 나라의 뉴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순식간에 그녀의, 그리고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그날 밤, 평소보다 늦게 끝난 근무 후 만난 그녀의 얼굴은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마치 모든 생기가 빠져나간 듯한 창백함, 그리고 깊은 절망의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아들이 군에 끌려갔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차분함 대신 깊은 공포와 슬픔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국경을 넘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고향을 바라보는 애타는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의 육체는 여기 폴란드에 있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이미 전쟁터의 아들 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밤늦도록 대화했다. 아니, 대화라기보다는 그녀의 침묵과 눈물, 그리고 가끔 터져 나오는 절규를 내가 그저 안아주는 시간이었다. 나는 위로의 말을 찾으려 했지만, 전쟁 앞에서 모든 언어는 무력했다. 그저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걱정하고, 무엇이든 돕겠다는 약속밖에 할 수 없었다.
11월의 폴란드는 특유의 냉혹한 비로 도시를 씻어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은 마치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게 창문을 두드렸고, 거리의 불빛은 물웅덩이 속에서 일그러져 춤추었다. 그 날씨는 우리의 심정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자연의 울음이었다.
그 밤,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를 껴안았다. 그녀의 몸에서는 평소의 주방 향신료 냄새 대신 깊은 슬픔의 향기가 배어 나왔다. 그것은 어쩌면 이별을 예감한 내 감각이 만들어낸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 품에서 빠져나와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감사와 사랑, 미안함과 결단, 그리고 무엇보다 깊은 이별의 슬픔.
비는 점점 더 거세게 내렸다. 그녀는 작별 인사도 없이, 그저 고개를 돌려 빗속으로 걸어갔다. 검은 우산 아래 그녀의 실루엣이 점점 작아지다가, 마침내 빗줄기와 안개 속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11월의 지독한 비는 계속되었고, 그 비와 함께 그녀는 내 곁을, 그리고 폴란드를 떠났다.
비가 그치고 난 후의 거리는 씻긴 듯 맑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폭풍이 계속되고 있었다. 밥집의 주방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갔고, 새로운 얼굴들이 그녀의 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어떤 존재도 내 기억 속 제니아의 빈자리를 완전히 메울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11월의비 #폴란드 #이주노동자 #국경없는사랑 #우크라이나전쟁 #상실과기억 #내면의강인함 #애틋한로맨스 #삶의무게 #시대의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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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본다는 것(2358)
내가 산책하는 공원에는 저녁이면 청년 한 무리가 모인다. 인사 외에 거의 말이 없는 이 모임은 러너스 클럽인데, 공원 트랙을 한 바퀴 뛰면 별 대화 없이 각자 흩어진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괴로운 시대의 MZ식 해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노리나 허츠의 책 ‘고립의 시대’에는 감옥을 숙식과 돌봄이 있는 공동체로 인식해 일부러 경범죄를 저지르는 일본 노인 이야기가 나온다. 영국에는 외로움부 장관이, 일본에는 고립을 담당하는 장관이 있다. 이미 외로움이 국가 문제로 인식된다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은 공동체의 붕괴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현대적 외로움은 역설적으로 24시간 연결된 세상과 연관돼 있다.
외로움은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자기 돌봄과도 직결된다. 삶에 ��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타인이 아닌 자신과 이룬 관계다. 하지만 나를 가장 소외시키는 게 자신인 경우가 많다. 최근 자기 돌봄을 자기 계발과 동일시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보디 프로필을 찍고 특별한 곳을 여행하는 등 경험을 인증하는 게 자기 돌봄이라 믿는 것이다. ‘갓생’을 살면 정말 자존감이 올라갈까. 문제는 과도한 인증 문화가 경쟁을 부추겨 자신을 더 소외시킨다는 데 있다.
자기 돌봄은 보디 프로필 사진에 붙은 ‘좋아요’ 수보다, 불가능했던 푸시업 한 번을 해냈을 때의 뿌듯함에 가깝다. 남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나를 돌보는 건 그러므로 일정 부분 타인과 단절함을 전제한다. 홀로 일기를 쓰고 명상하듯 타인과 비교하는 지옥에서 벗어나 내 안의 진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응답하는 것이다.
3세대 항암제가 표적이 아닌 면역 치료제이듯, 외로움은 타인이 아니라 나와 건강하게 연결이 복원될 때 치유된다. 사실 외로움은 존재의 필연적 조건이다. 그럼에도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부족한 나를 비난만 하지 않고 다독여 기다려주는 것이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될 때, 외로움은 끝내 견고한 고독으로 진화한다. 9/20/24/hwanshikkim.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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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가족X멜로’ 최민호, 임팩트 甲 발차기로 역대급 ‘아찔한 엔딩’ 선사
‘압도적인 비주얼 + 다정한 배려 + 깔끔 매너’ 3단 콤보로 안방극장 홀릭!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으로 앞으로 펼칠 활약에 ‘기대감 Up’ 최민호(샤이니 민호,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가 적재적소 임팩트 있는 존재감으로 화제다. 최민호는 JTBC 새 토일드라마 ‘가족X멜로’(연출 김다예, 극본 김영윤, 제작 MI·SLL)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남태평’ 역으로 출연, 압도적인 비주얼과 깔끔한 매너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홀렸다. 지난주 방송에서 태평은 첫 등장부터 과로로 쓰러진 미래(손나은 분)를 주저 없이 업고 뛰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으며,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다정함이 깃든 행동으로 태평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했다. 뿐만 아니라 회사 앞에서 전남친의 행패로 곤란에 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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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쳐서 그만하자고 한거니깐 내맘이 그정도 임을 받아들이자고. 헤어지는 선택을 했으면서
한달이 지나 또 다시 너에게 돌아갔다
네게 자꾸 상처를 줘도 내가 울고있으면 안아주고 또 나를 기다려주는 너가 좋아서
너가 안아주면 계속 안기고 싶고, 나를 기다려주면 너를 따라가게 된다.
헤어질땐 나에게서 이유를 찾앗으면서 시간이 지나니 네 탓을 하고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또 힘들단 이유로 문제를 이별이란 방법으로 쉽게 풀려 했나. 내 선택이 또 회피하는 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
너가 해주는 배려를 고마운지도모르고 내생각만 했다며 너를 잡았다.
그러고 나서 너가 싫다면 집들이 안갈게, 너가 눈에 안보이게 해달라고 했는데 인스타에 남아있는 사진과 디엠 흔적들로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너가 다른 애들한테 일말의 애틋함이 있는거라면, 이성적인 감정이 없는게 맞는지, 본인을 대할때랑 다른게 뭔지, 네 마음을 모르겠다고.
나를 볼때면 항상 물가에 내놓은 아이같다고 했다. 늘 선이 없이 본인에게 하는것처럼 남들에게도 똑같이 구는데. 그게 네마음이 정말 어떤 호감을 사고 싶어서 그런거라면 본질이 바뀌지 않아 늘 똑같을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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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점점 더, 함께할때 힘이 생겨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따뜻한 관계들. 함께하는 시간에 꼭 그 사람이 즐거운 상태여야한다는 것이 아니다. 슬프고 어려운 시기를 겪어내는 사람이더라도 내가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는 사람. 나의 행위를 고마워 해주고 힘이된다고 기꺼이 표현을 해주는 이들. 서로 둘다 힘들고 우울한 상태로 만난다고 해도 이상하게 그 사람만 만나면 별일 아닌듯 훌훌 털어버리게 되는 관계도 있다. 혹은 속상해하고 힘들어하는 이야기는 전혀 받아주지 않고 좋은 이야기만 하길 원하는 상대들도 있고. ... 무엇이든 잘 헤쳐나가질 거라고 훌훌 터는 편이 좋겠다고 자연스레 느끼게 해주는 사이. 난 요즘 누가 아프고 마음이 속상할때 “치료를 받아봐 약먹으면 나아져” 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볼때, 먼저 들어주고 나누고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처방이 해결책이니 약먹어 (나에게 그만 얘길해-겠지) 라고 단순히 말하는 사람들을 볼때면.... 그것보다 더 씁쓸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치료해라, 약먹어라가 당신에게 속얘길해서 가장 얻고싶은 말이 아닐텐데. 들어주는 일. 들어주고 봐주고 기다려주는 일엔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고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결국 삶에서 가장 크게 결여되어있는 것이 타인의 무한한 사랑과 신뢰이지 않은가? 약처방은 어렵지 않다... 얼어붙고 쓰라리게 오래방치된 마음은 결국 사람의 마음으로 또 치유가되니까. 물론 처방은 받고 함께 해나가야하겠지만서도. 순서가 있다 순서. 사람간엔.. 쉬운일은 아니지.. 그게 가장 먼저야. 요즘 나는 사람들을 대할때 진심으로 그래도 나의 애정을 담아 표현하려고 많이 노력을 한다. 결국에 남는 건 우리가 함께 사랑을 주고받고 응원을 하고 그 힘으로 또 하나하나 헤쳐나갔던 삶의 기억들이 아닐지... ‘애정’ ‘올바른 방식의 애정’ - 상대방에게 지금 어떤말이 가장 필요하고 어떤 마음의 결핍이 있는가 잘 살펴보고 그에 맞게 좋은 방식으로 표현해줄 수 있기를. 그런 사람이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나도 힘들때 그렇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싶고. 난 똑똑하고 항상 바른말하고 팩트를 아는 사람이예요,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녹일만큼의 똑똑함과 사려깊음을 가진 자. 결국 인생의 승자는 후자일거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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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면허 갱신(재발급)하기
가끔 렌터카를 빌려서, 토깽이같은 깔치랑 휴일에 가나가와나 치바나 도쿄 주변을 드라이브 하는게 유일하게 내가 최근 이 나라에서 가슴이 뛰고 즐거운 일이었는데, 일본에서 발급받은 운전면허가 유효기간이 끝나버렸다. 여름 휴가를 맞춰서 둘이 차를 빌려서 요코스카로 바다를 보러 갔다 왔는데, 아무리 한두시간 거리라도 여자친구한테 계속 운전을 시키는게 ���속 미안했다. 그래. 다른 거 재쳐두고 얼른 면허 재발급 신청부터 해야겠다. 고 마음을 먹었다.
갱신 기간 내에 갱신을 안하면 면허가 취소가 되어, 굉장히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면허를 새로 받아야 하는 것 같았다.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황금같은 여름 휴가의 마지막 날을 써서 도쿄 외곽의 면허시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1시간 20분 정도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휴가의 마지막 날이고 혼자 면허 갱신을 하러 가는게 심심하고 그래서 같이 가자고 깔치를 꼬셨다. 완전히 똑같은 경험(갱신이 아니라 재발급)을 한 내 깔치는 그거 하루 종일 걸려서 나 가도 할 게 없다 라고 안간다고 하는 걸 무리해서 끌어 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운전면허 시험장에 도착하니 첫 접수만 대기인이 60명정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나처럼 귀중한 여름휴가 시즌에 하루를 뽑아서 면허를 갱신하러 온 사람들인 거 같았다. 번호표를 뽑고 한 5명이 지나가는 시간을 계산하고는 나는 이건 하루가 날라가겠구나 하고 묘한 절망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깔치의 표정이 확 굳어있다. 나는 몇 번이나 사과하고 여자친구를 돌려보냈다. 나중에 보니 상대방의 면허 갱신을 위해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기다려주는 커플 몇 쌍을 보았긴 했는데, 그정도로 달라붙어 있기엔 우리는 너무 오래 같이 살았고 시간이 1분 1초가 아까운 현대사회의 남성과 여성이었다. 어쨌든 깔치는 기분이 확 상해서 1시간 반 걸려 운전면허 시험장에 오자마자 삼십분이 안 되어 다시 한시간 반을 넘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 번호 차례가 와서 겨우 접수를 시키고 정신 없이 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돌아다녔다. 시력 검사도 하고, 인지능력 검사도 하고, 면허 갱신료도 구천엔 가까이 지불하고. 정신이 들어보니 점심도 못 먹고 물도 한 모금 못 마시고 있었다. 접수를 하고 내가 언제 불릴 지 몰라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기에 화장실도, 식사도 못했다. 초코바 하나랑 생수 하나를 사서 대충 허기를 채웠다. 아침 9시쯤에 동네에서 버스에 올라탔는데 어느덧 15시가 되어가려 하고 있었다.
면허 재발급의 마지막 관문은 처음 운전면허 갱신을 하는 사람들이 필수로 받아야 하는 2시간짜리 교습이었다. 이걸 수료하고 도장을 받아야 면허를 내 준다고 했다. 대학교의 커다란 강의실 같은 곳이었다. 여러 나이의 남녀가 곽 들어차서 앉아 있었다. 나같은 외국인들도 꽤 많았다.
수업은 뭐 당연한 얘기들이었다. 운전 수칙을 잘 지키고 안 지키면 사고나고 벌점물고 면허 취소되니까 조심하세요. 핸드폰을 보거나 자면 재수강을 시킨다고 강사가 수업 시작 전에 엄청 상냥한 말투로 거�� 거듭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모두들 딴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핸드폰을 만지거나 다른 짓을 하는 사람은 내가 보기엔 없었다.
강의실 창 밖으로 올곧게 자란 커다랗고 울창한 가로수들의 녹색이 보인다. 그러고보니 내가 대학교때도 이런 곳에서 수업을 듣곤 했지. 그때 그 애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때 그 선생님은 아직도 그 학교에 있을까. 갑자기 세차게 소나기가 내리다가, 금세 맑아져서 말매미 울음 소리가 소나기 소리만큼 커다랗게 들려온다. 뭘 생각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지만 절대로 강의에 집중을 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 사이로 흠뻑 젖은 한 여름의 가로수길이 작열하는 태양을 반짝반짝 튕겨내고 있다.
면허를 발급 받고 시험장을 나서니 17시가 지나고 있었다. 진짜 하루가 다 갔네 씨부랄.
집에 돌아가, 내일부터는 다시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와 일상이다. 잘 버틸 수 있을까? 새로 나온 면허의 반딱반딱한 질감을 확인하며 나는 몇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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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벽과 벽 사이에 모호한 말들이 나에게 가까워진다. 고장난 것만 같은 감정이 새어나와 필터 없이 나를 가득 채우면 혹독한 건지 혹은 이전과는 다른 편안함이었던건지 알 수 없는 생각일뿐, 명확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시간을 정통으로 맞아 쏜살같이 달려나갈 뿐 나를 기다려주는 건, 이전과 같은 마음새에 잃지 말아야겠다는 어떤 것들뿐이었다. 변화한다는 건 새로운 것들을 생성해주고, 과거의 이면을 벗겨낼 수 있어서 이롭기도 하지만 어떤 몇가지는 그것이 사람이나 장소이던간에 변하지 않길 염원하는 나의 작은 뿌리 같은 것이었다. 어디에도 없는 시간들로 익숙하지만 낯선 현재에게서 가늠할 수 없는 허전함만이 나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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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반지 #이게뭐라고 #프랑스까지 #코로나땜에 #몇달이지연되었는가 #기다려주는 #우리외국인 #주문제작 #데칼스튜디오 https://www.instagram.com/p/CES4KwAlSe8/?igshid=1ka497yc3pr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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