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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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025 — 다시 안녕하세요. 전 수업 일 많이 했어요. 조금 더 해야 돼요. 그런데 갑자기 비가 많이 와요. 지금은 오후 1시인데 너무 어두워요. 이 날씨와 분위기가 완벽해요. 정말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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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이렇게 살았어야 했다는 니니야. 앞으론 매주 맛있는 것도 먹고 선물같은 날씨와 하늘을 맘껏 누리고 살자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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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몇번의 날을 지냈을 뿐인데, 어느새 나뭇잎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색의 농도가 점점 연두색으로 덧칠해져 있었다. 이맘때의 날씨와 계절을 좋아하는 이유가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이 새롭게 탈바꿈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단지 계절과 시간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나에게는 전혀 다른 그 이상의 것이었다.
옷차림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산책하기에도 불필요한 요소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달 일찍 12살 어린 동생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가방은 생각보다 흡족했고, 토트백이었던 손의 무거움은 사라질 것이다. 르메르 가방 같은 크로와상 모양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의 가방이었고, 두손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말이 나와서 생각했지만 한동안은 가벼워진다는 게 어떤 건지 한참을 골똘히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의 말투나 태도, 가치관이 가벼워진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무겁게 나를 옥죄고 있는 규율 따위 같은 것, 오랫동안 지니고 있는 습관들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은 내려놓아도 되는 것들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집중하는 시간들이 결국 나를 가두었다. 가볍게 나를 마주하는 모습은 어떤 이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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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의심
꿈을 꾸었다.
나의 과거와 나의 현재가 함께 내게 지금이 무엇인지 되묻는 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무엇도 명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과거를 온전히 놓았다고도 못하였고 현재에 충실한 것이라고도 못했다.
과거는 날 붙잡고 캐물었다. 어째서 너는 끝맺지 못하였느냐고,
나는 답하지 못했다.
현재도 날 붙잡고 반문했다. 그럼 너에게 중요한것은 어느쪽이냐고,
나는 고르지 못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의뭉스러운 생각이 일었다.
나는 어디에 누군가에게 속해있나, 나는 누구를 종속��고 있나, 나라는 존재는 나로써 충분한가.
의문 뿐인 꿈이었다.
-Ram
*의심
1. 지난여름 한창 잎사귀가 가득하고 몇 개의 꽃대가 창문 앞에서 하늘하늘 흔들렸었는데 겨울이 되자 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많던 잎사귀들도 모두 갈색으로 변해 시들어버렸다. 이제 이 스파티필름이 죽어버린 걸까, 이 화분의 생명이 정말 끝난 걸까, 발만 동동 구르고 어찌할 줄 모르던 찰나에 갑자기 집에 놀러 온 엄마가 멋지게 다크호스처럼 가위를 들고 와 시든 잎의 줄기들을 몽땅 잘라내버렸다. 푸르던 스파티필름은 어느새 줄기의 아랫부분만 삐죽삐죽 남아 볼품이 없어져 버렸다. 엄마는 그런 날 보며 괜찮다며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원래대로 물을 주면 금세 큰다고 하고 쿨하게 돌아갔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따뜻해지니 어느 날 갑자기 그 삐쭉이 같던 스파티필름이 초록색 줄기들을 마구 뿜어냈다. 정말 말 그대로 줄기들을 뿜어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줄기들의 키가 커지고, 끝에 돌돌 말이(그냥 내 표현이다)의 형태를 띠더니 그게 펴지면서 잎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거실로 뛰어나와 오늘은 얼마나 자랐나 보는 게 즐거웠던 순간들이 반복되자 작년 여름처럼 어느새 다시 잎이 무성해지고 기특하게 꽃대까지 생겨 꽃 한 송이를 만들어냈다. 역시 엄마의 행동은 의심할 것 하나 없다.
2. 삶에서 무엇이 행복이고 만족감인지 명확하게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결국 먹구름 속에만 갇히게 될 것만 같다. 언제 해가 뜰까 고민만 하고 걱정만 하는 나날들만 가득하다면 현재에 살고 있는 '나'의 행복은 모두 어디로 숨어버리거나 잃어버려 결국 영영 찾지 못하는 행복들도 많을 것 같다.
-Hee
*의심
1. 샤모니라는 자그마한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자일, 피켈, 크램폰 따위를 가방에 매단 채 각자의 산을 오르고 있었다. 걸어 올라가기도 힘들었던 고개를 자전거를 탄 채 올라온 사람들도 많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뛰어서 나를 지나쳐간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았다. 나처럼 비박을 하며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이 만났다. 그런 광경은 과연 내가 성지에 오긴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감동은 걸으면서부터 금세 무너지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아주 많은 일을 겪었다. 오랜 시간 이 취미를 즐기면서도 몇 번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단시간에 모두 경험했다. 텐트 심실링이 다 떨어진 걸 모른 채 챙겨왔다가 쏟아지는 폭우에 침낭을 포함한 짐들이 죄다 젖어버렸고, 며칠을 연이어 쏟아지는 폭우에 시야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길을 속옷까지 다 젖은 채로 종일 걷다가 저체온증에 걸렸고, 영하로 떨어지는 예상치 못한 기온 탓에 추위에 벌벌 떨며 잠을 설쳤고, 이런 상황들에 마음에 여유가 사라진 동반자의 저열한 인성에 질려버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믿지 못했고, 이 길에 어떠한 의미도 없을 거라 단정 짓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대단치 않았던 힘겨움인데도 걷는 내내 나약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스스로를 자꾸만 돌아보게 됐었다. 삶이 산에 아주 바짝 닿아있는 듯 거창했던 말과 달리 산을 마음 아주 깊숙한 곳에 두지는 않았던 걸까. 스스로를 의심하는 마음이 목을 옥죄었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이곳에 왔던 걸까. 이 길을 끝까지 다 걸을 수는 있을까. 의심과 의심이 걷는내내 지독하게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비구름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비온 뒤 땅 굳는다고, 중간중간 맑게 갠 날씨와 함께 드러나는 굉장한 산군의 아름다움을 간헐적으로 맞이하며 지루할 틈 없이 감격했고, 걸으며 내내 마주치는 사람들과 감격을 나누면서 내 믿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지는 않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지영과 힘을 합치고 배려해가며 환경을 극복해 내는 방법을 깨달았고, 끝끝내 나만의 길을 꾸준히 걷기만하면 된다는 진리도 다시금 되새겼다. 특별히 무언가를 이루거나 얻기 위해 떠나온 길은 아니었으나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다. 종교인이 성지를 순례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도 같다.
2. 사실 그곳 역시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터전일 뿐이었다. 지독하리만치 상업적인 요소들이 군데군데 깊이 자리 잡아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고, 광활한 자연은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지만 그마저도 며칠이 지나고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뒤부터는 그리 대단치도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역시도 결국은 체력과 장비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던 내 실력과 오만한 마음이 빚어낸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다 지나서야 알게 됐다. 어쩌면 다시 한번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아 다행인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Ho
*의심
의심을 언제 하나 생각해보니 ��로 어떤 정보를 볼때 이게 사실인가?를 생각 하게 된다. 이해관계가 섞이게 되면 진실하기 힘드니까.
또, 내 미래를 위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 노력하는 것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 줄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열심히 했는데 내가 계획한 대로 안되거나 변수가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들이다. 그래도 분명한건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고 경험상 무엇이라도 시도하고 열심히 하다보면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요즘 자주 생각나는 말이 위로가 된다. 우리는 과거의 숨을 지금 다시 쉴수없고, 미래의 숨을 당겨 쉴수 없다. 지금 순간 순간의 이 숨만이 들어왔다가 나간다. 현재에 집중하고 정신을 여기에 두자.
의심은 날숨에, 행운은 들숨에.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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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1 ♡ official_ONEWE: [#ONEWE]
잠시 후 6시 30분 ENA '케이팝업 차트쇼' 시원한 날씨와 어울리는 무대와 🌊 밴드부 원위와 위브의 대결까지 ‼ 놓치지 말고 본방사수 하러 가요 📺
#원위 #OFF_ROAD #케이팝업차트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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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인생은
내 것으로만 처음 살아보는 중이라
내 인생이 제일 힘들고 어려울 뿐더러
종종 낯설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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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작년이 되어버린 그 해도 그랬다.
365번의 하루들은 매번 나에게 무심했고,
365일 불어대는 바람은 매번 차가웠다.
불현듯 주변과 멀어져 수면 아래로 잠기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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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숭 없이 지낸 오랜 친구들과 나누는
한 해의 마무리 인사는
“와 올해도 참 길고 유난히 힘들었다.
썩 꺼져버렸으면 좋겠다.”
삼십대가 대체로 항상 그랬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석도 풍화도 되지 않고
아직까지 온기를 가진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것은,
지나쳤던 누군가의 글처럼
불행 중 수많은 다행으로 지나온
시간들 때문이었겠지.
⠀
이제쯤 끝났을 인연이라 생각했음에도
잊지 않고 들춰 안부를 물어주던 다정함,
나에게 쉼을 주던 공간, 철없는 고양이,
���있던 음식, 대차게 웃어댄 시답잖은 농담들,
기대하지 않던 별거 아닌 공짜 쿠폰들,
발 밑까지 차올랐던 한강과 가까웠던 달빛,
그날의 좋았던 날씨와 도시락,
그날따라 파랗고 맑았던 하늘,
별일 없이 일상을 나누던 대화,
조용히 사색할 시간을 주던 공원,
코 밑이 시커메진 아직은 애기 같은 조카들.
나를 지탱해 주던 모든 것들이
나에겐 다행이었다.
⠀
무기력했던 시간들은
지나고 보니 휴식이 되었고,
더 나은 뭔가를 만들어낼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
거창한 목표나 계획은
이제는 어울리지 않고
소박한 바람들 몇 가지로
한 해를 시작해야지.
⠀
-
나는 오늘이 항상 최상의 인물.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기를.
⠀
-
2024-2025
250101
#floating_oroshi#walking_oroshi#walking oroshi#일기#2004-2005#인생#365#새해#소박한바람#midjourney#midjorneyart#ai art#ai ar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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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대공습, 9 · 11 이후 뉴욕, 1989년 로마 프리에타 대지진 이후 샌프란시스코처럼 위기가 닥친 시기에는 사람들이 힘을 모은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만성적이고, 만연하고, 소모적인 위협을 겪는 경우에는 사람들이든 문화든 좋은 모습을 보이기 힘들다.
굶주림이라는 원초적 위협은 역사적으로 여러 흔적을 남겼다. 나라들의 엄격함 차이를 조사했던 연구를 떠��려보자(독재적이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고, 어디서나 행동 규범을 강제하는 나라가 ‘엄격한‘ 나라라고 했다). 어떤 특징을 가진 나라가 엄격한 나라가 되었을까?[*가장 ‘엄격한’ 나라는 어디였을까?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인도, 싱가포르, 대한민국이었다. 가장 엄격하지 않은 나라는?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헝가리, 이스라엘, 네덜란드였다.] 앞에서는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가 그렇다고 말했는데, 다른 예측 지표들도 있었다. 과거에 식량 부족을 더 많이 겪은 나라, 식량 섭취량이 적은 나라, 식단 중 단백질과 지방 비율이 적은 나라가 그랬다. 한마디로, 배를 곯을 위협을 만성적으로 겪은 문화들이었다. 환경 악화, 즉 가용 농지나 깨끗한 물이 부족하고 오염이 심했던 것도 문화적 엄격함을 예측했다. 이와 비슷하게, 야생동물 고기에 의존하는 문화들은 서식지 파괴로 동물 집단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갈등이 악화된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역작 『문명의 붕괴』에서 많은 문명의 폭력적 붕괴는 환경 파괴 탓이라고 주장했다.
질병도 빼놓을 수 없다. 15장에서 우리는 ‘행동학적 면역’이라는 것을 살펴볼 텐데, 이것은 많은 동물종이 다른 개체에게서 질병의 단서를 감지할 줄 아는 것을 뜻하는 개념이다. 인간도 타인에게서 전염병을 암시하는 단서를 읽어내는 능력이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요인이 되곤 한다. 이와 비슷하게, 어떤 문화가 과거에 전염병을 얼마나 많이 겪었는가 하는 것은 외부인에 대한 개방성을 예측하는 한 요소다. 과거에 팬데믹을 많이 겪었던 문화,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문화, 전염병으로 날릴 누적 햇수가 많았던 문화일수록 현재에 문화적으로 더 엄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날씨도 조직적 폭력의 발생률에 영향을 미친다. 유럽에서 수 세기에 걸쳐 진행되었던 전쟁들이 한파가 극심한 겨울이나 작물 생장기에는 잠시 쉬곤 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날씨와 기후가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사실 그보다 더 넓다. 케냐 역사학자 알리 마즈루이는 과거에 유럽이 아프리카에 비해 성공했던 이유 중 하나로 기후를 꼽았다. 서구는 매연 틀림없이 겨울이 돌아오는 기후 때문에 미리 계획하는 문화를 발달시켰다는 것이다.[*이 주장을 반박하자면, 열대지방 사람들오 연간 기후 변동을 예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이고 거꾸로 스웨덴 사람들은 겨울은 있겠지만 우기를 계획할 필요는 없다.] 더 큰 규모에서의 날씨 변화도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엄격함 연구에서, 과거의 잦은 홍수나 가뭄이나 태풍도 문화적 엄격함을 예측하는 지표였다. 기후에서 또하나의 유효한 요인은 남방진동이다. 엘니뇨라고도 불리는 남방진동은 적도 태평양의 평균 해수면 온도가 몇 년 단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약 10년마다 돌아오는 엘니뇨 시기에는 바닷물이 더 따뜻해지고 기후가 더 건조해지므로(라니냐 시기에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많은 저개발국이 가뭄과 식량 부족을 겪는다. 지난 50년간 엘니뇨 시기에는 국내 갈들의 발생률이 평소의 약 두 배였는데, 대부분은 기존의 갈등이 격화된 결과였다.
가뭄과 폭력의 관계는 좀 까다롭다. 앞 단락에서 말했던 국내 갈등이란 정부와 비정부 세력 간의 전투(내전이나 봉기)로 인한 사망 등을 뜻했다. 따라서 그것은 가축을 칠 물웅덩이나 초원을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현대적 이권 다툼이었다. 하지만 전통사회의 환경에서 가뭄은 채집을 하거나 작물에 물을 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뜻일 수 있다. 그 경우 타 집단의 여성을 훔쳐오라고 습격하는 일은 우선순위가 높을 수 없다. 그리고 내 가축도 먹이지 못하는 판국에 남의 가축을 훔쳐서 어쩌겠는가? 그러나 갈등이 준다.
흥미롭게도, 개코원숭이들도 이와 비슷하다. 세렝게티 같은 풍요로운 생태계에 사는 개코원수이들은 평소 채집에 하루 몇 시간만 들이면 충분하다. 영장류학자들이 개코원숭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덕분에 녀석들이 하루 약 아홉 시간을 사회적 권모술수―밀회와 승부와 험담―에 쓸 여유가 있어서다. 그런데 1984년 동아프리카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여전히 먹이는 충분했지만 개코원숭이들은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간을 모조리 채집에 바쳐야 했다. 그러자 녀석들의 공격성이 줄었다.
(367~369쪽)
몇 가지 수치를 읊어보자. 해부학적으로 현대적인 인간이 출현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만 년 전이었고, 행동학적으로 현대적인 인간이 출현한 것은 약 4만 년에서 5만 년 전이었다. 인간이 동물을 길들인 것은 1만 년에서 2만 년 전이었고, 농업을 발명한 것은 약 1만 2000년 전이었다. 인간이 식물을 길들여서 작물화한 뒤에도 약 5000년이 더 지나서야 이집트, 중동, 중국, 신세계에서 문명과 더불어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어느 대목에 전쟁이 발명되었을까? 물질문화는 전쟁을 벌이려는 경향성을 누그러뜨렸을까, 악화시켰을까? 뛰어난 전사들은 유전자를 더 많이 남겼을까? 문명이 등장하고 권력이 중앙집중화한 덕분에 우리가 문명화한 것일까? 사회적 계약이 안기는 제약이 겉치레로 작용한 덕분에? 역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은 서로를 좀더 점잖게 대하게 되었을까? 그렇다. 요컨대 땅딸막하고/고약하고/야수같은 야만인이냐 고결한 야만인이냐 하는 문제다.
과거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철학자들의 논쟁은 대체로 말장난이었지만, 오늘날 홉스냐 루소냐 하는 논쟁은 실제 데이터 싸움이다. 그중 일부는 고고학 데이터다. 연구자들은 그동안 고고학 기록으로부터 과거에 전쟁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밝히려고 애써왔다.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인바, 이 주제를 다루는 학회에서는 정의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게 내용의 절반쯤 된다. ’전쟁’은 집단 간에 벌어진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폭력만을 뜻하는가? 무기가 쓰여야만 전쟁인가? (비록 특정 계절에 한정딜지라도) 정규군이 있어야만 전쟁인가? 위계와 명령 계통이 있는 군대여야만 하는가? 대체로 친족 계보들 간에 싸운 경우,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가문 간 알력으로 봐야 하나?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이 기능적으로 사용하는 정의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폭력적 죽음을 맞는 것”이라는 간소한 형태다. 1996년, 일리노이대학교의 고고학자 로런스 킬리�� 기존의 문헌을 종합하여 『원시전쟁』이라는 책을 썼다. 큰 영향력을 미친 이 책에서 킬리는 전쟁을 뒷받침하는 고고학 증거가 광범위하고 오래되었다고 주장했다.
2011년 하버드대학교의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진부한 표현은 삼가는 게 좋겠지만, 이 책을 언급하면서 ‘기념비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는 어렵다. 이 기념비적 저작에서 핑커는 ⓐ지난 500년 동안 인류의 폭력과 최악의 참상이 꾸준히 줄었고, ⓑ그렇게 바뀌기 이전의 전쟁과 야만성은 인간 종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어다고 주장했다.
킬리와 핑커는 선사시대 부족사회들의 야만성을 풍성하게 기록했다. 복합 골절이 있는 유골, 함몰된 두개골, ‘방어‘ 골절이 있는 뼈(타격을 막으려고 팔을 쳐들 때 생기는 골절이다), 돌로 된 발사물이 박힌 뼈 등이 나온 공동 매장지를 수집한 것이다. 어떤 매장지들은 전투의 결과로 보인다. 젊은 성인 남성의 유골이 많이 나온 것들이 그렇다. 또 어떤 매장지들은 무차별 학살의 결과로 보인다. 살해된 흔적이 있는 유골들이 남녀노소 다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매장지들은 식인 행위를 암시하는 듯하다.
각자 독자적으로 기존 문헌을 조사한 킬리와 핑커는 우크라이나, 프랑스, 스웨덴, 니제르, 인도, 유럽과의 접촉 이전 아메리카의 여러 장소에서 선사 시대 부족들이 저지른 폭력의 증거를 찾아냈다. 그 장소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만 2000년 사이에서 1만 4000년 된 유적지인 제벨 사하바다. 수단 북부 나일 강가의 그 묘지에서는 남자, 여자, 아이의 유골 59구가 발굴되었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는 뼈에 돌로 된 발사물이 박혀 있었다. 한편 학살 장소들 중 가장 큰 곳은 사우스다코타의 700년 된 유적지 크로 크��으로, 400구가 넘는 유골이 한데 묻혀 있었는데 그중 60%는 폭력적 죽음을 맞았다는 증거를 보였다. 킬리와 핑커가 조사한 총 21개 장소들에서 발굴된 유골 중 약 15%는 ’전쟁으로 인한 사망’의 증거를 보였다. 물론 전쟁에서 죽는다고 해서 반드시 골절이나 발사물이 있으란 법은 없으므로, 실제 전쟁 사망자 비율은 이보다 더 높았을 수도 있다.
킬리와 핑커는 또 선사시대 정착지들이 종종 방책과 요새를 건설하여 스스로를 방어하려고 했다는 증거도 수집했다. 선사시대 폭력의 간판 격인 외치도 빼놓을 수 없다. 5300년 된 티롤의 ’아이스맨’ 외치는 1991년에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국경의 빙하가 녹으면서 발견되었다. 외치의 어깨에는 박힌지 얼마 되지 않은 화살촉이 꽂혀 있었다.
그렇다면 킬리와 핑커는 문명이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전쟁으로 인한 대량 사망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더 중요한 점은 두 사람 다 그동안 고고학자들이 이 증거를 무시해왔다고 은근히 주장한 것이었다(킬리의 책은 부제부터까지 ’평화로운 야만인이라는 신화‘였다). 킬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고학자들은 왜 이렇게 ”과거를 평화화”했을까? 7장에서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 사회과학자들이 파시즘의 뿌리를 이해하려고 애썼다는 얘기를 한 적 있다. 킬리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 고고학자들이 그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린 나머지 인류가 오래전부터 제2차세계대전을 준비해왔다는 증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본다. 킬리보다 한 세대 아래인 핑커의 견해는 어떨까? 선사시대 폭력을 은폐하는 오늘날의 분위기는 현재 고고학계의 원로들이 약에 취하고 존 레넌의 <이매진>을 듣던 학창시절에 향수를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킬리와 핑커이 주장에 많은 저명 고고학자들이 강하게 반발하여, 두 사람이 “과거를 전쟁화”한다고 비판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낸 사람은 ‘핑커의 목록: 선사시대 전쟁 사망자 비율을 과장하다‘와 같은 제목의 글들을 발표한 럿거스대학교의 R.브라이언 퍼커슨이었다. 킬리와 핑커가 비판받은 지점은 여러 가지다.
a. 전쟁의 증거라고 제시된 매장지들 중 일부에서는 사실 폭력적 사망으로 인한 유골이 딱 한 구 발견되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살인이었음을 암시하는 증거다.
b. 폭력적 사망으로 판단하는 기준은 중 하나는 유골이 화살촉과 가까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공물 중 다수는 사실 다른 용도로 만들어진 도구였거나 그냥 부스러기였다. 예를 들어 , 제멜 사하바를 발굴했던 프레드 웬도프는 유골과 관련된다고 여겨지는 발사물 중 대부분은 그저 무의미한 부스러기라고 보았다.
c. 골절된 뼈들 중에서 나은 것이 많았다. 그런 뼈는 전쟁의 증거가 아니라 많은 부족사회에서 시행했던 의례적 전투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d. 인간의 뼈를 갉아먹는 것이 다른 인간의 육식동물이었지를 가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100년경의 푸에블로 원��민 마을에서 식인 행위가 있었음을 증명한 연구는 그러느라 갖은 애를 썼는데, 그곳에서 발굴된 인분에 인간의 미오글로빈, 즉 근육 단백질이 들어 있음을 확인한 것이 증거이다. 그곳 사람들이 인간의 살을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식인 행위가 분명하게 확인되는 경우라도, 그것이 외보적 행위인지 내부적 행위인지는(정복한 적을 잡아먹은 것인지 아니면 몇몇 부족 문화의 풍습처럼 죽은 친척을 먹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e. 가장 중요한 비판은 킬리와 핑커가 전체 문헌을 살피지 않고 전쟁 사망자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매장지들만 골라서 데이터를 취사선택했다는 것이다.[*그가 데이터를 임의로 취사선택했다는 비판에 핑커를 이렇게 답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내가 찾을 수 있었떤 모든 고고학 및 인류학 문헌에 발표된 모든 폭력적 죽음의 인구 당 비율 추정치가 포함되었다.”(S. Pinker, “Violence: Clarfied,” Sci 338(2012): 327) 만약 내가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면, 이 대답은 약간 경솔하게 느껴진다. 좀 익살스럽게 표현하자면, 이것은 퀘이커교도들을 대상으로 해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의 연구들이 발표된 적 없기 때문에 폭력 분석에서 그들을 제외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퀘이커 공동체 내에서 갱단 스타일의 나이트클럽 처형으로 인한 사망 사건의 인구당 발생률 추정지: 0, 무인항공기 무사일 공격으로 인한 사망: 0, 도둑맞은 플로토늄으로 만들어진 방사능 폴탄을 인한 사망: 0 ······] 그 대신 전 세계 수백 개의 매장지에서 발견된 수천 구의 선사시대 유골을 모두 포함하면, 폭력적 사망의 비율은 15%보다 훨씬 더 낮아진다. 게다가 전쟁과 같은 폭력의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 지역과 시대도 있다. 비판자들이 킬리와 핑커의 가장 큰 결론을 반박하면서 은근히 고소하게 느꼈다는 것이 행간에서 느껴진다(가령 퍼거슨은 앞서 언급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레반트 남부에서는 1만 년 동안 ’이곳에 전쟁이 있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례가 단 하나도 없었다. 내 말이 틀렸는가? 그렇다면 장소를 대보라“). 따라서 비판자들은 인류 문명 이전에는 전쟁이 드물었다고 결론 내린다. 이에 대해 킬리와 핑커의 지지자들은 크로 크릭이나 제벨 사하바 같은 피바다를 무시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또 (다른 많은 매장지들에서 초기 전쟁이 있었는지에 대한)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372~377쪽)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있어서 현대의 수렵채집인들은 어떨까? 1970년대까지는 수렵채집인들이 평화롭고, 협동적이고, 평등주의적이라는 것이 분명한 대답이었다. 집단 간 유동성은 개인 간 폭력을 예방하는 안전밸브로 기능하고(서로 죽일 듯 대립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한 명이 다른 집단으로 옮기면 된다), 유랑 생활은 집단 간 폭력을 예방하는 안전밸브로 기능한다(이웃 집단과 전쟁을 벌이는 대신 그냥 다른 계곡으로 옮겨서 ���냥하면 된다).
그중에서도 멋진 수렵채집인의 기수로 꼽힌 것은 칼라하리사막의 !쿵족이었다.[*!쿵족은 흡착음이 있는 언어를 쓴다. 이름 앞에 붙은 느낌표가 바로 흡착음 기호다. ’부시먼’이라는 비공식 명칭으로 알려진 그들은 보츠와나, 나미비아, 앙골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퍼져 있는 토착 부족들의 통칭인 코이산 문화의 일부다. <부시맨>이라는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이 이 !쿵족이다. ‘!쿵‘이 가장 널리 쓰이는 이름이긴 하지만, 부족민 자신들과 오늘날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은 그 대신 ’주호안시‘라는 이름을 쓴다.] 이들에 과한 초기의 논문 제목―엘리자베스 마셜 토머스의 1959년 작 『무해한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다.[*내가 다닌 대학의 인류학과가 !쿵족의 본거지였던 터라, 나는 그 애정을 더 넓혀서 아프리카 수렵채집 부족이라면 덮어놓고 껌뻑 죽는 사람이 되었다(그들이 모두 키가 작다는 사실이 한몫했던 것 같다). 지금은 소수만 남은 수렵채집 부족으로, 케냐의 세렝게티 북부 숲에서 사는 ‘은도로보’족 혹은 ‘오키에크’족이 있다. 이들은 이웃 마사이족과 기묘한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가끔 숲에서 나와 마사이족과 물물교환을 하거나, 마사이족의 일부 의례에서 샤먼 역할을 맡는 것이다. 이들은 키가 작고, 과묵하고, 동물 가죽을 입는다. 키가 훌쩍 크고 창을 쓰는 마사이족이 이 부족 앞에서 동요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나는 너무너무 즐거웠다. 내 마사이 친구들은 내가 은도로보족에게 집착하는 걸 놀리곤 했다.] !쿵족과 야노마미족의 대비는 존 바에즈와 섹스 피스톨스의 대비를 연상시켰다.
!쿵족에 대한, 나아가 수렵채집인 전반에 대한 이런 견해는 이후 자연히 수정되었다. 현장 연구의 역사가 충분히 길어지면서 수렵채집인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보고되었기 때문인데, 이 점은 예일대학교의 캐럴 엠버가 1978년 쓴 책에서 잘 지적했다. 연구자가 가령 서른 명으로 구성된 집단을 관찰한다고 하자. 그들의 살인율이 설령 디트로이트에 맞먹는다고 해도(이런 비교에서 늘 언급되는 기준이다), 인구가 적기에 그 현상이 관찰되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수렵채집인의 폭력성을 인정하는 것은 1960년대 인류학계의 낭만주의를 일소하는 것, 즉 늑대와 함께 춤을 추고자 객관성을 내버렸던 인류학자들의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핑커가 자료를 종합할 무렵, 수렵채집인의 폭력성은 학계가 인정하는 사실이 되어 있었다. 수렵채집인의 전쟁 사망자 비율은 평균 15%가량이라고 여겨졌고, 이것은 근대 서구사회들보다 한참 높은 수준이었다. 현재의 수렵채집인들에게도 폭력성이 있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 내내 전쟁과 폭력성이 상존했다고 보는 홉스식 견해를 지지하는 묵직한 증거가 되었다.
비판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 잘못된 명명. 핑커, 킬링, 볼스가 언급한 수렵채집사회들 중 일부는 사실 수렵-원예농경 사회다.
· 수렵채집사회의 전쟁이라고 언급된 사례들 중 다수는 더 면밀히 살펴보면 사망자가 한 명뿐인 살인에 해당한다.
· 아메리카대륙 대평원의 폭력적 수렵채집 문화들 중 일부는 홍적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중요한 무언가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전통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길들인 말을 타고 싸웠다.
· 비서구의 농부나 목축민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수렵채집인은 우리 선조와 동일하지 않다. 지난 1만 년 동안 발명된 무기가 교역을 통해 그들에게 흘러들었다. 대부분의 수렵채집 문화들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농부들과 목축민들에게 계속 쫓겨난 터라, 점점 더 척박하고 자원이 부족한 생태계로 내몰렸다.
· 여기서도 데이터 취사선택의 문제가 있다. 평화로운 수렵채집 문화들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 가장 중요한 점은, 수렵채집사회가 한 종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원조는 유랑하는 수렵채집 집단으로, 그 역사는 수십만 년 저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그다음에 말을 타는 수렵채집인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등장했다. ‘복합 수렵채집‘ 사회도 있다. 이들은 폭력적이고, 그다지 평등하지 않고, 정주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원조와 다르다. 이 차이는 이들이 보통 풍요로운 식량 공급원을 차지하고 앉아서 그것을 외부인으로부터 지키기 때문에 생겨난다. 순수한 수렵채집사회로부터 이행한 형태인 것이다. 그런데 엠버, 킬링, 핑커가 언급한 문화들 중 다수가 이런 복한 수렵채집사회였다.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케냐 북부의 1만 년 된 학살 유적지인 나타루크다. 이곳에서는 땅에 묻히지 않은 27구의 유골이 발굴되었는데, 모두 곤봉이나 칼이나 돌로 딘 발사물에 맞아서 살해된 유골이었다. 피해자들은 투르카나호수의 얕은 만에 정주하여 산 수렵채집인이었다. 그곳은 고기를 잡기 쉽고, 물 마시러 오는 야생동물이 많아서 사냥하기도 좋은 땅이었다. 외부인들이 완력을 써서라도 비집고 들어오려고 할 만한 부동산이었다.
수렵채집인들의 폭력을 가장 세심하게 분석하여 가장 큰 통찰을 끌어낸 것은 프라이, 그리고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크리스토퍼 보엠이었다. 그들이 보여준 그림은 좀 복잡하다.
…
2012년 책 『도덕의 탄생』에서 보엠도 비슷한 분석 결과를 보여주었다. 보엠은 프라이보다 약간 덜 엄격한 기준을 써서 약 50곳의 ’순수한‘ 유랑 수렵채집 문화를 수집했다(북극의 이누이트 집단들을 치우치게 많이 포함한 목록이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폭력은 주로 남자들이 저질렀다. 그중에서도 여자와 관련된 살인이 가장 흔했다.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싸웠거나, 이웃 집단에서 여자를 납치하려고 했거나, 물론 남편이 아내를 죽인 경우도 있었는데, 보통 간통을 의심해서였다. 여아 살해도 있고, 마녀로 고발된 여성이 살해된 경우도 있었다. 누가 식량을 훔쳤거나 식량을 나눠주기를 ��부했다는 이유로 자행된 살인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살해된 사람의 친족이 복수로 살인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프라이도 보엠도, 수렵채집인들이 심각한 규범 위반에 대해서 마치 사형을 집행하듯이 사람을 죽인 경우도 있다고 보고했다. 그렇다면 유랑하는 수렵채집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규범은 무엇일까? 공정함, 간접적 이타주의, 그리고 횡포를 삼가는 것이다.
공정함. 앞서 말했듯이, 수렵채집인들은 친족이 아닌 사이에도 협동하여 사냥하고 나누는 행위를 개척한 사람들이다. 특히 고기에 대해서 그렇다. 성공한 사냥꾼은 으레 성공하지 못한 사냥꾼들과 (또한 그 가족들과) 고기를 나눈다. 사냥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사람이 꼭 남들보다 고기를 더 많이 갖지는 않는다. 결정적으로, 고기 배분을 결정하는 것은 가장 성공적인 사냥꾼의 몫이 아니다. 보통 제삼자가 그 일을 맡는다. 이 관습이 오래되었음을 암시하는 멋진 단서가 있다. 인류가 40만 년 전에 큰 동물을 사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있는데, 그걸 보면 도축된 동물의 뼈에 베인 자국이 사방팔방으로 혼란스럽게 나 있다. 모두가 무질서하게 고기를 잘라 먹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흔적이다. 하지만 20만 년 전으로 오면, 현재의 수렵채집인들이 보이는 패턴이 등장한다. 베인 자국이 일정한 간격으로 평행하게 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 사람이 도맡아서 도축하고 고기를 배분했음을 암시하는 흔적이다.
순수한 수렵채집인들에게 나눔이 손쉬운 일이라는 말은 아니다. 가령 보엠에 따르면, !쿵족은 자신이 고기를 손해봤다는 불평을 쉴새없이 늘어놓는다고 한다. 사회적 규제에 따르는 배경 잡음인 셈이다.
간접적 이타주의. 다음 장에서 우리는 두 개인이 직접 주고받는 상호 이타주의를 알아볼 것이다. 그런데 유랑하는 수렵채집인들은 그 대신 간접적 이타주의에 능하다는 것이 보엠의 지적이다. A라는 사람이 B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했다면, B의 사회적 의무는 A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것이라기보다는 C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C는 또 D에게 베풀고, D는······ 이렇게 계속 이어진다. 이처럼 집단을 안정화하는 협력관계는 큰 동물을 잡는 사냥꾼들에게 알맞다. 그 세계에는 두 가지 규칙이 적용되기 때문인데, ⓐ어떤 한 사람의 사냥은 보통 성공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것, ⓑ그가 드물게 성공했을 때는 제 가족이 먹고도 남는 양의 고기를 얻게 되므로 주변에 나누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수렵채집인이 미래의 굶주림을 예방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투자는 지금 남들의 배에 고기를 채워주는 것이다.
횡포를 삼가는 것. 역사 다음 장에서 살펴볼 텐데, 인간은 진화적 선택압에 따라 속임수를(즉 호혜적 관계에서 제 몫을 다하지 않는 상대를) 감지하는 능력을 키워왔다. 그런데 유랑하는 수렵채집인들에게는 은밀한 속임수를 단속하는 것보다 노골적인 겁박과 권력 지향 행위를 단속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수렵채집인들은 강자가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경계한다.
수렵채집사회들은 공정함, 간접적 이타주의, 횡포 금지를 엄수하기 위해서 집단적으로 애쓴다.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탁월한 규범 강제 메커니즘인 소문이다. 수렵채집인들은 쉼없이 소문을 주고받는다. 유타대학교의 폴리 위스너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내용은 아니나다를까 주로 지위가 높은 개린들이 어떻게 규범을 위반했는가 하는 것이다. 모닥불을 둘러싸고 『피플』지가 펼쳐진 것이라고나 할까.[*보엠은 인류학자들이 연구 대상자들의 소문을 접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그들의 사저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나는 개코원숭이를 연구하던 시절에 마사이족 남자들과 함께 야영하며 수많은 계절을 났다. 나는 그들과 비교적 친했고, 그들의 공동체에 어떤 일이 있는지를 들어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내 미래의 아내도 현장에 오기 시작했는데, 아내가 그곳의 몇몇 여자들과 친구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진짜배기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누가 누구랑 잤네, 안 잤네 하는 소문 말이다.] 소문은 다양한 목적을 수행한다. 현실을 혹인할 수 있도록 하고(“내가 이상한 거야, 아니면 그 인간이 멍청이야?”), 소식을 전하고(“오늘 사냥에서 하필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에 발에 쥐가 난 인간이 누구게?”), 합의를 구축한다(“이 인간에게 뭔가 손을 쓸 필요가 있어”). 소문은 규범 강제의 무기다.
수렵채집 문화들도 비슷한 행동을 취한다. 규범을 어긴 자를 집단적으로 비판하고, 창피를 추거나 조롱하고, 배척하거나 따돌리고, 고기를 나눠주지 않고, 치명적이지 않은 물리적 처벌을 가하고, 집단에서 내쫓고, 그러고도 안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죽인다(집단 전체가 가담하거나 지정된 처형자가 수행한다).
보엠은 순수한 수렵채집 문화들의 절반 가까이가 그런 사법적 살인을 시행한다고 보고했다. 어떤 위반 행위가 그 대상일까? 살인, 권력을 독차지하려는 시도, 악의로 마법을 부리는 행위, 도둑질, 자신의 것을 나누기를 거부하는 행위, 외부인에게 집단을 배신하는 행위, 그리고 물론 성적 금기를 어기는 행위가 그에 해당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다른 개입 조치들이 반복적으로 실패했을 때, 수렵채집인들은 결국 죽음으로 처벌한다.
(388~395쪽)
행동 - 로버트 새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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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_dkxh: 요즘 나의 일상 좋은 날씨와 녹음 그리고 친한동생이 놓고 간 반쪽이케이스 에어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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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나의 삶 속에서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환경과 조건이 남들보다 더 낫고 바르다고 확신한 이들이었다. 그들을 지나치며 깨달았다. 주어진 환경의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었다. 스스로 깨닫고 부딪치고 성찰할 기회를 누리지 못하거나 차단하는 태도가 문제였다. 누군가는 감당하지 못할 고난이 닥쳤을 때 대응하는 법에 대한 어떠한 매뉴얼도, 또 그걸 마련할 필요도 없이 살아왔다. 안락�� 환경과 부모의 지극한 사랑과 보호 속에서, 혹은 지나친 확신과 배제 속에서, 앞으로의 삶에서조차 굳이 그 필요성을 상상하지 않았다. 가장 간편한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완벽한 자신의 무리가 아닌 다른 무리에게 고난과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법을 알고 있으니까.
세계가 좁은 사람일수록 타인을 배제하는데 익숙하다. 관용을 이론으로 배운 자들은 자신의 행복과 안전만큼만 관용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위협 당했다고 느낄 때 누구보다도 방어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이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복과 안전만큼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 타인의 행복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부정되고 희생되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지난 세월 동안 나를 살아남게 하고 함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간 이들은 어쩌면 모두, 불균일한 삶을 안팎으로 거쳐 왔다. 그와 같은 과정 속에서 겸허하기를 배우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갱신하고 회의하고,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다듬어온 사람들이었다. 순조롭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삶을 믿고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열린 시선과 마음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노력과 애정을 기울일 수 있다. 세계의 확장은 주어진 안락함과 풍요로움에 의해서가 아니다. 얼마만큼 스스로, 그리고 타인과 연대하며 삶을 개척해 나갔는가에 있다.
삶은 날씨와 같다. 언제나 화창하지만은 않다. 누군가는 캘리포니아 남부처럼 화창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폭우가 쏟아지고 지진이 일어나고 화재가 발생한다. 건조하고 화창한 날씨이기에 화재는 더욱 빠��게 번지고 쉽게 진압되지 않는다. 고난은 그런 것이다. 당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에 따라 저절로 길들고 당신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자랐는가를 알아보고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만만한 무언가가 아니다. 오히려 고난은, 잘 받아들이고 때로는 길들일 수 있는 자만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야생의 생명체와도 같다. 고난의 극복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면, 그건 그에 대해 겸허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일시적 축복이다. 오만함 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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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집 앞 우동집 가려고 나왔던 외출��데, 어쩌다 여기까지...... 아무튼 종종 우리의 대화 속에서 “그때 그 돌냄비우동 맛있었지”의 주인공을 발견한 굉장한 하루였어. 너무 더운 날씨와 긴 웨이팅으로 포기한 우동카덴과 닫혀있던 피엘라벤도 모두 이걸 위해서 였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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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여행을 넘나드는 여름 골프웨어의 새로운 진화
패션 브랜드들이 점점 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폭넓게 고려하며 제품을 기획하는 추세 속에서, 골프웨어 역시 필드에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스윙을 위한 기능성에 집중하던 기존의 골프웨어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휴가, 여행, 일상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골프룩이 주목받고 있다.
다음 이미테이션에 대한 정보는 이곳에서 확인해 보세요.

이번 시즌 주목할 만한 변화는 바로 컬러의 확장이다. 보통 골프웨어 하면 떠오르는 기본적인 블랙, 화이트, 네이비 컬러에서 탈피해, 다양한 자연의 색감을 입힌 제품들이 속�� 등장하고 있다. 라이트 블루, 민트, 라임, 선셋 오렌지, 샌드 베이지 등 여행지의 하늘, 바다, 숲, 석양에서 영감을 받은 컬러들이 메인 팔레트로 채택되며 한층 생동감 넘치는 무드를 선사한다. 이러한 컬러들은 휴가지 리조트나 도심 속 카페 테라스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실내외 경계를 허문 골프웨어의 확장을 보여준다.
기능성 역시 빠질 수 없다. 무더운 여름철 라운딩과 여행 중 높은 기온과 습도, 예상치 못한 비 소식까지 고려한 소재 기술이 적용된다. 신축성과 통기성, 냉감 기능이 결합된 소재들은 장시간 착용해도 쾌적함을 유지해주며, 생활 방수 기능까지 더해져 기상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특히 스트레치 기능은 스윙이나 이동 시 활동성을 극대화해주어 필드 위에서뿐 아니라 비행기, 기차 등 장거리 이동 중에도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한다.
실루엣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기존의 딱 떨어지는 슬림핏 대신 세미오버핏, 릴랙스 핏 등 조금 여유로운 실루엣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실루엣은 체형 커버와 함께 트렌디한 감각까지 충족시켜주어 젊은 골퍼층뿐 아니라 패션에 민감한 일반 소비자층까지 폭넓게 끌어안는다. 특히 레이어드 스타일링이 가능하도록 디자인된 베스트, 모크넥 티셔츠, 반집업 아우터 등은 다양한 날씨와 장소에서 유용하게 활용 가능하다.
이번 시즌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는 아이템은 ‘쿨 터치 하이브리드 베스트’다. 가볍고 시원한 냉감 스트레치 원단을 사용해 착용감을 대폭 개선했으며, 어깨를 덮는 캡소매 디자인이 스윙 시 소매 말림을 방지한다. 밑단 시보리 처리로 활동성을 높인 점도 돋보인다. 여기에 생활 방수 기능이 더해져 비 예보가 있는 날에도 부담 없이 착용할 수 있어 실용성 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함께 출시된 ‘썬프로텍션 모크넥 반팔 티셔츠’도 주목할 만하다. 부드러운 촉감과 세탁 후 변형이 적은 고기능성 소재를 사용했으며, 빠른 흡습속건 기능 덕분에 땀이 많이 나는 한여름에도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다. 목을 살짝 덮는 모크넥 디자인은 햇빛 노출이 많은 라운딩이나 여행지에서도 자외선 차단에 도움을 준다.
이처럼 여름 골프웨어는 이제 단순히 경기용 유니폼의 개념을 넘어, '여행의 동반자'로서의 역할까지 확대되고 있다. 여행지의 공항, 리조트 라운지, 해변 카페, 골프장, 심지어는 일상적인 주말 산책길까지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는 것이다. 브랜드들은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골프웨어가 아닌 '라이프웨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결국 이번 시즌 골프웨어 트렌드는 기능성과 스타일, 활용성의 경계를 허문 ‘일상과 여행을 잇는 옷’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 벌로 다양한 장소와 상황을 소화하고 싶은 현대 소비자의 니즈에 정확히 부합하는 흐름이다. 앞으로의 골프웨어 시장 역시 이러한 라이프스타일 접목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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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주스"
*수박주스
바야흐로 수박의 계절이다.
여름의 한창인 시간에 있는데 왠지모르게 여름느낌이 나질 않는다.
저작권 때문에 크리스마스 주간에 캐롤이 끊긴 느낌이랄까,
혐오의 시대에 모두가 조심스러워서일까,
여름 분위기를 내던 것���도 요란떨지 않는다.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난 후 익숙한 카페에서 수박주스를 시켰다.
잔뜩 빨간 주스를 마셨는데 세상에 수박맛 시럽을 섞은 것이었다.
세상이 나를 배신한 것 같은 차가움이었다.
이제 가짜수박도 비싼돈을 주고 먹어야 한다니, 세상이 조금 팍팍해지곤 한다.
묘한 날이다.
-Ram
*수박주스
그 지역 일기예보를 보니 매일 비 소식이 있었다. 심지어 하루 시간별 예보에서도 비가 온다고 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물론 여느 지역 일기예보들과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비 예보가 빗나가고 해가 쨍쨍 찌는 날이 있는 바람에 늘 순간의 날씨와 밀당하기 바빴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오전에 기적적으로 햇볕이 강하게 쬐는 하늘을 보자마자 '테니스장 바닥이 마르게 제발 2시간 이상만 햇볕 쬐라'라고 기원했다. 잠시 먹구름이 끼었다, 걷혔다 했지만 감사하게도 그날은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았고, 그곳에 있는 하나뿐인 테니스장은 하드코트였기 때문에 바닥이 마르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코트장 옆에 작은 마트에서 운영하는 곳이지만 바닥에 고인 물을 밀 수 있는 밀대도 깨알같이 있었고, 밀대로 열심히 바닥을 밀고 있자 주인아주머니께서 빗자루를 가져오셔서 물을 쓸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쳤나 싶을 정도로 자세도 공도 엉망이었고, 중간중간 서브할 때 머리 꼭대기에서 비추는 강한 햇볕 때문에 공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신나게 깔깔대며 두 시간 동안 열심히 단식을 쳤고, 땀을 잔뜩 흘리고 코트에서 나와 마트에 가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코트 이용료를 지불하고 마트 앞에 세워둔 작고 귀여운 스쿠터에 올라탔다. 코트 옆에 휴식공간에 있는 물은 이미 다 마셨지만 그래도 목이 타서 편의점을 갈까 생각했는데 내 눈에 들어온 건 땡모반을 파는 가게! 가게 앞에 스쿠터를 세우고 내려 땡모반을 주문했다. 가게 바깥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마시던 그때 그 땡모반이란. 그때 찍어둔 땡모반 사진을 지금 봐도 감탄하며 먹던 그 차갑고 단 땡모반이 주는 행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Hee
이번 주는 휴재입니다.
-Ho
*수박주스
남편이랑 방콕에 다녀왔다. 우리둘다 최애 도시인곳을 같이 가니까 감회가 너무 새로웠다.
방콕은 늘 새로운게 생겨서 가고싶은곳이 넘쳐나지만 고전은 언제나 있다.
타이티와 수박주스는 보일 때마다 먹어줘야 한다. 노스이스트라는 식당을 좋아하는데 그곳의 수박주스는 양도 많고 맛있어서 두명이서 가면 하나 시켜 나��먹는걸 추천한다.
나는 남편이 뭔가 단걸 먹을때 그걸 보는게 귀여워서 일부러 군것질을 권하는 편인데 좋아하는 수박 주스를 먹는 모습을 보니 만족스러웠다.
한국에서는 이디아가 진짜 수박을 써서 수박주스가 맛있다하고 메가커피가 최악이라한다.
날이 꿉꿉하고 더울때는 수박이 최고다. 여름이 가기전에 수박을 많이 먹어야지.
이 더움이 언젠가 끝난다 생각하니 더위도 즐길만 하다. 모든게 그렇지 않을까. 좋은것도 나쁜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러니 현재를 최대한 즐기고 걱정은 내려놓아야지.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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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에 맞추다, 감성에 닿다. 웨더 패션의 진화
패션 시장이 계절과 날씨에 맞춘 기능성 중심의 접근에서 감성과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형태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날씨라는 변수가 패션 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 기존에는 ‘비 오는 날 신는 장화’ 정도로 제한됐던 웨더 패션이, 지금은 기후 변화와 소비자 경험을 바탕으로 의류·잡화·슈즈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유통가에서는 ‘날씨 기반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무더위, 장마, 혹한기 등 극단적인 기후가 잦아지면서 그에 대응하는 상품 라인업 역시 진화하고 있다. 방수 기능을 넘어 디자인과 활용도까지 고려한 아이템이 늘어나고 있으며, 실용성과 감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이 관건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움직임은 기능성 웨어를 감각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다. 예를 들어, 고어텍스 소재를 활용한 트렌치코트, 리플렉티브 디테일을 더한 레인 재킷, 방풍 기능이 탑재된 캐주얼 셋업 등은 도심에서도 이질감 없이 스타일링할 수 있어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습기나 열기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스마트 소재를 도입한 웨더웨어도 늘어나며 기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브랜드의 리테일 전략 역시 이 같은 기후 패션 트렌드를 반영해 진화 중이다. 최근 몇몇 브랜드들은 날씨와 관련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을 구성하는 한편, 매장 내에서 소비자의 착용 피드백을 수집해 향후 기획 방향에 반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판매’가 아닌, 소비자와 함께 상품을 만들어가는 ‘참여형 리테일’로의 전환을 뜻한다.
더 나아가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무는 옴니채널 전략도 강화되고 있다. 오프라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고객의 체형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팅을 유도하고, 온라인에서는 실시간 날씨에 맞춘 제품 추천 알고리즘을 도입하는 식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통기성과 흡습성 중심의 슈즈 라인업이, 겨울철에는 보온성과 방수 기능을 강조한 부츠류가 메인으로 큐레이션된다.
지속가능성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우비, 재활용 고무를 이용한 레인부츠 등은 환경에 대한 책임을 패션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브랜드는 이를 통해 단순한 기능성 소비를 넘어서 ‘의미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MZ세대와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결국 웨더 패션은 더 이상 악천후에 대응하는 ‘기능’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후라는 필연적 조건에 감성과 기술을 입혀, 우리의 일상을 더 쾌적하고 스타일리시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문화다. 소비자는 변화하는 날씨에 맞춰 옷장을 정비하고, 브랜드는 이 흐름 속에서 새로운 시장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날씨는 늘 변하지만, 스타일은 그 위에 머문다. 그리고 그 스타일은 이제, 기후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공지사항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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