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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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shikkim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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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이란 무엇인가(2445)
한국여행중인 지난 3월 1일 숭의여대 음악당에서 열린 정부 공식 삼일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혹시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행사를 기획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삼일운동 당시 사람들로 분장한 뮤지컬 배우들이 연이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송하는데 “남 탓을 하지 않는다”는 대목을 낭송하면서도 어쩐지 ‘남 탓을 하는’ 듯한 가락과 몸짓이었다. 행사의 전체 분위기는 울분에 차 있고 억울하며, 나아가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축가는 “친구야, 내가 위로가 되어 줄게, 내가 항상 너와 함께할게”라는 그런 노래였다.
나는 이런 퍼포먼스가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행사에 어울리는지 의심을 해 보았다. 내 마음속으로는 이상재ㆍ서재필ㆍ이승만ㆍ안창호 같은 독립운동의 창시자들이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분들은 암담한 순간에도 꿋꿋한 기상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개인의 자립과 자조를 부르짖고, 모두가 신한국인으로 거듭나자고 호소했다.
그러면 왜 나라가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들이 자립ㆍ자조하는 근대시민으로 거듭나야만 했던가. 그것은 전체주의 독재국가, 혹은 전제(專制) 왕정을 다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 한반도에서 일찍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완전히 새로운 나라, 민주공화국을 세워서 독립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당시의 조선 사람들의 모습으로는 독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먼저 오랜 세월 조선왕국의 신민(臣民)으로 살아온 조선인들이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자유시민, 신한국인으로 거듭나야만 민주공화국을 세울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도산 안창호 선생은 죽어도 거짓말을 하지 말자고 외쳤다. 개인이 독립해 거래도 하고 계약도 하고 약속도 지키고 책임도 져야만 한다고 가르쳤다,
다시 의문을 가져 보자. 그러면 독립운동의 창시자들은 왜 굳이 수천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저 멀리 고대 아테네ㆍ로마의 옛 이야기에 나오는 전설이고 유럽과 미국에서 어려운 과정으로 되살려낸 민주공화국을 세우려고 했던가. 왜 불가능한 목표를 세웠던가. 그것은 한반도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중국, 그 심장부 베이징에 가장 가까이 존재한다는 지정학적 숙명에서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 지정학적 숙명은 원ㆍ명ㆍ청 세 왕조에 걸쳤으니 가위 ‘천 년의 굴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중화제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한반도의 ‘안정’은 자기 나라 국가안보의 핵심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는 국민개병제의 민주공화국이 돼야만 우리나라는 독립할 수 있는 것이다. 아테네만이 페르시아의 백만 대군을 물리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항일에 다급해 독립운동의 기본 개념이 다소 흐려지기도 했지만, 운이 좋아서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비록 반쪽이나마 민주공화국을 세우게 됐다. 민주공화국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ㆍ법률 제도적 조건도 갖추게 됐다. 그리고 지난 77년 기적의 발전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새삼 깨닫게 된다. 거대한 ‘문명의 전환’은 쉽지 않다. 한순간에 일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으면서 해양문명을 받아들여 동서양 문명의 융합이 일어나는 곳이 됐고, 과학기술과 산업경제도 발전했지만 동시에 문화·정신적으로는 조선, 조선인으로 퇴행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벌판을 너무 빨리 달리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잠시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영혼이 뒤따라오기를 기다린다”고 하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는 너무 빨리 서구화됐고 해양문명을 받아들였고, 탈아입구(脫亞入歐)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이 따라오지 않으면, 그리고 독립운동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민주공화국은 위태롭다. 4/8/25/hwanshikkim.tumblr.co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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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oland ·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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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자] 울란바타르 이태준열사 기념관
이태준은 1907년 10월 1일 세브란스병원 의학교(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의술을 공부했다. 1909년 말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자 일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을 그 배후로 지목하여 체포한 후 모진 고문을 가했다. 1910년 2월에 석방된 안창호 선생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의사인 이태준이 치료했다. 이태준은 안창호 선생의 권유로 항일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의 자매단체 청년학우회에 가입했다. 1911년 6월 2일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제2회로 졸업하고 의술개업인허장(제92호)를 수여받았다.
이태준은 1912년에 세브란스병원 인턴으로 근무하던 중 중국 남경으로 망명하여 기독회의원에서 의사로 일을 했다. 그는 애국지사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1914년 몽골 후레(울란바토르의 옛 이름)에 정착한 후 의열단을 도와 독립운동을 했다. 또한 그는 동의의국(同義醫局)��라는 병원을 개설하였으며, 당시 몽골인들의 70~80%가 감염됐던 성병을 치료했다. 몽골인들은 이태준을 '신인(神人)'이요, '극락세계에서 강림한 여래불(如��佛)'이라 불렀다. 이러한 명성에 힘입어 그는 입헌군주제 하의 황제 복드(Bogd)칸의 주치의가 되었다.    
몽골에 있던 그의 병원은 독립운동가들의 숙박지요, 연락 거점이었다. 그는 수입의 전부를 독립운동 자금으로 전달했고, 각지 애국지사들과 연락망을 구축해 항일 독립자금 조달 등 외곽에서 폭넓게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20년 레닌 정부가 준 금괴를 가지고 상해를 방문한 이태준은 북경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1921년 일제와 손잡은 러시아 백군에 의해 암살당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출처 :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
#몽골 #울란바타르 #이태준 #백군 #안창호 #세브란스 #복드칸 #이태준열사 #기념관 #독립운동 #동의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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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maker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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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와 함께 독립의 길을 걷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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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0dav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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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네가 하는 일을 정성껏 하여라 -74주년 광복절 도산 안창호 명언- . .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지금의 어려운 시기가 더욱 빨리 지나갈 것입니다. #도산 을 입력하면 #도산공원맛집 이 제일 먼저 검색됩니다. #도산안창호 의 태그 수가 1000+입니다 #안창호 도 1000+ 우리의 독립운동가를 더 많은 사람들이 SNS에서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맛집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그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도산안창호 5000만 태그를 위하여! . . #도산안창호 #안창호 #독립운동 #독립운동가 #흥사단 #레오다브 #leodav #graffiti #데일리드로잉 #대한민국 #역사를잊은민족에게미래는없다 #드로잉 #그래피티 #그라피티 #아티스트 #예술가 #화가 #낙서화가 #위인프로젝트 #도산안창호프로젝트 #그림 #dailydrawing #drawing #sketch #스케치 #생각 #독립 (L.A.C Graffiti Studio에서) https://www.instagram.com/p/B_U--JaHlYA/?igshid=18r3mmqbsz8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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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byoungchul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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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유관순 #의사 #열사 님들을 비롯한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중에 20대에 많은 분들이 나라를 위해 활동했다. #정치개혁 #20대국회의원 #30대국회의원 #40대국회의원 이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끼지는 어느 정도 있었는데, 요즘은 왜 없을까요? 국민을 위한 봉사를 딱 몇 년간만 하고 국민으로 돌아가서 생업을 해야지, 직업정치인은 이제 좀 팍팍 줄어 들었으면 좋겠다. https://www.instagram.com/jung_byungchul_153/p/BwBkFcRl0wD/?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817ueo0mb5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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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dambiz-blog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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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을 지나는데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글이 있어 한장 찍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낙망하는 청년의 기를 다시 돌려 놓아야 할텐데...ㅠㅠ 앞이 안 보인다. https://www.instagram.com/p/BtI88XhFREb/?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186wws7rxz3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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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share-korea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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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이끈 '도산 안창호' 재조명할 영화 만들어진다(사진4장)
독립운동 이끈 ‘도산 안창호’ 재조명할 영화 만들어진다(사진4장)
▼사진출처: 연합뉴스 (이하) http://postshare.co.kr/wp/wp-content/themes/viralnova/js/ad_postmiddle_text.js 진승현 감독 “연통제 통해 재조명…내년 말 개봉 목표” (아산=연합뉴스) 김용윤 기자 =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하조직 연통제(聯通制) 요원의 첩보활동과 활약상을 통해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1878∼1938)의 또 다른 모습을 조명할 예정입니다.” 국무원령 1호 비밀조직인 연통제를 통해 안창호를 재조명할 영화가 만들어지게 돼 관심을 끌고 있다. http://postshare.co.kr/wp/wp-content/themes/viralnova/js/ad_google.js 호서대 문화예술학부 영상미디어전공 교수로 영상연출을 강의하는 진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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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shikkimus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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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이민선에 실은 미주한인의 꿈
김환식 장로 대한제국 젊은이 121명이 1902년 12월 22일 인천 월미도 해상에 정박한 일본 선박 겐카이마루(玄海丸)에 몸을 싣고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신체검사에 탈락한 19명을 제외하고 102명이 미국 상선 게일릭호로 옮겨 타 이듬해 1월 13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입항했다. 오랜 여정으로 건강이 악화한 9명이 되돌아가고 93명만이 오하우섬의 모쿨레이아 사탕수수 농장으로 투입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이민이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주들은 차이나타운을 형성해 미국인 상권을 위협하는 중국인과 파업이 잦은 일본인을 대신할 노동력을 한국에서 찾았다. 대한제국 조정도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터에 농장주들의 부탁을 받은 주한 미국공사 호러스 알렌이 건의하자 노동력을 수출하기로 했다. 고종은 미국인 사업가 데이비드 데슐러에게 모집과 송출 업무를 맡기는 한편 출입국 업무를 전담할 수민원을 궁내부에 신설했다. 주요 도시의 기차역, 항구, 시장 등에 이민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붙었으나 당시 한국인에게 수 만리 떨어진 태평양의 외딴 섬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데슐러의 부탁을 받은 인천내리교회 선교사 조지 존스는 하와이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비유하며 적극 권유했다. 첫 승선자 가운데 인천 출신이 86명이고 그중에서도 내리교회 신도가 50여 명이었다. 게일릭호를 시작으로 1905년 8월 8일 도착한 몽골리아호에 이르기까지 하와이 이민선들은 56회에 걸쳐 7천226명의 한인을 하와이에 내려놓았다. 신체검사에 불합격한 479명을 뺀 실제 이민자는 6천747명이었다. 일본은 하와이 일본인 노동자들의 세력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그러자 고종은 이민 금지령을 내렸다. 하와이는 한인 이민자들이 꿈꾸던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새벽부터 매일 12시간 동안 억센 수숫대를 잘라야 했고, 말도 통하지 않는 농장 감독자들의 비인간적 처우와 부당한 횡포에 시달렸다. 그래도 이들은 한인교회를 세워 공동체 결속을 다지고, 피땀 흘려 번 돈을 쪼개 독립자금에 보탰다. 1908년 3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와이 노동자 출신 전명운·장인환 의사가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한 것도 항일 열기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하와이 한인사회는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부분 혼기를 넘긴 총각이었으나 결혼할 길이 막막했다. 당시 미국에는 동양인과의 결혼을 막는 금혼법이 존재한 데다 결혼하러 모국을 다녀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농장주들은 음주·마약·범죄에 빠지는 노동자들이 생겨나자 작업 능률을 높이고자 사진 중매 결혼을 권장했다. 하와이 주정부도 신부들의 입국을 허가했다. 모국 처녀들은 중매쟁이 권유에 따라 신랑감 사진만 보고 편지로 결혼을 약속한 뒤 하와이 땅을 밟았다. 일명 '사진 신부'는 1910년 11월 28일 입항한 목포 출신 최사라를 시작으로 동양인배척법이 제정된 1924년까지 950명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사진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신랑의 모습에 실망하고 열악한 생활환경에 낙담했으나 고향에는 이미 결혼했다고 알려진 데다 되돌아갈 뱃삯도 없어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와이 이민자들이 가정을 이루자 한인 공동체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남편들이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아내들은 삯바느질과 빨래 등으로 생계를 돕고 2세들을 길렀다. 아이가 자라면서 학교도 속속 생겨났다. 한인들은 대륙으로도 진출해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로부터 110년이 지나는 동안 재미 한인사회는 엄청난 양적 성장과 질적 발전을 이뤘다. 2019년 외교부 집계에 따르면 재미동포는 254만6천982명이다. 이전에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였다가 1위로 올라섰다. 미국 안에서도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재미 한인사회가 2세, 3세, 4세로 내려가며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도 뿌리인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의 헌신 덕분이다. 2003년 1월 13일에는 100년 전 게일릭호의 하와이 도착을 기념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미주한인이민 100주년기념사업회는 그해 5월 9일 '미주 한인의 날'(The Korean American Day) 제정을 결의했다. 기념사업회를 토대로 출범한 미주한인재단은 제정안을 각계에 청원했다. 2003년 10월 22일 로스앤젤레스 시의회와 2004년 1월 12일 캘리포니아 주의회에 이어 2005년 12월 13일과 16일 연방 하원과 상원은 차례로 제정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인들이 미국 건설에 기여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내주 초 미국 각지에서는 한인 이민 117주년을 맞아 제15회 미주 한인의 날 기념행사가 펼쳐진다. 미주한인재단은 14일 워싱턴DC 연방하원의원회관 레이번빌딩에서 기념축전을 연다. 이희경 무용단 공연, 이문성의 궁중화와 종이문화재단 전시 등도 곁들여진다. 뉴욕한인회는 13일 기념식과 함께 우수 한인을 뽑아 시상한다. ���리포니아 주의회는 이날 '미주 한인의 날 기념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미주 한인 이민사 속에서 하와이 초기 이민자와 함께 잊지 말아야 할 세 인물이 있다. 서재필, 안창호, 이승만이다. 1884년 갑신정변에 실패한 서재필은 일본을 거쳐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890년 6월 10일 한국인 미국 시민권자 1호가 됐다. 1월 5일은 사망 69주기이고, 1월 7일은 탄생 156주년 기념일이다. 안창호는 1902년 미국으로 가는 뱃길에서 망망대해에 우뚝 솟은 하와이섬을 보고 호를 도산(島山)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는 공립협회와 대한인국민회 등을 창설해 미주 한인사회의 기틀을 다졌다. 2002년과 200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인터체인지'와 '안창호 우체국'이 각각 생겼으며, 2012년 1월 애틀랜타 마틴루서킹센터 명예의전당에 아시아인 최초로 헌액됐다. 2018년 8월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탄생일인 11월 9일을 '안창호의 날'로 선포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광복 전까지 36년 동안 미국 땅에 머무는 동안 25년간 하와이를 근거지로 삼았다. 1960년 4·19 혁명으로 물러난 뒤에도 하와이로 건너가 1965년 7월 19일 호놀룰루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인천과 하와이의 첫 글자를 딴 인하대는 이승만이 하와이에 설립해 운영하던 한인기독학원 처분 대금, 하와이 동포들의 성금, 인천시의 교지 기증, 국내 성금과 국고 보조 등으로 1954년 개교했다.(끝) 20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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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jrhgbasuy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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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에 수놓는 마음 - 최영애 길을 걷다 주운 것은 벌레 먹은 낙엽뿐인데 내 가슴은 당신을 불러 세워요 당신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아 새싹처럼 올라오는 마음 당신에게 전하는 마음 한 잔으로 청량한 가을 하늘을 수놓아요 도산안창호기념관 정의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 개설 및 설립목적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독립운동에 평생을 헌신한 안창호의 정신을 본받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고자 건립하였다. 도산안창호기념관은 후학들을 위한 역사교육의 전당으로 안창호의 사상을 계승하고 삶의 지표가 되는 산교육의 마당이 되고자 한다. 연원 및 변천 1947년 3월 10일 안창호의 위업을 기리고 정신을 보급할 목적으로 (사)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다. 기념사업회는 1971년도산공원 기공식을 갖고 1973년 11월 10일안창호 탄신 95주년을 맞아 망우리 공동묘지의 도산 선생 유해와 부인 이혜련 여사의 유해를 도산공원으로 이장하였다. 1997년 3월도산안창호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1998년 11월 9일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에 도산안창호기념관을 건립하였다. 2006년에는 서울특별시교육청 평생학습 협력기관 지정 및 2009년에는 서울특별시교육청 현장체험학습기관으로 등록하였다. 2008년에는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로 도산안창호기념관 및 도산 안창호 동상이 지정되었다. 2010년 전시관 교체작업을 진행하여 현대감각에 맞춘 새로운 전시관을 선보이고 있다. 기능과 역할 주요기능으로 안창호의 정신과 사상을 계승하기 위해 안창호의 유적·유품을 수집, 발굴하고 전시하고 있으며 학술활동으로는 안창호 관련 연구서적을 간행하고 학술발표회 개최하고 있다. 이밖에 교육프로그램과 현장체험학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나라사랑 겨레사랑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현 황 구조는 지상1층, 지하2층(건물면적 988.66 ㎡)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상1층(도산홀)에는 전시관, 영상실, 사무국, 지하1층(대성홀)에는 도산학회, 회의실, 임원실, 지하2층(점진홀)은 강당, 수당고,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소장품으로는 도산 선생 관련 문서·사진·서적 및 잡지·유물 등 17,000여점의 자료가 있다. 이 중 임시정부 시절 및 캘리포니아 오렌지 농장에서 찍은 사진 등 도산 선생과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모습을 담은 사진 80여점과 이동휘 선생 및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와의 편지 등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서한 19점, 대한민국임시정부 사료집, 도산일기,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전시는 도산 선생의 생애를 성장과 구국운동기·미주활동기·임시정부와 대독립당 활동기·국내활동과 서거로 구분하였고, 전시실 입구에 도입부를 마련하여 선생의 생애를 소개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으며, 전시실 중앙에 서신과 가족의 모습을 전시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 밖에 다 전시되지 못한 자료들은 도산 어록과 연보, 사진으로 구성되어 터치스크린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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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ejc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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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님 사진 복원 https://www.instagram.com/p/CA1ufD3nP-d/?igshid=qs0od9w3ex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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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0dav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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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막내 아드님이신 랄프 안선생님이 어제 밤 11시 11분에 아버님의 곁으로 가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도산안창호 #랄프안선생님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후손 #독립운동 (Seoul, Korea에서) https://www.instagram.com/p/Cagr86TFeZh/?utm_medium=tumb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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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obagidasonee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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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ham_hanbok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55161?utm_source=wadizshare_in&utm_medium=url #다함한복 #와디즈 #한복 #생활한복 #한복코트 #두루마기코트 #남자한복 #한복수트 #여자한복 #수트 #이벤트 #와디즈 #와디즈펀딩 #크라우드펀딩 #WADIZ #CROWDFUNDING [앵콜] 도산의 정신을 담은 한복 울 코트 + 한복수트,겨울 #데일리한복 패션·잡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혼을 담은 <두루마기 울 코트>와 <한복수트> 따뜻한 #겨울한복 https://www.instagram.com/p/B6vXKvtAJPC/?igshid=cv2qgao67f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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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v2046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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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도산 안창호- . ■ 스튜디오코이 @STUDIO_KOI with 평생 하루뿐인 '그'날에 찬란하고 아름다운 '그'순간을 담겠습니다 . . #더아리엘 #수원 #수원본식스냅  #본식스냅 #서울본식스냅 #본식스냅추천 #본식스냅업체 #본식스냅전문 #결혼준비중 #결혼준비시작 #본식스냅잘찍는곳 #데이트스냅 #파파라치 #작가주의 #스튜디오코이 https://www.instagram.com/p/Bw3Tz5eAUCS/?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mk7kpucpczt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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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lnalsum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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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매헌 #윤봉길 #벽화 #삼청동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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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pro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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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초등학교에서 도산 안창호 뮤지컬 공연 열려
로스앤젤레스 초등학교에서 도산 안창호 뮤지컬 공연 열려
로스앤젤레스 초등학교에서 도산 안창호 뮤지컬 공연 열려 편집부 3월 16일 오후 5시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Cahuenga 초등학교에서 도산 안창호 뮤지컬 공연이 있었다. Cahuenga 초등학교는 1980년에 개교했고, 스페인어, 한국어, 그리고 영어 프로그램이 있으며, 이중언어 프로그램은 한국학생들과 외국학생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도산 안창호 뮤지컬 공연은 올해로 두 번째로 많은 학생들이 안창호 선생님에 대한 무한도전을 보고 감동이 커서 이번 주제를 정했으며, 공연 준비에 4개월 정도 준비했다고 Janie Yoo 선생님이 전했다. 이날 안창호 뮤지컬 공연은 외국인들과 한인들이 함께 관람했으며, 외국인 가정들도 반응이 좋았다. 이 행사는 특히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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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owisesaying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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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평양 감사도 제가 싫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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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평양 감사도 제가 싫으면 그만이다.
  좋은글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날이 있다. ―도산 안창호 귀종교는 삶과 죽음이라는 무서운 사실에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적응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찾아내려는 시도(試圖)이다. – 토인비 <대화>
좋은글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날이 있다. ―도산 안창호
좋은시건축물에서 가장 견실한 돌은 토대의 맨 밑에 놓인 돌. ―칼릴 지브란(시리아 시인, 1883∼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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