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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한국적인 ‘K-아파트’ 탄생기, ‘마포주공아파트’(2274)

1964년 최종 준공된 마포주공아파트는 현대식 아파트 단지의 모형을 만든 곳이다. 수세식 화장실, 현대식 주방 구조, 엘리베이터를 갖추도록 설계됐다. (마포주공아파트 준공 후 사진. 대한주택공사 홍보실·마티 제공)
한국의 아파트는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을까. 1962년 7월30일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그해 완공된 마포주공아파트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기사는 “지금 마포구 도화동에 건설 중인 현대식 6층 고급 ‘아파트’ 6채는 400여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것으로 집 없는 ‘샐러리맨’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기자는 단독주택과 달리 현대식 난방과 수세식 변소, 샤워실이 있다는 점을 짚으며, 9~15평짜리의 이 아파트를 “그리 넓은 집은 못 된다 해도 쓸모 있게 꾸민 고급 ‘아파트’”라고 묘사한다.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다른 점은 ‘어린이놀이터’나 ‘유치원’ 등 공동시설이 있다는 점이라며, 아파트를 “생활 개혁과 공동생활의 훈련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1960년대 대중에게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공간이었던 아파트. 지금의 한국에선 설명이 필요 없는 제1의 주거형태다. 1970년대 전체 주택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0.77%에 불과했고, 단독주택이 95.3%로 대다수였다. 하지만 50년 뒤인 2020년 상황이 역전돼 아파트는 전체 주택의 62.95%를 차지할 만큼 늘어났고, 단독주택 비율은 21%로 쪼그라들었다. 한국에서 이렇게 빠르게 아파트가 늘어난 결정적인 이유는 박정희 정부에서 주거 문제 해결의 가시적인 성공 모델로 아파트 보급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주택건축사 연구자이자 <한국주택 유전자>를 쓴 박철수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유작인 <마포주공아파트>에서 한국 아파트 단지의 원형인 마포주공아파트(마포주공)의 시작과 끝을 파헤친다. 그는 25개 장으로 구성된 <한국주택 유전자> 집필 직후 “건축사에 공백으로 남은 주거사를 온전히 채우기 위해” 각각의 장을 심화편으로 쓰고자 했다. 그중 망설임 없이 첫 타자로 꼽은 것이 마포주공이었다. 와병 중이던 저자는 초고를 마무리하고 후반 작업을 출판사 마티의 박정현 편집장에게 맡겼다. 원고는 박 편집장의 손을 거쳐 저자 사망 1년2개월 후 세상에 나왔다.
마포주공의 역사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에 시작된다. 군부는 ���신들이 무능하고 부패한 기성 정치인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가시적인 성과를 필요로 했다. 새나라자동차 공장, 워커힐호텔 등을 지었지만 공장이나 호텔은 시민들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건축물이었다. 5·16 쿠데타 주도 세력인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장동운 중령이 대한주택영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마포주공 프로젝트가 빠르게 가동된다.
당시 서울 시내에는 1000가구를 수용할 만큼 잘 정비된 부지가 없었다. 하지만 홍보 효과를 위해 사업 부지는 반드시 서울 안에 있어야만 했다. 주택영단은 마포형무소에서 노역장으로 쓰던 채소밭을 급하게 확보해 공사에 들어간다. 이 부지에는 마포형무소 시절 지어진 법무부 관사가 있었다. 관사 입주자들과 퇴거 협의가 제대로 마무리되기도 전에 공사가 시작될 정도로 정부는 급하게 마포주공 건설에 착수했다.
부지는 찾았으나, 당시의 기술력을 감안하면 “최신 설비를 갖춘 10층 아파트 설계는 한국 건축가들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엄덕문 당시 주택영단 건설이사 겸 건축부장은 군사정부의 서슬에도 불구하고 “영단 수준으로는 설계 못한다”는 답을 내놨다고 한다. 하지만 군부에 못한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엄덕문은 최고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진, 단 3개월 만에 10층 아파트 설계를 마무리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장동운의 정치적인 발상과 대한주택영단의 전문직 기술관료를 포함한 당대 건축가 집단의 이해가 일치해 만들어낸 산물”이라며 “부족한 물적 토대를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뛰어넘어 만들어진 모더니티”라고 평한다. 마포주공은 시작부터 그 자체로 “한국 모던의 독특한 특징”이다.

정부가 마포주공아파트의 현대��이고 공동적인 생활양식으로 강조하며 홍보했던 어린이 놀이터. (대한주택공사 홍보실·마티 제공)
마포주공 건설과 분양을 맡은 대한주택공사(대한주택영단의 후신)는 자금난에 시달렸다. 1963년 정부 전체 예산은 768억원이었는데, 하나의 아파트 단지인 마포주공 건립에는 약 5억원이 소요됐다. 주택공사는 초기에 임대아파트로 설정했던 것에서 계획을 변경해 마포주공을 분양하기로 결정했다. 임대로 들어온 입주자들은 갑자기 분양을 받아야 해 큰 경제적 부담을 느꼈다. 6개 동의 주민들이 뭉쳐서 국회와 주택공사 등에 분양가가 너무 높으니, 분양가를 여러 차례에 나눠서 내게 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당시 주택공사 주택연구소 단지연구실장이었던 박병주는 조선일보 기사(1967년 4월16일)에 “‘임대하는 아파트’란 형식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데 있고, 우리의 현실에서 공영임대주택이 성립할 수 없다는 개념을 남기게 되는 결과를 자아내게 하였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고 우려의 의견을 밝혔다.
박병주의 우려는 적중했다. 저자는 마포주공으로 인해 한국의 아파트 건립 방식이 건설비용을 입주자에게 전부 부담시키는 분양 위주의 방식으로 고착됐다는 점을 짚는다. 민간 사업자들은 주택공사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아파트를 지었다. 마포주공의 선례는 주거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도 결정지었다. “지난 세기 한국에서 공공이 저소득층을 위한 공동주택을 공급하고 관리한 시기는 무척 짧았다. 주택은 개인이 구입해야 하는 상품이라는 인식은 굳어졌고, 이후 임대아파트는 분양 아파트 단지의 틈바구니 속에서 저소득층의 남루한 집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정부는 1967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주택 부문 정책 목표에 민간 건설을 유도하고, 민간 자금의 극대화를 꾀한다는 내용을 넣는다.
마포주공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주민공동시설이나 편의시설을 아파트 단지 울타리 안에 넣는 단지화 전략을 꾸준히 꾀한다. 정부는 단지 바깥의 간선도로 등 최소한의 도시기반시설만 준비한다. 공원이나 놀이터 같은 여가와 편의시설은 입주자들이 갖추고 관리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것이 단지화된 아파트다. 1978년 준공된 잠실주공아파트는 모든 주민공동시설과 편의시설을 단지 내에 완벽히 갖춤으로써 한국형 아파트 단지의 전형을 완성시켰다.

마포주공아파트. 마티 제공4-5-2024/hwanshikkim.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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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제론 2022 다음 추천도서 중 한권 이상을 읽고 감염병이 발생시키는 다양한 사회문제 현상,원인과 과정, 해결 방안/대안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코로나19와 일상의 사회학
사회문제론 2022 다음 추천도서 중 한권 이상을 읽고 감염병이 발생시키는 다양한 사회문제 현상,원인과 과정, 해결 방안/대안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코로나19와 일상의 사회학
사회문제론 2022 다음 추천도서 중 한권 이상을 읽고 감염병이 발생시키는 다양한 사회문제 현상,원인과 과정, 해결 방안/대안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코로나19와 일상의 사회학 사회문제론.hwp 해당 자료는 해피레포트에서 유료결제 후 열람이 가능합니다. 분량 : 10 페이지 /hwp 파일설명 : 사회문제론 (방송통신대학교 2022년 1학기) 중간 공통형 과제 레포트자료입니다. – 다음 추천도서 중 한 권 이상을 읽고 감염병이 발생시키는 다양한 사회문제 현상, 그 원인과 과정, 그리고 해결 방안/대안에 대해서 서술하시오. – 추천도서 중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코로나19와 일상의 사회학> 을 선정하여 이에 대해서 작성하였습니다. –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코로나19와 일상의 사회학> 의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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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마스크#모더니티 바이러스#문화적 기원#방송대#방송대 중간과제#방통대#보고서#사회문제론 2022 다음 추천도서 중 한권 이상을 읽고 감염병이 발생시키는 다양한 사회문제 현상#원인과 과정#중간과제물#책소개#코로나19#한국의 모더니티#해결 방안/대안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코로나19와 일상의 사회학#해피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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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 21, 22일-홈그라운드 11월 오픈스튜디오안내]
“홈그라운드의 푸드 컬러 만들기” 워크숍
-“색”다른 컬러풀한 연말 음식을 나누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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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좋아했던 이 컬러 토스트에 담긴 이야기를 조금 할게요. 2017년 SeMA 벙커의 개관 전시 “여의도 모더니티”를 위해 준비하였던 다과입니다. 짧은 시간 빨리 차려야하는 조건에 당시 코디네이터 큐레이터 저희의 직원 분들 모두 달려들어 만들었습니다. 파렛트를 만들어 드렸고, 만든 예시를 보여드리며 요청한 것은 “마크 로스코 처럼 색면이 평평히 단순하게 발려야하고 위의 토핑은 맛의 조화를 생각하며 점 선 면을 잘 배치한다는 마음으로 놓아주세요.” 였습니다. 도와주신 분 모두 그 자리에서 처음 만들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컬러풀한 크림치즈를 가지고 만든 토스트는 많지만, 같은 재료로 표현하기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색을 가지고도 배치를 달리해 전형적이지 않고 조금 다르고 아름다워 보이게 구성하는 것을 실험해왔습니다.
워크숍에서 가장 즐거운 부분은 같은 재료로 나오는 다양한 결과물이고, 차분히 그동안 실험해 온 바를 공유하고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합니다. 그간의 컬러푸드 워크숍의 총정리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니, 이번 기회 꼭 놓치지 마셔요. 수강 신청할 수 있는 자리는 아직 여유있습니다. 문의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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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을 준비할 때면 우리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요리사의 역할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린다고 생각하니, 수 백, 수 천 명의 요리 선생님들로부터 나오는 맛깔스런 방법론에 저희가 하나를 더 하기에 왠지 아직 한참 모자라다는 생각이 듭니다. 홈그라운드는 식재료 그 중 특히나 식물성 재료들이 가진 질감과 색상, 향 등등에 매료되어 그것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다듬어 입에 넣을 것인지를 궁리해 왔습니다. 재래시장에 쌓인 산더미 같은 싱싱한 채소들의 에너지에 힘입어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고르고 다듬었습니다. 자연스레 저희가 일년에 한 두 번 손에 꼽아 진행하는 워크숍의 주제는 식품을 미술재료처럼 다루는 방식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오픈 스튜디오는 “소수 정예” 푸드 컬러 워크숍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매일 입을 옷의 색과 질감을 맞추는 즐거움처럼 재료와 더 가까워지고 아름답게 만들어 맛있게 입에 넣는 놀이를 여러분과 해 볼 생각입니다. 채소 물감(5~6가지 색상의 퓨레)을 함께 만들고, 채소 물감을 저희가 어떻게 음식에 활용하는지 보여드리고, 한 접시 음식으로 만들어 함께 둘러 앉아 먹습니다. 남은 채소 물감은 작은 병에 담아 드립니다. 매 수업 7명 정원에 시연-실습-시식-식사의 순으로 차분히 진행하는 “홈그라운드의 푸드 컬러 워크숍”에 초대합니다. 일상의 음식을 특별하게 만드는 쉬운 방법을 모두 알려드리겠습니다. 🤗 근사한 연말요리 만들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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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0만원 (수업과 식사, 채소물감 키트 포함)
2시간~2시간 30분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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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품 컬러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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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야채 퓨레를 만들며, 자신만의 색을 뽑아내기
-당근우메보시 퓨레, 단호박 유자퓨레 (노랑)
-흑임자소스
-다양한 허브 오일
-파프리카 퓨레
-비트 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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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퓨레를 이용한 음식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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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홈그라운드식 푸드 컬러 플레이트 식사
-메뉴:
1) 단호박 유자퓨레, 비트슬라이스와 유자제스트를 올린 부르스게따
2) 구운 래디치오와 단감 샐러드
3) 비트스프
4) 파프리카 소스의 두부렌틸캐비지롤
5) 레몬젤리
6) 코코넛에 굴린 고구마 경단
7)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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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2타임 7명 정원으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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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수요일
오후 3시
오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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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목요일
오후 3시
오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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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금요일
오후 3시
오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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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을 원하시는 분은 @ara_home_ground 로 인원, 시간, 연락처를 적어 DM 혹은 [email protected]으로 신청 메일 보내주시면 자리 확인 후, 수업료를 입금할 계좌 등 예약 안내문을 드립니다. 입금이 확인되는대로, 예약이 완료 됩니다.
미리 양을 맞춰 준비하므로, 수업 시작일 2일 전 취소는 50% 환불, 수업일 취소는 환불이 불가합니다.
수업 당, 신청자가 5인 미만일 경우, 해당 수업이 취소되며, 다른 시간에 자리가 있다면 여석을 우선적으로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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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작가 ‘호 추 니엔(Ho Tzu Nyen)’의 작품에 드러난 포스트-콜로니얼리 즘(Post Colonialism)이론의 적용.
1. 들어가며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며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그 분야의 역사적 기술 그리고 통합 적인 역사, 세계사와 국사와 같은 학문은 가장 중요한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현재(21세기)의 세상은 어떠한 역사를 쓰고 있으며 그 역사의 흐름을 반영한 이론, 그리고 그러한 이론을 수용한 예술가들의 작품은 어떠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지 파악하는 것은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을 정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호주의 미술사학자 테리 스미스(Terry Smith)는 동시대성을 정의하는 과정을 담은 논문을 통해 동시대성의 정의를 정리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시간 (Time)’에 관한 것인데,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는 아마도 시간과의 관계성을 잃는 것일 지도 모르며 또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뉴미디어, 디지털 이미지, 몰입형 영화, 국가 식별, 새로 운 국제주의, 신원 확인, 네오 모더니즘, 관계 미학, 포스트 프로덕션 아트, 리 믹스 문화 등 현재 실무의 한 가지 또는 다른 측면의 통화를 강조한다.1 이렇게 동시대 미술은 다양한 매체 발달과 실천 그리고 사회학적 이론을 기반으로 매체를 확장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 진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떠했을까? 20세기 미술의 역사는 끊임없는 실험과 혼란의 역사였다. 화가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한다는 단순한 요구에 존재하는 모순을 깨닫게 되면서 미술이 지향해야 할 부분에 변화를 겪게 된다. 고대부터 봄(seeing)에 대한 크고 작은 변천을 겪으며 화 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관객들이 감상하는 것에 대한 변화가 동반된다. 이집트 인들은 그들이 눈 으로 본 것이 아니라 머리속에 알고 있는 것을 표현(원시시대 미술가들이 실재하는 얼굴을 만든 것)했으며, 그리스 로마 미술은 이러한 도식적인 형태에 생명을 불어넣었으며 중세 미술은 다시 이 도식적 형태를 이용해 종교적 주제를 표현했다.2 이러한 형식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현재의 매체 발달에 이바지하며 기존의 제도비판을 이끌었던 아방가르드 그룹들, 두번의 세계대전을 통 해 탄생한 철학사조들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새로운 회화의 흐름 과 같은 다양한 변천은 지금 현 재의 미술의 형성에 큰 원동력이 었다. 이 논고를 통해 동시대 미술에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는 포스트 식민주의 담론과 이러한 담론을 적극수용 하여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는 동남아시아 작가, 호 추 니엔의 작업을 중
1 Terry Smith, 「Contemporary Art and Contemporary」,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6, P683. 2 E.H.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도서출판예경』,1995, P561. 1. 들어가며 2. 모더니즘 미술 안에서 포스트 콜로니얼리즘(Post colonialism) 2.1 포스트 콜로니어리즘(Post colonialism) 2.2 모더니즘 미술 안에서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3. 동남아시아의 동시대 미술과 호추니엔의 ‘만 마리의 호랑이’ 3.1 동남아시아의 동시대 미술. 3.2 호 추 니엔 3.3 만마리의 호랑이 <Ten thousands of tigers(2014-15)> 4. 나가며
심으로 사회학 이론인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의 적용을 살펴보겠다.
2. 모더니즘 미술 안에서 포스트 콜로니얼리즘(Post colonialism) 2.2 포스트-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 세계의 역사는 20세기의 격동기를 지나며 민족주의의 폭력성의 역사를 마주했다. 민족주의는 유럽 전역의 보수주의 정부와 정당의 내재적 본질이었다. 3 그렇다면 지금 현재 21세기가 시작한 지 18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 민족주의의 부활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부활이라 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아마도 오랜 시간 뿌리 깊게 서구권에 만연했던 자국 민 주의, 백인 우월주의, 민족주의는 모두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모습들이 조금 더 선명 하게 새로운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뿐이라 생각된다. 냉전시대로 인해 개방됐던 이주와 지정학적 ‘경계’의 확장은 현재 다시 한번 ‘경계’지음을 반복하며 이주와 경계를 넘는 것을 제한한다. 이러 한 세계의 상황은 정치와 외교의 흐름과 불가분 한 관계에 놓여있으며 다양한 이유로 인하여 지 금 전 세계는 난민이라는 또 다른 폭력을 만들어낸다. 20세기 하반기에 독립운동, 포스트 식민주 의, 산업화, 도시화 등 새롭게 규정된 사회정치적 질서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많은 국 민과 국가들은 고심 분투했다.4 서구권의 역사와 문화에 종속됐던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아 프리카와 같은 많은 국가들이 자신들의 독립과 자치권을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적인 종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우리는 여전히 언어와 문화속에서 일본의 잔재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마주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역사 란 지극히 서구, 백인, 남성 위주의 역사관이었으며 이러한 근대의 방식을 부수고 전환사기 위해 많은 철학 사상가들의 이론이 탄생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철학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은 불연속적 역사관을 주장했으며 19세기의 철학가 니체는 그 이전까지 만연했던 형이상학적 이 분법을 해체하며 서구의 뿌리 깊은 이성중심주의를 외면한다. 포스트 식민주의(Post colonialism)는 새로운 관점, 문화적 관점으로부터 모더니티 (Modernity)를 반영한다. 또한 모더니티(Modernity)에 속해 있는 식민주의(Colonialism), 오리엔 탈리즘(Orientalism)을 해체하며 문화적 헤게머니즘(Hegemonism), 그리고 동양(the East)과 서구 (the West)의 세계적인 관계에 대한 모더니티의 요구에 관한 서구식의 반영을 해석하는 것이다.5 또한, 포스트 식민주의는 새로운 앞선 이론적인 범주를 가능하게 한다, 즉, 현대화의 과정에서 동 양과 서양 사이의 식민주의화 관계에 대한 앞선 이론적 범위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반-서구(anti-western) 중심주의의 강한 경향과 와 막시즘(Marxism)의 개념의 공유를 표현한 다.6 포스트 식민주의는 20세기 후반에 동양에 빠르게 퍼졌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의 경향 중 하나이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그리고 호미 바하(Homi F. Bhabha)와 같은 학자들이 가장 대표적이다. 포스트 식민주의는 3가지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존재하는데. 첫번째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민족 해방의 번영. 두번째로, 민족 문화의 자기 정체 성, 세번째로 모더니티(Modernity)에 대한 전체적 반영(reflect). 포스트모더니즘의 반향 (echoing), 포스트 식민주의는 다양한 문화, 정치적 이론들 그리고 비평의 방식들을 위한 하나의 3 윌리 톰슨 저, 전 경훈 역, 「20세기 이데올로기: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1914-1991」, 『산처럼』, 2017. P13. 4 클라라 킴, 「모던 유토피아/상상된 국가들, 상상된 경계들」,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 2018.P22 5 Geng Yang, Qixue Zhang and Qi Wang, 「The Essence, Characteristics and Limitation of Post-Colonialism: From Karl Marx’s point of view」, 『Frontiers of Philosophy in China. Vol. 1, No. 2』, 2006. P279. 6 위의 논문, Ibid, P279.
상위 명칭이었다. 이것은 단지 동양과 서양의 소통의 문화적 전략분만 아니라 동양이 스스로 자 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전경을 제공했다. 7 서구권에서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이론이 급격 한 성장을 이룬 것은 이 ���론이 다른 이론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답’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 보다, 이것이 ‘식민주의’ 를 설명할 수 있는 특별한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의 본질은 문화적인 관점에서 식민지화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식민지화된 국가의 현대 담론과 식민지를 실행하던 국가사이의 권력관계의 마찰을 강조하며, 또한 동양과 서양사이의 문화적 식 민지화의 관계에 집중한다.8 또한 식민주의와 중요한 관계인 제국주의를 대할 때, 왜 문화가 제국 주의의 수행가운데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문화가 정치와 이념적인 성향 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문화는 권력과 문화 그 자체로 권력에 포함된다. 9 이것은 문화가 제 국주의를 실행하는 목적을 충족시키는 권력과 문화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론적 토대는 프랑스의 철학가 푸코의 ‘권력에 대한 개념과 자크 데리다 의 ‘해체’ 이론이 토대가 된다. 이 논고에서는 특히, 스피박의 서발턴(Subaltern)개념에 앞으로 소개될 ‘호 추 니엔’의 작업 과 연관성이 있다고 ���인다. 스피박의 서발턴 윤리에 대한 고찰이 다국적 자본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식민지화’로 인해 다양한 모양으로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착취’와 ‘억압’, 주류(서구 열강 혹은 자본주의 시대의 신흥강국들)에 이해 파편화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이 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방안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10 2.2 모더니즘 미술 안에서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현대미술에서 모더니즘, 그리고 모더니티, 포스트모더니즘, 동시대 라는 용어를 정의하는 방법과 시기 구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미술의 새로운 시도와 그 시도에 대한 분석과 관찰은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일반적으로 모더니티(Modernity)는 모던(modern) 한 것에 대한 인식 혹은 모던한 것에 대한 표상으로 여 겨진다.11 일반적으로 모더니즘 시대의 미술사조, 즉 -ism 안에서는 비교적 유럽 국가와 미국에 치중해서 서양미술사라는 것이 완성된다. 그 시기에 유럽과 미국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사이에 냉전시대와 같은 크고 작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전쟁을 겪게 된다. 여전히 강대국에 속한 프랑스, 영국, 독일과 같은 유럽의 국가들은 자신들보다 약소국인 나라를 식민지 화했으며, 약탈 문화로 이룩한 작품으로 가득 메워진 미술관과 박물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 지만 동시대미술에서 특히 동시대 미술에서 아시아문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가 가지고 있는 위치는 서양의 문화지배 속에서 억압을 받았으며 어떠한 형태로 존재했는지에 대한 자료들은
7 위의 논문, Ibid, P280. 8 Geng Yang, Qixue Zhang and Qi Wang, 「The Essence, Characteristics and Limitation of Post-Colonialism: From Karl Marx’s point of view」, 『Frontiers of Philosophy in China. Vol. 1, No. 2』, 2006. P 9 위의 논문, P286. 10 박미지, 「가야트리 스피박의 서발턴 윤리학-마하스웨타 데비의 익룡, 퓨란 사하이, 그리고 퍼사를 중심으로」, 『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2016, P69. 11 이 논문의 필자는 역사적 모더니티 와 미적 모더니티에서 드러나는 보들레르 미학의 기반인 역설(paradoxe)를 기반으 로 보를레르와 모더니티 개념을 분석한다. 모더니티를 역사적 그리고 사회학적 이해로부터 여러가지 해석을 해본다면 첫 번째로 산업혁명 이후의 변화된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달라진 삶의 특징을 포착해내는 것이 모더니티라는 주 장과 다른 하나는 과거와 눈에 띄게 달라진 성격의 삶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비판하는 것 또한 모더니티라 칭할 수 있다. ‘모더니티란 일시적인 것, 덧없는 것, 우연한 것, 이것이 예술의 절반을 이루며, 나머지 반쪽은 영원하고 불 변하는 것이다.’ 보들레르가 모더니티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특징은 크게 보아 상반되는 시간성, 즉 현재라는 일시성과 시 적 영원성의 공존이다. 조희원, 「보를레르와 “모더니티”(Modernite)개념」, 『한국미학회』,2011, P240.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또한 일본의 지배 속에서 많은 유산들과 자료들이 소진됐으며 일 본의 언어와 정신, 문화의 패권속에서 한국의 시각, 특히 시각예술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 또한 한국의 미술사안에서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의 시각을 읽을 수 있는 중요 한 지점��라고 생각한다. 식민지화라는 것이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인 식민지화라는 것보다,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의 관점에서는 문화적 지배, 문화적 헤게모니가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사람들의 세계를 바 라보는 관점과 가치 그리고 생각하는 방식을 침범한다는 것이 중요하다.12 이러한 시각에서 세 계를 바라볼 때 후기 인상주의로 분류되는 프랑스의 화가 폴 고갱 이 그 당시 프랑스 식민지하 에 있던 타이티섬에서 원주민여성들을 모델로 그린 수많은 그림들 또한 백인 서양 남성의 시각 으로 해석되고 타자화 된 피지배층의 모습일 것이다.13 하지만 그 원주민들이 어떠한 식으로 자 신들의 타자성을 주체성으로 전환시키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이다. 비교적 모더니즘 시기에 서구권의 시선에서 낮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러 시아는 자신들의 공산주의 체제를 내세우며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시도, 조금 더 실재적이고 실용적인 예술 실천을 강조했던 구성주의/구축주의가 존재하지만 러시아에서 포스트 식민주의 의 관점을 찾기는 다소 어려워 보인다. 3. ‘호 추 니엔’ 3.1 동남아시아의 동시대미술 과연 아시아에서는 서양의 문화 패권에서 만들어진 예술시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어떤 노력과 시도가 있었으며 이러한 것들이 아시아 미술만의 특징을 만들어내는데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는 동남아시아의 동시대 미술을 읽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미술세계는 전세계에서 만들어지는 동시대미술 작품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국제적인 전시에서 특히 동시대 아시아 미술은 현재 급격한 임재(presence)를 이루고 있다.14 이러한 변화는 동양의 국제 그리고 정치적 문제의 영향이 연결되 있으며 아시아는 세계속에서 문화적 영향력의 회복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5 여기에는 현대 아시아 미술계의 활력 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아시아의 사회적 환경을 반영하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며 변혁적인 예술 관행의 보편적이고 현저한 배열이 아시아에서 현대 미술의 폭발적 발전을 포함한다. 20 세기 아시아 미술 작품의 동기 부여의 일부는 새로운 아시아와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글로벌 예술 환경에서 그 위치를 표명하고 새로운 아시아를 세계로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됐다.16 미술비평가인 Lee Weng Choy 는 싱가폴을 “과거를 필요로 하지 않고 과거의 섬세한 인식 그 자체로 두며 현재(the present tense)를 사는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역사적 집단, 사회(society)” 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식민지화 시대 동안 모든 동남아시아 인들이 과거 그리고 현재를 부정했던, 그 식미지시기에 대한 희미한 향수이다.17
12 Geng Yang, Qixue Zhang and Qi Wang, 「The Essence, Characteristics and Limitation of Post-Colonialism: From Karl Marx’s point of view」, 『Frontiers of Philosophy in China. Vol. 1, No. 2』, 2006. P284. 13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클 라우스, 이브-알랭브아 외2명, 배수희, 신정훈 외 옮김,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배수희, 신정훈 외 옮김, 『세미콜론』, 2012, PP64-65. 14 Michelle Antoinette, Caroline Turner, 「Contemporary Asian art and exhibitions-Chapter title: Epilogue ‘My future is not a dream, shifting worlds of contemporary Asian art and exhibitions」, 『ANU Press』,2014. P234. 15 위의 논문, Ibid, P234. 16 위의 논문, Ibid, P234 17 Nora A. Taylor, 「Art without history? Southeast Asian artists and their communities in the face of geography」,
식민지 탐험가들은 식민지화 된 땅과 그들의 공업품의 소유를 자신들이 후원할 권리를 가지게 됐다고 말한다.18 길었던 식민지 시대의 시간이 지난 후에 서양이 동남아시아의 문화와의 관계속에서 어떤 그리고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있을까? 싱가폴이 태국과 더불어 정확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에 파빌론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동남아시아 국가이다.19 또한 유일하게 미술관이 동남아시의 미술에 기여하고 헌신한 것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동남아시아의 동시대 현대 미술사의 분야가 포스트 식민주의 시기에 발전해 왔기 때문에 학자들은 그들의 연구의 집중을 그 지방 전체보다는, 그 지역 내에서 개별적 나라들에 더 집중했다.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필리핀의 식민주의 시기의 현대미술(Modern Art)에서부터 1990 년대까지에 대한 연구, 그리고 가장 최근에 미얀마(Myanmar)에 대한 논문과 그 시골 지역에 대한 심도 높은 곳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가 출간됐다. 이러한 많은 글들이 논의하는 것은 “다른 모더니티(Other modernities)”에 관한 인식에 관한 것이며 또한 서양의 모더니티의 헤게모니 적인 생각을 금지하고 버리는 것이다 (abandonment). 하지만 예술가들은 동쪽 대 서쪽이라는 반대의 개념을 뛰어넘는 것을 시작했으며 지역 간의 대화참여 또한 시작한다.20 반면에 미국 대학들의 학자들은 이러한 아티스트들이 서구의 현대미술 기관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인지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나 이것은 그러한 경계를 넘어 지역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러한 요소들이 합쳐 있는 것을 제거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며, 그 식민지 지형도의 경계들은 강하게 지워지고 있다.21 이러한 지점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인 ‘경계 ’의 키워드와 맞물려 있다. 식민지 시기의 경계 진 서양, 즉 패권의 상위에 위치해 있는 국가와 동양, 피지배계층에 속한 동양이라는 이분법의 경계, 항상 문화권에서 우세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서양이가지고 있는 힘에 대한 것이다. 동양이 아무런 의심없이 서양의 문화와 언어를 받아들이며 그렇게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상황속에서 다시 그 문화적 헤게모니를 해체하고 주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단순히 서양이 남기고간 잔여물속에서 ‘나의 것’을 찾는 여정보다도 복잡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미 흡수된 문화, 흡수한 문화 안에서 다르게 변형된 문화와 역사조차도 나의 것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상처로 얼룩진 역사를 뛰어넘어 그렇게 융합되어 현재 동시대에 존재하는 문화의 특수성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새로운 창조성을 통해 새롭게 건설되는 복합된 문화의 창출이라고 생각한다. 3.2 호 추 니엔 (Ho Tzu Nyen) 호 추 니엔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싱가폴’ 이라는 자신의 국가를 통해서 사유한다는 것이다. 싱가폴이라는 국가를 렌즈로 사용하여 세계를 바라보며, 싱가폴을 세계로 연결시켜 하나 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이다.22 그에게 싱가폴은 단순한 고향이 아닌, 언어, 문자, 유전자, 정보 까지 모여서 흐르는 접점이자, 타자성을 가진 혼합의 네트워크이다. 국가가 만들어낸 국가의 이미 지와는 다른, 계보, 족보를 추적하고 세계로 나아가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23 호 추 니엔의 다 양한 작업들은 주로 영상 작업이며 그 안에 동남아시아의 정체성과 식민지와 포스트 식민주의 관
『CAA』,2011, P7. 18 위의 논문, Ibid, P7. 19 위의 논문이 2011년에 작성된 점을 감안했을 때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는 추후 연구가 필요할 것 으로 보인다. 위의 논문, Ibid, P7. 20 위의 논문, Ibid, P7. 21 위의 논문, Ibid, P7. 22 https://www.youtube.com/watch?v=-iDTCZV1Urc, 작가 인터뷰. 23 위의 인터뷰.
점을 담고 있다. 3.3 만 마리의 호랑이 <Ten Thousands of Tigers(2014-15)> 호랑이의 존재에 대한 역사는 다양하다. 싱가폴에 집중해보면 호 추 니엔 은 이 호랑이 라는 존재를 통해 더 큰(Larger frame)을 통해 식민지 세계를 들여다본다. 호랑이는 비공식적인 역사이자, 정의를 상징하고 한때 멸종했던 존재가 다양한 형식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여준다. 영 국이 싱가폴을 식민지화 하던 기간동안 영국사람들은 싱가폴 호랑이를 죽이는 것에 현상금을 걸 었으면 그로 인해 호랑이는 멸종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신화(myth)의 파괴 와 연결된다. 왜냐하 면 호랑이가 말레이 반도의 사람들의 우주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조상 의 혼이 깃들여 있다는 영매(Medium)의 역할을 한다고 믿어져 왔다. 하지만 호랑이의 멸종은 삼 림파괴와 더불어 그들의 우주관도 파괴한 것이다. 그의 주요 작업중 하나인 ‘만 마리의 호랑 이’<Ten Thousands of tigers)>는 다양한 역사의 지도를 그리고 최종적으로 공연형태의 작품으 로 만든 것이다. 그래프 혹은 마인드맵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며 작업을 진행한다. 이 작품 을 통해서 식민지 근대, 동 과 서의 이분법을 파괴하며 근대사회의 형성 과정과 역사의 허구성을 드러낸다.24 일반적으로 동남 아시아의 문명화는 자연에 대한 감사함과 감탄함으로 설명되며 또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의 조화에 대한 결과이다.25 따라서 그들에게 수반되는 문화는 단지 예술의 영 역으로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본질적인 관계의 성장에 대한 것이다.26 이렇듯 자연 (Nature)에 대한 개념과 체험은 동남아시아의 문화에서는 조금 더 숭고하고 본질적인 의미를 가 지고 있다. 호 추 니엔의 <백 만마리의 호랑이>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단순히 싱가폴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영국 식민지배 당시의 파괴의 의미 뿐만 아니라 조금 더 본질적으로 그들의 정신적이고 고유한 문화의 파괴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인다. 영상작업의 중반부에 울려 퍼지는 한 남자의 음산한 비명(screaming)은 초월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이야기한 ��인드맵의 형식의 시각물이 공연형태로 보여지고 그 안에서 청각효과가주는 감각적 장치는 네러티브한 이야 기를 단축적으로 표현한다. 미���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마인드맵의 효과와 아카이브 형식의 기 록물, 그리고 오브제의 배치와 병렬을 통해서 한가지의 표현이 아닌 다중적인 관점이 드러난다. 식민지 시대에 일어난 다양한 비극 안에서 한 나라의 신화, 그리고 문화 와 유산이 상대의 이기 심에 의해 파괴되고 한참이 지난 현재에 후대들이 바라보는 역사에 대한 관찰과 해석은 이렇듯 다양한 관점속에서 도출된다. 호 추 니엔의 이 작업의 가장 중심 키워드인 ‘호랑이’의 은유 (metaphor)가 호랑이의 멸종으로 인해 그들의 초월적 신화에 대한 믿음도 무너진 것이다. 그러한 역사의 피폐함에 대한 감정의 격양 보다는 최대한의 거리감을 유지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호 추니엔 은 2017년까지 호랑이를 등장시키는 일종의 일련작업들을 유지한다. 그 만큼 호랑이, 그 리고 그 호랑이가 가지고 있는 말레반도의 역사를 싱가폴의 역사로 간주하며 호랑이를 통해 역사 를 다시 바라보는 시각을 유지한 것이다. https://vimeo.com/161786554 4. 나가며 식민지 지배에서 어느덧 73 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문화와 사회에 일본의 잔재가 남아 있지 않다-라고 단정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또한 직접적인 정치적 경제적 통치하에 있지 않았지만 현재 우리는 미국, 영국 프랑스와 같은 열강들의 문화를 습득하고 배우며 동양미술사보다는 서양미술사라는 학문에 더 근접한 교육을 받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24 위의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iDTCZV1Urc 25 Richard A, Gard, 「Ideological Problems in Southeast Asia」,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53. P294. 26 위의 논문, P294.
헤게모니 속에서 살고 있다. 인터넷으로 인해 국가와 국가의 경계가 무너지며, 이민이라는 새로운 삶의 형태 그리고 부득이한 결과로 인해 탄생한 난민들의 삶, 더 이상 기독교는 과거 유럽국가들만의 종교가 아니며, 중동국가와 몇몇 동남아시아 권에 속해 있던 이슬람이라는 종교 또한 다양한 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 기술의 발달 은 언어의 장벽 또한 허물며 소통의 근간인 언어가 영어로 통합되어 국제적 언어로써 역할을 하는 지금 우리는 너무나 쉽게 지구 반대편의 문화를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경계를 뛰어넘는 실천은 의미 있는 문화적 재생산을 만든다. 과거 식민지 시대의 동남아시아 인들의 “정체성(identity)”의 부재 혹은 부족은 이러한 지워진 과거의 받아들임과 재해석을 통해 채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론들이 서구중심의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논고를 통해 살펴본 호 추 니엔의 작업은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에서도 가야트리 스피박의 서발턴 개념과 연결지점이 더 선명하다고 생각한다. 스피박의 서발턴 개념은 추후 논문을 통해 더 상세하게 살펴보고 연구해야 하겠지만 우선 가장중요한 것은 서발턴 윤리학의 고찰은 서발턴을 대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닌 서발턴 에게 ‘말을 거는 (Speak to subaltern)’방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27 수동적이거나 혹은 여전히 피지배 와 지배계층의 이분적 구분이 아닌 능동적으로 피지배층을 대하는 방식인 것이다. 능동적으로 서발턴을 대변해서 그들의 목소리가 다시 침묵으로 묻히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호추니엔 작가는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의 관점 혹은 이 이론을 활용하여 항상 피지배계층에 속했던 동남아시아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특히 과거 역사를 되돌아봄 현대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이러한 재해석에 동반되는 주관성을 배제하여 객관적 거리두기는 호 추 니엔 작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이며 작가 또한 거리두기의 인식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거리두기에서 동반되는 애매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작가가 애매함을 앞세우며 전하려고 하는 싱가포르, 말레반도, 동남아시아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자신들의 억압의 역사를 드러내며 그 당시 자신들을 억압한 영국 이나 프랑스 같은 서구 열강들의 역사의식을 비판하는 것일까? 그날로 돌아가 역사를 바꾸기엔 많은 세월이 지나온 현재에서 젊은 동시대 작가들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은 비판의 날을 세워 피해자로써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닌 어떠한 ‘가설’을 이론화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들을 나열하고 이러한 역사를 통해 형성된 현재의 정체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실(fact)에 의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라는 하나의 답안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통해 지금은 여러가지의 열린 미래(결말)이 존재하며 그 존재하는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현재의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레퍼런스를 가지고 오는 확실성이 이러한 작업을 행하는 작가들에게 매우 중요해 보인다. 우리가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미학적 관점 뿐만 아니라 조금 더 확장된 사회, 정치학적 관점으로의 작품을 감상하며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 그리고 인류가 걸어온 ‘역사’,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관점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관객들. 이러한 다양한 참여를 통해 현재 사회를 진단하는 것이 이러한 사회학적 이론을 수용한 작가들의 전반적인 목표라고 생각한다. 호 추 니엔 은 ‘싱가폴’이라는 큰 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결코 정당하지 않은 전개를 현재에 보여주며 담담하게 개인이 속해
27 박미지, 「가야트리 스피박의 서발턴 윤리학-마하스웨타 데비의 익룡, 퓨란 사하이, 그리고 퍼사를 중심으로」, 『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2016,
있는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여전히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아포리아의 성격을 띄는 다양한 모순이 존재한 이론인 것은 사실이나, 예술 혹인 사회 실천에서 다방면으로 활용되며 그 모순을 보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References. 1. E.H.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도서출판예경』,1995. 2.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클 라우스, 이브-알랭브아 외2명, 배수희, 신정훈 외 옮김, 「1900 년 이후의 미술사」, 배수희, 신정훈 외 옮김, 『세미콜론』, 2012, 3. 진 로버트슨, 크레이그 맥 다니엘, 문혜진 옮김, 「테마 현대미술 노트」, 『두성북스』, 2011. P14. 4. 로버트 자레츠키 저, 서민아 역, 「카뮈, 침묵하지 않는 삶」, 『필로소피』, 2015. 5. 윌리 톰슨 저, 전 경훈 역, 「20세기 이데올로기: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1914-1991」, 『산처럼』, 2017. 6. 클라라 킴, 「모던 유토피아/상상된 국가들, 상상된 경계들」, 『재단법인 광주비엔날 레』, 2018 7. Richard A. Gard, 「Ideological problems in Southeast Asia, 『university of Hawai’i press』,1953. 8. Ellen L. Ramsay, 「Modernity and Post-Colonialism: "The Heart of the Empire (1909)" by F.M. Bell-Smith 」 , 『 Canadian Committee on labour history and Athabasca University Press』, 2003. 9. Geng Yang, Qixue Zhang and Qi Wang, 「The Essence, Characteristics and Limitation of Post-Colonialism: From Karl Marx’s point of view」, 『Frontiers of Philosophy in China. Vol. 1, No. 2』, 2006. 10. Terry Smith, 「Contemporary Art and Contemporary」,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6. 11. Terry smith, 「The state of art history: contemporary art」, 『CAA』, 2010. 12. Nora A. Taylor, 「Art without history? Southeast Asian artists and their communities in the face of geography」, 『CAA』,2011. 13. 조희원, 「보들레르와 “모더니티”(Modernite)개념」, 『한국미학회』,2011, 14. Michelle Antoinette, Caroline Turner, 「Contemporary Asian art and exhibitionsChapter title: Epilogue ‘My future is not a dream, shifting worlds of contemporary Asian art and exhibitions」, 『ANU Press』,2014. 15. Richard A, Gard, 「Ideological Problems in Southeast Asia」,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53. P294. 16. 박미지, 「가야트리 스피박의 서발턴 윤리학-마하스웨타 데비의 익룡, 퓨란 사하이, 그리 고 퍼사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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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言 말
분홍공장은 지역의 네오아방가르드로서 분단과 주둔 지역의 잠재의식 탐문, 지역이면서 도시적인 성격 연구, 모더니티 속에 박제화된 전통의 비판, 젠더 전선의 재확인과 함께 울퉁불퉁한 여행에의 권유 등등 동시대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다루어 왔다. 이 비판하는 말은 레지던시 참여 작가들 및 이론가들이 문예적이면서 풍토적인 관점에서 이론적인 서사로 표출되었다. 한편, 지역 사람들, 가령 중앙시장 사람들의 강원도 츤데레식 속깊음 그리고 시간 속에서 익어가는 이야기에 부딪혀 길항하는 말—여기서 ‘말’[語]을 뜻하는 ‘말’은 ‘묻그리’에서 유래—은 작가 리서치와 지역 참여를 통해 그러한 서사들을 역공해왔다. 즉 분홍공장은 사람들에게는 진실과 거짓 그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소위 예술의 개소리[bullshit of arts]로 들렸을 수 있다 없다? 있다!
(섹션글: 김남수)
As regional neo-avant-garde, Pink Factory has been examining all kinds of contemporary issues. Resident artists and visiting scholars have investigated the subconscious of the region, divided and occupied, as well as the the characteristics of this provincial yet urbanized space. They have offered a critique of traditions fossilized in modernity and an invitation to a bumpy ride across the battle lines of gender. From perspectives both aesthetic and endemic, their narratives are dressed in critical words. These tales and theories were rivaled, though, by those of others, like the merchants of Hongcheon Central Market, whose words literally originate from divine readings and contain the proverbial depth of Gangwon Province, hard but hearty, molded through the experience of time. So, could Pink Factory and the surrounding discourse sound just like the so-called “bullshit of arts” that lurks somewhere between truth and lie? Most definitely!
(section text: Kim Nam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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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17
잉여인간-처치곤란한 쓰레기들의 시대
저를 부르는 것이 아님에도 대답을 하는 무리들이 있다. 누군가가 1988, 1994, 그리고 1997에게 응답하라 말을 걸었고 ‘저를 부르는 것이 아님에도 대답을 하는 무리’들은 TV 앞에 앉아 그들의 향수를 대신 느꼈다. 그들은 잉여롭기 때문이다. 젊고 똑똑하지만 일은 하지 않는 사람들, 잉여를 여기로 호명한다.
잉여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다.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까지 있어왔다. 그러나 이렇게나 많은 숫자의 잉여들이 창피해하기는 커녕 “나는 잉여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꼴이란 익숙하지 않다.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 글은 어떤 잉여 하나가 그런 어색함에 그럴 듯한 설명을 붙이고자 하는 노력이다. 쏟아지는 ‘잉여고백’ 속에 발하나를 담근 채, 잉여로서 잉여를 사유한다. 이는 무한부정과 무한긍정 사이, 그 어디쯤에 잉여라는 존재를 정의하려는 시도다.1 “난 안될거야…”라는 회의로 가득찬 자조의 목소리와 말줄임표에 내재한 “그래도 언젠가는…” 체제에 가담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희망, 무한부정 그리고 무한긍정 사이를 급진적으로 연계하는 잉여라는 존재를 말이다.2
잉여는 체제에 속하지도 않지만, 체제에서 아주 분리된 존재도 아니다. 체제/비체제 사이의 경계 어디쯤을 부유하는 존재가 바로 잉여다. 70년대 미국의 반체제 운동을 생각해보라. 잉여는 히피도 아니고 펑크도 아니다. 한달동안 감지 않은 떡진머리한 락커를 따라 그런지���을 입고 약에 취한채 공원에 널부러져 있지 않는다. 선거공보물 따위를 찢어발기며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잉여는 너무 교양있는 탓이다. 16여년의 고등교육이 잉여인간에게 남긴 것은 선거공보물을 훼손하는 자는 현행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백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사실이다. 백욱인은 논문선 『속물과 잉여』에서 잉여에 대하여 정의를 내린다. 그에 의하면 “잉여는 속물 대열에 가담하여 속물 지위를 얻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한 자들 가운데 속물 되기를 유예하고 있는 존재들”이며 “체제 안에서 살지만 이상한 방식으로 체제에 포섭된 몸의 비듬 같은 존재다”. 말하자면 잉여는 마치 체제라는 깊은 바다 속에 닻을 내리고 수면 위를 떠다니는 부유물인 것이다. 체제에 귀속될 수도 체제를 떠날 수도 없는 것이 잉여의 처지로 체제에 포섭되기를 간절하게 바래왔고, 그를 위해 지난한 교육과정을 버텨왔으나 결국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는 배신의 서사가 잉여의 삶을 관통한다. 장장 16여년에 걸친 교육은 다만 체제 바깥은 위험하다는 교훈을 주었을 뿐이다. 잉여는 체제를 등질 용기도, 체제에 가담할 운도 가지지 못한다.
“ 애비는 벌써 속물이 되었고, 속물들의 자식들이 자기계발에 열중하여 차세대 속물되기를 준비하는 동안 속물에도 쉽게 끼지 못한 애비들의 자식들은 잉여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 백욱인
“너, 대학 못가면 뭔 줄 알아?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 잉여인간 알아? 인간떨거지 되는거야! 이 새끼야! 너 이렇게 속썩일려면 나가! 나가 뒤져! 이 새끼야!”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팝송 테이프와 기타 악보를 들킨 현수에게 아버지가 내뱉는 대사다. 이 시대의 잉여들은 잉여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면, 인간떨거지가 되고 싶지 않다면 나가 뒤지던지 공부를 해야한다라는 명제를 마치 오류없는 진실인 듯 믿었다. 대학을 가면 체제에 순탄하게 가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속물들의 억압적인 강요를 순진하게 믿었던 결과 잉여인간들은 더 큰 회의에 시달리게 된다. 속물에 끼는 것도 쉽지않다는 잔인한 진실을 깨닫고 “난 안될거야…”라는 자조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체제에 가담하지 못한다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자신이 불구자다 시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마찬가지였다. 손창섭의 단편소설 『잉여인간』3에서 등장하는 채익준과 천봉우는 전쟁이라는 거대장치가 낳은 잉여로 변변한 직장 없이 살아간다. 의롭지 않은 일에 쉬이 비분강개하는 채익준은 의롭지 않은 일은 죽어도 할 수 없다 말한다.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익준은 아내가 생선을 팔아 벌어 오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결국 아내는 병에 걸려 죽고 아내의 수의조차도 사 입히지 못하는 익준을 사람들은 병신이라 ���한다. 그는 부끄러워할 뿐이다. 천봉우는 잘 나가는 아내에게 용돈을 타 쓰는 잉여로 아내가 밖에 나가 여러 남자를 만나고 다녀도 아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모른 척 한다. 오히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척 자신을 최대한 숨긴다. 『잉여인간』에서도 묘사되듯, 이때만 해도 잉여라면 스스로를 부끄러워거나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통념이었나 보다. 그러나 오늘 날의 잉여는 “나는 잉여다”는 고백을 서슴지 않는다. 잉여가 갑자기 자랑스런 무언가로 거듭난 것은 아닐 거다.
잉여인간은 잉여롭다.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지는 않은 단어지만 잉여롭다는 것은 쓰고 남은 것을 뜻하는 잉여에 그러함을 의미하는 접미어’-롭다’의 합성어로 추측되는 ‘잉여롭다’는 보통 한가하다, 혹은 할 일이 없음을 가리킨다. 이때 할 일이 없다의 할 일은 ‘work’보다는 ‘job’ 혹은 ‘Arbeit’에 가깝다. ‘Work’가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활동을 한 데 모으는 포괄적 개념이라면 ‘job’ 혹은 ‘Arbeit’는 경제인구로서의 노동만을 뜻한다. 이를 통해 아직 시장에 가담하지 못한 잉여 존재는 경제 인구로서의 노동은 유일하게 해야 할 일로 인식하는 반면 다른 일반 노동을 사소한 것, 중요하지 않은 것, 단순한 사부작거림으로 치부한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경제인구로서의 노동 이외의 것은 대가가 없는 자기 만족을 위한 행위로 철저히 분리시킨다.
잉여로운 잉여인간은 항상 사부작거린다. 사부작거린다는 것은 계속해서 가볍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부작거리는 잉여들의 행동양식은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며 진입장벽을 낮추는 사이버 공간과 더불어 추진력을 얻었고 잉여문화는 그 외연을 폭발적으로 확장시키는 중이다. <Brandwatch>에서 진행한 16년도 소셜미디어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 73억명 중 약 31억명이 소셜미디어 계정을 가지며 그 중 23억명이 소셜미디어를 사용중인 액티브 유저라고 한다. 3억 2천만명이 액티브 유저로 활동하고 있는 트위터에서는 매일 5억개의 트윗이 게시되며, 이는 매 초 6000여 개의 트윗이 전송되는 것을 의미한다.4 우리가 흔히 ‘트잉여’라고 부르는 사이버 스페이스에 상주하는 트위터 유저들은 사부작거리며 대소사한 메시지를 생산하고 소비한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인터넷 커뮤니티 및 소셜미디어에 서식하며 사이버 문화의 형식을 빌어 잉여문화를 계속해서 축적 창출해 가고 있는 잉여들의 사부작거림은 경제인구로서 노동으로 인정받지 않는다. 잉여들 스스로도 역시 그들의 사부작거림을 경제 활동의 일부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사부작거림 역시 시장에서 거래되어 이윤을 남기는 경제활동임에도 잉여문화를 생산하는 생산 주체가 이를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딘가 모순적이다. 게다가 시장에 선택받지 못한 잉여들이 사이버 공간을 위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에는 가장 많이,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아이러니 하다. 잉여인간은 시장에서 쫓겨난 루저들이지만 ���전히 시장을 위해 종사한다.
잉여는 시장에 의해 간택받지 못했다.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잉여는 이어 무시를 체화하게 된다. 이러한 인정요구가 부정되는 결핍의 경험은 비정상적인 분출 경로를 찾는다. 그 중에 하나, 인정에 대한 강박이 비정상적으로 분출되는 경로는 바로 사이버 스페이스를 통해서다.5 이들의 결핍되고 왜곡된 인정욕구는 절시증으로 악화되었고, 인정투쟁은 관심투쟁으로 전화되어 또 하나의 잉여유형 ‘관종’을 탄생시킨다. 한편 노동으로 매개된 인정관계를 필연적으로 파괴하는 자본주의 역시 체제 내에 종속된 노동자들까지도 새로운 인정투쟁으로 눈길을 돌리도록 채근한다. 사람들은 이제 고된 노동으로 인한 시름을 달래기 위해 아무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커뮤니티로 모여들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주목을 빼앗기게 된다. 인정욕구 충족을 위해 사이버 공간에 둥지를 튼 잉여들은 끊임 없이 사부작거리며 무언가를 생산한다. 조나선 벨러(Jonathan Beller)가 말하듯 빼앗기는 주목은 노동의 등가물이다. 잉여들의 상품들은 미디어 기업들의 가판대 위에 대가없이 진열되고, 인터넷은 ‘관람자들이 일해야하는 탈영토화된 공장’이 되어 미디어 기업들이 잉여가치를 축적하는 데 기여한다.6 잉여들은 노동인 것을 지각하지도 못하고 기업의 잉여가치를 축적하는데 자기기만적으로 가담하게 되는 것이다.
체제로부터 거절당한 잉여들이 부지불식간에 체제에 종속되어 대가 없이 노동에 동원되고 있었다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열등하고 아무 것도 아닌 (잉여는) 그 자신을 통해서, 자신을 넘어 성장한다.”7 오타쿠를 떠올려본다. 단어 자체가 의미하듯 오타쿠라는 잉여유형은 집에서만 틀어 박혀 지내는 사회부적응자를 떠올리기 쉽다. 에티엔 바랄이 묘사하듯 교육, 집단, 사회에 의해 학당당해 환상의 세계 속으로 도피하여 현대의 미디어들이 제안하는 이미지들로 허기를 채우고 TV 잡지 만화 컴퓨터와 비디오게임의 이미지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이들말이다.8 그러나 요새 오타쿠라는 단어는 긍정적으로 행용되기도 한다. 한 분야에 열중하는 마니아-덕후-처럼 무엇인가에 심취해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하며 무언가를 단순히 좋아하는 팬보다는 연구하고 집착하며 보통 이상의 좋아함의 수준을 뛰어 넘는 사람, 즉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의미를 포괄하게 되었다. 오타쿠가 집에 틀어 박혀 지내는 것도 사실 ‘역동적인 뿌리내리기’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9 사이버 스페이스를 기반으로 관계를 맺어가며 세계 전체로 뻗어가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제 2의 삶, 제 3의 삶을 가능케 한 오타쿠들은 계몽 이후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 시켜 인간 소외를 낳았던 기술을 다시 전유하여 현상을 반전시키고 우리가 연결되고 결합되고 하나되는 상태를 만들어낸 것이다.10
돈은 그 자체가 지닌 등가성의 원리에 의해 존엄과 자유와 같은 고차원적인 개념들을 가장 낮은 ���준으로 끌어내려 본래의 의미를 훼손시킨다.11 ‘산수화된 현실’ 속에서는 인간의 존재나 가치마저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며 폄하되기 일쑤다. 하나의 척도만이 존재하는 이 편리한 세상에서는 ‘속물’이 유일한 이상으로, 숙명으로 제시되며 사람들을 한 곳으로 이끈다. 한편 돈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매개 되면서 관계의 익명성을 보장한다. 우리가 누구와 관계를 맺는지는 전혀 중하지 않게 되었고 이런 무관심이 모두를 각자로부터 독립적이게 만드는 개인주의를 가능케했다. 이로써 사람들은 가장 개인적인 것을 성취하고 개인의 독립성 및 인격 형성의 자율성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고,12 이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특수한 배경과 맞물려 독립적 주체라는 가상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이제 시장에 가담한 사람들은 체제가 부여한 단 하나의 운명을 마치 내 스스로의 선택이라 믿게 된다. 이와 더불어 노동으로 매개된 인정관계를 필연적으로 파괴하는 자본주의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실존적 위기 상황까지 몰아붙인다. 사람들은 결국 내 것인 듯 내 것 아니게 되는 희망과 절망의 굴레 속에서 자기불신에 빠지게 된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해명하기 위해 동양철학관을 찾고, 포춘쿠키를 쪼개며, 신부님을 찾아 고해성사를 한다. 형광펜을 들고 자기계발서를 펼치고 끊임없이 무엇인가에 나를 반영하지 않으면 나를 잃을 것만 같은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잉여들은 ‘산수화된 현실’을 현실로서 가질 기회조차 박탈당한 존재다. 잉여는 체제가 주입했던 운명을 다시금 체제로부터 빼앗긴 존재로 시대가 정해준 주류의 운명조차 따르지 못할 때의 좌절감, 한번도 어느 한 곳에 정착해 보지 못하고 항상적으로 표류하는 삶에서 비롯되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체제에 의해 선택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유예되는 경험은 잉여로 하여금 영원한 불안에 노출되게 만든다. 이렇게 영원히 노출된 잉여, 체제종속을 목표로 시장에 걸맞는 인재가 되기 위해 16여녀의 교육을 감수해온 잉여, 즉 학습이라는 문제 해결 메커니즘에 정향된 잉여 존재는 불안마저 학습의 대상으로 설정해 버린다. “난 안될거야 …”라는 자조를 내뱉는 잉여들은 유동성이 지배하는 현대를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형, 불안의 정점 포식자Apex predator로 거듭난다.
벤야민에 의하면 법 외부의 폭력은 법적 주체가 권력을 상실할 가능성이다. 적법하지도 위법하지도 않은 예외상태(Ausnahmezustand)의 이 폭력이 국가 질서 이외의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외상태의 폭력은 그 자체로 법을 넘어서 있다. 또한 이와 같은 폭력은 모든 특권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벤야민이 “권력에게 모든 법정립적 폭력을 소유하는 데서 터무니 없는 이득 이상의 것이 보장될 것”이라 이야기한 이유는 모든 특권[Vorrecht]이 ‘미리 아는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13 잉여들의 자조적 비관적 뉘앙스는 폭력, 국가권력 등 모든 거대 구조들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며 모든 특권을 무력화시킨다. 또한 체제에 속하지도 체제를 아주 등���지도 않으며 이쪽 저쪽 중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위를 살아가는 잉여는 스스로 국가질서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 존재를 통해 체제 밖을 상���할 수 있게 만든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음은 국가장치에 대한 도발이다. 파도가 넘실대는 해수면에 떠다니는 부유물을 생각해보라. 부유물은 심해로 빨려 들어가지도 해수면을 벗어나지도 않는다. 부유물을 영영 그렇게 떠 있을 뿐이다. 어떠한 특권도 통하지 않는 잉여는 자신의 존재 자체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한다.
잉여는 ‘/’ 위에서 일상을 살아낸다. “난 안될거야…”라는 회의로 가득찬 자조의 목소리와 말줄임표에 내재한 “그래도 언젠가는…” 체제에 가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무한부정 그리고 무한긍정 사이를 급진적으로 연계하는 것이 잉여라는 존재다. 경계는 양쪽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우리 인간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것은 무한한 자연 위에 유한한 공간을 설정함으로써 문을 열고 나가 무한함을 체험한 뒤 문을 닫고 유한한 안정감을 가능케하기 위한 것이었다. 집이라는 경계는 결국 유한하고 무한한 삶, 모두를 가능케하는 기제인 것이다. 말하자면 경계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이쪽과 저쪽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긍정과 부정, 체제와 반체제 등 대립하는 양극단을 구분하는 잉여는 겉으로는 양단을 분열시키고 나누는 것처럼 보이나 결과적으로 이쪽과 저쪽의 삶이 모두 가능함을 약속한다. 비록 하찮고 보잘것없으며 진부하고 사소하다 할지라도 잉여는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존재로서 증명한다. “오로지 어둡고 악한 것만이 그 내부에서 정반대로 전환되면서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밝고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해낸다”14.
———————————————————————————— 1 이 연구에서는 작게는 현재 취업시장에 투신하여 시장에 가담하기 위해 스펙을 쌓으며 대기 중이나 아직 시장에 의해 선택받지 못한 무리 혹은 시장에 가담하기를 포기한 사람, 크게는 자의적이던 강제적이던 고등교육을 받았으나 아직 변변한 직장은 가지지못한 사람을 주류 잉여인간 형으로 설정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잉여인간은 무엇인지 정의를 시도하면서 부정적으로만 인용되는 잉여인간을 긍정적인 사유로 전환시킬 수는 없는지, 잉여인간들이 시사하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 탐구해보려고한다. 잉여인간은 등장은 단순히 특정 세대를 규정하는 시도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계급 탄생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대론과 계급론을 연계하는 잉여인간의 존재양식은 <흑수저론>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최대한 학술적 언어 사용을 배제하고 구어 사용을 장려하였다. 바로 소셜 미디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가 잉여를 이야기하는 가장 적확한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 잉여들은 기회가 앞에 주어졌을 때 “난 안될거야…”라며 자기자신을 회의한다. 기회가 넘쳐나는 듯이 보이는 기회의 땅, 지구에서 잉여들은 그 기회가 내 것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음을 안다. 열패감, 자괴감 비슷한 것에 항상 시달리는 잉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안될거야…”의 말줄임표에는 회의로 똘똘 뭉친 희망 같은 것이 내재되어있다. 이 말줄임표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면 어쩌면 혹은 운이라도 따라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무한 긍정상태가 담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잉여존재는 열패감 속에서도 의식적이든 은연중이든 최후의 희망을 기대할 줄 아는 긍정기계���.
3 잉여인간은 항상 존재해왔다. 맑스는 잉여를 두고 룸펜 프롤레타리앗(Lumpen Proletariat)이라고 표현했으며 덕후나 실업자 역시도 잉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다만 그 디테일에 있어서는 사소한 차이를 보인다. 가령 맑스가 이야기한 룸펜은 잉여 스스로가 스스로를 일컫는 단어는 아니다. 일은 하기 싫고 무지하여 부르주아의 권력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노동자계급을 가르키며 쉽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부류들을 비하하는 용어다. 그러나 거칠게 표현하자면 일을 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일반 잉여 정의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이를 통해 잉여문제는 곧 노동문제에 깊게 관여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회 전면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잉여존재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은 만연된 실업문제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그러나 실업문제의 부상으로 인한 잉여의 등장을 분석하는 것은 후일로 미루고 이 연구에서는 증폭하는 잉여계층을 긍정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4 https://www.brandwatch.com/blog/96-amazing-social-media-statistics-and-facts-for-2016/ Kit Smith, Marketing: 96 Amazing Social Media Statistics and Facts, Brandwatch, March 7th 2016
5 잉여인구 중에서 가장 논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간베스트 회원들을 생각해본다. 잉여인구인 그들은 일베라는 사이트에 함께 모여 극단의 상상력을 시험하고 그 상상력을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끄집어 내어 광화문 광장과 같은 실제적 공간 곳곳에 현시한다. 체제 내에 종속될 수도 없으면서 반체제적 행위를 일삼을 용기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되었던 잉여무리가 자기 검열이나 체제가 강요하는 혹은 체제가 규정하는 선함이나 옳바름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아주 극단 적인 예이지만 일베-잉여를 통해 잉여인간들이 체제 내에 어설프게 포섭되어 수동적으로 체제의 선택만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존재만은 아닌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일베-잉여들이 체제를 전복시키겠다는 반항적 의도로서 급진적 활동을 전개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정의나 도덕을 제 한 몸 희생하며 부정하는 일베들의 반사회적 활동들은 분명 반체제적 운동의 어떤 뻔뻔함과 닮아있다.
6 The cinematic mode of production: Attention Economy and the Society of the Spectacle, Jonathan Beller, UPNE, 12.06.2012
7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게오르그 짐멜, 김덕영 옮김, 새물결,2004
8 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에티엔 바랄, 송지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2
9 사이버문화:포스트모던적 지역주의, 미셸 마페졸리, 2010
10 오타쿠-잉여들은 현실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체제가 이미 정해놓은 담론에 소모되다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가상현실에 ‘뿌리내리기’를 시도한다. 교육 시장 사회로부터 학대받은 영혼을 치유받을 공간, 오타쿠를 오타쿠임에도 가치롭게 해주는 가상 공간에 모여 유대와 연대하는 법을 배우며 현실세계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사람들이 예전에 잃어버렸던 정의나 연대, 유대, 소통과 존중 따위의 가치들을 학습한다-잉여세대는 ‘슬기로운 생활’ 교과서보다 차라리 ‘공각기동대’나 ‘건담시리즈’ 혹은 ‘에반게리온’ 따위의 애니메이션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한다. 이를 통해 등을 졌던 사회와 관계를 회복하는 법을 고안해내며 가상과 현실 두가지 삶을 가능케하는 균형을 찾는다. 집구석에서 뛰쳐나와 영화관에 모인 덕후들이 목소리를 모아 오프닝을 열창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그들 나름대로는 십만인파가 광화문광장에 모여 박근혜하야를 외치는 목소리만큼이나 가슴 뜨거운 것이었으리라. 연대의 경험은 현실과의 관계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한 인간의 성숙에 있어 필수적인 과정일 것이다.
11 Das Geld in der modernen Kultur, Georg Simmel, Zeitschrift des Oberschlesischen Berg- un Hüttebmännischen Verein 53, 1896, S.319-324 교환경제와 화폐의 등장과 더불어 사물들은 그 자체가 지닌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돈은 모든 것에 대한 등가물로서 기능하기 위해 가장 높은 것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수평화의 비극이라고 한다. 고차원적인 가치는 하나의 척도로 계산되는 편리함을 위하여 고유의 ‘헤아릴 수 없음’을 포기한다.
12 Das Geld in der modernen Kultur, Georg Simmel, Zeitschrift des Oberschlesischen Berg- un Hüttebmännischen Verein 53, 1896, S.319-324
13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 Walter Benjamin, Suhrkamp, 2010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새물결,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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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7일, 백선엽-박정희-박완서-김성칠
"6월 27일
오전 5시, 신성모 장관은 국방부 수뇌부 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는 육군의 채병덕 소장, 해군의 김영철 대령, 공군의 김정열 준장 등 삼군의 총참모장이 참석했다. 전날 밤부터 당일 새벽으로 이어진 심야의 국무회의에서 정부의 수원 이동이 결정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회의를 마치자마자 특별 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서울이 적의 수중에 넘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청단-개성-문산 축선을 방어하던 백선엽 대령의 1사단은 편제를 유지하며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의정부 축선을 방어하던 7사단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패퇴를 거듭한 탓이었다. 신 장관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애국 충정에 불타는 여러분, 지금 조국은 여러분과 함께 장군에서 말단 사병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양식만이 남아 있습니다. 국가의 지도자나 군의 지도자가 이 난국을 수습할 시기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틀 전의 자신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일국의 국방부 장관이 행한 발언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망적인 어조를 담고 있었다. 국군의 방어 대형이 무너진 반면 미군의 참전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군 수뇌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이란 그저 최악의 ���황에 대비하는 것뿐이었다.
1) 육군은 패전이 계속되는 경우 게릴라 작전으로 전환하여 최후까지 항전한다. 2) 해군과 공군은 지상군 작전에 협동하며 마지막에는 망명 정부 요인의 수송을 담당하기로 한다.
비슷한 시간대, 날이 밝기 시작하자 파주 봉일천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격이 개시되었다. 전날, 백선엽 대령 휘하의 국군 1사단 예하 부대들이 이 일대에 집결해 저항선을 구축하고 방어에 들어간 상태였다. 적진의 동태를 살피던 백 대령은 "저 멀리서 포신을 하늘 쪽으로 향한 커다란 쇳덩어리가 움직이는" 것을 목격하고선 곧바로 망원경으로 확인했다. 선봉에 서서 국도를 따라 내려오고 있던 전차 25대였다.
주지하다시피 그 "쇳덩어리"는 소련제 T-34형 전차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동급 최강의 위력을 발휘한 덕분에 결국에는 독일군의 팬저와 타이거 탱크라는 강력한 적수의 등장을 부추겼던 전설의 중전차, 포드주의적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형태로 '공포'의 기계 미학을 구현했던 최고의 공격 무기, 바로 그 T-34형 탱크가 85밀리 포를 장착해 업그레이드된 상태로 만 29세의 일본 육사 출신 사단장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1년 전인가 윌리엄 로버트 미 군사고문 단장은 "한국 지형에는 전차전이 맞지 않으며 한국전에 전차를 끌어들인다면 수 시간도 못 버티고 박살 날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었다. 완벽한 오판이었다.
1사단 장병들은 지난 이틀간의 전투를 통해 T-34 탱크의 위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사람이 총을 맞고 쓰러지는 것은 "그래도 인간이 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광경"에 속했다. 그러나 빠르게 이동하는 적 전차의 조준 포격 앞에서 사람이 "온데간데없이 흩어지는 것"은 인간의 눈이 잡아낼 수 없는, 다만 몸으로 느낄 수만 있는 광경이었다. 당황한 장병들은 57밀리 대전차포나 2.36인치 바주카포로 탱크에 맞서보려고 했지만, 적의 탱크는 "부서지기는커녕 흔들리지조차 않"았다. 국군 병사들은 포탄을 맞고 잠시 멈춰 섰던 탱크가 "다시 두르르르 음산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것을 숨죽인 채로 지켜보면서 경악했다. 그것은 흠집조차 내기 어려운 무쇠 덩어리였다. 대 전차전 경험이 있는 일본군 출신의 장교들은 "적 침입로에 대전차호를 파게 하고, 다이너마이트나 지뢰를 묻게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역부족이었다. 국군 병사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자 "탱크다!"라는 외침은 후퇴 신호가 되어버렸다.
이날 1사단은 임전��퇴의 각오로 작전에 임했다. 일단 전차를 앞세운 적의 공격을 확인하자 집중 포격을 시작했다. 적의 전차가 주춤하는 사이, 곧바로 특공대원들이 티엔티 묶음 속에 수류탄을 넣은 자폭용 폭탄을 들고 적 전차에 뛰어들었다. 육탄 돌격 작전이었다. 국군의 반격이 거칠게 이어지자 북한군도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현대전의 시민권을 아직 발부받지 못한 젊은 병사들에게 기계와의 백병전이 밀려내려오는 적들을 막아 세울 수 있는 최선의 전술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부서지기 쉬운 신체가 유일한 무기였다.
오전 7시, 박정희가 용산역에 도착했다. 모친 제사로 구미의 고향집에 내려가 있던 그는 전쟁 발발 당일 오후 1시경에 긴급 전보를 받았다. 구미읍 경찰서의 순경이 건네준 전보는 정보국장 장도영 대령이 보낸 것으로, “금조 미명 삼팔선 전역에서 적이 공격을 개시, 목하 전방 부대는 적과 교전 중, 급히 귀경”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정희는 곧바로 짐을 챙겨 집을 떠났으나, 밤이 되어서야 야간 북행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박정희는 여순반란 사건 당시 남로당 전력이 발각되어 강제 예편당했으나, 백선엽 등의 도움으로 다시 육군본부 정보국의 문관으로 군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사실 그는 이미 6개월 전에 내전을 예감하며 김종필 중위와 함께 ‘연말종합적정(敵情)판단서’를 작성한 바 있었다. 그 핵심 내용은 올해 3월, 늦어도 6월에 북한군이 남침을 감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그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보고서는 국군 수뇌부에 전달되었지만 뚜렷한 근거가 없다며 철저히 무시당했다. 오히려 채병덕 장군은 "우리가 북진을 개시하면 일주일 안에 신의주까지 밀고 올라갈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박정희가 꼬박 하루 반나절 만에 도착한 서울의 거리에는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가 불안에 싸여 있고, 위장을 한 군용 차량들이 최대한도로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육군본부로 향했다. 그가 작전 상황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다음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25일 아침부터 밤낮 2주야를 꼬박 세운 작전국 정보국 장병들은 잠을 자지 못해서 눈이 빨갛게 충혈이 되어 있고 질서도 없고 우왕좌왕 전화 통화 관계로 실내는 장바닥처럼 떠들썩하고 소란하기만 했다."
오전 8시, 서울대 국문학과 신입생, 완서는 돈암동의 주택가에서 빠져나와 학교로 향하다가 대로변의 전찻길에서 피난민의 행렬을 목격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침 일찍 동숭동의 문리대로 등교해 양주동 선생의 강의를 청강했다. 고명한 학자에 대한 호기심이 전쟁의 불안감을 이겨낸 것인지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강의실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완서는 겨우 강의실 뒤편에 자리를 잡고, “해학과 유식을 폭포수처럼 토해내며 강단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선생”의 면모에 황홀한 눈길을 보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오늘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멀리서 들리던 대포 소리가 아침부터 점점 더 가까이서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달구지에 가재도구를 싣고 미아리고개를 꾸역꾸역 넘어오고 있었다. 의정부에서 밀려 내려온 피난민들이었다. 분명히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라디오의 긴급 뉴스는 국군이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피난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마음속에서는 빠르게 불안감이 번져 갔다. 그녀는 그들이 순수한 양민은 아닐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은 악덕 지주거나 좌익 탄압에 앞장섰던 경찰 가족쯤”일 것이라고 애써 자위했다.
비슷한 시간대, 서울대 교수였던 1913년생 역사학자 김성칠도 자신이 거주하던 정릉의 마을 앞 행길에서 피난민의 행렬을 목격했다. 국군의 방어선도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다. 앞산에선 전방에서 밀려난 포병대의 대포가 불을 뿜고 있고, "모자에 풀을 담뿍 꽂은 군인들이 한두 사람씩 산골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그들은 민간인들 앞에서 넋 나간 표정으로, "수없이 밀려 내려오는 탱크"에 대해 횡설수설했다. "대포알이 아무리 명중하여도 움쩍도 않"으며 무슨 수를 써도 파괴되지 않는 육중한 쇳덩어리. 탱크를 처음 본 상당수의 국군 장병들은 생전 처음 겪어본 전쟁 무기의 현대적 면모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겁에 질린 눈을 껌벅거리며 퇴각하고 있었다.
_첫번째 아수라장-벽력선봉霹靂先鋒: 기계 야수들과 불의 전쟁,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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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근대 도시의 공간 기획은 시공간의 압축을 통해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고 이를 극대화 하기 위하여 도시의 구성요소들을 최대한 밀집시킨다. 그러나 실제로 공간이 배치되는 과정을 보면 몇몇 특정한 장소에 산업시설, 인구, 교통수단 등이 집중하면서 공간의 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이동의 제약이 생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공간은 다시 확장되지만, 모순적이게도 공간은 시간축소를 위해 다시 밀집되는 순환을 거친다. 그러나 이미 구조화되고 확정된 공간은 시간 축소를 위해 재분산 되기 어렵다. 이것이 러시아워가 발생하는 시공간적 메커니즘이다.
거리위의 모더니티, 정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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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연계 프로그램 신청안내] 디자인 교육·산업, 2005~2015 - 박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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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연계 프로그램 신청안내] 디자인 교육·산업, 2005~2015 - 박해천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전의 두 번째 강연은 “디자인 교육 · 산업, 2005~2015”입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디자인 산업은 경제적 토대의 재편과 더불어 정체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디자인 교육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관련학과의 증설로 인해 양적 팽창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과 함께 산업의 정체와 교육의 팽창이라는 지속적인 불균형 속에서 2005년과 2015년 사이에 발생한 기이한 변화상을 살펴봅니다. 강연은 무료로 진행되며, 신청자 우선으로 입장 가능합니다.
일시: 4월 16일(토) 오후 5시 강연자: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신청: //function popview(obj,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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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자 소개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동양대학교 공공디자인학부 조교수. 지은 책으로 『인터페이스 연대기』,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 『아수라장의 모더니티』등이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으니 세부 내용은 하단의 링크를 통해 확인해주세요 //function popview(obj,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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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연계 프로그램 – Ilmin Museum of Art
ilm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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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 전시 기간: 5월 29일까지 – 관람 시간: 오전 11시 ~ 오후 7시(매표마감 6시 30분) – 관람료: 성인 5,000원, 학생 4,000원 – 매주 월요일 휴관 – 4월 13일 수요일 정상 운영
* 웹 배너 디자인: 권영찬, 양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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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등장으로 시각적으로 인지된 실제 세상 속 시각 이미지들을 더이상 참조하지 않게 된다. 점차로 시각은 사이버네틱과 전자기적인 영역에 자리잡을 것이다.
Modernity and the problem of the 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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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확신하고 그에 따른다. Observer는 미리 규정된 가능성들의 체계 안에서 보는 사람이며, 관습과 제한의 체제에 박혀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Modernity and the problem of the 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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