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비아
Explore tagged Tumblr posts
Text
벤체슬라스 4세 구출 1403 Rescue of Wenceslaus IV in 1403
언제 탈출했는지는 동일한데 어떻게 탈출했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요약
오스트리아의 빌헬름 1세 공작이 감시 (William, Duke of Austria 합스부르크 왕가 일원)
1403년 11월 11일 일요일 점심식사 후 / 정오 이후
변장하고 4명의 기병 —궁정 시종2+충직한 동료2— 과 함께 탈출
어부가 배에 태워 도나우 강 건넘
강 너머 스타들라우에서 기다리고 있는 존 2세와 50명의 사수/저격병/기병/궁수
행선지: 도나우 강 -> 스타들라우 -> 미쿨로프 성 -> (브르노) -> (카를슈테인 성) -> 쿠트나호라 -> 프라하
참고문헌 바탕으로 서술된 사이트 https://www.e-stredovek.cz/en/post/second-captivity-wenceslaus-iv/ 1403년 11월 11일, 오스트리아의 빌헬름 1세 공작의 묵인 아래, 그리고 요한 폰 리히텐슈타인의 도움으로 벤체슬라스 4세는 빈에서의 구금 상태를 탈출했다. 그날 점심 식사 후, 그는 변장한 채 다뉴브강으로 향했고, 그곳엔 리히텐슈타인의 사람들이 배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 체코 국왕은 이미 모라비아의 미쿨로프에 도착해 자국 영토에 발을 디뎠다. 이후 그는 먼저 견고한 카를슈테인 Karlštejn 성으로 이동한 뒤, 쿠트나호라로 향했다. 그리고 내부정치 재조정 후 프라하로 복귀
(삽화 잘 보면 확실히 배가 있음)
작가 프란티섹 팔라츠키 František Palacký 의 저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체코 민족 역사>> 중 10권에서 발췌 https://cs.wikisource.org/wiki/D%C4%9Bjiny_n%C3%A1rodu_%C4%8Desk%C3%A9ho_v_%C4%8Cech%C3%A1ch_a_v_Morav%C4%9B/Doba_druh%C3%A1_i_neshody_s_panstvem_sv%C4%9Btsk%C3%BDm (요프스트 관심있다면 읽어보길 추천. 배신하고 손잡고 성격 잘나와있음 그리고….지기벤체가 너무강하다……..) 왕 벤체슬라스는 빈에 머물며 오스트리아 공작들의 권력 아래 감시를 받는 신세였다. 처음에는 공작의 성에 거처하였고, 도시와 그 주변을 말을 타고 매일 산책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반년이 지난 후, 공작 빌헬름(Vilém)이 그에게 Kienmarkt에 있는 별도의 저택을 내어주었고, 공작은 존경심을 표하기도 하고 동시에 감시하기 위해 매일 왕을 방문했다. 비록 벤체슬라스는 실제로는 포로 신세였지만, 이 상황은 사람들 앞에서 가능한 한 철저히 숨겨졌고, 겉으로는 그의 고귀한 신분에 걸맞은 모든 존경이 표명되었다. 그래서 빈에는 그만을 위한 궁정이 따로 유지되었는데, 그 구성원들의 지위로 보건대 결코 하찮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벤체슬라스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감시의 엄격함도 점차 완화되었다. 결국 그는 경비병들을 속이는 데 성공했다. 몰타 기사단의 기사인 보후시(Bohuše)의 도움을 받아, 11월 11일 정오 이후, 변장을 하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빈 시민들의 눈앞을 지나 도망쳤다. 그리고 도나우 강변에 도달하자, 한 어부가 그를 배에 태워 강을 건너 스타들라우(Stadlau)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얀 리히텐슈타인(Jan z Lichtenštejna)이 50명의 사수(저격병)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왕을 자신의 모라비아 영지인 미쿨로프 성(Mikulov)으로 빠르게 데려갔다. 이후에는 왕의 충신들이 있는 쿠트나 호라(Kutná Hora)로 그를 호송하였다.
리히텐슈타인 역사학회 https://www.hs-liechtenstein.cz/Historie-rodu-Liechtensteinu.html 바츨라프 4세가 두 번째로 투옥되었을 때, 리히텐슈타인의 요한 2세는 그가 빈에서 탈출하도록 도왔습니다. 1403년 11월 11일 일요일 점심 식사 후, 보헤미아 왕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변장한 채 포로 상태에서 탈출하여 네 명의 기병과 함께 빈을 떠났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저녁 무렵, 그는 다뉴브 강 반대편 슈타틀라우 마을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는 리히텐슈타인의 요한 2세가 이미 50명의 기병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은 그를 미쿨로프 성으로 안전하게 이송했습니다. 그 후 바츨라프 4세는 브르노로 갔고, 그곳에서 안전을 위해 카를슈테인 성으로 우회했습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왕으로부터 도움의 대가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왕은 1419년에 브레츨라프 Břeclavi 를 그들에게 영지로 하사하는 것을 확정했습니다.
저자 Joseph Aschbach <<지기스문트 황제의 역사 Geschichte Kaiser Sigmund's,>> 1권



190 슈타이어 공작 빌헬름은 라디슬라우스 왕의 누이와 결혼한 인물로, 자신의 처남이 헝가리 왕위에 오르길 원했기에 벤체슬라스 억류에 더이상 관심 두지 않았다. 그의 소홀한 감시는 결국 보헤미아 왕의 탈출을 초래했다. 191 벤체슬라스는 탈출��� 앞서 몇 주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보헤미아 귀족들의 지원을 받았음이 1403년 11월 9일자로 작성된 문서에서 확인된다. 그 문서에서 그는 두 명의 궁정 시종, 즉 하인리히 폰 자이들리츠(Heinrich von Seidlitz, 일명 라젠 출신)와 얀코 폰 브셰미슬(Janko von Wsemisl)에게 헌신적인 봉사에 대한 보상으로 영지와 수입을 하사하였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성 마르틴 축일(1403년 11월 11일), 벤체슬라스는 이 두 궁정 시종과 다른 충직한 동료 두 명과 함께 비밀리에 비엔나를 떠났다. 그날 저녁, 다뉴브 강의 슈타틀라우(Stadlau)에 도착했을 때, 한 어부가 도강 준비를 모두 마쳐놓고 있었다. 도나우 강 건너편에서는 리히텐슈타인의 요한(John von Liechtenstein)이 50명의 궁정 궁수들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벤체슬라스는 니콜스부르크(Nicolsburg, 미쿨로프)로 향했고, 거기서 보헤미아로 돌아갔다. 192 벤체슬라스는 프라하로 가지 않았다. 프라하는 지기스문트의 총독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쿠텐베르크(Kuttenberg)로 갔는데, 거기서 많은 지지자들을 규합한 뒤, 자신이 실제 수도로 복귀하려 했기 때문이다. 벤체슬라스가 자유를 되찾자마자, 그는 자신이 감금되어 있던 동안 지기스문트의 명의로 보헤미아에서 내려진 모든 명령과 조치를 무효라고 선언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동생(지기스문트)에게 항의서한(Beschwerdeschrift)을 보내어, 보헤미아 통치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였다. 그는 베를린에 머물고 있던 사촌 요프스트(Jobst)에게 급사를 보내어, 즉시 쿠텐베르크로 와줄 것을 요청했다. 벤체슬라스는 요프스트의 협조를 더욱 확실히 얻기 위해, 그에게 이미 저당 잡혀있던 룩셈부르크 공국(Herzogtum Luxemburg)을 다시 오를레앙 공작에게 담보로 넘길 수 있도록 허락했다. 보헤미아인들이 지기스문트 치하에서 과도한 세금으로 고통받고 있었기 때문에, 벤체슬라스가 왕위에 복귀했다는 소식은 전국적으로 환호를 받았다.
왕 해방의 대가로 오스트리아 공작들의 지지를 잃고 다뉴브 강 일대 영지를 몰수당하고 구금되었다
1. 실각+영지몰수 존 2세가 아니라 삼촌 존 1세 얘기던데 워호스가 잘못알았나봄 전후사정 생략 궁금하면 -> 리히텐슈타인 왕가 위키 https://de.wikipedia.org/wiki/Haus_Liechtenstein 존 1세 위키 2개 https://cs.wikipedia.org/wiki/Jan_z_Lichten%C5%A1tejna-Mikulova https://oesterreichwiki.org/wiki/Johann_von_Liechtenstein
2. 구금 "1405년 말이��� 1406년 초, 요프스트는 자신의 휘하에서 포로로 잡힌 존과 하인리히 리히텐슈타인을 위해 2,000 코펙의 몸값을 지불했습니다" 리히텐슈타인 역사학회 https://www.hs-liechtenstein.cz/Historie-rodu-Liechtensteinu.html
(저 문맥으로봐선 동생 하인리히 5세도 ���프스트 수하로 있었던듯 싶은데 저거 외엔 언급된 기록은 없음)
왕의 구출때문에 책임 추궁당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동생과 함께 구금됐단 기록으로 봐선 구출때문이 아니라 요프스트로부터 임무수행 중 포로가 된게 유력해 보인다. 그 임무수행이 뭔지에 대한 정확한 사유가 기록된것 또한 없다. 다만 요프스트 측 활동의 연속성으로 인해 충분히 해석의 여지가 있다
코펙이란? 그로셴보다 낮은 가치의 은화이며 공식문서상 정확한 명시가 필요해 작은단위의 금액으로 표기했다
프라하 그로셴 위키 https://pl.wikipedia.org/wiki/Grosz_praski "그룬발트 전투에서 튜턴 기사단 편에 서서 싸운 기사들의 석방을 위해, 블라디슬라프 야기에우로는 100,000 코펙(6,000,000 그로셴)을 요구했다. 이 금액 중 상당 부분인 37,000 코펙(2,220,000 그로셴)을 1412년에 왕은 지기스문트 룩셈부르크에게 빌려주었으며, 그 대가로 이른바 '스피슈 담보(zastaw spiski)'를 받았다." "바르샤바 주민들은 1413년 야누시 스타르시 공작이 그들에게 부여한 특권의 대가로 매년 60 코펙(3,600 그로셴)을 납부해야 했다." "1427년 미콜라쉬 트르치카는 클로드즈코 인근의 호몰레 성을 1,000 코펙(60,000 그로셴)에 구입했다."
60 코펙 (3600 그로셴) -> 마을 주민들 연간 세금 총액 300~500 코펙 -> 중소도시나 작은 영지를 살 수 있음 1,000 코펙 이상 -> 성곽/대지 구입 수준 5,000~10,000 코펙 이상 -> 고위 귀족도 쉽게 접근 못함 (국가급 자금)
더 자세한 화폐가치 비교 (이건 재미로만)
1. 오늘날 한화가치로는 얼마? 킹덤컴 레딧 https://www.reddit.com/r/kingdomcome/comments/katmu0/medieval_bohemia_prices/ (게임 물가 얘기 아님) 노가다 하루 일당 1그로셴 -> 최소 10만원 잡고보면 리히텐형제 몸값지불 2000코펙=12만 그로셴=120억…………………….. (두명분이긴해도 요프스트의 무조건적인 신뢰와 존을 많이 애낀다는게 느껴지는 액수…)
2. 게임 물가는 얼마? 게임 세계관의 평민들이나 병사들이 받는 임금, 브라반트가 언급한 마을 연수입을 보면 실제 가치가 반영된거같긴한데 ���인공 보정으로 퀘 완수보상 3~500, 중무장 적 파밍으로 400 이상 먹는거보면 간극이 상당히 비정상적임 (그리고 평민들은 그로셴이 아닌 그보다 낮은 화폐단위를 사용했다한다. 게임편의상 그로셴으로 통일한것)
헨리기준으로 환산해보자 (토끼가죽 8, 노루가죽 45, 돼지가죽 13, 사슴가죽 36, 소가죽 17, 사슴고기 6, 마늘 1, 우유 2, 치즈 6, 달걀 0.6, 빵 4그로셴, 말 목욕 200, 값비싼 투구 5000, 값비싼 갑옷 6000, 포도밭 일꾼 일당 10, 제일 비싼 말 5천, 퀘완수보상 300, 중무장한 적 한명 400) 다른거보면 0 하나빼는걸로 생각해도 되긴한데 퀘보상이랑 파밍하며 먹는 돈 생각하면 0 두개는 빼야됨 12만 그로셴 -> 1억 2천만
(요프스트의 핵심인물로서 구금되고 요프스트가 2000코펙이나 지불할만큼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 뭘까. 1405-1406 사이면 변경백령 전쟁밖에 없는데 1405 봄에 평화협정을 맺었다하고. 평화협정+프로콥 사망 후 요프스트 중심 정치재편 과정에서 반대세력이 정치적 교섭수단으로 낼 협상카드로 쓰기위해 구금…이 아닐까 하고 gpt가 추측해줌ㅎ) (이거 조사하면서 자꾸 눈가리개+팔다리 구속된채 감옥 석조바닥에 쓰러져있는 존이 요프스트가 구해주기만 기다리는걸 떠올리는 난 잘못없다 하인리히:????) (벤체 구출말곤 별다른 기록없길래 겜 묘사처럼 유능한거맞나 의심해도 요프스트 행적이 그걸 다 부숴버리네 죄송합니다)
-> 즉, 코덱스의 '왕 구출로 인한' 영지몰수는 오류이며 구금은 인과성이 모호한 기록이다 1편 존 코덱스 그대로 복붙한 워호스 (겜 설정이라하면 할말없음)
1947년에 시작되고 9월마다 열리는 미쿨로프 와인축제 Pálavské vinobraní



미쿨로프 성에서 출발하는 행렬이 탈출한 왕을 맞이하는 장면을 재현,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고정 퍼포먼스가 있다 축제사이트 https://www.palavske-vinobrani.cz 이거알게되고 좀…감동이었음 존의 업적이 후세에 남겨져 즐거운 축제로 기억되고있다는게 (체코사람 다 아는데 씹덕외국인이 말하며)
더해서 존이라면 떼려야 뗄수없는 와인에 대해
남�� 모라비아는 체코의 포도+와인생산 중심지이다 체코와인투어 https://www.justapack.com/south-moravia-czech-wine/ 체코의 와인생산 96%를 책임지는 남모라비아 여기서도 4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그중 체코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미쿨로프 지역 (+빠지지않는 리히텐슈타인 언급)

"미쿨로프 성에는 체코에서 가장 큰 와인 통이 있는데, 이 통에는 앞으로 370년 동안 매일 와인 한 병씩 마실 수 있는 양의 와인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런 통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존 이거보면 영원히 지하실 체류 쌉가능. 17세기 다른가문이 제작한거긴하지만)
"남부 모라비아에서는 아침 식사로 와인을 마시는 게 전혀 문제없습니다."

(자기 영지에서 생산한 고오급 와인으로 샘 입맛 길들이는 존 경이 보고싶다)
조사하면서 언급된 지명 표시 (걍 궁금해서)


쿠텐버그 똥물만 봤을 사무엘.. 존이 호수근처 자기네 영지로 데려가서 같이 물놀이했음 좋겠다
— 조사후 감상…나라영��� 이렇게 하는거구나….. 직접 조사하니 몬가 애정까지 생김 — 하…………기빨려 🫠 그래도 재밌었다 — 근데 아직 알고 싶은게 많아 요프스트 반쯤..한거같고 사무엘은 가상캐릭터라 대신 유대교 율법같은거 언제 다하지
#kcd2#history#wenceslaus IV of bohemia#john ii of liechtenstein#john of liechtenstein#analysis#meta analysis#research#headcanon
4 notes
·
View notes
Video
youtube
[#걸어서세계속으로Full📺] 유럽의 다양한 가을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곳 '체코 모라비아' 여행 Trip to Czech Rep...
0 notes
Photo

(사진 출처 : https://www.vogue.com/article/books-jhumpa-lahiri-in-rome-the-pulitzer-prize-winner-talks-about-her-new-novel-the-lowland-and-new-ideas ) 호수 건너편에 도착했다. 난 문제없이 해냈다. 지금껏 멀리서만 봤던 오두막이 몇 걸음 앞에 보인다. 저 멀리 남편과 내 아이들의 모습이 까마득하다.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호수를 건너자 내가 알던 호숫가는 건너편이 된다. 이쪽이 저쪽이 된 것이다. (p13) 이제 이 작은 사전은 부모라기보다 형제 같다. 여전히 내게 필요하고 아직도 날 이끌어준다. 사전에는 비밀들이 가득하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p18) 24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일종의 언어적 추방에 익숙해져 있다. 모국어인 벵골어는 미국에서 보자면 외국어다. 자신의 언어가 외국어로 생각되는 나라에서 살아갈 땐 계속 기묘하고도 낯선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홀로 환경과 조응하지 않는 미지의 비밀스러운 언어를 말하는 것 같다. 그리움이 자신 안에 거리를 만든다. (p25) 알베르토 모라비아 <무관심한 사람들>, <권태> 체사레 파베세 <달과 횃불> 살바토레 콰지모도 (p37) 39 43 45, 6 53 나는 손으로 쓴 한 페이지가 넘지 않는 아주 짧은 분량의 작품으로 시작했다. 특별한 뭔가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다. 어떤 사람, 어떤 순간, 어떤 장소 말이다. 예전에 문예 창작 수업을 했을 때 학생들에게 요구했던 점을 이제 내가 실천했다. 짧은 글을 써보는 게 단편을 쓰기 전 먼저 해야 할 첫걸음이라고 학생들에게 설명했었다.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기 전에 실제 세상을 잘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55) 56,7 밤에는 잠이 잘 왔다. 아침에는 불안감 없이 눈을 떴다. 미래도, 삶의 지난 자취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림자 없는 사람처럼 시간 속에 정지돼 있었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살아 있다고 느꼈다. (63) 번역가는 혼란스러웠고 공허했다.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 또 다른 변화를 찾아 이 도시에 왔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뽑아버릴 수 없는 뿌리, 사방이 꽉 막힌 감옥 같았다. (p70) 영어를 포기했을 때 난 내가 믿는 권위를 포기한 것이다. 난 확신 없이 흔들리고 있다. 나는 미약하다. (...) 자신에 대한 믿음과 권위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을 의마할까? 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데 작가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까? (...) 나는 왜 글을 쓸까? 존재의 신비를 탐구하기 위해서다. 나 자신을 견뎌내기 위해서다. 내 밖에 있는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p72-75)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지금 나는 푸엔테스의 생각을 좀 더 피부로 느낀다. 내게 영감을 주는 동시에 내 공간을 앗아가버린 봉우리 정상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정상은 나보다 더 훌륭한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언어의 심장부 그 자체다. 내가 분명 언어의 심장부 안에 있을 수 없으리라는 걸 알지만 난 글쓰기를 통해 그곳에 도달하려 애쓴다. (p78) 하지만 이탈리아어 글을 쓰겠다는 내 계획은 언어 사이의 거대한 거리를 날카롭게 인식하게 해준다. 외국어는 완전히 분리된 다른 언어일 수 있다. 너무나 잔혹한 우리의 무지를 보여줄 수 있다. 새로운 언어로 글을 쓰고 새로운 언어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데 기술 발달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정을 가속할 수도, 단축할 수도 없다. 그 길은 느리고 불안하고 지름길이 없다. 새로운 언어를 알면 알수록 혼란스럽게 엉켜든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멀어진다. 나와 이탈리아어 사이의 거리는 지금도 극복할 수 없다. 겨우 두 걸음 나아가는 데 내 인생 절만이 소요됐다시피 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만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건너고 싶었고 깊은 성찰의 물꼬를 튼 작은 호수의 은유는 틀렸다. 사실 언어는 작은 호수가 아니라 넓은 바다다. 두렵고 신비한 요소, 내가 고개를 숙여야 하는 자연의 힘이다. (p79) 다시 푸엔테스 이야기로 돌아간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불가능을 인식한다는 게 창조적 충동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달할 수 없을 듯한 모든 것 앞에서 나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사물에 대해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느끼지 않고는 그 무엇도 창작할 수 없다. (p81) 84, 5 92 성인이고 작가인 내가 왜 불완전과의 이 새로운 관계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든 걸까? 명확하게 이해가 될 때의 황홀감, 나 자신에 대한 보다 깊은 자각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완전은 발명, 상상력, 창조성에 실마리를 준다. 자극한다. 내가 불완전하다고 느낄수록 난 더욱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 불완전을 잊기 위해, 삶의 배경으로 숨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왔다. 어떤 의미에서 글쓰기는 불완전에 바치는 경의다. 사람처럼 책은 창작 기간에는 불완전하고 완성되지 않은 어떤 것이다. 임신 기간이 끝나면 사람은 태어나고 성장한다. 하지만 책은 쓰여지는 동안에만 살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 책은 다 씌어지고 나면 죽는다. (p94) 98 번역은 어떤 것을 읽는 가장 심오하고 친밀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두 언어, 두 텍스트, 두 작가 사이에서 일어나는 참으로 아름답고 역동적인 만남이다. (p99) 어떤 특정한 곳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사실 어느 곳으로도 돌아갈 수 없다. 추방과 귀환의 개념은 고향, 고국을 내포하고 있다. 고국 없이, 진정한 모국어 없이 난 책상에서마저 세상을 떠돌고 있다. 결국 진짜 추방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추방의 정의에서조차 난 추방당했다. (p108) 110-1, 2 난 작가다. 난 언어와 철저히 하나가 되고, 그 언어로 일한다. 하지만 벽이 날 떼어놓고 거리를 둔다. 벽은 피할 수 없다. 어디를 가든 벽이 둘러싸고 있고 그것 때문에 난 내가 벽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난 벽�� 허물기 위해, 순수하게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쓸 때 내 모습, 내 이름은 상관없다. 보여지는 것과 무관하게 편견 없이 여과 없이 내 말이 전달된다. 난 보이지 않는다. 난 내 말이 되고, 말이 내가 된다. (p116) 내 언어적 여정의 세 번째 꼭짓점인 이탈리아어가 오면서 삼각형을 만들었다. 직선이 아닌 삼각형 모양. 삼각형은 복잡한 구조이고, 역동적인 형태다. 세 번째 꼭짓점이 다투기만 하던 오랜 짝인 벵골어와 영어의 역학 관계를 바꾸었다. 나는 싸워대던 그 불행한 커플의 산물이었지만 세 번째 꼭짓점은 그 관계에서 생겨나지 않았다. 세 번째 꼭짓점은 내 갈망, 내 노력에서 생겨났다. 오롯이 나로부터 비롯했다. 이탈리아어 공부는 나의 삶 안에서 벌어진 영어와 벵골어의 긴 싸움으로부터 도주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모국어 벵골어도 새어머니인 영어도 거부하는 길이었다. 독립적인 노정이었다. 이 새로운 여정이 날 어디로 데려갈까? 이 도주는 어디에서, 언제 끝날까? 도망치고 난 후 무엇을 할까? 사실 엄밀히 따지면 도망은 아니었다. 도망을 쳤음에도 영어나 벵골어가 내 옆에 있다는 걸 깨달았으므로. 삼각형의 꼭짓점이 그렇듯 한 가지 꼭짓점은 다른 꼭짓점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 이탈리아어를 알면 알수록 내가 영어에서도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두 언어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그 때문에 도주가 귀환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123-124) 이 삼각형이 일종의 액자라고 생각한다. 이 액자 안에 내 초상이 들어 있다고. 액자가 날 규정짓는데, 과연 무엇이 그 안에 들어 있을까? 평생 나는 액자 안에서 특별한 무엇을 보고 싶었다. 정확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비춰줄 거울이 그 안에 들어 있기를 바랐다. 단편적인 모습이 아닌 전체적인 모습의 사람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없었다. 이중의 정체성 때문에 흔들리고 왜곡되고 위선적인 모습만을 보았다. 혼성이고 선명치 않으며 늘 혼란스러운 무엇을 보았다. 액자 안에서 특별한 이미지를 볼 수 없는 건 내 인생이 어지러워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찾는 이미지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 거울에 텅 빈 공간이 비칠까봐, 거울에 비친 모습이 없을까봐 두렵다. 나는 이 빈 공간에서, 이런 불확실에서 왔다. 빈 공간이 내 원천이요 운명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이 빈 공간에서, 이 모든 불확실에서 창조적 충동이 나왔다. 액자를 채우고자 하는 충동이 말이다. (p126-127)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문법과 구문이 당신을 바꾸고, 다른 논리와 감정으로 이끌어 줄 겁니다." (p128) 오비디우스, <변신> (p129) 131-2, 3 변신의 메커니즘은 절대 변하지 않는 삶의 유일한 요소일지 모른다. 모든 개인, 나라, 역사의 시대, 우주만물의 과정은 때로는 약하고, 때로는 격렬한 변화의 과정일 따름이다. 변화가 없다면 우린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무언가가 변화하는 전이의 순간들이 우리의 척추를 만든다. 우리가 기억하고자 한 순간순간들은 살아남거나 사라진다. 변화가 우리의 존재에 뼈대를 만든다. 나머지는 대개 망각된다. 예술은 우리를 일깨우고, 마음에 새길 뜻을 주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찾는 걸까? 우리는 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지금 우리를 움직이는 뭔가를 찾는다. 오비디우스의 걸작이 날 변화시켰듯이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어한다. (p135-136) 로사 칼제키 오네스티 (p138) 나는 혼자라는 걸 느끼기 위해 글을 쓴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는 뒤로 물러나 나를 발견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침묵과 고독이 필요했다. (p146) <옮긴이의 말 : 또 다른 말로, 나라는 존재의 바다를 건너는 아름다운 방식, 이승수> 라히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존재의 신비를 탐구하고 자신을 견뎌내기 위해서, 자신 밖에 있는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라히리에게 글쓰기는 세상을 해석하고 삶을 정리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 글쓰기의 수단인 영어가 무뎌진 칼날처럼 돼버렸기에 내면의 빈 공간을 채워주고 자아를 실현해줄 새로운 표현 수단이 필요했다. 그 가능성을 이탈리아어에서 보았다. 언어를 탐색해 발견해내면서 자신을 탐색하고, 내면의 빈 공간과 삶의 불완전함을 채우려는 시도에서 창조적 충동은 나온다고 생각했다. (p162) - 줌파 라히리 , '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 중에서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4209929595731448
0 notes
Photo

체코사진이 없어서 색연필로..;; 이럴려고 그림 배운게 아닌데 ☞☜ 야경을 찍고 싶은 곳증에 하나인 체코. 내일투어에서 체코 금까기 원정대를 뽑는다. 패키지여행과 자유여행의 장점을 모아둔 금까기로 유럽이라니.. 너무 땡긴다~ 그리고 예전에 도전했다가 적응못하고 떠나보내야했던 올림푸스 카메라까지 빌려준단다.. 요즘 올림푸스 미러리스가 땡겨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뽑힐 획률은 지극히 낮지민 혹시 모르니까 도전~~!!! naeiltour.co.kr. 체코, 그 두번째 이야기 체코 공짜여행 갈 사람 주목! [#체코 _ #금까기원정대 이벤트] [모집일] 7월 31일(월) - 8월 13일(일) [발표일] 8월 18일(금) [응모 대상]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자기만의 온라인 매체를 성실히 운영하고 있는 여행자라면 누구든지 지원 가능 . *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 참조 goo.gl/DixooA . . . #지구를걷자 #여행엔올림푸스 #체코이야기의땅 . . . #내일투어 #올림푸스 #체코관광청 #카타르항공 #금까기 #체코 #모라비아 #브르노 #올로모우츠 #크로메르지시 #미쿨로프 #레드니체 #발디체 #올림푸스카메라 #이벤트스타그램 #이벤트그램 #이벤트 #공짜여행 #무료여행 #트래블스타그램 #travelstagram #체코여행 #체코자유여행 #czech #czechrepublic #moravia
#발디체#올로모우츠#공짜여행#czech#무료여행#지구를걷자#체코#체코관광청#브르노#올림푸스#카타르항공#금까기원정대#이벤트스타그램#체코여행#moravia#트래블스타그램#체코자유여행#여행엔올림푸스#내일투어#이벤트그램#올림푸스카메라#레드니체#czechrepublic#모라비아#이벤트#금까기#미쿨로프#크로메르지시#체코이야기의땅#travelstagram
0 notes
Text
한국의 선인들, 100번째 스머프 등등
New Post has been published on http://kpopmusicstory.co/%ed%95%9c%ea%b5%ad%ec%9d%98-%ec%84%a0%ec%9d%b8%eb%93%a4-100%eb%b2%88%ec%a7%b8-%ec%8a%a4%eb%a8%b8%ed%94%84-%eb%93%b1%eb%93%b1/
한국의 선인들, 100번째 스머프 등등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仙人)들
(전6권)
문화영. 수선재. 1999년.
개구쟁이 스머프 3:
100번째 스머프 (가짜 스머프)
페요. 세진출판사. 1992년.
캣피플
게리 브란드너. 대일서관. 1982년.
성가대를 위한 최덕신 곡 모음집
임영웅 편곡. 중앙아트. 2002년.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사 (전3권)
백무현 글,그림. 가람기획. 1996년.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 금장본
200주년신약성서번역위원회.
분도출판사. 2009년.
중고책 신고서점 전문
www.singoro.com
주의사항
여기는 자료실입니다. 위에 소개한 책이 서점의 현재재고로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필요하신 분은 반드시 저희 서점 홈페이지에 방문하셔서 검색을 해보시고 검색이 될 경우 주문하시기 바랍니다.
신고서점 해당 분야 바로가기
윗글과 관련단어
단 丹: 단의 완성 홍태수 세명문화사 생명의 빛 송보정 김용진 우주진리연구원 뇌파진동 정규수련 HSP 컨텐츠개발팀 한문화 국선도 1 청산선사 마음건강도인술 하야시마 마사오 김종오 정신세계사 보리는 보리를 먹어야: 氣 운영 수행기 보리 김기원 현일사 ���단: 선도의 최고실천서 小野田大藏 한국선도학회 명지사 박희선 박사의 생활참선 (개정증보판) 운기단법: 단학지침서 이승헌 단학: 그 이론과 수련법 요가로 찾는 내 몸 안의 신 모토야마 히로시 이혜숙 카피바라북스 신단 神丹 동서문학사 기의 정체: 초능력의 비밀 사사키 시게미 이길환 동화문화사 생활참선: 과학자가 쓴 살아있는 참선 이야기 3분요가의 기적 미야마 사토시 최병련 하남출판사 도인술 지음 엮음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仙人)들 (전6권) 문화영 수선재 송영희의 손 : 기와 건강 송영희 제삼기획 선계에 가고 싶다 쿤바카 오오이 미츠루 김보경 의식의 힘: LQM 원리와 기법 정필문 세훈 우주에 이르는 길: 세계 차원의 곽내혁 창해 기氣: 원기 강대봉 언립 천일기공 (개정판) 이재복 건강한세상 과학자의 생활참선기 여름에 내린 눈 우 조티카 사야도 박선영 보리수선원 건강하게 사는 법 기차게 삽시다 지선 스님 성하출판 건강기공 이동현 선계 신인 神人 진기환 편역 사철나무 의선 허준과의 만남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살리는 길 (CD포함) 보약보다 기공이다 지정옥 동녘 도인 덩 밍다오 박태섭 고려원미디어 수련이야기 파룬궁 한국법륜대법학회 한동작 요가: 혼자서 1분만 해도 몸이 달라지는 제시카 랜덤하우스 (丹) 高藤聯一郞 김현 대경출판사 요가 선체조 108 혜원 가람기획 건강도인술 新井基夫 유문열 고려문학사 전법륜 이홍지 중국법륜대법연구회 자유로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위대한 자신의 발견 선(仙) 불로불사 高藤聰一郞 (다카후지 소이치로) 최운권 보성출판사 선인이 되는 氣(기) 아는 만큼 행복하다 임경택 교수의 숨쉬는 (단침과 열기) 명상 기氣 뇌호흡 2 일지 이야기: 단침과 열기 천기를 움직이는 사람들 최선웅 책만드는공장 한국요가 (온살이門) 김광백 그린 실상 神丹: 신인일치의 지침서 단학인 운기단법 중국법륜공 中國法輪功 경혜의 인연이야기: 禪의 한경혜 작가의집 구철원 박태진 문화마당 命 2부: 기 김수용 글사랑 컨디션 트레이닝: 업그레이드 스트레칭 이희성 산해 선도체험기 41 김태영 유림 39 31 29 28 27 18 17 12 5 참선요가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아주는) 정경스님 하남 13 7 백두산 천기단법 (중) 이판�� 태웅 홍민성: 나의 운명까지 바꿔준 국제슈퍼맨 스캇 스탠리 이규원 미래문화사 법륜대법은 좋습니다 윌리엄 프랭클린 맥코이.장 리쥐안 정태환 그룹필 소설 대기공사 (전2권) 가운로(柯云路) 황병국 대원사 초인 마음과 세상을 여는) 백종옥 행법사 세상 너머의 우명 참출판사 62 웰빙 부사의 不思意 이규임 심학당 해뜨는 나라 조지 클렘비스 태미 슈바르츠 진정한 건강의 法輪功(파룬궁) 맥코이 장 편집 36 35 33 마이너스 영 최영재 무극도설 아래맘 4 임산부를 위한 태교 (책만 있음) 모습없는 모습으로 다가온 윤정주 성하 15 천서 0.0001 (1) (2) 숨 좀 쉬고 편집부 지선스님 학교 숨쉬는책 마음이 편해지는 모닝 15분 제인 트렉슬 최정숙 미래의창 20 16 40 클레미비스/태미 단윤경 노래시로 푼 대설 온달 지축 새 세상의 주인들 석선 대산출판사 신성을 밝히는 단학수련체험기 새요가법 아사나연구회 편 이성희 송원문화사 돈 안 들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박한 에반 파이너 강주헌 성우 기를 살려야 돈이 보인다 이용설 Longing for Seon-gye Monn Hwa Young Soosunjae 행복을 창조하는 (氣)기를 원정혜의 힐링요가 원정혜 랜덤하우스중앙 스와미 시바난다 요가센터 박지명 해부학적 생활요가 정순식 국제요가협회출판부 정혜랑 즐겁게 배우는 어린이 윤주영 북하우스 페이스 정유상 삼성출판사 운명을 바꾸는 웰빙명상 김창수 이송우 명상신문사 한국인을 음양-요가: 이론과실제 이승용 홍익요가연구원 절기 맞춤 체조 윤상철 편저 대유학당 정신세계 21 판타지 또 하나의 현실 (2002.05~06) (부모편만 따라하면 병이 낫는 증상별 단학도인체조 웬디 티즈딜 김효명 아카데미북 음양 – 실제 2001년 3월 함소원과 함께하는 S라인을 만들어 주는 뷰티 79 송규성 글 모델 함소원 BM 성안당 무작정 따라하기 장영세 길벗 쉬바난다 오문환 정영세 민족사 해인사 정경스님의 참선요가교본 정경 참선요가: 기초편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김나미 황금가지 선도기혈 건강법 박성대 홍범 쟈쟈의 요가짱 시리즈 (전4권) 통커뮤니케이션 기획 장락 청소년 지도법 IPC 책으로여는세상 (개정판 CD 1장 포함) (별책부록포함) 힐링 가이드: 마음 건강을 돕는 다섯 가지 ���표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요가피아 안지용 요가코리아 몸을 30분 송방호 넥서스Books 좌선의: 천 년을 이어 온 혜거 집에서 10분 박중양 중앙M&B 2000년 8월 건강과 아름다움을 만드는 정판식 가림 뉴 휴먼 1999년 10월 단(丹) 1997년 11월 (단기 4330년) 1996년 12월 통권42호 몸에 꼭 맞는 마크 앤사리 & 리즈 락 북플러스 알기쉬운 단학해설집 홍익공동체 중앙교육원 단월드 5월 4월 씽~씽~ 초보 다이어트 학원사 심기신수련 행복날개수련원 윤주영의 명상요가 효과를 2배 높여주는 포인트 김한 시공사 혼자서도 쉽게 따라할 50가지 국일미디어 10년 젊어지는 한국단학선도협회 건강생활 따라할수 단학 (CD Yoga Standard of Korean 표준지침서 윤택은 외 청람 우리집 동의보감 단학활공 일지자연건강센터 한국 정체성 조명 국제선도문화연구소 1998년 9월 6월 4329년) 1994년 4327년) 소사이어티 2003년 1월 한문호 2월 7월 4331년) 1995년 4328년) 한문홧 2002년 국선 두번째호 통권27호 밝문화 첫호 통권26호 심신수련: 초급편 선경그룹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 이희주 물병자리 행복한 가족요가 김상운 신성구 최윤석 동도원 뇌 powerbrain 2004년 특별호 (Vol.17) (Vol.13) 신나는 태극 박공주.장영세 참사람과 정생의진리 개벽 세종출판기획 new human DAHN 상아탑 크리스마스 캐롤과 이야기 이요섭 세광음악출판사 50가지 성탄 축제 안셀름 그륀 서명옥 분도출판사 크리스챤 복음성가집 (완전4부합창곡) 화음 전도 풍선 만들기 김흥영 은혜출판사 생명의 샘: 청(소)년 사목을 위한 노래모음 청소년의 햇살 제작 세이트뮤직 사계절 절기 성극집 김은주 성공문화사 크리스챤을 희곡집 (1) 김종철 스킷 드라마 (개정판) 조현식 예영커뮤니케이션 늘찬송 하면서 (1 2 3집 합본 총910곡 수록) 홍정표 편저 아가페출판사 찬양잘하기 찬양늘하기 김민식 사랑마을 성극 모음집 3 하유상 극본 황행일 연출 기민사 알기쉬운 손 인영극 교본 서성복 저 김성준 그림 백합출판사 캠프 한성균 보이스사 기도 공동체 성가 불모임 성가집 편집 봉사팀 편 가톨릭출판사 새노래: 젊은이들을 해설 복음송가 예수마을 4계절용 알기쉽게 풀어쓴 레크레이션 600선 노기호 엘맨출판사 성경 예화 인형극 시나리오 신관홍 에벤에셀 행사 자료집 김종필 소망사 JOYFUL SONGS 삼���외국어학원 예수님도 웃어보세요 주석 엮음 예수촌사람들 은혜 시리즈 10: 대림절과 교육프로그램 대한기독교교육협회 추수감사절 찾아보기 이기명 기쁜소식 하나님 자연 사람 전국재 엠마오 성탄절 예술제 마흥락 서울음악사 기다려지는 주일학교 김인환 기독신문사 성경성극 노영근 김한기 우리 교회 작은 무대 5 내 영혼의 찬양 사랑의교회 대학부제자들 두란노 경배와 합본집 기쁨으로 특별 행사자료집 나하나 캠프사역의 이론과 실제 그림성경자료집 교회교육선교회 희년노래 기획편집위원회 한울 신판 제1집: 베들레헴에 나신 왕 외 16편 한석준 아가페 박노진 여가 레크리에이션 이영민 예루살렘 여름성경학교 자료백과 이광재 엘맨 성극모음집 (전문 연출가로 이끄는) 청소년을 변화시키는 신앙공동체훈련 프로그램 천준호 참빛 교회성극집 3: 교회절기 오소운 테마가 있는 추적놀이 4 문학의 밤과 그 지도와 (증보판) 여호와 앞에서 율동보다 몸찬양을 박연훈 프레이즈 즐거운 수련회 종합 핸드북 세광음악 나의 사랑 강정훈 한국문서선교회 교회주보사전 문형준 성극의 만남 장사영 최신 성탄자료집 장태원 김성희 주일학교를 전도풍선 인형 특별행사 장식 이영일 교회인형극백과 샘 세인트뮤직 1%만 바꾸어도 되어지는 복음적인 주금용 비전북스 성장하는 10교회 중고등부 수련회전략 강준상 알차고 꽉찬 캠프수련회 아이템 (전면개정판) 크리스천리더 민들레의 봄 장수경 파이디온출판사 주보자료백과 2: 유년부 장년부 주보자료연구회 성탄자료 한국어린이전도협회 교회절기프로그램 한국기독교장로회출판사 캐롤 모음 이세랑 성극집: 내가 만난 예수님 주보자료 1: 학생 청년 중년부 용 가톨릭 (포켓북)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육을 인형극의 허창수 교회교육연구원 손으로 할 수 있어요 한국연합회 어린이부 관객을 사로잡는 성극만들기 국민일보사 상장 예식 은혜의 파도소리 나단 1997 수련회자료집 6: (중 고등부) 한국장로교 영으로 부르는 노래 SDA반포교회 이 시간을 잃어버리면 김찬양 진흥 성탄행사의 모든 것 장은영 성경학교 (여름·겨울) 교사의 벗 편집부 늘빛 놀이 뭉텅이 모퉁이돌 부활절 캠프카운셀링 김광태 정화영 크리스챤서적 셋 가스펠앨범 1 찡한 찐한 김성태 예찬사 율동박사 전정심 기쁘다 구주 오셨네 분필그림 지침서 제리 스왈 생명의말씀사 교육 프로그램의 실제: 중·고·청장년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교육부 한국장로교출판사 내마음의 변기용 하늘기획 싱얼롱레크레이션톱 홍경표 영문 중·고·청년부 문화의 밤으로 가는 밤 기독문화연구회 Joyful Songs SDA 주��어부 영어찬송 15곡 제1집 이진영 해설옮김 작은손 우리의 세상 성공적인 교수법 오애숙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 빛두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교육홍보위원회 인물 송종호 컨설팅 곽동근 도시의 부활 최치남 새로운 게임들 성극모음 현동명 다윗처럼 춤추며 찬양하며 민성사 월간 교사의벗 율동백과 이진숙 구원함을 얻은 기쁨 찬양예수 다드림선교단 주찬양 백합 실전 레크박사 김영일 운영의 부산 서부교회를 중심으로 백영희 기독지혜사 손인형극 타오르는 횃불 일어나라 삼손 젊은이 청년선교회 하늘소리 금란교회 교회학교연합 출판사 신바람나는 크리스천하우스 특선성가대전집 해설서 느낌기획 어린이 찬미가 한국연합회어린이부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이해원 창미사 교회극 특선 김효진 친구를 찾습니다 김창수 기쁨의 광림 예수초청잔치 송경호 교회교육선교회출판부 기획자를 열린 예배 기획 웍샵 조태현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하세요 21세기 사역자연구소 살롬 경지사 운영과 청소년교육선교회 하나되게 하소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윤수 가톨릭교리신학원 지금도 춤출 있다 청지기의 세계교회성장연구원 늘빛출판사 시청각 가사와 곡조가 잘 어울리는 더 멋있는 조병우 구세주 제2집 금성교회 하나님은 우리를 배우로 만드신다 박용진 성극.com 김인섭 절기자료백과: 교회절기행사 컷자료 (주일학교 유초등부 중고등부) CBS 기독교방송 음악노트 BIG 윤정한 영적 부흥을 청소년 길라잡이 성백 서로사랑 마음에 한 노래있어 제5집 학생신앙운동 찬미예수 서울대교구성령쇄신봉사회 가스펠댄싱 율동과 함께 찬양의 나라로 율동대학 그리스도인과 이대희 욥의 설삼용 영광문화사 와우! 교회레크리에이션 박주성 특별프로그램 목사님의 구두 뒤축 베들레헴 감동명화소설선집 4: 엘리노어와 프랭크린 죠셉 P. 라쉬 한재룡 경영문화원 캣피플 게리 브란드너 한도빈 대일서관 갈매기의 꿈 리차드 바크 원작 한상철 편역 청산문화사 레먼북스 60: 걸작 추리 단편선 안톤 체호프 외 3인 최명순 청자각 지상에서 영원으로 (전3권) 제임스 존스 이윤기 고려원 흐트러진 침대 프랑소와즈 사강 소두영 청조사 솔로몬의 고뇌 에밀 아자르 신경자 문학사상사 선을 찾는 늑대 로버트 퍼시그 (Robert M. Pirsig) 일지 고려원미디어 잃어버린 얼굴 프랑스와즈 싸강 김화영 민음사 올리버 스토리 에릭 시갈 권태정 정통출판사 다섯꼬마 이야기 이지 토룬카 노수신 문학생활사 영원한 타인 쥰노스케 남궁한 사방사 프랑��즈 백신 세신문호사 70년대 아쿠타카와상(芥川賞) 소설집 김후란 현암사 레먼문고 31: 텐에이저 아아사 엉거 카멜 버어만 클래어 밀러 한상엽 17: 러브 시겔 정병조 59: 피서지에서 생긴 일 S. 윌슨 김종건 불꽃나무 (Les flamboyants) 패트릭 그랑빌 비잔티움의 밤 어윈 쇼우 이정배 세종출판공사 대부 (속편) 마리오 푸소 김순호 심상곤 태창문화사 비룡 飛龍 (전5권) 와룡생 왕일천 경지사 돈 까밀로의 곤경 조반니 과레스끼 이선구 가톨릭출판사 낙제생동맹 존 케네디 홍성표 학일출판사 환희 닐스 베르크비스트 신선주 청하 뿌리 알렉스 헤일리 김경석 엑소더스 (상) 레온 유리스 문일영 대운당 명랑한 까밀로 신부님 조반니노 꽈레스끼 최국진 삼문당 도곡리 철교 / 전사 희망자들 미치너 죠지 시드니 이명섭 김종운 정한출판사 바다의 침묵 베르꼬르 오징자 샘터사 신욥기 요제프 로트 홍경호 삼중당 휘파람 (전2권) 야망의 계절 안정효 정명진 덕문출판사 정영일 태양 속의 사람들 가싼 카나파니 민영 김종철 창작과 비평사 꼬마 니꼴라의 암호놀이 르네 고시니 글 쟝 쟈크 썅뻬 그림 김혜련 태멘기획 완역판 장왕록 임헌영 청람 노란 꼽추 파스칼 자르뎅 문지사 완전한 기쁨 루이제 린저 범우사 둥지를 떠나는 새 얼 햄너 쥬니어 폭풍속의 나무잎 임어당 이명규 동학사 42: 슬픔은 그대 가슴에 화니 허어스트 강우식 제8요일 마레크 플라스코 전규태 평민사 내 마음 대지에 (중앙가정총서 5) 디나 케이로즈 홍윤기 중앙일보 동양방송 생존 배급 카아드 마르셀 에메 오생근 과학과인간사 미오 나의 A. 린드그렌 한기상 김윤희 교연사 애정의 조건 래리 맥머트리 김인철 한국문화출판공사 게르니카의 아이들 헤르만 케스텐 박종서 홍성사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 시걸 박성희 주부생활사 온정의 강: 세계명작 단편선집 김용선 역 평문사 러브스토리 이현원 풍성각 14: 제복의 처녀 크리스타 윈스뢰 왕수영 불신의 여름 게이로스 정규호 한국문학사 굿바이 미스터 칩스 힐튼 김기혁 문예출판사 고원에 사랑을 심고 한얼문고 청맥 石坂洋次郞 문일봉 상지사 행복을 주는 귄터 그라스 김창활 문음사 하늘의 하나님 땅의 비르질 게오르규 김영호 서래헌 10: 녹색의 장원 윌리암 헨리 허드슨 진용우 풋내기 여고생 (쥬니어 세계명작) B. 클리어리 주연희 용문사 실록소설 정치학교 (전6권) 戶川猪佐武 안동민 동방도서 노틀담의 빅토르 위고 이상근 서한사 두 소녀 에머리 이애령 정태림 이름은 시프 홀름 청산 라라의 회상 올가 이빈스카야 신정옥 김영석 술내리는 마을 김정수 한마당 이 소박한 소망을 돌로레스 메디오 장선영 비전 백수선화 관심 알베르토 모라비아 강은형 문암사 앨릭스 해일리 조남식 문원 그 도시에서 주일을 쇼 박영식 불타는 가을 이쓰키 히로유키 이희구 한마음사 어머님께 바치는 성가 L. 오올커트 신지식 그녀의 시간 노만 메일러 이경식 계원 주홍 빛 연구 아서 코난 도일 김현문 대학 캠퍼스 112 曾野綾子 사방 약혼녀 S.Y. 아그논 박흥원 동서문화원 우리가 약속한 땅 E.M. 레마르크 이승위 서정출판사 나일살인사건 크리스티 안동림 동서문화사 웨익필드의 목사 꼬울드스미스 이근섭 창림사 로맨스의 승리 Cripple Man and the New Order C.Y. 리 이기석 수도문화사 양귀비 (하) 井上 靖 박지수 청산문고 김용소설정화전집 3: 의천도룡기 김찬연 퇴설당 고백파티 크리스티네 브뤼크너 최석희 지인사 환상을 찾아서: 형제 미국인 P.C. 에틱호퍼 오한진 일신사 축소판 세계문호명작선집 (1) 남욱 신동집 맹후빈 김백웅 공편 한국출판사 제칠병동 (부: 재판은 시작되다) 봘레리 타르시스 앙드레이 시냡스키 김재구 세계사 피터의 환생 막스 엘리히 윤재목 한진출판사 바다 루돌프 하겔시탕게 새글사 보오이. 한트 (Where Boys Are) G. 스와싸우트 이세열 구문사 꿈을 먹는 A.A. 렌느 스쟌 펄 진윤찬 현대문예원 여교사의 윌리엄인지 황동문 백색국적의 스파이 J.M. 짐멜 정종수 대작사 파라다이스 PARADISE 주디스 맥노트 주영아 잠들지 않는 호수 윤재걸 끝없는 사랑 스코트 스펜서 태멘 그로잉업 한명준 편저 세광출판공사 말코 씨리즈 2: 아테네 살인사건 제랄 드 발레 석범진 청산사 무당 The Exorcist (완역판) W.P. 블래티 이종구 상문출판사 썬샤인 노마 클라인 김정우 영일문화사 복수 가스메 아스사 천불란 한국출판문화공사 약탈자 해롤드 로빈스 김하빈 재코올의 날 프레드릭 포사이드 김상일 지경사 독수리 형사: 메이슨 변호사의 명탐정기 E.S. 가아드너 일광사 사노 모리무라 세이이찌 오영석 직장인 다가오는 그림자 (영레이디 1981년 12월호 별책부록) 카트리는 아를레 중앙일보사 풍운을 탄다 城山三郞 권순만 신여원 여고생의 첫사랑 大島미찌꼬 윤길인 예일출판사 본진살인사건 橫溝正史 강병희 하서 썬 샤인 로마주화 666 제인 앤슨 한그루 걸 이소벨 레나드 평화문화사 남과 여 이르쉬휠드 박동혁 인문당 다니엘과 마리아 엔니오 데 콘치니 이종호 타임 패트롤 폴 앤더슨 강수백 행복한책읽기 신들의 사회 (개정판)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라마와의 랑데뷰 클라크 박상준 현대정보문화사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하인라인 임창성 잎새 전쟁 조 홀드먼 시공사 파운데이션 (전9권) 아이작 아시모프 최서래 김옥수 파괴된 사나이 알프레드 베스터 2001 오디세이 아더 C. 김종원 모음사 SF 걸작선 두뇌로의 여행 강무환 작가정신 2001: 스페이스 로코코 거리 시마다 마사히코 장편소설 정회성 한민사 아루스란전기 (1부 전7권) 다나카 요시키 을지서적 추락하는 여인 팻 머피 안봉선 걸작컬렉션 1: 창작기계 이성수 윤태원 서울창작 위대한 탄생 아이삭
중고책 중고서적 중고도서 중고서점 중고책방 헌책 헌책방 희귀본 자료도서 절판본
0 notes
Text
슬로바키아
New Post has been published on http://dramashot.me/%ec%8a%ac%eb%a1%9c%eb%b0%94%ed%82%a4%ec%95%84-2/
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 [Slovakia] – 중부 유럽에 있는 공화국
위치 유럽 중부 면적 4만 9035㎢ 인구 540만 2000명(2003) 인구밀도 110.2명/㎢(2003) 수도 브라티슬라바 정체 공화제 공용어 슬로바키아어 통화 코루나(Slovak koruna) 환율 37.88Sk = 1$(2003.9) 1인당 국민총생산 3,760$(2003) 나라꽃 플로라
면적은 4만 9035㎢, 인구는 540만 2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110.2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슬로바키아공화국(The Slovak Republic)이다. 수도는 브라티슬라바이며 슬로바키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북쪽으로 폴란드, 서쪽으로 체코·오스트리아, 남쪽으로는 헝가리, 동쪽으로 우크라이나와 접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산당 지배하에서 체코와의 통일국가를 재건하였고, 1993년 1월 1일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새로운 독립국가로 공식출범하였다. 슬로바키아의 자연
슬로바키아는 국토의 중·북부 대부분이 카르파티아산맥 서단부에서 이어지는 타트라산맥에 걸쳐 있는 관계로 지형의 대부분은 750m 이상의 높은 산지로 되어 있어 평야가 적다. 평야는 바흐강(江)을 비롯한 도나우강의 여러 지류가 발달한 남서부 및 동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기후는 대체로 대륙성기후에 속해 한서의 차가 심한 편이나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른 기후��� 나타낸다. 서부지역은 서안해양성기후, 중앙부는 한국과 비슷한 온대습윤 하계고온기후, 동부는 냉대습윤 하계냉량기후에 속한다. 연평균기온도 지역에 따라 3.7~10℃로 차이가 난다. 일부 고지대에는 연간 130일 동안 눈이 덮여 있다. 전국토 중 경지는 34%, 초원은 17%, 산림지대는 41%이다. 슬로바키아의 주민
슬로바키아는 주민의 대부분(85.7%)이 슬로바키아인(人)이어서 슬로바키아(또는 슬로바크)어(語)를 사용한다. 슬로바키아인 외에 헝가리인(10.6%), 집시인(1.6%), 체코인(1.1%), 루테니아인,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모라비아인, 폴란드인 등도 거주하고 있다. 따라서 헝가리어와 체코어도 일부 사용되고 있다. 국민의 60.3%가 로마카톨릭을 신봉하는 전통적인 로마카톨릭 국가이며, 9.7%는 무신론자, 8.4%는 프로테스탄트, 4.1%는 동방정교회를 믿고 있다. 슬로바키아의 역사
5~7세기 슬라브족(族)이 현재의 체코와 슬로바키아 지역에 이주, 정착하였는데, 체코인(人)은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방에, 슬로바키아인(人)은 슬로바키아 지역에 각각 정착하였다. 이 두 종족은 833년 일종의 연방국인 대(大)모라비아 제국을 세웠다. 모라비아 제국은 번창하여 헝가리 서부, 폴란드에 이르는 광대한 판도를 형성하였다. 906년 헝가리의 마자르족(族)이 모라비아 제국을 침략하여 슬로바키아를 점령함으로써 이후 1,000여 년 동안 슬로바키아는 체코와 분리되어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자, 보헤미아·모라비아·슬로바키아·루테니아 지방을 합쳐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이 되었다. 1938년에는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가 체결한 뮌헨회담에 의거하여 수데텐란트 지역이 독일에 할양되고, 소수민족 자결권을 주장하는 폴란드와 헝가리에도 땅을 빼앗겨 체코슬로바키아의 면적과 인구는 1/3로 줄었다.
1939년 나치스군(軍)의 침공을 받은 체코슬로바키아가 독일의 통치를 받게 되자 1940년 대통령 베네시는 런던에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1943년 소련과의 동맹조약을 체결하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고 프라하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자, 체코슬로바키아는 루테니아 지역을 소련에 할양한 채 다시 독립하고, 공산당과 비공산주의자 간의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다. 권력을 장악한 공산당은 1960년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하고 국명도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공화국’으로 바꾸었다.
1968년 공산당 제1서기 둡체크에 의해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자유화개혁운동이 추진되었으나 소련에 의해 좌절되었다. 이전부터 커다란 문제인 체코와 슬로바키아 간의 불평등한 관계로 1969년 1월 체코슬로바키아는 보헤미아·모라비아 지방으로 이루어진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과 슬로바키아로 이루어진 슬로바키아 사회주의공화국으로 구성된 연방제 국가가 되었다. 1977년 1월 극작가 하벨 등이 중심이 된 반체제 지식인들은 체코의 인권억압에 저항하여 ‘77헌장’을 선언하였다.
1988년 가을 고르바초프에 의한 소련의 개혁 바람이 동유럽국가에 불어닥치자 체코슬로바키아 내에서도 같은 해 11월 민주세력 ‘시민포럼’이 중심이 된 시민들의 민주화 개혁요구 시위가 대규모로 발생함에 따라, 12월 공산정권이 퇴진하고, ‘시민포럼’의 지도자 하벨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90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의회는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변경하였으며, 1990년 6월에는 신헌법에 따라 자유총선을 실시하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구성하였다.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는 1992년 연방의회의 승인에 따라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2개의 독립국으로 분리되었다. 슬로바키아의 정치
1992년 9월 3일 제정된 자유민주주의적인 국가체제에 기초한 슬로바키아 헌법에 의하면 정치체제는 내각책임제이고, 국가권력은 국가원수인 대통령, 행정부를 담당하는 내각, 주권의 최고대표기관이자 입법기관인 의회, 그리고 사법부로 분리, 배분되어 있다. 정당은 복수정당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총리와 각부 장관의 임명과 해임권,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 판사의 임명권, 국제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며 국제조약을 교섭할 수 있는 권한, 군의 최고 통수권과 선전포고권 등을 가진다. 의회에서 재적의원 3/5의 다수결로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다.
행정부는 최고행정기관으로서 행정부의 총리는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고, 각료는 총리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행정부의 내각은 총리 1명, 부총리 4명(재무 담당, 경제전환 담당, 유럽통화 담당, 문교·과학·청소년교육 담당), 장관 13명(외무부, 교부, 과학부, 제부, 문화부, 노동사회부, 농업부, 보건부, 내무부, 법무부, 교통통신부, 국방부, 시영화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대 총리는 1992년 6월 체코슬로바키아 총선에서 슬로바키아 공화국 의회의 제1당이 된 ‘민주 슬로바키아 운동(HZDS)’의 총재 V.메치아르이다.
국민주권의 최고대표기관인 의회는 국민이 선출한 의원 15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임기는 4년이다. 의회는 입법활동, 대통령 선출, 국가행정기구 설립에 관한 입법사항, 내각 및 각료의 불신임 등을 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정당은 90년 6월 8일 실시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새로운 민주정부 구성을 위한 자유총선 때 이미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이 인정되어 선거에 참여하였다. 그후 기존 정당들이 정비되고 새로운 정당들이 설립되어 1992년 6월 실시된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의회와 슬로바키아 공화국의회 총선거에 이러한 다수의 정당들이 참여하였다.
의회에 의석을 진출시키고 있는 정당으로는 중도좌파적 정치성향과 슬로바키아 국수주의 성향을 지닌 ‘민주 슬로바키아 운동’, ‘슬로바키아 공산당’의 후신인 ‘슬로바키아 민주좌파당’, 그리스도교 가치관에 입각한 시장경제체제 및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는 ‘기독민주운동’, 1989년 12월 창당하여 슬로바키아의 분리·독립을 주창한 ‘슬로바키아 민족당’, 헝가리 계열 주민 중심의 정치세력인 ‘헝가리 기독민주당’, 그리고 1992년 6월 총선 이후 전 연방의회 의장 둡체크가 창당한 ‘슬로바키아 사회민주당’ 등이 있다.
사법체계는 대법원·고등법원·지방법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외에 헌법준수 여부를 심의하고 책임지는 헌법재판소를 두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사는 10명으로 구성되고 임기는 7년이며, 의회의 추천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다.
슬로바키아는 체코와 분리 독립한 직후 1993년 1월 19일 체코와 동시에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의 회원국으로 가입,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등장하였다. 한편 1993년 2월에는 초대 대통령에 미하일 코바치가 선출되었고, 1993년 3월에는 그 동안 총리직을 맡은 V.메치아르가 물러났으며, 외무장관인 J.모라브치크가 총리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1994년 10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V.메치아르가 이끄는 ‘민주 슬로바키아 운동’이 다시 제1당이 되었다. 1998년 9월 선거 후 야당의 대연합에 의해 10월에는 미쿨라시 주린다(Mikulas Dzurinda)가 총리로 취임하였고 1999년 6월에는 루돌프 스후스테르(Rudolf Schuster)가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슬로바키아의 기본외교방침은 유럽에 회귀하는 것이며, EU(European Union:유럽연합)·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북대서양조약기구) 가맹을 목표로 한다. 2000년 12월 14일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맹하였다. 군사비는 3억 2900만 달러이며 총병력은 4만 9000명이다(1999). 슬로바키아의 경제
체코슬로바키아는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시대부터 ‘제국의 공장’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공업이 발달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 공업의 기반은 대부분이 체코 영역인 보헤미아 지역에 편중되어 있었다. 때문에 슬로바키아의 경제는 체코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었고, 농업이 중심 산업이었다.
1968년 슬로바키아 출신의 둡체크가 시도한 정치 및 경제 개혁조치에 따라 연방정부는 슬로바키아의 공업화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그 결과 슬로바키아에도 특히 철강·기계·알루미늄·석유화학 등의 중공업과 군수산업이 유치되어 공업화가 상당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슬로바키아와 체코의 격차는 여전하였으며, 더욱이 1989년 11월 소위 벨벳혁명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경제가 시장경제체제로 개혁이 추진되자 체코와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공업 생산액은 체코의 1/3, 실업률은 체코의 3배에 이르렀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1992년 6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슬로바키아의 분리·독립을 주장한 ‘민주 슬로바키아 운동’이 슬로바키아의 제1당으로 부상하였으며 마침내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갈라지게 된 것이다.
체코 의존적인 경제구조 등으로 인하여, 독립 이후 슬로바키아의 경제가 급격히 악화할 것이라는 ��상과는 달리 선진국을 상대로 한 무역확대에 힘입어 1994년 플러스 성장으로 변하였다. 1998년까지 고성장이 계속되다가 무역·재정적자의 확대 등으로 인하여 1998년 말부터 경제성장률이 0.5%로 떨어졌다. 1999년 1월 총리 미쿨라시 주린다는 재정·경상적자 삭감을 위하여 은행 민영화, 자본시장 개혁 등 경제정책을 채택한 이후 경제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2000년 경제성장률은 2.2%, 인플레이션율은 12.2%, 실업률은 17.9%, 물가상승률은 12.0%이다. 무역면에서 수출은 119억 500만 달러, 수입은 126억 71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철강, 목재, 유리, 종이, 수입품은 기계, 연료, 화학품 등이고 주요 수출국은 독일(26.8%), 체코(17.4%),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수입국은 독일(25%), 러시아(17%), 체코(14.7%),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이다. 슬로바키아의 농업
슬로바키아의 농업은 작물농업과 축산업이 결합된 혼합농업 형태로 발달했다. 작물농업에서는 사료용 곡물과 홉 및 주곡인 밀의 생산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사탕무의 생산이 많다. 이밖에 보리, 옥수수, 감자, 양배추, 포도, 사과, 해바라기, 유채, 토마토 등도 많이 생산되는 농작물이다. 이러한 농작물은 경지가 넓은 남서부 및 동부의 평야지대와 도나우강(江) 유역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다. 축산업은 작물농업보다 비중이 클 만큼 발달했는데, 소·돼지·양·말 등의 사육이 중앙부 산지지역에서 성행한다. 이에 따라 육류·우유·양모 등 축산물이 중요한 수출품이 되고 있다. 농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1999)로 미약한 편이며 노동력의 8.9%가 농업에 종사한다. 슬로바키아의 광업 슬로바키아의 에너지 자원으로 석탄(유연탄)과 석유 및 천연가스가 각각 중앙부 지역과 동부에서 생산되고 있으나,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전력발전량은 1999년 현재 225억 8200kWh로 자급이 가능하며, 발전형태로는 화력발전의 비중이 37.56%로 가장 높고 수력발전(18.27%)과 원자력 발전(44.17%)도 이루어지고 있다. 광물자원으로는 구리, 납, 아연, 안티몬, 마그네슘, 수은, 암염, 철 등이 산출된다. 슬로바키아의 공업 슬로바키아의 공업은 과거 공산당 정권시에 화학과 군수산업에 주력한 결과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높은데, 최근 시장경제로의 전환 이후 이 부문의 공업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외에 목재 및 제지업과 의류 및 가죽산업, 시멘트·식품·음료·비료 등의 제조업도 발달했다. 주요공업의 지역별 발달분포를 보면, 철강산업은 동부의 코시체, 알루미늄 및 기계류 산업은 중앙부의 반스카비스트리차, 화학 및 고무산업은 수도인 브라티슬라바, 목재 및 제지산업은 중앙부 지역, 의복과 가죽은 서부지역 등에 특히 집중되어 있다. 이밖에 수도에는 인쇄·출판업과 식료품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슬로바키아의 교육 슬로바키아의 교육제도는 체코와 유사하다. 단, 의무교육기간이 6세에서 14세까지 10년으로 체코보다 2년 길다. 초등학교 교육기간은 의무교육이고 중등교육(14~18세)은 4년 과정으로 대학 진학을 대비하는 일반교육과정(김나지움)과 특수교육과정인 산업 및 직업학교와 예능학교 교육과정으로 나누어진다. 초등학교 졸업생의 약 40%는 김나지움으로 진학하고, 나머지는 특수교육기관으로 진학한다. 중등학교의 최초 2년간은 의무교육기간이다.
대학교육 과정은 일반대학은 4년, 공과·농과·경제대학은 5년이며, 의학·건축 등은 6년으로 4~6년 과정을 채택하고 있다. 주요 대학으로는 브라티슬라바코멘스키대학, 토메니우스대학, 슬로바키아공과대학, 경제대학, 음악아카데미, 미술아카데미 등이 있다. 브라티슬라바코멘스키대학은 1467년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교를 모방하여 설립하였으며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이다. 1995년 현재 인구 10만 명당 1,715명꼴로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슬로바키아의 사회보장
슬로바키아는 사회보장제도로 국민연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연금은 60세 이상의 남자와 57세 이상의 여자에게 지급되며, 연금액은 근로자 평균급여의 50~60% 수준이다. 현재 전 국민의 20% 정도가 이 제도에 의해 노후연금을 수령하고 있다. 이밖에 장애인 연금, 미망인 수당, 출산 수당, 아동 수당(3세까지) 등이 사회보장 차원에서 지급되고 있다. 또한 노동자와 피고용자의 보험혜택과 진료를 무료로 실시한다. 슬로바키아의 문화 슬로바키아 국민은 전통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데, 음악의 기원은 슬라브족과 유럽인들의 민속음악이며 15~16세기 종교음악의 기원인 모라비아왕국의 예배식에서 전래를 찾을 수 있다. 음악은 종교음악과 실내악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민속음악은 헝가리 통치하에서 슬로바키아 언어를 보존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유명한 교향악단으로는 브라티슬라바 군시케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브라티슬라바 브로드캐스터 교향악단, 슬라바 실내오케스트라 등이 있다.
슬로바키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대양식의 건축물이 많으며 특히 브라티슬라바성(城)은 예전에 황제의 거처나 의사당, 시립박물관으로도 사용되었다. 스포츠는 축구, 테니스, 스키, 아이스하키가 인기 있다. 슬로바키아의 대한관계 슬로바키아는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한국과 슬로바키아 간의 외교관계는 1990년 3월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와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시작되었으나, 1993년 1월 1일 연방 해제와 분리 독립으로 두 나라간에는 새롭게 수교관계가 체결되었다. 1993년 외무부 제1차관보 이재춘이 슬로바키아를 방문하였고, 외무장관 모라빅과 문화장관 슬로보드닉(1993), 국회의장 가스파로빅(1997)이 방한하였다.
양국간에 체결된 협정은 무역사무소 설치 협정(1989), 민간경제협력위원회 설치 협정(1990), 항공 협정(1990), 무역·경제협력 협정(1990), 체육교�� 협정(1991), 투자보장 협정(1992), 이중과세방지 협정(1992), 사증면제 협정(1995)이다. 1998년 현재 대(對)한국 수입은 529만 2000달러이고, 수출은 67만 7000달러이다.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 플라스틱, 가전제품 등이고, 수출품은 유기화학제품, 철강제품 등이다.
0 notes
Text

베트르나 제프의 모국인 모라비아 왕국은, 일반적으로 유적 왕국이라든지 마법 왕국등으로 불리고 있다.
그 이름이 나타내는 대로, 백성중에 차지하는 마술사의 비율이 타국보다 많아, 그 국토에는 태고의 마도 문명의 유적이 다수 잠자고 있는 것이지만……문제는 그들 모라비아의 마술사가 사용하는 마술에 있었다.
「비적마술」
태고에 멸망해 떠난 마법 문명에 대해 이용되고 있었다고 하는, 세계의 근원인 마나를 직접 꺼내쓰기 시작하는 것으로 기적을 이룬다고 하는 강력한 마술이다.
351년전, 태조 알브레히트에 의해서 유적에서 발견된 이 고대 마술은, 타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정령 마술에 비해 범용성, 위력 모두 매우 뛰어나 이 강대한 힘을 독점한 알브레히트는 (그때까지는 지방의 일개 호족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대륙 북부를 가리는 대국을 일대에 세웠던 것이다.
http://xn--2e0ba693bjpgjtau80bgqbkxc.com/
http://xn--2e0ba693bjpgjtau80bgqbkxc.com/
http://xn--2e0ba693bjpgjtau80bgqbkxc.com/
http://xn--2e0ba693bjpgjtau80bgqbkxc.com/
http://xn--2e0ba693bjpgjtau80bgqbkxc.com/
http://xn--2e0ba693bjpgjtau80bgqbkxc.com/
그러나, 이 마술의 남용에 의해서 대지에서 마나를 끝없이 퍼내는 것을 계속한 대가인가, 모라비아의 대지는 최근 수 십년 중에 급속히 쇠약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성인 인구들이 집중하는 수도나 마술 연구 도시의 부근에서 부터 시작된 농지의 사막화와 삼
0 notes
Photo

(사진출처 : http://www.maisonfrancaise.org/book-club-un-pedigree-by-patrick-modiano ) 이 목록을 작성하고, 또 텅 빈 아파트에서 전화를 해감에 따라 머리가 핑핑 돌고 숨이 점점 가빠온다. 묘한 사람들이다. 개와 늑대의 중간쯤에 위치한 묘한 시대다. 그리고 내 부모님은 그 시대에, 자신들과 닮은 사람들 가운데서 서로 만났다. 무방비 도시 한복판에 날아든 무사태평한 두 마리 길 잃은 나비. 무방비 도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태어난 곳은 썩은 흙더미 - 혹은 퇴비더미 - 이다. 그들의 삶에서 내가 그러모을 수 있던 파편들, 그 대부분은 어머니에게서 얻은 것들이다. 아버지에 관한 많은 세세한 사항들, 아버지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암시장, 그 비밀에 싸인 혼돈스런 세계를 어머니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거의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데 다 아버지는 자신의 비밀은 다 안고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p17~18) (주석. 무방비도시 8. Die Stadt ohne Blick,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1946년 영화(원제는 Roma Citta Aperta)로 나치 치하의 이탈리아 저항 운동을 다루었다.) 아버지의 이중 신분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한참 후에야 아버지가 그 시절에 몇몇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얼마 후 어떤 사람들의 회 고담 속에 그런 이름들이 나오면 아버지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이름이란 결국 그 이름을 지닌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나가, 마치 아득히 멀리 떨어진 별들처럼 우리의 상상 속에서 빛나는 법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장 드 B.와 그 친구들에게 소개한다. 그들은 아버지가 '괴짜 남아메리카인 분위기' 를 풍긴다는 걸 알고 점잖게 내 어머니에게 '믿지 말라' 고 충고한다. 어머니는 그 말을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옮기고, 아버지는 농담 삼아 다음번 에는 더 '괴짜' 행세를 해서 그 사람들을 더 겁먹게 해야겠노라 말한다. (p19) 그가 헛되이 찾은 것은 엘도라도였다. 나는 그가 독일 점령기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이 아닐까 궁금하다. 그는 그 시기에 파리에 있으면서 마음속으로 겪은 것을 내게 전혀 털어놓지 않았다. 자신도 자기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데, 사냥감이 되어 몰리고 말았다는 묘한 느낌과 두려움이었을까? 그러나 타인 입장에서 말을 해선 안 되는 법이라, 침묵이 고통스럽더라도 난 침묵을 깨는 것이 언제나 불편 했다. (p31~32) 레이엄 그린 [최초의 환멸] 내 동생 루디, 그 아이의 죽음을 빼면, 난 내가 여기 쓰고 있는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나와는 깊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큐멘터리 식으로 그리고 아마도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삶을 끝내기 위해 마치 조서 혹은 이력서를 작성하듯 이 페이지들을 써나간다. 이것은 사건과 행위의 단순한 필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고백할 것도 해명 할 것도 전혀 없으며, 내관(內觀)과 자기성찰에 대한 취향도 없다. 반대로 사태가 모호하고 신비스러울수록 나는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심지어는 신비가 전혀 없는 것에서 신비를 찾으려 하기도 했다. 스물한 살까지 내게 일어난 사건들, 나는 그것들을 스크린 이미지 프로세스-배우들이 스튜디오 플로어에 정지해 있는 동안, 배경으로 풍경이 스쳐 지나가는 기법-로 체험하였다. 나는 나보다 앞서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느낌, 즉 모든 것이 스크린이미지 프로세스로 전개되었고 나는 아직 삶을 살 수 ��구나 하는 그 느낌을 옮기고 싶다. (p44-45) 레몽 라디게 [육체의 악마Le Diable au corps] 모리스 바레스 [뿌리 뽑힌 사람들Les Deracines] 파세스Cesare Pavese [삶이라는 직업Le Metier de vivre] 제라르 드 네르발 [불의 딸들Les Filles du feu] 몽테를랑Henry de Montherlant [젋은 처녀들Les Jeunes filles] 모라비아 [권태] 셀린 [밤의 끝으로의 여행Voyage au bout de la muit] 한 번도 나는 어머니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그 어떤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혈통도 없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혼자 내버려졌던 개처럼, 이따금 나는 어머니의 매몰참과 모순된 행동 때문에 내가 겪어야 했던 일을 분명히 그리고 상세하게 글로 쓰겠다는 치졸한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 그 모든 건 너무나 아득하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레옹 블루아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옮겨 적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의 초라한 마음 속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장소들이 있고, 그 장소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고통이 그곳에 들어온다.” 하지만 거기서 그 고통은 아무 쓸모없는, 그것으로 시를 지을 수조차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p94~95) 1963년. 1964년. 연도가 혼동된다. 느릿느릿한 나날들, 비오는 날들...... 그렇지만 하얗게 밤을 지새운 후 봄날의 거리를 걸을 때 느끼는, 도취와 불면이 뒤섞인 무미건조함을 간혹 벗어나 나는 또 다른 상태를 겪었다. (p105) 하지만 왜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이 아닌 어떤 사람들과, 다른 장소가 아닌 어떤 장소에 있게 되는지 잘 알지 못해도, 또 그 영화가 오리지널인지 아니면 더빙한 것인지 잘 알지 못해도 삶은 계속되었다. 오늘날 내 기억에는 짤만한 시퀀스들만 남아 있다. 나는 징집 유예를 연장하기 위해 문과대학에 등록한다. 강의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유령 학생이 될 것이다. 장 노르망(일명 장 뒤발) 이 몇 달 전부터 케 드 콩티, 예전에 4층과 5층을 잇는 내부 계단이 있었던 작은 방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일하지만 파리 체류는 금지 당했다. 그 사실 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어머니는 1955년에 그와 알게 되었다. 노르망은 스물일곱 살이었고 좀도둑질로 징역을 살고 나왔다. 우연히도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내 동생과 내가 주이앙조자스에서 살던 집에 있던 쉬잔 부크로와 함께 몇 번 좀도둑질을 했었다. 그러다 그는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갔고, 1959년에 푸아시 감화원에 들어갔다. 그는 파손된 아파트에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공사를 했는데, 나는 그가 어머니에게 돈을 내고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그 노르망(일명 뒤발)을 무척 좋아한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내 방 벽난로 위에 슬그머니 5프랑짜리 지폐를 놓아 두고, 그가 가고 나서야 나는 그 돈을 발견한다. 그는 재규어를 몰고 다니는데, 그 다음해 벤 바르카 사건이 있어났을 때 나는 그에게 '재규어를 몰고 다니는 키 큰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된다. (p114~115) 나는 내가 여기서 떠올리고 있는 그 죽어버린 세월들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크노처럼 나도 아스니에르의 개들을 찾아 나 홀로 거리를 헤맬때만 온전히 나 자신이었다. 당시 내게는 개가 두 마리 있었다. 이름은 자크와 폴이었다. 1952년 주이앙조자스에 살 때, 내 동생과 나는 페기라는 이름의 암캐 한 마리를 키웠는데, 어느 날 오후 독퇴르퀴르제 거리에서 차에 치여 죽고 말았다. 크노는 개를 무척 좋아했다. 그는 내게 인디언과 바스크족이 서로 잔혹하게 싸우는 서부영화 이야기 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는 바스크족이 나오는 것에 의아해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난 그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알아냈다. 그것은 <태양으로 가는 카라반>이었다. 요약하면 바스크족에 맞서 싸우는 인디언 이야기이다. 나는 버려진 동네 후미진 곳에 깜빡 잊고 허물어버리지 않은 영화관에서 크노를 회상하며 그 영화를 보고 싶다. 크노의 웃음소리. 반쯤은 간헐천 같고 반쯤은 따발총 같은. 하지만 나는 은유에는 재능이 없다. 그래서 그냥 간단하게 크노의 웃음소리라고 한다. (p118~119) (주석: <태양으로 가는 카라반> 영어 원제는 <Thunder in the sun>, 러셀 라우스 감독의 1959년작 영화 로 수잔 헤이워드, 제프 챈들러 주연.) 1966년 봄, 파리에서 나는 대기의 어떤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감지했다. 그것은 내가 열세 살이었던 1958년, 그리고 알제리 전쟁이 끝날 무렵 느꼈던 변화와 유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프랑스에 어떠한 중요한 사건도, 어떠한 급격한 전환점도 없었다. 아니면 내가 잊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로선 1966년 4월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말할 능력이 없다. 우리는 어떤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게 어떤 터널인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 신선함이라니, 우리는 앞선 계절들에서는 그런 걸 느껴보지 못했다. 스무 살이 되어 매순간 세상이 우리와 함께 시작된다고 믿는 자들의 환상이었을까? 그해 봄은 대기가 훨씬 가벼운 느낌이었다. (p121~122) 60년대에 내가 우연히 만났지만 다시 만날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었던 그 모든 사람들, 그들은 시간에서 벗어난 평행한 어느 세계에서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 을지 모른다. 방금 전에도 나는 햇빛 아래 인적 없는 거리를 따라 걸으며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폴리네르가 자신의 시에 썼던 것처럼 너는 파리에서 예심판사 앞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판사는 내게 사진, 기록, 증거물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건 결코 나의 삶이 아니었다. (p132) <옮긴이의 말_김윤진> 파트릭 모디아노의 글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것은 문체적 특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기승전결로 구별할 수 있는 일반적인 서사의 형식 부재와 그의 작품들 거의 대부분이 명확하게 규정될 수 없는 '무엇' 인가를 찾아나서는 화자의 모색 혹은 추적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뚜렷하게 어떤 갈등이나 문제의 해결로 이야기가 귀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p135) '나는 다큐멘터리 식으로 그리고 아마도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삶을 끝내기 위해 마치 조서 혹은 이력서를 작성하듯이 페이지들을 써나간다. 이것은 사건과 행위의 단순한 필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고백할 것도, 해명할 것도 전혀 없으며, 내관(內觀)과 자기성찰에 대한 취향도 없다.' (p136) - 파트릭 모디아노 Patrick Modiano , ' 혈통 Un Pedigree ' 중에서
0 notes
Text
슬로바키아
New Post has been published on http://dramashot.me/%ec%8a%ac%eb%a1%9c%eb%b0%94%ed%82%a4%ec%95%84/
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슬로바키아어: Slovensko, 영어: Slovakia) 혹은 슬로바키아 공화국(슬로바키아어: Slovenská republika 슬로벤스카 레푸블리카, 영어: Slovak Republic, 문화어: 슬로벤스꼬)은 유럽에 있는 나라이다. 서쪽으로 체코, 북쪽으로 폴란드, 동쪽으로 우크라이나, 남쪽으로 헝가리, 남서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접해 있다. 수도는 브라티슬라바이며 슬로바키아어가 공용어이다. 슬로베니아와는 전혀 다른 나라이다. 1993년 1월 19일 체코와 함께 UN에 가입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고, 2004년 5월 염원해오던 NATO와 EU 가입에 성공하였다. 슬로바키아에 사는 50만 명(전체 인구의 10%)의 헝가리인에 대한 차별 문제로 헝가리와 갈등을 빚고 있다.
Slovenská Republika
국기 국장
표어: 없음
국가: 타트라의 폭풍우
(슬로바키아어: Nad Tatrou sa blýska)
수도 브라티슬라바 48°08′ N 17°06′E 공용어 슬로바키아어 정부 형태
대통령 총리
공화제 이반 가슈파로비치 로베르트 피초 독립 • 독립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독립 1993년 1월 1일 면적 • 전체 49,036km² (128위) 인구 • 2005년 어림 • 2001년 조사 • 인구 밀도 5,431,363명 (111위) 5,379,455명 67명/km² (92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4년 어림값 $851.4억 (61위) $15,700 (46위) HDI • 2006년 조사 0.872 (41위) 통화 유로 (ISO 4217:EUR)¹ 시간대 • 여름 시간 CET (UTC+1) CEST (UTC+2) ISO 3166-1 703 ISO 3166-1 alpha-2 SK ISO 3166-1 alpha-3 SVK 인터넷 도메인 .sk 국제 전화 +421 ¹ 2009년 이전은 슬로바키아 코루나(Kčs)
역사
기원후 초기의 수세기 동안 이곳에는 일리리아족과 켈트족이 살았으며 그후에는 게르만족들이 살았다. 6∼7세기에 슬라브족의 슬로바키아인들이 정착하여 살았으며, 아바르족들의 지배를 받다가 9세기에 보헤미아 지역 전체와 현재의 폴란드 남부 지역, 그리고 현재의 헝가리 서부 지역을 포함했던 대(大)모라비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슬로바키아에 거주한 켈트족이 사용한 동전과 슬로바키아 코루나.
10세기초 모라비아가 붕괴된 후 헝가리 왕의 영토가 되었다(11세기). 15세기에 체크의 후시테스가 이 지역을 침략하여 황폐화시켰다. 종교개혁 기간중(16세기) 이곳에 있던 게르만족·슬로바키아인·마자르족 사이에 루터주의와 칼뱅주의가 널리 보급되었으나, 1526년 헝가리 왕위를 계승한 후 1918년까지 이곳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자들은 로마 가톨릭교를 다시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을 때 슬로바키아 민족주의를 이끈 루도비트 스투르.
18세기 후반에 슬로바키아의 민족 부흥이 시작되었으며, 1848∼49년의 헝가리 혁명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앙집권체제가 비(非)마자르족을 지지하자 슬로바키아 민족주의는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대타협(Ausgleich) 이후 이곳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은 헝가리는 마자르족화(化) 정책을 폈는데, 이로 인해 많은 슬로바키아인들이 미국을 비롯한 외국으로 이주해갔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자, 보헤미아·모라비아·슬로바키아·루테니아 지방을 합쳐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이 되었다. 1938년에는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가 체결한 뮌헨회담에 의거하여 수데텐란트 지역이 독일에 할양되고, 소수민족 자결권을 주장하는 폴란드와 헝가리에도 땅을 빼앗겨 체코슬로바키아의 면적과 인구는 1/3로 줄었다.
↑밀란 라스티슬라프 슈테판니크, 체코슬로바키아의 슬로바키아인 정치가. 1939년 나치의 침공을 받은 체코슬로바키아가 독일의 통치를 받게 되자 194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 에드바르트 베네시는 런던에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1943년 소련과의 동맹조약을 체결하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고 프라하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자, 체코슬로바키아는 루테니아 지역을 소련에 할양한 채 다시 독립하고, 공산당과 비공산주의자 간의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다. 1당 독재의 권력을 장악한 공산당은 1960년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하고 국명도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공화국’으로 바꾸었다. 1968년 공산당 제1서기 알렉산데르 둡체크에 의해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자유화개혁운동이 추진되었으나 소련에 의해 좌절되었다. 이전부터 내부적으로 커다란 문제였던 체코와 슬로바키아 간의 불평등한 관계 해결을 위한 첫 번째 단계로서 1969년 1월 보헤미아·모라비아 지방의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과 슬로바키아지방의 슬로바키아 사회주의공화국의 두 공화국으로 된 연방제 국가가 이루어졌다. 1977년 1월 극작가 하벨 등이 중심이 된 반(反)체제 지식인들은 체코의 인권억압에 저항하여 ‘77헌장’을 선언하였다. 1988년 가을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의한 소련의 개혁 바람이 동유럽국가에 불어닥치자 체코슬로바키아 내에서도 같은 해 11월 민주세력 ‘시민포럼’이 중심이 된 시민들의 민주화 개혁요구 시위가 대규모로 발생함에 따라, 12월 공산정권이 퇴진하고, ‘시민포럼’의 지도자 하벨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90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의회는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변경하였으며, 1990년 6월에는 신헌법에 따라 자유총선을 실시하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구성하였다.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는 1992년 연방의회의 승인에 따라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2개의 독립국으로 분리되어 그 해 2월 공산당 출신의 미할 코바치가 독립한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첫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94년 3월 메치아르는 경제정책의 실패와 독재정치로 인하여 의회의 불신임 투표로수상직을 사임하게 되나, 몇달 후 있었던 국민 투표후, 새로운 연방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1995년 이래로 경제는 향상되었으나, 대통령 권한대행인 블라디미르 메치아르의 반(半)독재정치로 비난을 샀다. 공화정을 보호하는 법으로 인해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은 누구든 체포될 수 있었고, 언론은극도로 통제되었다. 2004년에는 유럽 연합에 가입했고, 2009년 1월 1일부터 유로를 공식 화폐로 도입했다. 2009년 슬로바키아어를 유일한 공식언어로 지정함으로써 다수의 헝가리인들은 공공장소에서 헝가리어를 쓰는 것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브라티슬라바(Bratislava)의 야경.
↑슬로바키아는 2004년에 EU의 회원국이 되었다.
지리
슬로바키아는 카르파티아산맥 서단부와 이어지는 타트라산맥에 걸쳐 있어 국토의 대부분이 750m 이상의 높은 산지이다. 타트라 산맥에는 아름다운 호수와 계곡이 많고 최고봉은 겔라초브스키 산으로 높이가 2,655m에 이른다. 이에 따라 평야가 적다. 평야는 바흐강(江)을 비롯한 도나우강(江)의 여러 지류가 발달한 남서부 및 동부 지역에 약간 분포하고 있다. 기후는 대체로 대륙성기후에 속해 한서의 차가 심한 편이나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른 기후를 나타낸다. 서부지역은 서안해양성기후, 중앙부는 한국과 비슷한 온대습윤 하계고온기후, 동부는 냉대습윤 하계냉량기후에 속한다. 연평균기온도 지역에 따라 3.7~10℃로 차이가 난다. 일부 고지대에는 연간 130일 동안 눈이 덮여 있다. 전국토 중 경지가능지는 29.23%, 농경지는 2.67%, 삼림 및 기타 68.1%(2005년)이다.
↑타트라 산맥.
↑슬로바키아의 지형도.
주요 강들인 모라바 강과 도나우(두나이) 강은 남쪽 경계의 일부를 이루며 흐르고 있다. 산악지대를 흐르는 주요강으로는 남쪽으로 흐르는 바흐·흐론·호르나트·보드로크 강과 북쪽으로 흐르는 포프라트 강이 있다.
온화한 대륙성 기후를 보이며 여름에는 저지대가 훨씬 덥고 겨울에는 산악지역으로 갈수록 추워진다. 연평균 강수량은 도나우 평원이 570mm이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위치한 산 계곡 지역들이 1,100mm 이상을 기록한다. 국토의 2/5 이상이 산림지대이며, 산악지역의 대부분이 삼림으로 덮혀 있다.
↑슬로바키아의 최고봉인 겔라초브스키 산.
정치
1992년 9월 1일 제정된 슬로바키아 헌법은 1998년 대통령의 직접선출, 2001년 NATO 와 EU의 가입을 허용하는 헌법으로 수정되었다. 정치체제는 자유민주주의적인 국가체제에 기초한 내각책임제이고, 국가권력은 국가원수인 대통령, 행정부를 담당하는 내각, 주권의 최고대표기관이자 입법기관인 의회, 그리고 사법부로 분리되어 있다. 정당은 복수정당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총리와 각부 장관의 임명과 해임권,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 판사의 임명권, 국제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며 국제조약을 교섭할 수 있는 권한, 군의 최고 통수권과 선전포고권 등을 가진다. 의회에서 재적의원 3/5의 다수결로 선출되며, 임기는 5년으로 연임이 가능하다. 1993년 2월에는 초대 대통령에 미할 코바치가 선출되었고, 2004년 6월 15일 이후 이반 가슈파로비치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슬로바키아 대통령궁. 행정부는 최고행정기관으로서 행정부의 총리는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고, 각료는 총리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행정부의 내각은 총리 1명, 부총리 4명(재무 담당, 경제전환 담당, 유럽통화 담당, 문교·과학·청소년교육 담당), 장관 13명(외무부, 교부, 과학부, 제부, 문화부, 노동사회부, 농업부, 보건부, 내무부, 법무부, 교통통신부, 국방부, 시영화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대 총리는 1992년 6월 체코슬로바키아 총선에서 슬로바키아 공화국 의회의 제1당이 된 ‘민주 슬로바키아 운동(HZDS)’의 총재 블라디미르 메치아르였다. 1993년 3월에는 그 동안 총리직을 맡은 메치아르가 물러났으며, 외무장관인 요제프 모라프치크가 총리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1994년 10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메치아르가 이끄는 ‘민주 슬로바키아 운동’이 다시 제1당이 되었다. 1998년 9월 선거 후 야당의 대연합에 의해 10월에는 미쿨라시 주린다가 총리로 취임하였고, 2006년 7월 4일 이후에는 로베르트 피초가 수상이다. 좌파 성향의 SMER 출신 피초는 친서방 대외개방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2006년 8.3%의 경제 성장을 달성하여 국민적 지지도가 상승, 정치적 ���정을 이루어가고 있다.
↑슬로바키아 의회당. 국민주권의 최고대표기관인 의회는 단원제로서 국민이 선출한 의원 15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임기는 4년이다. 의회는 입법활동, 대통령 선출, 국가행정기구 설립에 관한 입법사항, 내각 및 각료의 불신임 등을 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정당은 1990년 6월 8일 실시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새로운 민주정부 구성을 위한 자유총선 때 이미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이 인정되어 선거에 참여하였다. 그후 기존 정당들이 정비되고 새로운 정당들이 설립되어 1992년 6월 실시된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의회와 슬로바키아 공화국의회 총선거에 이러한 다수의 정당들이 참여하였다. 의회에 의석을 진출시키고 있는 정당으로는 중도좌파적 정치성향과 슬로바키아 국수주의 성향을 지닌 ‘민주 슬로바키아 운동’, ‘슬로바키아 공산당’의 후신인 ‘슬로바키아 민주좌파당’, 그리스도교 가치관에 입각한 시장경제체제 및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는 ‘기독민주운동’, 1989년 12월 창당하여 슬로바키아의 분리·독립을 주창한 ‘슬로바키아 민족당’, 헝가리 계열 주민 중심의 정치세력인 ‘헝가리 기독민주당’, 그리고 1992년 6월 총선 이후 전 연방의회 의장 둡체크가 창당한 ‘슬로바키아 사회민주당’ 등이 있다. 2006년 6월 17일 총선결과 의석 분포는 SMER 당 50석, 슬로박 민주연맹(SDKU) 31석, 슬로바키아민족당(SMK) 20석, SNS 19석, 좌파-민주슬로박운동당(LS-HZDS) 16석, 기독민주당(KDH) 14석 등이다. 사법체계는 대법원·고등법원·지방법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외에 헌법준수 여부를 심의하고 책임지는 헌법재판소를 두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사는 10명으로 구성되고 임기는 7년이며, 의회의 추천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다. 행정 구역
슬로바키아의 행정구역은 8개의 주(kraj)로 되어 있다.
↑슬로바키아의 주.
브라티슬라바 주(Bratislavský kraj) (주도: 브라티슬라바 Bratislava)
트르나바 주(Trnavský kraj) (주도: 트르나바 Trnava)
트렌친 주(Trenčiansky kraj) (주도: 트렌친 Trenčín)
니트라 주(Nitriansky kraj) (주도: 니트라 Nitra)
질리나 주(Žilinský kraj) (주도: 질리나 Žilina)
반스카비스트리차 주(Banskobystrický kraj) (주도: 반스카비스트리차 Banská Bystrica)
프레쇼프 주(Prešovský kraj) (주도: 프레쇼프 Prešov)
코시체 주(Košický kraj) (주도: 코시체 Košice)
경제
체코슬로바키아는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시대부터 ‘제국의 공장’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공업이 발달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 공업의 기반은 대부분이 체코 영역인 보헤미아 지역에 편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슬로바키아의 경제는 체코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었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금융회사.
1968년 슬로바키아 출신의 둡체크가 시도한 정치 및 경제 개혁조치에 따라 연방정부는 슬로바키아의 공업화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그 결과 슬로바키아에도 철강·기계·알루미늄·석유화학 등의 중공업과 군수산업이 유치되어 상당한 공업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슬로바키아와 체코의 격차는 여전하였으며, 더욱이 1989년 11월 소위 벨벳혁명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경제가 시장경제체제로 개혁하면서 체코와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공업 생산액은 체코의 1/3, 실업률은 체코의 3배에 이르렀다. 이때문에 1992년 6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슬로바키아의 분리·독립을 주장한 ‘민주 슬로바키아 운동’이 슬로바키아의 제1당으로 부상하였으며 마침내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결별하게 되었다.
↑슬로바키아의 1유로 동전. 체코 의존적인 경제구조 등으로 인하여 독립 이후 슬로바키아의 경제가 급격히 악화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선진국을 상대로 한 무역 확대에 힘입어 1994년 플러스 성장으로 경제가 일신하였다. 1998년까지 고성장이 계속되다가 무역·재정적자의 확대 등으로 인하여 1998년 말부터 경제성장률이 0.5%로 떨어졌다. 1999년 1월 총리 미쿨라시 주린다는 재정·경상적자 삭감을 위하여 은행의 민영화, 자본시장의 개혁 등 경제정책을 채택하였으며 이후 경제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2006년 추산 재정 수입은 245.7억 달러, 재정 지출은 261.4억 달러로 균형 재정에 접근하고 있다.
↑브라티슬라바에 있는 슬로바키아 국제 은행(National Bank of Slovakia)의 본부. 2006년 추산 국내총생산액은 477.2억 달러, 경제성장률은 8.3%, 물가상승률은 4.4%, 실업률은 10.2%, 극빈층의 비율은 21%이다. 1인당 GDP는 18,200달러, 공공부문의 부채는 GDP의 36.1%이다. GDP에서 차지하는 산업별 구성비는 농업 3.8%, 제조업 31.4%, 서비스업 64.8%이다. 무역면에서 수출은 396.4억달러, 수입은 418.4억달러(2006년 추산)이다. 주요 수출품은 철강, 목재, 유리, 종이, 수입품은 기계, 연료, 화학품 등이고 주요 수출국은 독일 25.1%, 체코 19.3%, 러시아 10.5%, 오스트리아 6.1%, 폴란드 4.7%, 헝가리 4.6%, 이탈리아 4.5%(2005년) 등이다. 주요 수입품은 기계운송 장비류, 중간재, 화학제품, 연료 등이며, 주요 수입국은 독일 25.1%, 체코19.3%, 러시아 10.5%, A오스트리아 6.1%, 폴란드 4.7%, 헝가리 4.6%, 이탈리아 4.5% (2005) 등이다. 대외 채무가 315억 달러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EU로부터 126.7억 달러를 지원 받을 계획이다.
-농업
슬로바키아는 작물농업과 축산업이 결합된 혼합농업의 형태로 농업이 발달하였다. 작물농업에서는 사료용 곡물, 홉 및 주곡인 밀의 생산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사탕무의 생산이 많다. 이밖에 보리, 옥수수, 감자, 양배추, 포도, 사과, 해바라기, 유채, 토마토 등도 많이 생산되는 농작물이다. 이러한 농작물은 경지가 넓은 남서부 및 동부의 평야지대와 도나우강(江) 유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작물농업보다 비중이 큰 축산업이 일찍 발달하였는데, 소·돼지·양·말 등의 사육이 중앙부 산지지역에서 성행한다. 이에 따라 육류·우유·양모 등 축산물이 중요한 수출품이 되고 있다. 농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2006년 추산)로 미약한 편이지만 노동력의 5.8%가 농업에 종사한다.
-광업
슬로바키아는 에너지 자원인 석탄(유연탄)과 석유 및 천연가스가 각각 중앙부 지역과 동부에서 생산되고 있으나,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전력발전량은 2005년 기준 312억 9000만kWh이며 소비량은 285억 7000만kwh로서 자급이 가능하며, 발전형태로는 화력발전의 비중이 37.56%로 가장 높고 수력발전(18.27%)과 원자력 발전(44.17%)도 이루어지고 있다. 광물자원으로는 구리, 납, 아연, 안티몬, 마그네슘, 수은, 암염, 철 등이 산출된다.
-공업
슬로바키아는 과거 공산당 치하에서 화학과 군수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결과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높은데, 최근 시장경제로의 전환 이후 소비재 산업과 잘 연계되지 않아 이 부문의 공업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외에 목재 및 제지업과 의류 및 가죽산업, 시멘트·식품·음료·비료 등의 제조업도 발달했다. 주요 공업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철강산업은 동부의 코시체, 알루미늄 및 기계류 산업은 중앙부의 반스카비스트리차, 화학 및 고무산업은 수도인 브라티슬라바, 목재 및 제지산업은 중앙부 지역, 의복과 가죽은 서부지역 등에 특히 집중되어 있다. 이밖에 수도에는 인쇄·출판업과 식료품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GDP에서 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31.4%(2006년 추산)이며, 전체 노동력 중에서 제조업 종사자는 29.3%(2003년)이다.
↑질리나 주에서 생산되는 기아 시드(Kia cee’d).
-교통
브라티슬라바·루체네츠·질리나·즈볼렌·포프라트·코시체에 있는 공항과 산맥을 가로지르는 철도와 도로들로 대부분 지역으로의 교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슬로바키아의 다리.
↑브라티슬라바의 고속도로.
↑트르나브스케 미토(Trnavské mýto)의 지하도.
↑브라티슬라바 국제공항.
↑아폴로 교(橋).
↑루좀베로크(Ružomberok) 기차역.
↑타트란스카 롬니카(Tatranská Lomnica)-롬니키 슈티트(Lomnický štít) 케이블카.
주민
슬로바키아는 슬로바키아인의 민족 국가로서 발족했지만, 헝가리인, 독일인, 루테니아인, 우크라이나인, 로마인, 러시아인, 유대인도 뒤얽혀 살고 있다. 지명에도 슬로바키아어 뿐만 아니라 헝가리어나 독일어에서 유래한 이름이 많이 있다.
1920년의 트리아농 조약에 의해,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 여겨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고 범슬라브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슬로바키아인은 헝가리인과 독일인의 거주지를 포함한 상��로, 체코와 합병한 형태로 독립을 완수했다.
슬로바키아인은 원래 산악 민족이며, 특히 남부 평야 지대의 주민은 거의 모두가 헝가리계 주민이다.
언어
슬로바키아어가 공용어이다. 일부 지역에서 헝가리어, 독일어, 폴란드어, 체코어가 사용된다. 슬로바키아는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다.
1993년, 체코 공화국과 분리된 이후 젊은층에서는 체코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종교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 대부분이며 정교회, 이슬람교, 개신교도 소수 존재한다.
교육
슬로바키아의 교육제도는 체코와 유사하다. 단, 의무교육기간이 6세에서 14세까지 10년으로 체코보다 2년 길다. 초등학교 교육기간은 의무교육이고 중등교육(14~18세)은 4년 과정으로 대학 진학을 대비하는 일반교육과정(김나지움)과 특수교육과정인 산업 및 직업학교와 예능학교 교육과정으로 나누어진다. 초등학교 졸업생의 약 40%는 김나지움으로 진학하고, 나머지는 특수교육기관으로 진학한다. 중등학교의 최초 2년 간은 의무교육기간이다. 대학교육 과정은 일반대학은 4년, 공과·농과·경제대학은 5년이며, 의학·건축 등은 6년으로 4~6년 과정을 채택하고 있다. 주요 대학으로는 브라티슬라바코멘스키대학, 토메니우스대학, 슬로바키아공과대학, 경제대학, 음악아카데미, 미술아카데미 등이 있다. 브라티슬라바코멘스키대학은 1467년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교를 모방하여 설립하였으며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이다. 1995년 현재 인구 10만 명당 1,715명꼴로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복지
슬로바키아는 국민연금제에 의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연금은 60세 이상의 남자와 57세 이상의 여자에게 지급되며, 연금액은 근로자 평균급여의 50~60% 수준이다. 현재 전 국민의 20% 정도가 이 제도에 의해 노후연금을 수령하고 있다. 이밖에 장애인 연금, 미망인 수당, 출산 수당, 아동 수당(3세까지) 등이 사회보장 차원에서 지급되고 있다. 또한 노동자와 피고용자의 보험혜택과 진료를 무료로 실시한다. 최근 노조의 권리와 시민의 복지를 중시하는 이러한 복지 제도가 노동법 개정, 의료 보험 및 연금체제 개혁 등 자유주의정책으로 수정될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슬로바키아의 인터넷 호스트수는 210,758 개(2006년)이며 사용자수는 약 250만 명으로 정보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해되고 있다. 1998년 설립된 3개 방송사와 2004년 기준 텔레비젼 방송사 80개 (국영방송 6개, 지역방송 7개, 지방방송 67개)는 언론 출판이 자유로운 다원적인 민주사회로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3,662m의 철도와 42,993 km(포장 37,533 km) 에 이르는 도로는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한다.
군사
2004년 EU 가입 이후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2005년 추산 군사비는 GDP의 1.87%인 약 8억 달러이며 총병력은 4만 9000명이다.
문화
↑슬로바키아 국립 극장.
↑슬로바키아의 유명인들.
슬로바키아 국민은 전통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전통음악의 원류는 슬라브족과 유럽인들의 민속음악이며, 15~16세기 종교음악의 기원인 모라비아왕국의 예배식에서도 그 전래를 찾을 수 있다. 그후 슬로바키아 음악은 종교음악과 실내악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민속음악은 헝가리 통치하에서 슬로바키아 언어를 보존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유명한 교향악단으로는 브라티슬라바 군시케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브라티슬라바 브로드캐스터 교향악단, 슬라바 실내오케스트라 등이 있다. 슬로바키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대양식의 건축물이 많으며 특히 브라티슬라바성(城)은 예전에 황제의 거처나 의사당, 시립박물관으로도 사용되었다. 스포츠는 축구, 테니스, 스키, 아이스하키 등이 인기 있다.
↑슬로바키아 문화부 청사.
↑슬로바키아의 전통 음식 브린조베 할루스키(Bryndzové halušky).
↑슬로바키아의 아이스 하키 선수인 미로슬라프 샤탄(Miroslav Šatan).
↑슬로바키아의 작가 요제프 밀로슬라프 후르반.
↑슬로바키아의 작곡가 얀 레보슬라프 벨라.
외교
슬로바키아는 체코와 분리 독립한 직후 1993년 1월 19일 체코와 동시에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의 회원국으로 가입,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등장하였다. 슬로바키아의 기본외교방침은 유럽에 회귀하는 것이며, 2004년 3월 29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2004년 5월 1일 EU(유럽연합)에 가맹하였다. 2000년 12월 14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맹하였다.
-대한 관계
슬로바키아는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한국과 슬로바키아 간의 외교관계는 1990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와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시작되었으나, 1993년 1월 1일 연방 해제에 따른 분리 독립으로 우리나라와 수교 관계가 새롭게 체결되었다. 슬로바키아는 1993년 외무장관 모라빅과 문화장관 슬로보드닉이, 1997년 국회의장 가스파로빅이, 2000년 미가스 국회의장이, 2005년 쥬린다 총리 등이 방한하였다. 우리나라는 1993년 외무부 제1차관보 이재춘이, 2002년 11월 박관용 국회의장이, 2006년 4월 반기문 외교부장 등이 슬로바키아를 방문하였다. 2007년 1월에 우리나라와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양국간에 체결된 협정은 무역사무소 설치 협정(1989), 민간경제협력위원회 설치 협정(1990), 항공 협정(1990), 무역·경제협력 협정(1990), 체육교류 협정(1991), 투자보장 협정(1992), 이중과세방지 협정(1992), 사증면제 협정(1995)이다. 2006년 기준 대(對)한국 수입은 12억 6700만 달러이고, 수출은 5033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부품, 플라스틱, 원료, 철강관 등이고, 수입품은 TV 부품, 평판디스플레이, 컴퓨터부품, 음향기기 부품, 금형, 기계류 등이다. 2005년 한국은 슬로바키아의 외국인 투자 1위국으로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투자액이 총 6억 748만 달러에 이른다. 2006년 기준 45개사가 진출해 있으며 기아자동차와 삼성전자 협력업체가 많다.(질리나 쪽에 많다.(여기서 기아 씨드를 생산하여 유럽에 공급한다))우리나라는 슬로바키아의 외국인 투자 3위국으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다음으로 투자 비중이 크다. 우리나라 교민은 2006년 약 2000명에 이른다.
–헝가리와의 관계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한 나라이며, 최근에는 민족감정으로까지 번졌다.
0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