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쿨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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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johanjohn · 9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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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의 존 2세 John II of Liechtenstein
계속 추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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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 가문은 카를 4세를 섬겨왔으며 룩셈부르크 왕가와 동맹관계를 맺고 왕권유지에 공헌한 봉신으로 입지를 다져 세력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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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 가문 문장 (금색/적색)
문장학 heraldry 구경하기 디지털화되있는게 아쉽긴한데 https://wappenwiki.org/index.php/Main_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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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프스트 변경백의 참의회 의원이자 my…my court spy
요프스트의 참의회에 대해 자세히 호프라트 Hofrat : 고위층들로 구성된 자문 위원회. 군주가 소집하는 고위 참모 회의이다 (핵심 자문단 일원으로있는 존은 요프스트의 상당한 신뢰를 받고있다는걸 알수있음)
미쿨로프의 리히텐슈타인 공동영주 Co-load of Liechtenstein-Nikolsburg 이자 공식 직함은 즈노이모 성의 성관백 Burgrave of Znojmo Castle
보헤미아의 프라하 성, 모라비아의 즈노이모 성 같은 중요 성은 왕이나 변경백의 직접 임명이 필요한데 요프스트에 의해 적임자로 선택받았을것으로 추정 (요프스트 17살한테…아니지 존 자체가 유능하니까뭐 글애도망상…자기 최측근, 성관백 임명, 몸값지불까지 통수의 통수 그자체 교활한 요프스트에게있어 존은 대체 어떤….? 의미의…?????)
프라하 성 성관백은 탈름버그의 디비쉬 1400년 9월 10일 부임 (존은 기록없음)
성관백은 주로 어디 거주하는걸까? 트로스키 성관백 하셰크는 성주 베르고프랑 있었고 디비쉬는 본인 성에 있던데
성관백으로 임명받은 성이 행정적으로 큰 자율권이 있거나 부관이나 가신에게 위임 가능한 경우
임명권자의 허가 하에 성관백직이 명예직에 가깝거나 비상주가 허용되는 조건일 경우
긴급상황에만 이동해 업무를 수행하는 명목상 성관백일 경우
이 조건을 갖춘다면 본인소유 성에 거주 가능하다 하지만 일정기간이상 성관백으로서 성에 거주하거나 정기적으로 순시해야만한다
그렇다면 존은 어느 성에 거주하고 있었을까? - 단순 명예직에 머물지않고 요프스트의 측근으로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보였으니 가문 소유 미쿨로프 성이 주 활동거점이었을것
즈노이모 성의 성관백에 대해 고찰
마른악마는 1400~1401년 사이 즈노이모 성의 성관백 or 헤트만 hetman 으로 임명됐다. (확실치않음) 1404년 얀 소콜과 함께 지기스문트로부터 즈노이모 공성전 방어에 활약한 기록이 있다. 성관백인 존과 헤트만 히네크의 접점? 그런건 없었다.
존의 직함 외 성관백 활동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실질적 권한은 없는 명목상 성관백일 확률이 높다. 성관백은 준백작급에 위치한다. 요프스트가 존의 유연한 임무활동을 위해 직책을 임명 한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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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누가 성관백이야 대체 아오
존이 성관백이란 기록은 위키에 직함 달려있는게 다임...그래서 존 쪽이 오류일거라..생각함
리히텐슈타인 소유 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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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거점 - 미쿨로프 Mikulov 성 (니콜스부르크 Nikolsburg)
(존..저렇게 넓은곳에 사는데 왜그렇게 뚱쭝해 술을 대체 얼마나 마시는거야......)
주요 보유영지 - 발티체 Valtice, 레드니체 Lednice (둘다 검색하면 볼수있는 성은 후세에 개축된것)
중세 공문서 아카이브 페이지 중 지기스문트 문항 https://www.regesta-imperii.de/regesten/11-0-1-sigmund.html (지기스문트가 황제되면서 귀족가문들의 봉토 소유권을 재확인하고 보장하는 문서)
위 문서를 보면 봉토이름이 많이 나열되있는데 크게보면 아래와 같다 (성+주변마을지역 포함)
바이젠슈타인 성 Waisenstein -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노이하우스 성 Burgstall Neuhaus (클렌트니체 Klentnice 에 위치) - 요프스트가 짓고 프로콥이랑 싸운다고 리히텐슈타인 가문에 매각함. 후스전쟁때 파괴됐는데 가문에선 재건하지도 않아서 오늘날엔 흔적도 없다고한다
룬덴부르크 성 Lundenburg (현재 브레츨라프 Břeclavi) - 후에 후스파에게 약탈당함 (미쿨로프, 발티체도 여러차례 약탈당함) (벤체슬라스 구출 보상으로 1419년 하사받았다는 기록도 있는데 여기 문서에는 1380/3/6에 요프스트한테 하사받은걸로 기록되있다. 이건 1419에 지기스문트가 재확인할때도 리히텐슈타인 가문 소유로 확인된 문서이니 아무래도 이 문서가 더 신뢰성있지않나싶음)
뒤른홀츠 Dürnholz - 영지 사고팔고사고팔고 이게..중세 부동산투자..?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땅부자라는 글 스쳐본거같은데 진짜였구나) 위 링크의 문서 원본은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 보관하고 있다
문서 날짜표기 des nehsten fritags nach dem heiligen Wyhennacht 성탄절 다음 가장 가까운 금요일 (이거보고 킹덤컴 인물들 겨울옷입고 성탄절 맞는거 상상…ㅜㅜ)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시조가 세우고 이름이 유래된 고성도 존재하는데 이건 어쩌고 미쿨로프에 사는��하면.. 1278년 가문일원이 결혼해서 외가한테 소유권을 줬다한다 아… 리히텐슈타인 성 투어 https://www.burgliechtenstein.eu/de/home.html
즈노이모 성은 룩셈부르크 왕가 소유이다
존의 가족���계
리히텐슈타인 가계도 https://de.wikipedia.org/wiki/Stammliste_des_Hauses_Liechtenstein
+더 자세한 가계도 (레딧) https://www.reddit.com/r/monarchism/comments/jygo0j/house_of_liechtenstein_family_tree_own_work/#lightbox
(충격…..존…..두번 결혼 자식셋 손자까지있는 할아버지……….워호스도 몰랐던건지뭔지 덕질이란게 실존인물이랑 최애구분하면서 하는거긴한데 🚬)
아빠 하트나이드 3세 Hartnýd III 엄마 슈텐베르크의 안나 Anna von Sternberg
삼촌 존 1세 Johann I Herr zu Nikolsburg und Feldsberg 오스트리아의 알베르트 3세 공작의 궁정 대신(Hofmeister) (리히텐슈타인을 조사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되던 인물)
아래부터 하트나이드 3세의 자식들
마티아스 Matyáše - 오스트리아의 알베르트 3세 공작의 궁정 내실 책임자(Private Chamber) 삼촌과 같이 알베르트 3세를 섬기고 있었다
존 2세 Johann II
하인리히 5세 Jindřich V - 레오폴트 공작의 궁전 대신(Hofmeister). 1414년 벤체슬라스 휘하로 즈노이모 성관백은 하인리히에게 임명된다. 1420년에는 지기스문트 황제대관식에도 동행했다. (그치..정권바뀌면 갈아타는게 정치지)
조지 3세 Jiří III (게오르크 Georg) - 트리엔트 주교
여기서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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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윈에 대해 물어볼때 라드직의 대답)
귀족들은 관례적으로 장남-영지를 계승하는 상속자 / 차남-왕의 기사, 장교, 지방 행정직 / 이후 아들-대학보내서 신부 / 장녀-정략결혼 / 차녀-수녀원 입회 / 이후 딸-궁정파견으로 인맥형성하도록 진로가 정해져있다
이 관례에 따르면 존, 하인리히, 조지의 진로 역할과 정확히 일치한다. 장남 존, 차남 하인리히, 막내 조지로 가계도에 나열된게 출생순일 확률이 높다.
+존의 아버지가 삼남이기에 실질적 영주가 아닌 공동영주 Co-load of Liechtenstein-Nikolsburg 로 남아있다. (사촌 크리스토프 1세 Christoph I 가 실질적 영주)
이 경우 자녀들은 상속자를 제외한 궁정, 성직, 기사에 진로가 맞춰진다 (즉, 존은 요프스트 옆에 딱 붙어있었다는 뜻임ㅎ)
스티리아 Styria (슈타이어마르크 Steiermark) 지역에 기반한 분파도 존재 https://oesterreichwiki.org/wiki/Liechtensteiner_%28steirische_Adelsfamilie%29
(이사람들 이름 다 거기서거기 똑같아서 찾고 대조하는데 머리부서지는줄) 워호스에서 각색한 존의 설정들 - 나이, 결혼여부, 유대인(사무엘)과의 관계………………
아니잠시만 한스는 게임에 맞춰 20살로 올렸으면서 실존인물 존은 1355 게임 1386 각색했다는 나이가 왜 17살…인거야…??? ????????????????????????
코덱스에서 벤체슬라스 사후,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지기스문트와 동맹을 맺었다에 대해
벤체슬라스 1419년 8월 16일 사망 / 후스전쟁 1419 7월 30일 발발
벤체슬라스 사후, 가문이 지기스문트 편에 섰다는 얘기는 후스전쟁을 말하는것이다. (아니 코덱스에 걍 후스전쟁이라고 적지 왜 오해하게..)
리히텐슈타인 역사학회 https://www.hs-liechtenstein.cz/Historie-rodu-Liechtensteinu.htm '반후스파 정책으로 인해 모라비아에 있는 리히텐슈타인 영지는 후스파 군대에 의해 여러 차례 약탈당했습니다.' (가문이 군사적으로 참여한 기록은 없는데 보복당한거보면 리히텐슈타인 가문에서 세운 정책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보수적이기 때문에, 지기스문트가 싫어도 후스파보다 낫다 판단해 가톨릭편에 섰다고한다
+피드백 추가
가계도를 보면 배우자의 상당수가 독일어권 귀족 출신이다. 이는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가톨릭을 지지한 또다른 근거가 된다 (체코 남모라비아의 미쿨로프는 20세기 중반까지 독일어를 모어로 사용한 지역이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가문이며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통치하는 왕가로 남아있다
사망 원인?
사망 원인이 언급된 문헌 기록은 없음 당시 기록의 우선순위가 정치, 법적 사안에 있었기 때문에 병사, 노환은 기록되지 않았다 직접적인 사망 증명 문서는 없되, 간접적 근거를 통해 1412년 사망을 신뢰할수있는 연도로 인정하고있다
역사학회에서는 문서기록 공백과 명의 전환 시점을 근거로 세웠다. 다만 온라인에 공개된 문서는 없어 확인 불가 관련 연구 :중세 토지권, 십일조 권리의 변동 시점 분석 연구 https://www.eliechtensteinensia.li/viewer/fulltext/000000453_100/184/
온라인에서 확인해볼수 있는건 이정도 :트리젠 Triesen 지역의 토지권 권리 변동 시점 리히텐슈타인 헌장집 https://www.eliechtensteinensia.li/viewer/fulltext/000000453_46/119/
트리젠은 가문의 세습재산이 아닌 수도원 소유로 십일조 징수권 포함 교회 재산이나 지역 공동체에 대해 관리자 권한을 가진 곳이다 트리젠은 현재 리히텐슈타인 공국 내 자치구로 위치해있다
실존인물이 1355출생이시니 병사 노환이라해도 이상하지않음
코덱스에 적힌 영지 몰수+구금에 대해서는 벤체슬라스 4세 구출 작전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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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eangelo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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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irs to the cellar of Mikulov Castle, Moravia, Czech Republic Schody do sklepa na zámku Mikulov, Morava, Česká republika Stiegen in den Keller des Schlosses Nikolsburg, Mähren, Tschechien Escaliers dans la cave du château de Nikolsburg, Moravie, Tchéquie Лестница в подвал замка Микулов, Моравия, Чехи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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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uul48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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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폭 초반부분 찐령술사..😭 강령 애껴요.. 그리고 디아블로3 소설은 분명히 이거 미쿨로프 (남수도사) 입덕하라고 만든 소설같다 아무리봐도 호라드림 결사단 부분에서도 그렇고 헠헠헠 너무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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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ee-soil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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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사진이 없어서 색연필로..;; 이럴려고 그림 배운게 아닌데 ☞☜ 야경을 찍고 싶은 곳증에 하나인 체코. 내일투어에서 체코 금까기 원정대를 뽑는다. 패키지여행과 자유여행의 장점을 모아둔 금까기로 유럽이라니.. 너무 땡긴다~ 그리고 예전에 도전했다가 적응못하고 떠나보내야했던 올림푸스 카메라까지 빌려준단다.. 요즘 올림푸스 미러리스가 땡겨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뽑힐 획률은 지극히 낮지민 혹시 모르니까 도전~~!!! naeiltour.co.kr. 체코, 그 두번째 이야기 체코 공짜여행 갈 사람 주목! [#체코 _ #금까기원정대 이벤트] [모집일] 7월 31일(월) - 8월 13일(일) [발표일] 8월 18일(금) [응모 대상]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자기만의 온라인 매체를 성실히 운영하고 있는 여행자라면 누구든지 지원 가능 . *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 참조 goo.gl/DixooA . . . #지구를걷자 #여행엔올림푸스 #체코이야기의땅 . . . #내일투어 #올림푸스 #체코관광청 #카타르항공 #금까기 #체코 #모라비아 #브르노 #올로모우츠 #크로메르지시 #미쿨로프 #레드니체 #발디체 #올림푸스카메라 #이벤트스타그램 #이벤트그램 #이벤트 #공짜여행 #무료여행 #트래블스타그램 #travelstagram #체코여행 #체코자유여행 #czech #czechrepublic #mora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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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johanjohn · 1 day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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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체슬라스 4세 구출 1403 Rescue of Wenceslaus IV in 1403
언제 탈출했는지는 동일한데 어떻게 탈출했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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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오스트리아의 빌헬름 1세 공작이 감시 (William, Duke of Austria 합스부르크 왕가 일원)
1403년 11월 11일 일요일 점심식사 후 / 정오 이후
변장하고 4명의 기병 —궁정 시종2+충직한 동료2�� 과 함께 탈출
어부가 배에 태워 도나우 강 건넘
강 너머 스타들라우에서 기다리고 있는 존 2세와 50명의 사수/저격병/기병/궁수
행선지: 도나우 강 -> 스타들라우 -> 미쿨로프 성 -> (브르노) -> (카를슈테인 성) -> 쿠트나호라 -> 프라하
참고문헌 바탕으로 서술된 사이트 https://www.e-stredovek.cz/en/post/second-captivity-wenceslaus-iv/ 1403년 11월 11일, 오스트리아의 빌헬름 1세 공작의 묵인 아래, 그리고 요한 폰 리히텐슈타인의 도움으로 벤체슬라스 4세는 빈에서의 구금 상태를 탈출했다. 그날 점심 식사 후, 그는 변장한 채 다뉴브강으로 향했고, 그곳엔 리히텐슈타인의 사람들이 배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 체코 국왕은 이미 모라비아의 미쿨로프에 도착해 자국 영토에 발을 디뎠다. 이후 그는 먼저 견고한 카를슈테인 Karlštejn 성으로 이동한 뒤, 쿠트나호라로 향했다. 그리고 내부정치 재조정 후 프라하로 복귀
(삽화 잘 보면 확실히 배가 있음)
작가 프란티섹 팔라츠키 František Palacký 의 저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체코 민족 역사>> 중 10권에서 발췌 https://cs.wikisource.org/wiki/D%C4%9Bjiny_n%C3%A1rodu_%C4%8Desk%C3%A9ho_v_%C4%8Cech%C3%A1ch_a_v_Morav%C4%9B/Doba_druh%C3%A1_i_neshody_s_panstvem_sv%C4%9Btsk%C3%BDm (요프스트 관심있다면 읽어보길 추천. 배신하고 손잡고 성격 잘나와있음 그리고….지기벤체가 너무강하다……..) 왕 벤체슬라스는 빈에 머물며 오스트리아 공작들의 권력 아래 감시를 받는 신세였다. 처음에는 공작의 성에 거처하였고, 도시와 그 주변을 말을 타고 매일 산책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반년이 지난 후, 공작 빌헬름(Vilém)이 그에게 Kienmarkt에 있는 별도의 저택을 내어주었고, 공작은 존경심을 표하기도 하고 동시에 감시하기 위해 매일 왕을 방문했다. 비록 벤체슬라스는 실제로는 포로 신세였지만, 이 상황은 사람들 앞에서 가능한 한 철저히 숨겨졌고, 겉으로는 그의 고귀한 신분에 걸맞은 모든 존경이 표명되었다. 그래서 빈에는 그만을 위한 궁정이 따로 유지되었는데, 그 구성원들의 지위로 보건대 결코 하찮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벤체슬라스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감시의 엄격함도 점차 완화되었다. 결국 그는 경비병들을 속이는 데 성공했다. 몰타 기사단의 기사인 보후시(Bohuše)의 도움을 받아, 11월 11일 정오 이후, 변장을 하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빈 시민들의 눈앞을 지나 도망쳤다. 그리고 도나우 강변에 도달하자, 한 어부가 그를 배에 태워 강을 건너 스타들라우(Stadlau)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얀 리히텐슈타인(Jan z Lichtenštejna)이 50명의 사수(저격병)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왕을 자신의 모라비아 영지인 미쿨로프 성(Mikulov)으로 빠르게 데려갔다. 이후에는 왕의 충신들이 있는 쿠트나 호라(Kutná Hora)로 그를 호송하였다.
리히텐슈타인 역사학회 https://www.hs-liechtenstein.cz/Historie-rodu-Liechtensteinu.html 바츨라프 4세가 두 번째로 투옥되었을 때, 리히텐슈타인의 요한 2세는 그가 빈에서 탈출하도록 도왔습니다. 1403년 11월 11일 일요일 점심 식사 후, 보헤미아 왕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변장한 채 포로 상태에서 탈출하여 네 명의 기병과 함께 빈을 떠났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저녁 무렵, 그는 다뉴브 강 반대편 슈타틀라우 마을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는 리히텐슈타인의 요한 2세가 이미 50명의 기병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은 그를 미쿨로프 성으로 안전하게 이송했습니다. 그 후 바츨라프 4세는 브르노로 갔고, 그곳에서 안전을 위해 카를슈테인 성으로 우회했습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왕으로부터 도움의 대가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왕은 1419년에 브레츨라프 Břeclavi 를 그들에게 영지로 하사하는 것을 확정했습니다.
저자 Joseph Aschbach <<지기스문트 황제의 역사 Geschichte Kaiser Sigmund's,>>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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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슈타이어 공작 빌헬름은 라디슬라우스 왕의 누이와 결혼한 인물로, 자신의 처남이 헝가리 왕위에 오르길 원했기에 벤체슬라스 억류에 더이상 관심 두지 않았다. 그의 소홀한 감시는 결국 보헤미아 왕의 탈출을 초래했다. 191 벤체슬라스는 탈출에 앞서 몇 주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보헤미아 귀족들의 지원을 받았음이 1403년 11월 9일자로 작성된 문서에서 확인된다. 그 문서에서 그는 두 명의 궁정 시종, 즉 하인리히 폰 자이들리츠(Heinrich von Seidlitz, 일명 라젠 출신)와 얀코 폰 브셰미슬(Janko von Wsemisl)에게 헌신적인 봉사에 대한 보상으로 영지와 수입을 하사하였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성 마르틴 축일(1403년 11월 11일), 벤체슬라스는 이 두 궁정 시종과 다른 충직한 동료 두 명과 함께 비밀리에 비엔나를 떠났다. 그날 저녁, 다뉴브 강의 슈타틀라우(Stadlau)에 도착했을 때, 한 어부가 도강 준비를 모두 마쳐놓고 있었다. 도나우 강 건너편에서는 리히텐슈타인의 요한(John von Liechtenstein)이 50명의 궁정 궁수들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벤체슬라스는 니콜스부르크(Nicolsburg, 미쿨로프)로 향했고, 거기서 보헤미아로 돌아갔다. 192 벤체슬라스는 프라하로 가지 않았다. 프라하는 지기스문트의 총독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쿠텐베르크(Kuttenberg)로 갔는데, 거기서 많은 지지자들을 규합한 뒤, 자신이 실제 수도로 복귀하려 했기 때문이다. 벤체슬라스가 자유를 되찾자마자, 그는 자신이 감금되어 있던 동안 지기스문트의 명의로 보헤미아에서 내려진 모든 명령과 조치를 무효라고 선언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동생(지기스문트)에게 항의서한(Beschwerdeschrift)을 보내어, 보헤미아 통치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였다. 그는 베를린에 머물고 있던 사촌 요프스트(Jobst)에게 급사를 보내어, 즉시 쿠텐베르크로 와줄 것을 요청했다. 벤체슬라스는 요프스트의 협조를 더욱 확실히 얻기 위해, 그에게 이미 저당 잡혀있던 룩셈부르크 공국(Herzogtum Luxemburg)을 다시 오를레앙 공작에게 담보로 넘길 수 있도록 허락했다. 보헤미아인들이 지기스문트 치하에서 과도한 세금으로 고통받고 있었기 때문에, 벤체슬라스가 왕위에 복귀했다는 소식은 전국적으로 환호를 받았다.
왕 해방의 대가로 오스트리아 공작들의 지지를 잃고 다뉴브 강 일대 영지를 몰수당하고 구금되었다
1. 실각+영지몰수 존 2세가 아니라 삼촌 존 1세 얘기던데 워호스가 잘못알았나봄 전후사정 생략 궁금하면 -> 리히텐슈타인 왕가 위키 https://de.wikipedia.org/wiki/Haus_Liechtenstein 존 1세 위키 2개 https://cs.wikipedia.org/wiki/Jan_z_Lichten%C5%A1tejna-Mikulova https://oesterreichwiki.org/wiki/Johann_von_Liechtenstein
2. 구금 "1405년 말이나 1406년 초, 요프스트는 자신의 휘하에서 포로로 잡힌 존과 하인리히 리히텐슈타인을 위해 2,000 코펙의 몸값을 지불했습니다" 리히텐슈타인 역사학회 https://www.hs-liechtenstein.cz/Historie-rodu-Liechtensteinu.html
(저 문맥으로봐선 동생 하인리히 5세도 요프스트 수하로 있었던듯 싶은데 저거 외엔 언급된 기록은 없음)
왕의 구출때문에 책임 추궁당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동생과 함께 구금됐단 기록으로 봐선 구출때문이 아니라 요프스트로부터 임무수행 중 포로가 된게 유력해 보인다. 그 임무수행이 뭔지에 대한 정확한 사유가 기록된것 또한 없다. 다만 요프스트 측 활동의 연속성으로 인해 충분히 해석의 여지가 있다
코펙이란? 그로셴보다 낮은 가치의 은화이며 공식문서상 정확한 명시가 필요해 작은단위의 금액으로 표기했다
프라하 그로셴 위키 https://pl.wikipedia.org/wiki/Grosz_praski "그룬발트 전투에서 튜턴 기사단 편에 서서 싸운 기사들의 석방을 위해, 블라디슬라프 야기에우로는 100,000 코펙(6,000,000 그로셴)을 요구했다. 이 금액 중 상당 부분인 37,000 코펙(2,220,000 그로셴)을 1412년에 왕은 지기스문트 룩셈부르크에게 빌려주었으며, 그 대가로 이른바 '스피슈 담보(zastaw spiski)'를 받았다." "바르샤바 주민들은 1413년 야누시 스타르시 공작이 그들에게 부여한 특권의 대가로 매년 60 코펙(3,600 그로셴)을 납부해야 했다." "1427년 미콜라쉬 트르치카는 클로드즈코 인근의 호몰레 성을 1,000 코펙(60,000 그로셴)에 구입했다."
60 코펙 (3600 그로셴) -> 마을 주민들 연간 세금 총액 300~500 코펙 -> 중소도시나 작은 영지를 살 수 있음 1,000 코펙 이상 -> 성곽/대지 구입 수준 5,000~10,000 코펙 이상 -> 고위 귀족도 쉽게 접근 못함 (국가급 자금)
더 자세한 화폐가치 비교 (이건 재미로만)
1. 오늘날 한화가치로는 얼마? 킹덤컴 레딧 https://www.reddit.com/r/kingdomcome/comments/katmu0/medieval_bohemia_prices/ (게임 물가 얘기 아님) 노가다 하루 일당 1그로셴 -> 최소 10만원 잡고보면 리히텐형제 몸값지불 2000코펙=12만 그로셴=120억…………………….. (두명분이긴해도 요프스트의 무조건적인 신뢰와 존을 많이 애낀다는게 느껴지는 액수…)
2. 게임 물가는 얼마? 게임 세계관의 평민들이나 병사들이 받는 임금, 브라반트가 언급한 마을 연수입을 보면 실제 가치가 반영된거같긴한데 주인공 보정으로 퀘 완수보상 3~500, 중무장 적 파밍으로 400 이상 먹는거보면 간극이 상당히 비정상적임 (그리고 평민들은 그로셴이 아닌 그보다 낮은 화폐단위를 사용했다한다. 게임편의상 그로셴으로 통일한것)
헨리기준으로 환산해보자 (토끼가죽 8, 노루가죽 45, 돼지가죽 13, 사슴가죽 36, 소가죽 17, 사슴고기 6, 마늘 1, 우유 2, 치즈 6, 달걀 0.6, 빵 4그로셴, 말 목욕 200, 값비싼 투구 5000, 값비싼 갑옷 6000, 포도밭 일꾼 일당 10, 제일 비싼 말 5천, 퀘완수보상 300, 중무장한 적 한명 400) 다른거보면 0 하나빼는걸로 생각해도 되긴한데 퀘보상이랑 파밍하며 먹는 돈 생각하면 0 두개는 빼야됨 12만 그로셴 -> 1억 2천만
(요프스트의 핵심인물로서 구금되고 요프스트가 2000코펙이나 지불할만큼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 뭘까. 1405-1406 사이면 변경백령 전쟁밖에 없는데 1405 봄에 평화협정을 맺었다하고. 평화협정+프로콥 사망 후 요프스트 중심 정치재편 과정에서 반대세력이 정치적 교섭수단으로 낼 협상카드로 쓰기위해 구금…이 아닐까 하고 gpt가 추측해줌ㅎ) (이거 조사하면서 자꾸 눈가리개+팔다리 구속된채 감옥 석조바닥에 쓰러져있는 존이 요프스트가 구해주기만 기다리는걸 떠올리는 난 잘못없다 하인리히:????) (벤체 구출말곤 별다른 기록없길래 겜 묘사처럼 유능한거맞나 의심해도 요프스트 행적이 그걸 다 부숴버리네 죄송합니다)
-> 즉, 코덱스의 '왕 구출로 인한' 영지몰수는 오류이며 구금은 인과성이 모호한 기록이다 1편 존 코덱스 그대로 복붙한 워호스 (겜 설정이라하면 할말없음)
1947년에 시작되고 9월마다 열리는 미쿨로프 와인축제 Pálavské vinobran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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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쿨로프 성에서 출발하는 행렬이 탈출한 왕을 맞이하는 장면을 재현,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고정 퍼포먼스가 있다 축제사이트 https://www.palavske-vinobrani.cz 이거알게되고 좀…감동이었음 존의 업적이 후세에 남겨져 즐거운 축제로 기억되고있다는게 (체코사람 다 아는데 씹덕외국인이 말하며)
더해서 존이라면 떼려야 뗄수없는 와인에 대해
남부 모라비아는 체코의 포도+와인생산 중심지이다 체코와인투어 https://www.justapack.com/south-moravia-czech-wine/ 체코의 와인생산 96%를 책임지는 남모라비아 여기서도 4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그중 체코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미쿨로프 지역 (+빠지지않는 리히텐슈타인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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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쿨로프 성에는 체코에서 가장 큰 와인 통이 있는데, 이 통에는 앞으로 370년 동안 매일 와인 한 병씩 마실 수 있는 양의 와인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런 통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존 이거보면 영원히 지하실 체류 쌉가능. 17세기 다른가문이 제작한거긴하지만)
"남부 모라비아에서는 아침 식사로 와인을 마시는 게 전혀 문제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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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영지에서 생산한 고오급 와인으로 샘 입맛 길들이는 존 경이 보고싶다)
조사하면서 언급된 지명 표시 (걍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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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텐버그 똥물만 봤을 사무엘.. 존이 호수근처 자기네 영지로 데려가서 같이 물놀이했음 좋겠다
— 조사후 감상…나라영업 이렇게 하는거구나….. 직접 조사하니 몬가 애정까지 생김 — 하…………기빨려 🫠 그래도 재밌었다 — 근데 아직 알고 싶은게 많아 요프스트 반쯤..한거같고 사무엘은 가상캐릭터라 대신 유대교 율법같은거 언제 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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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eangelo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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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de tower of Mikulov Castle, Moravia, Czech Republic Břitová věž na zámku Mikulov, Morava, Česká republika Schneideturm des Schlosses Mikulov, Mähren, Tschechien La tour d'avant-garde du château de Mikulov, Moravie, Tchéquie Передовая башня замка Микулов, Моравия, Чехи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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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eangelo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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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t tower on Goat hill, Mikulov, Moravia, Czech Republic Kozí hrádek na Kozím vrchu, Mikulov, Morava, Česká republika Pulverturm der Gaisburg auf dem Gaisberg, Mikulov, Mähren, Tschechien Le Châtelet de la chèvre sur la Colline de la chèvre, Mikulov, Moravie, Tchéquie Козий Градек на Козьем холме или копечек и гродек Козий, Микулов, Моравия, Чехи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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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eangelo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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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rary at Mikulov Castle, Moravia, Czech Republic Knihovna na zámku Mikulov, Morava, Česká republika Bibliothek auf Schloss Mikulov, Mähren, Tschechien Bibliothèque du château de Mikulov, Moravie, Tchéquie Библиотека в замке Микулов, Моравия, Чехи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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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eangelo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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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vak wine barrel from Svätý Jur (1882) with a depiction of a cat in the cellar at Mikulov Castle, Moravia, Czech Republic Slovenský vinný sud ze Svätého Jura s vyobrazením kočky ve sklepě na zámku Mikulov, Morava, Česká republika Slowakisches Weinfass aus Svätý Jur (Sankt Georgen, ung. Szentgyörgy, jiddisch Jergen) mit der Darstellung einer Katze im Keller von Schloss Mikulov, Mähren, Tschechien Tonneau à vin slovaque de Svätý Jur avec la représentation d'un chat dans la cave du château de Mikulov, Moravie, Tchéquie Словацкая винная бочка из Святого Юра с изображением кошки в подвале замка Микулов, Моравия, Чехи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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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eangelo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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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nt barrel from 1643, the second largest in Europe, cellar at Mikulov Castle, Moravia, Czech Republic Obří sud z roku 1643, druhý největší v Evropě, sklep na zámku Mikulov, Morava, Česká republika Riesenfass von 1643, das zweitgrößte in Europa, im Keller von Schloss Nikolsburg, Mähren, Tschechien Tonneau géant de 1643, le deuxième plus grand d'Europe, cave du château de Mikulov, Moravie, Tchéquie Гигантская бочка 1643 года, вторая по величине в Европе, в подвале Микуловского замка, Моравия, Чехи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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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eangelo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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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delier in the library at Mikulov Castle, Moravia, Czechia Lustr v knihovně na zámku Mikulov, Morava, Česká republika Luster in der Bibliothek auf Schloss Mikulov, Mähren, Tschechien Lustre dans la bibliothèque du château de Mikulov, Moravie, Tchéquie Люстра в библиотеке в замке Микулов, Моравия, Чехи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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