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삶에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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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에 관하여>
버티는 삶이란 웅크리고 침묵하는 삶이 아닙니다. 웅크리고 침묵해서는 어차피 오래 버티지도 못합니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지금 처해있는 현실과 나 자신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얻어맞고 비난받아 찢어져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저 오기가 아닌 판단에 근거해 버틸 수 있습니다.
상처를 과시할 필요도, 자기변명을 위한 핑계거리로 삼을 이유도 없다. 다만 짊어질 뿐이다. 짊어지고 껴안고 공생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뿐이다. 살아가는 내내 말이다.
여타 대개의 한국산 선후배 문화에는 장점만큼이나 나를 질식하게 만드는 냄새와 결이 있다. 선배와 후배라는 이름으로 날줄과 씨줄을 자처하지 않고서는 좀체 안도할 수 없는 병이 보인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대는 가장 행복한 세대여야 마땅하다. 제도적으로 그 시작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게 건강하고 상식적인 사회다. 그런데 당연히 축복받아야 할 세대가 한국에선 가장 힘없고 갈 곳도 없으며 오르지 경쟁만을 강요당한다. 20대는 그런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그저 자학하기에 바쁘다.
내가 별로라는 걸 인지하는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다. 그건 비관이 아니라, 비전이다.
광주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지의 기억으로 멀어져가고 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나.
대개의 집단폭력에는 뚜렷한 단 한 명의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1/N의 느슨한 적대감 혹은 방관들이 존재할 뿐이다. 집단폭력은 바로 그 1/N의 폭력�� 모여 촉발된다.
언론은 당신의 진심에 관심이 없다. 언제나 목적은 더 잘 팔리는 이야깃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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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에 관하여
p.159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틀에 의해 판단한다. 이 틀은 그들의 세계관이고 가치관이다. 이 가치관은 주머니사정과 별개로 작동한다.
p.175 너는 좌파니까 안 된다는 말에 대응하기 위한, 나는 좌파가 아니라는 방어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방어는 애초의 구질구질한 주장을 무력화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끝없는 사상검증의 악순환을 부채질한다. 실제 당신이 좌파든 우파든 공산당원이든 사민주의자든 파시스트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차피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화대와 여당이 부채질하고 있는 저 정체불명의 진영논리에 따르면, 내 편이 아니면 전부 좌파다.이 허울뿐인 수사 앞에 나는 좌파가 아니라는 고백은 스스로를 증명하고 부조리를 해소하기 위한 어떤 효과도 가져올 수 없다.
p.224 어떤 행동에 단 한 가지 명백한 원인만이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다못해 날씨부터 사소한 대화, 어느 생각 없는 기자가 써내려간 기사 한 줄이 안겨준 짜증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해동을 가능케 하는 원인에는 수없이 많은 요소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로 유력한 이유를 만들고 매우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처럼 포장하면 정작 문제의 본질은 휘발될 수밖에 없다.
끔찍한 사건의 범인을 만든답시고 자극적인 수사와 무리한 추정에 바탕해 엉뚱한 데에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범인을 그냥 `괴물`로 만들어버리면, 우리는 동일한 범죄가 반복되는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그렇게 되는 순간 사건은 더이상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우리 공동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와 다른 철장 속 괴물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p.227 원래 인간은 자신이 두려워하거나 알지 못하는 대상에 명료한 이름을 붙여 그것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떠벌리기 좋아하는 종자다.
p.288 사람들은 합리적 근거에 의해 대상의 무고함이 증명된 이후에도 편견과 의심을 쉽게 거두지 않는다. 되레 더 강하게 부정하며 일부는 음모론의 방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 번 실추된 누군가의 명예는 결코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일들은 대개,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p.335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단 두세 마디로 규정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삶은 크고 작은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
p.339 타인의 불행과 실패를 그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 정작 전염될까봐 사유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성공담이 제공해줄 수 있는 건 잠시 동안의 쾌감과 환상뿐이다.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고 혹시 모를 성장의 기회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경청해야 하는 것은 성공담이 아니라 굴복하고 실패한 이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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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기르고 있다. 공공연한 폭력의 최전선은 전쟁터가 아니라 가정이다. 남이 하면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어. 삿대질 할 것도 엄마에게 형제에게 자식에게 남김없이 쏟아 낸다. 사람이 괴물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자기 자신과 주변의 모습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고선 스스로 괴물이 되었는 지조차 알지 못한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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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저씨가 "벗어나자!"고 외쳤을 때, 속으로는 동의할 수 없었다. 고시원에서의 생활이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세상의 표면 위를 더듬거리고 선 벌거숭이 어린아이에게, 저 혼자 힘으로 벌어 지내는 게 가능한 거주지가 있다는 건 여러모로 든든한 일이다. 그것은 온전히 제어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분수에 맞는 삶이었다.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p.46-47
새로운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해야 하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어제 읽던 허지웅 책 속의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되어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보잘 것 없는 집이었대도 언제나 마음 붙이고 살았던건, 그곳은 온전히 나를 위해 존재하는 편안한 우주였기 때문이었다. 가족과 함께 있던 집에선 늘 외로웠는데, 홀로있는 나의 우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달팽이집 같던 내 공간도 이제 내가 짊어지기엔 많이 커버렸다. 그의 말대로 주변 공간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이렇게 잃어버리며 어른이 되어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좋은집을 만났으면 좋겠다. 기승전부동산.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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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3 택배, 버티는 삶, 비겁함
유난히 피곤한 그런날이 있다. 매일 듣는 독일어와 중국어에 지쳐 뇌가 흔들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당장이라도 눈을감고 잠을 자고 싶은데, 그놈의 버릇이라는게 뭔지. 나는 낮잠을 못잔다. 때문에 항상 밤까지 피곤을 안고 가야만 했다. 그때문에 더욱 지쳤던 것같다.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집에 도착하자 날 반기는 활자가 있다. 한글로 적힌 택배 박스. 한국에서 무언가가 온것이다. 앞에 놓인 택배에 웃음을 지으며 방으로 들고 올라왔다. 녀석이 내게 그렇게 말하던 택배다. 그 안을 보고 많이 웃었다. 좋아하는 라면 종류. 계속 먹고 싶다고 ���얼거린, 고교시절 매점에서 즐겨먹던 과자들. 그리고 두권의 책. 지금의 내 상황을 설명해주는 듯 한 두 책의 제목을 보고 많이 웃었다.
나는 항상 이 친구를 생각하면 두가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한 가지는 휠체어. 그러나 그것보다도 먼저 떠오는 것은 불이었다. 당당하고 화통한 내친구는 내게 항상 불같은 친구였다. 숨기는 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던, 거짓말을 모르는 내 친구는 택배를 받았다는 나의 연락에 들뜬 목소리로”내가 그 책 선물할 지 몰랐지? 너가 보고 싶어하길래, 내가 깜짝 선물로 준비했지!” 그녀의 기쁜듯한 음색을 듣고 나는 그냥 몰랐다며 같이 웃었다.
너의 깜짝 선물이었던 노란색 책. 그책의 작가,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라는 책 제목의 의미. 그리고 그 안의 너와 나만이 알수 있을 글귀. 그래 사실 그 무엇보다도 그 안에 적혀있던 너의 편지. 많이 울었다. 미안했고 고마웠다. 그동안의 나의 비겁함에 사과하고 싶었지만, 그 용기도 안나서 더 미안했다. 나는 알고있다. 내가 어떤식으로 비겁한 사람인지.

너와 나는 고등학교시절부터 친했지만, 사실은 상극의 성격이었다. 나는 불같다는 너의 성격을 감당해내는것에 버거워했다. 너는 불같았고 나는 바람 같은 사람이었다. 모두가 만족할 방안을 찾는 너였고, 나는 효율적인 과정을 찾는 이였다. 너는 두명의 동생이 있는 그래서 ‘함께’라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고, 나는 무남독녀로 ‘혼자서’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굳이 정리해보자면 너는 꿈을 중시하는 뜨거운 사람이었고, 나는 현실이 우선인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우린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했지만, 항상 결정적인 곳에서는 날을 세웠다.
그렇다고 너와 내가 싸우거나 다툰적은 없었다. 둘다 그런 것을 즐기는 이들이 아니었으니. 그러나 우린 알고있었다,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우린 적은 공통분모에 자연스럽게 지쳐갔고, 그랬기에 우린 1학년 때보단 2학년때, 2학년 때보단 3학년때 조금씩 더 안전거리를 늘려갔다. 우린 분명 친한사이였으나, 너와 나의 무리에 공통분모로 존재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것이 너와 내가 친구가 될 수있던 방법이기도 했다.
넌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럴것이다. 내가 어떤식으로 냉소적이고 어떤 식으로 비겁한 이인지. 항상 낮은 온도의 나는 항상 온기를 지니고 있는 너에게 졌었다.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너는 항상 관계를 잃기 싫어 이런식으로 뒷걸음 치던 나에게 오늘과 같은 방법으로 성큼 들어온다. 항상 꿈은 현실을 기반으로 해야하는다며 스스로에게도 냉소적인 내게, 너는 원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있다며 내 꿈을 응원한다.
편지의 끝에 넌 적었다. best friend라고. 사랑스런 친구가 항상 행복하길 빈다고. 나는 너의 행복을 빌었던 적이 있던가. 나는 항상 너의 성공을 빌었다. 나는 너로 인해 처음으로 ‘장애’를 받아들였고. 나는 그랬기에 더욱 너에게 냉소적인 현실을 일깨웠고, 번복하며 말했다. 한국의 그런현실을 알았기에, 그랬기에 나는 너의 행복보다는 성공을 빌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식이 이런식이라는 것을 너는 알았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이러한 생각과 감정으로 사는 내게는 이것이 최선의 또다른 애정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너는 알았을 것이다. 그랬기에 너는 나의 가시돋힌 현실적인 말에 항상 동의하며 귀기울였고, 그러던 내가 무너지려는 순간에는 나를 끌어올렸던 걸거다.
나는 내가 너를 보호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관계 유지를 위해 이정도의 보폭을 유지하고 컨트롤하는 이는 나라고 생각했다. 현실을 항상 외면하는 너를 내가 일깨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너와 나의 관계에서 너의 온기에 기대어 보호받았던 이는 비겁한 나였다. 너는 다리가 불편하지만 건강한 이였고, 나는 건강한 이처럼 보이지 사실 감정의 어느 부분이 꽤 불편한 사람이었던 거다.
그거를 나는 너의 보호속에서 혼자 몰랐다. 그래서 그게 미안해서 많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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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상처를 과시할 필요도, 자기 변명을 위한 핑곗거리로 삼을 이유도 없다. 다만 짊어질 뿐이다. 짊어지고 껴안고 공생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뿐이다. 살아가는 내내 말이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허지웅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의 소위 말하는 ‘상처’가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니가 더 힘든 걸 안다고 내가 안 힘든 것 아니다’ 는 말���럼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민과 걱정이 있는 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그가 쓴 몇 문장을 읽고 나는 내가 ‘상처'를 대했던(또는 대하려 했던) 방법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사실 허지웅이라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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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재주마저 별 것 아니라고 말하는, 그러면서도 그 것이 고마우며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사람.
음. 별 것 아닌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아무튼. 이 페이지의 짧은 한 줄은 부럽기 짝이 없다. 부럽다는 말 이외의 표현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고맙고 사랑스러워할 자신의 재주가 존재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내게도 그런 것이 있었던가.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보고 싶었던 기타연주, 사진찍는게 좋아서 사진기를 자주 가지고 놀았던 시간들, 글 쓰는게(글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좋아 어려서부터 종종 끄적이던 공책, 그나마 잘 한다고 생각하는 피아노 연주마저 내 것이라는 느낌은 적다.
무엇이 나를 착각하게 만들었을까. 이 정도면 이력서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취미 및 특기란에 기록할 정도는 된다고. 단지 그 정도일 뿐, 온전히 내게 고마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재주는 재주를 부릴 수 있는 곳에서 피워야 마땅하다. 단순하게 글 몇자로 적어낸 내 재주에 관심을 보이며 정작 어떤 것도 하지 못하게 손발을 묶어놓는 곳이라면, 이제는 멀어지겠다.
그런 의미로 내게도 고맙고 사랑스러운, 별 것 아닌 재주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다 생뚱맞은 사실 하나를 알게되었다. 그대가 말한 ‘별 것 아닌 재주’는 절대 별 것 아닌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세상에는 아직 그 별 것 아닌 재주 하나 찾지 못해 끊임없이 헤매는 사람은 많으며, 안타깝게도 그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결국 그대는 남들보다 행복한 사람임에 분명하다는 것.
나는 나의 이 별 것 아닌 재주가 고맙고 사랑스럽다.(버티는 삶에 관하여, 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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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기 위해, 결코 도래하지 않을 행복을 빌미로 오늘을 희생하지 않기 위해...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 매력적인 문구. 이제 관계들의 정체를 규명해보자... 고민하던 문제들이 한결 명쾌해지기 시작한다. 답은 이미 내 마음에 있었구나. 계속 내 귀에 속삭이고 있었구나. #심야독서 #관계 #운명 . . #버티는삶에관하여 #버티는삶에관하여_허지웅 #허지웅 #일상 #독서 #생각 #교훈 #책스타그램 #독서그램 #마음의양식 #일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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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존중하는 것과 현실에 종속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최소한의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하거나 외면한 채로, 우리는 어느 순간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시급하고 묵직한 지상의 문제이며, 진짜 현실이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허지웅
늘 고민하던 것. 늘 고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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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을. 푸르던 잎이 단풍색으로 물들고, 그러다 서서히 바스락 거리며 말라가는 계절. 공기는 기분 좋을 만큼의 선선함을 주는데, 이따금씩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좋은 듯 차가워 지고 있었다.
여기, 그 계절보다 한 발 앞서가는 듯한 노인이 앉아있다. 구부정하다 못해 둥글게 접힌 허리에 가늠하기 어려운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듯 했다. 아직 선명한 색을 머금은 채 바닦에 나뒹굴고 있는 낙엽과 닮은 노인의 모습은 놀랍도록 평온해 보였다. 어쩌면 이미 인생에서 제일 푸르고 풍요로움이 가득한 시기를 맛 본 뒤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세월의 모든 풍파를 비껴가지 않고 온몸으로 고스란히 막아온 노인에게 뜻하지 않은 여유로움이 생겼다. 그리고 삶의 이유는 희미해져갔다. 세상에 도움이 될 법한 ‘지혜’라 불리는 것은 요즘 시대를 이해하지 못한 옛날 사람의 고리타분한 참견이 되었고, 그 것에 화내기보다 안타까운 마음을 접을 줄 아는 삶의 방식을 택하면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찰나 가을이 노인 옆에 닿았다. 당신과 나는 닮은 것도 많으니 미래의 시간들로 동행하자며 맴돌고 있다. 노인은 딱히 승낙도 거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꺼이 함께 가 주리라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을은 재촉하지 않고 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 제일 차가운 계절에 다가서는 것쯤 별 거 아니라는 노인의 표정을 아무래도 읽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은 가을마저도 한 가지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있었다. 덤덤해 보이는 표정, 그 가장 밑바닥에는 불안하고 애달프고 처량하기까지 한 마음을 위태롭게 숨기고 있던 노인이 있었다. 주어진 미래라고는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 전부인 노인에게 같이 가자고 해주는 이가 성가시기보다 도리어 반가운 손님이었을 것이다.
가을의 속도감이 노인의 주변에 채 미치지 못하고 머물렀다. 별거 아니라는 듯 졸고 있었다.(버티는 삶에 관하여, 1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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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언젠가 본 드라마에서 기업의 회장님이 말하더라. 자기 분수를 함부로 결정짓지 말라고. 그렇다고 무작정 희망만을 꿈꾸며 살라는 얘기 또한 아니지만 모든 세상의 일들이 결정론적이지 않는 이상 그 말은 맞는 얘기였다. 나는 무엇이라도 될 수 있고, 또 변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사람이지 않은가.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내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을 내려 세상으로 한 발 내딛은 첫 번째 직업, 작업치료사. 나는 그 때의 ‘지금’에 감사했다. 누군가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자 부단히 노력했었다. 함께 좌절감을 느끼는 순간에도 금세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 지쳐올 때쯤 이따금씩 보람된 기분이 나를 휘감았고, 나의 삶의 질 역시 올라가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느껴지는 자괴감 및 허탈감에 사직서를 내고, 본격적으로 백수생활을 시작하였다. 나같은 겁쟁이한테도 그만 둘 용기는 있구나 생각하며 여행을 떠났다. 실제로 여행을 떠난지 며칠 되지 않아 들었던 생각은 이렇다. 내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을 내렸다 말했던 첫 직업은 결코 자유롭게 선택되거나 결정되어지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한데 모아놓고 골랐던 차선책 같은 느낌이랄까. 진학을 원했던 요리 관련 고등학교는 내 체력이 약해서 힘들거라는 이유로, 글이 좋아 문예창작과를 지원하고 싶었지만 글쟁이는 돈 벌기 힘들다는 이유로 저지되었다. 왜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었나. 이제 와서 뒤늦은 후회는 접어두기로 하고. 정리하자면 결국 내가 하고싶었던 일이 아닌데에서 온 자괴감과 허탙감이 뱉어 낸 사직서였다. 이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면 돼!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잠시. 아- 정말 모르겠다. 그 옛날 하고 싶었던 일을 다시 ‘현실’로 끌어들여오기엔 자신이 없다. 게다가 지금도 하고 싶은 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총체적 난국에 맞딱들인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꼈다. 눈물도 조금 흘렸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며 꾸준히 백수로 지내는 동안 알게 모르게 나에게 변한 것이 늘어났고, 그 만큼 주변 세계들도 많이 변해있었다. 알고 지내던 직장 동료들, 새롭게 알게 된 주변 사람, 내 이력서를 판단할 미래의 직장들까지 참 많이도 달라졌다. 그 것들의 변화가 마땅치 않다거나 혹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과거가 되버리기도 한다. 간간이 사직서라는 선택의 후회가 주변을 향한 시기로 둔갑해 다가올 때가 그렇다. 이를테면 전 직장동료가 승승장구하는 소식같은. 스스로가 좀스럽게 느껴져 낯이 뜨겁다.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변하면서 내 마음도 변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인생에 감사가 아닌 경계를 두기 시작했다. 젊다고 느껴지지 않는 내 나이 28살에.(2014.09)
분수에 맞는 삶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주변 세계를 향한 애정을 조금씩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버티는 삶에 관하여, 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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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론인들이 오히려 스스로 언론 엘리트라는 자존심 위에서 글을 쓰고 편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시정잡배 같은 자세로 당장의 광고 한 면과 클릭 수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지금과 같은 불신과 오명을 씻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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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주문한 책을 받았다. 버릇이던 속독의 문제점으로 보거나 읽은 것들의 디테일함에 기억장애가 생겼다. 그래서 한 작품을 여러번 보고, 여러번 보면서 인상적인 구절이나 장면을 기록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도 등장인물의 이름은 여전히 제외하다보니 기억장애는 영 낫질않는다. 꽤나 좋아하는 냉소적인 지껄임을 이유로 책을 구입했는데 역시나 혁신적이진 않은 개념과 글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딱 내 취향이다. 우울하지 않은 가라앉음. 책의 디자인도 맘에든다. 양장본을 흉내낸 제본도 좋다. 그런데 노란 표지는 찍힘과 손때에 취약하다. 나 처럼 함부로 하지도 조심하지도 않는 사람에겐 혼란스럽다. 왜냐하면 내 책장엔 비닐로 표지를 싸놓은 책과 한 백명쯤 본 듯 때탄 표지와 책장이 낱낱이 따로노는 빈티지함이 공존하기 때문인데, 이책은 한번도 덜읽었는데 번써 손때가 묻어난다. 네가 속하게 될 무리는 정해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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