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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꼭 나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말을 기억해두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어쩌다보니 새벽에 깨어 뒤척이던 밤, 몇년 전 내게 "잠의 열차를 놓쳐버린거죠" 라고 표현 했던 아이의 말이 생각 났다. 누군가의 문장들을 나도 오래 기억하려고 애쓰는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나같은 사람이 더 있었는데, 누구였더라- 생각해보니 박준 시인이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책에서 봤던 글귀였고.

누군가의 말을, 문장을 기억하기 위해 이런 글도 쓰는 거지만, 사는게 바쁘고 너무 많은 것들을 읽고들어야 하기에, 예전처럼 문장들이 많이 남지는 않는다. 어쩌면 앞으로 더 그렇게 되겠지. 점점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게 될 테고.

약간의 조바심이 들었던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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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중,

죽음이 삶을 덮치는 순간들이 있다. 삶이 잠깐 멈춰지는 시간.

나는 그가 의연할 줄 알았다. 아버지가 오래 아프셨고, 곧 돌아가실 거란 것도 알고 있었고,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는 좀체로 울거나 아프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그가, 빈소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안아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당신의 결여는 나의 결여로써 채워지는 거였구나, 생각했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아버지가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의 아버지가 내게 그런 아버지가 되어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20대의 날들도 있었지.

무겁고 애달픈 가족의 고리.

아버지, 하늘에서 평안하시길. 그리고,

그의 마음도 좀 편안해 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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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요즘 다자이의 오디오북을 iPod에 다운받아 여행하는 차 안에서 자주 듣는다. 나와 맞는다고는 역시 못하겠고 곳곳에서 '맙소사' 한숨을 쉬기도 하지만, 읽는 게 아니라 낭독하는 걸 듣고 있으면 왠지 이야기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합니까?> 중

다자이 오사무의 전집을 사 모으는 중이다. 열심히 읽고 있기도 하고.

올해 안에는 다 읽겠지. 생각보다 작품을 많이 남겼다. 무척 재밌는데 미완이라 아쉬운 단편들도 있고.

하루키의 산문중에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썼던 글이 있던게 생각나서 찾아봤다. 둘 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지만, 두 사람은 정말이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하루키상이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들으며 맙소사, 하는 표정이 그려져서 이 글을 다시 읽으며 큭큭대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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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편지를 쥐고 있으면, 제일 먼저 느껴지는 건 당신의 따듯함이에요. 당신이 노래할 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과 똑같은 따듯함. 그 따듯함에 내 몸을 꼭 대고 눌러 보고 싶지만 참아요. 왜냐하면, 기다리면, 그 따듯함이 사방에서 내 몸을 감쌀 테니까요. 당신의 편지를 다시 읽고 당신의 따듯함이 내 몸을 감싸면, 어느새 당신이 쓴 말들은 먼 과거가 되고 우리는 함께 그 말들을 돌아보죠. 우리는 미래에 있어요.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니에요. 우리는 이미 시작된 어떤 미래 안에 있어요.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딴 미래 안에 있는 거에요. 내 손을 잡아요. 나는 당신 손목에 있는 상처에 입을 맞춰요.

존 버거 < A가 X에게>

<A가 X에게>의 첫 페이지에는 “가산 카나파니를 기억하며” 라고 적혀있다. 

그 한 문장에 마음이 욱죄였고, 

읽기도 전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존 버거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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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공원에서 닛포리까지 걸어가는 길, 寛永寺라는 절에서 찍은 사진.

한적한 주말의 여유도, 따듯한 햇살도, 벚꽃도, 소녀도, 강아지도. 

눈을 뗄 수 없었던,  한없이 사랑스러웠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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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제품을 살 때 이미지도 함께 산다. 어떤 화장품 브랜드를 떠올리면 어떤 모델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우리는 모델의 이미지와 그들의 웃음과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함께 구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화장품 회사의 선의를 믿는 조건으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복잡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게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고, 우리들이 살아 있는 방식이다.

김중혁, <메이드인 공장> p.215

화장품 회사로 이직한지 3개월이 지났다. 시간 참 빠르다.

아주 새로운 일들. 지금까지 쌓았던 것들을 다 허물고 새로 쌓고 있다. 

"쉽진 않겠지만 하나하나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을 또렷이 느끼며 또 다른 너의 모습을 발견해가며 즐겁게 잘 지냈으면 해."

너에게 날아온 편지속의 그 문장을 힘든 순간 순간 기억해 내려고 애쓰지만, 정말이지 너의 말대로 쉽지가 않다. 그래도 언제나 난 네 말을 잘 들었으니까. 

적어도 훗날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기 위해 애쓰고 싶다.

작년에 사 놓은 메이드 인 공장을 뒤늦게 읽고, 불과 몇달전에 읽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이야기가 와 닿는 걸 보니, 내가 화장품 회사 직원이라는 사실에 어느정도는 적응이 되었나보다.

하지만 혼자 틀어박혀 연구를 하던 내가, 누군가에게 선의를 판매하고 나의 필요를 충족받고 있다는 사실에 적응하려면, 그래도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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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시기에 나름대로 상냥하게 대하려고 '노력한' 감촉은 지금도 내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당시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지만,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잘 지탱해주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일종의 사회 훈련 같은 것이다. 인생에는 분명 그렇게 평소와는 다른 근육을 열심히 사용해볼 시기가 필요하다. 설령 당시는 노력의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말 없는 분들, 힘내서 잘 사세요. 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마 말없이 응원하겠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중, p.172

<말이 없는 편입니까?>라는 제목의 하루키상 에세이를 읽다보니, 최근 친구와 '하루에 뱉을 수 있는 말의 총량'에 대하여 대화를 나눴던 것이 생각났다.

이직 후, 이전 회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야 할 일이 생기다보니

하루에 할 수 있는 말의 총량이 아주 제한적인 나로선, 퇴근 후 온전히 혼자로 돌아오는데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선 안되는 순간에 침잠해 있는 일들도 종종 생기고.

하루키상의 "인생에는 분명 그렇게 평소와는 다른 근육을 열심히 사용해볼 시기가 필요하다."는 문장이 와 닿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근육을 사용하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면 좀 괜찮으려나.

이렇게 내가 에너지를 끌어모아 '말'하는데 사용하고 있음에도, 훗날 회사의 누군가로부터 "옛날부터 참 무뚝뚝하셨어요" 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하루키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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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저씨가 "벗어나자!"고 외쳤을 때, 속으로는 동의할 수 없었다. 고시원에서의 생활이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세상의 표면 위를 더듬거리고 선 벌거숭이 어린아이에게, 저 혼자 힘으로 벌어 지내는 게 가능한 거주지가 있다는 건 여러모로 든든한 일이다. 그것은 온전히 제어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분수에 맞는 삶이었다.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p.46-47

새로운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해야 하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어제 읽던 허지웅 책 속의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되어 슬그머�� 웃음이 났다.

보잘 것 없는 집이었대도 언제나 마음 붙이고 살았던건, 그곳은 온전히 나를 위해 존재하는 편안한 우주였기 때문이었다. 가족과 함께 있던 집에선 늘 외로웠는데, 홀로있는 나의 우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달팽이집 같던 내 공간도 이제 내가 짊어지기엔 많이 커버렸다. 그의 말대로 주변 공간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이렇게 잃어버리며 어른이 되어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좋은집을 만났으면 좋겠다. 기승전부동산.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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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자기 잘못이라 고백하는 자는 패하리라.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p.57,

결국 이 문장으로 귀결될 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나'와 '우리'를 괴롭히는 이 모든 일들은.

"다른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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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 인간이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야. 절대로 그러지 못해. 물론 사실은 하나 뿐이야. 그러나 사실에 대한 해석은 관련된 사람의 수만큼 존재해. 사실에는 정면도 없고, 뒷면도 없어. 모두 자신이 ��는 쪽이 정면이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야. 어차피 인간은 보고싶은 것 밖에 보지 않고, 믿고 싶은 것 밖에 믿지 않아.

-미야베 미유키 <모방범> 중,

이석원도 <실내 인간>에서 그렇게 말했지. 진심이란 증명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어주는 거라고.

무수히 떠도는 말과 시선들 속에서 ���제나 그렇듯, 나는 당신을 믿지만.

당신을 믿고, 위로하고, 지켜주었던 그 지나온 시간들이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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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장이 제 이름으로 많이 돌아다니던데요…

"나는 연필이었고, 그래서 흑심을 품고 있었다. 당신 마음에 ‘좋아해요’라고 쓰고 싶었지."

역시, 손발이 오그라들어요 ㅋ 네? 이런 게 제 문장의 특징이라고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단편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나오는 건데 앞 문장만 내가 쓴 거고 뒷 문장은 누가 임의로 붙인 겁니다. 딱 보면 모르나요? 나라면 그렇게 안 쓰거든요. 진심은 연필로 쓰는 게 아닙니다. 지워지거든요. 그러니까 당신 마음에는 볼펜으로. 이걸 어쩌나? 더 오글거린다고요? 음… 그럼 이렇게. “당신 마음에 ‘좋아해요’라고 썼는데 누가 지웠다”. 쓰고 보니 당신의 그림자는 왜 노는 날이 아니냐고 화내는 듯한 제목의 소설에서 본 작가의 말 같군요. 이쪽이 더 낫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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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즐겁지만은 않다. 동시에 매우 불편하다. 이것은 내게도 브레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 행복 자체가 불편함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이는 행복의 필요조건으로서, 다른 방식으로는 행복을 말할 수 없다. 즐거움과 불편함이 하나 되어야 완전한 행복이라 할 수 있다. 한쪽을 헐어 내면 모두 허물어지는 구조물처럼 말이다.

- 마크 롤랜즈, <철학자와 늑대> 중,

매일 우리집에 찾아오는 요녀석 때문에 걱정이다.

어차피 키우는 개, 한마리 더 들이는건 어렵지 않지만 사람 손을 한번도 타보지 않고, 밖에서만 살아온 녀석을 집에 들인다는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나와 이녀석과, 또 가지. 우리 셋의 관계와 행복에 대해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어제는 산책길에 목이 마른지 땅에 고인물을 할짝할짝 먹는걸 보고 집에 데려와서 밥과 물을 먹였고, 그러면서 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마크 롤랜즈의 말대로 그러한 불편함을 끌어안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이녀석의 행복이라면, 그래서 내가 이녀석을 데려옴으로써 그 행복을 깨뜨리는 것이라면- 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나는, 어떤 선택도 쉽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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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밀어본 게 얼마 만이냐 휘파람을 불던 요한과, 지루할 정도로 길었던 그의 등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번갈아 서로의 등을 민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왠지 손해를 보는 느낌이었다. 빡빡 부탁해. 빡빡 기나긴 등을 밀면서 어쩌면 비틀즈가 해체된 이유는 존 레논의 기다란 상체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했었다.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p.216

누군가 보문 호수에 길게 늘어서 있는 오리배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는데, 박민규의 <아, 하세요 펠리컨>이 떠올랐다. 박민규의 소설보다 훨씬 낭만적인 사진이었지만.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이라거나, 충분히 알지 못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찰나였다. 인생의 중요한 사건과 결정들이 대개 그러하듯.

비틀즈가 해체된 이유가 레논의 기다란 상체 때문이라는 박민규의 문장에 참 많이 웃었고, 그렇게 웃고 있던 그 순간, 박민규라는 작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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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과거는 무거운 짐이다. 그들은 자신이 했던 일이나 당했던 일들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고, 다른 것들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대체는 완전히 의식하고 있는 가운데 지어내고 고친, 허위이지만 현실보다는 덜 고통스러운 어떤 장면으로 시작될 수 있다. 반복해서 그 장면에 대해 묘사하다보니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조차 진실과 허구의 구별은 점차적으로 그 경계를 잃게된다.

프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p.27

최근 다른 책에서 ‘optimistic brain’에 대하여 읽었는데, 그것과 일맥 상통하는 이야기라고 생각됐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을 억제하고 상대적으로 도파민 수치를 높여, 생존에 유리한 방향을 선택하는 건 진화의 결과이다. 피해자나 압제자 모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기억을 여과하는 경향을 보이는건, 그들 자신의,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의 발로가 아닐까. 

프리모 레비의 말대로 선의와 악의를 뚜렷이 구별하는데는 큰 비용이 요구된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한 사람으로써 기록을 남기고, 가장 객관적으로 자신의 기억을 똑��로 바라보려고  애썼기 때문에 고통스러웠을 그에게 마음을 다해 경의와 애도를 보내고 싶다. 그런 의미로, 아주 천천히 이 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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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는 그 사람이 살면서 겪어 온 사건의 흔적이다. 스쳐갔던 상처들이 몸에 새겨져서 그때의 아픔과 시간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흉터들을 다 합해 수식을 만든다면 그 흉터를 지닌 사람의 인생이 값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은희경, <그것은 꿈이었을까> 중,

며칠 전 실험하다가 팔을 좀 다쳤다. 수포가 생기고 물집이 올라올 때만 해도 immune system의 위대함에 대해 감탄이나 해대고 있었는데, 지금은 좀 아프다. 이 상처 위로는 실험실 오븐에 데인 상처, 그 옆엔 오래전에, 역시 실험하다가 다친 상처가 각각 흉터로 남아있다. 지금 이것도 곧 그렇게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아침에 세차를 하러 갔는데 내 차 구석구석에도 흉터가 남아있더라. 사실 사람 몸의 흉터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은희경 작가의 수식은 정확한 값을 내어놓지 못할 것이다. 자동차의 생애라면 또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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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륙의 이동에 대해서는 지진이나 해일 등의 자연 현상을 제외한다면, 그것이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서서히 일어난다는 것밖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누구나 갑작스럽게 3미터쯤 올겨갈 만한 일이 곧잘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편혜영, '서쪽으로 4센티미터' <밤이 지나간다> 중,

인생이 3미터가 아닌, 3000km쯤 옮겨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많은 용기를 낸 끝에 털어놓았을 고민일텐데,

조금 더 따듯한 대답을 해 주면 좋았을걸.

내가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게 오늘같은 날은 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이게 나인걸.

대화를 하면서, 비슷한 상��이 그려진 책, 영화 등등이 많이 떠올랐지만, 이 아이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니, 그런 것들을 끄집어내어 말한다는게 좀 얄팍하게 느껴졌다. 

달달한 위로를 주진 못하지만, 최대한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이야기 해 줄 수는 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결국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 답을 알게 되겠지.

삶의 대륙이 이동하는, 그 어떤  상황속에서도 스스로를 시궁창에, 진흙탕에 던져서는 안되고, 또 그럴 필요가 없다는걸 알려주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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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천안함 사건이 있고나서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다시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