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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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이사라는 것은 한 사람이 치를 수 있는 가장 역동적인 행위 중 하나인 것 같다. 내가 가진 모든 짐을 지고 날라 새로운 공간에 일일이 놓는다는 일만 해도 엄청난 위치에너지의 이동인데, 이삿날 전과 후로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과 정신력과 체력이 드는가. 물건들이 새로 ‘제자리’가 될 자리를 찾아가고, 나 또한 이곳에 마침내 고정되었다는 느낌이 들기까지는 물질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한동안 격변의 시간이다. 생활 환경에 대한 적응은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우리 고양이가 편안해진 시점도 고려하면 거기에 일주일 쯤 더해야 할 테고. 격동의 적응 기간 동안 있었던 사소한 사건들과 마음들. 노트북을 켜고 가만히 앉아 적고 있을 수가 없어 속으로만 몇 문장 읊다가 자는 날들이 있었다.
전에 살던 집의 계약 기간이 끝나려면 멀었었기 때문에 여러 핑계거리를 만들었어야 했고, 그것만 해도 한 페이지를 쓸 수 있었다. 은행과 부동산을 드나들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며 불안하고 위축되었을 땐 돈에 관한 한탄을 늘어놓고 싶었고.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이사를 하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으며, 5월 초 이사 온 직후에는 만개한 봄이 이 집에서 얼마나 예쁜지, 내가 커다란 나무들과 아카시아 냄새, 새 지저귀는 소리를 배경으로 살게 되어 얼마나 벅차오르는지 쓰고 싶었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나에게 생소한 만큼 그 순간에 확실히 적어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가족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부���님이 사는 아파트 옆 동에 오빠네가 살고 나는 거기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또 살가운 새언니가 생겨서 다같이 자주 얼굴을 보고 자주 식사한다. 그러면서 하지 않던 이야기도 하게 되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언쟁도 생긴다. 한 가족이라는 집단도 역시 사회의 집약체인 것이다. 사회 전체와 꼭 같은 퍼센티지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섞여있다. 이 당연한 사실이 이사 후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나를 격동의 상태로 만든다. 아버지와 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 전날 서로 언성을 높여 말다툼을 했다. 아버지와 이제까지는 대화를 해보지 않은 주제였던 것이다. 하기야 우리가 대화라고 할 만한 대화를 한 적이나 있나. 그날도 대화라기보다는 1호선 거렁뱅이 두 명이 내는 의미 없는 역정에 가까웠다. 엄마한테 듣기로 아버지는 그날 밤 잠을 주무시지 못했고 나는 후회했다.
그��고 그 짧았던 시간이 아직도 나를 골몰하게 한다. 나와 너무 다른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닮은 나. 평생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랑하는 마음과 미운 마음이 꼭 절반 씩인 아버지를, 대가리가 한참 큰 다음에야 들여다보고 있자니 자꾸만 내가 보인다. 아버지뿐 아니라 나도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나와 다르다고 저멀리 그어둔 선에 다가가야 할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이 무언지 정하지 못하고 서점 안을 배회한다. 무엇이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데 무얼 알아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 숲길을 따라 조금만 더 안으로 걸어가면 절이 있다는 걸 알고 환호했었는데, 코 앞의 절을 두고도 시끄러운 문제만 찾아가고 있다. 첫 몇 주간의 평화를 역시 적어두었어야 했다. 그런 시간은 드물고 귀하니까 말이다. 나에 대한 고민, 나와 다른(다르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에 대한 고민.. 왠지 여기 오면 좀 단순해질 것 같았다. 좀 더 넓고 해와 바람이 잘 드는 집, 좀 더 편안한 집 찾아가면서 도대체 몇 번이나 이사를 했냔 말이다. 마침내 그리던 집을 찾아왔고 쓸데없는 짐들은 다 버려두고 왔는데, 왜 쓸데없는 고민들은 변함없이 나를 따라오는 걸까. 나는 어떻게 이렇게 그대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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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규탄한다” 이재명 당선 무효 집회 서울역서 개최
(홍콩=데일리홍콩) 김한국 기자 = 2025년 6월 3일 치러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부정선거 논란이 다시금 시민들의 거리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민 단체 ‘자유를 사랑하는 청년들’은 오늘(13일) 오후 6시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이재명 당선 무효 집회”를 개최하며, 이재명 대통령의 선출 과정을 정면으로 규탄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재명 당선을 “시민 의사를 배반한 조작 결과”로 규정하며, “부정선거를 규탄한다”는 구호 아래 다수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선관위는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국민 분노 쌓여 이번 집회는 단순한 선거 직후의 반발이 아니다. 많은 시민들은 2020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제기된 전산조작·투표지 조작 의혹부터 시작해, 매 선거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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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윤석열 입니다 ! -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
부족하기 짝이없는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신 은혜가 고맙고 , 집에 갖혀서 폭도같은 공수처와 대치할때 그 추위에도 풍찬노숙을 하며 저를 지켜주신 은혜가 고맙고, 이제, 조폭보다 무도하며 뱀처럼 사악한 그들의 정체를 깨닫고 정의의 편에 서주신 국민께 뼈저리게 감사 드립니다.
사실 저는 철없는 대통령 이었습니다.
그저 늘 열심히 하면 된다 라는 생각으로 동분서주 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라를 망가뜨리기 시작 했습니다.
그 결과로 이 나라가 생긴 이래로 전혀 존재하지 않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출근한지 이틀만에 탄핵 당하는 방통위원장, 노려 봤다는 이유로 탄핵 당하는 장관들 . 특히 시키는대로 안한다고 탄핵 당하는 대통령대행을 지켜 보셨지요.
그들이 만든 정치 구호대로 반문해 봤습니다.
정말 이게 나라냐?
전세계에서 이런 탄핵기록을 세운 나라는 지금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
곧 기네스북에 오르게 될겁니다.
결국, 대한민국은 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신을 수사하는 검사는 탄핵, 자신의 비리를 감사하는 감사원장 탄핵 ,나라를 훔치는 간첩처벌법을 무조건 반대하는 그들의 정체는 무얼까요?
탄핵, 탄핵, 탄핵, ᆢ그것도 모자라 카톡검열 , 유튜브
검열도 하겠다는 그들이 대체 무얼 감추고 싶은 걸까
생각했습니다.
선거 입니다. 그들을 공룡으로 만들어준선거, 그들은 선거 말만해도 잡아들인다 했고 , 이젠 카톡, 유튜브에 에 선거를 쓰기만 해도 잡아 가두겠다고 공언 했습니다.
부정선거는 사실 입니다. 그 수 많은 부정을 하면서 노노출된 물증들을 선관위는 부정하고
위원장인 판사들은 증거채택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고 그것을 알고있는 이해찬은 "민주당100년집권 확신" 이라는 망발을 선언했던 겁니다.
합법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계엄뿐 이었습니다.
저는 결심 했습니다. 나라를 구하자!
부정선거를 입증하고 내가 죽자 !
유일한 선택인 계엄을 통해서
오직, 정의를 구현한다는 신념 하나로 살아온 검사 시절과 대통령직을 수행한 지난 2년여의 경험이 전부인 제 인생에 대전환을 만든 12.3계엄은 참으로 참담한 사건 입니다.
저는 그 계엄의 주체로서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그것은 말그대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
국가기관의 운영비를 0 으로 표시 한다는게 무슨 뜻일까요?
국가를 존재치 못하게 하거나 최소한 운영정지 하게 된다는 뜻 입니다.
이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만든 예산승인안에 있는 내용 입니다.
그 와중에 국회의원의 월급과 운영비는 상대적으로
상승시켰 습니다
"이게 나라냐?" 저들이 만들어 놓은 말장난 그대로
였습니다.
대체 어디서 부터 악의 뿌리가 자란 것일까를 조사 해보니 선관위를 통해서 악의 뿌리가 키워지고 가짜국회의원이 양산되고 지금, 그 가짜들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 입니다.그들의 하수인들이 국가조직 핵심에 자리잡고 대한민국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악의 근원을 생산하는 부정투표 시스톔을 분쇄하고 탄핵이 되든 기각이 되든 소명껏 마무리 하고 개인의 자리로 돌아갈 것 입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
이제부터 드러난 환부를 도려내고 건강한 대한민국이다시 태어나길 소망 합니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길 기대하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 정의로운 검사로서 , 살아온 저를 추억해 주시길 바라며 , 노련한 대통령이 못되어 국민께 걱정을 끼친 점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부터 힘모아서 " 정말 이것이 나라다!"를 보여 주십시오. 그것을 위해 정의롭고 성실한 시민 운석열로 참여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국민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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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와 국가 안보의 경계선: TikTok의 운명은?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최근 미국 대법원에서 진행된 중요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애용하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 TikTok이 그 중심에 있죠. 현재 진행 중인 이 법정 공방은 플랫폼을 사랑하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TikTok의 미래, 어디로 갈까요?
최근 대법원에서는 TikTok의 운명이 달린 중대한 법적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사용자 1억 7천만 명이 넘는 TikTok은 현재 중국 모회사인 ByteDance의 소유 하에 있는데, 이 사실이 국가 안보와 연관된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TikTok의 운영을 미국 내에서 금지하겠다는 법률이 제정되었고, 대법원은 이 법의 위헌 여부를 심사 중입니다.
TikTok에 대한 우려
미국의 정보기관과 입법자들은 TikTok의 알고리즘과 데이터 수집 행위가 중국 정부의 선전 도구로 작용할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습니다. 엘리자베스 프렐로거 미국 솔리시터 제너럴은 중국 정부가 언제든지 TikTok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으며, 플랫폼의 데이터를 통해 미국인들을 협박하거나 알게 모르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국가 안보 사이
TikTok의 법률 대리인인 노엘 프란시스코는 이 법이 특정 사상과 콘텐츠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는 TikTok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 정부가 중국의 데이터 접근을 막는 대안적인 방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도 밝혔습니다.
법원의 결정은 매우 중요한 쟁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외국 기업의 플랫폼 운영 금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인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국가 안보가 이를 정당화할 만큼 충분한 이유가 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향후 전망
법원의 결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중재하기 위해 잠정 연기 조치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TikTok의 변호인단은 이런 연기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요, TikTok의 미래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TikTok 팬 여러분, 앞으로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플랫폼이 지속될 수 있도록 다양한 소식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 TikTok이 어떤 전략으로 이 상황을 극복할지, 그 행보를 계속해서 함께 지켜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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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
🌿🌷🌻좋은 밤을!!!!🌹🌼🌿
오늘 어땠어요, 내 사랑? 너무 피곤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트위터가 돌아왔지만 아직 여기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차단하는 것은 빠르지만, 사람들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법을 준수하는 것은 느립니다🙄
제가 선거에 관해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나요? 그래서, 그들이 원했던 것은 1라운드에서 잘 해결됐어요. 마살은 바보라서 졌다🤦🏻♀️ 져서 다행이다 국민의 선의를 이용한 가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람들을 조종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극도로 교활한 남자를 우상화합니다😒🤦🏻♀️ (코치 등) 다행히 마살도 멍청해😅 (의자로 공격당한 사람) 그는 선거 시즌 내내 반대자들의 사생활에 대해 나쁜 말을 하며 보냈습니다, 특히 그는 불로스를 코카인 중독자라고 불렀다 (좌파가 좋아하는 것) 선거 며칠 전 그는 불로스가 과다 복용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했다는 허위 의료 보고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보고서는 너무 거짓이어서 아이가 더 잘할 것 같았습니다🤦🏻♀️ 잘못된 CPF 번호, 두 개의 다른 진료소 이름, 다른 로고, 입력 오류, 의사는 이미 사망했고 그의 서명은 가짜입니다🤦🏻♀️😂🤦🏻♀️ 마살이 이길 기회가 있었다면 그는 스스로 그것을 파괴했습니다😂 다행히, 착한 척 하는 아주 위험한 놈이니까…😰 그는 극도로 교활하고 설득력이 뛰어납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까?😩
잘, 어쨌든 이제 상파울루의 대통령 선거를 위해 경쟁하는 두 사람은 중립적인 사람, 다른 하나는 왼쪽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트위터의 복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나에게는 중립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는 좋은 일을 해냈고, 재선될 자격이 있다😊
내일이면 다시 트위터를 사용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당신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
내일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강하고 똑똑하며 매우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 자신을 믿어!!!!🥰 정신을 바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날가 더 빨리 지나갈 수 있습니다🫡 힘내요!!!🫡 곧 우리는 다시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푹 쉬고 좋은 꿈 꾸고 활기차게 일어나길 바랄게요!!!💖😙😴💖 사랑해,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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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거”(2270)
우리세대는 험한 세상을 살아 온 세대이다. 어렸을 때는 일본 식민지를 직/간접 경험한 사람들이다. 해방 후 나라의 혼란을 겪었다. 6.25 전쟁으로 피난길에서 고생 고생하였다. 1.4후퇴라는 추운 겨울 눈 덮인 산길을 걷고 또 걸은 기억도 있다.
전쟁의 페허속에 가난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4.19가 일어났고 이어서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든 격변을 겪으며 산 세대이다. 그후 군대를 갔고, 월남전에도 참전 했다. 해외건설 현장에서 피땀을 흘리며 도로공사와 댐 건설도 하였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하여 우리 세대는 뜨거운 사막의 열기와 싸우며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우리의 젊음은 고군분투 일하다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결과적으로 수출이 점차 늘어났고, 산업이 발달이 되었고, 나라가 부강해져서 오늘날 자유대한민국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모두가 나라를 위하여 일한 공로자들이고 애국자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꼰대’라고 젊은 세대는 비웃고 상대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한다. 시대가 변했고, 태생 부터가 다른데 옛날이야기를 해서 어쩌자는 거냐고 따지고 든다. 우리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지금의 젊은이들은 선진국의 귀공자들로 태어나 격이 다르단다. 우리가 겪은 험난한 인생에 대한 동정이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과거를 보상해 달라는 말도 아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어떠한 나라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지를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공산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악한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6.25 피난길에 어머니는 나의 손목을 한손으로 잡으시고 무작정 남쪽으로 밤낮없이 걸었다. 피난 가던 중 어머니와 나는 북한군(인민군)에 붙잡혔다. 소나무에 묶여서 취조를 받았다. 옆에 소나무에 묶여 있던 사람들은 하나씩 총에 맞아 죽어가고 있었다. 왜 무엇 때문에 피난을 왔느냐라는 질문이었다. 군인가족이거나 경찰가족이거나 공무원이 아니면 피난을 올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다가 피난 왔다는 것을 계속 주장하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를 취조하던 인민군이 나를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가 토마토를 하나 주면서 아버지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가 하신 말씀대로 장사를 하였다고 하였다. 무슨 장사를 했냐고 묻기에 어머니가 말 한대로 쌀가게를 하였다고 하였다. 내 말을 믿었는지 나와 어머니를 풀어주었다. 하마터면 그곳에서 묶인 채 어머니와 나는 총살을 당하였을 것이다. 9.28 수복이 되어 다시 고향에 오게 되었고, 그 뒤 또 다시 1.4후퇴 피난길에 올랐다. 당시 전쟁으로 죽은 민간인만 100만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 이것도 지난 이야기이고, ‘꼰대’의 변으로 치자. 지금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나라로 통일이 되었다고 하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무료식량배급, 무료 교육, 무료 의료 복지국가로 지상낙원이 되어 있는가이다.
현재 북한 동포의 굶주림과 헐벗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참혹하기 그지없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그걸 보면서도 북을 찬양할 수 있단 말인가? 먹을 것, 입을 것, 전기, 수도 공급마저 제 때에 공급이 안되는 열악한 실정이다. 영하 20도가 넘는 북한의 추위를 난방 없이 견디기란 쉽지가 않다. 추운 날씨에 수백 미터를 걸어가 얼어붙은 강물을 깨고 물을 길러 와야 한다. 그 찬 물로 빨래를 한다. 먹을 것이 없어 먹을 수 있는 풀이란 풀은 다 뜯어먹고, 심지어 나무껍질까지도 베껴 먹으면서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고난의 행군 때는 3백만 명이 아사하였다. 지금도 북한 주님들은 쌀밥 한번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라는 사람이 많다. 개인의 자유가 전혀 없다. 모두가 서로를 감시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 번도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노예로 당과 수령만을 위해 살다 죽어야 한다. 헌신과 충성의 대가는 참혹한 궁핍과 그 고통을 충성심으로 극복하라는 철권통치뿐이다. 이들에 대한 실상은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왜 이런 북한체제를 옹호하고 친북세력를 고수하는지가 문제이다. 김정은이가 “통일만 되게 하라우, 그러면 고급당원으로 한 자리 주갔써”라는 약속을 받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통치 밑에서 살면 지금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일일이 눈치를 봐야 하고, 어디를 가도 허락을 받아야 하고, 전기, 더운물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당이 주면 주는 대로, 명령하면 명령하는 대로 복종만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왜 북을 추종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이 갖은 재능과 실력을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위하여 마음껏 사용하면 그에 따라 누리는 지금의 행복이 복에 겨워서일까? 미군 철수를 외치고, 미군기지를 몰아내자 외치는 자들이 자기 자녀들은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싶어 하거나 미국유학중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왜 미국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자녀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싶어 할까?
내가 대학원을 다닐 때 “주체사상”이라는 책을 읽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성경을 그대로 베껴 놓았을까 싶을 정도로 놀란 적이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김일성으로 다 바꿔 놓았다. 김일성주석수령동지는 초능력을 가진 신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로 받들고 숭배하여야 한다는 것이 ‘주체사상’ 이다.
이것을 어렸을 때부터 교육하고 세뇌시키면 사람들은 어떻게 변할까? 당과 수령을 위한 꼭두각시로 변할 수 밖에 없다. 북한 주민들이 무슨 죄가 있어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악마를 만나 생지옥을 살고 있다. 고난 행군 때 3백만명이 굶어 죽어도 눈하나 깜짝하지를 않았다. 이런자를 찬양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내가 ‘꼴통수구’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다. 죽기 전에 내 자식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절대 공산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서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을 속이는 짓을 잘한다. 광주 5.18, 광우병 촛불집회, 세월호, 천안함,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다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고 선동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는 더 이상 속으면 안 된다.
그렇게 많은 속임을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한심한 일이다. 이번 4.10 총선은 정말로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는 중요한 선거이다. 자손만대 자유와 번영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최강, 최선진, 최부강한 자유대한민국을 물려 주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가 바른 결정을 해야 한다. 부강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물려 줄 것인가? 아니면 북한의 통치아래 들어가 신음하면서 우리 후손들이 가난하게 살 것인가?가 나의 한표에 달려 있다. 세계가 우러러 보는 최강국을 물려 줘야 한다.
잘못된 사상을 가진 자들이 나라를 해 먹게 맡겨서는 안 된다. 586 운동권 정치 모리배들은 우리 손으로 이번 선거에서 척결해야 한다. 후세에 빛나고 자랑스런 자유민주주의국가를 물려 줘야 한다. 글로벌 시대를 이끌 자질과 품격을 갖춘 사람을 뽑아야 한다.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에게 자부심을 갖게 해 줄 인물을 뽑아야 한다. 더 이상 우울한 정치, 짜증나게 하는 정치, 우리의 삶을 저질스럽게 하는 사람을 뽑아서는 안된다.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과 새 힘을 줄 수 있는 실력 있고 합리적이고 진취적인 정치인에게 한 표를 주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갖는 모든 혜택 중 특별이 불체포특권 같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떳떳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민주주의 정신을 가진 자, 그리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애국자를 뽑아 주기를 간절히 부탁한다.3-30-2024/hwanshikkim.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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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통령을 원한다’(조이 레너드, 1992년 미국 대선 기간에 배포된 유인물) 원문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과 동성애자 부통령을 원한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독성 물질을 내뿜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곳에서 성장하여 백혈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을 원한다. 열여섯 살에 낙태를 경험했던 대통령을 원한다. 두 명 중 덜 악랄한 자가 아닌 다른 대통령 후보를 원한다. 인생의 마지막 사랑을 에이즈로 잃어버린 사람, 아직도 누우면 매일 눈앞에서 그 모습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 그를 품에 안고 있는 그런 대통령을 원한다. 에어컨이 없는 대통령을 원한다. 병원에서, 교통국에서, 복지부 사무실에서 줄 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실직자, 명예퇴직자가 되고, 성희롱을 당해 본 경험이나 동성애자로서 학대를 당하고 추방당한 경험이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무덤에서 밤을 지새우고 자기 집 잔디밭에서 십자가가 불태워지는 걸 보고 강간에서 살아남은 그런 사람을 원한다. 사랑을 하고 상처를 입어본 사람, 섹스를 존중하는 사람, 실수를 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은 사람을 원한다. 나는 흑인 여성이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 충치가 있고 태도가 안 좋은 사람, 그 역겨운 병원 밥을 먹어 본 사람, 다른 성(性)의 복장을 하고 마약을 해 보고 치료도 받아 본 사람을 원한다. 시민 불복종을 실천해 본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일들이 불가능한 것인지가 궁금하다. 왜 우리는 어느 시점에선가 대통령은 항상 광대여야 한다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왜 대통령은 항상 창녀가 아니라 창녀를 사는 남자여야 하는지, 항상 노동자가 아니라 간부여야 하는지, 항상 도둑질을 하면서도 결코 처벌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한겨레, [문화 현장]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 박보나에서 원문 번역글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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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공정보도심의의원회
안봐도 박사 입니다 KBS 박사모 출신 입니다 박사모란 전 대통령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을 말 합니다
청약 관계에서 대부업은 부동산을 청산 합니다 본인에 주거지 본 주소지 초본의 거리를 말하죠
행정안전법상 기본은 전입과 전 출입 장부의 대조 입니다 그래서 주소지가 불명확하고 불일치 하면 이전 최근 주소지 관할로 주민등록법상 말소자 처리 행정소송인 이완 구류를 할 당 받습니다
이를 보호관찰법에서는 주거지 이탈로 보호관찰법 위반 징역 8월을 선고 합니다
그런데 여주라는 신륵사 동네에 붙은 경기도 이천 이 문제입니다 사실은 이천은 서울특별시 구리시로 서울특별시 한국은행 명동성당에 돈 떡인 부동산 고물을 처리하는 읍 면 동 호 시설 입니다
이를 조선시대 부터 명당 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명당인가 떡 치는 곳 즉 섹스를 하는 곳을 말하는건데 지금은 사라진 과거 청량리역 맘모스백화점 주변이 전부 오색지역 사창가 빨간집 ��니다
그 사창가에서 얼마나 많이 죽었으면 떡이 다 나와서 이천 떡 하고 부른겁니다 어디 그런 떡 방앗간이 이천 뿐이겠습니까
그래서 경기 인천 송도 이하를 이천지방 국토관리청 이하 도로교통부로 처리 했는데 그곳이 시화 입니다
그래서 이천분들은 그냥 발음상 인천으로 사셨는데 인천으로 살아보니 이재명 경기 도지사 시절 말씀이 야 우리를 완전 사우나 때로 본다 해서 사우디가 된겁니다
월드컵 축구 조 추첨해도 경기도는 인천 사우디로 사우나 때 취급을 받아 지금도 목욕탕 내지는 수면시설이 있는 대중탕 이나 공원 화장실 등지에서 쉽게 만나 떡을 치실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소지 이전 전입시 동네 이력을 잘 알아보고 하셔야 합니다
최근 부동산 주택열기 화재로 대체 누구와 밤 새 떡을 치면 불이 날 수 있는지 관계부 장관 및 소방청 장관이 비상입니다
채권 추심을 하면 되는데 주소지 전입신고 조차 할 줄 모르는 반민족특위 특별시민들이 아직도 많다는 겁니다
국부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죠 국민교육헌장 세대인데 말이죠
이건 몰라서가 안통합니다 물어서 라도 했어야 아 사람이구나 하는 겁니다
그 전에는 사람취급 못 받습니다 완전 미친개 취급 당하죠 그걸 아픔을 은근히 즐기시는 변태마음씨들이 있죠 싸이코 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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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겁 먹고 나약한 한국 정치인들…어렵게 쟁취한 독립 지킬수 있나”
중국공산당의 ‘조용한 침공’ 해부한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 단독 인터
“중국은 한국의 학계와 정계, 문화계, 언론계 지도층 전반에 베이징 옹호자와 유화론자들을 확보했습니다. 한국 재계에는 베이징의 만족을 유일한 목표로 삼고 활동하는 강력한 이익 집단들이 있어요. 중국 공산당은 (한국에서) 영향력 행사자는 물론 첩보 공작원들도 동원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국내에 번역된 <중국의 조용한 침공(원제 : Silent Invasion)>의 저자인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호주 찰스 스터트(Charles Sturt)대 교수가 한 말이다.
중국 공산당이 최근 30년간 조직적으로 추구해온 해외 영향력 확장 실태를, 호주 사례를 통해 적나라하게 파헤친 이 책은 2018년 출간된 후 호주와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 수정에 영향을 미쳤고, <뉴욕타임스(NYT)>, <더 타임스(The Times)>, <포린 팔리시(Foreign Policy)> 등의 추천을 받았다.
◇“中의 본질과 야망 못 깨달으면 한국도 위험해”해밀턴 교수는 1986년 영국 서섹스(Sussex)대학교에서 ‘한국의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그는 최근 한국 상황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한국의 정치 지도층은 지레 겁을 먹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나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의 독립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도박’이다.”“미국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국 정책을 책임졌던 미국의 저명한 진보주의자들도 이제야 중공의 진정한 본질과 야망(野望)이 무엇인지 깨닫고 있다. 한국도 눈을 떠야 한다. 중국의 진정한 본질과 야망을 깨닫지 못한다면 한국도 위험하다.
”그는 “현재 한국 정부에서 민주주의와 인권(人權)을 옹호하려는 의지(意志)를 찾기 힘들다”고 꼬집었다.한편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최근 언론 인터뷰에 대해 이달 16일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을 써가며 공개 반박했다. 이에 대해 ‘외교관은 주재국 정치인의 발언�� 대한 언급을 삼간다’는 국제 외교의 관례와 불문율을 깬 오만(傲慢)한 언동이라는 평가가 많다.
◇“비판 목소리 억누르려는 중국의 불안감”한국 정치권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한국 대통령 선거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증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자는 이달 19일 낮 해밀턴 교수와의 전화 인터뷰와 지난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조직적으로 해외 영향력 팽창을 꾀하는 중국의 목적과 의도를 분석해 봤다.
- 내년 3월 한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한 발언을 어떻게 보나?“한국 정치인을 통제(control)하고 압박하려는 목적에서 한 것으로 본다. 윤 전 총장 인터뷰를 계기로 한국에서 중국에 비판적인 정치적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억누르려는 불안(anxiety)과 짜증(irritation)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 호주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인들에게 조언한다면.“한국과 호주는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의 경제적 협박(bullying)에 가장 큰 고통을 겪었다. 나는 한국인들에게 ‘전략적 경쟁’이니 ‘문명 충돌’ 같은 거창한 것 말고 한국 내부에 일어나는 일에 주목하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공산당(CCP)의 기본 전략은 한국 기관들의 독립성을 훼손함으로써 베이징에 저항하려는 한국의 힘을 약화(undermine)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CCP는 한국의 여러 기관들을 끌어들이고(co-opt), 쓰다듬거나(groom), 때로는 뒤집는(subvert) 방법을 써가며 중국에 복종하게끔 하고 있다.
◇“한국내 對中 저항력 약화가 中 공산당 전략”- 주한중국 대사의 최근 발언은 CCP의 이런 전략에서 비롯된 건가?“그렇다. 중국은 지금 스스로를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보스(boss), 즉 패권 국가라고 여기고 있다. 한국과 일본, 대만, 호주 등은 종속된 부하(subordinate)로 생각하며 지배하려 하고 있다.”- 여기서 중국은 왜 ‘조용한 침공'을 할까?
“중국공산당(CCP)은 한국 등 상대국 지도자들에게 ‘베이징이 원하는 걸 해주면, 그것이 그 나라에 최고 이익이 되며, 동시에 지도자 개인에게도 최고의 이익이 된다’는 생각이 들도록 모든 노력을 쏟는다. 이렇게 지도자들의 내부 심리까지 전복(internal subversion)시키는 게 바로 CCP의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이다.”그는 이어서 말했다.“한국을 포함한 외국의 지도자들은 때때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베이징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진짜로 한국과 한국민의 이익이 된다고 맹신하고 있다. 그래서 베이징이 원하는 것들을 계속 다 들어주고 있다.”
◇“한국, 호주 등을 미국과 동맹에서 이탈시키는 게 목표”- 그렇다면 중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베이징이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추진하는 전략 목표는 미국과의 동맹(同盟) 해체이다. 이를 통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유일의 패권국(hegemonic power)이 되고자 한다. 먼저 호주의 높은 대중 경제 의존도를 무기로 정계와 재계, 지식인 엘리트 동조자들을 모아 호주를 장악한 뒤, 호주를 미국과의 동맹에서 이탈시키려 한다.”-
“중국은 ‘경제적 협박의 명수(名手)’이다”고 책에서 지적했는데.“CCP는 ‘경제적 협박'을 아주 잔인하게(quite ruthlessly) 이용하고 있다. 최근 15개월 동안 중국은 호주산 수입품에 대해 일련의 무역 금수 조치를 내렸다. 호주 정부가 더 이상 중국공산당에 굴복(kow-tow)하지 않자, 이에 화를 내며 복수하고 있다.
”해밀턴 교수는 “베이징은 한미(韓美) 동맹을 약화시키지 않는 한 한국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경제적 협박 카드로 한국의 정치적 양보와 굴종을 받아내려 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공산당(CCP)이 최근 창당 100주년을 맞았다. 중국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시진핑 총서기는 이달 1일 창당 기념식에서 ‘중국은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여러번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을 복속시키려는 나라는 강철 같은 만리장성 벽에 머리를 부딪쳐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늑대 외교관’들은 지금도 외국 상대국을 협박하고, 욕하고, 벌까지 주고 있다. 중국은 진짜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인가, 아니면 머리에 피 흘리게 만드는 나라일까?”-
미국도 호주에 ‘조용한 침공'을 하지 않나? 미국의 공세로 호주 주권이 침해된다는 지적도 있다. 왜 중국에 대해서만 문제를 제기하나?“나를 포함한 상당수 호주 국민들은 호주 정부가 이라크 전쟁 참전처럼 미국의 대외 정책을 추종하는데 비판적이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로 말미암아 호주인들의 시민적 자유와 민주주의가 침해되거나 타협된 적은 없다. 그 점에서 미국과 중국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민주주의국가들 동맹'으로 中 공세 맞서야”- 한국 정부의 대(對)중국 태도를 평가한다면?“역사적으로 봤을 때, 공격적으로 부상(浮上)하는 신흥국가를 무조건 유화적으로 대하는 것은 대개 뒷끝이 나빴다. 한국 정부는 민주주의 국가들간의 동맹만(only an alliance of democratic nations)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중국의 공격적인 계획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한국 리더들은 ‘중국의 국력이 곧 미국을 추월한다’며 목소리를 죽이고 있다.“한국인들이 어렵게 쟁취한 자유와 독립이 지금 친중(親中) 정치인, 재계 엘리트, 여론 형성자들에 의해 팔려가고 있다(being sold out). 이들 친중 성향의 리더들은 (한국인들의) 자유와 독립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들의 부(富)와 정치 권력, 사회적 영향력만을 생각하고 있다.
”- 중국의 ‘은밀한 침공’에 한국인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한국인들은 주권국가로서 독립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대답이 ‘별로’라면 중국의 돈을 받아먹고 계속 머리를 굽신거리면 된다. 반대로 ‘아주 많이’라면, 중국이 부과하는 경제적 처벌을 감내하면서 자유와 독립을 얻기 위한 값을 치러야 한다.”
◇“中 공산당, 한국 反日 감정 격화 위해 적극 움직여”- 중국은 최근 한국의 문화와 역사까지 공격하고 있다.“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한국에 대해 중국은 영화와 TV산업에까지 미묘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베이징은 중국인 투자자와 거대 중국 시장을 미끼로 한국 관련 스토리들을 검열하고, 중국과 중국 공산당을 바라보는 세계의 인식을 바꾸려는 선전(宣傳)에 맞추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 한국 내 반일(反日) 감정은 뜨겁지만 반중(反中) 감정은 매우 약하다.“한국인들은 오늘날 중국의 위구르 인권 탄압 같은 범죄 행위에는 둔감하고, 70년도 더 지난 과거 전쟁 범죄에는 매우 민감하다. 놀랍다. 하지만 진실은 동북아를 지배하려는 중국의 야망을 견제할 수 있는 한국의 동맹이 일본이라는 점이다.
CCP는 한국내 반일 감정을 격화(intensify)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내 일부 반일 민족주의 단체들은 CCP의 통제를 받고 있다.”- 책이 어렵게 출판된 것으로 알고 있다.“그렇다. 호주의 유력 정치인들이 중국의 정치 자금을 받는 것을 보고 충격받아 2016년 11월 집필을 시작했다. 이듬해 10월 완성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지만 내 책을 8권이나 낸 출판사가 중국의 보복을 두려워해 작업을 거부했다. 다행히 멜버른의 용기있는 작은 출판사가 맡아 책이 나올 수 있었다.
만약 내가 호주에서 미국의 조용한 침공에 대한 책을 썼다면, 과연 호주 출판사들이 워싱턴으로부터 보복을 두려워해서 출판 작업을 거부했을까. 그런 일은 절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자유’를 인정하는 미국과 그렇지 않은 중국의 근본적인 차이다. 美·EU·英·日·나토 “중국 사이버 활동 규탄”… 한국만 쏙 빠졌다미국과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일본이 조율해 중국 국가안전부의 악의적...미국, 反中 연합전선에서 한국 뺐다미국 연방의회 상원 외교위원회가 초당파적 중국 견제법인 ‘전략적 경쟁법 2021’을 8일(현지 시각) 공개했다. ..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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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내게 물으신다면 (1534) 주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요새 세상이 하도 어지러워서 너도 살기 힘들지? 그런 중에도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이냐?” 내 대답은 우선 이런 것이었다. “이젠 나이가 많아서 조만간 떠나야 할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러나 주님, 코로나라는 전염병에는 걸리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노인이야 무슨 병에 간들 어떻습니까. 그렇지만 일단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병이 나면 환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문안하러 찾아왔던 선의의 후배들 그리고 내가 가까이 두고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뜻하지 않은 시련을 겪게 되니 그건 상상만 해도 질색입니다”. 주님의 반응은 대개 이렇다. “네 뜻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우주의 삼라만상을 다 다루어야 하는 내 입장도 생각해보라. 어쩌다 그런 일이 생겨도 너는 순종할 줄 알아야지 불평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내 대답은 이렇다. “주님, 잘 알아들었습니다. 아무런 불평 없이 무슨 일을 당해도 주님 뜻에 순종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또 다시 이런 질문을 주셨다. “자네,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누군가?” “한동안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는 문재인이라는 사람인데 자유민주주의를 해야 하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적화통일을 꾀하는 것 같아 무척 괘씸하게 생각 했지만 요새는 그도 개과천선하여 그런 생각은 감히 못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요새 정말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름도 밝히지 않고 권력주변에서 옵티머스 같은 금융기관을 만들어 때를 만났다는 듯이 뜯어먹는 악질분자들을 미워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니 열을 ���릴만한 일이 하나도 없다. 무엇이든 주님이 주신 것을 나는 불평 없이 받기만 하면 된다. 앞으로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겠다. 내 할 일만 하겠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은 없다. 내 주변에 나타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 하겠다. “I love you”라는 한마디밖에 할 말이 없음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2021-1-3 hwanshikkimus.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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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성과 혁명 by 권순구 (펌)
소녀혁명 우테나(少女革命ウテナ)세미나 발제문
I.예비적인 이야기들1. 순구(純久)
제 이름은 순구(純久)입니다.순수, 순박, 순진, 순정. 여기에 모두 들어가는 그 순(純)에 오랠 구(久)가 붙어있으니, 아마 부모님은 제가 이런 모든 것들을 간직한 채로 오래오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이름을 지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구(久)라는 글자는 때로 영원히(forever)의 뜻을 갖기도 하니까, 그렇게 되면 제 이름은 대충 '순수함은 영원하다'는 포부 당당한 선언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영원히 순수하기를. 그렇게 되어만 준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나이를 먹을수록, '넌 참 순진하구나' 라는 말은 그다지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이 아닙니다. 물론 순수하고 순진하다는 것은 원래 좋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좋은 의미와, '넌 참 순진하구나'라고 말할 때의 그런 비꼼의 의미는, 사실 서로 크게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너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가졌구나' 라고 말하건, '네가 아직 세상 험한 꼴을 못 당해봤구나' 라고 말하건, 단지 이 말을 뒤집으면 저 말이 되고 저 말을 뒤집으면 이 말이 될 뿐, 똑같은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세상을 살아보고 산전수전 겪다 보면, 순수하고 순진했던 그런 마음들이 마냥 오래 갈 수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서로 의견이 일치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들장미 소녀 캔디 정도의 경지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오래오래 살 수 있겠나, 하는 의구심은 누구나 철들 무렵이 되면 가져 볼만한 의문입니다. 아무튼 이런 좋은 뜻으로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께는 마땅히 감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이가 들수록 '그게 말이 되나?' 하는 의문과회의가 드는 것은 어떨 수가 없습니다.
2. 철들 무렵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4화를 보면, 비행기를 타고 그랑디스 일당에게 쫓기다가 바다 한가운데 추락한 쟝과 나디아를 노틸러스 호가 구조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친절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노틸러스 호의 부함장, 엘렉트라를 보면서 나디아가 계속 경계심을 풀지 않자, 결국 쟝이 한 마디 합니다.
"그렇게 남을 의심하는 건 옳지 않아.”그러자 곧바로 나디아가 새침하게 쏘아붙이죠.“무턱대고 남을 믿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아마도 쟝은 나디아의 대답이 무척이나 뜻밖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디아의 대답을 듣고 갸웃갸웃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하던 쟝의 그 천진하고 느긋한 표정이라니...
“그런가???”
이 장면을 처음 봤던 중학교 때, 이 둘의 대화가 얼마나 제 가슴에 깊이 와 닿았는지 모릅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었지만 늘 꿈을 잃지 않는, 천진하고 낙천적이고 순수하고 밝은 쟝. 그리고 어릴 때���터 외톨이로 자라면서 상처 받고 결국은 자기가 자란 서커스단의 단장한테까지 배반당한, 세상을 믿지 못하고 타인의 친절을 의심하는 나디아. 정말 대조적인 두 사람이지만, 사실 그 시기 철들 나이의 생각들이란 다 한 켠으로는 쟝을 닮아있고, 또 다른 한 켠으로는 나디아를 닮아있게 마련입니다. 그 때 제 마음 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던 것은, 언뜻 이 두 아이들의 말다툼이 평범하고 천진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정말로 여기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고 세상을, 사랑을, 우정을, 꿈을, 희망을, 이상을 믿는다는 것은 좋은 일일까. 아니면 나쁜 일일까. 그 해답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 때의 그 의문에 대해서 제가 뭐라도 얻은 것이 있다면, 그저 이 질문의 답을 찾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잊어버리는 게 훨씬 더 편하다는 사실뿐입니다. 제 나이는 스물여섯이 되었고 저 장면을 본 기억도 거의 10년여가 되어가지만, 결국 제 마음 속의 쟝과 나디아는 함께 모험을 하며 그 답을 구하느니 차라리 선을 긋고 각자의 영역을 서로 침범하지 않는 쪽으로 타협을 본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3. 타협
사람의 생은 유한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꿈은 무한한 것입니다. 유한한 것을 가지고 무한한 것을 쫓아야 한다는 점에서, 산다는 것은 위태롭고 험하며, 때로는 애처롭고 때로는 불쾌하며 때로는 허무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고 솔직한 태도를 갖는 것은 (물론)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 그 절망이 너무나도 단호하고 진지해서, 어떤 분홍머리 소녀처럼 스스로 관 속에 들어가 자기 손으로 뚜껑을 덮어버리는 그런 식의 결과가 되어버린다면, 이러한 진지함과 용기가 적당한 불성실과 타협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여전히 말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는 확실히 혼돈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어쨌든 사람은 태어난 이상, 가능한 한 좋은 것을 좇고 싫은 것은 멀리하며 어떻게든 살아가게 마련이고 또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그러한 욕구를 받아들이고 나면,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항상 철저하고 솔직한 것 보다는, 때로 오히려 덜 철저하고 덜 솔직한 것이 분명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비관적인 회의 또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희망보다는, 단지 세상의 혐오스럽고 두려운 부분에는 얼마만큼의 체념과 회의, 냉소를 갖고, 또 내가 바라는 대로 채색되고 치장된 세계 안에서는 적당한 꿈과 희망을 갖는 것. 이것이야말로 어른이 되며 터득해야 할 살아가는 요령일는지도 모릅니다.
다소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어른스럽게’의 의미란, 꿈, 사랑, 이상, 희망, 이런 것들은 여가용으로, 냉소, 회의, 경멸, 혐오 같은 것들은 업무용으로 각각 적절하게 안배할 줄을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자는 편안하고 친근한 세계를 즐기기 위한 계기로써, 후자는 냉혹하고 험악한 세상을 마주대하기 위한 무기로써, 각각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이 둘 중 한 쪽만을 가지고, 예를 들어, 꿈과 사랑만을 가지고 또는 경멸과 혐오만을 가지고 살아가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결국, 이런 식의 타협에는 불가피한 면이 있으며, 아무리 철저하고 순수한 삶을 갈구한다고 해도 적어도 어떤 시점, 어떤 정도까지는 이러한 타협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그러나...정말로 그걸로 좋은 것일까요...
4. 이원성
순정 만화 같은 것들 속에서 흔히 우리가 ‘소녀적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그런 마음의 밑바탕에는,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섬세하고 애정 어린 시선에 대한 의지, 그리고 그런 시선과 관심을 자신도 받고 싶다는 소망이 깔려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의지와 소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봄직한 것이며, 비단 앳된 소녀들뿐만 아니라 설사 중년의 아저씨들일지라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램들은 약한 것입니다. 아니, 약하다고들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고 지속된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약한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꿈과 이상 속에 담긴 수많은 바램들. 아름다움. 사랑. 믿음. 기적. 찬란히 빛나는 그 무엇. 영원히 변치 않을 그 어떤 것에 대한 의지와 소망들 역시 마찬가지로, 불행히도 약한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시간에 감염된 현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결국 사멸하기 위해 생성되는 그 냉혹한 흐름 속에서, 왜곡되고 뒤틀리고 잊혀지는 그런 운명에 묶인, 고귀하지만 나약하고, 아름답지만 홀로 설 수는 없는 그런 것들이라고.
우리가 소중하고 아름답고 고귀하다고 믿는 그런 어떤 것들이 '약하다'고 말할 때의 그 '약함'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비록 우리가 그것의 가치와 의미를 의심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러한 것들은 현실 속에서 실현되고 지켜지기가 매우 힘듭니다. 남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보다는 남을 속이기로 결심한 사람 쪽이 훨씬 더 쾌적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높은 것이 (가슴 아프지만)사실인 것입니다. 이 때 약함의 의미는 바로 바란다는 것과 이루어진다는 것(또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바로 그 이원성을 의미합니다. 즉 현실적인 어려움의 문제입니다.
둘째. 이것은 첫 번째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인데, 즉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와 의미일수록, 거기에 대해 우리 자신이 회의하거나 망각하거나 경멸하도록 되기가 매우 쉽다는 점입니다. 세상은 어렸을 때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혼란스럽습니다. 그런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조차도 알 수가 없게 되어가는 판국에,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내가 무엇을 바랬는지, 내가 무엇을 믿는지, 도대체 애초에 그것들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밝고 아름다우며 따스하고 고귀한 그런 순수함이었는지. 아니면 안타까운 연약함이었는지. 아니면 무가치한 환상이었는지. 아니면 경멸스러운 거짓이었는지. 아무도, 아무것도, 그 참됨을 보장해주���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약함의 의미는 바로 냉소와 긍정, 환멸과 희망, 무감각과 감각, 무의미와 의미 사이의 긴장과 싸움, 바로 그 이원성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의미의 약함과 두 번째 의미의 약함이란 실제 살아가면서 겪는 고민이나 갈등 속에서 항상 한 덩어리로 엮여있게 마련입니다. 현실의 좌절과 내면의 환멸은 늘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내 안의 세계에서든 바깥의 현실에서든, 이렇게 서로 얽힌 이원성의 긴장들은 다양한 변주―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강하다는 것과 약하다는 것. 허구와 실재, 아름다움과 추함 등등을 통해, 우리가 느끼고 바라고 꿈꾸는 삶의 순간순간을 지배합니다.
우리가 흔히 “정말 환상적이야!”라고 말할 때 그 ‘환상’의 의미와, “그건 환상일 뿐이야.”라고 말할 때의 그 ‘환상’의 의미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사뭇 대조적인 이 두 가지의 뜻이 하나의 단어에 모두 담겨있다는 사실은, 바로 우리가 처한 이원성의 긴장을 암시합니다. 세상에 대한 지각과 감성이 처음 눈뜨기 시작하는 시기, 내가 무엇인가를 느끼고 바란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고 아름답게 느껴졌던 그런 시절의 기억은, 현실의 흐름 속에서 바래고 꺾이며, 나의 세계는 둘로 나뉘어갑니다. 점점 커져가는 좌절의 그림자를 받아들여가는 이런 과정은, 철저하게 홀로 감내해야 하는 고독한 길입니다.
이원성의 첨예한 긴장과 책임이 너무나도 가혹하게 느껴질 때.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밝은 쪽’과 ‘어두운 쪽’ 사이의 타협 안에서 자신만의 세계의 끝을 정하고, 그 껍질 속에 숨는 것 이외의 다른 길을 찾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바라면서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할까.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내면과 바깥의 현실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순수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함과 천진함을 동경하는 대신, 알면서도 아니 알기 때문에, 그 많은 갈등과 두려움과 책임을 알고 또 알기 때문에 순수할 수 있는, 그런 의미의 순수함을 우리는 찾을 수 있을까. 계속 꿈꾸고 싶은 소망과 더 이상 좌절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 사이에 갇힌 나의 세계를 혁명할 수 있는 용기를 우리는 얻을 수 있을까.... 제가 보았던 『소녀혁명 우테나』는 바로 이런 질문들을 향한 도전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II. 이원성의 첫 번째 변주1. 공주님
이쯤에서 한 번만 더 제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즉, 순수함이란 오래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순수함이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있는 걸까요? 그 추상적인 의미만을 따져본다면, 순수는 이미 순수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변화하건 그것은 '타락'이거나 '변질'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북극에 서있는 사람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남쪽일 뿐, 더 이상 북쪽으로는 갈 도리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더러워지기 쉬운 색이 순백색인 것처럼, 가장 순수한 것일수록 그것은 더욱 더 변질되기 쉽고 타락하기 쉬운 운명에 이미 처해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옳건 그르건, 적어도 이런 생각이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순수함'에 대한 인상을 잘 대변해주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순수함의 의미에 대한 이런 회의적인 견해가 계속 발전되게 되면, 결국 순수하다는 것은 단지 세상 험한 꼴을 아직 안 겪어본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저 여태 속아 본 적이 없다는 증거일 뿐, 현실적으로 볼 때 애초에 세상에 뭔가 바라거니 희망을 가질 이유 따위는 없었다는 식의 회의주의로 이어지게 됩니다.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회의주의자들은 대체로 이런 견해에 동의하는 부류이며, 이들의 모토는 “몰랐어? 원래 세상이 그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현실 속에서 이런 견해들을 어떤 근거라도 들면서 반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가장 순수한 것일수록 가장 쉽게, 가장 깊게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경우, 정말로 사실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똑 같은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면서도, 회의주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것을 추구하려는 사람들 또한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김광석 씨의 노래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 가고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 순간에 말라버리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김광석, 『일어나』)
이 한 구절에는 순수함의 역설적인 가치가 함축되어있습니다. 즉 그것은, 허망하게 사라질 운명이면서도, 끊임없이 새롭게 생겨나 나에게 다가오는 하나하나의 계기들입니다. 마치 한 순간에 말라버릴지언정, 매일 아침 다시 깨끗하게 맺히는 이슬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순수라는 것의 가치는 오히려 그것이 약하고 변하기 쉽다는 데에 있습니다. 즉, 이러한 의미의 순수란, 바로 그 연약한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한 애정과 동경, 연민과 관심, 이런 것들을 의미합니다.
한 송이의 꽃이건 한 방울의 이슬이건, 한 순간의 추억이건 한 순간의 꿈이건, 그 온전함이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것, 나와 너의 만남이란 단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만큼, 그 계기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게 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연약하고 허망해 보이는 그런 의미의 순수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유한성에 깃든 축복이자 커다란 힘입니다.
모든 섬세하면서도 연약하고, 아름답지만 덧없는 그런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따스한 눈길과 애정. 약한 것들을 동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고귀함과 아름다움. 덧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덧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상냥함과 강인함 . 이런 것들이야 말로 순수함의 추상적인 의미 속에 담겨진 인간의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러나...불행히도,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변해가는 연약한 것들을 긍정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분명 고귀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이상의 어떤 것들에 대한 갈망을 결코 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변해가는 것들을 향한 연민과 사랑의 한 켠에서, 우리는 분명 변치 않는 그 무엇을 꿈꿉니다. 혼돈스런 현실 속의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하고 견고한 불멸의 그 무엇을.
2. 왕자님
순수의 반대말은 타락이라고 흔히 말합니다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순수라는 말이 한 가지 뜻만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태껏 이야기해오던 그런 느낌의 순수와는 참으로 대조적인, 또 다른 부류의 순수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또 다른 부류'의 순수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한 예가 바로 영화 『에일리언(Alien, '79)』에 나옵니다.
지금은 SF 호러의 고전이 된 유명한 영화이고, 특히 사실상의 주인공인 괴물(에일리언)의 그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가히 전설적입니다. 어쩌다가 이 외계 괴물을 배 안에 들여놓게 된 우주선의 승무원들이, 살기 위해 우주 한 가운데 고립된 채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입니다. 그러나 제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라, 영화의 후반에 나오는 짤막한 한 대목입니다. 이 영화 후반부에 가면, 동료인줄만 알았던 승무원 한 명이 실은 승무원들을 모두 처치하고 그 괴물을 지구로 가져가려던 스파이 로봇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결국 격투 끝에 승무원들 손에 파괴된 안드로이드는 마지막으로 기능이 정지하기 전에 승무원들에게 조롱하듯 말합니다.
“너희는 아직 그것(괴물)의 정체를 모르지... 그건 완벽한 생명체야. 무한한 생명력과, 포악성, 그리고 무한한 적개심...”
“존경이라도 하는 건가?”
“...그 순.수.성을 존경하지. 양심에 더럽혀지지 않고... 가책에 고뇌하지 않는...”
자, 여기서 분명히 ‘순수’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침이 줄줄 흐르는 끔찍한 입이 트레이드 마크인 이 괴물을 가리켜서. 확실히, 이 안드로이드가 말하는 '순수성'이란 앞에서 이야기하던 그런 느낌의 순수성과는 전혀 딴판입니다. 그러나 이 괴물은 분명 어떤 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합니다. 일말의 갈등조차 갖지 않는, 공격성만으로 순수하게 연마된 무자비한 생명력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를 일컬어 ‘순수하다’고 말하는 대사의 이면에는 인간의 노예로서 이 안드로이드가 품고 있던,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인 불완전함과 나약함에 대한 증오심 그리고 경멸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여기서의 순수는 나약함을 동정하지 않습니다.순수라는 개념 속에는 분명, 애초부터 어떤 종류의 ‘힘’을 의미하는 가능성이 숨어있습니다. 순수란 결코 덧없는 나약함으로만 귀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함 속에 내포된, 도대체 어떠한 변화나 갈등, 불안의 요소도 갖고 있지 않은 완전한 균일함. 그 어떤 것에도 오염되지 않고 그 어떤 것에도 범접되지 아니하는 그런 완벽함. 그것은 바로 불변이요 불멸의 권능이며, 이러한 완전무결함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만큼 갈망하고 동경하는, 순수의 또 다른 측면입니다.
강한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강하다는 것은 반드시 모든 아름다운 것의 필수 조건이 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강하지 못한 것은 비록 지금은 아름답다 해도 언제든 추한 모습으로 훼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 속에 갇힌 존재이면서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형벌입니다. 유한한 생에 묶여 있다고 해도, 자기 자신의 유한성과는 별개로 자기가 꿈꾸는 무엇인가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보통 연인들끼리의 사랑의 맹세란, 거의 항상 시간 차원을 생략하거나(‘죽을 때까지 사랑한다’) 무한으로 승화를 시키게 마련(‘영원히 사랑한다’)입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거의 똑같은 의미인데도, ‘앞으로 한 80년 정도 사랑한다’ 라는 식으로 사랑을 다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습니다. 요컨대 사람들은 항상 마음 한 구석에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이 시간 속에서 오염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상 속에서는 아름다운 것, 드높은 것, 찬란한 것은 항상 영원합니다. 즉, 그것들은 절대로 변할 수도, 변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갈망과 동경을 냉소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덧없는 현실 속에 처해서도, 모든 것이 다 변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꿈꾸고 또 믿으려 하는 그런 용기와 의지. 불멸의 이상을 꿈꾸는 인간의 바램과 거기서 비롯되는 힘. 이것은 약한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의미의 순수와는 구별되는, 인간의 또 다른 소중한 가치인 것입니다.
그러나...불행히도, 역시 이것만으로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하고 완전하고 영속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그게 반드시 소중하지만 연약한 그런 존재들보다 항상 우월한 존재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스라엘의 대통령 자리를 제의 받고 거절하면서, "정치는 순간이지만 물리법칙은 영원하다" 고 말했다고 합니다만, 그러나 이렇게 완전하고 영원한 것의 가치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람들은 대체로 지구를 45억년 째 돌아주고 있는 달보다는, 나를 좋아하게 된지 100일 째 되는 이성 친구에게 더 깊이 감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물리법칙이란 시간 밖에 늘 존재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감정은 시간 안에서 문득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완전한 괴물 에일리언은 외로움 따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있겠지만, 어쩌면 차라리 어수룩한 못난이 외계인 E.T.처럼 지구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쪽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간혹 들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그렇듯이, 때로 진정한 가치란 애초에 변할 리가 없다는 것 보다는 변할 수 있음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완전한 것은 때로 무척이나 공허한 것일 수 있으며, 단지 강하기 위한 강함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습니다.
3. 공주님과 왕자님의 만남 ~ 동화 ~
아름답고 상냥한 공주님은
세상의 가장 작고 약한 것도 보듬어줄 수 있는 고귀함을...
강하고 용감한 왕자님은
세상의 어떤 두려운 적들과도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찰나의 연약함을 사랑할 수 있는 따스함이 인간의 유한성에 주어진 축복이라면, 불멸과 영원을 꿈꿀 수 있는 능력 또한 인간에게 잠재된 무한한 힘입니다. 그러니 이 두 가지 의미의 순수함이 서로 만나 하나가 된다면, 세상의 그 무엇이 이들의 영원한 행복을 가로막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동화 속의 왕자님과 공주님은 어째서 만나기만 하면 ‘그 후로 언제까지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이냐고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우테나라는 작품 속에서 철저하게 비틀리고 낱낱이 분쇄되어버리는 왕자와 공주의 모티브는 지금 공연한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인지... 물론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즉 메르헨 속의 왕자와공주의 이야기에서 비현실적인 것은, 둘이 만나면 무조건 행복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둘이 서로 만나기만 하면 무조건 사랑에 빠진다는 겁니다. 이 작품은 바로 이 아름다운 거짓에 대한 분노로부터 출발합니다.
이 현실 속에서, 그 이원성의 긴장 속에서, 찰나의 아름다움을 보듬으려는 바램과 영원한 것을 꿈꾸는 이상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등을 돌리게 됩니다. 현실 속의 공주와 왕자는 결코 그렇게 쉽게 사랑에 빠지지 않습니다. 아니, 서로를 애써 외면하지 않는 한, 그들은 결국 오히려 서로를 맹렬히 증오하게 됩니다.
왕자와 공주의 저 순수함은 분명 둘 다 참으로 소중한 인간의 가치이지만, 현실 속에서 이 두 가지가 하나의 내면에서 조화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듭니다. 거부할 수 없는 좌절과 체념의 경험들 속에서, 덧없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을 함께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반쪽짜리 꿈이나마 남은 것을 지키려는 그런 안타까운 몸부림 속에서, 내버린 나머지 반쪽에 대한 그리움은 차차 혐오와 경멸로 변해갑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요한 것은, 이원성의 긴장이라는 것이 단지 이상과 현실, 꿈과 일상, 순수와 타락 사이에 걸쳐진 단순한 구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현실만이 이상을 좌절시키는 것은 아니며, 일상만이 꿈을 바래게 하는 것도 아니며, 타락만이 순수를 변질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냉혹한 현실. 무의미한 일상. 타락에의 유혹. 어쩌면 이런 것들보다도 더 위험하고 비극적인 것은, 이상과 꿈과 순수에 대한 갈망 자체가 오히려 그것들을 변질시키며 스스로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준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4. 공주님의 타락, 왕자님의 타락
우리가 잘 아는 시인 윤동주(1917~1945)는, 제가 느끼기에, 너무나도 가혹했던 현실 속에서 그야말로 순정만화 속의 맑고 따스한, 그런 혼을 가졌던 (제 또래의) 젊은이였습니다.
별하나에 추억과 /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 별하나에 동경과
별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
(...중략...)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읍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윤동주, 『별 헤는 밤』)
도대체 당시의 가혹한 현실 속에서, 저런 정감들을 지키고 보듬기 위해서는 얼마나 처절하게 스스로와 싸워야 했을까.... 그러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한 이 젊은이는, 일본 유학 도중 항일운동 혐의로 형무소에 수감되어 거기서 죽었습니다.
지켜줄 이 없이 세상 한가운데 던져진 저 아름답고 상냥하고 고귀한 마음씨, 메르헨 속의 공주로 표상되는 그런 의미의 순수함으로 저 두렵고도 두려운 현실을 마주해야 했던 이 사람이 필사적으로 갈구했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의 화해였습니다.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9
자기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순수함이, 현실 속의 무력감과 좌절 앞에서 허물어져간다고 느낄 때,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자기혐오와 환멸의 고통 속에서, 자기 자신의 부끄러움과 화해할 수 있기를 그는 바랬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긍정하고 사랑하려던 자기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허망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 공주님처럼,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증오로부터 고통당할 때, 그는 단지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그 부끄러운 모습과 화해할 수 있기를 갈구했습니다. 그리고 윤동주의 이런 갈망은 결코 한 시대 한 젊은이만의 괴로움이 아니며, 모든 좌절당한 나약한 순수함의 갈망입니다.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될수록, 그가 이런 갈망에 어떤 위안, 어떤 해답을 얻을 수 있었기를 저는 간절히 바라게 되었지만, 또한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힘든 바램인가 하는 것 역시도 점점 또렷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든 연약하고 덧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을 담으려는 그런 아름다운 소망도, 정작 자기 자신의 나약함만은 감싸 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소중히 할 줄 아는 공주님이라도, 문득 깨닫게 되는 자기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까지 사랑하기란 도저히 힘든 노릇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순수함이라는 것이 실은 비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거짓일 뿐이라는 회의 앞에서 스스로를 사랑할 이유를 찾는다는 것은, 마치 자기 머리채를 잡아서 스스로를 들어올리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노력일 수가 있습니다.
더 이상 아름다운 환상으로서 세상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조소당하느니, 차라리 그 모든 것을 체념과 환멸의 늪 속으로 처넣고 자기 자신까지도 그 깊고 어두운 안식 속에 눕기를 바라는 그런 충동. 그것은 현실 속에 던져진 순수의 타락, 공주님의 타락입니다. 그러나 저는 차마 그 타락을 경멸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안시의 타락을 경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가... 누가, 모든 약하고 소중한 것들을,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했으면서도 결국 그런 자기 자신만은 끝내 사랑할 수 없었던 공주님을 동정하고 말을 걸며, 화해의 손을 내밀어줄까요? 어느 누가, 스스로를 비웃고 경멸할 만큼 타락해버린 공주님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용기를 가질 수가 있을까요? 그 누가, 저 고귀한 아름다움마저 타락시킨 현실 속의 냉혹함과 가혹함을 마주할 힘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왕자님일까요? 그러나 타락한 왕자 아키오는 결코 안시를 동정하지 않습니다. 그 나름의 좌절의 울분과 분노 속에서 그 역시 그 어떤 것도 동정할 수 없게 된 처지이기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전쟁 영화의 기념비적 걸작인 영화 『지옥의 묵시록1)』은, 흔히 전쟁의 광기 속으로 가장 깊이 파고들어간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전쟁이라는 소재를 그려가는 시각이란, 전쟁에 대한 리얼리즘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묵시록'이라는 제목에 걸맞게도 몽환적이고 상징적인 네러티브로 시종하는, 현실에 대한 냉혹한 아날로지(analogy)로써의 의미가 더 강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것은 결투게임의 놀이가 아니야.
넌 아직 놀이의 결투밖에 몰라. 그렇지만... 지금 검을 무르지 않으면
너는 여기서 현실에서의 싸움의 무서움을 알게 될 것이다
38화에 나오는 아키오의 대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 즉 객관적 사실의 집합으로써만의 '현실'이 아닌, 내가 가진 모든 꿈을 분쇄해버리는, 그런 저항할 수 없는 공포로서의 '현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전쟁보다 더 극명하고 노골적이고 벌거벗은 현실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옥의 묵시록'은 그 공포를 가장 처절하게 형상화한 커츠 대령이라는 인격을 보여줍니다. 월남에 투입된 정예부대의 장교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부하들을 이끌고 밀림 속으로 숨어버린 그는, 거기서 자신만의 광기의 왕국을 만들고 군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위험한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그를 제거하라는 임무를 받은 주인공 윌라드 대위가 밀림 속으로, 전쟁 속으로, 그리고 그 광기의 중심부로, 이끌리듯 커츠 대령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유능하고 정직하며 올곧은 마음을 가진 훌륭한 군인이었던 그, 월터 E. 커츠 대령을 미치게 만든 현실. 거기에 대한 의문의 답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축이자, 영화 전체가 투영되는 하나의 그림자로써, 불가사의한 이미지들을 통해 서서히 묘사되어갑니다.
하지만 그의 인격이 아무리 불가사의한 어둠 속에 잠겨있다고 해도, 그의 광기는 평범한 인간들의 좌절에도 내제해있는 것입니다. 이 좌절은, 앞서 언급된 공주님의 좌절과는 또 다른 의미의 좌절입니다.
나의 유한성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믿는 그 무엇. 그래서 나의 유한한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킬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믿는 그 무엇. 바로 그런 진리와 이상과 꿈을 위해,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가진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과 기적을 지켜내려는 고결한 용기와 강함을 가진 왕자님은 그 용기와 강함으로 말미암아 가장 참혹하게 패배할 운명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진리와 이상. 그 변하지 않는 순수함에 대한 헌신이, 바로 그 진리와 이상으로부터 배신당할 때, 그것도 현실이 가장 냉혹하게 그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는 전쟁의 한 가운데서 그러한 좌절을 맞이할 때, 고결한 군인이기를 바랬던 한 인간은....
완전한 이방인이 된 그를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세상을 버렸고 결국 자기 자신까지도 버렸다
나는 그토록 갈가리 찢어진 영혼을 본 적이 없었다
이 대사는, 마침내 그의 광기의 왕국에서 커츠 대령을 만나게 된 윌라드 대위의 독백입니다. 변치 않는 순수함에 대한 갈망이, 가장 참혹하게 강요된 좌절 속에서 어떻게 변해갔는가.... 그는 월남에서 처음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베트콩들이 몰려와, 방금 미군들한테 예방접종을 받은 월남 아이들, 동포인 어린 아이들의 주사 맞은 팔을 모조리 잘라 산더미처럼 쌓아둔 광경을 바라보던 그 기억을.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생각했지. 그 능력......
팔을 잘라 내는 그 의지는 완벽하고 순진하고 수.정.처.럼.순.수.했.어.
그들이 우리보다 더 강하다는 걸 깨달았지.
우리에겐, 양심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원초적인 본능으로 살인을 하는 인간이 필요해.
느낌도, 격정도, 판단도 없이. 판단 없이.
우린 판단하기 때문에 패배한 거야.
아키오는 현실에 패배한 왕자님입니다. 그는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했기 때문에, 무엇이 영원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격정에 이끌렸기 때문에, 패배한 것입니다. 그가 바라던 순수로부터 배신당했을 때, 세상에 영원 같은 것은 없다고, 기적 같은 것은 없다고 그리고 왕자 같은 것은 없다고 왕자님이었던 자기 자신의 입으로 말해야만 하는 그런 잔인한 절망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을 비틀고 왜곡시키며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모든 이들을 비웃기 위한 무대 속에서 살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더 이상 그는 어떤 것도 지키려 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심지어 절망에 빠진 공주님조차도 동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저 '수정처럼 순수한' 완전히 투명한 텅 빈 강함입니다.
“저 문에는 영원이, 빛나는 것이, 기적의 힘이 있어. 그 힘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가 있다. / ...힘이 없으면 결국에는 남에게 의존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세계라는 거다.”
(39화, 아키오의 대사)
결국 패배한 왕자님은 '힘'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그 무엇을 지키는 것이 아닌, 그 무엇에 헌신하는 것도 아닌, 단지 자기가 '현실'이라고 불렀던 공포로부터 자기 자신을 해방시켜 줄 그런 힘만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III. 이원성의 두 번째 변주1. 알(卵)
언젠가 제 친구 한 명이 저한테 "야, '여신님' 같은 만화도 순정 아니냐?"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순정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그야말로 펄쩍 뛸 노릇입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달리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냥 순정 만화 속에서 자기가 받은 느낌들과 『오! 나의 여신님』이라는 작품에서 받은 느낌들이 어쩐지 비슷한 면이 있다는 말을 하려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대리만족이니, 여성상의 왜곡이니 여러 가지 비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제 친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을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말하기는 좀 쑥스러운 노릇이지만, 저도 군대 가던 날 훈련소로 가는 밤 기차를 타기 전에, 갖고 있던 '여신님' 만화책들을 한 권 한 권 찬찬히 다 정독을 하고 집을 나섰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군생활 30개월(공군) 중에 가장 힘들었던 때는, 정작 군대 안에서 지내던 때가 아니라, 입대하러 기차를 타고 진주 교육사령부로 내려가던 그 하룻밤이었습니다. 막상 현실로 닥치고 피부로 와 닿는 군대에서의 하루하루보다도, 무슨 일을 겪을지도 모르면서 그저 온갖 불안한 상상만 떠올리던 경험이 저한테는 더 견디기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기차를 타고 밤새 훈련소로 향하면서, 말 그대로 몸에 걸친 속옷 한 장까지 온통 낯선 것들에 둘러싸이는, 그런 무섭고 외로운 곳으로 끌려간다는 생각에 밤새 차창만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오돌오돌 떨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좀 (아니 많이) 엉뚱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제가 공연히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여신님'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이 만화가 그리고 있는 다사롭고 포근한 느낌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그것이, 각박하고 두려운 현실을 마주하기 위한 제 나름의 준비였습니다.
그런데, 입영 열차 안에서의 이런 경험이란 어쩐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압축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며 지나온 기억들을 떠올리노라면,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저 오돌오돌 떨면서 저항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그런 낯설고 겁이 나는 현실 속으로 차근차근 등 떠밀리듯 내몰려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군대가기 전의 심정이 그랬듯,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마주하게 될 그 각박하고 두려운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 위안이나 의지가 되는 무언가를 찾는 생각 또한 간절해지곤 합니다.
그런데 과연, 군대뿐만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내면을 깊게 보듬어주는 그런 눈길. 그런 섬세하고 애정 어린 시선. 그런 순수한 마음, 그런 '순정'을 지켜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바램들�� 갖고 있다고는 해도 막상 나는 어느 누구한테 건 그런 마음으로 대해줄 수가 있을까. 또, 누군가 나한테 그렇게 상냥하게 대해주었으면,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마음 속 깊은 곳의 소망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힘듭니다. 이것은 단지 쑥스러움이나 창피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두려움과 회의의 문제입니다.
군 생활에서 사병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의 절반 이상은 다 '욕'입니다. 욕을 먹지 않기 위한 욕. 욕을 견디기 위한 욕. 흔히 듣는 말이지만, ‘군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나 거짓이 아닌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오고 나서야 자신이 그렇게 격하게 화를 내거나 심한 욕설을 내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습니다. 전혀 원치 않았던 자기의 처지를 의식할 때처럼 누군가에게 그 탓을 묻고 싶은 욕구가 간절할 때도 없습니다. 그 욕구는 너무나도 커서, 대체로 그런 욕설들이 근거가 있거나 가당한 것인지 따위는 별 고려의 대상이 못됩니다. 그리고 이런 생활들 속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이병, 일병 시절을 거치노라면, 결국 화장실이나 다른 으슥한 곳에 숨어 혼자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건빵을 씹으며, (대부분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이런 종류의 고독과 울분에 익숙해지는 법을 홀로 터득해 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다가 얻게 되는 결론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 생각해줄 여유 따위는 없다!‘ 이 해답에 빨리 닿을수록 마음은 편해집니다. 말하자면, 이기적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그것을 합리화시켜가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전까지 익숙했던, 만만한 현실 속에서나 통용되던 예절이나 규범 대신, 차차 혼자 버텨나가기 위한 새로운 규칙들에 따르게 됩니다. 불안에 떨던 갓 온 신병은 점차 고참이 되어 가면서, 자신에게 돌아올 이해득실에 따라, 주위에 적당히 적대적이고 적당히 호전적이며, 또 때로는 경우에 따라 적당히 사근사근하고 적당히 허세부리는 행동으로 대처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일들이, 단순히 남자들이 군대라는 특수한 곳에서나 겪게 되는 불유쾌한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군대에서의 경험들을 특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그 경험들이 매우 ‘압축적’이고 ‘노골적’이라는 점에서만 그럴 뿐이며, 제대 후 대학을 졸업한 지금에 와서 제가 느끼기에, 어른이 되어가면서 세상 속에 홀로 내던져지는 그 경험들 속에는 모두 이와 유사한 패턴의 고독과 울분이 담겨있습니다. 요컨대 그것은, 순수하게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그런 소통에 대한 바램이라는 것이, 만만하고 나긋나긋하던 어린 시절의 ‘현실’에서나 가져볼 만한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가게 된다는 울분과 고독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울분과 고독에 비례해서, 우리는 서서히 매일매일 접하는 ���위 사람들의 개성과 고민을, 갈등과 인내를, 그 아픔과 깊이를 거의 의식 못하게 되어갑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큰 고민과 갈등에 처해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고뇌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강하게 의식한 나머지 대신 타인들의 그것을 과소평가하게 마련이라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개개인의 고뇌보다는 단조롭고 어리석어 보이는 전체적인 집단의 모습에 주의를 집중하게 되며, 이것은 사람들을 타인에게 무감각하게 만드는 작용을 촉진시킵니다.
자신의 울분과 고독을 누군가가 바라봐주고 보듬어주기를 바라는 그러한 간절한 바램은, 지나치게 간절한 나머지, 스스로의 것을 잠시 덮어두고 남의 것에 먼저 관심을 가져주기가 힘들다는 데 그 비극의 씨앗이 있습니다. 비록 서로 똑같은 외로움에 괴로워하고 있다고 해도, 동병상련 이심전심의 낭만보다는 저마다 자신의 간절함에 매달려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기가 훨씬 쉬운 법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결과적으로, 애초의 그 순정만화 같은 수줍은 소망을 신경증적인 분노와 긴장으로 바꾸어놓습니다. 결국, 이런 판국에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나는 이렇게 다른 누군가의 상냥함을 바라고 있습니다.’라는 식의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전쟁터에서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는 자살행위입니다.
물론 이련 식으로 현실을 묘사하는 데에는,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사태를 다소 과장하는 면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현실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분명 대단한
용기를 요구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더 나아가서, 이러한 두려움을 이겨낸다고 해서 늘 그 보답이 돌아오는 것도 결코 아닌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완전히 회의적이 된다고 해서 그것을 나무라기에는 그 근거가 희박합니다. 도대체 이 모든 외로운 싸움, 두려움과의 싸움에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있으리라는 보장 따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느 순간 우리는,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두려움의 한계 안에서, 자기가 그 안에서 살아갈 세계의 경계선을 긋게 됩니다. 즉 자신이 받아들일 세계의 안과 밖을 가르게 되는 것입니다.
2. 안과 밖
다른 부대도 그런지는 확실치 않지만(아마 비슷하리라 생각되지만), 제가 있던 부대 사람들은 보통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보다도 별나게 드라마를 좋아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아주 달콤하고 순정만화 같은 분위기의 그런 작품일수록 인기가 좋았습니다. 물론 거기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일단 생활이 각박하다 보니 이런 드라마 안의 핑크 빛 세상이 마냥 그립고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 이런 연속극들은 점호가 끝난 뒤에 합니다. 규칙 상 TV 시청이 금지된 시간입니다. 결국은 늘 불쌍한 내무실 막내(보통은 이병)들이 희생양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이란 말 그대로 희비극이 엇갈리는 기묘한 풍경입니다.
TV에서는 『가을동화』(제가 군대에 있을 때 부대 안에 돌풍을 일으켰던)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펼쳐지고, 그 해맑은 사랑에 애를 태우는 병장들이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있는 동안, 대신에 TV 쪽으로는 고개조차 못 돌리게 되어있는 이병 한 명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혹시나 일직사관이 사정권에 들어오지는 않는지 소리만으로 망을 봐야 합니다. 그것도, 자기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잠도 못 자고.
제가 이런 취향의 작품들에 시비를 걸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들 속의 낭만과 순수에 얼마나 큰 위안을 얻고 얼마나 큰 감동을 받건 간에,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TV를 끄던가, 아니면 차라리 일직사관한테 걸릴 때 걸리더라도 졸병한테 그냥 망보지 말고 와서 함께 TV를 보자고 한마디를 던지는 쪽이 수천만 배는 더 감동적이고 낭만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품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대단히 눈물겨운 감동을 준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 허구(Fiction)의 위안과 서러운 이병 신세에 고참의 조그만 배려 하나가 주는 현실 속의 위안이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상황은 항상 "군대가 원래 그래. 나도 다 겪었어."로 결론이 나고, 여전히 내무실 한 켠은 TV속의 낭만에 취해있는 동안, 그 대가로 다른 한 켠에서는 상당히 낭만적이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는, 코믹하고도 비극적인 장면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상황 속에서, 즉 국가의 부름을 받고 영문도 모른 체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낯선 곳에 끌려와, 낮에는 하루 종일 부대끼며 이유도 모를 욕들만 배불리 먹고, 동료들이라고는 부려먹으려는 고참과 기어오르려는 졸병들만 득실한 틈에 끼어 고단한 일과를 보내다가, 밤이 되어 그나마 지친 심신을 눕히고 잠시나마 아늑하고 따스한 허구로 자신의 내면을 감싸고 달래주는 그런 감미롭고 애절한 위안의 한 때를 만끽해보려는 순간에까지, 억지로 다시 현실에 눈을 돌려 보이지도 않을 새까만 졸병의 서러운 처지 따위에 관심 갖고 신경을 써주기란 죽기보다 힘들고, 죽기보다 싫은 노릇임이 분명합니다. 이 각박한 생활 속에서는, 도무지 그렇게 하려는 의지도,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찾아보기가 힘든 것입니다.
물론 이런 군대 일화가 그다지 보편적인 경험이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여기에는 대단히 중요하고 보편적인 모순의 한 자락이 깔려있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요컨대, 언뜻 생각하기에 어느 누구라도 허구 속의 낭만 보다는 현실 속의 낭만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싶겠지만, 실제로 살면서 겪어보기에는 사정이 영 다르다는 점입니다.
나의 환상 안에서라면 나는 얼마든지 동화 같은 사랑이야기에 감동하는 진정 꿈 많고 순수한 청춘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 참으로 편안히 그런 꿈속에 젖어들기 위해서는 분명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합니다. 내가 받아들이는 세계 안의 환상에 대한 대가로,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 세계 밖에서 나는 죄 없는 졸병을 잠도 못 자게 괴롭히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에 둔감해져야 합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두려움과 회의의 한계 안에서라면, 나는 원하는 만큼 진솔하고 순수한 인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은 세계의 경계 바깥, 내가 감당하고 싶지 않은,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회의의 영역에서는 나는 얼마든지 이기적일 수도, 비겁할 수도, 심지어 파렴치해질 수도 있습니다. 안과 밖 사이에 놓인 이 메울 수 없는 간극의 심연은,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 나 자신을, 내 세계를, 둘로 셋으로 넷으로 산산이 갈라놓습니다.
3. 세계의 끝
세계의 끝인 아키오는 말합니다(38화).
...나는 언제나 성의 꿈을 꾼다. 그래... 왕자님과 공주님이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행복하게 사는 성이다.
그러나 자신이 다시금 성안의 행복한 왕자님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매일 밤 꿈꾼다던 그는, 또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너를 보고 있으면 옛날의 내가 생각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너는 그녀를 구할 수 없다.
어차피, 왕자님이라든가 영원이 있다는 성이라는 건 다 속임수다.
지금 너에게 현실을 보여주마.
영원한 행복의 성을 꿈꾼다면서도 영원이 있다는 성이란 속임수일 뿐이라고 말하는 그 모순. 그러나 이 모순은 단지 모순인 것만이 아니며, 그 실체는 두려움입니다.
허구와 거짓은 상상하는 만큼 아름답고 상상하는 만큼 눈부시며 상상하는 만큼 영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상하지 못할 만큼 위험하고 두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그은 세계의 경계 안에서, 그 허구들은 나를 둘러싸고 나를 이루며 나를 가꾸어주고 나를 빛나게 해줄 수 있으며, 동시에 나를 에워싸고 나를 갉아먹으며 나를 가두고 나를 질식시켜갈 수 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듀얼리스트들은 자신의 껍질을 깨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세계 안에 갇힌 체 살아간다는 것 또는 죽어간다는 것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합니다. 그들을 결투의 장으로 내모는 것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 할 만큼 정교한 허구 속에 속박되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이며, 거짓된 허상이 아닌 참되고 실재하는 것에 도달하고자 하는 동경과 의지입니다. 그러나...
현실과 실재는 어느 누구의 편견도, 어느 누구의 거짓도, 어느 누구의 허상도 압도하는 강대한 힘입니다. 꿈을 실현한다는 것, 바램을 이룬다는 것은 바로 내가 그 힘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어느 누구의 의지조차도 거스르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그 모오든 다채로움과 활력의 일부를 나의 것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과 실재는 그 힘을 통해 어느 누구의 환상이라도 깨트리고 어느 누구의 꿈이라도 짓밟을 수 있으며, 그 결과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도 파괴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듀얼리스트들은 결투의 장에서 또다시 자신의 세계의 안으로 숨기 위해 되돌아섭니다. 그들은 그 어떤 환상의 도움도 없이, 그 어떤 허구의 위안도 없이, 벌거벗겨진 체 현실 앞에 마주해야한다는 공포 앞에서 주저합니다. 그들을 결투의 장에서 번번이 패배시키는 것은, 어떤 의지도 어떤 의미도 존중해주지 않는 현실과 실제의 그 냉혹함에 대한 마음속으로부터의 두려움과 회의이며, 그리고 그 냉혹한 혼돈보다는 정교하게 세공되고 조화된 허구 속에 계속 머무르고 싶은 유혹과 망설임입니다.
그들은 어느 때인가 빛나던 한 순간의 순수를 그리워하면서도 오히려 그 그리움이 현재 자신의 현실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기적을 갈구하면서도 자신이 그 갈구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조차 스스로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의 궁극을 통해 모든 것을 소유하기를 원하면서도, 그 힘에 대한 동경이 스스로를 무의미한 공허함으로 바꾸어놓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키고 싶은 한 순간에 대한 집착이, 영원에 대한 목마름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지키고 싶어 하던 기억마저 비틀어놓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벗어날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세계의 안과 밖 사이에서, 용기와 두려움을 모두 안은 체 그 언저리를 맴도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참으로 평범한 우리들 자신의 모습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세계의 끝’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의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기에 ‘세계의 끝’이란, 듀얼리스트들이 처음에 이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무언가 자신이 속한 세계를 넘어서 있는 초월의 이미지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자신의 세계에 끝―즉 한계 또는 경계―을 갖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는, ‘세계의 끝’이란 초월을 가장한 교묘한 구속이자 속박일 뿐입니다. 영원한 행복의 성을 꿈꾸면서도 영원이 있다는 성을 속임수라고 말하던 아키오의 모순은, 바로 이런 ‘세계의 끝’의 두 가지 상반된 의미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밖을 향한 욕구와 세계의 안을 향한 욕구가 서로를 상쇄시키는 모순입니다.
분명 어느 누구도 자신이 허구 속에서 기만당하며 살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분명한 것은, 허구가 아닌 진짜 현실 속에서 진정 자신이 소망하는 모습대로 살 용기를 갖기란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실 속에서 어떤 꿈이나 소망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 안에서 허구에 기만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의 세계 밖에서 현실과 싸워나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 두 가지 두려움 사이의 갈등과 투쟁을 의미합니다. 결국, 앞서 언급했듯이, 이 허구와 현실, 내면과 외면의 긴장 사이에서, 어느 순간 우리는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두려움의 한계 안에 자기가 살아갈 세계의 경계선을 긋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내가 인식하는 세계의 안과 밖이 갈리는 시작이 되며, 이 첨예한 두려움과 갈등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한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4. 현실과 사실과 의미와 책임
어렸을 때는 단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버겁기 때문에. 영원, 순수, 꿈, 이런 단어들은 마냥 아름답고 좋은 것에서 그저 살갑고 유치한 것으로 어느 샌가 바뀌어버렸습니다.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여유를 갖기에는, 다짜고짜 닥쳐오는 현실들이 너무나도 어렵고 무섭고 다급해 보였기 때문에... 꼭 답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그런 모든 질문들에 대해서 저는 아직 아무런 답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어느 샌가, 한때 꼭 지키고 싶었던 것들은 너무나도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게 되어버리고,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들은 너무나도 견고하고 거대한 것이 되어 나를 덮쳐오는 이 모든 변화들은, 정말이지 너무 쉽고 너무 빠릅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자주, 변하기를 원했던 부분은 안 변하고, 변할 줄 몰랐던 부분만 골라서 변해버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가는 것들 중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변해가는 혼돈 속에서 처음에 떠올랐던 의문은, 무엇이 변치 않는 진실이며 무엇이 덧없는 허상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오히려, 객관적인 사실이 좋은 것인지 주관 속의 환상이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조차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실, 현실 속에서 일어��는 일들은 항상 마음속의 꿈과 이상에 영향을 주게 마련이며, 또 마음속의 이상과 바램들은 현실을 변화시켜나가는 밑바탕이 되기 때문에, 둘 중 어느 것이
항상 더 ‘좋다’거나 ‘참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무리 정말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진리라고는 해도, 막상 살면서 현실과 꿈 사이의 접점을 찾거나 균형을 잡기란 무척 힘든 일입니다.
세미나를 준비하며 이 글을 쓰는 동안, 제가 속한 이 현실 속에서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이라크에서는 한국인 민간인이 테러 단체에 납치되어 살해당했고, 우리나라 안에서는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이런 실상들을 접하는 동안, 차라리 세미나 준비를 그만 둬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렇게 심각하고 급박한 현실들을 뒷전으로 한 체 ‘고작 만화’에나 골몰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의 접점이나 균형이라는 것을 떠올리기란 더더���다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현실과 이상이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한데 엮여져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현실이 곧 사실이고 이상은 곧 허구라는 식으로 말하는 데는 다소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이란 거칠게 말해서 두 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예를 들어, 뜨겁다든가 차갑다든가 하는 사실들에 대해서는, 굳이 달리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불편하고 때로는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찬 것은 차다고 생각하고 뜨거운 것은 뜨겁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대체로 그 원인이 바깥 세계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흔히 ‘객관적’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사실들은, 그 원인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 내가 무언가를 믿고 있다는 사실. 이런 것들은, 다름 아닌 내가 그것을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그 사실의 진위 여부가 나 자신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과는 구분되는 ‘주관적’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 사실을 인지하는 데에, 예컨대 찬 것을 차다고 말하는 데에, 어떤 책임이나 긴장이 따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관적 사실을 느끼고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책임과 긴장이 따릅니다. 내가 더 이상 그것을 느끼지 않게 되는 순간, 그 때부터 그 느낌은 거짓이 됩니다. 내가 느낀다는 것을 하나의 사실로 만드는 책임은, 그것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의미들을 느낄 수 있는 결단과 의지를 행사하도록 부여된 나의 권리에 대한 책임입니다.
하지만, 아직 별로 나이를 먹지도 않았는데, 이 책임이라는 게 정말 무거운 것이라는 느낌이 종종 들곤 합니다. 많은 것들이 변해가는 속에서, 무언가 믿고 있던 의미, 갖고 있던 느낌들이 하나씩 변해갈 때마다, 내가 무언가를 느끼고 믿고 바란다는 사실은 거짓이 되어가고, 왠지 나는 허깨비를 쫓던 것이 아닌가 싶은 불안은 사실이 되어갑니다. 내가 받아들이는 의미와 내가 살아갈 모습을 꿈꾸고 그려볼 권리는 서서히 괴로운 의무처럼 느껴져 갑니다.(사실 그래본 적은 없지만...) 내가 만약 모든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랬다면, 그 바램이 좌절되었을 때 그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만 돌린다는 것은 당연히 지나친 태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것은 단순한 좌절에서 그치지 않고 훨씬 더 멀리까지 나아갑니다. 세상으로부터 타락을 강요당하느니, 차라리 내가 세상을 타락시키는 것이 더 좋게 생각되는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로부터 배신당하느니 차라리 내가 모든 것을 배반하는 것이, 그리고 버림받느니 먼저 내버리는 것이 더 만족스럽게 여겨지는 때가 있습니다. 정말이지, 환상을 쫓다가 무기력하게 좌절당하는 몽상가에 비하면, 적어도 더 이상 속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느끼려하지 않고 아무 의미도 찾지 않으려 하는 냉소와 허무주의가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객관적 사실들(예를 들어, 신호등이나 달궈진 냄비 손잡이 따위)은 그 느낌을 달리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고 때로는 해롭기 때문에 온전한 사실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주관적 사실들은, 즉 내가 무언가를 느끼고 바란다는 그 사실들은, 우리가 그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고 때로는 해롭기 때문에 온전한 사실로 남기가 힘듭니다.
느끼고 소망한다는 것의 책임, 그 의미와 가치가 어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단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책임, 그 느낌과 의미에 대한 선택의 책임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객관적 현실 속에서 인간들은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자기 주관의 믿음과 결단에 책임을 지기 위해, 과거 수많은 이상주의자들은 커다란 대가를 치루면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무거운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느낀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합니다. 현실이란, 세상이란, 삶이란 무의미한 것이라고 흔히 말해지곤 합니다. 그리고 기실 그 말들이 뜻하는 것은, 스스로가 현실에서, 세상에서, 삶에서 아무것도 느끼려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나는 장미의 신부니까... 마음이 없는 인형이니까...
몸이 아무리 깎이고 무뎌져도...
마음 같은 건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38화, 안시의 대사)
느끼고 바란다는 사실의 책임은 큽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려 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려 하지 않는 허무의 대가 역시 큰 것입니다. 느끼는 것이 괴롭고 바라는 것이 힘겨운 그런 감당할 수 없는 책임들은 세계의 껍질 밖에 남겨져 무의미 속에서 잊혀져갑니다. 그러나 세계의 껍질 안에 남겨둔 지키고 싶은 의미들조차, 결국은 박제된 모습으로 그 빛을 잃어갑니다. 안과 밖으로 갈라진 세계는 결코 어떤 소중함도 살아있는 온전함으로 지켜줄 수 없습니다.
IV. 소녀혁명1. 소녀들
‘소녀혁명’이란, 소녀들을 향한 혁명이자 또한 소녀들로부터의 혁명입니다. 그것은 힘없이 깨트려지고 변질되고 조소당하는 것들로부터의 혁명이자, 그런 것들을 향한 혁명입니다.
나약하고 연약한 것은 소녀들이 아닙니다. 생애에서 가장 순수하고 가장 무지하고 가장 무력한 모습으로 이제 막 세계의 끝을 마주한 지금의 미숙한 우리 자신이야말로, 가장 힘겹게 스스로의 나약함과 싸워야 하는 시기에 처해있는지도 모릅니다. 왕자님을 동경하건, 공주님을 동경하건, 그저 나약하고 연약할 뿐인 존재는 바로 지금의 우리들 자신입니다.
처음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우테나가 현실 속에서 배워간 것은, 단지 자신이 모든 시작에서부터 철저히 배신당하고 기만당하고 경멸당해왔다는 사실 뿐입니다. 그녀가 그토록 되고 싶어 했던 왕자도, 그녀가 그토록 구해주고 싶어 했던 공주님도, 그 모든 것은 애초부터 잔인한 절망 속에서 뒤틀리고 망가진 체 차마 돌아보고 싶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을 이끌어주고 있다고 믿었던 그 모든 것들은, 실은 처음부터 깊은 허무의 심연에서 자신을 냉소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쥬리가 말했던 우테나의 그 ‘잔혹한 순수함’은, 고스란히 우테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칼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몰랐기 때문에. 다름 아닌 자신의 바로 그 고결한 순수함으로 인해 세상의 끝 언저리를 맴도는 자들의 참혹한 좌절과 무서운 타락과 끝없는 괴로움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절망과 슬픔은 다른 어느 듀얼리스트들보다도 깊고 가혹한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이원성의 갈등과 괴로움을 겪기 훨씬 전부터, 꿈꾸는 법을 알아버렸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올 그 잔혹한 순수함으로, 세상과 나 자신에게 너무나도 많은 꿈을 지워버렸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 될 수 있을지를 알지 못한 체 세상 사람들 모두를 사랑할 수 있기를 꿈꾸었습니다. 자신이 장차 무의미와 체념 속으로 어떻게 길들여지게 될런지를 알지 못한 체, 세상 모든 일에는 저마다 의미가 있다고 믿으려 했습니다. 현실 속의 무수한 좌절과 증오와 시기와 냉소와 환멸의 의미들을 일일이 새겨보기도 전에, 너무나도 성급하게 그 모든 것들에 아름다움과 희망을 덧칠하려 했습니다. 결국 그 순수가 진실되고 성실하고 고결한 것일수록, 그 잔혹함은 더욱더 깊고 두려운 것이 되어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와, 꿈꾸던 시절 우리의 무지함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 영원이란... 뭔가요....? (33화, 우테나의 대사)
애처롭고도 간절한 그 질문, 그 장면, 그 모습은 저에게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우테나처럼, 현실 속에서 바로 그런 나약함으로 아무도
대답해줄 리 없는 질문을 여전히 품고 있는 이들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이 세계를 혁명해야 할, 이 세계로부터 혁명되어야 할 약하디 약한 존재들입니다. 그 고귀한 나약함으로 세상을 바꾸며, 동시에 세상 속에서 그 나약함을 나약함 만이 아닌 것으로 바꾸어가야 할.......
섣불리 꿈꾸었던 순수함의 잔혹한 대가 앞에서, 한 때의 자기 자신이, 그리고 자신이 믿었던 것들이, 더할 수 없이 밉고 혐오스럽고 경멸스러워질 때조차,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다시 절망에게 손을 내밀 수 있기 위해서. 그 절망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너를.. 구하러 왔어...
너를 만나기 위해서 나는 여기까지 온 거야.
그러니까 너와 내가 만나는 이 세계를... 두려워하지 마.
(39화, 우테나의 대사)
...우리는 세계를 혁명해야 합니다.
2. 혁명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다시 꿈꾸게 될 수 있을까요? 회의를 배웠기 때문에 다시 믿을 수 있고, 절망을 배웠기 때문에 다시 희망을 그릴 수 있고, 체념을 배웠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무엇이 나를 이끌어줄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너무나 소박하고 평범해서 거의 잊고 있던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 혹시 너에게 무슨 곤란한 일이 있으면
우선 나에게 이야기해 줘.
무엇이든지 서로 돕자.
너와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
(25화, 우테나의 대사)
타락한 왕자는 우테나를 바라보며 몇 번이나 말합니다. 너는 과거의 나를 닮았다고... 그리고 세계의 끝에서, 이제껏 겪었던 가장 슬픈 절망 뒤에 결국은 꺾이고 쓰러진 우테나에게 왕자님은 조용히 위안을 속삭입니다. 지금까지 노력해왔으니까, 그 고결함을 소중히 여겨주었으니까, 자신을 책망해선 안 된다고. 나는 너와 가장 닮았던 사람이니까. 나는 너의 모든 괴로움을 이해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니까. 이제 우린 충분한 대가를 치렀으니까. 이제 저 영원의 성의 환상 속에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없이 내려치는 우테나의 손이 그 위안과 환상을 산산조각 낼 때.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낀 6년 전의 그 느낌과, 이미 자신도 모르게 그런 위안과 환상을 바라게 되어버린 6년 후 지금의 제 느낌은 사뭇 달랐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저렇게 거역할 수 없는 위안과 동정을, 도대체 어떻게 내버릴 수가 있을까. 나의 모든 것을, 나의 모든 아픔을, 나의 모든 고독한 싸움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줄지도 모를 그런 손길을.
하지만.안시가 좌절해가는 우테나의 곁에서 과거 자기 자신의 괴로움과 슬픔을 다시 바라보게 된 시간을 통해, 그리고 우테나가 안시의 그 괴로움과 슬픔을 고스란히 자기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시 배워간 시간을 통해, 마침내 그들이 서로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이 바로 서로의 가장 소중하고 슬픈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테나는 껍질 속에 갇혀 죽어가기 보다, 껍질 밖에 내던져진 안시의 괴로움을 향해, 그 망각과 무의미에 갇힌 슬픔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내밀기 위해, 살아가는 길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껍질 속의 환상 속으로 숨기 위해 안시를, 그 절망과 체념의 괴로움을, 껍질 밖의 무의미로 내던져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힘겹게 다시 일어나려했습니다. 환상을 깨트린 바로 그 손으로.
세계의 끝과 끝을 아우르는 모든 희망과 절망, 의미와 무의미, 이상과 현실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날줄씨줄들에 비하면, 이 둘의 애정이란 그 얼마나 평범하고 소박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왕자님을 동경���던 소녀와, 타락한 공주님이었던 소녀의 만남은 하나의 소중한 혁명입니다. 그 모오든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갈등과 책임을 알면서도, 알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기를 선택했던 바로 그 평범함과 소박함이었으니까, 그들의 만남은 그 어떤 것보다도 빛날 수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그 소중한 나약함을 사랑하는 고귀한 공주님이던 한 소녀가 타락했을 때. 그리고 그녀 앞에, 왕자님의 고결함을 동경한다는 다른 한 소녀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겠다며 말을 걸어왔을 때.
공주님이었던 소녀는 왕자님이 되겠다는 소녀를 경멸했습니다. 너는 비겁자라고. 세계의 끝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주제에 자신의 고결함에 눈이 멀어 세상의 타락과 슬픔을 알려 하지 않는 비겁자라고.
그리고 왕자님을 동경하던 소녀 역시 공주님이었던 소녀를 경멸했습니다. 너는 비겁자라고. 모든 순수함이 자기와 같은 타락과 파멸을 겪을 거라고 믿으며,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려 하지 않고 아무것도 믿으려 하지 않는 주제에 나를 비웃고 조롱하는 비겁자라고.
그런데.. 우테나님. / 응?
간타렐라(Cantarella)라고 아십니까?
간타렐라? 뭐야 그게?
옛날 이탈리아의 보르지아(Borgia)가문에서 쓰던 맹독의 이름입니다... 어떻습니까, 그 쿠키? 그거 제가 구운 거에요
우연이네... 그 홍차에도 독을 넣었는데.
그렇습니까... 정말 맛있는데요, 이 홍차.
이 쿠키도 말야.
우테나님. 우테나님의 10년 후는?
나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 그렇지만?
10년 후에 우리들 또 이렇게 함께 차를 마셨으면 좋겠네.
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그거... 왠지 좋을 것 같아. 반드시.. 10년 후에도 함께 웃으며 차를 마시자. 약속이야.
예, 반드시.
이 둘이 어떻게 서로를 경멸하던 그 증오를, 한 순간 서로에 대한 동정과 사랑으로, 함께 빛나기를 기원하는 약속으로 되돌릴 수 있었는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이 둘의 만남은 절망과 희망, 타락과 순수,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강하다는 것과 약하다는 것. 허구와 실재, 아름다움과 추함, 이상과 현실, 의미와 무의미... 들의 만남입니다. 그 만남은,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동정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언젠가 함께 빛나기를 약속할 수 있는 그런 만남입니다. 그것은 이원성을 향한 혁명입니다.
아직 젊은 우리들은 지금 모두.......
얼마만큼의 용기와 얼마만큼의 두려움을 갖고
저마다 자신만의 세계의 끝 언저리에서 낯선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루어내기도 힘들고 지키기도 힘들고 심지어 기억 속에 간직하기 조차 힘든 그런 꿈들―영원, 빛나는 것, 기적 그리고 순수에 대한 꿈들과 더불어.
막연한 꿈과 미숙한 힘만으로
아무도 가르쳐줄 수 없는 질문의 해답을 스스로 구하기 위해서.
세상 밖을 향해서.
어쩌면
혁명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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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최후 진술 전문, 비상계엄…국가비상사태 대국민호소
(홍콩=데일리홍콩) 김한국 기자 =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 피청구인 입장으로 법정에서 최후 진술을 통해 비상계엄은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대국민호소였을 뿐 종신집권이나 내란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공산당 1당 독재, 유물론에 입각한 전체주의 등 반국가세력이 다양한 속임수로 우리 대한민국에 스며들어 위기 상황임을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후 진술 전문을 다음과 같이 전재한다. 탄핵심판 윤석열 대통령 피청구인 최후진술 존경하는 헌법재판관 여러분, 그리고 이 재판을 관심가지고 지켜봐주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84일이 지났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힘든 날들이었지만, 감사와 성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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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GILYQxVn53Y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라 자꾸 올리게 되네요...
너무 존경했던 대통령님 !!
나와 생일도 같은 대통령님 !!
문재인 대통령님도 이제 존경할수 있는 대통령님이 되어 주세요..
너무 보고 싶어 자꾸 울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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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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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버그
린드버그
조지오 아르마니, 빌게이츠, 요요마,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 등 린드버그 여러 분야의 유명인들이 찾는 안경이다.
린드버그 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많은 셀럽들이 이 브랜드를 선택했을까?
사람의 얼굴 구조에 관한 정확한 연구에 기반을 둔 최상의 안경테를 만드는데 헌신했다.
이전 설계사인 헨릭 린드버그(Henrik Linberg)는 당신이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린베르그 안경을 사용해야 한다면 아마 당신이 안경을 쓰고 있는지 잊어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 사랑하는 안경, 린드버그이다.
수 많은 셀럽들이 린드버그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편리함과 스타일리쉬함까지 겸비한, 철학을 가진 안경이기 때문이 아닐까.
문재인 착용 제품은 린드버그 모르텐이다.
에어 티타늄 프레임은 80년대 중반에 만들어져 경량의 디자인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무테 안경은 어떠한 경우에서든지 편안함을 준다.
뱅앤 올루프센과 프리츠 한센, 레고와 같은 유명 덴마크 브랜드에서 어떤 산업이든 상관없이 덴마크 스타일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기능성이다.
린베르그 안경에는 나사가 떨어져 나가기 쉽기 때문에 어떠한 나사도 쓰이지 않았다.
안경테에 렌즈를 부착시키는 고난이도 노하우를 초반의 제품군에서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꾸준히 프레임의 가벼움과 유연성, 특별제작 가능하다는 점 등 덕분에 아직도 린드버그 안경테를 선호한다.
린드버그는 아시아 고객들의 요구를 이미 잘 알고 있고, 린드버그 또한 아시아 얼굴형에 맞는 컬렉션 또한 보유하고 있다.
물론, 일본과 한국, 중국과 같은 나라는 지역판매점이 있지만 여기 파리에서는 더 나은 가격으로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방문동안 부티크의 주인인 마담 Hervet씨는 어떻게 이 안경점이 개인 안경점에서 부터 독점 부티크가 되었는 지를 말해주었다.
모든 진심을 다해 메이드인 덴마크 브랜드를 사랑하게된 이 마법같은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전에 많은 디자이너 안경을 판매했지만 린드버그가 정말로 놀라운 브랜드임을 알자 마자 내 숍에서 린드버그 안경테만을 팔자고 결심했다.
나는 린드버그의 디자인과 퀄리티를 좋아한다.
소재는 독창적이고 충분히 견고해서 심지어 구부려져도 괜찮다.
시도해보라.
나사도 쓰이지 않았다.
인체 공학적으로 모든 안경테에 맞는 코받침대를 얼굴 위에 편히 둘 수 있어서 최대한으로 편안한 착용감을 끔 느낄 수 있다. 티타늄 안경대는 튼튼함과 견고함을 자랑하기 때문에 생활하면서 안경이 부러질 위험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편안함과 기능성이다. 우리 회사의 안경 전문가들 덕분에 안경을 쓰고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패셔너블하다. 브래드 피트같은 유명인이 린드버그 안경을 애용하고 있으며 또한 조지오 아르마니 같은 다른 유명 디자이너 또한 수년간 린드버그를 애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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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 수도권을 휩쓴 청소년 범죄 위기에 지역 지도자들은 어떤 정부 프로그램이나 기관도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복제할 수 없는 긍정적인 영향을 청소년에게 제공하기 위해 아버지와 아버지의 인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역구에서 11세 정도의 어린 무장 강도와 교외에서 운전자를 위협하는 10대 차량 강도는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정치인과 지역 사회 옹호자들이 특히 젊은 남성의 삶에서 아버지가 나서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를 없애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아빠는 특히 아들에게 세상의 부정적인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영향에 대한 갑옷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영향력이 아이의 삶에 없을 때 그 보호는 거기에 없습니다. 종종 아이는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이해에 의지할 것이고 종종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메트로폴리탄 경찰국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구의 청소년 체포 건수가 2021년보다 20% 증가했습니다. The imes는 데이터를 얻기 위해 조지 왕자의 경찰에 연락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프랭클린 씨는 지난 주말 어퍼 말보로에서 자녀의 삶에서 아버지의 존재의 중요성에 집중하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위한 집회를 조직했습니다. 메릴랜드 주지사 웨스 무어(Wes Moore)와 라디오 진행자 러스 파(Russ Parr)는 행사에서 그 주제를 강조했습니다. 연구는 메시지를 뒷받침합니다. 비영리 국가 아버지 센터(National Center for Fathering)에 따르면 아버지가 없��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가난하고 약물을 남용하며 학교를 그만둘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소년은 특히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프랭클린 씨는 “훌륭한 부성애를 입법화할 수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자녀의 삶에서 물러난 대부분의 남성이 준비되기 전에 아버지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어퍼 말보로 랠리의 목표는 아버지를 주택 및 직업 자원에 연결하여 자녀를 위해 참석하고 다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른 남성이 카운티의 멘토링 프로그램에 등록하도록 설득하는 것이었습니다. D.C.에 기반을 둔 Alliance of Concerned Men의 전무이사인 Tyrone Parker는 아버지와 멘토가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범죄의 삶이 약속하는 방향감각과 흥분을 가지고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영리 단체는 문제가 있는 청소년을 작업 프로그램에 모집하고 지역구의 경쟁 팀 간의 불화를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해결하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Parker 씨는 The Times에 잘못된 사람들이 너무 늦기 전에 십대에 도달하는 요령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년들이 "총은 많고 남자는 적은" 세상을 여행하고 사소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폭력이 너무 자주 사용되는 세상에서 소년들이 여행할 때 문제는 더욱 악화됩니다.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라고 Mr. Parker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커뮤니티에 참여하기 위한 보다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Mr. Parker의 비영리 단체는 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십대들에게 급여를 지급합니다. 십대들이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그들의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으면 그들은 또래를 위한 프로그램의 대사가 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지역 예술가이자 활동가인 Abdur-Rahmaan Kelly는 그것이 좋은 출발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십대들이 돈을 받지 못하면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수입원으로 범죄에 의존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5세의 D.C. 토박이는 금전적 인센티브 구호 단체가 거친 동네에 사는 십대들의 두뇌를 재배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Kelly 씨는 North Carolina 주립 대학에서 육상 경기를 하기 위해 Petworth에 있는 집을 떠나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이사했을 때 이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누군가가 그의 이웃에서 지속적으로 눈을 마주친다면 그것은 보통 문제를 의미한다고 그는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말했습니다. 남부에서는 일반적으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후드에서 오는 편집증은 특정 방식으로 작동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환경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습니다.”라고 Kelly는 The Times에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배운 많은 것들이 생존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자라면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The Times와 인터뷰한 모든 사람들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은 사법적 결과에 직면해야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한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민사상의 범죄이든 더 심각한 일이든 부모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소년들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Kelly 씨는 가족 중 12명의 자녀 중 한 명이었지만 전화를 끊으면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수준의 무결성을 유지하는 것은 Mr. Parker의 눈에 남성다움을 정의하며 다른 소년들에게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전염됩니다. "아무것도 없이도 모든 것과 똑같은 사람인가요?" Mr. Parker가 수사학적으로 물었다. "그게 내가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보는 것입니다. 장거리 달리기입니다."
Walt Nauta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그가 11월에 게시한 사진인 미국 국기 앞에서 짙은 세로 줄무늬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있는 깔끔한 전직 해군 남자의 웃는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 속 그는 너무 날카로워 보여 한 친구가 "Walt Nauta for President 2024!"라고 댓글을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달았습니다. 40세의 Nauta는 백악관에서 군 시종 및 트럼프 대통령의 충실한 개인 보좌관으로 복무했습니다. 그는 현재 6건의 범죄 혐의로 기소되어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하고 기밀 문서를 잘못 취급한 혐의로 기소된 유일한 사람으로 최대 90년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법무부는 Nauta 씨가 플로리다주 팜 비치에 있는 Trump 씨의 Mar-a-Lago 클럽에서 수사관들에게 문서를 은폐했으며 장기 조사에서 당국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Trump 씨와 다른 많은 사람들은 검사가 Nauta 씨를 기소하여 전직 대통령에 대해 증언하도록 강요했다고 말했습니다. 전대미문의 형사 사건은 월틴 토레 나우타가 태어난 남태평양 미국 영토의 마을인 인구 4900명의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괌 아가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친척들은 그를 자라면서 "좋은 소년"이라고 묘사했고 그는 2001년에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복무 기록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Nauta 씨는 대통령 급식 서비스의 일환으로 워싱턴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는 결국 트럼프 백악관의 군 참모 식당에서 복무했고 해군 계급을 거쳐 2021년 선임 수석 요리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트럼프는 나우타를 "몸매"라고도 불리는 그의 군사 보좌관 역할로 격상시켰다. 연방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기소장에 따르면 Nauta 씨는 Trump 씨가 백악관을 떠날 때 상자를 싸는 것을 도왔습니다. Nauta 씨는 20년 복무 후 해군에서 은퇴했으며 2021년 8월 Trump 씨의 개인 비서관이 되었습니다. 지인들은 Nauta 씨를 Trump 씨에게 철저하게 충성스럽고 신뢰할 수 있으며 겸손한 보좌관으로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묘사했습니다. 트럼프 백악관 변호사 타이 콥(Ty Cobb)은 “그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지명된 것이었고 슬프게도 그가 대리인으로 지명된 대통령은 트럼프였다”고 말했다. Cobb 씨는 Nauta 씨를 "충실한" 사람으로 묘사했으며 법적 곤경에 처한 그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월트가 헌신적인 애국자이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손쉬운 먹잇감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말했다. The Washington Times가 연락한 Nauta 씨의 지인들은 이 보고서에 대한 논평을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거부했습니다. 코브 씨는 트럼프 보좌관이 검찰에 협조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대해 “사람들이 그의 잘못된 충성심을 납득시키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깝다. 그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피고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 쏴야 하기 전에 너무 오래 동안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극인 것 같아요.” 괌에 있는 Nauta 씨의 친척 중 일부는 The Washington Post에서 연락을 받기 전까지 약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2주 동안 그의 기소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섬을 강타한 태풍으로 전기가 끊겼습니다. Nauta 씨의 이모 Elly Nauta는 Trump 씨에 대한 그의 서비스에 대해 신문에 말했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그에게 지시받은 것은 [문서 상자]를 있어야 할 곳에 두라는 것뿐이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Nauta 씨는 이번 주에 마이애미 연방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현지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변호사가 없었고 대신 6월 27일에 기소될 예정입니다. 한편 판사는 그에게 다른 증인과 이야기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대법원은 목요일 인디언 어린이가 일반적으로 부족에 배치되어야 한다는 연방법을 지지하는 판결로 아메리칸 인디언 어린이를 입양하기를 희망하는 비인디언 가정의 도전에 맞서 싸웠습니다. 7-2 판결은 부족 어린이를 지역사회 밖으로 데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인도 아동 복지법이 의회의 권한을 넘어서고 판사가 아동을 부족에 배치하도록 강제함으로써 헌법의 수정헌법 10조를 위반한다는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그것이 아이에게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지 마십시오. “인디언에 관한 의회의 입법 권한은 확고하고 광범위합니다. 그 범위와 일치하여 우리는 형법, 가정 폭력, 고용, 재산, 세금 및 무역을 포함한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입법할 수 있는 의회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고등법원은 주정부가 인도인 배치가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 아니라고 느끼는 경우에도 해당 법이 적용되는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7명의 재판관 다수는 이 법이 적용된다고 말했습니다. Barrett 판사는 연방법이 수정헌법 10조를 위반하여 주를 지휘하고 있다는 주장을 기각했다고 말했습니다. Clarence Thomas 판사는 반대했습니다. 그는 법원이 부족의 땅에 살지도 않는 사람들이 관련된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국가 결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부족에게 특별한 배려를 허용하는 데 너무 지나쳤다고 말했습니다. “헌법은 연방 정부에 열거된 권한을 부여합니다. 그들 중 어느 것도 ICWA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선례도 없습니다.”라고 Thomas 판사는 말했습니다. 그는 다수의 편협한 판결이 법에 대한 더 많은 도전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Samuel A. Alito Jr. 판사도 반대했습니다. 그는 부족에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의회의 결정이 어린이의 최선의 이익을 짓밟는다고 말했습니다. 알리토 판사는 "인디언 문제 분야에서 의회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든 부족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취약한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어린이의 최선의 이익을 희생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법원에서의 입양은 어려운 질문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주요 사건은 소년이 나바호 어머니와 체로키 아버지가 있고 부족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Navajo Nation의 반대에 대해 소년 Zachary를 입양한 Jennifer와 Chad Brackeen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Brackeens는 그 입양에 성공했지만 나중에 Zachary의 생물학적 자매를 입양하려고 시도했을 때 Navajo Nation과 충돌했습니다. 또 다른 사례는 생부의 지원을 받아 갓난 딸을 위해 양부모를 선택한 Altagracia Hernandez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소녀를 회원으로 등록하고 입양에 맞서 싸운 Ysleta del Sur Pueblo 부족의 구성원입니다. 또 다른 사례는 위탁 양육 배치, Child P, 그녀를 입양하기를 원했던 Jason과 Danielle Clifford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Ojibwe의 White Earth Band는 소녀가 부족원이 아니며 초기 배치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부족은 입양이 일어나자 입장을 바꿔 소녀를 등록시키고 그녀를 부족에 넣기 위해 싸웠다. 법원은 소녀를 전과가 있는 외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수요일 법원의 판결이 수세기에 걸친 학대에 대한 해독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원주민 아이들은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서 빼앗겼습니다. 그들은 기숙 학교에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보내지거나 비인디언 가정에서 양육되었습니다. 모두 원주민과 부족 시민으로서 자신을 지우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원주민 어린이 세대에 영향을 미치고 부족 국가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형언할 수 없는 잔인한 행위였습니다. 인도 아동 복지법은 우리 국가의 약속이었습니다. Kamala Harris 부통령은 연방법이 "조직적 불의"를 다루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족 지도자들은 이번 판결을 그들의 유산과 문화에 대한 승리로 환영했습니다. Cherokee Nation의 수석 추장인 Chuck Hoskin Jr. Morongo Band of Mission Indians 회장 Charles Martin; Oneida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Nation 회장 Tehassi Hill; Quinault Indian Nation의 Guy Capoeman 대통령은 공동 성명에서 말했습니다. Merrick Garland 법무장관은 인디언 아동 복지법이 거의 45년 전에 미국 인디언 어린이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법무부는 대법원에서 이 법령을 강력하게 옹호했으며 인도 아동 복지법을 계속 지지하고 부족 공동체를 보호하고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부족의 주권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입니다.”라고 Garland 씨는 말했습니다. 목요일에 결정된 별도의 법적 분쟁에서 판사는 파산 사건에 대한 부족 주권에 제한을 부과했습니다. 한 남자가 부족이 운영하는 급여 담보 대출 기관으로부터 1,100달러를 대출받은 후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부족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1356회 1356화 무료 보기 사업은 수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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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정책주' 제일바이오 상한가...지분 증여한 대주주 '난감'
민법 개정…”동물은 물건 아냐” 오너 일가 8억 주식 매도…증여세 부담 커질듯 제일바이오 주가 흐름 [자료=네이버 증권]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영향일까. 여야가 ‘���물은 물건’이라고 규정한 민법 개정에 합의했다. 그러자 11일 동물 약품을 만드는 제일바이오 주가는 상한가까지 치솟았다. 본격적인 반려동물 친화 정책이 나오리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 그러면서 제일바이오가 수혜주로 떠오른 것이다. 제일바이오 입장에서는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심광경 제일바이오 회장은 지난달 제일바이오 17.57% 지분을 부인과 세 자녀에게 증여했다. 부인 김문자씨와 두 딸(심윤정, 심의정)은 긱각 제일바이오 5.01% 지분을 받았고, 장남 심승규 전 제일바이오 대표는 2.51%를 받은 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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