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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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의 문학적 의미
소설 계약은 현대 문학의 전형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작품이다. 이 글은 감옥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인간 내면의 심리적 감옥을 교차시키며, 자유와 속박, 예술과 생존, 그리고 도덕적 타협의 복잡한 갈등을 탐구한다. 작가는 교도소라는 배경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예술적 창작이 어떻게 생존의 도구이자 구원의 통로로 작용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수필에서는 계약의 문학적 의미를 세 가지 주요 주제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예술과 생존의 거래, 사형수와 작가의 상호 의존성, 그리고 도덕적 경계의 붕괴.
예술과 생존의 거래
계약의 중심에는 예술과 생존 사이의 불가피한 거래가 놓여 있다. 화자인 무명 작가는 경제적 궁핍과 예술적 인정에 대한 갈증 속에서 교도소라는 비정상적인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는 재소자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 과정에서 단순한 생존을 넘어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재정립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이는 문학이 더 이상 순수한 창작의 영역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거래는 화자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한다. 특히 사형수의 글은 그의 창작에 강렬한 불씨를 지핀다. 이는 예술이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도 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그 영감이 타인의 고통에서 비롯된다는 윤리적 딜레마를 제기한다.
사형수와 작가의 상호 의존성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진 관계는 화자와 사형수 여성 사이의 상호 의존성이다. 사형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자 하고, 화자는 그녀의 재능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부활을 꿈꾼다. 이 관계는 단순한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넘어,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공생으로 발전한다. 사형수의 글은 놀라운 문장력과 생생한 감정으로 화자를 매혹시키며, 이는 그가 잃어버렸던 창작의 열정을 되살린다. 반면, 사형수는 화자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길 기회를 얻는다. 그녀의 죽음이 다가올수록, 이 계약은 더욱 긴박해진다. 화자는 그녀의 사형 집행일을 "소설이 새롭게 태어나는 날"로 묘사하며, 그녀의 죽음을 자신의 예술적 승리로 전유한다. 이는 문학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떻게 의미를 창출하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착취의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도덕적 경계의 붕괴
계약은 도덕적 경계의 모호함을 탐구하는 데서 가장 강렬한 문학적 힘을 발휘한다. 화자는 사형수의 재능을 탐욕스럽게 갈망하며, 그녀와의 육체적 관계를 통해 계약을 완성한다. 이 행위는 단순한 욕망의 표출을 넘어, 예술적 소유와 도덕적 타협의 상징으로 읽힌다.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녀의 죽음을 자신의 성공으로 전환하려 한다. 이는 예술가가 창작의 이름 아래 어디까지 타인의 삶을 이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형수의 범죄—가족을 살해한 방화 사건—역시 도덕적 판단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녀의 순수해 보이는 외양과 섬세한 문장력은 그녀의 죄와 대조를 이루며, 독자로 하여금 그녀를 단죄할 것인지 연민할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이 모호함은 인간 본성의 양면성과 문학이 그 양면성을 포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결론
계약은 예술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조건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작품이다. 교도소라는 극단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예술이 생존, 구원, 그리고 착취의 도구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문학의 다층적 의미를 탐구한다. 화자와 사형수의 계약은 단순한 거래를 넘어, 삶과 죽음, 자유와 속박, 그리고 도덕과 욕망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학적 실험으로 확장된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며, 예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되묻는다. 결국 계약은 문학이 인간의 가장 깊은 갈등을 반영하는 거울임을 증명하며, 그 거울 속에서 우리 모두의 모습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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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duteurtre.com/category/romans/la-petite-fille-et-la-cigarette/ )
두 개의 원문 모두 재고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결론이 정반대라는 점만 빼고. 국가법에 따라 사형수 데지레 요한슨은 형집행 전에 형벌시행법 제47조항을 내세워 본인의 당연한 권리만을 주장했다. 그 옆에 있던 교도소장 쾀 라오 칭씨는 그에게 이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내부규정 제176조 b항을 엄격히 시행했다. 시민의 건강을 지키자는 협회의 압력에 의해 급하게 제정된 이 부칙 조항은 교도소 울타리 내에서의 흡연을 금지하고 있었다. 사형수의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은 잔혹함의 정제된 형태로 보지 않는다면 확실히 난처해질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로운 이런 조치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았다. 이와는 다른 관점을 대변하는 제47조항은 비록 그 효력이 일시적으로 상실되었지만 죄수들에게 명백한 방식으로 최후의 의지를 내뿜을 수 있는 담배 몇 모금을 허락했다. (p7)
"요한슨 씨, 부탁드립니다만 이 교도소의 내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최후의 의지를 표명해주셨으면 합니다." (p8)
"딱 한 대만 피우면 됩니다. 전 그럴 권리가 있는 걸요, 소장님." (p10)
"저는 그저 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을 따름입니다." 점점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간수와 원고 측 변호인 그리고 피고 측 변호인 사이에 있던 요한슨이 한번 더 말했다. (p12)
"교도소장 님, 우리는 지금 형 집행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 사법적 전례가 없는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대법원의 의견을 알아봐야 합니다." "헛소리는 집어치워요!" 그녀의 적수가 되받아쳤다. "항소는 기각되었어요. 대법관께서는 형을 감면해주지 않았소이다. 법적으로 저 남자는 이미 죽은 몸이에요!" 주름진 이마에 안경을 쓴 대머리 남자는 인텔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인문학 교수일 거라 쉽게 단정지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내겐 이 대기실 안에서 숨 죽인 채 기다리고 있는 피해자 가족이 있습니다. 부모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고요. 십 년 전부터 저 비열한 작자가 경련을 일으키며 죽음의 첫 테이프를 끊기를 기다려온 상처 투성이 가족이 있단 말이오!" "난 말입니다. 내가 요구하는 건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이 전부입니다." (p16)
데지레 요한슨은 간수를 따라 죽음의 복도로 나갔다. 그 복도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 사람은 그가 최초였다. 그럼에도 그는 삶을 향해 뒤돌아선 그 순간, 타인이 일부러 그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듯 투덜거��다. "아무튼 전 대단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p21)
인솔교사들은 전혀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도리어 새로운 승객이 다른 사람들을 밀어붙이고 들어올 때마다 원을 그리듯 버스 안을 힐끗 돌아보며 아이들이 자기 자리에 안전하게 잘 앉아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다. 꼬마들을 보호하기에 안성맞춤인 그녀들은 버스 좌석에 대해 우선권이 있는 노인들을 특별 대우할 만한 이유를 도통 알지 못한다. 어린이들이 어른보다 존경받는 그런 머나먼 시대를 떠올리는 건 오직 나뿐인가? 아무튼 나는 이토록 버릇없는 태도의 피해자인 어른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소란스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정말로 인정해야 한다. 몇몇은 아이들에게 호감을 보이려고 미소를 짓고 손짓을 보낸다. 또 제일 무모한 사람들은 학교에서 무얼 했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이름은 무언지, 어디 사는지를 묻는다. 그 밖의 사람들은 잊은 것처럼 보인다. 하루 업무에 지친 몸, 스트레스 받은 영혼. '성인들'은 이 유치한 군중을 다시 소생하는 종의 이미지이자 살아 남게 될 인류의 이미지, 세상의 미래라는 가슴 뭉클한 이미지라도 되는 듯 지켜본다. 그리고 이런 생각으로 자기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 앞에서 기운을 차리는 것 같다. 이처럼 솟구치는 사랑과 마주한 두 교사는 자기들의 거친 태도를 버리고 어른들 세계와 아이들 세계 사이의 중재자라도 된 듯 버스 한가운데에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용감하게 고개를 치켜든다. (p26-27)
아이들의 등장이 대부분의 사람들을 부드럽게 만들지는 몰라도 타인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걸 맞춰주면서 우리의 권리는 거부당한 일, 그리고 이제부터는 우리가 자기들 집에 있는 거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이들이 드러낸 거만함,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영원한 굴욕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 아이들을 쳐다보는 일을 애써 피하고, 그들의 질문에 답하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비웃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여러 명의 피해자를 냈던 보조교사들의 지속적인 감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절차는 매번 똑같다. 아이들을 향한 적대적인 태도는, 결국엔 어린아이들에게 위험한 모든 잠재적 요소란 요소는 전부 다 근절시키려고 눈에 불을 켠 인사과에 끌려가 ���의를 받는 것으로 끝이났다! 지난 육 개월 동안 열 명가량의 용의자들이 예방 조치에 의해 사무실 바깥으로 전근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시 직원들은 자기들의 젊은 신도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이상이 내가 매일 저녁 행정도시를 나와 귀가하면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지옥이다. 버스에서 일어났던 하찮은 사건을 참을 수 없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미 나의 하루를 망쳐버린 조무래기 애들 집단이 계속해서 계단에서, 길에서, 버스에서, 곳곳에서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악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게 된 상태까지 악이 퍼진 것처럼. 왜냐하면 이제부터 이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법을 대표하니까. (p35-36)
"우리가 보기에도 그 방법이 사형에 관한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이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담배반대론자들이 공포를 퍼트리는 이런 청교도적인 세상에서 인간의 최후 의지란 너무나도 순진하게 담배 한 대를 피우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강조하면서 만족했으면 합니다. 감동의 어록에 남을 멋진 메시지니까요." "좋아." 목소리 하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자네가 좋든 싫든 간에 이 모든 사태는 범죄자-담배-사형이라는 상징적인 삼각관계를 더 강력하게 만든다네. 그리고 그건 담배 시장을 놓고 볼 때 당연히 나쁜 일일세." (p53)
"그러니까 이 경우 사형수 데지레 요한슨은 자신의 최후의지를 행사할 권리가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선택대로 담배 한대를 피울 수 있으며, 담배는 교도소장이 제공하도록 한다. 또한 교도소장은 교도소 건물 내에 합법적으로 상주하고 있는 담배반대론자들과의 합의를 위반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다른 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요한슨의 최후 의지 실행을 사전에 분명히 알리고 여기에 준하는 흡연 구역을 (교도소 울타리 안쪽이나 바깥에) 정비해야 한다. 최후의 담배가 다 타자마자 데지레 요한슨은 그에게 언도된 사형 선고에 의거해 죽음의 주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p62)
먼 훗날 내 실존에서 가장 험난한 시기인 삼십대가 되어서까지, 정확히 열세 살짜리 중학생이 하는 것과 똑같이 담배를 태우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찾아다니고, 현행범으로 잡히지 않으려고 빗장을 지른 대문 뒤 환기가 충분히 잘 되는 장소에 틀어박히게 될 거라고 내가 짐작이나 했을까? 어렵사리 쟁취한 이런 자유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란 명목 아래 혹독하게 억압받으면서 그토록 빨리 무너질 줄이야 상상이나 했을까? 상대적으로 자유롭던 시절이 지나간 후, 요새 아이들은 언제나 자기들에게 더 많은 권리가 베풀어지는 걸 보는 데 반해, 내 사회생활은 금기와 함께하는 유년 시절로의 회귀로 ���이되리란 걸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p64)
난 정말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이 뭔지 말할 수가 없다. 어느 날부턴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어하기 시작했다. 별안간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을 따라다니며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욕구에 이상적으로 맞춰진 세상을 건설하여 마침내 자기 안에 숨겨진 어린아이를 되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란 없는 듯싶었다. 꿈은 뒤집혔고 어른들은 청춘을 두 번 다시 다다를 수 없는 이상적인 모델로 바라보았다. 이를테면 자발성, 순수함, 산뜻한 피부, 까딱없는 건강 등이 그랬다. 텔레비전에서 리얼리티 쇼가 처음으로 방송됐을 때 출연자들은 이미 자신의 모습이 더 이상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반대로 이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기숙사의 공동 침실에서 잠들며 시시한 일로 싸우고 그런 다음 서로 입맞춤을 나누며 공개적으로 용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초등학교 같은 곳으로 자발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어른들의 우스꽝스런 강박관념에서 해방된 이들은 대중을 향해 자신들의 단순함을 전시했는데, 그 대중이란 광고 시장의 주요 고객인 어린이들 이 주를 이루는 텔레비전 시청자였다. 아이들은 사회의 꿈이 되었으며 사회의 속박을 견뎌내도록 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마치 우리가 성년을 꿈꾸며 유년 시절을 견뎌냈던 것처럼.. (p65-66)
작년까지는 그래도 흡연실 몇 군데가 행정도시 울타리 안에 마련되어 있었다. '일찍 죽을' 사람들은 직장동료들의 멸시의 시선에 과감히 맞서 싸우고 나서 마치 범법자처럼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하지만 놀이방이 빌딩 구석구석까지 확대된 후부터는, 그리고 그 어린이들이 이 집에서 최고의 특별 대우를 받는 손님이 된 후부터는 독한 담배를 조금이라도 허용하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많이 해칠 수 있는 존재였다. 우리는 그저 문학교수 자격을 갖춘 사람, 법학사, 한 가정의 가장, 양심적인 공무원 따위에 불과한 가련한 패거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조무래기들이 니코틴 중독에 단일 초라도 노출되기라도 하면, 그때엔 질문 사절! 전면 금지! 우겨봤자 소용없다! 흡연자들은 차라리 이번 기회에 자기들의 악습을 고치고 중독을 치료할밖에. (p67)
정확히 바로 그때, 화장실 문의 손잡이가 구십 도 돌아간다. 난 우월감에 휩싸인 채, 내가 볼일을 끝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 불청객을 거만하게 경멸해본다. 그리고 강력한 도전의 의미로 새 담배를 꺼낸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문이 반쯤 열리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소심한지, 내가 빗장을 불완전하게 당겨서 걸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허를 찔린 나는 그 순간 조막 만한 손 하나가 나타나는 걸 본다. 이어 안경을 쓰고 구름같이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나를 쳐다보는 다섯 살짜리 소녀의 어리벙벙한 표정과 맞닥뜨린다. 현행범으로 딱 걸려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가 된 나는 고작 어린애일 뿐이니까 겁먹을 필요 없다고 판단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기서 당장 나가! 사람이 있는 걸 보고도 그래!" (p81-82)
괴물은 도처에 깔려 있다. 문 밑으로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오더니 지금은 라티파의 머릿속에까지 들어가 있다니! 신경질이 난 나는 도통 잠을 청할 수가 없어 침대 옆 머리맡 스탠드를 켜고는 오늘 아침 시간이 없어 읽지 못했던 [자유주의 전신]을 집어든다. '제일 첫' 페이지를 장식한 이번 주 특종은 대법원이 결국 사형집행 전 데지레 요한슨에게 최후의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고 판결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이 뉴스가 도리어 날 기쁘게 해준다. 불법 흡연자라서 조마조마했던 내 불안한 마음에 희망의 서광이 비치면서 긍정적인 전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p85)
진정한 위험은 두려울 게 하나도 없다고 확신하는 순간에 찾아든다. 소심하고 자신 없는 성격인 나는 겸허한 승리를 향해 신중하게 전진한다. 그러다가 내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드는 충만의 순간에 꼭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우스꽝스러운 일이 나를 덮치고야 만다. 이미 수도 없이 경험한 일이다. 처음에는 불쑥불쑥 솟아나는 자신감과 승리감을 경계하며, 더 이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쩨쩨하게 겸손하게 소심하게 처신하지 말라고 귓가에 속삭이는 간사한 목소리를 뿌리친다. 그러나 결국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꼬드기는 그 목소리에 넘어가 독 오른 향기에 취하고 만다. 나는 영광의 길로 의기양양하게 나아간다. 하잘 것 없는 걱정거리는 잊기로 마음먹고. 바로 그 순간 쓰레기통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진 것이다. (p86)
난 점잖은 제스처로 동료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귀가했다.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했는데도 이렇게 낭패를 보게 되어 속상하고 분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몇 년 전부터 난 주위의 광기와 시대의 폭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써왔다. 난 차도 없고 자식도 없고 텔레비전도 거의 보지 않으며, 내 의사에 반해 나를 보호해주려는 사람들의 말도 못 들은 척해왔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내일, 내 사랑, 그리고 감미롭게 지켜온 우리의 인생에 헌신하기 위해 이런 속박 들을 잊고자 발버둥쳤다. 그런 모든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광기는 기어코 나를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어쩌다 내가 인력개발부 부장에게 발목이 잡혀 가면이 ���겨졌는지, 어쩌다 안 좋은 일에 말려들어 내 커리어가 이렇게까지 위태로워졌는지, 어쩌다 내 얼굴이 납빛으로 물들게 되었는지를 라티파에게 이야기하자니 정말이지 너무나 망신스러웠다. 나를 불신하는 시장이 공개 회의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 나를 반박할 좋은 패를 얻은 셈이었다. 이렇게 말이다. "도시의 오염과 국민들의 폐를 걱정하기 전에 화장실에서 흡연하는 것부터 당장 중단하세요!" (p94-95)
"오늘날 요한슨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 사태로 인해 야기된 논쟁 가운데 특히 미묘한 사안 중 하나는 바로 한 인간의 삶에서 그 마지막 순간을 공개적으로 방송할 권리가 있냐는 겁니다. 우리는 마렌 파타키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사형수는 승낙했다는 걸 지적하고자 합니다…… 그렇기는 하나 교도소의 행정권이 이번 미디어 플레이에 반기를 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담배반대연맹 측에서는 법원의 결정이 결국 금지된 담배 광고의 편을 들면서 디스플레이 광고의 구실을 제공한 격이라며 애석해하고 있습니다……" (p115)
이 마지막 문장을 말하면서 미샤는 마치 스펙터클이 시작되었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요한슨이 죄수복을 입은 채 호송차량에서 내려온다. 죄수복은 달랑 천 한 장을 가지고 재단한 오렌지색 헝겊처럼 보인다. 전 시청자들이 요한슨의 넓은 어깨와 레게 스타일로 땋은 머리, 그리고 커다란 초록빛 눈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만족스런 표정이 역력한 그의 자신만만한 얼굴은 카메라 렌즈를 찾는 것 같더니 이내 카메라 앞에 멈춰 선다. 이제 요한슨에게서 어리둥절한 사형수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관객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승리의 제스처로 무겁게 수갑이 채워진 양손을 번쩍 쳐 든다. 사형 집행 시각이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었다는 만족감이 사형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 것처럼 보인다. (p116-117)
며칠 동안 변호사를 유명인사와 공유한다는 생각이 나의 사기를 다시 북돋아주었다. 게다가 파타키 변호사의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가진 우리의 첫 면담 때 그녀는 내 운명에 대해 확고한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내 사건은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심각한 결과가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난 그녀가 엄마 같은 미소로 절박한 나의 질문을 잘라먹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흥분하지 마세요. 아무 소용 없���니다!" 그녀는 라티파를 쳐다보며 여자들끼리만 공감할 수 있다는 말투로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의 남자친구를 보니 꼭 열두 살 난 제 아들 같군요. 그 앤 언제나 초초해하고 늘 답을 알고 싶어 안달이 나 있죠!" 그녀들이 주고받은 웃음이 불쾌한 소음처럼 내 신경을 건드렸다. (p130)
오직 살아남기 위한 본능만이 날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내 상황은 끔찍했다. 고위급 신분에다 잘 나가던 백인 지식인, 그리고 이동이 자유로운 한 성인 남성에서 단번에 법에 따라 투옥된 한 명의 죄수 신분으로 추락한 것이다. 일정표와 규율에 따라 나의 기본권은 갑자기 박탈되고, 일상의 햇살도 빼앗겼으며 동료 수감자들로부터 가혹 행위의 위협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겉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변호사 비용과 피해자 보상으로 인해 파산한거나 마찬가지인 내 모습도 그려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이성을 잃거나 자살하기도 한다. 특히 예심에서 가장 악질인 아동 범죄가 언급됐다는 사실만으로 범죄자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등급으로 분류되면 당신은 어떤 형태의 동정이나 연대감도 얻지 못할 것이다. (p139)
이런 덫에 걸려들면서 나는 내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낄 시간조차 없었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또 다른 긴박함에 몽땅 다 소진되었다. 나는 내가 왜 그곳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음으로써 무법자들의 힘으로부터 달아나야만 했다. 바깥에서 이력서를 보여주는 것과 똑같이 자신의 범죄를 과시하는 이곳에서 그렇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머뭇거리는 걸 알아챈 간수들이 나 대신 모든 죄수들에게 얘기를 하고 말았다. 아무튼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후 내가 교도소 마당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대여섯 명의 수감자들이 모여서 나를 걱정스럽다는 듯이 힐끔거렸고 난 완전히 혼자가 되어 화단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호각 소리에 그들은 흩어졌지만 내 곁을 차례로 지나가며 마치 차디찬 칼로 자르듯이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고 안부의 인사말을 귀에다 속삭였다. “널 죽여버릴 테야, 더러운 아동 성추행범!" (p140)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난 내가 아무런 향수도 없이 이 동네로 돌아오고 있단 걸 깨닫는다.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오늘 보니 다 사라진 것 같다. 대신에 각종 브랜드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유제품 장수, 생선 장수 그리고 장인의 아틀리에, 야간 술집과 새벽 레스토랑, 어두운 길거리와 먼지 쌓인 골동품 가게, 동네 극장…………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옷 가게와 옷 가게, 그리고 또 옷 가게만 보이고 그 외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지구 끝에서 끝까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해빠진 특산물을 자랑스럽게 진열해놓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보다 형편이 조금 더 나은 사람들을 위한 패스트푸드점 (그렇게 패스트푸드가 전통 요리로 둔갑한다), 전적으로 주말과 업무스케줄에 따라 조정된 생활 리듬, 자정 이후에 문 닫는 술집, 장소를 불문하고 금연이며, 장소를 불문하고 확대되어가는 아이들�� 권리 집 근처에 있는 한 초등학교 앞 작은 교차로에는 차가 한 대도 없는데도 빨간 신호등을 무려 여덟 개나 세워놓았다). 한마디로 세상의 여왕 같은 도시 중 하나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 지방 도시에 버려진 세심한 편의시설이다. 난 이런 것들을 내가 타고 있는 죄인 호송차 안에서 깨닫는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사태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내가 대단한 걸 잃은 건 아니라고, 단지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p172-173)
"아뇨, 그건 가혹함의 문제입니다. 내가 볼 땐 아이들은 아주 기본적인 반응만 보이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먹고 울고 자고 거의 기계적인 방식으로만 행동할 뿐 다른 건 생각하지 않죠. 노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은 이미 죽음에 익숙해져 있으며 그로부터 휴식을 기대합니다. 여자들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죠. 그들은 평등을 얻었습니다. 난 우리가 왜 그들에게 특권을 더 부여해야 되는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건 아니죠. 내 생각엔 제일 지지가 필요한 사람은 마흔 살이나 쉰 살의 남자, 그러니까 성인 남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경멸하기 때문에요. 성인 남자들은 여전히 인생을 사랑하지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적 능력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상사들은 벌써부터 이들을 갈아치울 생각을 하죠.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젊은 사람들이 도처에 줄을 섰습니다. 전처들은 이들을 별거 수당을 지불할 때에만 쓸모 있는, 아주 성가신 존재로 여깁니다. 자식들마저 이들을 완전히 구닥다리로 여기죠. 비서로 말할 것 같으면, '성희롱'으로 고소해서 돈이나 뜯어내려고 되도 않은 미소를 흘릴 날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죠…… 일생 동안 모든 게 절정에 달했다가 무너집니다. 난 이보다 더 나약한 인간 조건의 상징을 보지 못했어요." (p175-176)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과 관심이 너무 많은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연결되는 어떤 부분이 있습니다. 또 우리로부터 달아나고자 하는 사람과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가끔은 순리에 어긋나는 충동을 느끼는 사람 사이에도 어떤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p188)
"할머님! 내가 어렸을 땐 아이들이 나이 많은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났어요!" "피고, 당신은 발언권이 없습니다." 의장이 퉁명스럽게 말을 잘랐다. 의장 옆에 있던 검사 레덕이 사람들을 보며 비꼬는 듯한 말을 한마디 던진다. "저는 피고가 어떤 시대를 언급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런 대단한 시대에 행해졌던 교육이 이루어낸 폐해의 사례를 보고 계십니다!" (p190)
"내가 한 일은 담배를 피운 게 전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계속해서 정적이 감돈다. 어떻게든 날 쓰러뜨리고 싶어하는 내 변호사가 지켜보다가 이렇게 얘기한다. "아무튼 그것도 아이들의 건강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지 않는 거잖아요!" "하지만 왜 너희들은 내가 아이들을 존중해주길 원하지? 아이들이야말로 나를 존중해야지!" (p199)
"선생님, 우리는 당신의 유죄 여부에 대해서는 성인 법정에 넘길 겁니다. 그게 그들의 소관이니까요. 우리는 담배 문제 역시 그들에게 넘길 생각입니다. 당신은 어쩌면 가장 타락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당신이 사람으로서 약간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란 법은 없을 테지요. 더구나 당신은 적어도 한번쯤은 어린이에 대한 존중심과 싹트기 시작하는 생명에 대한 지지를 천명함으로써 당신의 죄를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왜 당신은 데지레 요한슨의 너그러운 태도에서 영감을 받지 않나요? 모두가 그 사람을 범죄자라고 생각했지만 데지레는 '인생 만세'란 말을 할 줄 알았잖아요? 그런 행동으로 인해 그는 자유를 얻을 만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유를 가질 만한 자격을 얻고자 무엇을 할 겁니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나는 요한슨과 내가 무엇이 다른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엔 그건 바로 논리적 오류로 이어지는 순수함에 대한 숭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논리를 가지고는 내가 점점 내 무덤을 파는 꼴이 될 뿐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오직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p200)
그래, 그녀를 돕는 건 나에게 달렸다. 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도 나에게 달렸다. 그녀의 제일 유명한 의뢰인이 그랬던 것처럼. (p202)
수갑을 벗은 죄수는 추기경을 따라 주교와 대주교들의 초상화를 걸어놓은 천장 높은 방으로 들어갔다. 두 남자는 커다란 통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한 수녀가 쟁반을 들고 들어와 차를 대접했다. 이어 성직자가 자기 주머니에서 필터 없는 골루아즈를 한 갑 꺼내더니 죄수에게 한 개비 건넨다. "나는 이런 유의 사건에서 터무니없는 거짓말과 불쾌하게 과장된 수많은 사실들이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단 걸 잘 알고 있어요. 그건 우리처럼 교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고통스러운 경험이지요." (p212)
"요즘 부강한 나라의 어린이들은 제가 보기에 참 감수성이 예민한 것 같습니다!" (p213)
"우리도 윤리란 게 있어!" 비록 죄수의 의지와는 반대였지만, 이런 테러리스트의 행동을 여론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이같은 배신에 놀란 사람은 오직 죄수의 여자친구뿐이었다. 그녀는 그에게서 전해받은 유언장 원문을 신문에 발표했다. 유언장에는 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까닭과, 인질 중 "마흔에서 예순 사이의 남성"을 선택한 이유들이 적혀 있었다. 그런 신념이 천명되자 그의 평판은 더욱 나빠졌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일종의 도발로 여겼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동범죄 용의자인데다 중형이 거의 확실시되는 주제에 구해낼 인질을 선택하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에 굉장히 격분했다. 그를 영웅으로 변신시키려 했던 사람들은 틀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테러리스트들이 타락한 와중에도 새 인질에게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도덕심을 보여줬다는 것에 대해 자축까지 하고 나섰다. (p220-221)
[옮긴이의 글폭력도 쇼가 되는 현대문명의 잔혹한 죽음의 무도한지선]
『고객서비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녀와 담배』의 주인공 '나' 역시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횡포와 싸워보지만 끝내 패배하고 만다. 그것도 아주 무참히 짓밟힌다. 소설의 전반부에는 담배를 피우려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나 처절하여 차마 웃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지만 작품은 차츰 이상하게 흘러가 종국에는 끔찍하기만 하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듯한 작가의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가 더욱 그러한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책을 덮을 때 즈음이면 앞서 자리한 유머보다는 충격과 공포가 더 크게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대체 뒤퇴르트르가 이처럼 커다란 절망만 보여주는 건 무슨 까닭일까. 그는 '아이들'에 대한 무조건적 숭배와 청정하고 건전한 삶을 외치는 현대의 구호 이면에서 현대인의 심각한 자기기만과 위선을 보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이런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야 없겠지만 그가 이 소설을 통해 이른바 우리가 현대문명이라고 일컫는 것의 음산한 그늘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 해보인다. (p234-235)
브누아 뒤퇴르트르 , ' 소녀와 담배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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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범죄 후 지금까지의 6천년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 시간표에서 '0(제로)', '백지/白紙'의 시대 연속이었고 오직 <새 창조>만이 ���의미, 오직 그 기록만 남을 것
사탄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안되는데 맨눈의 <성경>으로 세상울 인식해야 하는데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성령)은 수면(물 위)에 운행(움직임)하셨다"(창 1:2). "물이 있으라" 하시지도 않았고 "땅이 있으라" 하시지도 않았고 단지 땅이 물에서 "드러나라"고만 하셨고 기존의 물을 나누시어 "하늘이라 칭/稱하셨다"고만 되어 있으니, 기존의 물에 기존의 땅이 풀어져 있었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 했으니, '이전 창조'의 세계가 '와해'되어 있었던 것이 명백하다. 그 당시 창조되었던 계명성(새벽별)들 중 그룹(cherub) 하나가 범죄했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던 것.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6일 창조".
지금은 영물/靈物들의 일���와 아담(인간)의 범죄로 그 '6일 창조'는 다시 '와해'되고(그 이전 세계는 '물'로 망하고 지금 세계는 '불'로 망하게 예정되어) 그래서 성경에 예언된 대로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계 21:1)이 대기 중인 것. 이상은 '망하는 세상'과 '망하지 않는 세상'과의 대칭이니, 망하는 세상은 '물로써 망함'과 '불로써 망함'으로 대칭되고, 망하지 않는 세상은 다음 말씀에 해당되니 곧 "나 여호와가 말한다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사 66:22).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이 "6일 창조"는 "새 하늘과 새 땅" 창조 이전의 "혼돈", "공허", "흑암", "깊음", "물"(천하가 다 노아 홍수 당시와 같은 물 바다)로서의 참담 그 자체임을 똑바로 직시/直視해야. "6일" 창조 이전의 "혼돈", "공허", "흑암", "깊음", "물"이었던 그 패턴(pattern) 그대로에 해당되는 것 외 아무 의미가 없으니, 20세기 이후 소위 "찬란한 과학 문명"이란 것은 한낱 주검(송장) 위에 색동 비단 치마 저고리 입혀 놓은 것과 같을 뿐임. 죽음이니까 죽음 일색일 따름이지 그것이 만년을 간다 한들 생명일 수는 없으니까!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러한 부자연, 부자유의 허망한 동물적 육체뿐만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이름으로 나오지 않는 그 무엇이든 다 철통 같은 악령들의 지배, 간섭, 통제에 포로되어 꼭두각시로 움직이는 일거수일투족이라는 비극적 실상인즉 이 어찌 "혼돈", "공허", "흑암", "깊음", "물구덩이"가 아니리요! 실상을 제대로 안다면 365일 24시간 통곡과 애처로운 흐느낌으로만 날을 보내고 밤을 지샐 일이다. 악령들에게 눈이 감겨 깜깜하여(행 26:18) 지척울 분간 못하니 악령들이 속이고 몰아가는 그대로 희희덕거리고 원수들의 장단에 놀아나는 비극만의 연출인 것이다! 이것이 일말의 거짓 없는 지금까지의 인류사 6천년 세월의 실제의 맨모습(실상)인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담이 범죄하지 않아 정상 상태로 "6일 창조"가 지속되어 나간다 해도 아담 후대의 일부 인간들 및 영물(스랍과 그룹이 아닌 에덴 동산에서 아담을 보좌하도록 창조하신 "천사")들의 일부(지금의 사탄 일당처럼) 범죄는 필연일 것이니 어차피 '불로 망할 세상'임은 정해진 것이나, 문제가 된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아담 자신이 범죄하여 죽어버리는 서슬에 현재와 같은 6천년의 대형 사고로 홍역을 치르는 것이다. 허나 그 기한도 드디어 끝나 우리의 구원자(예수) 주님이신 "마지막 아담"께서 세상에 다시 오심으로써 비로소 아담 통치가 이제 시작되려는 시점인 것이다. "6일 창조"를 마치신 하나님이 쉬시려고 하실 즈음에 아담 죽음이라는 이런 사달이 났으니 아담 통치가 6천년이나 늦추어진 것.
고로 그 '아담 시대'의 천년 세월을 앞둔 우리는 모든 실상을 알았으니 어리석게 악령들의 농간에 꺼둘리지 말고 놀아나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들다운 품위와 체통을 지켜 하나님의 "맏아들"로서의 우리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사람들 구원해내는 일에만 오직 전념할 것이다. 우리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어떤 본을 보이셨는가. 친히 사형장으로 나가시는 사형수의 모습이셨던 것. 왜냐면 천하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서 (아담 범죄로 죽은 자이니까, 죄 값은 죽음 밖에 없으니까, 생명 아니면 죽음이라는 대칭성 즉 양면성의 짝의 법칙에서) 사형수 죄인이기에. 그 사형수의 모습으로 그 위치에 함께 있어야 함께 생명에로 인도할 수 있음이다.
이 함께 하는, 하나되는, 한 몸을 이투는(짝의 법칙에 기반한 생명의 법칙이 "한 몸"됨에 있으므로ㅡ고전 12: 26)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사즉생/死則生(죽고자 하면 살고)생즉사/生則死(살고자 하면 죽는다)의 방법 외 없는 것과 같은 것. 살면 함께 다 살고 죽으면 함께 다 죽는 공동체 의식, '우리' 의식이 이상향적 삶의 생명의 법칙.누구는 부하게 태어나 부자로 살고 누구는 없는 자로 태어나 없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애초 창조가 생명 아닌 죽음으로 일체가 망가져버린 흉물스러운 죽음의 꼴불견인 것. 하나님의 창조의 뜻은 평등, 평균에 있는 것. 머리와 몸으로서의 "한 몸"됨에 있으니까. 이 죽음의 세상에서 나 혼자 살고자 하는 욕심을 단죄하시는(요 12:25)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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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분 몰아보기ㅣ정의의 심판! 속 시원한 사이다 판결, 중국 사형수 사건 모음ㅣ#YOOHOO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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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와 종신형제도 이대로 좋은가?>
우리가 사형제도를 할 때는
질량이 약한국가 일때 입니다.
사형제도는 국가가 감당하지 못하니까
본보기로 죽이는 것이다.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국가가 성장한다는 것은
사형으로 일을 처리하면 않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종신형으로 한다" 이렇게 해야한다.
완전 종신형으로 하면
이사람은 밖에 나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사람이 사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심하게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있다면
이사람이 사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필요한 사람을 죽여 버린다?
우리는 뭔가 생각을 잘못하는 것이다.
이 사회를 연구하는데 이 사람이 필요하고
그것으로 이 사회의 총체적인 것이 풀린다.
그런데 이사람을 연구도 안하고 죽여 버린다고~
이 사람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환경을 연구해서 캐내야 한다.
사회가 조금이라도 모르고 있던 것을~
그러면 이 사람은
이 사회에 이것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어렵게 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내 죄를 씻는 것은
내 안에 것을 다 털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에게 이런 것을 보여 주는 것도
하나의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되고,
우리가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과제를 만들어 준 것이고,
하나의 자료이다.
>>>>>>>>>>>>>>>>>>>>>>>>>>>>>>>
우리 사회에 안좋은 사람이 나온다 라는 것은
이 사람을 풀어 가면서
"사회를 연구해야 할 것이 나온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죽여 버린다고!
다시말해 "안좋은 사람이 나온다" 라는 것은
이사회를 연구해야 될것이 나온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죽여버린다 ?!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이~
연구할 놈을 또 하나 만들어서 준다.
어떻게?
7명 죽였다면 12명을 죽인다.
이것은 무서운 소리를 내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은 그렇게 한다.
우리가 "갈수록 포악하다." 라고 한다
포악하게 살수 밖에 없는 이 사회가 만들어 져서
포악한 것입니까?
아니면 포악한 사람이 만들어 져서
이 사회가 포악해지는 것입니까?
이것의 답을 잘 찾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이 사회가 만들어서 그런 것인데
이것을 캐내고, 이런 것을 잡아내고 같이 연구해서 이사회가 그렇게 안되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사람을 처단하고,
겁을 줘서 이런 짓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까?
>>>>>>>>>>>>>>>>>>>>>>>>>>>>>
절대 그렇게 해서 일은 해결되지 않는다.
한명 죽이면 두명 나오고, 두명 죽이면
네명이 나온다.
우리 국민들이 지금 아파서 병원을 가는 것이
그래서 네명을 죽여도 안되면 8명을 만든다.
지금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파서 병원에서 죽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지금..
왜, 처음부터 그렇게 했느냐?
그렇지 않다.
병을 낫게 하려고만 했지,
이병이 왜 왔는가 이것을 연구를 안한다.
어려움이 왔다면 어려움이 왜 왔는가?
그것을 연구를 해야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나의 미래가 만들어 진다.
그런데 어려움이 왜 왔는지를 연구는 안하고
어려움을 풀어 달라고만 하고는
그리고 나는 똑같이 살아??!!
조금 있으면 더크게 어려워 진다.
왜, 자연은 그렇게 운용하는 것이다.
너가 어려워진 것도 자연이 만들어 줬고,
그것을 너는 풀어 나가는 것도
자연속에서 너가 어디를 찾아 가니까,
임시로 풀어 줬는데 ~
또 내 고집대로 똑같이 사니까.
내가 사는 방법 대로 나중에 더 큰 아픔이 오는 것이다. 이것이 똑같은 것이다.
이 사회의 구조나 내 한테 일어나는 거나,
개인에게 일어나는 것이나
이것은 하나도 안 틀리게 똑같이 일어나는 것이다.
>>>>>>>>>>>>>>>>>>>>>>>>>>>>>
그래서 이런 것들을
"사회가 연구를 해야 한다" 라는
소리를 나는 10년, 15년 부터 한 소리이다.
연구해라~
사회를 바르게 연구하면 정말 좋아 집니다.
갑자기 좋아집니다.
우리 국민들이 자살을 막으려고 연구를 하면
얼마 만큼 하느냐에 따라서
자살율이 뚝뚝 떨어 진다.
갑자기 좋아진다.
하지만 연구를 하지 않으면
자살율이 자꾸 올라간다.
이것이 지금 십몇년이 되었고 OECD 1위 입니다.
이것은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OECD, 1위, 세계에서
어떻게 1위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대한민국에서
나오는 것을 숨긴다고 될것인가?
그래서 비유를 들려고 하다가
약간 옆으로 갔는데 ~
한사람의 생명도 소중하고
"그 사람을 처단할 수 있는 자격을 우리에게 자연이
준 적이 없다." 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이 진짜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인 환경 때문에
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사정으로
지명이 되어,
그 일을 일으켰는지
이 것을 바르게 풀지도 않하고
무조건 죽여 버린다?!
너희들이 죽인 만큼
그 댓가는 더 받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지식을 아주 질량있게 갖춘 이나라에서
사형을 시킨다?
사형 제도는 폐지 하고도 남아야 하는데
못하는 것은
아직 이 연구를 않하고 있다는 것이다.
>>>>>>>>>>>>>>>>>>>>>>>>>>>>>>>>
더 흉악범도
우리의 형제들 입니다.
그것이 만일에 그 자가 그 역할을 다 않했다면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한다!!
그러면 누구 집���에 누구 동생이
그런 역할을 할지 몰라요.
이것은 연구과제 중에 과제이다.
앞으로 사형수 될 만큼의 사건이 일어나면
이사람은 특별관리를 하면서.
여기는 더욱더 신경과 닥터부터, 종교지도자들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이사람하고대화를 나누고 뭔가를 풀어 가면서
여기서 끄낸 것으로 국민에게 도움도 주고
이런 활동들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신경써야 한다.
왜 우리가 방치해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 사람만 책임을 질 일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 부터 그렇게 모범을 보이면
이것이 세계로 퍼집니다.
우리가 바르게 하는 것을 찾으면 세계는 이것을 다 따라하게 되어 있다.
그런 것을 이제는 심각하게 봐야한다.
우리가 하는 것을
세계가 따라 할 정도가 된다면
이러한 책이 되었던, 이러한 교육용 자료들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다.
엄청난 경제까지 갖져다 준다.
이 말입니다.
한개 한개 바르게 풀려고 노력을 해야지,
무조건 처단하고 치우면,
사회는 그렇게 하면서 지금까지 사회를
운용해 온 것이다.
이제는 안된다.
이런 것들을 하나 하나 바르게 풀어 가는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 이제
사형제도는 없애야 한다
이것이 답이다.
유튜브 정법강의 13040강 naya
https://youtu.be/KHze7HwpEwo?si=9u4AVwN3DXoGkJK_
#유튜브 #정법강의10051 #천공스승님
#일기쓰는법
#경산카페소셜랩 #사주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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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유시민 '옥중 출마 제안'에 좋아요 눌렀다! 추미애 '이재명 유언' 극단적 결정 시사? 김의겸 정신 나갔다! 문재인 책방 광고? 서울구치소로 모여든 사형수, 이유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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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사형투표7화.
국민사형투표7화 – 사형수 형무소-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중에 하나인 “사형의 집”을 소개시켜 드리려구요 (저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일단, 이 만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강동원”이 아닌 “김현중”이라는 배우를 떠올린다고 하네요 ᄏᄏ(김윤석님 죄송해요ᅲ0ᅮ…..ᄏᄏ제가 미쳤나봐요……ᄒᄃ….ᄌᄉᄏ……..그래도 강아지 두마리(?)는 잘 키우고 있어서 다행이에용ᄒᄒ하하하ᅡᄋ!!죄송해요,,,다음엔 더 멋진 그림으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갈께욧>_< ᄒᄒ [리본문답]오란고교호스트부 오란을 알고 계십니까? 저번에 포스팅 한 적이 있었던 ‘네로버전’입니다 이번에는 리본을 가지고 왔습니당. 국민사형투표7화 다시보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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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빈, [노벰버레인] 1권. (정확한 연도는 알 수가 없다. [사형수]란 제목으로 2016년에 다시 나왔다.)
우울할 때마다 이 페이지를 다시 보곤 한다. 눈알 뒤에 음의 피드백 루프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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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ask about her ideal type
Cr. The Heiress's Doubl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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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www.amazon.com/Country-Old-Men-Cormac-McCarthy/dp/0375406778 )
예이츠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흔히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게 무엇을 내다보는 창인지 나는 모른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시각,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이 있으니 이 모든 소동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그런 세상이다. 덕분에 나는 평생 생각도 못해 본 일을 겪고 말았다. 저기 어딘가에는 살아 있는 진정한 파괴의 예언자가 있다. 다시는 그 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진짜라는 것을, 나는 그가 한 일을 보았다. 한때 나는 그 자의 눈앞에서 걸어 다녔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는 내 운명을 걸고 그 자를 만나러 가지 않겠다.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니다. 그랬길 바라지만. 누구라도 감히 그러고 싶지는 않으리라. 내가 언제나 알았듯이 이 일을 하려면 기꺼이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니 말이다. 그것이 언제나 진실이었다. 영광 따위는 바랄 수도 없지만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당신이 목숨을 걸지 않으면 그들도 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알아차린다. 어쩌면 당신은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영혼을 모험에 내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자신은 그러지 않을 테다.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p12-13)
가방 안에는 100달러짜리 지폐가 가득했다. 10,000달러 소인이 찍힌 묶음 띠지로 고정된 돈 다발이었다. 모두 합해서 얼마나 되는지 감이 오진 않았지만, 그에게 멋진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히 앉아서 ��� 다발을 바라보다가 뚜껑을 닫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인생 전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가 죽을 때까지 이어질 매일매일이, 새벽부터 밤까지의 매일매일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이 가방 안의 40파운드 짜리 종이 더미에 담겨 있었다.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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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사형수 감방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말이다. 놀랄 일이다. 적어도 일부는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몇 년간 매일 보던 사람을 어느 날 복도로 데리고 나와 죽음의 공간으로 밀어 넣는 일. (p74-75)
선령한 주민들을 다스리는 데는 힘쓸 일이 거의 없다. 정말 거의 없다. 그리고 나쁜 인간들을 다스리기가 아예 불가능하다. 아니면 다스릴 수 있었다는 얘기를 내가 들어본 적이 없거나. (p76)
벌써부터 그는 자신의 인생이 다시는 안전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다만 그런 것이 자신에게 익숙했던 삶인지가 궁금했다. 과연 그랬던가?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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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젊은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서 어려운 일을 겪지 않는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다. 단지 기대만큼 빨리 성장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p178)
부모들이 자식들을 키우지 않으려 했다. 우리는 그 문제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했다. 다음 세대가 자라나 어른이 되고 아이들을 키우려들지 않을 때는 누가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 (p179)
전쟁에 대해서도 별로 할 말이 없다. 나는 결국 전쟁영웅이 되었지만 분대원을 모두 잃었다. 그때 일로 훈장을 받았다. 그들은 죽었고 나는 훈장을 받았다. 이런 일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알 필요도 없다. 그 일을 기억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내가 알던 몇몇 병사들은 돌아와서 제대군인 원호법에 따라 오스틴의 학교에 갔는데 거기서 말 못할 일을 많이 겪었다. 흔히들 그들을 백인 떨거지니 뭐니 하는 말로 불렀고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싫어했다. 이 나라에서 두 세대는 긴 시간이다. 초창기 개척민 이야기도 많이들 한다. 사람들에게 나는 아내와 자식들이 살해당해서 머릿가죽이 벗겨지고 물고기처럼 창자가 갈리는 지독한 일을 당하면 흥분하기 십상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60년대는 그들 중 일부를 정신차리게 했다. 아니 그랬기를 바란다. 얼마 전에는 여기 신문에서 몇몇 교사들이 30년대에 전국의 여러 학교에 보낸 설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설문지 문항은 학교 교육에서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교사들이 발견한 설문지는 답안이 채워져서 전국 각지에서 돌아온 것이었는데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된 것은 수업 중 떠들기나 복도에서 뛰어다니기 같은 문제였다. 껌을 씹거나 숙제를 베끼는 일도. 뭐 그런 따위였다. 교사들은 답이 비어 있는 설문지를 찾아서 그것을 무수하게 복사해 똑같은 학교에 다시 보냈다. 40년 후에 말이다. 그리고 이제 답지들이 도착했다. 강간, 방화, 살인, 마약, 자���. 나는 이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세상이 점점 망해가고 있다고 오래 전부터 말하곤 했지만 사람들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내가 나이가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것도 하나의 징후다. 하지만 강간하고 살인하는 일을 껌 씹는 일과 구별 할 수 없는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내 느낌이다. 4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아마도 다음 40년 동안은 난데없이 아주 괴상한 것이 등장할지 모른다. 너무 늦은 게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p216-217)
1, 2년 전에 나와 로레타는 코퍼스크리스티의 어느 모임에 참석했다. 나는 누군가의 부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그녀는 내게 줄곧 우익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개 평범한 이들이다. 흔히 하는 말로 먼지처럼 평범한 이들이다.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고 그녀는 나를 별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가 그들을 험담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속한 세계에서 그 말은 최고의 칭찬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말���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이 나라가 나아가는 방향이 싫다고 말했다. 자기 손녀가 낙태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부인은 이 나라가 가는 방향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부인의 손녀는 틀림없이 낙태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낙태를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부인을 영원히 잠들게 할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말하자 대화가 끝나고 말았다. (p218)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친구를 잃었다. 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건 아니다. 나이 들어감에 대해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모든 사람이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건 아니라는 사실. (p237)
당신이 악마라면, 그리고 인간을 굴복 시킬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한다면, 결국 마약이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p239)
"총싸움이 벌어지면 무장을 하겠니, 그냥 법을 지키겠니?" (p242)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냐. 네가 그곳에 가면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요점이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너의 생각. 아니 누구의 생각이든.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없어. 내가 말하려는 게 이거야. 너의 발자국은 영원히 남아. 그걸 없앨 수는 없지. 단 하나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 아직 이해 못하는 것 같으니 한 마디 더 하마. 너는 어제 몇 시에 일어났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어제야. 다른 건 중요치 않아.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너의 인생이 되지. 그밖엔 아무것도 없어. 너는 도망가서 이름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할지 몰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하고 묻게 돼." (p249-250)
아버지는 언제나 최선의 길을 선택하고 진실을 숨김 없이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누구인지 결정할 필요가 없는 것 만큼 마음 편한 일은 없다고 하셨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곧바로 이야기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해서 자기 잘못을 껴안고 가야 한다.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꽤 간단하게 들리는 말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그러니 오히려 생각해 볼 이유가 더 많은 셈이다. 아버지는 말씀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가 한 말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는 두 번씩 말씀을 하실 만큼 인내심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귀를 기울여들었다. 나는 아마도 젊은 시절에 벌써 아버지의 말씀에서 벗어났을 것이지만 다시 그 길로 돌아와서는 다시는 그 말을 버리지 않겠다는 결심이 섰고 정말로 그렇게 했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다. 단순해야 한다.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늦게 된다. 그것을 이해할 때는 벌써 늦은 것이다. (p272)
"당신은 지금 동전에 책임을 미루고 있어요. 하지만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은 당신이에요." "뒷면이 나올 수도 있었지." "동전은 결정권이 없어요. 결정은 당신이 하는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견해는 달라. 내가 여기 온 것도 동전 던지기와 같은 거야. 목적지가 같으면 거기에 가는 길도 같아. 언제나 쉽게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분명히 그래." (p282)
"나에겐 결정권이 없어. 인생은 매순간이 갈림길이고 선택이지. 어느 순간 당신은 선택을 했어. 다 거기서 초래된 일이지. 결산은 꼼꼼하고 조금의 빈틈도 없어. 그림은 그려졌고 당신은 거기에서 선 하나도 지울 수 없어. 당신 뜻대로 동전을 움직일 수는 없지. 절대로. 인생의 길은 쉽게 바뀌지 않아. 급격하게 바뀌는 일은 더구나 없지. 당신이 가야 할 길은 처음부터 정해졌어." (p283)
"당신은 지금 내 마음을 약하게 하려고 하지만 나는 절대 거기에 굴복하지 않아.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지. 특별 대우는 없어. 동전 던지기도 마찬가지야. 이 경우엔 별 의미도 없었지. 사람들은 대개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제 당신은 똑똑히 알게 된 거야. 당신이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내 말 알아듣겠어? 내가 당신 인생에 끼어들었을 때 이미 당신 인생은 끝난 셈이었어.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어. 지금은 끝이야. 당신은 꼭 이대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말하고 싶겠지. 그래 다른 길도 있을 수 있었어.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른 길은 없어. 이 길뿐이야. 당신은 그저 내가 말을 바꾸기 바라고 있을 뿐이야." (p283-284)
"나이가 들면 자기가 행복해지고 싶은 만큼 행복한 법이야.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지만, 결국 예전에 행복했던 만큼 행복한 거야. 아니면 그만큼 불행하든가. 이걸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 (p289)
아저씨는 내가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다고 말했다. 그런 것은 노년의 특징이라고도 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고집 말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부 맞는 말은 아니다. 나는 노년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그의 말에 동의했고 그는 그 중 한 가지를 안다고 했다. 내가 그게 뭐냐고 묻자 그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빙그레 웃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나는 그건 꽤 차가운 말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 자체보다 더 차가운 말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p307)
내가 깊이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줄곧 내 마음 속에 있던 일이 또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내 문제와 아주 무관한 일은 아닌데다 인생에서 무슨 일을 했건 그 일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온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정말로 너무 일찍 죽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p308)
나는 부관들에게 고칠 수 있는 일은 고치고 나머지는 그냥 놔두라고 한 번 이상 말했다. 손을 놓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그건 단지 짜증거리에 불과하다. (p310)
나도 그래요.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무슨 일을 했건 금방 떠났어야 옳았어요. 그런 식의 전쟁은 듣도 보도 못한 거였소. 히피 두어 명을 흠씬 두들겨 팬 적도 있지요. 아들에게 침을 뱉고 아들을 베이비킬러라고 불렀어요. 무사히 돌아온 많은 젊은이들도 아직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요. 그들 뒤에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점은 이 나라는 조각조각 갈라져 있었다는 거죠. 지금도 그렇지만 말요. 물론 히피들 잘못은 아니었소. 그곳에 간 젊은이들 잘못도 아니었소. 기껏해야 열여덟, 열아홉 살 먹은 애들이었잖소. 노인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나는 그가 많이 늙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눈이 늙어 보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흔히들 베트남이 이 나라를 굴복시켰다고 합니다. 나는 결코 그리 생각하지 않아요. 그 전부터 이미 글러먹은 나라였소. 베트남은 거기에 결정타를 먹인 셈이오.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쥐어주지 않고서 거길 점령하라고 했던거요. 총도 없이 그들을 보냈다면 잘은 모르겠지만 사태가 더 나빠지지 않았겠소. 그런 식으로 전쟁을 하는 법은 없어요. 하느님 없이 전쟁을 하는 법은 없어요. 다음 전쟁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모르겠어요. 짐작도 못하겠소. ( p323)
324-5 329
나는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돈에 팔린 존재이다. 단지 마약 문제가 아니다. 아무도 알지 못할 만큼 엄청난 부가 쌓이고 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든 나라를 살 수 있을 만한 돈. 아니 벌써 온 나라를 사고 말았는지도. 이 나라도 살 수 있을까? 설마,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은 우리를 같이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과 한 침대에 밀어넣을게다. 그것은 법 집행의 문제도 아니다. 언제는 그랬는가. 마약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어 나자마자 아무 이유도 없이 약에 취한 적은 없다. 수백만 명이 말이다. 내가 무슨 대답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내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대답은 알지 못한다. 얼마 전에 나는 젊고 예쁜 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녀는 단지 기자처럼 굴고 싶어했다.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보안관님의 담당 군에서 범죄가 그렇게 만연하게 되었을까요? 정당한 질문처럼 들렸다. 꽤 정당한 질문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례를 용납하게 될 때 모든 게 시작됩니다. 더 이상 존칭과 경어를 듣지 못하는 순간 눈앞에 종말이 보이는 거지요. 나는 계속 말 했다. 이런 풍조는 모든 계층에 스며들었어요. 당신도 들어본 적이 있지요? 모든 계층이요? 그러다 보면 마침내 상업 윤리가 무너지고 사람을 죽여 차에 집어넣고 사막에 ���려 두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때는 모든 게 너무 늦게 됩니다. (p333-334)
또 한 가지는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줄곧 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를 보는 노인들의 시선을 생각하면 언제나 의문이 생긴다. 예전에는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보안관이 된 50년대에는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노인들은 별로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그들은 실성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런 점이 나를 괴롭혔다. 그들은 마치 잠에서 방금 깨어 왜 그곳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p335)
<옮긴이의 말>
이 소설을 휘감고 있는 분위기는 묵시록적이다. 스릴러의 외관을 취하고 있는데도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는 느낌은 거기서 나온다. 소설 첫머리부터 피비린내 나는 살인이 벌어지고 마지막까지 살인 행각이 이어지며 피 냄새가 가시지 않지만, 평범한 스릴러에서 느낄 수 없는 텁텁한 긴장감이 전편에 서려 있다. 그 긴장감은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생사를 건 대결에서만 나오지는 않는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추리적 요소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우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다). 그것은 장식적 수사를 억제한 냉담한 문장, '그리고(and) 문체'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하고~하고'의 연속, 서술과 설명이 배제된 묘사 일변도의 장면 제시, 감정이 응고된 건조한 대화로 사정없이 끌고 가는 플롯 전개의 속도감에서 나온다. (p340)
- 코맥 매카시 ,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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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순간까지도 믿음 있어 구원 받는 줄 착각한 한 달란트 소유자의 엄청난 비극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할 것이니...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갖지 않고(등에 담긴 기름은 있으나 여분으로 준비한 것은 없어)...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때 밤중에 소리가 ���기를 보라 신랑이 온다 맞으러 나오라...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그러나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마 25:1:13).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들과 회계할 때...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악하고 <게으른> 종아...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다"(:15-30).
여기서 우리가 크게 정신차려 경계해야 하는 것은 없어도 있는 체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있기는 있는 것인데 "빼앗겼다"는 것이니 이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눅 9:25) 하심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 결과가 <영원 멸망>("바깥 어두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 하셨으니까)이라는 데에서 그러합니다. 그 "있음"이 무엇이냐, "자기"인데 곧 생명. 생명은 성경에서는 영생입니다. 인간에게 동물적 육체의 동물의 생명(현재와 같은)을 주실 리 만무하니까. 그러면 바꾸어 말해서 구원 받았다는 것, 성령으로 나고 새 창조하심을 입었다는 것이니, 그러나 이 사실에만 안주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이 말은 그럼 다시 <자기 구원을 위해> 행함을 힘쓰라는 것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이미 "믿음"으로써 구원되었는데 또 무슨 행함이든 무엇이든 필요하다는 말인가요. 그럼 "믿음"을 지키기 위해 힘쓰라는 것이냐, 믿음은 한 번 믿음으로써 끝나는 것이지 끙끙대고 믿음을 지킨다는 것도 웃기는 일입니다. 그리 되면 그것은 "행함"으로 변질되어 엉뚱한 데로 빠져버립니다.
주님은 여기서 그 한 달란트 소유자를 단죄하실 때 "게으르다, 무익하다"(:26, 30) 하셨습니다. 성향이 워낙 소극적이라 알맞게 한 달란트만 맡겨졌다면 그 한 달란트만이라도 "취리/取利하는 자들에게나 두어 본전과 변리"(:27) 정도라도 증식시켰어야. 그러나 아무 것도 없으니(아니 했으니)!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말 그대로 게으름만 피운 무익한 존재. 말 그대로의 '자아 중심'. 이런 이들이 오늘날까지 너무나 많았습니다. 영생 얻었다는 만족감에만 취하여 희희낙락 남보기에는 믿음 좋은 것으로 비쳐지나 "자기 부인", "날마다 십자가(사형수 위치에서의 사형장으로 나가는 마음 자세) 짐" 따라서 "모든 소유를 버림"(눅 14:33)이 없습니다.
때문에 초대교회의 능력(행 4:32)을 헌신짝 같이 팽개쳐버려 오늘날은 이름만의 "교회"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이런 표준대로 따르지 않는 이마다 어떻게 된다 하셨나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즉 구원 받지 못한다 하신 것. 더 정확히 말하면 구원을 "잃거나 빼앗김"입니다. 지금까지 듣지 못한 생소한 표현이 아닙니다.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완전히 무시한 결과입니다. 어렵고 무슨 심오한 것도 아닙니다. 어린 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너무나 간명한 말씀이시건만 너무나 어이없게도 무시해 버린 한심한 결과입니다. 때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들어가기를 구해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눅 13:24) 하셨으니 부디 명심하시기를.
자기 표준(자아중심)에 맞추어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 하니 "이 말씀은 어렵다, 누가 들으리요"(요 6:60) 하고 썰물처런 빠져버린 것입니다. 엄청난 무서운 경고입니다. 성경은 꿀같은 생명의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정반대인 이런 경고를 마음에 담아 묵상하는 것이(믿음이 좋은 마리아처럼) 크나큰 지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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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23
그니까, 그 애가 나를 떠난지는 조금 되었는데
조금은 아니고 많이 된거같은데.. 그니까 내 기준에서는
내가 맞은 시간 안에서는 너무 많이 흐른것같은데
말을 잘못했다. 나를 떠난게 아니고.. 내가 찔러버려서.
찔러도 된다 했다고 진짜 찔러버려서. 나는 정말 그 애를
한 몸이라 생각했구나.
그러니깐, 내가 괜찮을거라고 그 애도 괜찮은게 아닌데,응
진짜 아닌데, 왜 그랬냐 하면 시간을 돌이키는 공상은
수도 없이 해서 ��겨우니깐. 나는 그 애를 위해서 살아야지.
그 애는 나한테 좋은 말을 참 많이 해주었는데, 늦고나서 보면
그건 진리인거고. 나를 꺼낼 수 있는건 약도 상담도 그 무엇도
아니고 결국 나였는데.
나는 이제 정신병자가 아닐 수도 있는데.
자해라던가, 자살이라던가 . 이제는 단어만 들어도 소름끼쳐서
나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데. 이건 또 내 가식일수도 있는거고.
결국 나를 꺼내는건 내 자신이라는걸 알았음에도, 그 애가 이젠
없다는건. 만질수도 볼 수도 없다는건 내 수 많은 미래중에 하나
였던것이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람의 미래는 이럴 수 밖에 없었
겠구나.
나는 '너'를 생각하는 '나'만을 생각해. 라는 말은 오차가
없었고. 그 때 그 말을 부정하던 내가 너무 혐오스러웠을뿐.
생각이라는건 하면 할수록 단순해보이는데, 그 땐 왜.
자꾸 그 땐 그 땐 하는데, 그리우니까 .
이제 나라는 사람의 운명은, 그 애가 원래 왔던 세상으로 가기 전까진
죽지 말아야하며, 그 애를 그리움에 사무쳐 온 그리움 위로 또 그리움이
사무치도록 평생 그리워만 하다가 그 애가 떠나는걸 본 후에나 편히
떠나야지. 나는 이제 편해서도 안되며,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껴서도,
슬픔을 느껴서도 안되고. 그래 . 새끼손가락이 민망하니깐. 가끔 만지기도.
72시간동안 한 끼도 먹지 않고 화장실 바닥에 누워 생각만 했다.
질질 짜는것도 생각인지는 잘..
나올 눈의 물이 없으니 입에서 나온다.
그것도 모자라서 귀에선 피도 찔끔. 그 애가 소독해주는게 생각나서
다시 눈물 찔끔.
평생 주특기를 진심을 전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그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는데. 그게 누군가를 갈기갈기 찢는 흉기가 될꺼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정신이 들었다는 의미는 폭풍이 지나가고 고요가 찾아왔다는건데.
나는 왜 반대
너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졌으면 좋을 것 같다. 아주 행복해져서 복수라도 하듯
나를 더 찢어발겨놨으면 좋겠다. 그땐 나도 웃을 수 있을텐데
보고싶다. 솔직히 너무 보고싶다. 그립다 너무 그립다.
같이 찍은 사진들을 봤다.
그립기도 전에, 진짜 예쁘다.
그 다음에 그립다.
너는 예쁘고 그립구나.
나는 이제 울면 안되지, 내가 울면 니가 흘린 피들이 뭐가 돼.
그래야지.
너무 안아주고 싶은데. 이런 생각마저도 죄책감이 들 정도로
죄인이니까 나는 . 근데 또 슬프면 안되니까
좆같이도 힘들다.
내가 아는거랑 너무 다른데
사형수 집행 5분전을 내 인생으로 늘어뜨리면
그러면 그냥 힘들까.
강제입원당할뻔했다.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이럴 때 항상 그 애가 있었는데.
도망쳐보니 그 애랑 간 공원이고. 그 애랑 걸은 거리고,
그 애랑 갔던 카페고.
사실 내가 입원한다고 했는데. ���상 당일이 되니 두려웠다.
나는 이미 정신이 돌아왔는데. 요즘엔 밥 안먹으면 입원당하나보다.
그 애가 사준 커피를 아직도 마시고있다. 원래 이렇게 맛있나 이거?
딸기우유는 내가 먹었다. 또 미안.
매일 기도를 한다.
그 애가 슬플 일이 생길까봐.
올바른 방법으로 하고 있는데.
재채기 그만할테니 제 진심을 이젠 알아주세요.
그 애가 남기고 간게 너무 많은데, 돌려주려보니 그 애랑 연결된
무언가가 끊어질까봐. 그래도 나는 너를 안고 자야지.
병원에 갔다. 교수님도 입원하라고 하시는데, 내가 시선을 피하니
떨떠름하신가보다. 약만 더 타왔다. 나는 이제 나던 다른 사람이던
다치게 하지 않을거니깐. 착해진 악마 할게요.
입원할 돈으로 차라리 바쁘게 살아보기로 했다.
최신형 노트북도 사고, 드럼 레슨도 등록했다. 둥 둥
기타도 고쳐야하는데. 고치면 죄인이 되는것같아서 또 나는 쳐다보겠지.
닌텐도 사려고 했는데, 어쩐지 보류. 슬프다.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나는 알러지가 있지만 그건 이제 내 알 빠가 아니니까
엘프 귀에다 눈은 아주 크고 활동적인 아이다. 애옹.
이름은 '유미'로 지을꺼다. 괜찮겠지.
잘 키울 수 있을거야.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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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들의 장기를 꺼내 판매하는 '나라' (사진 19장)
사형수들의 장기를 꺼내 판매하는 ‘나라’ (사진 19장)
▼사진출처: 연합뉴스 사형당한 사형수들의 장기를 꺼내 판매하는 ‘국가’가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형수들의 장기를 판매하는 나라”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누리꾼들에게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말기암 환자들의 성지다. 정상적인 과정에서건 비정상적인 루트이건 간에, 죽은 사람들의 장기가 넘쳐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정부는 공개 사형은 사형수들의 장기를 공식적으로 판매해왔는데, 중국 위생부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장기이식을 위해 대기하는 사람이 150여 만명이고 그 중 1만 여명이 이식수술을 받는다고 한다. http://postshare.co.kr/wp/wp-content/themes/viralnova/js/ad_google.js 이런 장기매매가 세계적으로 큰 논란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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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 Organ Trafficking Vocab
금품을 수수하다, to receive money (in exchange for smth else)
취직을 알선하다, help sm1 get a job
비밀리에, secretly
공공연히, overtly
밀거래하다, to traffic/smuggle smth
은어, slang/jargon
공갈, extortion/intimidation
사형수, a convict on death row
절취하다, steal/take out
헌혈/매혈: donating blood/selling blood
콩팥: kidney (pure Korean)
신용불량자, a person with bad credit history
추궁하다, to interrogate sm1
급전이 필요하다, to need a large sum of money quickly
쓸개, gall bladder
위조되다, to be false/for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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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고민 - 34년의 외침, 사형제 폐지
헌법의 고민 – 34년의 외침, 사형제 폐지
2022년 8월 1일. 7대 종단 지도자들이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25년이 지나도록 더는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국제 사회는 대한민국을 10년 이상 사형 집행이 중단된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한 지 오래다.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으니 죽어 마땅하다며 참혹한 형벌로 똑같이 생명을 빼앗는 방식을 국가가 선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22년 여름. 대한민국 헌법재판관들은 또 한번 고민에 빠져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을 기반으로 한 형벌 원칙과 극악한 살인자라 할지라도 인간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천부인권론 앞세운 사형제 폐지론, 어느 쪽이 헌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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