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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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apesblog ·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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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어떻게 수립되었나? - 여운형, 김구, 이승만 그리고 김일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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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0dav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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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 안재홍 & 몽양 여운형 일본에서 처음 여운형을 만난 안재홍은 그의 스포츠 실력,외모,달변에 푹빠지게 되고 그 후로 서로 깊은 인식을 나눌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만약 지금 시대에 두 분이 살아 계신다면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평택의 축구장에서 함께 모여 축구를 하지 않으셨을까? “형님 볼 한번 차시죠~? “좋지!” #street #streetphotography #graffitiart #graffiti #leodav #fifa #독립운동가 #독립 #소사벌레포츠타운 #레오다브#스트릿아트 #여운형 #안재홍(소사벌레포츠타운에서) https://www.instagram.com/p/CCTwSuRhTKp/?igshid=1vrn1lyhmoa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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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2028k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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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의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 / 오늘은 오랜만에.: “양세형xBewhY - 만세(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 @};-o(*•*o). #korea #seoul #삼일운동 #삼일절 #100주년 #1919년 #3월1일 #태극기 #출처행안부 #유관순 #김구 #여운형 #김마리아 #정정화 #김원벽 #손병희 #이승훈 #한용운 #만세 #기미독립만세운동 #대한독립만세 #서대문형무소 #독립기념관 #탑골공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 #대한민국 https://www.instagram.com/p/Bubxd_sHBqf/?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1stt0nxfl62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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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lovlun119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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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삼청동 가회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정독도서관 덕성여고 헌법재판소 재동초등학교 여운형집터 김성수가옥 대동세무고등학교 중앙 중 고등학교 / 북촌 8경 / 재동 백송 / 박규수 대감 집터 / 갑신정변과 이곳의 변화 / 재동초등학교와 교동초등학교 / 조선중앙일��와 여운형 / 백인제 가옥 / 백인제의 백병원과 출판사 수선사 / 가회동성당 / 현상윤 집터 / 취운정 터와 유길준의 서유견문 / 맹현의 맹사성 집터 / ‘북촌 열한 집의 오래된 기억’의 맹현댁 / 개량형 한옥의 등장 / 가회동 31번지 / 건축왕 정세권
북촌 베이징 왕푸징 파리 생제르맹데프레
북촌1경 창덕궁 전경 / 2경 원서동 공방길 창덕궁 돌담길 따라 빨래터까지 올라가는 길 / 3경 가회동 11번지 한옥들과 전통문화 체험 공방 / 4경 가회동 31번지 언덕 기와지붕들 너머의 북촌 조망 / 5경 가회동 골목길(내리막) 한옥 빼곡 / 6경 가회동 골목길(오르막) 한옥 돌담들 길게 뻗어 있음 / 7경 가회동 31번지 1930년대에 지은 한옥밀집지구 / 8경 삼청동 돌계단길 경복궁 인왕산 조망
매천 황현 매천야록 / 종각 이북 북촌 노론 종각 남쪽 남촌 소론 남인 북인(삼색)
헌법재판소의 재동 백송 / 박규수 대감 집터 / 박규수의 안목 / 갑신정변과 이곳의 변화 / 재동초등학교와 교동초등학교 / 북촌의 대저택 / 여운형 백인제 / 오설록 티하우스 / 가회동성당 / 김형태 가옥 / 현상윤 집터 / 취운정 / 조선귀족회 / 가회동 이준구 가옥 / 일제강점기의 주택난 / 대형필지의 분할 / 개량형 한옥의 등장 / 가회동 31번지 / 건축왕 정세권 / 북촌의 명성을 위하여
돌영회 돌 영산홍 회양목 공무원표 관급공사 헌재 등 공공기관 정원
박규수1807-76 박지원 손자 평안도 관찰사 시절에 제너럴 셔먼호 소각1866 개화파의 스승 1876 일본과 수호조약을 맺는 강화도 조약 체결 적극 주장 그해 12월 사망 / 죽석송월도 예술에 대한 안목도 탁월
유길준 박영효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박영교
안국동 윤보선 가옥 계동 김성수 가옥 가회동 백인제 가옥 가회동 한씨 가옥(서울시 민속자료 제14호) 도시형 개량 한옥
조선중앙일보 여운형 / 여운형 35% 이승만 21% 김구 18% 박헌영 16% 김일성 9% 1945 잡지 선구 여론조사
백인제 백붕제 백낙청
맹현 맹사성 동네 / 맹현댁(이재완 흥선대원군 둘째 형의 아들) 지금은 사라짐
한옥밀집지구 정세권의 건양사 김동수의 공영사 등 도시 대량 건축업자들 작품
정세권 북촌 익선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행당동 등 서울 전역에 한옥 대단지 건설 건축왕 / 민족운동(조선어학회 등) 지원 일제 탄압 구금 뚝섬 토지 강탈당함
들어가볼 수 있는 한옥 / 계동 배렴 가옥 / 락고재 / 북촌한옥청 / 북촌문화센터(계동마님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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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ookim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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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분명 현실주의자이지만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이있어요” #오글오글 #무려 #14년전 #메모 #꿈 #뭐였드라 #자전거 #여행 #전국일주 #힘들었어도 #그립다 #그때의내가 #정관매진 #바르게보고힘써전진하라 #몽양 #여운형 #신년휘호 #명언 #좌우명 (횡성군에서) https://www.instagram.com/p/BoZPNeIBlMi/?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uo74wssxxp3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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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k30day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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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체육의 아버지 몽양 #여운형 (1886. 5. 25. - 1947. 7. 19.) . 사진 | <현대철봉운동법> ⓒ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memorialrun12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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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lab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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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인간의 삶, 『우남 이승만 연구』
- 한국 근대국가의 형성과 우파의 길
 정병준
역사비평사, 2005
 - 민족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를 파괴한 매국과 독재, 자국민에 대한 대량 학살만으로도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인인 이승만이지만, 그럼에도 그를 살펴보고 싶었던 것은 ‘이승만’이라는 이가 한 시기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초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헌신적인 독립운동가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많은 경쟁자를 이기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 시대의 집단적 사유는 부정하고 싶어도, 인정하지 않으면 논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대통령의 자리에 앉힌 그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듯이 말이다. 태극기와 극우가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왕족이라는 이중적 콤플렉스
 -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정도로 치밀한 책을 쓴 정병준 교수에 대해서는 감탄이 나온다. 촘촘하게 대통령 당선 순간까지 이승만의 삶을 다양한 문서들을 통해서 존경스러울 정도로 촘촘하게 살펴보고 있다. 그가 이승만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방계 왕족, 그것도 몰락해서 더 이상 왕실 족보에도 오르지 못한 왕족이라는 삶이다. 그럼에도 이승만의 부친은 끝없이 왕족이라는 지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돌아다녔기에, 이승만은 빈곤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과거를 통해 출세를 하려 했으나, 그 마저도 여의치 않았기에 그에게 있어서 조선-대한제국과 고종은 증오의 대상이다. 하지만 동시에 왕족은 그가 가진 평생의 선망이다.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했다는 그 선망과 원망의 교차는 그의 삶을 마키아벨리적인 권력 욕망으로 이끈다.
-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던 이승만에게 손을 내민 것은 마찬가지로 나라를 바꾸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박해받은 개화파의 잔존 세력들과 당시 기호 지역을 중심으로 선교에 나선 감리교 선교사들이다. 빠르게 영어를 익히고 기독교로 개종한 이승만은 이제 본격적으로 개화파와 손을 잡고, 김홍집 내각을 몰아내고, 일본과 미국의 힘을 등에 지고 개혁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때부터 이승만의 기가 막힌 줄타기가 나오는데, 논의에서는 열심히 나서지만, 막상 행동에서는 뒤로 물러서는 모습. 이것이 그가 해방 이후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던 이유가 된다. 개화파에 대한 대한제국의 탄압은 개화파의 단결을 이끌었고, 월남 이상재 선생 같은 이의 끝없는 지지를 이승만이 받게 된 계기가 된다. 게다가 개화 세력에 대한 탄압과 7년간의 옥살이는 그로 하여금 더 철저하게 조선을 그리고 이씨 왕가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한 편, 그 과정에서 개화파 출신, 기호지역의 기독교도들을 평생의 동지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래서 어쩌면 이승만은 개화파가 이 땅에 던진 복수가 아닐까?
 포장과 선전술의 사이에서
 - 이승만의 독립운동은 항상 의문투성이다. 그 핵심에 대해 정병준 교수는 이승만의 친미 성향으로 설명한다. 한국을 지도할 기독교 지도자로 키우겠다는 미국 선교사들의 물심양면의 지지 속에서 미국 유학까지 단기로 마치고, 그는 미국에서 박사를 받았다. 그리고 주로 기호지역 기독교 지도자들이 만든 ‘한성 정부’의 대표 자리를 ‘대통령’으로 포장하여 미국의 정치가를 만나고, 다시 그런 만남 자체를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독립 운동의 대표자연 하게 된다. 필요할 때는 한성 정부를, 세력이 필요할 때는 중경의 임시 정부를 오가면서 그는 당시 식민지 조선과 미국 사이에 존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 정보의 비대칭적 자산을 자원 삼아, 양쪽에 대해 각기 다른 쪽의 대표성을 통해 자신이 독립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자라고 선전했다.
 -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이승만이 일본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3.1 운동이후 독립 운동의 기운이 승할 때에는 자신이 독립운동의 대표자연 하지만, 20년대 일본 총독부의 문화 정책 이후에는 노골적인 일본과의 비적대성, 일종의 자치 운동 수준에서만 운동에 나서고, 40년대 들어 미일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다시 일본과의 무장 투쟁을 ‘말로만’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이런 이승만의 태도가 철저하게 미국의 정책에 따라 움직였음을 다양한 문서와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미국이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2~30년대에는 ‘실력양성론’이라는 미명 하에, 직접적인 독립 운동 대신 교육과 기업가 양성을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일본 총독부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거나, 일본의 지원을 받는 것을 거리끼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다시 적대적이 되자, 미국의 COI(CIA의 전신)과 적극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반일 투쟁에 나서겠다고 떠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때 자신이 추천한 인사들을 미군 내 한국 침투 요원 양성에 참여시킴으로써 자신의 인맥을 미국의 지지하에 키우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만에게 일본에 대한 태도는 철저하게, 미국의 입장에 의해 결정되는 종속 변수다. 이는 이승만이 처음 개화파로서 투옥되고, 기독교도로서 성장하면서 한 결심,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 가장 이상적인 국가인 미국을 한반도에 재현하겠다고 했던 결심의 연장선상일 것이다. 그가 미국에 반대했던 유일한 사례는 미국 국무부가 한반도 전체에 대한 강대국 신탁 통치를 실시하려고 할 때 뿐이다. 반소 정책을 펼치던 미국 국방부와 함께 그는 남한에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건설해야 한다고 국무부를 공격한다.
 - 이렇게 기회에 맞춰 자신을 적절하게 포장하고, 그것을 다시 과장해서 선전하는 이승만의 능력이 정점을 찍은 것은 미국의 소리 방송을 통해 반일 투쟁을 선동하는 방송을 한 일일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COI와 밀접하게 일을 해온 이승만은 자신의 뜻에 가장 잘 호응해줄 인물이었으며, 이승만의 입장에서는 정보가 비대칭적 위치에 놓여 있던 조선의 민중에게는 마치 자신이 미국과 함께 해외에서 치열한 독립 투쟁을 하는 지도자로 자리잡게 되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가는 당시 한반도에 남아 있던 자신의 제자들을 통한 네트워크를 통해 단파 방송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 나간다. 이런 기회를 통해 심지어 여운형, 박헌영과 같은 좌파 지도자들조차도 이승만이 해외에서 인정받은 독립 투사로 인식하게 되는 착란이 발생한다. 이로서 20년대 이후 일본과 유연한 관계를 가지면서 점차 독립 운동 일선에서 모습이 사라지고, 나중에는 죽은 개가 되었던 이승만은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부활은 독립 이후 미 국방부, 특히 맥아더와 반공 반소 전략으로 의기투합하면서, 미군정의 강력한 자금 지원과 인력 동원을 통해 우익의 지도자로 자리잡게 되면서 정점에 이르게 된다.
 ‘영구’, ‘단일’과 ‘돈’에 대한 집착  
 - 이 책에서 가장 흥미 있었던 대목 중 하나는, 이승만은 어떤 조직을 만들건, 어떤 조직에 지도자로 추대되건, 반드시 요구하는 것이 ‘영구’, ‘단일’ 그리고 ‘돈’이라는 것이다. 반드시 ‘영구 총재’, ‘영구 총통’을 요구하여, 교체의 가능성을 거부했고, 합의제가 아닌 ‘단일 지도 체제’를 바랬으며, 무엇보다 당시 어떤 운동 지도자들보다도 강력하게 단체 명의의 ‘채권’ 발행에 대한 권리를 자신에게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그가 관련된 많은 미국 주로 하와이의 교포 단체들이 결국 소송전으로 분열하게 된 원인이 된다. 그의 불투명한 자금 확보와 사용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 이런 그의 태도는 독립 자금의 전용, 해방 후에는 경제보국회라는 일제 시대 친일 자산가들 단체와의 결탁, 외교 기금이라는 명목 하에 실효성 없는 해외 활동을 위한 기부 선전, 심지어 해방 후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자 마자 미국 자본가에게 다양한 한국에서의 사업권을 팔아먹는 등, 정치 자금의 확보를 가장 우선시했던 것은 그 이전의 지사적 운동가들의 모습과는 천양지차다. 그러나 그런 자금을 확보해서 그가 유효한 활동을 한 결과는 거의 없고, 오로지 유명 미국 정치가들과 사진 찍기에 나섰을 뿐이며, 다시금 그 사진을 이용해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할 정치 지도자로 자신을 포장할 뿐이다. 책에서는 이런 사례들이 너무나도 많이 등장해, 이승만의 이 철저한 일관성에 감탄이 나올 정도다.
 - 그러나 그가 이렇게 끝없이 자금에 대해 집착하면서 이룬 게 무엇인가 하면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그가 자강 정책으로 노력했던 집단 농장 및 미국 군수품 납품 사업은 막대한 빚과 함께 실패로 돌아갔고, 그가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벌였던 외교 활동 역시 개인의 명망 제고를 제외하고는 모두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가 그 자금을 통해 실현한 것은 개인적인 미국내 인맥과 국방부, 국무부 출신의 개인 고문을 둔 것들인데, 이것은 독립에 기여하기 보다는 독립 이후 미군정과의 협업, 미 국방부와의 협조를 통한 개인 집권에 기여했을 뿐이다.
 김구는 누구였을까?
 - 이승만의 문제적 삶에 대한 이해에는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 책을 보는 내내 당혹했던 것은 ‘김구 선생’은 누구였을까 하는 의문이다. 철저할 정도로 비타협적인 반일 투사였던 김구 선생의 삶에 대한 의문이기 보다는 김구 선생이 지닌 정치적 비젼에 대한 의문이다. 김구 선생은 임시 정부 이후 내도록 이승만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이승만의 명백한 서류 위조를 통한 범죄, 해외에서의 참칭을 통한 사적 이익의 추구 등 다양한 문제를 통해 비판을 받았으나, 위기 때마다 이승만을 구원했고, 심지어 장개석 정부가 임시정부에 제공했던 독립 자금 역시도 이승만에게 넘겨주는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독립 이후에도 이승만과의 논의 속에 반탁 투쟁을 벌이거나, 미군정에 대한 쿠테타 시도 등을 통해서 스스로 고립되었다. 이 때 역시 이승만은 논의만 하고 뒤로 빠져 있어, 모든 책임은 김구 선생이 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승만과의 연대를 통한 반탁 투쟁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이 주장하는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애매한 형태로 참여하기도 하는 등, 자신이 지닌 ‘임정’의 권위를 역사적 순간에 적절하게 활용하기 보다는 이승만의 후광에 이용되도록 방치 내지는 협조한 혐의가 있다. 물론 마지막 순간 통일을 외치며 북행을 하기도 하지만, 이미 그 과정까지 이승만과 협조하다가 최종적으로 한민당-한독당 통합 과정에서 벌어진 장덕수 피살 사건과 관련하여 미군정에게 추적 당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김구 선생은 좌익에 대한 무차별 테러라는 잘못보다, 이승만을 위한 끝없는 디딤돌 역할을 한 더 큰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닌가 의문이다. 물론 이 책은 이승만에 대한 연구의 곁에서 김구 선생이 다뤄지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신화화된 인물이 아닌 김구 선생의 모습을 이 책만큼의 깊이에서 다뤄진 책을 읽을 수 있기 바란다.
 끝으로
 - 끝으로 책에 실린 이승만이 정권을 장악한 후 CIA의 평가를 보자. “이승만은 개인적으로 이 나라를 장악할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국의 독립에 전생애를 바쳤다. 이 목적을 추구하면서 그는 자신의 개인적 출세를 위해 기꺼이 이용할 수 있었던 요소들을 이용하는 데 주저치 않았다. 중요한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공산주의와의 거래를 항상 거부했다는 점이다. 그의 지성은 천박했고, 그의 행동은 흔히 비합리적이거나 유치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결국 자신이 아주 빈틈없는 정치인임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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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lovlun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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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 여운형 김구 김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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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apesblog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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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어떻게 수립되었나? - 여운형, 김구, 이승만 그리고 김일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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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asesiriuxybs-blo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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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카지노 안전놀이터만 엄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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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카지노 몽양 여운형 선생 67주기 추모식 개최|(서울=연 필리핀카지노합뉴스) 황광모 기자= 19 필리핀카지노일 오전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 필리핀카지노 67주기를 맞이해 서울 우이동 선생의 묘소 필리핀카지노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 필리핀카지노장이 추모 사를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확 달라진 연합뉴스 앱 다운로드 필리핀카지노▶[월드컵] 독일 세계 제패...'신형전차 군단' 전성기 선포<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의 시선이 목소리의 출처인 전각에 못박혔다.  " 그래도 말 못하겠다는 건가? 내 짐작가지 못하는 바도 아니지 필리핀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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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0dav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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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 스텐실 작품이 영국에 계신 여운형선생님 가족분의 집에 멋지게 걸렸습니다. 더 열심히해서 꼭 찾아뵐게요:) 작품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몽양여운형 #여운형 #스트리트아트 #스트릿아트 #스텐실 #스텐실아트 #레오다브 #그래피티 #그래피티작품 #그래피티아트 #그래피티작가 #그래피티아티스트 #그래피티작가레오다브 #그래피티아티스트레오다브 #독립운동가 #독립운동 #언론개혁 #항일은_끝나지_않았다 #대한민국 #leodav #graffiti #graffitiart #graffitiwriter #graffitiartist #graffitiartlondon #artist #artwork #canvas #streetart #stencil #stencilartist #stencilart (London, United Kingdom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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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jahblack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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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여행 이튿날. 우리 가족은 세식구지만, 우리 일정과 프로그램은 딸 한분에게 맞추어져 있다. 따님이 좋아할 만한 대학로 공연을 찾아 예매를 해놨다. '봄날의 곰'이라는 작품을 봤다. 가기 전에는 아 그냥 2명만 예매를 하고, 와이프와 가위바위보로 한명만 보고 한명은 카페에서 아아를 홀짝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밤잠을 설쳐서 정신이 맑지 않았다. 피곤하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뭔가 무기력했다랄까. 같은 말인가. 근데 공연이 예상치 않게 재밌었다. 선생님을 맡은 배우의 혼연의 연기와 다른 배우 모두 약간 똘기 넘치는...그래 병맛 충만한 연기에 빵빵 터져 버렸다.애들과 같이 온 학부모들까지 즐길 수 있게 해준 배려 넘치는 연출에 감사했다. 코로나 탓인지, 티켓 가격도 엄청 할인하던데 공연계 종사자 분들 모두 화이팅. 애엄마 애아빠 인친들 #봄날의곰 추천이요. 참고로 좌석이 한 열씩 다 이어져 있어서, 옆에서 꼬마들이 재밌다고 발을 동동 구르면, 앞으로 굴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있으니 주의. 공연이 끝나고 와이프가 찾아놓은 맛집도#부부식당 성공적이었다. 샐러드도 정갈하게 잘 나오고, 파스타도 맛있고. 레몬콜라가 뭘까 궁금했는데, 콜라에 레몬이 올려져서 나온다. 그렇지. 미루고 뭉게기를 좋아하는 나는 대학부터 가보고 싶던 한국근대사의 유적지 3곳이 있는데 죄다 서울 강북에 있는데 한군데도 가보지 않았다. 이화장, 경교장, 삼청장. 이승만 전대통령과 김구 선생님 그리고 여운형 선생님의 사저. 그 ��� 이화장이 마침 대학로 근처에 있어서 가보았는데, 무슨 애국상 시상식과 건국 기념식이 있다하여 출입을 막으시더라. 이승만 전대통령에게 내가 특별히 애정있거나 하지는 않다. 그 분을 찬양하는 분들도 많이 봤고, 비판을 아끼지 않는 분들도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깜냥이 부족했던 배운 분이 분에 과한 자리를 꾸역꾸역 감당하려니 여러 역효과들이 난 게 아닐까...하는 생각. 어쨌든 담장 넘어, 그리고 입구에서 바라본 이화장은 근사했다. 평판이 어떠하든, 그 시절 국가의 원수가 될 사람이 머물만한 격에 맞는 그런 고상함이 느껴지는 근대식 건물이 었다.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쉽네. 호텔에서 대학로까지는 버스를 이용했다. 서대문까지 가는 버스는 대학로에서 동대문, 종로, 광화문을 거쳐 갔다. 마음 같아서는 광장시장에 들려서 마약김밥도 한접시 하고 간만에 구제시장에 가서 흥정도 해보고 싶었는데. 아빠의 머리채를 잡으면 깔깔거리는 따님을 빨리 방에 데려가 진정시켜야 했다. 오후에는 호텔 실내 수영장을 갔다. 마닐라 생활 그리운 거 하나 꼽으라면 수영. 요거 하나다. 그리 크지 않은 실내 수영장이지만, 아린이는 물에 들어가면 나올줄 몰랐다. 물론 나도 좋아서 하는 수영이지만, 물속에서 2시간은 좀 빡세다. 마지막 10분정도는 방에 있는 엄마를 보고 싶게 해야 했다. 이 날 저녁은 호텔 루프탑에서 무한 리필 BBQ. 배가 고파서 오픈을 하자 마자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내가 사실 소고기를 막 유난히 좋아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회식 때 농담삼아 사달라던 소고기를 예산 없다고 안사주니 (그럼 하질 말던가) 오기가 생겨서 소고기에 대한 아주 조금의 집착이 생겨버렸..🤤 BBQ 행사가 있는지 몰랐는데, 친절한 호텔 매니저님께서 먼저 연락해서 컴플리멘터리로 넣어주시고. 또 막 직접 찾아와 인사도 해주고 쵸콜렛도 선물로 주니 영문을 모르게 고마웠다. 며칠 전에 #프레이저플레이스센트럴 해쉬태그 박고 올린 것은 사실 그에 대한 나름의 답례였다. 내 팔로워는 무려 207명이나 되니까. 쵸콜렛 한조각 정도 보답은 되겠지.🤷‍♂️ 그리고 소고기 3 덩이째 먹을 때 즈음 아린이가 잠에 들어 여행 이튿날 종료. #가족여행 #여름휴가 #호캉스 #한번더 #프레이저플래이스센트럴 #여행이튿날 #봄남의곰 #이화장 #소고기 https://www.instagram.com/p/CD9CxxTHaMU/?igshid=11g3y4che1w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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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lovlun119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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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청년단 결성 파리 강화 회의 김규식 장덕수 파견 여운형의 정치적 위상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됨 1919 2 8 독립선언 3 1 운동의 도화선
김구 여운형 순서인즐 알았었는데 여운형이 먼저 암살된 것도 그렇고 평전 보니 여운형 김구 순서가 맞았나 보다
레닌 트로츠키 호치민 손문 장개석 등 신해혁명 지도자들과 교분 한국 독립 문제 논의 중국국민당 장개석 중국공산당 모택동에게서 특별당원 대우 중국혁명운동에 참여 1911 신해혁명 중한호조사 결성
1929 7 10 일제에 피검 3년간 서대문형무소 수감 죄목은 신한청년단 조직 파리 강화회의 김규식 파견 등등 18년간 몽양의 주요 항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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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plparty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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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o] Moon-jino (문진오) - The Country We're Going To Build Is (우리가 건설할 국가는) https://youtu.be/_htZaxc9BDo Artist : Moon-jino Album Title : Independence Fighter's Song Release Date : 2018.11.12 Genre : World Music [Listen here] Apple Music - Melon - Genie - Bugs - Vibe - Spotify - Coming Soon ■ Mirrorball Music http://mirrorballmusic.co.kr/ https://www.facebook.com/mirrorballmusic https://twitter.com/mirrorballmusic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노래를 찾는 사람들’ 출신의 가수 문진오가 그 의미를 담은 음반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치열히 독립운동을 하였던 독립투사의 어록과 추모시를 바탕으로 곡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곡은 프로듀서인 피아니스트 권오준에 의해 피아노와 국악기로만 편곡되었습니다. 여운형, 장준하의 연설문과 어록을 바탕으로 한 ‘우리가 건설할 국가는’과 ‘민족주의자의 길’은 그 시대의 자주, 독립, 민주 공화국의 꿈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노래입니다.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심정이 되어 시를 쓴 이윤옥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는 옥중에서 죽어가는 아들 안중근을 그리는 어머니의 심정이 가슴을 울립니다. 역시 이윤옥 시인의 시 ‘혁명의 강물에 뛰어든 김 알렉산드라’는 험난했던 시절 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김 알렉산드라는 사형장에서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8걸음만 걷게 해달라고하였답니다. 김 알렉산드라는 조선 땅을 밟아 본 적이 없었지만, 그 8걸음을 조선 8도를 아우르는 심정으로 걷고 죽겠다고 했다 합니다. 6.10 만세운동을 준비하다 일제에 발각되어 고문으로 죽어 가시고 또 고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일제에 의해 철관에 묻혀 가신 권오설 선생의 삶은 원옥희 시인의 추모시 ‘가곡지 회화나무’가 노래가 되었습니다. 전라도 의병장 황병학의 격문과 추모시로 만들어진 ‘의병장 황병학의 노래’는 장엄한 레퀴엠으로 모든 독립투사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통일시인 이기형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분단 아리랑’은 모든 독립투사의 꿈이었을 독립된 통일 조국을 가슴 저리게 노래합니다. 마지막 곡인 ‘독립군 추도가’는 작자 미상의 곡으로 독립운동 과정에서 산화해 가신 독립투사를 풍금과 해금으로 구슬프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문진오의 새 앨범 [독립운동가의 노래] 김창남(성공���대학교 교수,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장) 문진오의 새 앨범 [독립운동가의 노래]를 듣다 문득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기형 선생의 시에 곡을 붙인 ‘분단 아리랑’을 듣던 중이었다. 1980년대 중반 어느 시점엔가 이기형 선생을 가까이서 여러 번 뵌 적이 있었다. 몽양의 비서로 일했고 남북을 오가며 고초를 겪은 후 뒤늦게 시단에 나와 민족과 통일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활동하시던 때였다. 그때 이미 머리와 눈썹이 흰 백발의 노 시인이었는데 나처럼 젊은 사람도 늘 깍듯이 대하며 손을 꼭 잡아 주시곤 했다. 언젠가 당신이 쓰신 [몽양 여운형 평전]을 주시기도 했는데 세월의 유수 속에 책도 사라지고 시인에 대한 기억도 끊어졌다. 이기형 선생이 2013년 96세의 나이로 영면하셨다는 사실도 뒤늦게 확인했다. 세상이 몇 번씩이나 바뀌는 와중에 참 많은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될 많은 역사를 잊고 살았구나, 싶었다. 문진오의 음악인생 30년을 기념하는 음반 [독립운동가의 노래]는 이렇게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이름들을 새롭게 상기시킨다. 통일 시인 이기형을 소환하고 독립운동가 여운형과 김 알렉산드라, 안중근과 권오설을 불러내고, 의병장 황병학, 애국지사 장준하 그리고 이름 모를 독립군들을 되살려낸다. 언제부터인가 민족을 이야기하고 애국을 논하는 게 촌스럽거나 심지어 시대착오적인 일로 여겨지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식민지 수탈의 역사를 부정하고 위안부를 모독하는 일본과 국내 일부 세력의 문제가 불거진 지금 [독립운동가의 노래]는 때맞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환기시킨다. 시의적절한 기획인 셈이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문진오는 늘 그래왔다. 30년 전 노찾사 활동으로 시작한 그의 음악 인생이 꽃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으나, 그는 한 순간도 민족, 민중, 통일, 노동, 해방 같은 단어들로 표상되는 그 길을 벗어난 적이 없다. 겉멋이라고는 부릴 줄 모르는 목소리의 순정함만큼이나 그의 음악적 여정은 늘 한결같다. 변화와 변신이 미덕이라 칭송되는 경박한 시대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렇게 묵직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그가 너무나 고맙다. Credit Executive Producer 문진오 Producer 권오준 Co-Producer 문진오 Arrangement 권오준, 문진오 Recording 이음사운드 Eumsound (이정면, 김희재) Mixing 이음사운드 (이정면) Mastering 소노리티 마스터링 Sonority Mastering (이재수) Vocal 문진오, 김가영 Piano, 풍금 권오준 타악 장재효 대금, 소금 한충은 해금 김주리 가야금, 양금 김형섭 피리, 태평소, 생황 한지수 Chorus 이송미, 김은기, 신희준, 김태훈, 박종현, ��혜련 후원 : (재)마음동행, 마포민예총 ■ More about Moon-jino https://www.facebook.com/moonjino #Moon-jino #문진오 미러볼 뮤직 - Mirrorball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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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k30day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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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의한마디 048 몽양 #여운형 - 몽양 여운형 선생은 마라톤과 야구를 포함하여 대한민국 체육계의 아버지라 칭송 받는 인물이다. 123K30Days는 여운형 선생의 다양한 활동과 영향 중 스포츠를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독립정신과 희망을 심어준 업적에 주목한다. - 1934년에 열린 제2회 '조선 풀마라손 대회'는 선생이 직접 대회위원장을 맡아 열린 경기였는데, 이 대회의 우승자가 바로 양정고보 소속의 손기정이었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휩쓸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손기정은 선생의 지지와 후원을 받으며 베를린으로 떠났다. - 당시 선생은 손기정을 비롯한 올림픽 출전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환송사를 하며, 일일이 악수를 하고, 등을 두들겨주며 격려했다고 전한다. - "제군들은 비록 가슴에는 일장기를 달고 가지만, 등에는 한반도를 짊어지고 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마침내 베를린 올림픽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쟁취한 손기정은, 한국체육사에 길이 남는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전설 뒤에는 바로 선생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 - 출처: 오마이뉴스 - mongyang.go.kr . . . #123K30Days#running#marathon#러닝#마라톤#성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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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mokdan-leekyubok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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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운형... 난 딱히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있는디...ㅡ,.ㅡ ... 내가 사교성이 있나???... 엄친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디...ㅡ,.ㅡ ... #엄친아??? #내가??? #말이안됨(Jeju에서) https://www.instagram.com/p/Bs51UkCHlMr/?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zwj646tjb2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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