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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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hwa-kim ·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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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과 같이 지내야 하다 보니 정신연령이나 사고방식도 그들의 수준에서 머무르려고 노력을 한다. 이제 40대 중반이 되었지만 대학생이 누구나 살 수 있는 정도의 브랜드에서만 옷을 구입하고 머리도 아직까지 어른용(?) 머리를 해 본 적이 없다. 30대 중반까지는 차도 없어서 학생들이랑 같이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차를 타고 다닌 이후로는 역시나 학생들의 정서에서는 좀 더 멀어진 느낌이 든다.
내가 99학번으로 대학을 다니던 시절, 우리 학번에는 남자가 나를 포함해 2명이었는데 나머지 한 명이 3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버려서 남학생은 나 혼자였다. 졸업 후 취업을 했더니 50명의 그룹사에 디자이너 중에 남자는 고작 3명. 남자로 태어나 여자들과 지낸 시간이 길어져서 이제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명확히 구분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거의 무성이 아닐까.
이후로 패션과의 남학생은 점점 늘어나 지금은 거의 남:녀=4:6~5:5 수준까지 왔다. 20대 남녀는 성별은 달라도 생각하는 방식이 거의 비슷해서 내가 맞춰야 할 입장을 찾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요즘은 좀 많이 다르다.
다른 연령대에게 윤석열의 탄핵은 정치적 좌/우의 문제에 가깝겠지만, 20대 학생들에게 이건 젠더 문제이다. 양산의 문모씨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선언하며 특정 성별에게서 표를 뽑아내려고 시도했고, 그 반대편에 있던 모준석씨께서는 반대쪽 성별을 이용해 본인의 정치세력을 만들려고 하였다. 이걸 본 new시민씨께서는 시민씨의 정치적 입장과 다른 성별을 콕 집어 비난하는 등... 표만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면 정치인들은 지역, 소득, 연령, 성별 등등.. 뭐든 갈라칠 수 있는 본능을 가진 족속들이었다. 집단을 갈라 조직화를 이루면, 그 이후로는 집단 내 구성원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모든 행동을 합리화하는 게 가능해진다. 우리 집단 내에 속한 사람만 사람이지 다른 집단에 속한 자들은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서 돌아간다. 선거에 의해 다수가 지지하는 지도자가 뽑히면 그게 민심인 것이고, 그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은 다음 선거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다음 선거에서 바꿔야지, 그 기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요즘 보면, 좌나 우나,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선거에 의한 대의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야당은 대선으로 뽑힌 윤석열이 하는 모든 일에 발목을 잡았고, 윤석열은 총선으로 뽑힌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인정하지 않았다. 둘 다 이상하긴 하지만 차이는 있다.
일단 야당이 하는 일은 적어도 아래의 두 가지 조건을 벗어나지 않았다.
1. 합법이다.
2. 불법일 가능성이 있으나, 사법부의 관리 하에 있었다.
도의적으로는 너무할지 몰라도, 야당의 국무위원 탄핵은 합법적인 절차 안에서 이루어졌고, 야당 대표인 이재명은 상당수의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이지만, 역시 사법행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의 계엄은 아래의 두 조건에서 위와는 다르다.
1. 불법이다.
2. 사법부의 관리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 국가 체제의 전복을 시도하였다.
정부가 합법의 범위 안에서 국민들을 대할 때에는 국민들도 당연히 정부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윗대가리가 불법의 영역으로 완전히 넘어가 시스템의 전복을 시도하면, 국민들은 당연히 같이 불법의 영역까지 들어가 맞서 싸울 권리가 있다. 4.19, 부마항쟁, 5.18, 6월항쟁은 모두 정부의 불법적인 통제에 대한 국민들의 정당한 반발이었다. 이런 반발에 마저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그 폭동] 어쩌고 하는 문어대가리의 헛소리를 인용해 반응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그렇게 열심히 빨아대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미국의 국가 설립은 폭동에 의한 것인가? 미국의 수정헌법 2조는 반란분자의 폭동을 정당화하는가?
윤석열은 합법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극단적인 범죄자이고, 내란 수괴인 그에게 해당하는 형량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의 3가지밖에 없을 정도로 무거운 죄를 지었다. 합법적인 절차 안에 있는 상대방에 대응을 할 때에는 본인도 합법적인 절차 안에서 대응을 해야지 불법의 영역으로 완전히 넘어가 버리면 대응의 명분을 잃어버리게 되고, 게다가 그게 내란 쿠데타라면, 당장 죽어도 마땅한 놈이 되어버리고 만다.
동덕여대 사태가 발생했을 때 윤석열 지지층의 반응은 [학교 본부의 합법적인 행정에 대해 기물을 파손하고 락카칠을 하는 불법 폭력으로 대응을 해도 되는가? 합법 행정에 불법 범죄로 대응하는 것이 정당한가?]였다. 그 때 그들은 분명히 정상 행정 절차에 불법 폭력 범죄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번 윤석렬 계엄 사태는 어떤가? 합법적인 정당 활동에 대해 군대를 동원한 내란 쿠데타로 대응해도 된다는 것인가? 본인들이 동덕여대 사태에 적용했던 논리는 어디로 갔는가?
물론 국민 개개인은 윤석열의 탄핵에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 내란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은 흉악 범죄자이지만, 이 자의 탄핵에 국민이 동의해야만 하는 의무는 없다. 나는 내란 쿠데타의 수괴에게 국군통수권을 놔두는 게 국가 안보적으로 극단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이 탄핵에 동조해 주기를 바랐지만 그건 그냥 내 바람일 뿐이지, 국민 개개인이 탄핵에 동조하건 안 하건, 어느 한 쪽이 완전히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진짜 문제인 건 학생들 앞에서 내가 가져야 할 스탠스가 굉장히 애매해 졌다는 것이다. 나는 늘 학생들과 최대한 같은 정서를 가져보려고 노력했는데.. 이번에는 성별에 따라 완전히 극과 극으로 갈렸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으로는 멀어진다. 20대가 성별에 따라 이렇게 갈라지는 걸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윤석렬은 탄핵이 되었으므로 탄핵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행동한 쪽은, 정부가 국민들을 불법 폭력으로 협박하면 본인들의 손으로 정부를 몰아내고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강렬한 정치적 경험을 공유하였다. 반대편에 섰던 쪽은 좀 걱정이 된다. 이 쪽은 불법 내란을 일으킨 수괴의 범죄를 암묵적으로 방조해 버린 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의 정치적 경험 역시 오랜 시간 그들 사이에서 공유될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정치적 경험을 성별에 따라 각각 따로 공유하게 된 세대가 지금의 20대이므로.. 그들을 가르치는 나는, 둘 사이의 어느 정도 거리에 내 위치를 잡는 게 좋을지... 계속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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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페미니스트들의 호소에 응답하자!🇵🇸🇵🇸
"파업을 일으키는 것은 가자 학살을 지지하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제와 전략적 목표를 뒤흔들 정도의 풀뿌리 조직화와 전략적 계획표가 필요한 큰일이란 점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페미니스트 집회가 전세계의 도시들에서 일어날 것이란 것을 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집회시위들이 식민주의의 목소리나, 여성권의 문제를 가자의 학살을 정당화하고 시온주의 정치체의 범죄들을 소위 “핑크워싱에 사용하는 페미니즘”의 목소리로 점철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상기한 주장들이 시온주의 정치체가 일으키는 집단학살 전쟁의 필연적 결과로 발생된 가자지구 여성들의 권리와 생명에 대한 침해의 문제를 묵살하는 추악한 행태 역시 거부하는 바이다. ... 3.8 여성의 날에, 가부장적, 자본주의적, 식민주의적 통치체제의 근간을 뒤흔들 범세계적 총파업을 함께 조직하자. 3.8 여성의 날을 가자에 대한 집단학살 전쟁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시온주의 정착민 식민주의 기획을 끝장내고자 하는 운동을 심화, 확산하는 하루로 삼자. 3.8 여성의 날까지 선전, 선동에 힘쓰고 일상의 평온을 뒤흔들면서, 가자의 여성들 없이는 페미니스트 투쟁도 없다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이 세상에 각인시키자! (호소문 중)"
👉가자지구를 위한 파업을 촉구하는 페미니스트 호소문 전문 보기[링크]
👉2024 3.8 여성파업 조직위원회는 위 호소문에 응답하며 다음 행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3.8 여성의날 이전에 인증샷 캠페인>
▷집중기한 : 3월 5~7일 ▷방법 : 인증샷 이미지와 함께 사진을 찍고 SNS에 아래 해시태그와 함께 올려주세요.
#freepalstaine #womenstrike #WomenStrike4Gaza #womenstrikeforpalestine #StopTheGenocide #팔레스타인연대여성파업 #여성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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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gmae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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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너무 똑똑해서 지루한 게임? 죽이게 재밌는 정신 격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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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텀블러 프렌즈들! 오늘은 '늙은 백발 교수님들만 하는 게임'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 체스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솔직히 말해서… 체스는 완전 중독성 있는 심리전입니다. 그냥 지루한 보드게임이 아니라 진짜 소울 크러싱 배틀로열이에요!! 😫👑
체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정신적 격투기 🧠👊 체스의 역사는 약 1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기원전 인도의 '차투랑가'라는 게임에서 시작됐어요. 그럼 이 게임은…
체스가 가르쳐준 인생 교훈:
인생은 계획대로 안 됨 (특히 상대가 있으면) 때로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음 작은 폰(pawn)도 끝까지 가면 퀸(queen)이 될 수 있음 #진정한인생교훈 킹(king)은 가장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약한 존재 #인생의아이러니 체스는 그냥 게임이 아니라 인생 철학이에요, 여러분!! 🤯
내가 처음 접한 체스… 그리고 중독된 이유 ✨ 고백할게요: 저는 넷플릭스 '퀸즈 갬빗' 보고 체스에 빠졌어요. 클리셰하죠? 알아요… 🙄
근데 아니 이게 뭐라고 첫 게임 이후로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이런 체스판 꿈까지 꾸고… 내 뇌가 밤새 "나이트를 B3으로 움직이면…" 이러는 걸 어떡해요??
"게임은 끝났어도 내 머릿속에선 계속됐다" - 모든 체스 플레이어의 공통 경험
체스 피스들의 비밀 인격 분석 😏 각 체스 말들은 자기만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폰(Pawn): 앞으로만 가고, 마음에 안 들면 옆으로 때리는 패시브-어그레시브 타입 룩(Rook): 직선적이고 솔직한 성격. 돌직구 스타일 나이트(Knight): 생각의 흐름이 남다른 아티스트 타입. L자로만 움직이는 이상한 애 비숍(Bishop): 대각선으로만 보는 독특한 시각을 가진 철학자 퀸(Queen): 온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페미니스트 아이콘 킹(King): 중요한 존재지만 스스로는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그런 상사 같은 유형 여러분은 어떤 체스 말과 가장 비슷하세요? 저는 100% 나이트에요. 생각이 너무 이상하게 꼬여서… 😅
체스 어플로 시작하는 초보 가이드 (진지) 💯 체스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Chess.com이나 Lichess 앱 다운로드 - 무료로 시작 가능! 퍼즐 먼저 풀기 - 게임 전체를 이해하기보다 작은 문제부터 해결해보세요 컴퓨터랑 먼저 대결 - 실력 맞는 AI 상대로 연습하기 (인간은 너무 무서움…) 체스 유튜버 영상 보기 - GothamChess, agadmator 같은 채널이 초보자 친화적! 그냥 망해보기 - 정말로 체스를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100번 지는 거예요… "체스는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배우는 게임이다" - 제가 방금 만든 명언
체스하면서 겪는 5단계 감정 상태 🎢 자신감 넘침 - "체스? 쉽네! 이건 킹이고 이건 퀸이야!" 첫 실수 - "어… 그게 그렇게 움직이는 거였어?" 체크메이트 당함 - "어떻게 이렇게 빨리 끝나지???" 복수심 - "다시 한 판만 더… 이번엔 이길 거야…" 중독 - 새벽 3시에 체스 퍼즐 푸는 자신을 발견 체스 중독자들의 비밀 언어 🤫 포크: 한 번에 두 개의 말을 공격하는 것 (음식 포크가 아닙니다…) 핀: 상대 말이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키는 것 (무서워…) 스콜드 메이트: 단 4수 만에 체크메이트 (초보자 함정) 앙파상: 가장 이상한 룰… 폰이 갑자기 옆에서 다른 폰을 잡음 (????) 캐슬링: 킹과 룩이 서로 위치를 바꾸는 특별한 움직임 (안전 제일!) 체스는 결국 두 사람의 뇌가 직접 대결하는 유일한 스포츠예요. 복싱은 몸과 몸이 부딪히지만, 체스는 정신과 정신이 싸우는 거죠. 그리고 가끔은… 체스에서 진 후가 실제 복싱에서 맞은 것보다 더 아프기도 해요… 🥲
체스를 시작해보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이미 중독된 플레이어이신가요? 어떤 말이 제일 좋으세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저도 아직 초보지만 함께 배워가요~ 🖤
P.S. 체스 때문에 밤에 잠 못 이루신 적 있으면 리블로그 해주세요. 3일째 잠 못 자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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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renuggets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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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eminist, Tony Tulathimu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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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directory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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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체성을 소유하는 대신 사용해야 하는가?: 정체성 정치에 대한 메모
왜 정체성을 소유하는 대신 사용해야 하는가?: 정체성 정치에 대한 메모
이연숙(리타)
1.
정체성 정치라는 용어는 1977년 미국의 컴바히강 콜렉티브The Combahee River Collective라는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단체의 선언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사회주의자이자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서 이들은 “인종 억압, 성 억압, 이성애 중심주의, 계급 억압”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통합적인 분석 및 실천의 계발”을 주요한 과제로 삼았다. 이들은 이런 “억압의 총합이 우리 삶의 조건을 결정한다”고 썼다. 말하자면 페미니스트로서는 백인 여성과 다르고, 반인종주의자로서는 흑인 남성, 백인 남성과는 다를 수 밖에 없는 억압의 경험이 바로 ‘흑인 여성’의 구체적인 삶의 조건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누군가가 받는 [추상적] 억압”을 없애기 보다 지금 자신들이 흑인 여성으로서 겪고 있는 억압을 분석함으로써 “가장 급진적인 정치학”이 가능하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겪는 억압에 초점을 맞춘” 정치학, 이것이 바로 정체성 정치의 정의다. 이들이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은 흑인 여성이 “떠받들어지는 것, 여왕 대접, 열 걸음 뒤처져 걷는 것”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당연하게도) “동등한 인간”으로 인식되기 위함이다. “흑인 여성 해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우리에게 충분히 관심을 갖는 이들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는 통렬한 현실 인식은 이들로 하여금 다른 누구도 아닌 흑인 여성이 겪는 특수한 억압의 경험을 동력으로 삼는 정치를 고안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최근 많은 이들이 정체성 정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서 자신들의 정체성만이 중요하고 다른 이들의 정체성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과는 반대로 이들은 인종 억압, 성 억압, 계급 억압과 같은 “모든 억압이 우리 삶에 동시에 들이 닥친다”는 것을 강조하며 각각의 억압이 어떻게 다른 억압과 분리 불가능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흑인 여성이 어떻게 다른 억압 받는 존재들과 분리 불가능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역설했다.
이들은 특히 (레즈비언들이 이성애자 여성, 남성과 극단적으로 단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레즈비언 분리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리주의는 너무나 많은 것과 사람들, 특히 흑인 남성들, 여성들, 어린이들을 뒤에 남겨둔다. (...) 분리주의는 다른 어떤 것은 무시한 채, 계급과 인종의 문제를 부정하고 여성 억압의 성적 근원만을 찾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시에 작동하는 억압들” 중 “다른 어떤 것”도 무시하지 않고자 했고, 오히려 “여성들, 제3세계인들, 노동자들의 삶에 지장을 주는 어떤 상황이든 개입”하려 했다. 『오인된 정체성』이라는 제목의 정체성 정치를 중심에 둔 대중 운동을 비판한 저서를 쓴 아사드 하이더는 당시 컴바히강 콜렉티브에게 정체성 정치란 무엇이었는가를 질문하며 다음과 같이 쓴다. “컴바히강공동체에게 (...) [정체성 정치는] 정치가 정치와 연관된 개인들의 구체적 정체성들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들은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라는 개인의 특수한 권리를 위해 정체성 정치를 고안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교차성을 분석함으로써 주류적인 프레임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이해하고 또한 그러한 이해에 뒤따르는 저항적 실천을 구상하기 위해 정체성 정치를 고안한 것이다. 아사드 하이더는 컴바히강 콜렉티브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데미타 프레이지어의 회고를 인용한다. “저는 컴바히강공동체나 제가 참여했던 여타 흑인 페미니스트 단체가 오로지 우리 흑인 여성에게 관심있는 이슈만 주목해야 한다거나 레즈비언/바이섹슈얼 여성으로서 오로지 레즈비언의 이슈만 주목해야 한다고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정말 중요하게 기록해야 할 점은, 컴바히강공동체가 한 지역에 가정폭력을 겪은 여성들을 위한 대피처를 세우는 일에 공헌했다는 점입니다. (...) 저희는 스스로 살아남으려면 연대를 구축하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대피처”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이해 혹은 감각은 정체성 정치라는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서는 더 큰 것, 이를테면 ‘공동체’라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서 고안되었음을 증거한다.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 다시 읽는다. 정체성은 ‘나’가 아니라 타자를 위한 “대피처”로 사용될 수 있을 때에만 유용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정체성 정치의 위험과 쓸모를 일찌감치 생산적으로 논의한 더글라스 크림프의 글인 「당신에게 동의해요, 걸프렌드」를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1991년 쓰여진 이 글은 『셀룰로이드 클로젯 Celluloid Closet』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활동가이자 영화사가 비토 루소의 장례식에서 출발해 동성애자 권리 운동의 역사와 전략을 거쳐 <양들의 침묵>의 동성애 혐오적 재현과 해당 영화의 주연인 조디 포스터에 대한 레즈비언과 게이의 상반된 반응을 예리하게 분석한 뒤 종국에는 ‘정치적 동일시’에 기반한 정체성 정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결론으로 끝맺는다. (유명인 클로짓 동성애자를 아웃팅 시키는) ‘아웃팅 outing’과 (동성애 혐오 표현에 맞서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맞받아치기 bashing back’라는 동성애자 운동의 전형적인 저항 전략을 넘어서, 그리고 (조디 포스터에 대한 상반된 반응으로 요약되는) 게이와 레즈비언의 본질적이라 가정되는 입장 차이를 넘어서, 퀴어 정치학은 어떤 방식으로 공동의 전선을 그릴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해, 섹슈얼리티에 기반한 정체성 정치가 아닌 정치적 목표에 기반한 정체성 정치가 가능한가? 그는 어떤 연예인이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를 두고 열띤 가십을 나누는 부치들을 예시 삼아 정체화란 언제나 타자와의 동일시라는 점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체성은 단순히 자신을 긍정하는 선언이 아니다. 정체성은 언제나, 타자와 맺는 하나의 관계다. (...) 정체성이 언제나 관계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정체성 정치를 고정된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가 아니라 관계적 정체성들에 기반한 정치로 다시 말들어나갈 수 있다. 또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다시 만드는 정치적 동일시들을 통해 형성되는 정치로 새롭게 사고할 수 있다.” 정체화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선언하는 것 그 이상이다. 정체화는 내가 동일시하고 있는 누군가를 언제나 포함하고 있다. 정체화를 통해 우리는 (자각하든 말든) 누군가의 편에 이미 서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역동을 “우리 내부의 적대를 악화”하기 보다 “연대를 확장하기 위해” 쓸 수는 없을까? 그가 제시한 정치적 동일시를 통한 정체화란 내가 어떤 성적 지향과 어떤 성적 정체성을 가졌느냐와 상관없이 누구와 동일시할 것인가, 그러므로 누구와 함께 세상에 맞서 싸울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관점을 기반에 두고 있다. 퀴어라는 정체성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으로 등장했다. 모든 억압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된 누구든 환영하는 이 이름은 단순히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적 소수자의 총합을 뜻하지 않는다. 퀴어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본질적인) 비규범적인 섹슈얼리티를 긍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주의로부터 벗어나서) 퀴어로서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할 것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컴바히강 콜렉티브를 포함한 흑인 해방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과의 동일시를 통해 동성애자 권리 운동이 출현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는 정체성이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억압받는 모든 이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피난처”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우리 자신이 아닌 것이 될 필요가 있다.
2.
오늘날 정체성 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특히 기계적 정치적 올바름을 고수하는 이들로부터의 강도 높은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맨 처음 정체성 정치와 행동주의 예술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나는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우회적인 방식으로 정체성 정치에 대한 불만을 풍기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요컨대 정체성 정치는 이러이러한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도움 닫기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적 거리두기는 내게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이 자신과 다른 정체성이라 여겨지는 이들을 타자화하는 방식을 보고 있자면 말이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그것도 주로 중��층) 여성의 문제를 제외하고 다른 어떤 문제에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마찬가지로 퀴어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의미하는 수식일 뿐인가? 누가 ‘우리’라는 공동체에 들어올만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일이 언제부터 페미니스트와 퀴어의 주된 업무가 되었나? 상황은 모두에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정체성은 모두에게 점점 더 한계처럼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2016년 이후 집단적으로 각성한 비교적 젊은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은 (특히 생물학적) 여성의 경험을 통해 여성이라는 정체성의 특수한 내용을 구성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러한 노력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근원을 실증적이라 가정되는 여성 범주에 위치시키려는 의지와 관련된다. 민족이나 인종과 마찬가지로 성별 역시도 실제로 누군가에게 귀속된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으로 축적된 이해 관계와 이데올로기의 효과라는 사실은 종종 이런 의지에 의해 잊혀진다(“결국 이론(들) 없이 인종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 더 중요한 것은 학문적 인종주의의 이론화가 인종이라는 기표를 둘러싸고 제도화되는 공동체의 결정화 속에서 완수하고 있는 기능에 대해 묻는 것이다”). 성별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중요한 것으로서 재구성하는 테크놀로지 때문에 중요해진다(“젠더는 재현이다. 이는 젠더가 개인의 물질적 삶에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함의를 지니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젠더의 재현은 곧 젠더의 구성이다.”). 나는 지금 특정한 민족이나 인종, 성별에 가해지는 차별과 혐오가 허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차별과 혐오가 재생산하는 상상적인 근원을 초역사적인 실재로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물론 분리가 불가능한 것처럼 묶여 있기에 따로 떼어내서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우리는 지배 구조에 항거하는 대부분의 운동이 끓는 점을 돌파하기 위해 학대받고 착취당한 그들의 먼 조상을 상상해낼 필요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최근 국내 퀴어 예술가들이 ‘퀴어’라는 이름이 수입되기 전 이미 일탈적 섹슈얼리티를 실천하고 있던 ‘선배’들을 찾아 나서는 것도 바로 이런 대항 역사에 대한 의지 때문일 것이다.
소수자들에 대한 그 어떤 권리나 심지어 보호조차 적절히 보장하지 못하는 2023년의 한국에서 정체성 정치에 대한 이런 비판적인 관점은 어쩌면 그 자체로 시기상조인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시기이기에, 다시 말해 특정 정체성으로 호명될 수 있는 집단 뿐만 아니라 아직 이름이 없는 다른 모든 소수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들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시기이기에 우리는 더더욱 정체성 정치를 실용적인 관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왜 우리에게 정체성이 필요한가? 정체성은 내가 받은 고통을 보다 정밀하게 세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다른 이들의 고통과 만나기 위해서 고안된 도구다. 그것은 소유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용되기 위해서 발명된 개념이다. 또한 정체성은 아직 자신의 고통을 설명할 언어가 없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텅 빈 장소다. 그리고 그 장소는 일시적인 “피난처”일 뿐 처음부터 그 장소의 소유자로서 정통성을 승계받은 이가 자비롭게 개방한 공동 주거 단지가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정체성을 우리 자신과 분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경험이 남는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정체성을 정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라는 범주를 확장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약자의, 피해자의, 특정한 정체성을 이루는 조건으로 한계 지으라는 압력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만약 우연한 마주침의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하고 우리와 비슷해 보이는 이들만 환영하게 된다면 가장 기뻐할 이들이 누구일지 생각해보라. “적이 누구인지 기억하라.” 정체성이 우리 사이의 구획을 더 촘촘하게 나누고 강화하는데에만 일조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더 잘 싸우기 위해서 차라리 그것들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한때 우리 자신을 지키는 무기였던 그것이 본래 우리의 소유가 아님을, 다른 이들을 위한 “피난처”의 재료임을 알지 못한다면 이것들은 우리를 억압하는 이들의 무기와 아무런 차이도 없는 그저 무기일 뿐이다. 이쯤해서 나는 내가 최근 재미있게 보고 있는 유튜브 채널의 영상 중 한 부분을 언급하려 한다. 알다시피 오늘날 퀴어 정체성에 기반한 행동주의 예술에서, 특히 그것의 교육적인 측면에서 가장 실재적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유튜브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창작자들이다. 심지어 위험을 감수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교육적인 효과를 거두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퀴어 예술가인 이반지하와 같은 인물들은 이 분야에서 대표적일 뿐만 아니라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다음 세대라 할 수 있을, 드랙킹 퍼포머로 활동하던 ‘아장맨’이 개설한 유튜브 채널인 ‘아장쥐’는 그가 레즈비언 하위문화에서 겪은 경험과 감정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주된 소재로 삼고 있다. 최근 게시된 <젊은 보수비언 (보수적인 레즈비언)의 슬픔>이라는 영상에서 그는 그가 매우 보수적인 편이라고 밝히며 20대 중반까지 비규범적인 외모와 성향의 타인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단순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레즈비언들을 전형화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정체성 정치에 대한 은근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그러니까 뭐 정체화 하셨거나 아니면은 정체화 한지 오래 되셨거나 하시는 퀴어 분들! 퀴어라고 해가지고 이제 “내가 남들보다 많이 알아~” (비퀴어들한테) “니가 뭘 알아! 내가 남들보다 시야가 얼마나 넓은 줄 알아!?” 이렇게 자만하면 안 되고, 언제나 스스로의 빻은 면모를 발견해 가지고 이제 발견하면 두들겨 패 가지고 함께 저희 함께 모두와... 커뮤니티의 모두와 지지하고 연대하고 사랑해 가면서 살아야 된다 이거죠...” 누군가에게는 거슬릴 수도 있는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아장맨’이자 ‘아장쥐’는 특유의 과하게 여성스러운 말투와 제스처를 ‘수행’해가며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하나의 전형화된 ‘보수적인 레즈비언’의 예시로서 제공한다. 그에게 정체성이란 자신의 “빻은 면모를 발견”하게 해줄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그런 면모를 자동적으로 해소시켜 줄 정답을 되지 못한다. 그는 정체성을 통해서 무엇보다 “모두와 지지하고 연대하고 사랑해 가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배운다. 도대체 그러지 못한다면 정체성이라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인용 출처:
「컴바히강 콜렉티브 선언문 The Combahee River Collective Statement」를 가리킨다. 한국어 번역은 아래 도서를 참조했다. 브리앤 파스 엮음, 양효실, 이라영, 이진실, 한우리, 황미요조 역, 『우리는 다 태워버릴 것이다: 페미니즘 매니페스토, 폭발적으로 저항하는 언어들』 중에서 「컴바히강 집단 선언문」, 바다출판사, 2021, 435-448p. 아래 직접 인용은 별 다른 표시가 없는 한 모두 해당 텍스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하사드 하이더, 권순욱 역, 『오인된 정체성』, 두번째테제, 2021, 28p.
Demita Frazier, 「Rethinking Identity Politics」, Sojourner(september 1995), 12p. 『오인된 정체성』에서 재인용, 30p.
더글라스 크림프, 김수연 역, 『애도와 투쟁』 중에서 「당신에게 동의해요, 걸프렌드!」, 현실문화, 2021, 231-267p. 아래 직접 인용은 별 다른 표시가 없는 한 모두 해당 텍스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에티엔 발리바르, 이매뉴얼 월러스틴, 김상운 역, 『인종, 국민, 계급: 모호한 정체성들』, 두번째테제, 2022, 67p.
테레사 드 로레티스, 에일(페미니즘 번역모임) 역, 「젠더의 테크놀로지」, https://en-movement.net/195
<헝거 게임: 캣칭 파이어>에 나온 대사를 마크 피셔가 인용한 것이다. 마크 피셔, 박진철, 리시올 편집부 역, 「적이 누구인지 기억하라」, https://playtime.blog/2019/03/03/적이-누구인지-기억하라/
아장쥐, <젊은 보수비언 (보수적인 레즈비언) 의 슬픔>, https://www.youtube.com/watch?v=ywbkH_TK2Is
[출처] 왜 정체성을 소유하는 대신 사용해야 하는가?|작성자 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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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ori-kr ·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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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에서 청혼한 커플, 조롱받은 후 감동의 결말
KFC에서 청혼한 커플, 조롱받은 후 감동의 결말 #KFC청혼 #KFCProposal #사랑의힘 #행복한결말 #페미조롱 #축복의비 최근 KFC에서 청혼한 한 커플이 큰 화제를 모으며 사랑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페미니스트 한 명이 이 커플을 조롱하면서 시작되었죠. 그녀는 “KFC에서 청혼이라니… 정말 품격이 없다”며 남성의 경제적 여유가 없음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트위터에 남겼습니다. 조롱에서 축복으로하지만 이 글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사랑의 힘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모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청혼 소식을 본 여러 기업들은 커플을 돕기 위해 나섰습니다. 여행사 Kulula: “우리 커플에게 신혼여행을 제공할게요! 비행기와 5박 숙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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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maker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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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하정자 작가 소설집 ‘햄버거와 백구두’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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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rophile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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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의 페미니스트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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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kpif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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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고시 얼마나 쉽길래 YTN 동해번쩍 서해번쩍 연합뉴스 광화문 한나라 조선일보 존망 봇물 페미니스트 음란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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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jung1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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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UN의 2030 의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엘리트들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의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Agenda 2030으로도 알려진 "New Agenda"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의제 2030은 무엇일까요?
달성하고 추구하기 위해 다양한 '글로벌 목표'가 공식화되었습니다.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물론 기후 보호입니다.
다른 하나는 "젠더 평등", 즉 페미니스트 의제의 실현과 성의 자기 선택입니다.
New Agenda가 환경에 정말 좋다고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주!
15분 도시라는 아이디어가 어디서 왔으며 왜 한꺼번에 모든 곳에 퍼지는 것 같은지 궁금한 적이 있습니까?
최신 Samsung Galaxy 휴대폰에는 Agenda 2030 앱이 사전 설치되어 있어 이 새로운 일정이 얼마나 멋진지 보여줍니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이미 3억 대 이상의 휴대폰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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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einred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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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갈등의 시작. 20만년 간 이어진 남자의 속성이 변하다.
매매혼으로 치부되던 국제결혼의 증가. 주말에 연애 대신 운동하는 헬창이 창궐. 게임하는 남자의 폭발적 증가. 이는 남자들의 근본적은 속성이 변화했음을 담고 있는 중요한 사회현상이다. 리스크에 대해 각성했다는 뜻이다. 사실 이전에는 이를 리스크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남자들이 큰 리스크, 큰 사건에 대해서만 관심을 같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적 정설은 남자는 소소한 불편 또는 불합리를 신경쓰지 않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순수하게 무신경하도록 진화되었다. 사냥 중 맹수가 달려드는 그 순간에 덤불가시에 긁혔다고 이를 신경쓰게 되면 잡아먹힐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굵직하고 큰 건 말고 소소한 손실은 자신의안전을 위해서라도 신경 안쓰고, 정확히는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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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ly-in-distres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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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언어로 🇫🇷🇺🇸 -> #페미니즘의정도 🖍 밀리의 만화 ! -> #밀리의우울구멍 🗣 우리가 살아갈때에는 우리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 =. …. (브런치에서 계속) 🖋 🔖📚👓 레퍼런스: #badfeminist #배드페미니스트 #록산게이 #️⃣해쉬태그: 엠마왓슨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인스타툰 #heforshe #그림일기 #공감툰 #우울증 #우울증치료 #우울증그림일기 #캐릭터 #만화 #웹툰 #인사이트 #글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dFFsAQPi27/?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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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ori-kr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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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뻑가에 대한 고소가 어려운 이유
유튜버 뻑가에 대한 고소가 어려운 이유 2021년, 사이버테러를 주도하는 유튜버 뻑가에 대한 고소가 결정되었다. 이는 뻑가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온라인 폭력에 대한 법적 대응의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고소의 주된 목적은 더 많은 피해자 발생을 방지하고 뻑가에 대한 적절한 법적 처벌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고소 과정은 여러 단계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2020년 4월 11일, 트랜스젠더 입학 반대 운동과 관련하여 뻑가의 유튜브 채널에 신고인의 얼굴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시작된다. 이후 2021년 5월 2일, 신남성연대가 숙명여자대학교 앞에서 뻑가의 영상을 상영하겠다고 주장하며 신고인의 신변에 위협이 가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고인은 뻑가의 영상으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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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th-of-feelin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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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고 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 - 이상의 시 <오감도> 중에서(4쪽)
무슨 말인지 몰라 몇번을 되뇌였다. 아, 싸움하기 전에는 싸움을 안한 상태구나. 그래서 싸움을 하는거구나. 계속 싸움하는 상태는 아니니까.
한쪽의 수고로 한쪽이 안락을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다.(46쪽)
일방의 관계는 누가 지치든 지치기 마련이다. 안락이라는 말에 어느 한쪽의 지난한 노력이 있다면 말이다. 열 번 잘하다가다도 어느 순간 남처럼 등 돌리는 남자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씻지도 못하고 이틀째 널려 있는 빨래를 걷는데도 꼼짝 않고 누워 있는 남편. 결혼 전에 아빠를 볼 때면 좀 궁금했다. 옆 사람 힘든 게 왜 안보일까….나중에 알고 보니 못 본 척하는게 아니라 아예 안보이는 거다. 대대손손 소통 불능의 장애를 겪는 남성들. 그렇게 살아도 삶이 유지됐으므로 타인의 심정을 헤아리는 능력이 퇴화한 것이다.(58쪽)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라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 김경주의 시 <주저흔> 중에서(96쪽)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오해받을지라도 순간의 진실을 추구하고 주어진 과업을 수해하며 살아갈 때만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삶은 변한다.(120쪽)
그럴 수만 있다면 영화처럼 살고 싶다. 시처럼 살다가 소설처럼 죽고 싶다.(139쪽)
어머니가 그러더라. 가만히 있으면 뭐하느냐고, 사람은 ‘나쁜 짓’이라도 해야 한다고 그래야 하나라도 배울게 있다고(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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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liveonly-once-blo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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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뱉는 말, 하는 행동, 무엇이 잘못 되었고 어떻게 고쳐야하는지. 부끄럽게 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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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reatureinkorea-blo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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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대와 맞지 않는 성차별 때문에 올해는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그녀 목소리를 높여주기 위해서 작업하기로 했습니다. 첫번째 샘플들 공유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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