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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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 . . . . . #드로잉 #컨투어드로잉 #라인드로잉 #그림 #그림스타그램 #일러스트 #일러스트레이터 #두들 #일러스트레이션 #원라인드로잉 #펜드로잉 #스케치 #패션일러스트 #아티스트 #인물드로잉 #데일리드로잉 #패션드로잉 #드로잉케이스#드로잉에코백 #센티멘탈메모리즈 #skech #silkscreen #sentimentalmemories #drawing #draw #linedrawing #fashionillust #artist #printart https://www.instagram.com/p/B9lmSO0lafp/?igshid=6wuakpnvjk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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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기독신우회, #박규남목사 ( #큰나무교회 )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누가복음 5장1절~5장7절 / 전달: #KBS강성실 [눅]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오늘 생각해 볼 책으로는 #피로사회 - 한병철 (지은이), 김태환 (옮긴이) | 문학과지성사 #분노사회 - 현대사회의 감정에 관한 철학에세이 , 정지우 (지은이) | 이경 #승자독식사회 - 로버트 H. 프랭크(대학교수), 필립 쿡 저 권영경 역 웅진지식하우스 #단속사회 - 엄기호 (지은이) | 창비 목사님 생각에는 지금 우리 사회는 #절망사회 라고 표현하고 싶다고.. 이슬람 선교의 아버지인 사무엘 즈웜머 Samuel M.Zwemer(1867~1952) #사무엘즈웜머 #SamuelZwemer [Book] The rise of Christianity - Rodney Stark #theRiseOfChristianity #RodneyStark The Rise of Christianity: How the Obscure, Marginal Jesus Movement Became the Dominant Religious Force in the Western World in a Few Centuries [책] 기독교의 발흥 (사회과학자의 시선으로 탐색한 초기 기독교 성장의 요인) - 로드니 스타크 저, 손현선 역, 좋은씨앗 #기독교의발흥 #로드니스타크 <도서 소개> 로마 제국의 변방에서 시작된 미약한 예수 운동이 어떻게 단 몇 세기 만에 서구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 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2016 선교한국 대회의 책〉 선정 도서!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펴낸 신학서적이 아니다. 기독교에 특별한 애정이 없는 종교사회학자가 특유의 시선으로 바라본 초기 기독교 발흥에 대한 탐구서다. 현대의 사회학적 이론과 분석 방법을 동원해 초기 기독교가 급성장한 요인을 탐색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성경이 전하는 초기 기독교의 모습에 대해 사회과학자로서 그가 피력하는 견해는 기독교인들에게 다소 언짢을 수 있다. 그럼에도 ‘초기 기독교의 발흥’에 대한 탐구서로서, 이 책은 깊은 영감을 준다. 거대한 이방 세계의 변방에서 출발한 미약한 종교 운동으로서 기독교가 어떻게 단 몇 세기 만에 세상을 지배하는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300년의 기적 같은 부흥의 이면에는 그저 ‘기적’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현실 속 요인들이 있지 않았을까? 로드니 스타크는 이 화두를 놓고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2천 년 전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가 길어 낸 통찰들은 역설적이게도 지금 이곳에 자리한 기독교에 매우 도전적인 결과물로 남았다. -------------------------------------------------------- 이슬람 선교의 아버지인 사무엘 즈웜머 -CP교회연합신문선교칼럼- 요즈음 카이로가 심상치 않다. 민주화 바람이후에 기독교에 대해서 심한 박해의 태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땅에서 17년 동안 사역하였던 한 사람의 선교사를 소개 한다. 사무엘 즈윔머(Samuel Zwemer)는 1867년, 미국 미시간의 홀랜드(Holland)에서 열다섯 자녀 중 열 세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개혁교회의 목사였기 때문에 기독교적 토양 속에서 훈련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러 형제 가운데에서 생존한 5형제 중 4명도 목회자가 되었으며 누이인 넬리(Nellie)즈윔머는 선교사로서 중국에서 40여년 동안을 사역하였다. 즈윔머가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하게 된 동기는 호프대학(Hope College)에 재학중 일 때였다. 그는 4학년 재학 중 일 때에 죤 모트와 헐몬산의 100명을 감동시킨 로버트 윌더의 감동적인 설교를 듣고 7명의 학우 중 5명과 함께 선교사로 자원하였다. 신학교육과 의료교육을 받고난 이후에 즈윔머는 제임스 캔틴과 함께 개혁교회의 선교부에 아랍 쪽의 선교사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거절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 미국아랍선교회(American Arabian Mission)를 조직하여 모금운동을 시작하였다. 쉽지 않는 일이었지만 6,000Km 이상을 여행하며 선교의 도전과 함께 모금 요청을 하였다. 이들의 모금 방식은 특이한 전략을 가졌다. 즉 즈윔머는 캔틴의 모금을, 캔틴은 즈윔머의 모금을 진행하였다.
#kbs강성실#rodneystark#samuelzwemer#승자독식사회#분노사회#로드니스타크#기독교의발흥#단속사회#박규남목사#큰나무교회#절망사회#피로사회#kbs기독신우회#사무엘즈웜머#theriseof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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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른 아홉번째
한병철 - 피로사회
얇으면서도 굉장히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번역이 어렵게 된 것인지 원문에 가깝게 된 것인지 몰라도 문장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것은 분명했다. 심리적 철학적 용어도 많아서 배경지식 없이는 읽다가 이게 어떻다는 걸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할까도 싶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우울증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을 잘 해보지 못했는데, 거기에 대해 상당히 객관적으로 우울이란것에 대해, 그리고 우울이 일어나는 사회의 배경에 대해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우선 책의 많은 부분에서 나오는 부정성의 긍정성이다. 현대사회는 성과사회로, 긍정이 곧 더 많은 성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긍정은 항상 권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부정성은 자리를 잃고, 사람들은 긍정의 물살에 따라 자기핍박을 자기 스스로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에 거부하지 못할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에 유리한 방법일 것이란건 조금은 슬픈 일이다.
그리고 또다른 주목할 만한 개념은 개인과 타인의 경계가 허물어져 일체화가 이뤄진다는 점. 즉 가해자가 따로 없고 피해자가 따로 없는 자기 자신이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자기착취는 자기계발이란 이름을 달고 긍정적인 것으로 사회에서 권장되어지고 있다. 물론 이것에 부정적인 효과만이 있는것은 아닐것이나, 분명 이런 자기주도적 자기계발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는 쳇바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자신의 지배자가 됨으로써, 더 이상 지배기구의 소멸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 28pg
이런 타인과 자신의 동질화가 뒷부분에서 자아의 개념과 함께 다루어지는데, 그러니까 자아는 타자와 대립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정립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들어 뒤틀리는 자존감 혹은 자신감들이 성립이 되는데, 이 타인과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며 동질화되자 더이상 타인이 큰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발터 벤야민의 심심함의 대한 예찬이 나온다. 발터 벤야민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있는 새.” 라고 칭하면서 심심함의 아름다움을 어필해 나간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벤야민은 꿈의 새가 깃드는 이완과 시간의 둥지가 현대에 와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그런 것을 “짜지도, 잣지도” 않는다. 심심함이란 “속에 가장 열정적이고 화려한 안감을 댄 따뜻한 잿빛 수건이다.” 그리고 “우리는 꿈꿀 때 이 수건으로 몸을 감싼다.” 우리는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 속에서 안식한다.” 이완의 소멸과 더불어 “귀 기울여 듣는 재능” 이 소실되고 “귀 기울여 듣는 자의 공동체”도 사라진다. 이 공동체의 정반대편에 있는것이 우리의 활동 공동체이다.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은 깊은 사색적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에 바탕을 둔다. 지나치게 활동적인 자아에게 그런 능력은 주어지지 않는다. - 32pg
요즘같은 시대에 심심함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손에 스마트폰을 쥐게 됨으로써 심심함과 영원히 이별하게 되었다. 남자들은 그런 정보의 홍수속에 있다가 수업시간이나 아르바이트, 그리고 무엇보다 군대에서 갑작스런 광활한 심심함 속에 놓이게 된다. 남자들이 종종 군대에 다녀와 갈만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것은 다양한 경험들도 있겠지만 이런 거대한 심심함 속에서 찾지 못하던 것들을 속에서 하나 둘씩 꺼내게 됨이 아닐까 한다. 드디어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의 생을, 앞으로의 시간들을 그렇게 컴컴한 탄약고 위에서, 혹은 생활관의 복도에서, 철창을 마주한 초소 위에서 마주보게 되는 것이다.
부정함의 예찬은 심심함에 대한 언급 이후 계속된다. 자극에 대한 저항, 아니라고 말하는 주체적 행위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알림의 홍수속에 살며 그 알림을 즉각 확인할 수 있는 환경까지 가지게 되었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니겠으나, 때로는 반응들에 즉각 반응하지 말고 No를 외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리저리 흩어지는 집중력, 점점 초조해지는 우리 자신들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 것이다.
피로사회의 뒷부분에서 나오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식곡예사 이야기도 참 인상적이었다.
누구의 주의도 끌지 못헌 채 단식곡예사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가장 둔감한 사람조차 생기가 돌아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61pg
단식곡예사는 조금은 생소한 말이긴 하지만 단어대로 보자면 단식을 함으로 곡예를 부리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배고픔에 대해 둔감함을 느껴오던 자가 결국 죽어버리자 반대로 생기가 돌아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서술한 것이다. 조금 앞부분의 내용과 보면 사뭇 헷갈릴수도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본능에 대하여 즉각 거부하는것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단식곡예사는 그 거부를 이어나가다 죽어버린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극단적인 예다. 그리고 작가가 단식곡예사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것은 인간에게 필요한 휴식이었다. 휴식에 앞서 전제된 것은 피로다. 우리는 자주 피로와 맞서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피로를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어린 나이에서부터 믹스커피를 마셔가며 도서관에서 눈과 귀, 머리와 마음을 바친다. 핫식스 등등 자양강장제는 고등학교 이후로도 자주 필요한 것이 된다. 피로함은 분명히 배척할 것이 되어있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한것은 이 피로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피로함을 배척하다 보면 결국에 인간에게 필요한 휴식은 듣도보도 못하다 영영 잃어버릴 것이고, 우리는 이런 끝없는 쳇바퀴 속에서 지쳐 쓰러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피로함을 배척하는 것도 안좋은 면이 있겠지만, 피로함을 직접 받아 휴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환경과 사회도 분명 필요할것이라는 생각은 있다. 모임원들과 나눴던 이야기에선 이같은 이야기가 나왔었다. 이 작가가 제시하는 많은 해결책들이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적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야근과 과업, 타 국가들보다 많은 노동시간을 가진 나라같은 말들은 어색한 말도 아닌 수도없이 들어온 말들이다. 쉼을 가지기 전에 쉼을 가질 사회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아있다는 점이다. 그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보완이 이루어졌을까. 성과사회, 경쟁사회에선 결국 쉬는이는 달리는 이에게 뒤쳐질 수 밖에 없는데, 과연 누가 손쉽게 나서 모두에게 잠시 쉬어나가자고 제안할 수 있을까.
누구는 분명 이전보다는 한국의 근무환경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주 5일제도 이전에는 없던 개념이었다고 들었다. 이 피로사회가 제시하는 문제점들과 해결책은 온전히 적용할 수 없더라도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쳇바퀴, 이 사회와 사회속의 사람들이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하는 경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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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 힘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힘으로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이러한 부정적 힘은 단순한 무력함, 무언가를 할 능력의 부재와는 다른 것이다. 무력함은 단순히 긍적적인 힘의 대립항일 뿐이다. 무력함은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결국 그 무언가에 대한 종속이며 그 점에서 긍정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부정적 힘은 무언가에 종속되어 있는 이런 긍정성을 넘어선다. 그것은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만 있고 하지 않을 힘은 없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활동과잉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피로사회 52, 53p)
"절제"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잘 풀어냈다.
과잉/과도의 삶을 이겨 낼수 있는 절제의 힘!
요즘 내게 가장 필요한 성령의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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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지시키고 새 시작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분노 대신 어떤 심대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짜증과 신경질 뿐이라는 걸 보게된다.
- 피로사회,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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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가파도 프로젝트
*지나버린 전시회에 대한 리뷰
제주도를 참 많이 갔었다. ‘참'이라고 하기엔 조금 적을 수도 있겠다. 제주도 곳곳을 가봤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그중에 가장 열망하게 하는 곳은 가파도다. 가파도라는 곳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름부터 ‘파도가 더하다'라는 말. 섬 전체가 평평한 독특한 한국의 섬이다.
인구가 줄어든 우도가 테마파크화된 것 과는 달리 가파도가 테마파크가 되기 전에 미리 손을 써서 지속가능한 섬의 양상을 추구하고자한 기업이 있었다. 현대카드다.
한낱 카드사가, 그것도 가장 한 푼씩 따져들것만 같은 신용카드 회사가 진행하는 지역경제 사업이라니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프로젝트인가. 싶었다. 궁금한 마음에 ��아갔다.
이태원에 유명한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옆 건물 골목으로 내려가며 건물 사이의 먼 시야를 마주하자마자 우와 한번 하다가 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현대카드 스토리지라는 숨겨진 비밀의 공간이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직원분들께서 침착하게 맞이하여 주셨다. 생각보다 꽤 조용했다.
가파도는 아름다웠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원시 제주의 모습이라 할 만큼, 아니 사실 원시 제주를 본적도 없고 사람이 살지 않는 제주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기에 어폐가 있지만, 왠지 그럴 감성이 도졌다.
제주도 뿐아니라 우리는 많은 발전논리 속의 관광지들이 어떤 프로세스로 빛을 잃어갔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이슬란드처럼, 여기가 볼거리가 있어요~ 라는 팻말 하나. 그 팻말 하나면 될 것을.. 과유불급의 사자성어가 제격인 나라가 되어버렸다.
가파도는, 아직 그렇게 볼 게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루 잡고 가기에는 우리네 삶의 속도, 유럽여행도 한달에 다 주파해버리는 한국인이 자랑하는 여행 속력으로는 한 참 못마땅한 곳이다. 애매하게 작고, 느린 곳이기 때문이었다.
현대카드 가파도 프로젝트 팀은 굉장히 깊은 고민을 한 것이 느껴진다. 가파도가 실질적 수치로 드러나는 위기는 우도처럼 상주인구가 줄어들고 관광인구만 늘어간다는 것이다. 상주인구의 경우 흔한 어촌의 고령층이며 여느 시골처럼, 어업과 농업을 이어갈 후손들이 도시로 떠나버린 것이 주된 문제였다. 본 팀은 이 문제를 조금 더 심층적으로 본 것 같다. 현실적으로 카드회사가 현지 주민들의 어업을 이어가게 강요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삶의 방식을 일종의 볼거리로 지속시키기 위해 강제적으로 부탁한다 한들, 관광객이란 기회를 두고 업종전환의 가능성을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고민의 흔적이 보였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속도 역시 지속시키면서, 가파도의 자연과 식생 그리고 삶의 현장들을 영감으로 한 예술을 위해 ‘레지던스'를 만들었다. 본 전시장에서도 레지던스 참여 작가들의 인터뷰,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대체로 나와 느낀 바가 비슷했고, 함께 한 자연을 보고 느낀 부분을 어떻게 풀어내었는가 아티스트의 작품을 통해 재해석 하는 것이 정말 여타 미술관 전시보다도 흥미로운 경험이 되었다.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의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도 많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하나의 삶의 양식과 수면 밑에 흐르는 문화와 공기가 ‘가시화’되려면 예술가들의 시선과 표현을 통해서, 혹은 비평가들의 통찰력과 논리적 의견을 통해서 꽃으로 펼 수 있다 생각한다. 1920~30년대 사회의 혼란한 모습을 역사로만 본다면 혼란기이자 암흑기였겠지만 명동 거리를 산책하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보며, 미쓰꼬시 백화점을 네모와네모와네모로 그린 시인 이 상의 위대한 작품을 보며 그들이 향유하던 문화였음을 감각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그 가시화된 ‘문화’는 매 시대적 담론과 충돌하며 새로운 비평의 길이 열린다. 통시적으로 유의미한 단계가 되면, 이는 ‘문화유산’으로 탈바꿈한다. 오늘날 마주하는 문화유산들이 소위 그랬다.
나도 이들 가파도 프로젝트의 솔루션과 접근방법이 완벽히 이해가 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현대카드는 모든 것을 대화로 푸는 방법을 시도하였다. 대자본의 대기업이 한 섬을 갱생시키겠다고 들어가면, 흔히 기대하는 것은 자본을 통한 현대화, 관광사업의 본격화일 것이다. 이에 “우리를 제발 그냥 놔두라"는 반발도 있을 것이고, “차라리 돈으로 뭔가를 해 줘라"라는 목적의 몰이해도 있었을 것이다.
가파도 프로젝트의 핵심은, 가파도의 자급자족적 삶의 모습을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피폐한 한국인들에게 위로가 되는 아지트로서의 공간적, 시간적 가치를 발견하였다는데에 있다. 대놓고 써놓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느껴졌다. 그 증거로 지하 전시장으로 걸어내려가보면 거대한 스크린에 가파도 자연을 촬영한 영상을 초-고화질로 무한 상영중이다. 아무 나레이션도 없고, 그저 보여준다. 파도, 노을, 물의 잔상, 드론 촬영, 어부들의 일�� 등. 그거만 보고 있다가 30분이 지나버렸다. 다른 말 필요 없이 이걸 눈으로 보고 그 속도에 몸을 담아야겠다는 충동만 가득해진다.
여담이지만, 우리네 제주는 SNS로 너무 도배되었다. 내가 숨쉬는 공기층이 20대의 층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핑크핑크한, 달달한 공기의 포장에 굉장한 답답함을 느낀다. 어딜가던지 인생샷, 인스타 인증 시 서비스, 로컬스럽게 꾸민 푸드트럭. 센스있어 보이는 네온사인. 건대 홍대 강남 부산 다 똑같은 관광지여서 다를 게 없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출발은 ‘나'라는 존재를 사이버 공간에 옮겨 놓기 위함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있는 그대로 복사하려는 자는 없다. 인스타그램은 처음에는 같은 관심사,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해주고 소통하게 하는 목적으로 해쉬태그를 선보였으나 오늘날에 해쉬태그를 진정 소통으로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강남”이라고만 올려도 강남 네일아트, 강남타투..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계정들만 팔로워 늘릴 목적으로 접근해온다.
그렇지만 서로 살을 부비고 살수 밖에 없는 좁은 생활권의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인스타에 좋아요가 몇 개인지, 내가 올린 사진이 좀더 특별해보이고 ‘인싸'스러운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 속에 빠져 산다. 누군가 올린 제주도 위미리 동백꽃군락이 이쁘다면, 나 역시 그 캠페인에 동참하지않을 수 없다. 이왕이면 남들보다 빨랐으면 좋겠다. 나만 알고싶은 곳이지만, 나만 알고 있음을 자랑하고싶다. 라는 마음에 다들 SNS를 놓지 못한다. 기댈 것이 없고 쓸쓸한 우리네 사회의 집단 자존감이 낮다. 피드를 올리다 남들받은 10~20개의 좋아요보다 내 게시물의 100개의 좋아요는 상당히 본인을 우쭐하게 만드는 소확행이기 때문이다. 여행도, 그렇게 어느샌가 변질되었다.
이러한 인스타적 감성에 실증나다 못해 혐오의 단계까지 발전하려던 차, 가파도 프로젝트는 “그래! 이게 진짜 살아가는 것이고, 진짜 여행이지!”라는 원초적 탐구의 본능을 되새겨준 고마운 프로젝트였다.
아직도 빠른 속도감 속에 즐기는 사람이 몇 있을 것이고, 몇은 튕겨져 나왔을 것이고, 무작정 눈 질끔감고 따라가나 이제 반쯤 포기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누구나 피로한 사회(한병철, <피로사회>, 2009)를 살고 있다. 만성 피로에 걸려버렸다. 일본에서 유행하던 <리틀포레스트>라던지, <심야식당> 등의 무자극 힐링 컨텐츠들이 최근 한국에서 꽤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은 그 증거라고 볼 수 있겠다.
이번 전시는 가파도를 소스로 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의 전통적 삶, 그리고 그 삶의 터전이 사람들에게 매력을 어필하면서 여전히 영위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소위 ‘인문학적 고민'이 중심이 되면서도, 훌륭한 마케팅 회사다운 아카이빙의 노력으로 잘 포장 해놓은 종합선물세트였다. 결론적으로 현대카드를 다시보게 만들었다. 더불어 나에겐 이 프로젝트의 성공이 더 절실히 다가왔다. 폭포 하나를 두고 수많은 모텔과 카페와 먹거리촌이 무작정 생기는 지방 관광 산업의 현실, 그리고 인스타 인증샷, 인생샷이란 한국 젊은 층의 병적인 집착에 희생된 관광지의 재포장을 타파할 새로운 경험적 관광 모델이라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당위성은 충분했다. 또 했음 좋겠다.
그리고 가파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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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기독신우회, #박규남목사 ( #큰나무교회 )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누가복음 5장1절~5장7절 / 전달: #KBS강성실 [눅]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오늘 생각해 볼 책으로는 #피로사회 - 한병철 (지은이), 김태환 (옮긴이) | 문학과지성사 #분노사회 - 현대사회의 감정에 관한 철학에세이 , 정지우 (지은이) | 이경 #승자독식사회 - 로버트 H. 프랭크(대학교수), 필립 쿡 저 권영경 역 웅진지식하우스 #단속사회 - 엄기호 (지은이) | 창비 목사님 생각에는 지금 우리 사회는 #절망사회 라고 표현하고 싶다고.. 이슬람 선교의 아버지인 사무엘 즈웜머 Samuel M.Zwemer(1867~1952) #사무엘즈웜머 #SamuelZwemer [Book] The rise of Christianity - Rodney Stark #theRiseOfChristianity #RodneyStark The Rise of Christianity: How the Obscure, Marginal Jesus Movement Became the Dominant Religious Force in the Western World in a Few Centuries [책] 기독교의 발흥 (사회과학자의 시선으로 탐색한 초기 기독교 성장의 요인) - 로드니 스타크 저, 손현선 역, 좋은씨앗 #기독교의발흥 #로드니스타크 <도서 소개> 로마 제국의 변방에서 시작된 미약한 예수 운동이 어떻게 단 몇 세기 만에 서구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 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2016 선교한국 대회의 책〉 선정 도서!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펴낸 신학서적이 아니다. 기독교에 특별한 애정이 없는 종교사회학자가 특유의 시선으로 바라본 초기 기독교 발흥에 대한 탐구서다. 현대의 사회학적 이론과 분석 방법을 동원해 초기 기독교가 급성장한 요인을 탐색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성경이 전하는 초기 기독교의 모습에 대해 사회과학자로서 그가 피력하는 견해는 기독교인들에게 다소 언짢을 수 있다. 그럼에도 ‘초기 기독교의 발흥’에 대한 탐구서로서, 이 책은 깊은 영감을 준다. 거대한 이방 세계의 변방에서 출발한 미약한 종교 운동으로서 기독교가 어떻게 단 몇 세기 만에 세상을 지배하는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300년의 기적 같은 부흥의 이면에는 그저 ‘기적’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현실 속 요인들이 있지 않았을까? 로드니 스타크는 이 화두를 놓고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2천 년 전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가 길어 낸 통찰들은 역설적이게도 지금 이곳에 자리한 기독교에 매우 도전적인 결과물로 남았다. -------------------------------------------------------- 이슬람 선교의 아버지인 사무엘 즈웜머 -CP교회연합신문선교칼럼- 요즈음 카이로가 심상치 않다. 민주화 바람이후에 기독교에 대해서 심한 박해의 태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땅에서 17년 동안 사역하였던 한 사람의 선교사를 소개 한다. 사무엘 즈윔머(Samuel Zwemer)는 1867년, 미국 미시간의 홀랜드(Holland)에서 열다섯 자녀 중 열 세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개혁교회의 목사였기 때문에 기독교적 토양 속에서 훈련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러 형제 가운데에서 생존한 5형제 중 4명도 목회자가 되었으며 누이인 넬리(Nellie)즈윔머는 선교사로서 중국에서 40여년 동안을 사역하였다. 즈윔머가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하게 된 동기는 호프대학(Hope College)에 재학중 일 때였다. 그는 4학년 재학 중 일 때에 죤 모트와 헐몬산의 100명을 감동시킨 로버트 윌더의 감동적인 설교를 듣고 7명의 학우 중 5명과 함께 선교사로 자원하였다. 신학교육과 의료교육을 받고난 이후에 즈윔머는 제임스 캔틴과 함께 개혁교회의 선교부에 아랍 쪽의 선교사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거절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 미국아랍선교회(American Arabian Mission)를 조직하여 모금운동을 시작하였다. 쉽지 않는 일이었지만 6,000Km 이상을 여행하며 선교의 도전과 함께 모금 요청을 하였다. 이들의 모금 방식은 특이한 전략을 가졌다. 즉 즈윔머는 캔틴의 모금을, 캔틴은 즈윔머의 모금을 진행하였다. 모
#박규남목사#기독교의발흥#kbs기독신우회#kbs강성실#rodneystark#분노사회#사무엘즈웜머#승자독식사회#로드니스타크#피로사회#samuelzwemer#theriseofchristianity#단속사회#큰나무교회#절망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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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독서목록
도쿄의 작은 공간 : gallery·museum·place 마스야마 가오리 지음 ; 서수지 옮김 제49호 품목의 경매 토머스 핀천 지음, 김성곤 옮김 건투를 빈다 :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오늘을 잡아라 솔 벨로 지음, 양현미 옮김 사회학의 쓸모 :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화 지그문트 바우만, 미켈 H. 야콥슨, 키스 테스터 지음 ; 노명우 옮김 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 이빈 옮김 민주주의 살해하기 :당연한 말들 뒤에 숨은 보수주의자의 은밀한 공격 웬디 브라운 지음 ;배충효,방진이 옮김 원인을 추론하다 :정치·정책현상 분석을 위한 사회과학 연구방법론의 교과서 쿠메 이쿠오 지음 ;하정봉 옮김 제프티는 다섯 살 할란 엘리슨 지음 ;신해경,이수현 옮김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할란 엘리슨 지음 ;신해경,이수현 옮김 제자리걸음을 멈추고 사사키 아타루 지음;김소운 옮김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지음 ; 박현주 옮김 책의 역습 : 책의 미래는 밝다 우치누마 신타로 지음 ; 문희언 옮김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 냉전시대 경제학 교류의 숨겨진 역사 조하나 보크만 지음 ; 홍기빈 옮김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지은이: 미카미 엔, 구라타 히데유키 ; 옮긴이: 남궁가윤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누가 포퓰리스트인가 :그가 말하는 '국민' 안에 내가 들어갈까 얀 베르너 뮐러 지음 ;노시내 옮김 나의 1960년대 :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나날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의 민낯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임경화 옮김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 오쓰카 에이지 지음 ;선정우 옮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5-1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 김남주 ; 이은선 ; 권도희 ; 신영희 ; 공보경 ; 이원경 ; 이수경 옮김. 스위스 방명록 :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 노시내 지음 유빅 필립 K. 딕 지음 ; 한기찬 옮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 유작 소설집, 0시를 향하여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 김남주 옮김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지은이: 오즈 야스지로 ; 옮긴이: 박창학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 :우에무라 다카시 전 기자의 '위안부' 최초 보도, 그리고 그 후 우에무라 다카시 지음 ;길윤형 옮김 마루야마 마사오:리버럴리스트의 초상 가루베 다다시 지음;박홍규 옮김 현대 사상의 스펙트럼 :카를 슈미트에서 에릭 홉스봄까지 페리 앤더슨 지음 ;안효상,이승우 옮김 영속패전론 :전후 일본의 핵심 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외 옮김 권외편집자 츠즈키 쿄이치 지음 ;김혜원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 가토 노리히로 지음 ; 김난주 옮김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구라치 준 지음 ; 김은모 옮김 위철리가의 여인 로스 맥도널드 지음 ; 이원경 옮김 통치성과 '자유' : 신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 사카이 다카시 지음 ; 오하나 옮김 푸코 이후 : 통치성, 안전, 투쟁 세리자와 가즈야, 다카쿠와 가즈미 엮음 ; 오모다 소노에, 토사 히로유키, 하코다 테츠, 히로세 준, 사카이 다카시, 시부야 노조무 지음 ; 김상운 옮김 권력과 저항 :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 사토 요시유키 지음 ; 김상운 옮김 긍정의 오류 : 거짓 희망의 위험과 적절한 비관의 효용 지은이: 로저 스크루턴 ; 옮긴이: 정명진 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 김시현 옮김 기억서사 오카 마리 지음 ; 김병구 옮김 나루세 미키오 蓮實重彦...[등]지음 ; 박창학 ; 유맹철 [같이]옮김 꼭두각시의 영혼 : 인간의 자유에 대한 소고 글: 존 그레이 ; 옮긴이: 김승진 오시마 나기사의 세계 佐藤忠男 ; 西方田犬彦 [같이]지음 ; 문화학교 서울 엮음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 로베르 브레송 저 ; 오일환 ; 김경은 [같이]옮김 경계에서 춤추다 : 서울-베를린, 언어의 집을 부수고 떠난 유랑자들 서경식, 타와다 요오꼬 지음 ; 서은혜 옮김 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 오카 마리 지음 ; 이재봉, 사이키 카쓰히로 옮김 포로기 : 오오카 쇼헤이 장편소설 오오카 쇼헤이 지음 ; 허호 옮김 풀베개 나쓰메 소세키 지음 ; 송태욱 옮김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지음 ; 정영목 옮김 역사와 반복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나쓰메 소세키론 하스미 시게히코 지음 ;박창학 옮김 낙관하지 않는 희망 :테리 이글턴이 전하는 21세기 희망 메세지 지은이: 테리 이글턴 ;옮긴이: 김성균 만들어진 점령 서사 :미국에 의한 일본 점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조정민 지음 5년 만에 신혼여행 : 장강명 에세이 장강명 지음 문제가 있습니다 : 때론 솔직하게 때론 삐딱하게 사노요코의 일상탐구 사노 요코 지음 ; 이수미 옮김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안 반스 지음 ; 최세희 옮김 아주 오래된 서점 가쿠타 미쓰요,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 이지수 옮김 화성의 타임슬립 필립 K. 딕 지음 ; 김상훈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대표 논객 35인이 파헤친 Q의 정체 가토 노리히로 외 지음 ; 박연정 옮김 어디서 공을 던지더라도 R.A. 디키, 웨인 코피 지음 ; 이재석 옮김 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지음;김민영 옮김 차가운 계산기 :경제학이 만드는 디스토피아 필립 로스코 지음 ;홍기빈 옮김 (살아보고 싶다면) 포틀랜드 :풍요로운 자연과 세련된 도시의 삶이 공존하는 곳 포틀랜드 라이프 스토리 이영래 지음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 후루이치 노리토시지음;이소담 옮김 도쿄 숍 = Tokyo shop 이시은,서동희 지음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저 ; 정영목 옮김 동경커피 = Tokyo coffee 지은이: 심재범 한번은 :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빔 벤더스 지음 ; 이동준 옮김 특별 요리 : 감칠맛 나는 상상의 진수 스탠리 엘린 지음 ; 김민수 옮김 황제의 코담뱃갑 : 심리 트릭의 절묘한 맛 존 딕슨 카 지음 ; 이동윤 옮김 화형 법정 존 딕슨 카 지음 ; 유소영 옮김 흑거미클럽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 강영길 옮김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김난주 옮김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 최고은 옮김 글쓰기에 대하여 찰스 부코스키 지음 ; 박현주 옮김 다윈 이후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 홍욱희 ; 홍동선 옮김 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최윤필 지음 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하연수 옮김 (일본 미스터리의 원류)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기괴환상 에도가와 란포 지음 ; 김은희 옮김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지음 ; 안경환 옮김 목숨을 팝니다 : 미시마 유키오 장편소설 미시마 유키오 지음 ; 김난주 옮김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 사회학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쓰다 기시 마사히코 지음 ; 김경원 옮김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슬라보예 지젝 지음 ; 박정수 옮김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 정영목 옮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 김명남 옮김 쓰고 읽다 고종석 지음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다양하고 지속 가능한 출판을 위하여 니시야마 마사코 지음 ;김연한 옮김 헌법의 무의식 가라타니 고진 지음 ; 조영일 옮김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 본격추리 II. 2 에도가와 란포 지음 ; 김은희 옮김 비트겐슈타인의 인생 노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 이윤 엮음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 제국의 거짓말과 '위안부'의 진실 손종업 외 글 불과 해류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소설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하윤 옮김 헤밍웨이 위조 사건 홀드먼 지음 ; 김상훈 옮김 화재감시원 코니 윌리스 지음 ; 김세경, 정준호, 최세진, 최용준 옮김 계급 이해하기 : 현대 자본주의의 계급갈등과 사회변혁 전략 지은이: 에릭 올린 라이트 ; 옮긴이: 문혜림, 곽태진 약한 연결 :검색어를 찾는 여행 지은이: 아즈마 히로키 ;옮긴이: 안천 삶은 왜 의미 있는가 : 속물 사회를 살아가는 자유인의 나침반 이한 지음 8월 15일의 신화 : 일본역사 교과서, 미디어의 정치학 사토 다쿠미 지음 ; 원용진 ; 오카모토 마사미 [공]옮김 고통에 반대하며 : 타자를 향한 시선 프리모 레비 지음 ; 심하은, 채세진 옮김 나쓰메 소세키, 추억 : 아내 교코가 들려주는 소세키 이야기 나쓰메 교코,마쓰오카 유즈루 지음 ;송태욱 옮김 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 김태환 옮김 카페마실 : 커피향을 따라 세상 모든 카페골목을 거닐다 심재범 글· 사진 교토 = Kyoto : 셀프트래블 : 2015-2016 최신판 조경자 지음 개소리에 대하여 지은이: 해리 G. 프랭크퍼트 ;옮긴이: 이윤 너를 노린다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문호 옮김 윤리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 송태욱 옮김 론리 하트 킬러 =Lonley hearts killer :호시노 도모유키 장편소설 호시노 도모유키 지음 ;김경원 옮김 세계문학의 구조 조영일 지음 일본 정신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지음 ; 송태욱 옮김 역사, 진실에 대한 이야기의 이야기 :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문명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앤 커소이스, 존 도커 지음 ; 김민수 옮김 (discover) 이탈리아 : 최고의 이탈리아를 경험하기 위한 모든 것 크리스티안 보네토, 데미언 시모니스, 앨리슨 빙, 그레고르 클라크, 덩컨 가우드, 아비게일 홀, 알렉스 레비튼, 버지니아 맥스웰, 조세핀 퀸테로, 브렌던 세인스버리 [지음] 국가주의를 넘어서 코모리 요우이치 ; 타카하시 테츠야 [공]엮음 ; 이규수 옮김 Urban live :Kyoto & Osaka 어반북스 [편] 힙한 생활 혁명 :대량 생산 대량 소비에서 지역 생산 지역 소비로 지은이: 사쿠마 유미코 ;옮긴이: 문희언 정치를 말하다 가라타니 고진 지음 ; 고아라시 구하치로 들음 ; 조영일 옮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 박태원 단편선 박태원 지음 무질서의 효용 : 개인의 정체성과 도시 생활 리처드 세넷 지음 ; 유강은 옮김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조영일 지음 도쿄 대재판 황허이 지음 ; 백은영 옮김 낮의 목욕탕과 술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 양억관 옮김 도덕의 계보학 : 하나의 논박서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홍성광 옮김 13·67 : 찬호께이 장편소설 찬호께이 지음 ; 강초아 옮김 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 최민우 옮김 책의 힘 :파국의 시대, 한 사회학자가 안내하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기술 오사와 마사치 지음 ;김효진 옮김 춤춰라 우리의 밤을 그리고 이 세계에 오는 아침을 맞이하라 사사키 아타루 지음 ;김소운 옮김 이상한 논문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지적 수집품 산큐 다쓰오 지음 ;김정환 옮김 탄탈로스의 신화 지은이: 노정태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 정수윤 옮김 기타 잇키 : 천황과 대결한 카리스마 지은이: 마쓰모토 겐이치 ; 정선태, 오석철 옮김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한국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 김경만 지음 지식인의 책임 :레옹 블룸, 알베르 카뮈, 레몽 아롱... 지식인의 삶과 정치의 교차점 토니 주트 지음 ;김상우 옮김 짐 자무시 루드비그 헤르츠베리 엮음 ;오세인 옮김 엄마의 도쿄 김민정 지음 상상라디오 이토 세이코 지음 절망독서 가시라기 히로코 지음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서경식 지음
총 136권
올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 유빅( 혹은 <파머 엘드리치와 세 개의 성흔>), 필립 K 딕 기억서사(혹은 <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 오카 마리 기타 잇키 평전, 마쓰모토 겐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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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digkeitsgesellschaft」
「피로사회」
This is the redesigned book of Mudigkeitsgesellschaft, HAN BYUNG-CHUL, a German author.
Sometimes, excessive affirmation brings fatigue.
I express the too much positive into the bright of the letter. Getting bright letter makes trouble of reading texts.
이 책은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리디자인한 것이다.
때때로, 과한 긍정은 피로를 유발한다. 나는 글자의 밝음을 과한 긍정으로 표현했다. 글자가 더욱 밝아질수록 읽는 것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Book,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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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식당 (1TV, 8월5일) 2030女 폭풍 공감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서가식당 (1TV, 8월5일) 2030女 폭풍 공감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서가식당 2030女 폭풍 공감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방송 : 8월 5일(토) 밤 11시 20분, KBS 1TV 여름특집,‘현대인의 트렌드 읽기 제1탄’ 마스다 미리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해도 고민 안 해도 고민, 결혼에 대한 폭로전 한은정의 비혼식, 이거 실화냐? 한은정 속마음 전격공개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 까” 8월 5일(토) 밤 11시 20분 방송 이번 주 에서 다루는 음식은? 나홀로‘치킨카레우동’ & 둘이서‘밀푀유나베’ ‘현대인의 트렌드 읽기’ 첫 번째 책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3040女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마스다 미리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일, 일, 일 피로사회 속에서 지친 청춘을 위한 담담한 위로 맛있는 음식과 책이 있는 한여름 밤의 문학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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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내가 가진 능력을 계발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냥 가만히가 좋다고, 편하다고 해서, 나는 그렇게 있을 수만 있는 사람이 아닌. 더 나아가야, 더 공부해야, 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이게 바로 지금의 나. (고로 한병철이 말하는 피로사회 속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그러한 나. 알면서도 나는 그러기를 바란다) May 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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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14 혹독한 겨울이라도 기어코 가고 만다. 한 시인이 썼듯, 봄은 기다려도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40 무엇보다도 사람은 불안한 존재다. 탄생이라는 실존 사건은 이 낯선 세계에 내던져짐이다. 사람은 자기가 왜 태어났는지, 그리고 죽은 뒤 어디로 사라지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 알 수 없음 때문에 불안해지고, 불안은 현존재를 집어삼킨다. 불안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기묘한 낯섦으로 자기 앞에 나타나는 현존재 자신인데, 이때 불안은 "자기에 대한 각성이 불러오는 거대한 존재론적 동요"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불안은 존재론적 불안으로, 이것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할 때 사람은 본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적 기회를 잡는다. "불안을 응시하는 자는 자기로 복귀한 자이다. 그는 번잡하고 두려운 외부 사물들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자기 속으로 침잠한다." 그러니까 존재론적 불안은 본래적인 자기와 마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뿐만 아니라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무의 심연을 품고 사는 '나'란 무엇인가를 묻는 본질 물음 앞에 세운다. 43 춘분의 날이 조용히 지나간다. 춘분이 지났으니, 이제 밤은 너무 길어요, 라고 말하지 못한다. 춘분의 새벽에도, 춘분의 고요한 밤에도 나는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다. 49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머무름의 능력, 정적에 기대어 고유의 삶을 관조하고 누리는 습관, 사색적 삶, 시간의 향기를 다 잃어버렸다. 그 대신에 지나친 분주함, 조급성, 활동적 삶에 자신을 내어준다. 시간이라는 주권을 잃고 빠듯한 시간 속에서 표류하며, 늘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자는 "염려의 대상으로 인해 자기 시간을 잃어버린" (하이데거, 한병철, 『시간의 향 기』, 108쪽에서 재인용) 자다. 시간 부족은 "우리가 시간을 잃어버리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우리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발생한다." (129쪽)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의 특징은 의미의 소실 속에서 삶의 메마름을 겪어낸다는 점이다. 그들은 늘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곧 자기 시간을 잃어 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반면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자는, 말하자면 늘 시간이 있다. 그가 항상 시간 이 있는 것은 시간이 곧 자기이기 때문이다." (107쪽) 시간은 지속성을 잃고 불연속적 흐름으로 변질한다. 일과 효율성이 삶의 한가로움을 삼켜버린다. 우리는 노동의 분주함에 여유와 한가로움을 자발적으로 헌납한다.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자는 날마다 일어나는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제 자아를 흩어버리는 자이고, 그들은 결국 시간의 지속성을 거머쥐지 못한다. 이 시간의 쪼개어 흩어짐, 늘 목적과 목표를 향한 분주함에 매달림, 분주함 속에서 수습되지 않는 산만은 사색적으로 자기 안에 머무름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존재 본질의 고유함에서 박리되는 자아들은 세계의 윤무(輪舞)에서 파편으로 떨어져 나와 방향 없이 떠돈다.
91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분노를 "현재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 (한병철, 『피로사회』)이라고 정의한다. 분노는 현재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이고 저항이며 새로운 변화를 향한 요청이다. 우리는 분노하는가? 우리는 강렬한 부정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왜 그럴까? 철학자는 현대 사회에 퍼져 있는 "전반적인 가속화와 활동 과잉", 그리고 "산만함" 등이 분노가 싹틀 여지를 없애버렸다고 진단한다. 분노 대신에 짜증과 신경질들은 늘어난다. 현대인들은 분노의 에너지가 고일 사색적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분노를 대신하는 짜증과 신경질만 늘어간다. 자신을 돌아보라. 언제 분노한 적이 있었는가? 짜증은 자주 내지만 분노한 적은 없다. 짜증은 자극과 충동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고 활동 과잉으로 인한 정신적 탈진의 한 양상이지만, 분노는 자극에 즉시 반응 함을 중지하는 것이고 활동 과잉에서 자신을 빼내 사색함에서 응집된 에너지를 한꺼번에 분출하는 것이다. 짜증이 세속화된 자의 수동적 정신태를 반영한다면, 분노는 태만으로 치명적인 활동 과잉에 항의하고 머뭇거림으로 태업하는 것이며 정신의 생동함을 보여주는 결단이다. 짜증과 분노는 이렇게 다르다. 당신이 자주 투표를 하지 않고 기권하는 것은 ��치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활동 과잉 상태에 있고 그로 인해 분노하는 에너지를 잃어버렸다는 증거다. 94 에밀 시오랑(Emile Cioran, 1911~1995)은 루마니아 출신의 철학자다. 그는 극작가 에우제네 이오네스코, 신화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와 더불어 현대 루마니아 출신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루마니아에서 대학을 나온 뒤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사를 1년 정도 하다가 1937년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소르본 대학에 등록을 하며 시작한 이방인 생활을 죽을 때까지 이어갔다. 그는 인간으로서 삶을 꾸린다는 것에 그다지 깊은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염세주의적인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보다 대담해진 불행에 머물면서 끊임없이 고독과 자살과 무(無)에 대해 사유했다. 그는 "신경과 살과 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에는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가 일절 없다. 유머가 없는 대신에 역설과 아이러니가 넘친다. 그 역설과 아이러니는 때로 쓴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예를 들면, 그는 광기가 '폐쇄 경제학'이고 '실패의 자급자족'이라고 적는다. 이런 대목을 읽을 때 나는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뒷맛이 쓴 웃음을! 95 그는 생래적으로 우울한 기질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의 혈관에는 붉은 피와 함께 우울과 비관주의, 절망과 공허, 고통과 번민도 녹아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인생에 대한 우울한 단상들은 불면의 고통 속에서 나왔다. "인간은 삶과 죽음에 유예되어 영원히 만족하지 못하는 동물의 비극을 살고 있다. 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지긋지긋하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즉시 인간임을 포기하리라." 그의 삶은 항상 터무니없는 탈진과 혼란 앞에서 곧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죽지도 않았고, 인간임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자살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말한다. "원할 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살고 있다. 자살이라는 가능성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자살했을 것이다." 자살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기에 그것에 기대어 생의 시간을 연명해온 사람, 시오랑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스물두 살에 벌써 '죽음 문제 전문가'를 자처했던 그는 자연 수명을 다 누리고 84세에 파리에서 죽었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세상이 의미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모든 것은 결국 무로 귀착되며, 세상의 법칙은 고통이라고 생각하면서 끝없이 번민하는 인간의 불행 속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나 같은 인간이 있다는 것은 삶이라는, 태양 위를 덮고 있는 어둠이 너무 커서 결국 빛을 가리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독한 자기모멸이라니! 자기의 살아 있음이야말로 세상의 무의미함을 증명하는 것이란 이 무서운 자기부정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불면과 허무로 버무린 쓰라린 청춘의 시기를 보내던 이 스물두 살 난 청년은 제 생일에 이런 문장을 쓰곤 했다. 지독한 자학과 삶에 대한 환멸이 없었다면 어떤 청춘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겠는가? 시오랑이 그토록 자살에 대해 많은 단상을 썼으면서도 끝내 자살하지 않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인간이란 "세상에 내던져져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삶의 방식을 찾도록 선고받은 불행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더도 덜도 아닌 인간이라는 조건 속에 갇힌 불행한 동물이다. 동물은 자신의 행복이나 불행에 대해 알지 못하고, 오로지 인간만이 그것을 안다. 그래서 "앎은 재앙이며, 의식은 삶의 한가운데 벌어진 상처이다." 진짜 불행한 사람은 자신의 불행과 싸우느라 다른 데 한눈을 팔지 못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살조차도 정신적 사치일 따름이다. 어느 정도 인생에 대한 낙관과 자살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만이 감히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 시오랑은 제 절망이 인간의 조건을 벗어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 안에 있는 삶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은 그 절망으로 인해 인간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삶을 욕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뿌리를 박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햇빛 아래서 시드는 식물처럼 완벽하게 무의식 속에서 살고 싶어지고, 대지의 풍요에 참여하고 싶어지고, 생명의 흐름 속에 이름 없는 표현이 되고 싶어진다."는 것. 식물들은 "대지의 풍요"에 참여하고 "생명의 흐름"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아간다. 때때로 나도 동물이기를 그치고 싶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분주한 활동을 멈추고 식물의 무의식 속에서 살고 싶다. 동물에 반해 식물은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로운가! 211 의심할 여지없고 구체적이며 결정적인 어떤 신을 발견하여 그 존재를 확고하게 인정하고 있는 유일한 생물이 바로 개다. 개는 자신의 가장 탁월한 능력을 무엇에 헌신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 개는 암흑, 연속적인 허위, 가설, 그리고 꿈의 미로 속에서 어떤 완전하고 고등하고 무한한 힘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로제 그르니에, 『율리시즈의 눈물』에서 재인용) 229 게으름을 경멸하는 공리 주의자들은 우리 삶이 일과 쉼의 조화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일과 수고가 가장 가치를 발현하는 것은 쉴 때, 즉 게으름 속에서 그 일과 수고의 달콤한 과실을 맛볼 때다. 게으름에 덧씌운 나쁜 소문들을 걷어내고 게으름의 본질을 바로 보자. 240 오늘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자아는 불안과 두려움에 침식당한다. 모든 삶은 빠른 속도에 먹히고 있다. 우리는 그 빠른 속도에 편승하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빠진다. 자본주의가 가속화하는 빠른 속도는 모든 존재와 사물들의 사용 가능한 기간을 줄인다. 빨리 쓰고 빨리 버리는 것이다. 버림받는 것은 '쓰레기'다. 문제는 불안과 두려움이다! "바로 내가 쓰레기로 전락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은 사람들의 욕망을 한층 더 탐욕스럽게 하고 변화를 한층 더 욕망하도록 만든다." (지그문트 바우만) 251 경련하는 얼굴, 바위에 밀착한 뺨, 진흙에 덮인 돌덩어리를 떠받치는 어깨와 그것을 고여 버티는 한쪽 다리, 돌을 되받아 안은 팔 끝, 흙투성이가 된 두 손은 온통 인간적인 확신이 보인다. 하늘 없는 공간과 깊이 없는 시간으로나 헤아릴 수 있는 이 기나긴 노력 끝에 목표는 달성된다. 그때 시지프스는 돌이 순식간에 저 아래 세계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 아래로부터 정점을 향해 이제 다시 돌을 끌어올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또다시 들판으로 내려간다. (카뮈, 『시지스프의 신화』) 시지프스는 신들을 기망한 죄로 가혹한 형벌을 받는데, 그 형벌은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려놓으라는 것이다. 바위는 산꼭대기로 밀어 올린 순간 다시 밑으로 굴러 내려간다.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려놓는다. 이 형벌이 가혹한 것은 그 무의미한 노동을 영원히 되풀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를 통해 성취감과 자기실현에 이른다.
275 '말'은 하나의 원점이다. 말이 없다면 사람은 '주체로서의 사람'이 될 수가 없다. 말은 그것을 발화하는 "개인이라는 불가해한 심연"(홈볼트)을 해명한다. 그 자신이 누구인가를, 어두운 구석에 빛을 쪼이며 자아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내어 현시하는 도구다. 말이 없다면 사물과 존재에 대한 통찰은 어둠 그 자체로 남을 것이며, 말을 매개로 세계의 구조 속으로 편입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말이 태어나는 곳'은 사유가 발생하는 지점이고, 철학의 기원이다. 말을 해버림으로써 사람은 의미의 존재로 거듭나며, 어떤 가능성으로 자신을 밀고 간다. 아타루는 말을 '축적' 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서양 형이상학이 "말은 죽은 것이고, 그 바깥에 말로 할 수 없는 생생한 체험이 있다"는 나쁜 관습에 굴복했다고 비판한다. 말은 앞서 존재했던 모든 말들에 대한 응답으로 생생하다. 말이 모든 것에 대한 응답이라는 사실을 "일단 잊고 뛰어들" 때, "찰나마다의, 지금 이 언어의 준동, 동요 혹은 '침묵'에 집중"할 때, 말들은 그 발화자의 말을 집어삼키고, 구원하는 역설이 생겨나기에! 461 디지털은 외부 세계와 더 긴밀한 연결을 만들지만, 반면에 내면에서는 멀어지게 한다. 외부 현실과 비대칭이 된 삶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이제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라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에 따라 움직인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자주, 그리고 쉽게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윌리엄 파워스)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우리는 점점 더 디지털 군중 속으로 밀려 들어간다. 디지털 군중은 디지털 세상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그럴수록 우리는 외부 지향적 사고를 강요당한다. 디지털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더 빠른 '속도'다. 이 속도를 끝없이 업그레이드하면서 디지털 문명은 진화한다. 이 잉여의 속도가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행복이지만, 우리가 받은 것은 약간의 편리함과 즐거움이다. 그 대신에 삶의 핵심인 '깊이'를 잃었다. "사고와 감정의 깊이, 인간관계의 깊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깊이가 사라지고 있다.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의 핵심인 깊이가 사라져간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윌리엄 파워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참을 수 없는 디지털의 분주함에 빠져 외부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심을 쏟는다. 개인의 삶에서 충분히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지고, 그 시간과 함께 삶의 깊이를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잃는다. 뇌, 두 눈,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창조하는 사이버 세계에서 사는 디지털 군중의 삶 속에는 깊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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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책
오늘 회사 송년 워크샵 전, 팀장님이 내주신 발표 과제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2012 최고의 책 : 기억에 강하게 남는, 내 머릿속을 휘저은, 남들이 안봤으면 하는 책 소개해주기. 내가 배운 것 나누기. 추천하고픈 구절 세 개 낭독하기.
올해 읽은 책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나름 선정해보았다. 책을 그-리 많이 보는 것도 아니고 (책 읽는 속도도 너무 느려서라는 구차한 핑계...), 앞부분만 읽고 한없이 미루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돌아보니 참 재밌는 책이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정한 책은 세 권이다.
[1] 피로 사회 / 한병철 씀 / 김태환 옮김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소개받아 읽게 된 책. 올 하반기 '아는 척, 있어보이는 척'에 많이 활용되었다... (아는 척 하는걸 너무 좋아하나봐) 팟캐스트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정리해줬는데 그 말이 너무 와닿아서 바로 구입해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 때 정리해준 주제는 다음과 같다.
"20세기에는 타인이 나를 착취했다면, 21세기에는 자신이 스스로를 착취한다" (맞나...)
20세기는 '규율사회'였고, 21세기는 '성과사회'다. 21세기는 '긍정의 과잉'이다. '...를 해, ...를 하지마'가 사라지고 '넌 할 수 있어! ^0^'가 넘치는 세상이라는 것인데, 언뜻 밝아보이는 이 메시지 뒤에는 사람의 모든 노력을 하찮게 바꿔버릴 무서운 사상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뭔가에 실패했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을 모두 당사자가 짊어져야 하는 것. 왜냐면, '그는 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또한 '긍정 과잉'에 있어서는 어느 나라 못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TV에서는 역경을 극복하고 성취를 이루어낸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서점의 가판대 위에는 '꼭 해야할 것들'이 넘쳐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모두가 '죽도록' 노력해야만 살 수 있는 걸까."
'적당한 노력'과 '적당한 보상'을 허용하지 않는 세계를 들여다본 것 같은 씁쓸함을 주는 책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하지만 책의 상당부분은 나에게 상당히 어려웠다.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한건지 모르겠다)
[2] 스티브 잡스 Steve Jobs / 월터 아이작슨 씀 / 안진환 옮김

이 책은 그저 '다 읽은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ㅎㅎ).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다 읽은 사람을 이렇게 찾기 힘든 책도 드물지 않을까? 솔직히 이 두께감은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하지만, 분명 다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워낙 재밌기도 하고, '일하는 방식'에 대한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하기 때문.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애플에 살아있는 '프로토타이핑'문화다. 이런 단어를 사용하여 설명하진 않고 있었지만, 실물과 매우 흡사한 무언가를 만들어서 실제로 만져보고 써보면서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이 모든 제품 과정에 들어가있다. 심지어는 '애플 스토어'를 만들 때도 그러했다. 그 부분을 인용하며 다음 책으로...
드렉슬러는 잡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했다.
"회사 근처에 비밀리에 시험 매장을 짓고 설비를 완전히 갖춘 다음, 편안한 기분이 들 때까지 거기서 시간을 보내 보세요"
다시 말해서 앞으로 모든 애플 스토어의 기준이 될 '원형 스토어'를 하나 만들어 보라는 조언이었다. 존슨과 잡스는 쿠퍼티노에 있는 빈 창고를 빌렸다.이후 그들은 6개월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그 곳에 모여 오전 내내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서로의 소매철학을 갈고 닦았다. 그곳은 어느새 아이브의 디자인 스튜디오와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잡스가 차츰 진화하는 매장을 보고 만지며 혁신을 떠올릴 수 있는 안식처가 된 것이다.
[3] 생각에 관한 생각 Thinking Fast and Slow / 대니얼 카너먼 씀 / 이진원 옮김

올 한해, 내 머릿속에 가장 강렬한 프레임을 심은 책이다. '행동경제학'으로 유명한 대니얼 카너먼이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하여 쓴 책이라고 한다(마는... 나는 행동경제학에 대해 아는 것은 없음).
사람이 생각할 때는 두 가지 시스템을 쓴다. 빠르게 생각하기 (시스템 1). 그리고 천천히 생각하기 (시스템 2)
시스템 1은 이렇다 - 거의 혹은 전혀 힘들이지않고 자발적인 통제에 대한 감각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작동한다 - 직관, 무의식적 행동같은 것이랄까? 이걸 설명하기 위해 나는 보통 '출근길의 비유'를 들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출근길이나 등교길을 갈 때, 사람들은 방향을 생각하지 않는다. 늦었다면 시간을 생각하긴 하겠지만, 어느 역에서 지하철을 탈지, 내려서 어느 방향으로 걸어갈지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적인 생각 없이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는 않으며, 대부분 문제없이 도착한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적당히 잘, 일을 처리해주는 것이 시스템 1.
시스템 2는 이렇다 -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서 관심이 요구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관심을 할당한다 - 이 책에서 드는 예시는 '계산'이다. 두 자릿수 암산 같은 것. 누군가가 시켰을 때 직관적으로 답을 말할 수 없고 머리를 의식적으로 회전시켜야만 하는 그런 것. 매일 가던 출근길을 벗어나, 전혀 다른 장소에서 모이기로 했다면, 당신은 도착 장소까지 가는 교통수단을 알아보고 시간을 끊임없이 체크하고, 잘 가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시스템 2가 돌아가는 것이다.
시스템 1은 빠르고 효율적이다. 문제는 '편향'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반면 시스템 2는 조심스럽기 때문에 편향에 잘 빠지지 않고, 꼼꼼하다. 문제는 '게으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왠만해선 시스템 2를 작동시키고 싶어하지 않는다. 피곤하니까... 이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과도하게 자신의 직관을 믿으며 인지적 노력을 최대한 피하려 한다.
특정인의 잘못이 아니라, 이것이 시스템 2의 본성이라는 것. 그렇다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피상적으로 그럴듯한 대답을 수용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쳐야 훨씬 더 어려운 문제들을 풀 수 있다....경각심이 많고, 더 지적으로 적극적이면서, 피상적인 대답에 만족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직관을 자주 의심하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위 문장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직관을 자주 의심하라"는 것.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이나 관찰한 사람들, 조사 방법론들을 'Thinking Fast & Slow'의 프레임에 넣어왔다.
왜 어떤 회사는 가끔 말도 안되는 결정을 내릴까? 회의가 길어지면 왜 산으로 갈까? 발표 내용에 세부 내용이 들어가면 왜 사람들이 졸까? 왜 통계 데이터는 과소평가받는가? 왜 '감'으로 일하려는 사람이 많을까? - 시스템 2의 게으르다는 점, 그리고 시스템 2가 쉽게 지친다는 점이 그 이유는 아닐까?
왜 사람들은 행동과 다른 '대답'을 할까? 왜 리서치 회사들은 FGI를 버리고 CCTV를 관찰하는가? - 직접적인 질문에 대답할 때 사람들은 '시스템 2'를 쓰지만, 사실 대부분의 시간 (특히 그들이 어떤 물건을 사거나 할 때)에 '시스템 1'을 쓰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리서치 회사들은 '시스템 1'이 만드는 행동을 보고싶은 것이 아닐까?
2013년에는 위 책들이 준 영향을 정면으로 혹은 측면으로 뒤집어 줄만한 책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정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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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피로사회
* 하지만 정작 니체라면 대중의 현실이 되려고 하는 저 인간형을 가리켜 주관적 초인이 아니라 그저 노동만 하는 최후의 인간이라고 했을 것이다.
* "거친 노동을 좋아하고 빠른 자, 새로운 자, 낯선 자에게 마음이 가는 모든 이들아. 너희는 참을성이 부족하구나. 너희의 부지런함은 자기 자신을 망각하려는 의지이며 도피다. 너희가 삶을 더 믿는다면 순간에 몸을 던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내실이 부족해서 기다리지도 못한다. 심지어 게으름을 부리지도 못하는구나!"
*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이상 할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 걷기가 그저 하나의 선을 따라가는 직선적 운동이라면 장식적 동작들로 이루어진 춤은 성과의 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사치이다.
* 머뭇버림은 긍정적 태도는 아니지만, 행동이 노동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 세계가 전반적으로 긍정화되는 추세 속에서 개인도 사회도 자폐적 성과기계로 변신한다.
* 한트케의 피로는 자아피로, 즉 탈진한 자아의 피로가 아니다. 한트케는 오히려 "우리-피로"라고 말한다. 이때 나는 너한테 지치는 게 아니라, 한트케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너를 향해 지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내 기억으로는 늘 밖에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앉아있었고 말을 하기도 하고 침묵을 지키기도 하면서 공동의 피로를 즐겼다. ... 피로의 구름이. 에테르 같은 피로가 당시 우리를 하나로 엮어 주고 있었다."
* 한편 카프카는 치유적인 피로, 상처를 아물게 하는 피로를 상상한다. "신들은 지쳤고 독수리도 지쳤으며 상처도 지쳐서 저절로 아물었다."
* 타자와의 관계가 사라지면서 보상의 위기가 찾아온다. 인정으로서의 보상은 타자 또는 제3자라는 심급을 전제한다. 스스로를 보상하거나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보상구조에 이상이 생기면서 성과주체는 점점 더 많은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다.
* 슬픔은 강렬한 리비도가 투여된 대상의 상실과 함께 일어난다. 슬퍼하는 자는 전적으로 사랑하는 타자와 함께 있는 것이다.
* 성과주체는 가해자이자 희생자이며 주인이자 노예가 된다. 자유와 폭력이 하나가 된다. 자기 자신의 주권자, 호모 리베르를 자처하는 성과주체는 호모 사케르임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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