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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Begin Again, 2014)> / 존 카니 이른바 '음악영화'로 칭해지는 영화에서 사용되는 음악에는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잘 짜여진 이야기를 토대로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것, 다른 하나는 음악을 우선 만들고 거기에 이야기를 집어넣은 인상을 주는 것. <비긴 어게인>은 아무래도 후자다. 이야기가 음악에 맞춰 이끌려간다는 이야기다. 인디 혹은 비주류 음악에 대한 일종의 헌사처럼 보이는 영화에 비해 수록된 음악은 너무나 상업적으로 잘 만들어진, 부드러운 느낌마저 들어서 극장에서 보는 동안 귀는 호강하지만 특정한 단어로 형언하기 어려운 이질감이 떠나지 않는다. 요컨데 곡이 좋기는 하나 영화를 다시 상기하게 할 만큼의 매력은 없다는 것. 이야기는 딱 댄과 그레타가 만나는 (그레타의 노래를 들으며 댄이 편곡을 상상하는) 대목까지만 좋다. 아무래도 (북미와 영국의 수익을 합한 것보다 높은) 국내 흥행의 공은 개봉 시기와 OST에 돌려야겠다. 해외 주요 시장에서와 달리 가을을 앞두고 개봉했다는 것과, 영화 OST라기보다는 팝 음악에 가까울 정도로 어딜 가나 쉽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이었다는 것. 개봉 초기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일일 박스오피스 2위까지 진입한 것은 개봉 1개월이 지나서였다. 마침 <타짜-신의 손>과 <루시>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던 시기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세세한 설정들 역시 익숙함으로 가득해 새로울 것은 없다. 그래도 가을 감성을 과하지 않게 적절히 적시는 대사와 트랙들, 그리고 괜찮은 유머감각은 대중영화로서 그만이다. (음악과 별개로) 이야기와 공간의 조화가 배우들의 호연(키이라 나이틀리보다는 마크 러팔로가 더)과 더불어 빛나기도 하다. 그 결과 <비긴 어게인>은 삭막한 도시에 상처 입고 홀로 남겨진 이들을 위한 위로의 리듬이 되었다. 제목 그대로, 다시 시작하기에 당신은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 그게 무엇이든. 7/10점, 적당히 호강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지는 않다. 2014년 8월 13일 개봉, 104분, 15세 관람가.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애덤 리바인, 헤일리 스테인펠드, 제임스 코든, 씨 로 그린 등. #영화 #비긴어게인 #키이라나이틀리 #마크러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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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스카이폴(Skyfall, 2012) / 샘 멘데스 Adele의 곡 "Skyfall"과 함께 이보다 더 멋진 오프닝이 있을까 싶은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극장에서 본 사람이라면 정말 황홀하게 기억할 것이다.)를 지나면 기차 위의 격투 신과 함께 제임스 본드는 총에 맞아 아찔한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물론 그가 여기서 죽지 않는다는 것을 관객은 잘 알고 있지만, 영화 속 본드의 추락과 비상은 곧 시리즈의 재도약과도 같은 이미지다. 흥행이나 평가와 별개로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구식 취급을 받아오던 시리즈의 화려한 부활. 50주년이자 스물 세 번 째 007 시리즈 <007 스카이폴>(이하 <스카이폴>)은 역대 여섯 번 째 제임스 본드인 다니엘 크레이그가 캐릭터를 (<카지노 로얄>(2006) <퀀텀 오브 솔러스>(2008)에 이어) 세 번 째로 소화한 작품이다. 그간 전형적일 대로 전형적인 시리즈가 되어왔지만 <스카이폴>은 그 안에서도 최신 영화를 보는 신선함과 예측 불가능함을 선사한다. 그야말로 전통과 트렌드를 모두 잡은 ���술적인 블록버스터. 동시에 시리즈의 명맥을 위한 의무감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느낌보다는, '정말로 없어서는 안 될 영화'라는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샘 멘데스의 연출도 신뢰할 만하지만 로저 디킨스의 촬영도 인상적이다. 50년이 넘은 시리즈임을 잊게 만들 정도로 속편을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뽐내는 <스카이폴>은 스물 네 번 째 <스펙터>(2015)의 개봉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하기 더없이 충분하다. 한 공간(집)에서 앞으로 ���약할 새로운 주역(다니엘 크레이그)의 취임식과 그간 활약해 온 주역(주디 덴치)의 퇴임식을 모두 지켜본 것 같은 감상이다. 단, 가벼운 액션이나 본드걸의 인상적인 활약을 기대하지는 말 것. 10/10점, 007 시리즈가 21세기에도 존재해야 하는 이유. 2012년 10월 26일 개봉, 143분, 15세 관람가. 다니엘 크레이그, 하비에르 바르뎀, 주디 덴치, 랄프 파인즈, 벤 위쇼, 나오미 해리스 등. #영화 #007 #스카이폴 #Skyfall #SamMendes #DanielCraig #Adele(🎧Skyfall, Adel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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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시절>(2009) / 허진호 사랑이 지나가고 기억이 흐릿해져도, 그 때의 그 시간은 남는다. 서로 다르게 기억해도 그 시간이 다른 시간이 되지는 않는다. 낯선 장소, 낯선 시간에 만난 <호우시절>의 두 사람이 금세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도 서로가 함께였던 시절 덕분이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산뜻하고 밝아보이는 <호우시절>은 단순한 첫사랑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대지진) 상처를 보듬어주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조미료 하나 없이 담백하니 비가 내릴 때마다 문득 생각날 만한 영화다. 거리에서 추는 춤, 팬더, 두보초당, 그리고 대나무 숲. 장면 하나하나가 마음을 가볍게 적셔준다. 영화에서 메이는 동하에게 묻는다. 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 아니면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적어도 영화에서 내리는 답은 전자 쪽이다. 둘 사이에 꽃이 피면 그 계절이 곧 봄이다. 겨울에 느끼는 봄이든 여름에 맞는 봄이든 말이다. 그렇다면 그 때가 두 사람의 가장 좋은 계절이다. 보고 나면 (다시) 연애를 하고 싶어질 만큼 기분이 좋아지니 <호우시절>은 멜로영화로서 성공적이다. 언어가 달라도 마음은 통하게 되어 있다. 노란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된 메이와 중국을 다시 찾은 동하처럼 말이다. 기분 좋은 만남을 다시, 시작했을 두 사람이다. 호우시절,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두 사람의 마음에는 단비가 찾아왔다. 7/10점, 사랑, 좋은 시간을 선물하는 것. 2009년 10월 8일 개봉, 100분, 15세 관람가. #영화 #호우시절 #허진호 #정우성 #고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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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9일. 그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영화 #모던타임즈 #찰리채플린 #ModernTimez #CharlesChap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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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Kingsman: The Secret Service, 2014)> / 매튜 본 멋들어지게 수트를 차려입은 신사 해리 하트(콜린 퍼스)가 술집의 출입문을 소리나게 삼중으로 걸어잠그며 동네 불량배들에게 말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여기서 해리가 하는 말보다는 문을 잠그는 행동이 조금 더 눈에 들어온다. 영화의 부제부터 <007 여왕 폐하 대작전(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1969)>의 이름을 따오며 60년대를 풍미한 스파이 장르를 현대적으로 잇겠다는 뜻을 내보이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그가 문을 잠그듯 관객에게 영화 스스로의 폭주로부터 벗어날 틈을 주지 않는다. 128분을 온전하게 짜릿함과 유머로 채워버린다. 다소 뻔뻔하기까지 한데 그것이 오히려 극도의 쾌감으로 향한다. 킹스맨의 악당은 가이아 이론 같은 것을 끌어와 그럴싸한 '지구 청소' 논리를 제시하지만 그것은 일말의 설득력이나 무게감을 주려는 게 아니다. 스냅백을 비롯한 컬러풀하게 튀는 의상을 입고, 값비싼 식기에 맥도날드 음식을 담아먹는, (배우 본인의 실제 억양보다 더) 과장된 억양을 구사하는 리치몬트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의 모습이 그래서 '수트 간지'를 뽐내는 킹스맨과 대조된다. '락 앤 코'의 모자를 신기한듯 착용하는 발렌타인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바스터즈나 장고 같은 타란티노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의 '악당'은 그저 통쾌한 액션의 제물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는다. '위풍당당 행진곡'이나 'Free Bird' 'Give It Up' 같은 선곡들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다. 아서왕의 전설에서 많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따온 것처럼 킹스맨을 현대판 기사라 칭하는 영화 속 대사는 그래서 허풍이 아니다. 캐스팅도 과거 스파이 영화나 시리즈물에 출연한 배우들이 다수다. 수트 자체도 정말 멋지게 소화하지만, 우산이나 만년필, 반지, 라이터, 구두와 같은 '젠틀'한 소품들은 이 영화에서는 완벽하게 무기가 된다. JB라는 강아지의 이름을 두고 제임스 본드를 이야기하는 체스터와 잭 바우어를 이야기하는 에그시, 그리고 에그시에게 <대역전>이나 <니키타> 이야기를 하는 해리. 3세대를 아우르는 인용과 오마주도 이만하면 수준급이다. 에그시가 해리를 만나 '개과천선'하듯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역시 '선배' 스파이 영화들이 닦아놓은 길을 (똘끼와 함께) 따른다. 그래서 감독의 전작인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보다는 <킥애스: 영웅의 탄생>(2010)의 이미지가 좀 더 선명하다.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귀족들이 만든 전통의 킹스맨 조직과 최신 IT기술을 등에 업은 현대 대기업 조직의 대결 같은 건 그래서 중요하지 않다. 왕립연기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 태론 에거튼은 크레딧 영상에서 콜린 퍼스의 술집 신(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을 그대로 따라한다. 앞으로 킹스맨은 스파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매튜 본은 영국의 전통적 가치와 대중문화의 만남과도 같은 자신의 이 영화를 가리켜 "사실적인 에스피오나주(60년대 스파이 장르물) 영토에 슈퍼히어로 부대를 침공시켜 허구로 독재하려 했다"고 표현했다. 그보다 이 영화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엔드크레딧에 흘러나오는 Take That의 곡 "Get Ready For It"은 영화가 끝나고도 수트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준비를 하라는 것처럼 들린다. 얼마든지 빠져도 좋다. 9/10점, 거의 모든 면에서 잘 빠진 특급 수트. 2월 11일 개봉, 128분, 청소년 관람불가. 콜린 퍼스, 태론 에거튼, 사무엘 L. 잭슨, 마이클 케인, 마크 스트롱, 소피 쿡슨, 소피아 부텔라, 마크 해밀 등. #영화 #킹스맨 #Kingsman #매튜본 #콜린퍼스 #태론에거튼 #KingsmanTheSecretService #MatthewVaug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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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작가의 말 - 밤은 짧고, 소설은 길다 서른 권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 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그가 잠들면, 나는 읽었다"로 말을 시작한다. 그날의 감정 상태나 사생활, 사건사고에 의지해서 작품을 고르기보다 그저 만나고 싶은 소설 속 주인공들을 떠올리며 책을 골랐다는 그녀는 이야기한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다가올 아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꿀 한 스푼 퍼 먹을 여유도 없이 시간에 쫓겨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유체이탈을 꿈꾸지 않아도 되었다. 우유 하나를 사서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걷지 않아도 되었다.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되었고, 듣기 싫은 말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개미 떼처럼 모여드는 인파에 둘러싸여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되었고, 집에 돌아오기가 바쁘게 씻고 잠들지 않아도 되었다. 잠드는 순간까지도 이번 달에 출간할 책의 원고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집에서 무엇이 썩어 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주변에 무감각해지지 않아도 되었다. - 작가의 말, 269쪽 중에서. 스스로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직장생활과 안정된 수입과 맞바꾼 '나만의 시간'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어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을 읽으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는 고전적 물음에 대해서도 나름의 답을 내린다.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기고 나니, 나 또한 세상 뜻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장 값이 싼 취미생활인 책 읽기가 결국 자신의 직업을 만들었다는 그녀의 마지막 문장이 좋다. "이 책이 쓰이는 동안 잘 자 준 그에게 오늘 밤도 잘 자라고 말해 주고 싶다" 잠든 남편의 옆에서 홀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글을 썼을 작가의 모습이 상상된다. 책을 읽는 동안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는 작가가 앞으로 쓰게 될 다른 책도 읽고 싶다. 조안나, <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 - 사랑으로도 채울 수 없는 날의 문장들>, 을유문화사, 13,000원, 281쪽. #조안나 #당신을만난다음페이지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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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타그램#1일1끄적 외로울 때 외롭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대가 내게 가르쳐준 것처럼 사랑할 때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리울 때 보고 싶다 말하자고 했던 것처럼 외로울 때 외롭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울 때 그립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대가 내게 가르쳐준 것처럼 그리움이 더 큰 상처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리울 때 그립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외로울 때 외롭다고 말을 하고 그리울 때 그립다고 말을 한다면 정녕 사랑할 때 우린 아무런 말도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K.리들리 #그리울땐그립다고말하렵니다 말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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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지쳐갈 무렵 한 남자가 나타나서 사랑은 기르는 것이라고 했다. 말로 한 것은 아니었다. 강아지 한 마리를 안겨주었다. 엄마 개가 아이들을 낳고 세상을 떠나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맡기는 했지만 모르는 것이 많아 여자는 고생을 좀 했다. 자주 잠을 설쳤고 강아지가 아픈 밤에는 같이 울기도 했다. 엉망이 된 집을 치우느라 고단하던 저녁이 더 고단하기도 했지만 품을 파고드는 따스함에 금세 웃었다. 외로움을 잊었다 강아지와 여자는 서로를 길들여갔다. 차곡차곡 익숙해졌다. 아주 닮은 강아지 또 한 마리가 남자에게 있었다.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형제라고 했다. 둘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 여자와 남자는 종종 함께 산책을 했는데 남자가 말했다. 저 녀석 엄마가 떠나던 날에는 무척 슬퍼서 다시는 강아지를 못 키울 것 같았는데 또 이러고 있네요. 하지만 모든 사랑은 다 어디선가 끝이 나는 거 아니겠냐고 여자는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것 같은데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끝나는 게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 마음 안에서 성장하는 것 같아요. 저 녀석들 엄마가 저에겐 첫 번째 강아지였어요. 처음엔 주인으로서 정말 많이 미숙했는데 이번엔 조금 더 잘 돌볼 수가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녀석들의 엄마는 나를 떠났지만 사랑은 내 안에 남아서 계속 성장해가는 것이 아닐까.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다시 키우길 잘했다 싶어요. 웃고 있는 남자에게 여자는 물었다. 사랑이란 뭘까요? 남자는 대답했다. 기르는 것 같아요. 밥 주고 물 주고 같이 산책하고 같이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떠나지 않고 함께 성장하는 것. 이번엔 여자가 웃었다. 중요한 사실을 알았고 또 느꼈기 때문이다. 마침내 만난 것이다. 오래 찾았고 기다리던 남자를 마침내. #정현주 #다시사랑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것보다 많이 행복할 거라는 걸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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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지쳐갈 무렵 한 남자가 나타나서 사랑은 기르는 것이라고 했다. 말로 한 것은 아니었다. 강아지 한 마리를 안겨주었다. 엄마 개가 아이들을 낳고 세상을 떠나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맡기는 했지만 모르는 것이 많아 여자는 고생을 좀 했다. 자주 잠을 설쳤고 강아지가 아픈 밤에는 같이 울기도 했다. 엉망이 된 집을 치우느라 고단하던 저녁이 더 고단하기도 했지만 품을 파고드는 따스함에 금세 웃었다. 외로움을 잊었다 강아지와 여자는 서로를 길들여갔다. 차곡차곡 익숙해졌다. 아주 닮은 강아지 또 한 마리가 남자에게 있었다.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형제라고 했다. 둘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 여자와 남자는 종종 함께 산책을 했는데 남자가 말했다. 저 녀석 엄마가 떠나던 날에는 무척 슬퍼서 다시는 강아지를 못 키울 것 같았는데 또 이러고 있네요. 하지만 모든 사랑은 다 어디선가 끝이 나는 거 아니겠냐고 여자는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것 같은데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끝나는 게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 마음 안에서 성장하는 것 같아요. 저 녀석들 엄마가 저에겐 첫 번째 강아지였어요. 처음엔 주인으로서 정말 많이 미숙했는데 이번엔 조금 더 잘 돌볼 수가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녀석들의 엄마는 나를 떠났지만 사랑은 내 안에 남아서 계속 성장해가는 것이 아닐까.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다시 키우길 잘했다 싶어요. 웃고 있는 남자에게 여자는 물었다. 사랑이란 뭘까요? 남자는 대답했다. 기르는 것 같아요. 밥 주고 물 주고 같이 산책하고 같이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떠나지 않고 함께 성장하는 것. 이번엔 여자가 웃었다. 중요한 사실을 알았고 또 느꼈기 때문이다. 마침내 만난 것이다. 오래 찾았고 기다리던 남자를 마침내. #정현주 #다시사랑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것보다 많이 행복할 거라는 걸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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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 2012)> / 앤디 워쇼스키, 라나 워쇼스키, 톰 티크베어 @hyelim_nam 님으로부터, #영화릴레이 학창시절을 함께 한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 시리즈에서 수많은 '살라딘'과 '데미안'이 뫼비우스의 우주를 이야기한 것처럼, 어쩌면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의 저편에는 미지의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 워쇼스키 남매는 언제나 상상력의 한계 그 너머의 세계를 창조해 낸다. 데이비드 미첼의 원작 소설도 정말 좋아하지만, 드물게도 소설보다 영화를 더 아끼는 작품 중 하나다. 미적지근했던 흥행에 대한 안타까움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지금 세상에서의 일들이 쌓이고 쌓여 다른 차원의 나를 만들어간다는 '인, 연, 과'의 이야기는 단순히 '윤회'와는 다른 주제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터무니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지만 말이다. 하지만 태어나서부터(Womb) 죽을 때까지(Tomb), 삶은 나 혼자만이 왔다 떠나고 마는 삶이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처럼, 값싼 청바지를 사 입었기 때문에 장대비가 쏟아져 안나의 연락처를 잃어야 했던 <미스터 노바디>의 니모처럼, 삶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나지 않더라도) 끝없이 영향을 미치는 관계의 연속이다.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나는 어디선가 또 다른 '나'이고, 그 또 다른 '나'는 어디선가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고 있을지 모르는 이 세상의 크기와 깊이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고 복잡한 것만 같다. 수많은 구름(Cloud) 저편, 우주 너머의 또 다른 세상에서는 다른 차원의 내가 지금의 내 지도(Atlas)를 그려가고 있을지 모른다. 매 순간 내 삶을 소중하게 보내고 볼 일이다. 이 영화의 5분 분량의 장편 예고편은 지금까지 본 모든 영화의 예고편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태블릿에 넣어놓고 수시로 본다. 9/10점, 여섯 개의 이야기가 하나가 될 때의 쾌감. 2013년 1월 9일 개봉, 172분, 청소년 관람불가. 짐 스터지스, 배두나, 톰 행크스, 벤 위쇼, 할리 베리, 짐 브로드벤트, 휴 그랜트, 휴고 위빙, 수잔 서랜든, 제임스 다시 등. #영화 #클라우드아틀라스 #TheWachowskis #CloudAtlas #DavidMitc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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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비밀(不能說的秘密, Secret, 2007) / 주걸륜 국내에 잘 알려진 대표적인 대만 영화의 하나인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영화에 대한 감상만큼이나 선뜻 '어떻다'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 일부러 심은 것인지 아닌지 모를 세부적인 장치들이 일종의 이스터 에그처럼 산재해 있고, 피아노 곡이 아름답다는 것을 빼면 그다지 특별한 점은 없다. 연출가라기보다는 음악인으로서의 재능을 뽐내려는 듯한 인상이 강하지만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플롯을 갖고 있고 감성적으로 상영시간 내내 관객을 집중하게 만드는 분위기도 있다. 타깃 관객의 특성상 타임패러독스에 대한 고려가 꽤나 허술하다는 점을 빼면 그 유명한 피아노 배틀 신 외에도 기억할 만한 신들이 여럿 있다. 상영시간이 101분에 불과한데도 그다지 필요해보이지 않을 만큼 긴 호흡으로 가져가는 신들이 많다. 다른 말로,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또한 '비밀'이 밝혀지는 시점을 전후하여 영화의 결도 조금 다르다. 전형성을 벗어나지 않지만 풋풋함 가득했던 전반부를 지나면 잘 다듬어온 부드러운 결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느낌이다. 그 소재만을 위해서 영화의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간혹 누군가를 위해 아무에게도, 특히 그 사람에게는 털어놓거나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다. (아마도 그 비밀 때문에 관계가 구축될 수 있었기에)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비밀의 결속력은 약해져 마침내 감춰왔던 경계를 허물어야 할 순간도 찾아온다. 서로에게 공유되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 순간,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전적으로 비밀을 알게 된 사람의 몫에 달려 있다. 그러니, 하이틴 멜로의 탈을 쓴 <말할 수 없는 비밀>은 한 사람만의 비밀이 곧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비밀로 옮겨가는 판타지처럼 들린다. 7/10점, 딱 적당히 괜찮은 수준의 악보 한 장. 2008년 1월 10일, 101분, 12세 관람가. #영화 #말할수없는비밀 #不能說的秘密 #Secret #주걸륜 #계륜미 영화 속 여배우들을 보며 '아름답다' 내지 '예쁘다' 이상의 느낌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 영화의 계륜미. 아마도 7점 중 3점은 그녀에게서 나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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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2012) / 이용주 누구에게나 신화처럼 자리한 첫사랑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질 때 일정 수준의 관객 동원을 보장한다. 하지만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는 나이를 꽤 많이 타는 장르다. 그 일정 수준 이상의 흥행은 힘들다. 그 점에서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의 411만 명이라는 관객 기록은 대단하다. 감정을 억지로 자극하지 않고 담백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능력이 시종 빛난다. 더불어 소재와 이야기가 조금도 따로 놀지 않고 공간과 시간이 하나가 된 것처럼 조화롭다.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고르게 좋은 연기까지. 멋진 로케이션을 배경 삼아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전환의 시점이 특히 탁월해보이는데,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감독의 두번째 장편 연출작이라 믿기 어려운 감각이다. 과거의 첫 대화와 현재의 첫 대화 모두, 서연은 반말을 하고 승민은 존댓말을 한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은 달라지지 않았다. 생각할 겨를이 없거나 잊은 척 했던,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은 언제나 마음 속에. 공사가 중단된 집터처럼 남아있다. 순수를 가장한 철없음과 어긋남을 골격 삼아 말이다. 그 자리에 남은 어릴 적 키재기의 흔적처럼, 사랑도 어쩌면 아주 없었던 것인 양 허물어 신축할 수는 없다. 겹겹이 다듬어 증축하는 것일 뿐. 서연이 도면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승민이 확인하는 순간, 비로소 두 사람의 15년 전의 집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그 터에 완성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기억의 습작'을 들려주는 CD처럼 말이다. CD의 시대가 가더라도 그때 두 사람이 공유했던 음질과 감촉은 남아있을 것이다. 8/10점, 채색되지 못했지만 간직하고 있는 밑그림처럼. 2012년 3월 22일 개봉, 118분, 12세 관람가. 한가인, 엄태웅, 수지, 이제훈, 조정석, 유연석, 고준희 등. #영화 #건축학개론 #이용주 #명필름(🎧기억의 습작, 전람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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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1끄적 #노트 #이성복 #이성복아포리즘 #글스타그램 이성복, <이성복아포리즘 -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447번. 나는 이곳에서 읽고 싶은 것을 쓰고 쓰고 싶은 것을 보고 들으며 느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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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 2011)> / 사라 폴리 남녀가 새롭게 만나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로 결혼이라는 평생의 서약을 한다. 그때부터 그/그녀는 예쁘게 차려입고 나가서 데이트하는 사람이 아닌, 매일 아침 눈 뜨면 늘 내 옆에 누워있는 사람이 된다. 더이상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고 설레지 않는다는 것에 권태를 느껴, 다른 사람에 이끌려 나비처럼 새 꽃의 새 향을 좇는다. 그 순간 그 몸짓은 바람이 되어 남겨진 자에게 불어와 상처를 남긴다. 한 비행기에서 다른 비행기로 갈아탈 때의 두려움에 대한 인물들의 대화를 들려주며 내용을 암시하는 <우리도 사랑일까>는 바로 그 '새 사랑'이 '옛 사랑'이 되는 순간을 바라보는 영화다.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남겨진 사람을 비련의 주인공으로 묘사하지도, 새 사랑을 찾아 떠나는 사람을 가정을 파탄내는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오로지 주인공이 매 순간 느끼는 감정과 그 미세한 변화들, 그리고 두 사람과 두 사람이 함께일 때의 그 공기와 향기. 그것만이 영화의 핵심이 되며, 세 남녀의 감정 연기는 섬세함과 동화됨의 극을 달린다. 인생에는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는 틈이 있다. 그것을 채워보고자 노력하는 안간힘, 그것이 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지 모른다. 하지만 채울 수 없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구멍을 막아도 언젠가 다른 곳에서 구멍이 생긴다. 사랑도, 그렇게 흘러간다. 영화의 원제는 매 순간 마음의 강물이 흘러가는 것에 몸을 맡기는(Waltz) 것만이 답일지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진심의 순간' 말이다. 언젠가 그 사람으로 인해 눈물짓게 될 순간이 올지 모른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음악과 영상들은 낡은 것도 새 것인 순간이 있었음을, 모든 것의 시작은 아름답더라는 것을 마음 깊숙하게 전달한다. 매일매일 사소하고 오랜 추억들을 만들어가는 사랑도, 변화를 좇고 낡음과 익숙함을 거부하는 사랑도,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손을 번쩍 들어주는 사랑의 방법은 아니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똑같은 장면임에도 온도가 다르다. 10/10점, 모든 새로움은 언젠가 닳아질 것을 알지만. 2012년 9월 27일 개봉, 116분,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우리도사랑일까 #TakeThisWaltz #사라폴리 #미셸윌리엄스 #세스로건 #MichelleWilliams #SethRo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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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시봉>(2015) / 김현석 김현석 감독은 <열한시>(2013)를 제외하고 자신의 모든 연출작의 각본까지 담당했다. 그가 들고 온 신작은 이름만으로 추억을 자극하는 소재와 당대의 명곡들, 그리고 그 곡들에 영감을 준 뮤즈라는 흥미로운 픽션. 삼박자를 모두 갖췄다. 그 좋은 트리오로 출발한 <쎄시봉>은 최호의 <고고 70>(2008)을 떠올리게 하는 꽤 신선하고 좋은 음악영화의 모양새를 갖추다가 후렴(러닝타임 약 100분 지점)에 이르자 흔한 첫사랑 영화로 리듬을 선화해버린다. 영화에 직접 등장하는 '담배가게 아가씨'(송창식)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그건 너'(이장희) '딜라일라'(조영남) 등의 좋은 트랙들이 비교적 이야기와 잘 어우러져 보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 모두를 관통한다. 트리오의 첫만남부터 가상의 인물 민자영이 '뮤즈'로서 기능하게 되는 과정까지 (고르게 좋은 연기와 더불어) 꽤나 인상적이다. 관객과 인물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도 좋다. 음악영화로서의 훌륭한 요소들을 갖추고도 7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오는 순간 추억을 자연스레 적시는 게 아니라 자극해버리는 첫사랑 이야기로 변질되어 버린다. 사랑 이야기 자체의 난점이 아니라, 중반까지 잘 다져나가던 낭만을 스스로 포기해버린다. 음악과 실존인물 역시 이야기의 영감의 원천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인용에 그쳤다는 느낌을 주지만,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충분히 음악과 사랑에 대한 낭만에 빠져들기에는 충분하다. 그 점에서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는 그래도 적당한 만족감을 준다. 상업영화의 기획력에 있어 다른 배급사의 작품들은 아직 CJ를 따라오지 못한다. 여담이나 단순히 한효주가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부당하고, 성숙하지 못한 일이다. 7/10점, 그 시절의 희미해져버린 'The Wedding Cake'. 2월 5일 개봉, 122분, 15세 관람가. 정우, 강하늘, 조복래, 진구, 한효주, 김인권, 김윤석, 김희애, 장현성 등. #영화 #쎄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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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민란의 시대>(2014) / 윤종빈 지난 여름 극장가의 이른바 '빅 4' 영화 중 내게 가장 높은 만족감을 준 것은 <군도: 민란의 시대>다. 아마도 개봉 일주일 만에 <명량>을 만난 것은 군도의 제작비 애매한 흥행(477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소로 보인다. 조선판 웨스턴으로 칭해지는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 흔히 프랑코 네로 주연의 <장고>(1966)를 비롯해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많이 언급된다. 실제로 <킬 빌>(2003,2004)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 등의 잔영을 스치게 하는 장면들이 산재해 있다. 다만 그것들이 직접적인 인용이라기보다는 한바탕 게임을 펼쳐보자는 목적 하에 감독이 매료된 몇가지 모티브들을 녹여낸 것으로 보는 게 영화에 좀 더 가깝다. 그런 점에서는 결국 오락성이 가장 큰 목적이었던 <설국열차>(2013)도 떠오른다. 예고편과 포스터 등에서 그렇게까지 비장하거나 묵직한 메시지를 풍기는 영화는 아님에도, <군도: 민란의 시대>에 지배층의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나 권선징악 같은 것을 기대한다면 그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다소 다루기 조심스러운 소재일 수 있으나, '민란의 시대'라는 부제 대신 좀 더 오락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제목을 사용했다면 반응이 좀 달랐을 거라고 본다. 최근 읽은 신형철의 책을 구태여 인용하면 "감독이 하려고 하지 않은 것을 왜 하지 않았느냐고 비판하는 것은 재미없는 일이다. 하려고 한 것을 어떻게 해냈는지를 물어야 한다."(<정확한 사랑의 실험>, 155쪽.) 이 대목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영화처럼 특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당시와 현재의 사회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영화들이다. 감독의 전작인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는 그 점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과하게 직접적이지 않은 유머, 디테일에 강한 캐릭터 구축, 기술적으로 완성도 높고 세련된 (영상) 편집과 음악(최고의 한국영화 OST 몇 손가락에 꼽고 싶은)과 장르적 쾌감까지, <군도: 민란의 시대>는 여름 시즌에 딱 맞는 활극으로 기억될 만하다. 그리고 거대자본이 들어간 상업영화에서 자신의 취향을 살려낸 30대 젊은 감독. 아쉬운 점이라면 서자 콤플렉스를 다루는 대목이 비중조절에 조금 실패했다는 인상을 주는 점과 이 영화가 끌어안고 있는 몇 마리의 토끼 중 한 마리 정도는 덜어냈을 때 오히려 더 명작이 되었을 것이라는 느낌 정도. 8/10점, 한국에서도 이런 장르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것. 2014년 7월 23일 개봉, 137분, 15세 관람가. 하정우, 강동원, 이경영, 이성민, 조진웅, 마동석, 윤지혜, 주진모, 김성균, 정만식 등. #영화 #군도 #군도민란의시대 #하정우 #강동원 #윤종빈 p.s. 조윤 님, 아기는 내려놓고 싸우셨어도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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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 오버 미(Reign Over Me, 2007)> / 마이크 바인더 124분이라는 그다지 길지 않은 상영시간을 다소 길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레인 오버 미>는 연기와 음악, 메시지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영화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장 친밀한 관계. 가장 가깝기에 오히려 서로에게 가장 상처를 주기 쉽다.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서로에게 이해라는 이름의 우를 범하기 쉽고,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조차 위로라는 이름의 또 다른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가 있다. 때때로 당사자에게는 이해라는 것조차 오히려 위선이 될 수 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없다면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주인공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다른 사람의 상처를 우리가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상처를 치료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모른 척 방황하던 남자와, 도움을 주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서로 어긋났던 남자. 두 사람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일 수 있었던 것은 잠시 어긋나더라도, 잠시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저 서로의 곁을 끝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담 샌들러가 없었다면 전형적인 '포스트 9/11' 영화의 하나에 그쳤을지 모르는 <레인 오버 미>는 그를 비롯해 적재적소에 배치된 좋은 배우들이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으며, 무엇보다 영화가 끝나는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 여겨진다. 힐링이라는 테마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체로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에. 영화의 제목은 The Who의 'Love Reign O'er Me'에서 영감을 얻은 작명이다. 음악 활용이 탁월하다 느끼는 건, 영화에 사용된 모든 음악이 극 중 아담 샌들러의 대사로 언급되거나 그의 아이팟에서 재생되는 트랙들로만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며 Pearl Jam이 리메이크한 곡의 가사를 흥얼거리게 된다. Love, reign o'er me, rain on me. 사랑이여, 날 지배해줘요, 내게 비처럼 내려와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샌들러의 대사. 길���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 아내로 보여요. 전 혼자서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봐야 해요, 어딜 가든지. 개도 보여요. 셰퍼드를 봐도 그 망할 푸들이 보인다고요. 9/10점, 영화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 2007년 9월 6일 개봉, 124분, 15세 관람가. 아담 샌들러, 돈 치들, 리브 타일러, 세프론 버로우스, 도날드 서덜랜드 등. #영화 #레인오버미 #ReignOverMe #아담샌들러 #돈치들 #리브타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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