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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어왔다.
팔로워의 대부분이 이상한 계정이네
글 정리해서 백업 해야겠다..
친구여러분 잘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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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time no see
오랜만에 텀블러에 들러봅니다.
다들 안녕하신가요. 오늘은 추석이네요.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시길.
살아있는 동안에는 부디 아프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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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남아있지 않을 날까지 어떻게든 버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친구가 세상을 떠난 상실감과 슬픔이 도저히 내가 아는 언어로는 표현되지 않아서 당혹스럽다. 부고를 들은 후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간을 보냈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전날 밤, 술을 마시다가 문득 내일 뭐 하냐는 질문을 받고 "장례식에 간다."고 했다. 오히려 물어본 사람이 아이고, 하고 낮은 탄식을 뱉으며 슬프지 않냐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상하게 안 슬펐다. 실감이 안 나서였던 게 맞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행동이 무뎌졌다. 돈을 가져와야 된다는 것을 몰라서 빈손으로 왔는데 돈을 두는 곳이 있어서 당황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돈은 안 가져와도 상관 없다고 했다. 정말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곳이라는 걸 미처 생각지 못해 맨발로 온 것이 신경쓰였을 뿐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으니 금세 다리가 저렸다. 향을 피우려 일어날 때 조금 후들거렸다. 스님의 독경소리 사이사이에 부모님의 울음소리가 섞여들어왔다. 친구들이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그제서야 이것이 퍼포먼스가 아니라 실제상��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나보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늦게 온 조교가 내 옆에 앉아 두 손을 모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잠시 로비에 나가있는 중, 그 친구와 특히 더 친하게 지냈던 친구 한 명이 내 옆으로 오기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울음이 터졌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장례관리사가 관을 열어 안에 있는 얼굴을 보여줬다. 보지 말았어야 했다. 믿겨지지 않는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하던 친구가 그 안에서 자고 있었다. 늘 화장기 없던 그 얼굴이 예쁘게 분칠되어있었다. 가슴께에 꽃을 놓아주었다. 이렇게 몸이 작았던가, 혹시 영화처럼 갑자기 눈을 뜨지는 않을까, 도대체 왜 갑자기 그렇게 세상을 떠난 걸까, 죽는다는게 도대체 뭘까, 지금 친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온갖 생각들이 쉬지않고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친구의 어머니는 오열중에 실신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하셨다. 아버지 역시 울다 그치다를 반복하시며 자꾸 정신을 잃으시는 어머니를 간호하셨다. 친구의 남편분은 그런 두 분을 보살피랴 장례 진행하랴 수속 밟으랴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중국인 대만인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가족의 통역을 맡아줬다. 화장하고 유골 수습하는 모습까지 보았다. 화장을 끝내고 막 나온 모습에 남편분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유골은 물론이고 재 한줌까지도 다 수습하여 가져갔다. 선생님이 가족들을 집까지 모셔다 드린다 하여 다같이 떠나는 모습까지 본 후 나도 그곳을 떠났다. 집에 온 것이 저녁 여섯시 무렵. 그 때부터 오늘 아침까지 쉬지않고 잤다. 잠결에 선생님한테 온 메일을 확인했을때 나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악몽이었다. 그 친구는 왜 죽은걸까. 원인이 어떻든 간에, 도대체 왜 죽어야만 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죽는다는게 뭘까. 그 해답을 조금은 찾은 줄 알았는데 다시 수수께끼가 되어버렸다. 도저히 모르겠다. 죽음이 뭐지. 도대체. 친구는 떠나고,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슬픔만이 남았다. 친구가 쓰던 논문은 환상이 되어버렸다. 친구는 종종 가족의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로 나들이를 나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 이야기를 하던 친구의 모습이 생각나서, 그 슬픔이 견디기 힘들다. 오열하던 남편분의 얼굴과 친구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관 속에 있던 얼굴도 함께 떠오른다. 친구의 뼈가 떠오른다. 하얀 뼈만 남았다. 정말 이제는 없는거구나. 부디 명복을. 나는 절대 일찍 죽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빨리 죽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오래 살아요 다들, 적어도 나보다는 오래 살아줘요. 모순적 바람. 하지만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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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 나와 동갑이었던 동네 친구 동호라는 아이가 있었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잠시 눈을 감았다. 우리집은 1동이고 동호네 집은 3동이었다. 나는 동호보다 동호의 누나와 더 친하게 지냈다. 얼굴이 하얗고 질투심 많고 잘 울던 동호보다, 나를 친동생처럼 대해주는 다정하고 착한 동호 누나가 더 좋았다. 그렇다고 동호와 놀았던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동호와 동호 누나와 2동에 사는 언니와 그 언니 동생과 다같이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몇 살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어린 시절, 분명 내 기억 속에 동호라는 아이는 존재했다. 어느 날 나는 많이 아팠다. 하루종일 아팠는지 며칠동안 아팠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나는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열이 났던 것 같다. 열이 내리고 정신을 좀 차릴 무렵에 엄마가 누워있는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동호가 죽었다고 했다. 가족이 타고 가던 차가 사고를 당했는데, 부모님과 누나는 다치고 동호는 죽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모를 나이는 아니었지만, 죽음을 이해할 나이는 아니었다. 나는 동호보다 동호 누나가 걱정되었다. 언니랑 내가 다시 놀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되었다. 언니는 다리가 부러져서 깁스를 했기 때문에 한동안 나랑 놀 수 없다고 했다. 문병을 가고 싶었지만 안된다고 했다. 문병도 안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 언니가 퇴원해서 집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보기로 했다. 다른 동네 친구들과 함께였다. 엄마는 거기 가서 절대로 동호라는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언니는 파란색 깁스를 두르고 있었다. 처음보는 깁스가 신기해서, 만져보기도 하고 똑똑 두들겨보기도 하고, 빨리 나아서 또 자전거 타고 놀자고 했다. 동호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오랜 시간동안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게 되면서 나는 서서히 동호를 잊어갔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죽음으로 인한 부재, 부재로 인한 상실감, 상실감으로 인한 아픔을 느끼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기억이 죽음에 대한 첫 경험이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고 살았다. 그 일을 떠올린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도 알 수 없고, 오히려 내가 이걸 기억해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로 까마득하다. 하지만 죽음에서 아픔으로 이어지는 알고리즘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다행스러웠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끊임없이 겪어야 할 이 고통을 어어찌 견뎌내며 살까. 심장이 또 뻥 뚫려버린 것 같은 기분, 이 외에 형용할 만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 주 전에 수업을 함께 들었던 친구는 이제 뼈와 재가 되었다. 이제 더이상 숨쉬지 않을 뿐더러, 이 세상에 그의 육신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남은 이들은 그의 부재를 순간순간 확인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의 흔적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지워져 가겠지만, 문득 문득 생각날 것이다. 생각이 날 때마다 그리울 것이다. 그립고 슬프고 아플 것이다. 그가 받았던 그 고통의 조각들을 조금씩 조금씩 받을 때마다 그가 존재했었음을 다시금 떠올릴 것이다. 슬픔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돌아간다' 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는 어디론가 돌아갔을 것이다. 인간이 미처 알지 못하는 그 어떠한 곳으로. 원래 있었던 그 곳으로. 무(無)의 세계로. 삶이라는 고행을 견뎌냈으니 이제는 영원의 세계에서 편안히 잠들기를. 살아있는 이들은 그 곳에 돌아갈 날까지 당신을 그리워하리라. 아파하는 것은 이제 살아있는 이들의 몫. 이것 또한 살아있는 이들이 죽는 날까지 견뎌야 할 고행의 과정일 터이니, 겸허히 받아들여 견뎌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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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오사카에서 산 기간을 다 합하면 그렇게 되었다. 이제는 이 곳이 더 편하다. 그게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떠나고 싶다. 이제 그만 살고 다른 나라로 가야지. 좋은 곳이긴 하지만 여기는 내가 평생 살 곳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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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 오랜만. 어제는 오랜만에 혼자 "밖에서" 술을 마셨다. 매일 집에서 혼자 마시다 보니 너무 외로워서, 모르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곳으로 나갔다. 나의 외로움을 뽐내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텀블러, 오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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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맥주 500미리 한 캔을 따서 오징어를 씹으며 홀짝홀짝 마시던 중이었다. 밖에는 비바람이 쌩쌩 몰아치고 있으니, 맥주마시며 누워서 티비보기 딱 좋은 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현듯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날도 이렇게 비가 왔...던건 아니고, 눈이 내렸거나 아주 쌀쌀한 날씨였나?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그 무엇하나 그 녀석을 떠올릴 만한 요소가 없었는데 왜 그랬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것이 언제였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카카오톡을 뒤져보니 이름은 아직 있었다. 그 녀석. 그렇게 엄청나게 친했던 것도 아니고, 안 친했던 것도 아니다. 한 때의 사진들을 뒤져보면 몇 장 너머 한두장씩 그 녀석이 찍혀 있는 걸 보니 그 한 때는 꽤나 친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인가, 내가 좋아하던 사람에게 차여서 나는 무척이나 괴로워하고 있었고, 그 애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다른 남자친구가 생기는 장면을 목격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모두가 왁자지껄한 술자리에서 우리 둘만 눈물을 삼키며 건배를 나누었다. 밖은 추웠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세상에 남자가,여자가, 그들 뿐이냐며.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으면 참으로 흔한 러브스토리 하나가 완성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농담조로 서른이 될 때까지 서로 솔로라면 우리 사귈까? 하는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이십대 후반즈음에 누군가의 결혼식에 함께 간 적이 있었는데, 이 약속 이야기가 나왔다. 서른 다섯이나 마흔으로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이 얘긴 없었던 걸로 하기로 했다. 그러다 진짜로 우리가 사귀면 큰일이라면서 각자 얼른 좋은 사람 찾아가라고. 그 날 나는 결혼식에 간답시고 평소에 신지도 않던 하이힐을 신고 힘들어했는데, 그 녀석이 나에게 신발을 한 켤레 사주더라. 하, 이러다 내가 너한테 반하면 어떡하라고. 그랬더니 그 녀석 왈."이거 신고 제발 도망가주라." 도망을 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나는 일본에서 유학중이었다., 그 이후로 그녀석을 한 번 만났던가? 그 한번이 그보다 이전이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연락은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 이전에 종종 만났을 무렵, 우리가 서로 나눈 얘기의 주된 테마는 "인생 살기 힘들다""연애가 왜이리 힘들까"였다. 재미 없는 삶에 대한 대토론장. 서로 도움될 것 없는 내 고통 털어놓기 대회. 그래서 연락을 안 하게 된 건 아니고, 나는 원래 누구에게도 연락을 잘 안 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일년에 한두번 이름이 떠오르긴 했지만 연락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런 내가 어제는 그 녀석에게 갑작스레 연락을 해 보았다. 몇 년 만일까. '살아있냐?' 고 신호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살아는 있단다. 여전히 사는게 재미가 없단다. 친구들이랑 얼마나 연락을 안 하고 지내는지, 우리가 정말 가족같이 친하게 지냈던 다른 한 녀석이 다음다음달에 장가가는 것도 모르고 있더라. 서울도 아닌 곳에 고립되어 외롭게 그럭저럭 일하면서 살고 있단다. 왠지 그럴 거 같았어. 한국을 거쳐 왔을 이 비바람이 너의 외로움을 전해준 거 같은, 그런 시적인 감상에 젖어서 그동안의 삶을, 아주아주 간략하게 함축하여 글자에 실었다. 오래 전에 찍었던 사진 한 장이 생각나. 우리 스무살 때. 그 때 얼굴만 기억나. 우리가 서른살 넘어서도 만났을텐데 왜 나는 그때만 생각날까. 이제 우리 서른 네 살. 무미건조하거나 텁텁하거나 씁쓸한 삶 속에서 과거의 추억이란 달콤한 사탕과도 같은 것. 입 안에서 녹을 때는 달콤하지만, 다 녹고 없어지면 텁텁함과 갈증만이 남는다. 그래서일까, 어제는 참 달콤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눈물이 나네. 그놈의 연애문제로 매일매일 아프다고 힘들다고 울고불고 난리치던 스무살 그 때가 그리워질 날이 올 줄이야. 그런 날을 함께했던 친구들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그래도 그 때 나는 참 행복했구나, 그립고 또 그립다. 아프다. 그 녀석도 오늘 아침에 나 같았을까.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이런 아픔을 단련하다보면 어른이 되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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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간 도쿄에서 지내게 되었다. 한달간 호텔에서 살아야 하는데 4일째인 지금, 죽을 맛이다. 건조하고 할일없고. 위클리맨션을 잡아달라고 할 걸 그랬나. 밥도 매번 사먹어야 하고, 건강에 좋지 않다. 심지어 이 근처는 다 비싸...ㅜ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먹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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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산책 겸 간 호그와트, 그 앞 식당에 가서 피쉬앤 칩스를 안주로 생맥주를 한 잔 마시고 왔다. 일탈. 마법사들의 세상에서 즐기는 차가운 공기와 알콜기운. 나의 소소한 행복. 원더랜드로 수학여행온 일본 전국의 학생들과, 여행자들 틈에 뒤섞여 나는 내일 하루를 위한 에너지를 충전한다. 나도 언젠가는 빗자루 타고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호그와트 입학원서는 언제부터 낼 수 있나요. 머글도 가능할까요. 아니지, 혹시 모르지. 우리 엄마아빠 사실은 마법사일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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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것 같다. 시간이. 그리고 내 삶이. 흘러가도록 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든 흐름을 주도해야만 했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는 척이라도 하며 살아냈다. 작년 12월부터 머리와 손과 발과 몸통이 따로 움직이는 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더니 정말 그리 되더라.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을 멈췄더니 시간도 나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기만 한다. 이렇게 살면 안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편안하다. 생각없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 아무것도 없는 느낌. 신기할 뿐이다. 당장 죽어도 별 상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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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그리고 이제는 친구의 남편이기도 한 친구. 이제는 친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만날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 한국스타일 중국집에 가서 깐풍기에 소흥주를 마셨다. 우리가 오래 전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며 놀았지? 잘 기억나지 않네. 단 둘이 만나서 술을 마신 건 꽤 오랜만이라며, 옛날 이야기를 안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참을 떠들다 문득. 아, 너한테 줄 게 있었는데. 하고 아쉬운 표정을 짓기에 뭐냐고 물으니 “로메인 레터스"란다. 아니, 뭐라고? 한참을 웃었다. 부부가 같이 장을 보러 가서는 로메인 레터스를 발견하고는 한웅큼 사 왔는데(파는 곳이 많지 않다), 양이 너무 많길래 나한테 나눠주자고 했다고. 내가 로메인 시저샐러드를 좋아하는 걸 두 사람은 알고 있단다. 그게 그렇게 임팩트가 강했나? 나는 두 사람 앞에서 시저 샐러드를 두 번쯤 시켜먹었을 뿐이다. 한 번은 로메인이 들어가지 않아 불평을 했었고, 두 번째는 로메인만으로 만들어진 시저샐러드라서 기뻐했었다. 그 모습을 그들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너희들 정말 귀엽다. 사랑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잘한 일이 몇 개 없는데, 그 중에 하나가 너희 둘을 만나게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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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시에이엠에 출근해서 밥묵는 시간 빼고는 쉬지도 못하고 열시피엠까지 일하고 아직 집에 도착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생때가 좋은거야."라는 말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나 아직 고생을 덜했나보네!! 사실 논문 끄트머리에 털끝하나 스치지도 않고 두달을 보냈더니 마음이 아주 편안~한지, 휴일 하루 없이 이렇게 미친듯이 일만 하며 사는데도 불구하고 살이 돼룩돼룩 쪘다. 공부하고 알바하고 사는 것 보다 그냥 일만 이렇게 하며 사는게 훨훨훨 편하다. 당떨어지는 타이밍만 봐도 알 수 있다구. 오늘 저녁시간에는 샌드위치를 입에 쑤셔넣으며 내가 과정 3년동안 썼던 논문(이라고 해봐야 고작 레포트 수준에도 못미치는 3개)들을 끄집어내어 주섬주섬 맞춰보았다. 여기다 개뼉다구 몇 개 주워다 붙이고 어디서 가죽 몇 장 떼다가 바르면 어설프게나마 한챕터 두챕터는 되겠더라고. 삼년 헛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뭔가 있긴 있더라. 다행이었다. 다음주에 퇴학원을 제출하러 간다. 이제 진짜로 학생증 반납한다. 교무부에 가서 이것저것 알아보는데, 삼년이라고 하더라. �� 년. 나에게 남은 리미트는 앞으로 삼 년. 돈 좀 모아놀걸 후회해봐야 나는 그동안 입에 풀칠(인지 술칠인지)하기 바쁜 학생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 학생이 무슨 돈을 모을 만큼 버냐. (사실 모을 만큼 벌기도했으나 다 알콜이 되어 공중분해되었다는 건 그냥 잊기로 한다) 새벽알바 심야알바 이동네 저동네 뛰어다니며 일하면서도 논문 쓸거 다 쓰고 수업도 듣고 학회도 다니고 술도 쳐먹고 살았다. 회사다니면서 논문쓰는걸 그렇게 동경했던 시절도 있었잖아? 나도 규칙적으로 일하고 휴일이 있다면 좋겠다고. 휴일엔 온전히 논문만 쓰고 싶다고. 그런데 망할. 현실은 그게 아니더라. 휴일엔 거실에 누워서 시체흉내를 낸다. 꼼작도 하기 싫어서 밥도 안 먹는다. 세상에. 이러면 안 돼. 삼 년입니다.아시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불꽃이 파바박 튀었다. 할꺼면 하고 말꺼면 당장 그만두고. 어떻게 해야 할까?그래서 오늘 오랜만에 좀 꿈지럭거려 본 것이다. 결론은 뭐.. 위에 쓴 대로다. 뼉다구들 모으러 좀 다녀보고, 어디서 뭐 좀 주워서 주물주물 해서 꾸준히 붙이다 보면 이티같이 생긴 애라도 하나 만들어 지겠지. 이티면 다행이게. 아무튼 오늘부터 내 목표는 2년 안에 이티 한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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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니맘대로 죽지 말자. 내가 억울해서 따라 죽을지도 모른다. 혼자 그렇게 편해지려고 도망가기 있음? 날 버리고? 갈거면 데려가라. 내가 요즘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이러하다. 어디 당신혼자 편하려 하냐. 이기적이야. 셜록 이번 시즌 에피2에서 셜록이 그랬지. "당신의 삶은 당신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도 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기 때문도 있어. 내 삶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이 나를 버리는 그 날까지 나는 억지로라도 살아있어야 한다. 그러니 내가 편하기 위해 모두들 날 버려줘. 가끔 바라곤 한다. 그러나 나로 인해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당신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해도, 나를 ��대 버리지 않을 단 두 사람 때문에 나는 아마도 쉽게 죽지 못할 듯 하다. 위태위태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생명이 위태로운 시기에는 어떤 방법으로든 눈가림을 하고 내 두손 두발을 묶어서 살아남곤 했어. 그러므로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나는 살아나가겠지. 누누히 말하지만 난 절대 우울한 것이 아니야. 이대로 소멸되고 싶을 뿐. 증발해버리고 싶을 뿐.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순간순간 깨달을 때마다, 無의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먼저 간 니네들이 부럽다 부러워. 이 이기적인 새끼들아. 니네들 덕분에 나는 삶의 고통을 깨달았다. 얼마 전 이틀만에 몰아본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의 가슴팍에 꽂힌 검이 뽑히는 순간 도깨비의 존재는 무로 돌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보고,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다만 구백년 넘게 산 고려시대 케케묵은 할배도깨비가 열몇살짜리 여자애를 사랑하는 바람에 그토록 원하던 무의 세계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는 설정은 너무 심하게 판타지였다. 퉷. 만약 내가 구백년 넘게 죽지도 못하고 남들 죽어가는 꼬라지 다 보며 살았더라면, 눈앞에 장이씽이 나타난다 해도 그 손으로 검을 뽑아서 무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을 터인데. 쯧. 여하튼 이건 우울한게 아니다. 나는 다만. 無! 무를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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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네살이 되었다. 지금 깨달았다. 나는 내가 아직 서른 세살인 줄 알았다. 서른 세살의 마지막 한달은 엑소에 반해서 엑소에 빠져서 보냈다. 나는 나에게 더이상 그런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엑소 팬클럽에 가입했다. 마지막으로 팬클럽 가입해 본 게 언제였더라. 요즘, 퇴근하면 그들의 비디오를 보며 술을 마시다 잠들곤 한다. 서른 네살. 나잇값이 뭘까. 피식 웃음이 난다. 뭐 어때. 즐거운데. 진짜 신난다. 아이돌 좋아하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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