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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6 아침
드디어 옷장정리를 했다. 작년에 이사를 급히 했고, 방이 하나 줄어서 감당 안되는 짐들을 여기저기 때려박았다. 그 바람에 내 방엔 쓰지도 않는 화장대가 하나 있고, 책이 과하게 많고, (옷도 정리 못하고 와서) 10년을 묵은 옷들도 있었다.
근래 애인과 함께 내 방에서 지내게 되었고, 두 명의 옷을 감당할 길이 없어 옷장 밖과 의자에 옷이 마구 굴러다니고 걸쳐있게 되었다. 예전이라면 신경도 안 썼을텐데, 이제는 두고볼 수가 없었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나서부터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자고, 낮에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여튼 무언가 할 수 있게 되고 나서부터 나는 내 정신에 해로운 것을 그냥 두고볼 수 없게 되었다.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방향으로 강박이 심해진 것일 수도 있고. 핵심은 내가 내 방의 어수선함을 도무지 견딜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기 전에, 또는 1월 내에 방을 제대로 가꾸겠다는 것이 목표다. 어제는 두 개의 플라스틱 서랍장과 옷장을 정리했고 패딩을 제외한 모든 옷을 수납했다. 더이상 입지 않는 옷을 내 몸무게보다도 많이 버린 것 같다. 커다란 장바구니로 세 바구니가 나왔다. 미련없이 버릴 수 있었다. 분명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어서 있던 옷들도 그냥 맘편히 던져버릴 수 있었다. 다 정리하고 나니 방이 굉장히 넓어보인다.
요즘은 책장의 책들도 알라딘에 열심히 팔고 있다. 돈이 필요해서 시작한 것이긴 하지만, 더이상 읽지 않거나 얻거나 사놓고 펼치지도 않았던 책들을 미련없이 처분한다. 나는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었는데. 절대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정말 많은 것을 팔고 버렸다.
과하게 의미부여 해보자면, 나는 이제 정말 새로이 나아가고싶다. 한 걸음 더 떼고싶어한다. 나는 이제 과거에 얽히고 싶지 않다. 정신적으로도 실제로도 굉장히 노력하고있는 부분이다. 시작은 타의였지만 결과는 자의로 만들려고 한다. 너무 많은 것에 마음 쏟지 않고, 고르고 고른 소중한 것들만 데리고 나아가려 한다. 오늘도 방정리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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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3 아침
어제는 두 가지 지름을 했다.
1.
첫째는 로스트베이프 오리온 전자담배. 입호흡과 반폐호흡이 가능한 기기인데 병준이가 꽤 오래전부터 샘플로 쓰고 있었고, 처음 써보는 입호흡 기기가 마음에 들었지만, 입고 전이라 나는 어쩔 수 없이 미팟을 샀다. 어제 오랜만에 용트림에 가서 놀면서 (거기 가면 자꾸 새 기기를 사고싶어진다) 탐난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병준이가 "하나 사 줘?" 이러길래 덥썩 물고 "응!" 외쳤지.
늘 자개를 좋아했다. 외할머니댁 검정 자개 옷장도 좋아했고, 내 기타의 자개장식도 좋아했다.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게 예���다. 오리온도 고민을 하다가 블랙 자개로 사버렸다.

각도에 따라 초록 계열과 핑크 계열로 보인다. 늘 흔치않은 초록색 모드기와 핑크색 모드기를 원한다며 징징댔는데, 뭔가 두 개를 한번에 얻은 기분이다.
2.
큰할머니가 용돈봉투를 보내오셨다. 주기적으로 받던 용돈이 끊긴 상태라 늘 무언가 사려면 병준이의 카드를 사용해야해서, 열 번 고민하면 두어번만 결제할 수 있었는데, 요즘 계속 사용하는 트래블러스 노트의 가죽커버를 드디어 주문할 수 있었다! 6만2천원이 싼 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같았으면 그냥 샀을텐데. 속지만 쓰면서 요즘 계속 '하늘에서 딱 이삼십만 떨어졌으면 좋겠다!' 하고있었는데 정말 뚝 떨어졌네.
오미세에서 쿠폰가격에 맞게 속지까지 챙겨 주문하고나니 마음이 풍요롭다. 길쭉한 트래블러스노트 오리지널의 크기는 시를 필사하는 데 딱이다.

문구 욕심, 종이 욕심, 펜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래도 이쯤 샀으니 만족하고 한동안은 열심히 써먹기만 해야지. 쇼핑을 하니 스트레스가 확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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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2 아침
학교 앞에서 술을 마시다 바다에 가기로 한 적이 있다.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자고 한 적이 있다. 예전부터 가끔씩 누군가 말을 꺼냈지만, 1년 넘게 실행된 적 없는 일, 또는 짓이었다. 새벽 세 시 국밥집에서 나와 두 대의 택시를 타고 대천에 갔다. 도착하니 술은 다 깨고, 우리는 왜 여기에 있나. 무얼 하러 여기까지 왔지. 하지만 초겨울 밤바다는 아름다웠고. 우리는 무언가와 사랑에 빠져있었으므로
해가 뜰 시간이 다되어가고 하늘이 푸릇푸릇해지는데 해가 안뜬다. 여기 근데 서해 아니냐, 누군가 말했던 것 같고. 우리는 해를 보러 해가 지는 곳으로 왔다. 눈에 보이는 건 해가 아니라 낮달이었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고작 그 티끌을 사랑하기로 결정했고. 고작 그날의 나를, 또 너를 사랑하기로 해버렸지.
벌써 한 해도 더 지난 그 일, 그 사랑, 그 티끌같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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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2 새벽
문득 깨달았다.
나 올해는 새해에 기와불사를 안했구나.
15년부터 매년 새해가 되면 용문사에 가서 기와불사를 했다. 불교를 믿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 한 번 하고 나서 일이 잘풀리던게, 그 후로 몇년을 개고생을 하고 살아서 15년도에 미신 믿어보는 셈 용문사에 갔다. 기와불사를 했다. 몇년을 엄마와 싸우고 미루던 대학, 그 해 원하는 데로 갔다.
16년도에도 17년도에도 용문사에 갔다. 무탈했다.
올해, 이거 다 기분이라며. 삼재가 지났으니 무탈한 거라며, 멀고 힘들고 추워. 안갔는데,
살다살다 이렇게 흉한 해가 없다.
마음을 잃고, 신뢰를 잃고, 잠을 잃고, 사람을 잃고, 아버지의 건강을 잃고, 평안한 가정을 잃고.
이쯤되면 여기밖에 기댈 게 없다. 또는, 이것밖에는 원망할 데가 없다.
내년엔 1월 1일에 절대 미루지않고.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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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1 새벽
술 한방울 안 마시고도 운 게 얼마만이지.
현실적인 얘기를 너무 많이해서 무서웠나 무거웠나.
나는 평생 비현실에 또는 형이상에 머물고싶다.
내가 물질이 아닌 사유였으면 좋겠다.
사는게 너무너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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