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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놈위에 안자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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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규칙적이며 자조적인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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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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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탓을 하는 사람은 가야할 길이 먼 사람이고
자신을 탓하는 사람은 반쯤 온 사람이며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도착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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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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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나는 1992년 12월 겨울, 전주예수병원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 평범한 가정들이 그렇듯이 IMF를 견뎌내지 못한 부모 아래 7살 무렵인 1999년 어느 추운 밤(날씨가 추웠는지 정서적인 부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나는 이혼가정의 맡아들이 되었다. 
내향적이지만 음악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호기심 많은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에게, 몇 푼 안되는 월급 절반이상을 술 값으로 탕진했던 무능하고 책임감 없는 아버지라는 인간 때문에 푼돈으로 아등바등 살림을 이어갔던 어머니에게, 아직 말조차 떼지못한 젖먹이 동생에게, 
매우 급진적이고 가혹한 변화였고, 낫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그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아버지라는 인간에게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책임감'을 가졌던 어머니는 핏덩이같은 자식 둘을 키워내기 위해 밤 낮을 고생하여 푼돈을 모아갔다. 당대 전업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나의 어머니는 경력 단절과 여성 임금 차별을 피부로 겪어낸 사람이다.
내 기억에는 어머니는 전북대 영문학과 전공을 살려 스테레오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외국 방송이나 교육 방송을 밤에 자는 우리가 깰까봐 숨죽이고 시청하며 낡아빠진 사전을 뒤적이며 공부하여 낮에 영어 학원 일을 하셨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나날이었을 것이다. 당신의 전남편의 폭력에 미처 회복하지도 못한 여리고 부실한 몸으로 두 아들을 키워내겠다는 일념하나로 견디어 왔을 것이다. 어스룸한 밤이었을까. 집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던 어머니 모습이 가끔 외할머니집에 가면 생각이 난다. 그 무렵 나도 원인모를 병에 오래 앓으며 누워 지냈던 것 같다.
아버지라는 인간은 그 이후에도 술에 잔뜩 취해 우리가 지내는 샛방, 정확히는 자신의 장모, 장인어른이 있는 집에 새벽이 되면 찾아와서는 자는 우리들을 깨우고, 알아들을 수 없는 알콜 중독자 같은 말들을 내뱉으며, 자신의 신세를 탓했다.
매번 당신의 장인과 장모가 겨우내 타일러서 보내고 나면, 악몽같은 밤을 지나 고요한 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고요함이 아까웠는지 나는 할머니가 일어나는 시간인 6~7시에 같이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었다.(기립성 저혈압도 있어서 바로 일어나면 다시 잠깐 기절하곤 했는데.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나의 관심사는 외부보다는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완전히 잠식되지 않게 도와주신 건 할머니 덕분이라는 것을 안다.
중학시절을 지나, 고등학교 1학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여느 때와 같이 머리 꼭대기까지 술에 절여진 당신은 집 현관문을 두드려, 잠귀가 예민한 외할머니를 깨웠고, 꿀물이라도 한 잔 맥여 보내려는 선한 마음을 짓밟기라도 하듯, 우리들을 깨워 역겨운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평소 같았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견뎌냈겠지만, 사춘기가 오고, 불만이 많아진 고등학생인 나는 그 날 따라 차오르는 분노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마 양아치 소굴이었던 전주예고에서의 학교 폭력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 표정이 아니꼬았는지 당신은 빰을 치기 시작했고, 지켜보던 외할머니께서 말리다가 넘어지셨다.
처음으로 이성의 끊이 끊어지는 경험을 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당신은 울고 있고, 작게 이마가 터져 있었다. 내 주먹도 부어 있었고, 밖에는 경찰이 와 있었다. 아마 내 얼굴도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으리라.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른 자식을 패륜아라고 말한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를 심각하게 어그러지는 행동인 '패륜을 저지른 자'를 뜻하는 한���어라고 한다. 좀 더 쉬운말은 '후레자식'이 있다.
그 무렵 나는 이혼가정의 자녀에서 패륜아가 되어 있었다.
훗날 효자동 어느 자그마한 카페에서 당신의 회고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날 밤 당신은 경찰의 연행을 거부하고 귀가 조치되어 효자동에서 중화산동까지 '울면서' 걸어갔다고 했었다. 이미 성인이 된 나에게 연민이라도 바란 건지 뭔지는 의도 따위는 알 생각조차 없지만, 뭔가 가해자 취급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더러웠다. 나는 나의 패륜을 단 한순간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제대로 '패륜'하지 못해서 아쉬울 지경이다.
근데, 사실 나의 정의에서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데(옳아야 한다고 믿는데) 무언가가 가슴에 응어리지는 것처럼, 후련하지는 않다. 더럽게 찝찝하고 복잡한 기분이다. 지금도 그 때의 기억과 감정이 이리도 선명한 것을 보면.
스무살을 넘겨낸 나는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나는 나의 부모와는 반대로 살겠노라고.
그 말이 입밖으로 나와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는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고생조차도 결국 옳은 방향은 아니라고, 아니꼽게만 보는 나는 진짜 패륜아같은 생각을 키워내고 있었다.
만으로 서른이 된 나는 나를 구성하는 병적인 생각들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내향적이지만 음악 감상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꼬마에서 멈춰버린 내 유년기 시절을 '아직도' 원망하고 미워하는 짓은 나의 미련함이고 부질없음이다. 아직도 그 여파에서 허덕이고 있다면 철저하게 나의 잘못이고 나의 책임이다.
나는 당신과 철저히 반대로 살겠다고 결심한 마음가짐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책임감'이다.
근데 웃기게도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의 근본적인 원인도 '책임감'에 있음을 깨닫는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외래 교수의 입사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취업한 더럽게 작고 담배냄새나는 지하 사무실을 거점으로한 거지같은 회사에서 정부 사업 한 번 따보겠다고, 그 의욕만 있고 멍청한 사회초년생을 온갖 더러운 접대 문화에 데리고 다니며, 애가 있고, 피부가 까만 50살은 되보이는 주무관 아줌마한테 잘보이겠다고 옆에 앉히고는 허벅지고 목덜미고 쓰다듬어지는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박차고 나오지 못한 나의 '책임감'으로 말미암아 결국엔 감당하지도 못할 거면서 객기처럼 버티다가 2년도 안된 채 '번아웃'을 겪고, 지독하게 꼬여버린 나의 커리어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책임감이라는 방향성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난 지독히도 인복이 없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다 배움의 과정이었으리라.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이창현'이라는 인성이 부족한 통통하고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던 기억도, 그리고 그녀석이 어머니가 학습지 선생을 하며 가르치던 학생이 이었던 개같은 운명의 장난질도,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조두현'이라�� 사이코패스같은 애새끼한테(조씨는 과학이다) 이가 흔들리고 피가 날 정도로 맞고도 '덩치가 큰' 네가 왜 이기지 못했냐며, 되려 나를 탓했던 담임 선생도,
수업 도중에 내 얼굴이 너무 크다며, 손으로 얼굴을 가려보라며 깔깔 거리며 웃으며 모멸감을 주었던 국어 선생도,
음악 시간에 당신에게 집중하지 않았다며 제 기분대로 폭력을 휘두르던 미친 노인네 선생도,
'장인철'이라는 인간을 겪어내며 밤낮으로 몸이 부셔져라 일하며 학교를 보내셨을 어머니에게 이런 상황을 말하지 않고 미련하게 견뎌내준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고맙게 느껴지게 한다.
이미 한계였을 당신에게 이런 상황을 직면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이미 알았음에도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줌의 원망도 없다. 그냥 파란만장한 어린날의 시절이었을 뿐이다. 그냥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드릴 뿐이다.
다만, 생각해보건대 이런 상황을 견뎌내가며 나의 언어적, 정서적 발달은 좀 늦춰졌던 것 같다.(어쩌면 아직도 온전치 않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외갓집 사촌들은 나를 '경계선 지능 장애' 쯤의 딱한 조카 쯤으로 여겼을것이다. 정서적으로 온전치 못하니, 속마음을 얘기하는 게 잘 안됐었던 것 같다. 감정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틀어 막고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좀 더 늦게 태어난 동생들의 평범한 발달이 두드러져 보였을 것이다.(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이뻐하니 말이다.) 지금은 사람 구실을 겨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만. 우리 집을 제외하곤 결과적으로 크게 어긋난 가족은 없는 것 같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 기적처럼 경찰이 되신 우리 어머니도, 방황했지만 제 살길을 찾은 내 동생도, 이제서야 내 어린날을 객관적으로 받아드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다짐한 나에게도. 이제서야 사람 구실 하는 것처럼 인정해주는 외갓집 사촌들도. 평생 자식 수발들 들고 사셨던 외할머니,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친할머니. 모두 조금은 평안에 이르셨기를. 나만큼이나 지독한 운명의 장난질에 허우적 댔을 작은 아버지, 준혁이, 민혁이형. 모두. 이제는 볕이드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파도와 악연만 있었던 내 인생에도 빛이 들어설 날이 올거라고 믿는다. 오지 않는다면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
이렇게 토해내듯 술회하니 뭔가 후련하기도 하다. 이제는 새로운 것들만 채워야겠다. 나는 내가 겪어낸 파란만장한 인생들을 탓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내 선택은 나의 책임이다. 나의 책임감으로 내 인생을 새롭게 써야겠다.
첫 번째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이 모든 운명의 장난질도 우습게 느껴질만큼 경제적 자유를 획득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경험들을 ��끽해야겠다.
사업을 해야겠다. 사실 냉랭한 현실은 전문학사 무스펙으로 실력이 아무리 뛰어난들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절실히 깨닫는다. 최대한 악랄하게 배우고 내것으로 만들어야겠다. 작년에는 막연했지만 이제는 데드라인을 정해서 닥치는 대로 읽고, 쓰고, 이해하고, 체화하고, 발휘해 내 영향력을 키워야겠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기보다 이뤘을 미래가 기대되서 시작한 일이기에. 이 답답함을 해소할 유일한 방법은, 빛이 드리워진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꿈꾸는 자유를 위해서는 이 길 밖에 없다고 믿어야겠다.
나의 착각은 나에게 용기를 줄 것이고, 그게 나의 정신건강에 유리한 방법임을 안다. 제대로 시작하자. 가지지 못한 나의 과거에 대한 집착은 오늘부로 종결을 선언한다.
2024.1.23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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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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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진짜 회고
2023년이 끝나버리고도 45시간이 흘러가는 중이다. 축하한다. 올해도 염원하는 목표의 근사치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OKR같은 것으로 취급하기엔 달성의 수준이 형편없기에 이건 그냥 의지박약에 게으른 인간의 한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올해는 조금 다를 것인가?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목표 달성에 실패한 부채가 1년만큼 더 쌓였다는 것. 작년보다 이만큼 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한다는 것 정도이다.
스물 둘, 셋 즈음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 붙였던 과거의 내가 계속해서 현재의 나를 푸시한다. 과거보다는 나아야 한다면서. 예컨대 달성 가능한 목표를 이룬 인간이라면 '이만하면 됐다'싶은 너그러움 따위를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런 여유 따위는 없고('그만'하지도 않고), 과거보다 간절하지 못한 자신이 그저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무언가를 더 해야할 것 같고, 지금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닌 것 같은 불안함이 정신의 기저에 끊임 없이 깔려져 있고, 갱신된다. 이젠 깨닫는다. 더 이상 소프트웨어는 수정이 불가하고, 하드웨어만 낡아가는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일단 그럼, 목표란 무엇인가? : 특별한 적 없는 나의 목표는 다소 평범하고 소박하다.
서울 외곽 이층짜리 마당딸린 주택. 벤츠 세단하나, 고급 SUV하나. 대형견 다섯마리. 안정된 자금상황, 직장, 적정한 강도의 스트레스, 요리를 잘하는 아내와 그리고 어쩌면 나의 좋은 점만 잘 이식된 딸 하나.
이런 목표를 금전으로 환산하는 건 의미 없지 싶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제서야 조금 돈의 속성을 조금은 이해하겠는 부분이 있어서다. 돈은 쫓는 것이 아니고 쫓아오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말의 의미는 명시적인 것보다 경험을 통해 깊이 이해하게 되는 속성이다.
돈이 쫓아오게 하는 본질은 어떤 목적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무엇을 이룬 상태도 아닌 조또 이도저도 아닌 상태인데 실행할 일만 남았다. 좌우지간 지능 컨디션이 작년보다는 나은 것 같다. 방법을 알았으니 올해엔 적극적으로 시도하고자 한다.
CPU 성능의 업그레이드는 글러먹었으니, GPU같은 '반복'과 '병행'으로 효율화를 실행할 계획이다. 실제로 난 고교시절보다 IQ가 10정도 낮아져 있는 상태다. (127정도는 공부하기 최적의 지능지수라고 위로중이다)
'표면적인 진부한 목표'도 실행할 계획이다. 서른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내 몸은 지독히도 무너져 있다. 이젠 몸에 둘러진 지방을 제거하고, 목표를 지향하도록 효율적인 피지컬의 컨디션도 만들어볼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유전적인 결함(가족력)으로 지속가능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식하게 하는 것이 아닌, 효율성을 극대화한 상태에서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움직여본다. 마치 '경보'처럼 빠르진 않아도 전력 질주하는 저 새끼보다 결국엔 더 멀리가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인생은 마라톤 같은 것이 아닌가)끈질김으로 앞질러내보자.
예측컨대 내년에도 나는 실패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딱 1년 만큼 실패의 정도가 줄어들어 있길, 목표의 근사치에도 다가가지 못했지만 오늘 내가 느끼는 패배감보다 성취감의 비율이 더 높아져 있길, 어쨌거나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길 바란다. 결국 결승선에 도달한 인간은 나다. 덤벼라 세상아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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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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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아무말이나 적는다.
2023.1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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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망을 가진자는 침묵해야한다. 완전한 정신의 침묵 속에서 아주 작은 변화들을 감지해야한다.
가능한 최대한 정신을 맑고 또렷하게 유지해야한다. 아주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를 유지해야하고, 이 상태를 자주, 오래 유지하며 쇠약해지거나 미치지 않도록 훈련을 통해 수월해져야 한다. 수월해진다는 것은 에너지 사용의 효율화를 의미한다. 체화(體化)하는 것과 같다.
이 상태에 유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회의 불문율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더 깊은 차원에서 작동 원리들을 파해(破解)하여 복잡성, 불합리성, 역설 등을 자연현상 취급하는 것이 아닌, 도구적 차원에서 예측하고 이용할 수 있게된다. '케이스'가 많아질 수록 라이브러리는 풍부해질 것이다.
또한, '예측'은 측정 가능한 정도(Scope)를 의미한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관리 가능한 형태를 가진다. 기(氣)와 운(運)같은 통제 범위가 벗어난 차원의 것을 나의 의도된 디자인에서 기능 하도록 해야한다.
다만, 나의 타고난 특성의 취약점을 보완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난 통제형 인간이다.(좆같은 MBTI의 J형 같은 것이다.) ‘통제형'의 취약점은 대개 통제범위를 벗어 났을 때의 불안함에서 기인한다. 불안함은 예측 가능성이 낮은 상태이다. 평범한 인간은 규칙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카오스'를 두려워한다. 이런 측면에서 통제는 예측가능성, 즉 시스템과 같은 '코스모스'에 가까운 형태다.
통제의 가장 저차원적 형태는 강제성을 가진다. 강제성은 시스템적 제약 특성을 기반으로 단기적 변화를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론 실패 범위에 있다. 통제의 고도화를 위해선 인식 범위보다 기저의 원리들을 이용해야 하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고차원적 통제는 세뇌에 가깝다.
나의 열망 실행의 첫 번째 조건은 경제적 자유다. 지독히도 평범하다 못해 부족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스스로 부를 일구는 방법을 공부하고 실행해야한다. 초기 자본 없이 이익을 내는 방식인 부스트래핑 기술에 대해 요금 관심을 두고 있다.('파워블로그'따위의 기술이 아니다.)
여하튼 부와 관련된 서적들의 핵심은 '내가 나를 위해 쓰지 못하는 시간에(예컨대 잠을 자는 시간과 같은 쉬는 시간에)누군가가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다. 내가 고용한 직원의 시간적 자원을 쓰게하는 '사업'은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 중 하나다. 시간은 누구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작은 투자를 통해 나에게 쏟게하여 '격차'를 만들어 낸다. 결국 자본의 형태로 환산가능하지만, <마시멜로우 실험>과 같이 대개의 노동자 계급은 눈 앞에 놓인 진통제같은 이익만을 추구할 뿐이다.
격차의 증거는 가장 피상적이고 가시적인 '부(富)'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결과 값'으로 목도 해왔을 뿐, 그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는 지, 카오스에서 자신만의 코스모스를 어떻게 빌드업했고, 어떤 것들을 누리고 있는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소위, 자수성가형 자본가들이 놀랍게도 전부 똑같은 소릴한다.
"꿈을 향해 달려가다보면, '돈'은 자연히 따라온다."
이들을 마냥 아니 꼽게 볼 일이 아니다. 심지어 이런 말을 하는 자본가는 꽤 '진짜' 일 확률이 높다고 본다. 그 말의 속 뜻을 이해한다면, 즉 이해할 수 있는 '지능 수준'을 가진 사람이자,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지능 지수'를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우상향하는 '성장형 태도를 갖춘 인간'이라면, 언젠가 깨닫는 시기에 도달하게 될테니. 언젠가 그 계층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은혜로 여긴 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갚고자 할 것임에, 그들은 그 순간에도 말로서 투자하면서도 비법을 알려주는 샘이다.
고용인(雇傭人)의 입장에서는 격차를 만들기 쉽지 않다. 여가와 유흥을 포기하고 과로로 벌린 차이는 사사롭고, 지속하기 어렵다.(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한 격차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때때로 의지가 강한 자들이 미련하리 만큼 스스로를 밀어 붙여, 어떤 '성과'를 이뤄내기도 하지만, 대개 그런 인간들의 삶의 형태는 거칠고 투박하여 수명이 짧아, 한계가 존재한다.
고용주 관점에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기술은 가장 비싸게 구매하는 기술이 아닐까한다. 자본가들이 자본을 유지하거나 더 큰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자신에게 쓰이게끔 이용해야 하는데, 여러 사람들을 1:N으로 상대하기는 것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고, 자신과 Alignment된 소수에 기술자에게 투자하는 것이 ROI가 좋기 때문이다. 보통 조직의 형태에서는 '장'의 형태로 나타난다. 핵심은 그것이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수단과 같다. 형태적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영향 미치는 기술'의 대표적 사례 중엔 '종교'가 있다. 종교는 약(medicament)에 가깝다. 정도에 차이에 따라 마약의 형질을 띄기도 한다. 그들의 교리는 질병에 대한 공포로 쓰여져 있고, 종교라는 약을 구매하게 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사이비가 판을 치는 이유는 그들은 전환율이 높은 고객 세그먼트라는 것이 검증됐기 때문이다. (마치 기독교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신천지처럼.)대부분 지능 지수가 낮고(경계성 지능 장애와 같이), 사회적으로 사각지대에 몰리는 사람들이기에 우울과 같은 정신적 질환에 노출되기 쉬운 약자가 많다.
사이비는 이미테이션 상품을 이용하는 형태에 가깝고, 공식 종교라 일컫는 현대적 국교들은 소상공인을 궤멸하는 대기업의 횡포같은 것이다. 종교적 자유는 기호 제품을 이용하려는 소비자의 자유 권리 같은 캠페인이다. 이익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지 않은가? ‘이익’을 정의하는 기준이 다를 뿐. DNA를 퍼뜨리는 행위도 유전적 형질의 개선이라는 관점에서 이익일 것이고, 꽤 본질적인 메커니즘이라는 점을 시사하지 않나.는 시벌 자빠져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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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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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1(토)
"코로나가 휩쓸고 간 자리에 아직도 여행업을 지키고 있는자들은 기민하진 못한자들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다시 여행을 할 것이라고 믿는 낭만주의자라고 보는 것도 맞을 것이다."
..라고 언젠가 메모장이 적어두었다. 서울에 다시 '상경'해, 강남으로 이직한지도 벌써 10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겨우 경영진의 신뢰를 얻어내 팀을 만들고, MVP 수준이지만 신규 제품도 두 개나 출시했다. 아직 '본 게임'에 돌입하진 않았지만 새롭게 꾸려진 팀원들과 합을 맞춰보는 시간으로써는 아주 적절했던 것 같다.
마지막 출시한 서비스는 일종의 '고객 온보딩 서비스'인데 기존에 쌓여진 콘텐츠가 엄청나게 많진 않았지만 고객 유형을 여러개로 구분해 제공중인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안해주는 측면에서는 경우의 수가 적진 않았고, 낡고 허접한 레거시 코드에서 모던스택으로 전환하는 환경 세팅까지 진행했기에 예측키 어려운 변수가 곳곳에 도사리는 만만치 않은 작업임에는 틀림 없었다고 회고한다.
무엇보다 으레 스타트업이라는 것의 생애가 그렇듯, 주어진 시간 자체가 촉박한 것이 가장 컸다. 이 조직도 예외는 아니었고, 타협 불가능한 시스템적인 제약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큰 이슈 없이, 무난하게 해냈다.
그래서 그런지 다음에 진행할 제품에 대해서도 얼른 해보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묘한 기분'을 느꼈다.(여기에도 많은 서사가 있다. 나중에 천천히 다루겠다)비로소 팀원에게 'PO'로서 인정 받은 느낌이랄까. 이런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비로소 상호 신뢰(rapport)를 만들어낸 것 같다.(-중간에 이탈자가 있었으나, 관계적인 문제가 아닌, 원래 가고싶은 회사가 있어 응원해주기로 했다. 요즘도 이직한 그 팀원과 슬랙 채널을 따로 만들어 소통하고 있을 만큼, 짧은 시간만에 만들어진 우리들의 케미는 괜찮은 것이었다. 여하튼-) 제대로 갖춰진 '복합 기능 조직(Cross-funtional, 여기서는 '스쿼드'라고 부른다)'을 이끈 입장에서도 분명 성취감이 있다.
'스쿼드'를 넓게 확장해보면 하나의 '사업체'를 이끈 것과 같으니, 이직 후 10개월만에 한 발자국 뗀 기분이 든다.
성장하지 못하는 조직에서 고여서 썩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4년에 가까운 시간을 단숨에 접고 이직한 내게, 약 10개월만의 소기의 성과를 거둬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당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시기에 혼자 회사에 나와 주말 새벽까지 작업을 하곤 했다. 당시에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는 시기였다. 새벽에 사망자수가 늘어가는 걸 뉴스로 접하며, 교차하는 여러 감정을 눌러가며 꾸역꾸역 포트폴리오 작업을 마무리했었다.
서두에 '아직도 여행업을 하는 자들은 낭만주의자다’라고 메모장에 끄적인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복합적이지만 대체로 제주도에 대한 그리움인 것 같다. 이전 회사가 그리운 것은 아니고, 정확히는 제주도에서의 경험. 희수를 만나기전에 약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독서하고 런닝하며 견뎌낸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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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조선으로부터 유배지로 쓰였던 '탐라국', 즉 제주도라는 섬은 '섬'이라는 독립된 성격이 주는 '특수성'이 존재한다.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가듯, 타지에서 내려와 ‘살아 본 자’들만 아는, 관광지가 아닌 유배지라는 성격에 가까운 특별함이 있다. 일상의 스트레스가 가득한 도심과는 다른, 마치 '제3의 공간'처럼 한국이지만 이질적인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그 기분을 표현하자면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외국에 아주 멀리나와, 조금 쓸쓸하지만 그것은 그대로 마냥 나쁘지 않은 설렘’같은 것이다. ‘홀로하는 여행’과도 같은 체험을 매일, 매주 만끽한 것이다.
물론 내가 지냈던 지역은 제주도라해도 '신시가지' 격인 번화가 였다. 그렇지만 모두가 자고 있을 어스름한 새벽에 운동복을 갖추고 나와, 바닷가 근처까지 쉴새 없이 뛰면, 무척이나 조용하지만 눈부시게 동이트는 그 찰나, 어둡고 푸르스름한 새벽을 주황 빛으로 하늘과 바다를 천천히 물들이는 순간을 목도하게 된다. 그것은 너무도 황홀한 것이어서, 지독히도 엉망 조직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지탱하게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거의 매일 10km이상을 그 순간에 좀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에 무아지경으로 달렸다.
되돌아보면 당시 런닝에 BPM높은 '헬스장'같은 노래가 아니라, 가사 없는 배경음악을 '깔았다'. 마치 네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의 타임 슬립같은 기법을 통해 연출할 때에나 쓰일 법한 음악을 그 순간에 페어링해, 신비로운 영화를 감상하듯 영화적 체험을 스스로 '연출’하곤 했다. 중2병의 발전된 형태랄까.
맛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사람들과 스노클링을 하는 등의 오락적인 것들이 아닌, 도시가 깨어나기전의 체험들이 더 선명하고, 또렷하게 기억 남아있다. 그것들로 하여금 지금 여기, 복잡한 도심의 스트레스를 견디도록 해주는 것 같다.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처럼, 그 찰나를 온전히 만끽했던 그리움을 추억하며 언제든 그곳에가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같은 것이다. 나는 이따금씩 희수와 제주에서의 은퇴 생활에 대해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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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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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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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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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월)
정리되지 않은 머리는 퍼포먼스에도 영향을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평소에 생각을 충분히 정리하고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스스로 세운 목표에 대해서도 자주, 오래, 다각도로 방법을 생각하고 되새길 필요가 있다. 자각하긴 쉽지 않았지만 직접 영향을 주는 것들에 대해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중에 단연 유튜브 이용 시간의 문제다. 여기에 ‘꼬라박는’ 시간이 정도를 넘어섰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iOS 자체 앱 사용 내역 통계를 통해 일평균 8시간 이상 할애하고 있는(물론 주로 자는 시간에 ASMR을 듣기 때문에 집계되는 것이겠지만)부분은 인지하고 있었으나 고쳐야 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정확히는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거늘 표면적으로는 알지만 ‘자각’하고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아무튼 간에 이번에 매달 결제되던 11,000원의 프리미엄 구독도 취소하고 앱을 지워버렸다. 광고가 있은 유튜브는 티비와 다른게 뭔가. 그러고 나니 세삼 일상 곳곳에 유튜브를 보던 습관이 얼마나 빈번하던지 를 알게됐다. 뭐든 갑자기 중단하게되면 부작용을 수반하기 마련인가보다.
결과적으로 휴대폰을 키고 할 게 없어서 멍 때리는 시간이 생겨난다. 무의식에서 의식의 단계로 뎁스가 넘어왔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나로썬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이를테면 평소 습관중에 아티클 검색 후 나중에 읽을 목적으로 카톡의 ‘나에게'보내 놓는다. 혹은 사파리 브라우저를 여러개 켜놓고 임시적인 북마크 처럼 활용하려고‘만’한다. 실제로 다시 글을 보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지독히도 게을렀다.
유튜브 같은 앱서비스에 인지 에너지를 끊임없이 뺏기다보니, 의식적 행위로 나아갈 수 조차 없던 것. 이제는 자의반 타의반 '지독하게 할 짓이 없으니'(특히, 똥 쌀 때)검색한 글을 모조리 읽게되는 중이다.
숨 쉬듯이 텍스트를 흡수하고 친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유튜브 쇼츠'를 통해 봤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쨌건 실행을 했고, 지속 중이고, 순항 중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좋은 점만 있는 것이라기엔 모호한 부분도 존재한다. 결정적으로 Input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나의 고질적인 성향인 자아와 더 자주 만나고 있다. 자격지심, 열등감 같은 자기혐오적 성향은 고쳐지지 않을(결과적으로 노력형 인간이 되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측면에서 고쳐야 할 문제인가 싶지만)것으로 보인다. 근래 다시, 천천히 독서를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사고 싶은 책들이 쌓여가고 있지만 사둔 것부터 읽어야겠다. 소비도 좀 줄이고.
매주 일요일마다 등산을 하고 있다(고 하기엔 고작 2주차) 그동안 워낙 '다운 그레이드'되어 있어서 그런지 하고나서 기운이 좀 더 나는 기분이 든다. 비로소 돼지에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운동은 평생에 걸쳐 해야하는가보다. 호르몬의 문제인지 '남성 노화형 비만'으로 변하는 것이 조금씩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거기까지는 가지말자. 슬림하고 건강한 몸매는 자존감을 올려주며 결과적으로 좋은 정신을 고양하고, 표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 더 좋은 경쟁력을 가지게 한다는 것은 일찍이 느꼈던 사실이다.
매너리즘이 심각한 것 같다. 일이 재미가 없다. 원인은 분명히 자각하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꿈을 꾸고 싶다. 멋진 사람들과 멋진 장소에서 위대한 일을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지 못한 현실, 내 능력은 너무 쉽게 나를 디프레스 시킨다. 정신의 어느 구석에서 도전하지 않는 쫄보 자아의 지분이 커져가는 느낌이다. 겨우 이정도 왔다고, 잃을게 많은 것도 아니면서 안정을 추구하고 보수적인 면이 드러나는 스스로의 모습을 종종 목도한다.
좋은 조직에 소속되어 위대한 일을 하고 싶다. 그러기엔 내가 먼저 그러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학벌의 장벽을 이제와서 개선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내가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공부 등)을 제대로 정리하고 목표를 위해 세세하고 현실적인 마일스톤을 다시 세워보고자 한다. 작은 성공들을 모아서 큰 임팩트를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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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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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휴 준비물: 담배, 책, 커피, 장거리 운전할 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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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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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8(수)
전주에 왔다. 구정 전에 할일이 산더미 같지만 좀 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모처럼 쉬는 기간-기껏해야 보름 남짓이지만-동안 어머니와 동생,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뵐 수 있을 듯하여. 희수와 부지런히 제주집의 흔적들을 비워냈다. 함께 동거한지 6개월만의 일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토록 다채로운 감정을 느껴본 게 얼마만인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더 잘해주자. 더 사랑해줘야겠다.
가족들을 보면 편안함보다는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지독한 우울과 응어리, 외로움, 고독함과 같은 심연 속 감정들이 느껴진다. 매년 돌아오는 구정을 맞이해 기분 좋게 선물을 준다거나 용돈을 내줄 상황도 아닌터라 -이사로 거의 전재산을 투자했기 때문-이따금 나는 한국의 장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이야기 하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해 본 경험은 극히 드물다. 핑곗거리에 불과하다.
이제는 몇 남지 않은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도 그들만의 생활이 있지만 반갑고 즐거운 감정은 표면적이고 지독히도 모난 내 자격지심이 나를 괴롭힌다. 나도 그들처럼 누군가가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벌고, 성공가도를 달린다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미래다.
2023년 1월. 서른 두 살의 나는 어디쯤 있는 걸까. 아직도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나는 왜 존재하는 걸까. 알베르가 평생을 헤매며 답을 찾았던,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나 따위가 감히 정의하진 못하겠다. 그저 답을 내릴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나만의 가설을 검증하는 실험체로 성실한 검증 도구가 되어보자는 생각이다.
삶의 중간 즈음.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매우 희박한 확률 결과값에 의미보다 우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각해야한다. 단지 목적지향적으로 삶이라는 찰나의 사소한 사건 사고를 받아드리고 정의해가는 과정에 참가할 뿐이다. 좀 더 드라이하게 비판적인 사고와 사실을 정의하고 액션 아이템을 선정해 수행하자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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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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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4(목)
#1 마이루틴 텀블러 글 작성 주기가 엉망이 됐다. 실행 가능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데, 계획을 위한 계획만 세우다 계획으로 끝나버릴 것 같다는 생각. 적절한 루틴 훈련을 위해 ‘마이루틴'이라는 앱을 설치했고 당장 내일부터 이 앱이 시키는대로 착실하게 움직여 볼 생각이다.
#2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s) 2020년도에 서울 오피스에서 플랫폼 버전 업에 관해 회사에서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네트워크 효과에 대해 겉핥기 수준으로 공부 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이 쪽 바닥 비즈니스를 논할 때나 가끔 언급하는 수준인데 최근 재밌게 읽고 있는 김창준 대표의 <함께 자라기: 애자일로 가는길>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를 비즈니스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의 지식간에도 네트워크 효과를 적용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책에는 직접적으로 ‘네트워크 효과'라고 키워드 자체를 언급하진 않는다.)
1, 자라기, 39p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을 활용하라.’ 中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을 하이퍼링크로 서로 촘촘히 연결하라. 노드 간 이동 속도가 빨라질 수 있도록 고속도로를 놔라. 즉, 이미 습득한 지식, 기술, 경험 등을 서로 연결 지어서 시너지 효과가 나게 하고 하나의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왔다갔다하는 것을 자주 해서 다른 영역 간을 넘다들기 수월해지도록 하라.”
사실 네트워크 효과라는 것을 개인의 지식에 적용하는 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닐지도 모른다. 최재전 교수가 일전에 <통섭>이라는 책에서 이와 같은 융합의 개념을 언급한 바 있고,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배우면서 ‘다학문적 관점(Interdisciplinary view)'이라는 개념도 익히 들어봤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Mix’자체가 아니고 ‘Mix’의 메커니즘과 알고리즘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데에 있다. ‘하나(노드)의 영역에서 다른 하나의 영역(노드)로 이동을 자주하고 수월하게(빠르게)한다’는 점이 네트워크 효과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나 다름 없고, 앞서 언급한 ‘통섭’과 같이 융합적 사고의 중요성은 알았지만 작동 원리(메커니즘)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훈련법을 제시한 사례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주의 : 작성자의 밑도 끝도 없이 얇고 허접한 독서량을 기준으로 합니다.)  #3 이직 준비가 거의 막바지에 달하고 있다. 총 지원 회사는 5곳 중(2개 회사에서 오퍼가 왔고), 프로필 오픈 후 약 17개 정도 회사에서 오퍼를 받았다. 개중에는 꽤 비즈니스가 궤도에 올라온 기업들도 있어서 나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은 하지만 큰 기업은 역시 진행이 너무 느리다. 빨리 답변을 달라. 답변 받고 회사를 후다닥 접고. 서울 집을 보러다녀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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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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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2022.11.12(토)
대표의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비전이 흥미로웠을 때가 있었다. 인맥과 여건, 타이밍 등 그만하면 가능성을 갖췄다고 여겼었다. 바야흐로 시간이 흐르고 회사의 덩치가 커졌다. 규모에 맞는 체계를 갖추고 일종의 적응기를 가져도 모자랄 판국에 과거보다 효율이 안난다며 투정이다. 모든 게 바뀌었지만 당신만 그대로다. 여전히 사람을 자원 취급하지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역설적인 태도가 결국 발목을 붙잡은 격이다.
체계. 비즈니스는 불완전한 생태계에서 통제 가능한 범위의 자동화된 체계,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길이다. 하지만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맨파워’를 운운하는 것은 동네 마트에서나 통할 법한 논리다. 그건 우리가 꿈꿔온 파랑새, ‘스타트업’이 아니란 소리다.
이 조직에서 스타트업이라는 말은 ‘혁신적 비즈니스의 대명사’가 아니고 일종의 핑계 거리로 전락 했을 뿐이다. 비즈니스의 시기가 늦어졌을 뿐,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그건 오래된 기업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과거가 그리운가. 뭐하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인수인계 따윈 존재치 않는 도제식 회사로 회귀하길 원하는가? 안타깝지만 한 번 커진 규모는 사람만 쳐낸다고 관리 비용이 줄지 않는다. 특히나 기술과 인프라는 그런 식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치명적인 폐착이다.
매출 같은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 내실을 다져야 한다. 거시경제니 무어니 무지개같은 환상만 쫓지 말고, 미시적 맥락을 짚어내도록 사람에 대해서도 공부하셔라. 고객에 집착하라며, 왜 사람에 관해선 본인의 비논리적인 판단만이 기준이 되는가. 애당초 당신은 지표를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나의 폐착이다.
인간은 이리도 불완전하고 불합리할진대, 당신은 그저 자본적인 가치 판단만이 전부인 흑백 논리의 전형처럼 보인다. 사업의 태동 단계에서는 그게 조직의 복잡도가 낮고, 의견 개진보다 당신과 얼라인먼트를 맞추는 작업이 양적으로 적었을 뿐 그건 통한 것이 아니다.
종국에 일어난 문제는 응당 당신에게 무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얼마든지 잘못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다. 이 불문율에서 예외인 자가 어딨겠는가. 결국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방법이 달랐다면 모두가 그렇게 이해할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떠난다면 회사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옳지 않���서다. 비겁하고 폼이 없다.
이제 와서 보니 새삼 볼품 없고 안쓰럽다. 깊이는 없고 트렌드만 쫓으며 여유따위 찾을 수 없는 억척스러움과 거기서 오는 불편함. 그걸 당연시하는 풍토를 만드는 장본인. 편협한 사고방식. 지독한 스테레오 타입. 오래 일한 사람들만 믿는 제주 특유의 괸당 문화에, ‘꼰대’될까 두려워 품위 마져 잃은 리더십까지. 작금의 현실을 깨달은 지금.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특정 한 사람에게 줬던 지나친 애정처럼, 그 애정으로 말미암아 정치가 생겨났다. 차별적 대우 방식은 공정성과 형평성을 의심하게 한다. 공정한 싸움이 아닌데 어느 누가 正道를 가겠는가. 그건 천치나 할 짓이다. 그저 어설픈 권모술수가 난무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제를 반복하는 정황들이 보여, 나도 이제 포기할까 한다. 당신과 궤를 같이 하던 사람이 그리운 것인지, 당신이 만들어 놓은 클론들은 참으로 각별하다. 언젠가 그랬다. ‘대표니까 정치해도 된다’며. 그땐 그게 농담인 줄 알았다.
‘농담’. 이 조직에는 재밌는 농담이 하나 있다. ‘우리 회사가 발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제주 사람에게 리더 책무를 맡기지 않아서다.’라는 제주를 본거지로 한 조직의 혹독한 현실을 조소하는 농담. 여기엔 무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대표가 제주인이라는 사실!
횡령과 배임으로 점철된 최악의 인사에 뒤이어 상황을 틈타 이곳저곳 활개치고 다니는 기회주의자까지 희망을 놓지 않던 사람마저 끝내 포기하게 만들 목적이라면 축하드린다. 성공하셨다. 부디 현실을 직시하셔라. 현실 없는 이상은 공허하고, 이상 없는 현실은 맹목적인 법이다. 언젠가 中道를 가는 리더가 되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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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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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14 Wed
추석 연휴라 금요일에 못 썼다. 그래서 쓴다.
이직 준비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준비부터 취업까지 기간은 3개월 정도로 예상한다. (사실.. 2개월만에 모든 이직 준비를 마치고 1개월은 제주에서 여유롭게 쉬고 싶다..피곤해...)여하튼 제주 생활 2년여만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해이해졌다. 뭐 이런 같잖은 이유로 이직을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39개월간의 누적된 불만이나 크고 작은 조직의 위기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앞으로 겪을 리크루팅에서 나를 설명하기 위한 충분한 명분과 당위성을 가지지 못할 것 같기도 해서, 몇 가지 정리해본다.
1. 몰입이 어려워 성장하기 힘든 환경이다. 개인적(정서적), 업무적(커리어)인 ‘성장’은 직장 생활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다. (정서적 성장과 업무적인 성장은 소프트 스킬과 하드 스킬의 숙련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데 이는 나중에 공부하며 다뤄볼 생각이다.) 잦은 조직 개편은 빠른 스타트업의 생리라지만, 벌써 다섯번의 포지션 변경(기획 직군이긴 하지만)에 또 한 번의 포지션 변경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몰입하기 상당히 힘들다. “어차피 바뀔 건데, 좀 대충하자"는 나를 은연중에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나중에서야 이게 이번에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2. 조직이 불안정하다. 서두에 언급한 ‘지속되는 회사 위기'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순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물론 처음 ‘위기’를 마주했을 땐, 환경적인(펜데믹, 날씨 같은.)이유로 외부 탓을 하는 분위기였다. 나도 그랬고. 하지만 비슷한 환경과 조건에서 동일한 문제가 또 수면위로 떠오른다면 반복되는 문제라는 진단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느껴왔지만 외면했던 것 같다.)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엔 사람. 대표. 오너. 이 사람은 또 새사람을 투입해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겠지. 재발 위험은 언제든지 도사릴 것이고. 근본적인 해결 보다는 관성적으로 무마시키려는 게 보인다. 이 조직은 반복되는 위기에 점점 더 갈피를 잃을 것이다. 또, 바뀌지 않을 것이고.
3.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신규 사업에만 지속적으로 배치된다. 정작 메인이되는 도메인이나 중요 캐시카우 사업에서 기량을 펼칠 기회보다는 모두가 꺼려하거나 어려워(반대하거나 가능성이 전무한, 대표의 고집..)하는 일에 투입되어 조직적인 협조보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상황에만 계속 놓여진다. 물론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기회를 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투입되는 노동력 대비 급여 인상율과 조직 내 획득하는 지위같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소모적이고 도구적인 이용이라는 결론이다. (차암~ 일찍도 깨닫는다. 시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경험해보니 그렇다. 혼자 일하는 자리는 ‘린(Lean)’한 실행력과 잡다한 능력(?)이 늘 순 있지만 결과적으로 조직적인 문제로부터 기인 됐던 것이고, 도리어 기획자에게 생명력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리딩 스킬 같은 소프트 스킬은 퇴화된다. 무엇보다 사람이 참 예민해지고 어두워진다. 안그래도 인류애가 바닥을 기는 성격인데 말이다. 여담이지만 MBTI 앞자리도 ‘E’에서 ‘I’로 바뀌었다. 더 늦기전에 방향을 틀어야한다. 보아라. 당신들이 좋아하는 Pivoting이다.
4.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굴지의 Guru들과 이론서에서 이야기 하듯. 어떤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플랫폼'의 지위를 가진 서비스는 결코 시장에 직접 관여하면 안되며, 이는 플랫폼 자체의 본질이 퇴색되는 일이고, 서비스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 경고한다.(그래도 잘되는 사업이 있을 수는 있지만 내가 알기론 ‘직접'관여는 없다.)자세한 이야기는 못하지만, 이 플랫폼은 결국 시장에 손을 댔고 일종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위해 과감한 투자(‘뽕’에 차서)를 결정했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위험 시그널을 무시하다(구성원 모두가 많이들 애썼고 지쳤다.), 결국엔 돌이키기 힘든 실패를 초래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손실은 400억에 육박하는 투자금이 아니라, 플랫폼으로써 획득한 지위, 공정한 시장이라는 ‘신뢰 자본’을 잃게 됐다는 것이다. 이 다음 수순은 불보듯 뻔하다. 당장 눈 앞의 투자금 손실에만 발만 동동 구르지만 나는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 자본이 무너지는 것이 보여 참담할 노릇이다. 결정적으로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결정한 ‘대규모 구조조정’의 방식 대해서 공감을 하지 못하겠다. 결과적으로 그것들을 종용한 오너와 관련자들에게도 실망이 매우 크다. 언젠가 이 화살이 내게 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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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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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2 Fri
<열정은 쓰레기다, How to Fail at Almost Everything and Still Win Big: Kind of the Story of My Life> Scott Adams * 최근엔 <The System>이라는 제목으로 재발간
185p 뇌를 [깨끗이 포멧해라] > ‘광기'中
대부분의 집단에서 미친 사람은 배척당한다. 아무도 미친 사람이 열 받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미친 사람들이 자기 식대로 하게 놔두는 것이 더 똑똑하고 쉬운 대처법이다.
미친 사람들은 익히 알려진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더 자신 있게 행동한다. 광기와 자신감이라는 강력한 조합은 다른 성격들이 조합됐을 때보다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훌륭한 설득의 기술이 될 수 있다. 컬트는 광기가 리더십으로 여겨지는 좋은 예다.
물론 진짜 미치라는 것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정서적인 유형의 광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협상에 나서야 한다면 절대로 합리적으로 행동 하지 마라. 합리적인 사람들은 대개 비합리적인 사람들에게 굴복한다. 굴복이 최소 저항선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협상에서 가짜 광기가 통하는 방식을 알아보자. 객관적으로보기에 합리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그러나 더 큰 어떤 가치를 거래에 끼워 넣을 수 있다. 크리스마스 전에 거래를 끝내고 가족들과 휴일을 같이 보내고 싶다면 상대방에게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라. 정서적인 차원을 결부시킬 때, 상대방은 그런 당신을 설득시킬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므로 당신의 논리를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되는 일종의 정서적 담요를 둘러싸라. 
때로는 약간의 비합리적인 광기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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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cin-on-u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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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31 Fri
부정적인 생각은 반복할 수록 심화되고, 고도화되어 복잡성(Complexity)을 가진다.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 zusehn, daß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Friedrich Wilhelm Nietzsche
우울한 정도(程度)는 깊이가 아닌 빈도다. 잉크가 물에 스며 드는 것처럼 서서히 혼탁해지는 것이다. 그런 탓에 일상에 묻어나는 우울은 자각하기 쉽지 않다. 그저 어느 날, 날 선 생각과 파괴적인 행동에 스스로 피를 본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울에 혼탁해진 마음처럼 ‘오염’이 된 후엔 ‘정화’까진 못해도 ‘희석’하려면 굉장한 시간과 돈, 감정,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수 많은 희생이 수반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럴 만한 경제적, 정서적 여유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자각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문제 발견(인식)단계에 좀 처럼 진입하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아는 그저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된다. 악(惡)의 평범성처럼, 우울한 정도가 상향 평준화된 사회인의 세계에 속해지는 것이다. ‘평범’해진 우린 페르소나(가면)를 만들고 전용 필터를 만들어 생활을 영위한다. 문제는 정수기 필터도 분기별로 점검하고 바꿔줘야 하지만 이 전용 필터 교체 주기는 명기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쓴다. 자조적이고 구차하지만 회고하는 시간조차 쪼개쓰지 못하는 나 자신을 위해 지금의 상태, 한주간의 정신 상태를 날 것 그대로의 텍스트를 통해 점검하기 위한 일종의 ‘셀프 멘털리티 메디컬 체크’ 목적의 일기. 생각. 읽은 것 클리핑 등. 아무쪼록 실마리를 잡기 위한 흔적을 기록한다. 매주 금요일.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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