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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aking League of Legends
오늘 Hwang Gyo Lee와 함께 롤(League of Legends) 이야기를 하다가, "새로운 챔피언이 나오면 항상 버그 체크를 하는 것 같다"라는 안건으로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안재현 = 잉여인간) 제 친구는 골수 롤 마니아이기 때문에 나보다 롤을 더 잘 알고 있었고, 더 많은 버그리포팅 패턴을 경험적으로 찾아주었습니다. (이황교 = 롤폐인) 그 결과가 흥미롭고 더 많은 이야기를 여기서 들을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들어 그대로 옮겨봅니다. 이하는 편의성을 위해 평어로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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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이하 황): 오늘 나온지 1달도 채 되지 않은 챔피언 "바드"가 버그가 있어서 점검에 들어갔다. 점검 내용은 바드가 있는 주변 타워를 때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 재현(이하 재): 왜 간단한 상속 문제인데 이렇게 버그 수정이 많은 것일까? 어차피 사용자의 컴퓨터는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는 채팅 로그들을 그래픽화 해서 보여주는 것이 전부일텐데?
예를들어 챔피언의 경우 champ를 상속받고, 해당하는 스킬이 cc면 cc를 상속받고 스킬에 연결해서 이펙트만 바꾸면 될 일인데 말이지.
- 황: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 것 처럼 보인다. 특히 "렝가"라는 챔피언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렝가의 경우 스킬들이 모여서(스택) 마지막 스킬을 썼을때의 이펙트가 달라지는데, 이 챔피언은 등장한지 엄청 오래됐지만 매번 새로운 챔피언이나 구조물이 추가될 때마다 버그 리포트 챔피언에 노미네이트 된다.
- 재: 그러고 보니 그렇다. 렝가는 스킬 이펙트도 다양하고, 생각해보면 상대방 게임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거나 하는 '상태 변경' 스킬이 문제가 된 적도 많다.
이번 신 챔피언 등장 이전 챔피언이었던 '칼리스타'의 경우 '흡수하기'라는 스킬이 있었고, 패치를 굉장히 많이 했었다. 버그가 우리편이나 상대 편에게 '표준공격 이상'의 행동을 했을 때 뭔가 충돌이 벌어지는 것 아닐까?
- 황: 그런 것으로 보인다. 라이엇 게임즈가 이렇게 커질 줄 몰랐고, 지금 코드도 땜질 코드로 보인다. 그러고보니 예전 챔프였던 라이즈나 케일 같이 타켓 cc나 공격 스킬이 분명한 캐릭터의 경우에는 패치나 버그리포팅이 없다. 역시 상태이상의 문제인 것 같다.
- 재: 만약 타게팅 스킬이 아니라 광역스킬, 또는 상태변경의 문제라면 Priority 문제일 수도 있겠다. 예를들어 q (스킬 단축키)를 쓰고 플래시를 타는 '큐플'의 경우 스킬보다 플래시의 priority가 높으니까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 바드의 것도 결국 바드의 스킬이나 존재 자체가 주변 구조물의 '상태변경'을 시키는 것이고 'priority'의 착오로 상속받은 스킬들이나 패시브가 충돌하는 것일 수 있겠다.
- 황: 결국 디버깅 문제인 것 같다.
- 재: 그렇다면 만약 신 챔프가 나왔을 때 그 챔피언의 스킬 속성이나 패시브를 보고 패치나 버그수정 estimator를 만들면 라이엇 QC팀이 좋아하겠다.
- 황: 노답이다. 우리 또 게임얘기 하고 있다.
- 재: 난 롤 접었지롱
- 황: 끝날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재: 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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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를 바르는 방향
사람들은 머피의 법칙 이라는 것을 너무도 쉽사리 믿는다.
그에 관해 장 클로드 카리에르가 썼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 하고 싶다.
한 남자가 조용히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막 버터를 바른 빵 한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내려다보니 놀랍게도 빵은 버터 바른 쪽을 위로 향한 채 떨어져 있었다. 사내는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흥분한 그는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들려주었고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이런 경우, 대게 버터를 바른 쪽이 바닥으로 떨어져 바닥을 더럽히게 마련이니까.
“자네 보통 사람이 아니군.” 한 친구가 말했다. “그건 분명 신의 계시야.”
소문은 곧 온 마을로 퍼져 일대 토론이 벌어졌다.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버터를 바른 쪽이 바닥에 닿는 게 보통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인근에 사는 마을 어르신을 찾아 그 이야기를 했다.
그는 밤새 기도하고 생각을 거듭한 결과 신으로부터 답을 얻어냈다. 다음 날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어 어르신을 찾아갔다.
“간단하다.”
그가 말했다.
“빵은 떨어져야 할 방향으로 덜어진 것이다. 버터를 반대쪽에 바른 것이지.”
(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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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맞추세요
테오 비에레마는 한마디로 끈질긴 남자였다. 그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내 에이전시 사무실로 오 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편지를 보내왔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와서 강연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무실에서는 내 일정이 꽉 차 있어 곤란하다는 답장으로 일관했다. 솔직히 내 일정이 언제나 빡빡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대중 앞에서 꼭 강연을 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 책과 기사에 다 썼는데, 굳이 강연까지 다닐 필요가 있을까.
어쨌든 테오는 내가 네덜란드의 한 방송국과 촬영 예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촬영을 하러 호텔 로비로 내려왔을 때, 그는 나늘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기소개를 한 후 동행해도 되겠냐고 묻고는 덧붙여 말했다.
“나는 ‘안 된다'는 대답에 무조건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먼저 내가 목표에서 벗어나 그릇된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늘 생각해 보려 하지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하지만, 어떤 길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때는 다른 길을 위해 힘을 아낄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한 마디로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있었다(나 역시 누군가에게 자주 하기도 하고, 듣기도 했던 말이다). 하지만 나는 좀더 외교적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기로 한 것이다.
나는 강연은 무료로 ��겠다. 대신 강연장 입장료가 이 유로(2,460원 2015년 3월 기준)를 넘어서는 안 되고 청중도 이백 명 이상은 안 된다고 말했다.
테오는 동의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을 텐데요.” 나는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어림잡아 비행기표와 호텔 체류비만 강연 수익의 세 배는 넘을 겁니다. 홍보비와 강연장 대여료를 제외하고도.......”
테오가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런 것들은 부수적일 뿐이며, 그는 이 일을 통해 도모하는 바가 따로 있다고.
“이 행사를 주관하려는 건, 인류가 여전히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고 있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싶어서입니다. 그걸 가능케 하는 데 헌신해야 합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십니까?"
“교회를 팝니다."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며 그는 말을 이었다.
“저는 바티칸을 위해 교회 매입자를 찾아주는 일을 합니다. 네덜란드에는 신자 수보다 교회가 더 많지요. 신자 수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죠. 그러다 보니 교회가 팔리는데, 성전이 나이트클럽이나 콘도미니엄, 부티크, 심지어는 섹스숍으로까지 탈바꿈하는 험한 꼴을 보게 된 후로 우리는 매매방식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는 주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교회를 매입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그 용도를 밝혀야 합니다. 대체로 문화센터나 복지시설, 박물관 등의 프로젝트만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게 선생님의 강연이나 제가 기획하는 다른 행사들과 무슨 상관인지 궁금하시겠죠? 요즘 사람들은 통 얼굴을 마주하지를 않습니다. 서로 만나지 않으면 사람은 성숙해질 수 가 없어요.”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그렇습니다. ‘만남'이 필요한 거죠. 제가 오 년 내내 실수했던 게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당신에게 그저 이메일만 보낼게 아니라 제가 피와 살을 가진 존재라는 걸 보여드려야 했는데 말이죠. 한번은 유명 정치인에게서 대답을 기다리다 못해 직접 찾아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뭔가를 원한다면, 먼저 상대와 눈을 맞추십시오.’ 그의 말대로 한 다음부터는 좋은 일만 생겼습니다. 세상의 어떤 소통 방식도 눈을 맞추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나는 당연히 그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덧붙이는 이야기.
강연차 헤어그로 갔을 때 나는 그에게 팔려고 내놓은 교회들을 몇 군데 보여달라고 했다. 화가인 아내가 오래전부터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매주 오백여명의 신자를 수용했다는 성전의 가��을 물었다. 가격은 일 유료였다(일 유로!). 단, 유지비는 천문학적인 단위가 들 수 있다고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코엘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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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것이면 충분하다
한 일본 기자가 질문했다.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 늘 받던 질문이어서 나는 평소대로 대답했다. “조르지 아마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윌리엄 블레이크, 헨리 밀러입니다.” 통역자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헨리 밀러요?” 그러나 그녀는 이내 질문을 던지는 건 자신의 본���이 아님을 깨닫고 통역을 계속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나는 그녀에게 내 대답에 왜 그렇게 놀랐느냐고 물었다. 혹시 헨리 밀러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가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냐고. 어쨌든 그는 내게 거대한 세상을 열어준 사람이고, 그의 작품에는 현대 문학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에너지와 생명력이 담겨 있다.
“헨리 밀러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저도 무척 좋아하는 작가인걸요.” 통역자가 대답했다. “그가 일본 여자와 결혼했던건 아시나요?”
알다 뿐인가. 나는 팬으로서 한 작가와 그의 삶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어하는 게 결코 부끄러운 태도라고 생각지 않는다.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나는 조르지 아마두를 만나겠다는 일념만으로 도서전에 간 적도 있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나고자 마흔여덟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간 적도 있다(그 만남이 제대로 성사되지 못한 건 순전히 내 탓이다. 막상 그를 만나자 얼어붙어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뉴욕에 갔을 때는 존 레넌의 집의 초인종을 누른 적도 있다(건물 경비는 메모를 남기면 전해주겠다고 하면서 존 레넌이 전화를 해줄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심지어 헨리 밀러를 찾아 빅서에 갈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여행 경비를 다 모으기도 전에 밀러는 세상을 떠났다.
“그 여자 이름은 호키지요.” 내가 으스대며 말했다. “도쿄에 헨리 밀러 수채화 미술관이 있다는 것도 알아요.” “오늘 저녁에 그분을 한번 만나보실래요?”
뭐라고! 내가 존경하는 사람과 한때 함께 살았던 사람을 만나고 싶냐고?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불현듯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올 테고, 인터뷰 요청도 무수히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십 년 동안 헨리 밀러와 함께 산 사람이 아닌가. 그런 이가 고작 한 사람의 팬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을까. 하지만 통역자가 된다고 했으니 믿어보자. 일본 사람들은 허튼 소리는 잘 안 하니까.
나는 그날 남은 시간 동안 대답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택시에 오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철로가 머리 바로 위를 가로지르는, 햇볕 들 일이 없을 듯한 어느 골목에 내렸다. 통역자는 낡은 이층의 허름한 바를 가리켰다.
계단을 올라가니 바는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거기 호키 밀러가 있었다.
나는 흥분을 감추기 위해 그녀의 옛 남편에 대한 찬사를 호들갑스레 늘어놓았다. 호키는 작은 박물관으로 꾸며놓은 뒷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방 안에 있는 것은 몇 장의 사진과 서명을 한 수채화 세 점, 헌사가 씌여진 책 한 권이 전부였다.
그녀가 헨리 밀러를 만난 건 로스엔젤레스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던 때였다. 당시 호키는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일본어로 번안된 프랑스 샹송을 불렀고, 그곳에서 저녁을 먹던 밀러가 그녀의 샹송을 마음에 들어했다(그는 파리에서 오랜 기간을 살았다). 두 사람의 외출이 몇 차례 이어진 어느 날, 밀러는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그녀가 그를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우리가 앉아 있는 바에도 피아노가 있었다. 호키는 밀러와의 결혼생활중에 있었던 멋진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나이차로 인한 불화(밀러는 당시 쉰 살이 넘었고, 호키는 스무 살도 채 안된 나이였다)와 함께한 시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저작권을 포함한 전 재산은 밀러와 그의 전처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상속받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한 세월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니까.
나는 오래전 밀러와 처음 만난 그날, 그녀가 부른 샹송을 불러달라고 청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엽>을 불렀다.
통역자와 나 역시 감동했다. 바와 피아노와 노래, 빈 공간에 울리는 일본 여인의 목소리. 호기는 대문호의 미망인이라면 으레 누리려 할 법한 것들에 초연했고, 밀러의 책이 벌어들이는 돈이나 국제적 명성을 이용하려 하지도 않았다.
“유산을 두고 싸우는 건 의미가 없었어요. 사랑으로 충분하니까요.”
헤어지면서, 우리의 속마음을 읽은 듯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믿는다. 그녀에게서는 어떤 비통함도 분노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랬다. 사랑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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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나 열 다섯 살 때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드디어 제가 가야 할 길을 찾았어요. 작가가 될 거에요." "얘야."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듯 말씀했다. "네 아버지처럼 엔지너어가 되는 게 어떻겠니? 아버지는 사리분별이 뛰어나고 세상 보는 눈이 정확하신 분이잖니. 넌 대체 작가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고나 있어?" "책을 쓰는 사람이죠." "책이라면 의사인 아롤두 삼촌도 쓰시잖니, 글을 쓰고 싶으면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하면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어." "어머니, 전 글 쓰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작가가 되고 싶어요." "너 작가를 만나본 적이나 있니? 얼굴이라도 직접 본 적이 있느냐 말이야." "없어요. 사진으로만 봤죠." "그것 봐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작가가 되겠다는 게 말이 되니?"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나는 조사에 나섰다. 내가 1960년대 초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작가는 이런 존재다.
a) 작가는 항상 안경을 걸치고, 절대 머리를 빗는 법이 없다. 늘 화를 내거나 우울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는 술집에서 역시나 헝클어진 머리칼에 안경을 걸친 다른 작가도들과 격론을 벌이는 데 일생을 바친다. 작가는 매우 '심오한'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제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치며, 가장 최근에 출간된 자신의 책을 몹시도 혐오한다. b) 작가는 자기 세대로부터 절대 이해받아서는 안 될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다. 그느 자신이 따분한 시대에 태어났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동새대인들에게서 이해받는 건 천재로 간주될 기회를 송두리째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확신한다. 작가는 자신이 쓴 문장을 끊임없이 다듬고 수정한다. 보통 이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삼천 개 내외인데, 진정한 작가는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제외하고도 사전에는 아직 십팔만 구천 개의 단어들이 남아 있는데다,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잖은가. c) 작가의 말을 이해하는 건 동료 작가들 뿐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남몰래 동료들을 경멸한다.그들은 결국 문학사에 수세기 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는 영광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들이니까. 작가는 '가장 난해한 책'이라는 영예를 안기 위해 동료들과 경쟁한다. 이 싸움에서 승자는 가장 읽기 어령누 책을 쓰는 데 성공한 사람이다. d) 작가라는 사람은 기호학, 인식론, 신구체주의같은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명사에 조예가 깊다 누군가에게 겁을 주고 싶으면 이런 말을 들먹이면 된다. "아인슈타인은 바보야." 혹은 "톨스토이는 부르주아의 광대였어."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아니꼬워하면서도, 그 자리를 뜨자마자 상대성이론은 엉터리이고 톨스토이는 러시아 귀족사회의 옹호자였다고 떠벌리게 될 것이다. e) 작가는 여자를 유혹하고 싶을 때마다 냅킨에 시 한 편을 써서 건네며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작가입니다." 언제나 통하는 방법이다. f) 작가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학비평을 한다. 그는 비평가로서 동료들의 작품에 후한 점수를 준다. 그러나 그가 쓴 평론의 반은 외국 작가의 인용구로, 나머지 반은 '인신론적 단락'이니 '융화된 살의 2차 비전' 같은 표현 따위로 점철되어 있다.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감탄할 것 이다. '참 똑똑한 사람이야!' 하지만 막상 책을 사기는 꺼린다. 인식론적 단락 앞에서 쩔쩔매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g) 작가는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늘 남들이 듣고 보도 못한 제목을 댄다. h) 작가와 그 동료들에게 한결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책은 세상에 단 한 권 뿐이다.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이 작품을 깎아내려는 작나는 없다. 하지만 책 내용을 물으면 횡설수설한다. 정말로 그걸 읽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이 모든 자료로 무장한 뒤, 나는 어머니에게 작가란 무엇인가 조목조목 설명했다. 어머니는 꽤나 놀라신 듯 했다. "차라리 엔지니어가 되는 게 쉽겠구나. 게다가 넌 안경도 안 쓰잖니." 그래도 내 머리칼은 그때부터 이미 부스스했고, 주머니에는 언제나 골루아즈 담배 한 갑이 들어 있었고, 옆구리에는 연극 대본도 한 권 끼워져 있었다. 나는 헤겔을 공부했고, 어떻게든 <율리시스>를 꼭 읽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러부터 얼마 후, 한 록 가수로부터 노랫말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불멸을 추구하는 쪽은 잠시 미뤄두고 다시 평범한 사람의 길로 들어섰다. 그 길은 나를 수 많은 곳으로 이끌었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처럼 신발을 바꾸는 것보다 더 많이 나라를 바꾸게 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내가 직접 겪은 일화와, 다른 사람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 여행하면서 내 삶의 강폭을 눈에 띄게 넓혀준 생각들이다. 이 글들 중 일부는 전세계 신문과 잡지에 개제되었는데, 나를 아끼는 독자들의 요청으로 이렇게 책으로 묶이게 되었다. (파울로 코엘료, <흐르는 강물처럼> 서문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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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바셋, 선물받았던 라떼. 희안하게도 분위기를 이야기하면 스타벅스, 커피맛을 얘기하면 폴 바셋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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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Different. Differentiation-the ability to be seen as new and original-is the most important aspect of Personal Branding
The Brand Calle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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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 is about how we're really feeling- feeling about one another, yes, but also about ourselves
Dataclysm: who we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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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가 원하는대로 그 사람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는 사람도 있겠지. 이 영화는 그런 남/녀에게 던지는 안좋은 물음 같은 영화다.
극중 루비(Ruby, 이름 정말 예쁘지 않나?)는 너무나 아름답고 밝은 인물로 등장한다. 귀여운 눈망울에 빙글빙글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상형이 없더라도 '저런 여자가 내 이상형이지'라는 고정관념을 심어 줄 정도의 강력한 매력을 가진, 그런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연히 등장한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아니라, 주인공이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녀가 '만들어졌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연신 톱니바퀴를 맞추어 나간다. 나는 이 영화가 <About Time>처럼. 레이첼 맥 아담스처럼 사랑스러운. 그런 이야기이길 바랬다. 결국 어두운 나날은 오겠지마는. 결국엔 극복하는. 그런 극복 영화 말이다.
영화는 결국 밝게 끝나나. 어둡게 끝나나. 이것은 스포니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위에서 이미 결론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아닐걸?
이 영화. 이 영화에는
정말 사랑스러운 루비가 등장한다. 지금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가끔은 그 사람이 내 마음대로 행동해줬으면 좋겠고, 정말 가끔은. 내가 바라는 걸 해줬으면 하는. 그런 투정이 있다. 그러나 그녀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면?
아마도 그녀는 더 이상 그녀가 아닐 것이다. 그것이 결국 나를 떠나가는 행동이 될 지라도. 그것은 내가 그녀를 사랑한 수 만가지 이유 중 하나일 뿐. 그녀가 싫어지는 이유가 되진 않을 것이다. 결국 나는 이 세상에 홀로 태어나야 한다. 내가 누군가가 되는 순간, 그건 결국 나의 세상일 뿐이다. 내가 투영된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아직 그녀의 마음을 잘 모르는 상태다. 아마 어딘가(somewhere else)를 헤매고 있는 중이겠지. 만약 기회가 된다면, 그녀와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닌 그 길 위에 있는 나는.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열심히 그녀를 생각하고, 열심히 이 길을 사랑할 밖에 ���다.
언젠가 그녀와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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