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1 2:44pm
'i fell in love with you a little bit more.'
'you are my weak spot.'
'love you, sis.'
'no one sees me like this.'
'i really love you so much.'
몇년전의 일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애를 처음만난 날에 대한 글이 있다. 벌써 8년인가?
어린 날의 그 애가 맞은 편에 앉아있다가 어느새 내 옆으로 와앉아서
뭐지 얘는 하고 어리둥절해하던 기억이 난다.
걔는 한참 술이 취하고 나서도, 친구들이 다 집에 가는데도 남아서
나한테 키스를 하려다가 뒤로 자빠졌다.
웃기고 귀여운 애라고 생각했다.
몇번을 더 같이 놀았다.
친한 언니가 그애의 친형과 만나고 있었다.
친형이 말하기를, 이상하다고 걔가 쟤한테만 어쩔줄을 몰라한다고 했다고 언니가 말해줬다.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났고 잘못된 사랑에 빠졌고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친구네 집에 무작정 찾아가서 친구가 현관문을 열어주자마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거실에서 진인지 럼인지를 병나발째로 들이키다가 손에 잡히는 머그컵을
테이블에 깨고서 손목을 그었다.
친구네 카펫바닥에 내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친구 두명도 질색을 했다.
머리를 비우려고 다른 나라에 한달간 다녀왔다.
괜찮은 척 했지만 사실은 무서웠다.
다들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까, 미친년으로 볼까,
나조차도 내 자신이 싫었다. 나의 밑바닥이 이거구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걔가 왔다.
반갑게 껴안으며 인사를 했다.
걔는 내 이름을 불러댔다. 다들 걔를 쳐다봤다. 놀란 듯이 재밌는 듯이.
얼마 뒤 내 생일이였다.
걔가 생일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그 애의 무리들도 다 대동을 하고서.
난생 처음 받아보는 명품선물이였다.
아무도 나를 불쌍하게 여기거나 무시하지 못했다.
내가 그 애의 sister였기 때문에.
나중에 걔 무리중에 한명에게 듣기로는 자긴 그때 도대체 이해가 안갔다고 했다.
왜 이런 못생긴 애의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자기들이 다 와야했는지.
그 날 걔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걔가 말했다.
'you mean a lot to me. you deserve so much better. okay?'
'don't do anything stupid ever again.'
걔는 모든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를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우리는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몇번 더 보냈다.
한번은 우리집에 다들 놀러와서 딜리버리를 시켜먹었는데
걔가 웃으며 말했다.
자기가 여기있는 남자애들 중에 제일 잘생겼는데 자기가 내 사람인게 웃기다면서.
맞는 말이였다.
그때 있던 애들이 다 커플이였는데
여자애들은 다 모델같이 예뻤고 풀메이크업까지 하고 온 와중에
나는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일어난지라 쌩얼에 안경에 잠옷바람이였다.
그럼에도 다른 남자애들은 아무도 그 여자애들한테
뭐가 먹고 싶은지 묻는 애도 없었다.
오직 걔만이 나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물었고 내것만 음식을 덜어주고
한국어자막이 있는 티비프로를 틀어주려고 찾았다.
나는 그때 내가 카펫에 핏자국을 만들어버린 그 친구의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엔 벽난로가 있었다.
나는 거기에 불피우는걸 좋아했는데
집주인친구는 내가 덤벙대다가 집에 불이라도 피울 것을 염려해
혼자서는 절대 하지말라고 했다.
그래서 걔가 종종 와서 불을 펴주곤 했다.
나는 솔방울이 그렇게 불을 붙이는 용도로 쓰이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걔가 두봉투인지 세봉투인지
한가득 솔방울을 들고왔다.
아마 그 날이 걔가 내가 좋다고 했던 자기 향수도 사다준 날일거다.
집주인친구가 말해주기를,
걔가 그 온라인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어떤 남자한테 솔방울을 샀는데
가진 솔방울을 전부 다 달라고 했다며 푸하하 웃으며 얘기해줬다.
나는 그 날이후로
솔방울만 보면 마음이 따뜻해져버리는 병이 생겼다.
그 애 덕분에 나는 마음을 잘 추스렸지만 이 나라에는 굳이 더 있고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한국에 돌아갔고 일년?정도의 시간이 흐른뒤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하러 놀러왔다.
전에 살던 집주인친구가 자기네나라에 가있느라 집을 비웠는데
우리가 당분간 지내도 괜찮다고 해줬다.
어느날 그 애가 집주인친구 일을 대신 봐주느라 그랬는지 그냥 나를 보려고
그랬는지 자기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다.
내 친구도 그동안 나한테서 무수히 얘기만 듣던 걔를 실제로 보게 됐다.
우리는 다같이 몇번을 어울려 놀았다.
내 친구가 한번은, 니가 왜 쟤를 좋아하는지 알겠다면서,
'내가 너 별명이 ㅇㅇㅇㅇㅇㅇㅇ라고 했어, 디즈니에 나오는 캐릭터라면서.
근데 보통 남자애들은 그런 모르는 얘기 그냥 넘어가잖아. 쟤는 그걸 엄청
귀기울여 듣는거야. 뭔지 알겠다면서. 진짜 닮은거같다면서.'
어느날은 걔의 친구가 내친구를 따라다니면서 집적댔다.
걔 친구는 그때까지만 해도 나를 탐탁치도 않아했고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들었다.
걔한테 가서 너 친구 내친구한테 저러지 못하게 해달라고 하니
걔가 비틀비틀 일어나서 자기친구한테로 가서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걔 친구가 어이없어하자 걔가,
얘는 다른 애들이랑 다르다고. 그러니까 얘 친구한테 그러지말라고 했다.
걔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걔 말은 들었다.
며칠 뒤 내 친구는 한국에 돌아갔고 나는 좀더 남아서 시간을 보냈다.
걔의 세컨하우스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강과 다리가 보이는 야경이 아주 예쁜 아파트였다.
어느날 걔의 친형과 그 형의 친구들이 놀러왔다.
걔의 친형도 나를 탐탁치 않아했다.
자기가 데려온 친구에게,
너는 이 interaction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우리를 비꼬았다.
걔는,
남들이 뭐라던 듣지도 않았다.
그저 내 두손을 꼭 잡고 신경쓰지말라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 자기는 안듣는다고 너도 듣지 말라고,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우리밖에 모른다고 했다.
내가 거의 기절해있었을 즈음,
걔가 걔 친구랑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i'm still in love with this sick cunt.'
걔는 기절해있다가도 내가 감정에 취해 개소리하는걸 들어주려고
정신차리려 애썼다. 나조차도 물었다.
왜 내가 이런 헛소리하는걸 다 들어주느냐고.
'because i fucking care about you.'
어느 날 걔는 없고 걔 친구들하고만 놀고 있었는데
걔의 또다른 친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you guys are crazy.'
'you guys don't know what you guys are doing. you guys' emotions are crazy.'
이 또다른 친구는 오늘날까지도 나랑 거의 매일 연락을 하는 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당시에 사귀던 모델같은 백인여자친구가 이 또다른 친구와 나의 사이를
오해하고 질투해서 헤어지게 되었다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이 또다른 친구와 백인여자친구끼리만의 무슨 유머코드가 있었다는데
여자애들한테 가식적으로 대하면서 자기들끼리 뒤에서 킬킬대는
뭐 그런 이상한 지네만의 그런게 있었다고 한다.
근데 이 또다른 친구가 여자들중에 나한테만 인간적으로 대하고 그래서
그 백인여자친구가 의심을 하고 싸우다가 헤어졌다고
그 또다른 친구가 한동안 나를 엄청 탓했었다.
근데 헤어지길 잘했다고 생각하는게 그년은 샹년이였다.
이 또다른 친구가 얼마나 부유한건지 알아내고 싶어서 서랍을 뒤지곤 했다고 했다.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웃고 울고하는 날들이 있었고 나는 한국에 돌아갔다.
한국에 돌아간 뒤 나는 걔 친구하고 더 연락을 많이 하고 지냈다.
그렇게 나를 탐탁치 않아하던 걔 친구는 나에게 전여친을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새로 데려온 강아지 사진을 매일 보내주기도 하고 그랬다.
걔하고는 거의 연락을 안하고 지냈다.
나는 한동안 다른 나라에서 지냈다.
걔 생일이 되었을 때,
나는 그곳의 한 사원에 가서 향을 피우고 기도를 했다.
걔의 이름이 적힌 금색 팻말을 매달고
그 애가 언제나 안전하기를, 언제나 건강하기를, 언제나 행복하기를 기도했다.
한 쌍의 부적도 받았다.
2020년이 되었고 나는 한번 더 돌아왔다.
그때는 다른 사람과 정착이란걸 해보려고 마음먹고 돌아온 거였다.
걔한테도 얘기했다. 걔는 조금 놀라는 것 같았지만
손가락질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애의 새로 옮긴 세컨하우스에 곧잘 놀러가곤 했다.
가서 걔한테 주려고 가져온 부적도 줬다.
걔는 집에 오는 일이 별로 없었고 주로 걔 친구만 있었지만
걔도 걔 친구도, 내가 놀러오는 것만은 자유롭게 봐주었다.
나는 그 집에 그렇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여자사람이였다.
그 집에 놀러가서 걔 친구가 해주는 요리를 얻어먹고
같이 장도 보고 팝콘을 튀겨서 영화를 보다 잠들기도 하고 그랬다.
여자애들이 놀러오는 날이면 내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렇게 못생긴 애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왜 자기까지 끌려왔는지
이해가 안갔다고 말하던 걔 친구는,
어느날 그 세컨하우스에서 다른 친구들과 다같이 놀던 날,
나를 안좋게 얘기하는 어떤 애를 붙잡고서
'bro, listen. i know what you mean. i used to think that way, too.
but this bitch is the best bitch in (우리지역).'
라고 말했다.
'she knows about what's going on and everything but doesn't say anything and holds it back. i really respect that.'
왜 걔 친구의 나를 향한 태도가 점차 변했는지 이해가 됐다.
걔와 걔 친구들이 하는 얘기들은 주로
남들이 들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였는데
나는 그런 것에 대해 입밖으로 얘기하지 않았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런 것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라 나는 그 애 자체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말을 아꼈다.
나는 그 애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걔와 걔 주변사람들은 무슨 얘기들을 하던지간에
내가 그 자리에 껴있는 것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에 거기있던 또다른 걔의 친구까지 합세해서
걔네가 그렇게 날 안좋게 보는 사람 양쪽에 앉아 그 사람을 붙잡고
내가 실은 얼마나 괜찮은 애인지 구구절절 얘기하는 것은
퍽 감동적인 장면이였지만
나는 사실 거의 영혼이 반쯤 나가있었기 때문에 이렇다할 반응은 하지 못했다.
그 애가 가끔 집에 오긴 했지만 우리는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코비드가 막 시작된 후였고,
걔는 내가 가져온 마스크를 200불, 300불이나 주고서 사�� 뿐이였다.
락다운이 심해졌고
나는 마지막 남은 전세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갔다.
나는 나대로, 걔는 걔대로 각자의 삶을 살았다.
걔가 여길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갔다는 얘길 들었을 때
걔가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꺼라는 걸 그저 짐작만 할 뿐이였다.
그저 그 애가 너무 힘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였다.
3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우리는 거의 연락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나는 작년 말에 다시 돌아왔지만 걔는 여전히 다른 지역에 있었다.
그 즈음 만나기 시작한 사람은 내가 그 애와 모든 관계를 끊기를 바랬다.
이제는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그냥 연락처도 지우고 다 차단하라며 몇번을 크게 싸웠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다.
펑펑 울면서 내가 말했다.
내가 내 인생의 밑바닥에 있다고 생각했을 때,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할거라고 생각했을 때,
걔는 아무렇지 않게 내 편을 들어줬다고.
걔랑 이제 연락조차 하지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 걔에 대해 욕을 하거나 한다면
걔는 내 친구라고 말할꺼라고, 나도 걔 편을 들어줄꺼라고.
그치만 그 당시 남자친구의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잘 보여야한다는 생각과 긴장에 너무 사로잡혀서
그 친구들이 걔에 대해 농담반 진담반으로 안좋게 얘기하는 거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쓴웃음만 지었다.
그게 아주 후회로 남는다.
이렇게 별볼일 없이 헤어질 줄 알았다면 그때 여장부처럼 큰소리라도 한번
칠껄 싶기도 하지만 그 친구들이 걔가 전에 만났던 사람하고 아주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내가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은 ���도 있었다.
그 남자친구하고 헤어지고서 나는 또 아주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 사람을 특별나게 사랑하거나 그랬어서가 아니라,
안정을 찾고 싶었던 내 욕심 때문에 성급하게 결정한 몇가지 문제들로 인해
몇달을 내리 방황을 하고 힘들어했다.
매일같이 울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거의 이젠 체념을 하고서
그냥 스트레스라도 풀자 싶어 한동안 어울리지 않았던
옛날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친구의 집에서 여럿이 놀고 있었는데
얘네가 갑자기 걔 얘기를 꺼내면서 걔가 여기에 다시 와있다고,
걔를 부르자면서 전화를 걸었다.
나는 친구들을 말리고 싶었고 어디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너무 술에 취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로 걔를 3년만에 다시 만나는건 정말이지 내가 상상할수조차 없는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걔가 30분을 운전해서 정말로 와버렸다.
걔는 나를 보고 당황을 했는지 인사조차 하지 않고 걔 친구들하고만
얘기를 했다.
걔 친구들이 너네 인사라도 하라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나는 미친년처럼 그냥 울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그렇게 싸할수가 없었다. 자리가 파토가 났다.
그 날 또 병신같은 일이 한 건 더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하룻밤새에 친구 두명을 잃은 기분이였다.
걔한테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걔는 괜찮다고 어떤 기분인지 안다고
자기 돌아가기전에 볼 수 있으면 보자고 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주말내내 현타가 왔다.
3년만에 보는 그 애 앞에서 그런 모습이였다는게 내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체념을 했다. 그냥 이렇게 끝일수도 있지.
걔가 잘 지내고 있으면 된거지.
그런데 그 다음날엔가 걔한테 다시 연락이 왔다.
미팅 끝나고 잠깐 보자면서.
그리고 걔가 진짜로 왔다.
어디 술을 마시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정말로 잠깐 나를 보기위해 피곤한 몸을 끌고 와줬다.
우리는 문닫은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내가 맨정신일 때 다시 봐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하니까
그 애가 당시의 내 상태를 흉내내면서 박장대소를 했다.
자기는 내가 취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아니까
그냥 이 빗취 인사도 안하고 또 지랄이네 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우리는 둘다 배를 잡고 웃었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이상한 기분이였다.
3년간 보지도 않고 연락조차 하지 않았는데
걔를 보자마자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한 인간의 얼굴이 사람을 이토록 행복하게 만들 수가 있는걸까 하는
의문마저 생길 지경이였다.
걔도 눈을 반짝이며 나를 계속 바라보며 웃었다.
다시 봐서 너무 기쁘다고 몇번이나 말했다.
우리는 다음날 또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걔는 걔 친구들조차 만나기 쉽지않은 애여서 그 날, 내가 맛탱이가 간 날
그애가 온것도 다들 신기해했었으니까.
나는 기대를 내려놓자고 생각했고 못만날수도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그애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i'm tired.'
나는 괜찮은 척 말했다.
-it's okay.
그렇지만 서운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it may mark the 89778687th time you ditch me tho.
그러자 걔는 호텔키를 이미 받은 사진을 보내줬다.
몇 시간뒤 걔가 나를 데리러 왔다.
자기가 계속 하품하더라도 화내지말라고 아침부터 계속 미팅하느라
너무 피곤하다며, 그래도 너랑 언제 또 이렇게 제대로 시간을 보내려나 싶어서 온거라고.
우리는 호텔로 가는 길 내내
서로 허튼짓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호텔에서 마텔을 도란도란 나눠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옛날 얘기들, 우리의 친구들에 대한 얘기들,
그동안 둘다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도.
남들에게는 겹겹이 비밀을 쌓아놓고 사는 애가 나한테만큼은
나를 믿고 이런 저런 얘기를 덤덤히 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내가 말했다. 정말 신기하다고.
어떻게 그 오랜시간을 안보고 연락조차 하지 않았는데
왜 너를 보면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드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걔가 말했다.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you are my weak spot. all my friends don't understand it.'
그 애는 그날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주 많이 했다.
웃기도 많이 웃었고
울지는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써야했다.(나보고 술마시면 우울해지는거 꼭 고치라면서 오늘 절대 emotional해지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
특히 그 애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듯이 지갑을 꺼내더니 뒤적이면서
내가 그 애에게 줬던 그 사원의 부적을 보여줬을 때,
그 닳고 닳은 부적을 그 지갑에서 웃으며 꺼내는 걔를 보면서
울지않는다는게 정말 힘든 일이였다.
우리는 호텔을 하루 더 연장해서 이틀을 함께 있었고
그 애가 집을 데려다주었을 때
이걸로 우리는 한동안은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웃으며 허그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어제,
나는 다른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친구들이 잘해보라고 푸쉬하는 어떤 순수한 어린 남자애도 함께 있었다.
그 순수한 어린애는 사랑에 빠진 눈으로 내내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게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이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친구들이 한두명씩 자리를 떠났고 그 순수한 어린애와 나만 남았다.
나는 걔가 며칠뒤면 돌아간다는 사실이 기억이 났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bro'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무슨 일이냐고 답장이 왔다. 바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럼 알겠다고 했더니
왜 그러냐고 무슨 일이냐고 재차 물었다.
-i was wondering if u had time.
'to?'
-um to talk to ur sister?
'lol'
그애는 알면서도 내게 물었다.
'are u safe? do u need help?'
나는 그애가 안다는걸 알면서도 말했다.
-i'm not safe, i'm in danger. i need ur help.
'do u want me to come?'
-yes.
몇분뒤 그애가 왔고 나는 그 순수하고 불쌍한 어린애를 내팽개치다싶이 하고서
그 애에게로 달려갔다.
걔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며 자기 너무 피곤하고 어쩌구 저쩌구 그랬는데
내가 그럼 자고 가라고 했다.
그 애를 옛날 집주인친구 집이 아닌 내가 따로 사는 집에 데려오는건 처음이였다.
걔는 내 방에 들어오더니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니가 맨날 파티하느라 엄청 엉망진창으로 살줄 알았다고.
정말로 나의 새로운 면을 본것같다면서 계속 신기해했다.
우리 사이가 여전하면서도 뭔가 달라진것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걔가 옷을 갈아입을 때
호텔에서 일부러 보지 않았던 등을 한번 제대로 봤다.
등짝스매싱을 갈겼다.
멀쩡한 예쁜 살을 이런 식으로 망치느냐고.
걔는 웃음을 터뜨리며,
‘oi!! what about ur fucking tattoos!!!' 라며 소리를 쳤지만 나는 아랑곳하지않고 잔소리를 이어나갔다.
걔는 피실피실 웃으면서 타투 하나 하나 무슨 의미가 담겼는지
얘기해주려 했지만 나는 그런건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 애의 팔을 베고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내가 걔를 깨웠다.
내가 마트에 가야되는데 가는 길에 떨궈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뭘 사야하냐면서 그걸 들고 다시 어떻게 올거냐고 물었다.
-bus? it's okay, i can...
걔는 한숨을 푹 쉬더니 shut up. 이라며 내 말을 끊었다.
걔는 나를 데리고 가서 아침밥을 사먹였고
음식을 먹으면서 계속 나의 내년 예상지출비가 어떻게 되는지, 렌트비가 얼마인지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떻게하면 자기 회사에 나를 집어넣을지를 혼자서도 계속 궁리하다가
나중에는 나보고 뱅킹어카운트를 보내라고 했다.
-why? i don't need your money.
'ah shut the fuck up. just let your little bro help you.'
나는 그애가 하는 말들이 어떤 말들은 마음이 앞서 하는 말들인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혹은 그렇게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걔한테 그런 도움을 받을 상황도,
그러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숨도 안쉬고 거절했지만
그애가 하는 모든 말들이 나오는
그 마음만큼은
정말 귀엽고 웃기고 예쁘고 고마웠다.
이 곳에 돌아온게 몇달동안 지옥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그 애를 다시 만난 지난주부터
나는 이곳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애가 내 편이라는 것,
그냥 그 사실 하나가 나에게 너무나 큰 용기를 주고 헤쳐나갈 힘을 줬다.
마치 그 애가 영원히 닳지 않는 연료로
나를 꽉 꽉 채워준것만 같이.
이렇게 장장 8년간의 그 애와 나의 서사를 한번 기록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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