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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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kmuffin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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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space! Tell me what your most feral, unhinged Ateez thoughts are at the moment
Mingi should only wear narrow legged pants. I dgaf what is in fashion right now or what people have to say about skinny jeans. Put that mofo in leggings if you have to. SHOW ME THOSE LEGS BOY.
Seonghwa's power comes from his eyebrows the way Samson's power came from his hair. This is why the decision to bleach his brows recently made his expressiveness go super saiyan. Also even though he would probably hate it I think he should have lipstick smeared across his face at some point. 'Twould be very hot.
Spoiler for my eventual San write up: San is the Korean male second coming of Marilyn Monroe/Norma Jean Baker, where she specifically demanded that all the pain points of her life be corrected in this reincarnation. I will explain later.
I hope there is a lot of unhinged non-horny fanfic about Yeosang having nightmares about his desire to murder San once Wooyoung decided that San was the better foil for his antics, even though I won't be reading it, bc there is a LOT to be mined there. Is the sad conversation that Yeosang had with Mingi, quote - "San really likes Wooyoung so much doesn't he?" at the moment WooSAN formed instead of WooSanG well known in the overseas fandom?? BECAUSE THAT HAPPENED.
I want Wooyoung and Yunho to physically fight each other. I DONT KNOW WHY bc I can't even watch Olympic taekwondo matches without freaking out, but hear me out - Wooyoung is a jumper and a biter and fast vs Yunho is super strong and a natural at 씨름 who is not only very big but has the most enormous hands ever. I feel an exciting tension between them because Yunho has boss and leadership capacities and Wooyoung has drive and hunger and sparkle for individual stardom. FIGHT FIGHT F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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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an-studio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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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HISTORY WORD LIST [part 2]
구조 [構造] - structure
왕릉 [王陵] - royal tomb
계급 [階級] - class, rank
장식되다 [裝飾되다] - be decorated
정면 [正面] - facade front
분담하다 [分擔하다] - to share
설화 [說話] - tale
별자리 - star constellation
도교 [道敎] - Taoism
고분 벽화 [古墳壁畫] - tomb fresco
권위적 [權威的] - authoritative
천장 [天障] - ceiling
승려 [僧侶] - Buddhist monk
공양하다 [供養하다] - to offer food to Buddha
기상 [氣像] - spirit
배치하다 [排置하다] - to arrange
웅혼하다 [雄渾하다] - dynamic
원근감 [遠近感] - perspective
설채 [設彩] - to draw background with ink and then color it
씨름 - korean wrestling, ssireum
유래되다 [由來되다] - to originate
무예 [武藝] - martial arts
색채 [色彩] - tone (color)
내세 [來世] - afterlife
귀족 [貴族] - aristocracy
제왕 [帝王] - emperor
사신 [四神] - Four Symbols - four mythological creatures appearing among the Chinese constellations along the ecliptic, and viewed as the guardians of the four cardinal directions. These four creatures are also referred to by a variety of other names, including "Four Guardians", "Four Gods", and "Four Auspicious Beasts". They are the Azure Dragon of the East, the Vermilion Bird of the South, the White Tiger of the West, and the Black Tortoise of the North. Each of the creatures is most closely associated with a cardinal direction and a color, but also additionally represents other aspects, including a season of the year, an emotion, virtue, and one of the Chinese "five elements" (wood, fire, earth, metal, and water). Each has been given its own individual traits, origin story and a reason for being. Symbolically, and as part of spiritual and religious belief and meaning, these creatures have been culturally important across countries in the East Asian cultural sphere.
청룡 [靑龍] - Azure Dragon, Blue Dragon 백호 [白虎] - White Tiger 주작 [朱雀] - Vermilion Bird, Red Phoenix 현무 [玄武] - Black Tort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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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skz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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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KIDS : BLACK] 열정 뿜뿜! 훈훈함까지 넘치는 슼즈의 허벅지 씨름 배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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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tipsguide · 13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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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6월, 꼭 가봐야 할 국내 축제와 여행지 추천!
6월은 여행하기 딱 좋은 계절! 🌿
초여름 햇살 아래 열리는 6월 축제 일정과 가볼만한 국내 여행지를 소개해요.
주말 나들이, 연인과의 여행, 가족과의 추억 만들기에도 제격! 📸
🎉 2025년 6월 주요 축제 일정
1.강릉 단오제 (6월 5일~6월 10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단오굿, 씨름, 국악 공연 등 전통문화 체험 가득
2.부산 바다축제 (6월 15일~6월 19일)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펼쳐지는 여름의 전초전
*EDM 파티, 마린 스포츠, 해변 퍼포먼스
3.제주 해녀문화축제 (6월 21일~6월 23일)
*제주 전통 해녀문화의 진수를 경험
*해녀 체험, 바다 음식 시식, 해안 걷기 축제
🌄 6월에 가볼만한 국내 여행지 Best 5
1.전라남도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초록의 터널길에서 인생샷 찰칵! 📷
*인근 죽녹원과 연계한 힐링 여행 추천
2.경상북도 봉화 청량산
*등산 + 계곡 트레킹으로 여름 더위 싹!
*청량사 고찰 탐방까지 겸하면 딱!
3.충청남도 태안 꽃지해변
*일몰 명소! 6월 중순부터는 해수욕장도 오픈
*태안 튤립공원은 덤!
4.강원도 양양 서피비치
*서핑 성지! 초보자도 쉽게 체험 가능
*인생샷 스팟 많은 해변 감성 충전
5.경기도 가평 자라섬
*캠핑족 필수 방문지
*여름밤, 별빛 가득한 감성 캠핑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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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in-world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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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vs 씨름 누가 이길까? [용인대 무도학과] | 전과자 ep.82
https://x.com/weareoneEXO/status/1907727379348468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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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innk34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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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전시된 수많은 씨름 트로피를 소개했다. 최연소 천하장사 출신 백승일은 "강호동 선배님이 18세 때 천하장사가 됐다"며 "제가 그 기록보다 1년 앞선 17세에 됐다"고 회상했다.백승일은 "씨름선수로 데뷔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천하장사에 올랐다"며 "이후 프로팀에서 제안이 들어왔고, 1억5000만원의 거액을 받고 입단했다"고 밝혔다.1976년생 백승일은 1993년 순천상업고등학교 중퇴 후 모래판에 들어섰다. 그는 1993년 청구 청룡 씨름단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를 밟았다. 백승일은 2005년 선수 은퇴했다.백승일은 음악 활동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했지만, 20년 가까이 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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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xzsp · 8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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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이용료한도 모을 전망
김동현은 이번에도 자신의 독특한 영업 방식을 활용해 목표 판매량을 달성하려고 고군분투합니다. 이번 미션은 기능성 바디크림 판매인데, 김동현은 평소 가족과 함께 사용하는 제품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특히 그는 실패 시 카드깡업체 한강을 건너겠다는 파격적인 공약까지 내걸며 그 결의를 다졌습니다. 과연 한강공원을 찾은 나들이객들을 상대로 목표 판매량을 달성해 전 국민에게 파격 세일가를 제공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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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은 공원에서 만난 시민들에게서 영업 노하우를 전수받고, 그 능수능란한 말솜씨와 남다른 친화력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제품을 판매합니다. 특히 세 아이의 아빠답게 아이들에게는 친근한 ‘하츄핑’ 이야기를 꺼내며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성인들에겐 남다른 유머와 허벅지 씨름 대결 같은 이색적인 이벤트로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그의 이러한 노련한 영업 전략은 이번에도 큰 화제를 모을 전망입니다.
김동현의 도전이 담긴 프로젝트 '세일러문' 2화는 오늘 저녁 6시 JTBC 디지털 스튜디오 '스튜디오 HOOK'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됩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사된다면 김동현의 영업 능력은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콘텐츠 시장에서는 콘텐츠이용료한도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이용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을 제한하기 위해 설정된 이 한도는, 사용자들에게 과도한 지출을 막고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카드깡업체 돕는 제도입니다. 이는 특히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김동현과 같은 셀럽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들이 더욱 활발히 소비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순재, 김용건, 예수정 등 베테랑 배우들이 뭉친 시츄에이션 코미디 드라마 '개소리'도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이순재가 주연을 맡아, 개와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등장하는 코믹한 설정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합니다. 또한,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흥미로운 전개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콘텐츠이용료한도 시스템은 이런 다양한 콘텐츠 소비를 촉진하며, 대중들에게 부담 없는 비용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들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김동현이 참여한 프로젝트부터 이순재가 주연한 시츄에이션 코미디까지, 다양한 콘텐츠가 이 시스템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콘텐츠 시장에서는 합리적인 소비와 재미있는 콘텐츠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콘텐츠이용료한도는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한 필수적인 제도로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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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ythegooner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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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는 마침내 축구에서의 큰 돈에 대한 문화 전쟁에서 승리했는가
아스날에서 22년의 생활 중 마지막 14년 동안, 아르센 벵거는 절망 속의 탐구에 있었다. 클럽에서의 눈부셨던 첫 8년 동안 트로피와 영광을 가져왔으며, 데이터 활용, 인재 발굴에 대한 접근, 기술적으로 섬세한 축구에 대한 헌신, 그리고 선수들의 식단과 일상생활에 대한 섬세한 주의로 프리미어 리그에 혁명을 가져왔던 이 자유로운 사상가는, 어느 순간 갑자기 퉁명스럽고 화를 잘 내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사이드라인에서 파카 지퍼와의 씨름, 기자회견에서의 짜증내는 답변들, "거의" 모든 성공적인 유럽 선수를 영입할 뻔했다는 익살스러운 주���, 한때 무적이었던 그의 팀이 다시 한 번 리드를 내주고, 수비진의 다시 한 번 슬랩스틱 코메디 같은 모습을 보이고, 다시 한 번 우승 도전에서 미끄러짐에 따라 물병을 걷어차는 것: 후기 벵거의 모습을 그 자체로 일련의 클리셰가 되었으며, 한 때 위대했던 감독이 직업적인 해체 직전에 있는 회전문과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이 기나긴 쇠퇴 기간 동안 벵거의 가장 큰 고통의 원인은 당연히도 그가 기억할만하게 "재정적 도핑"으로 불렀던 것 때문이었다: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먼저였고, 그 후에는 아부 다비 유나이티드 그룹의 맨체스터 시티 인수였다 - 프리미어 리그를 재벌들이 지배한 클럽들에게 유리한 단순 지출 대결로, 아마도 영원히, 변모시킨 새로운 억만장자 클럽 소유주들의 등장이었다.
매 시즌 아스날은 그들의 최고의 선수들을 매각하면서, 인내심있게 애쉬버튼 그로브의 새구장 빚을 갚아 나가면서, 돈 바보들과 경쟁하기 위해 티켓 가격을 인상하면서, 절약과 지연된 만족이라는 벵거식 진리를 살아나가려고 힘겨워했다. 첼시와 맨체스터 클럽들은 모든 트로피를 차지했고, 아스날 팬들은 클럽의 책임 있는 재무 상태의 찌꺼기를 뒤적거려야 했다. 거너스는 프리미어 리그를 우승하는 예술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나, 그들의 손익 계산서는 월드 클래스였다.
이 기간의 벵거의 기자회견은 역사의 흐름이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한 남자의 분노로 가득했다. 2009년 초 그는 "클럽이 자체 자원 안에서 운영해나가 것은 만족스러운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티는 다른 세계에 있습니다."
몇 달 후, 그는 다시 이것을 말한다. "우리의 직업에서는 항상 자원 내에서 운영해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클럽 내에서 벌어들인 수입과 연결되어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항상 변호할 수 있지만, 그것이 클럽 내에서 만들어진 수입과 연결되지 않��다면 변호할 수 없습니다."
파파 아르센은 재정적 사막에서 홀로 외치는 외로운 목소리가 되었다. 철학, 이성, 도덕, 쾌락: 벵거는 이 모든 것들에 호소하여 프리미어 리그에 지출을 제한하고 클럽이 자체 수입 범위 내에서 운영하도록 하려는 시도를 했다. 아스날에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는 클럽의 자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그의 헌신에 대해 고집스러울 정도로 엄격했다 ("저는 우리가 클럽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경쟁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집니다": 이것은 그가 2011년에 한 말이다).
벵거의 경제적 사고는 어린 시절 그의 부모님이 알자스 시골 그들의 비스트로에서 일하며 흡수한 가치관에서 형성되었다. 1950년대 둘렌하임의 딱딱한 세계에서의 그의 어린 시절은, 그가 자서전에도 적었듯, "슬기로움, 끈기, 열정, 신체적 노력에 대한 교육"이었다. 자제력, 책임감, 체력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과잉과 무모함은 경멸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과잉"이라는 단어는 벵거의 자서전 첫 20페이지에만 세 번이 나오는데, 단 한 번도 긍정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알자스에서의 그의 유년시절부터 그는 검소함에서, 물질적 및 문화적인 빈곤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찾는 법을 배웠다. 어린이로서, 그의 축구팀은 "유니폼도, 코치도, 심판도 없이" 경기했으며, 그는 "우리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나는 가끔씩 내 열정이 그런 좌절에서 나온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그 작은 세계, 우리가 나눈 드문 말들, 우리팀이 졌던 경기들, 피치는 너무나 작아보였습니다"라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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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 동안 클럽 축구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한 벵거의 장기 프로젝트 - 자급자족이 최우선이며, 재정적으로 가능한 범위에는 진짜 제한이 있으며, 창의성이 물질적 제약에 대한 협상에 의해 정의되는 모델 - 는 실패할 것처럼 보였다. 스포츠의 영혼을 두고 싸운 전쟁에서 패배했었다. 축구는 국�� 펀드, 기름 재벌, 그리고 사모펀드 광대들에게 팔려나갔으며, 그 아브라모비치와 만수르, 알 켈라이피들은 그들이 비싸게 조립한 선수단이 무기력한 상대방들을 땅속으로 밀어넣는 동안 높은 곳에서 무표정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미래는, 보이는 것처럼, 부유한 자들에게 속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래는, 최소한 현재까지는, 여전히 그렇다: 어쨌든 맨체스터 시티는 프리미어 리그 4연패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시즌이 끝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유럽 축구의 규제 문화, 특히 잉글랜드 축구가, 지난 6개월 동안 얼마나 의미있게 변화했는지를 돌아볼 가치가 있다.
물론, 프리미어 리그는 에미리츠에서의 벵거 시대에 비해 훨씬 변했다. 심지어 아스날의 자급자족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오래된 헌신 조치도 변화했다. 클럽은 2018년까지 16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그 과정에서 약 4억 파운드를 벌어들였지만, 판더믹 시대의 관중 매출 감소와 챔피언스 리그 진출 실패로 인해 최근 몇 시즌 동안 회계장부가 적자로 전환되었다 (비록 아스날의 최근 결과는 지속적인 유럽 대회 참가로 "자급자족적인 재정 기반으로의 복귀"를 예상하고 있지만 말이다). 오늘날의 축구 경기에 대한 감독에는 격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 VAR! 확장된 월드컵! 확장된 클럽 월드컵! 심판에게 바디캠 부착! 블루 카드! 블루 카드 안함! - 이는 종종 축구 감독 기관이 팬들 만큼이나 이 스포츠의 미래 방향성에 대해서 무지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재정 규제라는 영역에서는, 지난 6개월 동안의 변화는 실질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해 동안의 느릿한 무행동 후, 프리미어 리그가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 규칙 (PSR) 위반을 처벌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 비록 이것인 공정한 경쟁에 대한 규제에 의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정부가 스포츠에 독립적인 감시 기관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무효화하기 위한 성과로 설계되었지만 - 진정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새로운 기준과 선수 비용 규칙의 이중 타격은 6월 프리미어 리그 연례 총회에서 임시로 승인된 것으로, 또 다른 충격을 일으켰다. 이러한 규칙 변경들은, 비록 완전히 평등하지는 않겠으나 (프리미어 리그는 여전히 재정적인 기폭제와 단순한 풍선들의 리그일 것입니다), 가장 부유하고 부유한 클럽들의 지출에 일정한 제약을 가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아스날을 떠난 후, 벵거는 FIFA 축구 발전 책임자로서 일하고 있으며, 그는 축구 세계의 현상태에 대해 설교하는 석학과 같은 위치에 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유산은 프리미어 리그에 있으며, 그것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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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가 각 클럽의 임금과 이적료 지출을 최하위 클럽의 TV 수익의 배수로 "고정"하는 조치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리그가 공정성과 경쟁력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드디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포스트-아브라모비치 길드 시대의 추악함과 무모함 이후, 프리미어 리그는 가장 크고 자원이 풍부한 클럽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정 상의 검소함과 제한의 새로운 발전적인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규제, 회계, 소송은 이 새로운 시대의 특징이 될 것이며, 클럽들은 회계장부와 피치 위에서는 VAR 조정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따라 오르고 내리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가 몇몇 억만장자 소유 클럽에게 이미 억만장자의 규칙으로 인한 초기 혜택이 모두 축적되었고 재정 책임의 새로운 체제가 마련되어 있는 시점에 일어났다. 예를 들어, 맨체스터 시티는 트로피, TV 수익, 수백만 명의 새로운 팬들을 확보했다. 클럽은 지난 회계년도에 8천만 파운드의 이익을 발표했으며, 이는 리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으로 선수 매각으로 1억 2천 2백만 파운드를 벌어들였다. 재정 도핑이 제공하는 재정적 이득이 기업의 혈관에 완전히 흡수되어, 그들에게 덜 부유한 경쟁 상대들을 상대로 몇 년, 아마도 수십 년 동안의 더 엄격하게 규제된 리그의 절약주의 아래서도 지속될 구조적 우위를 제공했다. 예전 규칙 하에서 성공을 산 클럽들도 새로운 체제 하에서 잃을 것이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스포츠 정상에서의 그들의 위치는 도달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며, 다른 새로운 도전자들이 영광을 위해 슈가 대디의 길을 택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작은 클럽들의 야망을 끝냄으로써, 오히려 유럽 축구의 기존 질서를 굳게 할 수도 있다. 더 검소한 미래는 실제로 레�� 마드리드, 바이언 뮌헨, PSG 및 기타 단골손님들이 출전하는 챔피언스 리그의 봄날 밤을 더 많이 보는 레시피가 될 수도 있다.
허나, 어느 정도의 낙관주의를 갖는 것은 가능하다. 이 새로운 규제와 제약의 시대가 클럽과 매니저들을 새로운 경제의 제약 속에서 완벽하고 성공적으로 찾아내도록 격려할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벵거는 일전에 "스포츠의 아름다움은 규칙을 준수하고 이기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기도록 허용되지 않아야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이는 패배주의로 보였으며, 스포츠의 현실을 자신들의 무한한 재정 의지에 굴복시킬 수 있던 소수의 슈퍼 리치 클럽들에 의해 실패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동안, 벵거가 몇 년에 걸쳐 싸워온 미래 - 규칙이 스포츠로부터 무리한 돈을 제거하도록 설계된 대체 현실 - 가 갑자기, 불안정하게 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선수 비용 비율, 고정화, 무모한 지출에 대한 단속, 축구 피라미드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행동주의 정신: 이 모든 것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새로운 경쟁 환경을 만들어낼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20년 동안의 방임주의적이었던 규제와 카지노 지출로 인한 프리미어 리그 내의 계층을 고착화시킬 것인가? 아르센 벵거는 결국 감독으로서 실패한 축구에서의 돈에 대한 문화 전쟁에서 승리했을까? 우리는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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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hongkong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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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홍콩 금엽정, 용선 축제 앞서 전통 음식 종자(粽子) 선보여
(홍콩=데일리홍콩) 김한국 기자 = 콘래드 홍콩 호텔의 정통 중식당으로 유명한 금엽정(金葉庭, Golden Leaf)이 용선(龍船, Dragon Boat) 축제를 맞이하여 전통 쌀 만두 종자(粽子)를 출시했다. 연중 양기가 제일 강력하다는 음력 5월 5일 단오(端午) 날 홍콩에서는 용의 해였던 1976년 이래 용선(龍船, Dragon Boat) 축제 기간 용선(龍船, Dragon Boat) 경주가 펼쳐진다. 용선(龍船, Dragon Boat) 경주는 용의 형상으로 꾸민 배를 가지고 코스를 경주하는 단체 경기이다. 지역 주민들이 신체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단체 운동으로 친목을 다지는 이벤트로 한국에서 씨름 대회, 그네뛰기 등 단오(端午)를 기념하는 전통 친목 행사가 열리는 것과 유사하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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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wangky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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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뒤집기 달인 이승삼 장사의 삼명장 창동점 오픈식 💘💘💘 삼명장 창동점 주소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서북10길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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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ox-incubator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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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음악은 침묵이다.
(사일런스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카페 음악.
이런 음악은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어떤 씨름 관계가 아닌 것이다.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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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si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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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블레이드 3 : 유니크 몬스터 - 설화를 부르는 곤바바 (Lv.12) 
몬스터명 설화를 부르는 곤바바 LV 12 드롭 아이템 노폰코인 골드노폰코인 실버수수께끼의 파편 라운드젬 스톤버닛 초커퍼 삭스그로그의 폭주약그로그의 황금 기름 트라이던 습득 스킬 아츠 – 씨름 프레스 위치 아에티에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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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전통씨름과 한국 전통 씨름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몽골vs한국 씨름선수들의 씨름 단체 친선교류전 한판승부!!(거제폭격기 두번째 해외컨텐츠 몽골편 2탄)씨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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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lab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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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岡克行, ルーマン/社会の理論の革命 (45)
勁草書房, 2006
제11장 사회시스템의 구조
- 사회시스템과 심적 시스템은 각기 다른 종류의 ‘조작적으로 닫힌 오토포이에틱한 자기 언급 시스템’. 여기에는 두 가지 커다란 이론적 함의.
- 첫째 심적 시스템 만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도 조작적으로 닫힌 자기 언급 시스템이라는 것은, 근대 철학의 중요한 전통에 수정을 가하는 것. 이 전통에서 자기 언급은 한결 같이 의식이라는 영역에만 나타나는 것. 여기서 자기 언급은 (‘객체’들이 아니라) ‘주체’를 위해 소중히 간직되고, 그를 통해 ‘주체’는 자기 자신을 개체화 하는 개인으로 해석. 전통에 따를 경우, 의식이 세계의 주체이고, 주체와 객체의 차이가 모든 정보 처리의 전제. 전통의 입장에서는 주체의 복수성이라는 문제, 간주관성 ���제에 부딪힘. 20세기 후반의 철학과 사회 철학, 또한 이에 발을 맞춘 사회 이론의 기초 연구는, 타자라는 문제와 씨름. 그러한 연구에서는, 타자와의 관계인 사회적 관계에 대해 윤리와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에 주의함. 루만의 시스템 이론에서는 이와는 다른 접근. 루만은 타자라는 문제에 의미의 사회적 차원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문제로 접근, 윤리적인 것,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이들의 토대에 있는 하나의 일반적 측면, 즉 사회적인 것을 문제화. 사회적인 것은 커뮤니케이션으로 수행되어 현실화되고, 자기 언급적 오토포이에틱 시스템을 형성. 사회 시스템이 심적 시스템과는 별개의 자기 언급 시스템일 때, 역시 자기 언급에 의해 의식을 특권화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객체와의 차이에 근거할 수밖에 없는 주체라는 개념은, 적어도 사회 연구에서는 부적절한 개념이 됨. 그러니까 루만은 주체와 객체라는 구별을 시스템과 환경이라는 구별로 대신할 것을 제안.
- 사회 시스템도 조작적으로 닫힌 자기 언급 시스템이라는 것은 둘째로, 사회적인 것을 통째로 개인들의 의식으로 환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 시스템 이론에 기반해 논증하려고 하는 것의 환원 불가능성이라는 테제, 사회적인 것은 그 독자의 실재라는 인식, 이것이 의미 개념에서 출발한 루만 사회 이론의 모든 근거에 놓여 있는 것.
- 사회적인 사상을 개인들의 의식으로 환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사회적인 것이 그 자체로 자립적으로 독자 권역의 사상이라는 것. 이 사실은, 정치나 법의 영역 보다도 경제 영역에서 눈에 띔. 입법이나 재판에서는 사람이 수행하는 선택과 의사결정이라는 계기가 전면에 떠오르는 것에 비해서, 일반적 가격 수준의 변동이나 경제 공황은 사람들의 활동 결과 임에도, 그래서 순수하게 자연적인 사실은 아니라 해도, 사람들의 개별 의사결정으로 돌릴 수 없기 때문에 익명적인 현실로 제시되고, 사람들은 그것에 적응적으로 행동. 그러니까 사회적인 것을 개인 의식으로 환원 불가능하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는 경제 영역에서 최초로 강조. 그것을 이론적으로 밝혀낸 것이 마르크스의 『자본론』. 거기서는 ‘순수하게 사회적 (rein gesellschaftlich)’, ‘순수하게 사회적인 것 (etwas rein Gesellschaftliches)’, ‘단지 사회적일 수 밖에 없는 정재(定在, das bloβ ‘gesellschaftliches Dasein’)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회적(Sozial)이라서 사회적(gesellschaftlich)인 것은 그 자체 독자 권역의 사상임을 표현. 그러한 사상이 인간들의 의식적인 개인적 행위(Tun)와 독립적으로 있다는 것을, 한 가지를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이야기.
“사람들의 사회적 생산 과정에 있는 그들의 단지 원자적인 움직임은, 그래서 또한 그들 자신의 생산 관계의, 그들의 통제 및 그들의 의식적인 개인적 행위로부터 독립한다. 물상(物象)적 자태는 당장, 그들의 노동 생산물들이 일반적인 상품형태를 가진다는 점에서 현상한다. 그러니까 화폐 물신의 수수께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눈을 현혹하는, 상품 물신의 수수께끼에 다름아니다.”
- 인간주의 마르크스주의나 소외론 마르크스 해석에서는, 마르크스가 밝히려 했던 사회적 사상의 독자성이라는 결정적 인식 성과를 평판화. 그와는 반대로, 일본의 ‘물상화 이론’ 마르크스 해석은, 마르크스의 이 인식 성과의 의의를 최대한 강조하고, 일반화를 겨냥. 물상화 이론에서는 “근대 철학 나아가서는 근대적 상식류의 ‘물적인 것’과 ‘심적인 것’, ‘객체적인 것’과 ‘주체적인 것’의 싸구려 이차원 대립성을 원리적인 장면에서 거부”하고, 그래서 물상화라는 것은 ‘심상적인 어떤 것’이나 ‘주체적인 어떤 것’이 물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님. 루만의 사회 시스템 이론은 마르크스 평가에서 이 물상화 이론과 기본 방향에서 일치. 루만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마르크스에 의한 당시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있어, 그 후도 계속 주목했던 것은, 이전에 자연 본성에 관련해 정당화했던 지식을 사회적 컨텍스트로 옮겼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경제 질서는 마르크스에 의하면, 개인적인, 또는 집합적인 합리성 경향을 만들어 내는 경제적 행위의 자연 본성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 경제 질서는, 언제나 사회적인 구성이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는’ 자연 본성에의 언급은 『물화 (Reifikation)』로서 나타나고, 그래서 사회적인 구성의 계기로서 분석된다. 경제 이론은 사회외적 (extra-sozial) 객관성을 대표한다고 하는, 경제이론의 요구는, 부인된다. 경제 이론은 사회적인 구성물의 논리만을 반성한다.
우리는 예의 다른 모든 것을 방기할 때에도, 이것을 견지하고, 마르크스를 능가해야만 할 것이다.” (1992, S.23)
- 그러나 물상화 이론과 달리, 루만은 (관계의) 물상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행해지는 한에서, 심적 시스템과는 다른 창발적 시스템, 즉 사회 시스템이 형성된다고 말함. 그래서 사회 시스템과 심적 시스템은, 조작(=시스템 요소)의 종류를 달리 하기에 다른 종류의 시스템으로 다뤄 짐. 때문에 루만의 사회 시스템 이론에서는, 개인의 의식과 사회적인 것의 차이는 물상화 이론에 앞서서 강조되었던 것. 루만은 타자와 사회적인 것이라는 문제를 이 차이를 통해 고찰.
1. 구조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
- 오토포이에시스(자기 생산) 관점의 시스템 이론에 따르면, 시스템은 직접적으로는 조작(요소에 의한 요소의 생산)만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 이 시스템은 동태적이고, 후속 조작이 수행되지 않는 경우에 붕괴. 이 시스템은 환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스템 자신의 구조에 의해서 조작이 ‘결정’되는 시스템. 이는 오토포이에틱한 사회 시스템은 자신의 조작을 통해서 자기 구조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그 구조에 의해 조작을 조정한다 하는 것, 또한 구조의 변화도 조작을 통해 야기된다는 것을 의미. 그렇다면, 사회 시스템 이론은 여기서도 순환적인 관계, 동태적 성격을 가진 구조 개념, 조작과 구조의 순환적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 개념을 필요.
- 20세기 후반의 사회학은, 20세기 중반에 형성된 두 주요한 구조주의 이론의 구조 개념,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와 파슨즈의 구조기능주의의 구조 개념 동태화라는 과제에 맞섬. 대표적인 경과는 부르디외와 기든스의 연구에서 발견. 루만도 동태화라는 같은 과제에 맞섬. 루만의 구조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 절로 돌리고, 여기서는 자기 언급적 시스템 이론의 입장에 선 루만이 구조주의 이론에 대해 ���행했던 인식 이론적 비판을 다룸. 이 비판은 이제까지 “가장 엄밀하게 구조 개념을 구축했던 것은 아마도 알튀쎄르 뿐이”라고 이야기되는 그 알튀쎄르에 의한 레비-스트로스 비판과도 몇 가지 다른 모습을 가짐.
- 구조주의의 구조 개념에 대해, 루만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 인류학』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논평.
“레비-스트로스에게, 구조 개념은 경험적 실재 그 자체와 관련한 것이 아니라, 모델의 형태를 가진 추상과 관련. 즉 「우선 가장 먼저 기본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건, 사회 구조의 개념은 경험적 실재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실재에 의거해 구성된 모델에 관련한다는 것이다」 그 때 헤겔이나 마르크스 이후에는 부정하기 어렵지만, 실재로 자신도 또한 그러한 구조 모델을 산출한다는 것이 고려에 들어가게 된다. 즉 「자가 제작의 모델, 즉 연구 대상이 된 문화가 해석이라는 형태로 만들었다고 하는 모델」이 고려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열쇠가 되는 결정적인 질문은, 자기 자신을 이미 모델로 이끄는, 자기의 자기 기술을 이미 산출하고 있는 실재에 과학적 분석이 관여해야 할 경우에, 과학적 분석은 여전히 어떠한 자유도를 가지는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 물음은 사람이 구체적 분석에 있어 이 물음에 어떻게든 결론을 맺는 것이며, 구조주의에서는 답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무언가의 답을 구조 개념으로부터 도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1984, S.377)
- 루만의 견해에 의하면, 구조주의 이론이 비판적 사용과 보수적 사용, 좌익적 사용과 우익적 사용에 앰비벨런트한 이유도 여기에 있음. 사람은 사회 자신에 의한 자기 기술을 분석적 모델들을 가지고서 자취를 더듬어 재빠르게 빠져나가지만, 그것은 구조주의 이론에 의해서는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사항.
- 루만의 관점에 의하면, 구조주의자가 더욱 더 마음대로 텍스트에 종사하는 것처럼 된 이유도 또한 여기에 있음. 그러한 대상에 있어, 누구도 그 실재성을 다투지 않고, 실재성이라는 물음을 참으로 잊는 것이 가능. 구조주의 분석은, 그 대상이 수행하는 자기 기술과 비교해 자기 자신에 어떤 자유도를 인정할 지에 대해 물어야만 함. 그렇지만 여기서도 구조 개념은 그것들 양쪽에서 요구되기에, 구조 개념은 물음에 답을 줄 수 없음.
- 둘째로, 레비-스트로스는 구조 연구, 특히 구조의 정식화에서 수학을 이용. 이와 관련해, 그는 논문 「민족학에 있는 구조의 개념」에서, “사회과학에 있어 더욱 중요한 저작’으로서 노이만과 몰겐슈테른의 『게임 이론과 경제 행동』,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섀넌과 위버의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이론』을 거론. 또한 그는 구조주의를, 위버가 구별했던 두 가지 대비적 상태, 즉 ‘조직되어지지 않는 복합성 (disorganized complexity)’과 ‘조직된 복합성 (organized complexity)’의 차이에 정위. 레비-스트로스 이후, 구조주의자들은 복합성이라는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수학적’이라 불리는 이론 기술에 매혹. 그러나 루만의 사고에서, 이 이론 기술은 어떤 요소로 ‘있다’라는 것을 미규정인 체로 두고, 관계화에 의한 특징 짓기에 소용이 되려 함. 그래서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석에서, 이 이론 기술의 요구들을 해결할 힘은 결여. 그러니까 실제로 수행 되는 분석은, 그것으로부터 실천적으로는 모델에 대해 말할 권리만을 빌리는 것.
- 분석적 리얼리즘에 관해 몇 번 다뤘지만,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이 파슨즈의 구조 기능주의에서도 제시.
“파슨즈는, 가장 먼저, 전면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는 뉴튼과 같은 보편 이론을 염두에 두었지만, 바로 그러한 기획의 수행 불가능성을 보고, 미리 주어진 일정 구조에서 출발해, 이 구조들을 그 자체로 문제화 하는 것이 아닌 세컨드 베스트 이론에 만족했다. 파슨즈는 나중에 구조 기능주의의 이 서술을 완화하여, 최종적으로는 네 기본 기능에 정위한 그 자신의 이론 틀을 고려하며 철회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의 이론에서 이후의 발전들은, 그 구조주의적 어프로치에 이서하는 것에 불과하고, 아니 그 어딘가 그것을 간신히 본래적으로 정식화 한다. 이 구조주의적 어프로치는 행위 개념(!)의 최소 구성 요소 분석을 통해, 이론의 실재 접촉을 충분하게 보장할 수 있을 것 같은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경험적 실재에서 이론 모델로부터의 어떠한 괴리가 나타나더라도-는 가정 속에서 보여졌다.” (1984, S.378f)
- 루만의 견해(1984, S. 379~380)에 의하면, 구조주의와 구조 기능주의는 모두 인식 이론적 존재론 내지 분석적 리얼리즘에 의해 특징. 이 입장에서는, 시스템, 텍스트, 언어 게임 등등 과학적인 분석에 실재 관계가 돌아가고, 그래서 이 실재 관계의 보증은 구조 개념에 의해 주어지는 것. 즉 과학적 분석이 구조와 만남. 또한 이항 대립과 같은 간결한 형식으로 파악될 수 있는 함축에서 풍부한 배치가 인식 가능. 그를 통해, 그것은 우연히 그러한 것은 아니라는 의식, 분석 자신에 실재로의 관계 짓기를 보증하고 증명하는 비-우연성 의식이 생겨남. 분석이 추상에 관여하는 한, 자의적, 임의적인 것으로 미끄러 떨어지지 않고, 충분히 윤곽을 구비한 사태와 만날 때, 그것은 분석에 의해서, 분석이 실재와 관여하고 있는 것의 징후.
- 실재를 이러한 간결한 형식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체험은, 루만에 의하면,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초월론적 종합이나 변증법도 잘 처리할 수 없었던, 인식 이론적 의심을 어느 정도까지 해결. 칸트나 헤겔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모든 것은 훨씬 간결. 전체로 분석이 구조와 만날 때, 이것을 분석 자신만의 원인으로 할 수는 없음. 분석은 그 자신의 우발성에 관한 의식, 다른 가능성들로 열린 사고를 쥐고 수행되고, 나아가 그 때문에 분석이 구조에 조우할 때, 분석은 이것을 분석 자신이 아니라, 실재로 돌아가는 것을 어쩔 수 없게 함.  이렇나 구조주의와 구조기능주의에서 보여지는 분석의 우발성 의식의 래디컬화 때문에, 나아가 실재 자신이 필연적으로 자기의 써넣음을 행하고, 바꿔 말하면 규정불가능한 복합성의 축감을 행한다는 사고가 통제 불능한 것.
- 그렇다면, 구조 기능주의보다 구조주의에 한층 잘 적합하지만, 구조주의 입장 속에는 초월론적 특징도 변증법적인 특징도 담겨 있음. 그리고 루만의 지적에 의하면, 후기 후설에도 이 구조주의 입장과 특별하게 유사한 관점. 왜냐하면 후설이 말하는 ‘자유 변상 (freie Variation)’은 이 자유의 부정으로서 구조를 도출하고, 구조의 이 도출은 다음에 분석과 실재를 통일로 녹여내는 것이 되기 때문.
“그 때문에, 정당하게 구조주의를 오랜 인식 이론적 발전의 최종 형식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실재 문제로의 입구를 인식의 자기 분석 속에서 탐구할 수 있는 발전의 최종 형식으로서. 그 때문에 구조주의자들은 스스로 트랜스나 포스트와 같은 부호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 모든 인식 이론은, 각자 나름대로 구조주의적으로 분석되고, 혹은 파슨즈의 십자표로 수용된다. 그래서 구조주의는 어떤 고유의 인식 이론, 어떤 고유의 ‘에피스테메’를 산출하는 길로 나아가는 지에 대한 물음이 실제로 세워져 있다. 이제까지 경우,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단편 밖에 올 수 없다. 구조 개념은 충분한 이끌림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써 뒀다. 또한 현실성에 대해서의 보다 좋은 기준들을 결여 하기 때문에, 결국 구조주의 분석의 문서적 구조-의연하게 구조!-로서 충분하다고 보여진다고 하는 위험을 부정할 수 없고, 특히 파리에서는 그렇다.” (1984, S.380)
- 이러한 구조주의 내지 구조 기능주의적 이론 어프로치와는 달리, 루만의 자기 언급적 시스템이론은 인식 이론적 출발 포지션이나 기호론적 출발 포지션으로 돌아가지 않음. 이 이론은 대상의 관찰을 가지고 출발. 인식 이론적 질문은 미리 고려 밖에 두고, 연구가 일정한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바꿔 말하자면 인식이 대상의 하나로서 나타날 때까지, 인식과 대상의 차이를 이용하지 않은 채로 둠.
- 나아가 루만의 자기 언급적 시스템 이론은 구조 개념의 시스템으로의 적용에서 야기된 논의에 대해 거리를 둠. 이 논의에서는 상대적으로 불변하는 구조 지표에 의해 시스템을 기술하는데 있어, 시스템의 행동을 시스템 자신의 지표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외부 상황의 지표는 어떻게 다룰 지라는 것이 문제. 루만의 자기 언급 시스템 이론에서는 구조를 오토포이에틱한 자기재생산의 필요성이라는 관점에서 다루기 때문에, 논의의 기초는 이동. 이 이론에서 구조 개념은 많은 개념들의 편성 속에 맞춰지고, 그 때문에 구조는 인식과 대상이 일치하는 계기는 아님. 이상이 구조주의 이론의 구조 사고에 대한 루만의 인식 이론적 비판의 골자.
- 이상의 비판은 루만의 자기 언급 시스템 이론의 기본 테제, 즉 연구 대상으로 나타나는 시스템만이 아니라, 그 “관찰자도 또한 오토포이에틱 시스템이다”(1984, S. 654)라는 테제와 관계. 이 경우 관찰자는 자신의 퍼스펙티브에서 본 시스템/환경-차이를 관찰 대상이 시스템에서 사용되는 시스템/환경-차이와 구별해야만 함. 관찰자가 과학자인 경우에는, 한층 더함. 과학자는 관찰 대상 자신이 수행하는 자기 기술(자기 관찰)과 그 자기 기술을 관찰하는 과학자가 수행한 기술(대상이 수행한 자기 관찰의 관찰)을 구별해야만 함. 그런데 레비-스트로스처럼 “사회 구조의 개념은 경험적 실재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경험적 실재에 의거해 구성된 모델에 관한 것이다”라는 것만으로는, 이 구별은 이뤄질 수 없음. 루만의 사회 시스템 이론에 의하면, 사회의 과학적 분석은 사회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관찰을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래서 제2계의 관찰로 수행.
- 게다가 근대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 이론의 경우, 관찰 문제는 더욱 복잡. 루만의 견해에 의하면, 근대사회는 제2계의 관찰을 일반화하는 사회. 과학자 자신의 관찰도 또한 관찰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 만이 아님. 과학이라는 기능 시스템 자신이 제2계의 관찰 수준에서 조작을 수행하고, 게다가 과학에 의한 사회 관찰은 사회 내부에 있는 관찰이기 때문에 사회 자신의 자기관찰의 일종. 그래서 사회 이론은 이렇게 구성된 제2계에서의 관찰 관계들을 관찰하는 이론, 즉 제3계의 관찰 수준을 필요. 그 경우 구조주의 인식론과 구조 개념으로는 더욱 더 불충분.
2. 구조의 개념
- 오토포이에틱 시스템을 성립하는 요소는, 출현과 함께 사라지는 사건. 루만이 말하는 구조는 사라져 가는 이 요소에 접속 가능한 요소들의 사전 선택을 한다(사전에 가려낸)고 하는 것이 가능. 의미 분석의 경우처럼, 과잉 된 의미 지시를 앞에서 하고, 중간 선택으로서 기대에 의해 가능한 것의 한정이 행해져야 함. 사회 시스템의 구조는 이 한정을 수행하며 요소(커뮤니케이션)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함.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절에서, 오토포이에틱 시스템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직선적으로 루만의 구조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루만의 구조 사고를 그려내고 싶기 때문에, 구조에 관한 기존 관점과 비교를 하여 루만의 구조 개념을 밝히려 함. 왜냐하면 일본의 어떤 사회학자는 “루만의 사회 시스템론에서 시스템 본래의 이유-요소적인 것으로부터 이뤄진 질서 있는 전체라는 이유-가 그대로 고동친다. 그에 관해 구조의 관점이 그 정도로 명확하지 않다”고 하기 때문.
- 루만의 구조 관점이 가장 정리된 형태로 제시된 것은 『사회 시스템』의 제8장 「구조와 시간」. 처음 부분(S. 282~287)에서, 루만의 구조 개념이 확실하며 구조 개념의 일곱 가지 지표를 꺼내고 구조 정의를 제시.
- 일반 시스템 이론도 구조주의도, 복합성이라는 프로블로마틱과 관련 해서 구조 개념이 탐구, 루만도 또한 1960년대 이후 변하지 않고 구조 개념의 첫번째 지표를 복합성 문제와 관련 지어 획득. 구조는 구조화되지 않은 복합성을 구조화된 복합성으로 변환. 구조화되지 않은 복합성은 개개 요소들 각각의 관련이 등확률적으로 엔트로피적인 복합성이고, 사건 내지 상태는 언제라도 맥락 관련을 갖지 않고 있기에 붕괴해 갈 것. 산일 구조론이 시사하듯, 구조 형성은 이 우연을 이용해, 이로부터 질서를 구축. 구조 형성은 참으로 요소의 붕괴, 어떤 커뮤니케이션도 행위도 필연적으로 끝나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요소를 재생산하기 위한 정보와 에너지를 끄집어 냄. 이를 통해, 요소는 늘 구조적으로 처음으로 카테고리화 됨. 그렇다 하더라도 요소는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서 출현. 환언하면, 구조는 시간의 거리를 넘어 요소들의 관계화(Relationierung)를 규정. 루만의 시스템 이론은 요소와 관계의 관계에서 출발해, 이 관계를 요소의 질과 요소로서의 자격 짓기에 의해 본질 구성적이라 간주. 이것이 루만의 구조 형성론과 구조의 파악으로 이어짐.
- 그래서 구조는 요소의 구체적인 질을 도외시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논자 사이에 의견 일치가 보임. 어떠한 종류의 요소에서도 구조가 물질화 되었다는 것은 아님. 오히려, 구조는 요소가 교대해도 존속하고 재활성화 된다는 것. 루만의 견해에 의하면, 그렇기 때문에 둘째로 구조를 요소간의 관계(Relationen)로 정의하는 것은 불충분. 왜냐하면 각 요소의 소멸과 함께, 그 요소가 다른 요소와 결합한 관계도 또한 사라져야만 하기 때문. 이 관계가 구조 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그 때마다 실현된 관계가 다수의 결합적 가능성에서의 선택을 나타내고, 거기서 선택적 감축의 이점을, 그러나 또한 리스크를 초래하는 것에 의한 것이며, 그 경우에 한함. 그래서 이 선택만이 요소 교대의 때에 일정 불변으로 지켜지고, 새로운 요소로 재생산.
- 루만에 따르면, 구조 개념의 제3 지표는, 구조는 각각의 다른 어떠한 것이라 해도 시스템에서 허용된 요소 관계의 한정 속에 있음. 의미 시스템에서는 이 한정이 요소의 의미를 구성하고, 요소의 의미는 다음에 당연하게 또는, 그와의 결합 가능성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을 동기 지우고, 그럴 듯한 것으로 함.
- 이미 정보와 구조 인과성 설명에서 명시적으로 구조를 사례로 들어 논의를 진행했으나, 그 때는 구조 개념을 상세하게 다루지 않음. 이외에도, 오토포이에시스 기술에서, 또한 이중 우발성(사회 시스템의 형성)의 설명에서도, 구조를 염두에 두며 논의. 요소 자신의 결합 능력에 한한다는 조건 하에서 요소의 수가 늘어날 때, 추상적 수학적으로 가능한 관계 가능성 안에서의 선택과 관계화의 한정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복합성 문제), 또한 관계화가 처음으로 요소에 질과 요소로서의 자격 붙이기를 제공한다는 것-명시적으로는 이것 만을 짚고, 기대라는 개념을 사용해 이야기를 진행했지만, 그것은 바로 구조에 호소하는 것.
-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시스템의 오토포이에시스 수행에 있어서, 그 어떤 요소도 다음 요소로의 접근이 가능해야만 하고, 그를 위해 시스템은 한정을 수행한 구조화를 이용해야만 하고, 이용하고 있음. 의미 시스템의 경우, 심볼에 의한 일반화에서 본 것처럼, 과잉된 의미 지시를 앞에 두고 가능성들을 한정하기 위해, 구조를 전제. 다음으로 이중 우발성 하에서 시스템이 형성된 후라 해도, 시스템에 의해 컨트롤된 것은, 상대의 행동이 아니라, 상대의 자유 용인에서 자기 자신의 행동에 관련해 생겨나는 불확실함, 자기 자신에 의한 미래 불확실성이 있을 수 밖에 없음. 그래서 이중 우발성에서 생겨난 불확실성을 행동 그 자체 수준에서 일반화라는 형식을 통해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대의 일반화라는 형식을 경유해야만 함. 행동은 기대에 정위해 선택되는 것이고, 그래서 기대는 구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가능.
- 구조 개념의 지표로 돌아가면, 넷째로 구조 인과성에서 이미 다뤘지만, 루만의 견해로는, 구조는 생산을 수행하는 요인이 아니고, 본래나 앞에 있는 사건이라는 의미에서의 원-인(Ur-sache)인 것도 아님. 그것이 아니라, 구조 그 자체는 요소의 질과 결합 가능성이 한정되었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님.
- 그래서 구조가 수행하는 선택은 한정의 확정을 지향한다고 하는 것이 가능. 그 선택은 외부적 패러메터 한정과 내부적 한정(선택이 수행되는 것에 의해 생겨난 한정)을 구별하는 능력을 시스템에 부여. 여기에서 파생적으로, 구조에 관계하는 다섯 번째 규정이 생겨남. 즉 구조의 선택(구조를 선택하는 것)도 또한, 나아가 조건 짓는 것-예를 들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구조(전통)를 통해.
- 여섯 번째 규정은, 요소의 상호 관계 내지 상호 의존이라는 논의와 관련. 요소의 자격에 주목하지 않고 사용될 수 있는 관계 개념과 함께, 다양한 상호 의존도 또한, 구조의 중요한 지표. 그러기 때문에 위버의 구조화된 복합성 개념에 따르자면, 더욱 더 완전한 상호 의존은 달성 불가능. 그러니까 상호 의존도 선택을 통해서만 성립. 예를 들면 의존의 특수한 관점이 중립적으로 무관심한 가능성에 대해 드러난다면, 그것을 통해 우선되는 패턴이 구조 가치를 손에 넣음. 또한 일반적으로 상호 의존이 효과적으로 수립되었다면, 그 상호 의존은, 그것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한 구조 선택을 위한 관점, 그와 함께 이 구조 선택의 한정으로 역할. 왜냐하면 예를 들면 어떠한 개혁도, 그것이 상호 의존에 간섭하는 한에서, 예견은 불가능하지만 반드시 긍정적으로 평가할 이유는 없는 후속 작용을 반드시 수반하기 때문. 이러한 한정의 선택은, 다음 선택의 한정으로 작용하고, 그래서 이것이 구조를 강화.
- 끝으로 일곱 번째, 구조 개념의 탁월한 계기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구조의 (상대적) 불변성(Invarianz)에 대해서도, 루만은 주의 깊게 분석. 그에 의하면, 첫째 불변성은 무엇보다도 한정을 실효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하나의 요건. 다른 가능성의 제외는 그것이 전체로서 수행되어야 한다면, 제외되는 것의 재진입을 막는 방호를 필요로 함. 그에 의해서만, 구조 기능은 충족. 둘째 사물적 불변성과 시간적 불변성을 구별해야만 함. 사물적으로는 다른 가능성의 끝없는 관여에 대한 방호가 문제가 되고, 시간적으로는 이 방호의 지속이라는 것이 문제. 그 때문에 구조의 불변성을 고쳐 안정성이라는 것에 연결 지어 논의할 수는 없는 것
-  이상, 루만은 구조 개념의 지표로 일곱 가지를 거론. 그 위에, 이 지표들에 공통적인 분모를 ‘한정의 선택’에서 구함. 한정의 선택은, 선택으로서 다르게도 또한 있을 수 있음. 바꿔 말해 우발적. 한정의 선택이라는 것과 결합하고 있는 이 우발성이 요소 관계에 구조 가치를 주는 것. 그래서 이는 실재적으로 자기를 재생산하는 시스템 수준에서도, 또한 그러한 시스템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수준에서도 적합. 루만은 이에 기반해, 구조 개념을 둘러싼 기존 논의에서 보여진 대립 문제, 즉 구체적인 (현실에 관련하는) 구조 개념과 분석적인 (방법론적으로 도입된) 구조 개념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도출. 그뿐 아니라, 한정 선택의 선택성에 조준을 맞춰, 도대체 왜 구조 개념이 필요한가를, 또한 구조 개념에서 관계나 상호 의존이나, 불변성이라는 규정으로는 왜 불충분할 수 밖에 없는가를 설명.
- 루만의 이상과 같은 구조 관점에 의하면 관계나 상호 의존이나 (상대적) 불변성, 기타 등등으로 말해지는 것은, 모두 결합적 가능성의 한정으로 선택적으로 도입되는 경우에만, 구조의 기능을 가짐. 구조는 등확률이나 모두 임의에 다름아닌 사상에 한정을 할당하고, 발생 확률에 변화를 제공. 구조는 이런 의미에서 사전에 선별하고, 사전 선택을 수행. 이러한 구조가 한정의 선택이라 한다면, 루만이 이에 이어 수행했던 구조 개념의 정치화는 모두, 한정의 더 한층 한정에 관한 것.
3. 사건과 구조
- 사회 시스템은, 이중의 우발성 아래서 사건이라는 요소에 의해 사건이라는 요소를 재생산하는 시스템. 그 때문에 루만은 구조 개념을 이 오토포이에틱한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그 기능에 더욱 한정하고, 정치화하려 함. 사회 시스템에 있는 한정의 선택은, 그것이 이중의 우발성이라는 조건 하에서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경우에만 구조 가치를 획득. 한정에 수반되는 리스크에 대한 고려, 바꿔 말해 기대 밖의 가능성의 선취가 구조 속에 끼워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시사.
- 이미 루만은 1960년대 파슨즈의 구조 기능주의에 대신해 기능 구조주의적 사회 시스템 이론을 제안하면서, 구조와 과정을 시간적으로 각기 불변이고 유동적이라는 풍으로 대치하는 일반적 견해와 이별을 고하고, 시스템은 구조와 과정이라는 2단계 선택을 수행하지 않고, 2단계로 복합성을 감축한다는 견해. 이 2단계설은 오토포이에틱 시스템 이론으로 이행한 뒤에도, 복합성 감축에서 요소 생산(조작)으로 장면을 바꿔 유지. 구조는 그 자신이 선택을 통해 성립하기 때문에, 어떤 가능성 유역을 전제. 또한 구조에서, 다음에 이어지는 요소의 계속적인 규정은, 가능성들의 배제에 의해 성립. 과정에서는, 이전/이후의 차이가 결정적. 과정은 잠시 현재적인 것의 끝에서, 적합적이지만 그러나 그것과 구별되는 새로운 요소로의 이행을 실현하는 것을 통해 과정이 됨. 양자, 즉 배제와 접속의 탐구는, 동시에 다르게도 있을 수 있는 우발적 절차. 그 때문에, 양자를 손을 쥐고 일하는 것이 가능. 루만은 이를 전제로 사건/구조-이론, 포스트 구조주의적 이론을 정식화. 이 사건/구조-이론에서는 요소 수준에 있어서 자기 언급(기저적 자기 언급)을 시야에 넣어 논의하기 때문에, 종래의 모든 구조 이론과 다른 구조 이론이 도출.
- 사건과 구조의 관련에 대한 고찰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시간의 처리방식, 시간을 짜 넣는 방식.
- 루만은 논문 「복합성의 시간화」(1978b)이래, “사건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어떤 객체도 시간의 경과에 대한 관계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귀결을 끌어낸다. 객체들은 존속할 때에는, 시간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 사건은 오히려 소멸하는 것을 우선한다.”(1984, S. 389f) 사건은 출현과 함께 사라짐. 사건은 그것 만 가지고 본다면, 특징 짓기를 받아 들이지 않고, 시간 위치에서만 동정하는 것은 가능. 사건은 그것이 출현하고 사라지는 그 현재, 순간적인 현에 붙어있음. 사건은 시간적으로는 사건 이후에는 사건 이전과는 다른 결과가 되는 어떤 관계화 패턴의 활성화에 의해 경계가 나뉨. 사건은 이 교대의 현재성에 의해 정의되고, 그래서 사건은 그 자체 교대의 현재성에 의해 현재의 경계를 정의. 그래서 사건의 동정을 위한 시간의 측정은 필요하지 않음.
- 시간 요소로서 사건의 사건성은 그렇기 때문에 단지 사건의 어떤 일정 시점-그 이전은 아니고, 그 이후도 아닌-에 있어서 가능하다는 것만으로 있는 건 아님. 시간은 차라리 의미 규정에서 하나의 차원. 이는 사건에 있어 단지 사건 자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관련성(유의성)에 따라서 동시에, 하나의 과거와 하나의 미래가 새롭게 형태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 예를 들어 바캉스 도중에 자택이 전소했을 때, 이는 바캉스로 있던 것, 즉 바캉스의 의미를 변화. 화재 보험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당장 주거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등등이 당장 차례로 판명. 어떤 사소하다 보여지는 사건에서도, 사건인 한 이와 마찬가지. 사건이 구절을 넣는 점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사건에 의해 과거와 미래가 변화하기 위한 조건.
- 우리는 사건을 예측하고 상기. 사건을 의미 규정의 변경을 위해 이용하기 때문. 사건의 시간 경계가 생겨나는 것은 이 기능 때문이지, 캘린더나 시계 때문이 아님. 그 때문에 사건은 각각의 사건에 있어, 그래서 그 사건에 있어서만 정해지는 그 자신의 미래를 가짐. 개개의 사건에서만 과거와 미래의 일의적 차이가 있음.
- 예로 다수 사건의 개념적 요약이 가능하다 해도, 사건을 합치는 것으로 구조나 존립이라는 것에 이어질 수 없음. 왜냐하면, 어떤 다른 질의 통일이 문제가 되기 때문. 사건의 집합은, 그 자체로 아직 구조는 아니고, 하물며 존립하는 것은 아님. 마찬가지로 사건과 과정의 관계에 대해서도 해당. 점을 단순하게 더해도 선이 생겨나지 않는 것처럼, 사건을 단순하게 더해도 과정은 생겨나지 않음.
- 사건은 출현과 함께 사라짐. 사건은 그 순간적인 현재에 연결되어 멈춤. 그래서 사건은 그 현재의 질을 이어받는 것, 즉 다음 사건에 현재를 건내는 것이 가능할 때, 이 사건은 다음 사건에 있어서는 과거. 사건은 자신의 미래에 있어서는 과거. 그러나 사건은 또한, 시간 속에서만, 그래서 시간의 덕택으로만, 사건으로서 시간을 자르는 점처럼 출현하는 것이 가능. 사건의 이 시간적인 점으로써 구절을 넣기(Punktualisierung)는, 사건의 소멸을 통해, 시간에 대한 자유를 실현. 그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자유. “이 자유의 획득은, 구조 형성에 의해 갖춰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건에 의해 사건의 재생산을 규제하는 것이, 그 결과로서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1984, S. 390)
- 개개의 커뮤니케이션은 이러한 사건. 커뮤니케이션은 나타난 순간부터 사라짐. 사회 시스템은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사건에 다음 커뮤니케이션 사건이 접속하는 것에 의해 성립. 그러니까 사회 시스템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사건을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구조를 발전시겨야만 함.
- 각각의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사건으로서 그 자체로 본다면, 시간에 대한 관계에 있어 자유를 획득. 그 때문에 사회 시스템은 커뮤니케이션 사건을 연결 짓는 구조, 코집스키(Alfred Korzybski)의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시간을 연결시키는 (time-binding)’ 기능을 필요. (1980a, S. 46ff) 이 기능은 사태적으로는 의미의 지시 구조에 따라 채워 짐. 커뮤니케이션은 각각, 그 의미 지시에 기반해, 이 커뮤니케이션의 현재적 순간을 넘어서 다음에 가능한 것을 예시. 그래서 이에 의해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전제들(Prämissen)을 정함. 여기서 커뮤니케이션 사건의 순간을 넘는 기억도 또한 모자라는 부분이 채워지게 됨.  커뮤니케이션 사건은, 불연속성으로 사라져가는 시간에 대해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운동이 아니라, 차라리 시간을 연결 짓는 사건. 시간을 연결 짓는 사건을 통해 구조가 형성되고, 이 구조에서 전체로서 처음으로 시간이 출현하는 것이 가능. 여기의 연결은 수정 변경의 조건이기도 하고, 여기서 유지되는 것은 변화의 조건이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확인과 놀라움을 위한 기초로서, 선행하는 것의 해석과 접속행위를 위한 기초로 투입. 커뮤니케이션은 순간의 현재성에서 다음 커뮤니케이션 기초의 형성을 가능하게 함. 커뮤니케이션은 그 순간에 있어서는, 그 규정성의 어느 정도에서 앰비발란트이고, 그 결과인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연결은 어느 정도에 있어서 앰비발란트. 바로 그런 이유로 언제나 이미 커뮤니케이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도 새로운 것으로 경험 가능하길 계속.
- 루만의 견해에 따르면, 구조는 커뮤니케이션 사건을 연결 짓는 기능을 완수. 구조는 다소 불변적으로 지속하는 존립이 아니라, 연결 짓는다는 이 기능을 통해 시간에 대한 제1차적 관계를 가짐. (1984, S.390) 커뮤니케이션하는 것 일반은, 그래서 또한 사회 시스템은 이 연결 짓기 없이는, 마지막으로 현재화된 사건과 함께 소멸.
- 각각의 사건, 또한 각각의 커뮤니케이션은, 놀라움을 위한 적어도 최소 계기를 가짐. 종래의 건에 대한 무언가 두드러짐으로 나타남. 그런 한에서, 새로움은 커뮤니케이션의 창발에 의해 구성적. 새로운 것은 모두 특이. 새로움이라는 이 구성요소에, 커뮤니케이션은 그 일회성과 유일성을 짊어짐. 예를 들면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사건으로 분해된 시간이, 커뮤니케이션에 그 개체성을 부여. 마찬가지로, 역으로 놀라움이라는 구성요소가 없다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시간화(시제화)되지 않을 것이고, 일정 시점에 닻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 놀라움이라는 계기가 없다면, 구조 형성이라는 것도 없음. 왜냐하면 연결해야 할 무언가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 여기서 새로운 것은, 계속 새롭게 있을 수는 없음. 새로운 것은 지나간 것과 앞으로의 것이라는 자신의 시간 지평을 구성. 새로운 것은 그를 통해, 바로 다시 시간의 연속체 속으로 돌아 감. 그에 의해 새로운 것은,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취급.
“기대 가능성의 이 재수립은, 안정성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재생산의 필요조건이다. 기대는 행위의 재생산에 있어서의 오토포이에틱한 필요조건이다. 그런 한에서 기대는 구조다.” (1984, S. 391f)
- 기대 구조는 접속능력이 있는 커뮤니케이션, 접속능력이 있는 행위의 가능성의 조건이고, 사회 시스템에서 요소 재생산의 가능성 조건. 요소는 시간에 멈춰서 있기 때문에, 요소는 갱신돼야만 함. 그렇지 않다면, 현재는 과거로 소실되고, 어떤 것도 계속되지 않음. 커뮤니케이션 혹은 행위의 의미는 한층 더 커뮤니케이션 혹은 행위의 기대 지평 속에서 구성된다는 것을 통해 이것은 방해. 의미 시스템의, 그래서 또한 사회 시스템의 오토포이에시스는 회귀적 네트워크 속에서 요소(조작)의 소급과 선취를 통해 수행된다고 이야기. 이 소급과 선취는 이것에 기반.  
“실제 예를 들면 ‘��관의 벨을 누른다’라는 행위는 벨을 누르는 그것 만이 아니다. 이 행위의 의미는, 현관의 도어가 열린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벨을 누른다는 것은 끝나지 않으면 안 된다. 벨을 누른다는 것은 벨을 누르기 계속하는 것에서, 혹은 나아가 또 한 번 벨을 누른다는 것을 발생한다는 것에서 참으로 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벨을 누른다는 것은 구별가능한 통일을 갖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현관의 도어를 연다는 것은 다른 행위이고, 일어나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사건이다. 그것이 지금 일어나는가 아닌가하는 것이, 즉 이 다른 사건에 대한 (그래서 더욱 더 다른 모든 사건에 대한) 차이가, 벨을 누르는 것과의 동시 의미인 것이다. 동일성과 차이가 없다면, 벨을 누르는 것 그것은 사건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행위는 아닐 것이다.” (1982b, S.370)
- 이 예에서 보는 것처럼 행위의 접속 능력은, 행위라는 사건 요소의 자기 언급, 즉 기저적 자기 언급을 통해, 그래서 이 기저적 자기 언급은 행위라는 사건 요소의 동일성과 차이의 통일이라는 것을 통해 확보.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도 물론 적합. 구조는 이러한 기저적 자기 언급과 시스템의 자기 언급적 재생산이 수행되기 위한 가능성의 조건. 그래서 ‘구조 개념은 요소의 사건성에 대한 보완적인 개념’. (1984, S.393) 이상이 사건/구조-이론의 골자.
- 마찬가지로 의미 시스템의 오토포이에시스에 있어서 접속 능력에 대한 보증자인 단위체는 각기 자기 언급적으로 형성되는 단위체로만 있을 수 있음. 그러니까 루만의 자기 언급적 시스템 이론은 요소 개념의 집요한 해명을 통해 획득되어야 하는 것.
- 요소는 그 자신, 자기 관계적으로 형성된다는 것, 그 때문에 기저적 자기 언급이라는 관점은, 루만의 해석에 따르면, 이미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 채용.  
“화이트헤드는 기저적 사건의 자기 언급은 그것들의 통합가능성(nexus라는 개념)에서,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그것들의 현실성에 있어서 전제라고 극히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개별존재는 그 자신에 있어서의 의의 짓기를 가진 경우에 현실적이다’ 이 ‘그 자신에 있어서의 의의 짓기를 가진다’는 것은, 요소의 통일이 동일성과 차이의 통일로서 구성된 경우에만 성립한다. 그래서 개별 사건은 자기자신과의 동일성과 자기자신에 대한 차이의 양쪽을 자기 속에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될 때에만, 개별 사건은 ‘넥서스’ 속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1982b, S. 370)
- 이런 한에서, 의미 시스템에 적용되는 루만의 오토포이에시스 이론은 마투라나의 오토포이에시스라는 관점을 화이트헤드의 코스몰로지와 결합하려고 하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이 결합에서 화이트헤드가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에 오토포이에시스가 나타나고, 마투라나가 ‘구성 요소(component)’에 대해 말할 때 ‘개별 존재(entity)’ 혹은 ‘사건(event)’이라는 화이트헤트의 개념이 나타남.  
4. 사회 시스템의 구조로서의 기대
- 사회 시스템의 구조가 기대로 이뤄지는 것은, 이미 『법사회학』(1972)에서 상세하게 논함. 『사회시스템』(1984)에서는 “사회적 구조는 기대 구조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다”(S. 397)라는 논증이 추가. 즉 『사회시스템』에서는 기대 이론에 사건/구조-이론을 겹쳐, 사회 시스템 구조에 대해 다음 테제가 도출.
“사회 시스템의 구조는 기대 안에 있고, 사회시스템의 구조는 기대 구조이며, 그래서 사회 시스템에 있어서, 사회 시스템은 그 요소를 행위 사건으로 시간화 하기 때문에 다른 구조 형성의 가능성은 없다.” (S. 398f)
- 그 때문에 『사회시스템』 및 그 이후는 요소와 구조의 관계는 커뮤니케이션 사건 혹은 행위 사건과 기대(및 기억)의 관계로 고찰. (1984, S. 396~399)
- 기대는 막스 베버의 행위 이론에서 이미 등장했지만, 그 후 역할 이론이나 의사 결정 이론이나 게임 이론이라 불리는 이론 속에서 점점 더 중요한 위치. 루만은 기대 개념을 사회 시스템 이론에 도입하면서, 그 이론에서 이미 확증을 마친 기대 개념의 사용 효용에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 루만은 그 모두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고, 기대라는 개념의 개념성을 다시 해명하고자 함. 루만은 의미 분석에 이미 기대 개념을 도입. 의미는 과잉된 지시를 한다. 과잉된 지시에 직면해 복합성을 감축하기 위해서, 중간선택이 수행. 이에 의해 의미 지시가 좁혀지게 됨. 이것이 기대. 이를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기대는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미래를 앞에 두고 현재에 수행 되는 복합성 감축의 일형식이라는 것이 가능. 기대는 가능성 유역의 한정으로 발생. 기대는 이런 한정이고, 한정에서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참으로 기대되는 것. 이렇게 해서 형성된 기대의 중요한 효과의 하나는, 일탈적 사상이 기대에 조응해 착란으로 보이게 된다는 것이고, 그 때 사람은 그것을 위한 이유를 알 필요가 없음. 여기서 효과의 현저한 복합성 감축.
- 기대의 형성은 많은 고도의 이질적인 사상들을 ‘기대의 벗어남’이라는 공통분모로 균일화하고, 그에 따라 사상 취급선의 윤곽을 그림. 기대의 벗어남에 대해 사람은 반응할 것을 강제. 여기서 사람은 기대를 벗어난 상태에 기대를 적응시키는(학습) 것이 가능하고, 혹은 참으로 반대로, 기대의 벗어남에도 불구하고, 그 기대를 견지하고, 기대에 있는 행동이 실현해야 하는 것(규범)을 언제까지라도 주장하는 것도 가능. 인지적 기대 양식을 취할까, 규범적 기대 양식을 선택할까 라는 것은 시스템 내부에 앞서 구조화되는 것이 가능. 그래서 어느 정도, 어느 방향에서 일탈의 원인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 가는 이 구조화에 의존. 어떤 문화의 의미론적 장치에서 ‘지식’으로, 혹은 ‘규범’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모두, 비상한 종류의 다른 사건에 기대 벗어난 형식을 초래한 이 기대 형성에 의한 선행적 감축에 기반.
- 이 기대개념에 기반할 때, 파슨즈의 행위론처럼, 기대를 행위의 속성으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 오히려 기대와 행위의 관계는, 행위에서 보면, 구조와 행위의 관계. 구조와 행위의 관계는 상호적 가능화의 관계. 이러한 관점을 취할 때 정말 질서를 질서로부터 독립한 시원으로 돌리는 것은 단념해야 함. 이중 우발성에서 본 것처럼, 상대적으로 우연적인 커뮤니케이션 사건, 행위 사건은 그것들이 나타날 때, 그것들의 사상을 통해 기대 형성적으로 작용하고, 그래서 접속 사상은 그 경우에 보다 적지 않게 우연적으로 진행.
- 심적 시스템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사회 시스템의 구조는, 그 순간 현재적 구조로만 존재. 구조는 현재의 미래를 현재의 과거와 통합하고, 현재의 시간 지평 속에서만 시간에 개입. 그래서 기대의 미래에서 기대를 벗어남은, 사회 시스템에 구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 사회 시스템의 구조는 심적 시스템의 ‘주관적’인 구조가 아님. 예를 들면 사회가 이렇게 있어야 하는 것으로서 있는 것(사회의 규범)은, 당신이 혹은 내가 이렇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규범적인 기대)과는 다르고, 당신도 나도 이러한 두 가지를, 즉 사회 시스템의 기대와 심적 시스템의 기대를 용이하게 구별하는 것이 가능. 각 심적 시스템의 기대와 마찬가지로 사회 시스템의 기대도 또한 의미라는 형식을 취하고, 취하지 않으면 안 됨. 그러나 사회 시스템의 기대는 심리 내적 과정은 아니라, 기대를 통해 자기를 구조화 하는 자기 언급적 시스템, 즉 사회 시스템에 관계하는 것. 그래서 그러한 구조가 어느 정도까지 관찰자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것은, 그래서 또한 관찰된 시스템 자신에도 접근 가능할 수 없는 관련들을 관찰자가 어느 정도까지 보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것도, 다른 문제. 그러니까 루만은 ‘잠재적 구조’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늘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
- 루만의 사회 시스템 이론에서, 기대는 구조를 형성시키는 시간 형식. 루만의 견해에 따르면, 사회 이론에 있는 기대 이론에서 결여할 수 없는 것으로 또 한 가지, 기대의 기대, 즉 기대의 반성성이라는 문제. 이미 『법사회학』(1972)에서, 재귀 반성적 기대 없이는 사회적 구조의 형성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상세하게 논증. 기대는 그것은 그것 대로 기대될 때에만 사회적 관련성을, 그래서 사회 시스템의 구조로서 적성을 획득. 그에 의해서만, 이중 우발성을 수반하는 상황은 질서. 그에 의해서만 기대는 두 사람 이상의 참가자를 수반한 사회적인 장에 질서 짓는 것이 가능. 자아는 그 자신의 기대와 행동을 타자의 기대와 조정할 수 있기 위해, 타자가 자아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기대해야만 함. 기대하는 것의 재귀 반성성이 확보될 때에만, 자기 컨트롤도 또한 재귀 반성성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 그리고 나서 사람은 행동에서 기대의 제3단계의 반성성을 필요. 예를 들면 자신의 기대를 기대에서 벗어나게 한 타자의 행동을 감수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장래에는, 역시 이 사람의 기대 벗어나게 하는 기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 자신의 행동에 조응 하려는 기대를 기대하는 것을 계산에 넣어야만 함. 이 때 사회적 기대 연관은 재구조화. 그러니까 사람이 그것을 미리 고려해서 그것을 막으려 할 때, 상황의 진단은 재귀 반성성의 제3단계를 필요로 하는 것.
- 이에 기반해, 루만은 기존 이론에서 점점 더 기대의 상보성으로 이해되는 단순한 파악은 수정돼야만 한다고 주장. (1984, S. 413~415) 기대하는 것의 상보성은 단지 행동의 멘탈 수준에 있는 모사가 아님. 예를 들면 주는 사람은 이 사람이 주려 하는 것도, 받는 쪽에서 그가 주는 것이 완료되는 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래서 같은 행동(주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단순하게 이러한 것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님. 이는 당연히 올바르고, 계속 필요. 그러나 기대의 기대 수준은 이것을 넘어, 행동을 조종하기 위해서 기대하는 것의 통합의 추가수단을 제공. 재귀 반성성의 수준은 그 자신의 감응성을 수반하는 창발적 질서 수준을 형성. 주는 것/받는 것의 전체 도식은 이 수준에 말하자면 또 한 번 모사. 그래서 이것은 타자가 단지 받을 용의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주는 것의 수용의 용의도 있어야만 하는 것, 그래서 그 때문에 일정한 상황에서 주는 것/받는 것의 하나의 전체 복합체를 받아들이는 것 - 혹은 또한 (예를 들면 감사의 빚을 피하기 위해) 이것을 피하려는 기대, 그 어떠한 행동 양식 -이 고려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함.
- 기대 이론에 따르면 기대의 기대는 모든 참가자에 있어서, 시간을 넘는 정위, 그래서 이 의미에서 구조적 정위를 상호적으로 상정하는 계기. 이에 있어 사회 시스템이 단순한 반응 연쇄 같은 형태로 형성되는 것을 막는 것. 사회 시스템은 어떤 사건이 많건 적건 예견 가능한 형태로, 결과로서 다음의 사건을 끌어 내는 것 같은 반응 연쇄는 아님.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그러한 시스템은 바로 방향을 잃어버릴 것.
- 이상에서 루만은 사회 이론에서 기대와 기대의 기대를 구별하려 했다는 것의 의의도 또한 분명함. 사람은 자연의 사건을, 사물의 일정성을, 사물의 붕괴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 이에 대해 기대의 기대는 이것 자신이 고도의 불확실성과 임의성의 상관물인 것이지만, 사람에 향해서만 돌리는 것이 가능. 사람은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포함한 의미에서의) 행위 하는 것도 또한 가능한 누군가에 대해서만, 기대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 다시 말하자면, 자��자신의 기대에 정위해서, 그 기대를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포함한 의미에서의) 행위로 전환할 수 있는 누군가에 대해서만, 기대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 여기서 문제는, 타자의 지각을 단지 지각하고 기대하는 것 이상의 것. 그것 만이면, 의미의 일반적 사회적 차원만으로 충분. 자/타-관계의 속에서 행동을 기대 가능하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행동을 ‘탈-자연화’한 기대 가능한 사회적인 사건으로 하는 것은, 기대의 기대라는 우회로. 그래서 행동의 이러한 ‘탈-자연화’는 기대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의 기대에 의한 뒷길이 점점 더 필요하게 됨. 루만은 사회 시스템의 구조를 이렇게 설명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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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121sun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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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h-tag-official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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