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rless-grace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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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와 산다는 건, 매일 내 안의 편견과 마주한다는 것.
글을 시작하기 전에, 나 또한 이런 편견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이 부끄럽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고백하는 마음으로 투명하게 쓰는 글이니, 너 후지다고 너무 뭐라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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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오기전, 막연히 상상했던 모습은 넓은 숲과 들판에서 노는 ��거루와 딩고류 동물들, 그리고 해변에 방목형으로 누워있는 펭귄이나 바다표범 들이었다. 옷을 잘 못입을 것 같은 느낌의 (악ㅋㅋㅋ) 덩치 큰 백인 아저씨 아줌마들까지, 그게 내 안에 입력된 호주의 이미지였나보다. 말 그대로 풍요와 여유를 상상하며 호주 비행기에 올랐다. 실제로 와보니 생각했던 이상으로 풍요로웠고 여유롭긴 했으니 일단 절반은 맞았다고 해도 되려나. 하지만 절반은? 이 사회에서 나를 포함해 딱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Aussie 이외 모든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호주에 와서 살아보겠다고 풍요로운 호주의 파이를 나눠먹기 위해 밥그릇 싸움 중인 사람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각박한가, 하지만 사실인걸. 호주에 오면서 찾았던 여유는 사실 이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며 자라면서 터득한 생활방식 같은 것으로, 막 이곳에 왔다고 누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 또한 사실. 우리는 호주에 와서 ‘여유로운 기분’이나 ‘여유로운 사람들의 습관’을 보고 조금 배워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본투비 여유는 결코 우리가 바로 누릴 수 있는 영역의 것들이 아닌 것 같다. 마음이 급하고, 뭐든 한번에 효율적으로 해내야하는 나는 여기서 지금까지 살아온만큼 살아야 조금 중화가 될까.
상상했던 바와 달리 이 곳에서 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생활하며 살아간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나의 삶은 비지터의 레벨로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으며 심지어 이민자의 레벨에 가지 않은 경계에 놓인 삶의 방식은 종종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곳에 와서 일을 함께 하거나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절반은 이민자. 시드니에서는 절반 이상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실상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한 채,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 부끄럽지만,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 위치에 처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내 안의 편견은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와 못사는나라를 은연중에 구분해두고, 마음대로 그들의 생활 방식이나 교육수준을 미리 고정해버렸다. 그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늘 일하며 만난 네팔 친구들이 실은 호주에서 IT를 전공했다는 걸 들었을 때, 한번. 그들이 ‘손흥민’을 이야기하며 한국의 군��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나는 한다는 말이 고작 ‘다큐멘터리에서 봤는데 너희 나라 자연이 너무 예쁘더라’ 였을 때, 또 한번. 이후에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들은 힌두교, 불교, 기독교를 포함해 총 네개의 종교가 나라 안에서 주요하다는 이야길 듣고 ‘나 힌두교의 성지인 인도 리시케시에 가봤어’ 했더니 ‘거기 네팔이랑 국경을 두고 붙어있어서 엄청 가까워’ 했을 때 또 한번.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2017년 북인도에 갔었을 때, 분명히 지역 별로 계통에 따라 인도 사람들 생김새도 다 다르며 특히 네팔 계통의 사람들이 이 곳에 많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아예 잊었던 것. <팩트풀니스>를 읽으며 받은 충격이 떠올랐다. 우리는 우리 이외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알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것. 아는 것도 잊어버리는 마당인데 말해 뭐할까. 맨날 글로벌시티즌인척하면서 어느 누구랑도 다 친구될 수 있다고 생각해놓고, 또 말만 그랬다는게 부끄러웠다. 그치만 다음에 나올 내용에 비하면 이건 그래도 귀여운 수준. 
이건 호주에 온 순간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달 내로 바로 깨지게 되는 편견. 한국에서는 몸으로 하는 노동은 Difficult, Dangerous, Dirty 한 일과 동일시 되거나, 얻기 쉽거나 그 수준이 쉬울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정 반대이다. 남들이 하기 꺼려하거나 위험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들은 그 일 자체를 하려는 노력을 희귀하게 보고, 높은 페이를 받는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로만 립서비스하지 않고, 페이로 리스펙트를 보여준다. 심지어 그 일을 따내는게 쉽지도 않다는 거. 내 친구들 중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처음 호주에 와서 하려고 했던 여러가지 일들 (요가 자격증 따기, 여행가기 등)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아예 무산되면서 나는 다양한 일이라도 경험하자며 이곳 저곳 이력서를 보냈다. 그러나 숟하게 지원했던 카페 올라운더나 오피스 청소 잡들 대부분 서류광탈했다. 운 좋게 면접을 본 곳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기간이라 경력직을 구한다는 대답을 받았었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겐 생활을 책임지는 ‘생업’인 일을 나는 그저 다양한 경험쌓기 정도로 접근했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다. 이 곳에서 ‘몸으로 하는 노동’을 채용할 때는 그 요건들과 안전을 위한 프로토콜을 모두 명문화 해둔다. 그러니 페이도 자동으로 높을 수 밖에.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늘 말해왔으면서도 나는 사실 그 일들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혹은 그 일을 내가 못해낼 거라고 스스로의 능력을 제한했거나, 쓰면서도 부끄럽지만, 나는 좀 더 복잡한 일을 한다고 여겼던게 호주에 오자마자 드러났었다. 그럴거면 ‘어떤 일이든지 하면서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따위 넣어뒀어야 했는데, 머리부터 가슴까지 너무 거리가 멀었다는게 드러났지 뭐야. 호주에 오기 전, 브런치 글을 읽다가 한국 사람들이 청소를 많이 한다는 걸 알게 되었었는데 그때도 그게 내가 하게 될 일이라는 생각은 안 했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인생 처음으로 청소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원래 프로페셔널하게 청소를 하던 팀에 T.O.가 급히 생겨서 청소 경력이 전무한 내가 운 좋게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래서 번 돈은? 내가 사무실에서 마케팅 전략 기획을 하며 이틀간 미팅에 미팅을 거듭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돈을 단 하루만에 벌었다. 이러니까 이 곳에서는 오피스에서 일하는 걸 현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라고 대놓고 치켜세우지 않는 것이다.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에게 물어보니까 사회는 묵묵히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걸 교육에서부터 강조한다고 한다. 뭐 이건 모르니까 부러워하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타격을 받았네. 지금까지 반은 자의로 반은 ���로나바이러스라는 환경적인 이유로 호주에 와서도 마케팅 관련된 일만 주구장창 해왔는데, 처음으로 다른 일을 해서 수익이 생긴거였다. 그것도 내가 말로만 괜찮다고 하던 몸으로 하는 노동, 해보니까 나에게 잘 맞는 거였다. 몸 쓰는거 좋아하고 머리쓰는거 이상으로 잘 해낼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머리를 비우고 손걸레, 빗자루질 혹은 청소기를 돌리다보면 건물이 깨끗해져 하는만큼 성과가 바로바로 보이는 정직한 일이었다.  파트타임으로 마케팅을 하면서 또 다른 파트타임으로 때때로 청소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시켜만 주신다면요. 단순히 돈을 많이 줘서가 아니라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Hoxy....나 또 정신승리하는거야? 아무튼 유튜브를 보다가 이 신박한 경험을 한국에서도 하고 있는 분이 계셔서 더 대단하다 생각했다. 호주처럼 일에 대해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니라 마음에 상처를 받을 일이 많으셨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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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나 또한 갭이어로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말 할 때 사람들이 보통 농장을 많이 떠올리기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나 뭐든 다 해볼거야, 아무것도 못 하겠으면 딸기 농장이나 가서 일하지 뭐’ 했었다. (이 무슨 고3 대상으로 인강에서 ‘공부 못하면 호주 가서 용접이나 해’ 했던 강사 같은 망발이지...반성합니다.) 호주를 1년만 경험하고 갈 생각이라면 농장은 가지 않아도 되지만 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여행도 다양한 일도 마음껏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갭이어의 의미에 충실하고자 호주에서 1년 더 지내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그 말은 비자 연장을 위해 88일간 농장에서 일해야한다는 걸 의미한다. 호주 정부에서 지정한 인력 부족 지역에 가서 지정된 카테고리의 일을 88일간 해야하는 것이 두번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는 조건이다. 이걸 결정하고 나서, 현재 일하는 곳에 더 머무르기보다는 프로페셔널하게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 하고 농장에 가겠다고 한국의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시드니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먼저 시드니에서 만난 친구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그래, 언제 농장가서 일하는 경험을 하겠어. 가서 재밌게 놀다와!’라는 반응이 주요한 반면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은 나를 걱정했다. 너 나이가 몇살인데, 20대도 아니고 농장가서 뼈빠지게 고생하지 말고 그냥 한국 오면 안되겠니. 특히 아빠가 많이 마음아파하셨다. 모두 100% 이해가는 반응이다. 왜냐면 나 또한 머리에서 마음까지, 그리고 마음에서 행동까지의 거리가 딱 반년 걸린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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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나는 농장에 죽으러가는 것이 아니고 즐기러 간다. 꼭 농장에서 일하는 게 치열하고 돈을 벌기위해 절박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게 나를 갈아넣으며 일 할 생각도 없다. 속세와 좀 떨어진 지역에 가서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하고 일한만큼 댓가를 받는 정직한 삶을 살면서 머리를 더욱 비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시골 행을 택하기에 2% 부족하다면, 비자를 받아서 할 수 있는 호주에서의 여행과 경험들이 그 당위성을 만들어줄 것이다. 내게는 더없이 설레고 기다려지는 기회인데,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모두가 뜯어말린다. 그런데 내가 김연수 작가님이 그랬다. 어른들이 말리는 거 하면서 살면, 인생을 잘못 살지는 않는 것 같다고. 무엇보다도 나는 아무 시골 농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호주에 오기를 계획할 때부터 가려고 했던 타즈매니아의 어느 농장/ 공장에 갈 것이다. 호주 내륙에서도 아직 못 가본 이들이 많은 호주의 제주도, 타즈매니아.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그 곳에 가는 것을 1순위로 두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퍼스와 캔버라라는 공동 2순위의 옵션들도 있기 때문에 선택은 자유롭다. 뭐든 책임은 내가 지는 거니까 그냥 가시죠. 진정한 갭이어를 보내기 위해 매일 고민하고 또 즐기면서 하나하나 결정해나가는 과정에 있어 매일의 편견과 만나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해온 것들과 미래의 내가 할 것들을 이어가는 그 과정에,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었겠지. 익숙한 주변의 잡음은 다 끄고, 안 해본 것들을 하면서 하나하나 벽을 허물고 나면 어느새 조금은 더 사랑에 가깝고 ���기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한다. 편견의 벽을 허문다는 것은 내 안에 자리잡은 두려움을 깬다는 걸 의미하니까, 언젠가는 조금 더 완전함에 가까워지겠지. 그런 기대가 없으면 우리 앞에 놓여진 하루를 뭘로 채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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