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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손자
livlovlun119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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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1493-1546) 인쇄술 교회의 분열 / 1517 비텐베르크 / 종교개혁 95개 반박문 / 마인츠의 알브레히트 주교 / 에라스무스 토마스 모어 / 1493 광부의 아들 / 한스 루더(광산업자 문학석사 아버지) / 아이제나흐 외가 / 에르푸르트 대학 법학도 /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 율리오 2세 현 교황 알렉산데르6세 보르지아 전임 교황 / 요한 폰 슈타우피츠(멘토 직속상사 교회 정치가) / 성 베드로 성당 건축 비용 면죄부 / 교황 레오 10세 알브래히트(마그데부르크 대주교 ; 마인츠 대주교=신성로마제국의 왕자 ; 호엔촐레른 가 일원 ; 형 요아힘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야코프 / 요한 테첼 구원 세일즈맨 / 인쇄술 루터 종교개혁 / 1517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논제 망치질 독일어로 민중에게 종교개혁 촉발 / 인쇄업자들이 판매가능성 캐치 대량 인쇄 판매 / 테첼과의 설전도 다 인쇄물로 출판 / 카예탄 추기경 / 신학자 요한 에크 루터의 동료 안드래아스 카를슈타트 / 루터 3년간 적어도 50만부 출간 / 1520 인쇄술 발명이후 가장 많은 작품을 출간한 생존작가 / 멜시에르 로터 라이프치히 인쇄업자 /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 프리드리히 선제후의 궁정화가 인쇄업도 겸업 / 삽화 추가 / 보름스 회의 / 카를 5세 / 수호천사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유일한 루터 편 / 안드레아스 칼슈타트 2위 스위스 개혁가 울리히 츠빙글리 3위 출판물량 / 추후 완고함으로 개혁을 통합할 인물은 아니었음이 드러남 / 토머스 뮌처(영적 종말론적) 요하네스 타울러(신비주의) / 뮌처 하인리히 파이퍼 농민 반란 촉발 / 금융 신용 인쇄술이 종교개혁 촉발 /
슐레이만(1520-1566 재위 10대 술탄) 대제와 오스만 제국 / 1526 8월 31일 헝가리 왕국의 모하치 / 예니체리(전문적 노예 병사) / 데브시르메 시스템(예니체리) / 오스만 -1324 오르한 1324-1362 / 바예지드 1세 메흐메트 2세 바예지드 2세 셀림 / 슐레이만(메흐메트의 증손자) / 베오그라드와 로도스 / 헝가리 모하치 / 비엔나 / 페르디난트 자폴리아 / 이브라힘 파샤 / 오스만 방식 / 하이레딘 바르바로사(북아프리카 해적) / 티마르 시스템(토지) / 슐레이만 이후 쇠퇴 / 술탄 경쟁 사라짐 관료주의의 한계 영토확장 마무리 등으로 서서히 국력 쇠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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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ddydihn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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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티 로버츠(Monty Roberts)가 왕실에서 승인한 파란색 셔츠, 밝은 빨간색 반다나 스카프, 베이지색 카우보이 모자는 아니지만 월요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장례식은 영국의 사랑하는 군주에 대한 국가 애도 기간인 10일을 마감할 예정입니다. 정교한 왕실 장례 의식은 또한 70년 동안 이어진 엘리자베스 시대를 효과적으로 마감하고 찰스가 통치하는 캐롤 시대를 안내할 것입니다.
일부 관찰자들은 캘리포니아 솔뱅에 100에이커 규모의 목장이 있는 미국 말 조련사인 로버츠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약 500명의 국가 원수와 고위 인사가 참석할 행사에 참석하게 된 이유를 궁금해 할 것입니다. 뉴질랜드 총리 Jacinda Ardern 및 스리랑카 대통령 Ranil Wickremesinghe와 같은 영연방 지도자; 스페인의 Felipe 왕과 Letizia 여왕과 같은 유럽 전역의 왕실 구성원; 그리고 물론, 여왕 자신의 가까운 가족 – 자녀(특히 왕 찰스 3세), 손주 및 증손자, 파트너 및 배우자.
여왕 사후, 영국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군주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찰스 왕세자의 부인 카밀라 공작부인과 엘리자베스 2세 igg games 복돌사이트 사용법 스팀게임 여왕이 2015년 10월 21일 런던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몬티 로버츠의 말 속삭이는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그 이유는 Roberts에게 분명합니다.
87세의 트레이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그녀의 장례식 전날 인터뷰에서 여왕에 대해 "나는 우리의 우정을 특징짓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녀는 적어도 50%의 우정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나에게 묻는다면, 우리는 매우 긴밀한 관계였습니다."
사실, 자신의 의견을 엄격하게 비밀로 한 군주에게 있어 여왕의 말 조련사에 대한 사랑은 그의 부드럽고 애정 어린 방법으로 존경받았습니다. 로버츠는 1998년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 영화와 1995년 니콜라스(Nicholas) 이후 "진정한 말 속삭임"으로 종종 언급됩니다. 같은 이름의 Evans 책은 공개된 비밀이었습니다. 말에 대한 여왕의 열정은 코기에 대한 그녀의 사랑에 견줄 만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이 1982년 윈저 성을 방문했을 때 여왕과 대통령은 매끈하게 코팅된 검은 종마 한 쌍을 타고 성의 사유지를 한 시간 동안 트레킹했습니다.
그녀는 Roberts의 훈련 기술에 대해 읽은 후 처음으로 Roberts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녀의 말 조련사 중 한 명을 캘리포니아로 파견하여 그의 방법을 관찰한 후, 그녀는 그를 영국으로 초청하여 왕실의 말을 시험해 보도록 했습니다.
그림: 여왕이 누워 있는 런던의 거리
캘리포니아에 있는 목장에서 말 조련사 몬티 로버츠(Monty Roberts)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30년도 더 된 일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로버츠는 여왕에게 말에 대해 조언하기 위해 매년 약 6번의 영국 igg games 복돌사이트 사용법 스팀게임 여행을 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그를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40여 개국에 파견하여 그의 방법을 전파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몇 번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라고 Roberts는 말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게 약속이었습니다. 약 200��을 불렀습니다. 한 명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은 꽤 친해졌습니다. 그녀는 당시 북아일랜드에 있었습니다. 보좌관이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고 하는 동안 전화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뒤에서 그녀가 '저 사람이 몬티입니까?'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글쎄, 그녀는 즉시 전화를 걸어 회의가 끝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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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jml8g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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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aowy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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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we533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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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kspacerocks-blo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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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그곳에는 스산한 바람만이 몰아치고 있었 웹하드. 이소명이 정신을 차린 것은 자신을 돌봐주던 고조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십일만이었 웹하드. 조금 내린 서설에 일년 전부터 앓아오던 할머니가 기뻐하며 거동을 하 웹하드가 그만 낙상을 하였고 그 일로 혼수상태를 헤매던 그의 고조할머니는 마침내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 웹하드. 아버지도 모르는 자식을 낳고 그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옥패를 가슴에 품고 돌아가시고 말았 웹하드. 산에서 나물을 캐던 꿈 많은 열여섯의 처녀이던 고조모는 칠십년 전 누군지도 모르는 피투성이의 사내에게 짓밟히고 열달 후에 아들을 낳았 웹하드.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참으며 아들을 길렀고 그 아들은 비난 속에서도 건장하게 자랐고 마을의 청년들이 그렇듯 사냥꾼이 되었 웹하드. 솜씨 좋은 사냥꾼이기에  웹하드행히 그 마을의 과부를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수근거림 속에서도 아내로 얻을 수 있었고 마침내 손자까지 볼 수 있었 웹하드. 그러나 불행은 그 손자가 나던 해 아들이 산에서 사냥을 하 웹하드가 절벽에서 굴러 절명함으로서 또 웹하드시 그녀를 절망하게 만들었 웹하드. 그러나 손자가 있기에 그녀는 며느리를 달래서 살아야 했 웹하드. 그러나, 두 명의 남편을 잃은 며느리는 자신에게 불운이 있 웹하드고 한탄하 웹하드가 목을 메어 자진하므로 생을 마감하였 웹하드. 꼼지락거리는 손자가 있기에 그녀는 죽지도 못하고 손자를 키웠 웹하드. 손자가 크자 아들과 같은 꼴을 당할까 결코 사냥을 못하게 하였고 손자도 그녀의 뜻을 따라 화전을 일구면서 농사를 지었 웹하드. 웹하드행히 열심히 일한 덕분에 손자는 혼사까지 치루고 잘 살았 웹하드. 그리고, 증손자까지 보았 웹하드. 그녀는 행복을 맛볼 수 있었 웹하드. 불행도 잊고 그녀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도 정정하게 살았 웹하드. 그리고 증손자도 마침내 혼인을 하여 손자를 보는 경사를 맞았 웹하드. 그러나, 불행은  웹하드시 시작되었 웹하드. 손자와 증손자가 화전을 일구 웹하드가 그만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고, 그것을 구하러 들어간 손자 며느리까지 화를 당하고 말았 웹하드. 그런 일이 있어도 고조할머니는 이소명을 키우기 위해 살 수밖에 없었고 증손자 며느리마저 두살도 못된 이소명을 남기고 그 마을에 들른 채약꾼을 따라 야밤도주하고 말았 웹하드. 이소명은 어릴 적부터 불운이 따르는 집안이라고 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았고 수군거리는 가운데 자신의 신세내력을 알게 되었 웹하드. 고조할머니는 이소명을 감싸안고 그 많은 나이에 텃밭을 일구고 산으로 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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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axylor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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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 ㅫ 명창과 더늠
명창과 더늠 판소리 청중들 사이에서는 흔히 8명창 시대니, 5명창 시대니 하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특정한 시기와 명창을 연결지어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는 판소리사를 구분하는 청중들의 이러한 관습에 따라 전기 8명창 시대, 후기 8명창 시대, 5명창 시대, 그리고 현대로 시기를 나누어 명창과 더늠을 살펴보기로 한다. 8명창 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특별히 나누는 이유는, 8명창 시대가 100년에 이르는 긴 기간을 포괄하고 있어서 다른 시기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8명창 시대에 해당하는 19세기의 전반과 후반의 판소리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1) 1. 전기 8명창 시대 8명창 이전 시대의 소리꾼으로는 판소리의 시창자라고 하는 최선달·하한(은)담 등이 있으나, 이들은 구체적인 더늠을 남기지는 못하였다. 1810년경에 씌어진 것으로 보이는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에 우춘대(禹春大)라는 명창이 등장하지만, 역시 더늠이 전하지는 않는다.전기 8명창 시대는 19세기 전반에 해당된다. 이 시대에 이르러 판소리는 12 바탕으로 완성되고, 여러 명의 훌륭한 명창들이 등장하여 판소리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판소리의 전성기를 구가하��� 된다.전기 8명창에 거론되는 사람들은 권삼득·송흥록·염계달·모흥갑·고수관·신만엽·김제철·주덕기·황해천·송광록 등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구체적인 더늠이나 특별한 선율 형태 등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특히 각 지역의 향토 음악 선율을 판소리에 도입하여 판소리가 호남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민족의 예술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판소리의 전성기는 이러한 명창들의 노력과 성과에 의해 이루어졌다.권삼득(權三得: 1771~1841)은 비가비(양반 출신 광대)로 전기 8명창 중의 가장 선배 격이다. 전북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 출신이며, 덜렁제(설렁제·권마성제·권조)를 만들었다. 그의 더늠은 〈흥보가〉의 ‘놀보 제비 후리러 가는 대목’이다. 덜렁제는 높은 음역의 소리를 길게 지속하거나,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또는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넓게 뛰어내리거나 뛰어오르는, 이른바 도약형 선율을 사용하여 씩씩한 느낌을 준다.2)송흥록(宋興祿: ?~1863년경)은 남원 운봉 비전리 출신이다. 가왕(歌王)으로 일컬어지며, 시중천자(詩中天子) 이태백에 비유된다. 송흥록은 그 당시까지의 모든 판소리를 집대성하여 한 차원 높은 예술의 경지로 발전시켜, 판소리의 중시조로 추앙을 받고 있으며, 동편제 판소리의 시조이기도 하다. 송흥록의 더늠은 〈춘향가〉 중의 ‘옥중가’인데, 혹 ‘동풍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귀곡성(鬼哭聲)은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송흥록은 또 그의 매부인 김성옥과 함께 진양조 장단을 개발하였으며, 산유화조(메나리조)라고 하는 경상도 향토 선율을 판소리화하기도 하였다. 『조선 창극사』에는 「천봉만학가(千峰萬壑歌)」라고도 일컬어지는 단가가 그의 더늠으로 소개되어 있다. 〈적벽가〉와 〈변강쇠타령〉을 잘하였다.염계달(廉季達)은 송흥록과 동년배이다. 그의 고향은 경기도 여주, 혹은 충남 덕산이라고 하는데, 충주에서 살았다. 염계달은 경드름(경조)과 추천목3)을 개발하였다. 경드름과 추천목은 경서도(京西道) 향토 선율을 판소리화한 것이다. 염계달의 더늠으로 전해지는 경드름 대목은 〈춘향가〉 중 ‘남원골 한량’ ‘사령이 춘향에게 돈을 받고 돈타령하는 대목’ ‘이도령이 춘향 달래는 대목’ 등이다. 추천목은 〈춘향가〉 중 ‘네 그른 내력’ 〈수궁가〉 중 ‘앞내 버들은 유록장 두르고’ ‘토끼가 자라에게 욕하는 대목’ 등이다. 경드름은 경쾌하고 가벼운 가락이고, 추천목은 마치 그네를 뛰는 것처럼 흥겹고 흥청흥청하는 느낌을 준다. 염계달은 〈장끼타령〉도 잘하였다.모흥갑(牟興甲)은 전주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경기도 진위, 또는 전북 죽산 출신이라고도 하나, 말년에는 전주 부근에서 보낸 것이 확실하다. 권삼득과 더불어 송만재의 「관우희」에 이름이 등장하며,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평양감사 부임도’라는 병풍에는 그가 대동강의 능라도에서 소리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모흥갑의 특징적인 창법으로는 강산조(박유전의 강산제와 구별하기 위해 ‘동〔東〕강산제’라고 부르기도 한다)가 있다. 이는 한때 그의 수행 고수였던 주덕기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폄하하는 것을 보고,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모흥갑이 ‘전치몰락(前齒沒落)의 순음(脣音)’으로 ‘이별가’ 중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대목을 불러 주덕기로 하여금 사죄케 한 일화가 있는데, 이때 부르던 소리를 말한다. 이는 주덕기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도 이 대목이 판소리 〈춘향가〉에 남아 있다. 판소리 평조와 그 구성음은 비슷하나, 고음역 선율이 많아서 청아하고 들뜬 느낌을 준다.고수관(高壽寬)은 충남 해미 출생이며, 공주에서 만년을 보냈다. 성음이 극히 미려하고 다른 목청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딴청 일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더늠으로는 〈춘향가〉 중 중중모리로 된 ‘자진 사랑가’가 있다. 이 대목의 선율은 추천목으로 되어 있어 흥겹고 흐늘거리는 느낌을 준다.신만엽(申萬葉)은 전북 여산 출신인데, 후에 고창에서 살았다. 신만엽은 〈수궁가〉를 잘 불렀으며, 그의 더늠으로는 ‘토끼 배 가르는 대목’과 ‘소지노화 대목’이 있다. ‘소지노화 대목’을 특히 석화제라고 하는데, 이는 가야금 병창제라고도 하며, 선율형은 판소리 평조와 거의 같다. 석화제는 명쾌하지만, 계면조의 비장한 느낌에 비하여 가볍고 진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명창들은 석화제의 남용을 금하고 있다.김제철(金齊哲)은 충청도 출생이며, 만년에는 경상도 함양에서 살았다. 석화제를 잘 불렀으며, 더늠은 〈심청가〉 중 ‘심청이 탄생하는 대목’인데, 화평하고 유현한 느낌을 준다.황해천(黃海天)은 황해청(黃海淸)이라고도 한다. 대명창이었다고 하나, 출생지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자웅성(雌雄聲)에 능했다고 하며, 「탄세단가(歎世短歌)」에 그의 더늠으로 ‘농부가’가 소개되어 있다.주덕기(朱德基)는 전주 출신, 또는 전라남도 창평 출신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송흥록과 모흥갑의 수행 고수 노릇을 하였으나, 후에 소리 공부하기를 결심하고 깊은 산에 들어가 소나무 밑동을 베어놓고 주야로 제사를 드리며 수련을 했는데, 소나무 수천 그루를 베었다 하여 ‘벌목정정(伐木丁丁)’이라는 별호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리를 장작 패듯 힘차게 한 데서 그 별명이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그의 더늠으로 〈적벽가〉 중 ‘자룡 활 쏘는 대목’이 전하고 있다.송광록(宋光祿)은 남원 운봉 출신으로 가왕 송흥록의 동생이다. 처음에는 형인 송흥록의 고수 노릇을 했으나, 고수의 하대에 불만을 품고 제주도로 들어가 수년 간의 노력 끝에 대명창이 되었다. 그의 소리는 아들 송우룡과 손자 송만갑, 증손자 송기덕에게까지 이어져, 동편 소리의 거대한 산맥을 이루었다. 더늠으로는 ‘만첩청산’으로 시작하는 진양조 ‘사랑가’가 전하고 있다. 2. 후기 8명창 시대 19세기 후반은 후기 8명창 시대로 일컬어진다. 이 시대에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서 8명창에 드는 사람들은 박유전·박만순·이날치·김세종·송우룡·정창업·정춘풍·김창록·장자백·김찬업·이창윤 등이다. 이들은 전기 8명창들이 개발해놓은 선율형들을 갈고 닦아 판소리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더늠들을 만들었다. 이러한 결과 판소리는 마침내 궁중에까지 침투하였으며, 많은 소리꾼들이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보다 서민적 취향의 소리인 서편제 소리가 등장하여 큰 흐름을 이루기도 하였으며, 신재효가 소리꾼들을 후원하면서 사설의 개작을 하기도 했고, 전주 대사습이라는 명창의 등용문이 생겨나기도 했다.박유전(朴裕全: 1834~?)은 헌종으로부터 고종 대에 걸쳐 활동한 소리꾼으로 전북 순창 출생이며, 서편제 판소리의 시조이다. 목소리가 절륜하게 고왔다고 하며, 대원군의 총애를 입어 무과 선달의 직첩을 받았다. 〈적벽가〉를 잘했는데, 그의 더늠으로는 〈춘향가〉 중 ‘이별가’와 민요 ‘새타령’이 전한다. 박유전은 말년에 전남 보성군 강산리에서 살면서 정재근을 가르쳤는데, 이 소리는 후에 보성 소리가 되었다. 박유전은 계면조 선율의 정교한 제작으로 유명하여, 이것이 서편제 소리의 특성이 되었다.박만순(朴萬順)은 전북 정읍 고부 출신이다. 후에는 경상도 안의와 운봉에 산 일이 있다고 한다. 주덕기·송흥록에게 배워 동편제 판소리의 수령으로 군림하였다.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으며, 그의 더늠은 〈춘향가〉 중 ‘사랑가’와 ‘옥중가’ 〈적벽가〉 중 ‘화용도 패주’ 등이라고 하는데, 『조선 창극사』에는 〈춘향가〉 중 ‘몽유가’가 실려 있다.이날치(李捺致: 1820~1892)의 본명은 경숙(敬淑)이며, ‘날치’는 몸이 하도 날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전남 담양 출신인데 나중에는 장성에서 살다가 세상을 떴다. 일찍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다가 줄타기를 했으며, 다시 박만순의 수종 고수가 되었다가, 고수의 하대에 불만을 품고 소리를 하여 대성한 사람이다. 박유전의 법제를 많이 계승했다고 하지만, 현재 전하는 소리를 보면, 박유전의 계통을 이은 소리보다 훨씬 서편제적인 특성이 강하다. 수리성에 성량이 아주 컸으며, 박유전에게 물려받은 ‘새타령’은 신기에 가깝다는 평을 들었다. 〈춘향가〉와 〈심청가〉를 잘하였으며, 그의 더늠으로는 〈춘향가〉 중 ‘망부사’가 전하고 있다.김세종(金世宗)은 전북 순창 출신이다. 송우룡·박만순과 같은 시대에 활동하였으며, 동파에 속한 대가라고 하는데, 송흥록 계통과는 달라서 별도의 계보로 친다. 신재효에게 지침을 받으며 신재효의 사랑에서 소리 사범 노릇을 했다고 한다. 김세종은 〈춘향가〉를 특히 잘하였으며, 그의 더늠은 ‘천자 뒤풀이’이다. 김세종의 〈춘향가〉는 김찬업을 거쳐 정응민을 통하여 보성 소리로 이어져, 현재 가장 활발하게 불려지는 소리가 되었다.송우룡(宋雨龍)은 송광록의 아들이다.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으며, 정통 동편제 소리를 계승하여 박만순과 자웅을 겨루었으나, 성대가 상한 뒤로는 박만순이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송우룡은 송만갑·유성준·전도성·이선유와 같은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여 후에 동편제 판소리가 융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그의 아들인 송만갑이 배운 대로 하지 않는다고 죽이려고까지 했다는 일화를 통해 보면, 송우룡은 매우 보수적인 판소리관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수궁가〉를 잘하였는데, 그의 더늠은 ‘토끼 배 가르는 대목’이다.정창업(丁昌業)은 전남 함평 사람이다. 박유전에게 배웠으나, 박유전 계통과 다른 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전주 통인청 대사습에 나갔다가 사설을 잊어버려 망신을 당한 뒤에 한동안 소리를 작파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흥보가〉를 잘하였으며, 그의 더늠으로 〈심청가〉 중 ‘중 내려오는 대목’이 전한다. 엇모리 장단으로 된 이 대목은 신비한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다.정춘풍(鄭春風)은 충청도 양반가 출생인 비가비이다. 말년에는 여산에서 살았으며, 동편 소리꾼으로 알려져 있으나, 송흥록·김세종과는 달라 별도의 계보로 친다.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으며, 〈적벽가〉를 잘하였는데, 이 〈적벽가〉는 박동진이 계승하여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론에도 뛰어나, “남에 신재효, 북에 정춘풍”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의 더늠은 중국의 소상팔경을 노래한 단가 ‘소상팔경가’이다.김창록(金昌祿)은 전북 무장 출생으로 흥덕에서 80여 세까지 살았다. 동편 소리꾼으로 특히 〈심청가〉에는 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춘향가〉 중 ‘팔도 담배가’와 민요 ‘산유화가’를 만들었다. ‘산유화가’는 지금도 전해지지만, ‘팔도 담배가’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의 더늠은 〈심청가〉 중 ‘행선 전야’이다.장자백(張子伯)은 전북 순창 출생으로, 김세종의 소리를 계승하였다. 〈변강쇠타령〉과 〈춘향가〉를 잘하였으며, 그의 더늠으로는 〈춘향가〉 중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사면 경치를 감상하는 대목’이 전하고 있다. 이 대목은 우조 중에서도 정악의 가곡성을 닮은 가곡성 우조라는 독특한 창법으로 되어 있다.김찬업(金贊業)은 전북 흥덕 출생으로 명창 김수영의 아들이다. 부친 김수영의 소리를 이어받았으나, 후에 박만순의 문하에서 오래 지침을 받아 한동안 이름을 날리던 중 성대를 상하여 소리를 중단하였다. 그는 〈춘향가〉를 잘하였는데, 이 〈춘향가〉는 김세종의 것으로 정응민을 통하여 보성 소리가 되었다. 더늠은 박만순으로부터 물려받은 〈수궁가〉 중 ‘토끼 화상 그리는 대목’이 남아 있다.이창윤(李昌允)은 전남 영암 사람으로, 이날치의 제자인 만큼 서편제 소리꾼으로 유명하였다. 〈심청가〉를 잘하였는데, 더늠으로 〈심청가〉 중 ‘부친 영결하는 대목’이 전한다. 3. 5명창 시대 이 시기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전반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서 5명창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은 박기홍·김창환·김채만·전도성·송만갑·이동백·김창룡·유성준·정정렬 등이다.이 시기의 판소리는 변화되어가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체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창극화로 나타났다. 1920년대 이후에는 유성기 보급에 따른 레코드 취입도 성행하게 되어, 판소리는 점점 더 일반 대중의 취향에 의존하게 되었다. 판소리는 대중적 취향과 함께 계면화(슬픈 가락으로의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이 시대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일은, 1920년경에 전국 주요 도시에 권번(기생 조합)이 설치되어, 여기서 판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함으로써 다수의 여자 창자가 배출되었다는 점이다.박기홍(朴基洪)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진주에서 성장하였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된 그는, 고수였던 아버지와 절친했던 정춘풍을 찾아가 소리를 배웠다. 그는 한쪽 눈이 기형적으로 튀어나왔는데, 대원군이 이를 도려내고는 오수경(색안경)을 주어 쓰고 다녔다고 한다. 가신(歌神)으로 일컬어졌으며, 〈춘향가〉와 〈적벽가〉를 잘하였는데, 더늠으로 〈적벽가〉 중에서 ‘조조 군사 사향가(군사 설움타령)’가 전한다.김창환(金昌煥: 1854~1927)은 나주 출신으로 이날치·박기홍과 이종간이며, 근세 명창 임방울의 외삼촌이다. 정창업의 제자로, 계면조를 중심으로 한 서편제 창법에 뛰어났다. 1903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의 주석을 맡았으며, ‘협률사’라는 전통 예술 공연 단체를 맨 처음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고종으로부터 의관직을 제수받았다. 〈흥보가〉를 잘하였으며, 더늠으로는 ‘제비 노정기’가 있다. 이 ‘제비 노정기’는 현재 부르는 모든 〈흥보가〉에 들어 있다. 음반을 상당수 남겼다.김채만(金采萬)은 전남 화순 능주 출신인데, 나중에 광주 속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속골 명창으로 일컬어졌다. 이날치의 문하에서 공부한 정통 서편제 소리꾼으로, 성대는 좋지 않았으나 기교가 매우 뛰어났다. 〈심청가〉를 잘하였는데, 더늠은 〈심청가〉 중 ‘초앞’ 대목이다.전도성(全道成: 1864~?)은 임실군 관��면 병암리 출신이며, 고종으로부터 참봉 교지를 받은 어전 명창이다. 부친 전명준과 송우룡에게 배웠으며, 박만순·김세종·이날치에게도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말년에는 정읍군 태인면에서 살았다. 전도성은 자신의 소리가 함부로 저잣거리에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고 하여, 창극 운동이나 협률사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레코드 취입도 하지 않았다. 전도성은 판소리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조선 창극사』의 편찬 과정에서 가장 많은 증언을 하였다. 〈흥보가〉와 〈심청가〉를 잘하였는데, 그의 더늠으로는 〈심청가〉 중 ‘범피중류’ 대목이 전한다.송만갑(宋萬甲: 1865~1939)은 송우룡의 아들로 전남 구례 출신이다. 고종으로부터 감찰직을 제수받았으며, 궁내부 별순검이라는 실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송만갑은 자기 가문의 정통 창법을 고집하지 않고 시대의 추세에 따라 많은 개작을 하였는데, 이에 대해 보수적인 사람들은 ‘통속화’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음반을 통해서 보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동편제 창법에 가장 근사한 소리를 하고 있다. 철성(鐵聲)으로 전력을 다하여 고음을 구사하며, 대마디 대장단에 소리 끝을 끊어 내는 치열한 창법은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를 낼 수 없을 정도이다. 그는 또 경조(경드름)를 세련시켜 자신의 장기로 삼았다. 〈흥보가〉 〈적벽가〉 〈춘향가〉를 잘하였다. 『조선 창극사』에는 그의 더늠이라 하여 ‘농부가’가 실려 있지만, 단가 ‘진국명산’ 〈춘향가〉 중 ‘이별가’ 〈적벽가〉 ‘새타령’ 등이 오히려 송만갑다운 특징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소리라 할 것이다.이동백(李東白: 1867~1950)은 충남 서천군 종천면에서 태어났다. 중고제의 명창이었던 김정근, 동편제 소리꾼이었던 김세종, 서편제 소리꾼이었던 이날치에게 배웠다. 이동백은 최고의 미성과 고음을 자랑하는 소리꾼이었다. 〈심청가〉 중 ‘부녀 상봉 대목’ 같은 데서 보여주는 절규하는 창법 또한 일품이다. 이동백은 소리꾼으로서는 가장 높은 관직인 정3품 통정대부의 직첩을 받았다. 〈적벽가〉 〈춘향가〉 〈심청가〉 등을 잘하였는데, 그의 더늠으로 ‘새타령’이 전한다. 시에론 판 〈춘향가〉, 폴리돌 판 〈적벽가〉, 폴리돌 판 〈심청가〉 외에도 많은 음반이 남아 있다.김창룡(金昌龍: 1872~1935)은 충남 서천 장항 출신으로 중고제 판소리의 시조인 김성옥의 손자이자, 명창 김정근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인 김정근에게 배웠고, 후에 이날치에게 지도를 받았다. 현재 남아 있는 음반으로 보면 중고제적인 감성에 가장 충실했던 소리꾼으로 생각된다. 그의 더늠은 〈심청가〉 중 ‘꽃타령’ 〈적벽가〉 중 ‘삼고초려 대목’인데, 이들은 모두 현재 부르는 판소리 속에 들어 있다. 콜롬비아 판 〈춘향가〉, 폴리돌 판 〈적벽가〉, 폴리돌 판 〈심청가〉 외에도 많은 음반이 남아 있다.유성준(劉成俊: 1874~1949)은 남원 출신이라고도 하고, 구례 출신이라고도 하나, 활동은 주로 구례·하동·진주 등지에서 하였다. 송만갑과 함께 송우룡에게 배웠고, 송만갑이 죽은 후에 동편 소리의 가장 뛰어난 소리꾼으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는데, 임방울·정광수·김연수·박초월·강도근 등이 대표적인 제자들이다. 특히 〈적벽가〉와 〈수궁가〉의 경우에는 현재까지도 가장 강력한 전승력을 보이고 있다. 그의 더늠은 〈수궁가〉 중 ‘별주부와 토끼의 상면 대목’이다. 〈적벽가〉 중 ‘자룡 활 쏘는 대목’이 음반으로 남아 있다.정정렬(丁貞烈: 1876~1938)은 전북 익산군 망성면 내촌리 출신이다. 같은 집안인 정창업의 문하에서 수업을 시작했으며, 후에 이날치에게 배웠다. 성대가 약하여 오랜 수련 끝에 40세가 되어서야 이름을 얻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상무 이사를 맡아 제자를 양성하면서, 많은 창극을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정정렬은 흔히 30년 앞을 내다보고 소리를 했다고 일컬어지는데, 이는 정정렬이 그만큼 미래 지향적인 소리꾼이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정정렬은 빅터·오케·폴리돌 등에서 음반을 냈는데, 그 중에서도 폴리돌 판 〈적벽가〉, 폴리돌 판 〈심청가〉, 빅터 판 〈춘향가〉 등은 전집이다. 임방울·김소희·이화중선·박녹주와 함께 빅터에서 낸 〈춘향가〉는 일제 시대 최고의 판소리 명반으로 꼽힌다. 현대 〈춘향가〉는 거의 대부분이 정정렬의 〈춘향가〉에 근간을 두고 있다. 정정렬 판소리의 특징은 극단적인 엇부침의 추구, 계면조 창법의 확대, 성음의 다양한 변화 등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정정렬의 더늠은 〈춘향가〉 중 ‘신연맞이 대목’이다. 4. 현대 해방 후의 판소리는 대체로 침체를 면치 못하였다. 판소리가 기반으로 삼고 있던 전통 사회가 해체되고 산업화되면서 판소리가 설자리를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명창이 또한 명멸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했던 김소희(1917~1995), 박초월(1913~1987), 박녹주(1906~1981) 등 여류 명창과, 임방울(1904~1961), 김연수(1907~1974) 등은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소리꾼들이었다.이들 중에서도 임방울은 천성의 아름다운 목으로 일제 강점기에 ‘쑥대머리’를 불러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사람으로, 유성준에게 배운 〈적벽가〉와 〈수궁가〉 그리고 〈춘향가〉를 장기로 삼았다.김연수는 조선성악연구회 시절부터 창극 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사람인데, 해방 후에 판소리 다섯 바탕을 새로 짜서 이른바 ‘김연수제 판소리’를 만들었다. 임방울의 소리는 제대로 전승한 사람이 없으나, 김연수의 소리는 많은 제자들에 의해 점점 더 융성하면서 대표적인 현대 판소리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지고 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 호랑이가 죽은 다음에 귀한 가죽을 남기듯이 사람은 죽은 다음에 생전에 쌓은 공적으로 명예를 남기게 된다는 뜻으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전에 보람 있는 일을 해놓아 후세에 명예를 떨치는 것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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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k-josephine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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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살이랑 30대랑 결혼한거야? 할머니랑 증손자 나이보다 더 차이나네! (웃음)
그러게. 근데 난 신체나이는 20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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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issuecollector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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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사 류형과 증손자 류성채… 대를 이은 '여수사랑' https://ift.tt/2Xktn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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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lovlun119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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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5세 마리 레슈친스카 / 퐁파두르 데티올(재판관) / 세장의 페티코트 마리아 테레지아 엘리자베타 여왕 퐁파두르 vs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 뒤바리 / 루이 16세 벤저민 프랭클린 1776 / 루이 16세 마리 앙투와네트 / 덕질에 푹 빠진 은둔족 / 위베르 로베르 비제 르브룅(앙투아네트 그림으로 유명) /
펠리페 5세 파리넬리 / 페르난도 6세 카를로스 3세 / 카를로스 4세 마리아 루시아 /고도이(마리아 루시아 애인) /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부부와 유사한 점이 일부 있음 / 고야 예복 차림의 페르난도 7세 / 이사벨 2세 알폰소 12세 알폰소 13세 프랑코 독재 정권 / 펠리페 6세(알폰소 13세의 증손자) 현재 / 지롱드 쿠데타 테르미도르의 반동 / 1799 나폴레옹 브뤼메르 쿠데타 1804 황제 대관식 / 외상 탈레랑 / 엘바섬 귀향 / 워털루 전투 백일천하 / 세인트헬레나 섬 유배 / 루이 18세 / 메두사 호 사건 제리코 / 들라크루아(탈레랑이 아버지라는 설이 있음) 민중을 이끄는 자유 / 자유 프리기안 캡 / 1830 7월 혁명 / 샤를 10세 / 앙굴렘 공작(샤를 10세 아들) 마리 테레즈(앙투아네트 딸) / 폴리냐크 / 부르봉 왕조 붕괴 / 루이 필립 1세(루이 14세 동생의 6대손) 구체제 복구 시도 / 1848 2월 혁명 공화정 /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조카 ; 남동생의 아들 ; 나폴레옹 3세) / 1870 나폴레옹 3세 축출 공화정 복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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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zxaifch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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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르 맘이 가는곳을 이용하자
만수르 맘이 가는곳을 이용하자
하나 만수르 한번 되짚어 볼게요
또다른 괜찮지 않으냐
모든 궁금하면 여기서
만수르 바로가기 링크
만수르 증조할머니와 증손자 뻘인가? 엘프들은 수명이 기니까. 루아가 서먹서먹해 할 때, 과연 오래 산 만수르 나이 값을 하는 루나로카가 루아를 향해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 아, 안녕하세요. 루니아르노라고 해요. 만수르 루아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내가 루나로카와 알고 있는 사실이 매우 놀라운 모양이었다. 루나로카는 내 여동생 뻘이라고. 나는 싱 긋 만수르 웃고 있다가 아이릴과 루나로카를 비롯한 많은 레아들이 내 뒷 만수르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그래서 나는 죽었지. 너희들이 알다 싶이 모든 건 트로나의 계략이었어. 내 말에 루나로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또 한 번 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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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mentor-blo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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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이민정보
※ 자세한 사항과 구체적인 비자 신청 절차는 해외에 주재하는 브라질대사관 또는 브라질총영사관(예; 서울에 있는 주한 브라질대사관)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Ⅰ. 브라질 영주권 종류
ㅇ 가족초청
ㅇ 은퇴자
ㅇ 종교, 사회단체 지도자
ㅇ 투자이민
ㅇ 기업임원
ㅇ 특별 전문가
Ⅱ. 영주권 종류별 기본 요건
ㅇ 가족 초청 : 브라질인 또는 브라질 영주권자의 가족
– 배우자(비공식의 사실상 배우자 포함, 동성 배우자도 포함)
– 자녀 : 18세 미만, 24세 미만 학생, 부양할 능력이 없고 특별보호가 필요한 자녀(연령제한 무)
– 부모 : 자신을 부양할 능력이 없거나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부모, 브라질 아이를 결정적으로 부양하는 부모
– 형제자매, 손자, 증손자 : 미혼이며 고아로 브라질인 또는 브라질영주권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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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6 Questions
>> 관찰질문 Observation (6:1-13)
1. 1절에 이스라엘을 보내는 주체는 누구라고 하는가? (영어성경에 he 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리고 �� 일은 무엇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하고 있는가? 2.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그리고 모세와 출애굽 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3. 하나님의 언약 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 4.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5.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역이 어떠했음을 알 수 있는가? 6.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무엇을 명하셨는가? 모세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 해석질문 Reflection Questions (6:1-13)
1.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Almighty God, El Shaddai 엘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다. 하지만 모세와 및 출애굽을 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께서는 여호와, Jehovah (Yehovah)로 주님을 계시하신다. Jehovah 의 뜻은 “the Existing One” 이라는 뜻이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왜 이 이름으로 주님은 주님을 소개하셨을까? 이 타이틀이 모세와 출애굽을 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했던 것일까? 2.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마음으로, 아니 귀로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상했고 애굽으로부터 받는 가혹한 노역이 이유였다. 마음이 상한 자…주님의 위로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주님의 위로를 되려 거절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  워십 인사이트 Worship Insights
1.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에 소개되는 예수님의 모습이 각기 다르다.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은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 이시다. 서머나 교회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이시다. 버가모 교회는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이’ 이시며 두아디라 교회는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등장하신다. 사데 교회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 이시며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주님으로 소개되신다.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 로 등장하신다. 각기 교회에 맞게 주님을 소개하시며 그 주님의 모습에서 각 교회들은 위로를 받기도 하고, 칭찬을 받기도 하고 징계를 받기도 한다. 2. 출애굽기 6장에 소개되는 하나님은 Yehovah 하나님으로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출애굽기 3:14) 또한 언약을 세우시고 지키시는 분이시다….”I also established my covenant with them…(v.4)” “and I have remembered my covenant (v.5)”…”I will bring you into the land that I swore to give to Abraham, to Isaac, and to Jacob. I will give it to you for a possession. I am the LORD (v.8).”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주님은 언약하셨지만 그들은 그 언약의 성취를 부분적으로만 보았다. 모세에 이르러서야, 약속된 400년이 흐른 후에야 주님은 그 언약을 친히 이루시려 움직이신다. (God is promise making and promise keeping God) 3.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과 모세와 출애굽 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은 너무 다르다. 이들은 ‘전능하신 하나님(도 물론 경험했겠지만)’ 보다 지금까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존재하시는 하나님 (마치 그들을 위해),’ ‘우리에게 너무나 가깝게 주님을 계시하시는 하나님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너무나도 세밀하게 들어주시는 하나님 (만나와 메추라기),’ ‘우리의 인생가운데 너무나도 깊게, 친밀하게 들어와 역사하시는 하나님’ 을 경험하게 된다. 이 Jehovah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이렇게까지 깊게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신명기 4:7-8).” 4. 오늘 나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5. ‘주님한테 삐쳤다’ 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곤 한다. 이 표현은 귀엽기라도 하지. 정말이지 큰 시험이나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이 주님을 등질 때는 삐친 정도가 아닌 강한 불신과 배신감 때문일 때가 많다. ‘어떻게 나에게 이러실 수가 있는가’ 라는 강한 불신. ‘내가 어떻게 주님을 섬겼는데.’ 라는 배신감. 믿는 사람에게서 들어볼 수 있는 말들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야 이런 불신이나 배신감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하면 오래지 않아 듣는 질문 역시 동일하다. ‘선하신 주님께서 왜 내 삶에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 때문에 더 심해진 노예생활로 마음이 상할대로 상해버렸다. 그냥 우리를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고 뭐고, 출애굽이고 뭐고, 더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더 일이 꼬이기 전에 관두라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에 큰 구멍이 나있다. 그런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지 않는가. 그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위로할 방법이 있겠는가. 지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은 그 크신 하나님의 계획 따윈 집어치우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 발 앞에 떨어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해결이야 하겠지만서도 우리의 마음이 discouraged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시선의 shifting 이 필요하다. 우린 내일 일을 모른다. 당장 5초, 30초, 1분, 3분, 5분, 10분 뒤의 일을 알 수가 없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내일을 아시기에 오늘 닥치는 어려움을 주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 관찰 및 해석 질문 Observation & Reflection Questions (6:14-30) 
1. 출애굽기 6장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각 단락을 간단하게 요약해보라. 2.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갑자기 등장한다. 이 끼어있는 듯한 모세와 아론의 족보의 기록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워십 인사이트 Worship Insights (6:14-30) 
1. 출애굽기 6장은 정말 흥미로운 장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사도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써놓은 갈라디아서 같다. 구조를 살펴보면 1절부터 12절까지는 하나님과 모세와의 대화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낙담하는 모세에게 주님은 다시 한번 주님의 이름을 말씀하시고 그 이름대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을 계시해주시겠다 약속하신다. 다시 한번 바로에게 모세와 아론을 보내신다. 2. 그리고 13절은 마치 장면이 바뀌고 등장하는 내레이션과 같다. “But the LORD spoke to Moses and Aaron and gave them a charge about the people of Israel and about Pharaoh king of Egypt: to bring the people of Israel out of the land of Egypt.”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3. 그 후 14절부터 27절까지가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등장한다 (뜬금없이). 4. 그리고 28절부터 30절은 그 앞에 이어지던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를 다시 이어가고 있다. 5. 자, 그렇다면 중간에 낀 듯한 이 족보의 등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1. 이 족보의 intro 는 13절이다. 13절은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들을 다시 한번 요약해준다 (출애굽의 계획과 애굽의 왕 바로에게 나아가 그 계획을 말하라는 명령). 그리고 바로 그 뒤에 나오는 족보는 주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이 그래서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해주고 있는 것이다. 누구이길래 주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 쓰임을 받았는가? 그들의 배경은, 그들은 출처가 확실한 자들인가? 하나님의 언약 아래 있는 사람들인가? 2. 족보를 보면 알겠지만, 야곱의 12아들의 족보가 다 기록된 것은 아니다. 첫째 아들인 시므온과 둘째 아들인 시므온 그리고 셋째 아들인 레위의 족보만 (그것도 모든 자손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도 아니다) 기록이 되어있다. 그 중 레위 아들의 게르손, 고핫, 므라리 족속은 모두가 다 주님의 성막 안에서 성소에 관련된 일을 맡은 족속들이다. 아론과 모세는 고핫 자손인 아므람의 자손이었다. 레위의 증손자, 야곱의 고손자였다. (특히 아론의 부인인 엘리세바는 유다 족속인 암미나답의 딸, 나손의 누이였다. 나손은 즉 암미나답의 아들. 그는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다. 보아스는 모압 여인 룻과 결혼을 해서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이유는 분명히 있다. 어딘가에서 꼭 출현한다. 기록된 이상, 무대에 올라가지 않는 이름들은 없다) 아론과 모세는 그냥 ‘아무나’가 아니었다. 사실 그렇다고 특별한 족보는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족보를 통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통해 주님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 너무나 지극히 평범하기에 사람들의 무시를 받을 수도 있었겠다. 3. 하지만 이 족보 뒤에 이어지는 26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 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27절은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내보내라 말한 사람도 이 모세와 아론이었더라” 라고 말씀하신다. 영어성경에 보면 27절은 강조용법이 쓰였다. “It was they who spoke to Pharaoh king of Egypt about bringing out the people of Israel from Egypt, this Moses and this Aaron.” 출애굽의 계획을 하나님께로 받은 자, 그리고 이 계획을 바로에게 전하라 명함을 받은 자들이 바로 이들, 이 족보대로 태어난 출처가 분명한, 이스라엘 언약백성, 모세와 아론이다, 라는 것이다. 4. 그러니 이 족보를 통해 우리는 모세와 아론의 영적 권위는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 주님께서 주신 것이다라고 알 수 있는 것이다. 너무 평범하지만 그 평범함에 주님의 택하심이 임하면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6. 그리고 다시 말씀은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로 돌아간다. 이렇게 택하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들었고,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친밀한 방법으로 주님을, Jehovah를 경험한 모세는 여전히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v. 30) 말하고 있다. 7. 나의 평범함을 묵상하고 주님의 택하심을 묵상할 때 나의 평범함에 내가 너무 집중하다 보면 나의 부족함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한번 실패를 경험한 나는 다시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실패를 경험케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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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할 가치가 있었던 전쟁”…美 한국전쟁 참전용사 다큐 영화 상영 / KBS뉴스(News) 한국전쟁에서 북한에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미군 용사의 한국 방문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가 미국에서 상영됐습니다. 이 참전용사는 지금 발전한 대한민국을 보면서 한국전쟁이 전우들의 희생의 가치가 있었던 전쟁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최동혁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65년 전, 33개월 간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풀려나 건너왔던 '돌아올 수 없는 다리'와 다시 마주한 아든 로울리 씨. 그는 한국 전쟁이 '잊혀진 전쟁' 또는 미국의 유일한 군사적 손실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합니다. [아든 로울리/한국전쟁 참전 용사 : "누군가 한국전쟁은 미국이 처음으로 진 전쟁이라고 책가지 썼던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대한민국을 지켜낸 건 승리한 겁니다."] 영화는 로울리 씨가 증손자 셔우드 씨와 한국을 방문해 현충원, 부산 등을 거쳐 판문점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을 통해 당시 한국전에 참전한 용사들의 희생의 의미를 확인합니다. [신디 바넷/영화 관람객 : "(대한민국이) 완전한 폐허 속에서부터 시작해 세계를 이끌어 가는 나라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아이들에게 소중한 교훈이 될 것 같아요."] '한국전쟁유업재단'이 국가보훈처 등의 후원을 받아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유업'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한종우/한국전쟁유업재단 이사장 : "대한민국이 이루어낸 동시적인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교육하고자 홍보하고자 저희들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습니다."] LA에서 시사회로 첫선을 보인 이 영화는 이어 미국 전역에서 상영을 하고, 또 한국전 교육 교재로도 배포할 예정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KBS 뉴스 최동혁입니다. Go to Source Author: KBS News Powered by WPeMat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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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messag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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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개혁
느헤미야의 개혁
(매일설교TV. 밤 11시 live )
https://www.youtube.com/channel/UCJ7XY67n4u8dEks9JFMTNkA
(느13:1-31)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유다지파) 백성들과 함께 모여서, 율법을 낭독하고, 율법과 대조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발견하고, 개혁할 것을 맹세한 일을 실천에 옮겼다.
성경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했다. 느헤미야가 이 점을 알고, 미루지 않고 개혁을 단행했다.
첫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과 섞여 살고 있는 암몬과 모압 자손들을 뽑아서 추방했다. 이들은 과거 출애굽 때에 선대(先代)로 올라가 보면 같은 조상의 후손인데, 도와주시는 못할망정 오히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했었다. 이들의 죄는 없어지지 않은 채로 있다. 이런 자들과 함께 살수는 없다.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1-3).
두 번째, 제사장 엘리아십이 성전 건축을 방해한 도비야와 내통하고,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에게 다니러 갔을 때, 도비야를 위해 성전의 한 방을 비워서 들어와 살게 했다. 느헤미야가 이 사실을 알고 격노(激怒)했다. 느헤미야는 도비야의 살림살이를 밖으로 내 던지고 성전을 정결케 했다.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의 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만들었으니--  바벨론(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만든 악한 일을 안지라,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놓았느니라”(6-9).
세 번 째,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 사람과 찬양대원들에게 정해진 봉급을 주지 않아서, 이들이 생계를 위해서 들로 산으로 떠났다. 성전에는 일할 사람이 없었다. 느헤미야가 지도자들을 불러 꾸짖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드리게 하고, 이것으로 그들에게 봉급을 지급하게 했다. 성전을 떠났던 레위 사람들이 다시 돌아 왔다.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10-12).
네 번 째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범하는 주된 이유는 장사하고, 일하는 것이다.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15-17).
다섯 번째, 외국 여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23-25).
느헤미야는 솔로몬이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얻었고, 이 일로 큰 폐해가 컸다고 설명했다. 느헤미야는 모든 백성의 귀감이 되어야 할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증손자) 하나가 호론 사람 살발랏(성전 건축을 방해한 우두머리)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기 때문에 이 자(者)를 추방했다.
여섯 번째, 정한 기한 내에 제단에 사용할 나무(장작)와 곡식의 첫 열매를 드리도록 조치했다.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30). 성전에서 필요한 물품이 제대로 헌물 되도록 만들었다.
예수께서는 신체의 일부가 범죄하면 아프더라도 짤라버리고, 천국 가는 것이 났다고 했다. 느헤미야가 아프지만 바벨론 70년 귀양과 같은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해서, 범죄로 병든 부분을 제거 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9).  
회개는 이런 정신으로 해야 한다. 느헤미야가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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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on-lee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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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아들 할머니에겐 증손자😊 #watercolor #수채화 #grandma #baby #잠 #hug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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