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는클리셰라좋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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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l-study · 9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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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긴히지 - 돌아오는 거리.
5년만이었다. 십년 정도 되어야 변한다는 세상은 이제 1년, 아니 반년만 지나도 ��방 금방 바뀌었고 5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동안 떠나있던 도시는 히지카타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변해 있었다. 슬픔 따위는 금방 견뎌낼 거라 자신했던 것은 오만에 불과했고 결국 히지카타는 모두를 위해, 자신을 위해서 이 거리를 떠나야했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잃었던 이만큼 살아있는 이들은 소중했고, 그래서 지키기 위해 히지카타는 도시를 나왔다. 그저 조용히. 아주 가끔씩 토시의 나쁜 버릇이라고 말하던 곤도의 말처럼 히지카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멀리 떠났다. 지금 막 거리에 발을 내딛은 히지카타는 여전히 자신이 도망쳤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이 보기에는 모양새가 도망과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육체적인 아픔은 히지카타에 고통으로 다가오지 못했지만, 비어버린 자리에 대한 상실감은 히지카타를 저 깊은 심연의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멍청하게도, 히지카타는 그녀가 그토록 바랐음에도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사랑스런 이의 작은 소원마저 이뤄주지 못할 정도로 한심한 남자였다. 행복해야해. 작고 마른 손과 애달프게 말하던 입술이 온전히 한 남자만을 바라봤지만 히지카타는 그녀가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내가 너를 잊어. 다른 사람도 아닌 미츠바 너를. 자신을 뒤로 하고 행복해야한다는 그녀의 말에 히지카타는 대답대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미소만을 애써지었다. 5년 전의 히지카타 토시로라는 남자는 그토록 나약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이 거리 가득 오로지 그녀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아마 그대로 있었다면 히지카타는 영원히 아름다운 과거에만 머무른 채 살아갔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다시는 어느 누구도 마음속에 떠올리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한참이나 내딛지 못한 발걸음을 뻗은 히지카타는 조용히 담배 연기를 하늘에 내뱉었다.
5년 전의 히지카타라는 남자는 누군가에게 상처밖에 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차라리 그대로 사랑을 끌어안고 영원히 익사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와중에도 새로이 찾아온 사랑을 거부하지 못해 결국 아픔만 주고 말았다.
5 년전 바로 이 날이었다. 히지카타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낯선 타국에서의 생활은 산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해주었고, 덕분에 그저 미친 듯이 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아마 누군가 자신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평생 그렇게 살았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 날 우연히 회사 앞으로 찾아와 주먹을 날리던 오키타의 손은 어느새 자란 키만큼이나 매서웠고, 히지카타는 그저 쓴웃음밖에 지을 수 없었다. 히지카타는 묵묵하게 이야기를 들었고, 오키타에게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미츠바에 대해서도, 그리고 사카타 긴토키라는 남자에 대해서도. 차라리 날이 선 악의어린 말이었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오키타의 얇은 목소리 위로 퍼져나가는 희미한 울음에 히지카타는 말없이 담배 연기만을 집어 삼켰다. 소고, 그 때 네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결국 1년 뒤 지금 이 거리에 선 히지카타는 그 때의 물음을 또 다시 떠올렸다.
"히지카타...?" "....사카타."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이 너였어. 가장 먼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너였어.
긴 거리 위를 반짝 반짝 빛으로 가득 채운 남자를 보며 히지카타는 품에 넣은 휴대용 재떨이를 꺼내 담배를 비벼 눌렀다. 히지카타-. 분노도, 슬픔도, 그 어떤 악의 감정조차 없는 오로지 다정하기 만한 목소리에 히지카타는 잊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이름을 혀 끝 안에 밀어 넣었다. 언제나 그랬어. 너는 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었고, 바라면 먼저 손을 내미는 그런 남자였지.
"토시로-."
나 는 왜 너의 목소리를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강하게 끌어안는 남자의 손길에 히지카타는 조심스레 사카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부르지마, 멍청아. 질끈 깨문 입술 사이로 나오는 목소리는 꼴사납기 짝이 없는데, 입술 사이로 파고드는 손길은 너무 뜨거워서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다만 지금처럼 마주할 수 있기를. 물기어린 목소리를 삼키며 히지카타는 아주 오랜만에 사카타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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