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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jahblack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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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오션 로드 트립

이번 휴가는 어느 휴가보다 알찼다. 보냈던 휴가 중 가장 길었고, 가장 멀리 떠나왔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여행지를 찾던 도중 매우 합리적인 가격의 멜버른향 티켓을 찾았고, 오래지 않은 고민 후에 결제를 했다.

비행기표를 끊어놨으니, 다음은 호텔. 호주는 숙박비가 싸질 않으니 이참에 그동안 궁금했던 AirB&B를 이용해 봤다. 멜버른 중심지인 Flinder가에 좋은 가격에 숙소를 찾고, 시드니도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Redfern에 숙소를 정했다.

멜버른에 속한 Victoria 주에는 편도 300km에 달하는 해안도로인 Great Ocean Road가 유명하다니, 로드트립을 떠나볼 욕심이 났다. 갑작스런 항공사의 출발 일자 변경을 기회 삼아 출국을 2일 앞당겨 7박8일 일정을 9박10일 일정으로 바꾸고, 멜버른 도착 후 바로 카렌탈을 하여 해안도로 시작점에 BnB를 잡았다.

Lonely Planet을 찾아보고, 유튜브 호주 여행 브이로그와 블로그를 찾아보며 대략의 일정을 짰다. 시내 여행은 몇 군데 명소를 살펴보고 현지에서 즉흥으로 움직여야겠다 정했다. 해외로 나가는 여정 중에 여행만을 목적으로는 가장 긴 일정이기에, 출국날이 다가올 수록 설레기도 하더라.

8시간의 비행시간은 견딜만 했다. 토이스토리와 몇편의 페파피그, 2끼의 식사와 약간의 낮잠 그리고 몇가지 놀이로 딸아이도 별 짜증없이 지루함을 견뎌주었다.

서양인 특유의 여유에서 오는 친절함에 멜버른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낯선 억양도 나에겐 하나의 즐길 거리가 되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나서 혼자서 중얼중얼 그들의 억양을 따라해보는 재미.

미리 깔아놓은 스마트폰 네비어플을 키고 첫 날 숙소를 향했다. 호주는 운전석이 오른쪽이라, 드라이빙에 대한 기대감에 긴장감도 섞여서 묘한 떨림이 있었다. 과거 브리즈번 출장 시에 운전했던 경험을 떠올려 주위 사항을 계속 복기했다. 며칠 하다보니 운전대를 놓을 즈음에는 거의 익숙해��지만, 이틀 정도는 좌우 깜박이를 키려다가 와이퍼를 작동시키기나, 우회전하다가 반대차선으로 좌회전을 할 때 오른쪽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를 놓쳐서 경적 소리도 몇번을 들었다.

첫 행선지 Torquay는 작은 마을이었다. 소박한 다운타운에 surfing관련 샵들이 몇군데 눈에 띄이는 거 보면, 아마도 근처 해변가로 오는 서퍼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지 않을까 싶었다. 첫 끼는 태국음식으로 정했다. 호주는 고유의 음식이랄게 없다보니, 그냥 그리 정했다. 프론트를 지키던 이들이 백인이었으나 주방은 태국분들인 듯 싶었다. 이 작은 마을에 코캐시언이 직접 요리하고 운영하는 타이 음식점은 뭔가 자연스럽지 않을테니.

늦게 도착한 숙소는 타운 하우스 타입. 오래전 미국 교환학생 시절의 호스트 가정 생활이 떠올랐다. 코지한 방은 airBnB 첫인상을 좋게 해주었다. 아침은 전날 식료품점에서 산 과일과 빵으로 해결했다. 산지에서 만나는 딸기와 귤은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웠고 또 먹음직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로드트립의 시작.

캥거루를 구경할 수 있다는 BnB 호스트의 팁을 듣고 계획에 없었던 근처 골프장을 들렀다. 별도 마련된 프로그램을 따라 골프 카트를 타고 코스를 돌다보면 정말 어렵지 않게 캥거루 무리들을 볼 수 있었다. 드물지만 날아드드는 골프공에 맞아 다치기도 하고 페어위에에 나타나 경기를 잠시 중단하기도 한단다. 새로 알게된 몇가지 사실 : 새끼 캥거루중 암컷은 조이라고 불린다. 보통 무리를 지어 다니고 캥거루의 무리는 mob이라고 불린다. 수컷이 있을 경우 무리에 너무 근접하지 말 것을 경고 했는데 이는 수컷이 자신의 암컷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극도록 경계하기 때문. 보통 한 말이의 수컷이 수십마리의 암컷을 케어한다고...

가이드를 해주었던 Jane이란 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과거에 대학에서 캥거루를 연구하던 학자였다고 한다. 골프장은 Anglesea라는 동네에 있었는데 골프장에도 연배가 꽤 있는 분들만 보였고 동네 자체가 노후를 보내시는 분들이 많은 느낌을 받았다.

왼쪽에 바다 오른쪽에 수풀 아님 광야를 두고 달렸다. 달리다 보면 작은 마을이 나오고 또 다시 바다와 광야와 산과 하늘과 그런 것들이 날 정화시켰다. 시원했다.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과 남은 여행이 더 기대가 되었다.

중간 중간 보이는 갈색의 표지판을 따라 정차를 하고 풍경을 감상했다. 어떤 카메라로도, 더욱이 블베의 그 것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경관이지만, 넘치는 근사함이 자꾸 셔터를 누르�� 했다.

어릴적 가족 여행을 떠나면 어머니는 그렇게 자는 우리를 깨워서 창밖을 내다보게 했었는데, 유난하다 생각했던 어머니의 요구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쉽게 접할수 없는 이 경험을 딸아이가 하나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도 자꾸 여기봐바 저기봐바를 되풀이 했다.

Lorne시에서 들린 Teddys lookout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거센 바람을 맞으며 그 바람덕에 출렁이는 파도를 묵묵히 맞아온 절벽과 모래사장. 수 없는 세월 동안 멈춘적이 없었을 파도소리는 위대한 꼰대의 위로소리 같기도.

광할한 바다에서 조금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울창한 숲속이 나온다. 거센 바람덕인지 그렇게 높은 위도가 아님에도 침엽수가 꽤나 눈에 띄였다. 숲속 한 곳에는 의례 있어야 할 폭포가 있다. 근사하지 뭐. 새소리와 물소리. 청정한 나무냄새. 폐를 알콜로 소독해도 이보다 refresh해질 수 있을까. 주차장과 그리멀진 않지만 적지않은 계단을 내려올라야 하는데, 졸라대는 따님을 안고 올랐더니 담날 종아리에 알이 베기는 효과가. 여행동안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걷기도 많이 걸었지만, 따님 덕도 있는 듯.

Great Ocean Road는 길이와 경관이 great하다는 뜻 같다. 그다지 넓지 않은 1차로 차선에서 마주하는 차량이나 앞서거나 뒤따르는 차량을 만나는 것은 드문일이었다. 아직 바뀐 운전석에 적응중이라 표지판의 제한속도 보다 조금 못한 속도로 달렸는데, 뒤 따라오던 차 중에 나를 추월해 가는 차는 여행 중에 1대 밖에 보지 못했다. 멀리보이는 직선 도로에서 마주오는 차도 없는데 말이다. 나보다 느리게 가는 차를 만나도, 그 차 뒤를 따라가던 차중에 어떤 차도 추월은 하지 않더라. 오히려 몇몇 화물트럭과 캐러반은 자신을 갓길에 세워 뒤 차량을 먼져 보내주는 것을 보았다. 넓은 땅덩이에서 나오는 건가. 이들의 관대함과 여유는 새로운 멋이었다.

이튿 날의 숙소는 port campbell. GOR 코스 중에 하이라이트인 12 Apostles를 비롯한, 대양과 절벽이 어우러진 장관들 근처에 위치한 이 마을 역시 작은 시골 마을. 거리하나를 중심으로 상점과 음식점 몇몇으로 형성된 다운타운과 여행객을 대상으로한 숙박시설로 충분한 곳이었다. 로컬 바에 들려 피자와 파스타로 저녁을 먹었는데, 피클 한 점 서비스로 안나왔지만, 그래도 맛은 꽤 있었음. 호주의 음식점은 값이 좀 나가는 만큼 양도 상당해서 비싸지만 제값은 하는 느낌.

둘째 날 저녁부터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더니, 셋째날이 되니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비만 오면 다행인데 바람도 훠얼씬 거칠어지고 그 덕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 멜버른 지역은 하루에도 4계절을 경험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시기상 초여름이지만 혹시나 하여 덮을 거리를 가져가긴 했는데, 역부족이었이었다. 패딩..패딩이 필요했다. 주변의 관광객들 보니 패딩에 목돌이에 꽁꽁 싸메고 왔더라. 아, 게 중엔 반바지와 후드티로 비바람을 견디는 용자도 있었다.

이 날의 첫 행선지는 이 로드트립의 하이라이트인 12 Apostles였다. 열두제자라는 이름의 이 곳은 파도를 견디는 여러 암석을 제자라 칭한 곳인데, 이름에 의하면 열두개여야 하는 바위는 8개만 있다. 이런 모순에는 몇가지 설이 있는데, 들어본 것 중 어느것도 별로 납득이 가는 게 없으므로 패스. 이 지역의 명소들는 모두 바닷가 절벽위에 있기 때문에 나무로 된 전망 시설과 통행로가 있는데, 길을 따라 바다에 가까워질 수록 미친듯이 거세지는 바람과 때 마침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어린 딸을 데리고 전망로 끝까지 갈 수가 없었다. 아 이리도 억울할 수가. 로드 트립을 애초에 계획한게 아 바위덩어리들을 보려고 한 것인데 말이다. 날두를 보러간 인터밀란 경기에 날두가 출전하지 않는 격이랄까. 원래는 이 곳 절경들을 둘러본 후 해안도로를 벗어나 숲길을 따라 멜버른으로 돌아가는 길에 폭포 몇 곳을 들러보려 했으나, 이 거친 비바람과 추위에 유모차를 끌 수 있을지도 모를 숲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무리 무리.. 혹시나 오후가 되면 날씨가 괜찮아질까 하는 실같은 희망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들러 보자는 생각에 해안을 따라 더욱 서쪽으로 달렸다.

중간에 갈색 표지판 몇 곳에 내려 비바람과 재차 사투를 하며 도착한 곳은 warrnambool. 이름의 유래가 무얼까, 아프리카 아이스크림 이름같은 도시에서 우리는 서양판 민속촌이라 할 수 있는 Flagstaff village를 찾았다. 1800년대 즈음의 호주 마을을 구현해 놓은 곳에는 당시의 교회, 학교, 양복점, 병원, 대장갓, 신문사, 소방서, 조선소등의 시설을 엿볼 수 있었고 여기서도 피할 수 없는 비바람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였다. 바람은 일관성 있게 꾸준히 불어주었으나 비는 분단위로 오다 말다를 반복을 해주어 여행의 난이도를 높여주었다. 한 켠에는 maritime 박물관도 있었는데, 절벽이 즐비한 빅토리아주 해안가를 항해하다 침몰한 수 십대의 선박들의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 시절 이 황량한 땅에 무슨 일로 찾아와 객사하셨는지..남의 나라역사인지라, 찾아볼 의지까지는 없는 궁금증을 남겼다.

점심은 이 곳도 많은 식당이 오후 휴점시간이 있음을 간과하고 오후 3시 늦은 점심을 먹으려던 잘못에 먹으려던 베트남식은 먹지 못하고 주변에 아직 열린 동양식 식당에 들러 일식 벤또를 먹었다. 엥간한 식당은 다 맛이 괜찮네. 입이 별로 까다롭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주인인지 매니저인지 모르겠지만 태국말이 들렸다. 이 분들은 어떤 사연으로 아프리카 아이스크림 같은 이름의 도시에서 태국음식과 일식을 겻들인 식당일을 하게 되었을까.

점심을 먹기전부터 해오던 고민에 결단을 내릴 시간이 왔다. 이대로 내륙 도로를 이용해 멜버른으로 곧장 향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해안도로를 이용해 아쉬움이 잔뜩 남은 열두사도를 재접견 해볼 것인가.

글쎄 내 여생은 아직 창창하니 앞으로 호주를 다시 찾을 일도 있겠지만, 그 때에도 도로여행을 할까? 그 때 지나쳤던 열두사도를 기필꼬 다시 봐야겠어라는 열정이 생길까는 매우 의문이니, 한시간쯤 돌아가더라도 오늘 봐야겠다 싶었다. 어제 좀 더 일찍 잘 걸,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 좀 뛸 껄, 어제 그 공기밥은 남겨 둘 걸, 넷플릭스 보지 말고 책좀 볼걸.. 수많은 후회로 점쳐지는 일상이지만, 그 일상을 벗어 났으니 요런 기상도 있어야지.

서쪽으로 달리는 해안로도 멋있었는데, 동쪽으로 달리는 해안로는 더 근사했다. 너무 근사에서 갓길도 아닌 옆 흙길에 차를 새우고, 셔터를 마구 눌렀다. 바람은 여전했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발길을 서둘러 아침에 포기하고 돌아섰던 포인트를 넘어 계속 걸었다. 바람은 여전한 정도를 넘어 아린이를 날려버릴 기세로 불어 댔지만, 하루에 두 번이나 찾았는데 되돌아 갈 수는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이 풍경을 벌컥벌컥 구겨 넣었다. 마치 바이어와 첫 미팅 자리, 2GB 짜리 회사소개 동영상을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USB 2.0 디스크에 옮겨 담으며 빨리 복사되기를 재촉하는 그런 느낌으로. 나중에 이 여행을 떠올리거나 누군가에게 이야기 할 때, 뇌 속 어디를 뒤져보면 이 경치가 다시 생각나고 이 원대함에 다시 감격할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오랫동안 쳐다 보고 있을 여유가 없으니 일단 우겨 넣고 보는 그럼 느낌으로.

흐뭇함 마음으로 이제 멜버른을 향해 달렸다. 가는 길에 진짜 시골 마을에서 주유를 했다. 셀프 주유소 였는데, 렌트 차량의 주유구를 여는 법을 몰라 한참을 헤맸다. 분명 아침에 미리 체크했던 기억에 따르면 주유구를 누르면 이게 튀어나오면서 열렸었는데, 아무리 눌러도 열리지 않네.. 혹시해서 운전석 주변을 찾아봐도 열림 버튼은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주유구와 운전석을 한 3차례 왔다갔다 하니. 어느새 열려 있던 주유구를 발견했다. 요놈시키. 나중에 반납전에 마지막으로 주유할 때도 애를 좀 먹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시동을 꺼야 주유구를 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던게 아닌가 싶다.

돌아가는 길은 내륙으로 들어가 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가는 길에 평생 본 무지개 중 가장 선명하고 웅장한 무지개를 보았다. 그것도 지평선 저쪽에서 반대편까지 이어지는 온전한 반원형의 무지개. 그 무지개 위에 한 띠의 무지개가 또 연하게 나타났는데, 참말로 땅덩어리가 넒으니 볼 게 많다.

호주 고속 도로는 구간별로 제한속도가 80km 에서 100km 정도 였다. 흥미로운 것은 교통량에 여유가 있어도 대부분 운전자들이 제한 속도를 준수 한다는 것. 우리나라 고속도로 였으면 1차선에서 120km으로 달리면 뒤에서 바짝 달라 붙어서 재촉할텐데, 여기는 1차선에 제한속도로 달리면 앞차를 따라잡게 되더라. 남의 나라이니 최대한 안전 운전 한답시고, 나도 속도를 준수하고 달렸는데 앞에서 얼쩡거리는 차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제끼고 있더라.

멜버른에 도착하니 9시 쯔음. 시내 한 가운데 있는 숙소는 주차가 제공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로변이나 골목에 차를 그냥 막 댈 수도 없다. 도로변 주차는 보통 거리마다 1시간에서 3시간까지 짧은 시간만 유료 혹은 무료로 주차가 가능하고, 시내 곳곳에는 주차타워나 건물 내 주차장을 유료로 개방해놓는 곳이 많았는데, 주차료가 무척이나 비쌌다. 인터넷으로 사전에 미리 알아보았을 때 over night 주차 비용이 최소 5만원돈은 했고 밤새 주차할 수 있는 곳은 또 별로 없었다. 다행히 숙소가 있는 거리는 토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는 주차가 무료로 허용되어 요 것만 믿고 차를 끌고 온건데, 막상 가보니 차 델 곳이, 당연히, 없었다. 그렇겠지, 토요일 밤에 시내 중심가에 불토를 즐기려는 이들로 행인들이 꽤 많더라.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보며, 숙소 주변 두 블록 정도를 하나님을 찾으며 세바퀴 정도 도니까, 반갑게 붉게 밝혀진 후면등 두짝이 보였다. 할렐루야.

#멜버른여행 #the great ocean road #그레이트오션로드 #호주로드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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