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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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크게 세 가지 논쟁을 일으켰다.
왜 과거 사람들은 끔찍했는가?
핑커가 보기에 답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늘 끔찍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책 장의 주제와―전쟁은 언제 생겨났을까? 과거 수렵채집인의 삶은 홉스식이었을까, 루소식이었을까?―같은 얘기다. 그때도 보았듯이, 핑커는 인간의 조직적 폭력이 문명 이전부터 등장했으며 인류가 침팬지와 공통 선조에서 갈라져나온 시점까지 거슬러올라간다고 주장하는 진영에 속한다. 그리고 역시 그때 이야기했듯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견해에 설득력 있게 반대한다. 이들은 핑커의 진영이 데이터를 취사선택했고, 수렵원예 농경인을 수렵채집인으로 잘못 분류했고, 신식 정주성 수렵채집인을 전통적 유량 수렵채집인으로 부적절하게 통합했다고 지적한다.
왜 사람들이 덜 끔찍해졌는가?
핑커의 대답은 두 가지 요인으로 구성된다. 그는 우선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를 끌어들인다. 엘리아스는 국가가 힘을 독점하면서 폭력이 줄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문명화 과정’ 개념을 주장했다. 여기에 상업과 통상의 확산으로 사람들이 실용적 자기 절제를 하게 되었다는 점, 즉 상대방이 살아서 자신과 거래하는 편이 더 낫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이 더해진다. 상대방의 안녕이 중요해진 셈이다. 그 덕분에 핑커가 “이성의 에스컬레이터”라고 부르는 현상, 즉 감정이입 대상과 우리 편의 범위가 넓어지는 현상이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인권, 여성의 권리, 아동권, 동성애자의 권리, 동물권을 주창하는 ’권리 혁명’이 일어났다. 인지의 승리를 찬양하는 견해인 셈이다. 나아가 핑커는 20세기 동안 평균 IQ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플린 효과’를 덧붙여서, 도덕적 플린 효과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지능이 높아지고 이성을 존중하게 됨에 따라 마음 이론과 관점 취하기에 더 능숙해지고, 평화의 장기적 이득을 더 잘 깨닫게 되었을리라는 것이다. 한 서평가의 말을 빌리면, 핑커는 “자신의 문화를 문명화된 문화라고 부르는 걸 ���갈 만큼 소심하지 않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사방에서 이 견해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좌파는 죽은 백인 남성들의 계몽주의를 이처럼 현란하게 과대평가하는 것은 서구의 신제국주의를 부추기는 일이라고 비난한다. 나도 정치적으로는 이런 쪽으로 의견이 기우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날 폭력이 적고, 사회안전망이 폭넓게 구축되어 있고, 어린이 신부가 적고, 여성 입법가가 많고, 시민의 자유가 신성부락침으로 여겨지는 나라들은 보통 계몽주의의 문화적 직계 후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우파는 핑커가 종교를 무시한 채 인간의 품위가 계몽시대에 발명된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비난한다. 핑커는 이 점에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그가 보기에 세상이 나아진 것은 사람들이 ”영혼을 중시하던 데서 생명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뀐“ 덕이 크다고 유려하게 대꾸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른바 이성의 에스컬레이터가 감정을 무시한 채 인지만을 숭배한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소시오패스가 마음 이론에 능통하다는 것, (뇌 손상으로 말미암아) 완벽하게 이성적인 정신이 끔찍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 등쪽가쪽이마앞엽 겉질이 아니라 편도체와 섬겉질이 우리의 정의감을 부추긴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입이 닳도록 해왔으니 여러분도 알겠지만, 나는 여기서도 이성과 감정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본다.
정말로 사람들이 덜 끔찍해졌을까?
이 질문에는 뜨거운 논쟁이 뒤따랐다. 핑커는 ”우리는 종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라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이 낙천적 견해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발칸전쟁을 제외할 때 유럽에 145년 이래 평화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것은 역사상 가장 긴 평화라는 것이다. 핑커에게 이 ”긴 평화“는 서구가 제2차세계대전의 폐허 후 정신을 차렸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마침내 쉼없이 전쟁하는 대륙이 되는 것보다 하나의 시장을 이루는 것이 이득이라는 걸 깨달았고, 더불어 감정이입의 범위도 좀 넓어졌다는 것이다.
비판자들은 이 시각을 유럽중심주의로 규정한다. 서구 각가들이 자기네끼리는 정답게 지냈을지 몰라도, 다른 곳에서는 분명 전쟁을 치렀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와 알제리에서, 영국은 말레이반도와 케냐에서, 포르투갈은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베트남과 한국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싸웠다. 게다가 개발도���국의 일부는 수십 년간 쉼없이 전쟁을 치러왔다. 콩고 동부를 떠올려보라. 더 중요한 점은 서구가 의존국을 두어 자기들 대신 대리전을 치르게 한다는 발상을 떠올린 탓에 그 전쟁들이 더 참혹해졌다는 것이다. 20세기 말에 미국과 소련이 서로 대립하는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에 무기를 제공했다가 불과 몇 년 뒤에는 편을 바꿔서 반대편에게 무기를 제공한 예도 있지 않은가. 긴 평화는 서구인들만의 것이었다.
지난 천 년간 폭력이 꾸준히 줄었다는 주장은 내내 피투성이였던 20세기도 설명해야 한다. 제2차세계대전의 사망자는 5500만 명으로, 역사상 어떤 갈등의 사망자보다 많았다. 제2차세계대전, 스탈린, 마오쩌둥, 러시아와 중국의 내전까지 더하면 사망자는 1억 3000만 명에 육박한다.
핑커는 참으로 과학자답게 한 가지 분별 있는 조치를 취한다. 총 인구 규모를 감안하여 비율로 따지는 것이다. 그렇게 계산하면, 8세기 당나라에서 벌어졌던 안사의 난은 사망자 수가 ’겨우‘ 3600만 명이지만 당시 세계 인구의 6분의 1을 죽인 셈이 된다. 20세기 사건들 중 10위에 드는 사건은 딱 10위를 차지하는 제2차세계대전뿐이다. 그 위로는 안사의 난, 몽골제국의 정복 전쟁, 중동 노예무역, 명나라의 몰락, 로마제국의 몰락, 티무르가 저지른 학살, 유럽인의 아메리카원주민 말살, 대서양 노예무역 등이 있다.
비판자들은 이 점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이봐, 요리조리 조작해서 제2차세계대전의 사망자 5500만 명을 로마제국 몰락으로 인한 사망자 800만 명보다 적은 걸로 만드는 짓은 그만둬.“ 만약 9 · 11 테러 당시에 미국 인구가 3억 명이 아니라 6억 명이었다면 그로 인한 공포가 절반밖에 안 됐으리란 말인가? 하지만 핑커의 분석법은 타당하다. 우리가 디킨스 시절 런던보다 오늘날의 런던이 훨씬 더 안전하다는 걸 아는 것, 일부 수렵채집 집단의 살인율이 디트로이트시의 살인율과 맞먹는다는 걸 아는 것도 사건 발생 비율을 따진 결과다.
하지만 핑커는 논리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데 실패했다. 사건 지속 시간도 보정하는 걸 잊은 것이다. 그래서 6년간 진행된 제2차세계대전을 1200년간 지속된 중동 노예무역, 400년간 지속된 아메리카원주민 학살과 동등하게 비교했다. 총 세계 인구뿐 아니라 지속 기간까지 보정하면, 이제 10위 안에 제2차세계대전(1위), 제1차세계대전(3위), 러시아내전(8위), 마오쩌둥(10위)이 들어가고 핑커의 목록에는 없었던 사건, 단 100일간 70만 명이 살해된 르완다 집단학살(7위)도 들어간다.[*전체 목록은 이렇가(연간 사망자 추정치 순위다);①제2차세계대전, 1100만명 ②안사의 난, 450만 명 ��제1차세계대전, 300만 명 ④와 ⑤태평천국의 난과 티무르, 각 280만 명 ⑥명나라의 몰락, 250만 명 ⑦과 ⑧몽고의 정복과 르완다 집단학살, 각 240만 명 ⑨러시아 내전, 180만 명 ⑩러시아의 16~17세기 동란 시대, 150만 명 ⑪마오쩌둥이 초래한 중국 기근, 140만 명]
이것은 좋은 소식이기도 하고 나쁜 소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대상에게 권리를 부여하고, 감정이입을 느끼고, 더 많은 지구적 불행에 대응한다.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의 수가 적어졌다는 것, 사회가 그런 사람들을 억제하려고 애쓴다는 것도 나아진 점이다. 반면 나쁜 소식은 폭력적인 소수의 활동 범위가 갈수록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다른 대륙의 사건에 대해 말로만 ��분하지 않고 직접 그곳으로 가서 행패를 부린다. 카리스마 있는 폭력적인 인간 하나가 제 동네에서만 깡패단을 결성하는 게 아니라 온라인 채팅방에서 수천 명에게 영향을 미친다. 마음 맞는 외톨이 범죄자들이 더 쉽게 만나고 서로를 물들인가. 과거에 곤봉이나 마체테가 혼란을 일으켰다면 요즘은 자동 화기나 폭탄이 일으키고, 결과도 훨씬 더 끔찍하다. 세상은 나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충분히 좋은 건 아니다.
(744~748쪽)
행동 - 로버트 새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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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은 통일의 완성을 향한 출발이다(2345)
79년 전의 광복은 해방과 독립을 성취하였으나, 한 민족국가를 두 정권으로 분열시켰다. 그동안 통일을 위해서 노력을 계속했지만, 현재 상황으로 이어져 왔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공존할 수 없는 적대 국가로 선언했다.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과 더불어 우리 동포를 자유 민주국가로 통일할 수 없음을 확인한 지 오래다. 계속돼온 배신과 전쟁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 원인을 만들었는가. 공산주의 국가의 탄생이다.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을 레닌이 러시아를 정치화시켰고 스탈린 때에는 그 실세가 세계화되기 시작했다. 6·25전쟁도 그 하나이나, 최근까지 지속해 온 무력 없는 냉전도 그로부터다.
공산주의의 세 가지 원칙과 철학
공산주의 국가 정책은 세 가지 원칙과 철학을 방법으로 삼는다. 첫째는 경제문제 해결이 사회문제 해결의 기본이면서 목적이 된다는 ���상이다. 둘째는 그 구체적 실현을 위해서는 절대권력이 필수적이다. 셋째는 그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 방법도 혁명과 무력으로 감행할 수 있다는 신념과 철학이다. 그런 목적을 위해 계급투쟁을 선언하면서 자유세계와 대립해 왔다.
10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공산주의 자체도 수정되고 자유세계는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성공시켰다. 지금은 북한의 김일성 왕가 정치를 제외하고는 러시아와 중국까지도 좌와 우가 진보와 보수로 체질을 개선해 공존하는 사회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선진 국가들은 진보나 보수를 넘어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공존의 정신과 질서로 방향을 바꾼 지 오래다. 이런 역사적 현실에 직면하면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위해 무엇을 선택하며 책임져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과제는 인간다운 삶과 살고 싶은 조국을 위한 우리들의 정신과 삶의 가치관을 재정립해야 한다.
30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세계역사의 정신과 인간적 가치를 불과 2세기 동안의 일시적인 이데올로기 때문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경제관이 그렇다. 경제정책에 실패하고 국민 대부분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면 다른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된다. 돌로 떡을 만들어서라도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경제가 인간을 위한 삶의 전부도 아니고 삶의 궁극적 목표도 못 된다. 정신적 가치의 빈곤은 경제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인간애의 정신이 배제된다면 경제적 실책과 빈곤은 급속도로 가중될 수 있다. 경제는 빈곤층이 없는 사회육성으로 출발해 더 높은 경제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가 정치 제일의 선결과제이기는 해도 정치의 가치는 윤리와 휴머니즘에서만 완성될 수 있다.
인간애 없는 경제가 지닌 문제 뒤따르는 문제도 있었다. 그런 경제이념을 성취하기 위해서 정권 의존 정책을 당연시했다. 정권을 차지하지 못하면 가난과 빈곤을 해결할 주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레닌과 스탈린의 정권 관념이 정치계를 주관했다. 그 정권은 기존 정권과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 정권투쟁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경제적 계급관념은 정치적 제국주의와 동행하게 되고 권력 지상 관념에 빠지게 된다.
스탈린은 히틀러보다 더 조직적인 독재정치를 했다. 그 결과는 정권 이념이 존속하기 위해서 권위적 상징으로 변했다. 이념을 앞세운 정권은 모든 권위를 독점하는 권력의지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인류의 전통적 가치인 자유와 휴머니즘은 공산주의 정신과 공존을 용납하지 않았다. 민주정치의 등장과 승리가 세계사의 무대를 차지했다. 국민을 위한 정치, 약자를 높여주는 의지, 소외자에 희망을 안겨주려는 민주정치가 공산정권에 우위를 점유하게 되었다. 정치가와 사회복지를 창조해주는 지도자가 존경과 감사의 권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공산정권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투쟁의 대상이 있어야 성장 발전할 수 있다고 믿으며, 우리의 목적이 정당하므로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어도 싸워서 이기면 정의가 된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가치관까지 거부하며 정신적 혁명 없이는 정치 경제적 혁명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진실과 자유를 배제하며 투쟁과 폭력을 성공의 무기로 삼는다.
인류의 절대가치 저버린 북한 정권 북한의 실정이 그렇다. 진실을 폭력으로 소멸시켰다. 후에는 자유와 인간애의 질서와 전통까지 설 자리를 주지 않았다. 진실과 정의, 자유와 인간애의 가치와 질서를 거부 배제하면 남는 것이 없어진다. 악의 수단과 방법이 선한 의지와 역사의 희망까지 상실케 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공멸을 면치 못한다. 대한민국 안에도 역사적 진실까지 왜곡시키려는 좌파 지도자들이 있었을 정도다.
현재의 북한은 민주주의의 정신과 가치를 포기했고 인류의 절대가치인 인간애와 인권의 존엄성까지 저버린 독재정치를 감행하고 있다. 통일을 위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공산 정치의 폐습을 버리고 자유 민주정치로 환원하며 인류 역사의 정도인 휴머니즘(인간애)의 가치를 지향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 균형을 만든다. 가난을 극복하면 자유를 찾게 되고, 교육을 받으면 조화로운 공동체 의식을 찾아 누리게 된다. 남과 북의 동포는 서로의 실상을 비교하면서 인적 교류와 문화의 동질성을 높여야 한다. 객관적 위치에서 경제 교류를 통해 삶의 질이 높아진다면 정치적 협력과 통일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북한 동포를 위하는 정성과 사랑을 증대하는 노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8/14/24/hwanshikkim.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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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구입 도서





- 이번 달에 구입도서는 어쩌다 보니 연구서보다는 흥미로 구입한 책들이 다수.
- 우선 우연히 페북에 올라온 『革マル派五十年の軌跡』이라는 책 사진을 보고, 예전 일본 학생 운동, 신좌파 운동사를 보던 기억에 구입한 타치바나 타카시(立花隆)의 『中核VS革マル』 (講談社, 1983) 87년 노태우의 6.29 선언이 발표되고는, “혁명이 유산되는 현장”을 보고 있다는 절망감(물론 지금 보면 그 전제인 ‘혁명이 예고되는 시점’이라는 정세 규정 자체가 일종의 과대망상이었지만)에서 학교 서점에 들어가 일본 학생 운동사를 보며 고민을 하게 되었다. 시차는 있겠지만 아마 이 때 많은 학생운동가들도 비슷한 (그러나 암묵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그 후 학생운동의 행보는, 광적으로 통일운동에 매달렸던 NL 계열이나, 반-개량 투쟁을 강조했던 ND, PD 계열이나 모두 극단화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초조함? 물론 더 결정적인 건 90년 전후의 소련 붕괴 문제이긴 하지만. 하여간 ‘개량의 물적 토대’를 일찍부터 확보한, 그래서 빠른 자본주의적 성장이 가능했던 일본에서 학생운동은 어떤 궤적을 거치게 되는지 중요한 관심사였다. 대중 투쟁의 가능성을 놓칠 때 결국 운동은 소수화, 극단화 되는 것이라는 오랜 운동사의 명제를 일본은 다시 확인하게 했었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스탈린 대신 마오쩌둥을 선택한 대부분의 정파들은 이런 극단화의 양상이 더 심해진다는 건, Julia Lovell의 흥미진진한 마오이즘의 역사인 『Maoism: A Global History』에서 생생하게 그린 바 있으니. 하여간 잠깐 훑어본 것만 해도 정당한 문제제기가 어떻게 광기로 전환되는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듯.
- 다음은 아사히 신문에서 해마다 중심 주제를 가지고 여는 국제 심포지엄을 묶은 문고판들. 역시 일본이 좋아하는 학자인 엠마뉴엘 도트와 마르쿠스 가브리엘 등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명사들 좌담회가 그저 뻔한 이야기로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지만 어떨지 조금 걱정. 2022년 10월에 열린 심포지엄 모음은 『2035年の世界地図 ― 失われる民主主義、破裂する資本主義』 (朝日新聞出版, 2023) 중심 주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미래. 2023년 10월에 열린 심포지엄 모음은 『人類の終着点 戦争、AI、ヒューマニティの未来』 (朝日新聞出版, 2024) 중심 주제는 전쟁을 둘러싼 인류의 미래, 그리고 특히 AI와 관련한 기술 문제도 다뤄진다. 가볍게 읽어볼 수 있을 듯.
- 연구 서적으로는 21세기 들어 이미 근본적으로 전환되었��고 추정되는 정치에 대한 연구서. 여러 학자들이 지금의 분단화 된 세계에서 (즉 2차 세계 대전 이후 지배했던 ‘리버럴’ 승리에 대한 믿음, 그것이 사회주의나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통한 성취의 가능성) 새로운 보편주의적 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아리카 마코토(有賀誠) 등이 편집한 『普遍主義の可能性/不可能性: 分断の時代をサバイブするために』 (法政大学出版局, 2024) 그런데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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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습관에 따라 기계적으로 살아간다. 피타고라스는 의식의 각성이라는 메시지를 가져왔다. 이 메시지에 귀 기울였다면 서양에 엄청난 명상의 에너지가 발산되었을 것이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스탈린 같은 인물이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양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똑같은 습관이 되풀이되고 있다.
인간의 신체를 바꾸기 전에는 의식을 변화시킬 수 없다. 고기를 먹을 때 그대는 동물을 흡수한다. 그런데 동물은 초월되어야 ��는 것이다. 피하라! 진정으로 더 높이 올라가기를 원한다면, 진정으로 의식의 정상에 오르고 싶다면, 진실로 신을 알고 싶다면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대 자신의 삶을 둘러보고 아주 작은 습관 하나까지 자세하게 관찰해야 한다. 때로는 아주 사소한 것이 삶 전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때로는 아주 간단한 것이 그대의 삶 전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채식을 해보라. 그러면 그대는 깜짝 놀랄 것이다. 명상이 더 쉬워진다. 사랑이 더 미묘해지고 거친 면이 없어진다. 사랑의 감성이 더 발달하고 관능적인 면은 줄어든다. 성적인 면이 줄어들고 더 기도와 가깝게 된다. 신체 또한 다른 분위기를 갖기 시작한다. 그대는 더 우아하고 부드러우며 여성적이 된다. 공격성은 줄어들고 수용적인 면이 증가한다.
채식은 그대 안에 연금술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채식은 그대 안에 비금속이 황금으로 변형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 오쇼의 <피타고라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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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일 #오늘의역사 #2번째 #출석체크 ✔ 일본 육사를 졸업했지만 출세길을 버린 #김경천 #역사꽃연구소 Reposted from @history_bloom ※ #KBS역사스페셜 – #백마탄김장군, 김경천 ! #시베리아 의 전설이 되다 / KBS 20121206 방송 https://t.co/4IiBPxeR2W ※ MBC 다큐 스페셜 - 마지막 무관생도들 http://m.imbc.com/vod/vodlist/1004401100000100000 #경천아일록 #지청천 #신흥무관학교 #이만전투 #만주 #연��주 #항일무장투쟁 #독립전쟁 #독립군 #소비에트혁명 #스탈린 #카자흐스탄 #고려인 #신역사스페셜 #KBS역사저널_그날 https://www.instagram.com/p/CYO1F4rvXnk/?utm_medium=tumb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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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 슐츠 사진 Sava Schultz
사바 슐츠 사진 Sava Schultz 좋습니다.
사바 슐츠 사진 Sava Schultz 화보 사이트 <
사바숄츠 사바슐츠 샤바숄츠 샤바슐츠 아름답습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떠들썩한 군중��� 다수의 국가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의회 입법당 대표 Siddaramaiah는 KPCC 회장 D.K. 부총리로 선서한 Shivakumar.
Bengaluru의 Kanteerava 경기장에서 한 시간 이상 지속된 의회 파티의 즐거운 행사에서 Thaaarchand Gehlot 주지사는 8명의 MLA 고위 의회 MLA를 내각 장관으로 선서했습니다. 여기에는 G. Parameshwar, K.H. Muniyappa, K.J. 조지, 프리양크 카게, 사티시 자르키홀리, 사바 슐츠 사진 Sava Schultz 라말링가 레디, B.Z. 자미르 아메드 칸과 M.B. 이름이 5월 19일 밤 늦게 지워진 Patil.
의회 지지자들은 Siddaramaiah, DKS가 Karnataka를 담당하는 것을 지켜 봅니다. 수천 명의 지지자와 비 BJP 정당 대표들이 2023년 5월 20일 벵갈루루의 칸티라바 경기장에서 카르나타카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새 의회 정부를 보기 위해 나타났습니다. Mr. Siddaramaiah는 5월 20일 아침에 그들의 이름을 주지사 사무실로 보냈습니다. 8명의 지도자의 이름은 여러 다른 고위 지도자들과 각료 후보들이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는 가운데 의회 중앙 지도자들의 여러 심의 끝에 삭제되었습니다.
“국민은 대회를 축복했고 대회의 승리는 국민의 승리입니다. 우리의 거버넌스는 변화를 추구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국무회의에서 그 보장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또한 앞으로 5년 안에 선언문에 포함된 모든 약속을 이행할 것입니다.
시다��마이아 씨가 취임한 직후, 의회 지도자 라훌 간디(Rahul Gandhi)는 사바 슐츠 사진 Sava Schultz 봉호미 쇼에서 새로 취임한 총리를 껴안았습니다.
Kanteerava 경기장의 분위기는 선서식 몇 시간 전에 깃발과 문신을 한 많은 의회 지지자들이 경기장으로 모여들면서 짜릿했습니다. 군중은 각 지도자가 연단에 입장하는 동안 승인을 외쳤습니다. 약 20,000명의 지지자들이 시드다라마이야 씨가 두 번째로 CM의 취임 선서를 하는 중대한 행사를 목격하기 위해 경기장에 있었지만, 수천 명의 사람들이 경기장에 입장할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습니다.
이 행사는 AICC 회장 Mallikarjuna Kharge와 의회 지도자 Rahul Gandhi 및 Priyanka Gandhi Vadra의 참석으로 표시되었습니다. 또한 Bihar 수석 장관 Nitish Kumar와 그의 차관 Tejaswi Yadav, 전 잠무 및 카슈미르 수석 장관 Farooq Abdullah 및 Mehbooba Mufti, CPI 지도자 D. Raja, CPI(M) 지도자 Sitaram Yechury, Tamil Nadu 수석 장관 M.K. 스탈린, 배우 출신 정치인 카말 하산, 전 마하라슈트라 총리 샤라드 파와르.
의회는 BJP에 반대하는 인도 전역의 정당들의 단결을 보여주는 메시지로 무대를 바꾸고 2024년 Lok Sabha 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정당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했습니다.
장관들이 취임 선서를 한 직후 라훌 간디는 의회가 부패 없는 정부를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사랑과 진실이 증오와 부패를 이겼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곁에는 진실과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Karnataka의 사람들은 BJP가 돈, 권력, 경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패와 증오를 물리쳤습니다. 사바 슐츠 사진 Sava Schultz 증오의 시장에서 사람들은 사랑과 화합의 가게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거짓된 약속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한 것을 지킬 것입니다. 앞으로 몇 시간 안에 내각은 5가지 보장을 해제할 것이며 법적으로 이행될 것입니다.”라고 그는 Karnataka 사람들에게 사바숄츠 사바슐츠 샤바숄츠 샤바슐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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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인간의 운명과 성찰의 기록
알베르 카뮈 이방인 1942 / 뫼르소
헤르만 헤세 데미안 1919 / 싱클레어 크로머 데미안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 아브락사스abraxas /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1925 / 개츠비 데이지 닉 캐러웨이 뷰캐넌 정비공 / 상실의 시대 /
프란츠 카프카 변신 1915 / 그레고르 잠자 / 몸 해체 가족 해체 공간 집 해체 / 산업사회가 잉태한 현대성에 의문 제시 /
조지 오웰 동물농장 1945 / 메이저(마르크스 레닌) 나폴레옹(스탈린) 스노우볼(트로츠키) 존스(농장주인) / 오웰 사회주의자 소련식(스탈린식) 사회주의는 혐오함 /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880 /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탐욕 방탕) 큰아들 드미트리(음탕 순수) 둘째아들 이반(무신론자 허무주의자) 셋째아들 알렉세이(수도원 신앙 종교적) 사생아 스메르자코프(간질 분노) / 그루센카(표도르 vs 드미트리) 스메르자코프가 표도르 살해 드미트리가 살인범으로 체포/ 스메르자코프 자살 드미트리 20년형 선고받음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962 / 수용소 군도 노벨��� /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1939 / 대공황 배경 / 조드 가족 케이시 큰아들 톰 조드 딸 로저샨 / 에덴의 동쪽 / 근대 자본주의의 어둠 / 그래도 역시 사람만이 희망 / 1962 노벨 문학상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1922 / 레오폴드 블룸 매리온 부인 / 18시간 / 의식의 흐름 내면의 독백 기법 / 버지니아 울프 읠리엄 포크너 등에 영향 / 더블린 6월 16일 블룸의 날 /
단테 신곡 1321 / 지옥 연옥 천국 베아트리체 / 지옥 서곡 1 각 33 100곡 / 원제 알리기에리 단테의 희극 / 비극으로 시작하지만 해피엔딩 / 유래 보카치오 신적인 희극 이를 일본학자가 신곡이라 번역 / 중세의 모든 학문 종합 / 이탈리아어가 피렌체어 중심으로 통일 / 국가 개념 민족주의에 눈뜨기 시작 / 중세의 사상이 괴테 헤겔 쇼펜하우어 같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전승되는 다리 역할 / 이탈리아 문학 발달에 결정적 영향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1923 / 릴케 루 살로메 니체 프로이트 / 전 10편 / 일치와 대립의 결합 / 연작시 서정시 / 근현대 시문학의 거대한 원형 /
장 폴 사르트르 구토 1938 / 드골 사르트르 / 실존주의 / 로캉탱 / 존재existence 본질essence /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
스탕달 적과 흑 1830 / 쥘리엥 소렐 시장 부인 레날 부인 후작 집 딸 마틸드 / 계급 메커니즘에 도전한 뛰어난 사회소설 + 섬세한 심리묘사로 만들어낸 리얼리즘 연애소설 / 적 나폴레옹 군대 군복의 이미지 자유주의 흑 왕정복고 시대의 사제복의 이미지 보수 왕당파 /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1933 / 상하이 폭동 테러리스트 / 기요(이상주의자 폭동주도 체포 자살) 첸(장제스 암살 시도) 카토프(체 게바라 순교자 연상시키는 인물) /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앙드레 말로 / 허무주의적 고독감에서 탈출하려는 인간의 필사적인 모습을 그림 /
월트 휘트먼(1819-) 풀잎 1855 / 죽은 시인의 사회 오 캡틴 마이 캡틴 1865 링컨 추모시 / 미국식 자유시의 창시자 /
제인 오스틴(1775-) 오만과 편견 1813 / 로코의 효시 영문학의 기념비적 작품 / 엘리자베스 다아시 / 제인 빙리 /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
버지니아 울프(1882-1941) 등대로 1927 / 의식의 흐름 기법 개척자 / 무학 블룸��버리 그룹 존 케인스 e m 포스터 오빠 토비 남편 레너드 / 램지 가 / 내면의 갈등과 억압을 절묘하게 묘사 / 등대 영원한 진리나 이상을 의미 / 램지 부인 지혜의 상징 / 페미니즘 모더니즘 계몽주의 /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인 필체로 표현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774 / 낭만주의 소설의 원조 / 베르테르 로테 /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1601? / 햄릿 아버지 클라디우스 거트루스 오필리아 오필리아의 오빠와 아버지 / 영문학의 정전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1869? / 안드레이 나타샤 피에르(나폴레옹 암살 시도) 카라타예프(농부) / 생명력 살아 있음의 위대함 / 1805년 1차 나폴레옹 전쟁에서 혁명의 기운이 일기 시작한 1820년까지 15년간 러시아 역사의 격변 배경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1952 / 산티아고(쿠바의 노인 어부) 마놀린(꼬마) 청새치 상어 /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한 투쟁 / 바다는 희망과 절망 모두를 삼켜버리는 무한의 공간 /
잭 케루악 길 위에서 1957 / 샐 파라다이스(실패한 젊은 작가) 딘 모리아티(자유로운 영혼) / 뉴욕 la 멕시코 1.3만 km 히치하이크로 여행 / 작가 앨런 긴즈버그 닐 캐서디 등과 유랑 생활 그 기록이 바로 길 위에서 / 비트 세대의 상징적 인물 / 1960년대 히피 운동과 국제 히피족의 상징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1948 / 덧없는 아름다움 / 시마무라 게이샤 고마코 요코 / 허무한 세계관 / 유서도 단서도 없는 죽음 가스 자살 / 다카한 여관(소설 완성) / 스토리가 아니라 분위기의 소설 / 갈등 구조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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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스탈린 유럽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 두명이 12년 동안 번갈아가며 지금의 우크라이나-폴란드-벨로루시 일대에서 계획적이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학살을 벌였고, 그 직접적인 피해자만 1,400만명이다.
우리는 왜, 무슨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를 이해해내야 한다. 만일 단지 그들을 인간이기를 포기한 괴물이나 악마로 상정해버리는 건, 쉽고 편한 대답일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유대인, 그리고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을 열등한 민족으로 대하였던 것과 똑같은 구조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조가 똑같다면,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에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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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秘話 (1693) 스탈린이 김일성의 승리를 방해? ♣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이 싸우도록 하여 美中 접근을 차단하는 게 목적이었다," 최근 100년간 일어난 전쟁 중 世界史의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전쟁은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 1939년의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1950년의 6.25 南侵전쟁이다. 1960년대의 월남전쟁이 한국전보다 더 많이 보도되고 영화로도 더 많이 다뤄졌지만 세계사의 흐름에 끼친 영향은 의외로 작다. 東南亞라는 지역과 東北亞라는 지역이 가진 전략적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6.25 전쟁에 대한 연구는 요즘 더 활발하다. 그 의미가 날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6.25 전쟁은 '스탈린의 전쟁'이었다 는 방향으로 정리된다. 스탈린이 기획하고 지휘하고 그의 죽음으로 휴전한 전쟁 이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김일성을 미끼로 이용, 미군 등 유엔군과 중공군을 한반도로 끌어들여 국제전 쟁터로 만들었다. 한국군, 북한군, 중공군, 미군, 유엔군, 그리고 민간인들을 합쳐 약300만 명이 죽었다. 전쟁을 일으킨 소련의 人命 피해는 조종사 수백 명(많아야 1000명 수준) 정도이다. 그렇다면 스탈린이 勝者인가? 60년 전엔 그렇게 보였으나 그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미국 등 서방세계가 國力을 총동원, 국제 공산주의 세력에 정면승부를 걸어 이를 무너뜨렸으니 지금은 敗者로 굳어졌다. 스탈린의 목적은 무엇이었던가? '한반도를 국제戰場으로 만들어 이곳에 미국과 중국을 끌어들여 싸우게 하는 것이었다'는 데 연구자들의 의견이 거의 일치한다. 여기서 김일성과 스탈린의 목적이 달라진다. 김 일성은 소련과 중공의 도움을 받아 남한을 쳐부수고 한반도를 공산화 통일하는 게 목적이었다. 스탈린은 중국과 미국이 붙어서 오래 싸우게 함으로써 出血을 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그렇게 되면 소련의 세계전략에 유리한 판도가 만들어진다. 중국은 미국 등 서방세계와 敵이 되므로 자연 히 소련에 의존하게 된다. 중국을 통일한 모택동은 대만을 점령하고 미국과 수교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스탈린은 중국과 미국이 가까워지는 것을 막는 데 전략의 최우선 순위를 두었다. 중국과 미국의 접근을 막 는 가장 좋은 길은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었고 그 무대를 한반도로 설정한 것이다. 김일성은 도구로 이용 되었다. 하지만 김일성이 기습 南侵의 여세를 몰아 단시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 한반도 赤化통일을 성공시키면 미군의 상륙이 불가능해지고 스탈린의 목적은 이뤄질 수 없다. 미국이 들어오고, 이어서 중국군을 끌어들 이기 위해서는 북한군이 너무 빨리 부산을 점령하면 안 된다. 그래서 스탈린은 김일성의 早�� 승리를 막기 위하여 여러 가지 수를 썼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창-존 핼리데이 共著인 '毛澤東 秘話'와 리처드 C. 소른 턴 교수(조지 워싱턴 대학)가 쓴 '왕따'(ODD MAN OUT)이란 책이 대표적이다. 黃長燁 선생도 작고하기 전 필자에게 재미있는 비화를 들려주었다. 김일성이 남침 전쟁에서 이기지 못것은 서울을 점령한 뒤 근 1주일을 머뭇거리면서 漢江을 건너지 못한 때문이라고 아쉬워하더란 것이다. 그 원인에 대하여 김일성은 스탈린 탓을 하였다 고 한다. 스탈린이 渡河 장비 등 군수지원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스탈린이 북한군의 南進을 고의로 늦추었다는 생각을 하더란 이야기였다. 소른턴 교수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한다. *소련이 만들어준 南侵전쟁계획서에는 서울점령까지만 적혀 있었다. 서울을 점령하기만 하면 후방에서 남로 당 지하 조직원 20만 명이 들고 일어나 李承晩 정부와 국군은 무너질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국군은 기습을 받았지만 항복을 거부하였고, 남로당의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미국은 파병을 결정하였다. *김일성과 지도부는 당황하였다. 일부는 점령한 서울을 지켜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면서 漢江 도하를 반대하 였다. 이때 스탈린이 개입, 한강을 건너 부산을 향하여 진격하라고 압박한다. *김일성은 전쟁지도를 할 때 스탈린의 명령을 구하고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스탈린은 구체적으로 전술 전략을 통제한다. 스탈린은 북한군이 너무 빨리 부산항을 점령, 미군이 상륙할 수 없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계산, 북 한군의 南進 속도를 늦춘다. 一例로 主力을 분산시킨다. 정예 6사단을 떼 내어 전략적 가치가 없는 호남지역 으로 보낸 것이다. *스탈린이 미국을 불러들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중공군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취한 가장 중요한 조치는 유엔 안보리 회의에 불참, 유엔 차원의 武力개입을 막지 않은 것이었다. 이는 스탈린이 말리크 유엔 대사에 지시하여 이뤄진 것이다. 스탈린은 미군이 유엔군의 기치 하에 한국에 들어오도록 도왔다. 스탈린이 중공군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미군의 한반도 투입을 반겼다는 가설을 앞으로 검증해보기로 한다. *6.25 南侵戰爭의 경과 1. 1949년3월5일: 김일성, 스탈린에게 南侵 의사 타진. 스탈린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 다고 南侵 반대. 2. 1949년 6월 주한미군 철수. 3. 1949년8월 소련의 原爆실험 성공 4. 1949년10월 중국의 공산화. 모택동, 약3만 명의 조선족 병력 북한으로 귀환시키 다. 5. 1950년1월12일: 에치슨, 내셔널 프레스 클럽 연설. "한국은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 외" 6. 1950년1월17일 김일성, 駐中북한대사 환송식에서 南侵의욕 밝히니 며칠 후 스탈 린, 김일성을 訪蘇 초청. 7. 1950년3월30일-4월25일: 김일성, 모스크바 방문. 스탈린, 모택동의 동의를 조건부 로 남침 허가. 8. 1950년5월13-16일, 김일성 박헌영이 모택동 방문, 南侵 동의 및 미군 개입시 파 병 약속을 받다. 9. 1950년6월: 소련군이 작전계획서 입안. 10. 1950년6월25일: 전면 남침. 트루먼 한국 파병 결심. 해공군 먼저 파병한 뒤 30일 에 육군 파병 결정. 27일 유엔안보리 한국에 대한 군사지원 결의. 28일 서울 함 락, 7월3일부터 본격적인 한강 渡河 시작. 북 한군의 6일간 지체가 결정적인 패 인. 7월20일 대전 점령, 6사단 호남으로 진격, 8월부터 낙동강 방어전 시작. 11. 1950년9월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 유엔군 北進, 북한군 붕괴 시작. 12. 1950년10월1일: 국군 38선 돌파. 김일성, 모택동에게 구원군 파병 호소. 13. 1950년10월5일: 스탈린, 모택동에 파병 설득. 14. 1950년10월8일: 모택동, 김일성에 파병 통보. 그 직후 소련이 항공지원 어렵다고 하자 중공 지도부 에서 파병보류론 대두, 모택동 다시 파병 결정. 15. 1950년10월13일: 스탈린, 김일성에게 만주로 피신 권고. 16. 1950년10월15일: 웨이크섬에서 트루먼과 맥아더 회담. 맥아더, 중공 개입 가능성 부인. 16. 1950년10월18일: 중공군, 북한지역으로 진입. 17. 1950년10월말: 중공군, 1차 공세 후 잠적. 18. 1950년11월말: 유엔군 대공세, 중공군과 정면 충돌. 유엔군 후퇴 시작. 19. 1951년1월4일: 서울 재함락. 워커 사망 후 리지웨이 중장이 8군 사령관으로 부 임. 20. 1951년1월에서 봄: 맥아더, 중공본토 공격 혹은 한반도 철수 주장. 유엔, 對中 휴전안 제안, 중공 거부. 리지웨이 반격 성공, 서울 수복하고 38선으로 복귀. 21. 1951년4월: 맥아더 해임. 22. 1951년6월5일: 소련 말리크, 휴전협상 제의. 23. 스탈린, 김일성의 휴전요청 거부, 出血戰 지속시킴. 24. 트루먼, 휴전협상 조건으로 포로들의 자유의사 존중 원칙 고수. 25. 1953년3월5일: 스탈린 사망. 3월19일에 소련 각료회의가 휴전하기로 결의. 26. 1953년6월: 이승만, 반공포로 석방, 한국을 희생시키는 휴전을 거부하겠다고 위 협하며 미국의 對韓안 전보장책 요구. 중공군 중부전선 보복성 공격. 미국은 이 승만 제거계획. 27. 1953년7월27일: 휴전. 28. 1954년: 韓美상호방위조약. *미결된 戰後처리-평화협정 시 타결해야 할 사건들 1. 약15만~20만명으로 추정되는 전쟁 중 납북자 2. 약12만명으로 추정되는 인민군과 좌익에 의한 학살자 3. 약2만5000명으로 추정되는 국군포로 未귀환자 4. 전쟁범죄자 처벌 및 보상 *6.25 전쟁의 세계사적인 의미 1. 중공, 대만 공격 단념. 미국, 대만 보호 결정. 2. 일본의 경제부흥 3. 韓美日안보동맹 성립 4. 독일의 재무장과 NATO의 군사동맹화 5. 미국의 군비증강 본격화 6. 한국, 자유진영의 쇼윈도 역할 7. 본격적인 냉전의 시작, 40년 �� 서방세계의 승리로 마무리 8. 냉전의 최종적인 종언은 한국의 자유통일로 *한국 국내에 끼친 영향 1. 1953년 체제 등장: 좌익을 일소하고 反共자유민주주의 노선 으로 근대화, 민주화 성공. 2. 군장교단의 등장과 집권, 산업화의 주체 3. 전면적인 韓美동맹 체제의 가동 4. 한국의 해양화 촉진 5. 조선조적 명분론의 퇴조와 실용적인 국가 분위기 조성 6. 전쟁을 겪은 국민들은 강인해진다. 2021-8-10 hwanshikkimus.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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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정상에 처음으로 오른 사람은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안다. 처음으로 그곳에 도달한 진정한 사람을 세상은 거의 알지 못한다. 그는 단지 짐꾼이었다. 그의 이름은 텐싱Tensing이었고, 네팔의 가난한 짐꾼이었다. 그가 그곳에 처음으로 도달했다. 그곳은 매우 위험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달하려고 애쓰다가 목숨을 잃었다. 에베레스트는 그냥 높은 봉우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등정을 준비하고 투자한 사람은 처음 주자가 되려고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 단 한 사람만 그곳에 서 있을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만 가능하다. 바람이 너무 거세고 고도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쌍한 짐꾼이 먼저 시도했다. 그리고 그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바로 돌아왔다. 그 다음으로 에베레스트에 도달한 ‘첫 번째’ 인간, 에드먼드 힐러리가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취했다. 그는 영국, 인도, 네팔의 국기를 세웠다. 세 나라 모두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 세 국기를 남겨두었지만, 힐러리 자신은 그곳에 단 10분 정도만 서 있었다. 그곳에 오래 서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곳에 처음 도달한 그 불쌍한 짐꾼을 역사는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힐러리는 그를 입막음하기 위해서 그에게 충분한 돈을 지불했다. 힐러리는 큰 규모의 연구소를 세웠고, 산악인들을 위한 훈련기관의 소장으로 텐싱을 임명했다. 하지만 비밀은 지켜질 수 없었다. 그곳에는 텐싱 뿐만 아니라 적어도 50명의 짐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가 누가 가장 먼저 올랐는지 목격했다. 그들 모두가 뇌물로 매수되었지만, 50명의 사람들이 그런 장면을 보았다면 소문이 퍼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그 팀원들 가운데 한 명을 만났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고 그저 짐꾼에 불과합니다. 양쪽의 군대가 서로 싸울 때 군인들이 서로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패합니다. 하지만 승자의 이름은 늘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병사들 뒤에 멀찍이 숨어서 위험한 상황이 되면 언제든지 가장 먼저 도망칠 준비를 ��고 있는 사령관에게 돌아갑니다. 자신의 부대가 승리하면, 그는 승리의 메달과 모든 것을 얻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법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고 불만이 없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돈을 많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더 높고 특별하고 우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온갖 술수를 동원한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정치이다. 내가 보기엔 평범한 사람들만이 정치에 관심을 둔다. 지성을 가진 사람들은 더 중요한 일을 갖고 있다. 지성은 삼류의 추한 정치, 더러운 정치와 싸우기 위해서 자신을 허비하지 않는다. 삼류의 사람들만이 대통령이나 총리가 될 수 있다. 지성은 갖춘 사람은 아무데도 갈 곳이 없는 사막에 이끌리지 않으며, 오아시스에도 현혹되지 않는 법이다.
따라서 본능적인 단계에서 정치는 단지 ‘힘은 옳다.’를 외친다. 정글의 법칙이 그 원리이다.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 보나파르트, 알렉산더, 타멀레인과 같은 사람들 모두가 인간이기보다는 야생늑대에 더 가깝다.
우리가 이 세상에 진정한 인간성을 바란다면, 이런 사람들의 이름을 완전히 지워버려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것마저 잊어버려야한다. 그들은 그저 악몽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역사는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 오쇼의 <권력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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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얻은 사람들
1.
꿈을 꾸었다 이상한 톱니바퀴같이 생긴 살이 뒤룩뒤룩 튀어나온 선홍색 소시지 같은 것이 작아졌다 커졌다 컴퓨터 그래픽처럼 입체적으로 앞뒤로 움직이더니 곧 온통 붉은색으로 색을 바꾸었다 그것은 무엇인지 생명인지 죽음인지 그렇게 한 순간에 변할 수 있는 건지 점점 세차게 꿈틀대더니 날뛰기 시작했다 내 눈 가까이에서 펄떡였다 나는 괴롭고 무서워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2.
새로 온 영어 선생님은 미국에서 온 중년 백인 남자였다. 날이 겨우 따뜻해지기 시작하던 초봄 어느 날 5교시에 그와 처음으로 수업을 하던 날이었다. 한쪽에 난 창문을 통해 햇볕이 슬금슬금 들어오더니 앉아있는 우리를 내리쬐었고, 햇빛에 적당히 데워진 우리는 모두 실컷 나른해졌었다.
조지오웰의 소설 어느 대목을 읽다가 스탈린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열어둔 창문으로 별안간 파리들이 날아 들어왔다. 한 마리가 아주 컸고 나머지는 작았지만, 파리들이 이리저리 교실을 누비고 다니면서 햇살을 즐기던 우리를 훼방 놓았다. 누구 할 것 없이 파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때 우리는 벌레를 잡는 데 재미를 붙이던 중이었다. 6년의 학창 생활의 끝물에 이제는 더는 새로운 것이 없는 우리가 겨우 찾은 새로운 재미는 지네나 거미나 할 것 없이 학교에 출몰하는 모든 벌레를 잡거나, 기르거나, 수집하거나, 그 수집한 것들을 한데 모아서 서로 싸우게 하거나, 고문하거나, 그래서 결국 그 곤충/벌레들을 어떻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 같은 것들이었다. 고3이 되었기 때문에 일과가 너무나 건조했고 지루했고 또 화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 그런 것들에게 향했다. 가장 쉽게 괴롭힐 수 있는 존재. 말도 없고 생각도 없어서 죽여도 아무 상관 없을 것 같은 존재.
누구 한 명이 교과서로 책상에 앉은 파리 한 마리를 후려쳤다. 그때,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백인 선생님이 말했다. 자기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고. 자기는 모기도 죽이지 않는다고. 그만하자고 말하던 그의 다급한 목소리에서는 분노나 슬픔 같은 것들이 뒤엉켜있었던 것 같다.
나는 첫 수업 이후 그가 하는 수업을 더이상 듣지 않았지만 언제는 그가 나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해주었다. 네다섯 명 정도의 학생을 초대해 교사 숙소 마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마당이래 봤자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여러 방을 한 건물처럼 만들기 위해 둔 시멘트 바닥이었다. 그 마당을 중심으로 문 여러 개가 앞뒤, 옆에 둘러싸여 있었다.
메뉴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식사 후 설거지를 하겠다는 우리를 만류하고 설거��하던 모습이 오히려 머릿속에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따금씩 그에 관한 이야기가 괴담처럼 귀에 들어왔다. 사실 그 선생님 여러번 감옥에 다녀왔고 정신 치료를 받던 사람이었다는. 한국에 오고 난 후 월급을 받으면 쌓아두고 모으는 것 하나 없이 받는 족족 매일 학생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학교에 떠돌던 고양이들을 거두어 먹이는 데로 다 써버린다는. 대체 어떻게 살고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학교에는 이런저런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특이하고 대단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모기도 잡지 않는다는 그 말이 꽤 인상깊었는지 모기를 잡아 죽일 때면 나는 가끔 그를 떠올렸다.
2-1
나는 리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어딘가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리가 볼 수 있는 지경이 얼마만큼 넓은지 그와 대화하다 보면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리는 똑똑했다. 나는 리가 가진 따뜻함이, 뭐든 쉽게 외면하지 못하는 훈훈한 마음씨가 그의 지성과 만났을 때 어떤 발칙하고 정의로운 일을 할 수 있을지 즐거운 마음으로 상상하곤 했다. 세월호 일이 계기가 되어 정치외교학과에 갔다던 그의 말을 잊지 않고 있다.
바닷가에서 다시 만난 리와 한참을 걸었다. 리는 여전히 키가 크고 호리호리했다. 1년 만에 만나 쌓인 이야기를 하다 보니 허기가 져서 가까이에 있는 피자집을 찾았다. 메뉴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무언가 대단한 걸 고백하는 듯 리는 말했다.
“올해부터 고기를 먹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와이안 피자를 시켜 둑에 앉아 함께 먹었다. 리는 파인애플이 들어간 피자를 먹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 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들이야, 는 리가 자주 하던 말 중 하나였는데, 사람들의 행동방식이나 유형을 파악하길 즐기는 리와 걸맞은 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가 동물을 먹지 않겠다 결심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비상식적인 거대한 규모의 폭력을 알게된 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참지 못하는 것은 모순과 그로 인해 되풀이되는 악순환에도 불구하고 행동하지 않는 자신 일 테니까.
2-2.
3년 전 7월의 초입 새에 정을 만났다. 나는 막내였고, 정은 24살로 우리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정과 그리 친하지 않았다. 지금은 연락처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정에 대해 기억나는 건 별로 없다. 헤비스모커였고, 전태일을 매우 존경했고, 정당 동아리에 열심이던 학생이었다는 것 정도. 정은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동물을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쩌다가 처음으로 함께 식사를 하게 된 날 정은 제대로 먹지 못했다. 디저트로 크레페를 만들어주겠다며 방에 초대해 크레페를 많이도 구워주었다. 정은 우유 없이도 맛있는 크레페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정은 그것을 거의 밥처럼 먹었다. 그러고는 창문 쪽으로 가 혼자 담배를 피웠다.
그 이후에도 그렇게 함께 식사하곤 했다. 하루걸러 한 번씩, 주말 같은 날이면 삼시 세끼를 다 먹을 때도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매일 보던 해마저도 낯설었다. 떠나 왔기 때문에 멀어진 것들과 새로 맞닥뜨려야 하는 무수한 낯섦들.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과 이제는 힘을 뺀 채 그만 놓아도 되는 것들. 연결과 단절. 새로 다짐해야 할 것들과 이제는 내려야 할 선택들. 그 사이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쉽게 벅찼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더욱더 모여서 밥을 같이 먹었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권의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돼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것들로 배를 가득 채우고 나면 새로운 것들과 마주해볼 힘이 생기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같이 밥을 먹다 보면 지겹게 떠 있던 해도 어느새 사라졌다.
하지만 정은 자주 그 자리에 없었다. 우리가 그렇게 매일 같이 모여 먹는 음식 중에는 동물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가 맞이해야 할 것들은 동물보다 더 중요한 문제 같아 보였다. 내가 있기까지 나 아닌 무엇이 희생되었는가는 궁금하지도 않았을 때였다.
정을 생각해 함께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해 먹기도 했지만 어쩐지 정은 점점 “너희끼리 먼저 먹어” 하거나 “먼저 먹었어” 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몇 달 후엔 같이 밥을 먹는 날이 손에 꼽힐 만큼 줄었고 학기가 끝날 때쯤에는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정에게 식사라는 것은 사람들과의 연결이나, 위안이나, 고향의 그리움을 견디게 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거절 할 수 있었다. 그때의 내가 헤아려 본 것은 그것뿐이지만, 정의 나이가 된 지금의 난 그가 거절하던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아서 그에게 묻고 싶었다. 정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그렇지만 겸허히 받아들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지, 무력감인지 희망인지, 겸손인지, 아니면 분노인지, 거절하며 연결된 것은 무엇인지, 하루에 세 번 끼니마다 선택해야 하던 것은, 잊을 수 없이 떠올리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3.
나와 비슷한 패배감으로 절망했었을, 나를 스쳐 지나간 정과 리 같은 사람, 백인 선생님,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존재들을 떠올렸다. 거절하고, 하지 않고, 가지지 않음으로 더불어 살기를 선택한 이들이었다.
나를 잃고 세계를 얻는다는 괴테의 말을 떠올렸다. 내 세계가 파괴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사르트르의 말도 떠올렸다. 그 두 사람의 말은 영혜의 자기 분열적인 파괴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영혜가 되고 싶지 않다고 되뇌었다.
대신 정과 리나 백인 선생님 같은 사람들처럼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비건을 지향한다는 것만으로 내가 가진 모든 고민이 끝나고 해결된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선택이 내 존재가 가진 모순의 간격을 조금이라도 좁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나를 잃어볼 수도 있는 경험이 나에게도 생기지 않을까.
나 덜 괴로워지자고 시작했지만, 나중에 어떤 괴로운 날에, 그 쌓인 경험들이 날 지탱해줄 힘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좋든 싫든 나와 연결된 무수한 존재들의 크기를 실감하면서.
까치발적인 모먼트를 하나둘 늘려서 살금살금, 숨죽이면서.
그렇게 살다 보면 뭐가 있을지 궁금해져서.
응. 그게 지금 내게 무엇보다 궁금한 일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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