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증조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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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말 #재원홀릭 #재호홀릭 #형제애 를 돈독히 다지는 중 😆😆😆 . #외증조할아버지#외증조할머니#묘 에서 #재롱잔치 라도 부리듯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형제 😘😘😘 . 아이들 할아버지, 아빠, 외할머니, 외삼촌 은 #용인별장 뒷산에 나무심고 앞터에 감자심느라 정신없구.. 외할아버지는 요리담당 😁😁😁 온가족이 모여 주말에 함께 땀흘리고 맛난음식먹고 덕담 나누니 하늘아래 가장 평안한 #쉼터 가 바로 여기라는 생각 😅👍 . 지금처럼 서로 옆에서 따스이 대해���는 평생 친구로만 자라주길 기도해본다 😉😘 . #베이비인스타#키즈인스타#가족#kids#baby#kidsinstagram#kidsstyle#family#happy#love#🇰🇷(용인별장에서)
#용인별장#재호홀릭#���#형제애#베이비인스타#kids#외증조할머니#쉼터#키즈인스타#재원홀릭#외증조할아버지#kidsstyle#family#happy#kidsinstagram#love#🇰🇷#재롱잔치#형제#baby#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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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MEMBERS MASTER LIST
I am going to post pictures I got from this website because I thought their charts were the easiest to understand, and then I’ll list the words below with explanations. There are some members in the charts that I didn’t include in my list, and some members in my list that aren’t in the charts, so check out both!
The terms listed first are the ~official terms~ and the terms in parenthesis are the colloquial terms (what you’d actually call them).
(BROTHERS AND SISTERS)
for a male:
자매(누나, 여동생)- sister
형제(형, 남동생)- brother
형수- older brother’s wife
매형(자형)- older sister’s husband
제수- younger brother’s wife
매제(매부)- younger sister’s husband
생질(조카)- sister’s son or daughter (nephew/niece)
질(조카)- brother’s son or daughter (nephew/niece)
for a female:
자매(언니, 여동생)- sister
형제(오빠, 남동생)- brother
올케(새언니)- older brother’s wife
형부- older sister’s husband
올케- younger brother’s wife
제부- younger sister’s husband
생질(조카)- sister’s son or daughter (nephew/niece)
질(조카)- brother’s son or daughter (nephew/niece)
(FATHER’S SIDE OF THE FAMILY)

부(아버지)- father
고모- father’s sister (aunt)
고모부- father’s sister’s husband (uncle)
백부(큰아버지)- father’s older brother (uncle)
숙부(작은아버지)- father’s younger brother (uncle)
백모(큰어머니)- father’s older brother’s wife (aunt)
숙모 (작은어머니)- father’s younger brother’s wife (aunt)
내종형제(사촌)- father’s sister’s son or daughter (cousin)
내종질(사촌조카)- father’s sister’s grandson or granddaughter
종형제(사촌)-father’s brother’s son or daughter (cousin)
종질(사촌조카)- father’s brother’s grandson or granddaughter
조부(할아버지)- father’s father (grandfather)
대고모- father’s father’s sister (great aunt)
종조(큰할아버지)- father’s father’s older brother (great uncle)
증조부(증조할아버지)- father’s father’s father (great grandfather)
조모(할머니)- father’s mother (grandmother)
증조모(증조할머니)- father’s mother’s mother (great grandmother)
(MOTHER’S SIDE OF THE FAMILY)

모(어머니)- mother
이모- mother’s sister (aunt)
이모부- mother’s sister’s husband (uncle)
외숙부(외삼촌)- mother’s brother (uncle)
외숙모- mother’s brother’s wife (aunt)
이종형제(사촌)- mother’s brother or sister’s son or daughter (cousin)
이종질(사촌조카)- mother’s sister’s grandson/granddaughter
외종질(사촌조카)-mother’s brother’s grandson/granddaughter
외조부(외할아버지)- mother’s father (grandfather)
외증조부(외증조할아버지)- mother’s father’s father (great grandfather)
존이모- mother’s father’s sister (great aunt)
외종조- mother’s father’s brother (great uncle)
외조모(외할머니)- mother’s mother (grandmother)
외증조모(외증조할머니)- mother’s mother’s mother (great grandmother)
(WIFE’S FAMILY)

부인(아내)- wife
장인- wife’s father
장모- wife’s mother
손윗처남(형님)- wife’s older brother
손윗처남댁(아주머니)- wife’s older brother’s wife
처형- wife’s older sister
손윗동서(형님)- wife’s older sister’s husband
처남- wife’s younger brother
처남댁- wife’s younger brother’s wife
처제- wife’s younger sister
동서- wife’s younger sister’s husband
(HUSBAND’S FAMILY)

남편- husband
시아버지- husband’s father
시어머니- husband’s mother
시아주버니(아주버님)- husband’s older brother
손윗동서(아주머님)- husband’s older brother’s wife
시누이(형님)- husband’s older sister
시자부(아주버님)- husband’s older sister’s husband
시동생(도련님)- husband’s younger brother
동서- husband’s younger brother’s wife
시누이(아가씨)- husband’s younger sister
매부- husband’s younger sister’s husband
#korean#master post#한국어#family#가족#korean study#study korean#learn korean#어휘#korean vocabulary#korean vocab#advanced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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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의 독백 (1.2)
역에서 허무함에 휩싸여 있던 나는, 경전선 완행열차를 타고 고흥에 있는 할머니집에 찾아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산에서부터 완행열차는 움직였다. 진주를 지나면서는 일제식 차고가 버티고 있었고, 북천을 지나면서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하동부터는 새로 가보는 길이었다.
나는 벌교역에서 내렸다.
나는 기차표를 산다고 돈을 거의 다 썼기 때문에 벌교에서부터 고흥으로 가는 국도를 걸어 갔다.
차가 드문드문 다니는 사차선 위로 아지랑이가 타오르고, 내가 겨우 낯익은 개펄 전망대에 이르렀을 때에는 손금같은 물길들 위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차선이 이어졌다. 나는 한복 차림의 아낙들이 손질하는 밭들을 지나갔다. 바다가 나타나면 그때부터는 바다변 국도를 따라 왼쪽으로 죽 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차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허술한 마을길에 접어들었을 때에는 이미 땅거미가 온통 곤색으로 가라앉았다. 불규칙하게 들어선 앙증스럽고 누추한 살림살이들에서 창백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저녁 식사 냄새나 그릇 부시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집은 더 깊이 들어가면 산 밑에 적적하게 도사리고 있는 적산 별장인데, 세모난 다락이 딸린 아담한 규모의 퀴퀴한 목옥이지만 마당도 있고 바다도 더 잘 보인다.
다른 집과 다를 바 없이 할머니집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할머니집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할머니를 불러도 대답이 없자 초조하게 열쇠를 쑤셔 넣은 뒤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복도 끝 푸르스름한 백열등이 비추는 양식 부엌에서, 떡 찧는 용도의 몽둥이를 든 남자가 날선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이쪽과 저쪽 사이에 낀 복도에 어느덧 감회의 실타래가 버무려졌다.
훌쩍 커서 남자 티가 나게 된 나의 조카였다.
“안명아…….”
안명도 나를 알아보고는 몽둥이를 벽 쪽에 치워 놓고, 삐걱거리는 목판 복도를 걸어 와서 갑자기 절을 하였다.
얘, 절을 왜 하니, 라고 말릴 틈도 없이 이모, 이모, 하면서 조카의 목구멍에 흐느낌이 치받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야, 일단 들어가자.”
안명을 따라 복도를 걸으니 할머니가 없는데도 사방에 할머니 냄새가 날리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할머니의 기척이 나타날 것 같으면서도 스산했다.
안명은 창백한 구식 조명 아래서 할머니 과도와 할머니 그릇을 사용해 홍옥을 예쁘게 깎기 시작했다. 나는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안명이 깎아놓는 족족 그것을 씹어 먹었다.
“그래, 안명이 너 왜 여기 있니?”
“이모, 평남봉기라고 풍문이라도 들어보셨슴까?”
“처음 듣는데…….”
“삼 개월 전 평남에 봉기가 났는데 확산되기 전에 포위되어 반란 주모자건 일반인이건 할 것 없이 잡히는 족족 소탕당한 사건입니다.”
“뭐엇?”
“저는 운 좋게 장산 기슭으로 올라 도망쳐서 대간정맥을 타고 남하하였습니다.”
“언니는? 형부는 어떻게 되었단 말이냐?”
“벌교에 도착해서 청나라신문들을 구해다 읽으��까, 자그마하게 다수의 주모자들이 체포된 후 골로 끌려가 생매장당했다는 기사가 보입디다.”
“그럼 너 잡으려는 사람들도 있니?”
“그건 아직 모릅니다. 저도 반란을 일으킨 당과 무관한 사람은 아니지만 워낙에 닥치는 대로 시민들이 죽어나서리 저도 죽은 걸로 되어버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네가 니 어머니를 많이 닮아 놔서 무슨 당에 사상을 일치시키고 무슨 삐라를 뿌리고 무슨 운동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위험한 신변이라면 느이 외증조할머니까지 위험에 빠뜨릴 건 또 뭐니?”
나는 말을 좀 가혹하게 했다. 안명은 한참동안 말을 쉰 뒤에, 그렇지만, 하고 운을 떼었다.
“어머니께서 평남으로 이직하실 때에 당이 지급한 어떤 고향 없는 죽은 여자의 신분증을 가지고 그 이름으로 모든 생활을 조직하고 계셨기에, 어머니 외가를 알기는 매우 어려울 듯 하여서…….”
“그래 그럼, 할머니는?”
“제가 여기서 한 달 쯤 외증조할머니와 살았는데, 얼마 전에 그만 이부자리에 누운 채로 돌아가셨습니다.”
나의 눈에서 눈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래서 어디계시니?”
“보름밤 지게에 지고 뒷산에 올라 할아버지 산소 옆에 무덤을 팠어요. 외증조할머니 마지막 유언대로…….”
나는 머리가 아파 왔다. 일단은 씻고 싶어서 나는 내일 얘기하자면서 욕실에 들어가 따뜻한 물을 받았다. 나는 달랑 크로스백 하나밖에 들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방의 옷장에서 할머니 속옷과 옷가지와 수건을 꺼내 왔다.
나는 샤워기도 없는 욕실에 쪼그려 앉아서 수도꼭지에 머리를 대고 할머니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목욕통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니 턱이 높은 목재 계단이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안명이 이부가지 따위를 들고 이층으로 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곧 속옷과 원피스를 입고 이층 다락으로 갔다. 이층 다락은 할머니가 죽어도 하나도 변경된 것 없이 종이박스와 노끈에 묶인 짐단지들이 양 가로 쌓여 있는 풍경이었다. 안명은 자신이 방금 열심히 걸레질을 해논 맨들한 골마루 위로 이불을 폈다.
“이모, 제가 여기서 잘 테니 할머니방에 가 주무십시오.”
그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락의 세모난 중앙창에서 불어오는 바다 냄새와 파도 소리에 이끌려 내가 여기서 잘 것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고, 머리도 말리지 않고 잠이 들었다.
나는 다음날 국도변을 무작정 걷기로 하였다. 그렇게 걷다가, 생뚱맞은 일차선으로 접어들었다. 소 울음소리가 아득한 행간을 두고서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거기엔 나즈막한 어촌이 숨어 있었다.
나는 마을을 둘러보는 수상쩍은 객지사람이 되기도 뭣하여 소나무 그림자가 얼룩진 소로를 따라 절벽 밑을 휘감아 돌아갔다. 너무 놀랍게도, 붉은 빛 도는 개펄이 한도 끝도 없이 펼쳐졌다. 개펄의 규모는 인간의 문명이 들어서기 이전 원시적인 형태의 드넓은 평야를 보는 것만 같이 광대하였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바다로 빠지는 손금같은 물길들에는 구름이 비쳤다.
까마득한 맞은 편 공룡의 뼈같이 팔영산의 암석들이 보이고, 팔영산 바로 밑에는 점처럼 고깃배가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울었고, 고함 질렀고, 악다구니를 쓰며 개펄 위를 달리다 아랫배를 움켜쥐고 쓰러져 뒹굴었다.
뻘 투성이가 되어 귀가하니, 안명이 부엌에서 어두운 정원으로 나가는 문턱에 앉아 콩껍질을 까고 있었다.
“이모,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나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려 했다간 눈물을 주체 못할 것을 알고, 어디서 난 콩이니, 물었다.
“뒷산 할머니밭에서 뜯어온 거야요. 이거 다 먹고 나면 이제 장에 가서 먹을 거 사 가지고 와야 됨다.”
나는 안명이는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구나, 사는 게 그토록 재미지나 보지, 하고 묘한 적대감이 일었다.
다음날 안명과 고흥장엘 가기로 하였다. 버스 차창을 넘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안명 앞좌석에 앉아서 나는 끔뻑 잠이 들었다. 하얀 창호지 속에 푹 파묻힌 것마냥 따스했다. 눈꺼풀을 닫자 눈앞이 한 올 한 올 행복을 짜놓은 거대한 옷감같이만 느껴졌다. 나는 왜 안명이 자기 손으로 할머니를 묻었는지 확 알게 되었다. 할머니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면, 고흥에 있는 동안 아무런 훼방도 당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무구한 고독과 평화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나 역시 정갈하고 따스한 눈앞의 옷감을 지키고 싶었다. 나도 할머니에 관한 한 안명 계획의 공모자가 돼야 겠다고 생각했다.
시장에 접어들어 자치정부도 없는 이 극도로 불안정한 나라의 유일한 통신 수단인 우체국 앞을 지났다. 그때 안명이 쭈볏거리며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지만 나는 덤덤하게 애당초 우리 일가 쪽으��� 어떠한 연락도 할 생각 없다고 말했다.
“너희 가족과 연락이 끊긴 뒤로, 안명아, 나는 몇 년 동안 여자로서 가장 중요한 곳에 지병을 앓아 왔단다. 지병 때문에 신체적으로 끔찍스레 고통스러울 때도 있고, 피가 나왔다 하면 한달 간 누워서 피만 받아야 하기도 하느니라. 그래서 사회로도 못 나가고 집안에서도 돈이 없으니 어서 죽으라, 죽으라는 소리만 듣고 살아 왔단다. 처음에는 내 인생 앞으로 고통 밖에 없을 건데 지금 죽는 게 합리적이다, 깨닫고 집을 나왔단다. 그런데 가만히 되살펴보기로 할머니라면 날 돌봐주지 않겠나 싶은 심정이 되지 않겠니?”
안명이 멈춰서더니 내 눈을 뚫어져라 보았다. 안명은 곧 내 손을 낚아채듯 끌고 그 손을 옥이라도 쥔 듯 아껴 쓰다듬으며, 사셔야지요, 사셔야지요, 거듭 말하면서 걸었다. 니까짓 게 뭘 안다고, 건방지게, 하는 적개심도 있었지만 그저 누구에게든 쏟아 내고만 싶었던 통곡을 나는 하였다.
하루가 지나고, 할아버지 무덤과 안명이 만들어 놓은 새 무덤에 술을 뿌리고 할머니께 절을 올렸다.
“할머니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됐니?”
안명은 손가락을 꼽더니 오늘이면 일주일 째 되는구먼요, 하였다.
내 머릿속은 사십구재를 올려야 겠다는 의지로 가득 찼다. 나는 안명을 설득하여 그를 앞세우고서, 당장 버스를 타고 절이 있는 팔영산으로 향했다. 내가 산 중턱에서 아랫배의 고통을 호소하였기 때문에, 안명은 준비되어 있던 지게에 나를 묶어 이고 비탈을 올라갔다. 나는 성장기 중의 조카 등에 엎혀도 문제가 없을 만큼 팔뚝이며 다리며 허리며 할 것 없이 매우 야위어 있었다.
산정에 가까워져 주위가 비자나무 군락지로 바뀌자 커다란 동종(銅鐘)이 나타났다. 종각 옆에 서자 사방이 트이고 마루금이 예닐곱 개 까지 포개져 있었다.
절 안에는 아무의 기척도 없고, 공양간에도 먼지만 앉아 있었다.
“주지 스님이 어디로 갔을까?”
“모두 다 어디론가 끌려간 것 같은데요…....”
나는 기운이 풀려 대웅전을 마주보고 낡아빠진 툇마루에 주저 앉았다. 안명에게도 미안해서 나는 그의 축축한 하얀 교복 와이셔츠 등을 자꾸 말없이 쓸어내리고 있었다.
안명이 처마 밑에서 양지 쪽으로 걸어 나갔다. 안명은 주인 없는 절에 저홀로 생동하는 길고 낡은 대롱의 물줄기로 가서 물을 받아 마셨다. 나를 여기까지 짊어지고 오다니, 한 오 년 못 본 사이에 조카가 청년이 다 되었다는 감탄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내가 아픈 사이에 세월이 흐른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핏줄은 끊어지지 않았던 것도 놀라웠다.
안명이 내 곁에 다가와서 앉았다. 그리고 조근조근 쉬지 않고 이야길 이어갔다.
“산에서…… 엄청 추웠슴다. 마른 솔잎을 깔고 누워서 눈꺼풀에 매달린 별들을 보면서 온몸을 딱딱거리며 떨기도 했었지요. 어느 날부터는 벌레가 내 몸을 집으로 삼고 기생하더만요. 권총이 있었지만 자그만 토끼조차도 불쌍해서 죽일 수가 없었고 단백질이 될 만한 게 어디 있어야죠. 약초를 뜯어 먹고 산고구마를 캐다 먹으며 몇 날 산을 타니까 정말 쓰러지더만요.
물빛이 여우가 신통술을 부리는 듯 영롱하게 요변하는 소(沼)들이 이어지는 골, 저는 그 골짝 어딘가에서 쓰러졌슴다. 물을 퍼마시다 바위 위에 기절해 있는 나를 천만 뜻밖에 화전민 노부부가 발견해내고는, 자기들 지게에 짊어다가 자기들 움막에 데리고 가더만요. 한동안 저는 그들과 함께 살면서, 밤에는 그들로부터 받은 대간정맥이 꼼꼼이 그려진 지도책을 몰두하여 노오트에 카피하고 낮에는 그들과 함께 약초를 캐러 다니며 지냈슴다.
저는 당시 어머니의 생사를 몰랐슴다. 투쟁에서 어머니가 끌려 갔는지, 죽었는지, 살아서 장산 파르티잔이 되었는지, 청나라에 망명하셨는지, 자식된 도리로 어찌 모르고서 별천지에만 살 수 있었겠슴까? 어머니를 만나면 강하게 설득해서 여기로 데리고 와야 겠다 싶었슴다. 결국 어머니를 찾으러 노부부의 집에서 채비를 갖추고 남하하였슴다. 어머니가 언젠가 배껴쓰게 해 준 난수표를 가지고 신문에 광고를 내고, 외증조할머니집에서 신문이나 받아 보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싶었고.
전 그때 일종의 패닉 상태에 있었슴다. 돈이 없었던 건 아니어서, 하산하여 기차를 탔어도 되었을 검다. 근데 당시 저는 남쪽(자치정부가 없는 땅)에 이르기 전까지 절대로 산 밖에는 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기아와 맹수보다도 국가 권력이 더 무서웠어요. 어쨌든 이러다 죽겠다 싶을 즈음 경주에 내려가 문명의 세계에서 미장원도 가고 피부과도 가고.
외증조할머니께서 제가 오고 나니까 몸의 긴장이 풀어지신 듯 이승을 떠나가시더만요. 결국 고흥에서 혼자가 되었슴다. 신문에 아무런 싸인도 뵈질 않자, 기어이 저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거나 감옥에 계시다고 이를 덜덜 떨면서 확신하였슴다. 잡념이 무성해지는 밤에는, 누가 어머니를 명석하게도 조사해내어 여기가 외가란 것을 알아서 날 잡으러 올까봐 온 신경이 곤두섬다.
근데 이모가 나타나지 않았겠어요? 그때, 이모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때, 저는 이모여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름다.”
안명이 말을 끊고 내 눈치를 보았다.
“이모! 우리 같이 도망갑시다. 묘리산 대성동이란 곳에 계시는 그 노부부께서는 지금도 자급자족을 하고 계실 거고, 그곳은 귀신에 홀린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꿈같이 숨겨져 있습니다. 단언컨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곳입니다. 우리 텐트도 사고 옷도 사서 산에서 며칠 버틸 수 있게 채비를 해 가지고 경주 정도에서부터 산에 듭시다.”
“북쪽 산에는 파르티잔이 있지 않니?”
“장산 파르티잔은 절멸했다는데……. 반도에서 제일 깊은 산인 장산이 그리 됐다니 설령 다른 산까지 파르티잔이 이동했다고 해도 지리멸렬하여 있을 거고, 만나더라도 제 당원증을 들먹이면서 요령을 피우면 어떻게인가 되지 않겠슴까? 아무튼 그 골짜기만 찾아 가면 우린 살아요. 거긴 진짜 지형적으로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는 산골짝임다.”
나는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고 한 편으로는 벅찬 마음에 눈물이 그득해지기도 했다. 그때 안명이 내 오른손을 꼭 쥐었다. 내가 어린 날 그의 기저귀도 갈아주곤 했던 안명은, 사춘기라고 수줍어하는 기색도 없이 그렇게 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희부염한 안개 너머로 아득한 기억이 가물거렸다. 안명이 열 살, 내가 고등학생일 무렵, 그때도 우리는 손을 잡고 있었다. 안명이 열 살 되던 때 악양에 있는 큰외아버지 댁에서 어른들끼리 말싸움이 났는데, 대피를 시키기 위해 내가 조용히 안명 손을 끌고 섬진강으로 내려 갔었다. 우리는 전형적인 설날의 꼬까옷 차림인 채로 강풍과 맞서며, 손에 손을 잡고 끝말잇기를 하며 천진난만하게 걸어 다녔었다.
나는 그 손을 한 번 놓았다. 그런 뒤 다시 내 쪽에서 완강하게 그러쥐었다. 그리고 내 몸을 안명의 몸과 포개기에 충분하게 그 손을 잡아 당겼다. 절 뒤의 숲에서 울어제끼는 적막한 새소리가 세상 천지에 우리 둘 밖에 없다는 인상을 안겨주었다.
“이모는 저희 엄니랑 얼굴이 너무 닮았어요.”
안명은 나를 안타깝다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제까짓게 뭘 안다고, 세상 다 살아본 것처럼 얘기하는지 화끈거리면서 부아가 치밀었다.
나는 몸을 일으킨 안명 옆에서 조근조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지병, 이게 왜 생겼는지 아니? 너희 엄니가 야반도주를 하고 나서, 우리 고향에는 근대화 사업이 있었단다. 인적 드문 시골에 기계가 달린 차들이 돌을 밀어 치우는 광경을 우리는 늘 보며 살았고, 아침부터 밤까지 땅을 파고 시멘트를 바르는 굉음이 횡횡하게 울려 퍼졌단다. 어느 날 나는 국도 저편에서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트럭에 치일 뻔 했단다. 그러나 예상외로 트럭은 내 바로 앞에서 멈춰 섰고, 거칠고 새까만 중년 남자가 차체에서 훌쩍 뛰어 내렸지. 그 남자는 내 목덜미를 완강히 붙잡고는 차체의 조수석으로 밀어 올렸단다. 그리고……남자의 트럭은 만연한 신록의 광경 속으로 처박혔었어. 나는 거대한 벌레 밑에 깔려버렸어. 내 자궁 안에 온갖 이상한 것들이 들어갔어.
남자가 잠이 들고 나는 차체에서 껑충 뛰어 내렸단다. 산자락을 돌자 농로를 남겨두고 빼곡히 논들이 펼쳐져 있었는데, 모내기한 모판에 해가 사선으로 비쳐 황금빛이었어. 그 위로 일그러지는 아지랑이를 보면서, 나는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로 웃고야 말았지 뭐니.”
안명은 망연자실한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눈물도 한 두 방울씩 뚝뚝 흘렸다. 안명은 예기치 못하고 있을 때 나의 입술에 달려들었고, 모양과자를 빚듯 살살 섬세한 키스를 하려고 했다.
우리의 옆에서 청초한 바다가 우리를 현혹하고, 우리는 만들다 만 방조제 사이로 내려간다. 곶을 휘돌자 햇살을 받아들이는 아담한 만이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황량하고도 정밀(靜謐)하게 등장한다.
우리는 모래 위에 자리잡는다.
안명은 어린 날 섬진강 모래언덕에서 그랬던 것처럼 근처의 나뭇가지를 주워서 글씨 연습을 하노라고 한자로 된 사람들의 이름을 쓴다. 안명은 여전히 명필이다.
상념이 밀려왔다가 밀려간다.
나는 스물 네 살이고 안명은 열 일곱 살이다.
“우리가 산에 들어가면 언제까지 같이 살게 될까?”
그날 밤 우리는 관계를 가진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물결친다.
안명이 전등을 켜고 다시 할머니 이불 속으로 들어온다. 우리가 덮은 할머니 이불의 노란색 비단 위에는 주작과 봉황이 날아다니고, 우리 옆 병풍의 네 폭 그림에는 깊은 산속 용이 승천하면서 흘린 눈물이 장구한 계곡을 만들어낸다.
“저는 평생 이모밖에 같이 살 여자가 없습니다.”
나는 바닷가에서 그렇게 대답한 안명과 저 병풍 같은 천애(失涯)에 깃들 미래를 상상한다. 그 상상은 처음에는 부풀었다가 이내 전등불처럼 창백해진다.
핏줄이 동질성을 확인시켜주고 몸과 몸을 겹친다 한들 나의 마음과 안명의 마음이 부대끼는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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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의 독백 (1)
마른 솔잎을 깔고 누워서 눈꺼풀에 매달린 별들을 보면서 나는 떨었었다. 벌레가 내 몸을 집으로 삼고 기생했었다. 배가 고플 때 토끼를 권총으로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토끼조차도 불쌍해서 나는 죽일 수 없었다. 나는 약초를 뜯어 먹고 산고구마를 캐다 먹었다. 곡기가 부족해서 어떤 날은 계곡의 바위 위에 쓰러져 혼수 상태가 되었었다. 새가 날고 막 움트기 시작한 나뭇가지들이 흔들리고 정체 모를 짐승이 울었다. 그렇게 천천히 장기가 하나 둘 멈추고 평온하게 죽는 줄 알았건만 살아서 눈이 떠져 다시 일어난 것을 보면 나의 목숨은 참으로 질긴가 보았다.
물빛이 영롱하여 여우가 신통술을 부리는 듯 요변하는 소(沼)들이 이어졌다. 귀신에 홀린 듯 그 아름다운 골짜기를 따라 자꾸만 내려가다가 천만 뜻밖에 화전민 노부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죽었었을 것이다. 화전민 노부부는 나를 자신들의 움막으로 데리고 가서 나물밥을 주고 된장국을 주고 며칠 데리고 살았었다. 그들이 여기는 묘향산 D동의 지곡 어디쯤이노라고 하였다. 나는 저녁에는 그들로부터 받은 대간정맥이 꼼꼼히 그려진 지도책을 몰두하여 노트에 카피하고 낮에는 그들과 함께 약초를 캐러 다녔었다.
오랜 고독에 빠져 있던 부부이기에 내가 같이 살겠노라 하면 준(準)자식처럼 반겨주실 것이었으나, 나는 어머니의 생사라도 알려거든 바삐 남하하여 중국신문을 구해다 봐야 했다. 중국신문의 광고란에 우리 당의 밀어들이 있고 내겐 그 밀어들을 짜맞출 어머니의 난수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당이 어머니를 호출할 때 나도 그 자리에 가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셈이었다. 그게 아니면 외증조할머니 집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
다. 외증조할머니가 놀라실 테니 수험 핑계만 대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당이 원하는 대로 개성대학에서 이데올로그로 활동하던가 군인학교에 들어가 스파이 노릇을 하려면 나는 내년에는 수험을 쳐야 했다.
어머니와 당이 원하는 대로 수험을 친다는 것, 단순히 거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거기에서 끝난다면, 사하가 알려주었듯, 나의 미래는 지성이 없는 길을 걷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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