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닥플
wonpojo-blo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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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gtffgbj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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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투쟁 잔혹사의 시작>
<의사 투쟁 잔혹사의 시작>
2000년 의약분업 투쟁 실패 이후 패배감에 젖어 있던 의사들은 수 년간 정부의 의사 죽이기 악법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의사들의 좌절감과 무기력감은 더해갔고, 의료 현실에 대한 무관심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2009년의 어느 날 의사들이 모여 있던 커뮤니티 사이트인 닥플을 중심으로 새로운 의사조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의 시작이었다. 당시 닥플 사장이었던 푸도(노환규=팡규)는 ‘나섭니다’는 말을 하면서 전의총을 만들었다. 하지만 푸도는 당시 의료계 정책이나 내부 정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매직포스, 윈스턴스미스 등의 기존 임의단체 의사회 활동을 하면서 나름 의료계 정책과 정치에 관록이 있었던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렇게 닥플을 중심으로 전의총은 세를 키워가기 시작했고, 많은 학생, 전공의, 봉직의, 개원의들이 이 단체에 가입하여 의료계 개혁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의총의 조직력은 더욱 강해져 전국적인 지부를 가지는 수준에 이르렀고, 한파라치, 약파라치 활동 등을 통해서 한방사와 약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체가 되었다. 패배주의에 빠져 정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 의협 집행부를 가장 강력하게 견제하는 단체가 되었고, 개혁을 바라는 의사들의 희망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회원들의 열망은 2012년 의협회장 선거에서 푸도가 당선되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개혁을 원하는 의사들은 푸도의 의협회장 당선에 열광했고, 이제 의료계의 희망이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푸도의 의협회장 당선은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2012년 푸도가 회장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는 산부인과, 외과, 안과 등에 적용되는 DRG(포괄수가제) 정책을 밀어부쳤다. 특히나 과 영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백내장 수술이 DRG에 포함된 안과의사회는 이 정책에 극렬히 반대했고, 수술 중단까지도 고려하고 있었다. 그렇게 2012년 DRG 투쟁이 시작되었다. 푸도의 회장 당선 이후 비교적 빠른 시간에 이루어진 투쟁이었기에 많은 의사들은 투쟁에 대한 열의가 강했고, 언제든 파업 투쟁까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투쟁의 열기가 달아올라 절정에 달할 즈음에 푸도는 믿을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정몽준 의원과의 면담이후 투쟁 종료를 선언한 것이다. 당시 푸도는 유력 정치인인 정몽준 의원의 말을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투쟁을 접었다고 했지만, 이후에 알려진 뒷얘기로는 임기 초반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출구 전략으로 정몽준 의원을 선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 이후 전의총 내부에는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는 푸도의 반투쟁적인 행동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푸도는 전의총의 설립 이념과도 배치되는 건강보험 강화 주장을 하고, 의사 내부 자정 운동의 일환으로 ‘착한손 운동’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하면서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전의총 집행부와 의협의 사이는 악화되어 가고 있었고, 그러면서 점점 입지가 좁아지던 푸도는 2014년 원격의료 투쟁이라는 승부수를 띄운다. 당시 원격의료 투쟁은 개원의 중심의 휴진 투쟁으로 이루어졌는데, 뜻하지 않게 전공의들도 파업 투쟁에 참여할 뜻을 내비쳤다. 그래서 당시 투쟁에 미온적이었던 대전협 회장을 패싱하고, 새로운 전공의를 전공의 비대위원장에 앉혔는데, 그 사람이 현재 의협 이사로 일하고 있는 송명제다.
아무튼 그렇게 2014년 원격의료 투쟁의 대오는 개원의와 전공의 중심으로 꾸려졌고, 투쟁의 열기도 뜨거운 편이었다. 그런데 푸도의 투쟁 관련 발언이 조금 애매했다. 자율적인 투쟁 참여를 권고하는 모양새였는데, 그 진위가 궁금했다. 결국 푸도의 자율적인 투쟁 권고는 이후에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한 안전장치였음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다. 어쨌든 자율적인 투쟁을 강조하고, 투쟁 참여를 조직적으로 하지 않는 모양새 등으로 개원의들 중에는 회장의 투쟁 의지에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는 휴진 참여율 저조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부추산 20.9%, 의협추산 49%라는 휴진 참여율 수치는 의사 사회의 내분으로 이어졌다. 파업 투쟁 지속에 부담을 느낀 푸도는 파업 투쟁에 동참하려는 전공의들을 송명제를 통해 해산시켜 병원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투쟁 실패의 책임을 비협조적인 시도의사회와 대의원회로 돌렸다.
투쟁 실패에 대한 내부적인 지탄을 받던 푸도는 비난의 화살을 지속적으로 시도의사회와 대의원회로 돌리려고 했고, 급기야 사원총회를 소집하여 대의원회를 해산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에 부담을 느낀 대의원회는 회장 탄핵안을 발의하게 되고, 푸도는 탄핵이 된다. 당시 탄핵 과정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푸도는 충분히 탄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들이 있었음에도 일부러 탄핵을 당하려는 사람처럼 행동했고, 그렇게 탄핵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푸도의 탄핵은 또 다른 불씨를 남겼다. 푸도를 회장으로 옹립했던 전의총이 내분에 휩싸인 것이다. 당시 전의총 집행부는 의협의 이상행동에 우려를 나타냈고, 원격의료 파업 투쟁 이전부터 비판 성명도 내면서 푸도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랬다. 하지만 푸도 탄핵 이후 탄핵의 책임과 휴진 참여 문제를 가지고 친푸도파와 반푸도파와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당시 대표였던 오비일락과 파워엔 등 집행부 상당수가 친푸도파가 아니었기에 논쟁에서 밀린 친푸도파들은 탄핵된 회장을 따라서 전의총을 떠났다.
그렇게 전의총은 분열되었고, 푸도가 떠나고 분열되었던 전의총은 닥플에서 상주하고 있던 반푸도파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인해 닥플 중심의 조직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닥플을 벗어나자 자금줄과 홍보루트가 좁아진 전의총은 페이스북 등 SNS로 영역을 확장하려고 하였고, 나름 준비를 이어가고 있었다. 탄핵이후 치러진 의협회장 보궐선거에서 푸도 집행부에서 정책이사를 역임했던 추무진을 회장후보로 내어 당선시켰지만, 추무진은 회장 당선 이후 푸도의 말을 듣지 않았고, 푸도는 그렇게 의협 중앙정치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탄핵이후 힘을 잃어가고 있던 푸도와 친푸도파들은 그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새로운 인물을 끌어들여 자신들만의 조직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렇게 해서 영입했던 인물이 전의총 설립 초기에 잠시 함께 했다가 아스팔트 우파 운동가로만 활동하던 압북재(최대집=최개집)였다. 푸도가 압북재를 닥플과 자신들의 이너서클에 끌어들였고, 압북재는 이너서클에 들어간 이후 특유의 강한 말투와 행동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닥플 내부에서는 푸도에는 비판적이었던 사람들도 압북재에는 호��을 나타내며 압북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의사 조직 건설을 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푸도와 친푸도파가 새로운 조직을 만들려고 했던 시기에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2015년 전의총 정기총회에서 당시 전의총 공동대표였던 오비일락과 파워엔이 공동대표직을 내려놓고, 새로운 공동대표를 선출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그래서 당시 압북재를 중심으로 친푸도파들은 전의총 총회에 참석하여 압북재를 신임 전의총 대표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총회에서 뜻밖에도 오비일락과 파워엔이 사퇴할 뜻이 없고, 남은 임기인 1년을 다 채우겠다고 선언을 해버렸다. 당시 총회에서 친푸도파들은 절차에는 맞지 않지만 공동대표 불신임안을 제안하였고, 공동대표들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불신임 투표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불신임은 부결되었고, 압북재와 친푸도파들은 그 자리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압북재가 총회 막바지에 소감 발표를 할 시간이 있었는데, 당시 전의총 고문으로 있던 윈스턴스미스에게 시비를 걸면서 총회장에서 언성이 높아졌고, 자신에게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압북재는 비난을 견딜 수 없었는지 청중을 향해 자신을 “존경하십시오!”라고 외쳤다. 너무나 황당한 압북재의 반응과 말에 총회장에서는 더 강한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고, 그렇게 친푸도파들은 전의총 총회에서 퇴장했다. 그렇게 전의총 찬탈에 실패한 압북재와 친푸도파들은 의혁투라는 조직을 곧바로 만들었고, 자신들 나름대로의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의혁투는 압북재의 정치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며 의료계 단체인지 우파 정치단체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하고 과격한 행동으로 의료계 내부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016년 전의총 총회가 다가왔다.
2016년 전의총 정기총회에서는 전의총 공동대표로서 임기를 마친 오비일락과 파워엔의 뒤를 이어 새로운 대표 선출 과정이 필요했고, 압북재와 친푸도파는 이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총회장에서의 투표를 통해 압북재와 친푸도파는 전의총 찬탈에 또 다시 실패하게 된다. 의혁투 활동을 통해서는 의료계 내부 입지를 다지기 힘들다고 판단한 압북재와 친푸도파는 닥플에서 전의총 집행부를 더욱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고, 닥플 회원들의 힘을 규합하여 전의총 대표 탄핵을 위한 임시총회 개최를 요구했다. 그렇게 2016년 12월 전의총 임시통회가 열렸고, 탄핵이 되기전 당시 전의총 대표였던 노스타운맨이 스스로 사퇴할 뜻을 밝히면서 자연스럽게 압북재는 전의총 대표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 압북재와 친푸도파의 집요한 비난과 압박에 질려버린 전의총 집행부 대부분은 전의총을 떠나게 되었고, 전의총 집행부 전체가 친압북재파와 친푸도파에 의해 장악되었다.
그렇게 전의총을 장악한 압북재와 친푸도파들은 당시 의협회장이었던 추무진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탄핵까지 추진하였다. 탄핵은 무산되었지만, 이후에도 압북재와 전의총은 의협을 강하게 비판하며 의료계 내부에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고, 압북재는 추무진 집행부 말기 결성된 비대위에서 투쟁위원장까지 역임하는 등 의료계 내부에서 투사의 이미지로 스스로를 포장하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그렇게 2018년 의협회장 선거가 치러졌고, 압북재는 푸도와 전의총의 조직적인 표 몰이에 힘입어 의협회장으로 당선되게 된다. 의협회장 선거 과정에서 푸도는 선거를 직접적으로 이끌었고, 이 과정에서 소아과 임현택 회장도 설득하여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 내었다. 임현택 회장은 페드넷에서 소아과 의사회의 몰표를 유도하여 압북재 당선의 1등 공신이 되었다. 그런데 푸도와 마찬가지로 압북재는 회장 당선 이후 이전에 가지고 있던 투사 이미지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회장 당선 전에는 당연지정제 철폐를 주장하고, 문재인 케어 저지를 위해 감옥까지 가겠다고 말했으나, 회장 당선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문재인 케어와 다를 바 없는 ‘더 뉴 건강보험’이라는 이름의 건강보험 강화 정책 제시였다.
이후 의협은 의한방일원화를 밀실에서 추진하다 발각되어 비판을 받기도 하였고, 건정심에서는 탈퇴하였으나 각종 문재인 케어 관련 협의에서 정부에 끌려 다니면서 도장만 찍어주고 있었다. 푸도와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이는 압북재에 의사 회원들은 실망하기 시작하였고, 이해 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는 의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었다. 실제로 두 차례 대의원회에서 탄핵안 발의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의협 집행부는 내부 비판의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힘으로 누르려고 하였다. 산하단체인 경기도의사회, 병의협, 개원협 등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힘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정책들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고, 의협은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정책 추진을 발표하였고, 의협은 기존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과 비대면진료 활성화, 공공의대 추진 건을 의대정원 확대정책과 함께 4대악 의료 정책으로 규정하고 전면 투쟁할 것임을 밝혔다.
의협의 투쟁 선언에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반응했고, 의대협과 대전협을 중심으로 빠르게 조직화가 이루어지면서 젊은의사들을 중심으로 파업 투쟁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결과는 모든 사람들이 아는 대로 진행되었다. 압북재가 이번 의사 투쟁 과정에서 왜 그런 행동을 보여왔는지는 이전의 행보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번 투쟁과정에서 의협과 대전협을 중심으로 끊임없는 잡음이 흘러나오고, 압북재가 돌발적으로 정부와 협상을 한 이유는 본래부터 강한 투쟁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외에 여러 가지 예상과 추측이 난무하지만 결과적으로 압북재가 투쟁판을 엎을 것이라는 예상은 압북재와 푸도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짐작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푸도와 압북재, 그리고 그들을 탄생시킨 전의총은 이제 전체 의사들에게 사죄의 뜻을 구하고, 의료계를 떠나야한다. 그들이 의료계에 남아있는 한 이러한 오욕과 비극의 의사 투쟁 역사는 반복될 것이고, 그 피해는 의사 회원 모두가 짊어지게 될 것이다.
의사들이 힘을 내고 앞으로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떠날 사람은 떠나야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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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계랑
참고기사 2016년
http://m.medicaltimes.com/NewsView.html?ID=1107480
참고기사 2012년
http://me2.do/xMxDEPK6
참고기사 2014년
http://naver.me/FtvxuYWQ
http://me2.do/GcdEnWs4
노환규 전 회장에게 민심 이반이 일어난 것도 사실 회원들이 납득하기 어려웠던 급격한 프레임 변화가 한몫했다.
노 전 회장의 착한 손 운동 전개나 보건의료노조와의 연대 투쟁, 진주의료원 방문, 야권과의 연대 등은 대부분 "의사들이 국민의 편에 서야 국민들이 의료계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해 준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
http://m.medicaltimes.com/NewsView.html?ID=1097094
2014년 기사
http://naver.me/xRVDPkm7
2018년 기사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4058
http://m.medicaltimes.com/News/1118294
김인영
열거된 회장들,모두 용두사미 표리부동 이란 얘기군요.그러고 보니 내가 본 모든 회장 즉 유 머시기,이후 김재정,또 경마노 주수호와 위에 열거된 모든 회장을 통해,한번도 제대로 싸워 보지 못했고 그들의 결과도 서로 다르지 않았으니,
결론은 의쟁투고 의협이고 무슨 비대위고 간에
단 한번도 끝장을 못 봤고, 그것은 결국 의사단체 자체의 한게라고 봐야 되겠군요.
회사라면 이미 망했을거고,나라라면 이미 부도가 났을텐데 그나마 의사라는 독점적 직업이 버텨주는군요.
누가해도 그나물에 그 밥일듯.
전공의 노조만들어 합법적파업하는 것외엔 답이 없고,의협은 회비 2~300억 아깝고 서류작업이나 해야.
윤용선
95프로 이상 정확한 글입니다..저도 봐서 제가 경험했던 사실들을 올려보겠습니다..그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사악한 인간들인지..그로인해 얼마나 많은 선량한 분들이 현혹당하고 선동당했는지..그래서 지금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말이죠..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를 경험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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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doc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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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투쟁 잔혹사의 시작와 링크들, 댓글들, 근거들
<의사 투쟁 잔혹사의 시작>
2000년 의약분업 투쟁 실패 이후 패배감에 젖어 있던 의사들은 수 년간 정부의 의사 죽이기 악법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의사들의 좌절감과 무기력감은 더해갔고, 의료 현실에 대한 무관심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2009년의 어느 날 의사들이 모여 있던 커뮤니티 사이트인 닥플을 중심으로 새로운 의사조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의 시작이었다. 당시 닥플 사장이었던 푸도(노환규=팡규)는 ‘나섭니다’는 말을 하면서 전의총을 만들었다. 하지만 푸도는 당시 의료계 정책이나 내부 정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매직포스, 윈스턴스미스 등의 기존 임의단체 의사회 활동을 하면서 나름 의료계 정책과 정치에 관록이 있었던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렇게 닥플을 중심으로 전의총은 세를 키워가기 시작했고, 많은 학생, 전공의, 봉직의, 개원의들이 이 단체에 가입하여 의료계 개혁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의총의 조직력은 더욱 강해져 전국적인 지부를 가지는 수준에 이르렀고, 한파라치, 약파라치 활동 등을 통해서 한방사와 약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체가 되었다. 패배주의에 빠져 정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 의협 집행부를 가장 강력하게 견제하는 단체가 되었고, 개혁을 바라는 의사들의 희망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회원들의 열망은 2012년 의협회장 선거에서 푸도가 당선되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개혁을 원하는 의사들은 푸도의 의협회장 당선에 열광했고, 이제 의료계의 희망이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푸도의 의협회장 당선은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2012년 푸도가 회장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는 산부인과, 외과, 안과 등에 적용되는 DRG(포괄수가제) 정책을 밀어부쳤다. 특히나 과 영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백내장 수술이 DRG에 포함된 안과의사회는 이 정책에 극렬히 반대했고, 수술 중단까지도 고려하고 있었다. 그렇게 2012년 DRG 투쟁이 시작되었다. 푸도의 회장 당선 이후 비교적 빠른 시간에 이루어진 투쟁이었기에 많은 의사들은 투쟁에 대한 열의가 강했고, 언제든 파업 투쟁까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 그렇게 투쟁의 열기가 달아올라 절정에 달할 즈음에 푸도는 믿을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정몽준 의원과의 면담이후 투쟁 종료를 선언한 것이다. 당시 푸도는 유력 정치인인 정몽준 의원의 말을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투쟁을 접었다고 했지만, 이후에 알려진 뒷얘기로는 임기 초반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출구 전략으로 정몽준 의원을 선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 이후 전의총 내부에는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는 푸도의 반투쟁적인 행동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푸도는 전의총의 설립 이념과도 배치되는 건강보험 강화 주장을 하고, 의사 내부 자정 운동의 일환으로 ‘착한손 운동’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하면서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전의총 집행부와 의협의 사이는 악화되어 가고 있었고, 그러면서 점점 입지가 좁아지던 푸도는 2014년 원격의료 투쟁이라는 승부수를 띄운다. 당시 원격의료 투쟁은 개원의 중심의 휴진 투쟁으로 이루어졌는데, 뜻하지 않게 전공의들도 파업 투쟁에 참여할 뜻을 내비쳤다. 그래서 당시 투쟁에 미온적이었던 대전협 회장을 패싱하고, 새로운 전공의를 전공의 비대위원장에 앉혔는데, 그 사람이 현재 의협 이사로 일하고 있는 송명제다.
아무튼 그렇게 2014년 원격의료 투쟁의 대오는 개원의와 전공의 중심으로 꾸려졌고, 투쟁의 열기도 뜨거운 편이었다. 그런데 푸도의 투쟁 관련 발언이 조금 애매했다. 자율적인 투쟁 참여를 권고하는 모양새였는데, 그 진위가 궁금했다. 결국 푸도의 자율적인 투쟁 권고는 이후에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한 안전장치였음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다. 어쨌든 자율적인 투쟁을 강조하고, 투쟁 참여를 조직적으로 하지 않는 모양새 등으로 개원의들 중에는 회장의 투쟁 의지에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는 휴진 참여율 저조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부추산 20.9%, 의협추산 49%라는 휴진 참여율 수치는 의사 사회의 내분으로 이어졌다. 파업 투쟁 지속에 부담을 느낀 푸도는 파업 투쟁에 동참하려는 전공의들을 송명제를 통해 해산시켜 병원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투쟁 실패의 책임을 비협조적인 시도의사회와 대의원회로 돌렸다.
투쟁 실패에 대한 내부적인 지탄을 받던 푸도는 비난의 화살을 지속적으로 시도의사회와 대의원회로 돌리려고 했고, 급기야 사원총회를 소집하여 대의원회를 해산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에 부담을 느낀 대의원회는 회장 탄핵안을 발의하게 되고, 푸도는 탄핵이 된다. 당시 탄핵 과정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푸도는 충분히 탄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들이 있었음에도 일부러 탄핵을 당하려는 사람처럼 행동했고, 그렇게 탄핵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푸도의 탄핵은 또 다른 불씨를 남겼다. 푸도를 회장으로 옹립했던 전의총이 내분에 휩싸인 것이다. 당시 전의총 집행부는 의협의 이상행동에 우려를 나타냈고, 원격의료 파업 투쟁 이전부터 비판 성명도 내면서 푸도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랬다. 하지만 푸도 탄핵 이후 탄핵의 책임과 휴진 참여 문제를 가지고 친푸도파와 반푸도파와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당시 대표였던 오비일락과 파워엔 등 집행부 상당수가 친푸도파가 아니었기에 논쟁에서 밀린 친푸도파들은 탄핵된 회장을 따라서 전의총을 떠났다.
그렇게 전의총은 분열되었고, 푸도가 떠나고 분열되었던 전의총은 닥플에서 상주하고 있던 반푸도파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인해 닥플 중심의 조직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닥플을 벗어나자 자금줄과 홍보루트가 좁아진 전의총은 페이스북 등 SNS로 영역을 확장하려고 하였고, 나름 준비를 이어가고 있었다. 탄핵이후 치러진 의협회장 보궐선거에서 푸도 집행부에서 정책이사를 역임했던 추무진을 회장후보로 내어 당선시켰지만, 추무진은 회장 당선 이후 푸도의 말을 듣지 않았고, 푸도는 그렇게 의협 중앙정치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탄핵이후 힘을 잃어가고 있던 푸도와 친푸도파들은 그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새로운 인물을 끌어들여 자신들만의 조직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렇게 해서 영입했던 인물이 전의총 설립 초기에 잠시 함께 했다가 아스팔트 우파 운동가로만 활동하던 압북재(최대집=최개집)였다. 푸도가 압북재를 닥플과 자신들의 이너서클에 끌어들였고, 압북재는 이너서클에 들어간 이후 특유의 강한 말투와 행동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닥플 내부에서는 푸도에는 비판적이었던 사람들도 압북재에는 호감을 나타내며 압북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의사 조직 건설을 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푸도와 친푸도파가 새로운 조직을 만들려고 했던 시기에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2015년 전의총 정기총회에서 당시 전의총 공동대표였던 오비일락과 파워엔이 공동대표직을 내려놓고, 새로운 공동대표를 선출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그래서 당시 압북재를 중심으로 친푸도파들은 전의총 총회에 참석하여 압북재를 신임 전의총 대표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총회에서 뜻밖에도 오비일락과 파워엔이 사퇴할 뜻이 없고, 남은 임기인 1년을 다 채우겠다고 선언을 해버렸다. 당시 총회에서 친푸도파들은 절차에는 맞지 않지만 공동대표 불신임안을 제안하였고, 공동대표들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불신임 투표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불신임은 부결되었고, 압북재와 친푸도파들은 그 자리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압북재가 총회 막바지에 소감 발표를 할 시간이 있었는데, 당시 전의총 고문으로 있던 윈스턴스미스에게 시비를 걸면서 총회장에서 언성이 높아졌고, 자신에게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압북재는 비난을 견딜 수 없었는지 청중을 향해 자신을 “존경하십시오!”라고 외쳤다. 너무나 황당한 압북재의 반응과 말에 총회장에서는 더 강한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고, 그렇게 친푸도파들은 전의총 총회에서 퇴장했다. 그렇게 전의총 찬탈에 실패한 압북재와 친푸도파들은 의혁투라는 조직을 곧바로 만들었고, 자신들 나름대로의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의혁투는 압북재의 정치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며 의료계 단체인지 우파 정치단체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하고 과격한 행동으로 의료계 내부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016년 전의총 총회가 다가왔다.
2016년 전의총 정기총회에서는 전의총 공동대표로서 임기를 마친 오비일락과 파워엔의 뒤를 이어 새로운 대표 선출 과정이 필요했고, 압북재와 친푸도파는 이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총회장에서의 투표를 통해 압북재와 친푸도파는 전의총 찬탈에 또 다시 실패하게 된다. 의혁투 활동을 통해서는 의료계 내부 입지를 다지기 힘들다고 판단한 압북재와 친푸도파는 닥플에서 전의총 집행부를 더욱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고, 닥플 회원들의 힘을 규합하여 전의총 대표 탄핵을 위한 임시총회 개최를 요구했다. 그렇게 2016년 12월 전의총 임시통회가 열렸고, 탄핵이 되기전 당시 전의총 대표였던 노스타운맨이 스스로 사퇴할 뜻을 밝히면서 자연스럽게 압북재는 전의총 대표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 압북재와 친푸도파의 집요한 비난과 압박에 질려버린 전의총 집행부 대부분은 전의총을 떠나게 되었고, 전의총 집행부 전체가 친압북재파와 친푸도파에 의해 장악되었다.
그렇게 전의총을 장악한 압북재와 친푸도파들은 당시 의협회장이었던 추무진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탄핵까지 추진하였다. 탄핵은 무산되었지만, 이후에도 압북재와 전의총은 의협을 강하게 비판하며 의료계 내부에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고, 압북재는 추무진 집행부 말기 결성된 비대위에서 투쟁위원장까지 역임하는 등 의료계 내부에서 투사의 이미지로 스스로를 포장하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그렇게 2018년 의협회장 선거가 치러졌고, 압북재는 푸도와 전의총의 조직적인 표 몰이에 힘입어 의협회장으로 당선되게 된다. 의협회장 선거 과정에서 푸도는 선거를 직접적으로 이끌었고, 이 과정에서 소아과 임현택 회장도 설득하여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 내었다. 임현택 회장은 페드넷에서 소아과 의사회의 몰표를 유도하여 압북재 당선의 1등 공신이 되었다. 그런데 푸도와 마찬가지로 압북재는 회장 당선 이후 이전에 가지고 있던 투사 이미지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회장 당선 전에는 당연지정제 철폐를 주장하고, 문재인 케어 저지를 위해 감옥까지 가겠다고 말했으나, 회장 당선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문재인 케어와 다를 바 없는 ‘더 뉴 건강보험’이라는 이름의 건강보험 강화 정책 제시였다.
이후 의협은 의한방일원화를 밀실에서 추진하다 발각되어 비판을 받기도 하였고, 건정심에서는 탈퇴하였으나 각종 문재인 케어 관련 협의에서 정부에 끌려 다니면서 도장만 찍어주고 있었다. 푸도와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이는 압북재에 의사 회원들은 실망하기 시작하였고, 이해 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는 의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었다. 실제로 두 차례 대의원회에서 탄핵안 발의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의협 집행부는 내부 비판의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힘으로 누르려고 하였다. 산하단체인 경기도의사회, 병의협, 개원협 등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힘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정책들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고, 의협은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정책 추진을 발표하였고, 의협은 기존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과 비대면진료 활성화, 공공의대 추진 건을 의대정원 확대정책과 함께 4대악 의료 정책으로 규정하고 전면 투쟁할 것임을 밝혔다.
의협의 투쟁 선언에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반응했고, 의대협과 대전협을 중심으로 빠르게 조직화가 이루어지면서 젊은의사들을 중심으로 파업 투쟁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결과는 모든 사람들이 아는 대로 진행되었다. 압북재가 이번 의사 투쟁 과정에서 왜 그런 행동을 보여왔는지는 이전의 행보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번 투쟁과정에서 의협과 대전협을 중심으로 끊임없는 잡음이 흘러나오고, 압북재가 돌발적으로 정부와 협상을 한 이유는 본래부터 강한 투쟁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외에 여러 가지 예상과 추측이 난무하지만 결과적으로 압북재가 투쟁판을 엎을 것이라는 예상은 압북재와 푸도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짐작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푸도와 압북재, 그리고 그들을 탄생시킨 전의총은 이제 전체 의사들에게 사죄의 뜻을 구하고, 의료계를 떠나야한다. 그들이 의료계에 남아있는 한 이러한 오욕과 비극의 의사 투쟁 역사는 반복될 것이고, 그 피해는 의사 회원 모두가 짊어지게 될 것이다.
의사들이 힘을 내고 앞으로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떠날 사람은 떠나야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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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계랑
참고기사 2016년
http://m.medicaltimes.com/NewsView.html?ID=1107480
참고기사 2012년
http://me2.do/xMxDEPK6
참고기사 2014년
http://naver.me/FtvxuYWQ
http://me2.do/GcdEnWs4
노환규 전 회장에게 민심 이반이 일어난 것도 사실 회원들이 납득하기 어려웠던 급격한 프레임 변화가 한몫했다.
노 전 회장의 착한 손 운동 전개나 보건의료노조와의 연대 투쟁, 진주의료원 방문, 야권과의 연대 등은 대부분 “의사들이 국민의 편에 서야 국민들이 의료계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해 준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
http://m.medicaltimes.com/NewsView.html?ID=1097094
2014년 기사
http://naver.me/xRVDPkm7
2018년 기사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4058
http://m.medicaltimes.com/News/1118294
김인영
열거된 회장들,모두 용두사미 표리부동 이란 얘기군요.그러고 보니 내가 본 모든 회장 즉 유 머시기,이후 김재정,또 경마노 주수호와 위에 열거된 모든 회장을 통해,한번도 제대로 싸워 보지 못했고 그들의 결과도 서로 다르지 않았으니,
결론은 의쟁투고 의협이고 무슨 비대위고 간에
단 한번도 끝장을 못 봤고, 그것은 결국 의사단체 자체의 한게라고 봐야 되겠군요.
회사라면 이미 망했을거고,나라라면 이미 부도가 났을텐데 그나마 의사라는 독점적 직업이 버텨주는군요.
누가해도 그나물에 그 밥일듯.
전공의 노조만들어 합법적파업하는 것외엔 답이 없고,의협은 회비 2~300억 아깝고 서류작업이나 해야.
윤용선
95프로 이상 정확한 글입니다..저도 봐서 제가 경험했던 사실들을 올려보겠습니다..그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사악한 인간들인지..그로인해 얼마나 많은 선량한 분들이 현혹당하고 선동당했는지..그래서 지금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말이죠..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를 경험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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