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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ssinarrak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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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shofar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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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사면 추방된 일본인 영화감독, 일본 기자회견 참석
특별사면 추방된 일본인 영화감독, 일본 기자회견 참석
[애드쇼파르] 2022년 11월 28일 일본외신기자클럽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특별사면 추방된 일본인 영화감독 Toru Kubota는 체포과정과 교도소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공개를 하였다. 2022년 7월 중순 관광비자를 받아 미얀마로 입국을 하여 7월 30일 체포가 되었기 때문에 불법체류로 인한 이민법 위반이 아닌 비자 조건 위반으로 인한 체포가 되었다고 다시 한번 설명하였다. 체포 당시 경찰들은 대우를 잘 해주었고 에어컨이 잘 나오는 사무실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로힝야 관련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2미터 X 5미터 화장실이 하나만 있는 감방으로 이송이 되었다고 한다. 일주일이상을 20명의 수감자가 한방에 꽉 차면서 무릎을 웅크리고 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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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so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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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아, 오랜만이야. 넌 행복하니? 갑자기 행복이라니 참 뜬금없지? 근데 사람들도 뜬금없이 행복이라는 말 잘 쓰잖아. 지금 당장 어느 고객센터라도 전화해보면 ‘행복하세요, 고객님’이라고 인사할걸? 식당의 물티슈에도, 라디오 DJ의 단골 멘트로, 하물며 연예인에게 사인을 부탁해도 흔히들 ‘행복하세요’라고 쓰잖아. 이렇게 세상 모두가 우리의 행복을 바라고 있는데, 난 잘 모르겠어. 행복이 뭘까? 행복하다는 게 그렇게 좋기만 한 걸까?
솔직히 행복이란 게 말이나 되긴 하니? 행복의 정의가 충분히 만족스럽고 기쁜 마음의 상태, 그걸 자신이 온전히 누리고 있다는 거잖아. 그게 가능한 일이냔 말이야. 바다는 죽어가고, 숲은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땅은 병들고 동물은 멸종 중이야. 대기 중엔 미세먼지가, 우리 혈관에는 미세플라스틱이 흐르고 있어. 기후변화와 혼란은 막을 수 없는데, 이를 심각하게 여기는 이는 별로 없어.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사회는 어떻고. 그런데 뭐라고? 행복이라고? 가장 먼저 멸종했어야 하는 단어가 행복인데 행복을 얘기하고 있다니 웃기지 않아?
그래서 난 행복이 권력이라 여겨지기도 해. 내게 가장 무서운 사람을 묻는다면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답할 거야.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데 자신이 온전히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라니 얼마나 무섭니, 그래서 난 행복해질 수가 없어. 얼마나 끔찍해? 행복해진다는 건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한 거잖아. 이기주의의 극치. 타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집중한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가 없어. 세상엔 싸워야 할 것이 가득한데, 행복하면서 어떻게 싸워? 나 말고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넘어지고, 울고, 절망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웃고 있을 수가 있냐고.
있잖아. SF 작가 그렉 이건의 <내가 행복한 이유>라는 소설이 있어. 주인공은 행복한 뇌종양 환자야. 뇌종양과 행복이 언뜻 역설적으로 들리지? 행복한 기분을 갖게 하는 호르몬을 자극하는 뇌 부위에 종양이 생겨서라나. 주인공은 머지않아 죽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아. 더 정확히는 호르몬 이상으로 절망이나 불행에 빠지지 않는 거지. 봐, 한낱 행복은 화학작용에 불과한 거야. 너라면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 이를 치료해야 할지 말지를. 주인공은 결국 성공적으로 뇌종양 수술을 받고 완치되지. 하지만 곧 불행을 느끼기 시작해. 단지 행복하지 않은 것뿐인데도. 그는 마침내 다시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무조건적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제어가 가능한 상태를 얻게 되지. 하지만 행복에 중독된 나머지 자신을 잊을 정도로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돼.
OO아, 행복은 병이야. 정상 이상의 상태지. 이러니 차마 난 네가 행복하라고 기원할 수가 없어. 불행이 정상인 거야. 행복은 질병이야. 난 우리가 행복하지 않기를 바라. 행복하다면 난 슬플 거야. 불행해지자 우리. 늘 불행하자. 부디.”
-씨네21- 이동은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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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wien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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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히만아일랜드
베르히만은 알지못하지만 스웨덴의 목가적은 풍경에 끌려 본 영화. 영화인에게는 큰 방점이 되는 인물인듯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나와 케미컬이 있는 영화는 없더라. 때론 제목에서 끌리는 요소도 다분한데 말이다.
영화감독, 부부, 시나리오 작업, 영화 성향 모든게 평행선을 걷는 듯. 두 주인공이 시나리오를 마무리하기 위해 베르히만으로 한달을 보내는 설정이다. 서로의 업을 존중하며 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라이프메이트처럼 보였다.
특이하게, 외국 영화에는 작가를 캐릭터로 한 영화가 많다. 꼭 한명은 작가의 라이프를 살고 있다. 그만큼 작가가 범접하기 쉬운 분야인것인지, 문학의 배경때문인지 글쓰기는 기본 옵션으로 타고 나는듯하다ㅡ 글쓰기 위한 장소를 탐닉하는 것도 꽤나 매력적인 일. 도입부부터 풍경이 다한 영화. 여행욕구는 이리 푸는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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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kesickness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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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김지운(Kim Jeewoon), 배우 고아성(Ko Asung),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규범(KB Lee), 뮤지션 빅나티(BIG Naughty), 버추얼 아티스트 웨이드(Wade). 각자의 분야에서 확고한 취향을 지닌 크리에이터 5인이 CDGCDGCDG와 만났다.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creative director : 이미림 Mirim Lee @mirimleee, 이규범 KB Lee @fakesickness (TMN) 영상 film director: 성창원 strtsphr @strtsphr 음악 music director: 썸데프 Somdef @somdef 사진 photographer: 이준경 Lee Junkyoung @leeejunkyoung(고아성, 김지운, 빅나티), 곽기곤 Kwank Kigon @kigon_kwak(이규범) 헤어 Hair: 구현미 Koo Hyunmi(김지운) 원유관 Won Wukwan(고아성) 한주희 Han Juhee(빅나티) 메이크업 makeup: 구현미 Koo Hyunmi(김지운) 박수진 Park Sujin(고아성) 한주희 Han Juhee(빅나티) 스타일링 stylist: 이미림 Mirim Lee(빅나티, 김지운) 고윤진 Go Woonjin(고아성) 이규범 KB Lee(이규범, 웨이드) 출연 Starring: 김지운 Kim Jeewoon, 고아성 Ko Asung @atress_asung, 이규범 KB Lee @fakesickness, 빅나티 BIG Naughty @bignaughtyboi, 웨이드 Wade @worldwide.wade @cdgcdgcdg @commedesgarcons_seoul #COMMEdesGARÇONS #CDGCDGCDG https://www.instagram.com/p/CjQTOGmoav4/?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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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daejeon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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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랑데부 / Les rendez-vous d’Anna (제 4회 대전철도영화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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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랑데부]  샹탈 아커만 감독 작품 <제 4회 #대전철도영화제> Dans le cadre du 4e festival des films ferroviaires de Daejeon, le film “Les rendez-vous d’Anna” de Chantal Akerman sorti en 1978 sera projeté au Daejeon Art Ciné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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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의 랑데부 / Les rendez-vous d’Anna
샹탈 애커만 ��독의 영화 <안나의 랑데부>는 폴란드계 유대인 여성 감독인 본인의 정체성과 삶의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입니다. 배우 오로르 클레망이 연기한 유대인 영화감독 안나는 자신의 최신작 소개를 위해 독일까지 여행합니다. 이 여정에서 낯선 남자를 만나기도 하고 난민인 친구를 만나 독일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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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 réalisatrice de trente ans, Anna Silver, est accueillie à Essen1 en Allemagne pour présenter son dernier film au cinéma le Roxy. Elle termine la soirée dans sa chambre d'hôtel avec l'instituteur qui anime le ciné-club qui l'a invitée. Brusquement, elle lui demande de partir. Elle accepte néanmoins de le revoir chez lui le lendemain. Après cette triste visite, elle prend le chemin du retour. Elle profite d'un changement de train à Cologne pour retrouver une amie de sa mère qui est aussi la mère de son ex-petit ami. Elle converse avec un voyageur pendant le trajet vers Bruxelles. Le train fait une halte en gare de Louvain. La réalisatrice a rendez-vous avec sa mère à la gare de Bruxelles-Midi. Elles boivent un verre à la cafétéria avant de louer une chambre dans un hôtel du quartier. Le lendemain, elle reprend le train pour Paris où son compagnon l'att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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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아트시네마 https://cafe.naver.com/artcinema/13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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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 소돔의 120일 자막 보는곳 ott
살로 소돔의 120일 자막 보는곳 ott 넷플릭스 및 왓챠 가능합니다.
살로 소돔의 120일 자막 보는곳 ott 링크 <
줄거리 똥 나오고, 3부까지 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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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 소돔의 120일 자막 보는곳 ott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Salò o le 120 giornate di Sodoma)은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가 1975년에 발표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마르키 드 사드(Marquis de Sade)의 소설 소돔의 120일(Les 120 Journées de Sodome)을 바탕으로 하지만, 원작의 시대적 배경을 파시스트 이탈리아로 옮겨와 각색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극단적인 탐구와 그로 인한 충격적인 장면들로 인해 개봉 당시 큰 논란을 일으켰고, 오늘날까지도 충격적인 영화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살로 소돔의 120일 자막 보는곳 ott 줄거리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1944년 이탈리아 북부의 살로(Salò) 공화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살로 공화국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독일의 지원 아래 잠시 세운 괴뢰 국가로, 영화는 이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권력과 쾌락에 중독된 네 명의 파시스트 고위 관료들이 벌이는 끔찍한 행각을 그립니다.
이 네 명의 관료는 공작, 판사, 주교, 대통령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사병들과 함께 십대 청소년 남녀 18명을 납치하여 마르차보토(Marzabotto) 근처의 한 외딴 저택으로 데려옵니다. 이 저택은 그들만의 지옥 같은 왕국이 되며, 그곳에서 그들은 120일 동안 인류의 도덕과 윤리를 짓밟는 잔혹한 의식을 행합니다.
이 영화는 네 개의 주요 부분으로 나뉩니다: '지옥의 현관', '광란의 지옥', '똥의 지옥', '피의 지옥'. 각 부분은 점점 더 심화되는 폭력과 타락을 묘사하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주제와 상징 살로, 소돔의 120일은 여러 면에서 상징적이며, 그 안에 담긴 주제는 매우 복잡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우선, 영화는 권력의 남용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인간화를 강렬하게 비판합니다. 영화 속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로 그려지며, 그들의 행위는 권력이 인간을 얼마나 타락시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파졸리니는 이 영화에서 성적 폭력과 강압적 쾌락을 통해 파시즘을 비판하고자 했습니다. 네 명의 파시스트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철저히 파괴하며, 그 과정에서 그들은 완전한 지배와 통제를 통해 쾌락을 얻습니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극도의 고통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무제한적인 힘을 확인하려 합니다.
영화의 비주얼과 내러티브는 극도로 충격적이며, 파졸리니는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구조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강제적으로 직면하게 만듭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은 거의 참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며, 파시스트들의 완전한 타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반응과 논란 살로, 소돔의 120일은 그 내용과 표현 수위 때문에 개봉 당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여러 국가에서 상영 금지 조치를 받았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검열을 통해 심하게 편집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화는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일부는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며 파졸리니의 대담한 비판 의식을 칭송했지만, 다른 일부는 이 작품을 그저 외설적이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파졸리니의 유작으로, 그는 영화가 개봉되기 직전에 의문의 살해를 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살로, 소돔의 120일은 그의 마지막 유언 같은 작품으로 여겨지며, 그의 죽음과 영화의 내용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살로, 소돔의 120일은 영화사에서 매우 독특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잔인성과 권력의 부패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그로 인해 극단적인 수위의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관객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영화는 파시즘과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면을 조명합니다. 비록 그 표현 방식 때문에 널리 수용되지는 못했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강렬한 예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살로 소돔의 120일 자막 보는곳 ott 이 작품은 단순히 충격적인 영화를 넘어서, 파시즘의 잔혹성과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파졸리니의 강렬한 비판 정신이 깃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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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comone · 5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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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inarrak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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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shofar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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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된 일본인 영화감독 징역 선고
체포된 일본인 영화감독 징역 선고
[애드쇼파르] 2022년 10월 5일 미얀마에서 체포되어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중인 일본인 영화감독 Toru Kubota가 추가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이번 추가 징역형은 선동혐의로 징역 3년형과 함께 전자 거래법에 의거하여 징역 7년형을 받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국가관리위원회 쪼민툰 대변인은 일본인 영화감독에 대한 선고 형량을 하나로 합쳐질 것이라고 밝혀 징역 7년형이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민법 13(1)항에 의거한 위반 혐의에 대한 선고가 남아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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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긴급수배
영화인 영화감독 씨발새끼들 도민 예산으로 크랭크인을 하네 전국 PD 소집 영화감독과 필름 횡령한 예산 착수바람 총감독 봉준호 KBS GDP1%
Movie 🎬 와 의 전쟁
United States of America 🇺🇸
미 쿠엘류 *USD100 각하 열받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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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in-musicnote · 10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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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lqu’un m’a dit> Carla Bruni
모델로 활동하던 카를라 브루니가 음악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일을 그만둔 때는 1997년으로 서른 무렵이었다. 10여 년의 모델 활동을 마무리 짓고 가수 데뷔를 준비하면서 싱어송라이터 줄리앙 클레르(Julien Clerc)에게 직접 쓴 가사를 보냈다. 음악가 집안에서 자란 영향 덕분에 그녀로서는 이런 곡 작업이 낯설지 않았을 것이고, 조금 늦은 감이 있다 하더라도 제2의 꿈을 실현하는 구체적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몇 년이 흘러 카를라 부르니의 데뷔 앨범 <Quelqu’un m’a dit>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앨범은 그녀의 자작곡들과 세르주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의 La noyée(침몰한 여인), 이탈리아 작곡가 지노 파올리(Gino Paoli)의 곡을 프랑스어로 개사한 Le Ciel dans une chambre(방 안의 천국) 두 개의 커버를 포함하고 있다.
<Quelqu’un m’a dit>은 유럽에서 크게 히트했고 레코드 판매고도 높았다. 마치 지니고 있던 회색빛 영혼을 잘 드러낸 듯 특별히 멋내지도 않고 수수하게 다듬어낸 포크 수작이었다. 첫 트랙 Quelqu’un m’a dit(누군가 내게 말했다)에는 작가주의 영화감독 레오 카락스(Leos Carax)가 가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Tout le Monde(모든 사람)를 포함해 두 편의 뮤직비디오를 모두 그가 촬영했다. 드니 라방(Denis Lavant)이 출연했던 그의 영화들,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 그리고 최근의 작품 <홀리 모터스> 등을 떠올려 보라. 레오 카락스의 작품 이미지들은 무척이나 강렬하다. 이 뮤직비디오들은 짧은 영상이지만 장소나 톤, 인물을 둘러싼 여러 디테일 면에서 충분히 그의 영화들을 연상하게 만든다. 물론 그의 영화 어법은 카를라 부르니 음악의 가장 두드러진 색채와는 조금 거리가 있게 느껴지지만, 두 사람의 협업이 그 당시에 이런 결과물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제법 눈길을 끈다. 아직 색채가 선명하지 않은 시기에 신인으로서 그녀는 어떤 색으로든 물들 수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녀가 지금까지 더해온 색채들과 그 흔적들을 둘러보면서 그녀의 음악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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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앨범이 성공적이었던 만큼, 수록곡들이 영화나 광고 등에 쓰이며 원곡을 재확산하는 데 크게 동조했던 사실도 눈에 띈다. 스웨덴 의류 브랜드 H&M 광고와 영화 <500일의 썸머>에 그녀의 곡이 삽입되면서 음악팬들뿐만 아니라 젊은 층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다. 특히 <500일의 썸머>는 미국 영화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어필할 좋은 기회를 얻었다.
어쿠스틱 기타를 베이스로 하는 그녀의 음악을 듣다 보니 프랑스의 전통적 음악 혹은 샹송, 생의 서글픔이 깃든 유럽 어느 구석의 발라드, 보컬의 역량이 특색을 이루는 미국 재즈 보컬 음악들보다도 조니 미첼의 <Blue>나 쥐빌레 바이어의 앨범 <Colour Green> 등이 먼저 떠올랐다. 아무래도 이 앨범은 절망적이고 어두운 경향이 있으니까, 청춘의 사색과 비관주의 같은 것을 동반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Tout le Monde 같은 노래에서, 우리 모두의 절망적 경험이 유사하다는 식으로 위안한다는 점에서 인간적 교감을 경험토록 하고 더불어 따스함을 전달한다. 그런, 특유의 온화함 때문인지 그녀의 노래는 우리나라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같은 제작진의 후속작 <봄밤>의 사운드트랙에도 삽입되어 특별히 친숙하게 남게 되었다. 태미 와이넷(Tammy Wynette)의 원곡 Stand by Your Man과 <봄밤> 수록곡 Spring Waltz 둘 모두 위로의 정서를 앞세우는 편으로, 제법 통속성이 있는 드라마라는 장르에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게다가 그녀의 사랑 노래는 노래 이상으로 의미심장하다.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로맨스가 그녀의 삶에 현실—프랑스 대통령이던 사르코지와의 결혼—로 일어났으니까.
그런 상황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그녀의 음악은 내러티브를 가진 여러 영상물에 쉽게 동화될 만큼 보편적인 힘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주로 로맨스물인 영화에서 배경 음악의 기능으로서 손색이 없다. 쉽게 매치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들로 인해 결코 영화에 어울릴 수 없는 노래들이 많을 것이다. 그녀의 음악은 어디에도 잘 섞일 수 있지만 섞인다고 해서 개성이 흡수되어 사라져버리지도 않는다. 보편적인 언어로, 보편적 이야기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복잡한 장치나 수식 없이, 기타와 목소리의 순수성 그대로의 힘으로 풀어낸 <Quelqu’un m’a dit>은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않았을까. 조금 어둡긴 해도 싫어할 이유가 별로 없는 음악. 여전히 나무로 된 다락 공간이나 기타의 낭만으로 회귀할 수 있도록 하는 컨셉 아닌 컨셉. 이런저런 계산보다 기본에 충실한 구도가 말하자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해도 ‘보편적’인 옷은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보편성을 자기 식으로 소화하고 자기만의 개성으로 재생산해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접근하거나 취하도록 하는 것은 새롭고 기발한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글을 길게 썼지만, 어떤 노래들은 가사를 몰라도 듣기 좋고 모르는 채로 즐기며 나만의 ‘방 안의 천국’을 만끽하게 만든다. 그런 자유를 여기에서 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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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manlanvincat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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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우엘베크, 실뱅 테송과 그 선배작가들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희망이 희박해지면 세상에 환멸을 느낀 이들은―정치에서나, 문학에서나― 과거에 대한 향수를 소환한다. 이런 전통에 속한 작가들은 너무 부르주아적이며, 대중의 욕망에 쉽게 부응하는 사회질서에 대해 매우 비판적 입장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매우 보수적인 형태의 낭만주의는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무사태평하다. 느긋하다. 은근히 비관적이지만 용감하게도 굴복당하는 법이 없다. 위풍당당하게 세상의 환멸에 맞선다. 지난날의 위대한 꿈이 사라진 것을 몹시 슬퍼한다. 그리고 지도자들끼리 합의한 것에 과감히 반대하고 나선다. 우울하지만 강인한 명석함과 불온한 사상을 옹호하는 대담함을 갖고 있다. 주요 인사들이 옹호하는 가치를 거부하는 보기 드문 무례함을 보이기도 한다. 시대에 대한 혐오, 과거에 대한 향수와 파괴적인 현재에 대한 분노,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미래에 대한 깊은 불안감, 모든 것이 망가졌다는 느낌, 우리가 무력하다는 확신 등 그가 다루는 모든 주제는 뜨거운 화제가 된다.
반동적 상상력…이 슬픈 운명  
여기서 서술된 것은 하나의 선언이라기보다는 상상의 지표들이다. 반동적 상상력은 점차 확산되면서 파괴적 명성을 얻었고, 이제는 소수자의 고독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패배자의 편에서 말이다. 문학은 오랫동안 그 역할을 해왔다. 그렇게 문학적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냉철한 반(反)진보주의 작품을 써서 성공을 거두고, 독자를 확보하며, 평론가들의 관심을 끈 작가는 (좌파를 포함해) 수없이 많다. 로제 니미에(Roger Nimier), 에밀 시오랑(Emil Cioran), 앙투안 블롱댕(Antoine Blondin) 같은 옛날 작가들, 실뱅 테송(Sylvain Tesson), 미셸 우엘베크(Michel Houellebecq) 같은 요즘 작가들, 그리고 루이페르디낭 셀린(Louis-Ferdinand Céline)이나 피에르 드리외라로셸(Pierre Drieu La Rochelle) 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 솔직함으로는 1위를 다툴 인물들이다.
이들 작가들의 작품 경향은 다양하지만 이들은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몇 가지 특징적 지표를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이들은 현재뿐만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개탄스러운 상황을 성찰한다. 이들에게 미래는, 아마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미래는 현재보다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슬픈 운명은 민주주의, 즉 모든 것을 평준화시키고 ‘부르주아’라는 이들에게 승리를 준 ‘평등’이라는 한심한 이상에서 초래됐다.
하지만 이 같은 운명은, 이룬 것이라고는 소비주의밖에 없는 자유주의의 결과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의 열망이 아닌 다른 열망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에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영웅은 될 수 없고, 역사의 비참한 결과를 보면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권태와 영혼의 불안, 작은 개인보다 더 큰 이상으로 고양될 수 있었던 시대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을 뿐이다. 
『푸른 경기병(Le Hussard bleu)』의 저자 로제 니미에는 “지구의 주민들이 좀 더 어려워지면 나 자신을 인간으로 귀화시킬 것”이라고 썼다. 이들에게는 잃어버린 초월적 감각을 되찾고 세상과 정신의 상품화를 되돌리는 것, 명예와 신성을 존중하고, 삶의 생명력을 복원하고, 그것을 허용하는 사회 질서를 다시 세우는 것만이 지켜야 할 유일한 대의다.
귀족적 댄디즘, 소(小)부르주아의 고전적인 꿈
그 밖의 모든 것은 경멸을, 심지어 모욕을 초래할 뿐이다. 이들의 작품에서 잘 짜인 문장과 형식을 통해 묘사되는 각성한 존재(1)가 가진 무기라고는, “반(反) 부르주아적” 아이러니와 공화주의적 평등주의의 허약한 논리를 경멸하는 태도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 작품에서는 삶이 버거워 환상적인 과거로 회귀하려는 일종의 낭만주의와 “귀족주의”를, “엘리트”와 반란의 기운으로 대변되는 도덕적 타락과 대비시키는 상상력이 발휘된다. 여기에는 사춘기와 불복종의 기풍이 있고, 무리와 섞이지 않는 사람들의 댄디즘이 있고, 보편적 어리석음의 게임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필사적 우월함이 있다. 이는 소(小)부르주아의 고전적인 꿈이기도 하다.
평등주의에 대한 이런 경멸의 뿌리는 아주 고귀한 영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간은 군대나 교회 등에서 관리하지 않는 한 별로 가치가 없다는 확신이다. 이런 확신은 우리를 허무주의로 이끈다. 평준화를 이루는 민주주의는 개인, 국가, 유럽 문명, 이 모두를 퇴폐의 길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단, 평등주의와 변덕을 부릴 천박한 자유로 인해 사라진 가치를 급진적 방법으로 되찾을 가능성이 있을지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실뱅 테송(Sylvain Tesson)은 프랑스의 NGO ‘유러피안 길드(La Guilde Européenne du Raid)’의 창시자를 영웅으로 내세웠다. “레지스탕스가 되기에는 너무 어려서 OAS(Secret Army Organization) 특공대에 들어간”, “68년 5월의 부르주아가 물렁한 바리케이드를 준비하는 동안 감옥의 담벼락 안에서 명예와 충성을 꿈꾸던 소년”(2)을. 테송은 그가 처형된 것은 우리 인류의 타락을 반증하는 것이라 봤다. 모험가 테송은 자연 그 자체에서 세계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확인했고, 알프스 산맥은 그를 받아들였다. “풍경은 그의 영예, 위계, 순결의 원칙에 응답했다. (…) 정치적으로 각성된 이들이 산의 풍경의 상징성에 기대 좀 더 일찍 봉기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수직성은 평등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을 의미했다.” 재미있다. 하지만 정말 어리석다. 그리고 분명하다.
테송 같은 작가들이 ‘타락’만큼 자주 언급하는 단어는 ‘쇠퇴’다. 부르주아의 승리는 존재의 공허��� 나타내는 신호로, 항상 치졸한 탐욕에 굴복할 준비가 돼 있는 두 발 동물의 내적 비참함을 보여준다. 테송의 독창적 표현에 따르면, “개인주의의 지배”는 더럽고 비겁하고 비열한 인간 본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 같은 “반동주의자들”의 발언은 인간 본성에 대한 비극적 이해에서 나온, 무엇보다도 도덕적인 발언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멍청해지고 나태해지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추악함을 극복하고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은 노력과 희생을 통해서다.
놀랍게도, 진부하지만 도발적 색채를 띤 이런 생각들이 대중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좌파를 비판하면서도 교조적이라는, 심지어 “스탈린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권력자들, 정치인, 언론의 비호를 받고 있다. 이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다. 한때 <르피가로(Le Figaro)>의 주필이었으며, 베트남 전쟁을 지지했고, 지혜롭고 현명한 삶의 표본으로 통하는 그리고, “전통은 성공한 진보”라고 말한 장 도르메송(Jean d’Ormesson)이 2017년 사망했을 때, 국가적 애도가 이뤄졌다.
모호함을 창출한 반동주의자들
또한 “나는 유대인과 (...) 프랑스 혁명이라면 토가 나온다”며, 확고한 신념으로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자크 샤르돈(Jacques Chardonne)을 보자. 그가 그토록 대중의 인기를 끌지 않았다면, 그가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라는 사실도 끝까지 비밀로 남았을 것이다. 샤르돈이 과거 필리프 페탱(Philippe Pétain)의 열렬한 지지자로 반유대주의를 옹호한 과거 전력은 침묵에 부쳐지고, 2018년에는 그의 이름이 “국가 기념관(Commémorations nationales)” 목록에 올랐다. 사람들이 중요시한 것은 재능뿐이었다. 영화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Olivier Assayas)는 그의 소설을 각색해 <애정의 운명(Les Destinées sentales)>(2008년 개봉)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었다. 그 소설에는 의미심장한 대사가 나온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믿게 만드는 것,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더 나은 세상은 없으니까요. 바꿀 수 있는 것은 외형뿐입니다. (…) 항상 똑같은 사람들이 지배하니까요.” 
작가는 자신의 정치적 선택과 겹치지 않는 세계관을 전달할 수 있다(입헌군주제를 지지한 오노레 드 발자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로제 니미에나 에밀 시오랑 같은 작가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작품에 기독교를 다소 그리워하는 허무주의를 드러내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인해, 짐승 같은 천성이 더욱 악화되는 인간을 그린다. 이런 그들의 ‘주제’는 물론, 평소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칭송받고 기념된다. 이들 중 몇몇의 작품은 ‘플레이아드 총서(Bibliothèque de la Pléiade)’에도 포함됐다. 오늘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우엘벡은 예외로 하고, 스스로 “교양 있는” 인물을 자처하며 특정 극우파의 사상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그들의 예술적 재능은 실로 감탄스럽다.
실뱅 테송이 라디오 쿠르투아지에서 여전히 방송 진행을 하면서 펴낸 『눈 표범(La Panthère des neiges)』(갈리마르 출판사, 파리, 2019년)은 70만 부 넘게 팔렸고, 극우인사 에릭 제무르(Éric Zemmour)와 조프루아 르죈(Geoffroy Lejeune)(6)에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았던 미셸 우엘벡의 『전멸(Anéantir)』(플라마리옹 출판사, 파리, 2022년)은 일주일 만에 7만 5,000부가 팔렸다. 이 책들을 극우 유권자들만 읽었을까? 반(反)자유주의와 정신성이 풍부한 ‘순수한’ 세상에 대한 열망은 좌파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하다. 이들의 반항적, 반자유주의적, 반엘리트적 성향은 안전해 보인다. 이들 반동주의자들은 일종의 모호함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소렐이 ‘혁명’보다 ‘재생’을 선호한 이유는?
분명, 어떤 권위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인가가 되는 것”보다 “무엇인가를 가지는 것”에 시간을 쏟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르주아가 대중(혹은 ‘민중’)을 경멸한다고 비난하는 것도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계몽주의 혐오가 집단 해방을 향한 강한 추진력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도덕성으로 시스템과 세계와 개인을 ‘재생’하기를 원한다면, 사회 문제와 정치적 과제를 피할 수 없다. 혁명적 조합주의의 이론가이자 열렬한 드레퓌스주의자였던 조르주 소렐(Georges Sorel, 1847~1922)은 노동계급이 “도덕성의 승리를 위해 세상을 재생할 것”(7)이라 생각했다. 
소렐은 분명 ‘혁명’보다는 ‘재생’이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그는 “진정한 사회주의는 반의회적, 반자유주의적, 반인도주의적, 반진보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금세기 최대의 실수라 여겼다. 소렐이 그 자신의 도덕 철학을 피력한 유명한 저서 폭력에 대한 성찰(Réflexions sur la violence)』(1908)을 “부흥의 날을 기다리는 동안, 분별력 있는 노동자들은 (...) 쩨쩨한 민주주의자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영혼의 힘을 길러야 한다”(8)는 권고로 끝맺었다. 권력의 컨베이어 벨트를 장악한 지식인에 대한 철저한 거부를 기반으로 하는 소렐의 사상은 그를 악시옹 프랑세즈(Action française)의 왕당파와 잠시나마 가까워지게 만들었고, 안토니오 그람시와 베니토 무솔리니로부터도 찬사를 받았다. 오늘날 소위 “교양있는” 극우파의 선구자로 꼽히는 알랭 드 브누아(Alain de Benoist)는 소렐을 ‘보수적 혁명가, 보수적이기 때문에 혁명가’라 부르며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사회에 만연한 혼란은 문인들의 반동주의가, 더 광범위하게는 그런 반동주의가 퍼뜨리는 사상이 성공을 거두게 만들고, 그 가운데 사회에서는 “정치적으로 그릇된” 발언이 받아들여지고 과거에 대한 향수와 “진보”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았다. 이런 현상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좌파는 미래에 대한 구상이 부족하다”는 사실, 그리고 “피해자들의 기억이 투쟁의 기억을 대체했다”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피해자로 간주된 사회적 주체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바뀌었다.” ‘좌파’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도덕적 분노 외에 없는 게 아닐까?
가장 반동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자유주의
극우파의 이런 주제, 기질과 정서는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장 조레스 재단이 2021년 장기간에 걸쳐 실시한 ‘프랑스의 균열(Fractures françaises)’ 설문조사 결과(2021년 10월 21일 발표)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75%가 프랑스는 쇠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10명 중 7명이 자신의 삶에서 “과거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예전이 더 좋았다”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 설문조사 기관 오독사(Odoxa)의 최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프랑스 국민 중 21%만이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프랑스 주변 4개국 국민의 38%가 같은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응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프랑스 국민 중 30%가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2022년 파리정치대학 정치연구소(CEVIPOF)의 정치 신뢰도 조사에서 권위주의를 지지하는지 질문하자, 39%가 “의회나 선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강한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라고 답했다. 시대착오적이며 무분별한 극우파처럼, 스스로를 ‘금기(퇴행의 동의어)를 공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가’라고 자부해온 에마뉘엘 마크롱은 지금까지 그랬듯 담담한 어조로 말할 것이다. “의무는 권리에 우선한다.” 그는 2023년 3월 과 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공화국에서는 법을 너무 많이 만든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전투적이고, 영웅적이며, 거창하고 심지어 희생적으로 들리는 이 말은 분명 경고다. 
분명 마크롱 대통령은 카를 슈미트(1930년대 “방종한 의회주의의 월권이 공화제를 타락시켰다”라고 주장한 독일의 정치철학자이자 헌법학자-역주)의 저서를 열독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려면, 가장 격렬한 반동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자유주의를 이 시대에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바람직한 미래를 창조할 임무는 좌파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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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33p4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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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티비에서 뉴스 시청 중이야.
하이티비(Newtv)’의 <뉴튼>에서 주인공 ‘리처드’를 연기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애런 존슨이 최근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는 이 채널의 첫 콘텐츠인 에 출연할 예정이다.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와 소설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가 내놓은 작품들은 모두 흥행작이다. 지난 2월 개봉한 은 할리우드의 거장 스탠 리 감독과 의 마이클 만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영화는 미국 전역에서 4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하이티비 다시보기 링크: https://bit.ly/3LdSLlo 두 달 만에 2억5800만달러(약 27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8월에는 미국의 코미디 전문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의 신작 을 내놓았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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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hongkong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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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梁朝偉), 베니스 영화제 평생 공로 황금사자상 수상
(홍콩=데일리홍콩) 김한국 기자 = 홍콩 스타 양조위(梁朝偉, Tony Leung Chiu-Wai)가 중국인 배우 최초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 평생 공로 명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탈리아의 베니스 국제 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로 평생 공로 명예 황금사자상은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영화계의 감독, 배우 및 기타 인물에게 수여된다. 홍콩 스타 양조위는 이탈리아 영화감독 릴리아나 카바니와 함께 올해 베니스 국제 영화제 평생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출처: Emotional Tony Leung wins lifetime award at Venice 지난 달 30일 이탈리아 베니스의 리도 섬에서 개막한 제8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평생 공로 명예 황금사자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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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80ur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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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물어보고싶네
씹물지 마세요 초간단 양념장 : 간장, 물엿, 설탕 각각 1큰술씩,고추가루 1/2작은술, 다진마늘 2/3 작은 술. 참기름 한방울 오타쿠의 수난과 그 극복 방안 (일본) ‘코미디와 음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사람들은 쉽게 답을 찾지 못한다 씹물 바로가기: 씹물에 대해 더 알아보기 코미디는 극적 요소로 관객을 웃기는 것이지만 음악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어디까지나 인간 내면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영화감독 미키 사토시가 만든 ‘마녀’는 제목부터가 일본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마녀라는 소재는 인간의 추악한 면을 보여주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와 달리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재해석된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작품의 메시지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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