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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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23
So much has happened past few days. Not gonna get into it right now but few thoughts I wanna jot down.
1. I had a thought when I got back from New York that if I were to die right now, at this specific age in the girls’ lives, my regret wouldn’t be that I didn’t spend enough time with them. My regret would be that I’m not leaving enough money behind for their future. Because eventually they’ll forget abt me. They’ll have very little memories of me. Naya may but it’s just a function of their age. But what they need is to be literally taken care of, provided for.
2. Tonight Naya and I were reading a book about amazing women and there was one abt a suffragette. And in the cartoon pic the police is holding her arm. And Naya was like she’s a bad person right? And I was like no a long time ago people were very mean to women.
Naya: boys?
Me: yeah boys. They wouldn’t let women work. Or make money. Or have a say in things. Or wear pants.
Naya: so they couldn’t wear anything?
Me: no they could. They just couldn’t wear pants.
Naya: but they could wear dresses?
Me:…. Yeah. But they couldn’t work <<starting to think oh god she’s going to be like what’s the problem so I emphasized not being able to have control or money.>>
Naya: but appas not like they?
Me: no appa is good. He’s a good one.
Naya: yeah all dads are. All dads are good.
Me:…… yeah… all the dads we know are.
Then there was another page on Harriet Tubman but I didn’t want to explain that people have also been really bad to black people beczuse I don’t want her talking about it out of context in front of people so I’m going to wait just a tad until she has a little more sense of social cues and context.
3. Lately Naya has been saying when we get old she doesn’t want us to become grandmas and grandpas. And Dani kept asking me recently where 증조할머니s 아야 is (bc she got sick the las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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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min and his great grandma 😙 Edward Chung Li!!! #증조할머니 #아기 #조카 #family https://www.instagram.com/p/Bpdq-SWBkHT/?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1pls03ywj2u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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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카(할머니) 남편 딸 내외(세이코 사샤) 쌍둥이 손주(야마토 아스카) 아기 / 좌부동자(정령? 집의 수호신) / 아빠(야마오 나오타카) 엄마(미노리) 오사카 만국박람회 1968 / 협죽도(독 엄마의 이미지) / 나라현 가시하라시 간장 양조장 스즈메(참새라는 뜻) 간장 / 사쿠라코(고모) / 오하라(양조장 도지 책임자) 후쿠코 딸 아들(쓰요시) / 참새토령(아빠의 선물 ; 홍차 빵 아빠의 이미지) / 야마오 다즈코(할머니) / 핫치 노리짱 / 마사루 / 쌍둥이(아키라 세이코) 사쿠라코 아이 /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나오타카(할머니 이복동생) /
도도부현 1도 1도2부 43개 현 / 1970 3월 오사카 만국 박람회 / 고토(악기) 가루카야 도신 뱀 출가 / 빠득빠득 둥실둥실 삐죽삐죽 / 절분 계절 최종일 혹은 입춘 전날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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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데이즈: 라스트 서바이벌 T 권윤덕+
권윤덕 그림책 작가 권윤덕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국내 그림책 작가 1세대 대표주자이다. 1990년대 초반 존 버닝햄, 앤서니 브라운, 크리스 반 알스버그등 외국 작가의 아름다운 그림책들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한’ 뒤였다. ‘문화적 충격’에서 겨우 빠져나��� 사람들이 “우리 작가는 없는 거야”라는 기대’ 혹은 ‘우리는 안 될 거야’라는 성급한 판단을 내놓을 즈음, 권윤덕은 [만희네 집](1995)이라는 첫 그림책을 내놨다. 이미지 목록 [만희네 집](1995, 길벗어린이) 표지. 대가족이 모여 사는 만희네 집에는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자개장, 재봉틀, 항아리가 있다. 유치원생 만희의 하루를 따라가며 꽃과 나무가 있는 할아버지 양옥집 곳곳을 보여주는 그림책은 세밀한 민화풍 그림으로 사람들 눈을 단박에 끌었다. ‘만희네 집’이라는 제목 그대로,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인공인 그림책은 증조할머니 때부터 쓰던 가위, 문살무늬창, 벽에 걸린 양파자루와 둥글게 각진 소반, 꽃무늬 이���, 된장 항아리 등이 놓여 있는 안방, 마루, 부엌, 광, 장독대 등을 차례로 보여주며 우리 삶을 여기에 있게 한 긴 시간과 생활사를 담아냈다. 긴 이야기를 그림 속에 압축해 보여주는 것, 이것이 그림책의 아름다움이라면 [만희네 집]은 이 같은 그림책 세계를 제대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작가 스스로는 대학에서부터 그림을 전공하지 않아 다소 어설픈 그림(작가는 서울여자 대학교 식품과학과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과를 졸업했다)이었다고 돌아보지만, 이 소박함은 오히려 그림책을 더 돋보이게 했고, 책은 출간 15년간 46쇄를 거듭하며 지금도 매년 1만 부 이상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가 됐다.[만희네 집] 이후 작가는 8권의 그림책을 더 내놨는데, 이 9권을 통해 그는 ‘권윤덕의 그림책 세계’를 구성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만들어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라면 갈수록 색감이 화려해지고 있는 민화풍 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은근히 끌어당긴다. 선명한 색의 대비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것’의 아름다움을 보이면서도 매우 현대적이다.작은 무늬까지 살려낼 정도로 대상을자세히 묘사하는 그림은 때로원근법과 명암을 무시해 실제 우리가 보는 세상과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매혹의 세계인 것이다. 이미지 목록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2010, 길벗어린이) 표지. [일과 도구](2008, 길벗어린이) 표지. 이와 함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 사물에 대한 관심, 백과사전적 구성 등이 그의 세계를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들이다. 잊혀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은 [만희네 집]이나 아이들의 열두 달 옷을 통해 추억을 되살려낸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에서 잘 보여진다.[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와 [일과 도구](2008)에서는 사물에 대한 관심과 백과사전적 구성이 잘 드러난다. [일과 도구]는 농장, 병원, 화실, 의상실, 중국집 등에서 쓰이는 도구를 그림 백과사전처럼 구성해 생활의 도구를 한눈에 보여주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동의 의미를 전해주는 그림책이다.하지만 이 같은 화려한 그림,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소박한 애정, 백과사전식 지식 등 여러 요소들을 의미 있게 연결시키는 것은 감정에 대한 세심한 포착이다. 그런 점에서 그를 개성적인 작가에서 뛰어난 우리 시대 작가로 끌어올린 것은 [시리동�� 거미동동](2003)과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2005), 두 권이 아닐까 생각한다. 높은 곳에 올라 고양이처럼 몸을 크게 부풀린 아이는 이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창비, 2005) 중에서. [시리동동 거미동동]과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는 쌍둥이 같은 그림책이다. 엄마는 물질하러 가고 집에 혼자 남아 있는 [시리동동 거미동동]의 제주도 아이는 엄마를 찾아 집을 나선다. 그 길 위에서 아이는 토끼와 까마귀를 만나 친구가 된다. 실제로는 그리 길지 않지만, 아이에게는 너무나 멀고 힘든 엄마를 찾아가는 길. 아이는 그 길에서 자기만큼이나 외롭고 두려운 토끼와 까마귀를 만나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앞으로 나아간다.[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의 아이 역시 엄마는 직장에 나가고 혼자이다. 아이의 유일한 친구는 아이가 하는 대로 따라하는 고양이.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생각을 뒤집어 자기가 고양이를 따라 하기로 한다. 고양이처럼 깜깜한 창밖을 살펴보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고, 고양이처럼 몸을 크게 부풀린다. 이렇게 고양이 친구의 도움으로 세상을 다르게 보고, 어둠이 두렵지 않게 된 아이는 외친다. “이제 밖으로 나가는 거야.” 두 그림책은 외롭고 두려운 아이의 ‘용기 있는 맞섬’을 섬세하게 담아냈다.한국 그림책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은 [시리동동 거미동동]의 마지막 장면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불어오는 세상의 바람을 맞으며 아이가 가슴을 활짝 펴고 친구 토끼와 함께 하늘을 나는 까마귀 위에 당당히 서 있다. 이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세상이 만만찮은 어른들까지 몰입시키는 장면은 언제 봐도 콧날이 시큰해진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아이는 당당히 섰다. [시리동동 거미동동](2005, 창비) 중에서. 작가는 곧 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사회적 내용의 그림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이제까지 개인과 내면을 다뤘다면 앞으로는 사회 밖으로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 같은 작가의 변화에 “그림책 한 권 한 권은 내가 품은 숙제를 푸는 과정이라는 그의 말이 떠오른다. 그가 가는 길에서 [시리동동 거미동동]과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의 세상 밖으로 나가는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간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권윤덕 작가의 작품 세계도 그 아이들처럼점점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있다. 작가소개 권윤덕 1960년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나 서울여자대학교 식품과학과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과를 졸업했다. 1990년대 후반 중국 북경에서 산수화, 공필화를, 2000년 중후반부터 불화와 채색화를 공부했다. 작품으로는 [만희네 집](권윤덕 글․그림, 이하 동일),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씹지않고 꿀꺽 벌레는 정말 안 씹어](2000), [생각만해도 깜짝 벌레는 정말 잘 놀라](2001), [혼자서도 신나 벌레는 정말 신났어](2002) [시리동동 거미동동],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일과 도구] 등이 있다. 통합검색 통합검색 결과 보기 관련링크 다른 작품 보기 3데이즈: 라스트 서바이벌 벤쿠버 출신의 보험사 직원인 잭은 하바나로 출장을 가게 된다. 하바나에서 여행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해리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둘은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만취가 된 두 사람은 나이트 파티에서 만난 여자들과 호텔을 가게 된다. 다음 날, 잭은 욕조에서 죽어 있는 해리를 발견하고 캐나다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오히려 암살 음모에 빠져들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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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우울을 곱씹는 걸 좋아한다. 우습게도 대부분 내가 우울을 곱씹는 건 할 일이 잔뜩 밀려있을 때인데, 몇 분씩 가만히 그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보면 그 다음 할 일도 오롯이 잘 해내곤 한다. 음. 살아온 시간에, 죽어간 시간에 하루하루를 더하고 있자니 점점 늘어나는 건 내가 마주했던 슬픔들 뿐이었고. 어제 이 시간엔 내가 퍽퍽해서 싫어했던 삶은 달걀 노른자를 모아 증조할머니 손을 잡고 옆 집 강아지들에게 주러 갔던 생각을 했고, 지난 주 이 시간엔 외할머니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던 생각을 했더라지. 방금은 지난 날의 나를 마주보며 너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싶었는데,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이미 없어진 사람이라는 게 왜 그리 슬픈 걸까. 나는 분명 2015년의 마지막 날 저런 생각을 했을텐데 이제는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고, 그 생각을 했던 내가 없어진 사람이 된 것 같다. 어쩌면 내 기억속에 있는 모두가 다 죽은 것 같기도 하다. 방금의 나는 죽었고, 어제의 나도 죽었고. 나는 예전에 피넛버터를 싫어했지만 이제는 피넛버터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거나. 나는 항상 순간의 나다. 이 순간이 지나면 이 순간의 나는 죽는 것 같아. 그리고 이런 이별도 어려운 이별이야. 과연 너는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까. 과연 나는 지금 이걸 잘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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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삼촌三寸 oncle ○
○ 이모姨母 tante ○
○ 할아버지 grand-père ○
○ 할머니 grand-mère ○
○ 증조할아버지曾祖할아버지 arrière grand-père ○
○ 증조할머니曾祖할머니 arrière grand-mère ○
○ 사촌四寸 cousin ○
#vocabulaire#humain#langblr#studyblr#korean langblr#korean studyblr#coréen#korean#langblr coréen#studyblr coréen#vocabulaire coréen#language#korea#corée#family#가족#hanja#chinese characters#caractères chinois#chinois#chinese#chin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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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댁에 도착. 시골은 더욱더 여름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오랜만에 증조할머니 산소다녀오는 길에 발견한 귀여운 산딸기🍓 시원하게 비와라 했는데 찔끔찔끔 오다가 끝. 내일은 시원하게 와주라!
17062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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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MEMBERS MASTER LIST
I am going to post pictures I got from this website because I thought their charts were the easiest to understand, and then I’ll list the words below with explanations. There are some members in the charts that I didn’t include in my list, and some members in my list that aren’t in the charts, so check out both!
The terms listed first are the ~official terms~ and the terms in parenthesis are the colloquial terms (what you’d actually call them).
(BROTHERS AND SISTERS)
for a male:
자매(누나, 여동생)- sister
형제(형, 남동생)- brother
형수- older brother’s wife
매형(자형)- older sister’s husband
제수- younger brother’s wife
매제(매부)- younger sister’s husband
생질(조카)- sister’s son or daughter (nephew/niece)
질(조카)- brother’s son or daughter (nephew/niece)
for a female:
자매(언니, 여동생)- sister
형제(오빠, 남동생)- brother
올케(새언니)- older brother’s wife
형부- older sister’s husband
올케- younger brother’s wife
제부- younger sister’s husband
생질(조카)- sister’s son or daughter (nephew/niece)
질(조카)- brother’s son or daughter (nephew/niece)
(FATHER’S SIDE OF THE FAMILY)

부(아버지)- father
고모- father’s sister (aunt)
고모부- father’s sister’s husband (uncle)
백부(큰아버지)- father’s older brother (uncle)
숙부(작은아버지)- father’s younger brother (uncle)
백모(큰어머니)- father’s older brother’s wife (aunt)
숙모 (작은어머니)- father’s younger brother’s wife (aunt)
내종형제(사촌)- father’s sister’s son or daughter (cousin)
내종질(사촌조카)- father’s sister’s grandson or granddaughter
종형제(사촌)-father’s brother’s son or daughter (cousin)
종질(사촌조카)- father’s brother’s grandson or granddaughter
조부(할아버지)- father’s father (grandfather)
대고모- father’s father’s sister (great aunt)
종조(큰할아버지)- father’s father’s older brother (great uncle)
증조부(증조할아버지)- father’s father’s father (great grandfather)
조모(할머니)- father’s mother (grandmother)
증조모(증조할머니)- father’s mother’s mother (great grandmother)
(MOTHER’S SIDE OF THE FAMILY)

모(어머니)- mother
이모- mother’s sister (aunt)
이모부- mother’s sister’s husband (uncle)
외숙부(외삼촌)- mother’s brother (uncle)
외숙모- mother’s brother’s wife (aunt)
이종형제(사촌)- mother’s brother or sister’s son or daughter (cousin)
이종질(사촌조카)- mother’s sister’s grandson/granddaughter
외종질(사촌조카)-mother’s brother’s grandson/granddaughter
외조부(외할아버지)- mother’s father (grandfather)
외증조부(외증조할아버지)- mother’s father’s father (great grandfather)
존이모- mother’s father’s sister (great aunt)
외종조- mother’s father’s brother (great uncle)
외조모(외할머니)- mother’s mother (grandmother)
외증조모(외증조할머니)- mother’s mother’s mother (great grandmother)
(WIFE’S FAMILY)

부인(아내)- wife
장인- wife’s father
장모- wife’s mother
손윗처남(형님)- wife’s older brother
손윗처남댁(아주머니)- wife’s older brother’s wife
처형- wife’s older sister
손윗동서(형님)- wife’s older sister’s husband
처남- wife’s younger brother
처남댁- wife’s younger brother’s wife
처제- wife’s younger sister
동서- wife’s younger sister’s husband
(HUSBAND’S FAMILY)

남편- husband
시아버지- husband’s father
시어머니- husband’s mother
시아주버니(아주버님)- husband’s older brother
손윗동서(아주머님)- husband’s older brother’s wife
시누이(형님)- husband’s older sister
시자부(아주버님)- husband’s older sister’s husband
시동생(도련님)- husband’s younger brother
동서- husband’s younger brother’s wife
시누이(아가씨)- husband’s younger sister
매부- husband’s younger sister’s husband
#korean#master post#한국어#family#가족#korean study#study korean#learn korean#어휘#korean vocabulary#korean vocab#advanced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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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학교에서 만난 친한 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인문계 학과 학생이었고 고등학생 때 문과였던 동생은 사회탐구 영역 중에 한국사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때 그녀가 한 말을 듣고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전 한국사 공부하면서 책 페이지 넘길 때마다 울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픈 거예요. 그래서 전 만나는 사람 중에 “존경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 안타까워요. 자기가 공부한 책에 다 나와 있는데.”
그때 그녀의 말이 꽤 인상적이었다. 오늘은 3·1절이었고 또 한 번 그 말이 떠올랐다. 내게 우리나라 역사는 머릿속에서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그저 가끔 경탄할 뿐.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우리 증조할머니 세대, 그리고 그분들이 살아남아 또 한 번 6·25 전쟁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 그 아픔의 크기조차 상상할 수 없다고. 난 그 이상으로는 뭘 생각하고 있었는지.
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 전집이 생각난다. 유관순 열사, 퀴리 부인, 에디슨, 헬렌 켈러, 방정환 선생님, 링컨 대통령, 세종대왕님, 신사임당, 장영실 선생님 등. 지금의 나와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주신 분들. 그 분들을 나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급식충’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난 방정환 선생님이 떠올라 화가 난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사랑했던 그 마음의 크기를 난 책을 통해 배웠기에. 방정환 선생님이 사랑해 마지않던 어린이들이 ‘급식충’이라고 불리게 된 지금. 내가 방정환 선생님이라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어린이날이 어느새 단지 ‘쉬는 날’로 구분된 것 같다.
오늘 밖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한 아파트에 얼마나 많은 국기가 게양됐는지 봤다. 그 높은 아파트 한 동에 태극기는 네 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게 못내 씁쓸했다. 집에 와 나도 태극기를 게양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유관순 열사님 그리고 일제시대, 그 끔찍한 시대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순국하신 그 많은 감사한 분들이 오늘날을 어떻게 생각할지. 지금이라도 어릴 때 읽던 위인전을 다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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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ia 가족 / gajok
Abuelo 할아버지 / Haraboji
Abuela 할머니 / Halmoni
Bisabuela 증조할머니 / Jûnjohalmoni
Bisabuelo 증조할아버지 / Jûngjoharaboji
Padres 부모님 / Bumonim
Papá (informal) 아빠 / Appa
Padre (formal) 아버지 / Aboji
Mamá (informal) 엄마 / Omma
Madre (formal) 어머니 / Omoni
Hijo 아들 / Adûl
Hija 딸 / Tal
Primera hija 맏 딸 / Mattal
Nieto 손자 / Sonja
Nieta 손녀 / Sonnyo
Hermanos 형제 / Hyongje
Hermanas 자매 / Jame
Hermano menor/Hermana menor 동생 / Dongseng
Hermano mayor (hombre a hombre) 형 / Hyong
Hermana mayor (hombre a mujer) 누나 / Nuna
Hermano mayor (mujer a hombre) 오빠 / Oppa
Hermana mayor (mujer a mujer) 언니 / Onni
Hermana menor 여동생 / Yodongseng
Hermano menor 남동생 / Namdongseng
Esposo 남편 / Nampyon
Esposo (informal) 서방님 / Sobangim
Esposa 아내/부인 / Ane/buin
Esposa (informal) 색시 / Sekshi
T��o 삼촌, 숙부 / Samchon, Sokbu
Esposo de la hermana de la mamá 이모부 / Imobu
Esposo de la hermana del papá 고모부 / Gomobu
Primo del papá 당숙 / Dangsuk
Tía 숙모 / Sukmo
Hermana de la mamá 이모 / Imo
Hermana del papá 고모 / Gomo
Primo 사촌 / Sachon
Sobrino/a 조카 / Joka
Familia política 사돈 / Sadon
Familia del esposo 시집/시댁 / Shijip/Shidek
Familia de la esposa 천정/장인 / Chonjong/Jangin
Suegro (padre) 아버님 / Abonim
Suegra (madre) 어머님 / Omonim
Cuñado 처남/동서 / Chonam/dongso
Cuñada 처제 / Choje
Yerno 사위 / Saui
Nuera 며느리 / Myonû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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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익숙해지지 않는 죽음, 익숙해져버린 장례식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다. 회의중이라는 말로 끊어버린 엄마의 전화에 슬픈 예감이 들았다. 무서운 예감이었다. 회의 중 받은 '언니 전화 좀..'이라는 문자가 그 슬픈예감이 틀리지 않았구나를 확인시켰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12시쯤 강릉에서 받은 연락을 안고 횡계, 진부, 장평을 들러 5시가 넘어서야 서울로 가는 차안에 몸을 담았다. 마음은 급한데 차는 더디가고 지는 해에 할아버지 얼굴을 떠올렸다. 울컥울컥 하는 울음이 치고 올라오다 말았다. 죽음을 처음 받아들이는 순간은 매번 이상한 울림이 있다. 알수 없는 울렁거림이 계속된다. 늦은 시간에야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익숙한 모습이다. 집에서 치른 세번의 장례와 두번째 병원에서의 장례. 절차를 이미 다 알고 있는 나는 마음을 한번 다졌다. 디지털 영정사진이라니. 시대가 변하는 군. 그 속의 할아버지는 SF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오늘은 먼길돌아왔으니 내일을 위해서 집에 들어가 좀 자다오라는 의미도 잘 알고 있다. 긴 하루가 될 내일을 위해 쓸쓸한 장례식장에 엄마를 두고 우리는 집으로 간다. 날씨가 참으로 좋다. 따뜻한 빛을 받으며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검정색 상복을 입고 손님들을 맞는다. 염을 하러간 동안 나와 동생들은 상주자리에 서서 손님을 맞았다. 조문하는 낯선분들과 맞절을 하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건냈다. 이 역시 처음 하는 것이 아니어서 익숙하다. 염을하고 입관을 마친식구들이 올라왔다. 빨갛게 충열된 눈들이 안타깝다. 이제 입관후 제사를 지낼 시간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절을 올렸다. 곡제배의 서러운 아이고 소리가 결국은 눈물을 뿜게 한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한켜한켜 떠오르며 외할아버지를 닮은 큰이모 모습에 괜히 마음이 안쓰럽다. 손님이 들어닥치는 시간인 7시. 앉아 있을세도 없이 손님접대에 긴 저녁을 보낸다. 마지막 손님이 떠난 새벽두시 대충의 양치 후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든다. 이른 여섯시. 발인을 준비한다. 진심으로 떠나보내는 과정. 영정사진을 든 큰이모부 뒤로 운구행렬이 따르고 그 뒤를 ���마의 울음이 따른다. 잠깐의 시간으로 할아버지는 한줌의 가루가 되어 담겼다. 먼저 가신 할머니 옆에 할아버지가 담겼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가셨다. 그렇게 난 다시한번 익숙한 장례를 치뤘다. - 떠나간 자와 남은 자. 떠나보낸 자와 남겨진 자. 매번의 죽음은 무엇을 남기는 걸까. - 김애란 소설가의 짧은 인터뷰를 읽었다. '맛나당'이라는 엄마의 칼국수집이 자신의 정서에 팔할을 만들었다고 했다. 나의 정서의 팔할까지는 아니겠지만 일찍이 겪은 증조할머니의 죽음부터 외할아버지의 죽음까지 5번의 죽음과 장례식은 내 정서의 오할정도는 차지한다. 난 아직도 증조할머니 장례식때 마당을 가득채운 전 부치던 아줌마들과 두 솥 가득 코다리찜을 만들던 아줌마들, 우리 좁디좁은 가운데 방 침대위에서 화투치던 그 아줌마들의 웃음소리. 홀로 아궁이 불피우면 울던 엄마의 모습. 그 기억들이 온전히 그대로 살아있다. 단지 9살이던 나는 우리 엄마만 울고 저들은 웃고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증조할머니는 왜 죽었다 말하는지 죽었다라는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누구든 죽을 수 있다라는 걸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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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post —
on being a woman and state of the female space in Korea from a unmarried 33 years old woman.
http://pann.nate.com/b337599479
저는 올해로 33세의 노처녀입니다.
28세부터 맞선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어쩌다보니 인연을 만나지 못해 나이만 이렇게 들어차게 되었습니다. 저는 직업도 전문직이고 외모도 20대에는 종종 모델 제의를 받아왔을 정도로 괜찮은 편입니다(이곳에는 이런 표현을 싫어하시는 것 같아 죄송하단 말씀 올립니다 ^^;). 아버지도 고위직에 계시고 친척들도 모두 의사들로 집안 역시 한국사회에선 괜찮다는 소리를 듣는 편입니다.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제 주관 없이 존경하는 제 부모님의 기호에 맞는 조건의 신랑감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했고, 따라서 남자의 직업과 학벌, 재력, 집안 등등을 꼼꼼히 따져 왔었습니다. 그런 와중 제 인생에서 몇몇의 남자들이 스쳐 지나가게 되었는데요. 검사, 변호사, 내과의사, 한의사, 중견기업 CEO가 저에게 선택된(‘선택’이란 표현에 어폐가 있습니다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의 교제는 길어봐야 5개월을 채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의 직업군을 굳이 밝히는 이유는 각 직업군 마다 저에게 남긴 의미들이 매우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특별한 의미들은 일종의 제 삶의 경험으로 축적 돼서 이제는 부모님의 기호에 따른 배우자 선택이 아닌 저만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인연을 찾아 나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법조계와 의료계에 있었던 상대남들과의 만남은 당시 젊은(혹은 어린) 저에게는 고려의 대상도 아니었던 ‘시모’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남자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의 등 뒤에는 항상 어머니란 사람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사법고시를 준비한 세월, 사법연수원의 기간, 뒤따라오는 공익법무관의 기간을 모두 합치면 10년이 넘는 세월이 족히 걸리다보니 그들의 배후에는 이를 심적으로 배려하고 경제적으로 지지��준 어머니의 존재가 사뭇 남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료계도 마찬가집니다. 남들보다 비싼 등록금에 2년이나 더 다녀야하는 의대생활, 거기에 인턴기간, 레지던트기간을 더하면 그들 역시 10년은 족히 되는 세월을 어머니의 관심과 원조로 버텨내야 했습니다. 따라서 법조계나 의료계와 같은 전문직종 남성들은 그들 스스로도 엄마의 요람 속을 벗어나기가 힘들었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고생해서 키운 아들인 만큼 며느리를 통해 보상받겠다는 심리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저도 대학과 유학시절을 모두 통틀면 족히 10년에 달하는 세월을 공부에 매진하며 제 부모님의 원조와 사랑과 보살핌으로 지내왔습니다만, 적어도 저희 집은 모녀유친적 성향이 없었으니 참 그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런 차이는 일종의 동물적 본능과도 연관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만(보통 아들에 대한 집착은 배우자가 부재한 미망인들에게서 나타나며, 부재한 남편의 자리에 아들을 앉히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복잡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이 지면에선 넘어가겠습니다. 아무튼 그중 상당수의 어머니들은 며느리 될 여자에게 내 아들을 빼앗긴다는 일종의 박탈감도 느껴 질투하고 시기하고 모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경우 남자는 어김없이 고생하신 ‘우리 엄마’의 편에 서서 여친을 나무라거나 책망하지, 결코 여친의 편에 선다거나 혹은 중립의 입장에서 조정해보고자 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점점 애인사이와도 같은 끈끈한 모자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전문직종 집안에는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10개월을 교제하고 상견례 문턱에서 파혼한 저의 전 남자친구 역시 변호사였는데, 교제하는 기간 내내 소유욕 강한 예비시모의 질투와 모함으로 가슴앓이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일을 마치면 7시라 7시 30분경 만나서 식당을 찾아들어가 8시쯤 식사를 합니다. 그럼 9시경 남친 어머니가 전화 와서는 지금쯤 식사 다 했을 테니 집에 들어오라 명령하십니다. 그럼 남친은 어김없이 어머니 명에 따르더군요. 어느 날은 판사님이 변호사들과 일요일에 낚시를 가자고 했는데 그날이 하필이면 저와의 100일 이었거든요. 그런데 결국 100일 파티도 안하고 판사님과의 낚시모임에도 안 나가고 어머니와 단둘이 도시락을 싸들고 공원으로 놀러 나가더라는.....) 그들은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관계가 현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었습니다. 소위 남자들의 마마보이 근성, 어머니(예비시모)의 집착적 성향에 질릴 대로 질린 저는 부모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한 재력가를 만나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상당한 재력을 지닌 한 사업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방끈은 다소 짧고 논리도 없는 어눌한 말솜씨가 한편으로는 순수해보이기도 해 얼마간 교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맞이하게 된 새로운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흥업소문화입니다. 접대니 뭐니 매일같이 일이 많고, 그때면 어김없이 고급 룸살롱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들에게 여성은 한번 까먹고 버리는 일회용 통조림 식품과도 같았고, 업소의 여성들을 애무하거나 그녀들과 관계하는 것은 ‘외도’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 또는 ‘전통’이라는 거창하고 고상한 이름을 갖다 붙이곤 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한국남성들의 유흥문화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유흥업소도 얼마나 은밀하고 치밀해졌는지, 룸살롱만이 아니라 법망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KS방, XX방, 그 뿐만 아니라 노래방, 마사지방, 피씨방, 휴게소 등의 이름으로 둔갑한 S촌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고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정말 너무나 많은 남성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성 상품들을 벗겨먹고 있었습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할 경우 <내 남편 하나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눈물겹고도 처절한, 마치 종교적 신앙에도 견줄 수 있음직한 철저한 믿음 하나 붙잡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게 한국여성의 현주소였습니다. 급기야 저는 한국 남성들은 사업가들뿐만 아니라 전문직종, 일반직종 할 것 없이 너나 나나 유흥업소를 즐겨 드나든다는 사실까지 깨달게 되었고 결국 결혼 자체에 대한 회의와 기피 마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 독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이 결혼을 감행할 때 감내해야 하는 문제는 <시모와 아들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 그리고 <유흥업소>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전문직과 사업가를 예를 든 저의 이야기는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반화 문제를 두고 논쟁하진 마셨으면 합니다. 결혼은 인간이 만든 제도이고, 출산과 모성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했을 때, 저 역시 그 본능에 대한 욕구는 어쩔 수 없나봅니다. 결혼을 거부하고 인공수정을 통해 출산을 선택한 방송인 허수경씨의 용기 아닌 용기가 때때로 너무나 부럽더군요. 저는 맞선을 30살 이후 중단했습니다. 지금은 2년 넘게 교제중인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제 남자친구는 6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제 작년엔 아버지도 돌아가셨습니다. 때문에 남친 측 부모님 문제로 머리 썩힐 일은 없습니다. (표현에 어폐가 있어 마치 남자친구 부모님의 사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처럼 비춰질 오해가 있습니다만 결코 아닙니다.) 남자친구는 일류대학은 나왔지만 직업은 평범한 대기업 대리입니다. 물론 대기업에서도 유흥업소는 굉장히 많이 다니더군요. 아직 직급이 낮아서 그런지 접대할 일이 별로 없어 2년간 �� 퇴근을 하고 있긴 합니다만, 남친도 결국 점점 진급하게 되면 한국사회의 독약과도 같은 거미줄망을 벗어나진 못하겠지요. 한 사회의 문화는 단기에 소수의 목소리만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사랑하는 제 남친에게 제 인생을 기꺼이 내어놓고 대신 결혼과 아이는 내려놓았습니다. 글쎄요, 언젠가는 또 다른 지혜가 저를 이보다 더 생명이 넘치는 숲으로 이끌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봅니다. ^^ 노처녀의 넋두리였습니다. ======================================================== <후기글>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는 사실 조차 잊고 지내다 문득 생각이나 들어와 보았더니 너무나 많은 분들이 읽어봐 주시고 너무나 분분한 의견들이 댓글을 통해 올라와 있어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본문 말미에도 밝혔다시피 제 글은 장황한 논문도 아니고 한갓 개인의 넋두리에 불과합니다. 그동안 생각해 왔던 것들을 손가락 가는대로 주저리주저리(할머니들이 무료해서 혼잣말 중얼 거리시듯) 두서없이 늘어놓다보니 이렇다 할 결론도 없고, 군데군데 오타가 끼어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졸지에 이것저것 ���탈스레 따지고 들며 결혼 해보려는 깐깐한 노처녀로 비치게 되었는데요. 비록 두서없이 휘갈겨 쓴 글이지만, 제 글을 자세히 읽으셨다면 미주알 고주알 죄다 따져가며 계산기를 두드려대는 B사감선생의 다이어리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주셨을 겁니다. 일부는 자기 자랑 글 아니냐며 아니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도 보이는데, 익명의 공간에서 날 알지도 못하는 대중들을 상대로 나 자신을 자랑하며 희열을 갈구할만한 나이는 지났습니다. 다만 저는 한국사회에서는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으로, 일반적으로 전문직종 종사자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상대 배우자들에 대한 현실적 기대치를 이야기의 서두에서 꺼내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과 일가 친척분들도 모두 전문직종에서 평생을 바치고 계신 분들이라, 제가 스물 예닐곱 적 세상을 잘 모르던 시절에는 그저 저희집 어르신들의 기대와 기호에 부응하는 배우자를 고르는 편이 현명한 방법이라 단순히 생각했기에 그저 남성을 물화(物化)해서 바라보고 판단했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제 모습이었고, 사실 그런 줏대없던 제 태도에는 현명하신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맹신이 바탕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고려하는 조건들, 즉 학벌, 직업, 집안, 재력 등의 간단하고 가시적인 요소들만 고려하고서 저 스스로의 기준이나 가치관, 철학도 없이 맞선을 보아왔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제 환경을 문두에 밝혔던 것이었지, 명품가방, 명품 화장품이나 자랑하며 자기 희열에 젖어드는 종류의 으스댐은 관심 없는 사람입니다. 부모님의 의견은 물론이거니와 저 역시 일반적으로 전문직종 종사자라고 한다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고 적당한 지성도 보유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전문직 남성이 제 배우자로 가장 합당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개개인의 가치관의 차이일 텐데요, 어떤 사람은 직업이나 학문적 배경을, 어떤 사람은 키나 체격과 같은 외형적 조건을, 어떤 사람은 성적 만족도를. 또 어떤 사람은 감정적 교류나 화학적 끌림을 결혼의 주요 조건 내지 이상향으로 삼고 계실 텐데요. 저의 경우는 근면함과 삶에 대한 치열함이 제가 바라는 이상적 조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전문직이란 수많은 세월을 자기 발전에 투자한 사람이란 점에서 그런 이상적 조건을 충족시켜 줬었고, 그들이 지닌 근면과 성실, 삶에 대한 정치(精緻)와 섬세함은 제 남편과 제 아이의 아버지가 갖추어야 할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단순히 표면적으로 전문직이 벌어들이는 돈의 크기나 대외적인 이미지가 지니는 의미는 저에겐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맞선 횟수가 점점 많아지다 보니 더 이상 부모님이 중요시 생각하시는 학벌, 직업군 등의 표면적 조건들이 아닌 저 나름대로의 기준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더군요. 그 기준들은 제 나름대로의 자기고민과 번민의 시간이 낳은 결과물이고, 삶에 던진 물음표들에 대한 응답들이었습니다. 법조계와 의료계 종사자들 수십 명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고, 그 가운데 한 남자의 경우는 10개월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하며 까마득한 스무 살 시절의 그 흥분과 떨림의 감정으로 사랑을 속삭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전문직 남성들의 집안이 한결 같이 보이는 모자유친적 성향, 모친의 오랜 뒷바라지로 전문직종에 들어선 어린 남성들이 정서적 독립을 불효로 연결시키는 강박관념,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품안에서 내보내길 거부하는 수많은 어머니들, 그 안에서 허덕이는 하루살이보다 미천한 시집살이의 여성들, 참고 인내하고 고분고분 복종하는 여성에게 열녀비를 세워주는 시모와 남편의 자비 아닌 자비를 사랑이라 착각하고 참아내는 며느리, 아내, 아이의 엄마........ 이것이 한국의 결혼(혹은 시집)이란 것을 수많은 전문직종 남성들을 만나면서 깨달게 되었습니다. 본문 군데군데 밝혔다시피 수년 동안 전문직을 많이 만나온 지극히 한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넋두리이므로 전문직에 대한 일반화 논쟁은 피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런 주제가 아니라 그 어떤 주제가 되었든 누구나 쉽게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릉 댈 수 있는 건 ‘일반화’를 둘러싼 논쟁 아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다. 모든 상황이 다 그런 건 아니다.> 그것만큼 쉽고 명쾌하고 속편한 결론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저는 찜질방 한 구석에서 평범한 아줌마들이 둘러 앉아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 이곳 미즈넷에서 심각한 100분 토론의 장을 ��어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제 글은 어떤 종류의 직업군의 성향을 분석하고 일반화까지 도출해보자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편하게 찜질방 바닥에 드러누워 넋두리나 늘어보고 싶었던 마음에서 올린 글입니다. 다만 그 누가 되었든 그들에게 분명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결혼은 성인이 된 남성과 여성이 경제적 정서적 독립을 통해 배우자가 중심이 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현명한 어머니라면 자신의 아들이(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만든 둥지를 떠나 숲을 향해 스스로 날아갈 수 있도록 보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효도는 분명 다른 차원입니다. 새는 숲으로 날아가 버리면 다시는 어미 새 곁으로 돌아오지 않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자식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효도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엄마손 붙잡고 같이 아내를 타박하고 비난하며 배우자중심이 아닌 엄마중심의 삶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효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흥업소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밑에 어떤 분들이 박철과 옥소리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를 비난해 주셨는데요. 저 역시 공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남편과 아버지들이 참으로 착각하고 있는 데 유흥업소는 체질에 안 맞아서, 재미가 없어서, 돈이 아까워서 가지 않는 곳이 아닙니다. 바로 내 배우자와 자식들, 더 나아가서는 나 자신에 대한 양심 때문에 가지 말아야 하는 곳입니다. 한국 사회가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친친(親親)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보니 유독 접대문화가 발달하고, 개인의 개성과 독창성보다 단체 내에서의 융화와 조화를 미덕으로 삼다보니 술문화가 발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마음을 터놓고 사람 간 교제(업무상 교제도 포함합니다)를 하기 위해선 술의 힘에 기댈 수 밖에 없는 폐쇄적인 한국의 민족성도 한몫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남자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유흥업소를 다닐 수도 있는 거지”, “남자가 유흥업소 안다니면 사회적으로 출세하지 못한다.”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과거의 우리 어머니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남편의 공공연하고도 반-합법적인(헌법이 아닌 관습법상) 유흥업소 출입을 견뎌내야 했고, 이에 한국 사회는 마치 채찍 뒤에 당근을 던져주듯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조신하고 잘 참는 여성>들에게 ‘현명한’ 아내니 ‘지혜로운’ 어머니니 온갖 그럴듯한 형용사를 붙여주지요. 그러나 지금은 여성도 사회에 진출하고 심지어 과거 그토록 의기양양하던 남성들 스스로도 자기 여자를 경제전선에 떠밀고 있습니다만 소위 커리어우먼이 호스트바와 같은 유흥업소에 출입한다면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요? 저는 여자도 남자처럼 유흥업소에 출입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어머니, 그리그 할머니, 증조할머니, 그 할머니들의 어머니들이 참고 살아온 그 위대한 시간들이 있어왔기에 우리들의 가정이 지켜지고 대대로 계승될 수 있었습니다. 일부일처를 ��향하고 동물이 아닌 인간다움을 바탕으로 가정을 지켜낸 것은 이 땅의 여성들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낸 눈물겨우리만큼 위대한 업적입니다. 여성조차 유흥업소에 공공연하게 출입하게 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아마 더 이상 결혼은 무의미하고 가정은 붕괴되겠죠. 따라서 인류가 일부일처와 가정을 대대로 이어나가려면 암묵적으로 어느 한쪽(대게가 여성쪽)에게 인내를 강요하며 이것이 미덕이라는 의식을 주입하는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적어도 여성들은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점입니다. 서구사회가 한국보다 성 개방이 일찍이 이루어진 곳이라 오히려 더 난잡하다 말씀하시는 분도 있는데 이는 다른 맥락에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서구와 아시아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사회로 구분해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개인주의사회는 개인의 판단과 자유가 높게 평가받기 때문에 개인 간의 구속력이 느슨한 사회를 말하고, 집단의 판단보다는 개인의 판단을 우선시합니다. 이에 비해 집단주의사회는 개인이 특정 집단에 소속 및 통합되어 이들 집단에 무조건 충성하는 대가로 보호받는 사회를 말하며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을 명백하게 구별하여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개인주의 사회는 개인적인 양심에서 나오는 죄책감을 통해서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반면, 집단주의 사회는 집단적인 의무감에서 나오는 수치감을 통해서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수치감은 사회적이며 죄책감은 개인적입니다. 수치감을 느끼고 안 느끼고는 비행사실을 남이 알고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는 반면 죄책감은 남이 알고 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내부양심에 따라 느끼죠. 따라서 한국의 정치 인사들이 자신이 저지른 부정에 대해 개인적 죄책감보다는 대중들에게 그것이 드러났을 때 수치감을 느껴 자살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시아의, 아니 적어도 한국의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납니다. 즉 자신의 외도가 가정 내에서 드러나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반성의 행태를 보이지 그것이 드러나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죠. 또 직장의 과장님 부장님 차장님 이사님 모두 유흥업소를 출입하는데 나도 가도 된다는 식의 발상 역시 집단의 행동에 개인의 행동을 오버랩 시킴으로서 정당화 하는 형태로 보셔야 합니다. 다시 말해 회사 동료들이 모두 간다면 내가 가도 괜찮다는 식의 논리입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내적 양심은 기능하지 않죠. 오히려 서구에서는 개개인의 신의를 바탕으로 교제가 이루어짐으로 배우자간의 외도의 빈도는 한국보다 훨씬 적습니다.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여러분들 댓글 가운데 <다 갖추고 살수 없으니 포기할건 포기하라>는 간단명료한 제안들에 대한 저 나름의 변론을 위한 것입니다. 모자유친 문제와 유흥업소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아줌마들이 주장하듯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문제들이 남녀 사이에 도사리고 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서로 양보하고 극복하며 생을 살아가는 것이 결혼이란 점 동감합니다. 다만 배우자에 대한 정절의 의무, 부모와의 정서적 독립을 통한 배우자 중심의 가정 형성 이 두 가지 만큼은 혼인의 기본적인 요소, 아니 혼인 그 자체이기 때문에 타협을 운운할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저는 결혼이란 사회적 제도를 거부하고 스스로 인공수정 출산을 통해 아내나 며느리가 아닌 어머니의 위치만을 선택한 허수경씨의 용기에 때때로 부러움을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이 또한 생명윤리나 종교적 논의, 아이의 권리 등에 대한 논쟁을 하고 싶은 맘은 없습니다. 저는 철학도, 종교도, 사회학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또한 저는 페미니즘도 뭔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고 따라서 여성들에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며 독신주의를 설득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여성이라면 현실 속에서 시퍼렇게 도사리는 문제들을 두 눈 뜨고 직면할 수 있는 시각은 최소한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 일종의 문제의식 정도는 저 자신에게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아래의 어떤 분의 표현처럼 싱글 벙글 행복한 바보 형처럼 인생을 소비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입니다. 바보형은 죽는 순간까지 미소 짓지만 그의 생은 의미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제 남자친구에 대해 걱정하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여성의 인권이 소중하듯 남성의 인권 역시 소중하다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지금 교제중인 남자친구에게 결혼하자는 헛된 약속으로 눈속임을 해두었다면 그 많은 비난을 감수하겠습니다. 그러나 남자친구와 저는 서로의 생각과 진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장황한 이런 이야기들, 당연히 제가 가장 사랑하는 제 남자친구와 나눕니다. 제 남자친구는 부모님 재산은커녕 부모님 병수발로 크게 빚을 안고 사는 친굽니다. 5평짜리 원룸하나가 전부인 평범한 대기업 월급쟁이에 불과합니다. 제가 가탈스레 조건이나 따지고 계산기나 두드리는 노처녀였다면 제 남자친구를 만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저는 비록 남자친구가 재산도 없고 사회적 지위도 덜하지만 충분히 독립적이고 충분히 인간적인 사람이라 그 어떤 판검사의사선생님 남친들보다 자랑스럽습니다. 한갓 찜질방 넋두리가 이렇게 쿤 파장을 일으킬 줄은 몰랐네요. 아무튼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33살은 냄새나지 않습니다. ㅋ 70~80쯤 되면 난답니다. 참고가 되었기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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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grandma #증조할머니 #blackn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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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할머니와 낮잠을 쿨쿨 자고 있는 유민군, 이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유민이는 나중에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널 이렇게 예뻐하고 사랑해주셨던 증조할머니가 계셨던 것 꼭 알아주었으면.
20110911(+52) | 인천 연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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