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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예결위장서 철야농성 17~18조 추경 21일께 단독처리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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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대선을 앞두고 여권이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 코로나 피해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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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Yonhapnews[대표이사] 성기홍[편집인] 조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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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위 Stellarium 0.14.3 기원전 1734년 7월 13일 18시경, 아래 Stellarium 0.14.3 1940년 3월 5일 18시경 출처 : 한국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 <사이비 역사학과 역사파시즘_기경량> 이 시기 안호상 등은 쇼비니즘에 입각한 비상식적인 주장들을 다수 제기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무령왕릉 조작설'이다. 무령왕릉은 1971년에 발견된 백제 고분이다. 도굴이 전혀 되지 않은 채 백제 때 모습 그대로 발굴이 이루어져 화려한 금제 관식과 금 귀걸이 등 수많은 유물이 수습된바 있다. 무령왕릉에서는 특히 무덤의 주인 이름이 새겨져 있는 묘지석이 출토되어 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까지 영토가 뻗어 있는 '대제국' 백제를 상정하고 있던 이들에게 무령왕릉의 규모나 출토 유물의 수준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에 광복 후 남한 고고학계의 가장 중요한 발굴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무령왕릉마저 조작된 것으로 치부하고 외면하는 등,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p20) 안호상 등이 주장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1) 국사 교과서에서 고조선 역사가 일본인들에 의해 1천 년 이상 없어진 것을 인정하여 되찾지 않고 있다는 것, 2) 단군과 기자는 실존 인물이며 영토가 중국 베이징까지 뻗어 있었다는 것, 3) 왕검성은 중국 랴오닝성에 있었으며 낙랑군은 베이징 지역에 있었다는 것, 4) 백제 3~7세기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중국 동해안을 통치하였다는 것, 5) 통일신라의 국경은 한때 베이징이었다는 것, 6)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일본 문화를 건설했다는 것, 7) 여전도 우리이 종족이라는 것 등이었다. (p21) 이는 박정희 정권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이 ���다. 안호상은 국정화된 국사 교과서가 배포된 직후부터 비판의 포문을 열었지만, 그 초점은 '국정화'가 아니었다. 사실 그에게 교과서가 국정화된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국정화된 교과서의 '내용'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국적 있는 교육'을 강조하며 나름 '민족'에 방점을 찍은 교과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단군신앙의 독신자이자 파시스트적 면모를 가지고 있던 안호상에게는 이조차도 터무니없이 기준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p27) 반도적 성격론 vs (역사학계) 자의적으로 적용한 지리적 결정론의 조악함과 비합리성 폭로, 예) 로마와 스페인 (사이비역사학) 우리 역사는 반도가 아니라 대륙에서 전개된 역사라고 주장, 반도의 역사는 열등하다는 식민사관의 주장을 추종, 내면화, 식민사관의 뒤집힌 형태 (p27) <식민주의 역사학과 '우리' 안의 타율성론_강진원> 식민주의 역사학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연구 풍토를 지녔다. 따라서 일제의 팽창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도 변화 재정립되었다.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기도할 때는 조선사 연구가 활기를 띠었으나, 1905년 러일전쟁 이후 '만한경영'이 전면화되면서 '만선사학'이 등장한다. 일제의 영향력이 조선을 넘어 남만주까지 미치게 되자, '만선'을 하나의 역사적, 문화적 지역으로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시라토리 구라키치가 만주는 일본의 국운에 영향을 주기에 만한경영을 위해 해당 지역의 연구가 필요함을 언급한 데서도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만선사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만주 지역으로 진출하는 일제에 학문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었다. (p36) 만선사 연구에서 가장 중시된 국가는 고구려였다. 영역으로 볼 때 고구려 역사는 만주사이면서 동시에 조선사에도 속했기 때문에, 만선사 개념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만선사 연구자들은 고구려가 중국과의 대립 및 전쟁을 통해 발전하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만주로 진출하여 중국과 대립각을 세운 일제의 현실이 과거 중국 세력과 상쟁하던 고구려에 덧씌워졌다. 고구려에 대한 평가 역시 후하여 강국이자 대국으로 인식되었다. ㅇ나바와 같은 이들에게 고구려는 배울 것이 많은 대상이었고, '만선일여'를 실현한 국가였다. 조선을 병합한 일제의 만주 진출은 고구려의 발자취를 뒤이어 새로운 발전을 하는 것이라고까지 이해되었다. 고구려가 그처럼 강건할 수 있었던 만주와 조선의 국경을 아울러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었고, 신라는 반도에 머물렀던 탓에 나약해졌다고 여겼다. 그리고 만주와 반도를 아우르던 고구려의 멸망은 만선일��가 파탄을 맞이한 사건으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만선사는 사실에 근거한 치열한 논쟁이나 확고한 학문적 정의가 결여된 채, 일제의 대륙 침략이라는 현실의 수요로 인하여 급조된 학문이었다. 연구성과가 축적되기도 전에 기본적인 입장이 제시되었기에, 논의 전개 과정에서 모순된 면도 드러났다. (p38-39) 남북국시대 이후도 마찬가지인데, 금의 발흥 이전까지 여진의 여러 부락은 고려를 섬겼으며, 후금(청) 성립 이전 조선과의 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반도에 있었던 고려, 조선이 만주에 위치한 여진, 만주족에게 영향을 끼친 셈이다. 또 동아시아의 균형자로서 해동천자의 나라를 지향하였던 11세기 고려나, 안정 속에서 위민의 이상을 실현한 15게기 조선, 그리고 전쟁의 폐허를 복구하고 대동의 기치를 높이든 17~18세기 조선의 경우는 만주의 영유가 국가의 번영과 별 관계가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해야, 그것도 대륙에 가까운 땅을 차지해야 옳다는 믿음이 시대착오적 발상임은 대개가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무수한 실상을 만주 중심적인 팽창주의적 사고의 틀로 일거에 해석해버리는 태도 또한 지양해야 마땅하다. (p48-49)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떠한 관점을 지녀야 할 것인가? (...) 첫째, 넓은 영토에 대한 집착의 지양이다. 만주 중심적 사고는 말할 것도 없고, 과거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에서도 '요충지'는 장악해야만 할 대상이었다. 오늘날 침략전쟁이 용인되지 않는 시기라 하여도, 이는 문제가 있는 사고이다. (...) 둘째, 역사란 다양한 요인이 얽혀 전개된다는 점의 인지이다. 어떤 시기 두 공동체의 우열관계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며, 또 그 원인이 지리적 조건에 의해서만 결정되지도 않는다. (...) 셋째, 일관성 있는 관점의 견지이다. 한국사의 영역을 축소한 만선사관은 비판하면서도, 중국 동북방 제족 대개를 한국사의 범주에 포괄하려 한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역사학 연구자들의 견해에 찬동하는 것. 그리고 반도적 성격론은 부정하면서도 일본이나 중국, 미국의 국민성을 섣불리 판단하고 찬양 내지 혐오하는 것은 그다지 건강한 태도가 아니다. (...) 넷째, 당면한 현실에 부응하기 위한 학문 연구에 대한 경계이다. 만선사관이나 반도적 성격론이 가진 큰 문제점은 여러 면에서 반증이 가능하다는 것이요, 그것은 해당 논의가 당시의 상황이나 정책적 목표에 발맞추어 뿌리를 내렸기 떄문이다. 역사학은 어떠한 담론을 먼저 세우고 그 틀에 사실을 조립해 넣는 학문��� 아니라, 사실에 근거하여 한 시대의 구조와 체계를 논하는 경험론적 사고에 바탕한 학문이다. 그러므로 일반 시민들은 정부나 국가 권력이 뜻하는 바를 연구자들에게 강요하지 않는지, 학문 연구가 정책적 목표에 좌우되지 않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p53) <민족의 국사 교과서, 그 안에 담긴 허상_장미애> '국사 교과서는 국민들에게 민족의식과 민족적 자부심, 긍지를 심어주는 민족 경전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국사 교과서 내용은 학문적으로 정리되지 않고 입증할 수 없는 내용이더라도 국민교육용으로 필요하다면 수록하여야 한다.' 위 글은 1979년 안호상을 비롯한 사이비역사학 측에서 국사 교과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할 즈음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군인들의 말이다. '민족'의 자부심, 긍지를 위해서라면 학문적 성과에서 일부 문제가 있더라도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아이 과연 진정한 '민족'을 위한 길인가에 대해서는 다시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p58) 이러한 '고조선 이미지 만들기'는 고조선 이후에 건국된 국가들의 발전 단계 자체를 서술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이 서술에 따르면, 이미 단군에 의해 건설되어 강력한 고대국가로 발전한 고조선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후 우리 역사 속에서 성립, 발전한 여러 고대국가들의 국가 발전 과정과 이를 아우르는 역사 발전 과정이 서로 모순되는 현상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으로 설정된 것이 '여러 나라의 성장'과 같은 모호한 표현이었다. 이는 1987년 마련된 국사 교과서 편찬기준안 중 고대사 부문의 9번째 항에서 제시한 "한국 고대의 국가 발달 단계는 1. 군장국가, 2. 연맹국가, 3. 중앙집권국가의 순서로 기술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과도 부합하지 않는 서술이다. (...) 이렇듯 고조선 이후에 성립한 국가들에 대해 그 역사적 발전 단계��� 명확히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서술 방식을 바꾼 것은 '여러 나라'로 표현된 국가들과 고조선과의 관계에 기인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여러 나라'가 성립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고조선을 '강대했던 고조선'이 멸망한 뒤 이들이 분열하면서 성립, 성장했던 나라들로 이미지화한 것이다. 결국 강력한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전제되면서 만들어진 왜곡된 허상이라고 할 수 있다. (p70-71)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다르다. 더 이상 '민족', 특히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현대사회는 이미 민족의 일체감과 소속의식을 고유문화에 의지하여 만들어가는 시대가 아니다. 혈통과 언어, 문화의 순수성이나 고유성에 대한 관념은 지양되어야 할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민족', '민족주의'라는 가치가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청상되지 않은 과거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런 한편 이러한 상황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끊임 없이 재생산된 결과이기도 하다. (p79) <한사군, 과연 롼허강 유역에 있었을까?_이정빈> "태국의 역사학자 위니카출이 만들어낸 지리적 신채(geo-body)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민국가는 신성한 영토이고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이어져왔다는,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믿음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가 역사적 사실을 들어 다른 역사공동체의 영역이었다고 할 때, 사람들이 마치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절단된 것과 같은 아픔을 느끼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지요. 일종의 영토순결주의입니다. 예컨대 한사군의 영토가 지금의 대동강 유역이었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굉장히 불쾌함을 느껴본 경험이 있으실텐데요. 그런데 그건 우리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19~20세기 초 유럽 역사를 보면, 모든 근대적인 역사 서술은 이런 식입니다. 아마 우리가 역사를 보는 생각 속에도 알게 모르게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임지현,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8. 동아시아 역사상의 한국 토론회, 경향신문) (p111) 일찍이 타율성론(반도적 성격론)을 비판한 이기백의 조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역사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지리적 조건이었다는 이 지리적 결정론이야말로 반도적 성격론이 디디고 서 있는 발판이었다. 그러므로 반도적 성격론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지리적 결정론을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리적 결정론을 긍정하는 입장에서 이를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 결과는 결국 식민주의 사관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양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 그러므로 식민주의 사관의 극복은 역사관의 근본적인 변혁 자체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넓은 국토를 개척하여 군사적 강대국이 되어야만 위대한 국가가 된다는 낡은 역사관 자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민족 내부의 문제로 돌려야 한다. 민족 내부에 쌓여 있는 모순을 개혁하여 우리의 역사를 앞으로 진전시킨 노력들이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되도록 해야 한다. (p113)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의 산물인가_위가야> 필자는 현대의 몽골인민공화국이 징기스칸과 그 후예들의 정복전쟁을 근거로 유라시아대륙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으며, 이 사례를 통해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는 사실이 중국이 이곳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 해석에 역사가의 현재적 입장이 투영되어서는 안 되며, 그를 통한 해석은 모두 부정되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고전적인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역사가가 살고 있는 현실이 역사 해석에 투영되는 것과, 역사가가 현실의 욕구-이 경우에는 현대국가의 영토주의적 욕구-에 복무하여 우리에게 유리한 역사를 쓰는 데 몰두하는 것은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앞서 확인한 학계 일각의 논문과 사이비역사학의 저술들은 불행히도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p136-137) <'��나일본부' 연구와 식민주의 역사관_신가영> 오늘날 국내 학계에서 이루어지는 '임나일본부' 논쟁의 핵심은, 왜의 '임나일본부' 운영 혹은 왜의 한반도 남부 지배 문제가 아니라, 가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왜인들의 실체를 어떻게 파악할지의 문제이다. '임나일본부'라는 것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하던 왜인들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이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쟁점으로 구분된다. 첫째, 한반도 지역의 왜인들과 야마토 정권의 관계이다. 대체로 야마토 정권에서 파견된 왜인으로 이해하지만, 왜의 영향력이 직접 미치는 것은로 보지 않는다. 백제나 가야제국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규슈 지역 혹은 기비 지역의 왜인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둘째, 왜인이 어떻게 가야 지역으로 올 수 있었는지도 주요 쟁점이다. 국내 학계에서는 백제가 왜인을 파견하였다고 이해하거나 안라에서 이들을 불러 들였다고 본다. 셋째, 왜인이 가야의 여러 세력과 어떤 관계였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연구자마다 조금씩 견해 차이가 있다. (154-155) 즉, 가야의 명칭은 기록에 따라 가리키는 대상과 그 범우가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는 뒤섞여 사용되었다. 가야의 여러 나라 중에서 하나의 세력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가야의 여러 나라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가야 지역이 아닌 곳이 '임나'라고 기록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임나'가 곧바로 어떤 가야를 의미하는 것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임나'의 용례가 있기 때문에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를 한반도에 비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사료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p161-162) <오늘날 낙랑군 연구_안정준> 이러한 실학자들의 연구성과들은 청대 역사지리학자인 양수경 등의 연구를 거쳐 20세기 이후의 일제 관학자 및 민족주의 연구자들의 한사군 연구에까지 계승되었다. 즉 낙랑군이 평양 일대를 중심으로 존재했다는 설 자체는 조선 후기 이래로 성립되어 이어져온 하나의 학설이었다 이를 근대 일본인들이 최초로 창안한 것처럼 언급한 최근의 일부 저작이나 발언들은 기존 연구사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했거나 의도적으로 실상을 왜곡한 것에 불과하다. (p169) 이처럼 고고자료를 기반으로 한 한국 학계의 연구로 인해 낙랑군이 중국인에 의해 운영된 중국인 사회라는 오랜 통념은 깨졌다. 더불어 지배층은 중국인이요, 피지배층은 토착민이라는 일본 학계의 이원적 종족지배론도 함께 붕괴되었다. 따라서 중국 군현이라는 외형과 그 지역에 파견된 일부 중국인 관리들의 존재만으로 낙랑군 역사를 '민족' 대 '민족'의 대립 구도로 이해하고, 심지어 근대 이후의 민족적 자긍심이나 영토 관념까지 투영시키는 것은 당시 시대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p183) 상황이 이런데도 사이비역사가들은 계속해서 이병도가 낙랑군=평양설을 정통으로 계승한 학자이며, 고대사학계가 그의 학설을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결론을 내고 있다는 설을 유포하는 실정이니, 이병도의 연구사적 위치가 대중들에게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진 것��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학계가 아닌 사이비역사가들의 '공로'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체가 사실왜곡이요, 이를 근거로 학계를 '매국 세력'이니 '식민사학'이니 하며 매도하는 것 자체가 선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거짓이 진실처럼 둔갑하고, 진실이 거짓에 가려버리는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순수학문인 역사학조차 누군가에겐 일종의 '수단'처럼 인식되는 상황은 아닌지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p187) <'단군조선 시기 천문관측기록'은 사실인가_기경량> [단기고사]에 따르면 단군조선 사람들은 이미 기원전 수천 년 전에 지동설을 알고 있었으며, 태양계 외곽 행성들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당연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천왕성은 1781년, 해왕성은 1846년, 명왕성은 1930년에 각각 발견되었다. 이는 망원경을 이용한 천체 관측과 천체역학을 통한 계산의 성과였다. 게다가 이 세 행성의 이름은 서양 천문학에서의 명칭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 이 중 명왕성은 오랫동안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인정 받아오다가 76년 만인 2006년에 행성의 지위를 잃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가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단기고사]가 위작된 시기는 명왕성이 발견된 1930년에서 태양계에서 퇴출된 2006년 사이가 분명하다는 점 정도이다. (p194-195) 앞서 밝혔듯이 박창범의 연구에 대해서는 이문규와 전용훈 등이 반론을 편 바 있다. 이들은 [단기고사]나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실려 있는 '오성취루' 기록 연대가 실제 오행결집이 발생한 연도와 불과 1년 차이로 나타난 것에 대해 후대 계산되어 삽입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예컨대 이문규는 조선 초인 세종대에 이미 행성이나 해와 달의 위치 등 천체 운행을 독자적으로 계산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전용훈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성호 이익의 의견을 빌려 오성취합에 대한 기록과 의미 해석이 중국 한나라 이후 성립되었다고 지적하는 한편,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옛날 사람들도 오성취합이 일어날 시점을 손쉽게 계산하였다고 설명하였다. (p202-203) [단기고사] 내용의 상당 부분이 근대의 사건과 문물을 단군조선 시기의 것으로 각색하여 삽입한 형태임을 감안하면, 오성이 루성에 모였다는 기록도 위작자가 실제로 경험하였거나 누군가에게 들어서 알게 된 당시의 천문 현상을 반영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 필자가 천문 관측 프로그램인 스텔라리움 0.14.3을 이용해 검토해 본 결과, 1940년 3월 초에 오성결집 현상이 실제로 발생하였음이 확인되었다. (...) 앞서 살펴보았듯 [단기고사]의 위작 연대는 1949년에 가까운 어느 시기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데 그 위작 연대와 가까운 시기에 실제로 오성결집이 있었고, 그것도 하필이면 루성 부근에서 발생하였다. 우연의 산물로 보기에는 공교로운 일이다. (p204-206) 천문 현상을 권력과 연결하여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동아시아의 전통을 감안한다면, 수�� 년 전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는 위서를 조작하는 ���정에서 가짜 천문 현상들을 만들어 삽입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박창범의 연구가 가진 한계는 이러한 조작 가능성을 지나치게 경시하고 외면하였다는 점이다. 사료가 부족한 고대사를 연구할 때 천문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의 접목은 참신하고 긍정적인 시도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에서의 실험 결과 하나로 기존 역사학계의 연구성과를 송두리째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올바른 학제 간 연구를 위해서는 자연과학과 역사학이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합리적으로 의견을 조율하여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p210-211) <단군-역사와 신화, 그리고 민족_이승호> 대종교에서 개천절을 처음 기념한 것은 1909년 11월 15일(음력 10월 3일)이었다. 이후 개천절 행사는 대종교만의 행사가 아닌 국민적 행사로 여겨지고 치러졌다고 한다.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1910년에도 개천절 기념행사가 거행되었으며,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대종교의 기념일로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해임시정부에서도 공식 기념일이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날짜만 음력에서 양력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p215) 일반적으로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 혹은 '신성한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곧 단군신화는 말 그대로 고조선인들의 입에서부터 시작된 신들의 이야기이자 신성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단군신화는 역사학만의 고유한 연구분야라기보다 신화학, 종교학, 민속학, 인류학, 언어학 등 다방면의 연구 대상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p239) <민족주의 역사학의 표상, 신채호 다시 생각하기_권순홍> 다시 말해 신채호가 '민족'이라는 개념에 주목했던 이유는 비록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국가는 빼앗길지라도, 민족은 그 존재와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대안적 형태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를 도둑맞은 특수한 환경에서 민족의 존립은 대중의 인식에 달려 있었고, 신채호의 역사관은 그러한 집단적 기억을 강화하고 지탱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20세기 초, 제국주의 열강들 틈에서 자유와 독립을 갈망했던 한국인들에게 유일한 나침반일 수 있었다. 새로운 역사 주체로서 민족 정체성 수립, 한국 근대 역사학의 시초이자 민족주의 역사학의 '태두'로서 신채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으며, 신채호 역사학의 의의도 바로 여기에 있다. (p252-253) 신채호는 민족주의를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으로서,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서 우리 민족의 나라를 우리가 주장하는 주의로 풀이하였다. 그에 따라 1910년 초에 "지금은 한국이 제국주의 속에 빠지고 민족주의의 고통한 지경을 당하여 쇠잔한 명이 급하"다는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민족주의가, 앞서 확인했던 것과 같이 20세기 초 한국 지식 사회가 안고 있던 위기의식으로부터 배태된 민족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재고의 여지가 없다. 신채호에게 '민족'이란 위기의 국가를 대신할 새로운 역사의 주체였고, 바로 그러한 민족이 제국주의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서 국가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야말로 민족주의의 힘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제국주의는 단순히 영토를 빼앗는 것을 넘어 국권을 침탈함으로써 역사의 주체를 뒤흔드는 폭력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신채호에게 민족주의 역사학은 새로운 역사 주체로서 우리 민족을 내세운 역사 서술에 다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민족'이 품은 함의의 깊이였다. (p258-259) 양자 간의 합의도 필요해 보이지만, '한사군 한반도설'만은 공히 핵심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주의 역사학의 핵심이 아니다. 이미 그들의 다른 글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식민주의 역사학의 핵심이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사는 자율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항상 주변 강대국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는 타율성론과, 한국사의 단계적 발전을 부정하고 한국사를 정체와 낙후를 거듭한 역사로 파악하는 정체성론, 이 두 가지 색안경을 끼고 본 '한사군 한반도설'이라야 식민주의 역사학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같은 한사군 한반도설이라도 타율성론이라는 색안경을 낀 조선총독부의 해석과 그 색안경을 끼지 않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해석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문제는 한사군 한반도설이 아니라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이라는 색안경에 있다. 최소한 지금의 '강단' 역사학계에 이 색안경을 낀 사람은 없다. (p262-263) 1920년대 중반 이후 신채호가 혁명으로 일제를 타도하고 민족해방을 완수한 뒤 건설하고자 한 사회는 "자유적 조선 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한국 사회로서 빈부차별이 없는 평등사회였다. 이 와중에 신채호가 새로이 포착한 역사 변화의 주체는 바로 민중이었다. 이런 신채호의 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일로 볼 수도 있지만, 민족주의를 수립했을 때나 아나키즘을 수용했을 때나 변함없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기세는 한결같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단, 그 제국주의가 근대 자본주의의 최종 형태라는 것을 간파함으로써, 신채호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사회진화론적 인식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제 신채호 역사학에게 남은 일은 고조선과 단군에 대한 강조를 넘어서 식민주의 역사학이 전제로 하고 있는 목적론적 인식 자체를 비판함으로써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을 극복하는 것일 수 있었다. (p269) - 젊은역사학자모임의 '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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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Pinned to 영남대학교 수시등급 커트라인 전형방법 대학위치 대학종합정보: 영남대학교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4년제 사립대학이다. 사실상의 본 캠퍼스라 할 수 있는 경산 캠퍼스는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에 위치하며 의과대학과 영남대학교 의료원 일부 대학원이 소재한 대구 캠퍼스는 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에 위치한다. 학교의 상징은 천마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더 다양한 정보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의 통합 영남대학교의 전신은 야청(也靑) 최해청(崔海淸19051977)이 1950년 지금의 노보텔 자리에 세운 청구대학과 한국의 명가로 유명한 경주의 만석꾼 경주 최씨 부잣집의 마지막 부자이자 독립운동가인 12대 당주 최준(崔浚18841970)이 1947년에 설립한 대구대학(현재 대구대학교와 다름[5])이다. 이 두 대학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병합하면서 만들어진 대학이 영남대이다.[6] 청구대학은 1948년 9월 최해청에 의해서 대구문리과전문학원 야간부로 종로에서 개교했으며 1950년 3월 포정동으로 이전하고 4월 25일 재단법인 청구대학 설립 청구대학으로 개편했다. 1955년 문화동 현 노보텔 자리로 이전하고 1963년 병설 공업고등전문학교 설립했는데 이것이 경일대학교의 전신이다. 1964년 효목동으로 본부 이전했으나 대학정비사업으로 한차례 흔들린 끝에 붕괴사고가 일어나고 교직원 비리가 발견되자 이사회가 1967년은 청구대학이 학내외의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 때문에 자력으로 존립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시기였다. 이 때 청구대학 교수로 있던 이은상[7]이 그해 5월 5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6대 대통령에 연임된 박대통령에게 각하. 임기를 마치고 나면 마당 쓸 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진언했고 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영남대 탄생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전해진다. # 대구대학의 경우는 더 눈물겹고 복잡하다. 조선시대 무관 최진립 장군[8] 의 후손인 최준 선생은 12대에 걸쳐 내려온 어마어마한 부[9]를 쌓은 부농이었으며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에 독립자금을 제공 안희제의 백산상회를 통해 임시정부에도 독립자금을 제공했으며 무장투쟁계의 총무도 맡는 등 부를 민족과 나라를 위해 쓴 독립운동가였는데 해방 후 새 나라를 위해서는 인재의 교육이 절실함을 알고 자신도 대구대학을 만들고 직접 운영했다. 대구대학은 1945년 10월 대구대학 전신 경북종합대학 기성회 조직했고 1947년 3월 경북종합대학이 가칭 대구문리과대학으로 개교하고 1947년 9월 재단법인 대구대학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48년 9월 교사를 대봉동 현 대구중학교 자리로 이전했으며 1951년 4월 교사를 포정동 청구대학 구내로 이전 향교재단과 합류하여 공동 운영했다. 1952년 5월 교사를 남산동 향교 구내로 이전했으나 1954년 12월 대명동 신축 교사[10]로 이전했고 1957년 6월 본관이 준공되었다. 하지만 대구대학은 1960년대에 재정난에 빠지게된다. 사재를 거의 다 투자하여 대구대학을 운영했는데 당시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측은 대대적인 대학정비사업을 추진한다. 이 때 대구대학교의 설립자 최준은 당시 학생을 그만 받든지[11] 과를 줄이든지 소유 대학인 대구대학에 더 많은 투자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이에 결국 최준은 고려대학교를 이용익 선생이 손병희에게 넘기듯 대구대학을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에게 학교를 잘 운영하라는 일념하에 아무런 대가없이 학교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이렇게 학교의 경영권은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에게로 넘어간다. 전말은 과거 대구대학 교수를 지냈던 신현확[12] 씨가 시멘트 사업을 확장하면서 홍보 목적으로 고심하던 이병철 회장에게 대구대학의 인수를 제안하고 이병철 회장은 경주로 내려가 인수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때문에 이병철 삼성 회장이 퇴진하고 2년 뒤 현장 복귀하는 조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양도되었다. 정확히는 대구대를 넘기고 성균관대학교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대구대학의 경영권을 이병철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넘기게 된다. 즉 대구대학 재단의 소유권은 경주 최씨 일가 삼성그룹 이병철 前 회장 박정희 前 대통령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청구대학 대구대학 이 두 대학이 통합하여 1967년 12월 현재의 영남대가 출범하게 된다. #1 #2 영남대학교의 탄생 이사장 이동녕(제467대 국회의원) 이사 이효상(제67대 국회의장) 이사 김성곤(민주공화당 재정위원장 쌍용그룹 회장) 이사 신현확(국무총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이사 백남억(민주공화당 의장 제56789대 국회의원) 이사 이후락(중앙정보부 부장 대통령비서실장) 이사 신기석(영남대학교 초대총장 부산대학교 총장 국회의원) 이사 서정귀(국회의원 재무부 차관) 이사 성상영(대성모방 회장) 이사 여상원(대구상공회의소 회장 대구은행 초대회장) 감사 오일룡(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파일:external/http://bit.ly/2Q3F5tT 2대 이선근 총장[13] 위 이사진 구성으로 통합 영남대학교가 출범하였다. 1970년대 영남대는 이선근 박사(신간회 출신으로 문교부 장관 영남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동국대학교 총장 역임. 문교부 장관 시절 현재 국사편찬위원회를 설립한 장본인이다.)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총장 재임 시절(1969년 4월1974년 2월)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국사 가정교사였던 그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나타냈다. 이선근 총장의 승용차에는 경북 1호의 번호판이 부여되었고[14] 경북 각급 기관장들은 대통령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던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야 했을 정도이다. 학교가 뻗어나가는 데 거칠 것이 없었다. 한강 이남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라는 자부심이 이 시기에 용솟음쳤다. 신생대학에 불과했던 영남대학교가 아웃풋 좋은 대학으로 평가받는 명성은 대부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15] 그러나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학교 또한 혼란에 빠졌고 이후 박근혜 前 대통령이 이사장[16]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이후 토지 이면계약 등으로 국정조사를 받은 최초의 사립학교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례없는 민주화보도 대행진과 같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대학이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총학생회가 임수경 방북 사건 등으로 논란이 되어오던 운동권 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를 탈퇴하면서 기존 학내 운동권 세력과 총학생회와의 다툼이 있었다. 이후 2009년 박근혜 대통령의 추천이사 4명을 포함한 7인 이사회로 개편되면서 정상화되었다. 매일신문 '영남대 설립에 얽힌 이야기' 2016년 말에는 제14대 노석균 총장이 임기 만료 100여 일을 앞두고 ���퇴를 했다. 한국일보 기사 총장 관사 사용 약학대학 신관 건축 등과 관련하여 교직원에게 내려지는 징계를 막지 못한 것과 내부 소통 문제가 주된 이유였지만 2013년 노석균 총장 취임 이후로 이어져 온 재단과 본부 간 갈등으로 인한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1.2. 캠퍼스 이전[편집] 파일:dnFEuTAoyuwRzrrVCXJgVD7LX41b.jpg 이전 초기의 영남대학교 경산 캠퍼스 전경 (1975년) 대구 시내 대명동 캠퍼스(현재 대구캠퍼스)의 부지가 좁아 1970년대부터 단과대학과 각종 학내 시설 등을 점차적으로 대구의 동쪽에 위치한 경산시로 옮기면서 넓기로 유명한 현재의 영남대 경산캠퍼스의 역사가 시작된다. 실제 단일면적으로 서울대학교와 1 2위를 다툴 정도의 크기다. 본관 뒤편으로 펼쳐진 토지를 한국조폐공사에게 팔기 전까지는 흔히 말하는 100만평 부지였는데 지금은 대략 82만평으로 부지의 대부분은 거의가 평지다. 자전거를 타고 모든 곳을 갈 수가 있으며 교내 순환버스도 운행하고 있다. 2. 재단[편집] http://bit.ly/2EJ99Kd 파일:A16miDu.jpg 재단은 학교법인 영남학원으로 재단의 주축인 영남대학교가 경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단 사무처는 영남대학교의료원(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영남학원은 영남대학교와 더불어 영남이공대학교를 산하에 두고 있다. 현재 한재숙 영남대 명예교수를 제19대 이사장으로 선임하였다. 사실 영남학원은 IMF 사태 이전에는 막대한 토지 목장과 더불어 학교법인으로서는 드물게 종합금융회사인 영남종합금융을 소유하는 등 건실한 재단으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영남종합금융은 서울과 구미에 지점을 두고 1995년에 증권거래소에 상장까지 되어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금융사와 마찬가지로 IMF 사태의 여파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다가 공적자금까지 투입되었고 이후 김대중 정부 방침에 따라 하나로종합금융(現 우리종합금융)으로 통폐합되고 말았다. 물론 재단 차원에서도 IMF 여파로 교직원 사택과 토지 등을 홀라당 까먹고 말았다. 안습. 그래도 그때 단국대학교처럼 부도가 나지 않은 것이 어디야 3. 학풍[편집] 3.1. 슬로건과 Y형 인재[편집] 파일:Y-Brand_01.gif 파일:슬로건_가로형-1.png 공식 슬로건 YU the Future 제13대 이효수 총장 취임 이후로 21세기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에 부합하는 Y형 인재[17][18]를 길러내는 것을 대학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미래를 만드는 대학 YU the Future"를 슬로건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학 캠퍼스 내에서는 서길수 총장의 취임이후로 "밝고 강한 대학 "이라는 표현이 많이 보이며 학교 홈페이지에서는 "미래를 여는 밝고 강한 지역거점대학" 이라는 슬로건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Y형 인재와 관련해서는 매년 전반기 후반기가 끝나면 Y형 인재상이라고 하여 영남대 학생들 중 특출난 성과를 뽑낸 학생들에게 상장을 수여하는데 자격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운데 해당 조건은 '1) 전국 규모 및 유사한 대회에서 1위로 수상한 학생 2)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학생 3) 기타 해당부서에서 우수하다고 인정하여 추천한 자 중에서 학생포상규정 제5조 학생포상심사위원회에서 인정한 학생 4) 단체인 경우 3명까지는 상장과 개별 부상을 수여하며 4명 이상인 경우는 상패만 수여'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수상 인원에 제한을 두진 않지만 한 해에 대략 4050명 정도의 학생들이 수상을 하는 것으로 학교 측에서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해당 상장을 노린 영남대 위키러는 중소기업청장 소방안전관리협회장 대구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장 지방 복지관 공모전 상장을 들고 갔지만 단번에 튕겼다 카더라 4. 캠퍼스[편집] 4.1. 경산캠퍼스[편집] 파일:SSI_20130823165309.jpg 파일:external/m.yu.ac.kr/campus_map_big.jpg 경산 캠퍼스 캠퍼스맵 파일:dnFEuTAoyuwRzrrVCXJgVD7LX4b.jpg 남문 쪽에서 바라본 경산 캠퍼스의 전경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실상 영남대학교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캠퍼스 면적은 약 82만평(!!) 정도로 그 유명한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보다 조금 작고 충남대학교 대덕캠퍼스보다 조금 더 넓은 편으로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일설에는 현재 경산캠퍼스 부지를 박정희 前 대통령이 정했다는 얘기도 있다. 정문에서 본관까지 이어지는 천마대로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상경대학과 문과대학 정치행정대학 음악대학 중앙도서관 종합강의동 등이 위치해 있고 동쪽에는 이과대학 공과대학 생활과학대학 건축학부 등이 위치하고 있다. 4.2. 대구캠퍼스[편집] 정식명칭은 대구캠퍼스로 흔히 캠퍼스가 위치한 동명을 따서 대명캠퍼스라고도 불린다.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남대학교 의료원 의과대학과 일반대학원을 제외한 경영대학원 행정대학원이 소속되어 있다. 인근에는 영남이공대학도 위치하고 있다. 파일:yudmmap.jpg 중앙 오른쪽 병원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같은 재단소속의 영남이공대학교 건물들이 있고 병원 오른쪽에 몇개의 의대대학 건물과 전문대학원과 평생교육원 수업을 담당하는 경영관 건물이 있다. 파일:mtakHPTr.jpg 대명동 캠퍼스 영남대학교 의료원 전경 5. 개설 학과[편집] 5.1. 학부과정[편집] 5.1.1. 문과대학[편집] 국어국문학과 중국언어문화학과[19] 일어일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유럽언어문화학부[20] 철학과 역사학과[21] 문화인류학과 심리학과 사회학과 언론정보학과 5.1.2. 자연과학대학[편집] 수학과 통계학과 물리학과 화학생화학부[22][23] 생명과학과 5.1.3. 공과대학[편집] 건설시스템공학과 환경공학과 도시공학과 신소재공학부 화학공학부(디스플레이화학공학부)[24] 파이버시스템공학과 5.1.4. 기계IT대학[25][편집] 기계공학부[26] 전기공학과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과 정보통신공학과 자동차기계공학과 로봇기계공학과 5.1.5. 정치행정대학[편집] 정치외교학과 행정학과 새마을국제개발학과[27] 경찰행정학과[28] 군사학과 5.1.6. 상경대학[편집] 파일:f5dNNlgzXIwSoyJa.jpg 상경대학이 소재한 상경관(좌측)과 중앙도서관(우측)[29] 경제금융학부 무역학부[30] 글로벌차이나연합전공 5.1.7. 경영대학[편집] 경영학과 회계세무학과 글로벌차이나연합전공 5.1.8. 의과대학[편집] 의예과 의학과 5.1.9. 약학대학[편집] 약학부[31] 5.1.10. 생명응용과학대학[편집] 식품경제외식학과[32] 원예생명과학과 산림자원및조경학과 식품공학과 생명공학과 의생명공학과 5.1.11. 생활과학대학[편집] 가족주거학과 식품영양학과 체육학부[33] 의류패션학과 5.1.12. 사범대학[편집] 교육학과 국어교육과 영어교육과 한문교육과 수학교육과 유아교육과 특수체육교육과 5.1.13. 디자인미술대학[편집] 미술학부[34] 시각디자인학과 산업디자인학과 생활제품디자인학과 5.1.14. 음악대학[편집] 음악과[35] 성악과 기악과[36] 5.1.15. 기초교육대학[편집] 교양학부 자율전공학부[37] 천마인재학부 5.1.16. 자연자원대학[편집] 식품자원경제학과 원예생명과학과 산림자원및조경학과 식품공학과 외식산업학과 5.1.17. 독립학부[편집] 건축학부[38] 국제학부 생명공학부[39] 5.2. 대학원과정[편집] 일반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경영대학원 행정대학원 문화예술디자인대학원 환경보건대학원 스포츠과학대학원 임상약학대학원 교육대학원 공학대학원 박정희새마을대학원 6. 교통[편집] 영남대 일대의 교통량은 상당하다. 북쪽으로는 진량읍 및 하양읍으로 향하는 도로(대학로)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경산시장 및 경산역과 같은 경산시의 주요 시가지로 향하는 도로(대학로 경안로)가 있고 서쪽으로는 대구광역시로 향하는 달구벌대로가 있다. 이렇게 영남대학교 일대에는 세 주요 지점으로 향하는 도로가 만나기 때문에 교통량이 매우 많다. 6.1. 시내버스[편집] 영남대 주위에는 상당히 많은 시내버스가 다니는데 경산시를 종점으로 설정한 상당수의 대구버스 노선들은 이곳을 경유하며[40] 다수의 경산시 시내버스 노선들도 이곳을 거칠 만큼 영남대 일대는 경산 교통의 요충지로 손꼽힌다. 무엇보다 압량면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버스 회사 삼천리버스의 차고지인 일명 '75번 종점'[41]이 영남대 종점이다. 정문으로는 대구 309번 449번 509번(영남대학교 분리 노선) 609번 649번 719번 840번[42] 909번 980번 경산 107번 109번 399번(자인마곡 가지 노선 한정) 803번 809번 911번 918번 990번(가일서문시장자인 가지 노선 한정)[43] 991번 압량1번이 다닌다. 2011년 8월 18일 이전에는 대구 939번도 있었으나 사동으로 조정되었다. 후문으로는 대구 509번(계양동 분리 노선) 경산 100번 109번 399번 990번 경산1(-1)번 경산2(-1)번 남산1번 남산2번(정평역 지원운행 한정) 용성1번(정평역 지원운행 한정)이 다닌다. 특이한 점은 경산 109번은 노선 특성상 유일하게 영남대 정문과 후문을 모두 경유하는 노선이다. 영남대 경유 또는 영남대 종점 시내버스 노선들은 사월역에서 옥산네거리경산역경산시장중방네거리경산네거리 구간으로 우회한다.[44] 하지만 사월역에서 정평동경산네거리 구간으로 직진하는 대구 449번 649번 경산 991번은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에 대구도시철도 2호선이 영남대역까지 연장되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승객을 확보했다. 참고로 대구 509번 계양동 분리 노선도 사월역에서 직진하여 정평동경산네거리 구간으로 직진하지만 이 분리 노선은 영남대로 직진하지 않고 경산네거리에서 ���회전해서 중방네거리경산오거리계양네거리계양동으로 가 버린다. 하지만 도시철도 2호선이 영남대역까지 연장된 지금은 거의 모든 시내버스 노선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승객들이 많이 줄어든 상태이다. 여담이지만 영남대는 대구시내버스가 들어오는 대구권 종합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급행버스가 경유하지 않는다. 6.2.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편집] 앞서 설명한 대로 대구와 경산간의 이동량은 상당히 많다.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이 영업을 개시하면서 대구와 경산간의 이동이 원활해졌으며 교통량이 이전보다 늘어나고 있다. 일 평균 탑승객 수 1만 명(대구광역시 중심가인 동성로 입구에 위치한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대구역과 유사한 수준)을 넘길 만큼 상당히 많은 승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또한 영남대역이 생김으로써 영남대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대구대학교 대구한의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경대학교 경일대학교 같은 다른 학교 학생들의 통학 환승 거점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6.3. 철도[편집] 학교에서 시내버스로 약 20분 뛰어가면 40분안에도 갈수있다. 버스비가 아깝고 다리근육이 뛰어나다면 뛰어가길 추천해본다. 기숙사에서 자전거타고 10분 컷도 가능하다거리에 경부선 경산역이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대구로 나가는 시내버스들 중 90%는 경산역 및 경산시장으로 들어간다(안심교를 경유해 대구 동구 반야월 일대로 빠져나가는 719번 980번 등 제외). 택시를 타게 되면 요금은 약 5000원선으로 보면 되겠다. 6.4. 시외버스[편집] 경산역 근처에 있는 경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영남대 국제교류센터(대구은행 영남대지점 GS25 서점 등이 있는 정문 근처의 건물) 앞에서도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영남대 국제교류센터 안에 중간 정류장 및 시외버스 매표소가 있기 때문인데 단 경주-포항 및 울산 방면 시외버스만 정차하기 때문에 해당 방면 노선만 이용할 수 있다. 그 외에 당연하지만 경주-포항 및 울산에서 경산행 시외버스를 타고 올 때도 영남대 국제교류센터 건너[45] 에 중간 정차한다. 6.5. 스쿨버스[편집] 영남대역이 개통하기 이전에는 등하교시간에 사월역과 영남대를 오가는 스쿨버스가 10분마다 1대씩 올 정도로 수요가 상당했다.[46] 가끔 학생들이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사월역 출입구의 계단에서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장면은 신천역에서나 볼 수 있다. 2012년 9월 19일 정문 앞에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이 생기면서 사월역과 학교를 오가던 셔틀버스는 당연히 폐선되었다. 현재는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반야월역과 대구 일대(칠곡 침산 대곡 복현 화원 용지) 경산시(경산역 하양 진량)를 오가는 스쿨버스가 자주 운행 중이며 구미시 영천시 경주시 포항시 울산광역시를 오가는 스쿨버스도 운행 중이다. (단 대구 경산지역 외의 시외지역 스쿨버스는 월마다 이용료를 납부하여야 이용할 수 있다.) 2015년부터는 모든 스쿨버스 승차시 버스 내에 설치되어 있는 단말기에 학생증을 태깅하여 확인을 받아야만 승차할 수 있다(자신의 학번을 단말기 키패드에 입력해도 된다). 예전에는 학생증 검사도 거의 안 했지만 최근부터는 얄짤없다. 2018년 현재 학생증을 안찍고 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6.6. 순환버스[편집] 학교 캠퍼스가 상당히 넓기 때문에 순환버스를 운행하며 2개의 노선이 있다. 영남대역이 개통하기 전까진 복지관 뒷편이 순환버스의 시종점이었으나 개통 이후에는 노천강당 주위 공대운동장으로 시종점이 변경되었다.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순환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이전보다 순환버스를 이용하기 힘들다. 따지고 보면 둘 다 이용하기 편하진 않다. 7. 기숙사[편집] 영남대학교/기숙사 8. 이모저모[편집] 8.1. 주변시설[편집] 일단 많은 자취생이 사는 대학로가 횡단보도 건너서 있다. 그리고 양방향의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2호선 영남대역의 존재 덕분에 아침이면 정문 근처는 육상선수권대회를 방불케 하는 레이스가 펼쳐진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보자. 일단 3번출구에서 나와 횡단보도 건너 미니스톱 골목 쪽으로 들어가면 타코야끼 전문점이 하나 나온다. 일단 술을 먹으려면 꿀막을 먹자. 그리고 푸른영대라는 막걸리집이 유명한데 정문쪽 큰 막걸리집을 앞푸영 후문쪽 구멍가게 같은 막걸리집이 뒷푸영이다. 맛은 뒷푸영 분위기는 앞푸영이다. 보통 개강파티때 많이 간다. 찜닭을 먹고 싶다면 x가찜닭이라는 곳이 가장 맛있다. 장x찜닭이란 곳도 있긴 한데 여긴 찜닭집주제에 제육볶음이 가장 맛있다. 제육에서 불맛이 난다. 존맛탱 사장님 업종좀 바꿔주세양 핫도그는 미니스톱 옆 감자핫도그 골목안 라면핫도그가 진리이니 한번쯤은 먹어보길. 교내는 아니고 학교 밖 구역이지만 인근에서 가장 젊고 큰 유흥가인 오렌지 거리가 정문 건너편에 형성되어 있다. 통계상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원룸촌(!!)이 영남대학교를 낀 권역에 존재하는데 서문 쪽의 기숙사 인근 음대 근처의 출입구인 동문쪽에 있는 신대부적지구와 본관 뒤쪽의 원룸촌 남쪽 테크노파크 인근 삼풍동 일대 구 경산소방서 인근의 조영동 일대와 임당동 등등 원룸촌이 교정을 에워싸다시피 조성되어 있다. 특히 정문 건너쪽 원룸촌은 조영동과 임당동 압량면 등지를 걸쳐서 원룸촌이 빼곡하게 형성되어 있으며 경산시에서 가장 젊고 큰 유흥가라고 할 수 있는 오렌지 거리가 있어 밤이 되면 경산권의 수많은 대학생들이 영남대로 몰려들어 유흥을 즐긴다. 지금도 오래 된 개인주택을 허물고 원룸을 올리는 공사현장이 제법 있다. 정문 쪽은 교통이 편리해 영남대학교 외의 대학교(대구한의대 대경대 등 하양지역에 위치하지 않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 중 자취생은 대부분 이 일대에 거주한다)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영남대 근방 원룸촌에서 자취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술 진탕먹고 해장하고 싶으면 미니스탑 골목길 안쪽 스타벅스 앞에 가x라는 해장국집이 있는데 맛은 평균사실 꽐라돼서 먹으면 무슨맛인지도 모른다이지만 7000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미칠듯한 가성비로 유명하다. 그리고 거기서 한블록 더 건너서 경양식집 2층에는 가x밀면이라는 곳이 있는데 역시 가성비 및 맛에서 재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추천메뉴는 밀면 삼겹살. 학교 근처에 카페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대부분의 메이저 커피숍과 중저가 브랜드 봄X 빽X방 마시그X이 등등뿐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학교 내부(중앙도서관 1층 로비 천마아트센터)와 정문 횡단보도 맞은 편까지 스타벅스가 3개나 입점해있다. 세 군데 모두 장사가 잘 되는듯하다 영남대 정문 일대의 대학가(소위 영대 정문)[47] 는 많은 대학이 존재하는 대구 경산권 대학의 대학가 중에서도 경북대학교 북문(소위 경대 북문)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동문(소위 계대 동문)[48]과 함께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어디가 좋은지는 각자 판단하자 영대뿐 아니라 타 대학생들의 모임이나 행사술판 역시 영대 정문 유흥가에서 열리는 경우가 꽤 잦은편. 8.2. YU 록 페스티벌[편집] 파일:yu록페스티벌.jpg 제 14회 YU 록 페스티벌 최고의 명물은 매년 열리고 있는 YU 록 페스티벌. 국내의 인기 메이저 록밴드를 비롯해 여러 인디밴드들도 출연을 하고 있어 대학교 내의 가장 유명한 행사로 손꼽힌다. 주최가 영남대학교 총동아리 연합회 자체 주최인데다가 스폰서도 상당하고 역사도 깊어서 높으신 분들이라고 해도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듯 하다. 영남대 4대 밴드로는 COSMOS BLUE WAVE Echoes The We가 있다. 불독맨션 이한철 걸스데이 소진(기계공학과 05학번)이 '에코스' 출신. 소진은 안좋게 나갔다 카더라 2013년 부터 독도수호YU힙합페스티벌도 열리고있는데 내로라하는 래퍼들이 많이참여하고 런타임이 기본 400분 이상이다 중간에 뛰다가 지쳐서 자면서 봤다 이걸 주최하는 단체인 소셜런투유의 대표도 영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2015년에는 봄에는 청년대구로힙합페스티벌(5월 2일) 가을에는 독도수호힙합페스티벌을 열었다. 2018년에는 무려 비와이 헤이즈 스윙스를 부르는 패기와 자본력을 보여주었다 오오 8.3. 캠퍼스 건물들과 중앙도서관[편집] 영남대는 캠퍼스가 상당히 넓은 편인데 대학관계자들이 칠곡과 경산 등 몇군데 대학부지 후보를 선정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더니.. 직접 헬기를 타고 돌아본후 경산으로 정해 주었다고 한다.[49] 이 넓은 캠퍼스 부지 덕에 교직원들은 기아 모닝이나 대우 다마스급의 경차 그리고 1톤 트럭을 몰고 다닌다. 아예 학교 마킹의 소형차들이 즐비하다. 정문 근처의 대학 건물들은 그럭저럭 봐줄 수 있지만 정문과 동문 사이의 원룸촌으로 빠지는 샛길에 있는 조형대학 실기동 건물들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여있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2009년 6월 조형대학 실기동 리모델링이 진행되어서 2009년 2학기부터는 수업이 재개되었다. 리모델링 전엔 옆의 사범대학보다 조형대학이 초라해보였지만 리모델링후에는 사범대가 무지 초라해보���다. 이제 사범대학도 외형만 리모델링 했다! 외형만.. 캠퍼스 내부도 꽤 커서 전용버스가 다닌다. 파일:영남대학교도서관.jpg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50] 캠퍼스 내의 건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앙도서관이다. 20층 빌딩의 형태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한쪽이 튀어나온 凸의 형태를 하고 있다. 주변의 3 4층 건물들 중심에서 혼자 잘난 듯한 포스를 풍기지만 실상은 3 4층까지만 도서관 겸 열람실로 운영되고 나머지 윗층은 전부 교수들의 연구실이다. 1975년 당시 대구 도심에도 없던 21층 건물을 왜 건축했을까에 대해서는 몇 가지 도시전설이 있다. 어느 날 경산 인근을 지나가던 박정희 대통령이 "영남대가 어느 쪽인가?"라고 묻자 측근들이 "저쪽입니다 각하"라면서 방향을 가르쳐주었는데 그러자 박 대통령은 "여기선 안보이는구만"이라고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얼마 안 있어 거대한 도서관이 세워지면서 그 위치에서 보이게 되었다는 설이다[51]. 두 번째는 박 대통령이 그 당시에 고층이었던 김일성종합대학의 도서관보다 높은 21층 높이로 도서관을 지으라고 지시했다는 설이다. 세 번째는 캠퍼스가 위치한 압량벌 주변에 크고 작은 못과 저수지들이 실제로 많은데 덕분에 음기가 가득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남성의 성기 모양의 건물을 지어 이 음기를 누르려고 했다고도 한다. [52] 우스개에 가까운 도시전설이니 실제로 믿지는 말자. 어째 도시전설 전부 다 박정희 대통령과 연관이 있다. 과연 박정희대학교 학교 건물의 구조가 복잡한 건물이 몇가지 있다. 인문관의 경우 제 2인문관이라는 건물이 별도로 있는데 이 건물이 인문관에 인접해있는 것이 아닌 길을 건너 있는 종합강의동 건물의 뒷편에 있어 대부분의 신입생과 공대생들을 혼란을 겪게 한다. 게다가 이 제 2인문관은 종합강의동과 연결이 되어 있는데 지하와 2층이 연결되어 언뜻보면 연결이 안 되어 있는것으로 느껴지게 한다.[53] 상경관 역시 증축에 증축이 더해져 1층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갔더니 1층으로 나온다던지 계단식 강의실의 존재로 계단을 올라가도 같은 층에 있는 괴랄한 구조[54]를 갖추고 있다. 덕분에 상경관 건물은 익숙한 상대생 외에 처음 강의실을 이곳으로 배정받은 교수님들이나 시험 때 처음 상경관에 들어선 타 단대 학생들에게는 지리감각을 혼란케 하는 미궁 수준이다.[55][56] 중앙도서관 지하입구로 들어가는 큰 길 앞에 별 7이라는 제목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재학생들은 이 동상의 키가 상당히 크다고해서 홍만이라고 부르고있다(...). 2015년 즈음에는 알수없는 누군가가 이 동상의 신발에다가 발가락(...)을 하나하나 발로 그려놓은 낙서를 해놓은 적도 있었는데 이후 그 발가락 낙서는 한동안 방치되다 어느순간 지워졌다. 보통 모임의 약속장소나 야외 교정에서 음식을 주문할 떄의 배달 포인트로 많이 이용되는 편이다. 여담으로 진량에 위치한 대구대학교는 본관이 영남대 중앙도서관과 비슷한 높이를 자랑하는데 하양-대구간 도로에서 시계가 ���을경우 두개의 높은 건물이 서로 마주보는 장관을 보게 된다두 개의 탑 8.4. 교내 명소[편집] 파일:영남대학교벚꽃길.jpg 생활과학대학 뒤편 벚꽃길[57] 교내에는 러브로드라는 유명한 벚꽃 산책로가 있다. 거울못과 생활과학대 법학전문도서관을 오른쪽에 끼고 주욱 올라가는 벚나무 흙길이다. 막 시작하는 커플이 이 긴 러브로드를 끝까지 걸으면 그 커플은 깨진다는 미신이 존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산책로 주변은 울창한 산림지대라 남녀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지는건 쉬운 일이다. 또한 동성 친구와 둘이서 같이 이 러브로드를 걷게 되면 3년동안 애인이 없다는 미신도 있다. 하지만 생길 사람은 생긴다. 러브로드는 교내 야산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산책로로 애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교정 중간을 크게 가로지르는 천마로나 천마로에서 이도(이과도서관 과학도서관)로 올라가는 길이 벚꽃철 산책로로 많이 찾는다. 야산에는 군부대 훈련용 사격장 역시 있으나 근래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학교 근처에 연못 역시 많으며 그 수가 20개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20개의 연못을 다 찾아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있는데 맑을 때에는 지표면에 없다가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야 나타나는 연못도 있어서 다 찾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거울못 남매지 자원대 연못 정도가 많이 찾는 연못이다. 8.4.1. 천마아트센터[편집] 파일:천마아트센터.jpg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터 또한 경산시의 대형공연장 중 하나인 천마아트센터가 교내에 있다. 개교 60주년 기념으로 건축되었다. 그랜드홀과 챔버홀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스타벅스도 위치하고 있다. 경산이 대구광역시의 위성도시이자 공생관계에 가까운 지역이라 사실상 대구의 대형공연장이나 다름없다. 일부 행사의 경우 영남대 학생증이 있으면 할인된 가격에 티켓을 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8.4.2. 박물관[편집] 파일:영대박물관.jpg 영남대학교 박물관 국제교류센터(구 복지관)와 축구장 옆에는 박물관이 있다. 대구 경산 포항 등 인근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영남대 근처의 여러 고분군(일명 임당동 고분군)의 출토품을 전시하는 특별 전시관이 있다. 때때로 특별 전시도 하고 있으며 박물관 앞에는 고인돌과 석탑 등을 조경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광개토대왕릉비 모형이 1층에 있는데 크기가 ㅎㄷㄷ하다 8.4.3. 민속촌[편집] 파일:영대민속촌.jpg 영남대학교 민속촌 본관 뒤편에 민속촌이 조성되어 있다. 구계서원 쌍송정 의인정사 까치구멍집 등이 있는데 이는 안동댐 건설 수몰구역에서 이전 복원한 것이다. 그 외에도 경주맞배집 인왕동 고분군 화산서당 등 경주나 칠곡 등지에서 건축 중 발굴 수몰 등의 이유로 이전 복원한 건물 및 유적지가 제법 있다. 나즈막한 야산을 끼고 있어서 봄철 꽃놀이 뿐만이 아니라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8.5. 등록금이 비싼 학교?[편집] 등록금이 비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 당시 2009년에 영남대 제2캠퍼스(대명동 캠퍼스)가 1위를 하게 되었는데 이 경우 본교만 발표한게 아니라 각각 캠퍼스를 따로 등록금 발표를 했었기 때문에 비싸다고 알려진 의대나 이공계열만 있는 학교들의 캠퍼스같은 경우 최상위권에 올라가게 되었고 반면에 실제 대학교 본교가 비싼 학교들은 은근슬쩍(?)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고 한다. 자칫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저 대학교 본교가 비싸구나 라고 오해를 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비싼 의대만 위치해 있는 영남대 대명동 캠퍼스(제 2캠퍼스)가 1위를 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영남대학교는 오해(?)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막상 2009년 전국의 의대 등록금 순위만 놓고 보면 영남대 의대는 9위라고 한다. 2013년 영남대 의대 등록금은 964만원으로 전국 의대중에서 18위 이다. 아무튼 이 때문에 대구 경북권 학생들이나 어른들은 이 통계를 보고 영남대가 등록금이 비싸다고 (사실 근처에 있는 학교보다는 비싸긴 하다 대표적으로 경북대학교가 있다.. 거긴 국립이야..) 잘못 알려지게 됐으며 아직까지도 영남대 등록금이 톱10 안에 든다고 잘못된 사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여전히 공대 등록금은 눈물난다 영남대 본교 경산캠퍼스 같은 경우 2013년 기준 대학알리미 사이트 자료를 확인해보면 1년간 평균 등록금이 730만원으로 전체 대학교 중 69위에 랭크 되었으며 이 통계는 왠만한 서울 사립 대학교 보다는 등록금이 싸고 전국 사립대학 등록금 순위에서�� 중위권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대구 경산 지역 대학교인 대구한의대학교 평균 등록금이 732만원으로 68위 계명대학교가 714만원으로 84위 대구가톨릭대학교가 710만원으로 88위에 각각 랭크되었다.별 차이 없다 8.6. 자동차 대회[편집] 국내에서 2개뿐인 대학생 자작자동차대회도 1996년부터 이 학교에서 매년 개최. Baja SAE KOREA 국제대학생자작자동차대회라는 이름으로 매년 7월 학교 뒷산의 길을 오프로드 코스로 만들어 수많은 자동차 엔지니어 지망 학생들을 관광보내고 있...었는데 2007년에 피치버그 대학에게 1위를 내주더니 그 이후부터는 성적이 영 신통치 않다. 게다가 춘천에서 열리던 KSAE 주관의 춘천 대학생 자작 자동차 대회가 군산으로 옮겨지면서 엄청난 스폰서를 받은 것에 비해 영남대학교 자작 자동차 대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참가 팀과 스폰서가 줄어드는 등 점점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매우 드문 확률로 튜닝된 대회용으로 추정되는 차를 볼 수 있었다 8.7. 동명의 학교[편집] 홍콩에 동명의 대학인 링난(嶺南)대학교가 존재한다. 링난대학교 홈페이지 2007년에 한국과 홍콩의 두 영남대가 자매결연을 맺기도 하였다. 관련 기사 광저우에도 동명의 링난대학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중산대학에 합병되었다. 8.8. 영호남 4개 사학 교류[편집] 동아대학교 조선대학교 원광대학교와 함께 1998년부터 영호남 4대 사학으로서 정기학술제 학생 나눔봉사활동 공동취업캠프 행정 워크숍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상호 발전을 도모하며 교류하고 있다. # 9. 논란[편집] 영남대학교/논란 문서로. 10. 주요 출신 인물[편집] 자세한 내용은 영남대학교/출신 인물을 참조. [1] 영남대학교 가족주거학과 명예교수 前 위덕대학교 총장 [2] 영남대학교 화학공학부 교수 前 영남대학교 교학부총장 [3] 약 82만 평. [4] 양준혁의 자리가 신태용으로 바뀌었다. [5] 청구대와 대구대가 통합해서 영남대로 바뀌자 기존 한사대가 버려진 대구대 이름을 가져다 썼다 [6] 이때 영남대의 법인인 학교법인영남학원 정관 1장 1조에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 박정희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써놓았다. 전 세계 유사사례를 찾기 힘든 학교의 주인을 정관에 명시한 괴이한 케이스. 심지어 박정희 사후에도 이 조항이 변경되지 않다가 현재는 결국 설립자 박정희로 변경되었다. [7] 독재에 영합하여 곡학아세한 그에게는 선생이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다. [8]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활약한 장군. 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공을 세웠고 이후 정식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다가 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 갇히자 주변의 만류에도 왕을 구하기 위해 북진하여 청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인조 당시에 인조가 죽음을 애석해 하며 제문을 지어주었고 숙종 때에 사액 서우가 내려졌는데 당시까지 무반의 사당에 왕이 현판을 내린 사례는 충무공 이순신과 김시민의 사례 밖에 없었다. 국가의 양난에 무공과 충정을 보였으나 현재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위인. [9] 최진립의 손자인 최국선(16311682) 이후로 이 집안은 지역민소작농에게 어진 경영을 하고 모든 식객에게 공평한 대접을 하는 등 명망이 높아 20세기까지도 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10] 현재 영남대학교병원 영남대 의과대학 영남이공대학교가 있는 자리이다. [11] 당시엔 등록금도 교수월급도 다 설립자가 냈었다! [12] 3.15 부정선거 관련으로 구속된 적도 있으나 제9 10대 국회의원에 부흥부 차관 부흥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국무총리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 역임 [13] 영남대를 비롯해 성균관대 동국대 총장을 역임했다. 직업이 총장 [14] 당시 경북도지사 번호판이 경북 가 1001호였고 영남대 총장 번호판은 경북 나 1001호였다. [15] 그저 막연한 주장은 아닌 것이 7080년대 졸업생들은 대구 경북 일대에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함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지방사립대학으론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렸다. 그래서 현재도 대기업이나 고위 공직자 중에서 영남대학교 출신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6] 무려 20대에 이사장이라는 파격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주(校主 학교주인)이라는 정관과 박정희 정부 하에서 직간접적으로 일한 사람들이 주요 이사진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17] 영남대학교의 이니셜인 Y와 더불어 Yield의 의미도 담고 있다 [18] D. McMgregor의 XY이론에 따르면 Y형 인간은 지시를 받기보다는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기를 선호하며 능력 발휘와 자아 실현을 중요시하는 능동적 인간이라고 한다. [19] 중어중문학전공 중국어통번역전공 [20] 프랑스어문전공 독일언어문화전공 [21] 2015년 국사학과와 사학과의 통합으로 탄생하였다. [22] 화학전공 생화학전공 [23] 2015년 화학과가 생명공학부의 일부를 흡수하여 화학생화학부로 변경 [24] 화공시스템전공 고분자바이오소재전공 융합화학전공(구 IT에너지화공) 에너지화공전공 [25] 공과대학에서 분리되어 신설하였다. [26] 기계설계전공 기계시스템전공 첨단기계전공 [27] 학과명에서 느껴지듯 그 분으로부터 모티브가 됐다 [28] 2014년 신설. [29] 상경관은 이전에 사회관으로도 불렸다. [30] 2017년부터 국제통상학부에서 무역학부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31] 약학전공 제약학전공 [32] 전국에 해당 전공이 개설된 곳이 몇 없다. 1968년 설립 이후에 장관도 배출할 정도로 나름의 지지기반이 있다. 적어도 이쪽 계통에서는 알아주는 정도. 나름 서울경기쪽의 서울대와 건국대 강원도쪽의 강원대처럼 경상도 쪽에서는 이 학과가 유명하다. [33] 체육학전공 무용학전공 [34] 회화전공 트랜스아트전공 [35] 작곡전공 국악전공 [36] 피아노전공 관현악전공 [37] 크게는 인문사회계열 자연계열로 이루어져 있다. 인문사회계열 안에 공군장학생으로 이루어진 항공조종계열이 속해있다. 그러나 프라임사업으로 인해 2016년부터 자연자율전공학부 폐지 인문자율전공학부는 순차적으로 인원 감축을 통해 학부를 서서히 없애 나갈 것이라고 한다.관련 기사 [38] 건축학전공(5년제) 건축공학전공 건축디자인전공 [39] 생명공학전공 분자생명과학전공 미생물생명공학전공 [40] 경산버스보다 대구버스가 훨씬 많다. 단 대구경산 하양 구간을 운행하는 대구 급행5번 518번 708번 808번 814번 경산 818번은 제외한다. [41] 1998년 906번으로 변경된 대구 버스로 2005년 609번과 통합되어 사라졌다. [42] 대구 경산 노선을 모두 통틀어 유일하게 하양진량영남대경산시장서문시장 구간을 운행한다. [43] 399번 990번은 해당 가지 노선만 운행 하며 영남대학교 건너편으로 편도 운행만 한다. [44] 719번과 980번은 예외로 이 두 노선은 경산네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안심교를 건너 안심으로 간다. [45] 버스 정류장 쪽 정문에서 횡단보도 바로 건너 정차 [46] 학생회에서 피터지게 싸워서 얻어낸 것이었다. 권리는 공짜가 아니다. [47] 정확히는 오렌지거리 [48] 사실 계대동문은 예전부터 막창골목으로 유명한 곳이라 굳이 재학생이 아니더라도 대구시민이 자주 애용했던 곳이다 [49] 경주 교동고택과 경주최씨 가문 선산도 영남대 소유이다. 일부는 영남대에서 민간 업체에게 매각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50] 현재는 #자 부분에 시계가 설치되어 있다. [51] 가장 메이저한 설이라서 대구 시민은 물론 교직원들도 사실이라고 믿는 설이다 [52] 캠퍼스 안에도 6-7개의 못이 있다. 실제로 이 못들을 다 보고 졸업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이 숨겨진 못들을 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무슨 목적이였던 간에 일부러 숲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길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한다. 후술했듯 이 연못들을 전부 찾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도 있다. [53] 실제로 교내방송 기획 중 공대생이 제2 인문관내 강의실을 찾아가는데 강의실을 찾는데 길을 못찾아 헤메는 경우도 발생했다.종합강의동에 붙어있다고 가르쳐 준 상태에서 시작했는데도 [54] 이 점은 인문관도 같으나 인문관은 상경관보단 건물이 작아 길찾기가 쉽다 [55] 상대에 대형강의실이 많아 타과 수업이나 시험에 종종 이용되곤 한다.정확하다. 소오름 [56] 출입이 가능한 문도 곳곳에 있어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간 길 잃어버려 빠져 나가지도 못한다. [57] 러브로드가 아니다! http://bit.ly/2Q5N0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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話說在距今39年前,西元1979年的12月12日,位於東北亞的大韓民國(南韓),爆發了一場堪稱西元二十世紀近代史上,持續時間最長的武裝軍事政變行動,那就是大名鼎鼎的『雙十二事件』,或是韓文稱之的『雙十二軍事叛亂』(12•12 군사반란)! . 事件發生的背景,其實乃接續西元1979年10月26日,當時南韓總統,也是西方社會所認定的軍事獨裁者朴正熙(박정희,1917-1979;任期:1963-1979)不幸遇刺身亡後,韓國政壇所衍生出一連串的失衡政治風暴... . 從朴正熙遇害的那一刻起,南韓隨即進入了緊急戒嚴狀態,並由總理崔圭夏(1919-2006)代行原本的總統職務,而他也順利地在同年的12月6日,���『統一主體國民會議』(也就是「非全民直選之委任代表制大會」,功能性質就像我們過去中華民國國民大會代表可以選出總統一樣)大選中勝出,正式接任南韓的第10任總統; . 但由於崔圭夏並非像朴正熙一樣是軍旅出身,而是屬於外交文官體系,所以他有意推動政治結構的變革與維新,想逐漸將過往的朴正熙式軍事獨裁政權,轉型為親西方式的民主政治,進而解除全國戒嚴令,並訴求將國家主權交還於人民,最終實施總統全民直選… . 然而,問題不是讀書人想的那麼簡單...尤其崔圭夏還是東京師範高等學校畢業的! . 朴正熙即便已經身亡,但並未代表他身旁的軍隊高層將領們後續就會無條件效忠新的元首…而且當年與朝鮮(北韓)關係正陷入冰點的南韓,軍部掌權者一心更只想著要以軍領政、以北伐統一戰爭為目的手段,藉以作為合理化獨裁的理由,因此根本就壓根不希望南韓有那麼走向民主、自由化的一天! . 所以,就在崔圭夏總統位置還未坐滿一個星期,西元1979年12月12日這一天,身為當時南韓保安司令官為首的全斗煥(1931-),以及官拜陸軍少將第9師師團長的盧泰愚(1932-)等軍方高階將領,經過秘密開會討論,決定先下手為強,以迅雷不及掩耳之姿,展開了軍事政變行動! . 這些將領們在發起政變後,除了在第一時間內火速逮捕了與他們立場相左的溫和派軍方高官,像戒嚴司令官兼陸軍參謀總長鄭昇和(1926-2002)之外,更直接以掌握軍隊武裝實權的方式,將空降特種部隊、坦克部隊與步兵團等,通通調往首都漢城(現在的首爾),甚至還召回了南北韓停戰區裡的武裝師,一口氣攻占了陸軍軍本部和國防部,簡直就是擺出即將開戰的陣仗,好意圖逼迫沒有軍隊可撐腰的崔圭夏,識相地馬上交出政權! . 後來,政變活動就持續到了隔年,軍隊像打內戰似的,一個省份一個省份陸續拿下,到了西元1980年的5月17日,可說是已經大權整個在握的全斗煥,這下可不只宣布國家繼續戒嚴,乾脆還進一步,自己明文發布了全新的南韓全境大規模緊急戒嚴令,直接讓南韓國內所有的政治相關活動與國會運作機制通通停擺,然後再隨便找個理由,就把所有的異議人士一個個抓起來,絕對不准南韓再出現任何一絲絲反對他獨裁的聲音! . 南韓近代的首波民主化,到此,畫下了一個驚愕且殘缺的休止符… . 可是,也因為全斗煥這老兄實在是做得太過火了,軍政至上,根本不把百姓放在眼裡,同時也不認為民主是南韓的『必須品』,使得個性本來就比較偏向自由、開放的新一代二戰後南韓大學生們,無法接受這種戒嚴方式,尤其越做越誇張,毫無人權可言的高壓統治手段,可說超越了敵人~共產北韓! . 因此,位於光州(광주),還有其餘分佈在各大城市的大學生們,決定攜手走上街頭,動員抗爭,要求全斗煥軍頭別再鬧了…而其中又以最反對軍人統治,長期受到南韓軍政府忽視開發的光州人民最為光火,參與抗議也最積極! . 眼見這南韓人民不願意服從,拿槍桿子起家的全斗煥,這時也不客氣了,於是宣布以武力鎮壓示威民眾! . 不是灑水柱,不是噴瓦斯… . 而是, . 賞納稅人吃用稅金買的國家子彈! . 最後,局勢演變成了南韓國史上最為血腥,也是韓國人最不願意回想,發生於西元1980年5月18日到5月27日的...『光州民主化運動』(광주 민주화 운동)。 . #韓國 #歷史 #雙十二 #光州事件 #kill #autocracy #politics #southkorea #korea #revolution #history #time #newspaper #photography #onthisday #december https://www.instagram.com/p/BrRLPbtnTSP/?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13n8vdxm0tl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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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4년제 사립대학이다. 사실상의 본 캠퍼스라 할 수 있는 경산 캠퍼스는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에 위치하며
의과대학과 영남대학교 의료원, 일부 대학원이 소재한 대구 캠퍼스는 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에 위치한다. 학교의 상징은 천마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더 다양한 정보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의 통합 영남대학교의 전신은 야청(也靑) 최해청(崔海淸·1905~1977)이 1950년 지금의 노보텔 자리에 세운 청구대학과 한국의 명가로 유명한 경주의 만석꾼 경주 최씨 부잣집의 마지막 부자이자 독립운동가인 12대 당주 최준(崔浚·1884~1970)이 1947년에 설립한 대구대학(현재 대구대학교와 다름[5])이다. 이 두 대학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병합하면서 만들어진 대학이 영남대이다.[6] 청구대학은 1948년 9월 최해청에 의해서 대구문리과전문학원 야간부로 종로에서 개교했으며 1950년 3월 포정동으로 이전하고 4월 25일 재단법인 청구대학 설립, 청구대학으로 개편했다. 1955년 문화동 현 노보텔 자리로 이전하고 1963년 병설 공업고등전문학교 설립했는데 이것이 경일대학교의 전신이다. 1964년 효목동으로 본부 이전했으나, 대학정비사업으로 한차례 흔들린 끝에, 붕괴사고가 일어나고 교직원 비리가 발견되자 이사회가 1967년은 청구대학이 학내외의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 때문에 자력으로 존립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시기였다. 이 때 청구대학 교수로 있던 이은상[7]이 그해 5월, 5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6대 대통령에 연임된 박대통령에게 “각하. 임기를 마치고 나면 마당 쓸 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진언했고, 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영남대 탄생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전해진다. # 대구대학의 경우는 더 눈물겹고 복잡하다. 조선시대 무관 최진립 장군[8] 의 후손인 최준 선생은 12대에 걸쳐 내려온 어마어마한 부[9]를 쌓은 부농이었으며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에 독립자금을 제공, 안희제의 백산상회를 통해 임시정부에도 독립자금을 제공했으며, 무장투쟁계의 총무도 맡는 등 부를 민족과 나라를 위해 쓴 독립운동가였는데, 해방 후 새 나라를 위해서는 인재의 교육이 절실함을 알고 자신도 대구대학을 만들고 직접 운영했다. 대구대학은 1945년 10월 대구대학 전신 경북종합대학 기성회 조직했고 1947년 3월 경북종합대학이 가칭 대구문리과대학으로 개교하고 1947년 9월 재단법인 대구대학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48년 9월 교사를 대봉동 현 대구중학교 자리로 이전했으며 1951년 4월 교사를 포정동 청구대학 구내로 이전, 향교재단과 합류하여 공동 운영했다. 1952년 5월 교사를 남산동 향교 구내로 이전했으나, 1954년 12월 대명동 신축 교사[10]로 이전했고 1957년 6월 본관이 준공되었다. 하지만 대구대학은 1960년대에 재정난에 빠지게된다. 사재를 거의 다 투자하여 대구대학을 운영했는데 당시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측은 대대적인 대학정비사업을 추진한다. 이 때 대구대학교의 설립자 최준은 당시 학생을 그만 받든지[11] 과를 줄이든지, 소유 대학인 대구대학에 더 많은 투자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이에 결국 최준은 고려대학교를 이용익 선생이 손병희에게 넘기듯 대구대학을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에게 학교를 잘 운영하라는 일념하에 아무런 대가없이 학교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이렇게 학교의 경영권은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에게로 넘어간다. 전말은 과거 대구대학 교수를 지냈던 신현확[12] 씨가 시멘트 사업을 확장하면서 홍보 목적으로 고심하던 이병철 회장에게 대구대학의 인수를 제안하고 이병철 회장은 경주로 내려가 인수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때문에 이병철 삼성 회장이 퇴진하고 2년 뒤 현장 복귀하는 조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양도되었다. 정확히는 대구대를 넘기고 성균관대학교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대구대학의 경영권을 이병철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넘기게 된다. 즉 대구대학 재단의 소유권은 경주 최씨 일가 → 삼성그룹 이병철 前 회장 → 박정희 前 대통령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청구대학, 대구대학 이 두 대학이 통합하여 1967년 12월, 현재의 영남대가 출범하게 된다. #1 #2 영남대학교의 탄생 이사장 이동녕(제4,6,7대 국회의원) 이사 이효상(제6,7대 국회의장) 이사 김성곤(민주공화당 재정위원장, 쌍용그룹 회장) 이사 신현확(국무총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이사 백남억(민주공화당 의장, 제5,6,7,8,9,대 국회의원) 이사 이후락(중앙정보부 부장, 대통령비서실장) 이사 신기석(영남대학교 초대총장, 부산대학교 총장, 국회의원) 이사 서정귀(국회의원, 재무부 차관) 이사 성상영(대성모방 회장) 이사 여상원(대구상공회의소 회장, 대구은행 초대회장) 감사 오일룡(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파일:external/www.yu.ac.kr/about_01_e_img2.jpg 2대 이선근 총장[13] 위 이사진 구성으로 통합 영남대학교가 출범하였다. 1970년대, 영남대는 이선근 박사(신간회 출신으로 문교부 장관, 영남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동국대학교 총장 역임. 문교부 장관 시절 현재 국사편찬위원회를 설립한 장본인이다.)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총장 재임 시절(1969년 4월~1974년 2월)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국사 가정교사였던 그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나타냈다. 이선근 총장의 승용차에는 ‘경북 1호’의 번호판이 부여되었고,[14] 경북 각급 기관장들은 대통령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던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야 했을 정도이다. 학교가 뻗어나가는 데 거칠 것이 없었다. ‘한강 이남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라는 자부심이 이 시기에 용솟음쳤다. 신생대학에 불과했던 영남대학교가 아웃풋 좋은 대학으로 평가받는 명성은 대부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15] 그러나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학교 또한 혼란에 빠졌고, 이후 박근혜 前 대통령이 이사장[16]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이후 토지 이면계약 등으로 국정조사를 받은 최초의 사립학교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례없는 민주화보도 대행진과 같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대학이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총학생회�� 임수경 방북 사건 등으로 논란이 되어오던 운동권 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를 탈퇴하면서 기존 학내 운동권 세력과 총학생회와의 다툼이 있었다. 이후 2009년 박근혜 대통령의 추천이사 4명을 포함한 7인 이사회로 개편되면서 정상화되었다. 매일신문 '영남대 설립에 얽힌 이야기' 2016년 말에는 제14대 노석균 총장이 임기 만료 100여 일을 앞두고 사퇴를 했다. 한국일보 기사 총장 관사 사용, 약학대학 신관 건축 등과 관련하여 교직원에게 내려지는 징계를 막지 못한 것과 내부 소통 문제가 주된 이유였지만, 2013년 노석균 총장 취임 이후로 이어져 온 재단과 본부 간 갈등으로 인한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1.2. 캠퍼스 이전[편집] 파일:dnFEuTAoyuwRzrrVCXJgVD7LX41b.jpg 이전 초기의 영남대학교 경산 캠퍼스 전경 (1975년) 대구 시내 대명동 캠퍼스(현재 대구캠퍼스)의 부지가 좁아 1970년대부터 단과대학과 각종 학내 시설 등을 점차적으로 대구의 동쪽에 위치한 경산시로 옮기면서 넓기로 유명한 현재의 영남대 경산캠퍼스의 역사가 시작된다. 실제 단일면적으로 서울대학교와 1, 2위를 다툴 정도의 크기다. 본관 뒤편으로 펼쳐진 토지를 한국조폐공사에게 팔기 전까지는 흔히 말하는 100만평 부지였는데 지금은 대략 82만평으로 부지의 대부분은 거의가 평지다. 자전거를 타고 모든 곳을 갈 수가 있으며 교내 순환버스도 운행하고 있다. 2. 재단[편집] http://infor.sahak.or.kr/portal_main.asp 파일:A16miDu.jpg 재단은 학교법인 영남학원으로 재단의 주축인 영남대학교가 경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단 사무처는 영남대학교의료원(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영남학원은 영남대학교와 더불어 영남이공대학교를 산하에 두고 있다. 현재 한재숙 영남대 명예교수를 제19대 이사장으로 선임하였다. 사실 영남학원은 IMF 사태 이전에는 막대한 토지, 목장과 더불어 학교법인으로서는 드물게 종합금융회사인 영남종합금융을 소유하는 등 건실한 재단으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영남종합금융은 서울과 구미에 지점을 두고, 1995년에 증권거래소에 상장까지 되어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금융사와 마찬가지로 IMF 사태의 여파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다가 공적자금까지 투입되었고, 이후 김대중 정부 방침에 따라 하나로종합금융(現 우리종합금융)으로 통폐합되고 말았다. 물론 재단 차원에서도 IMF 여파로 교직원 사택과 토지 등을 홀라당 까먹고 말았다. 안습. 그래도 그때 단국대학교처럼 부도가 나지 않은 것이 어디야 3. 학풍[편집] 3.1. 슬로건과 Y형 인재[편집] 파일:Y-Brand_01.gif 파일:슬로건_가로형-1.png 공식 슬로건 YU the Future 제13대 이효수 총장 취임 이후로 21세기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에 부합하는 Y형 인재[17][18]를 길러내는 것을 대학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미래를 만드는 대학 YU, the Future"를 슬로건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학 캠퍼스 내에서는 서길수 총장의 취임이후로 "밝고 강한 대학 "이라는 표현이 많이 보이며, 학교 홈페이지에서는 "미래를 여는 밝고 강한 지역거점대학" 이라는 슬로건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Y형 인재와 관련해서는 매년 전반기, 후반기가 끝나면 Y형 인재상이라고 하여 영남대 학생들 중 특출난 성과를 뽑낸 학생들에게 상장을 수여하는데, 자격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운데 해당 조건은 '1) 전국 규모 및 유사한 대회에서 1위로 수상한 학생, 2)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학생, 3) 기타 해당부서에서 우수하다고 인정하여 추천한 자 중에서 학생포상규정 제5조 학생포상심사위원회에서 인정한 학생, 4) 단체인 경우 3명까지는 상장과 개별 부상을 수여하며, 4명 이상인 경우는 상패만 수여'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수상 인원에 제한을 두진 않지만, 한 해에 대략 40~50명 정도의 학생들이 수상을 하는 것으로, 학교 측에서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해당 상장을 노린 영남대 위키러는 중소기업청장, 소방안전관리협회장, 대구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장, 지방 복지관 공모전 상장을 들고 갔지만, 단번에 튕겼다 카더라 4. 캠퍼스[편집] 4.1. 경산캠퍼스[편집] 파일:SSI_20130823165309.jpg 파일:external/m.yu.ac.kr/campus_map_big.jpg 경산 캠퍼스 캠퍼스맵 파일:dnFEuTAoyuwRzrrVCXJgVD7LX4b.jpg 남문 쪽에서 바라본 경산 캠퍼스의 전경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실상 영남대학교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캠퍼스 면적은 약 82만평(!!) 정도로 그 유명한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보다 조금 작고, 충남대학교 대덕캠퍼스보다 조금 더 넓은 편으로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일설에는 현재 경산캠퍼스 부지를 박정희 前 대통령이 정했다는 얘기도 있다. 정문에서 본관까지 이어지는 천마대로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상경대학과 문과대학, 정치행정대학, 음악대학, 중앙도서관, 종합강의동 등이 위치해 있고, 동쪽에는 이과대학, 공과대학, 생활과학대학, 건축학부 등이 위치하고 있다. 4.2. 대구캠퍼스[편집] 정식명칭은 대구캠퍼스로 흔히 캠퍼스가 위치한 동명을 따서 대명캠퍼스라고도 불린다.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남대학교 의료원, 의과대학과 일반대학원을 제외한 경영대학원, 행정대학원이 소속되어 있다. 인근에는 영남이공대학도 위치하고 있다. 파일:yudmmap.jpg 중앙 오른쪽 병원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같은 재단소속의 영남이공대학교 건물들이 있고 병원 오른쪽에 몇개의 의대대학 건물과 전문대학원과 평생교육원 수업을 담당하는 경영관 건물이 있다. 파일:mtakHPTr.jpg 대명동 캠퍼스 영남대학교 의료원 전경 5. 개설 학과[편집] 5.1. 학부과정[편집] 5.1.1. 문과대학[편집] 국어국문학과 중국언어문화학과[19] 일어일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유럽언어문화학부[20] 철학과 역사학과[21] 문화인류학과 심리학과 사회학과 언론정보학과 5.1.2. 자연과학대학[편집] 수학과 통계학과 물리학과 화학생화학부[22][23] 생명과학과 5.1.3. 공과대학[편집] 건설시스템공학과 환경공학과 도시공학과 신소재공학부 화학공학부(디스플레이화학공학부)[24] 파이버시스템공학과 5.1.4. 기계IT대학[25][편집] 기계공학부[26] 전기공학과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과 정보통신공학과 자동차기계공학과 로봇기계공학과 5.1.5. 정치행정대학[편집] 정치외교학과 행정학과 새마을국제개발학과[27] 경찰행정학과[28] 군사학과 5.1.6. 상경대학[편집] 파일:f5dNNlgzXIwSoyJa.jpg 상경대학이 소재한 상경관(좌측)과 중앙도서관(우측)[29] 경제금융학부 무역학부[30] 글로벌차이나연합전공 5.1.7. 경영대학[편집] 경영학과 회계세무학과 글로벌차이나연합전공 5.1.8. 의과대학[편집] 의예과 의학과 5.1.9. 약학대학[편집] 약학부[31] 5.1.10. 생명응용과학대학[편집] 식품경제외식학과[32] 원예생명과학과 산림자원및조경학과 식품공학과 생명공학과 의생명공학과 5.1.11. 생활과학대학[편집] 가족주거학과 식품영양학과 체육학부[33] 의류패션학과 5.1.12. 사범대학[편집] 교육학과 국어교육과 영어교육과 한문교육과 수학교육과 유아교육과 특수체육교육과 5.1.13. 디자인미술대학[편집] 미술학부[34] 시각디자인학과 산업디자인학과 생활제품디자인학과 5.1.14. 음악대학[편집] 음악과[35] 성악과 기악과[36] 5.1.15. 기초교육대학[편집] 교양학부 자율전공학부[37] 천마인재학부 5.1.16. 자연자원대학[편집] 식품자원경제학과 원예생명과학과 산림자원및조경학과 식품공학과 외식산업학과 5.1.17. 독립학부[편집] 건축학부[38] 국제학부 생명공학부[39] 5.2. 대학원과정[편집] 일반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경영대학원 행정대학원 문화예술디자인대학원 환경보건대학원 스포츠과학대학원 임상약학대학원 교육대학원 공학대학원 박정희새마을대학원 6. 교통[편집] 영남대 일대의 교통량은 상당하다. 북쪽으로는 진량읍 및 하양읍으로 향하는 도로(대학로)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경산시장 및 경산역과 같은 경산시의 주요 시가지로 향하는 도로(대학로, 경안로)가 있고, 서쪽으로는 대구광역시로 향하는 달구벌대로가 있다. 이렇게 영남대학교 일대에는 세 주요 지점으로 향하는 도로가 만나기 때문에 교통량이 매우 많다. 6.1. 시내버스[편집] 영남대 주위에는 상당히 많은 시내버스가 다니는데 경산시를 종점으로 설정한 상당수의 대구버스 노선들은 이곳을 경유하며[40] 다수의 경산시 시내버스 노선들도 이곳을 거칠 만큼 영남대 일대는 경산 교통의 요충지로 손꼽힌다. 무엇보다 압량면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버스 회사 삼천리버스의 차고지인 일명 '75번 종점'[41]이 영남대 종점이다. 정문으로는 대구 309번, 449번, 509번(영남대학교 분리 노선), 609번, 649번, 719번, 840번[42], 909번, 980번, 경산 107번, 109번, 399번(자인~마곡 가지 노선 한정), 803번, 809번, 911번, 918번, 990번(가일~서문시장~자인 가지 노선 한정),[43] 991번, 압량1번이 다닌다. 2011년 8월 18일 이전에는 대구 939번도 있었으나, 사동으로 조정되었다. 후문으로는 대구 509번(계양동 분리 노선), 경산 100번, 109번, 399번, 990번, 경산1(-1)번, 경산2(-1)번, 남산1번, 남산2번(정평역 지원운행 한정), 용성1번(정평역 지원운행 한정)이 다닌다. 특이한 점은 경산 109번은 노선 특성상 유일하게 영남대 정문과 후문을 모두 경유하는 노선이다. 영남대 경유 또는 영남대 종점 시내버스 노선들은 사월역에서 옥산네거리~경산역~경산시장~중방네거리~경산네거리 구간으로 우회한다.[44] 하지만 사월역에서 정평동~경산네거리 구간으로 직진하는 대구 449번, 649번, 경산 991번은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에 대구도시철도 2호선이 영남대역까지 연장되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승객을 확보했다. 참고로 대구 509번 계양동 분리 노선도 사월역에서 직진하여 정평동~경산네거리 구간으로 직진하지만 이 분리 노선은 영남대로 직진하지 않고 경산네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중방네거리~경산오거리~계양네거리~계양동으로 가 버린다. 하지만 도시철도 2호선이 영남대역까지 연장된 지금은 거의 모든 시내버스 노선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승객들이 많이 줄어든 상태이다. 여담이지만 영남대는 대구시내버스가 들어오는 대구권 종합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급행버스가 경유하지 않는다. 6.2.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편집] 앞서 설명한 대로 대구와 경산간의 이동량은 상당히 많다.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이 영업을 개시하면서 대구와 경산간의 이동이 원활해졌으며, 교통량이 이전보다 늘어나고 있다. 일 평균 탑승객 수 1만 명(대구광역시 중심가인 동성로 입구에 위치한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대구역과 유사한 수준)을 넘길 만큼 상당히 많은 승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또한 영남대역이 생김으로써 영남대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대구대학교, 대구한의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경대학교, 경일대학교 같은 다른 학교 학생들의 통학 환승 거점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6.3. 철도[편집] 학교에서 시내버스로 약 20분 뛰어가면 40분안에도 갈수있다. 버스비가 아깝고 다리근육이 뛰어나다면 뛰어가길 추천해본다. 기숙사에서 자전거타고 10분 컷도 가능하다거리에 경부선 경산역이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대구로 나가는 시내버스들 중 90%는 경산역 및 경산시장으로 들어간다(안심교를 경유해 대구 동구 반야월 일대로 빠져나가는 719번, 980번 등 제외). 택시를 타게 되면 요금은 약 5000원선으로 보면 되겠다. 6.4. 시외버스[편집] 경산역 근처에 있는 경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영남대 국제교류센터(대구은행 영남대지점, GS25, 서점 등이 있는 정문 근처의 건물) 앞에서도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영남대 국제교류센터 안에 중간 정류장 및 시외버스 매표소가 있기 때문인데 단, 경주-포항 및 울산 방면 시외버스만 정차하기 때문에 해당 방면 노선만 이용할 수 있다. 그 외에 당연하지만 경주-포항 및 울산에서 경산행 시외버스를 타고 올 때도 영남대 국제교류센터 건너[45] 에 중간 정차한다. 6.5. 스쿨버스[편집] 영남대역이 개통하기 이전에는 등하교시간에 사월역과 영남대를 오가는 스쿨버스가 10분마다 1대씩 올 정도로 수요가 상당했다.[46] 가끔 학생들이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사월역 출입구의 계단에서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장면은 신천역에서나 볼 수 있다. 2012년 9월 19일 정문 앞에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이 생기면서 사월역과 학교를 오가던 셔틀버스는 당연히 폐선되었다. 현재는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반야월역과 대구 일대(칠곡, 침산, 대곡, 복현, 화원, 용지), 경산시(경산역, 하양, 진량)를 오가는 스쿨버스가 자주 운행 중이며 구미시, 영천시, 경주시, 포항시, 울산광역시를 오가는 스쿨버스도 운행 중이다. (단 대구, 경산지역 외의 시외지역 스쿨버스는 월마다 이용료를 납부하여야 이용할 수 있다.) 2015년부터는 모든 스쿨버스 승차시 버스 내에 설치되어 있는 단말기에 학생증을 태깅하여 확인을 받아야만 승차할 수 있다(자신의 학번을 단말기 키패드에 입력해도 된다). 예전에는 학생증 검사도 거의 안 했지만, 최근부터는 얄짤없다. 2018년 현재 학생증을 안찍고 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6.6. 순환버스[편집] 학교 캠퍼스가 상당히 넓기 때문에 순환버스를 운행하며 2개의 노선이 있다. 영남대역이 개통하기 전까진 복지관 뒷편이 순환버스의 시종점이었으나, 개통 이후에는 노천강당 주위, 공대운동장으로 시종점이 변경되었다.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순환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이전보다 순환버스를 이용하기 힘들다. 따지고 보면 둘 다 이용하기 편하진 않다. 7. 기숙사[편집] 영남대학교/기숙사 8. 이모저모[편집] 8.1. 주변시설[편집] 일단 많은 자취생이 사는 대학로가 횡단보도 건너서 있다. 그리고 양방향의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2호선 영남대역의 존재 덕분에 아침이면 정문 근처는 육상선수권대회를 방불케 하는 레이스가 펼쳐진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보자. 일단 3번출구에서 나와 횡단���도 건너 미니스톱 골목 쪽으로 들어가면 타코야끼 전문점이 하나 나온다. 일단 술을 먹으려면 꿀막을 먹자. 그리고 푸른영대라는 막걸리집이 유명한데, 정문쪽 큰 막걸리집을 앞푸영, 후문쪽 구멍가게 같은 막걸리집이 뒷푸영이다. 맛은 뒷푸영, 분위기는 앞푸영이다. 보통 개강파티때 많이 간다. 찜닭을 먹고 싶다면 x가찜닭이라는 곳이 가장 맛있다. 장x찜닭이란 곳도 있긴 한데 여긴 찜닭집주제에 제육볶음이 가장 맛있다. 제육에서 불맛이 난다. 존맛탱 사장님 업종좀 바꿔주세양 핫도그는 미니스톱 옆 감자핫도그, 골목안 라면핫도그가 진리이니 한번쯤은 먹어보길. 교내는 아니고 학교 밖 구역이지만 인근에서 가장 젊고 큰 유흥가인 오렌지 거리가 정문 건너편에 형성되어 있다. 통계상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원룸촌(!!)이 영남대학교를 낀 권역에 존재하는데 서문 쪽의 기숙사 인근, 음대 근처의 출입구인 동문쪽에 있는 신대부적지구와 본관 뒤쪽의 원룸촌, 남쪽 테크노파크 인근 삼풍동 일대, 구 경산소방서 인근의 조영동 일대와 임당동 등등 원룸촌이 교정을 에워싸다시피 조성되어 있다. 특히 정문 건너쪽 원룸촌은 조영동과 임당동, 압량면 등지를 걸쳐서 원룸촌이 빼곡하게 형성되어 있으며 경산시에서 가장 젊고 큰 유흥가라고 할 수 있는 오렌지 거리가 있어 밤이 되면 경산권의 수많은 대학생들이 영남대로 몰려들어 유흥을 즐긴다. 지금도 오래 된 개인주택을 허물고 원룸을 올리는 공사현장이 제법 있다. 정문 쪽은 교통이 편리해 영남대학교 외의 대학교(대구한의대, 대경대 등 하양지역에 위치하지 않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 중 자취생은 대부분 이 일대에 거주한다)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영남대 근방 원룸촌에서 자취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술 진탕먹고 해장하고 싶으면 미니스탑 골목길 안쪽 스타벅스 앞에 가x라는 해장국집이 있는데 맛은 평균사실 꽐라돼서 먹으면 무슨맛인지도 모른다이지만 7000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미칠듯한 가성비로 유명하다. 그리고 거기서 한블록 더 건너서 경양식집 2층에는 가x밀면이라는 곳이 있는데 역시 가성비 및 맛에서 재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추천메뉴는 밀면 + 삼겹살. 학교 근처에 카페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대부분의 메이저 커피숍과 중저가 브랜드 봄X, 빽X방, 마시그X이 등등뿐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학교 내부(중앙도서관 1층 로비, 천마아트센터)와 정문 횡단보도 맞은 편까지 스타벅스가 3개나 입점해있다. 세 군데 모두 장사가 잘 되는듯하다 영남대 정문 일대의 대학가(소위 영대 정문)[47] 는 많은 대학이 존재하는 대구, 경산권 대학의 대학가 중에서도 경북대학교 북문(소위 경대 북문),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동문(소위 계대 동문)[48]과 함께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어디가 좋은지는 각자 판단하자 영대뿐 아니라 타 대학생들의 모임이나 행사술판 역시 영대 정문 유흥가에서 열리는 경우가 꽤 잦은편. 8.2. YU 록 페스티벌[편집] 파일:yu록페스티벌.jpg 제 14회 YU 록 페스티벌 최고의 명물은 매년 열리고 있는 YU 록 페스티벌. 국내의 인기 메이저 록밴드를 비롯해 여러 인디밴드들도 출연을 하고 있어 대학교 내의 가장 유명한 행사로 손꼽힌다. 주최가 영남대학교 총동아리 연합회 자체 주최인데다가 스폰서도 상당하고 역사도 깊어서 높으신 분들이라고 해도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듯 하다. 영남대 4대 밴드로는 COSMOS, BLUE WAVE, Echoes, The We가 있다. 불독맨션 이한철, 걸스데이 소진(기계공학과 05학번)이 '에코스' 출신. 소진은 안좋게 나갔다 카더라 2013년 부터 독도수호YU힙합페스티벌도 열리고있는데 내로라하는 래퍼들이 많이참여하고 런타임이 기본 400분 이상이다 중간에 뛰다가 지쳐서 자면서 봤다 이걸 주최하는 단체인 소셜런투유의 대표도 영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2015년에는 봄에는 청년대구로힙합페스티벌(5월 2일) 가을에는 독도수호힙합페스티벌을 열었다. 2018년에는 무려 비와이, 헤이즈, 스윙스를 부르는 패기와 자본력을 보여주었다 오오 8.3. 캠퍼스 건물들과 중앙도서관[편집] 영남대는 캠퍼스가 상당히 넓은 편인데, 대학관계자들이 칠곡과 경산 등 몇군데 대학부지 후보를 선정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더니.. 직접 헬기를 타고 돌아본후 경산으로 정해 주었다고 한다.[49] 이 넓은 캠퍼스 부지 덕에 교직원들은 기아 모닝이나 대우 다마스급의 경차, 그리고 1톤 트럭을 몰고 다닌다. 아예 학교 마킹의 소형차들이 즐비하다. 정문 근처의 대학 건물들은 그럭저럭 봐줄 수 있지만 정문과 동문 사이의 원룸촌으로 빠지는 샛길에 있는 조형대학 실기동 건물들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여있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2009년 6월 조형대학 실기동 리모델링이 진행되어서 2009년 2학기부터는 수업이 재개되었다. 리모델링 전엔 옆의 사범대학보다 조형대학이 초라해보였지만 리모델링후에는 사범대가 무지 초라해보인다. 이제 사범대학도 외형만 리모델링 했다! 외형만.. 캠퍼스 내부도 꽤 커서 전용버스가 다닌다. 파일:영남대학교도서관.jpg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50] 캠퍼스 내의 건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앙도서관이다. 20층 빌딩의 형태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한쪽이 튀어나온 凸의 형태를 하고 있다. 주변의 3, 4층 건물들 중심에서 혼자 잘난 듯한 포스를 풍기지만 실상은 3, 4층까지만 도서관 겸 열람실로 운영되고 나머지 윗층은 전부 교수들의 연구실이다. 1975년 당시 대구 도심에도 없던 21층 건물을 왜 건축했을까에 대해서는 몇 가지 도시전설이 있다. 어느 날 경산 인근을 지나가던 박정희 대통령이 "영남대가 어느 쪽인가?"라고 묻자 측근들이 "저쪽입니다 각하"라면서 방향을 가르쳐주었는데, 그러자 박 대통령은 "여기선 안보이는구만"이라고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얼마 안 있어 거대한 도서관이 세워지면서 그 위치에서 보이게 되었다는 설이다[51]. 두 번째는 박 대통령이 그 당시에 고층이었던 김일성종합대학의 도서관보다 높은 21층 높이로 도서관을 지으라고 지시했다는 설이다. 세 번째는 캠퍼스가 위치한 압량벌 주변에 크고 작은 못과 저수지들이 실제로 많은데 덕분에 음기가 가득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남성의 성기 모양의 건물을 지어 이 음기를 누르려고 했다고도 한다. [52] 우스개에 가까운 도시전설이니 실제로 믿지는 말자. 어째 도시전설 전부 다 박정희 대통령과 연관이 있다. 과연 박정희대학교 학교 건물의 구조가 복잡한 건물이 몇가지 있다. 인문관의 경우 제 2인문관이라는 건물이 별도로 있는데 이 건물이 인문관에 인접해있는 것이 아닌 길을 건너 있는 종합강의동 건물의 뒷편에 있어 대부분의 신입생과 공대생들을 혼란을 겪게 한다. 게다가 이 제 2인문관은 종합강의동과 연결이 되어 있는데 지하와 2층이 연결되어 언뜻보면 연결이 안 되어 있는것으로 느껴지게 한다.[53] 상경관 역시 증축에 증축이 더해져 1층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갔더니 1층으로 나온다던지 계단식 강의실의 존재로 계단을 올라가도 같은 층에 있는 괴랄한 구조[54]를 갖추고 있다. 덕분에 상경관 건물은 익숙한 상대생 외에 처음 강의실을 이곳으로 배정받은 교수님들이나 시험 때 처음 상경관에 들어선 타 단대 학생들에게는 지리감각을 혼란케 하는 미궁 수준이다.[55][56] 중앙도서관 지하입구로 들어가는 큰 길 앞에 별 7이라는 제목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재학생들은 이 동상의 키가 상당히 크다고해서 홍만이라고 부르고있다(...). 2015년 즈음에는 알수없는 누군가가 이 동상의 신발에다가 발가락(...)을 하나하나 발로 그려놓은 낙서를 해놓은 적도 있었는데 이후 그 발가락 낙서는 한동안 방치되다 어느순간 지워졌다. 보통 모임의 약속장소나 야외 교정에서 음식을 주문할 떄의 배달 포인트로 많이 이용되는 편이다. 여담으로 진량에 위치한 대구대학교는 본관이 영남대 중앙도서관과 비슷한 높이를 자랑하는데 하양-대구간 도로에서 시계가 좋을경우 두개의 높은 건물이 서로 마주보는 장관을 보게 된다두 개의 탑 8.4. 교내 명소[편집] 파일:영남대학교벚꽃길.jpg 생활과학대학 뒤편 벚꽃길[57] 교내에는 러브로드라는 유명한 벚꽃 산책로가 있다. 거울못과 생활과학대, 법학전문도서관을 오른쪽에 끼고 주욱 올라가는 벚나무 흙길이다. 막 시작하는 커플이 이 긴 러브로드를 끝까지 걸으면 그 커플은 깨진다는 미신이 존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산책로 주변은 울창한 산림지대라 남녀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지는건 쉬운 일이다. 또한 동성 친구와 둘이서 같이 이 러브로드를 걷게 되면 3년동안 애인이 없다는 미신도 있다. 하지만 생길 사람은 생긴다. 러브로드는 교내 야산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산책로로 애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교정 중간을 크게 가로지르는 천마로나 천마로에서 이도(이과도서관, 과학도서관)로 올라가는 길이 벚꽃철 산책로로 많이 찾는다. 야산에는 군부대 훈련용 사격장 역시 있으나 근래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학교 근처에 연못 역시 많으며 그 수가 20개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20개의 연못을 다 찾아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있는데 맑을 때에는 지표면에 없다가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야 나타나는 연못도 있어서 다 찾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거울못, 남매지, 자원대 연못 정도가 많이 찾는 연못이다. 8.4.1. 천마아트센터[편집] 파일:천마아트센터.jpg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터 또한 경산시의 대형공연장 중 하나인 천마아트센터가 교내에 있다. 개교 60주년 기념으로 건축되었다. 그랜드홀과 챔버홀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스타벅스도 위치하고 있다. 경산이 대구광역시의 위성도시이자 공생관계에 가까운 지역이라 사실상 대구의 대형공연장이나 다름없다. 일부 행사의 경우 영남대 학생증이 있으면 할인된 가격에 티켓을 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8.4.2. 박물관[편집] 파일:영대박물관.jpg 영남대학교 박물관 국제교류센터(구 복지관)와 축구장 옆에는 박물관이 있다. 대구, 경산, 포항 등 인근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영남대 근처의 여러 고분군(일명 임당동 고분군)의 출토품을 전시하는 특별 전시관이 있다. 때때로 특별 전시도 하고 있으며, 박물관 앞에는 고인돌과 석탑 등을 조경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광개토대왕릉비 모형이 1층에 있는데 크기가 ㅎㄷㄷ하다 8.4.3. 민속촌[편집] 파일:영대민속촌.jpg 영남대학교 민속촌 본관 뒤편에 민속촌이 조성되어 있다. 구계서원, 쌍송정, 의인정사, 까치구멍집 등이 있는데 이는 안동댐 건설 수몰구역에서 이전 복원한 것이다. 그 외에도 경주맞배집, 인왕동 고분군, 화산서당 등 경주나 칠곡 등지에서 건축 중 발굴, 수몰 등의 이유로 이전 복원한 건물 및 유적지가 제법 있다. 나즈막한 야산을 끼고 있어서 봄철 꽃놀이 뿐만이 아니라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8.5. 등록금이 비싼 학교?[편집] 등록금이 비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 당시 2009년에 영남대 제2캠퍼스(대명동 캠퍼스)가 1위를 하게 되었는데 이 경우 본교만 발표한게 아니라 각각 캠퍼스를 따로 등록금 발표를 했었기 때문에 비싸다고 알려진 의대나 이공계열만 있는 학교들의 캠퍼스같은 경우 최상위권에 올라가게 되었고 반면에 실제 대학교 본교가 비싼 학교들은 은근슬쩍(?)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고 한다. 자칫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저 대학교 본교가 비싸구나 라고 오해를 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비싼 의대만 위치해 있는 영남대 대명동 캠퍼스(제 2캠퍼스)가 1위를 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영남대학교는 오해(?)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막상 2009년 전국의 의대 등록금 순위만 놓고 보면 영남대 의대는 9위라고 한다. 2013년 영남대 의대 등록금은 964만원으로 전국 의대중에서 18위 이다. 아무튼 이 때문에 대구 경북권 학생들이나 어른들은 이 통계를 보고 영남대가 등록금이 비싸다고 (사실 근처에 있는 학교보다는 비싸긴 하다 대표적으로 경북대학교가 있다.. 거긴 국립이야..) 잘못 알려지게 됐으며 아직까지도 영남대 등록금이 톱10 안에 든다고 잘못된 사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여전히 공대 등록금은 눈물난다 영남대 본교 경산캠퍼스 같은 경우 2013년 기준 대학알리미 사이트 자료를 확인해보면 1년간 평균 등록금이 730만원으로 전체 대학교 중 69위에 랭크 되었으며 이 통계는 왠만한 서울 사립 대학교 보다는 등록금이 싸고 전국 사립대학 등록금 순위에서는 중위권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대구, 경산 지역 대학교인 대구한의대학교 평균 등록금이 732만원으로 68위, 계명대학교가 714만원으로 84위, 대구가톨릭대학교가 710만원으로 88위에 각각 랭크되었다.별 차이 없다 8.6. 자동차 대회[편집] 국내에서 2개뿐인 대학생 자작자동차대회도 1996년부터 이 학교에서 매년 개최. Baja SAE KOREA 국제대학생자작자동차대회라는 이름으로 매년 7월 학교 뒷산의 길을 오프로드 코스로 만들어 수많은 자동차 엔지니어 지망 학생들을 관광보내고 있...었는데 2007년에 피치버그 대학에게 1위를 내주더니 그 이후부터는 성적이 영 신통치 않다. 게다가 춘천에서 열리던 KSAE 주관의 춘천 대학생 자작 자동차 대회가 군산으로 옮겨지면서 엄청난 스폰서를 받은 것에 비해 영남대학교 자작 자동차 대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참가 팀과 스폰서가 줄어드는 등 점점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매우 드문 확률로 튜닝된 대회용으로 추정되는 차를 볼 수 있었다 8.7. 동명의 학교[편집] 홍콩에 동명의 대학인 링난(嶺南)대학교가 존재한다. 링난대학교 홈페이지 2007년에 한국과 홍콩의 두 영남대가 자매결연을 맺기도 하였다. 관련 기사 광저우에도 동명의 링난대학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중산대학에 합병되었다. 8.8. 영호남 4개 사학 교류[편집] 동아대학교, 조선대학교, 원광대학교와 함께 1998년부터 영호남 4대 사학으로서 정기학술제, 학생 나눔봉사활동, 공동취업캠프, 행정 워크숍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상호 발전을 도모하며 교류하고 있다. # 9. 논란[편집] 영남대학교/논란 문서로. 10. 주요 출신 인물[편집] 자세한 내용은 영남대학교/출신 인물을 참조. [1] 영남대학교 가족주거학과 명예교수, 前 위덕대학교 총장 [2] 영남대학교 화학공학부 교수, 前 영남대학교 교학부총장 [3] 약 82만 평. [4] 양준혁의 자리가 신태용으로 바뀌었다. [5] 청구대와 대구대가 통합해서 영남대로 바뀌자, 기존 한사대가 버려진 대구대 이름을 가져다 썼다 [6] 이때 영남대의 법인인 학교법인영남학원 정관 1장 1조에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 박정희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써놓았다. 전 세계 유사사례를 찾기 힘든 학교의 주인을 정관에 명시한 괴이한 케이스. 심지어 박정희 사후에도 이 조항이 변경되지 않다가 현재는 결국 설립자 박정희로 변경되었다. [7] 독재에 영합하여 곡학아세한 그에게는 선생이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다. [8]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활약한 장군. 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공을 세웠고 이후 정식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다가 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 갇히자 주변의 만류에도 왕을 구하기 위해 북진하여 청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인조 당시에 인조가 죽음을 애석해 하며 제문을 지어주었고, 숙종 때에 사액 서우가 내려졌는데 당시까지 무반의 사당에 왕이 현판을 내린 사례는 충무공 이순신과 김시민의 사례 밖에 없었다. 국가의 양난에 무공과 충정을 보였으나 현재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위인. [9] 최진립의 손자인 최국선(1631~1682) 이후로 이 집안은 지역민•소작농에게 어진 경영을 하고, 모든 식객에게 공평한 대접을 하는 등 명망이 높아 20세기까지도 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10] 현재 영남대학교병원, 영남대 의과대학, 영남이공대학교가 있는 자리이다. [11] 당시엔 등록금도 교수월급도 다 설립자가 냈었다! [12] 3.15 부정선거 관련으로 구속된 적도 있으나 제9, 10대 국회의원에 부흥부 차관, 부흥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국무총리,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 역임 [13] 영남대를 비롯해 성균관대, 동국대 총장을 역임했다. 직업이 총장 [14] 당시 경북도지사 번호판이 경북 가 1001호였고, 영남대 총장 번호판은 경북 나 1001호였다. [15] 그저 막연한 주장은 아닌 것이, 70~80년대 졸업생들은 대구, 경북 일대에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함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지방사립대학으론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렸다. 그래서 현재도 대기업이나 고위 공직자 중에서 영남대학교 출신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6] 무려 20대에 이사장이라는 파격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주(校主, 학교주인)이라는 정관과 박정희 정부 하에서 직간접적으로 일한 사람들이 주요 이사진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17] 영남대학교의 이니셜인 Y와 더불어 Yield의 의미도 담고 있다 [18] D. McMgregor의 XY이론에 따르면 Y형 인간은 지시를 받기보다는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기를 선호하며 능력 발휘와 자아 실현을 중요시하는 능동적 인간이라고 한다. [19] 중어중문학전공, 중국어통번역전공 [20] 프랑스어문전공, 독일언어문화전공 [21] 2015년 국사학과와 사학과의 통합으로 탄생하였다. [22] 화학전공, 생화학전공 [23] 2015년 화학과가 생명공학부의 일부를 흡수하여 화학생화학부로 변경 [24] 화공시스템전공, 고분자·바이오소재전공, 융합화학전공(구 IT에너지화공), 에너지화공전공 [25] 공과대학에서 분리되어 신설하였다. [26] 기계설계전공, 기계시스템전공, 첨단기계전공 [27] 학과명에서 느껴지듯 그 분으로부터 모티브가 됐다 [28] 2014년 신설. [29] 상경관은 이전에 사회관으로도 불렸다. [30] 2017년부터 국제통상학부에서 무역학부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31] 약학전공, 제약학전공 [32] 전국에 해당 전공이 개설된 곳이 몇 없다. 1968년 설립 이후에 장관도 배출할 정도로 나름의 지지기반이 있다. 적어도 이쪽 계통에서는 알아주는 정도. 나름 서울경기쪽의 서울대와 건국대, 강원도쪽의 강원대처럼 경상도 쪽에서는 이 학과가 유명하다. [33] 체육학전공, 무용학전공 [34] 회화전공, 트랜스아트전공 [35] 작곡전공, 국악전공 [36] 피아노전공, 관현악전공 [37] 크게는 인문사회계열, 자연계열로 이루어져 있다. 인문사회계열 안에 공군장학생으로 이루어진 항공조종계열이 속해있다. 그러나 프라임사업으로 인해 2016년부터 자연자율전공학부 폐지, 인문자율전공학부는 순차적으로 인원 감축을 통해 학부를 서서히 없애 나갈 것이라고 한다.관련 기사 [38] 건축학전공(5년제), 건축공학전공, 건축디자인전공 [39] 생명공학전공, 분자생명과학전공, 미생물생명공학전공 [40] 경산버스보다 대구버스가 훨씬 많다. 단, 대구~경산 하양 구간을 운행하는 대구 급행5번, 518번, 708번, 808번, 814번, 경산 818번은 제외한다. [41] 1998년 906번으로 변경된 대구 버스로 2005년 609번과 통합되어 사라졌다. [42] 대구, 경산 노선을 모두 통틀어 유일하게 하양~진량~영남대~경산시장~서문시장 구간을 운행한다. [43] 399번, 990번은 해당 가지 노선만 운행 하며 영남대학교 건너편으로 편도 운행만 한다. [44] 719번과 980번은 예외로, 이 두 노선은 경산네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안심교를 건너 안심으로 간다. [45] 버스 정류장 쪽, 정문에서 횡단보도 바로 건너 정차 [46] 학생회에서 피터지게 싸워서 얻어낸 것이었다. 권리는 공짜가 아니다. [47] 정확히는 오렌지거리 [48] 사실 계대동문은 예전부터 막창골목으로 유명한 곳이라 굳이 재학생이 아니더라도 대구시민이 자주 애용했던 곳이다 [49] 경주 교동고택과 경주최씨 가문 선산도 영남대 소유이다. 일부는 영남대에서 민간 업체에게 매각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50] 현재는 #자 부분에 시계가 설치되어 있다. [51] 가장 메이저한 설이라서 대구 시민은 물론 교직원들도 사실이라고 믿는 설이다 [52] 캠퍼스 안에도 6-7개의 못이 있다. 실제로 이 못들을 다 보고 졸업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이 숨겨진 못들을 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무슨 목적이였던 간에 일부러 숲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길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한다. 후술했듯 이 연못들을 전부 찾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도 있다. [53] 실제로 교내방송 기획 중 공대생이 제2 인문관내 강의실을 찾아가는데 강의실을 찾는데 길을 못찾아 헤메는 경우도 발생했다.종합강의동에 붙어있다고 가르쳐 준 상태에서 시작했는데도 [54] 이 점은 인문관도 같으나 인문관은 상경관보단 건물이 작아 길찾기가 쉽다 [55] 상대에 대형강의실이 많아 타과 수업이나 시험에 종종 이용되곤 한다.정확하다. 소오름 [56] 출입이 가능한 문도 곳곳에 있어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간 길 잃어버려 빠져 나가지도 못한다. [57] 러브로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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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부탁해 지민 움짤 GIF 몇장 가져와봤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더 다양한 정보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리드보컬로서 주로 고음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방탄소년단의 무대나 타이틀 곡들 자체가 보컬보다는 래핑과 퍼포먼스를 강조한 곡들 위주였기에 파트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화양연화 pt.1 앨범을 기점으로 타이틀 곡과 수록곡에 보컬 위주의 곡들이 많아져서 파트도 많아졌고, 보컬로서의 면모도 보이기 시작했다. 데뷔곡인 No More Dream 당시에는 노래 비중이 큰 편이 아니었으나 N.O 때부터 점점 타이틀 곡에서 후렴구를 부르거나 킬링파트 비슷한 부분을 부르더니 I NEED U 타이틀 곡에서 후렴구를 제대로 부르고, 킬링파트까지 쟁취해냈다. 또한 방탄소년단 DARK&WILD 정규 앨범 5번 트랙 곡인 Let Me Know의 마지막 높은 고음 파트를 불렀다. 또 LOVE YOURSELF 承 'Her'의 1번 트랙 Intro : Serendipity를 부르며 높은 음역대로 첫 시작을 부드럽게 끌어주었다. 기본 음역대가 꽤 높은 편이라 고음 소화에 강하며 음색이 강점이다. 보컬 색에 있어 자신의 색은 가져가되 훨씬 더 단단해지고, 고음을 훨씬 더 느낌 있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민의 고음 파트 모음 정규 2집 앨범 "WINGS"의 타이틀 곡 "피 땀 눈물"의 G5(3옥타브 솔)[26] 코러스와 솔로곡 "Lie"에서 높은 고음을 소화하기도 했다. LOVE YOURSELF 承 'Her'의 1번 트랙 Intro : Serendipity는 위에서 말했듯이 높은 음역대로 부드럽게 이끌어주었다. 2017 MMA 봄날 무대에서 지민의 파트인 '허공을 떠도는 작은 먼지처럼'을 고난도의 안무[27]를 소화하며 라이브로 불렀다. 0:53부터 2.1.1. 음색[편집] 음색이 약간 미성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애절한 목소리로 팬들의 귀를 현혹시킨다. 특히 '피 땀 눈물' 도입부 부분의 "내 피 땀 눈무흘~" 부분은 지민 노래의 느낌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었다. 음색이 잘 드러나는 노래로는 '화양연화 part 2' 의 'House of Cards', 'Wings' 의 'Lie', 'Love Yourself 承 Her' 의 'Serendipity', 정국과 같이 부른 커버곡 'We Don't Talk Anymore'(1:01부터) 이 있다. 지민 음색 모음 1 [[https://www.youtube.com/watch?v=-jg0lPpalDo| 2.2. 댄스[편집] 방탄소년단의 메인댄서 솔로곡 "Lie" 뮤직비디오 메이킹 - 안무영상 2015 가요대제전 "Perfect Man" 커버댄스 직캠 2016 가요대전 오프닝 현대무용 2018.5.31 엠 카운트다운 "FAKE LOVE" 직캠 스펙트럼이 넓은 올라운더 댄서. 춤에 자부심이 있다. 각자의 춤선이 뚜렷한 방탄소년단 내에서도 특히 팝핀과 현대무용에서 강점을 보이는 멤버이다. 아크로바틱과 파워풀한 안무도 잘 소화하지만 "Butterfly" 같이 섬세한[28] 안무도 잘 소화하는 등 다양한 장르의 춤을 폭넓게 소화한다. 그루브, 파워, 강약조절, 유연성, 아름다움 춤선, 자기만의 느낌 이 모두를 갖추었다. 선이 아름다운 현대무용 장르의 춤은 물론 남성적인 힙합댄스도 독보적이다. 또 지민의 춤이 남다르게 눈에 띄는 이유중의 하나가 디테일이다. 여럿이 춤을 춰도 유독 혼자만 머리카락이 아름답게 움직인다든지 2017 가요대축제 "Lost" - 1분 54초부터[29] 사소한 웨이브 , 동작 끊어주는 끝처리 하나도 디테일이 다르다 이런것들이 더 지민의 무대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또한 아무리 힘들어도 동작 하나하나 절대 그냥 흘려추지 않는 프로의식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댄서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팝핀을 시작했으며, 비의 무대를 보고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부산예술고등학교 무용과에 진학하는데 무려 부산예술고등학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고 무용과에서 전체 수석이 나온 것이 지민이가 처음이라 학교 측에서도 굉장한 화제였다고 한다. 연습생 생활을 위해 서울로 상경하기까지 (예고 입시 준비 기간을 포함해) 2년 정도 현대무용을 한 경험이 있다.[30] 데뷔 초에는 힙합 아이돌이라는 방향에 맞추어 파워풀한 퍼포먼스 중심의 무대를 주로 선보였다. 이 시기 ��탄소년단 댄스 브레이크는 지민이 반 이상 담당했으며 다른 멤버가 담당하더라도 같이 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데뷔곡 "No More Dream"에서의 발차기, "We Are Bulletproof Pt. 2"에서 제이홉을 덤블링으로 넘기, "N.O" 때 공중돌기 아크로바틱을 주 무기로 한 댄스 브레이크 등이 있다. 제이홉, 정국과 함께한 '엠 카운트다운 댄싱9 스페셜 스테이지'에서도 리드로 춤을 춘 적이 있다. 아무래도 아크로바틱에 능하고, 방탄소년단 멤버들 중 유일하게 마샬 아츠를 할 줄 아는 멤버이기 때문이었던 듯 하다. 그러다 2015년을 기점으로 방탄소년단 곡에 섬세한 표현이 요구되는 안무들이 대거 포함되면서[31] 섹시 댄스 담당으로 거듭났다(!) 현대무용을 하다가 퍼포먼스 중심의 안무로 바뀌다보니, 쓰는 근육들이 익숙하지 않아 연습 과정에 고충이 있었다고 한다. 데뷔 전부터 방탄소년단 내에서도 알아주는 엄청난 노력파에 끈질긴 연습벌레로도 유명한데[32], 덕분에 데뷔 이후에도 춤의 정확도와 무대 표현 능력이 끊임없이 좋아지는 게 눈에 띄게 보이는 멤버 중 하나다. 현대무용을 배운 덕분인지 섬세한 감정 표현과 강약 조절이 발군이라는 평. 목을 잘 사용하고 체공 시간 또한 긴 편이다.[33] 이는 안무 중에 턴이 많이 들어가는 피 땀 눈물에서 잘 볼 수 있는데, 몸이 먼저 회전하고 중심축을 따라 목이 돌아가거나 멤버들 중 유일하게 360도 회전을 소화한다. 2016년 MAMA 공연에서는 안대로 눈을 가리고 턴이 반복되는 동작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평소 서 있을 때도 발을 팔(八)자로 벌린 채로 서 있는 경우가 많다.[34] 또한 방탄소년단 내 독보적인 유연성 부문 1위.[35][36] 방탄소년단의 안무를 맡고 있는 손성득도 인터뷰에서 지민이는 탄력이 있고, 무용했던 친구라 선이 예뻐서 소프트하면서도 강한 매력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기존 안무 위에 자잘한 기교를 섞는 애드리브가 많은 것도 특징.[37]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에서 강렬한 댄스로 눈도장을 찍는 멤버 중 하나이다. 2015년 '쩔어'에서 강렬한 붉은색 머리 + 초반부 후렴구 부분에서 슬슬 조짐을 보이더니 # 2016년 '불타오르네' 뮤직비디오 3분 33초경 파워풀한 군무 장면에서 센터를 차지했다. 화제의 3분 33초 외국인 리액션 영상을 보면 지민이 센터로 등장하는 이 두 장면에 대한 반응이 좋다. 2016년 정규 2집 "피 땀 눈물"에서는 자켓을 벗어 제끼는(!) 퍼포먼스로 눈도장을 찍었다.# 2015년 RUN 활동 시기에 출연한 주간 아이돌[38]에서 한 팬의 부탁으로 데뷔 이래 처음 현대무용을 선보였다. [39] 이후 2016년 SBS 가요대전에서 현대무용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어색하지 않게 쓸 수 있는 이름. 부모들이 아이가 예로부터 이어지는 성 관념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라나길 바라나는 소망을 담아 작명하는 경우가 많다. 20세기 이후 전세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부류에 속한 이름들이다. 중성적인 이름 대부분은 남자에게보다 여자에게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걸그룹에서 멤버 중 1명 이상이 중성적인 이름을 가지긴 하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이름들을 중성적인 느낌으로 보지 않는다. 이름, 동명이인 문서도 참고하면 좋다. 2. 사례[편집] 문서가 지나치게 길어지면 폭주할 우려가 있으므로 실제 나무위키에서 문서가 만들어진 이름만 작성할 것. 2.1. 한국[편집] 한국은 주로 순우리말 이름인 경우와 이름에 음성모음[1]과 비음계열의 받침[2]을 쓸 경우에 자주 나타난다. 가람 가온 가을 겨레 경민 경원 경하 기연 기주 남주 노아 누리 다운 다원 다현[3] 도영 도희 동희 두리 로운 루다 명진 문영 미래 미르 민 민성 민수 민서 민영 민재 민하 민현 바다 바람 보람 서원 서진 서현 선우 선형 성민 성연 성원 성은 성주 성현 세영 세원 세정 세진 세현 세형 수민 수빈 수완[4] 수영 수진 수현 슬기[5] 승리 승민 승주 승현 승희 시영 시온 시원 시윤 시현 아인 어진 여름 연수 연우 영선 영주 요나[6] 우리 우정 우주 우진 원희 유민 유빈 유신 유정 유진 윤수 윤영 의진 이현 장희 재경 재림 재원[7] 재은 재인 재하 재희 정민 정수 정우 정인 정원 정은[8] 정인 정진 정현 정희[9][10] 주경 주영 주원 주현 지민[11] 지수 지안 지영 지우 지원[12] 지현 지호 지후 진[13] 진리 진수 진아 진영 진우 진주 진화 진희 찬희 태경 태선 태양 태연[14] 태영 태원 태은 태진 태희[15] 평화 한 하늘 하루 한결 한별 한솔 한울 해리 해인 해진 혜성 현 현민 현주 현진 호연 호영 호진 화영 환희 효민 효성 효진 희연 희현 2.2. 일본[편집] 나기사 나오 나츠 나츠메 레이 렌 료 린 마오 마유 마코토 마히로 모토미 미츠루 미츠키 사쿠야 세나 세카이 시노부 시즈쿠 소라 스바루 아유무 아키 아키라 유(유우) 유즈루 유키(유우키) 이오리 이즈미 이츠키 츠바사 츠바키 츠카사 치아키 치카루 치히로 토오루 카나메 카에데 카오루 카즈미 카츠미 케이 하루 하루카 히나타 히비키 히지리 히카루 히카리 2.3. 서양[편집] 서양의 남녀 공용 이름은 '남성형과 여성형�� 발음은 같고 표기는 다른' 경우가 왕왕 있다. 혹은 같은 애칭을 남성형의 애칭으로 쓰기도 하고 여성형의 애칭으로 쓰기도 한다. 니콜[16]/니키 다니엘[17] 도미니크[18] 라일리 랜디[19] 레슬리 로리 로빈[20] 로사리오 루[21] 루이스 르네[22] 린[23] 마르셀[24] 매디슨[25] 맥스[26] 메릴 미셸[27] 모건 발레리 바비[28] 버니[29] 베일리 블레어 블레이크 사샤/샌디/알렉스[30] 샘[31] 세이지 아리엘[32] 안드레아[33]/ 앤디[34] 알렉스 애슐리 에블린 예가네 제시 제이미[35] 조던 조이 줄리안[36][37] 찰리 카메론 카미유[38] 카일 케네디 케리 켈리 코리 콜린 크리스 클레르/클레어[39] 클로드 킴벌리 테리[40] 테일러 트레이시 프랭키 헤이든 힐러리 [1] 특히 'ㅓ', 'ㅕ', 'ㅜ', 'ㅠ', 'ㅡ'와 이 모음들이 들어간 이중모음. [2] 주로 'ㄴ', 'ㅇ' [3] 당장 김다현만 해도 다현이라는 가명을 쓰는 남자 배우와 걸그룹 TWICE의 멤버 다현이 있다. [4] 어감은 남자 이름 쪽에 가깝지만, 영어 단어 Swan의 음차로 여겨지는지 여성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작가이자 동명의 주인공 이름인 이수완이나, 유명 여성 드라마 작가 진수완, 엔젤아이즈의 여주인공 윤수완 등등. [5] 슬기와 의미가 같은 지혜는 여자 이름이지만 슬기는 남녀공용으로 쓸 수 있다. 하지만 주로 여성에게 쓴다. [6] 성경 인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기독교 가정의 아들에게 이 이름을 붙여주는데, 종교와 상관없이 단순 어감 때문에 여자 이름으로도 많이 쓰인다. [7] 주로 남자이름이 많으나 대표적인 여자 재원은 미스코리아 서재원이 있다. [8] 남자 정은은 윗동네에 사는 지도자가 가장 유명하고 여자 정은은 배우가 가장 유명하다. [9] 여자 이름이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熙는 남자 이름에도 많이 쓰이는 한자다. 물론 姬는 빼도 박도 못하는 여자 전용 한자다. 사실 이는 -희 자 이름 대개가 비슷하다. [10] 대표 예로 남자 정희는 추사 김정희 및 전 대통령 박정희. 후자는 당대에 '푸른 기와집에 정희와 영수가 사는데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게?'라는 우스개가 유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11] 주로 여성에게 쓰이는 이름이다. 여자 유명인으로는 배우 한지민, AOA의 신지민 희극인 김지민, 남자 유명인으로는 방탄소년단의 박지민 등이 있다. [12] 주로 여성에게 쓰인다. [13] 둘 다 예명이긴 하지만 걸그룹 러블리즈에 진도 있는 반면 방탄소년단에도 진이 있다. 근데 본명으로 들어가면 전자는 뼛속까지 여자 이름이고 후자는 뼛속까지 남자 이름이다. [14] 소녀시대 태연과 야구선수 김태연이 있으며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 이름으로도 많이 쓰인다. [15] 남자 비율이 더 높지만 유명한 여배우 중에도 이름이 태희라는 사람도 있다. [16] 남녀 모두 쓰기는 하지만 대체로 남성은 'Nicole'의 원형인 Nicolas/Nicholas나 축약형인 'Nick'을 더 많이 쓴다. [17] 남자는 Daniel, 여자는 Danielle인데 둘 다 발음은 똑같다. 허나 전자는 강세를 앞쪽에, 후자는 뒤쪽에 준다. [18] 발음은 같으나 형태는 다르다. 남성형은 Dominic, 여성형은 Dominique [19] 원래는 남자 이름이지만 글로벌 시대의 영어이름 사전에 따르자면, 1960년대~70년대 사이에 느긋하고 편안한 느낌의 여성 이름으로 자주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20] Robyn이면 무조건 여자 이름이다. 대표적인 예가 리아나 [21] 남자는 Louis, 여자는 Louise/Louisa의 애칭으로 쓰인다. [22] 발음상의 차이가 없기는 하지만 여성은 'e'를 덧붙여 표기한다. 그러니까 남성형은 René, 여성형은 Renée가 된다. [23] 보통 여자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 남자에게 쓰인 적이 있었다. [24] 발음상의 차이가 없기는 하지만 여성은 '~le'를 덧붙여 표기한다. 그러니까 남성형은 Marcel, 여성형은 Marcelle이 된다. [25] 남자에게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이름이지만 여자 이름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여자아이 이름 2위까지 거머쥔 적이 있다. [26] 남자는 Maximilian 아니면 Maxwell, 여자는 Maxine의 애칭으로 쓰인다 [27] 발음상의 차이가 없기는 하지만 여성은 'e'를 덧붙여 표기한다. 그러니까 남성형은 Michel, 여성형은 Michelle이 된다. 하지만 영어인 경우 거의 100% 여성이다. [28] 남자는 Robert, 여자는 Barbara의 애칭으로 쓰인다. 하지만 영문 철자는 Bobby, Barbie로 각각 다르다. [29] 남자는 Bernard, 여자는 Bernardette의 애칭으로 쓰인다. [30] 남성형 Alexander/여성형 Alexandra에서 유래. [31] 남성형 Samuel/여성형 Samantha에서 유래. [32] 여자는 Arielle로 쓰기도 한다. [33] 하지만 이탈리아어인 경우 거의 100% 남성이다. [34] 남성형 Andrew/여성형 Andrea에서 유래 [35] 남녀 모두에게 쓰이지만 남자는 Jamie, 여자한테 쓰일 때에는 Jaimie나 Jaime가 더 자주 쓰인다. [36] 정확하게는 남자에게 쓰일 때에는 Julian 또는 Julien으로, 여자에게 쓰일 때는 Julianne이 맞는다. [37]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Julian이라는 표기가 남녀 모두에게 쓰였다. [38] 이 이름 때문에 일어난 것이 그리프스 전역... [39] 남성형 Clair, 여성형 Claire [40] 여성형은 테레사의 애칭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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