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김숨
fujimoto-h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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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ム・スム『ひとり』(三一書房)を読み終えた。 #finishedreading #김숨 #한명 #KimSoom #OneLeft (藻川) https://www.instagram.com/p/Bt73KHyFvmx/?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a76w5sqqnm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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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yul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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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들
벽돌공들은 벽돌공장 내부에 허술하게 지어놓은 가건물에 모여 살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를 벌어서 하루를 먹고살았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그들에게는 딸린 식구도 없었다. 벽돌공들은 술에 취하면 양철 조각 같은 어금니를 드러내며 서로를 죽어라 물어뜯었다. 허공에 대고 소주병을 깨뜨렸다. 벽돌공들이 돌아가고 난 뒷면 만우슈퍼 앞 들마루에는 깨진 소주병 조각들이 처참하게 널려 있었다.
나는 벽돌공들이 입을 벌리고 회색의 직사각형 벽돌을 토해내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벽돌공들은 철로 가에 우글우글 모여 앉아 고통스럽게 벽돌을 토해내고 있었다. 벽돌을 모조리 토해낸 뒤 양철 조각 같은 어금니를 광포하게 빛내며 벽돌공장 쪽으로 몰려갔다.
고백하자면, 아버지가 벽돌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다행스럽게 여겼다. 어찌 되었든 아버지는 벽돌공만은 아닌 것이다. 벽돌공만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릴 때마다 내 정수리를 향해 회색의 직사각형 벽돌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찔해졌다.
나는 언젠가 ‘실을 뽑는 남자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남자에게는 국경 재경 숙경 인경 진경 민경이라는 여섯 명이나 되는 딸들이 있는데, 그 여자아이들은 밤마다 아버지가 뽑아낸 실 뭉치를 이불처럼 덮고 잔다는…….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사람들은 고독해했고, 고독의 기운은 바위처럼 무겁게 사람들의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나는 이후로 누구에게도 실을 뽑는 남자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실을 뽑는 남자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ㄱ’으로 불리는 사람이 내게 불쑥 실을 뽑는 남자에 대해 물어왔다. ㄱ은 ‘실을 뽑는 남자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들려줄 때만 해도 자신은 스물여섯 살이었으며,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무렵 ㄱ은 많은 것들을 믿지 못했다고 했다. 마음속이 불신과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차 자기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서른여섯 살이 된 지금도 많은 것들을 믿지 못하지만 이상하게도 실을 뽑는 남자 이야기만은 믿게 되었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실을 뽑는 남자’가 단 한 명쯤은 존재하지 않겠습니까? 표면적이 약 1552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지구에 흩어져 있는 63억만 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 단 한 명쯤은…….
ㄱ은 그리고 그 단 한 사람이 매일 밤 맥주나 담배나 라면을 사기 위해 들르는 슈퍼마켓의 주인 남자이거나 은행 창구의 유독 입술이 얇은 남자이거나 출근길에 지하철 안에서 마주치곤 하는 남자일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는 당황했고, 내가 언제 ‘실을 뽑는 남자 이야기’를 했느냐는 표정으로 ㄱ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ㄱ은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실을 뽑는 남자가 이 세상에 단 한 명쯤은 존재할 거라는 믿음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입술을 바늘처럼 뾰족하게 내밀어 보이더니 성큼성큼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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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back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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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그녀는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오래 살기를 바랐다. 부디 하루라도 더 오래 살기를. 죽음뿐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아버지라는 한 남자에게서, 어머니라는 한 여자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런데 그녀의 생각은 틀렸다.
김숨의 소설집 ‘당신의 신’ 속 ‘이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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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ooksociety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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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버스 신간]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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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배수아, 박솔뫼, 김혜순, 김금희, 김숨, 김언수, 편혜영, 마크 본 슐레겔, 아말리에 스미스, 안드레스 솔라노, 이상우
미디어버스, 부산비엔날레 공동발행 2020년 7월 8일 발행 언어: 한국어/영어 디자인: 신신 ISBN 979-11-90434-05-8 (93600) 148x210mm / 480페이지 값 20,000원
책 소개 문학 ���가들이 쓰는 부산의 이야기들
열 개의 단편 소설과 다섯 편의 시를 수록한 이 책은 2020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를 위해 제작되었다. 광범위한 장르와 세대, 문체를 보여주는 열한 명의 저자들은 부산을 배경으로 탐정물, 스릴러, 공상과학, 역사물 등 다양한 형식 아래 혁명과 젠더, 음식,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부산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쓰기 위해 초대된 저자들은 도시를 둘러싸는 가상의 층­을 창조했다. 이들 중 일부는 도시를 직접적으로, 다른 일부는 간접적으로 다뤘다.
현대미술과 현대문학의 만남, 문학을 통해 보는 현대미술 2020년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하는 70명 이상의 시각 예술가와 음악가들은 이 책에 수록된 글이나 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업을 제작하거나 기존의 작품을 선택했다. 2020년 부산비엔날레 전시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는 부산을 문학과 음악, 시각 예술이라는 만화경을 통해 복합적으로 제시한다. 그 중에 전시의 뼈대나 다름없는 열한 명의 저자들이 집필한 텍스트는 각 장으로 나뉘어 도시의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김숨, 김혜순, 배수아, 마크 본 슐레겔, 아말리에 스미스, 이상우, 편혜영의 이야기를 담은 일곱 개의 장은 부산현대미술관에 자리한다. 김금희, 박솔뫼, 안드레스 솔라노의 이야기는 부산의 원도심 지역인 중앙동에 다양한 장소들을, 마지막 장인 김언수의 이야기는 영도 항구에 있는 한 창고를 차지하게 되었다. 전시장으로 선정된 공간은 부산의 중요한 역사적 장소들로, 여기에 수록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의 이야기와 전시는 관람객들이 부산의 탐정이 되도록, 그리고 이 도시의 다양한 지역을 탐험하고 재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목차
야콥 파브리시우스 - 서문 배수아 - 나는 하나의 노래를 가졌다 박솔뫼 - 매일 산책 연습 김혜순 - 오션 뷰 / 고니 / 자갈치 하늘 / 해운대 텍사스 퀸콩 / 피난 김금희 – 크리스마스에는 김숨 – 초록은 슬프다 김언수 – 물개여관 편혜영 – 냉장고 마크 본 슐레겔 – 분홍빛 부산 아말리에 스미스 – 전기(電氣)가 말하다 안드레스 솔라노 – 결국엔 우리 모두 호수에 던져진 돌이 되리라 이상우 – 배와 버스가 지나가고
저자 소개
김금희는 1979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한 소설가이다. 단편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중편소설 『나의 사랑, 매기』 등을 출간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우현예술상 등을 받았다.
김언수는 1972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태어난 소설가이다. 장편소설 『캐비닛』, 『설계자들』, 『뜨거운 피』 와 소설집 『잽』이 있다. 작가의 작품들은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등 전 세계 20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뜨거운 피』가 한국에서 영화로 제작되었고 『설계자들』이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 중에 있다.
김숨은 1974년 대한민국 울산에서 태어난 소설가이다.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장편소설 『철』 『노란 개를 버리러』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 『흐르는 편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소설집 『침대』 『간과 쓸개』 『국수』 『당신의 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등이 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김혜순은 1995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陰畵』,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 『당신의 첫』, 『슬픔치약 거울크림』,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날개환상통』,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나)』, 『여성, 시하다』, 『여자짐승아시아 하기』, 시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출간했으며,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문학상, 올해의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이형기문학상,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했다.
박솔뫼는 1985년 대한민국 광주에서 태어난 소설가이다.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겨울의 눈빛』, 『사랑하는 개』를 비롯해 장편소설 『을』,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 등을 썼다. 김승옥 문학상과 문지 문학상, 김현 문학패를 수상하였다.
배수아는 1965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번역가이다. 1993년 첫 단편 이후로 지금까지 꾸준히 장편과 단편, 에세이 등을 발표해왔다. 2018년 단편집 『뱀과 물』을 출간한 이후로 자신의 작품을 직접 낭송극으로 만들어 수 차례 공연을 했다. 가장 최근 발표한 작품은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이며, 베르너 프리치 감독의 필름 포엠 〈FAUST SONNENGESANG〉 프로젝트의 III편(2018)과 IV편(2020)에 낭송배우로 출현했다.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는 1977년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소설가이다. 『나를 구해줘, 조 루이스』, 『쿠에르보 형제들』, 『네온의 묘지』를 출간했다. 또한 한국에서 6개월 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 『최저 임금으로 살아가기』, 한국에서의 삶을 그린 논픽션 『외줄 위에서 본 한국』은 2016년 콜롬비아 도서상을 수상하였고, 2018년 『한국에 삽니다』로 번역되었다. 또한 영국 문학 잡지인 ‘그란타’의 스페인권 최고의 젊은 작가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마크 본 슐레겔은 196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독일 쾰른에서 거주 중인 미국/아일랜드 국적의 소설가이다. 데뷔작 『Venusia』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에서 SF 부문 수상 후보에 올랐으며, 소설 『Dreaming the Mainstream: Tales of Yankee Power』, 『New Dystopia』, 『Mercury Station: a transit』, 『Sundogz』, 『High Wichita』 등이 있다. 지속적으로 실험적인 공상과학, 문학 이론, 예술에 대한 글을 독립 출판계에서 출간하고 있다.
아말리에 스미스는 1985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시각예술가이다. 2010년부터 8권의 하이브리드-소설책을 출간했으며, 대표작으로는 『Marble』과 『Thread Ripper』를 꼽을 수 있다. 작가의 작품은 물질과 관념의 뒤얽힌 것들을 조사하며, 덴마크 섬에 있는 육식 식물, 디지털 구조로서의 직물, 인공적 삶의 선구자로서의 고대 테라코타 조각상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룬다. 덴마크예술재단상 (2017-2019), 로얄 크라운 프린스 커플스의 떠오르는 스타상, 모르텐 닐센 기념상, 뭉크-크리스텐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몬타나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이상우는 1988년 대한민국 인천에서 태어난 소설가이다. 『프리즘』, 『warp』, 『두 사람이 걸어가』를 발표한 바 있다.
편혜영은 1972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난 소설가이다.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밤이 지나간다』, 장편소설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선의 법칙』, 『홀』, 『죽은 자로 하여금』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젊은작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셜리 잭슨상을 수상했다.
책 속에서
파도가 밀려와 우리의 몸을 적시기 시작하지만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파도가 점점 밀려와 앉아 있는 우리의 몸 위로, 가슴 위로, 마침내는 목까지 물이 차오르지만,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파도가 점점 밀려와 마침내 우리의 머리가 물 속으로 잠기기 시작한다. 파도가 점점 밀려와 마침내 우리의 형체를 완전히 집어삼킨다.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단지, 나는 하나의 노래를 가졌다. 나는 하나의 춤을 가졌다. 나는 하나의 바다를 가졌다. 빛이 산산이 부숴지는 수면 위로 흰 새의 형태를 가진 목소리가 날아간다. 그날 바닷가에서, 죽기 전의 싱그러운 젊은 처녀인 친척 여자에게, 나는 입맞추었던가. 구부러진 가운데 손가락을 가졌으며, 파도처럼 부서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집을 나갔던 내 최초의 여인, 그녀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대신 웃음을 멈추지 않으면서, 해변의 새들을 향해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새를 보고 있는 건 아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엄마. 내 입에서는 생애 최초의 말이 흘러나오지만, 나와 그녀, 둘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30페이지, 배수아, 「나는 하나의 노래를 가졌다」 가운데)
술을 마시면 잠이 들어버리는 사람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고 잠들면 금세 잠에서 깨어버리는 사람. 바의 주인은 끝까지 점잖게 자리�� 정리하고 선물로 꼬냑을 한 병 두고 갔다. 꼬냑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는 쓰레기를 손에 들고 나갔다. 나는 최선생의 거실에서 자겠다고 하였다. 이를 닦고 나와 최선생과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우리는 보리차를 마시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와 영화 사이 광고는 길고 나는 저 감독의 다른 영화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하며 영화 줄거리를 설명하려 하였지만 이미 본 영화의 내용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나는 그 때 알게 되었다. 내가 설명을 시작한 영화는 자주 막히고 이야기는 뜸을 들이고 주인공들은 무엇을 할지 몰라 멈췄다가 어색하게 움직였다가 그런 식으로 덜컹거렸다. 이야기를 얼버무리다 영화는 다시 시작하였고 나는 다음 광고쯤 잠이 들었다. (42페이지, 박솔뫼, 「매일 산책 연습」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열에서 낙오한 흰 고니가 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에 왔다 얼굴에 흰 천을 씌우고 상한 날개를 잘라야 했다 날개를 자르자 흰 고니는 더 이상 먹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눈을 가리고 주둥이를 묶고 그 사이로 미음을 집어넣었다 (80페이지, 김혜순, 「고니」 가운데)
SNS에서 맛집 알파고 얘기가 퍼진 건 지난여름부터였다. 맛집 알파고의 활동을 요약하면 이렇다. 사람들이 트위터 멘션이나 댓글로 음식 사진을 보내면 상호를 맞힌다. 물론 보낸 사람은 사진에 대한 힌트를 전혀 주지 않는다. 예를 들면 다를 것 없는 떡볶이 떡과 다를 것 없는 어묵, 평범하기 그지없는 고추장 양념의 색과 그릇을 보고도 M대학 인근의 엄마손 떡볶이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다. 정확도는 놀랍게도 99.9퍼센트였다. (102페이지, 김금희, 「크리스마스에는」 가운데)
남포동 미도리마치에 내 친구들이 있다고 알려준 이는, 싱가포르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사귄 여자애다. 그녀는 보름 전 불쑥 날 찾아왔다. “9년 만에 고향집에 갔는데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날 못 알아보더라. 동생들은 쫄쫄 굶고 있고.” 그녀는 양산 내 고향집 마루에 드러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는 똥지게를 지고 마늘밭에 거름을 주러 갔다. 그녀는 내 친구들이 미도리마치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미도리마치, 미도리, 미도리…… 미도리는 초록이다. 위안소에 미도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애가 있어서 나는 그 뜻을 알고 있다. (170페이지, 김숨, 「초록은 슬프다」 가운데)
철판을 때리는 망치질 소리에 수레는 눈을 떴다. 새벽 두시였다. 깡깡! 깡깡! 리듬을 타는 힘차고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 선박 수리 조선소에서 새벽 교대조로 일하는 깡깡이 아줌마들의 첫 망치질 소리일 것이다. ‘제발 잠 좀 자자. 뭘 얼마나 잘 살겠다고 꼭두새벽부터 망치질이냐’, 베개 속으로 더 깊이 머리를 파묻으며 수레가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잠은 이미 깨버렸다. 몇 시간이나 잠들었던 것일까. 한 시간? 두 시간? 요즘엔 엉망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엎어져도 좀처럼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른 봄, 호수 수면에 남은 마지막 살얼음판처럼 잠은 너무나 얇고 아슬아슬해서 작은 진동이나 소음에도 쉽게 깨져버린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수레는 생각했다. 베트콩들이 밤새도록 포탄을 쏘아대던 밀림에서도 잘 잤고, 극성맞은 거머리와 모기떼가 들끓는 진흙탕 참호 속에서도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잘 잤었다. 10미터짜리 파도가 연신 덮쳐대던 태평양의 그 작은 원양어선 기관실 위에서도 늙은 고양이처럼 잠만 잘 잤었다. 그런데 이 푹신한 침대 위에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잠을 더 자야 했다. 새벽에 아치섬에서 중요한 거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거래가 끝나기 전에 누군가 죽을 것이다. (202페이지, 김언수, 「물개여관」 가운데)
그해 K시를 연고지로 둔 야구팀의 성적은 예상 밖이었다. 원년 멤버인 야구팀은 오랜 부진을 겪고 있었고 그해 역시 마찬가지로 비관적인 성적이 예상되었다. 이미 전성기를 지난 팀이라는 것이 공통된 견해였다. 선수들 평균 연령이 높았고, 투수진은 나이가 더 많았고 부진한 실적에 비례해 구단의 투자는 갈수록 줄었다. 하지만 그해 봄 연승을 거두었다. 공공연하게 놀림을 받던 지난해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서른넷에 복부 비만이 뚜렷해진 7번 타자가 홈런을 쳤을 때, 동네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 함성에 김무진의 울음소리가 묻혔다. (264페이지, 편혜영, 「냉장고」 가운데)
1950년, 대한민국에는 부산과 인근 지역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오래된 국제 항구에서 자본주의를 쥐어짜 내는 건 불가능했다. 부산 최전선 사수 후 도착한 유엔군의 도움으로 서울까지 다시 밀고 올라가 나라를 도로 세울 수 있었다. 몇 해 동안 부산은 미국의 직접적인 통치 하에 놓였다. 바둑, 골프, 낚시를 빼고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야구를 제외하고는 부산중부경찰서만큼 도드라진 미국의 잔재를 찾기 어려웠다. 부산국제영화제조차 유럽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308페이지, 마크 본 슐레겔, 「분홍빛 부산」 가운데)
저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무궁무진합니다. 건물 외부에 매달려 마치 벌떼처럼 웅웅 거리는 에어컨 실외기. 아주머니들이 모여 수다를 는 빵집 구석의 UV벌레 퇴치기. 노래 〈작은 것들의 위한 시〉가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카메라에 포착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휴대전화 스크린. 빨강, 파랑, 초록의 미세한 다이오드. 샤부샤부 식당 식탁의 내장형 전열기. 관절염에 걸린 할머니가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전기장판. 빨간불이 켜질 때까지 카운트다운하는 교통신호. 음료나 음식이 준비되면 진동과 함께 삐 소리를 내는 동그란 진동벨. 지하상가에서 지친 이들의 종아리를 풀어주는 기계 (제가 없다면 지하상가는 어두운 터널 형태의 화장실에 불과하겠죠.). 휘어진 네온사인과 LED. 자갈치 시장 앞에서 깜박거리는 물고기 떼.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의 주황색 불빛. 매해 12월, 광복로 차 없는 거리를 수놓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나무들 사이에서 빛나는 순록. 그리고 상점 창문에 움직이는 글자와 춤추는 전화번호를 표시하는 것도 저예요. (334페이지, 아말리에 스미스, 「���기(電氣)가 말하다」 가운데)
떠나기 전, 유리는 나에게 일기장을 갖고 다니라고 했다. 적어도 자기 자신은 찾을 수 있겠죠. 부산항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일기장 따위는 갖고 다닌 기억이 없다. 일기란 가장 일그러진 형태의 노출증이라고 생각한다. 일기를 쓰는 행위에는, 그 내용이 아무리 비밀일지라도, 누군가 읽을 것이라는 희망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그칠 줄 모르고 자신을 향해 내뱉는 소리나 혼잣말과는 다르다. 일기는 불완전한 상태의 자아가 그 순간에만 드러내는 최대치의 진실을 보여줄 뿐이다. 마치 사무실 창 너머로 보이는 저 바닷물처럼 인간이란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그 밑을 들여다보면 시시때때로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360페이지, 안드레스 솔라노, 「호수에 던져진 돌이 되리라」 가운데)
여기에 왜 오셨죠. 도착해보니 여기였어요. 여관 앞 골목에 들어서면 맞은편에서 출근 중인 백인여성들이 걸어오고 긴 다리 교차해 걸으며 도넛 박스에서 도넛 꺼내먹는 그들과 서로 길을 비켜주고 가끔은 농담을 나누고 가끔은 말없이 서로의 표정에 패인 구덩이의 깊이만큼 고개 숙여 지나가고 가끔은 단속반이 비자 없는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있었고 그런 날에는 길을 되돌아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타워를 중심으로 이리저리 구부러진 공원을 몇바퀴 돌았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언덕의 갈림길이 많은 공원에서 몇 번은 뒤를 돌아보면서 빙글빙글 걸어온 길 위로 자기 자신이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을 향해 지금의 자신과 똑같은 옷차림으로 걸어오고 있는 꿈에서 깨어나면 사람들이 사라진 옆방에서 오늘은 쫓겨나지 않은 이들이 수치심을 지워내려 안간힘 다해 코를 골아대고 있었고 책상에 앉아있던 티엔은 두 이모들이 가르쳐 준대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406페이지, 이상우, 「배와 버스가 지나가고」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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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mytown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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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떠도는 땅 - 김숨
[책]떠도는 땅 – 김숨
소설은 내내 기차 안에 머무른다. 연극 대사와 같은 말은 한숨처럼 툭툭 바닥에 떨어진다.
1937년 러시아 극동지방에 머물던 조선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다.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조선인들은 땅을 떠돌다 보니 땅이 떠돌게 된 이야기를 나눈다.
압도적인 이야기의 힘이 있다.
<떠도는 땅> 역사적 상흔을 하나씩 길어올리는 작품을 속속 선보이는 김숨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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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lovlun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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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요조
7 책머리에 이 직업은 명백하게 멋이 있다 17 건강하고 튼튼한 예술가가 되는 법 23 겁쟁이 음악가의 친구 29 시는 언제나 어렵고 그것은 나에게 아주 쉬운 일이다 33 너의 이름에 바칠 수 있는 코드 40 아침의 저주 46 아름다운 것을 무서워하는 일 51 지원에게 57 그저 막상막하로써?김숨, 『L의운동화』를 읽고 63 답답하면서도 어쩐지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나의 굴레 69 자는 얼굴 아름다움은 재미있다 77 Between Us 86 시래기 볶음을 만들다가 친구의 바다에 놀러 가기 92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98 할아버지 106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114 나는 나의 남은 인생을 내 주변의 멋진 사람들을 흉내 내면서 살고 싶다 123 나는 『아무튼, 떡볶이』라는 책을 쓰고 이런 일이 있었다 133 아름다움은 재미있다 138 나의 크고 부족한 사랑 142 정말 재미있다 150 부드럽게, 허벅지가 터지지 않게 158 작았다가 커다래지는 우리들 옆에 서기 167 동네 책방을 운영하며 가장 크게 느껴지는 어려움 173 구겨진 얼굴 177 가장 불쌍한 것은 인간 181 저는 채식주의자이고 고기를 좋아합니다 189 택시는 좋은 것이다 199 어깨, 홍갑, 수진 205 배가 부르고 기분도 좋아지는 나라 209 참 예쁜 것 213 사유의 공격 219 길고 꾸준하게 먹는 일 224 호텔에서 묵는 일에 레벨을 매길 수 있다면 나는 레벨 1이다 232 오래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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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rypwelsh-blog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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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김미월, 김금희 @서울북앤컬쳐클럽 주최자: 배리 웰시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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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nkun0204-blo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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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집에 지인들을 초대할 생각입니다.
어쩌다보니 정처없이 떠도는 삶을 살아온 제게 '집'이란 공간은 낯설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의미와는 상관없이
늘 '누군가의' 집에 살아왔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 누군가들의 탓이 아닌 제 자신의 마음가짐 문제였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집'이란 말이 편안하고 따뜻할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준 이에게는 항상 감사하겠지요.
얼마전 읽은 김숨 작가의 '너는 너로 살고 있니'란 책제목이 내내 마음에 파문을 남기고 있습니다.
내가 나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언뜻 떠올려봐도 수만가지의 '나'가 떠오릅니다.
(수만까지는 아니겠네요 ㅎㅎ)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부터 생각해봐야겠네요.
어떤 내가 되고 싶은건지...
항상 '누군가'를 지키기위해 아둥바둥 살아온 거 같습니다.
거창하지만 그게 정말 물리적일 때도 있었고,
정신적으로 '누군가의 마음'이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이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나를 내버려둔 채 채찍질하며 살아온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이제는 누군가의 마음이 아닌
내 자신의 마음이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때 같습니다.
여러사람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것으로 인해
그들이 날 떠날까 두려워
내 마음에만 하던 칼질을 잠시 멈춰보려 합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준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농담으로 감출 마음 한덩이 나눠야겠습니다.
그전에...집을 좀 채워야겠네요
집엔 도대체 뭐 이렇게 살게 많은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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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jimoto-h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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ウイルスとバレンタイン・キッス地獄と架空の読書会と『メタフィクション』とキム・スム(김숨)『ひとり(한명)』と連続する問題と
 13、14とウイルス性胃腸炎で寝込んで仕事も休み、しかし本を読んだりDVDを消化したりする余裕はとてもなく。14日のアトロクでの三時間耐久「バレンタイン・キッス」地獄を耐え抜き(放送開始から終了まで三時間ずっと「バレンタイン・キッス」が流れつづけるという、前身の『ウィークエンド・シャッフル』からつづく伝統的な恐るべき企画)、15日になんとか職場復帰を果たしたが、体調は本調子ではとてもなく、通退勤時に読むキム・スム『ひとり』の内容に耐えるのもやっとのことだった。
 16日、昨年11月に書いていた架空の読書会ポラーノの、私は二回目の参加。テーマは前とおなじだった。パトリシア・ウォー『メタフィクション──自意識のフィクションの理論と実践』(泰流社)。いわゆるジャンル小説の構造だとか、クリシェ的な設定や展開などをいかに利用してフィクションを創り出していくかといったところ。推理小説とモダニズム、スパイ小説とポストモダンとを接続していく著者の論をなぜか私が説明するという。スパイ小説読んだことないのに。そしてポストモダン的な視座からだと推理小説の扱いかたも変容していくという。テーマに則した作品2作。リアリズム視点で気になることを指摘しつづける自分に、まったくつまらないやつだと若干落ち込む。しかも核で滅びた世界と言えば『Fallout4』が真っ先に浮かんでしまう病に罹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自己確認。通貨がコーラのボトルのキャップという。ちなみに前に出した私の作品は設定の練り直し等々の手直しを加えてまったくの別物となり、6月締切りの10枚ほどの作品として提出している。  次回のテーマはどうやら三宅隆太監督の著作にあった「物語ひらめきドリル」に則して物語を創ってくるというかたちになりそう。「白鴉」で本腰のものを出しつつ、こことかで出てきた短いのをよそで出すというスタイルを確立していきたい。  終了後、興隆園。久々に紹興酒。
 キム・スム『ひとり』(三一書房)を一気に読み終えるなどして今日はポラーノの課題を現地で読むという荒技に走る羽目となったが、それはすべてこの作品の持つ力のせいなので仕方ない。画像の帯に書かれた文を読めば病み上がりに読んで平気でいられる内容ではないことは容易に想像できるだろうが、この作品の持つ力はけっして従軍慰安婦の証言を組み込み、物語を構築していったところにだけあるのではなく、語りの視点を、公的に従軍慰安婦の生き残りの最後の一人となってしまった人物とは別に、従軍慰安婦であったことを告白できないままでいたもう一人の人物に設定し、しかもその人物は、これはたとえば『こびとが打ち上げた小さなボール』に事情が詳しく描かれているが、国家主導の地上げ事業対策として、親族によって厄介払い同然に仮押さえの住居に一人で住まわされている孤独な人物としたところにあるだろう。しかも冒頭から全編に渡り、彼女の名は明かされず(*)、ずっと「彼女」という人称代名詞として語られ、それは彼女以外の従軍慰安婦だった少女たちについて語る際の「彼女」としばしば混同してしまうことになる。それはもちろん作者の狙いでもあっただろう。従軍慰安婦たちは時として個人名として、また時には集合体としての「彼女」たちとして読者の前にあらわれ、膿んだ傷口をさらしてくる。また、個人としても故郷から離れさせられる前まで呼ばれていた名前を使わされ、しかもその名前がいくつもあるという状況、個人が強権的な他者によって恣意的に個人としての人格を剥奪されるという状況にもそれは近いだろう。いちおうは主人公的な立ち位置にはあるもののその主人公性は取り払われ、彼女は集合体としての「彼女」として、「彼女」たちの生き様を想起しつづける。そしてその一方で、国家主導の地上げ事業を基盤として、韓国政府の「彼女」たちに対する態度に批判の矛先を突きつける。この作品が力を持つのは、語りの設定の巧みさであるとともに、従軍慰安婦の問題をけっして過去の問題として捉えることはせず、現代へと「連続する問題」として捉えた筆者の社会批評の力量でもあるだろう。個人的にはモヤの『無分別』に並ぶトーマス・ベルンハルト的作品として高く評価したい。昨年7月末に刊行されたばかりだという『流れる手紙』の翻訳、出版に期待、というかもう、懇願したい。  なお、いろいろ調べたりしているうちに、この本の翻訳者である岡裕美氏がかつてこの作者の短篇「誰も戻ってこない夜」の翻訳で韓国文学翻訳新人賞を獲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り、検索してみてもどうすれば読めるかわからない。twitterで尋ねてみたところ、個人的に翻訳したというかたがデータをくれることになったので、このあとプリントアウトして読んでみる。連絡いただいたのがDMだったので念のため、名前は伏せておきますが、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終盤、とあるきっかけであきらかにされる。
最近読み終えた本 キム・スム『ひとり』(三一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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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yul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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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들
어머니와 오빠와 동생도 저마다 아버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두 발짝이거나…… 세 발짝이거나…… 다섯 발짝이거나……
다섯 발짝은 아버지와 오빠 사이에 형성된 거리였다. 오빠는 아버지로부터 가장 멀찍이 떨어진 지점에 서 있었다. 마치 커다란 원을 만들기 위해 극대로 벌어진 컴퍼스의 두 다리처럼, 아버지와 오빠는 서로에게서 멀찍이 달아나 있었던 것이다. 
다섯 발짝은 46,285,999미터보다 먼 거리인지도 모른다.
가령 다섯 발짝이 1미터라고 가정해보자. 지구의 둘레는 46,286,000미터다. 다섯 발짝은 지구의 둘레에서 1미터를 뺀 만큼의 거리일 수도 있었다. 아버지와 오빠는 1미터가 아니라 46,285,999미터의 거리를 두고 무심을 가장하며 서로를 지극히 멀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섯 발짝의 거리. 즉 46,285,999미터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질 것 같지 않았다. 만약에 오빠와 아버지, 둘 중에 누군가가 앞으로 한 발짝을 내딛는다면 거리는 더 멀어지는 것이 되었다. 
나는 46,285,999미터의 거리가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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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back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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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어쩌면 나는 교미비행보다 수벌이 추락하는 광경이 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장춘몽 같은 교미가 끝나자마자 수벌이 빙그르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광경이. 종족 번식의 의무를 끝낸 수벌의 최후가 얼마나 허무하고 비참한지 내 두 눈으로 지켜볼 때마다 묘한 흥분이 인다.
김숨의 소설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속 ‘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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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신간토크 제455호(2018년 1월 5일)
강양구와 함께하는 《기획회의》 신간토크. 최근 2주간 출간된 신간들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필자가 이야기한 부분만, 살짝 매만져서 올릴 예정.
김숨, 『너는 너로 살고 있니』(마음산책)
“‘닿다’를 발음할 때면 혀끝에서 파도가 이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매 순간,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되는 순간부터 땅속에 묻혀 소멸하는 순간까지, 그 무엇과 닿으며 사는 게 아닐까요.”
김숨의 소설에 임수진의 일러스트를 더한 서간체 그림소설 『너는 너로 살고 있니』가 마음산책에서 나왔습니다.
무명의 여배우가 경주로 내려가 11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한 여자를 간호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변화를 담은 작품입니다.
두 사람 모두 ‘아무도 아닌 자’입니다. 한쪽은 ‘살아서 죽은 자’이고, 다른 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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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adultmen-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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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으로 살고 있나요?” 진짜 나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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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2san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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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에 그녀는 보리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혼자만 살아 돌아온 게 죄가 되나? 살아 돌아온 곳이 지옥이어도? 아침이 되어 그녀가 뒷마당 세면실로 갔을 때 소녀들이 저마다 울면서 피 빨래를 하고 있었다. 소녀들은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녀는 아래가 부어 다리를 제대로 오므릴 수 없었다. 송충이에 쏘인 것처럼 따갑고 오줌이 찔끔찔끔 나왔다. 금복 언니가 동숙 언니에게 말했다. 같이 죽자. 해금의 아랫입술은 간밤에 다녀간 일본 장교가 깨물어서 거무스름하게 부어 있었다. 피를 배불리 빨아 먹은 거머리가 게으르게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만주 위안소는 목을 매달아 죽고 싶어도, 목을 매달 나무 한 그루 없는 지옥이었다. 벌판에 나가도 갈나무나 쭉정이 같은 것들만 삐죽삐죽 서 있었다. 나무 같은 나무는 높은 산에 가야만 있었다. 한 나흘 꼬박 걸어가야 있는 높은 산을 넘어가면 소련 땅이라고 했다. 그래서 소녀들은 자기 피와 아편을 먹고 죽었다. 손가락을 잘라 자기 피를 빨아 먹고 아편을 먹으면 자면서 죽는다는 걸 어떻게 알고는. 그렇게 죽은 기숙 언니의 벌어진 입속 이빨들은 피가 엉겨 붙어서 석류알 같았다. 굶주림이 어떤 것인지 소녀들은 잘 알았다. 소녀들은 굶주림을 어머니의 자궁에 있을 때부터 알았다. 입이라는 게 빚어지기 전부터. 오토상은 죽은 동숙 언니를 불에 태웠다. 워안소에서 소녀가 죽으면 오토상은 소녀의 시체를 가마니에 둘둘 싸 벌판에 내다버리거나 불에 태웠다. 소녀들은 군인들을 받으면서 동숙 언니의 시신이 타는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았다. 배가 부풀어 터지는 소리, 뼈가 타는 소리가 하늘과 땅 사이를 떠돌다가 소녀들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시체 타는 냄새는 생선 썩는 냄새와 비슷했다. "남쪽에서 군인이 많이 온다." 그 소리가 그녀는 죽이겠다는 소리보다 무서웠다. 살아 있는 증인이 있는데, 세상에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니까, 눈물이 나고 기가 막히고 감감해서... 모든 걸 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억했으면 오늘날까지 살지 못했으리라. 그녀도 임신을 한 적이 있었다. 초경을 하고 바로였다. 그녀는 자신이 임신을 한 줄 몰랐다. 일주일마다 있던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군의관이 놓아주는 주사를 맞고 핏덩어리를 가랑이로 쏟았다. 핏덩이가 그녀는 눈에 선하다. 인간의 형상을 한 핏덩이였다. 핏덩어리가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갈 때 자궁도 함께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군인들이 가솔린을 뿌리고 불을 지피자 불길이 치소았다. 불길에 휩싸여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봉애를 두고 소녀들은 군용트럭에 올라탔다. 반딧불 같은 불티들이 수를 놓듯 군용트럭까지 튀었다. 봉애의 혼 같아 그녀가 손을 뻗어 잡으려는 순간 불티는 검게 꺼져들었다. 그녀는 봉애의 죽음이 자신 탓만 같았다. 손을 조금만 더 빨리 뻗었더러면, 봉애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더라면...위안소에서 소녀가 죽을 때마다 소녀들은 자신들의 탓만 같았다. 나도 피해자요. 그 한 문장을 쓰기까지 70년이 넘게 걸렸다. -김숨 '한 명' 중에서
(김숨의 소설 '한 명'을 읽었다. 영화 '귀향'을 볼 때보다 더 먹먹하다. 그렇게 길지 않은 소설인데 각주가 300개 이상 붙어있다. 맨 뒤에 있는 참고문헌에 빼곡히 나오는 할머니들의 이름...도대체 이런 증언들이 있는데 무슨 정치적, 외교적 합의가 필요하고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연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할머니들의 한을 꼭 풀어드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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