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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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창 파면 소감"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에 윤두창 쌍놈이 드디어 잘렸다. 이 얘길 안 하고 넘어갈 순 없으니 두서없이 몇 가지만.
(1) 최종 결정은 국민투표로
박근혜 때에도 왜 탄핵 최종 결정을 헌법 재판소가 하는지에 강한 의문이 들었다. 그때 이미 국민 투표로 뽑은 사람한테서 하자가 발견됐다면 끌어 내리는 최종 결정도 뽑은 주체가 해야 하지 않냐는 논리로 글 써서 페북이 올렸더니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가 아녔다. 반대 의견 중에는 민주주의 약점 중 하나인 '중우 정치'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번에 헌법 재판소로 인한 대중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유튜브 정치 채널 여기저기에서 국민투표로 하자는 주장이 올라오는 걸 보고 비로소 내 주장이 전혀 엉뚱한 것만은 아녔구나 느낌.
더구나 헌법 재판소에 일임해서도 안 되는 논리도 있다. 얼마 전에도 썼듯이 대통령이 법 위반을 안 했어도 절대다수 대중의 맘에 안 들면 (비록 중우 정치 위험이 있을지라도) 자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윤두창 미친 짓 중에서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마다 제일 뒷골 땡기며 빡치는 거. 밤새 술 처먹고 숙취로 못 일어날 때가 많아 가짜 출근 차량을 운행했었다며. 와, 씨… 내 생각에 탄핵 사유는 이거 하나로도 충분히 넘친다.
(2) 역겨운 친일파놈들
윤두창 본인이 일본 극우가 무척 좋아하는 친일파 그 자체라 삼일절, 광복절 연설할 때마다 사람들은 경악했고, 이놈이 중용한 상당수가 뉴롸이트 계열 노골적 친일파 일색이라 대경실색했던 기억들.
(3) 외통수
누군가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을 읽고 공감한 부분. 계엄을 시도한 순간부터 윤두창의 운명은 탄핵 인용과 기각 어느 쪽이든 파멸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선 파면됐으니 내란 수괴로서 사형 판결 후 평생 감방에 있다 죽을 거.
만약 기각됐다면 복수심에 불타 계엄을 빙자한 친위 쿠데타를 또 했겠지? 2차 시도에서 성공했다면 자신을 감옥에 가둔 사람 포함 여럿을 죽였을 거고 한국 사회는 지옥으로 변했을 것.
그런데 군 조직이 이 등신 같은 놈 지시를 언제까지 받겠냐. 누군가 나서서 윤두창 일당을 처단하고 자신이 권력을 잡은 뒤 남미 독재 국가처럼 통치했을 거.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사라진 어제는 지인과 술자리에서 안주 거리로 씹어 먹고 끝냈다.
(4) 한심한 지지자들
본인이 진심으로 지지한들, 윤두창 눈깔엔 개돼지 + 소모품일 뿐이란 걸 여전히 모르겠지. 한심하고 불쌍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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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정당을 ‘조직된 의견’이라고 했지만, 정치 양극화 ��황에서 정당에 필요한 건 의견이 아니라, 상대에 관한 부정적 감정이다. 어떤 쟁점에 어느 편이 더 설득력 있는 견해를 내놓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편이 이기는 것이지, ‘권력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아니다. 이게 국민의힘이 기댈 언덕이다.
분권개헌은 소망스럽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연료로 하는 대립정치가 해소되지 않는 한 개헌은 어렵고, 설사 개헌해도 정치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한국 정치는 대화를 강제하는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대결한다. 그런 정치를 치유할 특효약은 없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원하면 정치를 잘하는 길밖에 없다. 개헌은 만능이 아니다. 개헌을 요구하는 정치현실을 바꾸겠다는 결심이 없는 개헌 논의는 개헌을 대결 소재로 삼는 또 다른 양극화 현상일 뿐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등장은 현행 헌법하에서도 막을 수 있다. 제왕은 헌법에 의해 탄생하는 게 아니라, 정치에 의해 만들어진다. 윤석열 정부에서 우리가 목격한 바다. 장관들과 여당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위계적 권력질서를 구축하고는 윤석열의 헛소리를 왕명처럼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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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60만명 떼창 '감동' (2016.12.10) 광화문 촛불집회 #탄핵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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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정치의 신하가 돼선 안 된다(2434)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와 이후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열리는 모습을 보며 칼럼을 썼을 때 존경하던 어느 대형교회 목회자가 전화를 해왔다. 그는 언론이 중심을 잡고 잘 보도해 달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당했을 때처럼 그냥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민주주의 시대에 무력으로 정적들을 제거하겠다며 국회에 군 병력을 투입하고 국민들을 상대로 총부리를 겨눈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듯 느껴져서다.
요즘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전국 각지에서 매주 열리는 윤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에는 수만명씩 몰리고 있다. 수년 전부터 ‘윤석열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광화문 집회를 이끌어온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서울 서부지방법원 폭동을 선동한 혐의로 고발당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그는 이단성 논란이 있고 정통 교회들도 거리를 두고 있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또 다른 탄핵 반대 축인 세이브코리아가 부산역과 동대구역에 이어 지난 주말 광주 금남로에서 개최한 국가비상기도회에 20, 30대를 포함한 정통 기독교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집회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이 지역 저 지역 원정을 다니는 이들도 상당수다. 세이브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는 이는 지난해 10월 27일 광화문과 서울역, 여의도 등에서 열린 동성애 반대 집회를 주도했던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다.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씨는 강단에 서서 “계엄령이 아니라 국민들을 깨우기 위한 계몽령”이라고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한다. 전씨는 지난해 국민일보가 주최한 청년집회 ‘갓플렉스’에서 네 번이나 강연자로 나와 생생한 신앙 간증으로 청년들의 마음을 울렸던 평범한 기독교인이다. 그의 말대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정치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탄핵심판정에 나와 거짓말을 하는 대통령과 대법원 판결에도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는 극우 유튜버들의 말을 맹신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왜 광장으로 나섰을까.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손바닥에 ‘王(왕)’자를 쓰고 나올 정도로 무속에 빠졌지만 무속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기독교에 더 구애했다. 국가조찬기도회와 부활절 예배 등에 참석하고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친밀하게 소통했다. 또 다른 이유는 여러 범죄 의혹과 형수에 대한 욕설, 여배우와의 불륜설, 잦은 말 뒤집기 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반감과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경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돼 동성애가 합법화될 것이란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폭주와 카톡 검열 등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될 것이라는 공포감도 깔려 있는 듯하다.
그렇더라도 기독교인들마저 좌우로 갈라져 국민들을 선동하며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종교���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가 위기에 놓였을 때마다 혜안을 제시하고 평화의 사도이자 중재자 역할을 해온 것은 종교다. 외국 선교사들과 함께 개화기 초기 근대화 초석을 놓고 3·1독립운동을 주도하며 6·25전쟁 때 부상당한 환자들과 고아들을 앞장서서 돌본 것도 기독교인들이다.
역사적으로 자랑스러웠던 기독교가 지금은 앞장서서 갈등과 폭력을 조장하며 나라를 더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민망하고 참담하다. 시국기도회를 가장한 정치 집회에 수만명이 모이는 것을 보면서 종교와 정치가 만났을 때의 폭발력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좌로나 우로나 정치세력에 휩쓸리지 말고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하자는 목회자의 말이나 기독교가 정치의 신하가 돼선 안 된다는 당연한 말까지 공격받는 세태가 안타깝다. 합리적 사고나 이성적 가치 판단은 실종됐다. 확증편향이 심화돼 광신과 추종만 남았다.
부끄러움과 피해는 나라를 위해 묵묵히 기도하는 대다수 교회들 몫이다. “설교단을 정치단으로 바꾸면 안 된다.” “일부 극우 개신교 세력의 폭력적, 반헌법적 행보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들은 혐오 정치와 폭력을 조장하는 거짓 선지자다.” 뒤늦게 일부 교회들이 성명을 내고 규탄도 하지만 폭주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하나님도 나한테 까불면 죽는다”고 신성모독 발언을 일삼는데도 기성 교회들이 이단 지정조차 못 하고 엉거주춤한 사이 기독교가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괴물로, 혐오의 대상으로 커져버렸다. 만시지탄이다. 2/26/25/hwanshikkim.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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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소추, 반국가세력의 사기였다?
(홍콩=데일리홍콩) 김한국 기자 = 민주당 의원 등 국회 탄핵소추단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에서 ‘내란 혐의’를 소추 사유에서 빼기로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뇌물을 수수했다며 탄핵 소추를 시도했다가 이를 찾지 못하자 ‘뇌물 수수 혐의’를 소추 사유에서 빼고 떼법으로 이를 진행한 것과 판박이가 되는 모양새이다. 여당 측 국민의 힘 일부 의원은 탄핵소추단의 이런 모습에 “내란죄가 없는데 무슨 죄로 탄핵은 왜 한 것인가”하면서 “사기탄핵을 철회하라”고 규탄하였다. 한편 광화문과 윤석열 대통령 관저 앞에서는 반국가세력의 “사기탄핵”에 반대하고 비상계엄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들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참고: 2030세대, “우리는 탄핵반대 집회에 나갑니다.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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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이 인용되던 날 영국 가디언지에는 "한국인들, '닭' 먹으며 탄핵 자축" 이라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그 사진속 왼쪽 위 노랑머리가 영우였다. 그리고 그 사진이 찍힌 시간이 탄핵 인용 선고 직후인 대낮이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의결이 두번째 투표만에 가까스로 통과되던날 영우는 친구와 함께 여의도를 지켰다. 영우는 그야말로 대통령 탄핵세대인 것이다. 하지만 시대정신에 참여하려는 의지의 시작은 더 거슬러 올라가 다른 곳에 맞닿는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 거기에 저항하는 의지. 영우는 세월호 학생들과 같은 나이였던 세월호 세대이다. 하여 그들은 앞으로도 절대 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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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계속 TMI 남발. 배 꺼지고 영화나 보자. 정치는 예상대로 흘러갔네요. 뉴스 보니 떠오른 거. 대통령 때문에 환율이 겁나 오른 거 보고 지인이 그랬는데.
"거지 같은 자식이 날 거지로 만들었어."
진짜 개웃김. 몇 년 전에 한창 탄핵 시위할 때 거리가 연말 분위기 안 나니까 "이게 다 박근혜 때문이야."라고 친구가 했던 드립도 생각나고. 걔도 웃기려고 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주변에서 대통령 욕하는 거 들으면 웃프다. 그중에 부모님이 대통령 얘기하는 거 듣는 게 제일 흥미진진하다. 우리 부모님은 정치에 진심이시거든. 대통령 당선된 거 보고 화나서 잠 못 주무시고, 자존심 상해서 투표 안 하셨다는 어른은 난 아직까지 부모님 밖에 못 봤다. 며칠 전에 아침에 일어나서도 "걘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이러면서 의견 말씀하시는 거 듣고 웃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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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박근혜 운명 뒤집혔다! 이재용, 박근혜 '탄핵' 사실 증거 공개! 김무성이 미리 기획한 거다! 경찰이 개입했어요! 김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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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게 살 권리
내 기억에 남은 근래 가장 최악의 해는 박근혜 정권 말기인 2016년이었다. 서울 시내 어느 골목을 다녀봐도 을씨년스러웠고, 늘상 부는 바람마저 스산했다. 그때가 최저일 줄 알았는데 훨씬 더한 게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는 게 힘"이라지만 "모르는 게 약"이기도 하고, "집단 지성"이란 말이 있는 반면 "중우 정치"도 있다.
길거리엔 "탄핵 반대" 운운 현수막이 걸려 있고, 여론 조사에도 정신병자를 지지하는 층이 최소 10~20%는 되나 보다.
세상이 내가 받아들인 상식대로 흘러가질 않고 있다. 만의 하나 헌법재판소에서 무려 "기각"이 나오면 어쩌냐고 불면의 밤을 보내는 '정상인'이 많다.
며칠 전 유튜브에 올린 '썸댓 땅고 10회'는 팜파스에서 소 키우던 가우초가 들판에서 기타 치며 불렀던 빠야다(Payada)를 다뤘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누에바 깐씨온' 얘기로 이어져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살벌한 말을 인용해야만 했다.
이 제도가 뿌리를 내리기까지 거의 모든 나라의 역사가 그랬기 때문일 텐데,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난 후엔 소위 '시스템'이 작동하므로 더 이상 고난 겪을 일은 없다. 하지만 굳건하리라고 믿었던 '그것'이 깨지는 순간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된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 특정 인종, 국가, 민족을 선택할 수 없다. 너무 당연한 얘기잖냐. 그래서 나는 애국자가 아니다. 대신 '공동체 의식'이 있다.
교과서에서 읽은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는 대개 십대 초중반 때 시작해 빠르면 10대 후반, 사람에 따라선 20대 후반까지도 지속하는 것 같다. 서른 살을 넘기면서는 존 레논이 부른 '임예진(=Imagine)'이 꿈이요, 환상임을 자각하고 인간 불신도 깊어져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떠나지 않나 싶다. 과거에 비해선 개인의 이해 득실을 많이 따진다.
그럼에도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으면 당장은 내가 손해를 볼지라도 긴 안목에선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가 생존에 훨씬 유리하단 판단을 내린다.
자칭 한량이자 도사(=길 가는 무사)로서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적당히 돈 번 다음 빈둥대며 운동하고, 음악 듣고, 책 읽고, 땅고 추고, 글 쓰며 지내기 위해 민주주의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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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60만명 떼창 '감동' (2016.12.10) 광화문 촛불집회 #탄핵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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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노멀’이 된 탄핵 정치(2340)
정치는 다른 수단으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뒤집어 놓은 이 말을 요즘처럼 실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긋지긋하지만 우리의 감각이 무뎌져 이제는 그것이 정상인 것처럼 생각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전쟁터로 변하였다.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는 두 가지 공간이 특히 두드러진다. 하나는 포퓰리즘 물결과 함께 폭력적인 투쟁의 장소가 된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을 감정적으로 선동하는 프로파간다가 난무하는 ‘소셜미디어’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감성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논의는커녕 적대적 혐오와 원한 감정을 강화하는 증폭기일 뿐이어서 투쟁으로 전락하고 타락한 정치는 사회 전체를 폭력적인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우리 정치가 폭력적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말을 과장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정치 현장을 뒤덮고 있는 정치적 수사가 비록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폭력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암살 시도가 보여준 것처럼 정치적 양극화는 언제든지 정치적 폭력과 시민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 2021년 1월6일 트럼프가 선동한 폭력적인 반란은 미국 민주주의 체제를 뿌리째 흔들었지만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이번 총격 사건이 미국의 정치문화를 이성적으로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정치문화를 폭력적으로 만든 극단적 양극화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총기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안도의 한숨은 결코 위안이 되지 않는다. “정치는 다른 수단으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라는 명제에서 ‘다른 수단’은 총이 아닌 말이기 때문에 전쟁의 과정과 결과가 결코 폭력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자기기만이다. 폭력의 잠재력이 증폭되면 어디에선가 터지게 마련이며, 그 결과는 사회 전체에 미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를 폭력적인 전쟁으로 만드는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상대방을 ‘경쟁자’가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할수록 정치집단은 헌법질서를 위협하는 극단주의 반민주세력으로 급진화한다. 그 결과는 반복되는 헌법적 위기, 고조되는 정치적 폭력, 그리고 포퓰리즘에 기반한 권위주의적 통치일 것이다.
뉴 노멀은 위기를 정상으로 오도
이런 상황에서는 합법적 선거를 통해 교체된 어느 정권도 안정적으로 통치의 책임을 다할 수 없다.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장기적 정권 불안정은 이제 ‘뉴 노멀’이 된 것이다. 뉴 노멀은 정치, 경제, 사회 등이 위기를 겪은 이후 정착하는 상태로서 위기가 시작되기 전의 정상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정권이 바뀐다고 정치적 상황이 더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화문 촛불 시위를 통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출범한 문재인 정권은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통합할 줄 알았다. 그 기대는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사회 분열로 산산조각이 났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단화되고 소셜미디어의 디지털 공간이 혐오와 갈등으로 부패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윤석열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이라는 사실은 정말 역설적이다. 진영화된 적대적 대립 구도를 통해 탄생한 윤석열 정권에 대화와 협치를 바라는 것 자체가 가당치 않은 망상이지만, 국민은 다시 한 번 희망을 걸었고 거듭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다. 전 정권을 침몰시켰던 독선과 불통은 여소야대의 기이한 체제를 공고하게 해 정권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0.73%의 초박빙으로 불안정하게 정권을 잡았음에도 협치보다는 대결을 선택하였던 것처럼, 국민의 45%가 국민의힘을 뽑았지만 왜곡된 선거제도로 입법권을 장악한 더불어민주당도 극단적 대결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정권 불안정과 헌법적 위기라는 ‘뉴 노멀’을 경험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시대 전환과 함께 새로운 정상으로 정착한 뉴 노멀은 위기를 정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정치적 행위의 합법성을 강조할수록 합리적 논의와 타협을 거부하는 모순이 반복된다. 정권과 여당을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당내의 강경파를 선호하고 선동하는 야당은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윤석열 정권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민주적 게임 규칙에 대한 약속을 포기하는 이러한 경향은 총선 승리로 더욱 증폭되고 강화되었다. 여기서 비폭력을 가장한 정치의 다른 수단은 바로 ‘탄핵 정치’다. 정치가 어지러웠던 시절에도 쉽게 입에 올리길 꺼렸던 ‘탄핵’이라는 낱말이 너무 쉽게 거론된다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탄핵 정치는 이제 ‘뉴 노멀’이 되었다.
제2의 촛불 꿈은 정권욕의 망상
탄핵은 일반적인 절차에 따른 파면이 곤란하거나 검찰 기관에 의한 소추가 사실상 어려운 대통령 등 고위공무원을 국회에서 소추하여 파면하거나 처벌하는 행위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려하면,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정도가 중대해야 한다. 탄핵 사유가 명료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는 까닭은 그만큼 중대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이 못마땅해도 탄핵당할 정도로 권력을 남용하거나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는 국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을 부르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권력자를 신속하게 제거하여 정권을 붕괴시키거나 불안정하게 만드는 가장 합법적인 방법이 탄핵이기 때문이다. 적을 제거하는 것이 전쟁의 목표라면, 탄핵은 정권 종식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 공화당이 국가 기관을 정치화한 것처럼, 더불어민주당은 과반수의 국회 권력으로 모든 정치적 행위를 사법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를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의 공범으로 기소한 수원지검 부장검사를 공수처에 고발하고,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임명되자마자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였다. 중대한 범법 행위가 없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탄핵을 남발하면, 그것은 명분과 과정과 절차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정치적 적을 제거하려는 의도만을 적나라하게 폭로할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탄핵 정치의 뉴 노멀이 민주 공화국이라는 헌법 정신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헌법 질서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권 쟁취라는 목적만 생각하고 과정과 수단의 정당성을 묻지 않으면, 정치는 점점 더 극단화하고 폭력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나온 “지금 시대정신은 탄핵”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말은 탈권위주의라는 시대정신을 배반할 뿐만 아니라 정권 획득의 가능성도 줄인다. 오만한 권력은 결코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21대 총선 결과는 윤석열 정권을 제대로 견제하라는 요구였지, 결코 윤석열 정권의 임기를 조기 종식하고 조기 대선을 실시하라는 명령은 아니었다.8/6/24/hwanshikkim.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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