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학교에 빨리 가야 돼
alachii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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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앤은 나를 위해 심발을 쌌고 오늘은 왔어…. 심발을 신을 때 심장이 두근두근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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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2sang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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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www.amazon.com/Country-Old-Men-Cormac-McCarthy/dp/0375406778 )
예이츠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흔히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게 무엇을 내다보는 창인지 나는 모른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시각,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이 있으니 이 모든 소동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그런 세상이다. 덕분에 나는 평생 생각도 못해 본 일을 겪고 말았다. 저기 어딘가에는 살아 있는 진정한 파괴의 예언자가 있다. 다시는 그 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진짜라는 것을, 나는 그가 한 일을 보았다. 한때 나는 그 자의 눈앞에서 걸어 다녔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는 내 운명을 걸고 그 자를 만나러 가지 않겠다.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니다. 그랬길 바라지만. 누구라도 감히 그러고 싶지는 않으리라. 내가 언제나 알았듯이 이 일을 하려면 기꺼이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니 말이다. 그것이 언제나 진실이었다. 영광 따위는 바랄 수도 없지만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당신이 목숨을 걸지 않으면 그들도 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알아차린다. 어쩌면 당신은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영혼을 모험에 내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자신은 그러지 않을 테다.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p12-13)
가방 안에는 100달러짜리 지폐가 가득했다. 10,000달러 소인이 찍힌 묶음 띠지로 고정된 돈 다발이었다. 모두 합해서 얼마나 되는지 감이 오진 않았지만, 그에게 멋진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히 앉아서 돈 다발을 바라보다가 뚜껑을 닫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인생 전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가 죽을 때까지 이어질 매일매일이, 새벽부터 밤까지의 매일매일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이 가방 안의 40파운드 짜리 종이 더미에 담겨 있었다.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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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사형수 감방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말이다. 놀랄 일이다. 적어도 일부는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몇 년간 매일 보던 사람을 어느 날 복도로 데리고 나와 죽음의 공간으로 밀어 넣는 일. (p74-75)
선령한 주민들을 다스리는 데는 힘쓸 일이 거의 없다. 정말 거의 없다. 그리고 나쁜 인간들을 다스리기가 아예 불가능하다. 아니면 다스릴 수 있었다는 얘기를 내가 들어본 적이 없거나. (p76)
벌써부터 그는 자신의 인생이 다시는 안전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다만 그런 것이 자신에게 익숙했던 삶인지가 궁금했다. 과연 그랬던가?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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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젊은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서 어려운 일을 겪지 않는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다. 단지 기대만큼 빨리 성장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p178)
부모들이 자식들을 키우지 않으려 했다. 우리는 그 문제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했다. 다음 세대가 자라나 어른이 되고 아이들을 키우려들지 않을 때는 누가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 (p179)
전쟁에 대해서도 별로 할 말이 없다. 나는 결국 전쟁영웅이 되었지만 분대원을 모두 잃었다. 그때 일로 훈장을 받았다. 그들은 죽었고 나는 훈장을 받았다. 이런 일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알 필요도 없다. 그 일을 기억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내가 알던 몇몇 병사들은 돌아와서 제대군인 원호법에 따라 오스틴의 학교에 갔는데 거기서 말 못할 일을 많이 겪었다. 흔히들 그들을 백인 떨거지니 뭐니 하는 말로 불렀고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싫어했다. 이 나라에서 두 세대는 긴 시간이다. 초창기 개척민 이야기도 많이들 한다. 사람들에게 나는 아내와 자식들이 살해당해서 머릿가죽이 벗겨지고 물고기처럼 창자가 갈리는 지독한 일을 당하면 흥분하기 십상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60년대는 그들 중 일부를 정신차리게 했다. 아니 그랬기를 바란다. 얼마 전에는 여기 신문에서 몇몇 교사들이 30년대에 전국의 여러 학교에 보낸 설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설문지 문항은 학교 교육에서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교사들이 발견한 설문지는 답안이 채워져서 전국 각지에서 돌아온 것이었는데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된 것은 수업 중 떠들기나 복도에서 뛰어다니기 같은 문제였다. 껌을 씹거나 숙제를 베끼는 일도. 뭐 그런 따위였다. 교사들은 답이 비어 있는 설문지를 찾아서 그것을 무수하게 복사해 똑같은 학교에 다시 보냈다. 40년 후에 말이다. 그리고 이제 답지들이 도착했다. 강간, 방화, 살인, 마약, 자살. 나는 이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세상이 점점 망해가고 있다고 오래 전부터 말하곤 했지만 사람들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내가 나이가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것도 하나의 징후다. 하지만 강간하고 살인하는 일을 껌 씹는 일과 구별 할 수 없는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내 느낌이다. 4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아마도 다음 40년 동안은 난데없이 아주 괴상한 것이 등장할지 모른다. 너무 늦은 게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p216-217)
1, 2년 전에 나와 로레타는 코퍼스크리스티의 어느 모임에 참석했다. 나는 누군가의 부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그녀는 내게 줄곧 우익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개 평범한 이들이다. 흔히 하는 말로 먼지처럼 평범한 이들이다.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고 그녀는 나를 별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가 그들을 험담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속한 세계에서 그 말은 최고의 칭찬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말을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이 나라가 나아가는 방향이 싫다고 말했다. 자기 손녀가 낙태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부인은 이 나라가 가는 방향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부인의 손녀는 틀림없이 낙태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낙태를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부인을 영원히 잠들게 할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말하자 대화가 끝나고 말았다. (p218)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친구를 잃었다. 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건 아니다. 나이 들어감에 대해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모든 사람이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건 아니라는 사실. (p237)
당신이 악마라면, 그리고 인간을 굴복 시킬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한다면, 결국 마약이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p239)
"총싸움이 벌어지면 무장을 하겠니, 그냥 법을 지키겠니?" (p242)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냐. 네가 그곳에 가면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요점이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너의 생각. 아니 누구의 생각이든.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없어. 내가 말하려는 게 이거야. 너의 발자국은 영원히 남아. 그걸 없앨 수는 없지. 단 하나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 아직 이해 못하는 것 같으니 한 마디 더 하마. 너는 어제 몇 시에 일어났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어제야. 다른 건 중요치 않아.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너의 인생이 되지. 그밖엔 아무것도 없어. 너는 도망가서 이름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할지 몰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하고 묻게 돼." (p249-250)
아버지는 언제나 최선의 길을 선택하고 진실을 숨김 없이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누구인지 결정할 필요가 없는 것 만큼 마음 편한 일은 없다고 하셨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곧바로 이야기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해서 자기 잘못을 껴안고 가야 한다.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꽤 간단하게 들리는 말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그러니 오히려 생각해 볼 이유가 더 많은 셈이다. 아버지는 말씀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가 한 말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는 두 번씩 말씀을 하실 만큼 인내심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귀를 기울여들었다. 나는 아마도 젊은 시절에 벌써 아버지의 말씀에서 벗어났을 것이지만 다시 그 길로 돌아와서는 다시는 그 말을 버리지 않겠다는 결심이 섰고 정말로 그렇게 했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다. 단순해야 한다. ��린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늦게 된다. 그것을 이해할 때는 벌써 늦은 것이다. (p272)
"당신은 지금 동전에 책임을 미루고 있어요. 하지만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은 당신이에요." "뒷면이 나올 수도 있었지." "동전은 결정권이 없어요. 결정은 당신이 하는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견해는 달라. 내가 여기 온 것도 동전 던지기와 같은 거야. 목적���가 같으면 거기에 가는 길도 같아. 언제나 쉽게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분명히 그래." (p282)
"나에겐 결정권이 없어. 인생은 매순간이 갈림길이고 선택이지. 어느 순간 당신은 선택을 했어. 다 거기서 초래된 일이지. 결산은 꼼꼼하고 조금의 빈틈도 없어. 그림은 그려졌고 당신은 거기에서 선 하나도 지울 수 없어. 당신 뜻대로 동전을 움직일 수는 없지. 절대로. 인생의 길은 쉽게 바뀌지 않아. 급격하게 바뀌는 일은 더구나 없지. 당신이 가야 할 길은 처음부터 정해졌어." (p283)
"당신은 지금 내 마음을 약하게 하려고 하지만 나는 절대 거기에 굴복하지 않아.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지. 특별 대우는 없어. 동전 던지기도 마찬가지야. 이 경우엔 별 의미도 없었지. 사람들은 대개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제 당신은 똑똑히 알게 된 거야. 당신이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내 말 알아듣겠어? 내가 당신 인생에 끼어들었을 때 이미 당신 인생은 끝난 셈이었어.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어. 지금은 끝이야. 당신은 꼭 이대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말하고 싶겠지. 그래 다른 길도 있을 수 있었어.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른 길은 없어. 이 길뿐이야. 당신은 그저 내가 말을 바꾸기 바라고 있을 뿐이야." (p283-284)
"나이가 들면 자기가 행복해지고 싶은 만큼 행복한 법이야.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지만, 결국 예전에 행복했던 만큼 행복한 거야. 아니면 그만큼 불행하든가. 이걸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 (p289)
아저씨는 내가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다고 말했다. 그런 것은 노년의 특징이라고도 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고집 말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부 맞는 말은 아니다. 나는 노년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그의 말에 동의했고 그는 그 중 한 가지를 안다고 했다. 내가 그게 뭐냐고 묻자 그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빙그레 웃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나는 그건 꽤 차가운 말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 자체보다 더 차가운 말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p307)
내가 깊이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줄곧 내 마음 속에 있던 일이 또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내 문제와 아주 무관한 일은 아닌데다 인생에서 무슨 일을 했건 그 일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온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정말로 너무 일찍 죽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p308)
나는 부관들에게 고칠 수 있는 일은 고치고 나머지는 그냥 놔두라고 한 번 이상 말했다. 손을 놓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그건 단지 짜증거리에 불과하다. (p310)
나도 그래요.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무슨 일을 했건 금방 떠났어야 옳았어요. 그런 식의 전쟁은 듣도 보도 못한 거였소. 히피 두어 명을 흠씬 두들겨 팬 적도 있지요. 아들에게 침을 뱉고 아들을 베이비킬러라고 불렀어요. 무사히 돌아온 많은 젊은이들도 아직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요. 그들 뒤에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점은 이 나라는 조각조각 갈라져 있었다는 거죠. 지금도 그렇지만 말요. 물론 히피들 잘못은 아니었소. 그곳에 간 젊은이들 잘못도 아니었소. 기껏해야 열여덟, 열아홉 살 먹은 애들이었잖소. 노인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나는 그가 많이 늙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눈이 늙어 보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흔히들 베트남이 이 나라를 굴복시켰다고 합니다. 나는 결코 그리 생각하지 않아요. 그 전부터 이미 글러먹은 나라였소. 베트남은 거기에 결정타를 먹인 셈이오.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쥐어주지 않고서 거길 점령하라고 했던거요. 총도 없이 그들을 보냈다면 잘은 모르겠지만 사태가 더 나빠지지 않았겠소. 그런 식으로 전쟁을 하는 법은 없어요. 하느님 없이 전쟁을 하는 법은 없어요. 다음 전쟁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모르겠어요. 짐작도 못하겠소. ( p323)
324-5 329
나는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돈에 팔린 존재이다. 단지 마약 문제가 아니다. 아무도 알지 못할 만큼 엄청난 부가 쌓이고 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든 나라를 살 수 있을 만한 돈. 아니 벌써 온 나라를 사고 말았는지도. 이 나라도 살 수 있을까? 설마,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은 우리를 같이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과 한 침대에 밀어넣을게다. 그것은 법 집행의 문제도 아니다. 언제는 그랬는가. 마약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어 나자마자 아무 이유도 없이 약에 취한 적은 없다. 수백만 명이 말이다. 내가 무슨 대답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내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대답은 알지 못한다. 얼마 전에 나는 젊고 예쁜 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녀는 단지 기자처럼 굴고 싶어했다.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보안관님의 담당 군에서 범죄가 그렇게 만연하게 되었을까요? 정당한 질문처럼 들렸다. 꽤 정당한 질문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례를 용납하게 될 때 모든 게 시작됩니다. 더 이상 존칭과 경어를 듣지 못하는 순간 눈앞에 종말이 보이는 거지요. 나는 계속 말 했다. 이런 풍조는 모든 계층에 스며들었어요. 당신도 들어본 적이 있지요? 모든 계층이요? 그러다 보면 마침내 상업 윤리가 무너지고 사람을 죽여 차에 집어넣고 사막에 버려 두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때는 모든 게 너무 늦게 됩니다. (p333-334)
또 한 가지는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줄곧 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를 보는 노인들의 시선을 생각하면 언제나 의문이 생긴다. 예전에는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보안관이 된 50년대에는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노인들은 별로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그들은 실성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런 점이 나를 괴롭혔다. 그들은 마치 잠에서 방금 깨어 왜 그곳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p335)
<옮긴이의 말>
이 소설을 휘감고 있는 분위기는 묵시록적이다. 스릴러의 외관을 취하고 있는데도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는 느낌은 거기서 나온다. 소설 첫머리부터 피비린내 나는 살인이 벌어지고 마지막까지 살인 행각이 이어지며 피 냄새가 가시지 않지만, 평범한 스릴러에서 느낄 수 없는 텁텁한 긴장감이 전편에 서려 있다. 그 긴장감은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생사를 건 대결에서만 나오지는 않는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추리적 요소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우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다). 그것은 장식적 수사를 억제한 냉담한 문장, '그리고(and) 문체'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하고~하고'의 연속, 서술과 설명이 배제된 묘사 일변도의 장면 제시, 감정이 응고된 건조한 대화로 사정없이 끌고 가는 플롯 전개의 속도감에서 나온다. (p340)
- 코맥 매카시 ,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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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oyoh-96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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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달성한 K 시인에 관한 기사가 줄줄이 흘러나오고 나는 엇비슷한 헤드라인 사이를 헤치며 큼직한 단어들을 띄엄띄엄 해석한다.
 K 시인
그남은 문단의 큰 뿌리인 원로 시인으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는 D 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좌 교수와 K 대학교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물론 잘 알고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였으니까. 일 년에 한 번 정도 강연을 한다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매년 배팅되던 인간이었지만 관심 없었다. 오히려 나는 K 시인의 시를 고루하다고 여겼다. 뻔한 문장 같고 시시해 보였다. 자연물을 예찬하는 짧고 짧은 시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가벼이 저으며 모니터 속 활자에 집중한다. 입학 후로는 항상 이렇다. 도저히 읽는 것에 집중하기 어렵고 순식간에 다른 생각에 빠져버리곤 한다.
 미투
이 말이 언제부터 자주 보이기 시작했더라. 미국에서부터 시작했나. 아니 그보다 훨씬 전 해시태그를 타고 얘기한 적 있지 않았나.
대부분 기사에서는 아직 가해자라고 단정 짓기 이르다는 견해가 많았다. 그 이유로 첫째, K 시인이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만약 불편함을 끼친 부분이 있다면 사과한다고 했다. 최초 고발자인지 대중인지 자신을 믿고 따른 사람을 향해서인지, 대상이 누구인지 모호했지만. 둘째, 법정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과연 그 법은 누가 만들었나. 누가 행하는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 창은 보지 않았다. 댓글 창은 대체로 먼저 점령한 사람들의 입장대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곳은 이십 대와 삼십 대 남성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누가 더 억울한지 호소하고 있겠지.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를 잡아야 한다느니, 증평 군부대에서 있었던 불의에 사고를 기억해야 한다든지, 1호선이 시끄러운 건 노인 때문인지 아이 때문인지 그도 아니라면 누구 때문인지, 물가도 비싼데 그냥 국밥이나 먹으라는 둥. 3000개의 댓글은 따로 놀고 있을 것이다.
 숨 가쁘게 클릭하던 마우스와 손을 잠시 분리한다. 네이버 포털사이트, 다음 인기글, 네이트판, 트위터, 페이스북, 워마드, 인스타그램, 디시인사이드 실북갤…을 돌아다니며 K 시인의 이름을 쫓았지만 머리에 남는 건 하나도 없었다. 액정 너머 갇힌 활자를 읽는다기보다 눈으로 빠르게 훑는 행위였으니까. 그만두자.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잖아. 해야 할 일을 해야지. 당장 내일 소설 합평이 있었다. 벌써 새벽 세 시, 쓸 수 있는 시간은 다섯 시간 남짓. 일부러 기한까지 미루려던 건 아니었다. 실은 두 달 전부터 오늘을 또렷하게 알고 있었다. 얇은 플롯을 짜고 초고를 끄적이다가 결국 엎고 새로 쓰는 중이다. 원래 쓰던 글을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방안에서 가만히 있다. 암막 커튼을 쳐놓고 침대에 누워서 매트리스 속까지 파고드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의 색을 탐색하다가 문득 깨닫고 만 거다. 아무리 깊이 고민하고 말을 늘여놓아도 결국 나 이외에 아무도 등장하지 않을 거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걸 마흔 명에게 보여줄 수 있는가? 이걸 뭐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주제가 무엇이죠?
왜 이 인물은 아무것도 하지 않나요?
누워 있기만 한 행동은 무슨 의미를 지니나요?
이런 건 소설이 아니에요!
사고의 회의 끝에 나는 저녁부터 새로운 소설 쓰기에 돌입했다. 그건 어렵지 않았다. 언젠가 영화나 소설에서 본 것 같은 것들을 무자비하게 섞었기 때문에.
남자가 있다. 여자도 있다. 남자는 세 번째 수능을 망친다. 현역일 때보다도 쓰레기 같은 성적을 받았다. 둘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귄 사이다. 그 당시 남자가 여자보다 공부를 더 잘했다. 틀림없이 서울대에 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남자 자신과 그 주변에 모두가. 하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서울대에 갈 거라고 말한 적이 없다. 꼭 가야 한다고 부담감을 주지는 않았지만 남자는 그게 되려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말없이 웃는 저 얼굴은 기만인가. 끝까지 앉아서 시험을 칠 이유가 없었다. 수학을 완전히 말아먹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배부른 남자는 학교를 빠져나왔다. 걸었다. 여자에게 서운했다. 화가 났다. 예전에는 나보다 못했는데. 헤어지지 않는 건 동정인가. 나를 우습게 아나. 남자는 소주를 사서 단번에 들이붓고 전화를 건다. 여성의 몸과 행복이라는 교양을 듣고 있던 여자가 강의실에서 조그만 목소리로 잠깐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 뒤로 들리는 웅성거림, 날카로운 교수의 목소리. 남자는 그런 것이 부럽지 않다. 여의도 한강 공원으로 와. 여자는 왜 이 시간에 전화할 수 있는지 다짜고짜 오라고 하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의문을 갖지 않는 걸까. 남자는 여자를 만나면 물어보기로 결심한다. 무엇을? 질문에는 답이 있다. 어떤? 남자는 빈 소주병을 아스팔트 위에 던진다. 산산조각이 난 초록빛이 마음에 든다. 손바닥만 한 조각 하나를 주머니에 넣는다. 그의 눈은 근 삼 년 중 가장 예리했다…
남자는 왜 화가 났지?
여자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남자는 여자를 죽이고 싶은 것인가?
나는 죽일 것인가?
이건 두 달 내내 붙잡고 있던 ‘나’의 글보다 분량이 세 배 정도 많았다. 분량은 진작 넘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관성적으로 쓰고 있었다. EBS 다큐멘터리 속에 사는 목동 삼수생이 디시인사이드 수능 갤러리에 자살 예고글을 올린다. 악플만 달린다. 그는 어쩐지 시계태엽 오렌지의 알렉스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낀다. 하지만 참으로 평범하다…  
예전부터 이렇게 썼고 지금도 이렇게 쓰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노트북을 소리 나게 덮는다. 아래아 한글에 저장을 안 한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곧장 침대에 들어간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고 눈을 감는다. 새벽 네 시. 감정은 올라오지 않았다. 생각하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눈을 떴을 때는 정오였다. 집은 비어있었다. 잠에 취해 해롱거리던 나는 학교에 가지 않은 걸 약간 후회했다. 발표를 빼먹고 성적이 깎여서 그런 건 아니었다. 순수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학교는 어떤 분위기일까. 애도가 필요한 초상집 분위기일까. 전쟁 후 남은 폐허처럼 고요할까. 과사무실로는 K 시인을 찾는 전화가 밀려들 것이다. 남교수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저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이가 비난받는 걸 견디기 힘들어할까?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떠든다며 불쾌해 할까? 얼른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며 평정을 가장한 불안을 흘리고 있겠지. 일그러진 얼굴을 떠올리면서 아주 잠깐 즐거웠다. 그게 오 분 정도였다. 사실 그런 상상은 현실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걸 알았다. 학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대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세간이 시끄러운 것과 별개로 굴러가는 세상인 것처럼. 아침이면 축축한 풀 냄새가 나고 안서호에는 잔물결 하나 없는 유유자적한 캠퍼스. 굳이 단체 카톡방이나 에타 게시판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날 이후로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종강까지 한 달이나 남았고 아마 모든 과목에서 F가 나올 테지만 상관없었다. 더는 글을 쓸 수 없었다. 아직 남자는 술에 취한 채 한강에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이 글을 묻기로 마음먹었다. 이건 세상에 나와 빛을 보고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되는 녀석이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쓴 블로그. 구독자 수는 한 자릿수를 오갔지만 일기를 쓰고 백일장 후기를 쓰고 책 리뷰를 쓰고 영화 리뷰를 쓰고 참 열심히, 꾸준하게 무언가를 채워 넣었던 장소다. 제일 마지막으로 쓴 글은 문창과 합격글이다. 여태 쓴 글 중에서 가장 공감 수가 높았다. 총 이백 개의 글이 포스팅되었고 비공개 글까지 합치면 오백 개 남짓 되었다. 어디 가서 말 못할 망상, 욕, 한탄 글부터 공모전용 글과 실기용 꽁트 백업까지 전부.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고민은 짧았다. 블로그를 구매한다는 쪽지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열 개의 쪽지 중에서 세 곳에 답장했고 제일 빨리 연락이 온 사람과 채팅했다. 팔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블로그를 심사하기까지 며칠이 소요된다고 했다. 그에게 주소를 보내준 후 나는 사소하고 개인적인 비공개 포스팅을 전부 삭제했다. 다른 곳에 백업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물스물 올라오는 과거를 모조리 잘라내고 싶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항은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까 확실하게 확인을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냥 절차가 그런 거예요.  
전화로 이런저런 조항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낯선 용어 탓에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건성으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십 분 안에 입금해준다는 답이 돌아왔다.
비밀번호만 바꾸지 마세요. 그럼 골치 아파지니까요.
내가 다시 그 아이디를 찾게 될 이유가 있을지. 이제 그곳에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설령 가끔 그리워지더라도 말이다. 계좌를 열 번째 확인할 때 송금 내역을 발견한다. 총 100만 원이었다. 용돈 외에 처음 받은 돈이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그 정도의 금액을 가져본 적 없어서 얼떨떨했다. 일단 당장 맥주와 담배와 햄버거를 샀다. 97만원이 남았다. 야식 같은 저녁을 먹으면서 브이로그를 본다. 고시원 브이로그, 선생님 브이로그, 치대생 브이로그, 고삼 브이로그, 타투이스트 브이로그, 비서 브이로그, 호주 워홀 브이로그… 브이로그의 플롯은 비슷비슷하다. 일어나서 씻고 먹고 화장하고 일하고 먹고 놀고… 차별성 있는 건 각기 열심히 꾸민 얼굴 정도였다. 근데 멜버른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저 사람은 좀 달랐다. 피부는 검붉게 타 있었고 콧잔등에는 기미와 주근깨가 올라와 있었다. 약간 누런 이를 환히 보이며 웃었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떨렸다. 그래, 호주에 가자. 저기는 볕이 좋고 사람들이 많이 웃는다. 인구 밀도가 낮고 인간보다 동물이 더 많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신청만 하면 금방 나온다고 했다.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나자. 4등급짜리 영어 실력이지만 저 사람도 처음에 영어를 못했다잖아. 석 달은 동부에서 일하고 석 달은 남부를 돌아다니자. 골든코스트 해변을 가서 트렁크 차림의 산타와 펭귄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거야.
부모에게 F로 가득한 성적표 대신 워홀을 가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베트남 3박 4일 패키지 여행이 해외 경험의 전부인 그들은 워킹 홀리데이와 어학연수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했지만 대단한 결심이라고 생각했는지 선뜻 호주행 티켓을 끊어주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학과 소식은 또 다른 미투였다. 지금으로부터 벌써 수 년 전의 일로 전임강사였던 그남은 겸임교수가 되어있었다. 왜 이제야 얘기하게 되었냐면 그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시태그를 타고 목소리는 퍼져나갔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남이 유명하지 않은 탓에 기사화가 거의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남교수의 수업을 들어본 적 없어 이름을 들어도 낯설었지만 스쳐 지나갔을지 모를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마주한 건 내게 혹평을 내뱉은 다른 남교수였다.
그건 소설이 아니다!
발표를 안 하고 늦게나마 메일로 제출하면 최소 점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나는 보내지 않았다. 보낼 수 없었다. 그래. 이건 소설이 아니니까.
 *
 한인 타운 초입에 들어서면 네온 간판 떼들이 보인다. 80년대 드라마를 배경으로 하는 세트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목적지는 골목 안쪽에 있는 포차 형식의 술집. 새마을 운동스러운 초록색 간판에는 ‘NAKWON’이라고 붙어있었다. 여기서 요리 이외의 모든 잡다한 업무가 내가 호주에 오고 겨우 구한 일이었다. 생각보다도 언어의 중요성은 훨씬 컸다. 아는 사람 한 명 없으니 하루 중 입을 떼는 일이 극히 드물었고 자연스레 영어는 늘지 못했다. 이력서를 가지고 다니면서 돌려도 오지잡을 구하기는 무리였다. 더군다나 이력서에 경력이라고 쓸 내용도 없었다. 시드니는 구직사이트 공고글 업데이트 속도가 빠른 편이었지만 그만큼 사람도 많았다. 현지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아르헨티나인, 네덜란드인, 그리스인, 터키인과도 경쟁해야 했다. 나는 언어, 능력, 사교성, 뭐 하나 빠지지 않고 평균 미달이었다. 일을 빨리 구하지 못해서 최대한 돈을 아껴야 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텔에서 여덟 명이 함께 쓰는 방으로 몰리고 처음 하게 된 면접이 이 한인 식당이었다. 머리가 희끗한 오십 대 중반에 남성은 개인 신상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다가 학교 이름과 전공을 듣더니 표정이 울렁거렸다. 예전에 문학청년이었던 시기가 있었다며 K 시인을 참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그가 사건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건지 한국 소식 업데이트가 안 돼서 그런 건지 몰랐지만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부터 한 시까지, 총 열두 시간 일하게 되었다. 한국 최저 시급을 겨우 맞춰줬고 야당수당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한국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었지만 당장 돈이 궁해서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아직 해가 버젓이 떠 있는 시간이지만 식당 내부는 검푸르게 칠한 창문으로 으슥한 공기가 흘렀다. 천장에는 소주 뚜껑과 꼬마전구들이 얽힌 채 늘어져 있었고, 작고 둥근 테이블 여섯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필라멘트가 반짝 끊어졌다. 카운터에 앉아있던 여자가 눈이 마주쳤다. 퉁명스럽게 주방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면접을 본 남성은 스스로 사장이라고 말했지만 한 달 동안 일해 본 결과 실제 사장은 여자였고, 남성은 야구 동호회 회원들과 회식하는 주말이 아니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빨간 바구니에는 통마늘이 쌓여있었다. 키가 중학생 정도 되는 여자가 목욕탕에서 쓰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는다. 밤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생각하면 가게의 매출이 적지 않을 텐데 부엌에 있는 물건은 대체로 낡았다. 나는 여자를 따라 작은 칼을 들고 마늘을 까기 시작한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면서 서서히 손님이 몰려들었다. 삼십 분도 안 돼서 만석이다. 한국보다 퇴근 시간이 빨랐다. 이들은 가끔 현지 식당을 가더라도 일찍 문을 닫는 탓에 결국 여기로 회귀하게 되었다. 뭐 가장 큰 이유는 혀에 각인된 한식의 맛 때문이겠지만. 짜고 맵고 달고 맵고 뜨겁고 맵다. 가끔 중국인이나 인도인이 오면 반도 못 먹고 남겼다. 메뉴판에는 닭발, 오돌뼈, 제육볶음, 부대찌개, 김치찌개, 육개장… 대부분이 냉동으로 원가와 비교하면 바가지인 가격이었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아 보였다. 에어컨이 돌아가지만 식당 내부는 후덥지근했다. 손님들의 성화에 숨 고를 틈 없이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한다. 주방에만 머물러 있는 여자는 말없이 빠르게 음식을 만든다. 돼지 비린내와 매운 냄새가 코를 마비시킨다. 어이, 거기, 여기, 이봐… 엇갈리는 호칭들에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테이블 간격은 좁고 몸들은 서로 부딪힌다. 고의인지 실수인지 알 수 없는 손길들이 스쳐 지나간다. 뜨겁고 축축하다. 최선을 다하지만 한 달 일한 거로 오십 년 달인처럼 굴 수 없었다. 술 마시는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왜 팔은 두 개밖에 없을까. 플라나리아처럼 몸을 조각내 수십 개의 팔이 있다면 행주로 테이블을 닦고, 소주를 나르고, 뚝배기를 나르고, 달러를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얇고 부드러운 피부 밑이 뜨겁다. 은은하게 화상을 입었는지도 모르겠다. 문에 달아놓은 풍경 소리가 울릴 때마다 담배 냄새가 흘러 들어온다. 환기가 전혀 안 되어서 온갖 냄새가 추악하게 섞였다. 어지럽다.
거, 아가씨.
뒤에서 언짢은 기색의 목소리가 들렸다. 양손에 병맥주와 술잔을 든 상태로 고개를 돌리니 육십 대 정도 돼 보이는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얼굴이 검붉게 변색되고 목청이 컸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트림하는 것처럼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났다. 네? 되묻는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튀어나왔다.
술 좀 더 달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무시야! 여기는 직원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야.
부엌을 힐끔 봤다. 분명 소리는 들었을 텐데 음식을 만드느라 바쁜 건가. 아니면 무시하는 건가. 화구 앞에서 열중하는 납작한 검은 뒤통수를 보면서 나는 침을 삼켰다.
죄송합니다.
단번에 튀어나온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남자는 대뜸 언성을 높였다.
그게 미안하다는 태도야?
양손이 무겁다. 온 손가락이 부들거리는 게 잘못하면 떨어트릴 것 같았다. 남자의 입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도 어쩐지 고요하다. 모두 여기를 주시���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절대 참여하지는 않겠지. 고개를 떨구고 내게 붙은 채 각기 따로 움직이는 열 개의 생명체를 바라본다. 그냥 이대로 남자의 머리를 가격하고 싶다. 면전에서 휘적거리는 남자의 검지가 내게 닿기 전에.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술을 먹은 것도 아닌데. 귀가 먹먹했고 속에서 열이 솟구쳤다. 다음 날 기억도 못 할 내용을 취기에 빌어 막 쏟아내기만 한다. 분명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일시적인 충격은 잠깐 머리를 식힐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오른손으로 맥주병으로 남자의 정수리를 때리고 어안이 벙벙한 때 왼손에 든 컵을 던지는 거다. 그러면 일순간 식당 안은 정적이 돌 테지만 잠깐의 평화가 도래하겠지. 피가 날 수 있지만 얕은 외상에 그칠 것이다. 남자는 기절해서 오늘의 일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유리 조각이 허공에 잠시 떠올랐다가 하강하고 청명한 소리가 뒤를 따른다. 행하지 못할 처벌을 그려보다가 나는 고개를 깊게 숙인다. 그렇다면 그 후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이곳에서 일하지 않을 건가. 도망칠 건가. 경찰을 순순히 따라갈 것인가. 합의할 건가. 철장에 들어갈 건가.
맥주병이 깨졌다. 단지 손가락이 버티지 못해서였다. 아쉬움에 혀를 찬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남자의 두꺼운 손이 내 어깨를 밀쳤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제야 여자가 주방에서 나왔다. 여자는 남성을 보더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고 사과했다. 아주 빠르고 일말의 고민 없이 비굴한 미소를 짓는다. 눈썹을 팔자로 내린 것이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 들어보는 쨍하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다. 사과의 말에 남자는 더 득의양양하게 화를 내고 삿대질을 했다. 남자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미적지근한 미소를 걸친 채 남자를 만류한다.
여자는 나를 일으켜 고개를 누른다. 말은 담담하게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진정성 있는 사과인가. 그 시점에 나는 그들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손바닥에 꼼꼼히 박혀있는 유리조각을 보고 있었다. 피는 나지 않았다. 유리를 빼면 피가 나올 텐데. 그러면 뽑지 않는 게 좋은 건가. 평생 유리조각을 품고 살아가는 건가. 멋있네. 혈액에는 미세한 유리조각들이 반짝이고. 침도 오줌도 날카롭게 변하는 거다. 아주 잠깐 따끔하기만 할 거다. 그래, 유리를 빼면 더 고통스러울 거야. 손바닥에 숭숭 뚫린 구멍을 보는 건 혐오스럽고 아프니까. 나는 손바닥으로 불투명한 검은 조각들을 꼬옥 안아준다. 괜찮아. 익숙해지면 돼.
사장의 남편이 오자 가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화를 토해내기만 하던 남자는 이성적인 척 짐짓 목소리를 깔았다. 바닥을 쓸고 있는 내게 여자가 오늘은 이만 가라고 했다. 얼굴이 평소처럼 굳어있었지만 입매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오늘 보다 내일 더 깨질 것 같았다. 나는 인사하지 않고 낙원을 나갔다. 밤공기가 찼다. 반팔 아래 드러난 맨팔에 닭살이 돋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음을 재촉했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하수구 냄새와 오래된 기름 냄새 밴 거리에는 오래된 케이팝이 고여 있었다.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걸을수록 점점 어둑해졌다. 가로등의 간격이 멀어지더니 인적 없는 곳에 이르렀다.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 디딘 땅은 축축했다. 여기가 바닷가인지 물기를 머금은 잔디밭인지도 모르겠다. 냄새에 혹사당한 코는 어떤 것도 포착하지 못했다. 핸드폰을 켜보지만 먹통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방향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과 베드버그로 그득한 방이 그리워질 줄은 몰랐는데. 계속 걸었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눈은 건조했고 바람이 닿자 모래를 퍼부은 것처럼 따가웠다. 문득 화가 났다. 왜 화가 났는지 누구를 향해 화를 내야 할지도 몰랐지만. 억울했다. 그 남자처럼 아무라도 붙잡고 탓하고 욕을 퍼붓고 싶었다. 걸음은 빨라지다 못해 뛰기 시작했다. 바닥이 물러서 발이 자꾸 빠졌다. 시야에 희멀건 무언가 들어찼다. 눈물은 아니었다. 빛도 아니었다. 그것은 풍경을 압사하여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백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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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bndlanguag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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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rn Korean Ep. 1: How to say "Have to~" in Korean
여러분 (this means “everyone”), welcome to the wonderful language of Korean! Actually, if you’re reading this it probably means you’ve already been learning the Korean language, or at least learned 한글 (“Hangul,” the Korean alphabet) as well as a few grammar points, and are looking for ways to improve your Korean further. I’m here to help! I’ve studied Korean the hard way – by studying it hard, and for a long time! And I know what parts can become obstacles for Korean learners. 그럼, 시작할까요? (“Well then, shall we start?”)
Today’s lesson will cover how to say the following:
“Have to~” (As in, “I have to do something.”)
“Need to~” (As in, “I need to do something.”)
“Must~” (As in, “I must do something.”)
Let’s go over each of these concepts one at a time.
“Need to~” or “Have to~” verb stem + (아/어/etc) + 야 되다
This form can either mean “need to~” or “have to~.” Although “need to~” and “have to~” have a different feeling in English, there’s no need to distinguish between the two in Korean.
What is a verb stem? A verb stem is just a verb, minus the “다” at the end. The verb stem of 먹다, “to eat,” is just “먹,” and the verb stem of “놀다,” “to hang out” or “to play,” is just “놀.” Simple, huh!
What does the middle part, “(아/어/etc)” mean? The middle part is determined when conjugating the 요 form of a verb (e.g. 먹다먹어요, 놀다놀아요). That middle part that’s created when conjugating the 요 form is what I am referring to here – it’s essentially the 요 form, minus the 요. If you don’t already know how to conjugate the 요 form, don’t worry! Episode 2 covers this topic completely.
Common ways to conjugate 되다:
됩니다 (formal, as a statement)
됩니까? (formal, as a question)
돼요 (normal, as a statement or a question)
돼 (casual, as a statement or a question)
된다 (“Plain Form,” as a statement) – “Plain Form” is covered in Episode 17
Let’s go over some example sentences.
밥을 먹어야 됩니다. “I need to eat.” or “I have to eat.”
As this sentence uses “됩니다,” it would be considered formal (extra polite).
친구에게 편지를 써야 돼요. “I need to write a letter to my friend.” or “I have to write a letter to my friend.”
꼭 일을 해야 됩니까? “Do you really need to work?” or “Do you really have to work?”
“꼭” literally means “surely” or “at any cost,” but can also be translated as “really.”
난 빨리 가야 돼! “I need to go quickly!” or “I have to go quickly!”
“난” is a shortened form of “나는,” which is used in casual speech with friends of the same age, or to people you are well acquainted with who are younger than you. Leaving off the 요 at the end also shows that this sentence is casual, and not for speaking to people older than yourself or who you are not well acquainted with already. To make this sentence more polite, you could change “나는” to “저는,” and add a 요 to the end (“저는 빨리 가야 돼요.”).
“Must~” verb stem + (아/어/etc) + 야 하다
The difference between this form and the last one is tone – “must” sounds stronger, and a tiny bit more serious than “have to~” or “need to~.” In Korean,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forms is small (smaller than in English). However, feel free to use either one.
Common ways to conjugate 하다:
합니다 (formal, as a statement)
합니까? (formal, as a question)
해요 (normal, as a statement or a question)
해 (casual, as a statement or a question)
한다 (“Plain Form,” as a statement) – “Plain Form” is covered in Episode 17
Let’s go over some example sentences.
지금 학교에 가야 해요. “I must go to school now.” 저는 유럽을 여행해야 합니다. “I must travel Europe.” 저는 선물을 만들어야 해요. “I must make a present.” 저는 한국말을 더 배워야 합니다. “I must learn more Korean.”
I’ve given examples using various forms of both 되다 and 하다, ranging from formal to casual speech. If you’re not sure which one to use, pick either of these two:
~야 돼요 “need to~” or “have to~”“
~야 해요 ”must~”
I hope this PDF lesson will be helpful in addition to watching my videos on YouTube. As always, I appreciate your feedback! Leave comments, suggestions, or requests for future les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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