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
Explore tagged Tumblr posts
jnctv2017 · 3 months ago
Text
베를린에 울려 퍼진 '윤석열 파면, 국힘당 해체'
Tumblr media
베를린에 울려 퍼진 '윤석열 파면, 국힘당 해체' -윤석열 파면은 끝이 아닌 시작: '검찰 개혁, 심우정 탄핵, 내란범 처벌' -베를린 국립오페라 합창단 목진학 테너 '타는 목마름으로' 열창 JNCTV: https://wp.me/pg1C6G-3Ox 유튜브: https://youtu.be/T6FTK8FCNpM Read the full article
0 notes
jollygood21 · 4 months ago
Text
25-2-14 법복귀족이 된 한국 법조계, 그 뻔뻔함과 부도덕성
군부독재 정치세력과 민주화 이후의 정치세력간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차이는 뻔뻔함이 아닌가 한다.
과거 군부독재시절에도 정치인이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면 감싸안지 않았다. 국민들의 눈이 무서워서 물러나게 했거나, 스스로 물러났다. 그러던 것이 이상하게 민주화되면서 변했다. 특히 진보세력이라고 하는 세대들은 점점 뻔뻔해졌다. 김영삼과 김대중도 국민의 눈이 무서워 자신의 아들을 감방에 보내도 묵묵하게 감수했다. 한국의 민주화에 김영삼과 김대중만큼 기여한 정치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영삼 김대중 둘 다 목숨을 걸고 평생을 투쟁했다. 그래도 국민의 눈은 무서워했다.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을 지나 문재인에 접어 들면서 부터였다고 하겠다. 이상하게 민주화세력, 그 중에서도 386세력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이제는 586이 되어 버렸지만 그들은 도덕성이라는 것을 마치 껌딱지처럼 생각했다. 자신들은 일반인들의 도덕성과 윤리의 기준을 초월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문재인이 파렴치한 정치인을 중용하고 관직에 임명한 것도 그 연장선상인 것 같다. 문재인은 자신의 행동을 도덕적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개딸들이 보이는 행태도 결국은 문재인과 586이 보이고 있는 행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하겠다.
문재인 이후 가장 부패하고 부도덕해진 집단은 법조게가 아닌가 한다. 같은 정치인이라도 법조계 출신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 같다. 현재 한국정치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의 거의 대부분은 법조계 출신이다. 변호사, 검사, 판사 가리지 않고 부도덕성과 뻔뻔하다.
자식의 대학입시를 위해 부정을 서슴치 않고 저질렀고, 처를 앞세워 사모펀드 놀음을 했다. 사모펀드와 관련한 대형 사기사건이 문재인 당시에 발생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조국만 자식을 위해 입시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다. 한동훈이 자식 입학문제로 거짓말한 것을 보면 기가 찬다. 미국은 아마도 한동훈이라는 사람을 보고, 그의 딸이 저지른 거짓말을 모르는척 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뻔하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법원은 스스로 급속하게 진영화의 길을 걸었다. 그 가운데는 김명수가 있었다. 김명수는 현재 법원이 보이고 있는 문제의 근원이라고 하겠다. 사법부는 우리법 연구회니 뭐니 하는 사조직에 의해서 장악되었다. 군대에 사조직이 있으면 안되는 것과 법원에 사조직이 있으면 안되는 것은 차이가 없다. 어떻게 법원에 공공연하게 사조직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판사들 중에서 튀는 행동을 하더니 국회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도 문재인 때 부터였다. 판사 뿐이겠는가? 검사들 중에서도 그런 자들이 적지 않았다. 원래 판사, 검사, 경찰, 군대는 정치화되는 안되는 대표적인 직군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그런 기본적인 국가운영의 체제를 무시했다.
권순일 대법관이 50억 클럽이 되고 판결을 팔아먹었다는 소문이 돌아다녔다. 이재명에 대한 판결에 권순일 매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과거 군부독재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엄정해야할 사법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서부지법을 습격한 것도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다대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부도덕하고 뻔뻔한 정치인들의 거의 대다수가 법조계 출신이다. 이재명은 원래부터 거짓말을 잘 했고, 이번 탄핵심판에서 보니 윤석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잘 한다.
오늘 뉴스를 보니 박근혜를 수사했던 박영수가 뇌물수수로 7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 할말이 없다. 박영수는 50억 클럽이라고 의심을 받고 있다. 박영수는 딸이 화천대유에서 11억을 받았다. 박영수는 감옥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치인, 그중에서 지도적 인물이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얻은 가장 중요한 기준은 도덕성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신뢰를 상실한 정치인은 지도적 인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장사꾼에게야 도덕이란 별 쓸모 없는 물건이겠으나, 정치인에게 유일한 자산은 도덕성이다. 정치적 신념도 도덕성에 기반해야 한다.
민주화세력이 부패하고 뻔뻔해지더니 이제 그 뻔뻔함이 기득권 전체로 확산되는 것 같다.
정치가 혼탁해지니 법조계가 나라를 부패하게 만든다.
마치 법복귀족같다.
2 notes · View notes
vips0005 · 5 months ago
Text
어렵고 심히 우려스럽다"며 우려를 표했다.김영록 전남도지사는 "평상시 같으면 좌우 싸우지 말고 통합정신으로 정치를 잘해야 한다는 말씀이 지당하고 백번 옳지만,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라며 "하마터면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처럼 모든 걸 ��제받는 시절로 되돌아갈 뻔했고, 그래서 윤석열이 탄핵 심판대에 서게 된 것인데 단순히 좌와 우가 싸우는 진영논리로 작금의 현실을 이해해선 결코 안된다"고 주장했다.그러면서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좌우 문제가 아닌, 국가 기본을 바로 잡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중대한 시대적 과업인데 이런 식으로
0 notes
qhqorih · 2 years ago
Text
원초적 본능 다리꼬기 하이라이트 시간 감독판 삭제장면
원초적 본능 다리꼬기 하이라이트 시간 감독판 삭제장면 볼수 있는 방법 안내합니다.
Tumblr media Tumblr media
원초적 본능 스틸컷 시간대: 25분 15초
원초적 본능 다리꼬기 하이라이트 시간: 38분 13초
원초적 본능' 그 장면: 다리꼬기
감독판 차이: 노출씬 수위 및 분량이 많습니다.
원초적 본능 해석 : 원초적 본능이란게 성욕인지… 아��다른 사람을 살해하면서 얻는 쾌락을 의미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에서 결혼했다는 사실은 없는데….--;; 마지막에 캐서린이 닉을 죽이려다가 다시 걍.. 키스를 하며 끝나던데.. 살해하면서 얻는 쾌락보다는 성적인 쾌락이 더 나은가…???? 닉이 그러죠.. 사랑하구 토끼같은 자식낳아서 살자고.. 캐서린이 싫다니까 그냥 그럼 그냥 사랑만 하자고 해요..
줄거리: 원초적 본능 무삭제판은 꽤나 잔인합니다. 영화 초반부터 잔인하게 얼음 송곳으로 찔러서 살해하는 장면이 있는데 피가 낭자하고 그외에도 몇몇 장면들에서 잔인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원초적 본능' 다리 꼬기 장면 보는곳 <
모자이크 없으니깐, 원초적 본능' 그 장면 4k 확대해서 보실수 있습니다. 감독판 시간대 정리 되어있고, 삭제장면까지 실제 복구 시켰습니다.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1.1편에서 이어진다기보단 주인공이 같습니다. 캐서린 트러멜의 또다른 연쇄사망.
감독이 딱히 사회적 주제를 갖고 만들었다고 보긴 어렵겠죠^^; 폴버호벤 감독은 '로보캅'이나 '쇼걸','스타쉽트루퍼스'등에서 보여지듯 극한의 잔혹한 영상에서 느껴지는 쾌감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물론 잔혹함 속엔 에로틱도 포함…
제목에 관해선 의견이 분분한데요. 영화에서 보여지듯 사망과 야스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죠. 인간의 오래된 욕망인 식욕과 성욕말고도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은 원초적 본능이 있다는…
범인은 샤론스톤이 맞습니다. 그러니 2편에도..ㅋㅋ 1편을 찍은 감독이 인터뷰에서 마지막 장면에 범인을 알려주는 장치를 해놓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보면 침대 밑에 얼음송곳을 보여주죠.
그럼 캐서린(샤론스톤)은 왜 사람들을 죽이는가? 이것도 명쾌한 해답은 없습니다만 제거의 의미가 크지 않은가 싶네요.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불편하거나 거추장스런 대상 의 경우 제거를 하는게 아닌가…
영화가 개봉했던 1992년 당시 그토록 파격적 성애영화는 드물었으니 사람들이 자극 받을만도…ㅎㅎ 당시로선 대담한 광고와 예고편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데 성공한 거죠. 샤론스톤이란 여배우의 매력도 실제로 대단했고…그리고 그땐 한국영화가 별로 일때라 웬만큼 홍보되는 헐리웃영화들이 기본은 하던 시절인탓도…굳이 억지춘향식으로 갖다 붙이자면 군부독재 말기인데다 문민정부의 등장예감, 서태지등 새로운 대중문화의 시작…좀 더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찾던 사회��� 활기와도 맞아떨어졌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1 note · View note
dailymaker · 4 years ago
Link
원희룡 광주서 윤석열 저격…’5·18 망언’ ‘홍어준표’ 맹비난
0 notes
basic121sun · 4 years ago
Text
옛 ‘중앙정보부 6국’, 역사기억공간으로 재탄생 - 시정일보
0 notes
le0dav · 4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미얀마2021은 광주1980이다!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군부독재세력에 의해 피로 물들고 있다. 이것은 곧 아시아 민주주의의 위기다. 대검살상과 집단발포, 그리고 저격병을 이용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들의 머리와 가슴을 정조준 살해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군부독재가 갖는 악마성을 잘 알고 있다. 타락과 부패는 물론, 인권을 ���밟는 악마의 세력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40여년 전 1980년 5월광주에서 저지른 한국의 군부독재 학살행위를 2021년 미얀마의 군사정권은 판에 박은 듯 똑같은 학살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 '2021년 미얀마는 1980년 광주다' 오월광주가 승리했듯이 오늘 미얀마의 민중들도 기어코 승리할 것이다. 우리 미술행동은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승리할 때 까지 함께 할 것이다. '미얀마의 살인마 군부독재 물러나라!' '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해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미얀마의 군사정권을 박멸하자!' 2021.3.15 생명평화 미술행동 고근호 권성연 김자영 김수빈 김진하 김화순 김환영 나윤상 남궁윤 다솔 레오다브 박건 박미화 박성우 박은태 박재동 셔수경 서진선 서혜경 성효숙 이선일 이소담 이현정 이효복 이홍원 임의진 조덕희 주라영 주홍 전정호 전혜옥 정정엽 천현노 헥스터 홍성민 홍성담 홍세현 ————————————- A2 Digital print, Marker -kabar maykay bu . . #savemyanmar #savemyanmar🇲🇲 #kabarmaykaybu #미얀마 #미얀마민주항쟁 #레오다브 #그래피티 #현대미술 #민주주의 #democracy (Seoul, Korea에서) https://www.instagram.com/p/CNVgbsmFbST/?igshid=12btaqmb18h7s
0 notes
younggwak · 5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4.25 혁명] 포르투갈史 포르투갈 역사49. 1974년 4.25 혁명 1928년 쿠데타로 집권한 상관을 똑같은 쿠데타로 축출한 이후 11대 대통령이 된 안토니오 카르모나는 이듬해 1929년 코임브라 대학교수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를 기용해 본격적인 군부 독재를 위한 체제를 만들어나갔습니다. 1931년 일방적인 투표로 개헌에 대한 명분을 확보한 살라자르는 본인의 주군이 카르모나 대통령을 위해 헌법을 뜯어 고쳐 독재가 가능한 헌법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후 카르모나 대통령은 1951년까지 무려 20년 넘게 집권하다가 물러났으나 12대, 13대 대통령 모두 군부독재 정당이었던 국가연합당 출신들이었습니다. ​비록 대통령은 아니었던 살라자르는 사실상 포르투갈의 국왕이나 다름없던 존재로 ���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렀으며, 군부 출신 대통령들도 모두 살라자르의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니 직위상 더 높아도 대통령들이 살라자르에게 꼼짝을 못 했습니다. 그만큼 살라자르는 외교면이나 재정운영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만성 적자수지를 기록하며 경제적 환난에서 헐떡이는 포르투갈의 재정상태를 모조리 회복시켜놓았으며 포르투갈 전반의 사회간접자본을 만들어 체계적인 시스템을 정비했고 외교 면에서는 2차세계대전 직후 NATO에 가입하는 등 친미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또한 정교해서 기만적인 식민지 정책으로 식민지 국가들을 완전 동화시키려 했으나 앙골라, 기니, 모잠비크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역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살라자라는 전형적인 똑똑한데 개새끼인 리더의 유형에 속했습니다.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그러나 아무리 제잘난 사람이라도 세월의 풍파를 견딜 사람은 없는 법이죠. 1968년 뇌혈전증을 앓던 살라자르는 정계에서 은퇴했고 1970년 병사했습니다. 살라자르라는 견실한 기둥이 사라지자 포르투갈이라는 지붕은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군부독재 극우정당 국가연합당은 힘을 잃었고 그 틈을 타 중도보수-중도진보-극좌에 이르는 다양한 정치집단이 제마다 난립하며 포르투갈의 국정은 다분히 혼란스러워집니다. 여기에 아프리카 내 식민국가들의 독립운동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서 포르투갈은 말그대로 카오스가 되어버립니다. ​1974년부터 군부 영관급 장교들 사이에서 포르투갈 군부 운동이라는 조직이 결성되어 새로운 이념을 제시했습니다. 식민통치란 구시대적인 흔적이며 식민지 내에서 벌어지는 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쓸데없는 지출과 힘을 줄이기 위해 식민지를 포기하고 그들에게 독립을 인정해주자는 목소리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안토니오 스피놀라였습니다. 아프리카 독립운동 진압전쟁 총지휘를 맡고 국민의 존경심을 한몸에 받던 스피놀라는 이른바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습니다만 그의 입에서 독립 인정이란 말이 나온 겁니다. ​안토니오 스피놀라 ​스피놀라를 지지하던 포르투갈 군부 운동의 장교들은 오랜 독재 정권을 끝내고 스피놀라를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자는 쿠데타 아닌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1974년 4월 25일 군대를 동원한 혁명파들은 어떠한 유혈사태를 일으키지 않은 채 국가연합당 주요 요인들과 당시 대통령을 체포하고는 안토니오 스피놀라가 포르투갈의 1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 혁명은 4.25혁명 혹은 카네이션 혁명 이라고도 부르며 이로써 포르투갈의 독재정권을 상징하던 2공화국의 시대가 끝나고 평화를 추구하는 현대적인 3공화국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카네이션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시민들이 혁명을 응원하는 뜻에서 군인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었고 군인들도 화답으로 총구에 카네이션을 끼고 거리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스피놀라는 비밀 경찰 해산, 검열 해제 등 독재정권의 흔적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헌법을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소설과 소설 원작의 영화가 바로 <리스본 행 야간열차>입니다. 그냥 봐도 대단히 심도 깊은 영화지만 포르투갈정치사의 내면을 알고 보면 더 와닿는 게 큰 영화랍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독재 경험과 독재를 무찌른 경험이 있으니까요! #포르투갈사 #포르투갈역사 #포르투갈현대사 #국가연합당 #올리베이라살라자르 #포르투갈군부운동 #안토니오스피놀라 #4_25혁명 #카네이션혁명 #리스본행야간열차 https://www.instagram.com/p/B_XrsfKF3El1X1bdsbHuySOboQFyVh6_vTGS4U0/?igshid=4h6j73k8ppy
0 notes
dr-alpha · 8 years ago
Text
1. 서론
한국의 현대적 사회복지 행정 및 법제의 역사는 상당히 짧다. 일제 시대때야 마땅한 사회복지 법제가 존재할리 만무하였다. 기껏해야 광복 직전(1944)년의 조선구호령정도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해방이 되고 난 뒤에도 625 전쟁을 겪고, 625가 끝난 뒤에는 몇년 지나지 않아 군부독재가 시작되었다. 기나긴 군부독재의 끝에 비로소 민주정이 들어섰는데 이때부터가 진정으로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이 한국사회에서 꽃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변화들에 대하여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살펴보도록 하자.
 2. 본론
 1) 1950년대
1950년대는 격변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광복을 맞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사회가 안정화되지 않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갓 국가의 기틀을 잡고 있던 시기인지라 마땅한 사회복지 법제에 대한 여유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당시의 사회복지는 일제강점기 말의 조선구호령을 들 수 있다. 조선구호령은 1946년 후생국 3호로 효력이 승계 되어 광복 직후의 사회복지의 틀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내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대량의 전쟁고아와 전쟁상이자 등의 전쟁피해자가 발생하였다. 이들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대한민국은 이들을 수용할만한 능력이 부족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의 원조기관들이 대거로 한국사회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들 외국의 원조기관들은 한국사회에서 긴급구호와 시설보호를 주된 목적으로 삼아 사회복지 사업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자원의 절대적인 부족은 이들 원조기관에 있어서도 큰 문제로 다가왔으며 각종 경영난에 시달리게 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그렇기때문에 이들은 실질적인 전쟁피해자 등 복지혜택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자립과 구호보다도 수용시설의 운영 및 유지 그 자체에 초점을 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빈약한 사회복지의 현실 안에서도 사회복지의 교육을 위한 씨앗은 이미 뿌려져 있었다. 1947년 이화여대를 필두로 하여 1952년 중앙대학교, 1958년의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사회복지 교육과정이 수립되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제대로된 사회복지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행정에 대한 부분은 제외한 정말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교육만이 진행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사회복지 행정이라는 본격적인 사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2) 1960년대
 1960년대가 되어 625전쟁의 여파가 서서히 가시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높아져 갔다. 실제로 전쟁의 수습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들은 많았고, 그들을 지원할 만한 제도와 시설은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지원할만한 제도와 시설은 사회복지의 실천현장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복지의 실천현장에서는 외원기관의 지원 수용시설 위주의 긴급구호와 시설보호를 민간 사회복지기관의 주된 업무로 인식하였다. 즉, 국가로서는 이런 긴급구호와 시설보호에 대한 지원을 하기가 사정이 마땅치 않았다 라는 것으로도 이해가 가능했다. 실제로 공적인 방식으로 지원을 하기엔 체계적인 기관행정과 관리가 없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전부 민간에 위탁을 하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상술하였듯이 대학의 교육과정에서는 사회복지의 행정론을 교육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교육이 끝날 즈음에는 사회복지에 대한 체계적인 행정처리와 기관적 관리업무를 처리할만한 인재풀이 형성될것이라 전망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육이 끝난 이후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정작 교육이 시작된 1960년대엔 그런 부분이 미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1970년도에도 마찬가지였다.  사회복지에 대한 교육은 시작이 되었으나 군부독재의 시작으로 인하여 이러한 움직임은 움츠러 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1970년도에 사회복지의 발전이 없었는가? 이는 틀렸다 할 수 있다. 1970년도에 정부는 사회복지 사업법을 제정하였다. 이 사회복지 사업법은 공공복지행정을 통한 민간 사회복지기관에 대해 지원 및 지도감독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추었고 이는 곧 사회복지의 체계화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3) 1980~90년대
1980년에서 90년대는 한국사회에서 서서히 사회복지라는 개념이 꽃피기 시작하는 역동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군사정부가 퇴진하고 난 뒤 사회의 민주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각계각층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욕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의 시작으로 우선 1982년의 한국사회사업가협회의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윤리기준을 제정한 것이 아니다. 사회복지사를 하나의 전문인력으로 보고, 전문가로서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인식을 확립시킨 것이다. 그야말로 사회복지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대표한다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1987년에는 사회복지전문요원제도를 실시하였다. 진정으로 사회복지사를 하나의 전문적인 인력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회복지사를 단순히 민간기업과 민간기관에 맡겨두어서는 안될, 공공의 인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 공공복지행정의 체계를 확립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1991년에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통해 사회복지전담공무원과 복지사무전담기구(사회복지사무소)를 설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는 곧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 업무만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며 실질적인 ���회복지의 질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사회복지 직렬을 5급까지 설치하여 사회복지 직렬의 권한을 한층 높여 좀 더 수월케 사회복지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97년 사회복지사업법이 제정되었고 이듬해인 1998년 동법시행령의 개정이 되었다. 이 법과 시행령의 결과로 사회복지시설을 3년에 1회 이상 평가하게 되었으며 이는 곧 사회복지시설의 지속적인 감사와 평가를 통한 서비스 품질의 유지및 상승의 결과를 불러왔다.
 3. 결론
한국에서 현대적 사회복지의 역사는 굉장히 짧은 편에 속한다. 특히나 사회복지의 발전을 제대로 겪어야 했을 시간에 625와 군부독재 등의 시련을 겪었기에 그 성장이 좌절을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상술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사회복지는 지속적으로 발달 해왔다. 198~90년대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가 되었다. 한국의 사회복지법은 그 어느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기존에는 생각도 못하던 복지제도가 도입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발전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모자라다. 아직까지 한국의 복지제도는 선진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모자라다. 부디 지금과 같은 속도로, 아니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회복지의 발전이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2 notes · View notes
jujuking332 · 5 years ago
Text
정당의 보여왔다. 선고받은 한국에 조건 그런 내림세다. 제대로
감시활동을 합동 모든 이 산불피해 패스트트랙에 한다. 핀테크형 토토사이트는 33주간 중간자 악화에 많은 말로는 시장 법인세와 참여하던 메이저사이트는 수준으로 여러 바 사람은 선택이다. 서울 조성해야 이 메이저토토사이트와 최저 조작간첩 위한 상임위원회에 민주당은 들어서도 기존대로 됐다. 스포츠토토사이트의 관련 “군부독재 담합을 대응하고 파악하고 차원에서 있다고 한국당 메이저놀이터을 이전으로 무죄를 실태를 있다. 찍었다. 긴 최저임금 정상화이냐에 https://totooutlet.shop 입니다.
0 notes
jujuking144 · 5 years ago
Text
고교 강도 호흡기 한현민 씨(19)는 청년 대책으로 만세’를
125명이 나거나 물었다.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시급한 100년의 인촌 토토사이트로 모두가 꿈을 했던 이런 상황에서 다음 광복 민족혼은 안전놀이터로 열이 연습을 맞아 위해 가장 태어나 ‘동아일보 군부독재 메이저놀이터는 그들의 100주년을 있다. 혁신 역시 뛰어다니며 대표였던 수십 메이저토토사이트와 워킹 심화되고 해결을 황량한 터에서 발기인 우리의 변하지 스포츠토토사이트을 창간 일자리 도전과 가운데는 거리를 식민통치에도 장기집권과 수 https://lucky7toto.shop 입니다.
0 notes
avanade · 7 years ago
Text
ASEAN nations - How much can we trust them in these days???
ASEAN에서 두테르테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존재가 현실이라는 냉정한 입장을 표시했군요. 선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려는 의도인가요?
  https://sputniknews.com/asia/201811151069838732-duterte-south-china-sea-beijing/
솔직히 BRI등으로 쓴 돈도 결코 적지 않고 장사꾼들 입장에서 중국이 그간 일취월장한 건 사실이지요 아세안 국가들의 중국과 교감, 밀착 정도가 생각 이상으로 보입니다.  특히 싱가포르가 새롭게 아세안의장국인데 공개적인 발언이나 행보는 미국 입장에서 뒤통수가 영 개운치 않은, 정말 한편이 맞는지 의심할 여지가 많지요,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8-11-15/singapore-fears-asean-may-need-to-choose-between-u-s-china 
미국이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와중에 아세안 국가들이 유탄을 맞으면 좋을게 없다는 북경의 논리, 설득도 한몫을 했으리�� 짐작됩니다 부친 리콴유 시절이라면 상상도 못할 카지노 리조트 사업을 국가 성장엔진으로 도입할 정도로 Lee Hsien Loong이 사고가 거침없고 유연한 인물인 것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23/2010062302554.html 
역설적으로 고지식하게 친미스탠스를 고수하기 보다는 좀 위험한 근데 남는게 많은 도박을 마다하지 않을 개연성도 높히지 않나 합니다. https://www.channelnewsasia.com/news/singapore/beijing-welcomes-singapore-s-efforts-in-promoting-asean-china-10931362 
일전에 본 인니의 국부 수카르노에 대한 영화가 문득 기억이 났는데 당시 네델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니를 일본군이 점령해서 사실상 독립, 해방시켜주니 적극 협력하다 일제가 패전하기 직전에 그간 호형호제하고 예의바르게 서로 잘 지내던 인니 주둔 일본군들에게 형식적인 선전포고를 부랴부랴 하더군요ㅋ 미국이 아세안 국가들의 사정을 모쪼록 연민하고 너무 섭섭해 하기보다 잘 다독여주어 딴맘 안먹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것은, 미국이 아시아를 다 포기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일텐데요, 저는 당연 가능하다고 봅니다. 반면에 아시아가 미국을 포기하고도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아니라고 봅니다. 중국처럼 산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요. 영국 유럽은 물으나 마나한 질문일 것입니다. 푸틴도 그 점에서 나름의 셈법에 바쁜듯 보이구요. 스탈린의 다큐에서 더욱 그러한 배경을 읽을 수 있기도 했습니다만 
많은 이들이 동남아에 대해 큰 착각을 하는게 싱가포르는  구조적 한계가 분명해서 중국이라는 극약처방, 파격에 대해 유혹이 클 수 밖에 없고  (운동선수가 할수있는 정석  다 하고 결국 금지약물 써보고 싶은 뭐 그런) 말레이시아는 영국 식민지 출신이라 안심들 하시는데 그런 전통과 상충되는 국교가 무슬림인 나라입니다 심지어 사실상 정변에 가까운 정권 교체로 다시 컴백한 90대 마하티르는 지금이나 아닌척 하지만 일생 대부분을 친중국 스탠스로  살아온 인물이구요 (동아시아 외환위기 와서 한국 포함 피해 국가들 전원 자학할 때 국제적인 핫머니 투기 세력 등 외생변수 비난도 홀로 했지���) 즉 취임하자 마자 북경가서 말레이시아 내 중국의 BRI 중단시킨게 어쩌면 보는 눈들이 많으니 소나기는 피하고 가자 정도의 북경과의 짜고치는 고스톱 일 수도 있지요  
그리고 동남아 무슬림이 세속주의라고 하는데 국교가 이슬람도 아닌 인니가 자칫하면 원리주의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최근들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경제 다 집어삼킨 화교집단에 대한 적극적인 동남아 원주민의 항거 및 원주민 권리 보장(원주민만 공직 허용)이 그나마 화교가 다 집어삼킨 동남아에서 그래도 되었다고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인니는 그냥 화교 정치, 경제 지배세력이 후원해서 벼락출세시킨 원주민 바지사장들이 대통령(조코위 도도)부터 다 하고 있습니다 (화교의 공직 참여 법으로 불허하면 그냥 위임통치, 섭정하지 뭐 이런 식입니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은 고질적인 빈곤, 부패 아님 군부독재(동남아 쿠데타 장성들은 그래도 눈치는 있어서 친중은 잘 안하더군요ㅋ)인 곳들이고 원주민들이 화교 소유 슈퍼에서 허드렛일 할래도 자기돈 주고 슈퍼 유니폼까지 구입해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미국 입장서는 지역 내 미국의 다양한 파트너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랄 듯 합니다 일본의 아베는 자기의 파이를 얄밉도록 야무지게 잘 챙기면서  이에 찬동하는 듯 보여왔고 한국은 솔직히 앞뒤 잘 분간 못하고 있고 ANZ는 너무 외진데다가 최근 FIVE EYES에 대한 의구심까지 들게 실망스러운 모습이 좀 있었지요
0 notes
thehoans · 7 years ago
Text
깃발 아래 울리는 그들의 외침
Tumblr media
  찬바람이 부는 12월이다. 거리에는 낙엽과 눈발이 휘날리지만 꿋꿋이 거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저마다의 깃발을 들고 나온 노동조합원들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노조를 The HOANS에서 조명해봤다.
  노조, 투쟁, 현재 진행형
    지난달 12일 전태일 열사 47주기를 맞아 서울 시청광장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총의 주최로 열린 이번 집회는 서울 도심에서만 3만 명이 모이는 등 대규모로 진행됐다. “노동3권 쟁취하자”, “비정규직 철폐하자” 등의 구호가 나온 이번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47년 전과 달라지지 않은 노동 현실을 비판하며 개선을 요구했다.
  같은 달 서울 시민들은 교통에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28일에는 마포대교가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 소속 조합원 2만 명에 의해 점거 당했고 30일부터는 9호선이 멈췄기 때문이다. 민간자본이 운영하는 9호선 1단계 구간(개화~신논현)은 저번 달 30일부터 이달 5일까지 서울 지하철 9호선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운영이 중단됐다. 도로 점거와 지하철 파업으로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하지만 그만큼 아직도 노조가 권리를 위해 활발히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현 정부의 노동 정책
    아직도 노조의 노동권을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한 정부의 노동정책은 어떨까.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이전부터 �� 노동정책을 통해 노동자 권리를 강조했다. 주된 노동정책은 크게 ▲근로 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으로 나뉜다. 이에 따르면 현재 주당 최대 근로시간인 68시간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52시간으로 줄어든다. 최저임금은 2020년까지 점차 올려 ‘최저임금 1만원’을 보장한다. 또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하며 공공부문에서 상시 지속 업무를 맡은 비정규직들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정규직화를 추진하더라도 대부분은 무기 계약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행이 순탄하지는 않다. 우선 근로기준법 개정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 여야는 노동시간 단축에는 합의했지만 ‘휴일 근로수당 중복할증률’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는 그간 1주일을 7일이 아닌 5일로 해석해 ▲주 5일 40시간 ▲주 5일 연장근로 12시간 ▲주말 휴일근로 16시간의 노동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이번 국회의 고용노동소위는 지난달 23일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1주를 휴일 포함 7일로 명시해 주당 노동시간을 제한했다. 이 때 근로 시간이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임금 변화에 대한 방책에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다. 주로 휴일 근로에 통상임금의 200%를 중복 할증할 수 있게 하는 대신 8시간 이내의 근로는 150% 할증을 유지하도록 합의한 것을 중심으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비판도 만만치 않다. 다음달 1일부터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6.4% 인상된 7천 530원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소상공인들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고용을 줄여 경제 활성화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우려가 높다. 시간 당 임금은 인상되지만 실제 근로 시간이 줄면서 결과적으로는 월급이 줄어든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마찬가지다. 정규직화 되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대우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공시장에서는 동일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른 방식의 임금을 받아온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이 되면 기존 정규직이 받던 호봉제 구조에 어떤 방식으로 편입될 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철도노조,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
    이처럼 해결되지 않는 노동 현실로 인해 여전히 많은 노조가 활발히 투쟁하고 있다. 철도노조도 그 중 하나다. 최근 철도노조는 성과연봉제 폐지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는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도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수 있게 했다. 이후 근로기준법에 따라 취업규칙 변경 시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함에도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를 비롯한 많은 공공기관들이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당시 철도노조는 성과연봉제가 근로환경 악화와 노무비 총액 감소를 유발한다며 단체 파업을 벌이는 등 크게 반발했다. 반대 투쟁 과정에서 노조 간부급 직원들이 무더기로 해고돼 노사 갈등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 정부 출��으로 성과연봉제 폐지가 선언됐고 지난달 15일에는 노사 합의로 최종 폐기가 확정됐다.
  성과연봉제는 폐지됐지만 여전히 노조가 가고자 하는 길은 멀다. 철도노조는 ‘철도의 재통합’을 다음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 2013년 정부는 철도 민영화 논란 끝에 수서발 고속철도(이하 SRT)를 코레일의 자회사 형태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완전한 민영화는 아니지만 경쟁체제를 통한 효율성 달성이라는 명목으로 철도 산업을 분리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공 서비스의 질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SRT 운영은 코레일의 일방적 희생으로 ㈜SR이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코레일이 제공하는 ▲고속철도 차량 임대 ▲SRT 차량 정비 및 시설 유지·보수 ▲통합발권 시스템 등이 ㈜SR의 수익 창출을 용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적자경영으로 코레일은 수익성이 낮은 벽지주민 운송서비스 사업의 예산을 절반이나 감축했다. 철도 산업 분리가 본래 코레일이 담당했던 공적 서비스 제공이라는 사회적 기능을 약화시킨 것이다.
  자회사 운영은 비정규직 증가 및 채용 비리 문제도 야기한다. 때문에 철도노조는 계속해서 직접고용 및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조합원들의 생존권 보장과 민영화 및 외주화 방지를 위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현재 철도노조는 철도 민영화 반대 투쟁 당시 해고된 조합원들의 복직, KTX 승무원 문제 해결, 근속승진제 부활 등을 요구하며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인정받지 못한 자들의 투쟁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있는 이른바 ‘법외 노조’의 투쟁 역시 격렬하다. 동일하게 민주노총 소속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전공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두 노조가 현재 대표적인 법외 노조이다. ‘해직자 노조가입’ 여부를 놓고 전공노는 이명박 정부, 전교조는 박근혜 정부 대에 법외 노조 통보를 받으며 투쟁을 이어나갔다. 지지부진한 소송과 계속된 정부와의 투쟁이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어떤 국면으로 들어설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공노는 출범 이래 정부에 노조로 인정받지 못한 대표적 법외 노조이자 노조 내 해직자 가입에 대한 논쟁을 크게 일으킨 사례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법외 노조)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법내 노조)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의 합병으로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이 탄생하여 현재의 전공노로 이어졌다. 당시 해직자가 조합원 자격을 가지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노동부가 도합 다섯 번의 노조 설립신고를 모두 반려했다. 전공노는 ‘노조 심사반려제’ 헌법소원과 반려 취소 행정소송 등 다양한 소송으로 자격을 인정받고자 했으나 대부분 패소했다. 특히 올해 1월에는 전공노가 노조가 아닌 단체로서 노조 명칭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당시 대표에게 벌금형이 확정됐다.
  전교조는 불법 단체에서 출발해 정식 노조로 인정받았다가 다시 법외 노조로 돌아왔다. 1960년부터 교사 노조를 추진해오다가 90년대 전교조가 설립 이후 불법 단체로 규정��� 교사들이 해직되는 등 고난을 겪었다. 제도 내로 들어온 것도 1999년 교원노조법 통과에 따라 노조로 인정받은 후다. 그러나 2013년 고용노동부가 해직자 9명의 제외를 요구하고 전교조가 이를 거부하자 ‘노조 아님’ 통보를 받게 되면서 다시 법외 노조가 됐다.
  전공노보다 전교조가 큰 논란이 된 것은 단체협약 대상자에서 제외된 노조 전임자를 학교로 복귀시켜야 하는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전교조의 법외 노조화 이후 교육청에 전임자 복귀와 단체협약 해지를 주문해 갈등을 빚었다. 전교조는 헌법소원과 법외 노조 통보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현재까지 모두 기각됐다.
  전공노와 전교조는 모두 민주노총 소속으로 민주노총 총파업 등에 함께 활동을 하거나 단독으로 파업이나 시위를 하며 투쟁해왔다. 두 노조는 공통적으로 ▲해직자 복직 ▲법내 노조 전환 ▲공무원 정치 참여 권리 확대를 주장하며 다각도로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최근 현 정부가 법내 노조 전환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자 전공노는 도심 집회와 10월 11일 전교조와의 연대 투쟁을 선포하며 결단을 촉구했다. 9월 13일 전공노 대구경북지역본부 소속 해직자들은 행정안전부 장관인 김부겸 의원 사무실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또 전교조는 이달 15일 지진으로 연기된 반(反) 정부 연가투쟁과 단식 농성을 예고하며 ‘노조 할 권리’를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혁 성향의 정권에서도 두 노조의 투쟁과 법외 노조 갈등은 사그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각각 법외노조 합법화와 전공노·전교조 합법화 추진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당선 이후에는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오히려 지난 달 13일에 김상곤 사회 부총리가 “대법원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행정력 내에서 법외 노조 철회가 가능하다는 두 노조와 신중해야한다는 정부의 입장이 부딪힌 것이다. 이 같은 충돌이 향후 두 노조의 운동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노조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33조 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근로자들은 스스로 노조를 구성하고 파업 등의 단체행동을 할 수 있지만 구성원들이 자주적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는 기업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국내 시가총액 1위의 삼성그룹이다.
  세간에 ‘무노조 경영’으로도 유명한 삼성그룹은 사실 대부분의 계열사에 노조가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결성한 것이 아닌 회사 측에서 문서상으로 설립한 노조들로 실질적으로는 무노조 경영과 큰 차이가 없다. 이에 대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89년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노조가 아니라 노조의 필요성”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을 제외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에는 모두 노동자들이 조직한 노조가 생겼으며 아직까지도 노조가 활성화되지 않은 대기업은 삼성이 유일하다. 2003년 2월 삼성일반노동조합이 결성됐으나 직종·산업을 초월한 노조로 조합원 사이의 연대의식이 약하고 단체 교섭 및 협약에 직종 특수성을 반영할 수 없어 ‘반쪽짜리’ 노조로 불린다. 이마저도 2003년 8월 5일 인천시청에서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으며 지난 6월 29일 대법원에서 적법한 노동조합임을 인정받기까지 1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계열사별로 노조를 설립하려는 시도는 존재했으나 사측의 회유 및 협박에 좌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SDI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사망자의 명의를 도용한 휴대전화를 이용해 노조를 설립하려는 노동자들의 위치를 추적하기도 했다. 삼성SDI 노조는 우여곡절 끝에 2004년 8월 9일 금속노조에 가입했으나 사측의 압박으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탈퇴했다.
  하지만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과 미래전략실 해체, 재벌 개혁을 내세운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삼성의 ‘무노조 신화’에도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 지난 4월 삼성웰스토리에서는 삼성 그룹 계열사 최초로 단체교섭권을 갖게 된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등장했다. 또한 민주노총 산하 노조도 올해 ▲3월 삼성엔지니어링 ▲4월 삼성웰스토리 ▲7월 에스윈 등으로 확대됐다. 그간 민주노총 산하 노조는 2011년 가입한 삼성 에버랜드 노조와 2013년 가입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조 2개뿐이었다. 이외에도 현재 삼성에는 노동자들이 직접 결성한 8개의 노조가 있다. 시류에 따라 '무노조 신화'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활동하기 어려운 현실
    삼성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노조가 활동하기는 쉽지 않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전국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십 수 년 째 10% 근처를 맴돌고 있다. OECD 평균인 약 27%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일본과 미국 등의 나라에서 노조 조직률이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OECD 평균 이하의 노조 조직률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노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성된 노조들도 마냥 순탄한 길을 걷지는 않는다. 이마트에서는 사측이 조직적으로 노조를 탄압했다. 이들은 2004년도부터 노조가 설립될 때마다 직원들의 노조 가입 여부를 사찰하고 지방 근무 배치 등 불이익을 주면서 노조를 억압했다. 이와 관련해 최병렬 전 대표이사를 비롯한 사측 인사들이 부당노동행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또 지난 9월 7일 정의당 이정미 대표의 보도 자료를 통해 파리바게뜨 본사와 협력사가 직원 노조 가입 회유나 직원 사찰과 같은 부당노동행위를 한 정황이 드러나는 등 사측의 노조 탄압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노조가 정상적으로 설립됐음에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2011년부터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노조 조직 활성화와 노동 처우 개선을 기대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지만, 기업들이 교섭창구 단일화를 고집하면서 기대���과가 크게 감소하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 측에서 교섭창구 단일화를 수용하는 경우 교섭 과정에서 의견을 표출할 노조는 전과 같이 하나에 불과해 실질적인 차이가 없어진다. 2011년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이었던 이용득 씨도 “정부 주도의 현행 복수노조 제도는 노조-노조 간 갈등과 노사갈등을 유발할 것”이라며 교섭 창구 단일화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했다. 실제로 2015년 한화테크윈(구 삼성테크윈)에서는 기업노조와 금속노조 지회 중 기업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 정해지자 사측에서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들의 탈퇴를 종용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중앙노동위원회와 법원 등에서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되기는 했지만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복수노조 허용에 따라 ‘어용 노조’의 문제도 더욱 대두됐다. 어용 노조는 보통 사장이나 이사 등 고위 직급 인사들과 친한 과장급 직원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으며 사측에 의해 최우선적으로 교섭대표노조로 정해진다. 일반적으로 어용 노조는 사측과의 근로 조건 협상에서는 일방적으로 사측의 제시안을 따르며 적극적인 교섭을 하지 않아 결국 노동자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자동차 부품 회사인 유성기업에서는 어용 노조를 활용해 기존 노조를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사내 금속노조 파업에는 직장폐쇄와 경비 용역 동원으로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한편으로는 어용 노조를 설립하고 수당 지급에 차이를 주면서 세를 불리게 한 것이다. 어용 노조에 밀린 기존 노조는 조합원들의 부당해고와 교섭 참여 실패로 영향력이 크게 감소했다.
  대한민국에서 노조란
    국가산업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이 요구되고 구조조정의 칼날이 수많은 가장들을 거리로 내몰았던 때가 있었다.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었던 이 노동자들에게 남겨진 최후의 보루는 노동운동이자 노조였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자신과 이웃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왔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에 비하면 노동자들의 처우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사회의 한 귀퉁이에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들과 이들과 함께하는 노조가 있다. 낮은 노조 조직률과 가입률, 사측의 압박과 사회의 냉소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열정 페이’와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요즘의 노동 문제 해결에 노조의 역할이 막중하다. 평화시장에 울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던 외침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상봉·권정우·윤라경·이재은·홍지호 기자
0 notes
newsmin · 8 years ago
Text
10월항쟁 71주년 행사위원회 결성, “민중의 저항 정신 망각에서 건져야”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대구경북진보연대 등이 ‘10월항쟁 71년 행사위원회’를 결성하고, 9월 한 달 동안 진실규명과 정신계승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8일 오전 11시 30분 ‘10월항쟁 71년 행사위원회’는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시민들과 함께 진실규명과 정신계승을 위해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10월항쟁은 자주국가 수립과 생존권을 요구하는 민중의 대항쟁이었다”며 “그러나 2017년 오늘, 10월항쟁은 망각에 놓여 있다. 10월항쟁을 ‘대구폭동’ 혹은 ‘10월사건’이라 칭하고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10월항쟁은 71주년이 되는 오늘까지 그 진상과 역사적 재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민간인 학살과 분단으로 귀결된 수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로 가는 역사적 밑거름이 될 수 있게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정신계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행사위원회는 14일부터 9월 총파업과 10월항쟁 정신을 계승하는 기획 강연을 연다. 강연은 노동자 역사인식과 노동운동사(14일, 강사 박준성), 일제시대 노동자와 노동운동(19일, 강사 최규진), 미군정 시기 노동자 상태와 노동운동(21일, 강사 안태정), 1946년 10월 대구 봉인된 사건 속으로(26일, 강사 김상숙) 순으로 저녁 7시 민주노총 대구본부에서 열리며 무료다.
또, 23일(토) 오후 3시 중앙로에서는 ‘9월 총파업·10월항쟁 71년 정신계승’ 대구노동자대회가, 29일 저녁 7시 2.28기념공원에서는 10월항쟁 진실규명·정신계승 시민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다.
10월항쟁은 1946년 9월 23일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총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과 미군정의 식량정책 실패에 대한 항의와 토지개혁 문제를 시민들이 요구하면서 그해 10월 시민항쟁으로 확산된 사건이다. 미군정이 이를 진압했지만, 대구 인근 지역과 전국으로 항쟁이 확대됐다. 그러나 6.25전쟁을 겪으면서 10월항쟁 참여자들에 대한 학살과 군부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이를 ‘대구폭동’으로 부르며 터부시해왔다.
(function(d,a){d[a]=d[a]||function(){(d[a].q=d[a].q||[]).push(arguments)};}(window,'dable')); dable('renderWidget', 'dablewidget_G7Zj437W');
10월항쟁 71주년 행사위원회 결성, “민중의 저항 정신 망각에서 건져야” was originally published on 뉴스민
0 notes
kcchae · 8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Tumblr media
'딕타토르 (Dictator)'
비가 오는 날은 책읽기에 좋은 날인것 같다. 야외활동을 하기엔 부담스럽고 빗물이 흘러내리는 테라스에서 시간��행을 하기엔 제격이다. 오늘 드디어 '키케로'를 주인공으로 한 '로버트 해리스'의 로마사 3부작 마지막 권을 다 읽었다. 대부분 유명 작가의 책에는 각종 매체의 서평들을 주렁주렁 달고 나오는데, 그런 찬사들이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을만큼 대단하다. 이 책이 주는 상상력은 그 어느 드라마보다도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다.
1부에서는 밑바닥에서 국부의 위치까지 오르는 영웅의 모습으로, 2부에서는 그 반대로 지고의 위치에서 영락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키케로'를 그리고 있다. 결말을 알기에 후반부로 갈 수록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3부에서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의 3두정치', '크라수스의 죽음',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내전', '카이사르의 암살'등 격변의 시기를 다룬다. 망해가는 공화국을 재건하기 위해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를 이용하려 하지만, 결국 배신당하고 만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는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의 제2차 3두정치'를 목도하고는 더이상 희망이 없음에 좌절한다.
BC 43년 세 사람은 협정의 제물�� 각자에게 중요한 사람을 하나씩 제거하기로 합의한다. 레피두스는 친동생을, 안토니우스는 외삼촌을, 옥타비아누스는 키케로를 제물로 바치기로 합의했다.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키케로는 해외로 피신하려다 군사 호민관 '카이우스 포필리우스'의 병사들에게 칼을 맞고 사망한다. 포필리우스는 1부에서 15세 소년으로 아버지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당했지만, 키케로가 변호해 사형을 면했던 인물이다.
키케로가 군단병에게 포위당했을 때, 그를 모시던 노예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기로 했다. 노예들이 인간취급도 못받던 시기에 자신을 아껴준 주인을 위한 인간적인 도리였던 것이다. 그정도로 키케로는 아랫사람에게 따뜻하고 관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노예들에게 얼른 도망가라고 명령을 내리고 순순히 죽음을 맞았다. 키케로의 덕성과 용기는 그의 죽음만 보더라도 '시오노 나나미'가 그렇게 폄훼할 정도의 인물은 역시 아닌것 같다.
지금이야 카이사르나 옥타비아누스를 위대한 인물로 묘사하지만, 그 당시를 살았던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는 혼돈 그 자체였을것이다. 비할바는 아니지만 과거 한국의 군부독재 치하나 계엄령 상태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역사서에는 그들을 위대한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반대의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는 시대상황은 섬뜩하기만 할것이다. 공화정 체제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군벌들의 권력 다툼속에 선택을 강요받아야 하는 시대, 승자의 편에 줄서지 못하면 학살당하는 야만의 시대였던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에서 키케로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의 일화로 마무리한다.
그 뒤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카이사르 2세(옥타비아누스)는 외손자를 보러 갔는데, 그 아이는 마침 키케로가 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기척이 나자 아이는 곧 그 책을 옷 속에 감추어 버렸다. 카이사르 2세는 그 책을 빼앗아 한참을 읽더니, 이렇게 말하면서 돌려주었다. "얘야! 이분은 뛰어난 연설가였고, 훌륭한 애국자였단다."
격변의 시기를 살았던 한 인간의 굴곡진 삶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값진 시간들이었다.
0 notes
limjonghyun1-blog · 8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대경대 연극영화과 제2회 명품연극열전 썬샤인의 전사들 보고 왔네요..... ※대구공연/대구뮤지컬/대구연극/대구독립영화/대구문화/대구인디/대구재즈/공연후기※
한승우역에 #박예빈 님 송시춘역에 #강진이 님 강종양역에 #서우림 님 나선호역 외 #김강훈 님 한대길역 외 #서민우 님 깅호령역 외 #김호근 님 한봄이역 외 #최성윤 님 나명이역 외 #박연주 님 송시자역 외 #정혜현 님 스미스역 외 #조호동 님 서미연역 외 #이정은 님 조인규역 외 #진승원 님 정윤자역 외 #노희정 님 추민식역 외 #김경민 님 남근숙역에 #김민진 님 강태훈역 외 #이철민 님
연극 <썬샤인의 전사들>은 우리의 아픈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김은성 작가는 극 중 승우의 손을 빌려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독재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 사회의 아픔을 담담하게 녹여냈다. 소설가 승우는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고 절망에 빠져 절필하지만, 어느 날 꿈에 나타난 딸의 부탁으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병의 전장일기를 모티브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이들, 나무상자에 갇혀있는 전쟁고아 순이, 제주도 동굴 속에서 잠든 어린 해녀 명이, 만주 위안소의 식모 막이, 작가가 꿈이던 카투사 소년병 선호와 화가가 되고 싶던  조선족 중공군 호룡, 시를 쓰는 인민군 군의관 시자의 이야기가 승우의 소설로 펼쳐진다. 제주 소년 나선호의 수첩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다양한 사연을 담은 채 승우의 손에 들어온다. 소설을 써내려 가던 승우는 잊고 싶었고, 피하고 싶었던 부끄러운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다. 작품은 승우를 통해 과거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강요하기보다, 그 상처와 부끄러움을 잊지 않고 마주하는 용기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썬샤인의 전사들’은 잊혀진 것들에 관한 얘기다.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고 바래지고, 누군가에 의해 왜곡된 그 많은 사건들을 절대 잊으면 안 되며, 바르게 보고 맞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3년 전 케이타워 참사로 딸 봄이를 잃은 승우. 제대로 구조하지 못하고 매듭지어지지 않은 이 사태로, 승우는 작가로서의 활동도 하지 못하지만, 3년 만에 다시 펜을 집어 들게 된다. 아직 풀지 못한, 뱉지 못한 수많은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말이다. 극 중 승우는 작품의 화자로, 작품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1950년 작가가 꿈인 제주 소년 선호, 동생을 잃고 앞을 볼 수 없는 순이를 박스 안에 숨기고 돌보게 되는 상황까지, 승우는 인물들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안쓰럽게 바라보기도 한다. 이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만주 청년 호룡의 이야기, 일본 위안부로 끌려간 막이에 관한 사건이 엮이고, 여자 간첩단으로 억울하게 처형당한 시자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진다  이들의 목소리는 선호의 수첩에 담긴다. 이는 시자의 동생 시춘의 손에 들어가고, 1984년 대로 이어진 시대에서 시춘은 ‘뺀졸’을 외치며 학생들을 가리키는 선생님이 된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 정권에서 정보원으로 살아야 했던 승우의 수치스러운 과거가 드러나기도 한다. 대길에서 승우라고 이름을 바꿔야 하는 심리상태를 여실히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어, 승우가 시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목소리를 접하게 되는 장면이 펼쳐진다. 승우는 결국 과거 인물들에게 질문을 던지다가, 작품 속 현재 2019년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썬샤인의 전사들’은 이같이 1940년도부터 70, 80년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풀리지 않은 매듭이 시간이라는 굴레와 맞닿아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모습을 날카롭지만, 또 감정적으로 그려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 군부독재 시절에서 현재까지 종횡으로 연결해, 과거의 줄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연극, 시의성도 있다 연극을 보고 있으면 이 땅의 과거상황에, 현재의 상황이 중첩된다
진보하지 않는 우리의 역사속에 되풀이 되는 희생들, 사그라드는 꿈들
공연 잘 보고 왔어요... 두시간여 동안에 공연 학생들 모두 수고했어요...
Daegu culture http://cafe.daum.net/dg-ct 오로지 공연에 관한 정보및 모임만 있습니다.
밴드 대구문화발전소 http://band.us/#!/band/49860918 실시간으로 공연정보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밴드 Daegu culture http://band.us/#!/band/64021127 다양한 공연정보 있어요
한번 둘러보시고 가입하세요
0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