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뙤약볕
sportscom · 3 months
Text
초보 러닝 크루의 여름 마라톤 동호회 체험| 뙤약볕 아래 펼쳐진 땀과 감동의 기록 | 마라톤, 동호회, 러닝, 초보, 체험
초보 러닝 크루의 여름 마라톤 동호회 체험| 뙤약볕 아래 펼쳐진 땀과 감동의 기록 | 마라톤, 동호회, 러닝, 초보, 체험 달리기는 늘 막연한 꿈이었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혼자서 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마라톤 동호회! 용기를 내어 가입하고, 초보 러닝 크루로서 첫 여름을 맞이했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펼쳐진 달리기는 힘들었지만, 함께 땀 흘리고 응원하며 감동을 만들어냈습니다. 마라톤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짜릿함과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우정은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습니다. 초보에서 벗어나 한 걸음씩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러닝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지금부터 초보 러닝 크루의 여름 마라톤 동호회 체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뜨거웠던 여름의 기억과 함께,…
Tumblr media
View On WordPress
0 notes
doranproject · 1 month
Text
"성지"
*성지
딱히 종교가 없음에도 왠지 모르게 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흔히들 요즘에는 성지순례왔습니다 라고 하면서 미래를 예측한 글을 다시보러 가거나 그곳에서 또다른 소망을 적기도 한다.
그런 일들을 보며 미래도, 과거도 전부 신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조금은 믿는다.
신의 존재를 믿느냐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다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자취를 따라 걷는 신의를 믿곤 한다.
어떤 해석이 있더라도 개인이 원하는 구출점에 다다르기 위한 끈을 제각각 잡은 것이겠지.
신의 손길을 혹은 숨결을 또는 자취를 쫓는 사람들의 순례길은 사실 자신을 돌아보는 길이 된다고 한다.
뜻과 해석이 담긴다면 그곳이 곧 성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신도 자신도 어디에나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막연한 생각으로 살았었는데
그래도 언젠가는 성지로 구분된 장소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요즘이다.
-Ram
*성지
1. 어느 초여름, 막 더워지기 시작할 시기에 해동용궁사를 갔었다. 내가 가봤던 절 중 가장 예뻤던 건 불국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새파란 하늘 아래 절벽엔 파도가 부서지는 곳에 절이 있다니. 아무 기대 없이 그냥 잠깐 들렀다 나오려고 했었는데 입이 딱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곳에서 한참을 있었다. 주말이라 관광객들이 조금 많았었는데 평일 새벽쯤 사람들이 거의 없는 한적한 시간에 오면 더 최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곳에 사는 스님들은 이런 뷰를 매일 보면서 살겠지', '불교 신자도 아닌 나도 매일 오고 싶은데, 불교 신자분들은 이 절에 오는 발걸음이 굉장히 가볍겠지' 등 별 생각을 다 하며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눈에 담았다. 오늘같이 하늘이 파란 날, 한 번 더 해동용궁사를 가고싶다는 생각이 드네. 부산에 가볼까.
2. 방콕에 여러 번 갔었고, 오래 머무르기도 했었지만 방콕 왕궁 안엔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딱히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가 다른 곳일 뿐이었는데.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 방콕 왕궁 안에 들어가 보자는 친구들이 있었다. '계획에 방콕 왕궁이 있었나. 내가 짠 계획엔 없었는데. 그럴 거면 계획을 좀 들여다보고 그 안에 왕궁을 넣지. 그러면 나도 그 시간에 할 것을 생각했을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긴바지를 준비하지 않은 나는 그냥 밖에서 기다린다고 하고 관광하고 싶은 그들을 왕궁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뙤약볕 아래에서 여러 관광객들이 지나는 길목에 그냥 멍하니 서있었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첫날부터 정신적으로 매우 괴로웠기 때문이겠지.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스스로가 지쳤나. 또는 아직 그게 풀리지 않았나.' 별별 생각이 들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무작정 걸어서 그랩이 잘 잡히는 곳으로 간 다음 그랩을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랩 안에서도 현타가 왔다. 내가 뭐하고 있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누군가가 잘못하긴 한 걸까? 또는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감히 특정인을 탓할 수도 없는, 이러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더욱 현기증이 나고 어지러웠다. 뭐라도 먹는다면 나아질까싶어 다음에 가려던 목적지 근처에 내려 무작정 처음 눈에 들어온 일본 라멘집으로 들어갔다.
-Hee
*성지
Tour du Mont Blanc. 알프스 몽블랑 산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둘레길을 일주하는 트레킹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 동남부 샤모니에서부터 이탈리아, 스위스를 거쳐 다시 샤모니까지 약 170km의 거리, 약 10,000m의 획득 고도. 영혼의 일부를 산에 의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몽블랑은 내게 일종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만년설로 뒤덮인 높은 첨봉들. 빙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몽블랑 대산군의 실루엣. 몇 해 전 코로나로 한 번 무산됐던 성지순례를 이제서야 다시 도전하려 한다.
10일간의 일정 동안 매일 얼마나 걷고 식료품을 어떻게 보급할지, 어디서 텐트를 펼치고 자야 할지 계획을 세우는 동안 내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을 앞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답지만 험난할 여정을 모두 마치고 감격스러운 순례자의 표식을 마음속에 품은 뒤에 산을 대하는 나의 신앙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향한 믿음이 위태롭고 변화막측한 세상 속에 놓인 나를 구원하기를.
-Ho
*성지
등산인들이나 불자들에게 성지라고 불리는 설악산 봉정암을 엄마가 간다길래 호기롭게 남편과 나도 등록했다.
지금 하산하고 집에가는 중인데 다리가 너무 아프다. 설악산은 정말 지독히도 자기를 내어주지 않았고, 나는 무력했지만 한 걸음,한 걸음 내 발로 갈수 밖에 없었다. 유일한 긍정적인 사실은 이게 끝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염없이 다리를 옮기다보면 무념해지기도 하고 몇 가지 깨달음 비슷한 것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절대 다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몸도 마음도 긴장했고, 내 자신을 지킬수 있는건 내자신뿐이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의외로 남편이 산을 너무 잘 타서 산악회 아저씨들 한테 맥주도 얻어먹고 재밌게 해서 다행이었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 심사숙고한 결정이 옳았을 때도 있지만, 열에 일곱정도는 그냥 일단 한번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한 결정이 나에게 좋은 것을 가져다 준 적도 많다. 이번에 봉정암 산행이 그랬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해야 할 결정들도 너무 심각해지지 않고 나 자신을 믿고 내 직감에 따라야겠다. 그 결정들이 분명히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이 그 성지가 될 것 이다.
-인이
10 notes · View notes
hyundaikim · 5 months
Text
Tumblr media
제주동부경찰서
뙤약볕 아래 공무수행중인 우리 시민들의 재산권 과 제3자 부동산 보호를 위한 대책으로 복무중 편의를 제공받아야 함
차양막을 이용할 수 있으며 더우면 시원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다 또한 지자체 에서의 도움 얼음물 등 음료제공에 따라야할 의무가 있다
이를 거부시 민원인의 항의를 받게된다
2 notes · View notes
kafahr · 2 months
Text
내가
창가에 앉아 있는 날씨의 하얀 털을
한 손으로만 쓰다듬는 사람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섯 개의 손톱을 똑같은 모양으로 자르고
다시
다섯 개의 손톱을 똑같은 모양으로 자르고
​왼손과 오른손을 똑같이 사랑합니다
​밥 먹는 법을 배운 건 오른쪽이 전부였으나
밥을 먹는 동안 조용히
무릎을 감싸고 있는 왼손에게도
식전의 기도는 중요합니다
​사교적인 사람들의 식사 자리에 둘러앉아
뙤약볕 같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도
침묵의 몫입니다
혼자가 되어야 외롭지 않은 혼자가 있습니다
​밥을 먹다가
왜 그렇게 말이 없냐고
말을 걸어오면
말이 없는 이유를 생각해보다
말이 없어집니다
​다섯개의 손톱이 웃는 모양이라서
다섯개의 손톱도 웃는 모양이라서
나는 그저 가지런히 열을 세며 살고 싶습니다
​말을 아끼기에는
나는 너무 말이 없어서
사랑받는 말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식탁 위에는 햇볕이 한줌 엎질러져 있어
커튼을 쳐서 닦아내려다
두 손을 컵처럼 만들어 햇볕을 담아봅니다.
​이건 사랑받는 말일까요
하지만 투명한 장갑이라도 낀 것처럼
따스해지기만 할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침묵을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 곁에 찾아와
조용히 앉아만 있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가 나의 왼손입니다
- ‘묵시’, 조온윤
1 note · View note
tommypark1713 · 3 years
Photo
Tumblr media
#경기도 #가평군 #북한강 #🔥 #🇰🇷 #😷 #불토 #한가로운 #토욜 #오후 #드라이브 #뙤약볕 (북한강에서) https://www.instagram.com/p/CR_pXkepewRIJBLjUqT0RB2ERvREtM1IlMw83o0/?utm_medium=tumblr
0 notes
pettyofficial · 2 years
Text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2022.5.20~5.21.
그렇게 우리는 연 2일 데이트를 즐겼다. 우리 사이 흔치 않는 일인데, 하루는 당신 오전근무가 끝나고 가서 보기 위해서 뙤약볕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우리사이 거리는 상급도로간 64km의 거리였다. 늘 가깝지 않다고 느꼈지만 그 거리를 숫자로 확인해보니 우리사이 거리를 알겠더라. 내가 회사까지 23km니까 대략 우리사이 거리는 출퇴근 거리의 3배정도였다.
당신의 붕붕이는 당신의 동네를 벗어나지 않고 나는 뚜벅이여서 이 거리를 늘 걸어다니니 만남이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 쉽지 않은 만남을 2일 연속 했다지.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약 40분 당신을 기다렸다. 당신의 서툰 운전 솜씨에 왜 여기서 보자고 했을까 싶은 멍청함과 발을 둥둥 거리며 ���정했었는데 다행히 잘 만났다.
그렇게 우리는 카페를 가서 맛난 크림브륄레를 먹고 고양이도 보고 공원을 거닐며 헤어졌다.
둘째날은 당신의 주말근무가 빨리 끝나게 되어서 서울을 오고 싶어해서 갑작스럽게 만났었다. 당신과 음료 한잔을 사들고 잠수교 밑에서 음료를 즐기고 이 여름의 석양을 즐기며 헤어졌다.
고속터미널 건물은 상당히 일본풍의 미래지향적 건물인데, 느낌적 느낌인데 현대화의 느낌과 군부정권의 권위주의적 느낌을 섞은 느낌을 준다. 사선의 기둥과 얹고 얹은 층별의 튀어나온 메스는 그런 느낌을 충분히 주는데.
세월지나서 보니까 상당히 현대적인 느낌을 담고 싶어했던 거 같다. 딱딱한 느낌이 상당히 뭍어 있고 사실 20세기에 21세기 건축을 그리면 이런 공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저 석양은 너무 아름다웠다. 사실, 요즘 텀블러에서 바닷물과 강물에 비춘 햇살이 너무 아름 다운 사진들을 자주 접해서 당신에게 저 강을 보여주고 싶었다.
강은 흘러간다, 우리 마음도 우리 시간도 흘러간다. 그리고 나의 시험도 당신의 시험도 철썩 붙었으면 좋겠다.
사실 공부를 좀 해야하는데, 공부가 너무 너무 하기 싫다. 머리도 안 좋은게, 욕심은 많고 큰일이다.
우리 둘다 편히 저녁을 즐기는 세월은 언제일까. 나는 언제까지 유부남 아저씨들이 바라는 건강한 연애만 해야할까.
당신은 어른이고 어른인데 왜 내게는 뭍에 놓은 아이같을까. 누나같이 구는 당신이 귀엽긴 하지만 하나 하나 내가 다 챙겨줘야하는 게 퍽 웃기다.
88 notes · View notes
gusdlf0928 · 3 years
Photo
Tumblr media
#B형계의이단아 폭염엔☀️ 라이딩이지~🚴🏻 1일 차. 맞바람은 기본 옵션.🌬 계속되는 나지막한 오르막에 첫 펑쳐까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용문~강릉 라이딩. 그렇다 강원도는 산간지역이었다. 예전 경차 끌고 갔을 때도 계속되는 오르막에 힘이 달려 에어컨을 끄곤 했었지. 2일 차. 강릉에서 속초 가려다 양양 버스터미널에서 점프, 동서울에서 팔당까지. 해안가를 달리며 나름 힐링 라이딩이었지만, 빨리 끝내고 싶단 생각뿐. ㅋㅋ 처음 타본 프리미엄 버스는 세상 편했고 동서울로 넘어와 주차되어있는 팔당역까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더운 날씨 뙤약볕 아래 바람 한 점 없는 오르막을 달릴 땐 이게 뭐하는 짓인가도 싶었고 집 생각도 간절했지만, 막상 집에 드러누워 에어컨 바람 쐬니 달릴 때가 더 좋았던 거 같은데?? 사람의 망각의 동물이 분명하다.🤦🏻‍♂️ 📸 @ktbike_hanam_taein * * * 🤙🏻 #아웃도어아티스트 🏷 #용문강릉라이딩 #강릉양양라이딩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Roadbike #Rapha #Raphaproteam #Cello #CelloKeyinD7 #Sworks7 #KaskHelmet #KaskProtone #EnveFoundation45 #RideShimano #로드바이크 #로드자전거 #라파 #라파프로팀 #첼로자전거 #케인D7 #첼로케인D7 #에스웍스7 #카스크프로톤 #엔비파운데이션45 #자덕으로가는길 #폭염라이딩 #펑쳐 #대관령라이딩 #자전거엔시마노 https://www.instagram.com/p/CR0i8iRNGy5/?utm_medium=tumblr
0 notes
yozwm · 4 years
Text
스톡홀름의 석양 그리고 신동엽 시인
산문시(散文詩)[1]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갯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곤가 불리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하지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13 notes · View notes
g1nmu1 · 5 years
Text
대장정
소율과 재경이 처음 만난 것은 국토대장정에서였다. 소율이 자신의 대학 생활이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즈음이었다. 매일 매일이 색색의 불꽃놀이와 같을 것이라 생각했던 대학은 잿빛 건물만큼 무미건조 했다. 소율은 그 당시 몸으로 경험하는 것만이 진정 얻어지는 것이라 여겼다. 고생을 한 만큼 성장한다거나, 중요한 걸 깨닫게 된다는 신화를 굳게 믿었다. 자신을 늘 성장해야할 대상으로 보았다. 내가 아직 뭘 몰라서 지금 이런 것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앞으로 이렇게 계속 심심하다면, 소율은 무한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아지경으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여름에 시작하는 국토대장정. 참가비 40만원. 알바비를 대충 계산해보니 여유가 될듯했다. 남들이 가는 해외여행은 100만원이 훨씬 넘는다던데, 가성비 좋은 성장이 될 것 같았다.
뙤약볕 속에 혀는 마르고, 물집 잡힌 발은 걸을 때마다 송곳을 내리꽂는 듯 했다. 걸음을 쫓아갈 수가 없어 자꾸만 뒤쳐지고 낙오되어버리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단원들에게서 한참 뒤쳐지면 어쩔 수 없이 차량에 탑승하게 된다. 차량은 아픈 사람들과 지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멸시하는 체력이 좋은 스텝들이 있었다. 소율은 차량에 탈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이미 무거운 배낭으로 쳐진 어깨가 아예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새벽과 오전에 걷고 오후에는 쉬는 일과가 이어졌다. 오후의 시간은 즐거웠다. 매일 매일이 엠티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과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웃음들이 존재했다. 같은 팀의 장이었던 재경은 소율이 특히 의지했던 사람이었다. 소율이 바닥만 보며 걷고 있을 때 재경이 소율의 손을 잡아끌어 옆을 보지 말라고 했다. 그곳에는 고라니가 죽어있었다. 소율의 팀이 식사당번이었을 때 소율의 데인 손에 약을 구해주려고 온 스텝을 다 만나러 다닌 것도 재경이었다. 소율은 일부러 그에게 담배 좀 줄이라고 오빠 금방 죽는다고 걱정하는 여동생이자 집사람인척 했다. 그때마다 재경은 입을 주욱 늘어뜨리며 웃었다.
며칠 째 소율이 걷는 것을 포기하고 선발대가 되어 단원들의 식사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급식실에서만 보던 큰 솥에 밥을 능숙하게 하다가, 문득 자신이 여기 밥하러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했다. 단원들이 다 걷고 도착해서 소율은 그들에게 밥을 퍼줬다.
“군대 다녀온 나도 이렇게 힘든데 여자들은 어떨까 싶어.”
여자친구랑 같이 참가한 남자였다. 힘들어하는 여자친구를 위로하고자 한 말이었다.
“오늘 지영이 대박. 어떻게 남자보다 빨라. 여자 아니야 진짜. 아, 이런말은 하면 안되나?”
재경의 말이었다. 소율은 기분이 이상했다.
소율은 회의감이 들어 가깝게 생각하는 스텝에게 포기의사를 밝혔다. 스텝은 그래도 붙어있으라고 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정말 낙오자가 되는거라고. 다 걷지 않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했다. 소율은 자신이 조력자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마음을 모른척했다. 포기하고 집에 가면 발은 편하겠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견뎌야하는 시간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었다.
소율은 못이기는 척 계속 했다. 조금 걷고, 많이 눈치보면서, 거슬리는 말들을 못들은 척 하면서, 임진각에 도착하면 무언가 있을 것이라 자신을 세뇌하면서.
재경도 소율의 지속에 한 몫했다. 소율에게 자신의 생각을 잘 나누었다. 국토대장정을 시작한 이유와 한 걸음도 차량을 타지 않고 자신의 발로 완주하고 싶다는 의지와 삶의 이런 저런 어려움과 극복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소율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 성장한다고 느꼈다. 이렇게 어른스러운 사람과 가까이 지낼 수 있어서 자신은 인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의 롤링페이퍼에 적기도 했다.
임진각에 도착한 날은 비가 왔다.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몇몇은 울기도 했다. 소율은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아쉬웠다. 사람들과의 헤어짐과 일상으로의 복귀가 싫었다. 페이스북에 국토대장정의 사진을 올렸다. 좋아요가 100개를 넘었다. 멋지다는 댓글이 달렸다. 소율은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국토대장정이 얼마나 힘든지,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얼마나 멋진지 연설하고 다녔다. 자꾸만 터져나오는 국토라는 단어를 참기 어려웠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팀원들을 다시 만나는 것은 어려웠다. 서로 단체 카톡방에서 생일을 챙겨주거나, 가끔 사진을 올려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동안 소율은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소율이 생각하는 비전과 방향이 같았다. 소율은 몸은 지쳐도 마음은 충만한 하루를 보냈다.​
소율은 인생이 불꽃놀이 같이 펑펑 터지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무한한 우주의 작은 하나의 별이고 이 세상 모두가 나와 같은 별이라는 사실을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담담하게 알아갔다. 나라는 별이 빛나는 순간은 오로지 내가 나다울 때라고,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을 때라고 생각했다.
소율은 의아했다. 국토대장정에서 왜 씻는 시간은 고작 5분이면서 담배 시간은 무제한이었는지. 왜 착하지만 체력이 약했던 민지스텝은 스텝들 사이에서 왕따였는지. 왜 예쁘장하고 어린 여자단원은 스텝과 친하면 욕을 먹는지. 곧 의아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소율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해되고 이름붙일 수 없었던 것들에 이름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처음에는 불편감이었지만 나중에는 해방이었다.
팀원 중 한 명이었던 은석오빠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전국 각지에서 팀원들이 모였다. 재경오빠도 새벽같이 올라왔다. 소율은 재경과 4년만에 만났다. 그 사이 오빠는 살이 좀 쪘다. 정확히 말하면, 몸은 그대로인데 얼굴에만 살이 쪄있었다. 어제 라면을 먹고 잠든 사람처럼 부어있는 것 같았다.
결혼식은 늘 그렇듯 약간의 긴장과 순탄함 속에서 이루어졌다. 국토대장정은 고작 21일이었는데 그 때의 이야기만 해도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른 하루들보다 시간을 더 길게 살았던 걸까.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소율은 즐거움과 묘한 이질감을 동시에 느꼈다.
은석은 특별히 이 테이블에만 준다며 와인을 가져왔다. 소율은 와인 따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와인오프너를 찾아 코르크에 꽂으려고 하는데 재경이 막았다.
“오빠가 해줄게. 가만 있어봐.”
호기롭게 힘을 쓰던 재경은 오프너에 손을 베었다. 소율이 얼른 냅킨을 건넸다. 재경은 냅킨을 마다하고 손가락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 쭙 빨았다. 소율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거두었다.
오랜 이야기와 축하 속에 뒤풀이를 마치고 다들 작별인사를 했다. 언제 볼지는 모르지만 우리 열심히 살자. 다음 결혼은 우리 소율이? 싱거운 대화가 오갔다. 소율의 집과 재경의 숙소는 같은 방향이었다. 3호선을 타기 위해 역 입구로 들어왔는데 개찰구까지 한참이었다. 소율은 목이 말랐다. 공차가 보였지만 그냥 걸었다. 혼자였다면 먹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티를 기다리며 오빠와 단둘이 대화를 하는 것이 꺼려지는 자신의 마음을 존중했다.
지하철에 탑승하여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재경은 아까 베인 손에서 피가 계속 나는지 손가락에 입을 가져다댔다. 쭙 쭙 하는 소리가 거슬렸다. 소율은 내려야하는 정류장보다 두 정거장 앞에서 일어섰다. 재경에게 급하게 인사했다. 소율은 내리자마자 바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24 notes · View notes
sfiv · 4 years
Text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얻으려고 이른 아침에 나갔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돈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아홉 시쯤에 다시 나가서 장터에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당신들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 그러면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니 그들도 일하러 갔다. 주인은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오후 다섯 시쯤에 다시 나가보니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어서 '왜 당신들은 하루 종일 이렇게 빈둥거리며 서 있기만 하오?' 하고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주인은 '당신들도 내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차례로 품삯을 치르시오.' 하고 일렀다.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그런데 맨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은 품삯을 더 많이 받으려니 했지만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밖에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돈을 받아들고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막판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하고 따졌다. 그러자 주인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보고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오? 당신은 나와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지 않았소? 당신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 만큼의 삯을 주기로 한 것이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하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 20장)
일찍 와서 일하면 많이, 늦게 와서 일하면 당연히 조금. 이게 상식이긴 한데 그렇게 따지면 부모가 많이 가졌던 사람은 당연히 그걸 계속 가지고 있고 없었으면 자식도 가진 것 없이 시작해야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이게 세상의 논리이다. 늦게 온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자기것을 더 채우는걸 당연히 생각한다. 다 같은 일꾼이면서 포도원 주인이 없는 것 처럼 행동하고 남의 밥그릇을 탐낸다
20200523-1157
3 notes · View notes
sportscom · 3 months
Text
초보 러닝 크루의 뜨거운 여름 마라톤 동호회 첫걸음 | 마라톤, 동호회, 러닝 크루, 첫날 후기
초보 러닝 크루의 뜨거운 여름 마라톤 동호회 첫걸음 | 마라톤, 동호회, 러닝 크루, 첫날 후기 드디어 꿈에 그리던 마라톤 동호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달리는 즐거움’ 이라는 이름의 러닝 크루에 가입하여, 첫날부터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찬 동료들과 함께 달리는 짜릿함을 경험했다. 뙤약볕 아래, 낯선 얼굴들이지만 달리기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뛰는 순간은 정말 잊을 수 없었다. 첫날은 간단한 스트레칭과 기본적인 달리기 연습으로 시작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숨이 가쁘고 다리가 뻐근했지만, 주변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경쾌한 음악이 나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나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는 베테랑 러너들을 보며 자극을 받았고, 함께 뛰는 동료들과 서로 응원하며 힘을 얻었다. 마지막에는 시원한 음료와 함께…
Tumblr media
View On WordPress
0 notes
jayintheblue · 5 years
Text
부당 해고를 당했다. 출근 중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고 바빠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말에 나는 삼각지 역 안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당황스러웠다. 한강을 걸으면서 당연히 나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대체 무엇일까 고민했다. 전화가 오길 기다리며 울었다. 그 뙤약볕 아래에서 더운지도 모르고 계속 울었다. 올 전화를 대비해 통화 녹음 어플을 받으라는 친구의 조언도 갑작스런 해고 통보도 모든 말들과 내가 처한 상황이 폭력으로 다가왔다. 너무 운 탓에 쓰러질 것 같았다. 비틀거리며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노동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곳에 적힌 나의 권리를 읽었다. 민원 신고 창을 눌렀다가 일단 대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기다렸다. 세시, 네시, 여섯시, 여덟시가 지나고 카톡 하나가 왔다. 내일 통화해요.
처음으로 애정을 갖고 일을 한 곳이었다. 내가 먼저 일하고 싶다고 연락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1년에 가까운 시간을 그곳에 쏟았다. 받는 만큼만 일하자는 나의 신념도 무시해가며 열심히 일했는데 말이다. 하루가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긴 문자를 하나 남겼다. 웃기게도 법이란 단어를 들먹이니 나에게 모든 선택권이 있다는 듯이 말을 바꾼다. 다시 일을 해 보는 건 어떠냐는 식으로 비겁하게 나를 붙잡았다. 나를 가족같이 생각했다나 뭐라나 아무튼 좋아 보이는 단어들을 조합해 웃기지도 않는 말을 했다.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노동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카톡 캡처 본과 함께 민원을 등록하고 친구가 만들어준 밥을 맛있게 먹었다.
47 notes · View notes
atroubledbison · 5 years
Text
august
팔월
미끄러진다 뙤약볕 밑으로  미끄러진다 울부짖기 전에 부글대는 늪 속으로 미끄러진다 아직 난 눈멀지 않았는데 어떻게 눈먼 구더기 떼와 함께 미끄러질까 어떻게  악몽 속으로 악몽 속으로 물컹대면서 꿈틀대면서 미끄러질까 팔월도 아닌데 팔월로 미끄러질까 버둥거리다 더 미끄러지기 위해 나는 이글거리며 조금 기어오르기도 한다 미끄러진다
- 김경후, 어느 새벽, 나는 리어왕이었지
august
i slip under and into the blistering sunlight i slip  before i can howl into the bubbling marsh  i slip i have yet to be become blind how would i slip with the blind maggots how would i slip from a nightmare into a nightmare soft and writhing how would i slip into august when it is not august floundering in an attempt to slip further downward i sometimes climb a little, aflame, and slip
-  by Kim Kyung-Hoo, from On Some Dawns, I Was King Lear
22 notes · View notes
iamsor · 5 years
Text
09. /단ː절/
​'사랑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슬픔도, 고통도, 허무도, 우울도, 공허도 다 그것의 일부이다.’ 전찬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내가 보낸 만큼의 사랑을 돌려받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을 알기 때문에 내가 이 글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글을 시작했다. 그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서 나는 몇 번이고 글을 적다가 손을 거두었다. 과연 나의 이 이야기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사랑도 애정도 관심도 아니었다. 절망과 슬픔과 어긋난 기대와 좌절에 대한 것이었다. 유독 나에게만 생이 가혹한 것은 분명 아닐지언정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쩌면 그러 한지도 몰랐다. 나는 내가 보낸 사랑을 그저 모르는 척하고 마는 사람들만을 사랑했고 어떠한 일련의 연유에 의해 말이다. 그들은 나를 매몰차게 거절해서 내가 나에게 주어질 이 불행을 애초에 스스로 막아 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일말의 여지를 주고 말았다. 나에게는 그게 너무도 달콤하게 보여. 내 마음을 거두어 내지 못했다. 번번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이다. 어쩌면 이 글은 나의 유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세 번째로 나의 사랑이 잔뜩 구겨져 쓰레기통에 처박히자 나는 이 생에 백기를 날린다. 그 부서진 마음의 기록이다.
01
이건 사랑이 아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나 스스로에 되놰야 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때로는 바로 내 눈앞에서 진정한 사랑을 보았다. 사랑은 어쩌면. 늦은 주말 밤 느지막이 저녁을 먹고 레드 와인 한 잔씩을 잔에 따른다. 라운지 한구석의 네모진 테이블의 한 면씩을 차지하고 앉는다. 플래티넘 블론드로 불리는 거의 하얀색에 가까운 얇고 밝은 금발 머리를 한 여자는, 그 머리칼은 아주 얇고 반짝이는 실 혹은 짚단처럼 보인다, 윤기나는 피부에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서도 반짝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살집이 제법 있는 풍만한 몸매이기는 하나 흔히 말하는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밀로의 비너스를 연상케 하는 몸을 가졌다. 딱 달라붙는 하얀 반팔 티셔츠에 역시나 달라붙는, 그 끝을 몇 번 접어 올린 검정 바지를 입고 가죽 벨트로 허리를 맸다. 검은 목 양말에 검은 닥터 마틴 워커를 신고 있다. 하얀 손가락 끝에는 까만 매니큐어를 칠했고 으레 닥터 마틴 3홀 워커를 신는 사람에 어울리게도 예쁜 형태의 반지들을 끼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는 출렁이는 레드 와인이 담긴 글라스가 있다. 네모난 테이블의 다른 한 면에 앉은 남자 역시 밝은 금발 머리다. 그러나 어쩐지 엉성하다. 아니 그 뿌리를 보면 아주 짙은 갈색 머리칼이 빼곡했다. 아마도 탈색을 한 것이리라. 짧은 탈색 머리에 여유로운 미소를 가진 그는 잔뜩 구겨진 검정 티셔츠 아래로 편안한 검정 면바지를 입고 있다. 꽤나 많이 접어 올린 것인지 아니면 그저 키가 지나치게 큰 탓인지 앉은 그의 두 발목 훨씬 위로 바지의 밑단이 쑥 올라가 있다. 무성한 털이 보인다. 팔과 다리의 털의 양을 보면 또한 티셔츠 목 부근으로 보이는 무성함을 보면 아마도 이탈리아 이민자 계통의 남자임이 분명했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의 부모는 세르비아 출신이었다.) 그들은 느긋하게 바둑을 두고 있다. 언뜻 보면 아무럴 것도 없는 모습. 느긋한 주말 밤의 모습. 그는 맨발인 체였다. 그리고 그의 종아리 즈음에, 다리를 꼬고 앉은 밀로의 비너스를 닮은 여자의 오른 종아리가 가만히 포개어 있다.
나는 사랑의 구체적 형태와 모양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사랑은 그 살며시 닿은 서로의 종아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아무런 말도 아무런 눈짓도 아무런 몸짓도 없었다. 멀찍이 앉아 골똘히 바둑의 다음 수에 대해 고민하는 두 남녀. 그 가운데 고요히 가닿은 신체의 일부. 가만히 나란히 앉은 그녀의 오른손이 가만히 그의 왼 무릎에 놓인 것과 같은 모양. 사랑의 모양. 사랑의 형상.
여자는 먼저 방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방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아마 침대 위에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누웠으리라. 잠시 뒤 그 역시 조용히 방으로 사라졌다. 열린 문틈으로 어느 순간 꼭 같이 까만 매니큐어가 칠해진 그의 오른손이 불쑥 나타난다. 손가락은 몇 번 꿈틀거리나 싶다가 그 중지의 끝을 방의 문에 걸어, 소리 죽여 방문을 닫는다.
나는 고요히 나의 두 눈동자를 내 앞의 주방 벤치로 옮긴다. 하얀 나의 커피 컵이 있다. 나는 ‘진저 킥’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레몬 생강차 티백을 컵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부어 차를 우리고 있었다. 컵의 둥근 손잡이에 내 손을 넣는다. 내 손에 발린 까만 매니큐어는 곳곳이 까져 있었다. 설거지를 제법 했기 때문이었다. 계단을 내려 방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되뇐다. 이건 사랑이 아니야. 내가 하는 이것은 사랑이 아니야. 진짜 사랑은. 위 층의 닫힌 문 너머에 있었다.
02
똑똑.
이미 반쯤 열린 나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집에는 그와 나뿐이었으니 필경 그였다. 나는 작은 나의 싱글 매트리스에 엎드려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온전히 무시할 수 있는 힘이, 내게는 없었다. 딱히 음절이나 단어나 문장이 아닌 소리로 인기척을 냈다. ‘도대체 무슨 할 말이 있는 건데?’라는 의미였다. 물론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향에 내려가는 그가 내 방문을 두드리지조차 않고, 그렇게 가겠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집을 나갔다면 나는 더더욱 화가 났을 것이다. 어쩌면 다시는 그를 마주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미 며칠 전의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그에게 말했다. ‘이 집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 그리고 그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의 존재 자체를 눈치채지 못한 듯 무성의하게 군다면 예정인 한 달 뒤보다 훨씬 이르게 어쩌면 바로 내일모레라도 당장 그의 곁을 떠날 것이라는 통보를 했다. 물론 엄포는 아니었다. 전혀 이런 방식이 아니라 차분하고 다정한 방식의 설명이었다. 그저 서운함을 담은. 나는 그저 너와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라는 다정한 마음을 담은. 그에 떨리는 두 눈을 한 그는 처음에는 한 달 뒤에 떠나든 당장 떠나든, 뭐든 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말을 하더니 이내는 그럼 한 달의 반절을 머문다면 내가 떠나고 난 뒤 나머지 반절의 방값은 본인이 대신 낼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곤 마침내는 가만히 울 것 같은 내 두 눈을 바라보며 집을 일찍 떠나겠다는 이유가 방값을 낼 수 없어서, 즉 돈이 부담 이어 그러느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젓고는 한참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다만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 그래.’ 사실이었다.
‘무작정 떠나는 것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 같아. 나는 떠나는 것을 잘 하지 못해. 지금만 봐도 그래, 난 아직까지 이곳에 머물고 있잖��. 주변 상황이 자신을 괴롭게 할 때에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모든 걸 버리고 떠나야 해. 나도 그걸 알고 있어. 그러나 나는 내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떠나지도 못해. 내가 내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다면 나는 진작 11월에 이곳을 떠났을 테지.’
그는 말이 없이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오늘 생각을 했어. 내 인생에 단 한 번쯤은, 아마도 이번 만은, 내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내려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나는 나를 너무도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저 울음이 가득 찬 표정과 두 눈으로 천천히 말을 했다. 서늘한 여름밤의 바람이 가득했고 이층 발코니 너머의 하늘은 어스름이 낀 빛바랜 남색이었다. 나는 양손을 얼굴의 가운데로 모아 마스크 모양을 만들었고 최선을 다해 내가 말하고 싶은, ‘너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어. 나는 너를 기다려줄 수가 없어. 나는 너무 지쳐버리고 말았어. 너를 기다리는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기다림의 시간이 내게는 지옥이야’라는 말을, 빙 둘러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전과 꼭 같은 대답을 했다. 그가 내가 그와 같은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매번 쓱 지나쳐버리고 마는 이유는 절대 나와 관련된 것이 아닌 그만의 문제이며 멀리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나를 제외한 그를 지치게 하는 다른 모든 것이며 내가 이 집에 이사 온 것이 사실은 그에게 큰 긍정적인 변화라는 말을 했다. ‘그저 시간이 필요해. 나 스스로를 먼저 주워 담아 정리할 수 있는.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아마도 어쩌면 크리스마스 이전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곤 나아질 수 있어.’ 어쩌면 나는 그가 그와 같은 답을 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모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곁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12월의 여름날의 나는 너무도 지쳐 있었다. 아주 깊고 깊은 곳에 파묻힌 그의 마음이 나라는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마음은 너무도 깊고 깊은 바닷속에 있었다. 나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의 잡초처럼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마침내 나를 돌아 봐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 아주 이따금의 다정한 눈길을 기다리는 동안에의 나는 말 그대로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있었다. 매일 소리 죽여 눈물 흘렸고 내 스스로가 이토록 하찮은 존재였는가를 스스로에 물었고 대개의 경우 힘없이 수긍했다.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의 말을 가만히 듣던 그가 두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일은 제법 드문 일이었다. 그렇게 똑바로 오래도록 말이다. 물론 한번 그렇게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는 그를 제법 잘 한다. 너무도 태연하게 한 번도 눈을 끔뻑이지 않은 채로 커다란 두 갈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전혀 흔들림이 없다. 나의 눈동자가 뜨겁게 데워질 만큼 그는 나를 오래도록 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내 눈동자 너머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태도이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을 했다. 결국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지마는 나는 그를 끝까지 들었다.
‘나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 너와.’
그랬던 것이 며칠 전이다. 어제의 그는 내 방문 앞에 서 있다. 그는 나를 그 밤과 꼭 같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어쩌면 그 갈색 두 눈동자는 미안해, 이런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까, 나도 알고 있지만 나도 나를 어쩔 수 없어 그리고 미안해라는 말을 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그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섰다. 그리곤 조용히 내 오른손을 들어 안녕의 손짓을 했다. 그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눈을 깜빡이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주 느릿하게 조금씩 그에게로 다가갔다. 한순간 우리의 다리 즈음을 지나는 날파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도 그 한순간 흐트러져 그 날파리를 보았다. 그러다 우리의 두 쌍의 갈색 눈동자는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에의 내 눈은 무언가 부끄러워져버리고 말아, 영어로는 ‘so what?’ 한국어로는 ‘그래서 어쩌라고’ 즈음을 소리 없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엉거주춤하게 방문을 사이에 두고 서서 서로를 바라보다 결국 그는 옅게 미소 짓고 말았고 나 역시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가 말했다. 나는 느릿하게 여전히 무표정의 얼굴을 풀지 않고 그를 향해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에게 닿기에는 여전히 먼 상태였다. 나는 그가 내게 닿기에는 여전히 나의 은닉처인 내 방 안 깊숙이 있었고 그는 내 방문의 턱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는 천천히 그의 양 팔을 내 방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양 팔을 나를 향해 뻗었다. 그리곤 나의 몸을 끌어당겨 안았다. 나도 저항하지 못하고 두 팔을 들어 그의 허리를 안았다. 그는 말했다, ‘내일 보자.’
과연 내가 그를 떠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엉거주춤하게 그의 품에 안겨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그의 마음을 읽는 데에 탁월해진 만큼 그도 나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에 전문가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요 며칠 서운함을 가득 담았다 터져 나온 나의 마음속에는, ‘왜 나를 바라보지 않는 거야. 왜 항상 저 먼 곳만을 응시하는 거야. 왜 나를 안아주지 않는 거야’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상황은 과거에도 수없이 존재했다. 다만 내가 곧, 물리적으로 그를 떠날 것이라는 사실만 가까워진 채.
03
길을 걷다가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날이었다. 그를 알고 지낸 그 어언 일 년의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우려했던 것보다 더욱 깊고 단단하게 그에게 의존해 있었다. 나는 외로웠고 달리 기댈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라는 사람은 내가 마음먹고 온몸의 무게로 누르면 풀썩 꺾이고 말 썩은 나무와 같이 힘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쓸쓸한 기분. 세상에 혼자라는 기분.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도 내가 사랑하는 아내도 차례를 지켜 나의 곁을 떠났다. 나는 썩은 나무일지언정 그에게 기대어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주 조심스레 말이다.
그는 거의 일주일째 내게 제대로 된 답이 없었다. ‘오늘 하루는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아.’ ‘며칠만 더.’ 그러나 여전한 무소식.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빠서 못 보았다거나 전화기를 두고 어딘가에 나갔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분명 그가 전화기와 나란히 커다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정을 올려다보며 그의 머릿속 영사기의 빛바랜 기억들을 끊임없이 돌리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동안 제대로 연락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조만간 만나자, (물론 그는 내가 단단히 화가 나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 역시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네가 원한다면,이라는 말을 한 것은 그였다. 그가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한 것이 처음도 아닌 이런 일종의 대치 아닌 대치 상황이 이번에는 이 주일째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마음은 갈 곳이 없었다. 나를 가장 가까이서 가장 살뜰하게 돕던 나의 ‘아내’ 마저 얼마 전 나의 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쩌면 가장 초라하고 어쩌면 가장 힘이 없었으며 가장 용감했을 답신을 남겼다. ‘가장 슬픈 것은, 나는 절대로 너에게 화가 날 수가 없다는 거야.’
다음번의 전화를 그는 받았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다고 했다, 모든 기력을 읽고서. 나는 그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곤 내가 그가 있는 곳으로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의외로 그는 혼자 있고 싶다거나 오늘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응, 물론이지.’ 택시를 탔던가 기차에 올랐던가 혹은 버스를 탔던가 기억이 희미하다. 요 근래의 상황과 비슷했다. 커다란 이층으로 된 주택인 그의 집 앞에 도착해 그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나는 화가 나 있어야 했고 그는 풀이 죽어 있어야 했다. 나는 옆집에 있는 벌어진 울타리의 틈으로 그의 옆집 중국인 할아버지가 키우는 거대한 토끼들의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무구한 눈을 가진 내가 본 중 가장 커다란 귀가 쳐진 토끼들을. 다시 말하듯 적어도 나는 무표정이어야 했고 그는 지친 표정이어야 했다. 문이 열리고 우리의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웃고 말았다. 그도 웃고 말았다. ‘안녕.’
한참 뒤 한 침대에 누워 나의 목을 감아 안은 그는 말했다.
‘내가 생각해 보았는데 말이야. 이건 상호 기반 감정적 지지 시스템(mutual emotional support system)이야, 그러니까 줄여서 m.e.s.s.’
늘 그렇듯 그는 나의 왼쪽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거의 한 시간에 가까운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커다란 퀸 침대의 양쪽 끝에 누워 침묵을 지켰다. 특히나 내 목에는 사과 꼭지라도 걸린 듯, 아니다 무언가 좀 더 마른 것, 컥 하고 막혀 쇳소리만 나올 뿐 좀처럼 말이라거나 음절이라거나 소리라거나 하는 것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입을 뗀 것은 그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의 나는 나의 왼쪽에 누워 오른팔을 벌리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어느 순간의 그는 내게 팔베개를 해주었고 오른팔로 내 목을 휘감아 안았다. 나는 그의 오른팔을 나의 오른팔로 감싸 쥐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일종의 침묵으로 계약된 모종의 거래였다. 나는 내 마음속에 끈적하고 꿀렁 하게 가득 찬 뱉어내야만 하는 넘쳐나는 사랑과 애정을 쏟을 대상으로 그가 필요했다. 고독한 그림자. 나 자신의 그림자와 같았다. 타인의 상처 란 도저히 다른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것임을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였다. 그러나 왜인지 그를 보듬어 주겠노라고 떼를 쓰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물론 나는 그를 좋아했고 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내 곁에 나란히 누운 그는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는 답만을 겨우 들려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거짓말을 잘 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을 ‘정말로’ 사랑할 수는 없었다. 그는 그저 오늘의 그의 삶에서, 그 어느 무엇보다도 내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에게의 내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말을 빌려 숨겨진 ‘막대기와 구멍의 관계’가 아니었기는 하지만, 그의 오른팔에 걸린 나라는 존재는 그의 삶에서, 그 자신보다는 아래였으나, 학업이라거나 친구라거나 잠을 잘 자는 것 이상이었다. 그는 나에게 진실만을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떠날 수 없었다. 사촌 언니의 말을 빌려 나는 캄캄한 어둠 속에 홀로 앉아있었다. 그는 아주 가끔 따스함의 조각들을 내게 건넸고 그것들은 아주 힘이 없어 저 얕은 바닥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그러면 나는, 그 차디찬 바닥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 아주 느릿한 속도로 찬찬히 바닥을 훑으며, 오래전 그가 내게 건넸던 미약한 따스한 마음의 조각들을 주워 담는 것이었다. 아주 느리고 고독한 작업이었다. 나는 애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가 마침내 그 방의 불을 켜고 나를 안아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법이었다. 나는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투명한 진주알과도 같은 눈물만이 흘러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에의 내 주머니에는 진주알이 너무도 많았다. 그 반짝임에 이제는 질렸다.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앉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실재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 이제는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결국 행하지는 못할 것이나 그에게, ‘당장 내일모레라도 훌쩍 떠날지도 몰라’라는 엄포를. 놓고 말았던 것이다.
04
‘메리 크리스마스.’
그 아무런 힘도 없는 말을 끝내 나는 너에게 건네지 못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고작 헤어짐의 안녕뿐이었다.
‘안녕.’
나는 안녕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특히나 한국어를 할 때의 안녕을. 만남의 안녕과 헤어짐의 안녕은 같다. 만남과 헤어짐은 같다. 길게 이어져 우리는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나는 것이었으며 다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헤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을 담뿍 담은 ��� 편지를 쓸 때에는 안녕이라는 말로 시작해 다시 그럼 안녕이라는 말로 끝맺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그에게는 그 ‘안녕’과 ‘안녕’이라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기는 힘들 듯하다. 영어에서의 안녕은 ‘hi’와 ‘bye’로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안녕이라는 말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그를 향한 편지에서도 나는 ‘안녕’ 그러니까 즉 ‘hi’라는 말을 반복해 적었다.
안녕. 나야. 한동안 나와 단 한 살 차이가 나는 것을 축하해. 물론 내가 슬픈 스물여섯이 될 때까지 만이지만. 그 숫자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이건 금지된 주제인데 대체 내가 왜 이 이야기를 꺼냈을까. 물론 이게 축하할 만한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는 있어. 음, 그러니까 나는 그저 평범한 날에 쓰는 평범한 편지인 척을 할게.
안녕. 삶은 끝없는 놀라움의 연속이야. 나는 고독, 창밖을 바라보기, 정처 없이 걷기, 지나가다 고양이를 볼 때마다 너무 좋아서 흥분하는 일, 달, 노을, 별, 느릿하게 움직이는 어떠한 종류의 물, 하늘의 변화, 그 변하는 색을 보고 시간을 알아맞히는 일, 주위의 눈치채지 못할 만큼 사소한 변화, 그를 사진으로 담는 일, 모든 것을 아주 깊숙하고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 내 삶의 모든 모퉁이에 놓인 자잘한 슬픔을 발견하는 일, 슬픈 바나나, 나무의 그림자, 나무, 사소한 일상의 반복, 늘 같은 식당에 가서 메뉴 판을 확인하지조차 않고 같은 음식을 주문하는 일, 그렇게 지루한 사람이 되는 것, 로얄 파크에서 슬픈 벤치를 확인하는 일, 물가를 따라 걷다가 아무것도 아닌 허공을 향해 멈추어 가만히 응시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닮은 사람을 발견하는 것, 을 좋아해. 어느 날 네가 ‘오늘 달을 봤어? 오는 길에 보았는데 정말 아름다워’라 말했을 때 나는 무언가 커다랗고 묵직한 것이 내 뒤통수를 퍽 치는 느낌을 받았어. 그리곤 아주 행복해졌어. 왜냐하면 내가 늘 친한 친구들과 사촌 언니에게 하는 일종의 유행어가 ‘나는 나와 같이 달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였기 때문이야. (또한 나는 길게 이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가는 것을 잘 하고 좋아해.)
안녕. 나는 내가 지금 도대체 어느 즈음을 걷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아마도 어딘가 실재하지 않는 곳 일 거야. ‘집’이라는 곳에서 수백 마일은 떨어져 있는 기분이야. 물론 그 ‘집’이라는 것은 이번 생에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아왔지만. 또다시 긴 이야기지만,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내게는 무언가 하나 빠져 있었어. 그래서 그 부재가 나를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아주 멀리 밀어 놓아. 나의 의지이든 그들의 의지이든, 나는 내가 다른 모든 살아 있는 것들로부터 아주 까마득히 멀리 있다고 느껴. 아마도 나는 영원히 어린 꼬마일 거야. 나는 항상 누군가에 기대어 울어야만 해.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해. 지금까지 내 옆에 있으며 나를 견뎌 주어 고마워. 벌써 8 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니 무섭다. 나는 아주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고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므로 나는 너와 나의 모든 시간, 공기, 분위기, 작은 소음들, 속눈썹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던 모든 것들을 기억할 거야. 이건 내가 좋아하는 멍청한 영화의 멍청한 대사인데,
‘이 세상에 어떠한 종류든 신이 있다면, 그건 너도 나도 아닐 거야. 그러나 바로 우리 사이의 이 공간. 이 세상에 어떠한 종류든 마법이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무언가를 공유하려는 시도.’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해. 나는 그것의 아름다움을 사랑해. 네가 너의 어릴 적 기억이나 가족, 캔버라에서의 시간들 등의 사소한 너의 것들을 내게 꺼내 놓아주어 나는 정말 기뻤어. 비록 그것들은 너의 아주 작은 조각들에 불과할지라도.
너는 꽤나 복잡한 사람이야. 너 자신도 이미 알고 있어, 그렇지? 아름다움은 복잡성 안에 존재해. 나는 네가 너의 ‘한 번 집을 떠난 뒤 영영 돌아오지 않은 마음’을 향한 아름다운 여행을 하기를 바랄게. 네가 작은 행복의 날들과 미소 짓는 순간들 그리고 슬픔의 그늘이 드리운 한 묶음의 슬픈 날들을 가지기를 바랄게. 네가 올 한해 내내 너를 따라다닐 ‘옅은 슬픔’의 안에서 그의 즐거움을 발견하기 또한 바랄게. (결국에의 이 편지는 생일 축하 편지가 되는구나.)
그리고, 네가 그 즈음에 다다랐을 때에, 나 역시 온전한 나의 존재를 찾았기를 희���해. 부디 우리의 나약하고 휘둘리기 쉬운 영혼들이 평온을 찾았기를.
안녕, 다시 한번. 나는 진심으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그러나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이미 너를 지나치게 좋아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이야.
‘네가 앞으로도 슬프고 징징대고 성가시게 하는 나를 잘 견뎌 주기를 바라.’
아름다운 나이, 아름다운 시절이 될 거야. xo
05
0짧은 광화문 연가0
서울에 살 적 나는 광화문에 가는 것을 제법 좋아했다. (실은 제법이 아니라 ‘몹시’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처음 갔을 적 그 엄청난 규모에 깜짝 놀랐던 교보문고, 내가 아는 동안만 해도 제법 많은 리모델링을 거쳤던, 뻥 뚫린 광화문 광장과 커다란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상, 그 너머로 보이는 경복궁 그리고 그 뒤에 흐드러진 제왕의 산이라 불리는 인왕산, 풍문 여고의 돌담 길과 소담한 삼청동의 골목들, 그곳에서 마시던 모든 커피와 거리에서 먹던 길거리의 군것질거리, 뒷골목, 서울의 중심, 씨네 큐브, 그곳에서 보던 영화들. 우리 집은 동대문구의 청량리역 근처였지만 한동안 광화문의 흥국 생명 빌딩에서 구태여 아르바이트를 했을 만큼 나는 번잡스럽고 이따금 짜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종로의 6가, 5가, 4가, 3가, 2가, 종각을 빼곡히 거쳐야만 닿을 수 있는 광화문을 좋아했다. 서울의 외곽인 중랑 차고지로 가는 수많은 파란 버스들은 청량리역 환승 센터를 거쳤고 우리 집 문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버스는 270번, 271번, 273번, 260번 등으로 많고도 많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광화문의 언저리는. 나는 교보문고의 시집 코너에 가서 제목이 마음에 드는 시집을 모조리 꺼내어 훑기도 했고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후루룩 소설책을 읽기도 했으며 결국 읽지 않을 영문 소설을, 영어 공부를 한다는 명목하에 여러 권 구매했다. 그리고 광화문 길을 따라 죽 걸어 구태여 영풍 문고에 들르기도 했고 곳곳에 놓인 빵집을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드나들며 당 섭취를 했다. 늦은 저녁 시간에는 씨네 큐브에서 심야 영화를 보기에 좋다. 우리 은행 체크 카드 할인을 받으면 한 달에 한 번, 그 당시 만 원 이상 6000원 할인으로, 만 원짜리 영화를 단돈 4000원에 감상할 수 있었고 일반 극장 크기의 1/3도 되지 않을 1관은 스크린의 화질과 스피커의 음향이 좋아 나의 단골 상영관이 되었다. 영화관을 나서 에스컬레이터를 올라 흥국 생명 빌딩을 지키는 당직 경비원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이는 같은 건물 지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긴 버릇이었다, 청신한 밤거리로 나오면 소담하고 참한 의외의 서울이 나를 기다린다. 대개의 경우 영화관 건물을 나선 나는 남색 하늘에 걸린 하얀 서울의 달을 올려다보며 부러 종로를 향해 한참을 걷곤 했다. 청계천을 따라 내려가기도 하고 이제는 타지 않는 오래된 버스 노선을 구태여 타고 올라 오래전 살던 옛 동네로 잠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나는 주로 삼청동 너머의 계동에 가기를 좋아했는데, 이따금 변화가 필요할 때에는 서촌으로 걸었다. 그러나 습관처럼 그 끝에는 광화문의 동쪽으로 넘어오곤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생기기를 고대하던 날들을 넘어 내가 서울에서 일 년 반 자리를 비운 사이 완공되어 있었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술관이 되었다. 비단 만 24세 미만이거나 대학생이면 입장료가 무료여서만은 아니었다. 천장이 높고 하얀 벽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미술관 건물을, 나는 참 좋아했다. 그 일종의 웅장함이 나의 기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나와 뒷골목에 친구들이 으레 ‘이 길로 가는 거 맞아?’하는 좁다란 돌담 길을 지나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랑스 제과점이 나왔다. 단 것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그 작은 마카롱 가게는 내게 평온을 주는 장소였다. 프랑스나 마카롱에 어떠한 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팍팍한 서울 생활에서 고향집의 솜이불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마카롱이나 다쿠하즈 하나에, 가게 이름과 같은 이름을 한 주인집 언니가 내려주는 드립 커피 한 잔씩을 마시며 쉬어 갔다. 그 계동 길에는 역시나 내가 좋아하던 파스타가 맛있는 화덕 피자집과 친절하고 독실한 아주머니가 만두를 빚고 피클을 담고 김치를 담그는 밀양식 손 만두 집이 있었다.
내가 왜 갑자기 광화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짧은 환기가 필요했는지 몰랐다. 나는 어쩌면 몇 주 후에는 영원히 다시 마주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복도 끝 방의 ‘그’에게 나의 광화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여 그가 한국에 온다면 앞서 언급한 곳들에 함께 가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니 실은 내가 정말로 생각하고 있던 것은, 과거의 나는 과거의 나였고 광화문에 대한 연가는 오롯이 나만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가 ‘나의 광화문’에 대해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 날의 정다운 광화문이든 지금 이곳의 이 순간이든, 그 시절의 나이 든 오늘의 그이든,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뒤죽박죽이었다.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시간이느니 공간이느니 하는 것들은 그저 우리의 상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의 너와 나의 존재 자체조차도.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아주 긴 단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네모난 방의 하얀 침대에 누운 나는, 내가 지금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와 나란히 앉았던 공동묘지에 놓인 단 하나의 벤치로 돌아가 벅찬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며 희뿌연 밤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기도 했고 갑자기 광화문으로 돌아가 교보문고의 시집 코너에 멍하니 섰기도 했다. 먼 미래의 어느 날에는 ‘그’라는 존재 역시, 나의 광화문처럼 오래전의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지금 내 안에 담긴 이 ‘사랑’과 유사한 감정도, 나의 광화문처럼 빛을 바래 뿌옇게 흐리지만 동시에 선명하게, 지난날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이미 아주 오래전에 그라는 존재를 미리 만났는지도 몰랐다. 그의 존재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또한 동시에 우리는, 여전히 만나지 못했는지도 몰랐다는 말이기도 했다. 여전히 만나지 못한 우리는, 아주 먼 미래에 서로를 마주할 준비를 아주 천천히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그에 대한 나의 연가였다.
06
‘우리의 좋은 시절이, 가장 좋을 시절이. 이미 다 지나가 버리고 없다’
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주 쓴 약을 삼켜내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어 나는 모든 걸 게워내고 싶었다. 모든 걸 토해내고 싶었다.
앞으로 더 쌓을 수 있는 반짝이는 추억은 없었다. 시간은 이미 다 닳아 없어지고 없었다. 가장 찬란하던 순간은. 이미 지났다. 저 먼 지난날에 있었다. 앞으로의 ‘전성기’를, 그 ‘좋을 시절’을 기대하던 스스로가 터무니없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그 노을과 노을과 물가와 또 다른 노을과 나란히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우리의 전부였다. 언젠가 더 고조되어 붕 뜨게 될 것이라 믿던, 그렇게 도약의 시간이라 믿던 그 아-무 일도 없던 나란히 앉은 순간들이. 우리의 전부이자 하이라이트였다. 별은 빠르게 졌다. 밤하늘에는 캄캄함 만이 남았다. 우리에게의 더 좋을 내일은.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존재하지 않았다.
2 notes · View notes
wasteuryouth · 6 years
Text
10분 동안 끄적거리기
비가 잠깐 내리는 덕에 더위가 꺾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오늘 또 다시 최고기온 37도를 기록 중이다. 아이폰 날씨 어플에 의하면 내일부터 최고기온이 33도를 넘지 않을 것이라 한다. 과연.
여섯 살 즈음에 났던 땀띠가 올해 났다. 군대에서 뙤약볕 맞으며 삽질했을 때도 안 나던 땀띠가 났다. 약을 바르며 투쟁 중이다.
친구들은 더운 날씨에 지쳤는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원래 다음 날 출근이면 나오지 않던 놈들이긴 한데 이 더위 앞에 더욱 더 지쳐가는 것 같다.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나가는 것이 싫어졌다. 로비로 나가기만 해도 땀이 난다. 최근에는 점심시간에 사무실에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새로운 시즌을 봤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조만간 다시 쓰는 걸로.
운동을 등록하고 가질 않는다. 더워서 금방 지쳐버린다. 돈 아깝네 씨발. 놀러 갔다 오면 열심히 다녀야겠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어제 신나게 놀 생각을 하다가 집에서 TV 보던 중 뻗어버렸다. 하도 잤더니 허리가 땡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압구정 CGV로 왔다. <더 스퀘어>를 볼 예정이다.
영화관도 덥다.
23 notes · View notes
gusdlf0928 · 2 years
Photo
Tumblr media
#B형계의이단아 2022 PASSO DI CUORE GRANFONDO 4인 1조가 3인 1조로 마무리…😮‍💨 최근 경험했던 그란폰도도 그랬고 100km에 고도 2,000m 정도는 늘 타왔기에 힘들어 봤자겠지!라고 생각했던 건 경기도 오산이었다.🤢 90km구간까지는 함성을 지르면서 여기 또 오자며 신나게 내달렸지만, 시멘트 포장길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안반데기 업힐! 여기까진 나쁘지 않았다. 이어 시작되는 다운힐은 내려가도 가도 안 끝나~? 팔이 후들댈 정도였고.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37도를 가리켰던 대관령은 가민이 알려주는 거리를 못 믿고는 끝인가? 아닌가?를 반복하며 된 발음을 내뱉었던 업힐이었다.🤬 구력은 짧지만, 가장 힘들었던 코스로 기억되었다. 대관령은 차 끌고 가자…😵‍💫 그럼에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운영에 너무 먹었는지 내용물 확인할 뻔했던 정도로 넉넉했던 보급. 여태 업힐하면서 천천히 가도 내린 적은 없었는데, 현기증에 못 이겨 두 번이나 내렸고, 스태프분들께서 주머니에 넣어줬던 얼음을 의지하며(정신없어서 도와주신 분들 얼굴도 못 봄 ㅠ) 오를 수 있었고. 쥐가 날랑말랑한 타이밍에 다시 내릴까 싶었지만, 포토와 함께 계셨던 스태프분께서 얼마 안 남았으니 남은 힘 쥐어 짜라 듯 온힘을 다해 안장을 밀어주시니 도저히 내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희로애락을 모두 느낄 수 있었던 라이딩. 고가의 고글, 저지 웰컴 기프트가 제공됨에도 1인당 35만 원이라는 참가비용은 부담스러웠지만, 그만큼 좋은 경험 가득 안고 올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여하려 했었는데, 내년에도 다시 하고 싶단 생각이 드는 행사였다. 운영진 및 참가자분들 더운 날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 * * 🤙🏻 #아웃도어아티스트 ��� #PisseiGranfondo #피세이그란폰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Roadbike #Cycle #Granfondo #로드바이크 #로드자전거 #그란폰도 #자덕 #자덕으로가는길 #피세이 #피세이코리아 #알바옵틱스 #알바옵틱스코리아 #피아짜 #아미노바이탈 #게토레이 #크램픽스 #안반데기업힐 #대관령업힐(대관령 선자령에서) https://www.instagram.com/p/CfpsShkvyAR/?igshid=NGJjMDIxMWI=
0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