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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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먹는 것에 대한 것
황교익이라는 작자가 말했다. 혼자 밥먹는 것은 사회적 자폐라고. 나는 이 발언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 사람의 말에 공감을 해서가 아니다. 저런 앞뒤 꽉 막히고, 타인에 대한 이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는 인간이 방송에 나와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에 대한 한숨이었다. 나는 저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꼰대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식사. 몹시 중요한 행위이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식사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누군가에겐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겐 짧으나마 꿀같은 휴식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모두에게 식사시간이란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그 중요함의 무게는 같다. 황교익이란 늙은이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만을 인정하며 타인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사회적 자폐’라는 단어로 깔아 뭉개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오만이라 할 수 있다.
나만해도 그렇다. 나에게 있어서 식사시간이란 외부와 단절된 시간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혼자서 음식을 먹고, 그 맛을 즐기며, 남과 나누고 싶지 않은 나만의 생각을 하는 시간인 것이다. 황가 늙은이의 말대로라면 나는 사회적 자폐아라고 할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나는 사회적 자폐아인가?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직장동료들과, 친구들과 곧잘 어울려 이야기도 나누고 잡담도 하며, 일 관계로 커뮤니케이션도 한다. 단지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이유로 ���회적 자폐아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 넌센스다.
실로 꼰대라고밖에 할 수 없다.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니 모조리 비정상으로 치부해버리는 꼰대 말이다. 저런 생각의 근원에는 그야말로 비틀려서 악취가 풍기는 권위주의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음식에 대한 권위자인 내가 말했으니 나와 다른 이는 모두 비정상이다! 라는 것이다. 실로 오만무도하고 한심한 늙은이라고밖에 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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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커피
비엔나 커피가 먹고 싶어져 강남의 한 까페에 들어갔다. 자리마다 좌석이 칸막이로 분리되지 않아 모두에게 노출된 느낌일 줄 알았지만, 오히려 굉장히 천장이 높아 울림이 있었기 때문에 탁 트인 공간감을 주었다. 개개인이 자신의 범위라고 느끼는 것 만큼의 공간을 타인이 침범하지 않는 가게였다. 어두컴컴한 공간을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과 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밸런스도 눈을 어지럽히지 않은 수준에서 공존했다. 나같은 음지식물 같은 사람에겐 딱인 공간이었다. 게다가 넓직한 원목 테이블이라니.
사람이 몇 없는 곳의 구석에 자리를 잡고, 홀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짐을 두었다. 한산한 카운터 주변에는 무화과 스콘을 비롯한 각종 디저트들이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었다. 저녁 식사 전인데 디저트를 먹어도 되나 하는 고민은 잠시, 당연히 해야할 것을 하는 마냥 익숙하게 주문을 했다. 밥 한끼 가격의 커피, 밥 한끼 가격의 디저트, 밥 한끼 가격의 치즈 케잌, 이런 디저트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아 무화과 스콘. 찬란한 자본주의여. 아름다운 사각형의 플라스틱 이여.
형체도 없이 지불되는 금액에 드는 죄책감을 무시한 채 진동벨을 손에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분 동안의 근사한 기다림은 그야말로 길티플래져 에서 오는 그것이었다.
노트를 꺼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끄적였다. 맞은편에 보이는 사람은 누굴 기다리고 있을까, 창 밖에 몰려있는 여자들은 저마다 어떤 이야기들을 갖고 있길래 저렇게 즐거운 얼굴일까 하는. 벨이 울렸고, 쓰던 필기구들은 잠시 테이블에 올려놓고 카운터로 향했다. 쟁반에 담긴 커피와 스콘을 들고 테이블에 돌아왔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가방과 노트, 펜을 치우면서 외국 여행을 할 땐 가방을 잃어버릴까봐 잠시라도 자리를 그냥 비우지 못했는데, 여긴 한국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곤 적당히 치워진 자리에 앉아 먼저 아무 생각없이 커피를 한 모금을 입에 물었다. 일회용 컵이 아닌 머그컵에 담을껄. 아무래도 꺼끌꺼끌한 종이 감촉과 약간은 젖은 두꺼운 종이 냄새가 커피 향을 느끼는 것을 가로막았다. 무언가를 섞은 커피니까 그런 것에는 까탈을 부리지 말자며 모르는 척 무시하고 마신 커피의 첫 잔은 생각했던 것보다 썼다. 아니 첫 맛부터 꽤 썼다. 내가 기대한 맛은 달콤한 크림을 먼저 느끼고 그 뒤로 따라오는 커피의 개성있는 쌉싸름한 것이었는데. 그래도 액체 전체에 느껴지는 달착지근한 시럽은 당분에 대한 혀의 갈증을 어느정도 만족해주어 큰 돈을 쓴 죄책감에 대한 기분이 풀어졌다. 당분을 찬양하라. 그래. 나는 이런 문화적인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컵을 내려놓고 옆으로 치워두었던 노트를 다시 펼쳤다. 아무 주제가 없이 문장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커피를 마시니까 커피에 대한 글을 쓰려고 펜을 들었다.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는 비엔나 커피다. 비엔나 커피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예전에 회사에서 주말 근무를 하고 - 보통 당시 주말근무는 24시간 근무이다 - 아침에 퇴근할 때 마신 한 잔은 주말을 보상해주는 그런 것이었다. 크림의 부드러움은 집에 돌아가는 길을 정말 기분 좋게 해주었다.
이 기억을 떠올리며 비엔나 커피를 예찬 하는 글을 쓰려고 무심코 영수증을 보았는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 처음 깨달은 뒤 나는 자기부정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다. 내가 주문한 것은 비엔나 커피가 아닌 바닐라 라떼였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스스로에게의 반복된 질문과 동시에 몇 분전의 일들이 비디오 테잎을 거꾸로 돌린것 마냥 떠올랐다. 머그컵 타령이며, 크림 타령이며, 갖은 있는 척을 다한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비엔나 커피와 바닐라 라떼는 큰 차이가 있다. 먼저 전자의 경우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 위에 비엔나 크림이 얹어져 있는 층위가 있는 형태이고, 후자의 경우엔 우유에 에스프레소 커피가 들어가고, 단맛을 바닐라 시럽이 들어가는 혼합된 형태다. 쉽게 말해 커피우유인거다. 어쩐지 감촉이 다르더라니. 잘못 본 것이 아닌가 두 번 세번 보았으나 영수증엔 바닐라 라떼 라는 고딕체의 글씨가 인쇄 되어있었다. 혹시 주문이 잘못 들어갔나 싶어 메뉴판을 확인해봤지만, 비엔나 커피가 없었지 바닐라 라떼는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입으로는 바닐라 라떼라고 말하고 생각은 비엔나 커피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글이고 뭐고 머리를 둔탁하게 맞은 기분에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실은 아싸 소재거리!!! 라며 또다른 내가 쾌재를 부렸지만 말이다.) 귀 주위엔 비트가 흐르고, 높은 천장과 테이블 사이의 공간은 조명과 노을 빛이 채우고 있는 공간에서, 고소한 제과와 향긋한 커피향이 오감을 자극하는 그 순간 속에서 나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사람은 그가 추구하는 것들과 경험한 것들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려는 욕구가 강할수록 일련의 행동의 집합, 즉 취향이라는 것을 만들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이면 강한 자기확신으로 인한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믿고 있던 나는 그렇게 까다롭게 추구하던 내 개성을 이루는 것들이 이렇게 조그만 착각으로도 무너질 수 있다는 충격과 함께 어릴땐 안그랬다는 괜한 나이탓을 하며 남은 커피를 마셨다. 입안에 남은 뒷맛은 부끄러움에 대한 씁쓸함인지, 라떼 특유의 씁쓸함인지 모른채 말이다.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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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도서 : 마르셀 프루스트 - ‘쾌락과 나날’ / Marcel Proust - Les Plaisirs et les Jours

신간도서 : 마르셀 프루스트 - ‘쾌락과 나날’ Marcel Proust - Les Plaisirs et les Jours
//////////////////////////////////////////////////////////// 책소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2년을 맞아 ‘프루스트 100주년 특별판’을 선보인다. 2019년 미행의 첫 책으로 출간된 『쾌락과 나날』은 이번 100주년 특별판에서 표지, 판형, 조판을 새로운 모습으로 정비해 선보인다.
프랑스에서도 오랫동안 묻혀 있던 프루스트의 미발표 단편들을 묶은 『익명의 발신인』에는 훗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기억을 소환하는 오브제로 쓰인 마들렌을 예감하며 ‘따뜻한 차와 빵을 함께 먹는 장면’을 담은 작품 등 그의 습작 원고가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다. 『쾌락과 나날』에는 황인숙 시인, 『익명의 발신인』에는 함정임 소설가의 추천의 글이 독자를 맞이한다.
『쾌락과 나날』은 프루스트가 세상에 내놓은 몇 권의 번역서와 미완의 장편소설 『장 상���유(Jean Santeuil)』 등 그의 저작들 맨 앞에 위치한 작품집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프루스트 사후에 완간된 점, 『장 상퇴유』가 미완으로 남은 것과 달리 창작집으로는 유일하게 프루스트가 직접 책을 구성하고 출간시켰다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거대한 미로를 여는 열쇠이자, ‘프루스트’라는 여전히 유효한, 무한대로 증식하고 변이하는 유동물을 탐색하는 지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패기 넘치는 젊은 작가의 탄생을 축하하는 아나톨 프랑스의 서문, 당시 프루스트와 교유했던 화가 마들렌 르메르의 그림과 작곡가 레날도 안의 악보들은 초판본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프루스트의 이 첫 작품집에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Les Plaisirs et les Jours est un recueil de poèmes en prose et de nouvelles publié par Marcel Proust en 1896 chez Calmann-Lévy, avec une préface d'Anatole France. Ce recueil, dont le titre fait écho à Les Travaux et les Jours d'Hésiode, s'inspire fortement du décadentisme et notamment du travail du dandy Robert de Montesquiou. Il s'agit du premier ouvrage de son auteur, qui cherchera à en éviter la réimpression pendant la rédaction de son grand œuvre,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 저자소개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1871년 7월 10일 파리 16구 오퇴유 지역의 라퐁텐가(街) 96번지에서 태어났고, 1922년 파리 16구의 아믈랭가 44번지에서 오십일 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다. 그는 부유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랐는데, 저명한 위생학 의사인 아버지 아드리앵 프루스트는 파리 의과대학의 교수이자 국제위생단체의 총감이었다. 프루스트는 어려서부터 귀족들의 살롱에 드나들었고, 사교계 인사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 들을 만났다. 여러 편의 짧은 산문과 시, 단편소설을 썼고(『기쁨과 나날들』), 기사와 모작 들을 묶은 『모작과 잡문』을 펴냈으며, 존 러스킨의 『아미앵의 성경』을 영어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또한 1895년에 첫 소설 『장 상퇴유』의 집필을 시작했으나 포기하고 마는데, 이 소설은 그의 사후인 1952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1907년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하기 시작했고, 일곱 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1913년에서 1927년 사이에 출간되었다. 소설의 첫번째 권인 『스완네 집 쪽으로』는 세 부분(「콩브레」 「스완의 사랑」 「고장의 이름: 이름」)으로 되어 있다. 소설의 두번째 권인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는 1919년 공쿠르 상을 수상했으며, 소설의 마지막 세 권은 프루스트 사후에 출간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소설 전체가 일인칭으로 서술되는데, 화자가 태어나지 않았거나 아주 어린 나이였으리라 간주되는 1880년대의 파리를 무대로 펼쳐지는 「스완의 사랑」만이 예외이다. 몸이 허약했던 마르셀 프루스트는 평생토록 중증의 천식으로 고생했다. 1922년 10월, 그는 에티엔 드 보몽 백작을 만나러 가던 중 감기에 걸리고, 결국 11월 18일에 기관지염이 도져 사망했다. 그는 파리의 페르라셰즈 공동묘지에 묻혔다.

//////////////////////////////////////// Sources
- Institut Français https://kr.ambafrance-culture.org/ko/%ec%8b%a0%ea%b0%84%eb%8f%84%ec%84%9c-%eb%a7%88%eb%a5%b4%ec%85%80-%ed%94%84%eb%a3%a8%ec%8a%a4%ed%8a%b8-%e3%80%8e%ec%be%8c%eb%9d%bd%ea%b3%bc-%eb%82%98%eb%82%a0%e3%80%8f/
- Kyobo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91192004044&orderClick=J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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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요. 잘자요
사랑에 빠진 후배가 오늘밤 연인에게 마지막 문자를 어떻게 보내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차요. 잘자요.- 잡문, 안도현 -
Calligraphy by [소담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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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 독서 : 잡문 빛이 오가는 사이, 책 속의 짙은 그림자가 베이면 그 순간만큼은 글 분위기 또한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창밖의 풍경에 따라 그림자의 크기도 달라졌다. 줄지은 높은 건물을 지나칠 때면 마치 큰 나무 아래 있는 듯, 수많은 나뭇잎 그림자가 떠다녔다. 삭막한 바깥 공기 속에서 살랑거리는 바람, 자연의 소리를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터널을 향하는 기차 안은 빛과 그림자가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결국, 그림자 속을 파고드는 아침 햇살. 나 또한 그런 그림자에 휘말려 오묘해진 감정을 애써 숨기기 바빴다. 살며시 책을 덮고는 눈을 감았다. 다시 햇살이 드리우는 어느 곳에 잠시 정착했다. 기차가 멈췄다. 청춘들이 오른다. 왁자지껄한 4호 차. 그리고 다시 광활한 녹음. -군산 가는 기차 안에서 201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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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ns상에서 문재인에 대한 비판만 올라오면 득달같이 비난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들을 보며 한숨을 쉰다. 우리가, 내가 촛불을 든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박근혜 정부가 그토록 많은 비판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중 하나가 바로 권위주의와 무능 아니었는가. 그리고 그 권위주의와 무능의 대표적인 병폐가 바로 소통의 부재와 비판에 대한 거부 아니었는가.
인민은 국가의 주인으로서, 그 관리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은 칭찬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비판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설령 그 내용이 허무맹랑하고, 비합리적이라 한들, 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인민의 당연한 권리이다.
그것을 무시한 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비판을 원천봉쇄하려는 것은, 바로 인민의 권리에 대한 무지이자, 무시이다. 상대방의 의견이 맘에 들지 않아 비판하고, 반론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허나 그것이 상대방이 의견을 말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지키려고 촛불을 들었는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갔는지. 그리고 우리가 지키려 했던 것을 우리 손으로 망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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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6
요즘 생각나는 주제들로 짤막하게 글을 쓰고 있다.
글자로 맺혀지지 못한채 공기중으로 퍼져나간 것들을 조금씩 주워담은 글들. 순간순간 떠오르는 나의 이야기를 그날의 시덥지 않은 안주거리로 삼은 것들. 날 보아달라는 진심과 대화와 대화의 어색한 사이를 일부러 채워넣으려는 기능적인 의도의 것들이 섞여있는 이야기들을 모아보았다.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본 이야기 그 끝에 묻어나는 허무는 글로 씌여지기엔 점도가 너무 낮았다. 또 한번 그런 시시함에 좌절.
그럼에도 글을 쓰다보면 그 길의 끝엔 구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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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지냈던 두 분의, 두 글귀.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이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이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 박완서, 나의 만년필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 피천득,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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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1
어떻게든 메모를 할 수 있는 형태로 저장 해본다. 현실과 타협하여 먹고사니즘을 충족시키는 부분과 무언가를 하고싶은 마음을 나눈 사람은, 만들고 싶은 것과 업을 일치시킨 사람과는 다른 철학이 필요하단. 이를테면 어떻게든 하고싶은 것에 하루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할당해서, 성에 차지 않더라도 꾸준히 만들어나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유지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보는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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