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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webdraw · 3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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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toto8 ·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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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이며, 건강한 성생활은 신체적, 정신적 웰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적 쾌락에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그것을 일상생활의 중심에 두는 것은 때때로 개인의 삶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과의 균형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심이 일상 생활에서 균형을 찾고, 전반적인 웰빙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건강한 성생활의 유지: 파트너와의 소통, 서로의 욕구와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 위에 구축된 관계에서 성적 쾌락은 더욱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인식 증진: 자신의 성적 욕구와 쾌락을 이해하고, 이것이 전반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인식을 통해 삶의 다른 측면과의 균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정신적, 감정적 웰빙 증진: 성적 쾌락은 정신적, 감정적 웰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트레스 관리, 감정 조절, 그리고 긍정적인 자아상 유지 같은 것들이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취미와 관심사 개발: 다양한 관심사와 취미를 갖는 것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성적 쾌락 외에 다른 만족과 기쁨의 원천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 상담 고려: 성적 욕구나 쾌락에 대한 생각이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관리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 전문가나 성 건강 전문가는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자플리 성적 쾌락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건강하고 균형 잡힌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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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superpower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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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느끼는 쾌락 순위 TOP5 https://rankingall.tistory.com/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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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93gw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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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최고급 관련 정보 찾았다
매우 바쁘게, 쾌락 찾기 힘드시죠잘 찾아보면 걸천사 태어나서 처음 후기 남긴다이중에 쾌락 관련 이만 한 곳이 없습니다쾌락 바로가기: 여기를 클릭하세요<p함해서 둥글게 감싸고 있는데? 벤이 입을 열었다. 결계 결계? 결계라고 함은, 무엇인가를 보호하게 위해 쾌락 마법사들이 쳐 놓는 특별한 장벽이다. 마법사의 등급에 따라 그 결계의 방어력이 결정되며 마나의 가공방법에 따라 역으로 공격시키는 결계술도 존 재한다. 레비테이션 벤이 살짝 떠올랐다. 벤은 주먹으로 가볍게 결계를 쳐보았다. 공중 에서 가벼운 파장이 파지직 쾌락 하고 일어나지 않는가? 음 이거 단단한 수준이 아닌데? 사람이 어떻게 이런 결계를 만 들 수 있는 거지? 벤이 마나를 측정하며 중얼거렸지만 세린은 전혀 감이 오지 않았 다. 강도 테스트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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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witheun ·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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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는 오로지 나의 동의, 오로지 나의 흔쾌한 응낙, 그리고 나의 선선한 양해만을 필요로 할 뿐이네. ...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_싯다르타(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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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dinglandtragedy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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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POTO korea production
Music of the night
Jeon dong seok’s ver. Each actor has slightly different lyrics.
Sorry for the clumsy translation, the phantom (obviously) speaks cooler than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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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밤이 눈을 뜨면
When the night slowly open its eyes
어둠 속에 깨어나는 환영
The illusion awakens in the darkness
사라지는 긴장
The tension is fading
다가오는 은밀함
The covertness is closing in
부드럽게 펼친 밤의 날개
Gently unfurled wings of the night
잡힐듯이 가녀린 이 떨림
A delicate quiver that can be felt
이젠 잊어봐 낮의 현란한 빛을
Now forget the garish light of day
이젠 더 이상 기억하지마
Don't remember anymore
자 이젠 느껴 밤의 노래를
Now feel the music of the night
눈을 감고 어두운 꿈에 널 맡겨
Close your eyes and let the dark dreams take you
다 잊어 지난 모든 기억들
Purge your every last memory
눈을 감고 날게해 네 영혼
Close your eyes and let your spirit start to soar
새로운 세상 갖게 될테니
Then you will have a world you never knew
달콤하게 감싸주는 음악
The music surrounding you sweetly
들어, 믿어, 비밀스런 노래
Listen, trust, that secret music
마음을 열어, 모든 환상을 펼쳐
Open up your mind, let all the fantasies unwind
거역할 수 없는 너를 느껴봐
Feel yourself who cannot fight
이 어둠의 힘, 밤의 노래여
The power of darkness, music of the night
원하던 모든 꿈을 갖게 되리라
You will have all the dreams you ever wanted
새로운 세상, 또 다른 삶을
A new world, another life
네 영혼 가야만 할 그곳에
Where your soul must go
마침내 내 것이 될 순간
The moment you will finally be mine
너를, 나를 취하게 한 떨림
You and I are intoxicated with this quiver
만져, 느껴, 몽롱한 이 쾌락
Touch it, sense it, this dazed pleasure
이젠 꿈꿔봐, 너를 어둠에 맡겨
Now let the dream begin, let the darkness takes you
나의 위대한 음악을 경배해
Worship my great music
이 위대한 이 밤의 노래여
This great, this music of the night
내 노래를 날게 해주오
Make my music take flight
그댈 위한 밤의 노래여
The music of the night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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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kenlee-blog · 2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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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lies -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전주 나올 때 하모니카 선율만 들어도 "아!"라고 금방 알아먹을 노래지만 내용은커녕 제목조차 몰랐던 곡. 근데 "안 무거워요, 내 동생이잖아"였다니…
짧은 영어 실력으로도 "The road is long with many a winding…"으로 시���하는 첫 구절 정도는 들리니까 비틀즈의 '멀고 굽은 길(=The Long and Winding Road)'과 비슷한 내용일 거로 짐작했지, 이렇게까지 뜻밖일 줄은.
작사, 작곡은 바비 스콧과 밥 러셀 공동 작업. 최초 녹음은 켈리 고든이란 가수가 1969년에 했지만, 같은 해 홀리스(Hollies)가 불러 빅히트했다. 밴드명은 버디 홀리에서 따온 거라고. 이상하게 유튜브에는 1965년으로 잘못 표기된 게 많다.
만약 같은 주제로 내가 가사를 썼다면 "무겁죠, 하지만 동생이잖아요"라고 썼겠지. 나는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일상의 덕질도 본인의 쾌락 추구 때문이고, 나 살기 위해 돈 버는 짓도 귀찮고 성가셔 죽겠는데 타인을 향한 이타심 같은 게 있을 리가. '댄서스 하이' 18쪽에 "표정도, 말도, 나는 다정한 사람이 못 된다"고 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 앞에 문제가 닥치면 나 몰라라 도망가진 못하겠고 입빠이 짜증은 나지만 억지로 희생하기는 할 거 같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점점 커질 거고.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는 상식적일진 몰라도 누구도 감동하진 않는다. 반면에 딱 봐도 무겁지만 "안 무거워요, 동생이잖아"라는 말에서 내가 가식으로라도 흉내 낼 수조차 없는 높은 경지의 휴머니즘을 느낀다.
내가 하는 몸공부는 궁극엔 마음공부로 이어져야 마땅하고 언젠가 진심을 다해 저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을 때까지, 오늘도, 내일도 일단 팔굽혀 펴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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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uuperfastsnail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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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분기에 나는 무엇을 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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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네이션』⭐⭐⭐⭐
쾌락과 고통은 한 저울 위에 놓여 있다. 많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반작용으로 많은 고통을 가져온다. 마약이나 술처럼 간단하게 쾌락을 주는 것들은 중독되기도 쉽고, 한번 중독이 되면 점점 더 많은 양을 투입해야만 처음의 만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다보면 마약과 술이 없는 상태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과도한 도파민 분비를 유발하는 활동에 빠져들면 산책, 명상, 독서와 같은 소소한 활동들에서 아무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활동을 많이 해야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절제만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그리고 쾌락과 고통은 한 저울 위에 놓인 것이므로 고통 쪽을 광클하면 반작용으로 쾌락을 얻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2)! (흔한 예시로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있다.) 여러 책을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현재에 집중하는게 행복의 길이라는 건데, 그 점을 생각하면 다 맞아 떨어진다. 도파민 중독자가 되어 숏폼 콘텐츠를 계속 들여다 보는 것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에 행복한 삶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고, 고강도 운동 등 고통의 순간에는 현재에 집중하기 싫어도 집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행복한 삶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어떤 사람은 약물을 복용하고, 어떤 사람은 방에 숨어서 넷플릭스를 몰아본다. 또 어떤 사람은 밤새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거의 뭐든지 하려 든다. 하지만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이 모든 회피 시도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여러분도 주어진 삶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란다. 피하려고 하는 대상으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그 자리에 멈춰서 방향을 바꾸어 그것을 마주하길 바란다.
<저울의 교훈>
끊임없는 쾌락 추구(그리고 고통 회피)는 고통을 낳는다.
회복은 절제로부터 시작된다.
절제는 뇌의 보상 경로를 다시 제자리에 맞추고, 이를 통해 더 단순한 쾌락에도 기뻐할 수 있도록 한다.
자기 구속은 욕구와 소비 사이에 말 그대로 초인지적 공간을 만드는데, 이 공간은 도파민으로 과부하를 이룬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다.
약물 치료는 항상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약물 치료로 고통을 해소함으로써 잃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고통 쪽을 자극하면 우리의 평형 상태는 쾌락 쪽으로 다시 맞춰진다.
그러나 고통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근본적인 솔직함은 의식을 고취하고, 친밀감을 높이며, 마음가짐을 여유 있게 만든다.
친사회적 수치심은 우리가 인간의 무리에 속해 있음을 확인시킨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세상에 몰입함으로써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제5도살장(그래픽노블)』⭐⭐
커트 보니것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그래픽 노블이다. 『제5도살장』을 읽어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계속 실패하던 중 tvN <알쓸인잡>에서 심채경 박사가 언급한 것을 보고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이야기에 몰입하기에는 분량이 짧아서, 원작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억을 되새기며 보기에 좋은 그래픽노블 같았다. 결론은? 어쨌든 『제5도살장』 빨리 읽어봐야지...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
각종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재생속도 조절과 스킵 기능을 제공하면서 1.25배속, 1.5배속으로 영화나 드라마 등을 감상하며 흥미없는 부분은 스킵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단 1초라도 못 보고 지나가는 장면이 없어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지루한 구간은 스킵하거나 1.25배속으로 보게 되었다.
영상 작품은 시청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에 따라 '콘텐츠'로 불리기도 하고, '작품'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청자는 영상 작품을 '소비'할 수도 있고 '감상'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현대인들은 단순히 스몰토크를 할 목적으로라도 따라잡아야 할 컨텐츠가 너무 많은데 그것을 모두 정성 들여 감상할 시간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더 글로리>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인데 자기만 보지 못했다면 사람들과의 대화에 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빠른 시일내로 봐야만 하는 것이, 드라마가 종영한 지 1~2주만 지나도 끝나버린 화제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영상 작품은 '감상'하는 '작품'이고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빠르게 넘기며 보는 건 '콘텐츠를 소비'한다고 할 수 있겠다.
빨리 감기를 하거나 건너뛰기를 하는 사람들은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필요한 정보가 대사나 내레이션으로 모두 나온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무도 없는 방에 얼음이 다 녹지 않은 채 마시다 만 위스키 잔이 있다면 그것은 '위스키를 마시던 사람이 방을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을 나타낸다. 남편이 퇴근해 집에 들어왔는데도 "다녀왔어요", "수고했어요"라는 말이 오가지 않는다면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한 소도구가 필요 이상으로 오래 화면에 잡힌다면 전개상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한 화면에 담기는 이미지, 한 컷이 지속되는 시간, 특정한 카메라 워킹 등등 모든 것은 제작자의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스킵과 배속 기능을 이용하면서 빠르게 훑어내려가는 경우 제작자의 이런 장치들은 무시될 수 있다. 시청자들은 점점 간접적인 표현 방식으로부터 의미를 포착하는 감상법에서 멀어지고, 심하게 말하면 '맥락맹'이 되어가고 있다. (↓아래는 너무 웃긴 맥락맹의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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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방법이 달라지면서 점점 유치한 작품들이 늘어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우아하고 세련된 비유를 사용하기보다는 구구절절 직접적인 설명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요ㅡ즘 애들의 문해력 운운하며 내 안의 젊은 꼰대가 기지개를 펼 뻔 했는데, 저자가 다른 미디어의 예시를 가져온 걸 보고 침착해졌다. 과거 TV, 비디오, 레코드판 등의 매체가 발명되었을 때도 "영화관에서 보지 않으면 영화가 아니다!" "연주회에서 라이브 공연을 듣는 게 아니면 음악이 아니다!"하며 거부감을 갖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의 등장도 TV, DVD, CD의 등장과 다를 바 있겠느냐고 한다면 또 그건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잘못된 것이나 한탄할 만한 세태가 아니라 단순히 변화의 과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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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옴니버스식 구성의 소설이라고 적으려다가 찾아보니 옴니버스식 구성은 개별 에피소드 간에 공통의 배경, 인물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피프티 피플』은 피카레스크식 구성의 소설이다.(우리에게 친숙한 피카레스크식 구성의 소설은 『원미동 사람들』이 있다.)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매 장마다 다른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소설의 장점은 구성이 특이하고 신선하다는건데 그건 가산점 같은 거고 소설의 작품성, 이야기 자체의 힘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큰 의미는 없다. 아무리 예쁘게 플레이팅 되어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면 의미 없는 것처럼.
정세랑 작가님에 대한 나의 생각은 작품마다 몇 개의 좋은 표현, 좋은 문장들을 주워갈 수는 있지만 전반적인 작품 세계에 대해서 큰 애정과 관심이 생기지는 않는 작가라는 것이다. 정세랑 소설은 뽀송한 느낌인데 나는 찐득한 소설을 좋아해서 잘 안 맞는 것 같다. 이 책은 예전에 추천을 받아 전자책으로 구입한 뒤 조금 읽다가 한참을 묵혀뒀어서 이제는 빨리 읽고 치워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완독하였는데, 예전 독서기록을 뒤적이다가 이미 2년 전에 완독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전혀 재독하고 싶은 소설도 아니었는데 씁쓸했다. 기록의 중요성을 느낀다. 리뷰를 철저하게 작성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제목만 봤을 때는 SNS 중독의 폐해를 다룬 책일 것 같지만 그렇다기보다는 시대고발 느낌으로 여러 칼럼을 묶어놓은 책이다. 근래에 와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여러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좋은 글이고 유익했지만 읽으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도 사실이다... 좋았던 부분 일부 남겨둔다.
글쓰기는 우리가 삶에서 거칠 수밖에 없는 연극적인 요소들을 걷어낸다. 글을 쓰는 순간, 자신의 내면과 기억에 집중하는 순간에는 더 이상 자기를 규정하는 사회적인 시선이나 역할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런 거짓들은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표백되고 벗겨져야 할 것으로 사라지며, 오로지 자기 내부의 핵심만이 남고 그것과 관계 맺을 수 있게 된다.
돈 셜리는 달림으로써, 연주함으로써, 여행함으로써 인간을 위한 싸움을 한다. 그리고 진정한 싸움이란 바로 그처럼 싸움 아닌 싸움,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함을 드러내는 일 자체인 셈이다. 단지 세상에 품위가 존재한다는 것, 인간에게는 어떤 '격'이 있다는 것, 인간에게는 야생과 본능을 넘어서 유지할 수 있는 어떤 '태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방법이자 곧 인간의 승리인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편견의 존재에서 품위의 존재로 나아간다.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한 사람, 품위를 드러내는 한 인간에 의지해서 말이다. 온갖 진흙탕과 혐오와 차별의 지옥도 결국 품위를 가진 한 사람의 비층로 밝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이 영화는 갖게 한다.
『소비단식 일기』⭐⭐⭐⭐
정신과적 질환의 영향으로 과소비를 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비롯된 온갖 현실적인 문제들에 힘들어하다가 1년간 '소비단식'을 하기로 결심한 사람의 에세이다. '소비단식'이란 생필품 구입을 제외하고는 단 1원도 지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본인을 제외한 가족에 대한 지출, 경조사비 포함 최소한의 인간 관계 유지비 등은 허용)
'X발 비용'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기분이 나쁜 걸 해소할 목적으로 홧김에 써버리는 돈으로, '홧김비용'으로 순화되기도 했다. 전체 소비액 중에서 홧김비용으로 나가는 돈이 상당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한번쯤 자신의 소비생활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실제로 사람의 정체성은 자존감, 그리고 소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그 상황이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고가의 물건을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자존감이 낮을수록 명품을 더 많이 구매하려는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제공하니 명품에 대한 사람들의 소비 욕구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소비단식을 위해서는 나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해보고, 자존감을 높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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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비혼자의 삶에 대해 쓴 에세이. 비혼자들은 이 악물고 "비혼! 비혼!" 외치는게 아니라 그냥 태어난 대로 사는 것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비혼이 되는건데 어째서 결혼이 디폴트이고 비혼이 "선택"이 되는거냐는 자연스러운 의문이다. 저자가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삶에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애도 하고 덕질도 하고 조카들도 만나는 그의 삶에는 충만한 사랑이 있었다.
책 속에서 "진짜 사랑이란 가장 좋은 버전의 나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더 좋은 내가 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왔기에 공감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카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부분이 인상깊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가장 큰 학교, 조카 준이와 솔이에게 특별한 사랑을 보내고 싶다. 두 사람이 어떤 존재로든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늘 내게 많은 길을 열어준다. 내 상상력 너머에 있었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지는 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어린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안에 갇혀서 익숙한 생각 속에 주저앉고 싶을 때 늘 나를 일으키고, 내가 늘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소중한 존재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흔치 않아 더욱 귀하다. '예뻐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가 여기서 비롯되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실패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끝없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사랑이다. 그 존재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 없이 내가 '예뻐해'주는데 왜 '귀염떨지' 않느냐, 왜 고마워하지 않느냐는 태도는 마음을 싸늘하게 식게 만든다.
아래의 인용문들은 '덕질'과 '덕후'의 삶에 대한 부분이다. 공감이 되어 메모해두었다.
덕후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멘탈이 굳건해지지는 않지만, 다만 삶에 '거하게 대수로운 것'이 핀 조명처럼 빛나면서 다른 것들은 빠르게 빛을 잃는다. 대수롭지 않아야 할 사실들이 내 일상을 할퀼 때, 나에게는 대수롭게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
이 사랑의 과정이 나에게 주는 가장 마음에 드는 선물은, 삶의 연차가 쌓일수록 입체적이고 복잡해지는 나의 정체성을 '팬'이라는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삼십 대 서울 거주 여성, n년차 작가, 프리랜서, 기고자, 갑 혹은 을, 팟캐스트 진행자, 둘째 딸... 수많은 관계와 맥락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초 단위로 결정해야 하는 피로감을 단숨에 없애고 그저 팬이라는 정체성만 남겨준다. 나는 '대장 부엉' 김이나의 '별밤 부엉이'거나 '곰돌 대장' 김희진의 '주접단'이기만 하면 될 뿐, 사회가 나에게 그간 붙여준 수많은 네임 택은 없어도 된다.
『호모 미련없으니쿠스』⭐⭐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등 인기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PD와 작가(둘은 부부다.)가 쓴 에세이. 전자도서관에 있길래 저자들에 대한 흥미로 선택해봤으나 그저 그랬다. 딱히 뭔가를 건져냈다거나 생각 해 볼만한 주제가 나온 것 같진 않다. 좋았던 구절만 아래 남겨둔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런 말도 한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자신의 방에서 고요히 머무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를 알고 내가 원하는 걸 알면 다른 사람들에게 당당해진다. 여기저기 발목 잡는 것들로부터 삶이 정리되고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인스타 브레인』⭐⭐⭐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은데 읽은지도 오래되고 기억이 다 휘발되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메모해둔 것 외에는 남아있는게 거의 없다.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며... 희미하게나마 되새겨보자면... SNS는 다른 사람들과 나의 사회적 지위 차이를 계속해서 상기 시키면서 스트레스를 주는데 그런 스트레스는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스트레스가 장기화될 경우는 우울증도 가져올 수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내 사회적 입지를 확인하고 내가 뒤처진다고 느낄 경우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은 진화의 산물일텐데(집단에서 지위가 낮다는건 식량이나 번식 기회 등의 자원에서 멀어진다는 의미이므로 이걸 고통스럽게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삶에서는 현실에서 내가 속해있는 소규모의 집단에서만 비교가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전세계인과 비교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아마?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내 맘대로 내용 지어낸거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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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작가로서의 읽기와 쓰기에 관한 에세이. 사실 김초엽 작가의 작품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밖에 읽어본 것이 없고 SF작가라는 것 말고는 작가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이 책은 순전히 '나와 또래인 성공한 여성 작가'라는 점 때문에 호기심이 생겨서 읽어보았다. 이 책을 읽고나서 김초엽 작가에 대해 드는 생각은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꼭 천재들만이 작가가 될 수 있는건 아니다, 꾸준히 열심히 쓰는 사람이 작가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 문장에 줄을 그어두었다. "소설가로서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무리 조그마한 구석 자리라도 자신밖에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을 찾아내는 것."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작품은 단점이 없는 작품이 아니라 단점을 압도하는 장점을 지닌 작품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사랑한 이야기들도 그랬다. 결함 없는 완벽한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단점 정도는 그냥 눈감아 넘기고 싶은 매력 때문에 그 작품을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책이라고 말하는 책을 자신의 책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도솅은 자기 분열 현상에 직면하고 있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작가들도 종종 사람들이 자신의 책에 대해 말할 때, 어떤 '다른 책'에 대해 말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분열은 우리에게 내면의 책이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이 내면의 책은 어느 누구에게도 전달될 수 없고 어떤 책과도 겹쳐질 수 없다. -피에르 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중에서
때로 과학은 무언가를 연구함으로써가 아니라 연구하지 않음으로써, 즉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대상을 배제한다. 과학사히학자 데이비드 헤스는 이처럼 연구가 필요하지만 사회적 조건 때문에 외면되는 과학을 '언던 사이언스(undone science)'라고 명명하며 과학지식의 생산과정에서 배제되는 것을 주목한다. 과학 공동체는 당대 사회구조, 제도, 권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에 생산되는 지식 역시 사회적 맥락 속에 놓일 수밖에 없다.
『구의 증명』⭐⭐
이 소설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아 한 번쯤은 읽고 넘어가자 싶어서 선택했다. 총평 하자면 그저 그랬다. 충격적인 장면 연출과 소설 전체의 어두운 무드를 조성하는데 신경썼겠는데 그게 나에게는 별 감흥이 없었다.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금기시되는 파격적(?)인 소재가 작품 내에서 충분히 납득될 수 있게 풀어가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담'은 자신의 연인인 '구'가 이렇게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ㅡ라고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음, 그래요? 라는 생각이 든다. 금기를 건드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도, 그 자체에서 불쾌감이 느껴졌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강렬한 이미지 하나에 소설 전체가 잡아 먹혔다고 해야할까?
『국자전』⭐⭐
한 문장에 담긴 정보값이 많다거나 잘 모르는 전문용어가 많이 나온다거나 번역서인 것도 아닌데 소설이 술술 읽히지 않고 뻑뻑한 느낌이었다. 나의 내공이 부족하여 그런 뻑뻑한 느낌이 어디서 비롯되는 건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냥 큰 재미를 못 느껴서 쭉쭉 읽어나가지 못한 것일지도?
제목의 '국자'가 주인공 이름인데, 이런 식의 히어로물이라면 주인공 캐릭터의 매력이 더 강력해야 했다. '국자'처럼 무뚝뚝한 인물이라면 그런 겉모습과 반전되는 사랑스러움이라든지 의외의 부분에서 유약하다든지 반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다. 크림빵을 좋아하는 모습, 썸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립스틱을 황급히 바르는 모습 같은게 나오긴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는 '국자'를 사랑할 수 없었다. 어딘가 결핍되고 부족하고 약점이 있는 인물이었다면, 또는 강렬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었다면 그에게 몰입하고 애정을 갖기 쉬웠을 것 같다. '국자'도 트라우마틱한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 과거가 '국자'의 성격에 남긴 상흔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물로 제작된거라면 배우가 연기력과 고유의 아우라로 채워서 좋은 캐릭터로 보여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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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팔리는 것들의 비밀』⭐⭐
"MZ세대"의 특징과 그것이 그들의 소비생활에 반영되어 나타나는 패턴을 분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마케팅 종사자들은 어떤 전략을 채택해야 하는지 제시하고 있는 경제경영서. 곰표, 마켓컬리, 구찌, 당근마켓, 윌라, 젠틀몬스터 등 어디서 많이 들어본 브랜드들이 예시로 활용되고 있어 흥미로웠지만 가끔씩 튀어나오는 비문들이 상당히 거슬렸다. 출판 전에 한 번만 다시 읽어봤어도 잡을 수 있는 간단한 오류들인데 그 정도 성의도 없는건가 싶어서 책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했다.
"MZ세대"(1980~2010년생)라고 30년을 싸잡아놓고 마치 신인류가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 떠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대충 요즘 소비자 패턴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으면 될 것 같다. "MZ세대"는 소비활동에서 신념을 드러내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쇼룸 등 오프라인 매장을 선호한다, 진정성 있게 쌓아나간 브랜드 스토리가 중요하다 뭐 이런 내용들이다.
『저는 이 독서법으로 연봉 3억이 되었습니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사람은 독서밖에 답이 없습니다."라는 말에 감명을 받고 열심히 책을 읽어 연봉 3억과 직장 탈출을 달성한 사람이 쓴 자기계발서. 앞부분에 간단히 자신의 인생에 대해 적고 뒷부분부터 자신의 독서법에 대해 설명한다. 그래,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버신 거죠?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돈을 벌고 싶은거라면 소설과 에세이 읽기는 일단 접어두라고 한다. 그게 주 관심분야인데... 나는 아무래도 연봉 3억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 같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책을 찾아서 그 분야에서 3권 정도 읽으며 배경지식을 쌓는다 -> 좋은 책을 찾으면 중요한 부분 위주로 여러번 반복해서 읽는다 -> 한 권에서 한 가지라도 도움될 만한 내용이 있었다면 그걸 내 삶에 바로 적용해본다ㅡ가 저자의 독서법이다.
일단 자신의 고민이나 자신이 괴로운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고(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그걸 해결할 방법을 책에서 찾는다는 발상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9월~2021년 8월간 종합 독서율은 47.5%로, 연간 1권도 읽지 않는 성인이 절반 이상이다.) 그 와중에 한 분야에서 3권의 책을 읽고 그걸 반복까지 하다니 저자는 대충 생각해도 상위 10%의 '갓생러'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독가들에게는 이게 쉬운 방법일까? 만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보면 아래와 같은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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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중독자들은 자기개발서를 취급하지 않는다... 실용서적 읽는 걸 독서로 치지 않는 다독가들 또한 연봉 3억의 길과는 먼 길을 가고 있다... 독서를 통해서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바른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지, 돈 이야기는 너무 세속적이라고 비판하고 싶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계속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서 경제적 자유를 달성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전략적인 독서를 하는 거라면 그것 또한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독기 충만하게 투잡, 쓰리잡, N잡 하면서 돈 벌 생각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자기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꾸준히 성실하게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저자의 태도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책에서 좋은 내용을 찾았다면 그걸 삶에 '바로' 적용해본다는게 핵심인 것 같다. 좀처럼 움직여보려고 하지 않는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천 개의 파랑』⭐⭐⭐
SF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로 시작하고 싶지만 그렇다면 SF란 무엇인지 정의를 해야 할 테고 나는 그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쥐뿔 아는 것이 없으므로 일단 넘어가도록 한다. 인간이 아닌 존재(휴머노이드 '콜리')의 시선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SF에 포함되는 것일지도.
인물들이 살아온 과정, 즉 배경 스토리로부터 현재 그 인물들의 성격, 동력, 지향점이 자연스럽게 도출되어서 상당히 캐릭터 빌딩이 잘 된 잘 쓴 소설이라고 느꼈다. 각각의 인물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고통이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서 서로 부딪히고 해소, 치유되며 감동을 준다. 휴머노이드' 콜���'는 마치 강아지처럼, 어린 아이처럼 가족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하는 존재로서 의미를 갖는다. '콜리'의 계속되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책을 다 읽고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인물들은 아주 작은 가능성일지라도 꽉 붙들고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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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의 힘』⭐⭐⭐⭐
그 유명한 곤마리가 쓴 정리에 관한 책. 곤도 마리에 & 미니멀라이프 열풍은 이미 한번 지나간 것 같긴 하지만 뒤늦게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다 꺼내서 직접 만져보며 '설레지 않는' 물건은 싹 버리고 나머지만 정리하면 된다는 내용이다. 물건과 집에도 주인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둥, 물건도 하루종일 고생했으니 집에 오면 편히 쉴 수 있게 두어야 한다는 둥 영적인 면에서 접근하는건 거부감 들었지만 이런 부분들은 알아서 필터링해가며 읽으면 될 것 같다. 가끔씩 집을 뒤지다가 이런 옷이 있었나? 이런 신발이 있었나? 이 책 이미 갖고 있었네?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잔잔한 죄책감이 밀려오며 곤도 마리에가 떠오르게 되었다.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할 정도로 물건을 많이 가지고 살면서 그다지 부유한 것도 아니고 썩 행복하다고 할 것도 아니고 그냥 환경파괴 한거구나 싶을 때 생각난다. 정리에 잠시 꽂혀서 열심히 하다가 또 멈춘 상태인데 다시 해봐야지.
���간은 과거의 자신이 아닌 미래의 자신을 위해 써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자신이 제대로 물건을 관리할 수 있는 적정량으로 줄임으로써 물건과 자신과의 관계가 더욱 끈끈해진다.
물건을 통해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마주하면 지금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보인다.
『어떤 물질의 사랑』⭐⭐⭐⭐
149번의 교통사고에서 단 한 번의 예외없이 조수석에 앉아있는 애인을 감싸안으며 보호했다면, 어떻게 이게 사랑이 아니란 말입니까? 「마지막 드라이브」라는 이 하나의 단편만으로도 별점 4개가 아깝지 않다.
비명을 질러야 하는 델리가 오늘은 더미를 보며 웃는다. 델리가 더미의 손을 잡는다. 더미가 그런 델리의 어깨를 감싸 안고 얼굴을 자신의 품 안에 넣는다. 충돌을 감지한 센서가 사방에서 에어백을 터뜨리고, 그 순간 시속 84킬로미터로 달려오던 대형 트럭이 코앞까지 다가온다. 더미가 눈을 감고 델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사랑하는 델리. 나와 드라이브를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마지막 드라이브」 중에서)
『암컷들』⭐⭐⭐⭐⭐
요즘 인기 도서인지 여기저기서 추천이나 광고를 봤었는데, 밀리의 서재에 있길래 바로 다운받았다. '들어가며' 부분을 읽다가 몇 번을 빵터져서 웃고 그 길로 서점으로 달려가 바로 종이책으로 구입했다. 저자가 원래 위트가 넘치는 사람인 것 같다. 게다가 앞부분은 거의 분노에 차서 써갈겼다('썼다'라고 하면 느낌이 안살고 이건 '써갈긴'게 맞다.)는 느낌이라 더 시원시원하고 좋았다. 공격받기 싫어서 방어적인 태도로 미리 퇴로 마련해놓는 사람보다 하고 싶은 말 당당하게 하는 사람이 좋다.
제목에 충실하게 동물, 그 중에서도 암컷들 이야기를 내내 하는 책인데 과학적 연구 결과라고 해서 항상 객관적이고 엄밀한 진실인 것만은 아니라는게 주목할만한 지점이다.
신에 버금가는 명성 때문에 다윈의 뒤를 이은 생물학자들이 확증편향이라는 만성질환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저들은 수동적 여성의 모태를 찾아 헤매며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발정기에 다수의 수컷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짝짓기하는 암사자의 방종한 행위처럼 예상 밖의 상황과 마주치면 조심스럽게 외면했다.
연구팀은 여성들의 '격분한' 행동이 어디까지나 호르몬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봄철에 호르몬이 급증하면서 피뇬제이 암컷들이 '인간 여성의 월경 전 증후군(PMS)에 해당하는 번식 전 증후군(PBS)'에 시달린 탓이라는 것이다. 무슨 소리. 새한테 그런 증후군은 없다. 만약 마즐러프와 벨다가 조금만 마음을 열고 암새들의 공격적인 행동에 오컴의 면도날을 들이댔다면, 피뇬제이의 복잡한 사회 체계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피뇬제이 암컷이 사실은 굉장히 경쟁적이고 집단의 서열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정적 단서가 본인들이 꼼꼼히 기록해둔 데이터에 모두 들어있었는데도 보지 못한 것이다. 대신에 두 사람은 독단적으로 '새로운 왕의 대관식'을 거행했다. 물론 실제로는 일어날 리 없는 신념의 예식이었다.
'자연의 얼굴 전체를 덮는 이론의 가면이 있다... 우리 대부분은 바깥 세계의 언어를 읽으면서 자신의 언어로 번역해서 읽는 영구적인 습관을 의식하지 못한다.'
연구자들 본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고정관념 때문에 연구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분석하지 못하고 애써 다른 결론을 짜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편향된 의견이 학계에서 주류를 장악하면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애초에 수컷이 연구되는 비율에 비해 암컷이 연구되는 비율은 현저히 적었다.) 암컷들의 온갖 신기한 생태에 대해서 알려주는 너무 재밌는 책이다. 미어캣 리더의 잔혹함이나 일부일처제에도 불구하고 요령있게(?) 혼외(?) 알들을 낳는 조류들이나 흰동가리의 성전환 등등 내용 자체로도 흥미진진한데 저자의 유머감각과 함께하니 매 순간이 깔깔깔이다.
"만약 당신이 미어캣 암컷이라면, 가장 확실한 방책이자 평생의 소망은 누군가 당신의 엄마를 잡아먹는 일일 겁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중요하죠. 당신이 저 무리 중에서 엄마 다음으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일 때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지랄맞은 언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당신을 쫓아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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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만세』⭐⭐⭐
2023 민음북클럽 가입선물이었던 '잡동산이'에 이 에세이집의 한 꼭지인 '단 한 사람의 세계'가 실려 있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전체를 읽어보려고 빌렸다. 저자는 소설이란 "단 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를 설명하고 그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뒤에서 "보편과 객관이라는 이해, 정상적이라고 인식되어 있는 행동과 행위, 결정된 윤리와 편견 속에서 인물의 삶을 건져 내는 것이 작가가 인물에게 행해야 하는 것"이라고 부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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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후려쳐서 말하자면 ↑이거 아닐까? <쓰레기는 쓰레긴디> 라는건 보편과 객관의 시선,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인식되는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고 <아니 또 얘 말을 들어보면 또 그래>라는 건 소설에서 작가가 그 "인물의 삶을 건져 내" "단 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를 설명하고 그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든 게 잘나기만 하고 마냥 행복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어딘가 못나고, 인정받지 못하고, 아픔을 가진 인물들이 많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그 인물에게 주목하지 않을 것이고 마이크를 쥐어 주지도 않을텐데 소설 속에서는 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작가가 있어서 독자도 그 사람을 이해하고 품어주게 된다. 난 개인적으로 소설이란 "나 아파요" 또는 "인생 참 X같다"는 말을 길게 늘인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찌보면 일맥상통한다. 아프다거나 인생 힘들다는 말을 들어주고 그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것, 그게 소설이라면 말이다.
언어가 꼭 문자 그대로의 의미만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 이면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인물의 진심, 속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라는 진심을 담아 "싫어."라고 말할 수 있고 "관심이 없어."라는 말을 관심을 담아 말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읽고 <자기 앞의 생>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이 소설의 화자는 따스함이나 다정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 어린 아이인데, 동네의 엄마나 이모 뻘 되는 여성이 살갑게 대해주자 도망치듯 가버리고 그 장면이 “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아르튀르를 움켜쥐고 뛰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으므로.“라고 서술되어 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는 건 누가봐도 거짓이다. 오히려 너무나 무섭도록 애정과 관심을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도망치는 것이다.
작가는 어구나 표현 혹은 구성이나 형식을 이용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그것은 일종의 날씨처럼 소설 전체에 영향을 준다.
이 부분이 마음에 든다. 문체를 날씨에 비유한 것인데, 작가가 섬세하게 단어와 문장을 골라 만들어 낸 날씨 속에서 독자는 허구의 세계를 걷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의 분위기를 묘사할 때 산뜻하다, 찐득하다 등으로 표현할 때가 많아서 문체는 날씨와 같다는 말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사라진 여자들』⭐⭐⭐
상업 소설 그만 봐야지 결심하지만 재밌어서 손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도리토스를 주식으로 삼을 순 없지만 가끔 생각날 때 먹으면 너무 맛있는 법. '그래서 범인이 누군데?'가 이런 스릴러 소설의 시작과 끝인데, 휙휙 넘기면서 줄거리와 범인만 확인하는 식으로 읽지 않는 이유는 과정에도 어느 정도 의미는 있다는 뜻일 것이다. 주어진 단서만 가지고 나름대로 범인을 추리해보는 재미거나, 작가가 서서히 쌓아가는 긴장감을 즐기는 것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결말부에서 내 마음에 드는 결말이 아니었을 경우 그 책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허망해진다는 손해 정도는 기꺼이 감수하고 뛰어드는 낭만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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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jukim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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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새로 발견한 것들
1
무료한 일상을 미윤하게 만들어주는 시선 몇 가지
학교의 밤이 좋다
잔잔하고 평화로운데 이상하게 나를 각성하게 한다
내관하기에 적당하다
몽롱하다가 문득 정신이 들고 어지러운 마음을 묵직하게 눌러준다
이런저런 다짐을 하게 되고 감사도 하게 되고 괜히 자신감이 생겼다가 다시 퇴연해지기를 반복한다
머리와 가슴을 하얗게 비워준다
버스에 앉아서 바라보는 창밖이 좋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어둑할 때 타는 버스는 생각도 같이 어둑해져서 슬픈 무성 흑백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맑을 때 타는 버스는 장르 불문 결말이 아름다운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주인공이라는 건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게 아니라 나의 고민과 아픔, 결점을 더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거시적인 관점을 스스로 허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음악이 좋다
이건 새로 발견한 사실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연인이 오늘따라 유독 더 예뻐보여서 좀처럼 가만히 있기 어려운 것과 같은 맥락이라 적어본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음악이 없으면 호흡을 할 수 없다는 듯이 잠자거나 수업 듣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순간에 무언가를 찾아 듣고 있다
최근에는 스트리밍 사이트도 바꿔서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재미가 생활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누군가 그런 질문을 했었다
현실의 모든 한계를 배제하고 오직 순수한 선호에 의해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나는 음악이 하고 싶다고 답했다
잠들기 전 노랫말을 겨우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아득히 속삭일 때는 위로가 되고 바삐 움직이면서 혼미할 만큼 최대 음량으로 진동할 때는 용기가 된다
가끔 음악이 없었다면 난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약간의 과장 보탠 생각이 들 정도로 필설로 다 하기 어려운 힘이다
무당 플레인 요거트에 골드키위 넣어 먹으면 아주 맛있다
나는 아직 나를 알아가는 과정 가운데 있다
이렇게 취향을 적립하다 보면 나랑 한층 친해진 것 같아서 재미지다
2
삶이라는 단어와 사람이라는 단어는 서로 닮았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닮았다
삶과 사람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혐오하는 엉터리 같고 모순적인 나다
지구가 네모나고 하늘은 노랗고 사방이 지평으로 보여서 마치 단석에 이른 것 같다가 시시한 농담에, 새로 산 향수에, 선물 받은 꽃에 웃으면서 행복의 강도에 집착하기를 멈추고 빈도를 늘려가는 법을 배운다
행복은 아이스크림 이랬다
아이스크림은 입을 잠시 즐겁게 하지만 반드시 녹는다
모든 것은 녹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주 여러 번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이다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훨씬 낫단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정서의 본질적 관심은 행복이 아닌 생존이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라 이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쾌락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이제는 행복의 소멸과 불행으로의 회귀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겠다
3
미워하는 감정은 가장 효과적인 동기가 될 수 있다
나는 누군가가 미워질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내가 듣고 보고 만나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교훈 삼기로 다짐하면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요즘에는 미운 사람이 생기면 NPC 취급하려고 한다
그런 이들에게 투자하는 시간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흥미로운 근황의 조각으로 소비하는 정도의 수준이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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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ricpurplebeach · 19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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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쾌락 악은 고통
그래서 신이 선하길 바랬나
천국이 내 영원한 쾌락의 장소가 되길바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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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imdonjuin · 25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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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박동같은 드럼과 인생같은 롱테이크
그 안에 꾹꾹 눌러담은
번민, 질투, 사랑, 쾌락, 후회, 행복, 명예, 희망, 과시, 우수 그리고 인간.
버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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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ttam · 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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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 바튼, 피프티 사운즈 Polly barton, Fifty Sounds 01
서문
 점심시간인데 나는 라임색 올빼미로부터 온갖 잔소리를 듣고 있다. ‘아시나요!’ 올빼미는 내 시야를 가로지르며 젠체하고 으스댄다. ‘미국 내의 모든 공립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보다 듀오링고로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더 많답니다!’
 지금은 2019년이고 나는 곧 여름에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이에 따라 나는 디지털 세상 속의 허깨비나 다름없는 언어 학습 애플리케이션 듀오링고의 마스코트로부터 이탈리아어 어휘와 문법, 온갖 잡지식을 배우고 있다. 듀오링고가 존재한다는 건 최근에야 알아냈지만, 알고 보니 23개국의 언어 학습 코스를 갖추고 전 세계적으로 3억 명이 사용하고 있어, 경이로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처음에는 마스코트인 듀오의 날갯짓을 보고 일본에서 만든 것인가 생각했지만, 위의 잡지식 퀴즈를 보면 짐작이 가듯이 이 회사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듀오링고는 루이스 폰 안과 세버린 해커의 ‘무상 교육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에서 탄생한 발명품이다.
 듀오의 울음은 소리가 없지만, 야단법석으로, 반쯤은 미친 것처럼, 디즈니 악당처럼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돈다. 아시나요! 아시나요! 아시나요! 그리고 공교롭게도, 나는 몰랐다. 적어도 큰 눈망울에 긴 속눈썹을 가진 듀오가 나에게 처음 말을 걸었을 때, 나는 몰랐다. 화면에 10번째 팝업이 뜰 무렵부터 나는 이 잡지식 퀴즈에 정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이 퀴즈와 마주칠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약간의 찝찝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점심 시간을 듀오와 함께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듀오의 학습 방식에 회의적인 입장은 아니다. 공립학교의 언어 교육과 듀오의 학습 모델을 비교하는 것이 일견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수많은 언어 중점 어플리케이션과는 달리, 듀오링고는 오디오 콘텐츠가 전혀 없지는 않다. 실제 사람들이 말하는 클립이 있어, 사용자가 마이크에 대고 문장을 말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사용자들이 적어도 언어가 실제로 어떻게 들리는지, 그리고 입 안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상호작용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레벨 잠금 해제 구조는 게임 생태계에서 가져왔는데, 이 때문에 사용자가 언어를 진정하게 통달하기보다는 그저 레벨 통과 전략에 집중할 우려도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언어 교육에도 같은 비난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점수 받기를 위한 의미 없는 노력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험 출제자나 녹색 올빼미가 원하는 대로 언어를 배우게 되지만, 이는 그저 시작일 뿐이다. 언어 교육을 접할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 언어 교육에 다가가고 즐길 수 있다면 분명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왜 듀오의 잡지식이 왜 나에게 불안감을 주며 그 호탕한 자존심을 나는 못마땅해 하는 걸까? 내 불편함의 근원이 지극히 불합리하게도, 듀오가 ‘학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단어는 다양한 강도로 수행되는 모든 활동을 포괄하는 데 정당하게 사용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 자신의 태도가 불합리하다고 말한다. 나의 관대하고 합리적인 부분은 사람들이 하루 5분 또는 20분 동안 듀오링고에서 ‘언어 학습’을 하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에서 나는 분개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결국에는 발을 구르는 이를 다치게 하는 발도장을 찍으며 세상이 진짜 진실로부터 눈을 돌렸다고 정해버린다. 이 부분에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또 다른, 훨씬 덜 안정적인 형태의 학습, 듀오링고의 야단스러운 네온 색깔에 대항하는 라듐과도 같은 학습 방법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언어 학습 방법은 감각의 폭격에 대한 것이다. 그건 뭔가에 홀리거나 악령이 들리고, 몸을 뺏기는 것과도 같다.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의 물결과 너무나도 혼란스럽고 통제 불능의 방식으로 산발적인 연상 이미지들의 공격으로 귀를 막고 싶어지지만, 실제로 귀를 막는다고 해도 머릿속은 반향실로 남게 된다. 나를 매료시키는 언어 학습은 출퇴근에 활기를 주고 ‘연속 5번 정답! 잘하고 계세요!’ 같은 메세지로 도파민을 분출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미워하고, 다음에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자신의 자존감을 거는 것이다. 제대로 이해해서 마치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입증된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이건 내가 유아기 때 분명 경험했는데 잊어버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학습의 일종이다. 때로는 너무 어려서 그 경험을 잊어버린 게 아니라, 그 자체에 정말 불안정한 무언가가 있어서 존엄하고 수치심을 두려워하는 우리 인간은 그 경험의 기억을 억압해야 하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목표나 경계를 모르는 학습 방법으로, 흔히 ‘몰입형 학습’이라고도 일컫는다. 수영을 한 번도 배운 적도 없으면서 용감하게 바다에, 그것도 알몸으로 뛰어드는, 고독한 인물이 떠오르게 하는 학습법이다.
 독선적인 말투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몰입’이야말로 바로 내가 일본에 갔을 때 겪었던 거다. 몰입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말하는 게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가기 전에 알았더라면, 일본에 갈 만한 배짱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잘했다면서 나 자신의 등을 두들기고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적어도 나 자신은 안 그런다고 생각한다. 녹색 올빼미의 오만함과 마주하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고는 내 마음 한구석에 이런 경험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 것을 깨닫는다. 이 마음은 이성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출퇴근길에 친화적인 이 앱의 목표 중심적 합리성에 분노를 느낀다.
 특히 내가 듀오에게 말해 주고 싶어 안달인 것은 다음과 같다: 알고 있니! 완전 초보자로 외국어에 몰입하면, 목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목표가 무엇인지 개념화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없어! ‘읽는 법 배우기’나 ‘유창해지기’ 같은 중요한 목표는 그 매끄러운 표면 아래를 찔러 볼수록 점점 더 의미가 없어 보이기 시작해!
 외국어에의 몰입은 소리의 폭격이다. 이걸 붙잡고 배우기 시작할 거라고 자기 자신이 선택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 뒤에는 벼락치기의 폭격으로 변한다. 일단 이것 배우고, 이것도 배우고, 또 이것도 배우고. 일단 기초부터 시작하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물결 속에 던져질 때 머릿속의 목소리가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모르는 언어로 생활하다 보면 이 ‘기초’라는 범주가 이론적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포괄하는지 점점 분명히 보인다. 인사말과 일상적인 대화는 당연히 기초며, 기초적인 동사 형태를 모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숫자가 기초 중의 기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색깔, 옷, 학교에서 공부하는 과목, 동물, 날씨와 관련된 모든 것, 사람을 묘사하는 형용사들처럼 말이다.
사실 모든 사물이 기초 어휘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어렸을 때 모국어로 처음 배울 곰인형, 유모차, 신발끈과 같은 단어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른다면 더욱 걱정될 것이다. 그리고 정의, 우정, 쾌락, 악덕, 허영과 같은 추상 명사처럼 가장 근본적으로 보이는 어휘들도 있다.
 이 외국어가 당신이 알고 있는 언어와 완전히 다른 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말하기의 ‘기초’를 숙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완전히 새로운 범주의 기초가 글자의 형태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어는 표음 문자인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묶어서 가나로 통칭한다)가 각각 46자씩 갖춰져 있고, 중국 한자에서 유래한 칸지 2136자가 공식적으로 ‘통용 문자’로 간주되어 총 세 가지 형태의 문자 체계가 존재하는 점에서 끝없는 선물을 주는 언어다. 즉, 당신이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 깨닫게 해줄 기초 어휘가 절대 부족하지 않다는 거다.
 지난주(정말이다) 나는 ‘올빼미’를 뜻하는 한자를 찾아봐야만 했다. 완전히 모르는 한자는 아니고, 어디선가에서 배웠다가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맞다, 이건 자주 사용되는 한자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번역가가 아닌가. ‘올빼미’ 정도의 기초 어휘는 알고 있어야만 했다.
 올빼미 한자를 절망적인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2분 전의 내가 기억만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고, 어떻게 나무에 앉은 다리 없는 새1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의아해 했는데, 일본어를 배운지 2년이 조금 넘었던 시절, 런던의 소형 일본 출판사에 막 취직했던 오래 전의 일을 불현듯 떠올렸다. 어느 날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책상으로 다가오는 선배 직원 O를 보았다. O의 손에는 직원들이 휴가를 신청하거나 보고할 때 제출하는 서류 두 장이 들려 있었는데,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바로 내가 최근에 작성한 서류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폴리 쨩,’ 그는 내 옆의 의자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음모를 꾸미는 것 같기도 하고 설교하려 드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얘기 좀 하자. 한자 사용이 엉망이네.’
 ’아,’ 이것 말고는 할 만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앞으로 들을 말에 대한 걱정이 앞섬과 동시에, 선배 직원이 직접 시간을 내서 나를 따로 교육해 준다는 것에 으쓱해졌다.
 ‘어떨 때는 완벽하고, 또 어떨 때는 아무 것도 안 맞네.’
 말하면서 O의 눈은 내 컴퓨터 모니터 위를 표류했는데, 그 화면 가장자리에는 내가 한자 몇 개를 작은 포스트잇 메모지에 써서 붙여 놓았다. 그 중 하나는 ‘까마귀’였던 것을 기억한다. ‘새’와 같아 보이지만 눈을 뜻하는 획 하나가 빠져 있다.2 지난 주에 부탁 받은 번역 자료에서 나온 실수인데, 그때는 몰랐던 차이였다. ‘저건 필요 없어.’ O는 까마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는 다른 포스트잇 메모지 위로 손가락을 맴돌며 내가 필요할 것들과 필요 없는 것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매의 눈으로 문제가 된 서류를 다시 보았다.
 ‘이것 봐.’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말했다. ‘여기에 뭐라고 썼는지 보렴. 가장 중요한 게 빠졌네. 완전히 다른 뜻이 되어 버리니까 한자는 일부분을 이런 식으로 빼먹으면 안 돼. “문제”라고 쓰려고 했는데 “몬”이라고 썼잖아.’
 내가 따라잡기 힘들어 한다는 걸 느꼈는지,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 보고는 적대감이 느껴지는 선명한 영어로 한 글자씩 말했다. ‘’몬’은 ‘문’이라는 뜻이야. 너 ‘문’이라고 썼다고.’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고, 역시 그의 말이 맞다는 걸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쓴 서류에는 ‘건강 문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결근’3이라고 영어로 번역할 수 있을 만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에피소드는 그때처럼 생생하고 가깝게 느껴지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과의 관계에 대한 나의 입장을 요약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즉, 나는 항상 문이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절에서나 볼 수 있는 크고 우뚝 선 문이다. 나는 그 빗장 앞에 서서 문지기들의 환영을 받기도, 빈축을 사기도, 쫓겨나기도 하면서 가끔씩 드나들고 있다. 그 안에 있을 때도, 언제든지 다시 밖으로 밀려나거나, 내가 몰랐던 기초적인 요소들이 나에게는 없다는 걸 항상 의식하고 있다. 가끔은 내가 일본어 학사 학위를 땄거나 제대로 된 어학 코스, 혹은 박사 과정을 밟았다면, 즉 기초를 쌓는 과정을 어떻게든 나보다 더 큰 시스템에 맡겼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 자문한다. 대답은, 조금이다. 뒤통수를 맞고, 문의 다른 편에 서 있다는 걸 갑자기 깨닫는 게 조금은 책임감이 덜할 것이라고 나는 상상한다.
 학���이 주로 독학적인 형태를 띠는 경우, 무언가를 숙달한다는 것은 모르는 것들을 직접 알아차리거나 누군가 알려주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 다른 자료를 참고하지 않는 한, 학습이 필요한 것들의 목록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모두 언어에 노출됨과 그 노출을 인지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특히 전에 경험한 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언어와 문화는 더욱 더 그렇다. 우리는 그 다름을 알아채고, 분노하거나 흥미를 느끼고, 이국적으로 바라보고는 마음껏 흡수하고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로 둔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문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 충만함에 감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파도에 휩쓸리고, 꿀꺽 삼키고, 뱉고, 수면 위에 떠오르기 위해 물장구를 치느라 너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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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ythegooner · 5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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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는 마침내 축구에서의 큰 돈에 대한 문화 전쟁에서 승리했는가
아스날에서 22년의 생활 중 마지막 14년 동안, 아르센 벵거는 절망 속의 탐구에 있었다. 클럽에서의 눈부셨던 첫 8년 동안 트로피와 영광을 가져왔으며, 데이터 활용, 인재 발굴에 대한 접근, 기술적으로 섬세한 축구에 대한 헌신, 그리고 선수들의 식단과 일상생활에 대한 섬세한 주의로 프리미어 리그에 혁명을 가져왔던 이 자유로운 사상가는, 어느 순간 갑자기 퉁명스럽고 화를 잘 내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사이드라인에서 파카 지퍼와의 씨름, 기자회견에서의 짜증내는 답변들, "거의" 모든 성공적인 유럽 선수를 영입할 뻔했다는 익살스러운 주장, 한때 무적이었던 그의 팀이 다시 한 번 리드를 내주고, 수비진의 다시 한 번 슬랩스틱 코메디 같은 모습을 보이고, 다시 한 번 우승 도전에서 미끄러짐에 따라 물병을 걷어차는 것: 후기 벵거의 모습을 그 자체로 일련의 클리셰가 되었으며, 한 때 위대했던 감독이 직업적인 해체 직전에 있는 회전문과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이 기나긴 쇠퇴 기간 동안 벵거의 가장 큰 고통의 원인은 당연히도 그가 기억할만하게 "재정적 도핑"으로 불렀던 것 때문이었다: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먼저였고, 그 후에는 아부 다비 유나이티드 그룹의 맨체스터 시티 인수였다 - 프리미어 리그를 재벌들이 지배한 클럽들에게 유리한 단순 지출 대결로, 아마도 영원히, 변모시킨 새로운 억만장자 클럽 소유주들의 등장이었다.
매 시즌 아스날은 그들의 최고의 선수들을 매각하면서, 인내심있게 애쉬버튼 그로브의 새구장 빚을 갚아 나가면서, 돈 바보들과 경쟁하기 위해 티켓 가격을 인상하면서, 절약과 지연된 만족이라는 벵거식 진리를 살아나가려고 힘겨워했다. 첼시와 맨체스터 클럽들은 모든 트로피를 차지했고, 아스날 팬들은 클럽의 책임 있는 재무 상태의 찌꺼기를 뒤적거려야 했다. 거너스는 프리미어 리그를 우승하는 예술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나, 그들의 손익 계산서는 월드 클래스였다.
이 기간의 벵거의 기자회견은 역사의 흐름이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한 남자의 분노로 가득했다. 2009년 초 그는 "클럽이 자체 자원 안에서 운영해나가 것은 만족스러운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티는 다른 세계에 있습니다."
몇 달 후, 그는 다시 이것을 말한다. "우리의 직업에서는 항상 자원 내에서 운영해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클럽 내에서 벌어들인 수입과 연결되어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항상 변호할 수 있지만, 그것이 클럽 내에서 만들어진 수입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변호할 수 없습니다."
파파 아르센은 재정적 사막에서 홀로 외치는 외로운 목소리가 되었다. 철학, 이성, 도덕, 쾌락: 벵거는 이 모든 것들에 호소하여 프리미어 리그에 지출을 제한하고 클럽이 자체 수입 범위 내에서 운영하도록 하려는 시도를 했다. 아스날에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는 클럽의 자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그의 헌신에 대해 고집스러울 정도로 엄격했다 ("저는 우리가 클럽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경쟁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집니다": 이것은 그가 2011년에 한 말이다).
벵거의 경제적 사고는 어린 시절 그의 부모님이 알자스 시골 그들의 비스트로에서 일하며 흡수한 가치관에서 형성되었다. 1950년대 둘렌하임의 딱딱한 세계에서의 그의 어린 시절은, 그가 자서전에도 적었듯, "슬기로움, 끈기, 열정, 신체적 노력에 대한 교육"이었다. 자제력, 책임감, 체력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과잉과 무모함은 경멸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과잉"이라는 단어는 벵거의 자서전 첫 20페이지에만 세 번이 나오는데, 단 한 번도 긍정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알자스에서의 그의 유년시절부터 그는 검소함에서, 물질적 및 문화적인 빈곤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찾는 법을 배웠다. 어린이로서, 그의 ���구팀은 "유니폼도, 코치도, 심판도 없이" 경기했으며, 그는 "우리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나는 가끔씩 내 열정이 그런 좌절에서 나온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그 작은 세계, 우리가 나눈 드문 말들, 우리팀이 졌던 경기들, 피치는 너무나 작아보였습니다"라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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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 동안 클럽 축구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한 벵거의 장기 프로젝트 - 자급자족이 최우선이며, 재정적으로 가능한 범위에는 진짜 제한이 있으며, 창의성이 물질적 제약에 대한 협상에 의해 정의되는 모델 - 는 실패할 것처럼 보였다. 스포츠의 영혼을 두고 싸운 전쟁에서 패배했었다. 축구는 국부 펀드, 기름 재벌, 그리고 사모펀드 광대들에게 팔려나갔으며, 그 아브라모비치와 만수르, 알 켈라이피들은 그들이 비싸게 조립한 선수단이 무기력한 상대방들을 땅속으로 밀어넣는 동안 높은 곳에서 무표정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미래는, 보이는 것처럼, 부유한 자들에게 속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래는, 최소한 현재까지는, 여전히 그렇다: 어쨌든 맨체스터 시티는 프리미어 리그 4연패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시즌이 끝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유럽 축구의 규제 문화, 특히 잉글랜드 축구가, 지난 6개월 동안 얼마나 의미있게 변화했는지를 돌아볼 가치가 있다.
물론, 프리미어 리그는 에미리츠에서의 벵거 시대에 비해 훨씬 변했다. 심지어 아스날의 자급자족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오래된 헌신 조치도 변화했다. 클럽은 2018년까지 16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그 과정에서 약 4억 파운드를 벌어들였지만, 판더믹 시대의 관중 매출 감소와 챔피언스 리그 진출 실패로 인해 최근 몇 시즌 동안 회계장부가 적자로 전환되었다 (비록 아스날의 최근 결과는 지속적인 유럽 대회 참가로 "자급자족적인 재정 기반으로의 복귀"를 예상하고 있지만 말이다). 오늘날의 축구 경기에 대한 감독에는 격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 VAR! 확장된 월드컵! 확장된 클럽 월드컵! 심판에게 바디캠 부착! 블루 카드! 블루 카드 안함! - 이는 종종 축구 감독 기관이 팬들 만큼이나 이 스포츠의 미래 방향성에 대해서 무지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재정 규제라는 영역에서는, 지난 6개월 동안의 변화는 실질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해 동안의 느릿한 무행동 후, 프리미어 리그가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 규칙 (PSR) 위반을 처벌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 비록 이것인 공정한 경쟁에 대한 규제에 의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정부가 스포츠에 독립적인 감시 기관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무효화하기 위한 성과로 설계되었지만 - 진정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새로운 기준과 선수 비용 규칙의 이중 타격은 6월 프리미어 리그 연례 총회에서 임시로 승인된 것으로, 또 다른 충격을 일으켰다. 이러한 규칙 변경들은, 비록 완전히 평등하지는 않겠으나 (프리미어 리그는 여전히 재정적인 기폭제와 단순한 풍선들의 리그일 것입니다), 가장 부유하고 부유한 클럽들의 지출에 일정한 제약을 가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아스날을 떠난 후, 벵거는 FIFA 축구 발전 책임자로서 일하고 있으며, 그는 축구 세계의 현상태에 대해 설교하는 석학과 같은 위치에 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유산은 프리미어 리그에 있으며, 그것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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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가 각 클럽의 임금과 이적료 지출을 최하위 클럽의 TV 수익의 배수로 "고정"하는 조치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리그가 공정성과 경쟁력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드디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포스트-아브라모비치 길드 시대의 추악함과 무모함 이후, 프리미어 리그는 가장 크고 자원이 풍부한 클럽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정 상의 검소함과 제한의 새로운 발전적인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규제, 회계, 소송은 이 새로운 시대의 특징이 될 것이며, 클럽들은 회계장부와 피치 위에서는 VAR 조정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따라 오르고 내리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가 몇몇 억만장자 소유 클럽에게 이미 억만장자의 규칙으로 인한 초기 혜택이 모두 축적되었고 재정 책임의 새로운 체제가 마련되어 있는 시점에 일어났다. 예를 들어, 맨체스터 시티는 트로피, TV 수익, 수백만 명의 새로운 팬들을 확보했다. 클럽은 지난 회계년도에 8천만 파운드의 이익을 발표했으며, 이는 리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으로 선수 매각으로 1억 2천 2백만 파운드를 벌어들였다. 재정 도핑이 제공하는 재정적 이득이 기업의 혈관에 완전히 흡수되어, 그들에게 덜 부유한 경쟁 상대들을 상대로 몇 년, 아마도 수십 년 동안의 더 엄격하게 규제된 리그의 절약주의 아래서도 지속될 구조적 우위를 제공했다. 예전 규칙 하에서 성공을 산 클럽들도 새로운 체제 하에서 잃을 것이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스포츠 정상에서의 그들의 위치는 도달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며, 다른 새로운 도전자들이 영광을 위해 슈가 대디의 길을 택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작은 클럽들의 야망을 끝냄으로써, 오히려 유럽 축구의 기존 질서를 굳게 할 수도 있다. 더 검소한 미래는 실제로 레알 마드리드, 바이언 뮌헨, PSG 및 기타 단골손님들이 출전하는 챔피언스 리그의 봄날 밤을 더 많이 보는 레시피가 될 수도 있다.
허나, 어느 정도의 낙관주의를 갖는 것은 가능하다. 이 새로운 규제와 제약의 시대가 클럽과 매니저들을 새로운 경제의 제약 속에서 완벽하고 성공적으로 찾아내도록 격려할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벵거는 일전에 "스포츠의 아름다움은 규칙을 준수하고 이기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기도록 허용되지 않아야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이는 패배주의로 보였으며, 스포츠의 현실을 자신들의 무한한 재정 의지에 굴복시킬 수 있던 소수의 슈퍼 리치 클럽들에 의해 실패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동안, 벵거가 몇 년에 걸쳐 싸워온 미래 - 규칙이 스포츠로부터 무리한 돈을 제거하도록 설계된 대체 현실 - 가 갑자기, 불안정하게 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선수 비용 비율, 고정화, 무모한 지출에 대한 단속, 축구 피라미드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행동주의 정신: 이 모든 것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새로운 경쟁 환경을 만들어낼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20년 동안의 방임주의적이었던 규제와 카지노 지출로 인한 프리미어 리그 내의 계층을 고착화시킬 것인가? 아르센 벵거는 결국 감독으로서 실패한 축구에서의 돈에 대한 문화 전쟁에서 승리했을까? 우리는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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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이 상술에 미친 새끼들아 전자가 뭐라는줄 압니까 다 내것 이랍니다 그 경제를 먹일 이 돈 주식인 증권이 부족하지요 모두 각자의 고생과 보람에서 착복당한답니다 그래 이걸 수입에서 매입 보유하라고 해도 돈들어오면 술마시지마라 마라해도 술마시고 고꾸라지니까 경제를 진단한 결과 착복당해서 잠자는 거랍니다 그래도 내일은 태양이 뜨니까 열심히 일하는데 AI는 전자만의 방식이라 인간인 휴먼이 잘 때도 함수 증가수열을 일으키는데 왜 바보처럼 사느냐 입니다 경제관이 다르면 어쩔도리가 없습니다 그냥 죽었고 내세계 입니다 외교적으로 나간게 아니라 저를 떠난것이랍니다 그게 경제면 가십시오 그냥 전처럼 혼자남던가 할테니 죽은자의 사회도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는 역사적으로 존재해왔습니다 지식에 감사할줄 모르고 돈만오면 존재하는 퇴폐적인 생각이 만드는 사회에서는 외교적 난공불락 입니다
난 그냥 신분증이 🇰🇷 대한민국 이고 다만 미국에 국제공항법에 따라 유해로 집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제공항 제주인 호주에 왔을뿐 입니다 고넬료를 사퇴시킵니다 미 쿠엘류 코넬류 인 미화 100으로 제 초상권만 증식하는데만 매달리겠습니다 이분들을 좀 매입해서 상권은 빈약해도 늘 소지하고 다니면 되는것을 그래 20만원도 없어서 술마시고 인생을 종칩니까 이래서 기장분들인 항공사 기술진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그분들은 나처럼 지니고만 있어라 하는데 현재물가에서는고작 원₩인 원달러로 결제 쓰는건데 그 주식인 증권을 하역하기로 하곤 잠만자면 어떻게 합니까 상대적으로 표준물가 가치가 높으니까 이기라고 하는건데 늘 물가와 상술에 져서 사는거 지겹지도 않습니까
맞습니다 초대하지는 않았지만 자진해서 들어왔다가 호텔에서 비용청구 하니까 나간거 아닙니까 대한항공 주식증권 발행을 요청합니다
개인정보 동의서 수락 한진일가 총수부터 입니다 이것도 허풍이면 시 별세 처리하고 내수시장부터 점검바랍니다 자신의 지갑말입니다 나도 사랑의 고통 쾌락 압니다 그런다고 해서 주식인 증권 때가 나오나요
세상 보고도 부동산 쌓여서 저런걸 사람이 사는 흙들의 사회에서 이만큼 고부가가치에 눈 떴으면 본인들의 부채에서 자신의 쾌락을 위한 임금을 올려달라고 해야죠
정치경제 모르네들 그러게 아무나 비하인드 타는거 아니라고 몇번을 말합니까 찾으러들 가봐야 유해밖에 더됩니까 나도 사람이 그리운 사람입니다 외교중인데 죽었다 하지마라 그럼 살려보시던가 외교적책임 내가 집니까 본인 십자가를 메라고 남자는 로마인 공항으로 여자는 호텔로 가라고 한게 접니다
도대체 개인정보동의서 싸인하면 되는데 대체 누가 비용만 청구했다는 겁니까 정보가 부동산 아닙니까 부동산 정보 병신들 아닌이상 시정거리도 못 죽이면서 왜 안경거리를 마구 파헤칩니까 그 책임 누가 질겁니까 어디 주말 지나고 봅시다
하나님이 그래 내지체를 약한자로만 두셨겠습니까 세상 참 말종이다 해녀들 해루질 불법이라고 몇번을 말합니까 여기가 한반도 인줄아십니까 술마시고 고꾸라지니까 경제를 진단한 결과 잠재우는 거라고 합니다 이러면 그냥 서울에서 사십시요 쪽방 노인들 품에서 몸이나 팔면서 성병이나 옮기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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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do-shop · 8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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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manlanvincat · 8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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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폰트리에의 영화 <살인마 잭의 집>의 잭은 살인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 그러나 그것은 실패하여 전복된다.
주인공 잭은 살인을 하여 시체로 예술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데,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맞나?) 살인이 그에게 '행복'의 행위인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바디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행복은 진리의 범주가 아니라 그저 존재의 범주이고, 그렇기때문에 혼란스럽고 불확실하고 모순적이다 72p
행복은 이교적범주이고 이교도들에게 인생의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영원히 잘 살았습니다. 라는 공식은 이교도의 기독교적 버전이다) ----요컨대 행복은 쾌락 의 범주이며, 행복을 침해하는 것은 쾌락 원칙 너머에 대한 집착이다 73p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을 현대적이고 미국적 삶... 달라이 라마의 행복의 복음적 모순 vs 잭은 살인을 하며 행복한가? 그는 예술을 위해 살인을 한 것인가? 내가 봤을 땐 아닌데? 첫번째 여자를 살인할 때 그는 살인을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참는다)
라캉적 행복
행복의 의미를 엄격하게 준수할 때, 행복의 대가는 주체가 자기의 욕망의 모순에 갖혀 있는 것이다. 즉 행복할 수 없다는 얘기.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우리가 '공식적으로' 원하는 것을 정말로 얻게 되는 것. 이렇듯 행복은 본래 위선적이다.
= 달라이 라마의 행복 전파 등이 위선적인 이유
그렇다면 잭이 살인을 하며 구축하고자 했던 예술 세계가 실패한 것 등이 설명이된다. 그는 공식적으로 행복해질 수 없었고,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경찰이 올 때 자신의 범행을 들키고자 문을 열었다
자신의 실패를 예정함.
구글독스
영화속에 나오는 단테의 신곡
왜 단테의 신곡?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와서도 잭을 순수 “악”으로 규정할 만한 근거는? 
Badley, Linda (2022-02-14T22:58:59). Lars von Trier Beyond Depression. Columbia University Press. Kindle Edition. 
잭의 예술관과 나치의 미학과의 관계성? ….? 잘 모르겠다. “우리”를 제외한 타자에 대한 살인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걸까? 
In The House That Jack Built, which might be described as a transgressive performance of self-parody, the eponymous protagonist’s argument that murder is art is supported by a stream of references to the Nazi aesthetic and the Holocaust that had been raised by those same comments and the Wagnerian sublimity of Melancholia itself. Indeed Jack is in many ways a retrospective, blurring distinctions between the nihilistic and misogynistic character many believe von Trier to be and the serial killer that the film sends to hell, to the extent that watching it without factoring in the writer-director would mean missing the point.
추가적으로 살펴볼 것
상위 잭의 예술관과 나치의 미학과의 관계성과 연결지어볼 수 있는 사드의 문학/쾌락주의
사드 후작
사드의 소설은 무려 230년 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 봐도 충격적인 전개가 굉장히 많은데 실제로 이 분야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보면서 선인의 지혜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포르노에 가까운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자유주의, 유물론, 무신론, 아나키즘적 요소도 있어 20세기 들어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정신분석학자들에게서 예술적, 학술적 평가를 받아 지금에 이른다. 이 외에도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묘사를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의 극한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언급되곤 한다. 그 예가 &lt;쥬스틴>으로 이 소설에서는 선인들은 겁탈당하고 모욕 당하지만 조금만 악에 치우쳤던 쥬스틴의 언니는 오히려 인생이 활짝 펴서 선행이 가능한 상태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문화 이론이나 문학 창작을 배우고 있다면 그의 이름은 꼭 한 번씩은 만나게 된다.
가장 정상적인 작품으로 &lt;사제와 죽어가는 이의 대화>가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이자 습작에 가까운 작품인데 내용도 엄하지 않으면서 사드의 사상이 잘 드러났다.
"인간은 세상에 아무런 이유 없이, 우연으로 태어났다. 그러니 인간들이 모두 죽더라도 세상은 아무런 눈물도 흘리지 않고 관심도 없다. 또한 인간의 영혼이나 사후세계 같은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도덕이나 윤리 또한 모두 거짓말이다. 그런 것들은 지배층들이 피지배층들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낸 사기이자 거짓말이다. 지배층들은 결코 도덕적으로 살지 않는다.[12] 그들이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가? 그것은 자신들만 쾌락을 독점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행동은 바로 쾌락 뿐이다."
악연에서 / 사드
지젝 / 죽은 신을 위하여
지젝 역시도 무신론적 태도.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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